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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공주의 남자, 우사인 볼트 보다 빠른 세령공주 불가능에 도전하다? 에서 김승유(박시후)는 세령(문채원)과 신면(송종호)의 결혼식에 당당히 잠입하여 세령을 납치하는데 성공한다. 금성대군이 수양대군을 암살하려는 계획까지 알고 있는 수양대군 집은 문전성시에 철옹성보다 삼엄한 경계가 쳐 있을 것이다. 그런데 김승유는 카메라가 향한 방향으로 얼굴을 돌리며 유유히 세령 방으로 침입하는데 성공하고 세령을 보쌈하고 유유히 집밖으로 나온다. 일지매에 괘도루팡을 쩜쪄먹을 지경이다. 이전 2011/09/01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스토커 김승유가 죽어야 드라마가 산다 글에서 어떻게 김승유가 북촌 수양대군 집에서 벗어날까 궁금하다고 했는데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냥 눈치없는 늙은 머슴만 승유를 발견해서 얻어터지고 아무 제재없이 문으로 나온다. 계유정란의 밤에도 김종서가 죽어.. 더보기
공주의 남자, 생방송 사극 빈번한 우연남발 개연성 없는 김승유와 세령의 사랑 에서 계유정란의 후반부를 극화하였다. 죽었던 김종서(이순재)가 김승유(박시후)의 아버지 하는 소리에 부활하고, 김승유로 하여금 단종이 있던 경혜공주(홍수현)의 사저로 가서 김종서가 살아 있음을 알리고 수양대군(박영철)이 반란을 일으켰음을 알리라 한다. 계유정란으로 김종서가 죽은 때는 4대문이 다 닫힌 1453년 10월 10일 새벽이었다. 당시에는 70년대처럼 통행금지가 있었고 저녁이 되면 4대문은 철통같이 방어하여 도성 입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다. 물론, 특별한 국가 중대한 사유가 있다면 4대문을 통과할 수 있지만 말이다. 수양대군이 반란을 계획하고 제일 먼저 장악한곳이 요즘으로 친다면 수도경비 사령부이다. 그리고 4대문를 장악했다. 서대문 밖에서 살고 있던 김종서가 단종을 만나려면 4대문을 통과해야 한다.. 더보기
공주의남자, 부활한 김종서? 계유정란 김승유와 세령공주 낄자리 있을까? 드라마 에서 계유정란을 다루고 있다. 수양대군은 김종서의 집을 찾아가 김종서를 죽이고, 남은 자들로 하여금 김승유를 척살하라고 명하고 사라진다. 수양대군이 김종서와 김승유를 죽이려는 것을 안 세령을 집에 가두고 집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세령은 꾀를 내어 집을 나와서 김종서를 찾아가 자신의 아버지 수양이 죽이려한다는 사실을 알리려한다. 하지만, 세령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는 여리는 하인들을 대동하고 김종서의 집앞에서 세령을 집으로 끌고 온다. 여리가 세령의 사랑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세령이 김종서에게 수양대군이 죽이려한다는 사실을 알리게 된다면 수양대군의 계략은 실패로 끝나고, 오히려 수양대군을 비롯한 일족이 멸문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광에 갇히 세령은 마지막으.. 더보기
문화재 (고궁/사찰) 등 화기 사용은 금기인가? 2008년 6월에 창경궁에서 외부인사들의 저녁만찬 파티가 있었나 보다. 주최측은 증권선물거래소이고 참여인사는 국내.외 투자자(?)들이 였던 것 같다. 문화재청이 증권선물거래소에 창경궁 사용 허가를 내준 시점이 숭례문이 화재로 전소되기 이전 참여정부 유홍준 문화재청 시절이였다고 한다. 많은 분들이 숭례문 화재로 문화재에서 화기의 사용 위험에 민감함을 알 수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문제는 으로 화재로 번질 수 있는 위험을 관리통제되었는가? 여부가 비판지점이 아닐까 한다. 2007년 5월 17일(?) 참여정부의 문화재청장인 유홍준이 여주 영릉(효종대왕릉) 재실에서 화기를 사용한 사건이 있었다. 이때 많은 언론들과 네티즌들이 문화시설에서 화기라니 하면서 비난하였다. 거슬러 올라가면 2..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