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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

뿌리깊은 나무, 한글 피를 먹고 창제? 사실은 요순 뛰어넘은 성군 칭송 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뿌리깊은 나무는 그 동안의 사극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시대고증을 하는 것으로서도 대단한 사극이고 명품사극의 반열에 올라도 될 만한 드라마였다. 뿌리깊은 나무 제작자 장태유는 를 시대상을 재연하는 을 표방하고 있었고 초기에는 일정하게 이를 완성하는 듯 하였다. 하지만, 후반에 갈수록 장태유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어린 세종 이도가 왕이 되고 나이가 드는 장면 하나에도 심열을 기울렸던 장태유에게는 나이가 들지 않는 한 사람이 있다. 소이역을 맡은 신세경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해례를 만들었고, 세종 이도는 이를 반포하게 한다. 그런데 소이는 세종 이도가 즉위할 때 나이가 여닐곱 정도의 아이였고, 세종 이도가 훈민정음을 반포할 때인 세종 28년 1446.. 더보기
뿌리깊은 나무, 광평대군 죽음으로 본 친일매국노 이광수 폐해 결국 세종.한글 사라지고 한석규만 남은 드라마 에서 드디어 밀본의 정기준이 세종 이도의 5번째 아들 광평대군을 죽이고 세종 이도에게 보낸다. 는 한글 창제 7일간을 다룬 드라마다. 그런데 기준이 애매모호한 측면이 많다. 1443년 12월 30일 창제 7일간인지, 1446년 9월 29일 반포 전 7일간인지 말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나온 기득권이 반대했다는 세법이나 최만리의 반대상소를 기준으로 하면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7일간이 맞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반포일을 기준으로 하는듯 하기도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작가 맘대로다. 한마디로 과거로 미래로 어디로 튈지모르는 타임머신을 탄것같이 멀미를 일으킬 정도다. 정기준은 세종이도와 함께 글과 백성에 대해서 경연을 펼치지만, 세종 이도는 정기준의 말이 마음속에 남고, 정기준은 세종 이도의 말이 마음속에 남는다.. 더보기
뿌리깊은 나무, 조선제일검 무휼 실제 모델은 성삼문 조부 성달생? 에서 무휼은 조선 제일검이라 칭하지만 젊은시절 정도전의 호위 무사였던 이방지에 패하였다. 그래서 무휼은 이방지를 꺾을 생각을 하고 쉼 없이 무술연마를 하고 이방지가 사라진 후 조선제일검이 된다. 이방지에 사사를 받은 강채윤은 이방지의 적통제자로 출상술과 북방의 무예와 투박술까지 고루 익힌 숨은 고수이다. 이방지에 사사를 받은 윤평은 강채윤이나 무휼에 패하였고, 심종수에게 까지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북방의 사라진 무림고수인 개파이는 조선제일검 무휼과 비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고, 늙은 이방지를 몰아세우지만 두 사람 다 상처를 입고 이방지는 물로 피한다. 개파이는 물을 두려워하는 공수병이 있었서 계곡물로 뛰어든 이방지를 추적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항상그렇듯이 강채윤과 개파이가 싸울 때 처음 강채윤이 .. 더보기
뿌리깊은 나무, 한글 성삼문, 신숙주, 최만리 같은 이유로 반대하고 찬성했다 는 최근에 보기 드문 사극이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있어서 안타깝다. 글쓴이(갓쉰동)은 뿌리깊은 나무를 하고 난 후 뿌리깊은 나무에 대해서 단 한가지 지금까지 사극에서 무시했던 무관들이나 무사들의 패검만으로도 는 역대 최고의 사극이라고 말한 적이 있고 되도록이면 비판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 하지만, 그 외 것을 제외하면 후반으로 갈수록 곳곳에서 빈틈이 보이고 있다. 물론, 무사의 고증을 제외하면 문헌사적인 고증은 김영현 사극의 맹점처럼 역사와는 무관한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다. 뿌리깊은 나무 18회에서 이방지와 강채윤은 지붕 위에서 술잔을 기울리며 담소를 나눈다. 그러다 하늘을 보니 휘엉청 밝은 보름달이 떠있다. 세종이 언문(소리글)인 훈민정음을 창제한 때는 세종 25년 1443년 .. 더보기
뿌리깊은 나무, 집현전 철폐와 한글 창제 극심한 반대했을까? 사실은 환영분위기 에서 세종 이도의 비밀 조직인 천지회에서 언문(소리글) 훈민정음이 창제 된다. 밀본은 세종 이도가 하려는 일이 글을 만드는 일인지를 알게 되지만, 글이 어떠한 형식인지 모른다. 하지만, 글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밀본과 유림은 글을 만들어 스스로 이적이 되려하느냐고 반발한다. 유림의 영수인 혜강을 필두로 성균관 집현전, 사관들 까지 들고 일어난다. 문제는 세종 이도가 만들려는 글이 얼마나 좋은지, 나쁜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강채윤은 훈민정음 28자로 반나절만에 글을 읽고 쓴다. 북촌의 어리숙한 밀본의 자객은 자신의 반나절 만에 자신의 이름를 쓰고, 어린 아이는 밀본 정기준의 말을 바로 듣고 글로 써내려 간다. 밀본 정기준은 글은 지배자와 지배하지 않는자를 가르는 기준인데 모든 백성들이 글을 알게 된.. 더보기
뿌리깊은 나무, 밀본 정기준 집현전 철폐공작 자책골인 이유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는 정기준(가리온)의 시신해부를 통해서 후음(목구멍)소리에 해당하는 상형문자 “ㅇ”를 만들어 낸다. 시신해부와 천지계 문신는 극중 긴장감을 위한 도구로서 작가는 유용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선덕여왕에서 보름날 일식만큼이나 황당한 설정이다. 한마디로 당시 조선 시대의 상황을 도외시한 설정이다. 분명 세종 이도는 극중 처럼 털털한 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눈물도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신하들과 논쟁을 하면서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눈물로 호소를 하기도 한다. 더불어 자신의 생각이 확고할 때는 논쟁으로 신하들의 논리를 무력화 시키기도 한다. 신하들과 대화를 하다 대화가 안되면 일반사람들처럼 신하가 물러나면 고루하고 생각이 낡았다고 뒷담화까지도 하면서 웃기까지 한다. 세종.. 더보기
뿌리깊은 나무, 광평대군 인질극 미래 밀본 암살 암시?, 한글 최소 160만자 에서 강채윤은 광평대군의 목숨을 걸고 내기를 한다. 세종 이도가 글자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광평대군을 죽이겠다는 밀서를 두고 글자를 포기하는지 광평대군을 포기하는 지의 내기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왜 광평대군의 목숨을 두고 내기하는 장면을 설정하였을까? 밀본은 밀본의 수하들이 광평대군과 소이를 납치한줄 알고 방을 붙이지만, 나중에 자신들에게 광평대군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궁궐 내부에서 어떠한 모의가 있는지 알아본다. 에서 훈민정음 창제와 보급에 깊이 관여하였던 사람은 다름이 아닌 세조 수양대군이었다. 수양대군은 집현전에서 언문 훈민정음을 통해서 운회를 번역하는 중추였고, 더불어 석가의 일대기를 훈민정음으로 석보상절을 직접 만들어 관여를 하였다. 훈민정음과 떨래야 땔 수 없었던 수양대군과 신숙주를 배격하고 성.. 더보기
뿌리깊은나무, 군나미욕과 곤구망기 성삼문,박팽년 한글창제 무관 증명 에서 집현전 직제학 이자 밀본인 심종수는 세종 이도 성리학을 버리고 유림을 압살하려 한다는 증거를 세법과 불경과 내불당 사건을 제시한다. 그런데 세종이 하려던 세법은 공법으로 기존의 토지세보다 부담을 적게 하는 정책이였고, 가진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가는 제도였다. 그래서 1430년 당시 약 18만명의 여론조사를 하였지만, 전라. 경상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특히 함길도, 평안도에서는 압도적인 반대에 직면하고, 경기, 충청 지역은 찬반이 엇비슷했다. 전라 경상이 찬성이 많은 이유는 토질이 좋고, 물과 환경이 좋아서 소출이 많았는데 이전 세금보다 1/3이나 줄어든 세금(감세)에 환영하지 않으며 이상하지 않겠는가? 사대부 양반. 유림의 기반은 토지에 있었고, 유림의 다수는 경상. 전라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 더보기
의자왕, 은고, 윤충 죽어야 영웅 될만큼 계백 한심한 인물이었던가? 의자왕과 은고의 배신으로 변방으로 떠돌던 계백은 의자왕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섰다고 말을 한다. 의자왕은 계백에서 그래 복수를 할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본다. 계백은 아직 멀었습니다. 당항성을 빼앗고 한수 이남을 회복한다면 더 이상 의자왕에 기대하지 않고, 의자왕이 어찌 할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니 그때 복수를 할 힘을 생길 것이라 말한다. 의자왕은 계백에게 미후성을 공취하라고 기병을 계백에게 주고 서울 사비로 돌아온다. 하지만, 계백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바람타령만 하고 있다. 은 장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드라마 제작자가 밝힌 제작의도에는 백제의 마지막 영웅을 그리고 백제를 재조명하고자 한다는데 에는 그 어디에도 백제의 영웅다운 모습은 없다. 그저 계백과 의자왕과 은고의 삼.. 더보기
공주의 남자, 훈민정음(한글)창제 성삼문 요동밀사는 세종 모독인 이유 - 한글날 제자리찾기 에서 성삼문, 신숙주, 이개 등 한글창제에 관여한 인물이라고 알려진 사육신이 나온다. 10월 9일이 한글날이기는 한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에 대한 상식이 얼마나 잘못된것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10월 9일이 훈민정음(한글)을 만든 565회 한글날이라고 한다. 이부터 잘못된 상식중에 하나다. 훈민정음(한글)이 만들어진 것과 반포일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더군다나 훈민정음 창제에 성삼문 신숙주는 훈민정음 창제에 커다란 공이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성상문과 신숙주, 이개 등 사육신을 포함한 집현전은 한글창제에 전혀 관여한적이 없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이글을 끝까지 읽고 나면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잘못된 암기식 역사교육을 받았는지 알게될 것이다. 는 세종 이도가 훈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