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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는 정기준(가리온)의 시신해부를 통해서 후음(목구멍)소리에 해당하는 상형문자
를 만들어 낸다.

 

시신해부와 천지계 문신는 극중 긴장감을 위한 도구로서 작가는 유용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선덕여왕에서 보름날 일식만큼이나 황당한 설정이다. 한마디로 당시 조선 시대의 상황을 도외시한 설정이다.

 

분명 세종 이도는 극중 처럼 털털한 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눈물도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신하들과 논쟁을 하면서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눈물로 호소를 하기도 한다.

 

더불어 자신의 생각이 확고할 때는 논쟁으로 신하들의 논리를 무력화 시키기도 한다.

 

신하들과 대화를 하다 대화가 안되면 일반사람들처럼 신하가 물러나면 고루하고 생각이 낡았다고 뒷담화까지도 하면서 웃기까지 한다.

 

세종 이도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근엄함과는 차이가 많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니 뿌리깊은 나무에서 이도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세종 이도를 바로 찾아주기 프로젝트와도 같기는 하다.

 

하지만, 세종 이도는 문신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뿌리깊은 나무에서 처럼 천지계원인 신하들에게 문신을 했을 가능성은 없다. 한마디로 개연성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런 세종 이도가 한글(훈민정음)때문에 시신해부를 한다는 발상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글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2011/11/10 - [역사IN드라마/뿌리깊은나무] - 뿌리깊은 나무, 밀본 가리온 시신해부와 백두산이 장백산? 독도는 다케시마? 엄청난 차이점
2011/11/10 - [역사IN드라마/뿌리깊은나무] - 뿌리깊은 나무, 가리온 정기준 시체해부 한글 만든다? 도 넘은 설정



어쨌든 훈민정음의 기초는 완성이 되었고, 이를 이용한 글자를 써보이는 장면에서 소이는 딴 생각을 하고 있다. 소이라고 써 보인 세종은 뻘춤할 수밖에 없다. 글이 있어도 읽을 수 없고, 말을 할 수 없다면 소이에게는 한자나 한글이나 별반 차이도 없다.

 

더군다나 소이나 채윤은 이미 한자를 자유롭게 쓰고 있으니 한글이 있으나 없으나 별반 다르지도 않을 것이다. 소이가 강채윤이 남긴 벽서를 생각하며 딴 생각을 하는 것 처럼 그렸지만, 뿌리깊은 나무는 이를 간과한 것 같다. 그러니 소이가 한글을 보고도 반응이 신통치 않은 것은 일견 이해가 가는 장면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어리석은 백성이 자신의 의사를 글로서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변곡점이 소이와 강채윤이 글을 몰라서 자신들의 가족이 몰살되었다는 지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한자를 자유자재로 구사한 소이나 강채윤에게는 한글의 필요성이 있었을까? 이미 강채윤이나 소이는 기득권에 편입된 상태인데 말이다.


 

어쨌든, 뿌리깊은 나무에서 밀본의 수장 정기준(가리온)은 세종의 보위세력이나 다름없는 집현전을 없앨 궁리를 한다.

 

밀본의 수하 중에서도 집현전의 두번째 고위직인 직제학에 심종수가 있다. 심종수도 집현전이 없어저할 부당한 세력이라고 생각했을까?

 

뿌리깊은 나무에서 중대한 설정의 오류는 집현전이 단순히 국왕 세종 이도의 친위세력이라고 생각한 점이다.

 

그러니 집현전을 태종 이방원이 세종 이도가 가지고 놀 놀이감으로 생각하는 측면이 있지만, 세종 이도는 집현전을 통해서 문치를 해 나갈 것이라고 설정한 것이다.

 

집현전은 고려 인종시절에도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는 삼국사(삼국사기)의 김부식도 집현전의 고위직에 있었다. 그 만큼 연원이 오래된 조직이 집현전이다. 단지 집현전이 집현전 답게 조직화 되어 있고, 독립기관으로서의 위상을 갖게 된 것은 세종 때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에서 처럼 이도가 요구를 해서 이방원이 마지못해 승락하고 개에게 먹이를 던져주듯이
집현이란 이름을 만든 것이 아니다.

 

태종 이방원의 측근이 박은이 집현전의 독립기관화를 상소하고 세종 이도가 이를 받아 들이고, 박은을 집현전의 관리책임자인 직제학에 임명하고, 부제학에 신숙주의 아버지 신장을 임명한다. 신장은 그 후 직제학에 오른 후 7년여 봉직을 하고 물러난다.

 

그렇다면 집현전이 단순히 왕의 직할부서의 역할을 한 것 일까? 그렇지가 않다. 집현전은 끊임없이 세종 이도의 정치에 딴지맨 역할을 한다. 조선은 사헌부, 사간원 등 수 없이 많은 왕의 독점적 권력을 비판하고 견재하는 수단을 가지고 있었는데 또 하나의 비판기관을 가지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반대가 훈민정음의 부당함을 상소한 것도 집현전이었다. 부제학 최만리로부터 직제학과 사육신의 하나인 하위지 등 관련자만 7명이나 있었다. 집현전은 20명의 상설기관이지만, 내 놓고 반대한 사람이 7명이라면 대다수가 반대했다고 할 수 있다. 나머지 이개나 박팽년, 성삼문 등은 왕이 시키니 한다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이 공법(세법)개정을 시도하자 밀본은 세법개정이 성리학을 말살하는 정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견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세법에 반대하는 것 처럼 비춰졌을 것이다. 또한, 세법에 가장 반대한 세력도 집현전과 수 많은 위정자 들이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은 백성을 생각해서 기득권 세력에 반하는 세법(공법)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많은 시청자들이 이에 동감을 표하고 기득권에 대항한 세종과 기득권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위정자들을 생각하고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종의 세법개혁은 기득권 말살과는 하등 상관이 없고, 오히려 세법개혁은 기득권층을 강화하고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하는 개혁이었다. 그래서 집현전을 비롯해서 수 많은 조직에서 반대를 한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성리학들이 반대한 이유는 세종의 세법(공법)에는 문제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종의 세법은 일견 세금감세 정책이었고, 모두 세금이 감하게 되는 정책이었지만, 가진자들에게 세금을 감세하는 일괄 부자감세정책이었다. 현재의 소득세는 누진제로 되어 있어서 부자가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정책이다. 하지만, 세종의 공법은 평등과세였다. 100을 가진자는 30의 세금을 냈는데 바뀐 정책은 100을 가진자에게 10만 부담하게 하는 감세였다. 못가진 자는 세금의 혜택이 일부 있었지만, 절대적인 혜택은 부자들이 보는 기득권을 지키는 정책이었다.

 

그래서 조선 세종 시대의 공법은 논란 끝에 전체적으로 감세가 되는 기본 골격에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는 방식으로 누진되는 누진세로 바뀌게 된다. 한마디로 세종 시대 사대부들은 요즘의 부자들과는 다르게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부자들에겐 있을 수 없는 정책이지만 세종시대 권력자들은 기본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었다. 워린버핏은 세종 시대 관리자에게는 기본적으로 가진 생각들이었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글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2011/11/02 - [역사IN드라마/뿌리깊은나무] - 뿌리깊은 나무, 세종 세법 밀본 기득권말살 정책? 부자감세 위정자들 워린버핏세 주장
 

그러니 뿌리깊은 나무가 얼마나 잘못된 설정을 했는지 쉬이 알 수가 있다. 세법을 반대한 이유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 기득권을 버리고 나라의 재정과 부익부 빈익빈을 없애자는 반대였던 것이다.

 

집현전에서 또 다른 반대는 불교에 대한 반대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내불당 사건과 불경을 편찬을 들어서 밀본이 성리학을 말살하는 정책이라고 하지만, 이 또한 집현전에서 반대를 한다. 물론, 뿌리깊은 나무에서 내불당 사건을 예시로 들었지만, 내불당 사건은 한글이 창제된 후의 사건이다.

 

내불당은 1446년 소현왕후가 사망하고 세종이 내불당을 문소전 뒤편 북서쪽 궁궐 내에 불사를 만들자 반대를 한 것 이다. 뿌리깊은 나무 작가 김영현은 좋은 작가임에는 분명하고 시청자를 끄는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출중하지만, 개연성과 리얼리티도 없는 말이 되지 않는 설정을 함으로서 자신의 역량을 깍아 먹는 경우가 많이 있다.

 

좀더 깊숙히 생각하고 자신의 시나리오를 검증했다면 쉬이 바꿀 수 있는 설정들이다. 문신, 시신해부, 내불당 언급과 집현전설치와 없애기, 세법은 그 중 대표적인 설정의 오류이다.

 

아마도 사사건건 반대를 하고 딴지를 거는 집현전을 없애고 싶었던 사람은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 이도라면, 가장 먼저 집현전을 없애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밀본의 본원 정기준이 세종 이도의 직할 보좌기관인 집현전을 없앤다고 나서니 얼마나 속으로 쾌재를 불렀겠는가?

 

오죽하면, 세종 이도는 집현전의 반대에 궁궐을 떠난 적이 있었다. 세종 이도는 태종 이방원이 세운 흥천사에 불탑을 중건하고 경천회를 개최하려고 했다. 하지만, 집현전을 비롯한 사간원, 대간, 성균관 등의 반대에 직면한다.

 

그래서 상소를 아예 받지 않도록 조치를 하지만, 언로가 막혔다고 대대적으로 들고 일어난다. 2년여 동안 끊임없이 반대를 하자 세종 이도는 꼼수를 내고 흥천사 사리탑 경천회를 하도록 지시하고 왕에게 반대할 수 없도록 온양행궁으로 온천욕을 떠나버린다.

 

임금이 승정원에 이르기를,
온정(溫井)에 거둥하는 사이에 흥천 사리각(興天舍利閣)에서 경찬회(慶讚會)를 베풀면 어떨까.”

거둥하실 때 그것을 하시면 언관(言官)들이 번거롭게 청하지 못할 것이니, 하교하심이 참으로 지당하옵니다.

다만 국도(國都)를 비우실 때이므로 공양(供養)할 여러가지 물건을 지공하기가 어려울까 하오니, 서울에 남아 있는 승지로 하여금 호조와 같이 의논해서 지공해 쓰고 환궁하신 뒤에 주달(奏達)하게 함이 온당할까 하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알았노라.”
- 세종 24년 1442년, 2월 21일 


뿌리깊은 나무가 밀본 본원 정기준(가리온)을 통해서 집현전을 없애려 한다는 설정을 넣은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단순히 집현전을 왕의 친위세력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집현전을 믿지 못하는 세종이 비밀세력 천지계를 조직하고 있다는 설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집현전을 없앤 이는 다름 아닌 세조 수양대군이었다. 수양대군은 집현전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박팽년, 성삼문을 훈민정음 창제에 깊이 관여했고, 광평대군이 이를 주도한 것으로 그리고 있지만, 특히 언문 훈민정음에 관한한 수양대군만큼 아는 이도 없었다.
 

 


세조 수양대군은 세종과 같이 성리학과 잡학으로 천시하는 군사, 농학, 천문, 지리, 수학 등에 능했고, 불교를 탄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도 천시하지 않았다. 가장 적극적으로 훈민정음을 실생활에 사용한 군주와 왕실은 세조 때였다. 오죽하면 언문(훈민정음)으로 신하들에게 지시까지 했겠는가? 공주의 남자에서 세령공주가 김승유를 살리자고 혈서로 쓴 한자 "승법사 여리"는 한글인 "승법사 여리"라고 했어야 개연성과 리얼리티가 있다.

 

어찌보면 뿌리깊은 나무에서 정도전의 밀본 계원은 박팽년, 성삼문, 이개, 하위지 등 사육신으로 그려야 개연성과 리얼리티가 있지 않을까 할 정도이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비난 받는 수양대군과 신숙주가 훈민정음 창제에 깊이 관여하였다고 그릴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개연성도 없는 광평대군을 천지계를 이끄는 왕실 종친세력으로 그리고, 신숙주가 뿌리깊은 나무에 등장하지 않는 이유이다.

 

수양대군이 집현전을 없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많은 사람들이 사육신의 다수가 집현전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 말을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집현전이 공론만 있고, 사사건건 임금이 하는 일에 반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조 수양대군에게 왕이 하는 일에 딴지만 거는 집현전이 좋아 보일리가 없는 것이다.

 

세조 2 1456집현전(集賢殿)을 파하고, 경연(經筵)을 정지하며, 거기에 소장(所藏)하였던 서책(書冊)은 모두 예문관(藝文館)에서 관장하게 하라.

 

뿌리깊은 나무에서 밀본은 왕은 꽃이고 정승을 중심으로 한 신권은 나라를 지탱하는 뿌리라고 언급을 하면서 조선은 신권의 나라라고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신권 강화의 핵심은 사간원, 사헌부, 집현전이 중추였다.

 

밀본이 추구하는 성리학의 나라, 신하들의 나라의 논리를 집현전에서 집대성하고 발전시켰는데 신권을 지상명제로 생각한다는 밀본이 성리학의 뿌리와 논리를 제공하는 집현전을 없앤다는 설정이 가당키나 한가? 왕에게 집현전은 버릴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는 계륵과 같은 존재였을 뿐이다.

한마디로 뿌리깊은 나무에서 밀본 정기준이 성리학의 나라를 세우려고 집현전을 없애려 시도한다는 설정은 자책골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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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www.balloonking.co.uk BlogIcon balloons by post 2011.12.11 2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은 나가 이제까지 오늘 만난 제일 지도 블로그이다. 나는 나가 여기에서 본 장소로 진짜로 황홀케 했다 나는 그(것)들을 언젠가 방문하고 싶다. 그것을 유지하십시오!

  3. Favicon of http://perdredupoidsvite.blogs.fr BlogIcon Yoshie 2011.12.16 0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블로그 입니다 몹시 재미 ! I 포기에 아버지 !

  4. Favicon of http://www.onlineleatherhandbags.com/ BlogIcon Leather Handbags 2011.12.24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치킨 마르 살라, 새우 scampi (이 에피타이저이나 파스타와 입장에 대한 추가 수),

  5. Favicon of http://www.suits4menonline.com/ BlogIcon white suit 2011.12.24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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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부족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ㅎ

  7.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 훈민정음 해례(교본)은 세자(문종), 수양대군(세조),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박팽년 등이 세종의 지시와 교정을 받고 만들어진다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kso-c-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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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글)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쉽게.. 검색창에 "언문"이 무슨

  9. Favicon of http://www.balloonking.co.uk/40th-birthday-balloons-2 BlogIcon 40th birthday balloons 2012.07.14 0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잘보고 갑니다~ ㅎㅎ
    매력적인 블로그 기대할께요~ ^^

  10. Favicon of http://rocville.com/?p=News BlogIcon Delbert 2012.07.21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들에게 문신을 했을 가능성은 없다. 한마디로 개연성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다

  11. Favicon of http://www.1-health-insurance-quotes.com/anthem-lumenos/ BlogIcon lumenos 2012.07.24 16: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 이도는 문신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뿌리깊은 나무에서 처럼

  12. Favicon of http://insurancedirectly.com/health-insurance-quotes/is-aarp-health-care-plans.. BlogIcon aetna vision plan 2012.08.08 0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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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긴것은 세종대왕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말로 세종 이도를 극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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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병훈은 조선왕조실록에서 극히 드물게 나온 숙빈최씨의 성장과정을 드라마화는데는 무난하다고 할 수 있으나, 동이(숙빈최씨)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함을 드러내고 말았다.

  19. Favicon of http://www.edgeptown.com/index.php?ch=style&sc=life&sc2=features&sc3=&id=41788 BlogIcon petsafe invisible fence installation 2012.12.27 15: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세종 이도는 문신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뿌리깊은 나무에서 처럼 천지계원인 신하들에게 문신을 했을 가능성은 없다. 한마디로 개연성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20. Favicon of http://essentialswaterbarrel.xanga.com/ BlogIcon katadyn pocket filter 2013.01.05 2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구성으로 이루어 졌다. 하지만, 미션의 내용과 해결하는 방법은 이전 이병훈 사극이 주었던 치밀함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21. Favicon of http://naughtystrawberry.co.uk/ BlogIcon dildos 2013.02.15 1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은 실제로 마당에 많은 식물을 성장하는 데 사용되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토지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의 집 뒤에 땅을 많이 사용할 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주의 남자>에서 성삼문, 신숙주, 이개 등 한글창제에 관여한 인물이라고 알려진 사육신이 나온다.
 
10월 9일이 한글날이기는 한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에 대한 상식이 얼마나 잘못된것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10월 9일이 훈민정음(한글)을 만든 565회 한글날이라고 한다. 이부터 잘못된 상식중에 하나다.

훈민정음(한글)이 만들어진 것과 반포일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더군다나 훈민정음 창제에 성삼문 신숙주는 훈민정음 창제에 커다란 공이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성상문과 신숙주, 이개 등 사육신을 포함한 집현전은 한글창제에 전혀 관여한적이 없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이글을 끝까지 읽고 나면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잘못된 암기식 역사교육을 받았는지 알게될 것이다.
 

<뿌리깊은 나무: 뿌리>는 세종 이도가 훈민정음을 만들게 되는 계기를 장인 심온의 죽음으로부터 찾고 있다.


심온은 사은사로 명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심온과 관련된 자들의 문제로 심온 또한 자리를 보전할 수가 없었다.


요동에서 돌아오는 심온에게 서울의 사정을 알리려는 자가 있었는데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심온의 노비 어리숙한 석삼으로 그렸다.


석삼이 어리석어서 심온에게 정확히 말로써 밝히지 못하고 또한, 글로써 심온에게 전하지 않아서 심온이 결국에는 서울로 돌아왔지만, 유배를 떠나고 심온이 자결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뿌리 깊은 나무는 어리석은 백성이 쉽게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글이 있었다면 심온도 죽지를 않았을 것이고 석삼이도 죽지 않았을 거니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자를 만들어 자신이 뜻한바를 글로써 표현한다면 억울함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결심을 하는 변곡점으로 삼은 것이다.




이는 훈민정음 반포 기념 정인지의 서문에도 명확히 나오고 있다.


우리동방의 예악 문물(禮樂文物)이 중국에 견주되었으나 다만 방언(方言)과 이어(俚語)만이 같지 않으므로, 글을 배우는 사람은 그 지취(旨趣)의 이해하기 어려움을 근심하고,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사람은 그 곡절(曲折)의 통하기 어려움을 괴로워하였다. 옛날에 신라의 설총(薛聰)이 처음으로 이두(吏讀)를 만들어 관부(官府)와 민간에서 지금까지 이를 행하고 있지마는, 그러나 모두 글자를 빌려서 쓰기 때문에 혹은 간삽(艱澁)하고 혹은 질색(窒塞)하여, 다만 비루하여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사이에서도 그 만분의 일도 통할 수가 없었다.

- 세종 28년, 1446년 9월 29일(음)  훈민정음 반포


 그런데 왜 세종은 훈민정음(한글)을 비밀스럽게 만들었을까? 당시의 시대상황을 알게 된다면 세종 이도가 비밀프로젝트로 훈민정음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유학자의 다수는 한자를 제외한 문자는 오랑캐들이나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조선이 소중화인 것은 중국과 같은 문자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다. 왜 스스로 문자를 만들어 오랑캐가 되어야 하느냐고 하던 사람들이 당시의 사림파 유학자의 대다수였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반포하고 <언문청>,<정음청>을 만들어서 수많은 저술활동을 한다.

세종은 수양대군(세조)에게 석가의 일생을 훈민정음으로 기록한 <석보상절>을 만들게 하였다. 더불어 세종 스스로 석가의 탄생과 일생을 다룬 <월인천강지곡>의 대서사시를 훈민정음으로 만들었다. 세종과 세조는 불교와 훈민정음(한글)과는 땔 수 없는 불가분의 존재였다.


언문청에서는 <사서>를 훈민정음으로 번역케하고, <소학>, 농서나 삼강행실도 등 모든 방면에 훈민정음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중종반정을 한 사림파들이 1506년 9월 2일 중종반정 후 가장먼저 한일은 9월 4일 <언문청>을 없애는 일이였다.


세종이 죽고 문종이 즉위한 초년에도 <정음청>을 없애라는 끝없는 상소가 올라온다.

하지만, 문종이 죽고 단종 즉위년 1452년 12월 2일 <정음청>을 없앤다.


사림파가 세조 죽이기를 감행한건 겉보기에는 단종폐위에 있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불교와 훈민정음과 당시에는 잡기라고 천대시한 천문, 지리, 국방 등 다양한 학문에 집착한 세조(수양대군)을 이단이라고 하는 데 서도 찾을 수가 있다.


오직 <유학> 그것도 주희(주자)에 집착해 국가경영에 유학만이 유일한 <종교>라고 생각한 사림파 사람들에게 세조나 세종은 이단이었다. 세종이 죽고 나서 세종은 초기에는 요.순이었지만, 말년에 망년이 들었다고 공격했던 자들이 당시 사림파 유학자였다. 중종반정에 성공한 세력에게는 세조가 죽어야 조선이 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신숙주와 성삼문이 훈민정음 창제에 깊이 관여를 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학자군에서 조차 말이다. 하지만, 신숙주와 성삼문이 요동의 황찬을 찾아간 일은 훈민정음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신숙주와 성삼문이 명나라의 한림학사인 언어학자 황찬을 찾아간 일은 <운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운회 요즘으로 치면 영어사전처럼 한자의 정확한 발음을 통일 시키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한자의 발음은 중구난방이여서 통일되지 않았다. 조선뿐만 아니라 명나라도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오히려 당나라 시대 고어 발음은 조선이 더 비슷하고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세종은 당시 <한자>의 정확한 발음을 알고자 성삼문과 신숙주를 파견했던 것이다.


집현전 부수찬(副修撰) 신숙주(申叔舟)와 성균관 주부(注簿) 성삼문(成三問)과 행 사용(行司勇) 손수산(孫壽山)을 요동에 보내서 운서(韻書)를 질문하여 오게 하였다.


세종 27년, 1445년 1월 7일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훈민정음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보면 쉬이 알 수 있다.  훈민정음 창제는 신숙주와 성삼문이 요동의 황찬을 찾아가 <운서>를 질문하기 전인 세종 25년 1443년 12월 30일 이다. 운서란 중국의 발음과 훈을 기록한 <홍무정음>을 말하는 것이지 한글(훈민정음)의 문자, 운서와는 하등 관련이 없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 세종 25년 1443년 12월 30일



훈민정음이 만들어지고 나서 공식적으로 반포된 때는 위에도 언급했지만, 세종 28년 1446년 9월 29일(음) 이였다.


1445년 1월 7일부터 황찬을 만나러간 신숙주와 성삼문, 손수산은 <운서>에 대해서 알아오고 1447년 결과물을 내 놓는다. 이름하여 동국정운이다.


이달에 《동국정운(東國正韻)》이 완성되니 모두 6권인데, 명하여 간행하였다.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 신숙주(申叔舟)가 교지를 받들어 서문(序文)을 지었는데

..중략..

이에 사성(四聲)으로써 조절하여 91운(韻)과 23자모(字母)를 정하여 가지고 어제(御製)하신 《훈민정음》으로 그 음을 정하고, 또 ‘질(質)’·‘물(勿)’ 둘의 운(韻)은 ‘영(影)’ 으로써 ‘내(來)’) 를 기워서 속음을 따르면서 바른 음에 맞게 하니, 옛 습관의 그릇됨이 이에 이르러 모두 고쳐진지라, 글이 완성되매 이름을 하사하시기를, ‘《동국정운(東國正韻)》’이라 하시고, 인하여 신(臣) 숙주(叔舟)에게 명하시어 서문(序文)을 지으라 하시니.. 생략..

- 세종 29년 1447년 9월 29일


신숙주가 죽고 나서 쓰여진 신숙주 졸기에도 정운에 대한 언급을 한다.
 

정음(正音)을 알고 한어(漢語)에 능통하여 《홍무정운(洪武正韻)》을 번역하였으며, 한음(漢音)을 배우는 자들이 많이 이에 힘입었다. - 성종 6년, 1475년 6월 21일


홍무정운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한 저서가 <동국정운>인 것이다.
 

세종조(世宗朝)에 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 등을 보내어 요동에 가서 황찬(黃瓚)에게 어음(語音)과 자훈(字訓)을 질정(質正) 하게 하여 《홍무정운(洪武正韻)》과 《사성통고(四聲通考)》 등의 책을 이루었기 때문에,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이에 힘입어서 한훈(漢訓) 을 대강 알게 되었습니다. - 성종 1487년 2월 2일


세종께서 또 언문 글자로써 화음(華音)을 번역하고자 하여 한림학사 황찬(黃瓚)이 죄로써 요동에 유배 되었다는 말을 듣고 공에게 명하여 조경사(朝京使)를 따라 요동에 들어가서 황찬을 보고 질문하게 하였다. 공은 말만 들으면 문득 해득하여 털끝만큼도 틀리지 아니하니 황찬은 크게 기특히 여겼으므로 이로부터 요동에 갔다온 것이 무릇 13번 이었다

- 신숙주 묘비명 <동문선>



황찬에게 간 일은 훈민정음 때문이 아니라. 신숙주의 묘비명에 있는 것처럼 언문(훈민정음) 한글로 정확한 화음(한음), 한자훈 번역하기 위해서 황찬을 13번이나 찾아간 것이다.


하지만, 많은 학자나 소설가들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위해서 성삼문, 신숙주가 요동까지 찾아가 명나라 몰래 유배된 황찬을 찾아 훈민정음 창제에 필요한 정보를 배워왔다고 퍼트린 것이다.


년도별로 정리를 하면 집현전학사들을 비롯해서 신숙주와 성삼문이 훈민정음 창제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443년 12월 30일(음) 훈민정음 창제 세종대왕 직접 만듬
1445년 1월 7일 성삼문, 신숙주, 요동 한림학사에 중국(화음) 운서(홍무정운)에 대해서 질문
1446년 9월 29일(음) 훈민정음 반포
1446년 12월 이과와 이전의 취재에 훈민정음 시험

1447년 4월 20일 함길도 자제의 관리 선발에 훈민정음을 시험하게 하다
1447년 9월 29일 신숙주, 홍무정운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해 동국정운을  만듬


조금만 훈민정음 창제에 관심이 있었다면 황당한 소설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과 드라마가 역사가 되는 현장에 다시금 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제발 한글창제를 위해서 황찬을 찾아가는 황당한 설정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에서 비밀조직 프로젝트 팀으로 성삼문이 한글창제에 깊이 관여했다는 것으로 봐서 뿌리깊은 나무도 어쩔수 없는 선택을 할것같다는 생각이다. 이는 또다시 사육신 성삼문의 신화창조에 일조할것 같다.
 
가장 적극적으로 훈민정음을 사용한 이는 세조(수양대군)과  비인 정희왕후였다. 정희왕후는 수시로 대신들에게도 언문(훈민정음)으로  명령을 내리기도 했었다.
 


공주의 남자에서 세령공주는 계유정난 시 김승유만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갇혀있는 광에서 여리를 통해 한자로 쓰여진 혈서를 김승유에게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좀더 극중 리얼리티를 살렸다면 수양대군의 딸 세령공주는 한자 혈서가 아닌 훈민정음(언문)으로 "승법사 여리"라고 보내지 않았을까?


훈민정음(언문, 한글)은 세종대왕 스스로 만든 글자이다. 그것도 음운학에 조예가 깊었던 세종대왕이 말이다. 실록을 비롯한 고전들이 모두 세종(世宗)어제(御製) 세종임금이 만든 이라고 하는데 무슨 배짱으로 극히 일부 학자와 소설가들은 이를 부정하는지 알수가 없다.


대한민국은 한글날을 10월 9일로 되어 있지만, 세종대왕이 한글(훈민정음)을 창제한 1443년 12월 30일(음)을 기준으로 양력으로 환산해서 1월 15일로 복원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1443년 12월 30일(음) 훈민정음 창제일도 아니고, 1446년 9월 29일(음) 훈민정음 반포일도 아닌 훈민정음 혜례본에 책을 발간한 9월 10일(음)에 맞춘 정체불명의 양력 10월 9일 한글날은 뜸금 없다고 하겠다.


정상적으로 복원하자는데 북한(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조선글날 1월 15일로 했다고 빨갱이 따라하는 거냐며 너 빨갱이지라는 초딩 같은 소리는 하지 말자.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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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봉성 2011.10.08 0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세종대왕은 처음에는 중국어 발음을 표기하는 소리문자로서의 한글을 창제하였는데 이 부분에서 집현전 학자들과 마주치게 된다. 집현전 학자들이 반대한 것은 한글 창제를 반대한 것이 아니고 중국문헌을 중국식 발음으로 한글로 토를 달려고 한데 있는 것이다.

  2. 지나가던 이 2011.10.15 0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뿌리 깊은나무 인물 소개에 그런게 있었는지 몰랐네요
    그렇다면 진짜 실망인데
    요즘 드라마는 한국사람만이 아닌 외국인들도 보는데 더 신중해야 할일을 저렇게 어이없이 만들다니
    만약 저런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진짜 화날거 같네요
    제발 저따위로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역사를
    왜곡한다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죠 아니 만들지를 말아야겠죠

  3. 전휘정 2011.10.28 0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읽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군요.. 성삼문이 중국에 간것이 훈민정음과 관련이 없다는 것만으로 성삼문이 한글창제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완벽한 주장이 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단지 그이유만으로는 불충분한 것 같은데요..

  4. 이규삼 2011.11.08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글 창제가 뿌리깊은나무 극중내용이 틀림없다고 봅니다. 가림토 문자 인용하는이들은 신미대사를 말하는 이들이 있으나 세종대왕과 만남이 한글반포 이후였음으로 말이안되고, 환단고기의 가림토문자를 말하는 이들은 환단고기가 1911년에 완성된 책이므로 믿을것이 못됩니다. 집현전에 언문청을 만든것은 반포한 이후이므로 학사들의 역할도 직접적인 관계가 없을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검색해 보시면 세종대왕 단독 창제로 밖에 말할께 없읍니다.

  5. Favicon of http://www.angeljackets.com/ BlogIcon winter clothing 2011.11.16 1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종대왕과 만남이 한글반포 이후였음으로 말이안되고, 환단고기의

  6. Favicon of http://crossnh.tistory.com BlogIcon 성현도사 2011.12.09 0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그렇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_^

  7.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6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8.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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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제에 커다란 공이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성상문과 신숙주, 이개 등 사육

  12. Favicon of http://www.sbwire.com/press-releases/survival-warehousecom-helps-survivalists-.. BlogIcon survival radio amazon 2013.01.05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불어 정난공신이 되고자 이색의 후손들이 정치를 했냐는 거냐고 반문을 하면서 어이가 없고 개탄스럽다고 말을 한다. 도대체 정난의 주동자인 안평대군과 김종서와 황보인이 충신이라는 말인가?

  13. Favicon of http://1000moon.pe.ne.kr/board.php?board=Chunmoonhaeza&category=6&command=body.. BlogIcon hdhghh 2013.01.17 1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一聲雞已報春風
    새벽 닭 우는 소리 봄소식 알리네

 

<공주의 남자>에서 계유정란의 후반부를 극화하였다.


죽었던 김종서(이순재)가 김승유(박시후)의 아버지 하는 소리에 부활하고, 김승유로 하여금 단종이 있던 경혜공주(홍수현)의 사저로 가서 김종서가 살아 있음을 알리고 수양대군(박영철)이 반란을 일으켰음을 알리라 한다.


 


계유정란으로 김종서가 죽은 때는 4대문이 다 닫힌 1453년 10월 10일 새벽이었다. 당시에는 70년대처럼 통행금지가 있었고 저녁이 되면 4대문은 철통같이 방어하여 도성 입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다. 물론, 특별한 국가 중대한 사유가 있다면 4대문을 통과할 수 있지만 말이다.


수양대군이 반란을 계획하고 제일 먼저 장악한곳이 요즘으로 친다면 수도경비 사령부이다. 그리고 4대문를 장악했다.


서대문 밖에서 살고 있던 김종서가 단종을 만나려면 4대문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4대문은 수양대군이 이미 장악을 하고 있어서 김종서가 난을 진압하기 위해서 병조를 장악하려 진입하려 할 때도 4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공주의 남자>에서 김종서는 나는 첫째아들 김승규의 처의 집으로 피난을 가 있을테니 승유 너는 단종의 시어소가 있는 경혜공주의 사저로 가서 자신이 수양대군에게 테러를 당했지만, 살아 있음을 알리라고 하는 순간 역사와는 무관한 계유정란이 되어 버리고, 역사와는 1인치도 싱크가 맞지않는 공주의 남자 극중에서도 개연성이 사라져 버린다.


김종서(金宗瑞)가 다시 깨어나서 원구(元矩)를 시켜 돈의문(敦義門)을 지키는 자에게 달려가 고하기를,


“내가 밤에 어떤 사람에게 상처를 입어 죽게 되었으니, 빨리 의정부(議政府)에 고하여 의원으로 하여금 약을 싸 가지고 와서 구제하게 하고, 또 속히 안평 대군(安平大君)에게 고하고, 아뢰어 내금위(內禁衛)를 보내라. 내가 나를 상하게 한 자를 잡으려 한다.”


하였으나, 문 지키는 자가 듣지 않았다. 김종서가 상처를 싸매고 여복(女服)을 입고서, 가마를 타고 돈의문(敦義門)·서소문(西小門)·숭례문(崇禮門) 세 문을 거쳐 이르렀으나 모두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와 그 아들 김승벽(金承壁)의 처가(妻家)에 숨었다. - 계유정난 1453년 10월 10일



김종서가 수양대군의 피습으로부터 철퇴를 맞고 살아나서 가장 먼저한일은 여장을 하고 돈의문, 서소문, 숭례문의 3문을 집입하려 했다. 하지만, 수양대군의 수하에게 장악된 대문 지기들은 누구도 통과시키지 않았다. 한마디로 물샐틈이 없고, 천리지망이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김종서는 일단 둘째 아들 김승벽의 처갓집으로 피했던 것이다. 하지만, 수양대군이 보낸 자들에게 목이 잘린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김승규는 등장한다. 하지만, 둘째 김승벽은 등장하지도 않는다. 더불어 김승규의 아내와 외동딸이 등장한다. 김승규와 김승벽, 김승유의 어린 아들들은 유모들의 손에 의해서 난을 피하고 살아 남는다. 이들 후손은 200여년 후 복권이 될 때 까지 자신들이 김종서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살아야 했다.


최소한 <공주의 남자>가 사극을 빙자한 로맨스를 그린다고 해도 김종서의 후손에 대한 예의는 아니다. 혹시 공주의 남자의 작가들은 김종서의 살아난 후손들이 다들 임진왜란 이후에 족보를 훔치거나 돈을 주고 산사람들로 만들고 싶은 것인가? 아무리 사극이 역사를 왜곡하고 팩트를 비틀어야 재미가 있다고 한다는 사명을 감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극히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부분이다.

 


김종서는 서대문 밖에 있고 도성에 진입하려면 성문을 통과해야 한다. 성문을 제외한 도성은 5미터 이상의 높은 담장이 있다. 그리고 문은 수양대군이 지키고 있고, 단종이 있던 시어소인 경혜공주의 사저는 창덕궁 뒤편 계동이었다. 이 또한 수양대군의 반란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공주의 남자>에서 계유정란이 벌어지기 전 수양대군이 자신의 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령의 핏빛연서를 받고 말을 타고 도성 안에 있는 절로 찾아간다. 이미 수양대군에 의해서 장악된 도성을 쉬이 드나들 수가 없었다. 김종서가 철퇴를 맞고 도성에 진입하려고 여장을 하였음에도 도성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승유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타고 도성을 드나들고 있다.


하지만, 승유는 집에 문제가 있음 감지하고 도성 안에서 도성 밖 김종서의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수양대군과 우연히 스쳐 지나간다.


승유가 어찌해서 말을 타고 도성을 통과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경혜공주 사저 이전에 쥐새끼 한 마리도 통과못하게 계엄령이 처진 곳을 유유히 말을 타고 지난나, 


세령은 승유가 경혜공주 사저에서 잡혔다는 말을 듣고, 말을 타고 경혜공주의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세령은 경혜공주의 사저 앞에서 제지를 당한다. 요즘에도 광화문근처에서 시위를 하면 경복궁인근과 청와대 근처는 전경들로 물샐틈없이 차단된다. 안에 자신의 집이 있더라도 일일이 신분조회가 되어야 통과된다. 하물며 반정을 하고 언제 반란을 진압하려는 세력이 단종과 연락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소나 개나 말을 타고 무사통과 할 수 있다는 끔찍한 상상은 괘씸하다.




극중 긴장감을 위해서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우연히 못 본 척 아닌 척 스쳐지나가는 장면은 한 두 번은 있을 수 있지만, <공주의 남자>에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워야 한다는 식으로 우연이 필연이라고 모두 다 스쳐 지나간다. 너무나 많은 우연을 가장하면 긴장감도 개연성도 없을뿐더러 보는 이는 "또야" 라며 식상해한다.


계유정란의 긴박하고 극적인 묘사는 사라지고 승유와 세령의 사랑의 숨바꼭질을 위해서 계유정란이 이용된다고 해도 나름대로 개연성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신면은 수양의 명에 의해서 숨은 김종서를 잡기위해 승유를 살려준다. 승유를 살려주는 이유는 수양에 반기를 드는 숨은 세력을 일순간에 잡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신면은 마지막에 승유를 죽이려는 순간 승유는 또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신면은 개과천선하여 승유를 살려준다. 그정도 칼침을 맞았으면 죽어도 몇번은 죽었을 것이다. 승유가 반 수양세력의 숨은 중추가 된다는 설정임은 쉬이 알 수가 있다. 더불어 수양을 배신한 세령이 은연중에 승유를 돕는 다는 설정도 공주의 남자를 보는 사람이라면 예측할 수 있다.



문제는 절친이였던 정종과 신면과 김승유가 계유정란을 기화로 원수가 되고, 정권을 되찾으려는 정종과 하나가 되어 승유를 돕는 설정이라고는 하지만, 이들이 절친이 될수 있는 지 조차 불분명하다. 김승유의 역할이 계유정란에서 김종서의 둘째 아들 김승벽과 유사하다. 첫째 김승규는 김종서를 지키려다 죽었다.


김승벽은 난을 피해서 지방으로 숨어들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잡혀죽었다. 도망자 신세가 된 김승벽이 김승유인 것이다. 사실 김승유는 계유정란이 일어난 시기 이미 죽고 없었다. 김승유는 계유정란 시 어린 아들만이 있었을 뿐이다.

유부남에 자식도 있고 귀신이 된  김승유가 공주의 남자에서 등장하는 순간 공주의 남자는 산으로 간 것이다. 죽은자가 산자의 영역을 침범해서 역사속에서 놀아나는데 산으로 가지 않는다면 이상하지 않겠는가? 유령 김승유와 이루워질수 없는 며느리 세령과의 사랑이 아니라면 말이다.


1453년 계유정란시기 경혜공주는 18살이였다. 정종도 경혜공주와 비슷한 나이 때 였을 것이다. 신숙주의 큰아들 신면은 1467년 이시애의 난때 이시애와 내통했다는 누명을 쓰고 아버지 신숙주와 한명회와 그의 자식들이 구금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하지만, 신면은 이시애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장렬히 전사한다.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는 이시애의 난을 충동질하는 인물로 그려질 것이 자명하다. 그리고 신면과 우정을 회복하고 화해를 하는 장면을 연출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면이 이시애의 난을 즈음해서 장렬히 전사할 때 나이가 몇 살이었을까? 이시애의 난은 1467년이었다. 이때, 1453년 계유정란의 중심세력으로 그린 신면의 나이는 깜짝 놀랄 만큼 어린 나이였다. 한국나이로 30살 밖에 되지 않았다.


신면은 신숙주(1417년생)가 22살에 낳았으니 1438년생이다. 계유정란이 있는 1453년 10월 10일에 신면의 나이는 16살이었다. 장가는 갈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공주의 남자>처럼 계유정란에서 수양대군의 심복으로 친구들을 배신하고 중추적인 역할을 도저히 할 수 없는 나이라는 것이다. 신면의 아버지 뻘이거나 삼촌벌인 계유정란 이전 한참전에 죽은 유부남이였던 김승유와의 우정은 가당키나 한가? 이를 두고 개연성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김종서가 계유정란으로 죽을때 김승유의 남은 자식들의 앞날을 생각하고 자신보다 먼저 죽은 김승유를 떠올렸다면 모를까?

신면은 16살 이전 단종 나이때 세령을 짝사랑하고 김승유와 정종과 기생집에서 농땡이를 치기도 한다. 신면은 실제 경혜공주보다 2살이나 어리다. 세령은 경혜공주보다 한참더 어렸을 것이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수양대군의 첫째 아들로 나오는 숭이 신면과 같은 1438년생이다. 숭의 동생일수 밖에 없는 세령은 이보다 나이가 어릴수 밖에 없다. 그런데 공주의 남자에서는 경혜보다 최소 3살은 어렸을 세령은 경혜공주와 친구처럼 지내고 경혜공주 노릇도 한다. 경혜공주의 동생으로 나오는 의숙공주는 1442년생으로 단종보다 어렸다. 하지만 공주의 남자에서는 단종보다 어른으로 나오고 세령과 나이차이가 없이 나온다.

단종은 1441년생으로 계유정란때 13살이였다. 한없이 어린 아이로 그려지는 공주의 남자에서 단종과 신면는 나이차이가 3살밖에 나지 않는다. 신면이 단종의 나이때와는 천지차이가 난다. 공주의 남자로만  본다면 단종은 어디가 모자란 모지리 마마보이인데 문종은 조선의 미래를 맡긴 것이다. 신면이나 정종이나 김승유는 성숙하거나 극히 정상적이고 노안이였을 것이다. 재미있게도 공주의 남자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수양대군의 쿠데타가 합리화 되는 순간이다.
 

신면은 승지(承旨)가 된 지 5년이 되었어도 일찍이 과실이 없었으며, 임금의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 자못 자상하고 명확하였다. 죽을 때의 나이가 30이며, 아들이 둘이 있으니, 신용관(申用灌)과 신용개(申用漑)이다. - 세조 14년(1467년) 이시애 난을 진압하다 죽다.


이시애의 난이 일어난 시점에 신면의 두아들의 나이는 5,6세였다.



<공주의 남자>에서 칼맞은 승유가 피뭍은 옷을 입고 효수된 김종서를 우연히 볼 수 있고, 그 앞에서 무릎까지 꿇고 피를 흘리고 있는데도 효수된 장소에 있던 관원들이 모른체하고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면 수양대군의 쿠데타는 실패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수양대군과 일족들이 김종서가 효수된 장소를 지나고 이를 승유가 발견해서 수양대군을 죽이려다 궁녀 여리인줄 알았던 세령이 알고보니 수양대군의 딸인 것을 알고 놀랐다는 설정은 개연성 제로의 우연이 필연이 되는 설정이다.

 


하지만, <공주의 남자>에서는 바보 김승유가 천재 김승유로 반전되는 설정이고 이들 두사람의 사랑이 더 이상 순탄치 않겠다고 말을 하지만, 오히려 공주의 남자의 복선은 그래도 승유와 세령은 국경도, 나이도, 죽음도, 가족의 철천지원수도 넘을 수 있는 사랑의 묘약을 먹어서 “아버지 수양이 원수이지 아버지를 버린 세령 니가 수양대군은 아니지 않냐“는 극히 단순한 명제로 새드엔딩이 아닌 해피엔딩이 될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어쨌든, 김승유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 어디로 갔을까? 아마도 김종서의 수하였던 이징옥의 품으로 달려가 아버지 김종서가 죽었다고 말하지 않을까? 이징옥이 계유정란이 있은 10일 후인 1453년 10월 20일에 이징옥이 반란을 일으키니 말이다. 반란으로 이징옥은 죽지만, 김승유가 계유정란시기 무수히 많은 칼침을 맞고도 죽여도 죽여도 살아나는 귀신 좀비처럼, 오지랖 김승유는 단종에서 세조시기 일어난 모든 반란사건에 연루가 될 것이다. 물론, 공주의 남자에선 반수양대군 세력의 아지트 빙옥관을 만들어 암중거사를 준비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계유정란 시기 승유와 세령의 행동은 닥치고 사랑놀음을 즐기는 사람들에는 극적으로 보이겠지만, 극히 개연성 없는 행동이고 승유와 세령의 연기는 변한 것이 없다. 한마디로 이들에게 감정이입이 안된다.


아무리 대본이 그때 그때 상황극을 보듯이 변하는 잉크도 마르지 않는 쪽대본이라고 해도 제대로 대본을 숙지했는지 조차 불분명하다. 단지 자신들에게 대사가 주어졌으니 한다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가장 클라이 막스 반전의 상황인 세령이나 승유보다 오히려 세령의 몸종으로 나오는 여리의 세령과 승유를 바라보는 연기와 신면(송종호)의 흔들리는 심리적 변화를 잘 묘사한 배신연기가 극 몰입도가 있다. 경혜(홍수현)의 연기는 언제그랬냐는 듯이 다시 옛날로 돌아가 버렸다.


사랑의 핏빛 로맨스를 다루고 싶다면 김종서, 수양대군 그리고 계유정란을 이용한 사극을 빙자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려낼 수가 있다.  하지만, 쪽대본과 대본의 리딩도 없이 대본을 받자마자 찍고 방송되는 생방송 드라마와 사극이 판을 치는 와중이라도 최소한 사극류(환타지, 멜로, 퓨전, 정통)는 좀 더 치밀함과 개연성이 담보되어야 하는 장르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극류는 가장 자유롭게 개연성 없어도 되는 장르가 되어 버렸다. 단지, 민속촌과 칼들고, 말타고, 궁궐이나 초가집에 삿갖과 한복만 입으면 드라마 등장인물의 공간성 , 동시성, 개연성은 무시되고  다 용서가 된다.  만나서는 안되는 죽은자도, 등장하고, 아버지 할아버지뻘인 사람이 친구가 되기도 하고, 같은 지역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한 방에서 노닥거려도 된다.

자신의 며느리를 사랑해서 아비의 위기도 몰라보고, 한량짓에 금선탈각하여 멋지게 주인공을 살리는 복수의 화신이 될것이고, 시아버지를 사랑해서 아버지를 버리는 드라마가 현대극이라면 아무리 포장해도 막장소리 듣기 딱 좋다.  하지만, 사극으로 포장한 드라마는 용서가 되고 칭찬받아야 마땅한 세상이 되었다.

어떠한 극중 장치없이 임진왜란에 등장해야 하는 이순신 장군이 계유정란에도 나오고, 병자호란에도 나오고, 삼국시대 계백에 나와도 하나 이상할 것이 없다. 역사는 왜곡해야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와 제작자와 시청자가 있을 뿐이다. 독립운동가를 때려잡던 친일매국노가 영웅이 되고, 친일매국노를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고용하여 백색테러를 일삼던 자가 건국의 아버지가 되는 다큐로 왜곡하고, 역사도 드라마처럼 만드는 이상한 나라에서 드라마라고 예외는 아니지만 말이다.

최소한 쪽대본에 생방송 사극이 아니라면, 사전에 대본의 오류를 잡을수 있고 드라마가 좀더 개연성있어지고 치밀해져, 배우들의 연기가 생뚱맞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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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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