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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릉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모 시체 바다에 버렸다는 사림의 선동결과 공주의 남자에서 세자가 죽음에 이르자 이제 가야한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문종과 현덕왕후가 자신을 보고 손짓하고 있다고 말을 한다. 공주의 남자는 미스테리 추리물보다 복잡하다. 공주의 남자에서 단종이 죽는것을 간략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끝냈다. 더군다나 금성대군도 사약을 받고 죽는 것으로 끝냈다. 문제는 정종이 죽고, 금성대군도 죽고, 단종이 죽는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마침내 문종과 단종 등이 저승사자가 되어 세자를 끌고 간다는 설정이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설정인지 모르겠다. 정종이 죽은 때는 1461년 이고, 세자 도원군(장: 숭)이 죽은 때는 1457년이다. 숭이 죽자, 금성대군이 죽고, 단종이 죽는 순서이다. 그리고 정종은 1461년에 죽는다. 더군다나 경혜공주의 유복자로 나오는 정미수는 14.. 더보기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관노비 없었고, 아들 정미수 수양대군 지어준 이름 에서 정종은 죽기 전에 태중 이름을 지어준다. 아들인지 딸인지 모른다며 두 개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그런데 왜 정종은 태중 아이의 이름을 지어줄까? 사실 정종이 정미수의 이름을 지어준다는 설정은 잘못된 기록에서 기인한다. 정미수는 세조가 궁궐에서 정미수를 키우면서 "鄭眉壽"라고 지어준 이름이다. 오래오래 살라는 의미가 있다. 물론, 아명은 정종과 경혜공주가 지었을 것이다. 1461년 10월 정종이 죽을때 정조는 정미수는 여닐곱이라고 기록하고 있었다. 서거정의 예와 사관이 경혜공주가 죽을 때 정미수는 1473년 16세 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부러 정종과 경혜공주가 세조와 적대적인 것으로 만들다 보니 에서 정종이 죽으면서 지어준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다. 1455년 6월 정미수는 정종이 유.. 더보기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 된다? 사실은 진실과 허구 왜 퍼졌을까? 에서 경혜공주는 문종 말년(1452년 경) 비루한 가문의 정종에게 시집을 간다. 에서 문종은 김종서와 밀약을 맺고 김종서의 막내 아들 김승유를 경혜공주의 부마로 세우려 했지만, 수양대군(세조)의 반대로 정종에게 시집을 가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경혜공주는 처음에 마지못해 맞이한 부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정종이 자신을 지키고 문종이 승하하고 단종이 왕위에 있었을 때에도 충실히 왕실을 위해서 노력하는 면에 점차 마음을 열고 자신의 배필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경혜공주는 문종과 현덕왕후의 소생인 경혜공주(1436년생)는 세종 말년 1450년 1월에 세자 문종의 맏딸로 평창군주 시절 15살에 영양위 정종에게 시집을 간다. 작가가 자신이 목적한 이야기로 이끌어 가려고 사실이 아님을 알고 서도 허위로 만든 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