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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뿌리깊은 나무>에서 드디어 밀본의 정기준이 세종 이도의 5번째 아들 광평대군을 죽이고 세종 이도에게 보낸다.


<뿌리깊은 나무>는 한글 창제 7일간을 다룬 드라마다. 

그런데 기준이 애매모호한 측면이 많다. 1443년 12월 30일 창제 7일간인지, 1446년 9월 29일 반포 전 7일간인지 말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나온 기득권이 반대했다는 세법이나 최만리의 반대상소를 기준으로 하면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7일간이 맞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반포일을 기준으로 하는듯 하기도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작가 맘대로다.

한마디로 과거로 미래로 어디로 튈지모르는 타임머신을 탄것같이 멀미를 일으킬 정도다.
 

정기준은 세종이도와 함께 글과 백성에 대해서 경연을 펼치지만, 세종 이도는 정기준의 말이 마음속에 남고, 정기준은 세종 이도의 말이 마음속에 남는다.

 

흔들리는 정기준은 광평대군이 세종 이도의 명으로 수양대군이 만든 해례본을 인쇄한다는 말을 듣고 개성에서 광평대군을 납치한다.

 

그런데 광평대군이 인쇄하려던 것은 해례본이 아닌 석가의 일대기를 기린 석보상절이였다.

 

정기준은 세종 이도가 글로서 유교의 근본적으로 백성을 교화한다고 생각했지만, 석가의 일대기를 제일먼저 번역케 한다는 사실에 분노를 하고 광평대군을 죽여서 보낸다.

 

이에 세종 이도는 정신줄을 놓아 버린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의 설정과는 다르게 세종 이도는 철저하게 유학을 보급하고 성리학적 기반에서 처음부터 한자와 효를 기반으로한 중국자전인 <운회>번역과 백성들이 쉽게 충효를 알수 있도록 <삼강행실도>를 첫작품으로 내 놓는다. 그리고 <사서>, <삼경>, <소학> 등을 번역케 하고 농사, 의학 서적을 번역작업한다.


한석규의 훈민정음의 보급을 위해서 불교부터 한다는 설정은 첫번째 부터 벗어난 것이다. 밀본이 훈민정음 반포를 막는다는 설정을 하지만, 반포이전에 수 없이 많은 훈민정음으로 만든 번역본들이 널리 보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뿌리깊은 나무의 제작자 장태유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큐사극"을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초기의 고증 장면은 극히 고증에 충실한 다큐사극으로 가는 듯 했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용두사미가 되어가고 있다. 그 정점이 광평대군의 죽음과 석보상절이다. 장태유의 바람은 물거품이 되어간다. 제작자 장태유의 바람과는 다르게 작가들에 의해서 말이다.

 

결국, 다큐사극은 세종 이도의 성격이 기존에 포장된 세종이 아닌 실제 역사속에 나타나는 자유분방한 인물로 해석된 것 말고는 구두선에 불과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조선 세종시대의 역사는 사라지고 세종도 사라지고 훈민정음도 사라진 한석규만 남은 드라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종이 한글(훈민정음)을 만들자 현재 뿌리깊은 나무에서 처럼 집현전을 비롯해서 유림과 관료들과 유생들이 들고 일어 났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훈민정음이 만들어지고 달랑 한건의 최만리의 반대 상소가 있었고, 이도 흐지부지될 뿐만 아니라 최만리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였다.

 

 

왜냐하면 훈민정음은 그동안 중구난방으로 쓰여 혼란스럽던 한자의 음과 훈을 통일화 시키는데 훈민정음이 혁혁한 공헌을 하였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창제를 두고 요순보다 더 뛰어난 성군이라고 칭송하기도 한다.

 

최만리도 훈민정음이 훌륭한 글자임에는 분명하지만, 황제가 있는 중화에 반하여 스스로 오랑캐가 되느냐고 반대했지만, 찬성하는 측은 오히려 훈민정음으로 글자(한자)를 바로 익히고 배울수 있으니 중화를 섬기는 사대를 더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성삼문과 신숙주와 최항등의 생각이였다.

 

그러니 당대 유학자들이나 관료들이 훈민정음을 반대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문제점은 훈민정음 창제이후 보급이 늘어나면서 불거졌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훈민정음으로 최초 만들어진 결과물이 운회(한자사전)을 번역한 한()() 사전이였다.

 

그리고 삼강행실도를 훈민정음으로 번역케 하는 일이였다. 최만리와 함께 상소한 김문은 처음에 상강행실도의 번역에 찬성했다가 최만리와 같이 반대를 하자 세종 이도는 김문을 하옥시켜버린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찬성했다가 반대로 돌아선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대 상소로 처벌된 유일한 인물이 김문이였고 나머지는 별다른 해도 입지 않았다. 김문이 하옥된건 일구이언을 했기때문이지 훈민정음반대와는 관계가 없다.

 

더군다나 최만리가 집현적 부제학을 그만 두는 상소를 올리지만, 세종 이도는 최만리에게 집현전을 계속해서 맡기기 까지 한다. 김문은 방면되고 나서 훈민정음으로 사서삼경을 비롯한 수 많은 번역작업을 한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뿐만 아니라 역대 소설에서 훈민정음 창제에 대해서 반대가 극심했다는 설정은 친일매국 소설가 이광수가 쓴 <세종대왕>으로부터 비롯된 설정이 현대 세종대왕 관련 소설이나 한글에 대한 오해가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나 소설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단순히 잘못된 소설적 설정이 역사가 되어서 알려진 대표적인 잘못된 사례이다. 왜 반대도 없었는데 조선의 유학자들과 기득권이 반대했다고 이광수는 설정했을까? 스스로 반문해보기 바란다.

 

훈민정음 반대의 설정이 뿌리깊은 나무처럼 비밀조직을 만들어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것으로 발전을 하고 더 나가 훈민정음을 만들 때 세종 이도가 <대왕세종>이나 <뿌리깊은나무>처럼 시체해부까지 했다는 엽기로 자극적인 자가발전을 한 것 이다.

 

다시 뿌리깊은 나무로 돌아가서 광평대군이 밀본의 정기준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 광평대군이 죽은 때는 1444년 12월 7 이였다. 공교롭게도 음력 12 7일에 죽어지만 겉보기 날짜는 뿌리깊은 나무에서 광평대군이 죽음을 방영된 날짜와 같다. 일부러 교묘히 날짜를 맞춘것이 아닐까 의심스럽기 까지 하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수양대군이나 문종이나 신숙주를 등장시키지 않고 광평대군을 등장시킬 때부터 광평대군은 밀본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것은 자명한 일이였다. 처음부터 밀본은 훈민정음을 만드는 비밀 조직원을 죽이면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은 언제 창제되었을까? 훈민정음은 1443년 12월 30 창제되고 반포 된 때는 1446년 9월 29이었다. 뿌리깊은 나무는 훈민정음 창제하기 7일전의 일을 드라마로 극화하였다고 하였지만, 시간의 흐름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상상력을 발휘하지 말아야할 영역에서 작가가 임의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한 해서는 안되는 작업을 한것이다.

제작자 장태유의 "다큐드라마" 말이 무색하게 되어 버렸다. 그만큼 뿌리깊은 나무는 자체 검증이 안된 쪽대본으로 드라마가 만들어 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니 세종 이도나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나 창제의 이유는 사라지고 배우 한석규만 남았다고 할 수가 밖에 없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한석규도 사라져야하지만 말이다. 배우란 철저한 극중 배역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은 기본중에 기본이다. 하지만, 한석규가 세종 이도에 대해서 연구를 했을까? 자문한다면 글쎄요?가 되지 않을까? 쪽대본으로 연구가 될수나 있겠는가?
 


 
한석규는 대충 겉보기 세종의 모습은 끌어내었을지도 모르지만, 내면의 세종은 끄집어 내는데는 실패했다. 한석규는 일반적으로 좋은 배우일수는 있지만, 김명민의 철저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는 한석규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작가 김영현의 잘못에 기인하지만 말이다.

 

사실 뿌리깊은 나무가 어떻게 만들어지던 시청자는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청자들은 한글이 세종이 만들었다는 것만 알면 되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관심 밖이다.

또한, 시청자들 중에서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초중등학교에서도 역사교육을 하지 않고 있다. 서울대 정도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만이 역사를 공부하고, 그 공부도 극히 단편적인 암기식 역사공부일 뿐이다. 그러니 뿌리깊은 나무 작가가 어떻게 만들던 관심이 있을 턱이 없다.

 

바꿀 수 없는 사실은 언문(소리글) 훈민정음은 1443년 12월 30 만들어졌다.

1444 2월에 훈민정음으로 운회와 삼강행실도가 문종(세자), 수양대군(세조), 안평대군 등이 참여하여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1444 2월 집현전 최만리와 7명이 반대상소를 하고 김문은 하옥되었다고 풀려났다.

1444 12 7 광평대군이 수포성 질환인 창진으로 병사를 한다.

 

광평대군이 죽기 전 12 6일 세종은 정의공주의 집으로 피신을 떠난다. 왜냐하면 광평대군의 창진은 역병처럼 퍼지는 질병으로 당시에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광평대군을 간호한 어의를 처벌하라는 상소를 세종은 그럴 수 없다고 했겠는가?

 

뿌리깊은 나무에서 석보상절을 보고 이도에게 속았다며 광평대군을 죽이지만, 1443 12월훈민정음이 창제되고, 14442월 삼강행실, 운회가 번역되고, 1444 2월 최만리가 반대하고, 144412월 광평대군이 죽고, 14463월 소헌왕후가 죽고, 14469월 훈민정음이 반포되고, 홍무정운을 번역한 동국정운이 만들어지고, 1447년에 일어났던 일이다. 석보상절은 세종 이도의 왕비 소헌왕후 심씨가 죽고 나서 세종이도가 수양대군에게 명하여 소헌왕후를 기리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내불당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심종수와 밀본 정기준이 나오지만, 내불당도 소헌왕후가 죽은 2년 후 1448 7월에 계획되고 8월에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에 의해서 세워진다.

 

물론, 드라마를 극적인 묘사를 위해서 포장은 있을 수 있으나 할 수 있는 영역과 할 수 없는 영역에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는 영역이 속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김영현은 너무나 천연덕 스럽게 어때 누가 안다고.. 안다고 해도 드라마는 드라마 인데라는 극히 위험한 생각을 가지고 되지도 않는 설정을 한다.

 

다만, 좀 더 훈민정음이 만들어질 때 극적으로 밀본처럼 목숨을 걸고 반대하는 유림이 많아야 하고, 집현전 학사가 죽거나 세종 이도가 시체해부를 하고, 아들인 광평대군이 죽음으로 만들어진 피로 만든 훈민정음이란 신화창조가 사실보다는 더 사실처럼 다가오고 더 중요할 지도 모른다.

 

뿌리깊은나무처럼 극적이지 않게 만들어도 충분히 세종 이도는 훌륭한 성군이고, 훈민정음도 훌륭한 글자이다. 더군다나 반대도 없었다. 오히려 흥천사 사리탑이나 내불당의 경우 수십, 수백번의 상소가 올라오고 흥천사 사리탑의 경우는 2년동안 반대에 직면하고 내불당의 경우 몇 개월에 걸쳐서 직무를 보지 못할 만큼 반대가 극심했다.   

 

뿌리깊은 나무의 설정들은 훈민정음의 창제와는 하등 상관이 없고, 세종과도 하등 상관이 없는 드라마의 설정일 뿐이다. 문제는 드라마의 설정으로 위대한 세종 이도를 이야기하고 당대의 기득권 층이라는 유림을 비난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왜 역사와 드라마를 혼동해서 역사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당신들이 말한 세종이도와 광평대군이나 훈민정음은 단지 드라마 속의 세종 이도이지 실제 세종 이도나 훈민정음은 될 수가 없다.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데는 오염된 물보다 수백 수 천 배의 깨끗한 물이 필요하다고 한다. 한번 망가지면 바로 세울 수 없다는 증거는 너무나 많지만, 이광수에 의해서 망가진 세종과 훈민정음(한글)이 또다시 김영현에 의해서 또 얼마나 망가져야 하는 걸까?

예전에는 소설로 역사를 배웠다고 하는데 요즘은 드라마를 보고 역사를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소설이나 드라마의 중요성이 대두 되고 있지만 현실은 역사와 무관한 드라마만 양산하고 있다.
 
어떤이들은 뿌리깊은 나무가 수천명의 역사교사보다 더 훌륭한 선생이라고 말을 한다. 문제는 왜곡해도 된다는 것이다. 역사는 찾아보면 된다고 이야기 하면서 말이다. 찾아보기라도 하면 다행스럽지만 도대체 몇명이나 찾아보기나 할까?

수천 수만명의 역사교사가 아무리 진실을 말하더라도 역사가 묻히는것은 자명할텐데 말이다. 더군다나 역사교사가 특정한 한시대의 역사를 드라마 작가만큼 연구할 수도 없다. 수박겉 핧기식으로 암기식 교육을 시키는게 교사들이니 말이다.

오히려 수천 수만명이 대신할 역사교육을 뿌리깊은 나무가 해주면 쉬운 방법이 아닐까? 사극을 만드는 이유가 학교나 관심밖의 배우지 못한 역사를 사극을 통해서 배울수 있다는 목적이 있는데 말이다. 뿌리깊은 나무 기획의도에도 정확히 나온 내용이다. 목적을 방기하고 왜곡까지 해서야 되겠는가?

오히려 역사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역사적인 사실과 드라마가 같다면 무슨 재미가 있나고 당당하게 말하는 시대이다. 이들은 역사도 모르고 드라마도 모른다. 드라마의 개연성이나 리얼리티를 헤치는 설정이 재미가 있다니 자학개그도 아니고 말이다.

뿌리깊은 나무 작가 김영현은 이야기를 만들고 등장인물간의 대립구도를 설정하여 추리기법을 동원하여 풀어가는 좋은 재능을 가진 작가다. 문제는 좋은 재능을 엉뚱한 방향으로 쓰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안타깝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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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blogscommentservice.blogspot.com/ BlogIcon link building service 2012.11.06 2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기준이 애매모호한 측면이 많다. 1443년 12월 30일 창제 7일간인지, 1446년 9월 29일 반포 전 7일간인지 말이다. 그런데 기준이 애매모호한 측면이 많다. 1443년 12월 30일 창제 7일간인지, 1446년 9월 29일 반포 전 7일간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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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도 마찬가지로 현재의 영토를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의 비밀 조직인 천지회에서 언문(소리글) 훈민정음이 창제 된다.

 

밀본은 세종 이도가 하려는 일이 글을 만드는 일인지를 알게 되지만, 글이 어떠한 형식인지 모른다.

 

하지만, 글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밀본과 유림은 글을 만들어 스스로 이적이 되려하느냐고 반발한다.

 

유림의 영수인 혜강을 필두로 성균관 집현전, 사관들 까지 들고 일어난다.

 

문제는 세종 이도가 만들려는 글이 얼마나 좋은지, 나쁜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강채윤은 훈민정음 28자로 반나절만에 글을 읽고 쓴다. 북촌의 어리숙한 밀본의 자객은 자신의 반나절 만에 자신의 이름를 쓰고, 어린 아이는 밀본 정기준의 말을 바로 듣고 글로 써내려 간다.

 

밀본 정기준은 글은 지배자와 지배하지 않는자를 가르는 기준인데 모든 백성들이 글을 알게 된다면 자신들과 백성들과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며 집현전 철폐를 내세워 글(훈민정음)과 세종 이도의 친위세력 집현전과 바꾸려 한다.

 

하지만, 세종이 만들려는 글이 하루만에 배우고 익혀서 말한다면 집현전 철폐가 아닌 한글을 만들지 못하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뿌리깊은 나무>에서의 훈민정음 보급을 위해 정음청과 언문청을 만들고 친위세력 집현전 철폐를 맞바꾼다는 설정은 그럴 듯 하다.

 

하지만, 이는 역사와는 1인치도 비슷한 부분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언문  훈민정음이 창제되자 집현전을 비롯한 성리학의 양반들이 반대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시로 최만리의 상소를 들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소설상의 설정일 뿐이다. 소설이 얼마나 역사를 망칠수 있는가의 대표적인 사례가 훈민정음 한글에 관한 최만리의 상소와 당대의 시대상을 모르는 단순한 생각이 지금까지 사실처럼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때는 144312 30로 명절인 설을 앞둔 날이다.

 

세종 이도가 훈민정음을 발표한 때가 참으로 교묘하지 않는가? 세종 이도는 집현전이나 사관이나 사간원이나 유림들이 반대할 것을 예측하고 공개를 하였을 것이다. 단지 설을 앞두고 발표를 하므로서 반대를 교묘히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시 유림들은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는다.

 

1444 2월 세종 이도는 중국의 한자를 우리의 훈과 음으로 되어 있던 운회를 언문 훈민정음으로 번역하게 한다.

 

그 중심에 세자(문종)가 있었고, 세조 수양대군(진영대군)과 안평대군 등이 중심이 되어 신숙주, 최항, 박팽년 등을 동원하여 작업하게 한다.

 

또한, 삼강행실도를 언문 훈민정음으로 새롭게 만들어 보급하게 한다. 정음청, 언문청을 만들고 과거에 언문 훈민정음을 과목에 채택한다. 더군다나 소학, 사서, 삼경을 비롯한 수 없이 많은 유학의 저서들을 훈민정음으로 번역케 한다.



그런데 집현전 대빵인 부제학 최만리를 비롯해서 하위지, 김문 등 7명이 반대를 한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에서 천하 제일검객과 같은 논쟁의 달인 세종 이도는 최만리와 반대자의 논리를 무력하 시키고 김문을 하옥하고 장 100대를 치는 것으로 언문 반대 세력을 진압한다. 김문에게 죄를 준 것은 임금을 상대로 거짓된 말로 속임수를 썼다는 것이지 언문 자체는 아니였다. 
 

“전번에 김문(金汶)이 아뢰기를, 언문을 제작함에 불가할 것은 없습니다.’ 하였는데, 지금은 도리어 불가하다 하고, 또 정창손(鄭昌孫)은 말하기를,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반포한 후에 충신·효자·열녀의 무리가 나옴을 볼 수 없는 것은, 사람이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자질(資質) 여하(如何)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꼭 언문으로 번역한 후에야 사람이 모두 본받을 것입니까.’ 하였으니, 이따위 말이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용속(庸俗)한 선비이다.”

 

의금부(義禁府)에서 조사하여 아뢰기를,
김문(金汶)은 율(律)이 대제상서사불이실(對制上書詐不以實)에 해당하오니, 장(杖) 1백 대에 도(徒) 3년을 처하소서.”
하니, 다만 장(杖) 1백 대를 속(贖)바치게 하였다.
1444년 2월 21일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가 논쟁의 달인으로 나온 것은 사실이다. 세종 이도는 성리학의 논리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권한과 협박, 눈물 등 다양한 인간적인 면모를 동원하여 반대를 회유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근접한 사람이 김대중노무현이다.

 

특히 노무현은 논쟁을 좋아하고 자신을 논리로써 굴복시킬 수 있다면 언제든지 자신의 견해를 바꿀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그리고 집권초기 검찰개혁을 하면서 평검사들과 집단토론을 주재한 적도 있다. 조중동을 비롯한 신문들은 논쟁에 집중하기 보다는 세종 이도가 지랄하고 자빠졌네, 우라질 처럼 말하는 장면에서 통쾌함을 느끼고 있었던 시청자들과는 다르게 막 하자는 거냐?노무현의 말에 딴지를 걸어서 논쟁은 사리지고 노무현의 막말사건으로 비화시켰지만 말이다.

 

세종 이도가 언문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운회와 삼강행실도를 만들라 하자 처음 김문을 비롯한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그런데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가 반대를 하자 김문은 자신의 견해를 바꿔 최만리의 편에 섰고, 어찌 선비가 교언영색할 수 있는가 왕을 속이는 김문을 하옥하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집현전 학사는 처벌하지 않는다.

 

최만리가 반대한 이유는 중화와 다른 글을 만들어 이적이 되려하는가 였고, 글은 배우고 익히는데 시간이 오래 결려야 하는데 언문은 너무 쉬어서 유자들이 공부를 게을리 할까 저어한다고 한것이다. 훈민정음은 너무나 훌륭한 글이라는데 최만리도 동의를 하였었다.


 

 

1. 우리 조선은 조종 때부터 내려오면서 지성스럽게 대국(大國)을 섬기어 한결같이 중화(中華)의 제도를 준행(遵行)하였는데, 이제 글을 같이하고 법도를 같이하는 때를 당하여 언문을 창작하신 것은 보고 듣기에 놀라움이 있습니다. 설혹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뜬 것이고 새로 된 글자가 아니라.’ 하지만, 글자의 형상은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하였을지라도 음을 쓰고 글자를 합하는 것은 모두 옛 것에 반대되니 실로 의거할 데가 없사옵니다. 만일 중국에라도 흘러 들어가서 혹시라도 비난하여 말하는 자가 있사오면, 어찌 대국을 섬기고 중화를 사모하는 데에 부끄러움이 없사오리까.

..중략..

역대로 중국에서 모두 우리 나라는 기자(箕子)의 남긴 풍속이 있다 하고, 문물과 예악을 중화에 견주어 말하기도 하는데, 이제 따로 언문을 만드는 것은 중국을 버리고 스스로 이적과 같아지려는 것으로서, 이른바 소합향(蘇合香)을 버리고 당랑환(螗螂丸)을 취함이오니, 어찌 문명의 큰 흠절이 아니오리까.
1444년 2월 20일 최만리 언문 반대 상소


<뿌리깊은 나무>에서 모든 관청이 업무를 보지 않고, 등처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 언문 훈민정음을 가장 반겼던 사람들은 실제 유림들이었다.

 

함길도, 제주, 호남, 경상, 경기마다. 말이 다르듯이 한자도 한자를 공부하는데 스승에 따라 훈과 읽는 방법이 달랐다.

 

이를 통일하고 스승이 없어도 한자를 읽게 만들어 버린 것이 언문 훈민정음이다. 한자는 스승이 없다면 배우고 익힐수가 없는 문자였다. 하지만, 훈민정음으로 표기된 한자는 혁명과도 같았다. 혼자 익힐 수 있는 문자가 된것이다. 훈민정음은 양반 유림들에게는 한자를 공부하기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글이 되었다. 한마디로 문자(한문)을 배우는 보조수단으로 한글(훈민정음)만한 것이 없었다.

세종 이도가 가장 먼저 한일도 한자사전 운회를 언문으로 만들어 조선에서 사용하는 한자음을 통일화 시키는 작업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는 환영분위기 였다. 훈민정음에 반대는 집현전의 최만리와 7명의 유학자뿐이였고, 오히려 내불당이나 흥천사 사리탑의 경우는 몇 해를 넘기고 끊임없이 상소를 하고 모든 유림들이 들고 일어나 데모와 사보타지를 하였다.

후에 문종이 즉위하자 정음청을 없애고, 단종이 즉위하자 언문청을 없애자는 상소를 하고 유림이 정권을 장악한 중종반정 이후에 언문청을 없애버리지만 말이다. 이는 정보의 과점상태가 사라지고 꼴보수 성리학자들인 사림파와  백성을 가르는 점이 없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했지만, 말이다.

사실 훈민정음을 지킨 이는 세종 다음에 세조 수양대군이였다. 수양대군이 없었다면 훈민정음은 한 때 과거에 있었던 흘러간 글자가 되었을 것이다.

 

사실 세종이도에게 왕으로서 집현전은 계륵과 같은 존재였지만, 유학자인 세종 이도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조직이었고, 집현전은 유학을 숭상하는 성리학자의 연구기관으로서 유학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논리를 개발하는 곳이었다.

그러니 집현전은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의 친위조직이 아닌 집현전을 없애고 성리학의 나라를 만들려한 밀본의 뿌리에 해당하는 것이다. 문제는 <뿌리깊은 나무>에서 단순하게 집현전 세종의 친위조직으로 왕권을 강화하는 목적이 있는 기구로 설정하고 밀본은 집현전만 없으면 재상이 다스리는 성리학의 나라가 된다는 엉뚱한 설정인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를 하면 세종이 언문을 만들자 극히 일부의 반대가 있었지만 별다른 반발이 없었다. 왜냐 하면 언문 훈민정음은 백성이 아닌 유학자 자신들에게 너무나 필요한 문자였기 때문이다. 유림의 힘은 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부에 있었다. 그리고 공부를 통한 정보의 독점에 있었지 문자를 알고 말고의 차이가 아니였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대다수가 한글을 읽고 쓰지만, 공부를 통해서 정보를 독점한 극히 일부에 이끌려가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백성은 신분상의 제약으로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글을 안다고 해서 입신양명을 할 수 없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강채윤이 밀본을 색출하여 일을 마무리 하면 세종 이도에게 할말이 있다고 있다고 한 것은 단순히 소이를 취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양반과 천민을 가르는 신분제를 없애야 한다는 소원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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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개울 넘어에 2011.11.29 0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왕조시대의 왕은 절대자입니다. 왕의 정치행위,행동들에 신하들이 반대하는 건 왕이 용납할 정도에서 그치는거지 그 이상의 반대행위는 여차하면 3족이 몰살당할 위험을 감수할 자신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거죠.
    왕조시대의 법전(조선의 경국대전 같은)은 헌법개념의 상위법이 아니라 일반법이라 특별법 개념의 왕의 교시에 밀리는 겁니다.
    왕의 교시는 법보다 우선인거죠.
    괜히 환관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수렴청정하의 왕의 친인척이 국정을 유린하는게 아니죠.
    지금과 비교해서 왕조시대 왕들은 군,병권을 포함한 행정에 입법,사법에 언론 까지 장악하고 있는건데 뿌나같이 왕권이 허약해 보이는건 너무 심한 오버로 보입니다.
    유신시대 박정희나 5공 초 전두환과도 비교할 수 없이 터무니 없이 강한 권력을 가진게 왕들인데 뿌나같이 왕권이 허약했다면 조선이 저리 오래 갈 수가 없는거에요.
    신하들이 상소하고 간언하는게 사실은 왕이 이정도는 봐줄거란 간보기가 전제되 있다는 말이죠.

  3. 붉은비 2011.11.29 1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설이나 드라마에서와 같은 극렬한 반대는 판타지가 섞여있음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한글창제가 환영받았다고 하기에는 세종 사후의 분위기가 영 그렇죠...^^;
    뭐 중종반정 이후 왕조 초기의 활력을 잃고 복고로 회귀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죠만...

  4. 2011.12.01 0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감감가마

  5. 세종대왕 2011.12.01 0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나가다가 한마디 적어봅니다... 도대체 한글을 유림이 반대하지 않았던 근거를 어디서 두었나요?? 실록이나 권위있는 근거를 두고 말을 해주세요... 유림이 한자를 익히기위해서 좋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유림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한자를 익히는게 좋아 한글을 반대하지않았다는 말도 억측같네요... 한글에 대해서 반대하지 못한 것은 반대를 할 명분이 없었지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실력이 없던겁니다. 당대 최고의 언문학자가 바로 세종이지요.. 최만리 등 성리학적인 내용만 들어 반대를 했지 다른 언어에 대한 내용에 반대를 못하고 논리적으로 이기지도 못한것이지요... 또한 사대부들이 반대하지 않았다고 확신은 못하지만 그러한 내용이 없던것은 한글에 대한 무시가 더 큰듯합니다... 왜냐하면 한글은 이후로도 거의 쓰이지 못하고 부녀자들이나 익히는 것으로 전락했기 때문이지요

  6. 세종대왕 2011.12.01 0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울넘어님~~~ 조선의 왕이 절대권력을 가진 것은 몇왕밖에 되지 않아요..... 전 연산군만이 왕다운 왕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이며 명분의 나라이지요.... 왕이 아무리 신하들보다 더한 권력을 가진 분이라고 하지만 명분 없이면 어떠한 것도 반대의 부딪히고 말지요...... 세종이 너무 유약하게 그려진다고 했지만 전 사실에 가깝다고 봅니다... 세종은 아버지인 태종과는 다른 태도를 취하지요... 이유가 병때문에 그런건지는 확실히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세종은 왕권과 신권이 가장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시대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절대권력을 내세워서 신권을 누르지는 않았고 논리(경연..)로써 조화를 이루신게 맞습니다.

  7. 헐.. 2011.12.03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떤 제가 모르는 근거가 있었던가하고 읽어보았는데,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한국사학과 교수님 수업을 들을 때 배웠던 바로는 매우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었고, 반포가 된 후에도 양반들이 여전히 싫어하고 멸시해서 몇백년동안 제대로 대우도 못받았고 그저 뒤에서 양반 여인들이나 소설책 읽고 편지쓰는 용도로 조금 쓰이다가 시간이 더 지난후에야 평민들이 소설책보고 하는데 쓰이게 되었다고 배웠습니다. 한글반포도 굉장히 기습적으로 떡! 이루어졌었고.. 반포후에도 반대가 엄청났었고.. 따라서 여전히 한글창제를 언제부터 누가 함께했는지, 아니면 진짜 세종혼자 몰래 했던 것인지도 미궁이라고 배웠습니다만.. 어쨰서 환영받았다는 주장을 하시는것인지..

  8. ㅇㅇㅇㅇ 2011.12.07 0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조선왕조실록에다가 '언문'으로 검색을 해 보니까 반대 사례라고는 최만리 등 몇 명의 상소 사건 단 한 건 뿐이더군요. 뇌물 사건으로 사형위기에 처한 조말생을 세종이 어거지로 구해 낸 사건이나 내불당, 흥천사 법회 등의 사건에 수년동안 수백건의 상소가 올라오고 대신과 언관들이 등청을 거부하고 오만 난리를 쳐 댔던 거에 비하면 이건 뭐, 사실상 반대가 거의 없었다고 봐야죠. 대왕세종이나 뿌리깊은 나무 같은 환타지 소설로 역사를 "공부"하시는 분들이 가끔 여기다 댓글을 다는데 참 안쓰럽군요. 심지어 1월 1일이 어떻게 설이냐는 초딩까지 댓글을 달고 있으니...

  9. "언문" 2011.12.09 1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글쓴이가 어떤 의도로 이런 글을 쓰신지는 모르나..
    "언문"이 뭔지는 알고..
    언문(소리글)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쉽게.. 검색창에 "언문"이 무슨 뜻으로 사용되었는지는 한번 확인해보셔요..
    ㅋㅋ
    "언문"이 어쩌고,,,
    그것만 보더라도 조신시대에 양반들이 한글을 얼마나 낮추어 생각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0. Favicon of http://www.balloonking.co.uk BlogIcon balloons by post 2011.12.11 2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은 아주 유익하고 좋은 포스트이다. 나는 당신이 화제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좋아한다. 나는 진짜로 그것을 읽는 즐겼다. 많게 감사합니다.

  11.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5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 훈민정음 해례(교본)은 세자(문종), 수양대군(세조),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박팽년 등이 세종의 지시와 교정을 받고 만들어진다

  12.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리글)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쉽게.. 검색창에 "언문"이 무슨

  13. Favicon of http://rocville.com/?p=Events BlogIcon Harvilchuck 2012.07.08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의 훈민정음 보급을 위해 정음청과 언문청을 만들고 친위세력 집현전 철

  14. Favicon of http://www.balloonking.co.uk/40th-birthday-balloons-2 BlogIcon 40th birthday balloons 2012.07.14 0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너무 귀엽습니다 ^^
    잘보고 갑니다

  15. Favicon of http://pornhublive.com/ BlogIcon http://pornhublive.com/ 2012.07.19 2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세종이 만들려는 글이 하루만에 배우고 익혀서 말한다면 집현전 철폐가 아닌 한글을 만들지 못하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16. Favicon of http://cheapcarinsurancemichigan.com/ BlogIcon cheap car insurance michigan 2012.07.23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이 만들려는 글이 하루만에 배우고 익혀서 말한다면 집현전 철폐가 아닌 한글을 만들지 못하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17. Favicon of http://www.amerisleep.com BlogIcon Tempurpedic 2012.07.28 2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주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 쇼트프로그램은 기대치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18. Favicon of http://www.affordable--health-insurance.org/arizona-health-insurance/ BlogIcon affordable health insurance in arizona 2012.08.09 04: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기사를 게시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고 새로운 것들을 게시 보관.

  19. Favicon of http://www.servantsound.com/2012/04/best-medical-kits-only-high-quality-will-do/ BlogIcon freeze drying 2012.12.10 1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드라마 작가가 간과한 것이 있다. 태자 부여 융에 관한 것이다. 부여융은 615년에 태어나 682년 68세의 나이로 복망산에 뭍힌다.

  20. Favicon of http://extravirgin-oliveoil.net BlogIcon extra virgin olive oil 2012.12.17 0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 한글을 만드는 세종역을 했는데 한국말 맞춤법이 틀린 차칸남자가 되었느냐고 송중기에게 차칸남자를 바로 고치라고 한다.

  21. Favicon of http://extravirgin-oliveoil.net BlogIcon extra virgin olive oil 2012.12.17 0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 한글을 만드는 세종역을 했는데 한국말 맞춤법이 틀린 차칸남자가 되었느냐고 송중기에게 차칸남자를 바로 고치라고 한다.


<공주의 남자>에 관한 기사를 보면 역사와 야사와 픽션을 절묘하게 믹스한 최고의 사극이라고 칭찬을 한다.
공주의 남자 결말은 <금계필담>의 결말과 유사하게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김승유와 세령공주만의 해피엔딩이라는 것만 빼고 말이다.

김승유의 신숙주집의 신면의 노비가 된 세령구하기 프로젝트라는 철없는 사랑놀음 때문에 죽어나간 사람들을 계산하면 세조(수양대군)이 죽인자보다 많다.

친구라는 정종죽여, 금성대군 죽여, 단종도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시애의 난에 동원된 수 많은 사람들도 김승유 때문에 반란군이 되었으니 말이다. 결국에는 신면도 죽음에 이르게 했으니 말이다.

물론, 사랑으로 다 용서가 되는 멜로에서는 철이 있던 없던 김승유는 사랑을 위해서 목숨을 건 주인공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다. 그렇더라도 주인공으로서는 참으로 감당이 안되는 민폐주인공임에도 분명하다.

공주의 남자 결말이 그래서 개인 김승유와 세령공주만의 해피엔딩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단지, 김승유가 장님이 되었다는 설정만 빼고 나면 말이다.

그런데 김승유가 낳은 아들은 효달일까?
 
정말 역사와 야사와 픽션을 절묘하게 믹스한 최고의 사극일까?

기자들이 역사를 연구한 적도 없고, 조선의 역사를 읽어본적도 없고. 시청자들이 역사를 알고 보지 않는것이니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공주의 남자 제작자는 스스로 "조선의 역사속 감춰진 리얼 드라마틱 러브"라고 선전을 하였다.

하지만, 공주의 남자에서 역사적인 사건은 제대로 다룬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보면 볼수록 역사를 망가트린것만 보았다. 대부분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재해석을 하는게 일반적인데 공주의 남자에선 재해석이 없다. 왜 사건이 일어났을까 보다는 적대적인 사람들이 한편이 되어서 역사모독을 하는 수준이다.

더군다나 극적인 전개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 드라마나 역사스페셜은 만드는 순간 픽션이 가미될수 밖에 없다.

사실 공주의 남자를 보는 사람에게는 불편한 글일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공주의 남자를 보는 사람이 검색을 통해서나 알음알음 같이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서 글을 찾아 볼텐데 비판을 하고 있으니 좋은 평가를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최소한 공주의 남자에서 받은 감흥도 좋지만, 실제역사와 비교해서 보는 것이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더불어 드라마와 역사를 구분해서 볼수 있으니 말이다.

드라마는 지나면 잊혀지만, 역사는 남는다. 잘못된 드라마의 설정으로 드라마를 보고 역사처럼 이야기는 하지 않을수가 있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최소한 다른이에게 또는 자식들에게 드라마와 역사의 차이점까지 알려줄수 있으니 말이다.

공주의 남자를 보고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렸는데 자신이 멍청해서 눈물을 흘린거냐며 반발한다. 사실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물을 다루지 않고 배경만 따왔다면 글쓴이도 눈물을 흘렸을 지도 모른다. 또한, 충분히 공주의 남자는 재미가 있고 감동코드가 있다. 그렇더라도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어쨌든, 사극을 비롯한 시대극이란 기록의 빈틈을 합리적인 설정으로 메꾸어 가야 한다.  빼대는 지키고, 살과 피를 돌려 살아움직이게 하는게 드라마나 역사다큐나 차이점이 없다. 단지, 드라마는 좀더 작가의 자유도(창의력)이 발휘될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인 사건의 선후관계까지 자유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시대를 넘나드는 SF 역사극도 기본적인 팩트(사건)은 지키고 있고,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들어가 관계되어서 사건이 미래에 미치지 않도록 설정하고 고민하는 장면을 필히 넣는다. 
 
잘못된 드라마의 설정이 앞으로 공주의 남자를 보고 드라마가 역사인척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 질것이다. 정종과 김승유와 신면의 삼각관계와 배신자 신면를 이야기 할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선덕여왕과 같은 시대에 있었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김승유.정종을 사육신이나 생육신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란 법은 없다.

공주의 남자에서 한없이 불쌍한 인물로 경혜공주와 정종을 말하고, 실질적인 주인공이 문종의 딸인 경혜공주와 정종이 아닐까하는 사람들도 있다. 더군다나 정종과 경혜공주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정종은 계유정란 공신이였고, 문종이전 시절부터 조선의 대단한 권력자 가문이였다.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단종을 정종과 경혜공주의 집으로 이어시켜서 지냈고, 어린 단종의 뒷배를 이용해서 수 많은 재산을 불렸다. 요즘으로 치면 권력형 비리의  몸통에 정종과 경혜공주가 있었던 것이다.
 


위와 같은 정종이 한미한 가문일 수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김승유와 친구가 가당키나 한가? 김승유가 살아 있었다면 권력자의 2세들로 왕자당을 만들어서 기생집에 드나들었음직 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정종은 계유정난으로 조선에서 가장 혜택받은 존재였다. 넘쳐나는 재산에 정난으로 망한 집안의 전토와 공신전과 노비를 수 없이 받았으니 말이다. 그런 김승유와 정종이 계유정란시 친구이고 이후로도 친구가 될수 있었을까? 친구였다가도 견원지간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더군다나 사육신의 한사람인 이개가 신면과 김승유와 정종의 스승이라고 떠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사육신과 김종서는 철천지 원수일 수 밖에 없고, 사육신과 정종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고, 오히려 정종에게 적대적이였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공주의 남자는 조선후기 금계필담에 채록된 세조의 큰딸과 김종서의 손자와의 사랑을 모티브로 탄생한 드라마다.


김종서의 손자는 계유정난으로 유모의 손에 살아남아 백악산 보굴로 숨어든다.


세조의 큰 딸 세희는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려고 하자, 세조에게 어찌하여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려하느냐고 반기를 들고, 정희왕후가 세희를 죽은 것으로 위장하여 유모와 함께 나가살도록 한다.


세희와 김종서의 손자는 백악산 보굴에서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세조가 요양 차 지나는 길에 우연히 세희와 외손녀를 만나게 되자. 세희와 김종서 손자는 더 깊은 산으로 숨어들어 살았다는 것이 골자이다.


이 이야기는 정조시기에 백악산에서 김종서의 오래된 위패가 발견됨으써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공주의 남자 작가와 제작자는 세희를 세령이라 이름을 바꾸었고, 김종서의 손자를 김종서의 셋째 아들인 김승유로 바꾸어서 세령과 김승유의 사랑으로 극화하였다.


금계필담 이야기가 전해지는 대로 세조의 큰딸과 김종서의 손자로 극화했다면 보다 개연성 있고 역사도 망치지 않는 드라마가 만들어 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김종서에게는 3명의 적자와 2명의 서자가 있었다. 그리고 기록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손자는 김종서의 둘째 아들 김승벽의 큰아들 김석동(중남)이였다. 둘째 아들 김승벽의 막내 삼동(팽)은 유모의 손에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김승유의 아들 효달은 유모가 자신의 아들을 효달로 속여 대신 죽고, 효달이 살아남았다고 순천김씨 대동보는 전한다. 문제는 서자 중 김목대는 15살이 되지 않아 나이가 어렸을 것으로 추측되고, 서장자인 김석대는 커서 자식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외 큰아들 김승규의 막내 말동(행남)은 송시열의 5대조가 김종서의 조카 사위였는데 정난이 일어나자 3살 김말동(김행남)을 몰래 빼돌려 강화도로 보내서 길렀다고 한다.


계유정난에서 김승유가 살아 있을 확률은 0%도 안 된다. 왜냐하면 정난 후 김종서의 서자를 비롯해 식솔들인 손녀까지 기록으로 남아 있는데 김승유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더불어 순천김씨 대동보에서 정란 시 김승유의 아들 효달이 어렸다고 하였고, 김승유의 처는 여흥민씨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승유가 계유정난 이전부터 총각으로 등장하는 순간 공주의 남자는 산으로 간다. 더군다나 등장하지 말아야할 죽은자가 등장하므로서 인물간의 관계가 흐트러져 버린다.


유부남에 자식까지 있고, 이미 죽은 김승유가 세령과 사랑하는 사이로 그리는 순간 공주의 남자는 막장코드가 된다. 오히려 살아남은 김종서의 손자 김석동(중남)과 세령과 엮었다면 충분히 극으로 만들어도 딴지를 걸 수 없게 된다.


더군다나 경혜공주의 결혼, 계유정란, 세조의 왕위 찬탈, 사육신의 단종복위, 정종의 반정, 이시애의 난, 그리고 세령과 김승유의 행복한 삶까지 1450년부터 1468년까지 19년을 한 두해에 이뤄진 것으로 다루는 무리수를 두었다.


그러니 이시애의 난이 끝난 이듬해 죽은 세조가 죽지도 않고 유령도 아닌 상태에서 늙어서 나타나는 처음부터 황당한 극 전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개그프로 감수성에도 다루지 않을 극의 전개이다. 그러니 개연성과 리얼리티가 있을수가 없다.


공주의 남자에서 등장하는 인물간의 관계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다음과 같다.



공주의 남자 극의 시작은 경혜공주의 결혼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아래의 사건들이 공주의 남자에서 그린 처음부터 끝까지다.


공주의 남자 황당설정
세조의 큰딸 세희(세령)과 김종서 아들 김승유와 사랑
1453년 김승유 20살(1434년생) 설정
세령,  숭(1438년)보다 누나 
신면(1438년)생 김승유와 동갑
정종, 김승유, 신면 사육신 이개의 제자
신면 죽을때 까지 한성부 판관
사육신 처음부터 김종서파, 정종, 금성대군파, 단종파
세종
문종 말년,경혜공주 유부남 김승유에 시집보내려다 실패  정종과 결혼
1450년 1월 24일 경혜공주(평창군주) 정종과 결혼
문종 1452년 5월 14일 문종 죽음
단종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 김종서, 안평대군, 황보인 등 죽임
김승규, 김종서만 죽었지만, 모두 몰살된것으로 그림 
이개와 정종, 김승유 살려줌, 강화도 유배수장되다 탈출
1456년 9월 7일 의금부에 난신 연좌된 부녀 대신들에게 나눠줌
김승규의 아내, 딸 아강 강곤의 노비됨
신면과 세령공주 김승규 아내,아강 살려줌 
1471년 윤 9월28일, 강곤에 하사된 김승규의 딸 숙희 방면
1472년 5월 정인지에 하사된 김승규의 처 내은비 딸 내은금 방면
세조 1456년 5월 12일 온녕군 죽음
김승유, 신숙주 척살 실패
1455년 6월 11일(윤) 세조의 왕위찬탈
1455년 8월 19일 정종 수원에서 통진 농장으로 이배
김승유, 사육신, 정종과 함께 서울 집에서 반란모의 
 
1456년 6월 1일 사육신의 단종복위 사건, 단종 반란수괴
1455년 8월 19일 정종 수원에서 정종의 통진 목장으로 이배
1457년 6월 21일 단종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격하되고 영월로 유배
정종 경혜공주가 세조에 무릎꿇어 서울에서 광주로 유배됨 
1457년 6월 27 정종 통진 목장에서 전라도 광주 유배
1461년 7월 정종 반란모의 
1461년 10월 23일 경혜공주, 정미수와 전라도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옴
1461년 10월 20일 정종의 죽음
1457년 10월 22일 이후, 송현수, 금성대군, 단종 죽음
1455년 정종과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 태어남
1467년 5월 17일 이시애의 난
1467년 5월 18일 신면, 이시애의 난 진압하다 30살로 죽음
1457년 9월 2일 세자 도원군 장(숭) 20살 죽음
김승유, 세령,아강 같은 나이 딸있음
1468년 9월 8일 세조(수양대군) 수강궁(창경궁)에서 죽음
성종
세령과 김승유 앞에 나타난 세조(수양대군)은 유령?


공주의 남자를 보면 세조(수양대군)이 이시애의 난이 있고 늙도록 왕에 있었는줄 알것이다. 하지만, 세조는 이시애의 난이 있고 이듬해 죽는다. 세령과 김승유 앞에 나타난 세조에게 유령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것은 극히 정상적인 생각이다. 그렇다면 공주의 남자가 망친 역사를 복원하면 어떻게 될까?


실제 역사
세조의 큰딸 세희(세령)과 김종서 손자의 사랑
김승유 계유정란 이전 죽음. 아내 여흥민씨 사이 아들 효달있음
경혜공주 1436년생, 숭 1438년생, 세령 숭보다 어림
신면 1438년생, 의숙공주 1442년생
사육신 안평대군,김종서 배신, 금성대군, 정종과는 처음부터 적대적임
사육신, 김종서 남은 일파 죽이라 주장, 수없이 죽이고 정난공신됨
사육신 일부 성삼문 등 단종폐위, 세조옹립 좌익공신됨 
사육신 단종복위 반란, 하지만 단종 반란수괴 실토 단종 유배빌미 제공 
세종
1450년 1월 24일 15살 경혜공주(평창군주) 정종과 결혼
1450년 2월 세종 죽음
문종 1452년 5월 14일 문종 죽음
단종 1453년 숭, 신면 16살, 경혜공주 18살, 세령(세희) 13~15살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 김종서, 안평대군, 황보인 등 죽임
1453년 11월 8일 성삼문, 권자신,박팽년, 이개, 유성원, 성승 등 사육신 계유정란공신3등, 정종 1등공신
1453년 11월 김종서 아들 김승벽, 김석대 사사
1454년 8월 15일 김종서 아들 김목대, 김승규 아들 김조동·김수동 사사
1454년 8월 15일 김승벽 아들 김석동 전라도 극변 관노로 영속
1455년 6월 혜빈 양씨, 금성대군, 정종 반란모의
세조
1455년 6월 11일(윤) 세조의 왕위찬탈
1455년 8월 12일 정종 양근에서 수원으로 이배
1455년 8월 19일 정종 수원에서 통진 농장으로 이배
1455년 9월 5일 수양대군(세조) 왕위찬탈 공 권자신, 성삼문 좌익공신
1455년 정종과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 태어남
1455년 원종공신 행부승 신면 18세
1456년 5월 12일 온녕군 죽음
1456년 6월 1일 사육신의 단종복위 사건, 단종 반란수괴
                      단종 외삼촌 권자신, 외할머니 최아지 반란연류 
1456년 6월 29일 현덕왕후 서인으로 격하되고 개장(이장)
1456년 9월 7일 의금부에 난신 연좌된 부녀 대신들에게 나눠줌
1457년 6월 단종 장인 송현수, 권완의 반란 사건
1457년 6월 21일 단종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격하되고 영월로 유배
1457년 6월 27일 금성대군, 이보흠 반란 사건
1457년 6월 27 정종 통진 목장에서 전라도 광주 유배
1457년 8월 송현수 관노 됨
1457년 9월 2일 세자 도원군 장(숭) 20살 죽음
1457년 10월 22일 이후, 송현수, 금성대군, 단종 죽음
1458년 평안도 도체찰사 신숙주에게 회군하길 바라는 수찰 내림 
1458년 도염서령 신면
1460년 신숙주 함길도 도체찰사, 종부소윤 신면 함께감
1461년 3월 신면 장령
1461년 7월 정종 반란모의 
1461년 10월 20일 정종의 죽음
1461년 10월 23일 경혜공주, 정미수와 전라도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옴
1464년 신면 우승부지 지공조사
1467년 5월  신면 도승지겸 함길도 관찰사
1467년 5월 17일 이시애의 난
1467년 5월 18일 신면, 이시애의 난 진압하다 30살로 죽음
1468년 9월 8일 세조(수양대군) 수강궁(창경궁)에서 죽음
성종
1471년 윤 9월28일, 강곤에 하사된 김승규의 딸 숙희 방면
1472년 5월 정인지에 하사된 김승규의 처 내은비 딸 내은금 방면

공주의 남자에서 가장 불쌍한 배역은 신면이다. 아버지 신숙주 때문에 아들 신면까지 도매금을 넘어갔다. 그런데 배신의 역사인 시육신은 언제부터 그리 충신이 되어야 하는걸까? 배신을 해도 신숙주보다 더 많이 했는데 말이다. 중종반정을 하고 권력을 쟁취한 사림파들이 만든 허구와 신화가 사육신이다. 사림파들에게는 이교도라도 생각한 세조를 죽이기 위해서 사육신을 신격화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동안 공주의 남자가 망친 역사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아래글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2011/10/07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결말, 김승유 세령공주 때문에 억울한 누명 쓴 신면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모 시체 바다에 버렸다는 사림의 선동결과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관노비 없었고, 아들 정미수 수양대군 지어준 이름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결말, 단종도 죽인 김승유, 이시애와 수양대군 죽이고 왕될 기세?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 경혜공주 똥도 먹은 효자였다.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불쌍한 신면과 배신자 사육신 어떻게 충신 아이콘 되었나?
2011/10/04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사육신 박팽년 성삼문, 단종 양위시 경회루 투신사건 사실일까?
2011/09/30 - [TV&ETC] - 공주의 남자, 정종 죽고 경혜공주 공노비 된건 김승유 신묘한 계책?
2011/09/30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정종과 경혜공주 복중 아기 정미수 유복자될까? 사실은 이산 정조가 알고 있다
2011/09/29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될까? 사실은 정조만 알고 있었다.
2011/09/2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 된다? 사실은 진실과 허구 왜 퍼졌을까?
2011/09/2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 처 윤씨 사육신 편에서 자살했나? 사실은 방개떡 고사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제작자 계유정란 김승유 3살? 그럼 김승유와 아들 효달이 동갑? 대략난감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광개토태왕, 계백, 사극 문헌고증 파괴해야 시청률 오른다?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스승 이개 알고보면 계유정란공신, 사육신 단종폐위 좌익공신들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적과동침, 단종 죽인건 사육신 충신인가? 배신 아이콘인가?
2011/09/17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단종복위 위해 불구대천원수인 이개 성삼문 등 사육신과 동침한다?
2011/09/10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추석 보름달은 원한에 시퍼런 날이 서있었을 것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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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11.10.09 0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딸이 죽어 그 고통으로 일년만에 늙었다는 설정이 아닐지요.
    작가도 그 정도는 알 텐데요.
    갓쉰동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사극을 제작할 때 갓쉰동님께 감수를 받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2. aa 2011.10.29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령은 숭보다 누나인 설정이 맞았다고 봅니다.
    계유정난 당시 숭의 나이는 고작 15살인데요..
    아버지에게 대적할 힘이 잇을 정도라면 최소한 숭보다 나이가 많았어야 하지 않을까요...

  3. 가지가지 2011.11.27 2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요. 제가 볼 땐 가지가지하신다는 느낌이..드는데요. 사극의 틀을 빌린 또 하나의 로맨스 드라마로도 보세요. 님만큼 역사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많고, 지금 글쓰는 저도 님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 바보인 듯 하고 역사적 사실은 도외시한 채 이 내용만 가지고 역사를 안다고 생각하며 볼까요? 이것을 계기로 하여 경혜공주를 알고 영양위 정종도 알고 인터넷을 통해 많은 실제적 역사를 검색해가며 공부해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쥔장 글은 헛똑똑이의 행동의 전형적인 형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극이 무조건 다 재해석이 아니고, 사극의 장르에 따라 다른 것 아니겠습니까? 천편일률적인 사극만 가대하지 마시길.

  4. Favicon of http://lionfilmstudio.com BlogIcon 박기동 2011.12.31 1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한다

  5. Favicon of http://no-credit-check-cell-phones.com BlogIcon 박기동 2012.01.07 0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6. Favicon of http://get.scrapping.cc BlogIcon 사라 2012.04.06 0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아침입니다.

  7. Favicon of http://hollyholly.is-a-chef.com BlogIcon Gianna 2012.05.11 0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8.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6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9.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10. Favicon of http://www.perfectmotoindustry.com BlogIcon Exhaust Pipes 2012.08.21 18: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llkjihygjhfg


<공주의 남자>에서 궁을 나간 세령은 빙옥관에서 신면의 손에 이끌려 궁에 다시 돌아온다.


궁에 돌아온 세령은 세조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아버지의 죄업을 자식들에게까지 전달하겠는냐는 것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의경세자(숭:장)(덕종:성종의 아버지)이 피를 토하고 쓰러지자, 세조(수양대군)은 그동안 드라마에서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세조의 뒤를 이어 예종이 되는 둘째 왕자 해양대군(황)를 궁으로 불러들인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 설정으로는 정희왕후 처가에서 길러진 것으로 그리고 있다.


어쨌든 의경세자 숭(장)은  곧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의경세자는 1438년 생으로 20살이 되는 해에 죽는다. 드라마 시제는 1456는 6월 사육신의 쿠데타 실패와 의경세자(장)이 죽은 1457년 9월 2일 사이라는 것을 뜻한다.
 


수양대군은 악담을 퍼붓는 세령에게, 신면을 들어오게 하면서, 신면은 세령과 결혼할 수 없다고 말을 한다. 세령은 신면 너의 노비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시청자를 낚시하는 장면에 지나지 않지만, 신면의 노비가 된다고 해서 세령과 결혼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첩으로 삼으면 되니 말이다. 어쨌든, 그동안 신면은 수양대군에게 끊임없이 이용만 당한 것이 된 것인가? 아니면 세령공주를 노비로 부리니 좋아라 해야 하는 것인가?


<공주의 남자>에서는 1450년부터 신면은 세령을 향한 해바라기 였고, 2번의 결혼 식 실패를 맛봐야 했다. 7년 동안 세조의 노비였으니 신면의 노비가 된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어짜피 공주의 남자는 요즘으로 치면 막장 멜로 시대극이기 때문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시제는 무의미 하다. 작가의 작의적인 시간의 꼬임이 있다. 어쩌면 공주의 남자만의 시간의 왜곡현상이 있어서 블랙홀이 형성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실존인물이고 계유정란 전에 죽었던 김승유가 살아나 젊음을 유지하고 세령과 사랑놀음을 하고 있고, 공주의 남자에서 하루는 1년처럼 빠르게 진행된다. 더군다나 미래로 과거로 지멋대로 왔다리 갔다리 황당 타임머신을 타고 다닌다.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이 끝나고 김승유가 강화도에서 1박2일 입수를 하고 나오니 1년이 지나버렸다.


강화도에서 살아나 대호로 알리게 되는 온녕군을 암살하고 신죽주를 죽이려 실패하자, 세조와 한명회는 온녕군을 죽인 배후는 단종과 정종과 금성대군이 획책한 것이라며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다. 결국에는 김승유가 단종을 몰아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것이 된다.
 


하지만, 온녕군이 죽은 때는 1454년 5월 12일 이었고, 세조(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른 때는 1455년 6월 11일(윤)이였다.
 

단종 2년, 1454년 5월 12일,  온녕군(溫寧君) 이정(李裎)이 졸(卒)하였다

 

위키백과 사전에는 1453년 졸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1453년 10월 계유정란이 끝나고 김종서의 첫째아들 김승규의 아내와 손녀 아강이 강곤의 집에 노비로 팔린 것으로 그렸고, 세령과 신면이 강곤의 집에서 아강과 형수를 빼돌려 살게하다. 김승유가 돌아오자 빙옥관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그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주의 남자를 보고 김종서는 모두 절손된 것으로 알고, 김종서의 살아남은 후손들은 족보를 샀는줄 안다. 하지만, 김종서의 살아남은 손자만 해도 4명이 있었고, 자식도 3명이나 있었다. 물론, 드라마 주인공 김승유는 계유정란 전에 죽고 없었다. 공주의 남자의 이야기 구조는 납량극에서나 나올 스토리 구성이다.
 

전일에 정난(靖難)할 때 사람을 많이 죽이지 않으려고 하여 모두 너그러운 법[寬典]에 따랐는데, 근일에 대간(臺諫) 에서 와언(訛言)이 떠들썩하게 일어남으로 하여 간당(姦黨)의 근본(根本)을 모두 제거하자고 굳이 청하므로, 대신(大臣)에게 의논하였더니, 대신의 의논도 이와 같았다

..중략..

부처(付處)한 이용(李瑢)의 아들 이우직(李友直)과 황보석(皇甫錫)의 아들 황보가마(皇甫加麿)·황보경근(皇甫京斤), 김종서(金宗瑞)의 아들 김목대(金木臺), 김승규(金承珪)의 아들 김조동(金祖同)·김수동(金壽同), ..생략..을 죽여라


단종 2년 1454년 8월 15일


1453년 10월 10일 : 김승규와 김승벽의 두아들 차동과 사동이 죽음.

1453년 10월 11일 : 김종서 죽음

1453년 11월 23일 : 김승벽, 서자 김석대 죽음

1454년 8월 15일(추석) : 서자 김목대, 첫째 김승규 아들 김수동, 김조동 죽음


계유정란으로 노비가 되어 강곤에게 팔려간 며느리, 손녀 아강은 계유정란 때문에 강곤에게 노비가 된 것이 아니다. 실제는 사육신들이 수양대군(세조) 척살 쿠데타에 실패하고, 금성대군의 역모 여파로 그전에는 공노였다가 공신들의 사노비가 된 것이다.


이때 사육신들의 아내와 첩들과 딸들이 공신들의 노비가 되었다. 알고 보면 두고두고 김종서 일가와 사육신들은 악연의 연속이다. 더군다나 1457년 6월 금성대군이 순흥에서 반란를 모의한다는 말을 듣고 치계를 당하고, 금성대군을 사사시키라는 대신들의 간언이 있었으나 세조는 이를 물리친다. 1457년 9월 2일 의경세자가 죽는다. 일련의 사건이 김종서 일가에 쓰나미로 몰려온것이다. 김종서 일가는 사육신과 금성대군. 정종과도 악연의 연속인 것이다.


 

김승규(金承珪)의 아내 내은비(內隱非)·딸 내은금(內隱今)·첩의 딸 한금(閑今)은 영의정(領議政) 정인지(鄭麟趾)에게 주고,

김승규(金承珪)의 딸 숙희(叔熙)는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강곤(康袞)에게 주고

김승벽(金承壁)의 아내 효의(孝義)는 예조 참판(禮曹參判) 홍윤성(洪允成)에게 주고,

- 세조2년 1456년 9월 7일




<공주의 남자>에선 김승규의 아내와 딸 아강이 강곤의 노비가 되었지만, 실제는 영의정 정인지의 노비가 되는 것이다. 그것도 세조가 왕위에 오른 2년 후인 세조 2년, 1456년 9월 7일에 말이다.


형수와 조카를 빼돌릴 수 있는 때는 지금 드라마 시제인 1456년 9월 이후가 되어야 합리적이다. 문제는 형수와 조카와 김종서관련 여자들은 성종때 풀려나지만 말이다.  


그런데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는 김승유와 김종서가 정종과 경혜공주와 친하고, 금성대군과 친할뿐만 아니라, 사육신 이개와 스승관계에 세조를 척살할 계획을 세우고 정종과 금성대군과 함께 쿠데타를 꾀하고 있다.


물론,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한때의 적이라고 해도 공동의 적인 세조를 몰아내기 위해서 합종연횡은 당연하다. 적과의 동침처럼 극적인 설정이 없다. 단순히 처음부터 끝까지 한편이라는 것 보다는 말이다. 물론, 처음 사육신과 안평대군과 김종서.황보인은 한편이었다. 계유정란 시 사육신들이 배신을 때리고 살아남은 김종서 일파를 죽이는데 앞장섰지만 말이다.
 

이현로(李賢老)·이승윤(李承胤)·이개(李塏)·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 등이 교결(交結)하여 마음으로 굳게 맹세하고 ‘문하(門下)’라고 칭하고, 모두 도서(圖書)의 헌호(軒號를 지어서 서로 한때의 문사임을 자랑하였으나, 모두 농락(籠絡)당한 것이었다

..중략..


한때 (안평대군) 용(瑢)에게 아첨하는 자들이 용(瑢)에게 글을 보내는 데 한결같이 계서(啓書)와 같이 하여, ‘용비(龍飛)’·‘봉상(鳳翔)’·‘번린(攀鱗)’·‘부익(附翼)’·‘계운(啓運)’·‘개치(開治)’ 등과 같은 용어를 쓰고도 의혹하지 않았으며, 혹은 신이라 칭하는 자도 있었다. 정난(靖難) 한 뒤에 많이 얼굴을 바꾸고 꼬리를 흔들었으나, 세조는 모두 묻지 않았다

- 단종 1년, 1453년 5월 19일


집의(執義) 이개(李塏)가 본부(本府)의 의논을 가지고 아뢰기를,

“신 등이 지금 정부에서 아뢴 죄목(罪目)을 보니, 이용(李瑢)이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정분(鄭笨)에게 지시하여 심복을 병조(兵曹) 군기감(軍器監)에 포열(布列)하게 하였다 하였으니, 정분의 죄가 황보인·김종서에 못하지 않습니다. 허후(許詡)는 집정 대신(執政大臣)으로서 자주 용(瑢)의 집에 갔으니, 당여(黨與)인 것이 분명합니다. 조수량(趙遂良)·안완경(安完慶) 등은 용(瑢)과 더불어 비밀한 말로 약속하였고, 또 조수량은 용(瑢)의 금대(金帶)를 받았으니, 이것도 또한 용(瑢)의 당입니다. 조순생(趙順生)·이석정(李石貞)·지정(池淨) 등은 모두 무관(武官)으로서 용(瑢)의 집에 왕래하여 당원(黨援)을 하였으니, 청컨대 모두 율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그 나머지 지당(支黨) 이보인(李保仁) 등은 밤낮으로 용의 집에 모였으니 어찌 역모를 알지 못하였겠습니까? 또한 법에 의하여 논단하소서.”

- 단종 1년, 1453년 10월 28일



더군다나 이개를 비롯한 많은 사육신들이 안평대군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가 안평대군과 황보인, 김종서가 수양대군 일파에 척살되자. 배신을 때리고 김종서, 황보인, 안평대군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들을 단종을 압박해서 죽이라고 한사람들이 사육신들의 다수였고, 정난공신이 되었다.

더군다나 사육신들은 단종을 몰아내고 세조를 왕에 옹립하고 좌익공신이 된다.

한명회, 신숙주와 함께 단종폐위와 수양대군(세조) 옹립으로 좌익공신이 된 사육신 성삼문

임금이 좌익 공신(佐翼功臣)을 정하는데,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익현군(翼峴君) 이관(李璭)·한확(韓確)·윤사로(尹師路)·권남(權擥)·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를 1등으로 삼아 수충 위사 동덕 좌익 공신(輸忠衛社同德佐翼功臣)이라 이름하고, 정인지(鄭麟趾)·이사철(李思哲)·윤암(尹巖)·이계린(李季疄)·이계전(李季甸)·강맹경(姜孟卿)·윤형(尹炯)·최항(崔恒)·전균(田畇)·홍달손(洪達孫)·양정(楊汀)·권반(權攀)을 2등으로 삼아 수충 경절 좌익 공신(輸忠勁節佐翼功臣)이라 이름하고, 권공(權恭)·이징석(李澄石)·정창손(鄭昌孫)·황수신(黃守身)·박강(朴薑)·권자신(權自愼)·박원형(朴元亨)·구치관(具致寬)·윤사윤(尹士昀)·성삼문(成三問)·조석문(曹錫文)·이예장(李禮長)·원효연(元孝然)·한종손(韓終孫)·이휘(李徽)·황효원(黃孝源)·윤자운(尹子雲)·이극배(李克培)·이극감(李克堪)·권개(權愷)·최유(崔濡)·조효문(曹孝門)·한계미(韓繼美)·정수충(鄭守忠)·조득림(趙得琳)을 3등으로 삼아 추충 좌익 공신(推忠佐翼功臣)이라 이름하였다.

세조 1년 1455년 9월 5일 (음)



 



많은 사람들이 신숙주가 세종의 유명을 버리고, 조카인 단종을 폐위하는데 앞장섰다고 말하고 신숙주를 배신의 아이콘으로 쉬이 쉰다는 숙주나물을 만들어 버렸다.
신숙주는 한번의 배신을 했지만, 사육신은 3번의 배신을 하였다.

첫번째 안평대군과 김종서를 배신하고, 두번째 단종을 배신하고 세조를 옹립했으며, 세번째 세조를 배신하고 단종을 복위시켰다. 신죽주랑 비교해서 누가 더 많은 배신을 했을까? 신숙주가 하루만 지나면 쉰다는 숙주나물이라면 사육신은 3번 배신하고 돌고돌아 충신이 된건가?

가끔가다가 댓글로 충신인 사육신이 그럴리가 없다는 댓글이 달리고, 사육신의 후손인데 선조를 모욕하지 말라도 한다. 본인들이 정확히 사육신의 후손인지는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이글을 권한다.

그리고 세조가 쓴 문종, 단종, 세조실록을 어떻게 믿느냐고 합리화 시킨다.
물론, 세조의 입장을 강하게 어필할 수는 있다. 문종실록과 단종실록 편찬에 사육신도 깊이 관여를 했었다. 문제는 당대 그들 스스로 언행에 당당하였다는 것이다. 유일종교관을 가지고 있던 박팽년이 내불당 관련해서 세종을 모욕하자 문종이 박팽년을 하옥시킨다. 하지만, 박팽년을 구원한 자는 배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신숙주였다. 선왕이 욕보인다고 해도 '언로는 열어야 합니다.'라면서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사육신이 처음 단종을 배신하고 수양대군을 옹립했다고 다시 단종을 옹립하려 시도한 것은 사육신들의 편향된(?) 정치관 때문이였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미화할 필요도 별로 없었다. 더군다나 조선의 사관들은 왕이 화장실(매화틀)에 가는데 까지 붓을 들고 따라다닐 만큼 철저했다. 또한 사관이 아니며 실록을 볼수도 없었다. 문종의 경우 "사관이 너무 가까이서 왕의 말을 적는다고 밖에 나가서 기록을 하면 안되겠니"라며 푸념하는 장면까지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세종은 환관과 비밀 이야기를 하는데 사관을 내보냈다고 실록은 기록까지 한다. 자신들의 조상을 미화하기 위해서 역사까지 왜곡할 필요는 없다.
 

결의를 숭상하여 근본을 배양하면 될 것이다. 성삼문·박팽년 등의 일은 대신에게 물어야 하겠으나, 정몽주·길재 등의 일은 대신에게 묻지 않더라도 그 후손을 녹용(錄用)해야 하리라.”

하매, 이청(李淸)이 아뢰기를,

“아뢴바 절의를 배양하는 일은 지당합니다. 숭장해야 할 자는 성삼문·박팽년뿐 아니라 이개(李塏) 등도 숭장해야 합니다. 그때에는 불의(不義)인 듯하였으나, 대의(大義)가 정해진 뒤에는 사람들이 도리어 의(義)로 여기니 이제 난신(亂臣)이라는 이름을 가할 수 없습니다.”

하고, 기준(奇遵)이 아뢰기를,

성삼문·박팽년 등이 세조에게는 역적이 되고 노산에게는 충신이 되는데, 그때에는 부득이 죄를 가하였으나 이제는 무슨 혐의가 있겠습니까? 예전에 정공(丁公) 이 한 고조(漢高祖)에게로 돌아가매 한 고조가 참(斬)하였는데, 이 일이 성삼문의 일과 서로 비슷합니다. 단병(短兵) 으로 교전할 때에는 정공이 한 고조에게 덕이 되었으나 항우(項羽)에게는 실절(失節)이 되었으니, 한 고조가 개국(開國)한 뒤에는 참하여 절의를 격려한 것은 마땅합니다. 성삼문·박팽년을 이제껏 난신으로 지목하니 어찌 이처럼 답답한 일이 있겠습니까? 그 사람의 자손은 이제 없거니와, 그 외자손(外子孫)이 혹 있더라도 저애(阻礙)됨이 없지 않을 터이니 이것이 어찌 옳겠습니까! 다 허통(許通) 해야 합니다. 신이 매양 아뢰고자 하였으나 못한 것이거니와, 만약에 아뢴 대로 도타이 숭장하면 곧 국맥(國脈)을 연장하는 방도가 될 것입니다.”

하고, 민수원이 아뢰기를,

“좌우가 아뢴 대로 권장하여 사기를 격려해야 합니다.”

하고, 이청이 아뢰기를,

“세조께서 하늘에 응하고 백성을 따랐는데, 성삼문 등이 오히려 노산을 복위시키려고 꾀하였으니 세조에게는 역적이 됩니다. 그러나 이제껏 난신으로 지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 정몽주의 일은 더욱 가상하고 아름습니다.”

하고, 기준이 아뢰기를,

“위란(危亂)할 즈음에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여 이와 같은 몇몇 사람이 있는 것은 워낙 드문 일이니 추장(推奬)해야 합니다. 무왕(武王)은 지극히 거룩한데도 백이(伯夷)·숙제(叔齊)가 오히려 말을 당기면서 간(諫)한 까닭은 군신(君臣)의 분수를 어지럽혀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하고서야 나라가 쇠약해지더라도 전복하는 화(禍)가 없고, 어진 사람이 많이 나서 사직(社稷)이 힘입을 바가 있을 것입니다. 세조조에서도 어찌 성삼문 등의 절의를 몰랐겠습니까마는 문죄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감히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조정에 의논하면 될 것입니다 - 중종 12년, 1517년 8월 5일



사육신이 충신의 반열로 돌아간 때는 중종반정이 성공한 이후에 죄는 있지만, 상육신의 결의는 본받아야 된다고 하면서 시작된다. 선비의 결의는 본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건 조선의 예 뿐만 아니라 어떤 나라도 하는 짓이다.


조선의 선비에게는 ‘불사이군’뿐만 아니라 연산군에 반해서 중종반정을 하는 세력처럼 임금이 임금답지 않았을 때 임금을 없애고 새로운 군주나 역성혁명도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얼마나 조선의 왕들이 신하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겠나? 언제 자신들의 목을 쳐 없앨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불어 조선의 왕들 스스로 자신들이 잘못하거나 신하들의 눈에 벗어나면 왕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유학자였다. 단지 왕은 유학자의 대표자 정도로 생각을 했다. 더군다나 중종반정세력의 명분을 찾는데 사육신에서 찾는 것이다. 세조의 반정이나, 사육신을 죽어도 마땅한 세력으로 남기면 중종반정을 성공한 세력자체도 역모를 꾀한 세력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합리화하는데 사육신만한 세력이 없었다.

사육신이 충신이면 김종서는 역신이 된다. 더군나다 김종서를  척살한 세조는 쿠데타를 진압한 세력이 된다. 사육신과 함께 단종을 몰아낸 세조는 조선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일을 한것이다. 이런 딜레머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이해당사자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수 밖에 없는가를 보는 것이다. 역사를 단순하게 보지 않는것이다.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은 드라마를 보면서 역사인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드라마를 보고서 역사를 알았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누구누구는 어떻네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은 드라마와 역사를 혼돈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드라마는 역사를 알고 보면 재미가 있다. 글쓴이의 대부분의 글은 드라마 리뷰같지만, 실제는 드라마가 망친 역사바로 찾기 리뷰이다. 오죽하면 카테고리가 [역사이야기]이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김승유와 신면이 불쌍하다.  신면이 왜 불쌍하냐는 사림이 있다. 친구를 배신하고, 친구의 연인을 빼앗고, 단종을 배신했는데라면서 말이다. 대표적인 드라마를 역사로 아는 사람들의 전형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기회에..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스승 이개 알고보면 계유정란공신, 사육신 단종폐위 좌익공신들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계백, 의자왕, 반란 실패한 사택비 죽고, 교기 왜로 쫓겨난다?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적과동침, 단종 죽인건 사육신 충신인가? 배신 아이콘인가?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광개토태왕, 계백, 사극 문헌고증 철저히 파괴해야 시청률 오른다?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계백, 의자왕, 계백 백제 패망후 왜 천황 될지도?
2011/09/06 - [역사이야기] - 계백, 동명제 초혼관 의자, 교기와 흥수는 왜 왜색풍 옷을 입었나? 사실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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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ㄹㄷhttp:// BlogIcon ㄷㅇㄷ 2011.09.23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육신이 충신이면 김종서는 왜 역신이 되는것인가요? 사육신을 충신으로 봐도 김종서도 그 나름으로 충신으로 볼수 있는거 아니에요?

    • 의문 2011.09.23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양립이 가능할 것 같은데, 무작정 양립이 안되는 것처럼
      글을 쓰시니 다소 불편함이 있긴 하네요.

      게다가 기록에 대한 신뢰가 조금 지나치기도 합니다.

      이정도의 신뢰라면,

      [세조는 엄청나게 종친들을 챙겼다. 종친을 죽이고,
      귀양보내고 그런 건 전부 다 신하들 상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거다. 진정으로 불쌍한 것은 세조다.]

      라는 결론을 내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기록도 전후사정을 보아가며 해석을 해야할 텐데...
      흠...

  2. 하하 2011.09.24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월 21,22 국내최고 라이브가수 박완규 ..... 그리고 부활 패밀리 총출동!

    그동안 방송을 통해 볼수없었던 그와 그들의 최고의 무대, 2011년 10월 "사랑" 이라는 테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최고의 무대로 부활하는 이번 콘서트에서는 박완규 외에 부활 패밀리의 총출동으로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국내 그룹 부활의 보컬 정동하 그리고 역대보컬 이성욱, 정단 위대한 탄생의 최고의 히트메이커 등이 함께
    참여해 박완규와 함께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그동안 방송이나 공연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환상적인 무대 출연진들과 함께 꾸미는 최고의 하모니!

  3. 루비 2011.09.25 0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 또 흑백논리 써놓으셨네. 대체 김승유가 실존인물이고 계유정난전에 죽었다는건 어디서 또 들으셨데?; 님보면 참..머랄까 사극에 한맺힌 사람 같아요.ㅡㅡ 자료라고 내세우는것들도 유리한 부분 추리시고 님이 말하는 진실은 야사에서 이야기들 적절히 섞어 배합. 님아 접때도 리플 한번 달았었는데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에요. 재밌게 보면 그만이지 무슨 작가가 시간을 왜곡하니같은 말을 매번 하시나요? 공남 퓨전사극이에요. 퓨전 몰라요? 퓨전? 그냥 보고나서 역사공부했다 그런말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큰 줄기만 기억하지 뭐 드라마 달달외워서 다닙니까? 언제 몇월몇일 누가 죽었는지 날짜 기억하고 다니겠습니까? 님 생각에 아닌거 같으면 뭐 어차피 님 블로그니까 아닌거 같다고 쓰는건 좋은데 왜 늘 남을 비판하고 님말만 진리라고 우기십니까? 저번엔 어떤분을 역적집안 만드시더니.. 님 진지하게 이야기 하는데요, 진짜 성격 특이하십니다. 오프라인에서도 그러시는지? 주변인들 정말 피곤할거 같아요. 무서워서 무슨 말 하겠어요? 말꼬리 잡고 늘어질텐데.. 이 드라마 온통 불만이면서 드라마 꼬박꼬박 챙겨 보시는게 더 웃김. 님 공남작가한테 원수졌어요?ㅎ

    • 1234 2011.09.29 0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퓨젼을 진짜로 착각해서 정신병자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잉여 쓰레기가 있어서 쓰시는 것 같은데

  4. 2011.12.19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Favicon of http://huntingpastore.com BlogIcon 고명진 2012.01.02 2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일을 나의 친구를 계속, 이거 정말 끝내 준다

  6. Favicon of http://greenstarenergysaver.com BlogIcon 인형 2012.01.04 0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

  7. Favicon of http://meetthetanners.com BlogIcon 아가 2012.01.04 2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박 겉 핥기

  8. Favicon of http://no-credit-check-cell-phones.com BlogIcon 박기동 2012.01.07 0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9. Favicon of http://john.is-a-liberal.com BlogIcon 애비 게일 2012.04.06 0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속이고 있군요.

  10. 썰영 2012.04.23 0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으로 다행입니다. 역사를 오도하고 편협화한 극이 재미와 인기에 힘입어 역사를 그르칠까 열려했는데 올바른 사고와 역사적인 사서를 인용해 정확한 연도와 날짜를 표시해 사실에 입각한 해석과 분석적인 설명 을 하시고 역사적인 환경에서 일어난 사건을 객관적 입장에서 정리한것은 매우 중요하고 대단한 일입니다.
    글 전체에서 바른 역사인식을 알게됩니다. 모르고 따르는 일반 대중의 생각을 바르게 하는 모범답안 같습니다. 작가는 인기와 흥미에 영합 할수 있지만 역사를 오도하여 선인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잘못을 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흑백 논리나 개인적인 섣부른 판단으로 왜곡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역사를 오도하고 가치관을 혼란하게 하여 후손들의 판단을 흐리게하면 역사와 민족에게 죄인이 될테니까요.
    개인의 영달을 위해 뜻을 수시로 바꾸는 사람보다 오히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힘써 일한 충신 애국자 대인을 변절자 역적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는 연속극은 창작이라도 배격해야 할것입니다.
    역사의 인물을 인용할때는 사실에 입각해 좋은 점을 나타내던지 그의 숭고한 사상과 철학을 계승해야하는것이지 편협한 생각으로 위인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버린다면 후손들의 귀감이 무엇이며 무엇을 배운답니까? 글만 쓰고 재미만 있고 인기가 높다고 바른길이 아닌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는것은 좋은작가라고 할수 없지요. 바른 판단을 하도록 도와준 윗 글에 찬사와 존경을 보냄니다.

  11. Favicon of http://ginger.gotdns.org BlogIcon 마리아 2012.05.08 2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유대인 음식만 먹습니다.

  12.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륭한 읽기 위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싶은 찾기 위해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확실히 그것의 모든 조금을 즐기는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새로운 물건을 체크 아웃하는 당신이

  13. Favicon of http://www.hometravel-luggagebag.com/ABS-luggage.html BlogIcon ABS luggage 2012.08.21 1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llkjihygjhfg

  14. Favicon of http://www.blondinensex.ch/ BlogIcon Blondinensex Videos 2012.12.30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의 영달을 위해 뜻을 수시로 바꾸는 사람보다 오히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힘써 일한 충신 애국자 대인을 변절자 역적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는 연속극은 창작이라도 배격해야 할것입니다.

  15. Favicon of http://ford.grupocaiuas.com.br/fiesta-sedan BlogIcon fiesta sedan 2013.01.25 0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Google에서 블로그 사이트를 발견하고 조기 게시물 몇 가지를 확인하십시오. 아주 좋은 작동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합니다. 난 그냥 내 MSN 뉴스 리더에 RSS 피드를 추가. 나중에 당신에게서 더 읽어 앞으로 추구! ...


<공주의 남자>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세령과 정종이 있다.

실제 <공주의 남자>의 주인공은 경혜공주와 정종일 수 밖에 없다.

정종은 문종의 사위가 되어 호위호식하였고, 단종이 왕이 되자, 어린 단종을 대신해서 수 없이 많은 재산을 불렸다. 단종은 1453년 중반 부터 계유정란이 일어나는 1453년 10월 10일 까지도 정종과 경혜공주의 집에서 이어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양대군이 안평대군과 김종서, 황보인 등을 몰아내자. 정란공신이 되었지만, 점차 권력을 잃어가야 했다. 이에 정종은 금성대군과 혜빈과 함께 수양대군을 몰아낼 궁리를 하였지만, 오히려 수양대군에게 역습을 받게 된다.

이 사건으로 단종은 1455년 6월 11일(윤) 수양에게 양위를 하고 상왕이 된다. 이때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왕이였을때 권력이 있는 것이지, 왕에서 물러나 상왕이 된 다음은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진다. 요즘도 대통령이 끝발이 있지, 전직대통령은 감옥이나 안가면 다행인 시절이다.

하물여 무소불위의 권력의 정점과 명분이 있는 왕이 상왕이 된다면 말이 왕위에 왕이지 무슨 권력이 있겠는가? 자신의 안위가 언제 불안해질지 모르는 상황인데 말이다.

하지만,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들은 목숨을 걸고 막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들은 좌익공신의 작위까지 받는다. 물론, 후에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들이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서 그랫다는 변명을 사실처럼 전하지만 말이다. 배 떠난 후에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배는 오지 않는다.

어쨌든, 정종과 경혜공주는 끈떨어진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정종은 유배를 떠나고 유배를 떠난 후에도 반정을 꿈꾸었다. 다만 이때 사육신은 정종곁에 없었다. 오히려 사육신이 단종복위 실패를 하자, 정종과 금성대군 등은 서울 인근에서 더 멀리 찢어진다. 

사육신이 금성대군이나 정종과 함께 반정을 하지 않는 이유는 사육신과 금성대군과 정종과는 정치적 견해가 달랐을 가능성이 높다.

<공주의 남자>에서 사육신과 정종이 함께 모의를 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실제 정종은 한번의 반정실패로 자유로웠던 통진 자신의 목장 유배지에서 감시가 더심해지는 정도에 그치는 형벌을 받았다. 사육신 사건이 터질때 정종과 경혜공주는 통진 유배지에 있었다.

사육신 반정복위 사건이 있었던 때는 실패하자 정종은 광주로 이배되고 남은 재산도 없어진다. 이때가 1456년 6월 20일 이후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가 세령과 같이 광주에 도착하자, 경혜공주는 잘 왔다며 반기면서 세령에게 김승유가 자신을 받아 들였냐고 물어보고, 세령은 고개를 끄덕인다. 4명이 술자리를 하고 있는데 경혜공주는 부마 정종이 아버지가 될것이라고 말을 한다. 공주의 남자에서 1456년 6월 1일 단종복위 사육신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밤 처음으로 사랑을 확인했을때 잉태된 생명임을 공주의 남자는 보여주고 있다.


<공주의 남자>뿐만 아니라 많은 옛기록에 정종과 경혜공주의 아들 정미수는 정종이 죽은 후에 낳은 유복자로 알려져 있고, 정종이 죽고 나서 경혜공주가 순흥부사 여자신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16세기 중엽 이전부터 윤근수의 <월정만록>, 18중후반~19세기초반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도 경혜공주가 순흥관노로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정조는 이에 대해서 완벽한 사료비판을 하면서 경혜공주는 관노인적이 없다는 사실을 밝힌다. 이에 관해서는 두개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또하나, 경혜공주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데 경혜공주가 유배지에서 정미수를 낳았고, 정미수는 정종이 죽은 이후 태어난 유복자라는 유언비어가 사실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 정조는 또다시 사료를 통해서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고 자신의 문집인 <홍재전서>에 남겼다.

<해평가전(海平家傳)>에는 공주가 유배지에서 아들을 낳은 것을 정희왕후(貞熹王后)가 대내로 데려다 친히 길렀는데, 예닐곱 살이 되어 궁정에서 장난을 치며 노는 것을 보고 세조가 누구의 아이냐고 묻자 정희왕후가 곧장 전각에서 내려가 사실대로 대답하였다고 하였다.



지금 실록을 상고한 바, 종이 을해년(1455, 세조1)에 유배지로 갔다가 곧바로 풀려나서 병자년(1456년)에 비로소 광주에 안치되었고, 처첩과 자녀들이 같이 따라가 살기를 자원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공주가 유배지로 따라간 시기는 당연히 병자년(1456,세조2년)일 것이고 병자년에서 신사년(세조7년, 1461)까지는 겨우 5년 동안인데, 설령 병자년에 곧바로 아들을 두었다 하더라도 예닐곱 살이 되도록 자랐다면 공주가 소환된 것은 이미 오래되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때까지 대내에 머물러 있지도 못하거니와, 또 과연 유배지에서 낳은 아이를 데려올 리도 없으니, 이 말은 매우 믿을 수 없다.


예종이 일찍이 “종의 아들과 그의 아내를 들여 뵙도록 하니, 세조께서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나머지 눈물을 훔치며, 나로 하여금 전교를 써 내려서 연좌를 윤허하지 말도록 하셨다. 내가 지금 어찌 감히 법으로 다스릴 수 있겠는가.” 한 전교가 국사에 실려 있는데, 하신 말씀이 정녕하고, 영양위의 유사(遺事)에 미수(眉壽)가 공주를 따라 대내로 들어갔다고 한 기 실록과 합치되므로 지금 영양위의 유사를 따라 쓴다.



정조가 유학자에 뛰어난 역사학자라는 것이 다시금 증명이 되고, 똑똑한 정조가 신하들을 왜 비난을 하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첫 임신한 경혜공주가 출산한 영아는 딸일까? 아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들이다.


그리고 경혜공주는 광주로 내려가기 전에 이미 출산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이름은 정미수다. 1461년 정종이 죽고, 정미수가 서울로 경혜공주와 돌아올 때 7살이었다.


1474년 1월 1일 성종 5년 파란만장한 삶은 산 경혜공주 졸

호조(戶曹)에 전지(傳旨)하여 경혜 공주(敬惠公主)에게 부의(賻儀)로 쌀·콩 아울러 70석(碩), 정포(正布) 50필, 종이 1백권, 석회(石灰) 60석, 촉랍(燭蠟) 30근을 내려 주게 하였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처음에 정종(鄭悰)이 주살(誅殺)되니, 공주(公主)는 머리를 깎고 여승(女僧)이 되었는데, 매우 가난하였으므로, 세조(世祖)가 불쌍히 여겨 노비[藏獲]를 돌려주고, 내수사(內需司)로 하여금 집을 지어서 주게 하였다. 아들 정미수(鄭眉壽)는 나이 16세로 공주가 병이 위독해지면 약이(藥餌)를 반드시 먼저 맛보았고, 옷은 띠를 풀지 않았으며, 똥을 맛보기까지 하면서 병을 보살폈다.” 하였다. - 성종 5년 1474년 1월 1일


정미수는 경혜공주가 아프자 경혜공주의 똥까지 맛을 보며 치료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1474년 1월 1일 새해 경혜공주는 이승을 등졌다. 정미수는 어머니의 똥까지 맛 볼정도로 효자였던듯 하다.

위 사실로 정종과 경혜공주의 아들 정미수는 1455년생 임을 알 수 있다.

정종이 광주로 이배된 때는 1456년 6월 1일 사육신의 반란사건 발각된 후, 1456년 6월 27일 사육신과 관련이 없었던 정종과 경혜공주는 통진 자기농장에서  전라도 광주로 이배된다.


정종은 금성대군과 연루되어 1455년 6월 11일(윤) 영월로 유배계획이 되었다가 단종이 하야하면서 보류되고, 양근이배 계획도 경혜공주가 아프다는 이유로 보류된다. 결국에는 8월 12일 수원으로 갔다가, 곧바로 1455년 8월 19일 정종의 목장이 있는 통진으로 간다. 1456년 6월 26일 광주로 이배되는 것이다.


정종이 죽은 때는 1461년 세조 7년 10월 20일이고, 경혜공주가 광주에서 돌아온 때는 정종이 죽은 3일 후인 1461년 세조 7년 10월 23일 이였다. 정조가 순천노비설을 배척한 이유가 명확해지는 것이다. 어쨌든 정미수는 1455년 생이다.


통진에서 광주로 이배될 때 정미수는 이미 2살이었다.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과 경혜공주의 달달한 임신사실과 서로 기뻐하는 장면이 왠지 뜸끔없고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대목이다.


경혜공주가 처음 정종이 1455년 6월 11일 (윤) 유배계획이 있다가 경혜공주가 아프다는 핑계가 아닌 정종의 유배소식과 단종이 수양대군(세조)에게 양위하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이미 임신한 상태에 있던 경혜공주가 쓰러졌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요즘은 임신진단은 2주미만도 체크가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배가 부르고 입덧이라도 해야 알 수 가 있었다.


임신한 상태에서 작은 충격에도 유산될 확률이 높다. 1455년 6월 당시 경혜공주가 아프다고 한 건 꾀병이 아니었다. 그리고 정미수는 1455년 8월 20일 이후 통진 목장에서 낳았을 것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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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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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떠도링 2011.09.29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육신이 배신한건 어떻게아신거죠.....? 그럼 제가 읽은책들은 하나같이 사육신이 안죽었는데 다 죽어가며 살았다고하는건지.. 알려주세요

  2. 하하 2011.09.29 0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1년 10월 21,22 악스코리아
    최고의 무대! 최고의 가수들이 함께하는 ‘나는 가수다’ 출연확정

    국내최고 라이브가수 박완규 ..... 그리고 부활 패밀리 총출동! 그 동안 방송을 통해 볼수 없었던 그와 그들의 최고의 무대,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활보컬로 데뷔해 lonely night,천년의 사랑, 사랑해서 사랑해서 ,비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을 곡을 히트시켰고 현재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드라마 "공주의 남자" OST "하루애"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9월 발매된 앨범 "사랑하기 전에는" 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로 각종 순위 차트에서도 상위권에 랭크 되고 있다. 박완규는 수많은 라이브 무대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많은 팬들에게 찬사를 받으며 매공연 매진 사례를 기록해왔다. 또한‘남자의 자격’청춘 합창단을 통해 그동안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활발한 활동을 시작해 다시금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고 최고의 가수들이 서는 최고의 무대인 MBC "나는 가수다" 출연이 확정 되었다. 최고의 무대로 부활하는 이번 콘서트에서는 박완규 외에 부활 패밀리의 총출동으로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국내 no1 그룹 부활의 보컬 정동하 그리고 역대보컬 이성욱, 정단 위대한 탄생의 최고의 히트메이커 백청강, 이태권, 손진영 등이 함께 참여해 박완규와 함께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그 동안 방송이나 공연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환상적인 무대 출연진들과 함께 꾸미는 최고의 하모니!
    2011년 10월21,22일 악스코리아에서 팬들과 함께 하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매력적이고 폭팔적인 가창력의 가수, 최고의 퍼포먼스,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가수, 박완규! 팬들과의 셀레이는 만남은 기분좋은 상상을 하게 될 것이다.

  3. 이개또라이 2011.09.29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그시대사관이었냐? 당장옆에있는사람이무슨생각하는지나아냐? 니잘났다고실록들쳐가면서 그시대사람들니좃대로 평가하지말고 할짓없으면 걍딸이나잡아 존만한새끼야

  4. 만년지기우근 2011.09.30 0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랫만입니다.
    잘계시지요?

  5. Favicon of http://www.autoankauf-fahrzeug.de BlogIcon Laura 2011.09.30 06: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ehr schön :)

  6. 읭?ㅋ 2011.09.30 1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년도가 틀렸네요ㅋㅋㅋ 정미수가 1555년 생이랬다가 1455년 생이랬다가ㅋㅋㅋ 100년 차이
    경혜공주가 죽은 해도 1574년이었다 1474년이었다 왔다갔다 하네요 글이ㅋㅋㅋ
    올리기 전에 한 번 꼼꼼히 읽어보고 올리시지

  7. Favicon of http://www.sexfenster.com BlogIcon Sex & Pornos 2011.11.14 1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8 세 이상 사람들은 한 번 사이트를 방문할 수 있습니다 JU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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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당신이 뭘 말하고 싶은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야

  9.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6 1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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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llkjihygjhfg


<공주의 남자>에서 신숙주는 수양대군의 복심이 되어 계유정란으로부터 단종을 폐위하고 수양대군을 왕위에 옹립하는 것으로 나온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신숙주의 살았는 큰아들(큰아들은 일찍죽었음) 신면이 아버지 대를 이어서 악역으로 등장을 한다.


<공주의 남자>에서 신면은 친구를 배신하고, 친구 김승유의 연인 세령공주를 빼앗고, 문종, 단종을 배반하고, 수양의 개로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기회가 되면 신면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글을 쓸까한다. 알고보면 불쌍한 영혼이 신면일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숙주를 <숙주나물>의 대명사로 하여 하루가 지나면 쉬어 버리는 나물을 숙주나물로 이름한다. 한마디로 변심의 아이콘이 신숙주이다. 

신숙주가 숙주나물로 불리우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글쓴이는 왜 신숙주가 숙주나물로 불리는 이유를 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저변에 깔린 프로파간다를 알지 못하고 선현들이 신숙주를 숙주나물로 불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신숙주가 계유정란에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계유정란으로 정란공신이 되고, 후에 단종 복위 운동에 성삼문과 함께 하지 않았다고 비난을 한다. 물론, 성삼문은 친구인 신숙주에게 의사를 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456년 6월 성삼문은 신숙주는 친구이지만 죽여야 한다고 말을 한다.


그런데 야사로 신숙주를 비난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사실처럼 돌아다닌다. 신숙주는 배신자이지만, 신숙주의 아내 윤씨는 사육신과 함께 단종복위에 참가하지 않고 돌아와서 신숙주를 꾸짖고 자결을 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숙주는 배신의 아이콘 이였지만, 신숙주의 아내 윤씨는 만고의 충신인 것이다.


신숙주의 후손이  신숙주의 제사를 지내고나서 제사에 사용한 봉개떡(방개떡)을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나눠줬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방개떡”을 먹지 않아 이유를 물으니 “성삼문”의 후손이었다고 한다.  방개떡은 봉개떡에서 유래한다. 방개잎은 하루가 지나면 쉬어버리는 숙주나물과는 다르게 방개잎으로 음식을 보관하면 한여름에도 몇일동안 상하지 않고 보관이 된다. 그래서 제사에 올릴때 방개잎으로 제물을 감싼다. 천연방부제가 방개잎(봉개잎)이다. 숙주나물과 비견되는 상징물이다.


당연히 성삼문의 후손으로서는 신숙주의 제사상에 오른 떡을 먹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나 같아도 먹지 않을 것 같다.


어떤 이가 성삼문의 후손이라는 아이에게 조용히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공물은 신숙주를 위한 공물이 아닌 사육신과 함께해 절개를 지킨 신숙주의 아내 “윤씨”에게 바치는 공물이니 먹어도 된다고 하자. 성삼문의 후손을 자처하는 아이가 그제야 먹었다는 훌륭한 고사가 아닐 수 없다.


절개와 절의의 상징인 사육신을 추앙하고 더불어 배신자 신숙주를 또한방 먹일 감자이니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아내보다 못한 신숙주가 되시겠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성삼문의 후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15만이 넘는다고 한다. 절손된 가문으로서는 참으로 많은 후손을 남겼다. 성삼문의 직계 후손은 절손이 되어 1902년 고종 때 성삼문의 방계 후손으로 하여금 제사를 봉사하게 하였다.

자세한 사항은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물론, 성삼문에게 막내아들이 있었는데 유모가 막내아들을 빼돌려서 숨어서 살았다는 이야기가 나름대로 전한다. 대부분 이런 과정으로 살아남긴 한다. 김종서의 손자 3명도 계유정란 때 유모의 손에 살아 남았다고 전한다. 어쨌든, 언제부터 어떻게 성삼문의 직계후손이 15만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누가 성삼문을 명예훼손하는지 알수가 없다.


어쨌든, 연산군때 반정을 성공한 중종  때부터 끊임없이 사육신 후손을 찾았고, 영, 정조 때는 사육신관련자, 계유정란관련으로 절손된 김종서를 비롯한 황보인 등 수 많은 사람의 후손을 찾아 관직을 하사하기 까지 했다.


그런데도 성삼문의 후손은 나오지 않았다. 1902년 고종 때 오죽하면 제사를 지낼 후손이 없자, 성삼문의 방계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겠는가? 고종 당시 왜 사육신에 집착을 하였을까? 조선을 끊임없이 청나라, 러시아, 일본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에 나라를 들어서 넘기려는 수작을 벌리는 자들도 넘쳐났다. 결국에는 일본에 나라를 넘긴 친일민족반역자들과 그 후손이 잘먹고 잘살고 있고 조선에 충성하고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은 절손되거나 3대가 망해서 비루먹는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설화의 문제점이 없을까? 미안한 이야기지만 처음부터 이 설화는 성립할 수 없다.


신숙주의 부인 윤씨는 세조 2년 1456년 1월 26일 죽는다. 계유정란은 1453년 10월 10일에 있었고 신숙주가 정란공신이 된 것은 맞다. 이때 사육신의 대부분이 정란공신이 되어 공신전과 계유정란으로 남은 여자들을 노비로 하사 받는다. 성삼문도 예외는 아니다.
 

 


대제학 신숙주의 처 윤씨의 상에 사재감 정 조효문을 보내어 호상하게 하다.
 

“신 대제학(申大提學)은 다른 공신의 예(例)와 다르고, 또 만리(萬里) 외방에 있으며, 또 여러 아들이 다 어리니, 나의 애측(哀惻)함을 다 진술할 수가 없다. 정원(政院)에서 포치(布置)하여 관(官)에서 염장(殮葬)하게 하며, 또 관원을 보내어 치제(致祭)하는 등의 일을 상실(詳悉)히 아뢰도록 하라.” - 세조 2년 1456년 1월 26일


사육신이 단종복위를 시도한 때는 1456년 6월 1일이다. 이 날의 쿠데타는 실패로 끝난다. 이튿날 김질과 김질의 장인인 정찬손이 세조(수양대군)에게 어제 왕을 죽이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고변을 함으로서 들통나고 끌려간다. 집에 있던 유성원만이 자신들의 반정(복위)가 물거품이 되었다고 자살하고 만다.


1456년 1월에 죽은 신숙주의 아내가 무슨 귀신도 아닌데 1456년 6월 일을 기억해서 신숙주가 사육신과 같이 하여 죽지 않고 살아돌아왔다고 신숙주 너는 충신도 아니다면서 죽을 수가 있겠는가?


더군다나 신숙주는 처 윤씨가 병환으로 죽을 때, 1455년 10월 24일 단종의 사은사로 멀리 명나라에 가 있어서 윤씨가 죽은 줄도 몰랐다. 공주의 남자에서 신면이 나오고 있지만, 신숙주의 아들들이 다 어렸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짜피 신숙주는 나쁜놈인데 윤씨가 있던 없던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마는 이렇게 말을 하면 신숙주와 신숙주의 아내 “윤씨”는 부창부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사육신을 치켜세우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더라도 없는 이야기까지 끌어들여서 신숙주를 모독할 필요가 없다.


신숙주와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이 갈린 순간은 사육신이 단종복위를 시도한 1455년 말부터다. 계유정란으로 정란공신을 받은 사람도 사육신이었고, 세조가 양위 받아 공신을 제수할 때 사육신들의 다수도 신숙주와 같이 <좌익공신>이 되었다. 신숙주가 단종을 배신한 배신자라면 사육신도 배신자일 뿐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사육신 중 이개가  신숙주에게 말하는 장면은 100% 허구이다.

신숙주와 사육신을 가른 이유은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참조하기 바란다.

사육신이 충신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단종의 복위를 하다 죽었다는 절개와 절의뿐이다. 분명히 절의한 사육신은 추앙받아 마땅하다. 왜냐하면 절의와 절개란 어떤 시대이던 상관없이 추앙해주어 하기 때문이다. 연산군을 위해서 죽은 자도 절의가 있다고 추앙해 주는 게 조선이었다. 절의를 지키고 충성하는 신하를 내치면 어떻게 될까?


어떤 배덕자들이 왕을 몰아내는데 왕을 위해서 충성을 받칠자가 없다면 그 나라는 망한다. 또한, 지속적으로 반역과 반역의 연속이 될 것이다. 그래서 고려의 정몽주, 이색 등을 만고의 충신이라고 추앙하는 것이다. 사육신도 그 범주에서 충신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조선의 왕들은 끊임없이 반정에 속을 썩어야 했다.

태종(이방원)처럼 형제를 죽이고 왕이 되거나, 숙부가 왕을 몰아 낼때 지켜줄 신하가 필요했다. 왕의 입장에서 숙부나 자신의 형제가 자신을 왕에서 쫓아내거나 세자가 왕이 되었을 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쫓아낸다면 좋아할 왕은 하나도 없을 것이고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겠는가?. 유교의 입각해서도 조선은 배덕의 역사이다. 배덕하지 말고, 반역하더라도 충성을 하는 자를 숭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육신들이 계유정란에서 안평대군, 김종서, 황보인을 따르던 인물들을 주살하도록 상주한 것처럼 세조(수양대군)편에 있던 사람들이 당연히 사육신 관련자를 처벌하려 시도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반대로 사육신이 쿠데타에 성공하더라도 피의 보복은 불보듯 뻔한 상황이다. 더군다나 어린 상왕의 존재는 세조를 옹립한 세력들에는 가시와 같다. 상왕 단종이 연루 되지 않았더라도 연루자로 몰아 밖으로 내치거나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문제는 단종을 죽이는 결정적인 동인을 제공한 자도 사육신중 성삼문과 권자신이였다는 것이다. 성삼문은 자신들의 배후에 상왕 단종이 있다고 당당하게 밝히고 만다. 단종의 외삼촌인 권자신도 우리의 배후에는 상왕전하가 있고, 상왕이 징표로 큰칼까지 주었다고 까발린다. 마지막 순간에 단종을 배신하고 만다.

성삼문과 권자신이 상왕이 모반을 알고 있었다고 하다
 

“상왕(上王)께서도 역시 너희들의 역모에 참여하여 알고 있는가?”

하니, 성삼문이 대답하기를,

“알고 있다. 권자신(權自愼)이 그 어미에게 고(告)하여 상왕께 알렸고, 뒤에 권자신·윤영손(尹令孫) 등이 여러 번 약속을 올리고 기일을 고하였으며, 그날 아침에도 권자신이 먼저 창덕궁(昌德宮)에 나아가니, 상왕께서 긴 칼을 내려 주셨다.”

하였다. 구치관이 또 권자신에게 물으니, 권자신의 대답도 성삼문과 같았다.

- 세조 2년, 1446년 6월 7일


그 후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영월로 유배를 떠난다. 이 와중에 단종의 어머니인 문종비 권씨는 비에서 강등되고, 묘의 기물도 파괴된다. 묘를 수리하지 않아 묘가 떠내려가는 참화까지 당한다. 이에 대한 허황된 이야기가 널리 사실인것처럼 퍼지고 또다시 신숙주와 세조는 죽일놈이 되지만 말이다.


분명히 사육신은 추앙해주어야 하지만, 없는 이야기까지 만들어서 추앙할 필요는 없고,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서 신숙주를 죽일놈으로 만들 필요도 없다. 신숙주가 죽어야 추앙할 사육신이라면 존경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신숙주는 성종 6년, 1475년 6월 21일에 죽는다. 6월 21일(음)이면 양력으로 7월 중.하순에서 8월 초순이다. 한여름 묘지에서 제사를 지낸다면 쉽게 음식이 상할 수 밖에 없다. 어린이가 신숙주의 제사떡을 먹지 않는 이유는 여름에 상했을까봐서이지, 신숙주의 변절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이 떡은 쉽게 쉬지 않는 방개잎으로 쌓은 것이니 쉬지 않는단다.가 정확한 이야기가 아닐까한다. 

어쨌든, 사육신의 다수가 <정란공신>직을 거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거부한 이유가 수양대군(세조)에 반기를 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환상적인 반전이 있다. 공주의 남자에서 얼마나 황당한 설정을 했는지 쉬이 알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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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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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에서 성삼문, 이개, 박팽년 등 사육신이 세조(수양대군) 암살에 실패하고 잡혀서 고신을 당한다.


그리고 참형을 당할 위기에 김승유는 빙옥관의 의형.의제와 같이 한성부 옥을 파옥하고 이개 등 사육신과 친구 정종을 구원하려고 들어간다.


신면은 김승유가 세령공주와 같이 한성부에 숨어 들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김승유가 하는 일에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도와준다.


김승유가 다음 기회를 노리자며 파옥을 하려하자. 이개와 박팽년, 성삼문 등은 당연히 자신들이 죽을 줄 알았으니 개념치 말라고 하면서 후일을 김승유에 맡기고 담담히 죽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죽어서 김종서를 뵙게 되었으니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정종의 아내 경혜공주는 세조를 찾아가 “전하“라는 말을 하면서 수양대군 니가 짱먹었으니 그만 정종을 풀어달라며 ”전하 전하~“를 수천 수만 번도 할 수 있다고 말을 한다.


세조(수양대군)은 정종을 전라도 광주에 유배시키는 것으로 정종을 살려준다.


그런데 정종은 1456년 6월1일 창덕궁 현장에 없었다. 왜냐하면 정종은 1455년 6월 11일(윤) 금성대군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어서 경기도 수원으로, 8월 정종 자신의 통진 농장에 유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세조(수양대군) 암살 음모를 꾸미는 장소로 영양위 정종의 집으로 그렸지만, 실제는 주로 성삼문의 집에서 모든 모의가 있었다.


또한, 사전에 단종에게 세조(수양대군)을 척살할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을 수시로 알리고, 거사일이 1456년 6월 1일 창덕궁 연회에서 할 것이라고 말하자, 단종은 칼을 직접 내준다.


하지만, 6월 1일에는 창덕궁 실내 행사장이 넓지 않아서 별운검을 세울 수가 없었다. 신숙주는 별운검을 세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알렸고, 성삼문은 예에 따라 별운검을 세워야 한다고 했지만, 세조(수양대군)은 신숙주의 말을 듣고 별운검을 세우지 않게 하였다.


모든 드라마에서 악신의 대명사로 나오는 한명회가 별운검을 세울 수 없다며 사육신을 잡아들인다는 설정은 허구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김질은 현장에서 잡히지 않고, 6월 2일 날 김질의 장인 정찬손과 함께 세조(수양대군)을 찾아가 어제 반란 계획이 있었느나 실패했다며 알린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를 보고 있으면 사건들을 당일로 압축하려는 경향이 농후하다.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란이 끝나고 김승유가 강화도에 갔다오니 어느덧 세월은 지나 1455년 6월 11일이 되고 정종과 금성대군이 유배를 떠나는 것으로 그려지고, 몇 일 지나지 않았는데 1456년 6월 1일 사육신들의 단종복위 사건이 일어난다.

공주의 남자에서 하루는 1년과도 같다. 최소한 세월이 지났다는 장면이라고 살포시 남겨주면 좋지 않을까? 장면하나 삽입한다고 돈드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고 재미가 있지도 않다. 극을 보다가 이게 “머뮝”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간관계의 리얼리티는 고사하고 최소한 극중 개연성이나 리얼리티라도 살려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사육신은 죽고 정종은 살아남아 전라도 유배를 떠나니 앞으로 정종은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보기 힘들것 같다. 정종역을 맡은 이민우는 디스크 증상이 있어서 촬영에 임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만약, 이민우가 디스크 이상증세가 없었다면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두고두고 나왔을 것인데 안타깝다고 할 수 있다.
 

승정원(承政院)에서 전지를 받들어 광주 목사(廣州牧使)에게 치서(馳書)하기를,

“건장하고 부지런하며 조심성 있는 사람을 골라서 이유(李瑜) 의 배소(配所) 네 모퉁이를 나누어 지키게 하고, 당자와 잡인(雜人)의 출입을 엄하게 금방(禁防)하되, 힘써 안정(安靜)을 기하여 놀라지 말게 하라.”

하고, 동시에 이영(李瓔) ·이어(李) ·이전(李瑔)·정종(鄭悰) 의 정배된 여러 고을에도 같은 글을 보내어 유시하였다. 1456년 6월 3일


물론, 공주의 남자에서 유배간 정종을 사육신의 사건현장에 등장시키는 만행까지 저질렀는데 극의 재미를 위해서라면 이민우의 디스크가 나가던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다시금 불러들여 단종이 영월로 유배를 떠나는 현장에 동원한다고 말이다. 유배 떠난 정종(이민우)를 따라 경혜공주가 쉼 없이 광주로 촬영을 떠나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누가 역사적인 사건 현장에서 뜬금없이 등장하는 정종이 재미가 있다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작가의 역사 망치는 재미라면 모를까 말이다.
 


그렇다면 극에서는 모두 사육신들이 거열형을 당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는 옥에서 죽은 자와 고신을 이기지 못하고 죽은 자, 집에 있다가 자살한 유성원 등 다양한 죽음을 맞이한다.
 

 전 집현전 부수찬(集賢殿副修撰) 허조(許慥)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허조는 이개(李塏)의 매부로 역시 모반에 참여하였기 때문이었다. 6월 6일


박팽년(朴彭年)이 이미 공초(供招)에 자복하여 옥중에서 죽으니, 의금부(義禁府)에서 아뢰기를,

“박팽년·유성원(柳誠源)·허조(許慥) 등이 지난해 겨울부터 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하위지(河緯地)·성승(成勝)·유응부(兪應孚)·권자신(權自愼)과 함께 당파를 맺어 반역을 도모하였으니, 그 죄가 능지 처사(凌遲處死)에 해당합니다.

청컨대 허조·박팽년·유성원의 시체를 거열(車裂) 하고, 목을 베어 효수(梟首)하고, 시체를 팔도에 전(傳)하여 보일 것이며, 그 재산을 몰수하고, 연좌된 자들도 아울러 율문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6월 7일

세조실록 1456년


그리고 계유정난 때처럼 역모에 연루된 120여명이 죽고, 살아남은 16세 미만의 남자들과 나이에 상관없이 살아남은 여자들은 노비가 된다.
 


계유정란에서 김종서의 남자 후손들은 유모의 손에 이끌려 송시열의 선조의 도움으로 살아 남은 김종서의 첫째 아들인 김승규의 3살 먹은 셋째 말동(행남)과 16살이 되지 않아서 노비로 간 둘째아들 김승벽의 첫째 아들인 중남과 유모의 손에 살아남은 팽(삼동), 그리고 공주의 남자 주인공으로 나오는 김승유의 아들 효달 뿐이었다.

공주의 남자 주인공 김승유는 실존인물로 계유정난 이전 죽었다. 그래서 역사에서 자리를 감춘다. 더군다. 김종서를 비롯한 모든 아들들이 복권되었지만, 김승유는 이미 죽어 변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록에 남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사육신의 쿠데타 실패에서 살아남은 후손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육신으로 명명된  사람중 참화에 살아남은 후손은 박팽년 뿐이었다.

1800년 정조 때 박팽년의 후손은 절손되지 않고 살아남아서 번창하였고, 하위지는 조카 원에 후사를 당부하여 자를 들여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오신의 집안인 이보흠, 성삼문, 유승원, 이개, 유승부는 절손되었다. 추후 성삼문도 살아남은 방계로 하여금 성삼문의 양자 사손이 되어 대를 잇게 하였다.

 

저 육신의 정성을 다한 충성과 큰 절의는 실로 하등의 차이가 없는데 박팽년의 한 가닥 핏줄은 다행히 끊기지 않았고 근래에 또 번창하고 있으니, 하늘이 복을 남긴 이치를 족히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저 오신(五臣) 집안의 혈통이 끊겨 후사가 없는 것은 실로 천지간에 유감이자 백대의 가슴아픈 일입니다.


과거 숙묘(肅廟) 을유년 에 예조 판서 민진후(閔鎭厚)가 경연에서 건의하기를 ‘하위지는 체포되어 가는 날 죽은 뒤의 일을 그의 조카 원(源)에게 부탁하였으니, 을사 명신(乙巳名臣) 김저(金䃴)에 대해 양자를 들여세운 사례에 따라 원의 후손으로 하여금 그 제사를 받들게 하소서.’ 하니, 숙묘께서 하교하기를 ‘육신은 다른 사람과 다르니 어찌 끊긴 후사를 이어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뢴 대로 특별히 시행하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위지는 비로소 그의 제사를 받드는 후손이 생겼으나 성·유·이·유의 집들만은 그와 똑같이 끊긴 자손을 이어주는 은전을 입지 못했는데, 사실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조 24년, 1800년 4월 12일


경기 유생 이유제(李維濟) 등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단종조(端宗朝)의 육신(六臣)인 고(故) 충정공(忠正公) 박팽년(朴彭年)·충문공(忠文公) 성삼문(成三問)·충간공(忠簡公) 이개(李塏)·충경공(忠景公) 유성원(柳誠源)·충렬공(忠烈公) 하위지(河緯地)·충목공(忠穆公) 유응부(兪應孚)의 우뚝한 충성과 높은 절개는 국사[國乘]에 소상히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저 이개·유성원·유응부 세 사람만은 유독 뒤를 이어 제사를 주관할 사람이 없으니, 하 충렬공(河忠烈公)·성 문충공(成文忠公) 두 신하에게 입후(立後)하게 한 사례에 의거하여, 그들의 제사를 받들도록 하는 것이 적당하겠습니다.”

- 순조 11년 1811년 4월 22일



이개의 경우 1900년대 까지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한산 이씨인 이개의 방계 친족인 이용직이 고종 39년, 1902년 2월 4일, 한산이씨 종종에 알리고, 이두복의 둘째 아들 이중원으로 하여금 이개의 사손이 되어 이개의 계통을 잇게 한다.  성삼문, 유성원, 하위지,유응부 가문도 방계 친족으로 하여근 사손하도록 한다.


신은 외람되고 망령됨을 헤아리지 않고 종중(宗中)에 알린 다음 일가(一家) 사람인 이두복(李斗馥)의 둘째 아들 이중원(李重遠)을 충간공 이개의 사손으로 세우려고 합니다마는 신중한 문제이므로 신의 집안의 사사로운 일이라고 해서 제멋대로 할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특별히 윤허하여 빨리 예원(禮院)에서 품처(稟處)하게 함으로써 대를 이을 사람을 세워 제사를 받들게 하는 동시에 또 정려문을 세우도록 명함으로써 풍속과 교화를 바로 세우소서.

이 밖의 네 신하인 충문공(忠文公) 성삼문(成三問), 충경공(忠景公) 유성원(柳誠源), 충렬공(忠烈公) 하위지(河緯地), 충목공(忠穆公) 유응부(兪應孚)에 대해서도 각기 그들의 집안에서 사손을 세우게 하며 모두 정려문을 세워주는 은전을 베풀어 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나라에서 충성과 절개를 장려하는 뜻에 부합되는 것이니 장례원(掌禮院)으로 하여금 모두 상소의 내용대로 시행하도록 하겠다.” - 고종실록 1902년



지금 현재 이개의 후손을 자처하는 한산이씨는 1902년 이두복의 후손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글쓴이도 아버지의 3형제 중 제일 큰아버지가 남자 후손을 남기지 않고 돌아가셔서 막내였던 아버지가 맏아들인 글쓴이를 큰아버지의 족보에 올리려한 적이 있었다.


후사를 잇지 못할 때 많은 사람들이 양자가 되어 대를 이어가고 족보에 오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었다. 정조도 사도세자의 아들이었지만, 영조의 일찍 죽은 맏아들 효장세자에 입적이 되어 원손, 세손이 되었다가,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자신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한 적이 있다.


삼국사기에서 신라의 계보나 백제의 계보가 생몰년과 후손관계에서 이상한 면이 보이는데 양자와 사손의 개념을 도입하면 충분히 해석가능한 부분이 많다.


공주의 남자를 보고 김종서의 후손들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너 김종서의 후손이라고 하는게 공주의 남자에서 김종서의 후손은 다 절손되었다는데 족보를 산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이다. 김종서의 후손은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인가? 간신히 난을 피해 살아 남았는데 겨우 듣는 다는 말이 역사와 100% 무관한 드라마를 보고 김종서 집안은 절손되었다는데 너 조상이 족보를 샀구나 하는 시덥잖은 소리를 들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김종서 집안과 적대적이었고 배신을 때린 사육신과 엮이니 얼마나 얼척없겠나?

 

 이현로(李賢老)·이승윤(李承胤)·이개(李塏)·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 등이 교결(交結)하여 마음으로 굳게 맹세하고 ‘문하(門下)’라고 칭하고, 모두 도서(圖書)의 헌호(軒號를 지어서 서로 한때의 문사임을 자랑하였으나, 모두 농락(籠絡)당한 것이었다

..중략..


한때 (안평대군) 용(瑢)에게 아첨하는 자들이 용(瑢)에게 글을 보내는 데 한결같이 계서(啓書)와 같이 하여, ‘용비(龍飛)’·‘봉상(鳳翔)’·‘번린(攀鱗)’·‘부익(附翼)’·‘계운(啓運)’·‘개치(開治)’ 등과 같은 용어를 쓰고도 의혹하지 않았으며, 혹은 신이라 칭하는 자도 있었다. 정난(靖難) 한 뒤에 많이 얼굴을 바꾸고 꼬리를 흔들었으나, 세조는 모두 묻지 않았다

- 단종 1년, 1453년 5월 19일


집의(執義) 이개(李塏)가 본부(本府)의 의논을 가지고 아뢰기를,

“신 등이 지금 정부에서 아뢴 죄목(罪目)을 보니, 이용(李瑢)이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정분(鄭笨)에게 지시하여 심복을 병조(兵曹) 군기감(軍器監)에 포열(布列)하게 하였다 하였으니, 정분의 죄가 황보인·김종서에 못하지 않습니다. 허후(許詡)는 집정 대신(執政大臣)으로서 자주 용(瑢)의 집에 갔으니, 당여(黨與)인 것이 분명합니다. 조수량(趙遂良)·안완경(安完慶) 등은 용(瑢)과 더불어 비밀한 말로 약속하였고, 또 조수량은 용(瑢)의 금대(金帶)를 받았으니, 이것도 또한 용(瑢)의 당입니다. 조순생(趙順生)·이석정(李石貞)·지정(池淨) 등은 모두 무관(武官)으로서 용(瑢)의 집에 왕래하여 당원(黨援)을 하였으니, 청컨대 모두 율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그 나머지 지당(支黨) 이보인(李保仁) 등은 밤낮으로 용의 집에 모였으니 어찌 역모를 알지 못하였겠습니까? 또한 법에 의하여 논단하소서.”

- 단종 1년, 1453년 10월 28일


 

더군다나 이개를 비롯한 많은 사육신들이 안평대군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가 안평대군과 황보인, 김종서가 수양대군 일파에 척살되자. 배신을 때리고 김종서, 황보인, 안평대군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들을 단종을 압박해서 죽이라고 한사람들이 사육신들의 다수였고, 정난공신이 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배우지 않고, 그저 사육신은 충신인데 왜 비난하냐는 사람들이 있다. 미안하지만, 김종서, 안평대군, 황보인 등도 충신가문으로 복원된다. 충신들의 가문과 후손을 죽이라고 사주한 사육신이 되는 것이다.


사육신에게 정난공신은 빼고, 단종폐위하고 세조 옹립한 공으로 받은 좌익공신은 빼고, 단종복위에 참가했다 멸족되고 추후 복원되었으니 충신가문이라고 해주어야하는 것인가?


최소한 사육신이 왜 계유정란 후에 김종서 일파를 죽이지 못해서 안달하고, 단종을 몰아내는데 혁혁한 공로가 있어서 세조옹립한 공으로 좌익공신이 되고, 후에 세조를 몰아내고 단종 복위를 꿈꾸었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저 단편적인 면을 보고 비난하는 초딩스런 댓글은 사양한다. 정치가 왜 생물이라고 불리우는 지 생각좀 하였음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이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글을 포스팅했다.

왜 유교의 나라인 조선에서 불교를 억압하고, 유학을 숭상하였는지는 사육신, 생육신, 김종서 등을 봐도 쉽게 알수 있다. 유교는 맹자를 받아들여 왕을 없애고 새로운 왕을 세워도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조선에서 반정이 많고 이를 합리화하고 반정에 맞서 죽은자들을 숭상하기도 한다. 

사육신 들은 유교를 유일한 종교처럼 이를 교조적으로 받아들였음을 알수 있다. 여타종교인 불교에 대해서 극히 격멸하였다. 이들은 세종까지 말년에 궁궐 내불당 불사를 한것에 망년되었다고 이야기한 사람들이다. 조선 초기 임금들은 불교도 유교처럼 백성을 다스리는 기본으로 삼고자 하였지만, 유학자들중 사육신 계열은 참지를 못했다. 이에 대해서 간략하게 다룬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참조하기 바란다.


역사는 역사,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하는 대부분이 너희 집 족보 샀지하는 얼척 없는 소리나 한다. 그리고 역사는 모르고 드라마를 보고 역사이야기를 하면서 역사는 역사, 드라마는 드라마라는 소리를 달고산다. 역사를 드라마를 보고 배웠어요라는 말처럼 어처구니 없는 말은 없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나는 역사를 몰라요라는 댓글을 달기도 한다. 더군나나 김종서가 어떻네, 세조가 어떻네 신숙주가 어떻네, 신면이 어떻네, 사육신이 어떻네 하는 사람투성이다. 키스를 책으로 배웠다는 개그가 떠올리게 된다.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세령공주 진짜 로미오 둘째 김승벽의 김석동일까? 첩 손자일까? 계유정란 김승유 3살? 대략난감,

2011/09/23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불쌍한 신면과 배신자 사육신 어떻게 충신 아이콘 되었나?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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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소쿠한 2011.09.22 1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논리는 좋네요.
    다만 어휘는 좀 신경써야할 듯.
    방개 > 방계
    종종 > 종중 .... 좋은 몸을 못따라가는 옷을 입은 듯... 아쉽네요.

  3. BlogIcon ㄷㅇㄷ 2011.09.22 1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의 기록이 사실이 아닐수도 있잖아요...세조가 자기입장에서 기록해놓은건데 성삼문이 정말 그렇게 이리 붙었다 저리붙었다 했나요? 그럼 신죽주보다 더 나쁘네요?

  4. Favicon of http://ㄹㄷhttp:// BlogIcon ㄷㅇㄷ 2011.09.22 17: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삼문이나 사육신이 한 일들은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위해서 그런거고. 세조가 한일들은 결국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한일이고...

  5. 기백 2011.09.23 0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렸을 때는 역사를 단순히 배웠으나 나이가 드니 역사는 이해를 하는 것이 된다. 세조, 단종, 한명회, 깁종서, 사육신, 생육신 등 의미있는 사람들로 보이지만 결국 서로 싸우고 죽이는 정치 집단의 횡보였을 뿐이다.

  6. 의문 2011.09.23 0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GUES메뉴에 들어가 글을 남겼는데, "비밀댓글"만 달려 있을 뿐 님의 답은 보이지 않네요.

    일단, 사육신에 대한 님의 평가는 재미있었습니다.
    근데 제가 알기로 사육신은 단순히 "몇 번의 모의와 한 번의 시도"로 그리 된게 아니란 겁니다.

    김질만 해도 장기간 사육신들의 모의에 가담하고,
    계속된 실패에 두려움을 느껴 배신을 한 겁니다.

    즉, 1456년 6월 1일 딸랑 한번의 거사에 실패하지마자,
    곧바로 다음 날인 6월 2일에 배신때리고 밀고하는게 아니란 거죠.

    물론 김질의 입장에서는 실록에 기록된 것처럼 빡빡 우기는 최상입니다.
    마치 자신은 적극적으로 가담한 적이 없었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근데 실록의 기록은 그대로 믿을 수 없습니다.
    그 기록대로라면 성삼문은 거의 바보천치니까 말입니다.
    그런 수준의 바보천치가 역모의 모의한다? 웃기는 일입니다.

    별다른 감정교류도 없는데 김질에게 혜성이 어떠니 저떠니...
    말도 안되는 기록입니다.

    따라서 사육신들은 1455년 아직 단종이 재위하던 시절에 수양대군을
    제거하려 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이미 재위해 버린 뒤에는 역모가 되지만,
    재위하기 전에는 역모가 아니니까요.

    그리고 1456년에 김질이 배신을 때린 이유도 중국에서 세조를
    정식왕으로 인정할 것 같으니까 배신을 때렸다고 봄이 타당합니다.
    (즉 대세가 기울자 바로 변신 한거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11.09.23 09: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육신의 모의는 1455년 말부터 시작한다고 하지요..

      설마 그낭 6월 1일에 모의를 하자고 했을까요? 모든 준비를 한후 결정적인 때를 기다렸다가 명사신이 오는 창덕궁 연회와 별운검이 된때로 잡았겠지요.. 문제는 별운검을 세울수 없었고, 하늘이 자신들을 버린다고 생각을 하고 김질이 배신을 때린것이고. .별운검을 없앤 신숙주가 반란의 낌새를 챈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김질의 배신으로 이끌지 않았을까요. .

      실질적으로 사육신이 세조를 배신한 이유는 저는 궁궐의 내불당 사건으로 생각합니다.. 세종말년에 세종이 내불당을 만들자 끊임없이 세종을 압박하고 불교탄압을 하지요. 사육신을 비롯한 집현전 학사들이.. 문종 때, 단종때 까지요. 문종때 박팽년은 세종을 망령되게 비난하다 옥에 갇히는 고초도 겪고, 성균관, 사간원, 집현전으로 부터 언론을 탄압하지 말라는 상소를 접하지요..

      계유정란이 끝나는 시점에서 불당을 없애자고 집현전의 학사들은 주장한단 말이지요.. 그런데 집현전 학사출신인 수양대군도 불사를 하는데 적극적이였던 거지요. 그래서 호랑이보다는 어린 토끼가 낫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단종은 말년에 불당을 없애려는 시도에 항복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이에 대해서 다음기회에 자세히 다뤄볼까합니다.

      성삼문은 바보 맞는것 같은데요.. 낼름 옥새를 넘겨주니 말이지요.. 당시에는 도사들을 잘 믿거군요.. 도사를 빌어서 내불당을 없애려는 시도도 하니..

      사육신들의 다수는 안평대군의 편에 있었으니 계유정난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사육신은 안평대군을 앞세워 수양대군(세조)를 척살하고 권력을 잡았을지도 모르지요..

    • 의문 2011.09.23 1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즉, 세조가 이미 왕이 되었고, 세조를 왕으로 인정하는 사신이 오는 때를 [반란시기]로 잡은 게 이상하다는 겁니다.

      생각하기에 1456.6.1에는 아무런 시도도 없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차라리 단종이 재위하고 있던 시절에 수양제거를 시도했음이 맞을 거고, 그렇다면 님이 주장하는 사육신과 수양의 짝짝꿍 뒤 배신은 그리 적절한 설명은 아니지 않나 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11.09.23 1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수양이 왕이 되기 전에 수양을 없애려 했다는 증거는 없지요.. 물론, 안평대군과 짝짝궁 해서 수양을 없애려한 흔적은 있지요.. 계유정란시기 안평과 김종서를 배신하고 이들과 관련된 자들은 주살하라고 하지만 말이지요.

      단종이 양위할때 성삼문은 옥새까지 바치구요.. 이는 님이 말한 단종시기 사육신이 수양을 죽이려 하지 않았다는 절대적인 증거가 되지요. 세조를 옹립하고 단종을 복위하려는 시도를 한 증거는 세조 초창기로 돌아가서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실록에서도 1455년 6월 11일(윤) 세조옹립하고, 1455년 년말에 당을 만들어 세조에 반기를 들었다고 했으니요.. 한마디로 사육신은 배신의 역사였다가 제 결론입니다.

      안평대군 배신->정란공신-> 단종배신 -> 좌익공신->수양(세조)배신->사육신

      신숙주보다 배신을 밥먹듯이 하지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11.09.23 1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데 사육신의 배신에서 일관성이 있는 구석이 있다는 거지요.. 저는 그것을 사육신의 유교를 학문이 아닌 유일종교로 믿었고 이를 실천하다 갔다는 걸로 해석하고 싶은데.. 계유정란에서 안평대군과 김종서를 배신한 부분은 해석이 안되더군요.. 물론, 김종서와 안평대군이 유.불을 조화한 점이 있고, 수양도 유.불을 조화시킨점이 있지만.. 이부분까지 계산을 하면 결론적으로 사육신은 요즘으로 치면 개독교적 유교관을 가졌다 입니다.

    • 의문 2011.09.23 16:32  댓글주소  수정/삭제

      1455년말에 사육신들이 수양을 제거하려 햇다는 것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님의 주장대로라면,
      사육신들은 수양이 왕으로 즉위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자 말자 곧바로 배신했다는 게 되니까요.

      물론 님은 기록이 그렇다고 할 것이고,
      불교(내불당)를 이유로 대시겠지만,

      기록에는 수양과 사육신들이 내불당 때문에 마찰을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게다가 수양이 불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사육신들 다 죽이고 나서 입니다.

      따라서 유교때문에 사육신들이 배신을 밥먹듯 했다는 것보다는,

      차라리...
      계유정란에서 사육신이 공신이 된 것은 수양을 견제하려고 단종이 그리 했다고 보는 게 맞고,

      수양제거시도는 수양이 즉위하기 직전에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수양이 왕에 오르기 직전에도 사신들 왔었습니다.)

  7. 하하 2011.09.24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월 21,22 국내최고 라이브가수 박완규 ..... 그리고 부활 패밀리 총출동!

    그동안 방송을 통해 볼수없었던 그와 그들의 최고의 무대, 2011년 10월 "사랑" 이라는 테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최고의 무대로 부활하는 이번 콘서트에서는 박완규 외에 부활 패밀리의 총출동으로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국내 그룹 부활의 보컬 정동하 그리고 역대보컬 이성욱, 정단 위대한 탄생의 최고의 히트메이커 등이 함께
    참여해 박완규와 함께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그동안 방송이나 공연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환상적인 무대 출연진들과 함께 꾸미는 최고의 하모니!

  8. Favicon of http://www.autoankauf-fahrzeug.de BlogIcon klaus 2011.09.30 0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ehr schön :)

  9. Favicon of http://etboosters.com BlogIcon 2012.01.01 15: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전체에 서있다면 당신은 파고있어, 당신은 파고를 중지해야합니다

  10. Favicon of http://blackcollegewire.com BlogIcon 유병수 2012.01.04 0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도 못 한다

  11. Favicon of http://thehamletnews.com BlogIcon 박기동 2012.01.04 2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2. Favicon of http://crantfordsflowers.com BlogIcon 원숭이 2012.01.07 0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는말이 고와야 오는말이 곱다

  13. Favicon of http://elephants.dontexist.net BlogIcon Alyssa 2012.04.06 0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에 영어를 하시는 분 계십니까?

  14. Favicon of http://camdentown.from-me.org BlogIcon 애디슨 2012.05.11 0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15.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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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으로 자리, 내가 정말이 웹사이트는 더 많은 배려를 필요로 생각합니다. 난 아마 그 정보를 훨씬 더 감사를 읽어 다시됩니다.

  19. Favicon of http://hondacarros.grupocaiuas.com.br/civic BlogIcon civic 2013.03.21 0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기사으로 자리, 내가 정말이 웹사이트는 더 많은 배려를 필요로 생각합니다. 난 아마 그 정보를 훨씬 더 감사를 읽어 다시됩니다.


<공주의 남자>에서 사육신 중 한명인 이개와 사육신 등이  절대로 김승유와 한편이 될 수 없다는 글을 송고했더니 이개의 후손이나 사육신 중의 후손 이라는 사람들이 가끔 댓글을 단다.


조상을 욕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조상을 욕보이는 측은 다름이 아닌 공주의 남자 작가인데도 말이다. 


목은 이색의 후손으로 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하였지만, 조선에 부용하지 않고 고려에 대한 충성과 절개를 지켰다는 것이다.


조선의 왕이 삼고초려를 해서 한산 이씨들이 조선 조정에 나갔는데 정난공신이 되고자 경솔한 판단을 했겠냐는 것이 골자이다.


논리적인 모순은 과연 이색의 후손이 이색의 고려에 충정을 이어 받았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조선의 왕들이 삼고초려를 해서 정치에 참가였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충절가문이거나 이색의 자손이라면 조선에서 정치를 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스스로 가문에 금칠을 하고 조선의 신하가 되었다고 하면 조상 이색을 배신한 건 한산 이씨들이다. 한산이씨들은 목은 이색을 어떻게 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색은 고려충신인데 후손들은 조선에 충성한 변절자들이란 말인가?


나는 이개선생 자손됩니다. 선생께서 쓰신 글을 보면서 어이없다 부족해 개탄을 느낍니다. 예로부터 우리 한산이씨 집안은 충신집안입이다. 목은(이색)선조께서도 쿠데타를 통해 국가를 세운 이성계를 인정하지 않으셨고, 그런 영양하에 우리 가문은 조선왕조초기엔 정치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국왕의 심고초려 끝에 정치에 나선 분들인데 그런 경솔한 판단을 하셨겠습니까? 그것도 정난공신 이 되고자? 정정하십시오. 만약 그런 불명예 스런 일이 있었다면 우리집안이 지금까지 '명문대가'로 남지 못했을 것 입니다. 바른 이해로 역사를 왜곡하시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한산이씨가문이 어떤 집안인지에 대해 알아보신 후에 쓰신 글을 다시 돌아보십시오


http://dreamlive.tistory.com/708


더불어 정난공신이 되고자 이색의 후손들이 정치를 했냐는 거냐고 반문을 하면서 어이가 없고 개탄스럽다고 말을 한다. 도대체 정난의 주동자인 안평대군과 김종서와 황보인이 충신이라는 말인가?

이들이 정난으로 숨진 김종서와 황보인과 안평대군이 단종을 보위하는데 적극적이였고 충신이였다는 증거를 제시해만 한다. 하지만, 단지 김종서는 충신이다 세조가 죽였다는 드라마에서나 봄직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들의 조상을 욕보이고 있다. 이는 드라마가 만든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드라마의 폐해가 자신의 조상을 역신으로 만들고 있다.


오히려 한산 이씨들의 후손을 자처하는 자의 입장에서 계유정란으로 죽은 황보인과 김종서와 안평대군이 어디로 봐서 충신이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일관성이 있다. 설령 김종서와 황보인과 안평대군이 충신이었다고 하자 그런데 이들을 몰아내는데 혁혁한 공이 있어서 정난공신이 된 이개와 사육신들은 무엇이 되는가?

 

더군나가 그런 불미스런 일이 있었다면 한산 이씨들이 지금까지 명문대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을 한다.


충신 김종서와 황보인, 안평대군을 죽이고 정난공신이 된 이개는 만고의 역신이라는 뜻인데 예로부터 한산이씨 집안은 충신집안이라고 하는 건 무슨 뜻인가? 충신을 때려죽이는 명문대가 충신집안도 있던가?  


도대체 한산이씨 후손들은 역사책은 보지 않는 모양이다. 단종복위를 위해서 죽음으로 단종에 충성했으니 충신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한산 이씨 모두가 역신일 필요도 없고, 모두 충신의 후손일 필요도 없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이중적인 형용모순을 범하는 이는 이들 뿐만 아니다.


글쓴이 같으면 오히려 김종서와 황보인과 안평대군이 역신이었고, 이를 제압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이개는 충신이라고 말하는 게 합리적일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야 만고의 충신가문이 되지 않겠는가?
 

한산이씨 가문이 어떤 집안인지는 알바가 아니다. 단지 이개는 계유정란공신이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개를 비롯한 사육신들은 단종으로부터 계유정란을 제압한 공으로 토지와 노비와 재물을 하사 받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개 등은 계유정란이 끝난 후에도 김종서와 황보인과 안평대군에 연루된 자들은 죽이라고 단종을 압박한 전력도 가지고 있다.

 

“신 등이 지금 정부에서 아뢴 죄목(罪目)을 보니, 안평대군 이용(李瑢)이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정분(鄭笨)에게 지시하여 심복을 병조(兵曹) 군기감(軍器監)에 포열(布列)하게 하였다 하였으니, 정분의 죄가 황보인·김종서에 못하지 않습니다. - 단종 1년 1453년 10월 28일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이개가 김승유를 끌어안고 우는 장면은 한편의 개그에서도 시도하지 않는 장면이다. 물론, 드라마로 역사를 배운 자들은 감동적인 장면이겠지만 말이다.

이는 계유정란으로 죽은 김종서와 황보인과 안평대군은 충신이라는 환상에서 오는 오류일 뿐이다. 이개나 사육신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김종서와 황보인과 안평대군은 대신이라는 미명하에 어린 단종을 핍박해서 자신들의 권력을 탐한 역신이라고 생각했다면 이개가 왜 계유정란공신이 되었는지 쉬이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을 때 사육신의 다수가 신숙주와 같은 좌익공신이 되었다. 공신은 아무나 주는 게 아니다. 일정한 공로가 있었거나 당대 영향력이 있어야 주어지는 게 공신이다. 단종을 몰아내고 수양대군이 왕이 되는 것에 반대하는데 공이 있다고 <좌익공신>을 주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소나개나 공신이 될 수가 없다.


한명회, 신숙주와 함께 단종폐위와 수양대군(세조) 옹립으로 좌익공신이 된 사육신 성삼문

임금이 좌익 공신(佐翼功臣)을 정하는데,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익현군(翼峴君) 이관(李璭)·한확(韓確)·윤사로(尹師路)·권남(權擥)·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를 1등으로 삼아 수충 위사 동덕 좌익 공신(輸忠衛社同德佐翼功臣)이라 이름하고, 정인지(鄭麟趾)·이사철(李思哲)·윤암(尹巖)·이계린(李季疄)·이계전(李季甸)·강맹경(姜孟卿)·윤형(尹炯)·최항(崔恒)·전균(田畇)·홍달손(洪達孫)·양정(楊汀)·권반(權攀)을 2등으로 삼아 수충 경절 좌익 공신(輸忠勁節佐翼功臣)이라 이름하고, 권공(權恭)·이징석(李澄石)·정창손(鄭昌孫)·황수신(黃守身)·박강(朴薑)·권자신(權自愼)·박원형(朴元亨)·구치관(具致寬)·윤사윤(尹士昀)·성삼문(成三問)·조석문(曹錫文)·이예장(李禮長)·원효연(元孝然)·한종손(韓終孫)·이휘(李徽)·황효원(黃孝源)·윤자운(尹子雲)·이극배(李克培)·이극감(李克堪)·권개(權愷)·최유(崔濡)·조효문(曹孝門)·한계미(韓繼美)·정수충(鄭守忠)·조득림(趙得琳)을 3등으로 삼아 추충 좌익 공신(推忠佐翼功臣)이라 이름하였다.

세조 1년 1455년 9월 5일 (음)



유학을 학문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종교화 되어 있는 유학자들이 있었는데 조선의 유학자들은 왕은 단지 유학자를 대신해서 나라를 경영하는 존재로 인식을 했었다. 더군나다 조선의 세종을 비롯한 왕들은 자신들 스스로 유학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왕이 정치를 잘못하면 같은 유자로서 왕을 교화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지만, 더 이상 교화할 수 없는 왕이라면 왕을 몰아내고 새로운 왕을 내세워도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물론, 몰아내야할 왕이 정말 패악스런 왕인지 아니면 교화가 가능한 왕인지는 유학자들마다 생각이 달랐다.


이 교리에 입각해서 계유정란으로 역신 김종서일파를 제거하고, 어린 단종을 몰아내고 수양대군이 왕이 되고, 세조(수양대군)을 몰아내고 단종을 복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측이 이개를 비롯한 사육신의 생각이었다. 그래야 사육신 이들의 일련의 행동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만고의 역적으로 몰린 신숙주를 비롯한 또 다른 유학자들은 세조가 정치를 잘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고, 단종복위에는 참가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신숙주와 사육신을 가르는 지점이다. 세조가 단종이 왕위를 찬탈했을 때 벼슬을 하지 않겠다고 초야에 뭍힌 김시습을 비롯한 생육신의 관점으로는 이개나 신숙주나 그 밥에 그 나물 일 뿐이었다.


이색이나 정몽주나 두문동에 숨은 자들은 고려를 계속 끌고 갈수 있다고 믿었고, 조선을 창업하는데 참여한 많은 유학자들은 더 이상 고려라는 왕씨의 나라는 존재가치가 없고, 새로운 역성혁명이 필요했다고 생각한 것처럼 말이다. 역성혁명을 옹호하는 측은 맹자였다. 그래서 맹자는 한때 왕조에 따라 금서이기도 했다. 역성혁명이나 반정을 한 세력들은 맹자를 받아들이고, 정권을 장악한 후에는 맹자를 금기시 한다. 이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수 있다.


문제는 조선에서 고려의 이색과 정몽주가 충신으로 추앙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조선이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조선과 왕을 위해서 충성할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정몽주, 이색 등이 반면교사로 충신의 반열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우리가 독립군을 본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이유와 같다.


그런데 왜 이개 등 사육신은 단종을 몰아내고 세조를 옹립하는데 혁혁한 공으로 공신의 반열에 올랐다가 세조를 배신하고 한때 배신했던 단종 복위를 꿈꿨을까?


단종은 만만했고, 세조는 만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개를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은 세종에게도 끊임없이 딴지맨 역할을 했다. 세종은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리지만 자신의 정치철학에 맞게 조선을 이끌어 갔다. 특히 조선은 유교를 바탕으로 정치를 하고 있었다. 유학자들은 고려가 불교 때문에 망했다는 선전을 줄기차게 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초기 조선왕들은 유교와 불교를 조화롭게 하면서 조선을 이끌어 가려하고 있었다. 이들 유학자들과 충돌하는 지점이다. 요즘으로 치면 여타종교는 안중에도 없는 개독처럼 유학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된 유일한 정치통치수단이라고 믿는 자들이 이개를 비롯한 사육신 들이였다.


 
세종는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하고,  석가의 일대기를 훈민정음으로 석보상절을 수양대군에게 편찬하게 하고, 세종 자신은 훈민정음으로 석보상절을 본 느낌을 월인천강지곡이란 대서사시로 만들기까지 했었다.


1448년 세종(30년) 말년 세종 창덕궁 북서편 궁궐 내에 내불당을 만들었다. 수시로 내불당에서 예불도 했었다.

그런데 성균관 유생들과 집현전 학사들은 집무를 정지하는 보이코트를 수시로 했었다. 더군다나 세종은 유교의 이상국가라고 생각하는 조선의 요.순이였지만 늙고 병들자 불교에 심취해서 망령되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단종 7권 1년 9월 30일 (계미) 2번째기사 / 나홍서가 황보인·김종서 등이 불당을 헐 수 없다고 말한 사실을 아뢰다

   단종 8권 1년 10월 4일 (정해) 1번째기사 / 정양 등이 불당을 허는 문제로 상소하다

   단종 8권 1년 10월 12일 (을미) 7번째기사 / 정양이 이용의 부자를 벨 것과 불당을 헐 것을 청하다

   단종 8권 1년 10월 13일 (병신) 3번째기사 / 이예장이 불당 철거를 급하게 하지 않아도 됨을 아뢰다

   단종 10권 2년 1월 3일 (을묘) 2번째기사 / 김구 등이 내불당을 철거하는 문제로 상서하다

   단종 10권 2년 1월 4일 (병진) 2번째기사 / 영의정·좌의정 등이 내불당을 철거하지 않음이 좋다고 아뢰다

   단종 10권 2년 1월 5일 (정사) 1번째기사 / 하위지·이석형 등이 불당 철거를 청하다

   단종 10권 2년 1월 6일 (무오) 1번째기사 / 유성원 등이 불당 철거를 청하다

   단종 10권 2년 1월 7일 (기미) 2번째기사 / 이개·유성원 등이 불당 철거를 청하다

   단종 10권 2년 1월 8일 (경신) 3번째기사 / 김구가 불당을 철거하는 문제로 상서하다



이개를 비롯한 사육신의 다수는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가 병들어 죽은 이유와 문종이 병약한 이유와 계유정란과 이징옥의 난 등이 내불당이 궁궐 내에 있었기 때문이라며 없애기를 줄기차게 문종과 어린 단종에게 주장하였지만, 병약한 문종이나 어려서 만만하다고 생각한 단종 때에도 이뤄지지 않았다.


 

세종(世宗)께서 병환이 위독하여 기도하였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어서, 몇 년 안에 잇달아 국상(國喪)을 당하였습니다. 또 근일에 변(變) 이 있어서 개국(開國) 이래로 이와 같은 참상(慘狀)이 있지 않았습니다. 지난번에 술사(術士)가 음양(陰陽)의 사위하는 것[拘忌]에 의거하여, 종묘와 사직을 침핍(侵逼)한다고 말하여 여러 번 번독(煩瀆)하여 마지 않았는데, 화난(禍難) 이 있은 이래로 스스로 증명이 되었음이 지극하다 하겠습니다. ‘불당(佛堂)을 혁파하지 아니하고는 이 궁궐을 다시 막을 수가 없다.



그래서 단종을 몰아내고 수양대군이 왕이 된다면 내불당과 조선에서 불교를 없앨 수 있다고 믿었다.


문제는 세조가 왕위에 올랐지만, 세조도 완강하게 내불당을 없애는데 반대를 하고, 오히려 내불당 예불에 참가하기 까지 했다. 사육신의 입장에서는 어린 토끼를 몰아냈더니 알고 보니 호랑이를 끌어들인 것이다. 그래서 사육신 입장에서 세조는 당연히 없애야할 군주가 된 것이다. 그리고 어린 단종이 만만했었던 것이고 말이다.


세종말년부터 단종말년까지 내불당철거를 주장하던 여론이 세조시기 내불당 철거나 이전에 대한 언급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세조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조가 죽자 다시 예종, 성종,연산군,중종 초년에 끊임없이 내불당을 없애자는 여론이 일어난다.

많은사람들이 세조(수양대군)가 조카을 왕위에서 몰아내고 결국에는 단종을 죽이고, 병이 들었고, 의경세자가 단명한후 잘못을 깨우치고 불교에 귀의했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세조는 그 이전 부터 불교와 땔래야 땔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종교전쟁이 단종복위사건에 숨어있었다고 글쓴이(갓쉰동)은 생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다음 기회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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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스승 이개 알고보면 계유정란공신, 사육신 단종폐위 좌익공신들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계백, 의자왕, 반란 실패한 사택비 죽고, 교기 왜로 쫓겨난다?

2011/09/19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광개토태왕, 계백, 사극 문헌고증 철저히 파괴해야 시청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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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7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적과동침 실패. 단종 죽인건 사육신 충신인가? 배신 아이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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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1 - [TV&ETC] - 김연아 키드 김해진 최악은 희망, 손연재 세계랭킹 언플 희망고문 가능성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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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찌질남 민폐 제작자 인증. 사육신 성삼문 단종 폐위 일등공신
2011/09/07 - [역사이야기] - 은고 사비성 태울만큼 계백 사랑했을까? 공주의 남자 비롯한 역사파괴 끝은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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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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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생각과 아이디어. 공유를위한 감사합니다. 좋은 일을 계속.


공주의 남자에서 수양대군의 최측근으로 강곤이 나온다.

강곤은 김종서의 며느리와 질녀인 아강을 노비로 하사 받았다.

실제는 김종서의 큰아들 김승규의 딸 숙희만이 강곤 집 노비가 되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규는 형수와 질녀 아강을 찾아 강곤의 집에 갔다. 형수와 아강이 물에 빠져 자살했다는 말을 듣고 실신한다.


공주의 남자에서 사육신 중 한명인 이개는 정종과 김승유와 신면의 스승으로 나온다.

그리고 아버지들의 정치싸움을 너희들까지 정치싸움하지 말고 서로 우애를 버리지 말라고 한다. 또한, 승유가 수양대군 암살시도하다 틀켜서 죽음에 이를 때 정종과 경혜공주와 금성대군과 함께 적극적으로 구명하는 것으로 나온다.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옥새를 넘기며 양위를 선언하자, 신숙주에게 질타를 한다. 그리고 이개는 단종이 양위하지 말라고 대성통곡을 한다.

그런데 정말 사육신 중 한명인 이개는 수양대군이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하고 김종서와 안평대군의 편에서 단종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을까? 그렇지가 않다.

이개는 안평대군과 김종서, 황보인이 대죄를 지었고 계유정란에 관련된 안평대군 일파에 대해서 탄핵한다. 한마디로 이개는 안평대군과 김종서의 반대파 였다. 그리고 이개는 계유정란 공신이 된다. 

 성삼문(成三問)을 우사간(右司諫)으로, 이개(李塏)를 수사헌 집의(守司憲執義)로, 구치관(具致寬)을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로, 유응부(兪應孚)를 평안도 도절제사(平安道都節制使)로, 박쟁(朴崝)을 충청도 처치사(忠淸道處置使)로, 이교연(李皎然)을 밀양 부사(密陽府使)로 삼고, 난신(亂臣)을 잡아 죽인 여러 사람을 또한 공을 논하여 상직(賞職)하고, 김윤부(金允富)는 파직하였으니, 김종서(金宗瑞)에게 말을 준 때문이다 - 단종 1년 1553년 10월 15일

 


위의 기록으로 알수 있듯이 사육신인 성삼문, 이개, 유응부,박쟁 등이 나오고 있다. 이들은 계유정란이 끝나고 정란의 공신으로  상직되었다.

더군다나 이개는 정분·허후·조수량·안완경의 죄가 황보인 김종서에 못지않다고 김종서 일파에 관련된 자를 탄핵하는데 적극적이었다.

집의(執義) 이개(李塏)가 본부(本府)의 의논을 가지고 아뢰기를,
 

“신 등이 지금 정부에서 아뢴 죄목(罪目)을 보니, 안평대군 이용(李瑢)이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정분(鄭笨)에게 지시하여 심복을 병조(兵曹) 군기감(軍器監)에 포열(布列)하게 하였다 하였으니, 정분의 죄가 황보인·김종서에 못하지 않습니다. - 단종 1년 1453년 10월 28일


더군다나 이개와 같이 사육신 중의 한명인 박팽년은 수양대군의 장자방으로 나오는 신숙주와 함께 안평대군을 대법에 처하라고 말한다. 결국 계유정란으로 안평대군이 귀향가던 길에 죽게된 이유가 박팽년, 신숙주 등의 고변때문이었다.
 

최항(崔恒)·신숙주(申叔舟)·박팽년(朴彭年)·박원형(朴元亨)·권자신(權自愼)은 아뢰기를,

“지금 정부(政府)·육조(六曹)의 청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 등의 뜻에도 또한 꼭 대법(大法)에 처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단종 1년 1453년 10월 16일 안평대군에게 죄를 주라

 

우사간(右司諫) 성삼문(成三問) 등이 상소하기를,
“생각건대, 간신 이경유(李耕㽥)가 병기를 훔쳐서 에게 실어 보냈으니 이경유가 어찌 혼자 훔치고 혼자 운반하였겠습니까? 반드시 함께 꾀하고 함께 일한 자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 여기에 참여함이 있었다면 본 자·들은 자와 손 한번 놀리고 발 한번 굴린 자까지도 모두 용서하지 못하는 예가 있습니다. 하물며 음모에 참여한 자이겠습니까? 하물며 이를 맡아 지킨 자이겠습니까? 하물며 이를 실어 나른 자이겠습니까? 하물며 상사(上司)가 되어 짐짓 놓아주고 묻지 않은 자이겠습니까? 이것은 죄가 크고 악이 극하여 하루도 함께 하늘 밑에 살 수 없는 자들입니다.

- 단종실록 단종 1년 1453년 10월 17일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는 온녕군을 죽이자, 수양대군은 온녕군을 죽이려한 배후세력으로 정종과 금성대군을 지목하고 선위를 할것을 압박한다. 
 

단종 2년 1454년 5월 12일  온녕군(溫寧君) 이정(李裎)이 졸(卒)하였다. - 단종실록


하지만, 온녕군이 죽은 때는 1454년 5월12일이고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양위한때는 1456년 윤 6월 11일이다.  드라마에서는 하루가 1년이다. 하루는 1년같이 1년을 하루같이 사랑한다는 노랫말과 살아가는데 시간을 소중해야한다는 말은 있지만, 좀 심한 설정이 아닌가 한다.

김승유는 수양이 왕이 되려하자 수양의 장자방인 신숙주를 암살하려고 한다. 신숙주의 호위무사들을 죽이고 신숙주를 죽이려는 순간 신면이 나타나 신숙주 암살에 실패한다.

신면은 계유정란시에도 김종서를 죽이는데 앞장서지 않는다. 더군다나 김승유가 죽어갈때 김승유를 살리고, 김종서의 형수와 질녀 아강까지 살려주고 보살펴준다. 그런데 사랑에 넋이 나간 우리의 주인공 김승유는 친구의 아버지를 직접 죽이려든다. 신면에게는 친구의 여인을 사랑하면서도 친구에 대한 우애가 보이지만, 김승유에게는 사랑의 질투로 결혼식장에 난입해서 신부를 납치하는 무대포 밖에 없다.


어쨌든, 이개는 정종의 집에 찾아가 온녕군을 죽이고 신숙주를 죽이려한 대호라는 자의 배후가 정종니가 아니냐고 물어본다. 김승유는 정종의 집에 찾아가 신숙주를 죽이려다 실패한 사실을 말하고, 그 자리에 있었던 이개를 만난다.



이개는 김승유에게 "울지마라 승유야 울지마라 승유야"를 연발한다. "너의 밝디 밝은 모습이 없어지고 사람을 죽이려하느냐 너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기 싫구나" 너를 이리 만든것이 내탓같구나라며 더이상 위험한 일을 하지 말고 이개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한다.


만약, 드라마 상황과 실제 역사와 적절히 조합한다면 이개는 수양대군의 밀정에 해당하는 이중간첩에 지나지 않을것이다. 또한, 신숙주를 암살대상자로 선택했다면 이개 또한, 살생부에 올라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사육신들 또한 김승유의 살생부 척살대상이어야 한다.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를 지키는 경혜공주 부마 정종도 김승유의 살생부에 올라있어야 한다. 왜냐 하면 정종도 계유정란의 정란 공신이었기 때문이다. 부마 정종이 영양위가 된 이유는 정란공신이였기 때문이다. 생체실험한 일본 731부대가 독립군부대였다고 하는 것과  더불어 독립군 때려잡던 친일매국노들이 독립군이였다는 것 만큼 얼척없다.

정난한 공이 있는 이들에게 동·서반직을 차등있게 올려 제수하다

 정종(鄭悰)광덕 대부(光德大夫) 영양위(寧陽尉)로, 
..중략..
박팽년(朴彭年)을 승정원 우승지로, 박원형(朴元亨)을 승정원 좌부승지(左副承旨)로, 권자신(權自愼)을 승정원 우부승지로, 권남(權擥)을 수충 위사 협책 정난 공신 승정원 동부승지(同副承旨)로, 김자갱(金自鏗)·김혼지(金俒之)·박소(朴昭)·홍익성(洪益誠)을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로, 이흥상(李興商)을 수충 정난 공신 첨지 중추원사(輸忠靖難功臣僉知中樞院事)로, 양정(楊汀)을 수충 협책 정난 공신 지병조사(知兵曹事)로, 성삼문(成三問)을 수충 정난 공신 사간원 좌사간 대부(左司諫大夫)로, 조어(趙峿)를 사간원 우사간 대부로 삼았으며, 집의(執義) 이개는 중훈(中訓)을 더하고,

 
 단종복위 연류자

“근일에 이개(李塏)·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박중림(朴仲林)·권자신(權自愼)·김문기(金文起)·성승(成勝)·유응부(兪應孚)·박쟁(朴崝)·송석동(宋石同)·최득지(崔得池)·최치지(崔致池)·윤영손(尹令孫)·박기년(朴耆年)·박대년(朴大年) 등이 몰래 반역(反逆)을 꾀하였으나, 다행하게도 천지 신명(天地神明)과 종묘·사직의 신령(神靈)에 힘입어 흉포한 역모가 드러나서 그 죄상을 다 알았다. 그러나, 아직도 소민(小民)들이 두려워할까 염려하니, 경 등은 이 뜻을 선유(宣諭)하여 경동(驚動)하지 말게 하라.” - 세조 2년 1456년 6월 6일 단종복위 연류자


위 단종복위연류자중 계유정란 공신이 아닌자들이 없을 정도이고, 단종폐위에 앞장서지 않는자들이 없다.

드라마에서 이개는 단종이 수양에게 선위를 하기전에 "너희는 누구의 신하란 말이냐?" 신숙주에게는 " 신면을 맡길때 학식보다는 충심을 가르치랴 하지 않았느냐? 어찌하여 세종과 문종의 뜻을 어기고 어린 단종을 폐위하려는 반역을 꾀했냐"고 말하지만, 이개는 어린 단종보다는 수양대군이 왕이 되는 것에 찬동을 하였다.
 



단순히 사육신이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른 후 수양대군에 반기를 들고 단종복위를 꿈꾸다 처형되었다고  김종서와 같은 일파이고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되는 것에 반대했을 거라는 단순한 상상한 대부분의 드라마는 산으로 간다.

어찌보면 사육신은 수양대군파였고, 수양이 왕이 되는데 적극적이였다. 오히려 안평대군, 김종서, 황보인의 반대파였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사육신의 한명인 성삼문은 단종이 수양에게 양위를 할 때 옥새를 관리하는 자였다. 옥새가 수양에게 넘어갈것을 뻔이 알고 있는 상태에서 옥새를 수양에게 넘기는 일등공신이 되었다.
 


 위에 국새를 가지고 나오는 자가 환관 전균이다. 그런데 엄자치와 전균 또한 계유정란공신이 되지만, 사육신들의 반대에 부딛힌다. 환관이 어찌하여 공이 있단말입니까? 공이 있더라도 공신이 되어서는 않됩니다 라면서 말이다.

어쨌든 환관 전균에게 국새를 넘긴 자는 사육신 중의 한사람인 성삼문이였다.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지만 말이다.

환관(宦官) 전균(田畇)으로 하여금 한확(韓確) 등에게 전지하기를,

“내가 나이가 어리고 중외(中外)의 일을 알지 못하는 탓으로 간사한 무리들이 은밀히 발동하고 난(亂)을 도모하는 싹이 종식하지 않으니, 이제 대임(大任)을 영의정(領議政)에게 전하여 주려고 한다.” 하였다.

한확 등이 놀랍고 황공하여 아뢰기를,

“이제 영의정이 중외의 모든 일을 다 총괄하고 있는데, 다시 어떤 대임을 전한다는 것입니까?”

하여, 전균(田畇)이 이를 아뢰니, 노산군(魯山君)이 말하기를,

내가 전일부터 이미 이런 뜻이 있었거니와 이제 계책을 정하였으니 다시 고칠 수 없다. 속히 모든 일을 처판(處辦)하도록 하라.”


하였다. 한확 등 군신들이 합사(合辭) 하여 그 명을 거둘 것을 굳게 청하고 세조 또한 눈물을 흘리며 완강히 사양하였다.


전균이 다시 들어가 이러한 사실을 아뢰었다. 조금 있다가 전균이 다시 나와 전교를 선포하기를, ‘상서사(尙瑞司) 관원으로 하여금 대보(大寶)를 들여오라는 분부가 있다.’고 하니, 모든 대신들이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을 변하였다


동부승지(同副承旨) 성삼문(成三問)이 상서사(尙瑞司)로 나아가서 대보(옥새)를 내다가 전균으로 하여금 경회루(慶會樓) 아래로 받들고 가서 바치게 하였다. 노산군(단종)이 경회루 아래로 나와서 세조를 부르니, 세조가 달려 들어가고 승지(承旨) 성삼문와 사관(史官)이 그 뒤를 따랐다. - 단종 3년 1455년 윤6월 11일


정치는 생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때에 따라 같은 당파가 되기도 하고 정적이 되기도 한다. 자신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 동료가 되고, 적이 된다는 뜻이다. 같은 형제, 부자, 친구간에도 정파가 나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온 집안이 항일운동에 나서지만, 한사람은 민족반역자가 되기도 하고, 아버지는 항일운동을 하지만 자식은 친일매국을 하기도 한다. 반대로 아비가 친일매국이지만 자식은 항일운동에 참가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게 있었다. 또한, 3.1운동 33인이 항일운동에 참여했다 절대다수가 민족반역자대열에 합류하기도 한다. 하물며 이익 앞에서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일관성 있게 사육신과 수양대군은 안평대군, 황보인, 김종서의 반대파였고, 수양이 단종을 폐위하는데 한편이였다.

사육신들이 세조(수양대군)에 반기를 든건 수양대군이 왕이 된 후 토사구팽이 되어서 이지 않을까, 아니면 사육신 자신들이 지향하는 정치와 세조가 지향하는 정치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반기를 들지 않았을까? 그것도 사실은 세조에 반기를 든것이 아닌 한명회가 세조의 입이 되어 국정을 농단하자 정적인 한명회를 죽이고 세조까지 죽인후 단종을 복위시키려 했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단순히 공주의 남자처럼 계유정란으로 죽은 김종서의 김승유와 단종복위 시도를 하다 실패한 사육신을 한묶음으로 하고, 금성대군과 정종이 수양대군에 반기를 들었다고 해서 김종서의 자식 김승유가 한묶음으로 묶일수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금성대군, 정종, 사육신, 수양대군의 공통적은 안평대군과 김종서와 황보인이였다. 그런데 공주의 남자에서는 사육신 이개, 정종이 김종서와 한편이 되어 수양대군과 적대적이였다는 설정은  계유정란시 세조와 김종서가 한편이였다고 하는 설정만큼 어설프다 못해 난감하기 까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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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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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zzz 2011.09.16 04: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건 좀 병맛나는 포스팅인듯...

    ㅋㅋ

  3. 이수진 2011.09.17 2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개 후손입니다 기분나쁘네요..ㅡ.ㅡ

  4. 이수진 2011.09.17 2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개 후손입니다 기분나쁘네요..ㅡ.ㅡ

  5. BlogIcon 이진원 2011.09.20 0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이개선생 자손됩니다. 선생께서 쓰신 글을 보면서 어이없다 부족해 개탄을 느낍니다. 예로부터 우리 한산이씨 집안은 충신집안입이다. 목은(이색)선조께서도 쿠데타를 통해 국가를 세운 이성계를 인정하지 않으셨고, 그런 영양하에 우리 가문은 조선왕조초기엔 정치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국왕의 심고초려 끝에 정치에 나선 분들인데 그런 경솔한 판단을 하셨겠습니까? 그것도 정난공신
    이 되고자? 정정하십시오. 만약 그런 불명예 스런 일이 있었다면 우리집안이 지금까지 '명문대가'로 남지 못했을 것 입니다. 바른 이해로 역사를 왜곡하시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한산이씨가문이 어떤 집안인지에 대해 알아보신 후에 쓰신 글을 다시 돌아보십시오

  6. 이수복 2011.09.22 0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손으로서 참.... 기분 좋지 않는 글이군요....
    역사학적으로 인정된 사육신을 무슨 근거로 이러는지....

  7. 이채령 2011.09.22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개 후손으로서 정말 기분나쁜 글...
    신숙주 후손이신가요?ㅋㅋㅋㅋ

  8. Favicon of http://wirelessfederation.com/news/mobile-operators-directory/ BlogIcon 모바일 업체 디렉토리 2011.09.22 1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바일 업체 디렉토리

  9. Favicon of http://wirelessfederation.com/news/mobile-world-congress/ BlogIcon 모바일 세계 회의 2011.09.22 18: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게시물 U 그것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10. Favicon of http://www.privilegedclub.com/category/luxury-yachts/ BlogIcon 럭셔리 요트 2011.09.22 1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게시물! 귀하의 정보를 공유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은 내게 그것에 대해 뭔가 더 말할 수 없습니다.

  11. 세조 2011.09.22 2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쳐죽일놈

  12. 수양대군 2011.09.22 2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 쳐죽일놈

  13. 333 2011.09.24 0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단 노산군 일기는 왜곡이 많습니다. 폐서인되어 유배지 영월에 도착한 단종이 도착직후 이 모든 반역의 죄는 나에게 있는데 내가 그걸(사육신건)을 저질렀는지 진심으로 후회한다라고 애길 했다 하는데 상식적으로 믿기 힘듭니다. 그리고 공신직위는 공에 따르기 보단 당시 정치적 판단으로 나뉘주기식도 많고 계유정난의 공신직위는 정종은 단종의 유일한 매형이기 때문에 수양일파가 일단 우리의 적은 김종서등이지 단종이 아니란 체면을 세울 필요로 내렸던 겁니다. 정작 정종은 금성대군과 더불어 위협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1년도 안되서 유배길로 보내버렸는데 누가 정종을 진심으로 계유정난의 공신이자 수양의 일파로 봤단 애깁니까.

    그리고 사육신등 집현전 일파들이 김종서파든 안평대군파등에 대해 불신하거나 적극적 반대세력이었던 건 사실입니다. 황보인 김종서등이 단종의 보호를 빌미로 국정을 농단하고 안평이 정치적 개인세력을 키우던 증거는 명백하고 이게 계유정난의 이유가 됬긴 하니까요. 하지만 이들이 수양에게 기대한건 단종이 성인으로 성장할때까지 왕권확립과 민생안정을 시켜줄 대리청정 역할이지 수양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되어 극단적 왕권중심을 내세우고 신권을 배척하리라고 계산을 못했죠.

    사육신을 국문한 것을 보면 왜 내가 양위받을 시 너희들은 암말로 못했냐 하니 그땐 힘이 없어 저항했다간 개죽음뿐이라 할수없이 참았다고 말하는데, 단종의 명령으로 양위받는 세조에게 옥새를 건내는 역할이 당시 승지로 야근하던 성삼문이라 성삼문이 옥새를 안고 현장서 대성통곡을 했단 기록이 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당시엔 막질 못했고 세조실록만 봐도 그냥 정상적 과정을 밟은 양 평이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래저래 집현전 일파들은 수양과는 처음엔 김종서, 안평등에 대항한 한배를 탄 이들이었지만 계유정난이후 서로가 다른 목적을 가졌음을 알게 되고 세조의 즉위당시엔 속으론 불만이어도 적극적 반대를 못하다가 나중에 들고 일어난겁니다.

    님 논리면 단종의 장인이었던 송현수는 수양대군의 젊은 시절부터 알고지낸 절친이었고 수양이 세도가 집안도 아닌 송현수의 딸을 단종비로 밀어넣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아마 이때까지 두 집안의 사이는 좋았고 서로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수양이 야심을 드러내며 왕위까지 노리게 되면서 둘은 원수가 됬고 결과는 송현수는 단종복위음로랑 연관되어 장100대에 유배지서 처형당하고 정순왕후는 폐서인되어 장업원에 유폐, 정순왕후의 친정 여동생들은 노비로 끌려가죠. 님 논리되로라면 송현수는 과거 한때 수양과 절친이자 계유정난까진 수양의 편을 들었다고 수양이 왕위를 선위받은 전후에도 수양과 같이 사위인 단종을 몰아낼려고 한 사람이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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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박시후)는 스승 이개와 사육신 등과 함께 세조(수양대군)을 척살하고 단종복위에 참여를 한다.

승유(박시후)는 세조를 죽이려하고 세령(문채원)은 승유가 목표로 한 인물이 누구일까 궁금해서 수시로 대호가 날뛰는 도성에서 호위무사도 없이 밤이슬을 맞으며 경혜공주를 찾아 나선다.

공주의 남자에서 세령은 김승유가 죽이려는 상대가 자신의 아버지 세조(수양대군)인것을 알고 아버지의 안위보다는 김승유의 안위를 걱정하며 궁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단종을 폐위하고 세조 옹립에 공을 세워 공신이 된  성삼문과 사육신의 일파들은 어찌하여 수양대군(세조)을 척살하고 단종복위를 꿈꾸었을까?


세조의 정치와 사육신으로 대표되는 성삼문의 정치의 목표가 달랐기 때문이다.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들은 유교를 바탕으로 신하들이 중심이 되는 정치를 하려했지만, 세조(수양대군)은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유교와 불교가 조화된 정치를 하려고 했다. 그러니 당연히 수양대군과 사육신들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계유정란 공신 성삼문에게 
 땅과 노비를 하사한 단종

숙부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기미를 알아내고 먼저 도모하여 흉한 무리들이 죄에 엎드렸다. (성삼문) 네가 명을 듣고 난에 다달아 같은 마음으로 협찬하여 종사에 공이 있으니 감히 대려(帶礪)를 잊겠는가? 그러므로 훈을 책정하여 3등을 삼고, 그 부모와 아내에게 벼슬을 주고 사유(赦宥)가 영원히 후대에 미치게 한다. 인하여 전지 1백 결·노비 7구·말 1필·백은 10냥·표리 1단을 주노니 이르거든 받으라. 아아! 비밀히 큰 계책을 도와서 이미 세상에 드문 공을 세웠으니, 특수한 공훈을 크게 보답하여 마땅히 비상한 은총(恩寵)을 가(加)하노라.”

- 단종 3년 1455년 1월 24일




단종시기 사육신으로 대표되는 인물들은 환관(내시)들이 정치에 관여하는 데 적극적으로 반대를 했었다. 절대 다수가 계유정란의 공신들이었던 사육신들은 환관인 엄자치와 전균도 정란공신이었지만, 엄자치와 전균이 군(君)이 되는 것을 자신들의 공신의 직위를 걸고 막는데 성공하였었다.


성삼문 옥새를 수양대군에게 넘기다.

 한확 등 군신들이 합사(合辭) 하여 그 명을 거둘 것을 굳게 청하고 세조 또한 눈물을 흘리며 완강히 사양하였다. 전균이 다시 들어가 이러한 사실을 아뢰었다. 조금 있다가 전균이 다시 나와 전교를 선포하기를, ‘상서사(尙瑞司) 관원으로 하여금 대보(大寶)를 들여오라는 분부가 있다.’고 하니, 모든 대신들이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을 변하였다. 또 명하여 재촉하니 동부승지(同副承旨) 성삼문(成三問)이 상서사(尙瑞司)로 나아가서 대보를 내다가 전균으로 하여금 경회루(慶會樓) 아래로 받들고 가서 바치게 하였다. 노산군이 경회루 아래로 나와서 세조를 부르니, 세조가 달려 들어가고 승지(承旨)와 사관(史官)이 그 뒤를 따랐다.

- 단종 3년, 세조 1년, 1455년 윤 6월 11일



한명회, 신숙주와 함께 단종폐위와 수양대군(세조) 옹립으로 좌익공신이 된 사육신 성삼문

임금이 좌익 공신(佐翼功臣)을 정하는데,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익현군(翼峴君) 이관(李璭)·한확(韓確)·윤사로(尹師路)·권남(權擥)·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를 1등으로 삼아 수충 위사 동덕 좌익 공신(輸忠衛社同德佐翼功臣)이라 이름하고, 정인지(鄭麟趾)·이사철(李思哲)·윤암(尹巖)·이계린(李季疄)·이계전(李季甸)·강맹경(姜孟卿)·윤형(尹炯)·최항(崔恒)·전균(田畇)·홍달손(洪達孫)·양정(楊汀)·권반(權攀)을 2등으로 삼아 수충 경절 좌익 공신(輸忠勁節佐翼功臣)이라 이름하고, 권공(權恭)·이징석(李澄石)·정창손(鄭昌孫)·황수신(黃守身)·박강(朴薑)·권자신(權自愼)·박원형(朴元亨)·구치관(具致寬)·윤사윤(尹士昀)·성삼문(成三問)·조석문(曹錫文)·이예장(李禮長)·원효연(元孝然)·한종손(韓終孫)·이휘(李徽)·황효원(黃孝源)·윤자운(尹子雲)·이극배(李克培)·이극감(李克堪)·권개(權愷)·최유(崔濡)·조효문(曹孝門)·한계미(韓繼美)·정수충(鄭守忠)·조득림(趙得琳)을 3등으로 삼아 추충 좌익 공신(推忠佐翼功臣)이라 이름하였다.

세조 1년 1455년 9월 5일 (음)



많은 사람들이 신숙주가 세종의 유명을 버리고, 조카인 단종을 폐위하는데 앞장섰다고 말하고 신숙주를 배신의 아이콘으로 쉬이 쉰다는 숙주나물을 만들어 버렸다.


신숙주는 세조를 옹립하는데 1등공신이었다면 성삼문은 조카를 폐위하고 수양대군이 왕이 되는데 3등공신이었다. 그래서 신숙주는 1등 좌익공신이고, 성삼문은 3등 좌익공신이다. 이들 간에 차이점은 없다. 똥통에 깊이 빠진 신숙주와 똥물만 뒤집어쓴 성삼문의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다. 성삼문은 신숙주에 어쩌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성삼문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데 수양대군은 신숙주를 더 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성삼문은 안평대군과 황보인, 김종서 일파를 몰아내는 계유정란 공신이였고,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수양대군(세조)가 왕이 되는 좌익공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문종실록이나 단종실록이 세조일파들이 기록한 것으로 김종서와 사육신을 폄훼하고, 세조를 높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종실록 수찬관에는 좌부승지 성삼문이 있다.
 

《문종실록(文宗實錄)》을 보록각(寶錄閣) 에 봉안하고 수찬관(修撰官)을 의정부에 〈모아〉 사연(賜宴)하였는데, 도승지 박원형(朴元亨), 좌부승지 성삼문(成三問)에게는, 명하여 선온(宣醞)을 하사하고, - 세조 1년 1455년 12월 19일



단종 복위 실패한 쿠데타 당일날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박팽년이 대답하기를,

“성삼문(成三問)·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이개(李塏)·김문기(金文起)·성승(成勝)·박쟁(朴崝)·유응부(兪應孚)·권자신(權自愼)·송석동(宋石同)·윤영손(尹令孫)·이휘(李徽)와 신의 아비였습니다.”

하였다. 다시 물으니 대답하기를,

“신의 아비까지도 숨기지 아니하였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을 대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그 시행하려던 방법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성승·유응부·박쟁이 모두 별운검(別雲劍) 이 되었으니,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그 시기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어제 연회에 그 일을 하고자 하였으나 마침 장소가 좁다 하여 운검(雲劍)을 없앤 까닭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대개 어전(御殿)에서는 2품 이상인 무반(武班) 2명이 큰 칼을 차고 좌우에 시립(侍立)하게 되어 있다. 이날 임금이 노산군과 함께 대전에 나가게 되고, 성승·유응부·박쟁 등이 별운검(別雲劍)이 되었는데, 임금이 전내(殿內)가 좁다고 하여 별운검을 없애라고 명하였다. 성삼문이 정원(政院)에 건의하여 없앨 수 없다고 아뢰었으나 임금이 신숙주(申叔舟)에게 명하여 다시 전내(殿內)를 살펴보게 하고, 드디어 〈별운검이〉 들어가지 말게 하였다.】 후일에 관가(觀稼) 할 때 노상(路上)에서 거사(擧事)하고자 하였습니다


- 세조 2년 1456년 6월 2일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는 창덕궁 경내의 야외에서 명나라 사신을 영접한 것으로 그리고 있고, 유승부 한사람만이 별운검으로 왕의 좌우에서 시위한 것으로 그리고 있지만, 실제는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과 유응부, 박쟁이 모두 별운검이었다. 하지만, 세조(수양대군)이 전내가 좁다는 이유로 별운검을 없앴다. 이때 성삼문은 의정부에 건의하여 없앨 수 없다고 말하지만, 세조가 신숙주에서 전내를 살펴보게 하고 별운검을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고 하였다.
 


드라마는 극적인 요소를 집어넣으려고 야외로 설정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야외 화면 빨이 살기 때문이다. 계유정란 장면에서도 전혀 다른 현장재현 전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공주의 남자에서 세조 2년 1456년 6월 2일의 일을 6월 1일 당일에 일어난 일로 그리고 있다. 실제는 6월 1일 세조와 의경세자(숭)과 예종이 되는 해왕대군(황)을 죽이고 단종 복위를 꿈꾸었지만, 실패하고 후일에 세조(수양대군)이 농사일을 살피려고 출궁할 때 노상에서 거사를 하려고 하였었다. 하지만, 6월 2일 김질이 장인인 정찬손과 함께 세조를 찾아가 전일의 사건을 고변하므로서 수양척살과 단종복위는 이뤄지지 않았다.


사육신 만고의 충신인가? 단종 죽음 이르게한 배신의 아이콘인가?

재미있게도 단종을 죽이는 단초를 제공한 이도 성삼문이었다. 상왕 단종의 존재는 수양대군을 왕으로 옹립한 세력에게는 커다란 위험부담이었다. 세조(수양대군)이 죽고 나서 의경세자나 왕자 황에게 대립할 수 있는 존재는 어린 상왕 단종이고, 세조에 반기들만 한 세력들이 사육신처럼 들고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상왕(단종)이 연루가 되지 않았더라도 단종을 엮어서 없앨 궁리를 하는 자들에게 성삼문,권자신은 다음과 같이 수괴가 단종이라고 말한다.
 

좌승지(左承旨) 구치관(具致寬)에게 명하여 의금부(義禁府)에 가서 성삼문(成三問) 등에게 묻기를,

“상왕(上王)께서도 역시 너희들의 역모에 참여하여 알고 있는가?”

하니, 성삼문이 대답하기를,

“알고 있다. 권자신(權自愼)이 그 어미에게 고(告)하여 상왕께 알렸고, 뒤에 권자신·윤영손(尹令孫) 등이 여러 번 약속을 올리고 기일을 고하였으며, 그날 아침에도 권자신이 먼저 창덕궁(昌德宮)에 나아가니, 상왕께서 긴 칼을 내려 주셨다.”

하였다. 구치관이 또 권자신에게 물으니, 권자신의 대답도 성삼문과 같았다.

- 세조 2년 1456년 6월 7일


자신들의 행위가 단종(상왕)이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칼까지 내려주어 정당성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단종(상왕)보고 같이 죽자는 소리다. 만고의 충신이 만고의 역신이라 불러도 할말이 없을 정도이다.


단종과 사육신들이 세조척살의 실패는 계유정란으로 김종서의 며느리와 자식들은 자신들이 하지도 않는 일에 쓰나미를 당한다.

큰아들 김승규의 아내 내은비와 딸 내은금, 첩의 딸 한금이 정인지에 하사되고 딸 숙희는 강곤에게 주어진다. 공주의 남자에서 강곤에서 하사된 김승규의 아내와 아강은 계유정란 때 강곤에서 주었다가, 세령공주와 신면이 빼돌려 돌보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사육신들의 반정(단종복위)실패 여파로 강곤과 정인지에 하사된 것이다.
 

 김승규(金承珪)의 아내 내은비(內隱非)·딸 내은금(內隱今)·첩의 딸 한금(閑今)은 영의정(領議政) 정인지(鄭麟趾)에게 주고,

..중략..

성삼문(成三問)의 아내 차산(次山)·딸 효옥(孝玉), 이승로(李承老)의 누이 자근아지(者斤阿只)는 운성 부원군(雲城府院君) 박종우(朴從愚)에게 주고, ..중략...

김승벽(金承壁)의 아내 효의(孝義)는 예조 참판(禮曹參判) 홍윤성(洪允成)에게 주고

이하 생략..

- 세조 2년 1456년 9월 7일 난신에 연루된 부녀들을 대신에게 나눠주다.



공주의 남자는 미래에 일어나는 일을 계유정란에 있었던 일로 퉁을 치고 있다. 과거나 현재가 미래를 결정한다는 말은 들어 봤어도 미래가 과거를 바꾼다는 말은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처음 보는 황당 SF 설정이다.


어쨌든, 드라마에서는 1456년 6월 1일 김질이 한명회에 잡혀서 일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공주의 남자가 사육신을 동원해서 세조를 척살하려는 장면을 넣은 이유는 김승유가 세조를 척살하는데 관여를 했다고 설정하고 싶은 과욕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역사와는 하등 상관없는 흐름으로 전개를 하였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은 계유정란 후 김종서일파를 죽이는데 적극적이였고, 경혜공주의 부마 영양위 정종(이민우)은 계유정란의 공신으로 영양위가 되었다. 한마디로 김종서 일가에게 사육신, 정정은 불구대천지 원수였다. 또한, 사육신들 대부분은 단종을 폐위하고 수양을 옹립하는데 적극적일뿐 아니라 공신이 되기도 한다.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이민우)은 세조척살을 앞둔 전날밤 처음으로 경혜공주(홍수현)와 합방하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공주의 남자를 보면 정종은 참으로 불쌍한 영혼이 아닐 수 없다. 1450년 결혼 한지 7년이나 1456년 5월 말이 되어서 첫날밤을 보냈다니 말이다. 경혜공주를 너무나 끔찍이 사랑해서 지켜준다는 설정은 좋으나 경혜공주의 이런 모습은 소박이나 이혼사유가 된다. 한마디로 개연성 무시의 한 장면이다. 무슨 오빠 믿지 손만 잡고 잘께도 아니고 말이다.



어쨌든, 정종은 김승유를 찾아가 수양대군(세조)의 척살에 실패해서 “김승유 너가 살아남는다면 경혜공주를 자신이 돌본 것처럼 돌봐 달라”고 한다. 정종은 오지랖도 넓다. 자신을 원수로 생각하는 승유를 찾아가 경혜공주를 돌봐달라고 말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원수인지도 모르는 승유는 넙죽 경혜공주를 돌보겠다고 한다. 언제부터 공주의 남자가 엽기 스릴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정종이 단종(상왕)을 찾아가 세조를 척살할 것이라고 말을 하고, 사육신과 회합을 하는 장면이 있고, 세조척살에 실패를 하자, 사육신들과 함께 끌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리 드라마에서 불가능은 없다고 하지만, 공주의 남자의 구성은 정말 너무한 구석이 많다. 불구대천지 원수인 사육신 중의 한명인 이개가 김승유의 스승으로 나오고, 또 다른 계유정난공신인 정종이 친구가 된다.


더군다나 김승유가 사육신과 회합을 하는데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들이 김종서를 죽인 것에 반성을 하거나 하는 대목은 없이 대호의 아들이 동참했다며 김종서가 지하에서도 자랑스러워 하였을 거라고 대사를 치게 만들어 버렸다.


 


드라마란 허구를 개연성 있게 끌고 가야 한다. 하지만, 공주의 남자에서 개연성은 전혀 무시되고 있다. 단지, 김승유와 세령공주의 사랑 놀음 밖에 없다. 더불어 오지랖 넓게 안 끼는 곳이 없다. 그냥 사랑 놀음만 하면 안되나? 역사의 현장에서 오물은 투척하지 말고 말이다.


정종은 사육신들과 모의를 하고, 창덕궁 연회장에서  "상왕전하 제가 상왕을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정종은 사육신과 세조 척살과 단종복위를 할 수 있었을까? 이는 세령이 신면이 쏜 화살을  우사인 볼트처럼 미리 달려가 승유대신 맞는 것보다 어렵다. 왜냐하면 정종이 1456년 6월 1일 창덕궁 연회에 참석할 수 없고, 사육신들과 회합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종은 1456년 6월 11일(윤) 세조에게 성삼문이 넘겨준 옥새를 받는 날 금성대군과 연루되어 유배를 떠나야 했다.  다만 당시 경혜공주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정종의 유배를 늦추는 기지(꼼수?)를 발휘한다. 꼼수인줄 알고 있던 세조는 대신들의 유배를 보내라는 간언에도 정종의 유배를 늦추어 준다.


그리고 정종은 양근으로 수원으로 유배를 떠난다. 사육신들의 단종복위 사건으로 관련도 없는 정종도 고신을 당하고 재산도 빼앗기는 피해를 입는다. 사육신의 세조 척살 단종복위 사건이 일어난후 1456년 6월 27일 정종은 전라도 광주로 옮겨진다. 

공주의 남자에서처럼 사건현장에 있었다면 정종과 경혜공주는 도플갱어 일지 모른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는 불가능이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 작가들이 얼마나 실존인물 김승유와 세령의 사랑이 핏빛사랑이 아니였으면 역사를 파괴하면서까지 둘의 사랑을 핏빛으로 만들려 했을까? 그만큼 작가들 스스로 자신들의 작품을 억지로 역사파괴를 해야할 만큼 자신이 없었는가 보다..

실시간 생방송 사극용 쪽대본 시나리오가 개연성있고 치밀할 수가 없는건 당연하다. 가장 기본이 되는 뼈대에 해당하는 사건과 인물간 관계를 제대로 만들어 낼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인 사실을 충분히 살리고 허구적인 모습을 극중에 녹였다면 충분히 현재 공주의 남자의 실시간 생방송 사극보다 치밀하고 개연성 있고 극에 몰입할수 있는 비극적인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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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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