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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 의자왕, 계백 백제 패망후 왜 천황 될지도? 드라마 계백에서 드디어 의자왕(조재현)의 후손이 태어난다. 그런데 연씨에게서 태어나는 후손은 분명이 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아들이 부여융이 될지 부여효가 될지 부여태가 될지 궁금해진다. 사실 에서 역사를 찾는다는게 힘들기 때문에 맞추기도 힘들지 모른다. 분명히 드라마 은 김부식의 삼국사기, 일연의 삼국유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일본서기, 박창화의 화랑세기, 삼국지연의를 인용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모두 비틀어 버려서 알 수가 없다. 이를 작가는 작가의 창작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저작권을 주어야할 사람이라도 있는 듯이 약간 달리하고 있다. 계백에서 등장하는 인물 중 은고의 심복 임자는 조선상고사에서 빌려오고, 선화는 삼국유사에서, 사택적덕과 사택비는 미륵사 서탑의 사리함봉안기에서.. 더보기
경주 첨성대는 선덕여왕 2년에 세워졌다. - 세종실록 지리지 경주편 선덕여왕 원작자 두사람은 무슨생각으로 역사소설을 쓰나? 신라에는 두개의 궁궐이 있었다. 하나는 명활성이고, 하나는 반월성(월성)이다. 이 두성은 때에 따라서 번갈아 궁궐로 사용되였다. 하지만, 진평왕시기에는 반월성(월성)이 궁궐이였다. 647년 1월 8일 덕만이 죽고나서 비담이 반란을 일으킨 장소는 명활성이다. 반란군을 진압하는 정부군의 지휘부는 궁궐인 월성이였다. 이곳에서 진덕(승만)이 10여일을 비담에 시달렸다. 김유신열전에 김유신이 로 비담의 군대의 사기를 떨어트리기도 했다. 이와관련해서는 2009/08/3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이 덕만을 배신했다고? 사실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예전 보름날에 연을 날릴때 불을 연의 꼬리에 달고 날리는 풍습이 있었다. 액운을 하늘로 다시 보낸다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