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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김춘추가 축국 이후 김유신의 집에가서 술을 마시고 취하고 잠을 잤는데 문희가 침상에 있어서 놀라 자빠진다.

대왕의 꿈처럼 부인을 생각해서 놀랐을까?

김춘추와 문희, 보희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보희가 문희에게 양보한 이유는 단순히 꿈을 팔고 사서 그런 것이 아니다. 보라부인과 결혼한 유부남 이기 때문에는 더더욱 아니다.

 

보희는 꿈에 서형산에서 오줌을 누자 서라벌이 홍수가 나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희는 보희의 꿈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하고 보희의 꿈을 비단으로 산다.

 

돼지 꿈을 꾸었는데 로또를 사지 않고 친구에게 팔아버린 것과 같다. 요즘도 횡재수가 있는 꿈을 구면 문희처럼 꿈을 팔라는 말을 하지만 보희가 되지 않으려고 꿈을 팔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유신의 계략이 넘어간 춘추가 김유신의 집에 오자 김유신은 보희에게 김춘추를 맞이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보희가 자신은 아퍼서 김춘추을 모실 수가 없습니다. 라며 거부하자 문희가 대타로 김춘추를 모시게 된다.

 

김춘추는 문희를 임신시키고서 나몰라 문희를 쌩깐다. 이에 분노한 잔머리 김유신은 김춘추가 자기 동생을 임신 시켜놓고 생깠다고 동네방네에 소문을 퍼트리고 문희를 장작에 태워죽이겠다고 언플을 한다.

 

 

문무왕(文武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법민(法敏)이고 태종무열왕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 문명왕후(文明王后)인데, 소판(蘇判) 서현(舒玄)의 막내딸이고 유신(庾信)의 누이이다.

그 언니[]가 꿈에 서형산(西兄山) 꼭대기에 올라앉아서 오줌을 누었더니 온 나라 안에 가득 퍼졌다. 꿈에서 깨어나 동생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 동생이 웃으면서 “내가 언니의 이 꿈을 사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비단치마를 주어 꿈값을 치루었다. 며칠 뒤 유신이 춘추공(春秋公)과 축국(蹴鞠)을 하다가 그만 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떼었다
.

유신이 말하기를 “우리 집이 다행히 가까이 있으니 청컨대 가서 옷고름을 답시다.”라 하고는 함께 집으로 갔다. 술상을 차려 놓고 조용히 보희(寶姬)를 불러 바늘과 실을 가지고 와서 [옷고름을] 꿰메게 하였다. 그의 언니는 무슨 일이 있어 나오지 못하고, 동생이 나와서 꿰메어 주었다. 옅은 화장과 산뜻한 옷차림에 빛나는 어여쁨이 눈부실 정도였다. 춘추가 보고 기뻐하여 혼인을 청하고 예식을 치루었다. 곧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법민(法敏)이다. - 삼국사기 문무왕 원년

 
이에 선덕여왕이 연기가 피어오른 모습을 보고 김춘추가 들으라고 저 연기가 무슨연기냐며 묻는다. 이에 신하들이 김유신의 동생이 아비도 없이 임신을 해서 집안망신이라며 태워죽이려는 것이라고 찔러버린다.

김춘추가 선덕여왕에 머리를 조아려 문희를 임신시키고 쌩깐 망나니가 자신이라고 고한다. 이에 선덕여왕은 김춘추에게 니가 사내라면 책임을 져야하지 않느냐고 질책하고 김춘추는 마지못해 문희를 구했는데 임신한 아들이 태어나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법민)이였다는 것이 그동안 알려진 이야기다.

 

 

춘추공은 유신의 뜻을 알고 드디어 아지와 관계하고 이로부터 자주 왕래했다.  유신은 그 누이가 임신한 것을 알고 꾸짖었다.  "너는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아이를 배었으니 그게 무슨 일이냐."  그리고는 온 나라 안에 말을 퍼뜨려 그 누이를 불태워 죽인다고 했다.  

어느 날 선덕왕(善德王)이 남산(南山)에 거동한 틈을 타서 유신은 마당 가운데 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질렀다.  연기가 일어나자 왕이 바라보고 무슨 연기냐고 물으니, 좌우에서 아뢰기를, "유신이 누이동생을 불태워 죽이는 것인가 봅니다"했다.  왕이 그 까닭을 물으니, 그 누이동생이 남편도 없이 임신한 때문이라고 했다.  왕이 "그게 누구의 소행이냐"고 물었다.  이때 춘추공은 왕을 모시고 앞에 있다가 얼굴빛이 몹시 변했다.  왕은 말한다.  "그것은 네가 한 짓이니 빨리 가서 구하도록 하라."  춘추공은 명령을 받고 말을 달려 왕명(王命)을 전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고 그 후에 버젓이 혼례를 올렸다. - 삼국유사

 

삼국사기는 김춘추가 자발적으로 문희를 임신시키자 혼례를 올렸다고 하지만, 요즘도 임신 시켜놓고 쌩까는 남자들이 많지만 김춘추도 책임지지 못하는 찌질이었다.

 

일연선사는 삼국사(삼국사기)에 나온 이야기는 거짓말 말이고 김춘추는 비겁하게 나몰라라 했다가 선덕여왕과 김유신의 합동작전에 어쩔 수 없이 문희를 받아들였다고 까발린다.

 

 하지만, 일연선사도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사실 선덕여왕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고 선덕여왕이 공주시절에 벌어진 일이다. 왜냐하면 선덕여왕 재위 기간는 632~647년까지였다.

 

 

위 사건이 정확이 어떤 시기에 일어난 일인지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역사학자들은 단순히 검증도 하지 않고 삼국유사의 기사를 보고 선덕여왕시기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확히는 언제였을까? 당연히 김법민이 언제 출생했는지를 알면 된다. 그런데 김법민이 언제 태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선덕여왕 시기라고 이야기할 뿐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헌고증에는 단순히 써 있는 대로  받아 들이면 안 된다. 교차검증이 필요하다.

 

   

김법민이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김법민의 동생인 김인문에 대한 기록이 삼국사기 열전에 나온다. 김인문은 진덕여왕 5651년 당나라 숙위로 떠난다. 이때 나이가 23살이라고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김인문(金仁問)은 자()는 인수(仁壽)이고, 태종대왕의 둘째 아들이다. 어려서 학문을 시작하여 유가(儒家)의 책을 많이 읽었고, 겸하여 장자(莊子)·노자(老子)·불교의 책도 읽었다. 또한 예서(隷書)와 활쏘기·말타기·향악(鄕樂)을 잘 하였는데, 행동의 법도가 수수하고 세련되었으며, 식견과 도량이 넓어 당시 사람들이 추앙하였다. 영휘(永徽 2(진덕왕 5: 651), 인문의 나이 23세에 왕명을 받아 대당에 들어가 숙위하였다. - 삼국사기 열전 김인문

 

그렇다면 651 23살이니 김인문은 629년생이다. 당연히 김인문의 큰형인 김법민(문무왕)은 629년 이전에 태어나야 한다. 629년이면 선덕여왕 시기(632~647)가 아닌 진평왕 때임을 알 수가 있다


김춘추가 문희를 받아 들일수 없었던 이유는 김춘추의 나이에서 쉬이 알 수 있다.  김춘추는 602년생이니 629년 이전이면 28살이다. 김춘추는 이미 결혼한 상태인 유부남이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김춘추가 문희를 거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고타소의 생모가 살아있기 때문에 문희를 받아 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대왕의 꿈에서 김춘추가 결혼한 상태에 있고 복중에 애를 가지고 있는 보라 김춘추의 아내라고 나오고 있지만, 이는 실존인물이 아니다. 박창화 화랑세기에 나온 이야기를 갖다 쓴것이다.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하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김춘추가 진평왕의 후비인 보량군주와 결혼시키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보량군주가 아닌 보량의 자매인 보라와 결혼한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했다면 김춘추는 할아버지 진평왕의 후비인 할머니랑 결혼했다는 망나니 짓을 한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런데 왜 보희는 문희에게 김춘추를 양보했을까? 김춘추가 유부남이기 때문에 그랬을까? 그렇지가 않다.

 

언니인 보희에게 문제가 있어서 문희가 대타로 김춘추를 받아들였다고 했다. 보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보희에게는 여자로서 차마 말할 수 없고 여자라면 다는 관계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보희는 생리를 하고 있으니 김춘추를 받아들일 수 가 없는 것이다. 요즘도 마찬가지이지만,당시에도 오라버니에게 나는 그날이니 문희에게 대타를 뛰게하세요라고 말하지 못하고 아프다는 핑계를 댄 것 뿐이다.

 

단순히 그날이라고 말을 하면 결혼한 사람이나 애인을 둔 남자들은 관계를 할 수 없다는 말이거나 실제로 그날이구나 잘 알아 듣는다. 보희는 김춘추와 맺어질 운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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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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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houseinhanoi.com/houses/properties/2/0 BlogIcon hanoi houses for rent 2013.05.06 1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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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의 꿈에서 김춘추를 진골이라고 한다.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를 때 성골남자가 없어서 선덕이 왕위에 올랐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김춘추를 진골출신의 왕족으로 왕위에 올랐다고 하는 게 그 동안의 통설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버려야할 통설일뿐이다.

 

역사스페셜에서는 김춘추도 성골로 만들어 만들어 버렸고,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를 때 김춘추를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직접적인 왕권과 관계가 없고 귀족간의 암투 때문이라고 얼버무린다 

김춘추가 성골인지 진골인지는 알 필요가 없다. 김춘추는 진지왕의 아들인 김용춘의 아들이다. 사실 김춘추가 김용춘의 아들인지 김용수의 아들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김용춘김용수는 동일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진평왕의 딸 천명공주의 아들이다. 왕족과 왕족간의 자식이니 김춘추 또한 왕족이다.

 


김유신 또한 대대로 신라 왕의 외손이고 가락국의 왕손이다. 김무력은 진흥왕의 딸 아양공주와 결혼했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은 진흥왕의 동생 숙흘종의 딸인 만명과 결혼해서 왕족이다. 이미 김유신 이전시기부터 왕족인 진골출신이다.

 

삼국사기에도 분명히 1골과 2골을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해석하는 자들이 자의적이 되어 버린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살펴봐도 <진지(금륜)>이 폐위되었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이 <족강>이 되어 <진골>이 되었다고 언급이 되어 있지도 않고, 춘추 이전의 왕들과 춘추이후의 왕을 구분하는데 단순히 2분법적으로 나누고 있을 뿐이다.

만약, <춘추>이전의 왕들을 <성골>로 나눴다면, 눌지이후의 왕들은 모두다 <진골>일 수 밖에 없다. 그이유는 눌지이전의 왕은 실성왕이다. 눌지가 고구려의 지원을 등에 업고, 실성왕을 폐위시키고, 쿠데타를 성공시켰다.

문제는 눌지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자비왕은 실성왕의 딸인, 눌지왕비의 소생이다. 자비는 곧 폐위된 왕의 외손이 된다. 

통설에 따르면, 실성왕녀인 눌지왕비는 <족강>이 되어 <진골>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용춘의 예에 따라 그의 후손인 <자비왕>도 마찬가지로 <진골>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눌지 자신은 성골 진골 그런게 무슨 개뼈다귀냐는 듯이 상관하지 않고, 자비왕(눌지/실성왕녀)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458년 자비 마립간(慈悲麻立干)이 왕위에 올랐다. 눌지왕의 맏아들로 어머니 김씨는 실성왕의 딸이다. - 자비왕 원년


또한, 진흥왕도 법흥왕의 아들이 아니다. 그렇다고 법흥왕의 형제도 아니다. 그러니 성골로서 왕이되지 못했다. 지증왕도 성골로 왕위를 이어 받지는 못했다. 단지 왕족으로서 전왕인 소지(비처)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받았을 뿐이다.

진평왕은 머리가 어떻게 되서 자신의 딸인 천명공주를 폐위된 진지(금륜)의 자식(용수와 용춘)에게 시집을 보냈겠는가? 천명을 족강시키기 위해서? 아니면 전왕의 자식들과 화해할려고?

그런데 진덕왕 이전 시기는 성골이고 태종무열왕(김춘추)이후에는 진골이라는 설이 합리적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역사연구의 결과라는게 증명이 된다.

단순히 성골은 <성조(聖祖>나 <성조(聖朝)>의 다른 말이다. 왕보다 성스러운 존재가 어디에 존재하겠는가? 그런데 갑자기, 왕이나 왕의 자제를 성골 밑의 진골이라고 생각하는 발상자체가 웃기는 것이다. 좀더 정확한 <성골>의 의미는 현재 왕의 피와 살과 뼈를 이어 받는 자이다. 또한, 삼국사기가 인용한 당나라 영호징의 <신라기>에도 <왕족>을 <1골>이고, 귀족을 <2골>이라고 이야기 했다.

당나라 영호징(令狐澄)의 신라기(新羅記)에 말하기를 『그 나라의 왕족은 제1골(第一骨)이라 하고 나머지 귀족은 제2골(第二骨)이라 한다.』- 654년 3월 진덕왕 8년

영호징의 신라기에도 왕족은 제1골인 진골이고, 나머지 귀족들는 제2골일 뿐이다. 귀족인 2골은 6두품에해당하는 6부의 귀족들이다. 성골은 누구냐고? 당연히 현재왕의 형제나 뼈를 이어 받는 왕자와 공주들이다.

그러니 당연히 춘추는 진평(백정)이나 선덕(덕만)이나 진덕(승만)의 피와 살을 이어 받지 못했던 왕족으로 왕이 되었다. 그리고 춘추 자신이 <성골>이 된것이다. 문무는 김춘추왕의 뼈를 이어 받았으니 당연히 <성골>로서 왕이 된것이다.   신라사 연구의 가장 커다란 통설의 실패작은 <성골>, <진골>을 구분하는데 있다. 

잘못된 통설로 인해서 삼국시대 특히 신라의 드라마 마다 성골이 어떻네, 진골이 어떻네 하는게 얼마나 얼척없는 짓인지 모르겠다.

드라마 <대왕의 꿈>에서 김춘추가 왕의 자질을 보여주었다며 진골인 김춘추를 진평왕의 양자로 만들어 왕위를 물려주어야 한다고 설왕설래가 심하다. 김춘추를 양자로 입적하자는 설은 재미있기는 하지만,<대왕의 꿈>에서나 역사적인 기록에서도 어릴적 김춘추가 왕의 자질을 보여준적은 없다.


오히려 덕만공주는 지기삼사라는 3가지의 영특함을 보여주고 왕의 자질을 검증받은 적은 있지만 말이다. 최소한 드라마 상으로라도 김춘추가 왕의 자질이 있음을 보여주기 바란다. 문제는 드라마 대왕의 꿈에서 나온 김춘추는 버르장머리 없는 모습만 무수히 보여주기만 했을 뿐이다.

사실 글쓴이(갓쉰동)은 사극에서 특히 정통사극을 표방하는 KBS에서 이렇게 허술하게 드라마를 만들줄 꿈에도 몰랐다.

김유신이 화랑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가야파에 불과한 김서현이 만명과 사통하자 만명부인과 인연을 끊었다고 말을한다. 그래서 김유신도 거부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유신은 595년생이다. 김유신은 20개월만에 세상의 빛을 밨다고 한다. 아무리 김유신이라고 해도 임신기간 40주를 넘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김유신의 임신기간이 20개월일 수는 없다. 합리적인 해석은 만명부인은 임신중독에 의한 비만이 되고 사산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만명부인이 실제 비만형일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김유신은 김서현과 만명의 첫째자식은 아닐것이다.
 


드라마 대왕의 꿈에서는 새파란 화랑 김서현이 만명과 사통하고 인정받지 못하자 594년에 김서현과 만명이 도망쳤다고 설정되었지만, 위의 임신 20개월이라는 사실로 보아 593년경에 도망쳤을 것이다. 김서현은 564년생이다. 594년이면 김서현의 나이는 한국나이 31살이다. 드라마 대왕의 꿈에서는 김서현의 나이는 김유신과 비슷해 보인다. 반면에 백제 무왕은 580년생으로 609년이면 29살에 불과한다. 늙은이로 나온다. 기본적인 설정은 지키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숙흘종이 반대한 이유는 김서현이 가야파였기 때문일까? 답은 김서현에게 있다. 김서현이 도망친 년도에 상관없이 김유신이 태어난 때 김서현의 나이는 한국나이로 30살쯤이 된다. 현재야 30대에 결혼하는 경우가 많지만 과거에는 여자는 생리를 하기 시작하면 결혼상대를 구했고, 남성도 2차 성징이 나타나는 15세 전후에 결혼을 시켰다. 그러니 김서현은 나이가 많아도 너무나 많다.

 



당시의 기준으로 김서현은 만명에 비해서 아버지 뻘이지만, 김서현은 진흥왕의 외손이고, 만명은 진흥왕의 조카다. 서열상 만명이 김서현보다 높은 서열이다. 이모뻘인 만명과 조카뻘인 김서현이다. 

김서현이 만명을 만난때에는 김서현은 이미 결혼을 했거나 사별한 상태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아마도 김서현에게는 김유신 말고도 김유신위 형제들이 있었을 것이다. 반대이유도 가야파보다는 유부남에 나이많고 손자뻘인 김서현을 탐탁치 않았다고 보는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611년 겨울 10월에 백제 군사가 가잠성(椵岑城)을 포위하여 100일이나 지속되었다. 현령(縣令) 찬덕(讚德)이 굳게 지켰으나 힘이 다하여 죽고 성은 함락되었다.



 드라마상 시대배경은 609년경의 일인데 또다시 김유신은 611년 가잠성 전투에 참여한다. 드라마 작가들, 특히 사극 작가는 역사서를 기본적으로 봐야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극작가들은 역사책보기보다는 이전에 나온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고 이전과 다른 설정을 한다. 문제는 이전 작가가 만들어 놓은 틀을 조금만 수정해서 아이디어를 도용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전 드라마의 잘못이 만드는 드라마 마다 반복된다. 김유신의 가잠성 전투 참여는 MBC 선덕여왕을 빼낀 계백에서 빼온 것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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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ornets 2012.09.16 15: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왕이 580년생이라는 건 어디에 나와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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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의 꿈에서 숙흘종이 김서현과 만명의 관계를 반대한 이유를 가야계 진골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에는 자식이 없다며 김유신의 화랑가입도 반대를 한다. 그렇다면 이는 사실일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사실처럼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 잘못된 환상이 부른 파국일 뿐이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은 김무력과 아양공주(진흥왕의 딸)의 아들로 왕실의 외척이다. 숙흘종은 진흥왕의 동생이니 김무력은 숙흘종에게는 조카사위가 된다. 그러니 숙흘종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김서현이 이모뻘이 되는 만명(숙흘종/만호)를 사랑하는 것도 용서가 될수도 있다.

더군다나 진골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논리는 더더욱 문제 투성이다. 오히려 김서현이 숙흘종보다 진흥왕의 직계에 가깝다. 김서현 가문은 금관가야 출신으로 대대로 신라왕족과 결혼동맹을 맺고 있었다.
 
<대왕의 꿈>에서 김유신은 자신을 금관가야 왕족 출신이라며 자존감을 내세우고, 화랑들은 김유신이 가야계이고 아버지 김서현이 만명부인을 보쌈해서 숙흘종이 반대하니 화랑이 될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어린 김유신이 자신을 금관가야 출신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냥 가야나 가락이나 남가야나 임나인으로 생각해야 정상이다. 왜냐하면 금관경, 금관가야의 최초기록은  680년 가야군에 금관소경을 설치했다. 그러니 어린 김유신이 금관가야를 입에 담을수 없다. 금관이란 지명은 김유신 사후에 생겼으니 말이다.
 


가야국 김수로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에서는 김해관이란 상단도 나오니 한국 사극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극의 기본은 사료를 바탕으로 한 고증과 개연성이다.

신라시대 성골은 왕의 직계친인척 밖에 없다. 그 이외 방계왕족들은 진골일 뿐이다. 김춘추가 진골인 이유는 진평왕과 하등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진지왕(전지)의 손자이지만 김춘추는 진평왕의 딸인 천명공주의 아들이다.

덕만공주나 천명공주는 성골이지만, 천명공주의 아들 김춘추는 진골이다. 마찬가지로 김유신도 진골이다. 김춘추가 왕이 되는 순간 김춘추는 성골이 되고, 그의 아버지 김용춘(용수)도 성골이 된다. 당연히 김춘추의 아들들도 성골이 되는 것이다. 진덕왕 때 성골이 없다는 이야기는 진덕여왕에게 아들도 딸도 없었기 때문이다.

진덕왕이전 시기를 성골시기이고 태왕무열왕 이후 진골시대라고 분리하는 것은 허구적 논리로 성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라 혁거세 이후 석탈해가 성골이 될수 없는데 성골이 되고, 김씨계 최초의 왕이 되는 김미추 이사금 또한 성골이 될 수 없는데 왕이 되고 성골이 되었다.

그동안 알려진 숙흘종이 김서현을 반대한 이유가 신분상으로 김서현은 가야계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숙흘종 자신의 동생(?)인 아양공주가 이미 김서현의 아버지 김무력에 장가를 갔고, 김무력은 백제 성왕을 죽이는데 일등공신이였다.

숙흘종이 반대한 이유는 김서현의 신분때문이라고 하지만, 단지 김서현의 나이와 결혼때문이다. 김서현은 564년생이다. 김서현이 만명과 도망친 때는 593년경이다. 당시 김서현의 나이는 30살이였다.

당시 신라시대 30살이면 손주도 볼나이다. 그러니 김서현은 장가를 갔어도 한참전에 갔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그러니 김서현은 이미 장가를 갔었고, 김서현이 사별을 했던지 만호가 후처가 되기때문에 왕족으로서 후처가 되는 것을 반대 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대왕의 꿈>의 시대배경은 606년이다. 김춘추 나이 5살(만 3~4살) 똥오줌도 제대로 가리지 못할 나이다. 그런데 키는 기골이 장대하고 말주변은 20대이다. 그리고 비형랑은 김춘추 아버지 김용춘의 동생인데 작은아버지에게 야자를 까고 있다. 최소한 개연성 있게 만들어주면 안되겠나? 김춘추가 무슨 후레자식인가? 왕도 자신보다 계보가 위이면 야자를 하지 않는다. 또한, 신하에게도 야자를 트지 않는다. 김춘추가 무슨 개망나니 인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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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kmc10314.tistory.com BlogIcon 체리블로거 2012.09.10 07: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골중에 사실 제대로 역사에 근거해서 만들어진게 없긴 하죠...
    그나마 예전사극들이 조금 덜했다고 할까요...? ㅎ

  2. hornets 2012.09.10 1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타 좀 줄여주세요..^^

  3. 2012.09.11 0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신라 삼한일통의 초석을 다진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일대기를 다룬 대왕의 꿈이 KBS에서 200억 대작으로 시청자의 소중한 시청료로 만들어 지고 있다.

 

대왕의 꿈 1회에서 김춘추(최수종)김유신(김유석)의 결투신이 방송되었다. 그리고 606년 백제가 만노군(진천)에 침공해오자 어린 김유신이 백제 장군을 몰아내는 신이 스팩타클 장구하게 그려졌다.

최수종은 또다시 사극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최수종의 사극은 너무나 뻔한 캐릭터다. 고려왕건이 신라 김춘추가 되고 해신 장보고가 된다. 오죽하면 고려를 건국한이는 최수종이라고 하겠는가? 배우에게 대단한 칭찬일수는 있지만 최수종에게는 짐이되기도 한다.

글쓴이(갓쉰동)은 누가 주인공이 되던 상관하지 않는다. 글쓴이가 주로 보는 것은 작가와 연출자의 개연성 있는 스토리와 역사의 이해도 일뿐이다.

다만, 같은 패턴에 같은 캐릭터를 고수한 최수종의 연기는 식상하기는 하다. 충분히 KBS는 사극할 만 사람이 최수종 밖에 없냐는 비판을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어쨌든, 김유신은 화랑의 상징이라고 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있다.

김서현의 명에 의해서 신라 서나벌(경주)로 온 김유신은 천관녀를 희롱하던 화랑들을 무찔려 구하고, 화랑이 되려 하지만 신분과 어머니 만명(숙흘종/만호)과 김서현의 도주로 인한 외할아버지 숙흘종(입종갈문왕의 아들, 진흥왕의 동생)의 반대로 화랑이 되지 못한다고 나온다. 
 

그런데 연예부 기자가 대왕의 꿈이 대작으로 정통 명품사극에 명불허전이라며 칭찬하기 바쁘다.

 

 

 

이날 방송은 역사 운명의 소용돌이에 함께 휘말릴 김춘추와 김유신 만남을 조명했다. 캐릭터들이 놓인 상황을 역사적 근거에 기초해 재창조한 대본은 탄탄했고 어디까지나 김춘추와 김유신 집중 조명한 연출력은 남달랐다.

 

고증을 통한 신라시대의 의상과 장신구 등도 시청자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 기사중 일부 -


 역사적 근거에 기초하여, 고증을 통한 신라시대의 의상과 장신구란다. 도대체 역사적 근거에 기초했다는 건지 모르겠고, 고증을 통한 신라시대의 의상과 장신구가 나오는지 알 수 가 없다.

 

연예부 기자들이 말한 신라시대 고증과 역사적인 근거를 찾아보자.

 

김유신 595년생이다. 그렇다면 606년 이면 김유신의 나이는 한국나이로 12살이며 초등학교 5학년에 해당하고 만으로 10~11살에 불과하다. 이때 김춘추의 나이는 602년생으로 한국나이로 5살이고 만나이로는 3~4살에 불과하다.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603년 북한산성 전투에 김유신을 전투에 참가시킨 적도 있으니 양호하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602년 전투에 참가시켰으니 양호하다고 해야하나?  어디에 역사적 근거가 있는가? 더군다나 5(:3~4) 꼬마가 김유신과 맞장을 까고 증조할머니인 사도태후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나 있겠나? 아무리 김춘추와 김유신을 띄우고자 하더라도 김일성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이성계가 낙엽으로 강을 건넜다고 해도 믿을 판국인가? 적당히 해야 한다.

 


김춘추가 쓰고 있던 왕관은 신라 중기시대에 출토된 날출()자 신라금관 중에서 단이 가장 많은 4단 가지를 가지고 있다. 더불어 김춘추의 허리춤에는 신라릉에서 출토된 옥대를 차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두고 신라시대의 왕의 복식을 복원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글쓴이(갓쉰동) 이 볼 때는 이상하고 이상하다
 



진평왕, 선덕왕, 진덕왕은 옥대를 차고 있을 수가 있다. 삼국유사에 진평왕의 천사옥대 이야기가 나오고 천사옥대는 신라의 3대 보물 중에 하나였다고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는 전하고 있다.

 

경명왕 5(921) 봄 정월에 김율 (金律)이 왕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신이 작년에 사신으로 고려 에 갔을 때 고려 왕이 신에게 물어 말하기를, ‘신라에는 세 가지 보물이 있으니, 장육존상(丈六尊像)과 구층탑(九層塔) , 성대(聖帶)를 이른다고 들었다. 장육존상과 구층탑은 아직도 있으나, 성대가 지금까지도 있는지는 알지 못하는데, 그러한가?’라고 하였는데, 신은 답하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이를 듣고 여러 신하들에게 물어 말하기를, 

“성대는 어떤 보물인가?”라고 하였으나, 아는 자가 없었다.

 

이때 황룡사(皇龍寺) 90세가 넘은 승려가 있었는데, 말하기를 

“제가 일찍이 그에 대해 들었는데, 보대(寶帶)는 진평왕 (眞平王)이 착용하던 것이라고 합니다. 대대로 전해져 남고(南庫)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마침내 창고를 열도록 명하였으나 찾을 수 없어, 다른 날 재계(齋戒)하여 제사를 지낸 이후에 그것을 찾았다. 그 성대는 금과 옥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매우 길어 보통 사람들이 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그런데 KBS는 고증을 하였다고 한다. 웃기는 장면은 김춘추가 금관을 쓰고, 옥대를 차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654년 진덕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 김춘추가 천사옥대에 해당하는 옥대허리띠를 차고 있을 수 없고, 김춘추가 황금관 쓰고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김춘추가 진덕왕 시기 법흥왕 이후 자리잡았던 신라 복식을 모두 당나라 식으로 바꿔 버렸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648년 진덕왕 2[] 춘추는 또 장복(章服)을 고쳐서 중국의 제도에 따를 것을 청하자 이에 내전(內殿)에서 진귀한 옷을 꺼내어 [] 춘추 와 그를 따라 온 사람에게 주었다. 조칙(詔勅)으로 [] 춘추 에게 관작을 주어 특진(特進) 으로 삼고, 문왕 을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으로 삼았다.

 

649년 진덕왕 3년 봄 정월에 비로소 중국의 의관(衣冠)을 착용하였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복식이 바뀌자 일본서기에는 왜에 사신으로 온 신라사신에게 신라의 복식이 당복식으로 바뀌자 비아양하기까지 했다. 니들 나라는 자존심도 없냐? 당복식으로 바꿔 스스로 당나라 속국이 되려하느냐고 말이다.

 

김춘추 스스로 당에 들어가 신라 복식을 당나라 복식제도로 바꾸었는데 김춘추가 왕이 되자 다시 황금관을 쓰고 옥대를 찼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합당하다고 생각되는가? 그리고 그것이 신라시대 복식과 장신구를 고증을 통해서 재현했다고 할 수 있는가?

 

조선고종은 조선복식을 바꾸어 스스로 서양식 복장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후대에 대한제국 순종의 복식을 세종시대의 복식으로 재연한다면 이는 합리적이지 않다.

 

1977박정희가 경주 남산 밑에 통일관을 만들고 통일의식을 고취하고 했다. 그리고 김춘추(태종무열왕), 김법민(문무왕), 김유신(흥무대왕)의 영정을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모두다 신라금관을 쓰고, 옥대를 하고 있다.

뼈속까지 친일매국이였던 박정희가 혈서를 쓰고 일본제국군이 되었다고 해서 일본 제국군복을 입고 대한민국 헌법질서를 파괴한 자가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헌법위에 손을 얹고 대한민국 대통령 선서를 하지 않고 양복을 입고 선서를 했다. 박정희가 군복을 입고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군사반란을 일으켰다고 해서 군복을 입고 대통령선서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드라마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유물을 전시하고 영정까지 만들었다고 하는 경주 통일관의 영정을 비롯해 전국에 깔려있는 김춘추 영정들은 모두 불태워버리고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아무생각없이 고증을 했다며 이미 진덕왕때 바뀐 복식을 대왕의 꿈처럼 황당하게 김춘추가 신라금관과 옥대를 찼다는 황당한 허구가 닥치고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무지는 사라질 것이다. 김춘추, 김유신, 김법민의 영정이 불태워저야 대한민국 역사가 바로설수  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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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모 2012.09.10 0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대는 누구신지
    민주진보당 입닙까?

  2. BlogIcon 경상도인 2012.09.10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거가 다가오니 서서히 경상도,전라도 말이 나오는 구먼......

  3. .....ㅡ 2012.09.10 15: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의 내용에는 저역시 공감하지만 밑에 댓글 다신 분의 말씀은 조금 그렇군요 태종 무열왕 김춘추가 삼국통일과정에서 당나라를 끌어들인 점에서는 잘못했지만 결국 당나라를 몰아냈으며 외교 과정에서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긴 하지만 당나라의 속국을 자처했다는 것은 좀 그렇군요 아래 댓글을 다신 분이 하신 말씀은 태종 무열왕의 모든 업적을 부정하며 우리 역사를 부정하는 것 밖에 되질않습니다 거기다 경상도니 김씨니 이런 말씀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것으로 밖에는 볼 수없네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이런걸보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

    • moosou 2012.09.12 0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봐요 김춘추가 삼국통일 한거 빼고 이렇다 할 업적이 있습니까? 삼국통일도 다 하지 못했죠 고구려 치지도 못하고 사망 했으니.
      김춘추는 그냥 의자왕에게 복수하려고 눈이 뒤집혀 당나라 끌여들여 백제 멸망 시킨거지 애초에 삼국통일의 목적도 아니었죠.
      백제도 예식이라는[당시 웅진성주] 배반자 덕분에 운좋게 의자왕 사로잡아 멸망 시킨거죠.
      김춘추의 업적이 있다면 좀 풀어서 알려 주시렵니까?

  4. 김씨 2012.09.11 1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는 좀 제대로 알고 지껄이세요

    진평 사후에 두 여왕때 신라국력 개판납니다
    왕위싸움에 군사력도 엉망,
    선덕때 김춘추 딸 고타소 죽어서 김춘추 열받아서 고구려에 원병 청하러 갑니다
    백제 친다구요, 댓가없이 원병 달라고 하니 연개소문이 옥에 가둡니다
    뒤에 뇌물쓰고 신라가 먹은 고구려땅 되돌려 준다고 허언을 해서 옥에서 탈출 한 다음
    그 길로 당나라 가서 고구려좀 쳐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고구려는 그거 다 막아내고,
    그동안 신라는 백제를 건들여보지도 못하고,
    김춘추 왕위에 오르고 나서,, 고구려땅 전부를 당에게 준다는 약속하고
    나당연합으로 백제 멸망시키는거에요
    백제 멸망후 1년뒤 김춘추 죽어요
    백제복위 세력도 감당 못해서 당나라군이 백제 잔여세력까지 없애고,,
    당나라가 고구려땅 뿐 만 아니라 백제 신라까지 넘보자
    안승 주도의 고구려 부흥세력에게 신라내 망명정부를 세워주면서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세워주고 당나라 몰아내라고 시키는거에요,, 그래서 그나마 그 덕에 백제영토를 당에게 안뺏긴거구요,

    헛소리 지껄이는 분들은 제발 좀 역사 공부좀 하고 헛소리를 하세요,

    우리민족이 위기상황에서 외세에 의존하는거,,신라가 밥먹듯이 하던거에요
    쪽바리 쳐들어오자 바로 광개토대왕에게 구조요청하고,,
    조상이지만 부끄러운건 부끄러운거고 인정해야하는겁니다

    제가 경주김씨라서 이런말 하는거에요,

    • 역사좀 제대로 2012.09.11 1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타소 죽였다고 백제를 멸망시키겠다 는 일념으로 왕이 되고 당나라와 손을 잡은 거임..원한을 잠시잊고 숲을 보는 안목이있었다면 대한민국영토가 한반도 절반만 있지는 않았을 거다

    • 김씨 2012.09.11 2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타소죽어서 그런거라고 써놨는데요

  5. moosou 2012.09.11 2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우 공감 됩니다.
    그런데 당나라 힘입어 통일하고 통일후에 당나라 속국으로 만든 당나라 개 였던 김춘추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토록 영웅시 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김씨들 경상도인들...

  6. 2012.09.13 2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심한 김춘추새끼

  7. 2012.09.13 2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심한 김춘추새끼

  8. 2012.09.22 0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9. Favicon of http://cheaplouissvuittonhandbags.com/ BlogIcon Discount Louis Vuitton Handbags 2012.11.22 1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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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Favicon of http://canadagooseonliner.com BlogIcon Baby Reese Bomber 2012.11.27 1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 참 우습다 정말 두렵다

  12. 대신라혼 2013.01.30 04: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제넘게 역사에 대해 글을 쓰고 있는 현장이네요. 전라도 왜구 세력의 후손인지, 이주해온 중국 백제의 유전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이 되었건 한민족과는 관계가 없는 집단이지 싶은데, 역사에 대해서 왈가 왈부 하고 싶으면 최소한 기본적인 고고학 유물이나 접하고 나서 썼으면 하는 생각을 전해봅니다.

    박정희가 아무 이유없이 신라의 3신을 설정을 해서 영정을 만들어 뒀을거 같습니까? 이주해온 중국 한족 백제를 박살을 내서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전라도의 전방후원형 세력인 임나를 신라의 진흥왕이 영구히 멸망시켜, 김춘추가 일본에 갔을 때, 일본에서는 임나의 조를 면제해주기로 했죠.

    물론 왜 임나의 조를 면제해줬는지는 일본서기에는 전하지 않죠. 추정에 근거하면 당시 일본내부의 소가씨의 난이 한참일 때, 고대 신라인과 한 혈통이었던 일본의 야요이인들을 도모해서 천황가를 도와 소가씨의 난을 제압했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만 있을 뿐이죠. 당시 천황가의 가장 큰 골치가 내부 반란 문제였으니 말입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일본이 이유없이 한반도의 전라도 임나를 멸망시킨 것에 대한 사죄의 의미를 담고 있는 임나의 조를 면제할 이유가 없다라는 것이죠.

    고고학 유물을 왜 보라고 하는지 궁금하지요? 백제 한성 백제박물관에 가서 거기서 나온 모든 고고학 유물들을 접한 뒤에, 중국의 남경 박물관에 가서 유물을 딱 접하고 오면 됩니다. 그러면 백제라고 하는 국가가 뭔지 정확하게 알게 될겁니다.

    일본의 3대 신기인 칠지도에 명문이 하나 등장하죠. 다른 내용은 다 접어두고, 태화 4년이라고 하는 명문이 나옵니다. 중국 동진의 명문이죠. 왜 중국 동진의 연호가 칠지도에 새겨져 있으며, 거기에 두개의 나라, 즉, 백제와 倭가 존재하는지 궁금하지요? 궁금할거 없습니다.

    4세기 이후부터 한반도와 일본에는 중국남조의 유물이 대거 출현하는 공통점이 나오기 때문이죠. 그리고 백제와 倭는 중국 동진 이후로 60간지만 출현을 시키죠. 귀하의 수준이나 식견으로 고대사를 이야기 하는건 한민족사를 모욕하는 것과 같은 처사라는 개인적인 소견을 전합니다. 특히 그 몸의 혈통에 임나의 피가 흐르고 있는 주제라고 한다면 더더욱 기가 막히죠.

    광개토 대왕의 신라구원전에 의해 전라도의 옹관묘 세력은 4세기 말에 그 흔적을 감춥니다. 그리고 한성백제가 멸망한 직후에 전방후원형 세력이 등장을 하게 되고, 이 전방후원형의 등장으로 웅진백제라고 하는 국가가 갑자기 출현을 하죠. 역사에서 사라진 백제가 또 등장을 하는 희한한 현상이죠.

    그리고 이 전방후원형은 신라의 진흥왕에 의해 몰살을 당하는데, 이 당시에 있었던 전쟁이 그 유명한 "관산성 전투"입니다. 백제와 倭, 임나 3국이 신라에 의해 몰살을 당한 전쟁이기도 합니다. 관산성 전쟁 이후로 전라도의 전방후원형은 자취를 감추고, 이후부터는 백제, 신라 누구의 유물도 출현시키지 않습니다. 즉, 사람을 죽이기 위한 의도에서 전쟁을 벌였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재미있지요? 이게 역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수준 안되는 논리로 김춘추나 김유신, 신의 레벨에 입문한 사람들의 능력을, 귀하의 수준으로 재단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그들이 왜 신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들이었는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오게 될것이니,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되겟습니다. 그리고 귀하의 몸속에 흐르는 하등한 유전자와 혈통에 대한 괴리감도 한번은 맛볼 날이 오게 될겁니다.

    신라는 삼국중 가장 늦게 중국식 연호와 관등을 받아들여, 김부식 조차도 고구려와 백제가 일찍부터 중국을 받들어왔는데, 신라가 참람되게 중화를 받아들인점을 괘씸해하기도 했죠. 가장 늦은 중화가 귀하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되어지는가 봅니다. 만년 중국의 속국으로 살아오며, 조공대국으로 연명해온 과하마 기마군단을 운용한 고구려와 중국 그 자체와 완전히 꼭 같은 백제에 대한 귀하의 비난의 논조가 어떨지가 낼름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 에라잊등신 2013.02.16 18:14  댓글주소  수정/삭제

      W고구려가 중국을 받들엇다는건 무슨개소리냐
      중원사상을 철저히 밟아버린게 바로 고구려다
      어디서 짱개 쪽발이가 역사좀 아는척 설치노
      난 경주김씨 수은공파 울산사는데 신라가ㅅ후리하고 빙신인건 인정해라 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은 서현가문의 장자인 유신을 자신의 아들 하종(11세 풍월주)의 딸 영모(하종/미모: 티아라 큐리 이지현)의 짝으로 생각하고 밀어 붙히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정말 미실은 강압적으로 유신의 자신의 손녀사위로 유신을 요구했을까?

또한, 유신은 영모(큐리)를 탐탁찮게 생각했을까?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는 것과 같이 대원신통으로 미실은 신라의 제사를 주관하는 신관의 지위에 있었다. 영모는 할머니 미실과 어머니 미모를 따라 천관직을 계승했다. 물론, 정치적으로 미실은 강력한 파워를 발휘를 한다. 하지만, 서현가문과 비교를 한다면 미실가문은 미천한 가문에 속한다. 


천관녀가 영모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비형랑을 아무리 기다려도 <선덕여왕>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실은 이미 비형랑은 등장하고 있다. 비형랑이 곧 비담이고, 형종이다. 비담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캐고 알아낸 이름이 <형종>이다. 이가 곧 비형랑이니 알아 먹으라는 뜻이다. 그런 미실이 곧 <도화녀>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아무리 천관녀를 기다려도 <선덕여왕>에는 나올 수 없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왜? 김유신의 첫사랑 <천관녀>는 나오지 않는거야?" 하지 마시고, 영모가 천관녀이구나 생각하면 된다.

위의 이전글은 천관녀가 영모일 수 밖에 없는 이유와 정치와 종교에 의해서 만명(임예진)이 <천관녀>인 영모를 멀리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글은 극히 개인적인 원한관계 때문에 만명이 천관녀 영모를 받아 들이지 못한 이유에 관한 글이다.

미실의 가계

서현의 어머니는 아양공주이다. 아양공주는 진흥왕과 사도(영실/옥진)사이에 태어난다. 사도는 사사로이는 미실의 이모가 된다. 그러니 아양과 미실은 이종사촌간이 된다. 하지만, 서현(무력/아양공주)은 진흥왕의 외손이다. 또한, 만호태후의 딸인 만명(임예진)은 남편이 되는 서현과 도망한 후 결혼하고 유신을 낳았다.

그러니 유신은 만호태후의 외손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미실이 진흥의 후비이고, 진지의 후비이고, 진평의 비가 되었다고 해도, 서현가문을 만만하게 볼 수는 없다. 물론, 서현가문도 미실을 만만한 상대로 여길 수는 없다. 어찌 되었던, 미실은 마야왕후 이전 진평왕의 물러난 왕후였기 때문이다. 


영모의 아버지 하종은 세종/미실 사이에 태어난다. 세종은 지소태후/이사부 사이에 태어났다. 그런데 하종의 정실 부인은 영모의 어머니인 미모(설원랑/준모)가 아니다.

연개소문 미실(서갑숙) 천관녀(박시연)

하종의 정실 부인은 진흥왕/사도왕후 사이에 태어난 은륜공주이다. 하종은 진흥왕의 부마가 되는 것이다. 서현의 아버지 무력이 진흥왕의 부마이였듯이 하종도 진흥왕의 부마인 것이다.


하지만 서현가와 세종/미실가는 사사로이는 약간의 다툼이 있었다. 서현의 부인인 만명은 만호태후의 사녀이다. 만호태후(이화랑/지소태후)가 숙흘종(입종/금진)과 관계하여 만명을 낳았다.

만호태후는 처음 동륜태자의 비가 되었다 .하지만, 572년 미실의  꼬임에 빠진 동륜은 아버지 진흥의 후비이고, 고모뻘인 보명(구진/지소)궁의 담장을 넘다가 개에게 물려 죽는 일이 발생한다. 이일로 미실은 궁궐밖으로 쫓겨나고, 화랑의 우두머리인 <원화>지위도 잃게 된다. 만호로 보았을때, 동륜이 정상적인 삶을 살았다면, 진흥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을 것이고, 만호 자신은 왕후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첫번째 남편인 동륜태자가 죽자. 어쩔 수 없이 숙흘종(입종/금진)과 결혼을 하고, 만명을 낳은 것이다. (감깐 상식? 만명은 572년 동륜이 보명궁에서 죽은 이후에 태어나야 한다. )

이런 원한을 가지고 있는 만호는, 미실이 탐탁치 않았음에 분명하다. 만명 또한, 어머니 만호태후의 뜻에 따라, 미실을 좋아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유신이 미실의 손녀인 영모와 그렇고 그런사이가 되었는데 좋아할 수가 없고, 어미로써 유신을 말려야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만호는 서현의 어미가 되는 아양공주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서현도 탐탁치 않게 생각했었다. 아양은 공주의 신분이였고, 만호는 단지 지소태후의 사녀(지소/이화랑)에 지나지 않아서 만호가 신분상으로 아양을 넘을 수가 없다. 아양은 공주였고, 만호는 서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누이(아양), 올케(만호)사이였다. 고금을 들어서 "올케와 시누이 사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겠는가? 만호태자비와 아양공주도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니였던 것 이다. 
사사로이는 만호는 아양의 고모뻘이 된다.


사도와 미실이 공모하여 진지왕(금륜)를 폐위시키고, 만호의 아들인 진평을 왕위에 오르게 한다.  이때, 어느정도 만호와 미실은 앙금을 풀었던 것 같다. 이와 더불어 만호와 아양사이에 역전현상이 벌어진다. 권력의 중심축이 만호태후로 쏠렸다.

미실과 만호처럼 만호와 아양 사이에 사적인 감정과 공적인 감정이 뒤섞여서 579년 진평이 왕위에 오른 이후에도 아양/무력의 자식인 서현을 싫어 했었던 것이다.

만호는 만명이 서현을 만나는데 탐탁치 않았을 뿐만 아니고, 만명을 집에 가두어 버린다. 서현은 갇혀있는 만명을 구출해서 자신의 임지인 만노군으로 토끼고, 유신을 낳고, 서라벌로 돌아온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없다고, 만호도 자식까지 낳은 딸을 용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반대하는 부모를 둔 사랑하는 연인들이 시도하는게 얼라를 임신하는 방법이다. 

기존 통설처럼 만호태후가 성골이고, 서현이 진골이기 때문에 서현을 멀리한 것이 아니다. 만호 자신도 성골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만호(지소/이화랑)는 지소태후의 사녀에 불과하고, 통설에 따르면 만호의 아비인 이화랑은 성골축에도 끼지 못했다. 만호 자신의 남편이 되는 숙흘종도 입종/금진의 자식이다. 금진은 위화랑의 여식이다. 금진은 성골.진골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근본도 없는 천한것이 된다. 당연히 만호태후 자신이 성골축에도 못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호는 태자비가 되고, 태후가 되었다.

이들사이에 무슨 만명이 성골이고, 서현이 진골이기 때문에 서현을 멀리 하겠는가?  한마디로 성골,진골로 나누어 서현을 멀리했다거나 가야계이기 때문에 멀리했다는 소리를 하면 개 풀뜯어 먹는 소리하고 있네하면 된다.

어째든, 뒤끝이 없는 만호태후는 서현/만명을 받아들이고 공식적인 외손으로 유신도 받아들인다.


이렇게 만호의 성격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만명이 왜 천관녀 <영모>를 멀리 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만호는 사적인 일에 감정을 이입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듯 보인다. 서현을 사위로 받아 들일수 없는 이유는 단지, 만호 자신이 아양공주와 사이가 나뻐서 일 뿐이다.

그런 만호태후의 성격을 알고 있는 만명으로서는 유신이 만호의 사적인 원수에 가까운 미실집안과 관계를 가진다고 생각하니 이루워질 수 없는 사랑으로 여겼을 것이다. 자신도 어머니 만호를 피해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렸지만, 만명 자신의 아들인 유신이 <영모>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는데 반대 했던 것이다. 자신이나 서현처럼 또다시 변방으로 떠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자 하는 어미는 없다.

그래서 유신에게 "너는 할일 많다"그런데 어찌 사사로이 원수의 집안이고 "<천관녀>에 불과한 <영모>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냐? 썩 정을 끊어라" 라고 한것이다.


사실 <천관녀>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보이지 않고, 이규보의 파한집, 동경잡기, 신동국여지승람에만 보인다.

자신의 집으로 술취해 말을 타고온 유신이 자신과의 정을 끊기 위해서 아무런 죄도 없는 말의 머리를 동강내는 모습을 본 천관녀 영모로써는 유신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천관녀 영모는 유신의 무정함에 노래를 지어 불렀고, 유신은 그 이후 산속으로 들어가 무술 수련에 열중한다.

이때
유신이 대단한 포부를 가지고, 무술 수련을 했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천관녀 영모를 잊지 못해서, 단석산과 중악에 올라가 열심히 바위를 쳤을 것이다. 사랑의 열병을 앓아본 사람은 유신이 왜 산에 올라가 바위치기를 했는지 알 수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아무생각없이 무조건 바위를 치거나, 가문의 선택의 기로에서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바위를 쳤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역사속 비련의 주인공이 될뻔한 <천관녀> 영모는,  할머니 미실이 만호태후에 사과하는 제스쳐를 취하므로 해서, 만호태후의 외손주이고 서현/만명의 자식 유신의 처가 된것이다.

호림공이 풍월주의 지위를 물려주겠다고 청하였다. 공은 사양을 하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에 15세 풍월주가 되었다. (만호)태후가 하종공의 딸 영모(令毛)를 아내로 맞이하도록 명하여 미실궁주를 위로하려고 하였다. 영모는 곧 유모(柔毛)의 동생이었다. 형제가 모두 선화(仙花)의 아내가 되었다. 그 때 사람들이 영화롭게 여겼다. 곧 건복(建福) 29년 임신년(612)이었다. 공이 풍월주의 위에 올랐다. - 화랑세기 15세 풍월주 유신

유신과 영모는 수 많은 자식들을 낳는다. 문제는 영모의 자식들이 580년 신문왕 원년 진공.흠돌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었다. 역모에 연루가 되면 구족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기록이 사라진다. 이찬 칠숙과 석품도 631년 반란을 일으키고 기록이 사라졌다. 647년 상대등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키고 기록이 사라졌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진공, 흠돌의 반란사건후, 김유신도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질뻔 하였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기회에 송고할 예정이다. 또한, 유신의 부인이 되는 조카 지조부인(춘추/문희) 때문에 영모의 기록이 공식적으로 사라진것이다. 


이처럼 현존하는 화랑세기의 이면에는 천관녀 영모(이지현:큐리)와 유신의 감춰진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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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9.25 0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朱雀 2009.09.25 08: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4.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9.25 08: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사서에는 수많은 진실들이 숨어있는데... 최근에 역사학자들이 외면하는 경향이 있지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5. Favicon of http://potatobook.tistory.com/ BlogIcon 감자꿈 2009.09.25 1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관녀에 대한 의문을 싸악 씻고 갑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 2009.09.25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분 글도 역사기록을 토대로 한 추측인데 맹신하지는 마세요. 예전에 동양사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거기서 고대사와 핵심은 얼마나 그럴듯하게 창작하는데 있다고 들었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5 18: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냥 이런 견해도 있다고 생각해주셈..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5 18: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얼마나 그럴사 하게 포장하는가의 문제지요.. 논리적으로..어찌되었던. 아직은 논리적인 오류가 없다고 봅니당..

  6.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9.25 10: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저는 갓쉰동님의 글을
    쭉 봐와서 그런가요?
    이미 감 잡고 있었다는 ㅋ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멋진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5 18: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시 영웅님은 눈치가 입신의 경지에.. ㅋㅋ 역시 밑밥을 계속 떨구어서 쉬이 아시는군용..

      그런데 문제는 75%가 새로들어오는 사람이라성.. 25%는 지루할 수도 있을 겁니당.. 감질맛 나게 해성.. ㅋㅋ

  7. 21야영장 2009.09.25 1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당,,,드라마 선덕여왕처럼

    갓쉰동님 글도 기다려진다는...

  8. 메뚜기 2009.09.25 1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계속 읽으렵니다.
    고맙고요.......

  9. 동글동글 2009.09.25 1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영모가 천관녀이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었는데ㅎㅎㅎ
    흥미롭게 읽었습니다....재밌는글 감사해요.

  10. 2009.09.25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5 18: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석과 흠돌과 신목과 문노와 흠운에 관한 글을 예전에 쓴게 있습니당.. 나중에 좀 정리를 해서 다시 올리겠습니당..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빠른시기에 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당.. 추석이 지난다음이 되지 않을까 합니당.

      보량은 춘추가 미생을 속이기 위한 술수 같은데용.. 저는 그렇게 봤습니당. 만약, 정말 보량을 춘추의 처로 만든다면 대락난감이지요.. ㅋㅋ

  11. 오호라 2009.09.25 1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역사는 재밌어요~~ 진실은 어디에..인 부분들도 있겠지만.. 잘 읽고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5 18: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누가 더 합리적이냐의 문제일 뿐입니당.. 그것도 현재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어필할 것인가의 문제구요..

  12. Favicon of http://myeurope.tistory.com BlogIcon 유리-MyEurope 2009.09.25 23: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에는 상관없는글이지만...저 시대 옷...봐도봐도 정말 아름답고 예뻐요~
    저런옷 하나 장만하고 싶네요 ㅋㅋㅋ^^

  13. 고양이 2009.09.26 0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갑순님이 아니라 서갑숙 이어요 ㅋ

    갑자기 갑돌이 여자친구로 만들어버리셨넹

  14. Favicon of http://momnpapa.textcube.com BlogIcon 파아란기쁨 2009.09.26 0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반님은 이런 정보를 어떻게 다 구하시는지 정말 대단하세요...^^

    요즘 선덕여왕을 좋아해서 자주 보고 있는데...

    이반님 정보 보면서 많은 도움 받고 있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15. abgp123 2009.09.26 0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표적인 친일파이자 조선총독부 촉탁이었던
    화랑세기의 저자 박창화가 지하에서
    기뻐 대소할 일이군요!

    화랑세기는 위서로 역사적 가치가 없습니다.
    박창화의 저작물치고 세미포르노 아닌게 없던데
    딱 일본 제국주의 입맛이라니!

  16. 레아 2009.10.18 1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명공주는 성골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갈문왕입종은 지소태후의 남편으로 지소태후의 아버지인 법흥왕의 동생으로 진흥왕의 아버지이고 만명공주의 할아버지인 동시에 만호태후의 아버지이고 만호는 지소태후의 딸이 아닙니다.

  17. 레아 2010.02.13 1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만명공주는 성골이 아닙니다. 제가 잘못알고 있었어요. 당시 신라는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이라는 모계신분이 있었는데 만명은 어머니인 만호태후를 따라서 진골정통이었죠. 그리고 영모는 천관녀가 아닙니다. 당시 대원신통가문은 궁정에서 치루는 제사보다는 정치에 더 힘을 쓰고 있었고 물론 정치외 신관제사는 어떤면에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긴 하지만 그래도 엄격히 구분되어 관장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천관녀에 대해서 기록 조차도 이견이 분분합니다. 신녀라는 이야기도 있고 혹은 그냥 기생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18. 레아 2010.02.13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논란은 김대문이 지었다는 화랑세기의 원전이 발견이 되면 박창화의 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가려 질텐데 그에 관한 자료도 일본의 서릉부에 있어서 구하기 어렵답니다.

  19.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20.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21. Favicon of http://ford.grupocaiuas.com.br/concessionaria-ford BlogIcon concessionaria ford 2013.03.20 0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멋지다이 개봉된! 나는 이브 전에 이런 것을 읽을 가정 없다. 그래서이 주제에 대한 몇 가지 원래 생각을 가진 누군가를 찾을 수 좋네요. 정말이 일을 시작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웹사이트는 웹에서 필요한 것을, 약간독창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인터넷에 새로운 무언가를 가져다 유용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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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mbc 사극 드라마 선덕여왕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수 많은 여인들이 나온다. 현재 고현정이 맡고 있는 미실도 화랑세기에는 중요한 여인중에 하나이다. 역사물을 다루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라면, 사랑, 야망, 권력욕, 천재성을 두루 갖춘 주인공으로 내세울수 있는 최상의 캐릭터다.

하지만 미실 전에 지소, 금진, 옥진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지소는 법흥왕의 딸로서 작은아버지 입종에 시집을 가서 진흥을 낳는다. 하지만 진흥이 왕이 되기 위해서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법흥은 진흥보다는 지소의 두번째 남편인 영실이나, 미진(법흥/벽화)를 후계로 점지 했었다. 하지만, 지소의 반대로 법흥은 진흥을 자신의 후사로 결정할 수 밖에 없었고, 영실도 법흥의 후계가 되지를 못했다. 만약, 영실이 왕이 되었다면, 김씨에서 박씨로 성씨가 교체되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이전 여왕은 있었다. 첫번째는 누구?! 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번편은 금진/옥진 자매중 사다함의 어머니로 유명한, 금진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사다함의 죽음에 관한 비화

(C) MBC 선덕여왕, 사다함(박재정)

금진은 수 없이 많은 남성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지소와 미실과는 다르게 권력욕보다는 색욕이 강한 여성이였다. 사다함의 부장이였던, 무관이 금진과 사통하는 일이 발생한다. 금진과 무관의 관계는 사다함에 들키게 되고, 무관은 월성 담장을 넘어 도망치다 성을 보호하려 만들어놓은 해자(물웅덩이)에 빠져 죽고 만다.

사다함은 무관의 죽음에 비관하여  죽고 만다. 사다함이 죽게 되는 여러 이유 중에는 미실을 사랑하였으나, 미실은 세종에게 시집을 가벼렸다. 그리고 자신의 충직한 부관인 무관이 자신의 어미와 사통하다. 죽음에 이르게 된것이다. 사다함이 어머니의 색욕에 의해서 죽게되는 운명에 처한다. 사다함의 죽음에는 결국 어머니에 의한점이 많다.


금진의 남자들


이전글에서 지소의 남성편력을 상세히 이야기 했지만, 금진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알고 미실의 팜므파탈은 지소나 금진에 비하면 하수에 가깝다.

사실 사다함은 금진의 남편편력에 대해서 증오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미를 어미라 부르지 않던 사다함에게 이사부는 신도의 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에 사다함은 깨달음을 얻어  무관이 죽을 시점에는 어머니의 남성편력에 대해서 달관의 경지에 도달할 때 였다. 무관으로서는 이전 사다함이 어머니의 편력을 미워한 사실을 알고 있던터라 사다함에 들키자 무작정 도망을 치다 죽어버린 것이다.

상상을 해보자.  달이 밝지 않은 월성에서 도망자와 추적자..사다함이 무서워 무작정 도망가는 무관과 오해를 풀어주려던 사다함과, 자신을 죽일 것 같은 사다함.  "도망가지 마라 무관~, 괜찬다 무관", 말은 도망가지 말라고 하지만, 잡히면 죽을 것 같은 무관. 561년 가야정벌에서 가야인을 안심시키고 한번의 진공(공격)으로 가야를 무너트린 사다함의 계략을 잘고 있던 무관으로써는 당연히 오해를 살만 하지 않던가? 

구리지와 결혼을 하기전에는 금진은 법흥의 후비였지만, 법흥과 사이에는 후사를 보지 못했다. 540년 법흥이 죽고 나자. 구리지와 결혼을 하여 토함과 새달 그리고 5세 풍월주 사다함을 낳는다. 

법흥의 아우이며 지소의 남편인 입종을 통해서는 숙흘종을 낳는다. 숙흘종은 만호(지소/이화랑)의 사이에서 만명을 낳고, 만명이 김서현과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후 김유신을 낳는 것이다. 진흥을 통해서는 난성공주를 낳고, 누군지를 알 수 없는 상대에게서 준영을 낳는다. 

금진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남편의 양자인 설성과 관계해서 7세 풍월주인 설원랑을 낳는다.

 입종은 법흥과 같은 해인 540년 죽었다고 화랑세기는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금진의 첫째 아들은 숙흘종이 아닌가 한다. 이들의 순서는 설원랑이 사다함(546년생)보다 3살 어리다고 기록하였으니, 숙흘종(입종), 토함(구리지), 색달(구리지), 사다함(구리지), 설원랑(설성:549년생):(그림에는 548년생으로 나왔지만 오류), 난성(진흥), 준영(?) 이며 금진의 동복 형제자매가 되고, 순서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를 닮아 끈질긴 구리지

구리지는 이름이 현재에 봐도 조금 머시기 한 이름이 아닌가? 너~ 먼가 구리지..한마디로 하면 너 똥냄새 난다는 말이다. 
사실 구리지는 그의 아비인 비량이 법흥의 비였던 벽화(섬신/벽아)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머지 벽화와 화장실에서 관계를 해서 낳은 아들이다. 그래서 이름이 '구린내'를 뜻하는 구리지가 된 것이다. 

구리지는 아버지인 비량의 피를 이어 받아 끈질김이 있었다. 처음 금진이 법흥의 비가 되었을때, 한눈에 반해 사모하는 마음이 깊었다. 그래서 구리지는 '천주사'에서 5년동안을 금진을 자신에게 달라고 빌고, 빌었다. (천주사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그리고 마침 법흥과 입종이 죽자. 금진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구리지가 취한게 아니고 실은 금진이 구리지를 간택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던, 구리지는 "열번찍어 안넘어가는 여자 없다"는 고사를 만들어(?)낸 인물이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요즘도 여성에 대한 허황된 환상에 빠져 열번찍어 보는 경우도 있지만, 한결같이 5년동안 빌고비는 행위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성이지 않을까 한다. 미인을 얻는자는 그만한 대가를 치루게 되는 모양이다. 금진은 구리지에 만족하지 않고, 그후에도  수 없이 많은 남성을 자신의 남자로 만들고, 그로 인해 자식인 사다함까지 죽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으니 말이다. 

 

금진의 후손들

위의 금진의 남자들과 후손들을 보면 금진과 유신과는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금진 할미를 둔 덕만과 유신

금진/입종(법흥/연제) -> 숙흘종/만호(지소/이화랑) ->만명/서현 -> 유신 .
지소/이화랑->만호/동륜[진흥/사도(영실/옥진)] -> 진평/마야 [복승/송화(지소/영실)]-> 천명,덕만,천화

이로써 덕만과 유신은 만호를 할머니로 둔 사이가 된다.

설원랑과 미실의 손녀 사위 유신

또한, 설원랑과 유신은 금진의 자손이 된다. 또한, 설원랑이 준모(모랑/준화)를 통해서 낳은 미모가 미실/세종이 낳은 하종/미모과 결혼하여 영모를 낳는다. 영모는 유신이 풍월주에 오르는 18세가 되기 바로 전에 결혼을 한다. 

그러니 유신은  설원랑의 손녀사위가 되는 것이다. 또한 유신은 미실의 손녀사위가 되기도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미실과 설원랑은 김서현 가문과 척을 진적이 없고, 끈끈한 핏줄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과 전혀 다른 성격의 보종(미실/설원랑)

 

보종

15세 풍월주 유신에 이어서 16세 풍월주에 오르는 이도 설원랑/미실의 아들인 보종이 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보종은 청아하고, 정이 많고,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아는 사람으로 나온다. 보종은 유신이 어려움에 처했을때나 병이 났을때, 치료를 해주는 유신의 주치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드라마처럼 약역전담 처리반이 아니였다는 것이다.

 유신공이 병이 나자 공이 문득 몸소 치료하며 “우리 공은 국가의 보배이니 나의 의술을 숨길 수 없습니다” 하였다. 이로써 그가 편작(扁鵲)243)의 학(의학)을 갖추었음을 모두 알게 되었다. - 화랑세기 16세 보종

또하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하종과 보종이 나오고 하종이 보종의 형으로 나오지만, 비슷한 연배로 나온다. 하지만, 실제는 하종은 563~4년생이고 보종은 580(?)년생이다. 유신은 595년생이다. 당시 기준으로 하면 하종은 유신의 할아버지뻘이고, 보종의 아버지 뻘이다. 그리고 11세 풍월주 하종의 딸인 영모가 유신과 결혼을 하니 유신은 하종의 사위가 되는 것이다.

남성 기능 장애자 세종 (댓글로 지적을 받아 삭제 해야 하나 남겨둡니다.)
 

세종

이전글에서 하종은 세종의 자식이 아닌, 미실과 사다함의 자식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하종의 모습이 너무나도 사다함을 닮았다고 하며, 세종은 미실과는 다르게 하종을 제외하고는 후사가 없다. 세종에게 남성기능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하종은 사다함의 자식이 될 수 밖에 없다.

( 세종과 미실사이에는 하종 이외에 옥종이 있었습니다)

금진의 아들인 설원랑 편에서도 언급을 하겠지만 설원랑 가문은 진평과 끈끈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진평의 아들들 중 한명을 생산하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전혀 언급이 되어 있지 않는 왕자들이다. 승만왕후 소생은 일찍 죽고, 나머지 진평왕의 아들인 보로전군 이야기도 나온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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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daybreak81.tistory.com BlogIcon 사자의새벽 2009.08.03 07: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정말 선덕여오앙에 대해 이렇게 심도있게 쓴글 처음입니다.
    돈이라도 드리고 싶네요 ㅋ
    갓쉰동님 좋은 한주 되세요!! 글 잘 봤습니다.

  2. Favicon of https://preciousness.tistory.com BlogIcon ♡ 아로마 ♡ 2009.08.03 09: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전문 블로거로 임명 합니다~
    ^^

  3.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3 10: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역사전문 블로그로 말씀드리고 싶군요.
    한때 역사선생님이 되실려고 하셨기도 하고...
    잘 공부합니다.
    더불어 좋은글도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이번주도 행복한 한주 되시길 바랍니다.

  4. 희망 2009.08.03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춤법에좀 신경을 쓰시면서 글을 쓰면 좋겠네요.
    전문적이고 역사적인 글이 맞춤법 하나 틀리면서 얼마나 신뢰성을 잃는지 아신다면..

    띄어쓰기나 잘 쓰지 않은 표현을 틀린다면 몰라도
    세발의 피, 거늘이다 는 조금 알아두셔야 할듯 합니다.

  5. BlogIcon agkrihl 2009.08.03 1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나치게 본인의 입맛에 맞추신듯... 내용을 미묘하게 누락하셨네요...

    화랑세기 필사본에 따르면 미실은 세종공과의 사이에서 하종외에 옥종공을 낳았습니다...

    하종공에 대해서도 하종이 사다함을 닮았으나 세종의 아들이라고 못을 밖고 있으며,

    사다함이 금진의 아들이고,

    미실이 금진의 언니인 옥진의 외손녀로 외모가 옥진과 닮아있었다 하니...

    미실의 아들이 사다함을 닮았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6. 뇽자 2009.08.04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너무 좋아 하는데...~~

    이렇게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을 줄이야 .....

    여튼 좋은 글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7.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8. Favicon of http://garnertondy.multiply.com/journal/item/2/The_5_Most_Favored_Emergency_Su.. BlogIcon pilot crackers alaska 2012.11.01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9. Favicon of http://www.e-news.name/louer-un-chien/ BlogIcon invisible fence collar 2012.11.05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문 블로거입니다. 내 피드에 가입하여 큰 게시물의 여분의 탐구에에 남아

  10. Favicon of http://poofygoo.blogspot.com/2008/07/do-you-believe-in-coincidences.html BlogIcon portable dog fencing camping 2012.12.20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 화랑세기에는 중요한 여인중에 하나이다. 역사물을 다루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라면, 사랑, 야망,

  11. Favicon of http://bhuokit.beep.com/ BlogIcon food supplies for restaurants 2012.12.31 1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다함이 어머니의 색욕에 의해서 죽게되는 운명에 처한다. 사다함의 죽음에는 결국 어머니에 의한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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