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파가 썸네일형 리스트형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 선덕여왕 덕만에 관한 기록들을 하나 접수하여 역사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상식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하나씩 추적 탐사 검증하고 새로운 주장을 하는 포스팅 했습니다. 지금은 덕만 탐사의 종착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또는 추측하고 있었던 상식을 상식이 아님을 증명하였고, 마지막으로 덕만은 왕위를 이을때 도대체 몇살이였는가? 할머니 였다는데 정말 할머니 였을때 왕위를 이은것인가?를 찾아 갈겁니다. 이글은 그 최종 종착역의 구부능선을 타는 덕만과는 땔래야 땔 수 없는 영묘사에 관한 기록들을 검토해 볼겁니다. 선덕왕 4년(635) 당나라가 사신을 보내 부절(符節)을 가지고 왕을 주국(柱國) 낙랑군공(樂浪郡公) 신라왕(新羅王)으로 책봉하여 아버지의 봉작(封爵)을 잇게 하였다. 영묘사.. 더보기 선덕여왕을 사랑해 자연발화현상(shc)으로 죽은 지귀 선덕여왕에 관한 설화에는 많이 알려진 향기없는 모란그림과 모란씨(화랑세기는 재미있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는 별도로 포스팅할 예정이다), 옥문지로 백제군을 알아낸 예지,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도솔천 등 지기3사가 있다. 그런데 삼국유사에는 정확히 어느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선덕여왕때인듯한 지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혜공법사가 영묘사에 불이 날것을 예언하고 영묘사 사찰내에 몇군데를 정하여 새끼줄을 3일 동안 매어 두도록 하였다. 3일후 지귀의 사건이 일어나 영묘사와 많은 민가에 피해를 주게 되었는데, 새끼줄을 매어둔 곳만 소실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또 어느날은 풀로 새끼를 꼬아 가지고 영묘사(靈廟寺)에 들어가서 금당(金堂)과 좌우에 있는 경루(經樓)와 남문(南門)의 낭무(廊무)를 묶어 놓고 강사..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