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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설, 추석, 한가위, 중추절과 차례 상차리는 방법 감춰진 진실찾기

차례상 차리는 방법은 지방마다 시대마다 달랐다. 지금도 차례상 차리는 방법에 대해서 설왕설래한다.

그런데 차례상 차리는 방법에는 정도가 있을까? 우리민족 고유의 가장 큰 3대 명절(설,대보름,추석)인 추석을 "추석은 우리것이 아니(였)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로 부터 돌이 날라올지도 모르겠다.

차례상 차리는 방법에서 차례의 유래등 감춰진 진실을 찾아 보려 한다.

설마 추석이 우리것이 아니라니 좋은밥 먹고 헛소리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이다. 그리고 추석의 유래에 대해서 장황설을 늘여놓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나 추석의 유래를 보면 우리것이 아닌것을 설령 우리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우리의 문화에 깊숙히 스며들었으니 우리 민족의 고유의 명절이 된것이 아닌가 이야기를 할것이다.

당연히 현재의 <추석>은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겠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는 없는 특이한 제례문화이다.

 
하지만 정확한 유래를 알고 있는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추석>은 <중추절>, <한가위(가베)>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추석>과 <중추절>과 <한가위>는 서로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1번째, 한가위 유래 (추수감사제와 놀이성격)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 동안 길삼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때 조상에 감사하고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2번째, 중추절 유래 ( 승전기념일 + 한가위 )
 
<예기>의 <맹추>,<중추>,<계추> 중에서 가을의 한가운데 있는 중추절에서 이름을 빌려왔겠지만, 이름만 중추이고 실제는 신라의 고유의 한가위인 가베를 중국식 작명법에 의해서 기록한것 뿐이다.<중추>와 중추절은 서로 다른다. 단지, 중추란 한자화된 용어의 차용에 불과하고 중추절은 카니발 성격의 축제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슝베이도 중추절은 신라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중추절은 당나라에 유학한 일본의 구법승려 <엔닌의 일기>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서>,<구당서>,<신당서>의 기록에도 신라는 8월15일날 왕앞에서 활쏘고, 말타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한다. 이 당시 중추절은 한가위의 풍습과 전승기념일을 합한 행사가 된다.
 
전승기념일이다 라는 있는 근거를 2009/09/26 - [역사이야기] - 중국 중추절은 신라 진평왕의 고구려 승전기념일?  글에서 <삼국사기>를 근거로 중추절은 진평왕의 603년 8월 대고구려 북한산성전쟁이나 668년 가을 고구려의 멸망을 기념하는 전승기념일이라고 주장했다.    

SBS 사극 <연개소문>에서도 고구려가 신라의 <북한산성>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공교롭게도 603년 음력 8월이고, 진평왕이 직접 북한산성에 진주하여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왕이 직접 전장에 나아가서 싸우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당시 수와 전쟁에서 이긴 동북아의 패자 고구려를 신라 왕이 직접 통솔하여 물리 쳤다고 하는 의미에서 신라에게는 대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삼한일통을 한시기도 668년 가을이다.  이때의 승리를 기념해서 축제를 벌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까지 신라로써는 한가위와 전승기념일이 충첩된 날이니 즐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3번째, 추석 유래 [춘조일(春朝日), 추석월(秋夕月)] ( 한가위 + 중추절 + 유교제례 )
 
위에 중추절과 중추는 다른 의미라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형식과 내용면에서 추석은 추석제의 미미한 변형이다.
 
네이버 통합검색 화면에는 다음과 같이 추석관련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추석의 유래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추석은 중국의 유교경전인 <예기>에 천자는 이른봄에 태양에 제사를 지내고, 가을에는 저녁 달에 제사를 지낸다해서 비롯되었다. 동지는 태양이 낮은 고도에서 점차 크게 떠올라 시작을 알리는 시기이고 가을 중추에 뜨는 달이 가장 높이 크게 보이는 시기이기 때문에 <춘조일>, <추석월>같은 유래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예전 <네이버> 백과사전(두산백과사전)에서 <추석>의 유래를 검색하면 <예기>의 <조춘일>,<추석월>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달처럼 해처럼 번쩍이는 레슬러 <조춘>선생을 기념하는 날도 아니고 실제는 <춘조일>의 오기이다. 글쓴이도 오랫동안 관심이 없어서 무관심하게 지나갔지만 <조춘일>, <추석월>인줄 알았다. 그래서 추석에 관한 여러가지 자료를 조사할일이 있어서 이곳 저곳 찾다보니 <조춘일>이 <춘조일>의 오기라는 것을 알았다. 
 
네이버에 올려진 백과사전이 잘못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알고 오래전에 수정할려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이유는 예전에 솔거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솔거의 활동시기가 <진흥왕>시기(540년이후)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꼼꼼히 솔거는 <진흥왕>시기 사람이 아니고, 신라의 황금기인 경덕왕(8세기)때 활동한 사람이며, 솔거의 작품인 황룡사 <노송도>와 단속사 <유마상도>, 분황사 <천수관음보살도> 등 잘못이 있으니 수정하였으면 한다고 자세하게 논거를 제시하여 보냈지만 근 한달이 지난후에 솔거관련 기록들은 수정도 하지 않은체 <솔거>라는 항목만 수정을 하고 고맙다는 말도 없었다. 
 
솔거 관련글을 자세히 보실려면   2009/08/02 - [역사이야기] - 덕만에서 솔거까지 역사상식을 깬다
글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현재 추석은 3가지의 유래중에서 어디에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추석의 유래 중 <예기>를 인용하지 않고 있다. 있는 사실을 감추고 유래를 단지 국내에서 찾으려는 또다른 역사왜곡 사례이다.
 
<한가위>나 <중추절>의 행사와 놀이문화는 잊혀지고 단지, 제사(차례)의식만이 남아 있다. 그리고 <한가위>라는 말을 쓰기는 하지만 <추석>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또한 추석이 민족의 3대명절인 <설>,<단오>,<추석>에 진입한 시기를 보면 조선시대 중종?이후 일이다. 
  
조선시대의 추석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추석에 관한 기록은 모두 왕이 조상에 대한 제사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조에 보면 아침에 추석제를 지낸후 저녁 밤늦게까지 대신들과 왕족들을 불러 술마시고, 흥겹게 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연산군때에도 추석제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연산군은 자신의 친모인 <윤씨>에게 추석제사를 지내려하나 신하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하지만 효자였던 연산군은 신하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윤씨>의 사당을 세우고 추석제사를 강행한다.

<추석제>를 지낸것은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신라 종묘의 제도에 <추석제>가 있었다고 흔적이 있다. 

37대 선덕왕이후 일년에 여섯 번 5묘에 제사지냈으니, 곧 정월 2일·5일, 5월 5일, 7월 상순, 8월 1일·15일이었다.

그러니 삼국시대부터 신라왕실에서는 추석제사를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추석제를 지키는 것은 김춘추가 당에 구원요청하고 신라의 관제와 복식을 당나라식으로 바꾼 이후부터 일것으로 추측된다. 이때 지낸 제사의 형식은 <유교>형식의 제사일것 이다.
 
또한,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백제 편에 책부원귀를 인용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백제는 매년 네 철의 가운뎃 달[四仲之月]에 왕이 하늘과 오제(五帝)의 신에게 제사지냈다. 그 시조 구태(仇台)의 묘(廟)를 나라의 도성에 세우고 일년에 네 번 제사지냈다.』

고대의 <추석제>는 민간 백성들은 지낼수 없는 황제나 제왕들만이 지내는 제사였기 때문에 왕실에서만 지냈고 민가에 까지는 널리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추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추석제는 기회가 된다면 따로 글을 쓰도록 하겠다. 
  
조상은 사라진 차례와 제사, 르레상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차례를 지냄에 있어서 상차림에 관한 이야기들이 설왕설래 한다. 그 근거는 <예기>일 수 밖에 없는데 <예기>을 보면 제사는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너무 많은 제사를 하지 말고, 겸약하고 겸손하게 지내라"라고 하였다.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조상이 평상시 좋아하던것으로 하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홍동백서>,<좌포우혜> 등 조상과는 무관한 형식과 절차 만이 남아 있다. 조상이 왼손잡이던 오른손잡이던 상관하지 않고 숫가락을 놓아야 한다. 왼손잡이가 귀신이 되면 갑자기 오른손잡이로 변하나? 또한, 조상이 살아생전 좋아하던 음식과는 전혀 상관하지도 않고 있다.
 
소주를 좋아하면 소주를,  탁주를 좋아하면 탁주를, 양주를 좋아하면 양주를 올리면 되는 것이 아닐가?. 바나나를 좋아하면 바나나, 파인애애플이면 어떤가?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귀신이 털달린 과일을 좋아라 하지않는다고 해서 죄악시하고, 매운음식과 고추는 귀신을 쫓아내는 벽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해서 고추가루가 들어가지 않는 음식으로 올려야 한다.
 
실제로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임진왜란 전후라고 전해진다. 유입경로는 명/청이나 일본 양쪽으로 어느쪽이 앞선 시기인지는 아직 확실치는 않다. 조상이 매운음식을 즐기던 즐기지 않던 상관없이 귀신은 고추가루 싫어한다는 믿기지도 않는 낭설에 따라야 한다. 만약, 예기를 만들기 이전에 고추가루가 있었다면 당연히 고추가루가 들어간 음식이 제사상에 올려졌을 지도 모른다. 과일중에 붉은색 과일을 올리는 것을 보면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제사나 차례의 주체인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과 조상은 사라지고  단지 제사 형식에 치우치고 있다. 제사 형식과 차례를 규정한 <예기>는 조상이 평상시 좋아라 하는것으로 하라고 했는데도 말이다. 제사나 차례도 중세유럽의 <르레상스>운동처럼 본류를 찾는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시대에 따라 민속도, 명절도, 내용도 달라져야.. 
 
현재의 추석은 과거 우리가 알고 있는 한가위나 중추절과 다른 의미이고 <추석>,<한가위>,<중추절>은 서로 믹스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뿐이다. 현재의 추석이 다른 어떠한 민족도 하지 않는 아주 특이한 고유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추석이 고래부터 한민족의 고유의 명절이라고 하기에는 내용도 바뀌고 성격도 바뀐 다양한 문화가 접목이 되어 있어서 문제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부처탄신일, 팔관회가 국가의 중대축제였고, 조선시대에는 유교적인 단오, 한식, 추석, 공자탄신일 등이 중대 행사였다. 현재는 단오, 한식 보다는 실제와는 다르지만 예수의 탄신일이라고 알려진 크리스마스가 중대한 명절 풍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먼훗날 크리스마스가 우리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토착화될 때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고유의 민족의 행사라고 모두들 이야기를 할것이다. 그때 무슨 소리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고유의 명절이 아니고 유대교의 선지자중 일인인 예수라는 인물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에서 유래된것이야 그리고 산타크로스는 예수의 탄생과는 전혀 관계없는 북유럽의 신화에서 나온인물이고, 산타와 산타의 붉은 복장은 코카콜라가 자신들의 상품을 선전하기 위해서 만든 허구야 한다면 벼락 맞을 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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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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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런 2010.09.17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이런!! 이렇게 내공쌓인 글을 이리 방치 하다니...
    다음이 실수 하고 있군요 ㅋㅋ
    근데 어쩜 사람들이 자극적이거나 달달한 이야기만 좋아하는 것 같으니
    다음도 당연 거기에 영합하는걸지도... 아닌가 그리 선도하는건가?? 에효

    그럼에도 이렇게 새로운 글 내 놓으라고 조르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길...

  2. Favicon of https://peter0317.tistory.com BlogIcon 제로드™ 2010.09.18 1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꼼꼼하고 열심히 자료를 찾아서 글을 쓰시네요~. 즐거운 추석 되시길..

  3. Favicon of https://vibary.tistory.com BlogIcon 비바리 2010.09.18 19: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명절 즐거이 지내세요.

  4. 2010.09.22 0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Favicon of http://solnebane.com BlogIcon 조용형 2012.01.02 2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팹, 훌륭한 문서입니다

  6. Favicon of http://inoline.com BlogIcon 2012.01.07 0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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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Favicon of http://carbon21.homeunix.com BlogIcon Jordyn 2012.04.04 0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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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Favicon of http://extratime.isa-geek.com BlogIcon 빅토리아 2012.04.06 0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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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Favicon of http://zonda.is-very-evil.org BlogIcon Aaliyah 2012.05.09 0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에 영어를 하시는 분 계십니까?

  10. Favicon of http://onlyme.hobby-site.org BlogIcon Arianna 2012.05.11 1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11.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12.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 2012.07.14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해서 눈 속에 덮혀 있다. 그런데 이번 강릉 빙상장은 경기를 보는

  13. Favicon of http://blogskinny.com/ BlogIcon Berrong 2012.09.09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14. Favicon of http://www.frankolenko.com/blog/view/9430/what-supplies-to-enter-case-of-an-em.. BlogIcon emergency first aid guide 2012.11.26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어쩜 사람들이 자극적이거나 달달한 이야기만 좋아하는 것 같으니
    다음도 당연 거기에 영합하는걸지도... 아닌가 그리 선도하는건가?? 에효

  15. Favicon of http://mysbi.tk/blogs/viewstory/168 BlogIcon water canister camping 2012.12.04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 동안 길삼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집현전 직제학 이자 밀본인 종수는 세종 이도 성리학을 버리고 유림을 압살하려 한다는 증거를 세법과 불경과 내불당 사건을 제시한다.

 

그런데 세종이 하려던 세법은 공법으로 기존의 토지세보다 부담을 적게 하는 정책이였고, 가진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가는 제도였다.

 

그래서 1430년 당시 약 18만명의 여론조사를 하였지만, 전라. 경상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특히 함길도, 평안도에서는 압도적인 반대에 직면하고, 경기, 충청 지역은 찬반이 엇비슷했다.

 

전라 경상이 찬성이 많은 이유는 토질이 좋고, 물과 환경이 좋아서 소출이 많았는데 이전 세금보다 1/3이나 줄어든 세금(감세)에 환영하지 않으며 이상하지 않겠는가?

 

사대부 양반. 유림의 기반은 토지에 있었고, 유림의 다수는 경상. 전라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니 혜택은 부동산 재벌인 유림들에게 갈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 세종은 반대에 직면한다. 왜냐하면, 권력을 차지하고 있던 성리학자들이 공법은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하니 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이는 부자감세를 해야 한다는 이명박정부나 신자유주의에 반하는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솔선수범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워린버핏이 부자들이 세금부담을 더해야 한다는 워린버핏세는 이미 조선 세종 시대에 성리학 공직자(위정자)들에게 공론화 되었고, 실현되었다.

세종 공법(토지소득세)은 지역을 경상.전라, 충청.경기, 함경,평안.황해,강원, 제주 등 4개지역으로 나누고 지역 내 토지의 질에 때라 5등급으로 세분화 하여 차등적으로 누진세액을 부담하게 하였다. 한마디로 부유한 지역,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하고, 가난한 자에게 세금을 감면. 축소해주는 대대적인 세금정책이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다음글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2011/11/02 - [역사IN드라마/뿌리깊은나무] - 뿌리깊은 나무, 세종 세법 밀본 기득권말살 정책? 부자감세 위정자들 워린버핏세 주장

심종수가 두번째 예로든 내불당 불사 사건은 세종 때 있었던 일이기는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 시제와는 어긋난다.

<
뿌리깊은 나무>시제는 1443년 12월 30 세종대왕이 직접 만든 언문(훈민정음) 28자를 만들었다 시점이 된다. 이를 알수 있는 증거는 심종수 13년전 세법으로 여론조사를 하였지만, 아전과 유림이 반대했다고 하였으니 공법문제는 1430년이 되니 <뿌리깊은 나무>시제는 1443년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세종은 즉위후 내불당을 없앤다. 그래서 유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세종 15 1433 1월 30 문소전(文昭殿)불당(佛堂)을 걷어 없애기를 명하고, 그 불상(佛傷)과 잡물(雜物)흥천사(興天寺)에 옮기게 하였다.

 

하지만, 세종 17 1435년 태조가 정릉 옆에 만들었던 흥천사 사리탑을 중수하고 경찬회를 개최하려고 하지만, 유림들의 반대에 직면한다. 세종이 흥천사 사리탑 경찬회를 열려고 한 때는 세종 22 1440년부터 였다. 하지만, 끊임없이 사간원, 사헌부, 집현전, 성균관 등으로부터 상소를 받아 반대에 직면한다.
반대에는 김종서, 정인지, 황희, 최만리, 박중림(박팽년의 아버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세종은 끊임없는 상소에 승정원으로 하여금 경찬회 관련 상소는 절대 받지 말라고 명한다. 한마디로 언로가 차단된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세종은 경찬회를 성삼문의 할아버지 성달생에게 맡기고 있다. 세종은 반대에 직면하자 하나의 꼼수를 내는데 세종 자신이 서울에 있지 않고, 행궁을 떠날 때 흥천사 사리각 경찬회를 한다면 상소를 할 수도 없고, 반대도 없지 않겠느냐는 계책을 내세운다.

 

결국 세종은 온정을 떠난 상태에서 세종 24 1442 3월 24 흥천사 사리각 경찬회가 개최된다. 이때 모인 중만 전국에서 1 8백명이 넘었다.

 

이 모임의 이름은 백팔공승(百八供僧)이라 하였으나, 승도(僧徒)들이 사방에서 모여서 공양한 중이 1 8 18명이고 속인(俗人) 3 87명이나 되어 그 비용이 적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리각(舍利閣) 담장 밖에는 부녀들이 늘어서서 밤낮으로 먼저 보려고 다투었다. 


2
년 넘게 질질 끌다 사리탑 경찬회가 열린 것이다. 만약, <뿌리깊은 나무>에서 성리학을 버리고 불교를 받아들이려는 것이 아니냐는 증거로 <내불당>이 아닌 흥천사 경찬회를 예로 들어야 합리적이다.

 

더군다나 세종 15년 내불당을 없애고, 불상과 잡물을 흥천사로 보내고 난 후 였다. 세종 30 1448 7월 17내불당을 문소전 서북쪽 궁궐에 만든 때는  "문소전 서북에 불당을 설치할 것을 명하자 이사철·이의홉 등이 불가함을 아뢰다"

이때 내불당을 만들자 흥천사 경찬회 때와 같이 수 없는 반대에 직면한다.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세종이 승하고 문종 즉위년, 단종 즉위 할 때 마다 내불당과 언문청, 정음청은 유자(유림,사대부)에게는 없애야 할 최대적이었다.
 
문종은 정음청을 없앴고, 단종 때는 내불당과 언문청이 없어질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세조가 들어선 이후엔 언급조차 없었다가 다시 예종, 성종 때 내불당, 언문청을 없앨 것을 청원하지만, 내불당은 연산군 10년에 흥천사로 옮겨지고, 언문청은 중종 반정 3일 후에 없어진다.

 

어쨌든, <뿌리깊은 나무>에서 내불당을 설치하여 성리학을 괴멸시키려 한다는 설정과 세법은 유림과 성리학을 말살하는 정책이라는 심종수의 말은 개연성이 없다.

 

144611월 유가들에게는 용비어천가를 언문청을 통해서 만들게 하고,
 

드디어 언문청(諺文廳)을 설치하여 사적(事迹)을 상고해서 용비시(龍飛詩)를 첨입(添入)하게 하니


사실 세종이 언문(훈민정음)을 만들고 직접한 일은 불교에 관한 일이다. 1447년 석가의 일대기를 그린 석보상절을 언문으로 세조(수양대군)에게 만들게 하고, 인쇄하여 배포한다. 석보상절을 보고 세종은 대서사시 <월인천강지곡>을 언문으로 직접 만든다.

 

<뿌리깊은나무>에서 한글창제(언문, 훈민정음)을 비밀리에 만들었다고 하지만, 실제 한글창제는 비밀스럽게 만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문자를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단지, 한글처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가 세종 혼자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 어려워서 그런것이고,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의 친위부대라고 할만한 집현전의 대장인 부제학 최만리가 반대했으니 비밀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 것 뿐이다.



<뿌리깊은 나무> 군나미욕(아설순후)이라 하여 분류 하고 있지만, 세종 28년 1446년 9월 29일 훈민정음 창제후 반포한 내용을 참고하더라도 실제는 "군규업두"나 "군탄별즉"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쉬이 알수 있다. 물론, 군나미욕은 아설순후음에서 기본글자이니 뿌리깊은 나무에서 군나미욕이라고 하는 것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ㄱ은 아음(牙音)이니 군(君)자의 첫 발성(發聲)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규(虯)자의 첫 발성(發聲)과 같고,
ㆁ은 아음(牙音)이니 업(業)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ㄷ은 설음(舌音)이니 두(斗)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담(覃)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ㅌ은 설음(舌音)이니 탄(呑)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ㄴ은 설음(舌音)이니 나(那)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ㅋ은 아음(牙音)이니 쾌(快)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ㅂ은 순음(脣音)이니 별(彆)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보(步)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ㅍ은 순음(脣音)이니 표(漂)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ㅁ은 순음(脣音)이니 미(彌)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ㅈ은 치음(齒音)이니 즉(卽)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자(慈)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ㅊ은 치음(齒音)이니 침(侵)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ㅅ은 치음(齒音)이니 술(戌)자의 첫 발성과 같는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사(邪)자의 첫 발성과 같고,
ㆆ은 후음(喉音)이니 읍(挹)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ㅎ은 후음(喉音)이니 허(虛)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홍(洪)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ㅇ은 후음(喉音)이니 욕(欲)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ㄹ은 반설음(半舌音)이니 려(閭)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ㅿ는 반치음(半齒音)이니 양(穰)자의 첫 발성과 같고,
· 은 탄(呑)자의 중성(中聲)과 같고,
ㅡ는 즉(卽)자의 중성과 같고,
ㅣ는 침(侵)자의 중성과 같고, ㅗ는 홍(洪)자의 중성과 같고, ㅏ는 담(覃)자의 중성과 같고, ㅜ는 군(君)자의 중성과 같고, ㅓ는 업(業)자의 중성과 같고, ㅛ는 욕(欲)자의 중성과 같고, ㅑ는 양(穰)자의 중성과 같고, ㅠ는 술(戌)자의 중성과 같고, ㅕ는 별(彆)자의 중성과 같으며, 종성(終聲)은 다시 초성(初聲)으로 사용하며, ㅇ을 순음(脣音) 밑에 연달아 쓰면 순경음(脣輕音)이 되고, 초성(初聲)을 합해 사용하려면 가로 나란히 붙여 쓰고, 종성(終聲)도 같다. ㅡ·ㅗ·ㅜ·ㅛ·ㅠ는 초성의 밑에 붙여 쓰고, ㅣ·ㅓ·ㅏ·ㅑ·ㅕ는 오른쪽에 붙여 쓴다.

무릇 글자는 반드시 합하여 음을 이루게 되니, 왼쪽에 1점을 가하면 거성(去聲)이 되고, 2점을 가하면 상성(上聲)이 되고, 점이 없으면 평성(平聲)이 되고, 입성(入聲)은 점을 가하는 것은 같은데 촉급(促急)하게 된다


 


어쨌든, 이미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글의 기본 캐릭터는 만들어졌다는 것을 집현전 학사의 죽음으로 한글로 곤구망기( 丨口亡己) "밀본"이라고 사자전언을 하여 이미 증명되었고, 성삼문이 한글창제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은 다행이라고 하겠다. 성삼문이 세종에게 우리글을 만들겠다고 했을때의 반응은 어쩌면 당시 유학자들에게 보이는 당연한 반응이지 않을까하다.
 
문제는 성삼문이 한글창제전에 집현전 학사에 있다는 것이다. 사실 성삼문은 한글이 창제된 세종 25년 1443년 12월 30일 이후에도 성삼문은 집현전 학사가 아닌 성균관쪽에 있었다. 
 

집현전 부수찬(副修撰) 신숙주(申叔舟)성균관 주부(注簿) 성삼문(成三問)행 사용(行司勇) 손수산(孫壽山)요동에 보내서 운서(韻書)를 질문하여 오게 하였다.
-세종 27년  1445년 1월 7일


사실 성삼문, 신숙주, 이개, 박팽년 등은 한글 창제가 아닌 한글이 만들어진후 응용편을 만들었다고 이미 세종실록 훈민정음 반포 서문에도 나오고 있다.
 

마침내 해석을 상세히 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이해하라고 명하시니, 이에 신(臣)이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 최항(崔恒), 부교리(副校理) 박팽년(朴彭年)신숙주(申叔舟), 수찬(修撰) 성삼문(成三問), 돈녕부 주부(敦寧府注簿) 강희안(姜希顔), 행 집현전 부수찬(行集賢殿副修撰) 이개(李塏)·이선로(李善老) 등과 더불어 삼가 모든 해석과 범례(凡例)를 지어 그 경개(梗槪)를 서술하여, 이를 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 세종 28년 1446년 9월 29일


한마디로 세종의 명으로 정인지가 한글교본(훈민정음혜례)을 집현전 학사들인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개, 이선로 그리고 돈녕부 강희안과 함께 만들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뿌리깊은 나무>는 연출자 장태유와 신경수의 조선시대 초기 고증에 이전 사극에서 볼수 없을 정도로 충실한 편이다. 그러나 작가 김영현의 스토리에는 개연성과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김영현의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좀더 개연성과 리얼리티를 살렸다면 연출자의 고증에 충실하려던 노고에 방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집현전은 세종의 일에 수없이 반대를 하고, 자문을 하는 집단이었다. 훈민정음(한글)의 반대도 내불당사건이나, 흥천사 사리탑 경찬회의 반대와 마찬가지 일뿐이다. 한글 창제이면을 다빈치 코드처럼 미스터리하게 극을 이끌어 나간다면 더욱더 가치가 있을 것이고 드라마틱한 요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나온 사상력의 산물일뿐이다.

 

사실 한글은 한문을 사용하던 조선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문자다. 한문과 한글 공통점은 다른 문자와는 다르게 풀어쓰기가 아닌 모아쓰기(합쳐쓰기)이다. 그리고 부수의 개념이 있듯이 한글에도 자모의 개념에 음운학적인 초성.중성.종성의 개념은 부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더군다나 <뿌리깊은 나무>에서처럼 인간이 발성기관에서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군나미욕)이라는 아음, 설음, 순음, 후음, 치음, 반치음, 반설음으로 나누고 문자자체를 발성기관을 본떠서 만든
상형문자라는 공통점까지 있다. 사성(평성,입성,거성,상성)점을 찍어 소리의 음운율을 맞추어 중국의 발음에도 쉽게 접근하도록 만들었다.

청음, 탁음, 반청음, 반탁음, 반청반탁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확장성을 만들어 냈다. 한글의 확장성은 오히려 한자의 약 5만자 보다 많아 한글의 확장성을 제한하더라도 160만자 이상이다.

 

. l 을 천지인으로 기본으로 생각하지만  . ㅣ ㅏ ㅓ ㅡ ㅗ ㅛ ㅜ ㅠ 의 중성 문자 자체도 입의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이다. 의 경우는 입이 위아래로 벌어지고, 의 경우는 입은 위로 벌어진 상태에서 소리를 입밖으로 내보내는 형상을 본뜨고 있다. 의 경우는 입을 위아래로 열고 입안으로 들이 마시는 모양을 본뜨고 있다. ,의 경우는 잎을 가로로 벌려야 한다.

 

현재의 한글은 세종이 의도한 바의 1/100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고, 운용하지 못하고 있다. "가나다라마사.."로 시작하는 아무의미도 없는 외우기에 급급한 한글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 세종이 언문인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창제원리에 맞추어 아설순후치음과 확장성에 맞춘 교육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 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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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toyvillage.net BlogIcon 라이너스™ 2011.11.03 09: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혀연관이 없군요^^
    재미있게 잘보고갑니다.ㅎㅎ

  2. Favicon of http://www.medicalcodingandbillingschools.net/ BlogIcon medical billing and coding schools 2011.11.03 1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워린버핏세는 이미 조선 세종 시대에 성리학 공직자(위정자)들에게 공론화 되었고, 실현되었다.

  3. Favicon of https://system123.tistory.com BlogIcon 예또보 2011.11.03 18: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너무 잘배우고 갑니다.
    즐거운 오후 시간 되세요 ^^

  4. 마일즈 2011.11.04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저를 기억하시겠는지요. 예전에 마일드라고 합니다. 노하우 시절에 네티즌인데요.
    일단 반갑습니다. 정말 좋은 글 많이 쓰셨네요 존경스럽고요.
    티스토리 초대장 한 장 주셨으면 합니다.

  5. 객입니다 2011.11.05 0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삼문 등이 요동으로 파견되어 운서를 갖고 온 것을 증거로 이들이 훈민정음 창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글에서 주장하신 것처럼, 훈민정음 창제에는 이러저러한 언어학적 지식이 동원되었습니다. 소리를 어떻게 분절할 것인지, 소리가 만들어지는 장소는 어디이며, 그 소리의 성질은 무엇인지 등등 음성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최첨단의 언어학이 필요합니다. 당시 동아시아 문명에서 그 정도 언어학 지식을 보유하고 있던 것은 명나라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언어학적 지식의 결정체가 <운서>입니다. 글쓴이께서는 훈민정음의 문자 체계에 비중을 두고 이 문제에 접근하시는 듯한데, 그 배경에 있는 언어학적 지식의 수입과 적용에 대해서는 돌아보시지 않으신듯 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당시 요동에 명나라 제일의 음성학자(?)가 귀양왔기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세종이 성삼문 등을 여러 차례 파견하여 필요한 지식을 직접 묻고 배워오게 한 것입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또 성삼문 등에게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 발간되는 해례나 작성하게 하였다라고 하셨는데, 이 역시 이들이 훈민정음 창제에 깊히 관여하였고 새로운 문자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새 문자에 대한 해설서를 써야 하는데, 아무리 배우기 쉽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학자에게 일을 맡기겠습니까? 해례 작성에 참가한 이들은 그야말로 훈민정음 창제를 최측근에서 보좌한 이들이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6. Favicon of http://www.webstatsdomain.com BlogIcon website analyzer 2011.11.10 1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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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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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료를 읽어본 바로는 조선처럼 하지 않았습니다. 태왕이란 칭호는 추모성왕 때부터?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공주의 남자에서 세자가 죽음에 이르자 이제 가야한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문종과 현덕왕후가 자신을 보고 손짓하고 있다고 말을 한다.

공주의 남자는 미스테리 추리물보다 복잡하다.

공주의 남자에서 단종이 죽는것을 간략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끝냈다. 더군다나 금성대군도 사약을 받고 죽는 것으로 끝냈다.

문제는 정종이 죽고, 금성대군도 죽고, 단종이 죽는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마침내 문종과 단종 등이 저승사자가 되어 세자를 끌고 간다는 설정이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설정인지 모르겠다. 정종이 죽은 때는 1461년 이고, 세자 도원군(장: 숭)이 죽은 때는 1457년이다. 숭이 죽자, 금성대군이 죽고, 단종이 죽는 순서이다. 그리고 정종은 1461년에 죽는다. 더군다나 경혜공주의 유복자로 나오는 정미수는 1455~1456년경에 태어난다. 시계를 돌려도 타임머신 모드인가.

세자 숭이 죽을 때는 20살이 되었을 때이다. 1461년을 기년으로 하면 세령은 30살이 넘고, 숭은 24살이 넘어야 한다. 그런데 어느덧 1467년 5월 이시애의 난이 일어난 것으로 그리고 있다. 정미수가 1467년에 태어났다는 말인가? 아니면 세자 숭이 1467년에 죽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이시애가 1457년에 반란을 획책했다는 것인가?

아무리 막장 멜로에 민폐 김승유를 주인공으로 했다고 해도, 너무한것 아닌가?

오늘날만 막장극이 있었던건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공주와남자 같은 막장 드라마가 있었다.


조카의 왕위를 강탈한 세조를 비난하기 위한 또 하나의 좋은 소스를 제공한다. 세조가 나쁜놈 임을 증명하는 증거물로 형왕(문종)의 아들 단종도 죽이고, 문종의 딸 경혜공주까지도 관노비로 만들고 단종의 어머니 묘도 파헤쳐 바다에까지 버린 세조는 파렴치한 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소릉은 문종(文宗)의 비(妃)인 현덕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의 옛 능호(陵號)이다.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어 시해한 뒤 세조의 꿈에 현덕왕후의 영혼이 나타나 “죄 없는 내 아들을 죽였으니, 나도 네 아들을 죽이겠다.” 하였는데, 꿈을 깨자마자 세자의 운명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격분한 세조는 소릉을 파헤쳐 버리도록 명하였다.

이때 어떤 승려가 바닷가에 떠 있는 현덕왕후의 관을 발견하고 숲 속에 묻어 두었는데, 중종 8년에 소릉을 복위하자는 소세양(蘇世讓)의 주청으로 인하여 문종의 능인 현릉(顯陵) 곁으로 이장하고는 함께 현릉이라 부르게 되었다. 《燃藜室記述 文宗朝故事本末 昭陵廢復》


세조가 단종을 죽이자, 문종 비인 현덕왕후가 세조의 꿈에 나타나 내아들 (단종) 도 죽였으니  니(수양대군) 아들(의경세자)도 죽일거라는 꿈을 꾸었다“는데 단종이 죽고나서 의경세자(숭)이 진실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조가 현덕왕후가 묻혀 있는 경기도 안산의 현덕왕후의 능인 소릉를 허물고 관을 파서 버렸다는 말도 진실처럼 돌아다닌다.

한마디로 어떤 효자가 어머니 병을 고치기 위해서 무덤을 파서 시체를 뜯어와 어미에게 먹이려는데 시체가 벌떡일어나 내다리 돌려줘 하는 전설따라 삼천리에 나옴직한 이야기다.


단종이 죽은 때는 세조 7년 1457년 10월 이였고, 세조(수양대군)의 맏아들 의경세자가 죽은 때는 1457년 9월 2일이었다. 의경세자(장,숭)이 먼저죽고 단종이 후에 죽었다. 요즘으로 하면 불가능한 일이 당시에는 사실처럼 퍼진 것이다. 이를 근거로 세조가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의 소릉을 파서 관을 버렸다는 말이 퍼진 것이다.


더군다나 소릉이 파헤쳐 바다에 버려진 적도 없다. 단지, 소릉이 일반인의 무덤으로 지위가 떨어지고, 소릉에서 사용된 왕비로써의 사용된 기물들이 철거하고 이장된 것이다.


1456년 6월1일 사육신의 단종복위가 실패로 돌아갔는데 사육신의 단종복위에는 사육신의 배후에 단종이 있었고, 단종이 수괴였다. 성삼문과 권자신은 상왕 단종이 자신들과 여러 번 반정복위에 대한 계획을 세웠고, 1456년 6월 1일 당일에 상왕 단종이 세조를 죽이는데 사용할 큰칼까지 주었다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곧 단종이 사육신의 배후이며 수괴라고 자복한 것과 같다.


사육신 중의 한명인 권자신은 현덕왕후 권씨의 동생이었다. 만약, 단종이 권력에서 물러나지 않았다면 권자신은 외척으로 어린 단종을 대신해서 권력을 행사했었을 것이 자명하다.


단종의 매부인 정종과 누나인 경혜공주도 단종이 왕이었을 때  수 없이 많은 재산을 불렸다.


그래서, 권력의 정점에서 물러난 권자신으로서는 단종복위의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만했다. 문제는 권자신 뿐만 아니라 권자신의 어머니 최씨와 연락책인 최씨의 노비가 연루가 되었다.


1456년 6월 사육신 사건은 상왕 단종이 수괴가 되고, 외삼촌 권자신, 외할머니 최씨가 연루된 중대한 사건이 된 것이다.


그래서 현덕왕후는 왕후에서 일반인으로 격하된다. 묘에도 격식이 있었고, 주택에도 격식이 있었고 복식에도 격에 맞아야 했다. 공신이 되면 아버지나 자식도 공직이 증가된다. 마찬가지로 반역을 하게 되면 격하되는 것도 일반화 되어 있었다. 이런 연유로 현덕왕후가 격하되고 격식에 맞게 이장된 것이다.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현덕 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의 어미 아지(阿只)와 그 동생 권자신(權自愼)이 모반(謀反)하다가 주살(誅殺)을 당하였는데, 그 아비 권전(權專)이 이미 추후하여 폐(廢)하여서 서인(庶人)으로 만들었으며, 또 노산군(魯山君)이 종사(宗社)에 죄를 지어 이미 군(君)으로 강봉(降封)하였으나, 그 어미는 아직도 명위(名位)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마땅하지 않으니, 청컨대 추후하여 폐(廢)하여서 서인(庶人)으로 만들어 개장(改葬)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세조 2년 , 1456년 6월 29일


예조에서 종묘서(宗廟署) 의 정문(呈文)에 의하여 아뢰기를,

“현덕 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의 신주(神主)와 의물(儀物)을 일찍이 이미 철거하였으니, 그 고명(誥命)과 책보(冊寶)와 아울러 장구(粧具)를 해당 관사로 하여금 수장(收藏)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세조 3년 1457년 9월 7일



하지만, 현덕왕후 소릉에 사용 내용물들은 종시부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성종 때 고명과 장구들을 종시부에서 내려 태워버린다.
 

현덕빈(顯德嬪) 의 교명(敎命)·죽책(竹冊)과 보(寶)를 종부시(宗簿寺)에 내려 불사르도록 하였다.

- 성종 7년, 1476년 4월 15일


연려실기술이나 현덕왕후 관련 세조가 소릉을 내다 버렸다는 설은 세조 2년 1456년 6월 29일의 소릉을 일반서인의 묘로 격하시키고 개장(이장)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1457년 10월 단종이 죽고, 1459년 9월 2일 의경세자 숭(장)이 죽고, 1456년 6월 29일 세조가 소릉(현덕왕비릉)을 판 것이 아니다.


1456년 6월 1일 사육신 사건으로 단종, 권자신, 현덕왕비의 어머니 최씨가 연루되어 현덕왕후가 서인으로 격하되고, 1456년 6월 29일 능도 그이 맞추어 이장된 것이 사실이다. 개장(이장)과 버린다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 무슨 수양대군(세조)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있었겠는가?
 

1456년 6월 이후 사육신 사건으로 단종의 외삼촌 권자신, 외할머니 최씨가 죽는다.

1456년 6월 29일 현덕왕후가 역모의 주역의 가족이란 이유로 서인으로 격하되고 개장(이장)된다.


1457년 6월 단종 장인인 송현수가 반란을 획책하다.

1457년 6월 21일 단종이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격하되고 영월로 유배를 떠난다.

1457년 6월 27일 금성대군, 이보흠과 반란 획책하다 들킴

1457년 8월 송현수가 관노가 됨.
 

1457년 9월 2일 의경세자(장,숭)이 죽음.


1457년 10월 21일 송현수가 교형에 처해지고, 금성대군은 사약을 받고 이후 죽음.


1457년 10월 21일 단종(노산군)이 죽고 예로서 장사지내게 함.



이긍익이 채록한 열려실기술의 기록은 1457년으로부터 1456년 과거로 진행되는 이야기구조이다.


정상적인 이야기라면 의경세자가 죽자, 현덕왕후가 세조(수양대군)의 꿈에 나타나 “니 자식은 내가 죽였다”라고 해서 세조가 단종을 죽였다라고 하면 좀 더 그럴듯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드라마틱하게 세조는 나쁜놈에 또 하나의 덧칠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단지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사실처럼 널리 퍼지고 진실처럼 되어 버렸다.


태종 이방원은 왕자의 난으로 세자였던 방석을 몰아내고, 아버지 이성계가 죽자 1409년 현재 정동에 있던 계모 신덕왕후 강씨의 묘를 성 밖 (현재 서울 성북구 정릉2동) 정릉으로 옮겨 버린다. 왕비릉에서 사용되어진 석물들은 광통교 다리건설에 사용되어지기도 한다.


다음은 1456년 현덕왕비 소릉을 폐한 후 일반 서인의 무덤으로 이장해서 묻은 현덕왕비의 무덤을 58년이 흐른 후 사림파들의 연산군을 몰아내고 반역에 성공한 후 1513년 중종 8년 개장(이장)하여 문종이 있는 현릉의 부부릉으로 옮길 때의 기록이다.
 

여름 4월 17일에 소릉의 옛 무덤을 열었다. 제조 송일과 김응기 등은, “신 등이 당초에는 기간이 오래되어 관곽이 부패해서 남은 것이 없을까 깊이 염려하였으나, 막상 열어서 살펴보니 안팎 관곽이 다 있고 염습(歛襲)이 완전하나 너무 오래되어 다만 형체만 있으므로 새 관곽과 새 의금(衣衾)으로 바꾸어서 범사에 유감없이 하였으며 또한 다시 염할 때는 궁인 및 내관이 나아갔지만 막대한 일을 친히 감독하지 아니할 수 없으므로 신들이 염습을 친히 감독하였습니다.” 하고 아뢰었다. 《동각잡기》


처음 능을 파헤쳐서 해변에 옮겨 묻은 뒤로는 전소(奠掃)와 수호(守護)의 끊어진 지가 수십 년이 되니, 거민들이 단지 언덕 하나가 그곳이라고 전해온다고 알고 있을 뿐 타설(他說)이 있어 사람을 의혹케 하였다.


천장하려 할 때 땅을 깊이 팠으나 관이 보이지 않아 어찌할 줄을 몰랐더니 포초록(圃樵錄)에는 관 있는 곳을 알 수 없었으므로 군인(軍人)이 물가에 늘어서서 일제히 그 진흙을 파헤쳐 산발치까지 갔으나 보이지 아니 했는데 감역관(監役官)이 꿈에 신의 말씀을 받아서……”라고 하였다.


이 날 밤에 감관(監官)이 졸고 있는데 꿈에 왕후를 뵈니 장전(帳殿)에서 안석에 기대어 왕후의 위의를 갖추고 두 시녀가 모시고 있었다. 감관을 불러 위로하기를, “너희들이 고생하는구나.” 하니, 감관이 엎드려 절하고 놀라 땀을 흘렸다. 잠을 깨어 이상하게 생각하고 다음날 아침, 두어 자 더 깊이 파니 곧 손바닥 넓이만한 관의 칠편(漆片)이 삽날에 찍혀 나와 관을 발견함으로써 능히 일을 잘 마쳤다. 《음애일기(陰崖日記)》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 합록(合錄)》


창졸간에 옮겨 묻고 성소(省掃)를 폐한 지 너무 오래되어 시신을 찾지 못할까 걱정했으나 능을 열고 본즉, 안팎 관이 다 형체가 있고 염습이 완전하였다. 관은 바꾸고 법의(法衣)로 관의 빈 구석을 메 꾸었다. 《음애일기(陰崖日記)》



위의 기록 등 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개장(이장)을 위해서 삽으로 팠지만, 예상보다 깊이 묻혀있었고, 칠편(옻칠)으로 안팍 관곽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도 정성껏 묻은 묘도 60년 가까이 지나 묘를 파면 묘가 제대로 있을 확률은 별로 없다. 현덕왕비 묘가 제대로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닷가였고, 벌이 침투해서이지 않을까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이라가 발견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조선의 잘못된 장묘법이 미이라를 양산했다. 주자(주희)가 주창한 매장법은 미이라를 양성할 수밖에 없었다. 회(생석회)갑으로 둘려쳐저 있어 공기와 차단이 되고, 생석회는 물과 만나면 발열반응이 생겨 시체와 묘속에 있는 초기 미생물을 죽이게 되고, 요즘도 생회가루가 구제역 등 방역에 많이 사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석회가루는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져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된다.


주희는 무덤 속 시체가 빨리 썩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장묘법을 만들었지만, 오히려 주희가 주장한 장묘는 아이러니하게 미라만 양성했다. 시체가 썩지 않고 있으면 당시에는 영혼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원한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서인의 묘로 격하된 현덕왕비의 묘는 조금은 다른 과정으로 멀쩡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니 바다에 떠내려가 현덕왕비의 관을 중이 창졸간에 묻었다는 말은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하겠다. 한마디로 비극적인 왕비의 전설따라 삼천리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물론, 창졸간에 왕비릉에서 단종이 폐위되고, 형제와 어머니가 서인이 되었고, 마침내는 아들 단종까지 세조로 인해서 죽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무덤에서 벌떡 일어설 만한 건 사실이다. 더불어 세조가 무덤까지 파서 바다에 버렸다는 세조(수양대군) 나쁜 넘 프로젝트 이야기는 사실처럼 비쳐질 만큼 충분한 드라마틱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또 하나의 세조 죽이기 작업과 사육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림 측의 선전물임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낭설이 사실인 것처럼 소설로 만들어지고, 드라마로 제작되어서 드라마로 역사를 배운 사람들이 세조를 비난하면 지식인처럼 호도되는 지경에 까지 왔다.


소설과 드라마는 역사와 하등 상관이 없다. 특히 최근에는 사이비 역사학자들조차 교차검증이나 문헌고증을 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낭설을 사실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믿고 싶은 것이 사실이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역사도 아니다. 드라마가 아닌 역사를 알고 싶다면 다음 아래글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2011/10/06 - [역사이야기] - 뿌리깊은 나무, 훈민정음, 왜 비밀팀일까? 중종반정 언문청 철폐 보면 답나온다.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관노비 없었고, 아들 정미수 수양대군 지어준 이름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 경혜공주 똥도 먹은 효자였다.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결말, 단종도 죽인 김승유, 이시애와 수양대군 죽이고 왕될 기세?

2011/10/0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단종도 죽인 민폐 김승유, 이시애와 수양대군 죽이고 왕될 기세?
2011/10/0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 경혜공주 똥도 먹은 효자였다. 정종 죽을때 7살
2011/10/05 - [역사이야기] - 계백, 김춘추 결혼동맹 의자왕에게 아내 팔아넘긴다? 사실은
2011/10/04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사육신 박팽년 성삼문, 단종 양위시 경회루 투신사건 사실일까?
2011/09/30 - [TV&ETC] - 공주의 남자, 정종 죽고 경혜공주 공노비 된건 김승유 신묘한 계책?
2011/09/30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정종과 경혜공주 복중 아기 정미수 유복자될까? 사실은 이산 정조가 알고 있다
2011/09/29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될까? 사실은 정조만 알고 있었다.
2011/09/2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 된다? 사실은 진실과 허구 왜 퍼졌을까?
2011/09/2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 처 윤씨 사육신 편에서 자살했나? 사실은 방개떡 고사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제작자 계유정란 김승유 3살? 그럼 김승유와 아들 효달이 동갑? 대략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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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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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에서 정종은 죽기 전에 태중 이름을 지어준다.


아들인지 딸인지 모른다며 두 개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그런데 왜 정종은 태중 아이의 이름을 지어줄까?


사실 정종이 정미수의 이름을 지어준다는 설정은 잘못된 기록에서 기인한다.
 
정미수는 세조가 궁궐에서 정미수를 키우면서 "鄭眉壽"라고 지어준 이름이다. 오래오래 살라는 의미가 있다. 물론, 아명은 정종과 경혜공주가 지었을 것이다. 1461년 10월 정종이 죽을때 정조는 정미수는 여닐곱이라고 기록하고 있었다. 서거정의 예와 사관이 경혜공주가 죽을 때 정미수는 1473년 16세 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부러 정종과 경혜공주가 세조와 적대적인 것으로 만들다 보니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이 죽으면서 지어준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다.

1455년 6월 정미수는 정종이 유배를 떠야야 하고,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양위를 할 시점에 이미 경혜공주의 복중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경혜공주는 유배를 떠날때 이례적으로 교자를 타는 복을 누린다. 왜 경혜공주는 특혜를 받아야 했을까? 

당연히 경혜공주의 배가 불러왔기 때문에 걸어서는 움직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경혜공주가 관노비가 되었다는 설도 잘못된 이야기에서 전해진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세자 숭(장)이 정종이 죽고난 후에 죽는 것으로 그리고 있고, 숭이 죽기전에 단종과 금성대군이 죽은것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세자 도원군 장(숭)은 1457년 9월 2일 죽는다. 김승유는 1463년 이시애의 난에 참가를 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1457년 도원군 장이 죽고, 금성대군이 죽고, 단종이 죽고, 그리고 1461년 정종이 죽는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시계가 꺼꾸로 가다 못해 뒤죽박죽이다. 공주의 남자를 따라가기도 힘에 부친다.


현대는 역사자료도 인터넷으로 쉽게 찾을 수가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기록을 찾기가 힘들었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책을 통해서 일수밖에 없다.


속담에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말이 있듯이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간다.

문제는 말로서 퍼지는 여론은 살이 붙는다는 것이다. 감기가 걸렸다고 하면 마지막에는 죽었다고 알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에도 잘못된 정보가 인터넷에서 퍼지는 것처럼 당시는 지금보다 더 빠르게 잘못된 정보가 넘쳐나게 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양반들이 여론을 주도했고 이를 알리는 방법은 사발통문이었다.


정종이 죽고 경혜공주가 복중에 유복자 정미수를 가지고, 관노가 되어서 모욕을 당했다는 말도 그렇게 만들어져 사실처럼 세조시기 전국방방곡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순천관노가 되었다거나 아니다 장흥관노라더라고 살이 붙고, 피가 되어 소문이 살이 되어 진실이 되어간다. 



공주의 남자에서도 세조(수양대군)은 정종이 반란으로 죽고, 금성대군을 사사하고, 단종도 사사한다. 그리고 경혜공주는 변방의 순흥 관노로 보내버린다.  드라마를 보고 세조와 한명회, 신숙주 나쁜놈이라고 했다면 드라마가 역사가 되는 현장을 보고 있는 것이고 사림파의 프로파간다에 속아넘어간 것이다. 그동안 많은 드라마들이 역사가 아닌것을 역사처럼 드라마에 차용하였다. 그에 놀아난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역사화 되었다.

경혜공주 관노비설과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에 대해서 역사적 진실을 알고 싶다면 다음 글들을 참고 하기 바랍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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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에서 궁을 나간 세령은 빙옥관에서 신면의 손에 이끌려 궁에 다시 돌아온다.


궁에 돌아온 세령은 세조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아버지의 죄업을 자식들에게까지 전달하겠는냐는 것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의경세자(숭:장)(덕종:성종의 아버지)이 피를 토하고 쓰러지자, 세조(수양대군)은 그동안 드라마에서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세조의 뒤를 이어 예종이 되는 둘째 왕자 해양대군(황)를 궁으로 불러들인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 설정으로는 정희왕후 처가에서 길러진 것으로 그리고 있다.


어쨌든 의경세자 숭(장)은  곧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의경세자는 1438년 생으로 20살이 되는 해에 죽는다. 드라마 시제는 1456는 6월 사육신의 쿠데타 실패와 의경세자(장)이 죽은 1457년 9월 2일 사이라는 것을 뜻한다.
 


수양대군은 악담을 퍼붓는 세령에게, 신면을 들어오게 하면서, 신면은 세령과 결혼할 수 없다고 말을 한다. 세령은 신면 너의 노비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시청자를 낚시하는 장면에 지나지 않지만, 신면의 노비가 된다고 해서 세령과 결혼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첩으로 삼으면 되니 말이다. 어쨌든, 그동안 신면은 수양대군에게 끊임없이 이용만 당한 것이 된 것인가? 아니면 세령공주를 노비로 부리니 좋아라 해야 하는 것인가?


<공주의 남자>에서는 1450년부터 신면은 세령을 향한 해바라기 였고, 2번의 결혼 식 실패를 맛봐야 했다. 7년 동안 세조의 노비였으니 신면의 노비가 된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어짜피 공주의 남자는 요즘으로 치면 막장 멜로 시대극이기 때문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시제는 무의미 하다. 작가의 작의적인 시간의 꼬임이 있다. 어쩌면 공주의 남자만의 시간의 왜곡현상이 있어서 블랙홀이 형성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실존인물이고 계유정란 전에 죽었던 김승유가 살아나 젊음을 유지하고 세령과 사랑놀음을 하고 있고, 공주의 남자에서 하루는 1년처럼 빠르게 진행된다. 더군다나 미래로 과거로 지멋대로 왔다리 갔다리 황당 타임머신을 타고 다닌다.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이 끝나고 김승유가 강화도에서 1박2일 입수를 하고 나오니 1년이 지나버렸다.


강화도에서 살아나 대호로 알리게 되는 온녕군을 암살하고 신죽주를 죽이려 실패하자, 세조와 한명회는 온녕군을 죽인 배후는 단종과 정종과 금성대군이 획책한 것이라며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다. 결국에는 김승유가 단종을 몰아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것이 된다.
 


하지만, 온녕군이 죽은 때는 1454년 5월 12일 이었고, 세조(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른 때는 1455년 6월 11일(윤)이였다.
 

단종 2년, 1454년 5월 12일,  온녕군(溫寧君) 이정(李裎)이 졸(卒)하였다

 

위키백과 사전에는 1453년 졸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1453년 10월 계유정란이 끝나고 김종서의 첫째아들 김승규의 아내와 손녀 아강이 강곤의 집에 노비로 팔린 것으로 그렸고, 세령과 신면이 강곤의 집에서 아강과 형수를 빼돌려 살게하다. 김승유가 돌아오자 빙옥관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그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주의 남자를 보고 김종서는 모두 절손된 것으로 알고, 김종서의 살아남은 후손들은 족보를 샀는줄 안다. 하지만, 김종서의 살아남은 손자만 해도 4명이 있었고, 자식도 3명이나 있었다. 물론, 드라마 주인공 김승유는 계유정란 전에 죽고 없었다. 공주의 남자의 이야기 구조는 납량극에서나 나올 스토리 구성이다.
 

전일에 정난(靖難)할 때 사람을 많이 죽이지 않으려고 하여 모두 너그러운 법[寬典]에 따랐는데, 근일에 대간(臺諫) 에서 와언(訛言)이 떠들썩하게 일어남으로 하여 간당(姦黨)의 근본(根本)을 모두 제거하자고 굳이 청하므로, 대신(大臣)에게 의논하였더니, 대신의 의논도 이와 같았다

..중략..

부처(付處)한 이용(李瑢)의 아들 이우직(李友直)과 황보석(皇甫錫)의 아들 황보가마(皇甫加麿)·황보경근(皇甫京斤), 김종서(金宗瑞)의 아들 김목대(金木臺), 김승규(金承珪)의 아들 김조동(金祖同)·김수동(金壽同), ..생략..을 죽여라


단종 2년 1454년 8월 15일


1453년 10월 10일 : 김승규와 김승벽의 두아들 차동과 사동이 죽음.

1453년 10월 11일 : 김종서 죽음

1453년 11월 23일 : 김승벽, 서자 김석대 죽음

1454년 8월 15일(추석) : 서자 김목대, 첫째 김승규 아들 김수동, 김조동 죽음


계유정란으로 노비가 되어 강곤에게 팔려간 며느리, 손녀 아강은 계유정란 때문에 강곤에게 노비가 된 것이 아니다. 실제는 사육신들이 수양대군(세조) 척살 쿠데타에 실패하고, 금성대군의 역모 여파로 그전에는 공노였다가 공신들의 사노비가 된 것이다.


이때 사육신들의 아내와 첩들과 딸들이 공신들의 노비가 되었다. 알고 보면 두고두고 김종서 일가와 사육신들은 악연의 연속이다. 더군다나 1457년 6월 금성대군이 순흥에서 반란를 모의한다는 말을 듣고 치계를 당하고, 금성대군을 사사시키라는 대신들의 간언이 있었으나 세조는 이를 물리친다. 1457년 9월 2일 의경세자가 죽는다. 일련의 사건이 김종서 일가에 쓰나미로 몰려온것이다. 김종서 일가는 사육신과 금성대군. 정종과도 악연의 연속인 것이다.


 

김승규(金承珪)의 아내 내은비(內隱非)·딸 내은금(內隱今)·첩의 딸 한금(閑今)은 영의정(領議政) 정인지(鄭麟趾)에게 주고,

김승규(金承珪)의 딸 숙희(叔熙)는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강곤(康袞)에게 주고

김승벽(金承壁)의 아내 효의(孝義)는 예조 참판(禮曹參判) 홍윤성(洪允成)에게 주고,

- 세조2년 1456년 9월 7일




<공주의 남자>에선 김승규의 아내와 딸 아강이 강곤의 노비가 되었지만, 실제는 영의정 정인지의 노비가 되는 것이다. 그것도 세조가 왕위에 오른 2년 후인 세조 2년, 1456년 9월 7일에 말이다.


형수와 조카를 빼돌릴 수 있는 때는 지금 드라마 시제인 1456년 9월 이후가 되어야 합리적이다. 문제는 형수와 조카와 김종서관련 여자들은 성종때 풀려나지만 말이다.  


그런데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는 김승유와 김종서가 정종과 경혜공주와 친하고, 금성대군과 친할뿐만 아니라, 사육신 이개와 스승관계에 세조를 척살할 계획을 세우고 정종과 금성대군과 함께 쿠데타를 꾀하고 있다.


물론,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한때의 적이라고 해도 공동의 적인 세조를 몰아내기 위해서 합종연횡은 당연하다. 적과의 동침처럼 극적인 설정이 없다. 단순히 처음부터 끝까지 한편이라는 것 보다는 말이다. 물론, 처음 사육신과 안평대군과 김종서.황보인은 한편이었다. 계유정란 시 사육신들이 배신을 때리고 살아남은 김종서 일파를 죽이는데 앞장섰지만 말이다.
 

이현로(李賢老)·이승윤(李承胤)·이개(李塏)·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 등이 교결(交結)하여 마음으로 굳게 맹세하고 ‘문하(門下)’라고 칭하고, 모두 도서(圖書)의 헌호(軒號를 지어서 서로 한때의 문사임을 자랑하였으나, 모두 농락(籠絡)당한 것이었다

..중략..


한때 (안평대군) 용(瑢)에게 아첨하는 자들이 용(瑢)에게 글을 보내는 데 한결같이 계서(啓書)와 같이 하여, ‘용비(龍飛)’·‘봉상(鳳翔)’·‘번린(攀鱗)’·‘부익(附翼)’·‘계운(啓運)’·‘개치(開治)’ 등과 같은 용어를 쓰고도 의혹하지 않았으며, 혹은 신이라 칭하는 자도 있었다. 정난(靖難) 한 뒤에 많이 얼굴을 바꾸고 꼬리를 흔들었으나, 세조는 모두 묻지 않았다

- 단종 1년, 1453년 5월 19일


집의(執義) 이개(李塏)가 본부(本府)의 의논을 가지고 아뢰기를,

“신 등이 지금 정부에서 아뢴 죄목(罪目)을 보니, 이용(李瑢)이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정분(鄭笨)에게 지시하여 심복을 병조(兵曹) 군기감(軍器監)에 포열(布列)하게 하였다 하였으니, 정분의 죄가 황보인·김종서에 못하지 않습니다. 허후(許詡)는 집정 대신(執政大臣)으로서 자주 용(瑢)의 집에 갔으니, 당여(黨與)인 것이 분명합니다. 조수량(趙遂良)·안완경(安完慶) 등은 용(瑢)과 더불어 비밀한 말로 약속하였고, 또 조수량은 용(瑢)의 금대(金帶)를 받았으니, 이것도 또한 용(瑢)의 당입니다. 조순생(趙順生)·이석정(李石貞)·지정(池淨) 등은 모두 무관(武官)으로서 용(瑢)의 집에 왕래하여 당원(黨援)을 하였으니, 청컨대 모두 율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그 나머지 지당(支黨) 이보인(李保仁) 등은 밤낮으로 용의 집에 모였으니 어찌 역모를 알지 못하였겠습니까? 또한 법에 의하여 논단하소서.”

- 단종 1년, 1453년 10월 28일



더군다나 이개를 비롯한 많은 사육신들이 안평대군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가 안평대군과 황보인, 김종서가 수양대군 일파에 척살되자. 배신을 때리고 김종서, 황보인, 안평대군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들을 단종을 압박해서 죽이라고 한사람들이 사육신들의 다수였고, 정난공신이 되었다.

더군다나 사육신들은 단종을 몰아내고 세조를 왕에 옹립하고 좌익공신이 된다.

한명회, 신숙주와 함께 단종폐위와 수양대군(세조) 옹립으로 좌익공신이 된 사육신 성삼문

임금이 좌익 공신(佐翼功臣)을 정하는데,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익현군(翼峴君) 이관(李璭)·한확(韓確)·윤사로(尹師路)·권남(權擥)·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를 1등으로 삼아 수충 위사 동덕 좌익 공신(輸忠衛社同德佐翼功臣)이라 이름하고, 정인지(鄭麟趾)·이사철(李思哲)·윤암(尹巖)·이계린(李季疄)·이계전(李季甸)·강맹경(姜孟卿)·윤형(尹炯)·최항(崔恒)·전균(田畇)·홍달손(洪達孫)·양정(楊汀)·권반(權攀)을 2등으로 삼아 수충 경절 좌익 공신(輸忠勁節佐翼功臣)이라 이름하고, 권공(權恭)·이징석(李澄石)·정창손(鄭昌孫)·황수신(黃守身)·박강(朴薑)·권자신(權自愼)·박원형(朴元亨)·구치관(具致寬)·윤사윤(尹士昀)·성삼문(成三問)·조석문(曹錫文)·이예장(李禮長)·원효연(元孝然)·한종손(韓終孫)·이휘(李徽)·황효원(黃孝源)·윤자운(尹子雲)·이극배(李克培)·이극감(李克堪)·권개(權愷)·최유(崔濡)·조효문(曹孝門)·한계미(韓繼美)·정수충(鄭守忠)·조득림(趙得琳)을 3등으로 삼아 추충 좌익 공신(推忠佐翼功臣)이라 이름하였다.

세조 1년 1455년 9월 5일 (음)



 



많은 사람들이 신숙주가 세종의 유명을 버리고, 조카인 단종을 폐위하는데 앞장섰다고 말하고 신숙주를 배신의 아이콘으로 쉬이 쉰다는 숙주나물을 만들어 버렸다.
신숙주는 한번의 배신을 했지만, 사육신은 3번의 배신을 하였다.

첫번째 안평대군과 김종서를 배신하고, 두번째 단종을 배신하고 세조를 옹립했으며, 세번째 세조를 배신하고 단종을 복위시켰다. 신죽주랑 비교해서 누가 더 많은 배신을 했을까? 신숙주가 하루만 지나면 쉰다는 숙주나물이라면 사육신은 3번 배신하고 돌고돌아 충신이 된건가?

가끔가다가 댓글로 충신인 사육신이 그럴리가 없다는 댓글이 달리고, 사육신의 후손인데 선조를 모욕하지 말라도 한다. 본인들이 정확히 사육신의 후손인지는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이글을 권한다.

그리고 세조가 쓴 문종, 단종, 세조실록을 어떻게 믿느냐고 합리화 시킨다.
물론, 세조의 입장을 강하게 어필할 수는 있다. 문종실록과 단종실록 편찬에 사육신도 깊이 관여를 했었다. 문제는 당대 그들 스스로 언행에 당당하였다는 것이다. 유일종교관을 가지고 있던 박팽년이 내불당 관련해서 세종을 모욕하자 문종이 박팽년을 하옥시킨다. 하지만, 박팽년을 구원한 자는 배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신숙주였다. 선왕이 욕보인다고 해도 '언로는 열어야 합니다.'라면서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사육신이 처음 단종을 배신하고 수양대군을 옹립했다고 다시 단종을 옹립하려 시도한 것은 사육신들의 편향된(?) 정치관 때문이였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미화할 필요도 별로 없었다. 더군다나 조선의 사관들은 왕이 화장실(매화틀)에 가는데 까지 붓을 들고 따라다닐 만큼 철저했다. 또한 사관이 아니며 실록을 볼수도 없었다. 문종의 경우 "사관이 너무 가까이서 왕의 말을 적는다고 밖에 나가서 기록을 하면 안되겠니"라며 푸념하는 장면까지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세종은 환관과 비밀 이야기를 하는데 사관을 내보냈다고 실록은 기록까지 한다. 자신들의 조상을 미화하기 위해서 역사까지 왜곡할 필요는 없다.
 

결의를 숭상하여 근본을 배양하면 될 것이다. 성삼문·박팽년 등의 일은 대신에게 물어야 하겠으나, 정몽주·길재 등의 일은 대신에게 묻지 않더라도 그 후손을 녹용(錄用)해야 하리라.”

하매, 이청(李淸)이 아뢰기를,

“아뢴바 절의를 배양하는 일은 지당합니다. 숭장해야 할 자는 성삼문·박팽년뿐 아니라 이개(李塏) 등도 숭장해야 합니다. 그때에는 불의(不義)인 듯하였으나, 대의(大義)가 정해진 뒤에는 사람들이 도리어 의(義)로 여기니 이제 난신(亂臣)이라는 이름을 가할 수 없습니다.”

하고, 기준(奇遵)이 아뢰기를,

성삼문·박팽년 등이 세조에게는 역적이 되고 노산에게는 충신이 되는데, 그때에는 부득이 죄를 가하였으나 이제는 무슨 혐의가 있겠습니까? 예전에 정공(丁公) 이 한 고조(漢高祖)에게로 돌아가매 한 고조가 참(斬)하였는데, 이 일이 성삼문의 일과 서로 비슷합니다. 단병(短兵) 으로 교전할 때에는 정공이 한 고조에게 덕이 되었으나 항우(項羽)에게는 실절(失節)이 되었으니, 한 고조가 개국(開國)한 뒤에는 참하여 절의를 격려한 것은 마땅합니다. 성삼문·박팽년을 이제껏 난신으로 지목하니 어찌 이처럼 답답한 일이 있겠습니까? 그 사람의 자손은 이제 없거니와, 그 외자손(外子孫)이 혹 있더라도 저애(阻礙)됨이 없지 않을 터이니 이것이 어찌 옳겠습니까! 다 허통(許通) 해야 합니다. 신이 매양 아뢰고자 하였으나 못한 것이거니와, 만약에 아뢴 대로 도타이 숭장하면 곧 국맥(國脈)을 연장하는 방도가 될 것입니다.”

하고, 민수원이 아뢰기를,

“좌우가 아뢴 대로 권장하여 사기를 격려해야 합니다.”

하고, 이청이 아뢰기를,

“세조께서 하늘에 응하고 백성을 따랐는데, 성삼문 등이 오히려 노산을 복위시키려고 꾀하였으니 세조에게는 역적이 됩니다. 그러나 이제껏 난신으로 지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 정몽주의 일은 더욱 가상하고 아름습니다.”

하고, 기준이 아뢰기를,

“위란(危亂)할 즈음에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여 이와 같은 몇몇 사람이 있는 것은 워낙 드문 일이니 추장(推奬)해야 합니다. 무왕(武王)은 지극히 거룩한데도 백이(伯夷)·숙제(叔齊)가 오히려 말을 당기면서 간(諫)한 까닭은 군신(君臣)의 분수를 어지럽혀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하고서야 나라가 쇠약해지더라도 전복하는 화(禍)가 없고, 어진 사람이 많이 나서 사직(社稷)이 힘입을 바가 있을 것입니다. 세조조에서도 어찌 성삼문 등의 절의를 몰랐겠습니까마는 문죄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감히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조정에 의논하면 될 것입니다 - 중종 12년, 1517년 8월 5일



사육신이 충신의 반열로 돌아간 때는 중종반정이 성공한 이후에 죄는 있지만, 상육신의 결의는 본받아야 된다고 하면서 시작된다. 선비의 결의는 본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건 조선의 예 뿐만 아니라 어떤 나라도 하는 짓이다.


조선의 선비에게는 ‘불사이군’뿐만 아니라 연산군에 반해서 중종반정을 하는 세력처럼 임금이 임금답지 않았을 때 임금을 없애고 새로운 군주나 역성혁명도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얼마나 조선의 왕들이 신하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겠나? 언제 자신들의 목을 쳐 없앨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불어 조선의 왕들 스스로 자신들이 잘못하거나 신하들의 눈에 벗어나면 왕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유학자였다. 단지 왕은 유학자의 대표자 정도로 생각을 했다. 더군다나 중종반정세력의 명분을 찾는데 사육신에서 찾는 것이다. 세조의 반정이나, 사육신을 죽어도 마땅한 세력으로 남기면 중종반정을 성공한 세력자체도 역모를 꾀한 세력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합리화하는데 사육신만한 세력이 없었다.

사육신이 충신이면 김종서는 역신이 된다. 더군나다 김종서를  척살한 세조는 쿠데타를 진압한 세력이 된다. 사육신과 함께 단종을 몰아낸 세조는 조선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일을 한것이다. 이런 딜레머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이해당사자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수 밖에 없는가를 보는 것이다. 역사를 단순하게 보지 않는것이다.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은 드라마를 보면서 역사인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드라마를 보고서 역사를 알았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누구누구는 어떻네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은 드라마와 역사를 혼돈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드라마는 역사를 알고 보면 재미가 있다. 글쓴이의 대부분의 글은 드라마 리뷰같지만, 실제는 드라마가 망친 역사바로 찾기 리뷰이다. 오죽하면 카테고리가 [역사이야기]이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김승유와 신면이 불쌍하다.  신면이 왜 불쌍하냐는 사림이 있다. 친구를 배신하고, 친구의 연인을 빼앗고, 단종을 배신했는데라면서 말이다. 대표적인 드라마를 역사로 아는 사람들의 전형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기회에..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스승 이개 알고보면 계유정란공신, 사육신 단종폐위 좌익공신들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계백, 의자왕, 반란 실패한 사택비 죽고, 교기 왜로 쫓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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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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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ㄹㄷhttp:// BlogIcon ㄷㅇㄷ 2011.09.23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육신이 충신이면 김종서는 왜 역신이 되는것인가요? 사육신을 충신으로 봐도 김종서도 그 나름으로 충신으로 볼수 있는거 아니에요?

    • 의문 2011.09.23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양립이 가능할 것 같은데, 무작정 양립이 안되는 것처럼
      글을 쓰시니 다소 불편함이 있긴 하네요.

      게다가 기록에 대한 신뢰가 조금 지나치기도 합니다.

      이정도의 신뢰라면,

      [세조는 엄청나게 종친들을 챙겼다. 종친을 죽이고,
      귀양보내고 그런 건 전부 다 신하들 상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거다. 진정으로 불쌍한 것은 세조다.]

      라는 결론을 내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기록도 전후사정을 보아가며 해석을 해야할 텐데...
      흠...

  2. 하하 2011.09.24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월 21,22 국내최고 라이브가수 박완규 ..... 그리고 부활 패밀리 총출동!

    그동안 방송을 통해 볼수없었던 그와 그들의 최고의 무대, 2011년 10월 "사랑" 이라는 테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최고의 무대로 부활하는 이번 콘서트에서는 박완규 외에 부활 패밀리의 총출동으로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국내 그룹 부활의 보컬 정동하 그리고 역대보컬 이성욱, 정단 위대한 탄생의 최고의 히트메이커 등이 함께
    참여해 박완규와 함께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그동안 방송이나 공연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환상적인 무대 출연진들과 함께 꾸미는 최고의 하모니!

  3. 루비 2011.09.25 0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 또 흑백논리 써놓으셨네. 대체 김승유가 실존인물이고 계유정난전에 죽었다는건 어디서 또 들으셨데?; 님보면 참..머랄까 사극에 한맺힌 사람 같아요.ㅡㅡ 자료라고 내세우는것들도 유리한 부분 추리시고 님이 말하는 진실은 야사에서 이야기들 적절히 섞어 배합. 님아 접때도 리플 한번 달았었는데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에요. 재밌게 보면 그만이지 무슨 작가가 시간을 왜곡하니같은 말을 매번 하시나요? 공남 퓨전사극이에요. 퓨전 몰라요? 퓨전? 그냥 보고나서 역사공부했다 그런말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큰 줄기만 기억하지 뭐 드라마 달달외워서 다닙니까? 언제 몇월몇일 누가 죽었는지 날짜 기억하고 다니겠습니까? 님 생각에 아닌거 같으면 뭐 어차피 님 블로그니까 아닌거 같다고 쓰는건 좋은데 왜 늘 남을 비판하고 님말만 진리라고 우기십니까? 저번엔 어떤분을 역적집안 만드시더니.. 님 진지하게 이야기 하는데요, 진짜 성격 특이하십니다. 오프라인에서도 그러시는지? 주변인들 정말 피곤할거 같아요. 무서워서 무슨 말 하겠어요? 말꼬리 잡고 늘어질텐데.. 이 드라마 온통 불만이면서 드라마 꼬박꼬박 챙겨 보시는게 더 웃김. 님 공남작가한테 원수졌어요?ㅎ

    • 1234 2011.09.29 0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퓨젼을 진짜로 착각해서 정신병자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잉여 쓰레기가 있어서 쓰시는 것 같은데

  4. 2011.12.19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Favicon of http://huntingpastore.com BlogIcon 고명진 2012.01.02 2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일을 나의 친구를 계속, 이거 정말 끝내 준다

  6. Favicon of http://greenstarenergysaver.com BlogIcon 인형 2012.01.04 0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

  7. Favicon of http://meetthetanners.com BlogIcon 아가 2012.01.04 2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박 겉 핥기

  8. Favicon of http://no-credit-check-cell-phones.com BlogIcon 박기동 2012.01.07 0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9. Favicon of http://john.is-a-liberal.com BlogIcon 애비 게일 2012.04.06 0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속이고 있군요.

  10. 썰영 2012.04.23 0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으로 다행입니다. 역사를 오도하고 편협화한 극이 재미와 인기에 힘입어 역사를 그르칠까 열려했는데 올바른 사고와 역사적인 사서를 인용해 정확한 연도와 날짜를 표시해 사실에 입각한 해석과 분석적인 설명 을 하시고 역사적인 환경에서 일어난 사건을 객관적 입장에서 정리한것은 매우 중요하고 대단한 일입니다.
    글 전체에서 바른 역사인식을 알게됩니다. 모르고 따르는 일반 대중의 생각을 바르게 하는 모범답안 같습니다. 작가는 인기와 흥미에 영합 할수 있지만 역사를 오도하여 선인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잘못을 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흑백 논리나 개인적인 섣부른 판단으로 왜곡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역사를 오도하고 가치관을 혼란하게 하여 후손들의 판단을 흐리게하면 역사와 민족에게 죄인이 될테니까요.
    개인의 영달을 위해 뜻을 수시로 바꾸는 사람보다 오히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힘써 일한 충신 애국자 대인을 변절자 역적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는 연속극은 창작이라도 배격해야 할것입니다.
    역사의 인물을 인용할때는 사실에 입각해 좋은 점을 나타내던지 그의 숭고한 사상과 철학을 계승해야하는것이지 편협한 생각으로 위인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버린다면 후손들의 귀감이 무엇이며 무엇을 배운답니까? 글만 쓰고 재미만 있고 인기가 높다고 바른길이 아닌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는것은 좋은작가라고 할수 없지요. 바른 판단을 하도록 도와준 윗 글에 찬사와 존경을 보냄니다.

  11. Favicon of http://ginger.gotdns.org BlogIcon 마리아 2012.05.08 2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유대인 음식만 먹습니다.

  12.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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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Favicon of http://www.hometravel-luggagebag.com/ABS-luggage.html BlogIcon ABS luggage 2012.08.21 1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llkjihygjhfg

  14. Favicon of http://www.blondinensex.ch/ BlogIcon Blondinensex Videos 2012.12.30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의 영달을 위해 뜻을 수시로 바꾸는 사람보다 오히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힘써 일한 충신 애국자 대인을 변절자 역적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는 연속극은 창작이라도 배격해야 할것입니다.

  15. Favicon of http://ford.grupocaiuas.com.br/fiesta-sedan BlogIcon fiesta sedan 2013.01.25 0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Google에서 블로그 사이트를 발견하고 조기 게시물 몇 가지를 확인하십시오. 아주 좋은 작동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합니다. 난 그냥 내 MSN 뉴스 리더에 RSS 피드를 추가. 나중에 당신에게서 더 읽어 앞으로 추구! ...


<공주의 남자>에서 신숙주는 수양대군의 복심이 되어 계유정란으로부터 단종을 폐위하고 수양대군을 왕위에 옹립하는 것으로 나온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신숙주의 살았는 큰아들(큰아들은 일찍죽었음) 신면이 아버지 대를 이어서 악역으로 등장을 한다.


<공주의 남자>에서 신면은 친구를 배신하고, 친구 김승유의 연인 세령공주를 빼앗고, 문종, 단종을 배반하고, 수양의 개로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기회가 되면 신면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글을 쓸까한다. 알고보면 불쌍한 영혼이 신면일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숙주를 <숙주나물>의 대명사로 하여 하루가 지나면 쉬어 버리는 나물을 숙주나물로 이름한다. 한마디로 변심의 아이콘이 신숙주이다. 

신숙주가 숙주나물로 불리우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글쓴이는 왜 신숙주가 숙주나물로 불리는 이유를 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저변에 깔린 프로파간다를 알지 못하고 선현들이 신숙주를 숙주나물로 불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신숙주가 계유정란에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계유정란으로 정란공신이 되고, 후에 단종 복위 운동에 성삼문과 함께 하지 않았다고 비난을 한다. 물론, 성삼문은 친구인 신숙주에게 의사를 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456년 6월 성삼문은 신숙주는 친구이지만 죽여야 한다고 말을 한다.


그런데 야사로 신숙주를 비난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사실처럼 돌아다닌다. 신숙주는 배신자이지만, 신숙주의 아내 윤씨는 사육신과 함께 단종복위에 참가하지 않고 돌아와서 신숙주를 꾸짖고 자결을 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숙주는 배신의 아이콘 이였지만, 신숙주의 아내 윤씨는 만고의 충신인 것이다.


신숙주의 후손이  신숙주의 제사를 지내고나서 제사에 사용한 봉개떡(방개떡)을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나눠줬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방개떡”을 먹지 않아 이유를 물으니 “성삼문”의 후손이었다고 한다.  방개떡은 봉개떡에서 유래한다. 방개잎은 하루가 지나면 쉬어버리는 숙주나물과는 다르게 방개잎으로 음식을 보관하면 한여름에도 몇일동안 상하지 않고 보관이 된다. 그래서 제사에 올릴때 방개잎으로 제물을 감싼다. 천연방부제가 방개잎(봉개잎)이다. 숙주나물과 비견되는 상징물이다.


당연히 성삼문의 후손으로서는 신숙주의 제사상에 오른 떡을 먹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나 같아도 먹지 않을 것 같다.


어떤 이가 성삼문의 후손이라는 아이에게 조용히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공물은 신숙주를 위한 공물이 아닌 사육신과 함께해 절개를 지킨 신숙주의 아내 “윤씨”에게 바치는 공물이니 먹어도 된다고 하자. 성삼문의 후손을 자처하는 아이가 그제야 먹었다는 훌륭한 고사가 아닐 수 없다.


절개와 절의의 상징인 사육신을 추앙하고 더불어 배신자 신숙주를 또한방 먹일 감자이니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아내보다 못한 신숙주가 되시겠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성삼문의 후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15만이 넘는다고 한다. 절손된 가문으로서는 참으로 많은 후손을 남겼다. 성삼문의 직계 후손은 절손이 되어 1902년 고종 때 성삼문의 방계 후손으로 하여금 제사를 봉사하게 하였다.

자세한 사항은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물론, 성삼문에게 막내아들이 있었는데 유모가 막내아들을 빼돌려서 숨어서 살았다는 이야기가 나름대로 전한다. 대부분 이런 과정으로 살아남긴 한다. 김종서의 손자 3명도 계유정란 때 유모의 손에 살아 남았다고 전한다. 어쨌든, 언제부터 어떻게 성삼문의 직계후손이 15만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누가 성삼문을 명예훼손하는지 알수가 없다.


어쨌든, 연산군때 반정을 성공한 중종  때부터 끊임없이 사육신 후손을 찾았고, 영, 정조 때는 사육신관련자, 계유정란관련으로 절손된 김종서를 비롯한 황보인 등 수 많은 사람의 후손을 찾아 관직을 하사하기 까지 했다.


그런데도 성삼문의 후손은 나오지 않았다. 1902년 고종 때 오죽하면 제사를 지낼 후손이 없자, 성삼문의 방계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겠는가? 고종 당시 왜 사육신에 집착을 하였을까? 조선을 끊임없이 청나라, 러시아, 일본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에 나라를 들어서 넘기려는 수작을 벌리는 자들도 넘쳐났다. 결국에는 일본에 나라를 넘긴 친일민족반역자들과 그 후손이 잘먹고 잘살고 있고 조선에 충성하고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은 절손되거나 3대가 망해서 비루먹는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설화의 문제점이 없을까? 미안한 이야기지만 처음부터 이 설화는 성립할 수 없다.


신숙주의 부인 윤씨는 세조 2년 1456년 1월 26일 죽는다. 계유정란은 1453년 10월 10일에 있었고 신숙주가 정란공신이 된 것은 맞다. 이때 사육신의 대부분이 정란공신이 되어 공신전과 계유정란으로 남은 여자들을 노비로 하사 받는다. 성삼문도 예외는 아니다.
 

 


대제학 신숙주의 처 윤씨의 상에 사재감 정 조효문을 보내어 호상하게 하다.
 

“신 대제학(申大提學)은 다른 공신의 예(例)와 다르고, 또 만리(萬里) 외방에 있으며, 또 여러 아들이 다 어리니, 나의 애측(哀惻)함을 다 진술할 수가 없다. 정원(政院)에서 포치(布置)하여 관(官)에서 염장(殮葬)하게 하며, 또 관원을 보내어 치제(致祭)하는 등의 일을 상실(詳悉)히 아뢰도록 하라.” - 세조 2년 1456년 1월 26일


사육신이 단종복위를 시도한 때는 1456년 6월 1일이다. 이 날의 쿠데타는 실패로 끝난다. 이튿날 김질과 김질의 장인인 정찬손이 세조(수양대군)에게 어제 왕을 죽이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고변을 함으로서 들통나고 끌려간다. 집에 있던 유성원만이 자신들의 반정(복위)가 물거품이 되었다고 자살하고 만다.


1456년 1월에 죽은 신숙주의 아내가 무슨 귀신도 아닌데 1456년 6월 일을 기억해서 신숙주가 사육신과 같이 하여 죽지 않고 살아돌아왔다고 신숙주 너는 충신도 아니다면서 죽을 수가 있겠는가?


더군다나 신숙주는 처 윤씨가 병환으로 죽을 때, 1455년 10월 24일 단종의 사은사로 멀리 명나라에 가 있어서 윤씨가 죽은 줄도 몰랐다. 공주의 남자에서 신면이 나오고 있지만, 신숙주의 아들들이 다 어렸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짜피 신숙주는 나쁜놈인데 윤씨가 있던 없던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마는 이렇게 말을 하면 신숙주와 신숙주의 아내 “윤씨”는 부창부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사육신을 치켜세우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더라도 없는 이야기까지 끌어들여서 신숙주를 모독할 필요가 없다.


신숙주와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이 갈린 순간은 사육신이 단종복위를 시도한 1455년 말부터다. 계유정란으로 정란공신을 받은 사람도 사육신이었고, 세조가 양위 받아 공신을 제수할 때 사육신들의 다수도 신숙주와 같이 <좌익공신>이 되었다. 신숙주가 단종을 배신한 배신자라면 사육신도 배신자일 뿐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사육신 중 이개가  신숙주에게 말하는 장면은 100% 허구이다.

신숙주와 사육신을 가른 이유은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참조하기 바란다.

사육신이 충신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단종의 복위를 하다 죽었다는 절개와 절의뿐이다. 분명히 절의한 사육신은 추앙받아 마땅하다. 왜냐하면 절의와 절개란 어떤 시대이던 상관없이 추앙해주어 하기 때문이다. 연산군을 위해서 죽은 자도 절의가 있다고 추앙해 주는 게 조선이었다. 절의를 지키고 충성하는 신하를 내치면 어떻게 될까?


어떤 배덕자들이 왕을 몰아내는데 왕을 위해서 충성을 받칠자가 없다면 그 나라는 망한다. 또한, 지속적으로 반역과 반역의 연속이 될 것이다. 그래서 고려의 정몽주, 이색 등을 만고의 충신이라고 추앙하는 것이다. 사육신도 그 범주에서 충신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조선의 왕들은 끊임없이 반정에 속을 썩어야 했다.

태종(이방원)처럼 형제를 죽이고 왕이 되거나, 숙부가 왕을 몰아 낼때 지켜줄 신하가 필요했다. 왕의 입장에서 숙부나 자신의 형제가 자신을 왕에서 쫓아내거나 세자가 왕이 되었을 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쫓아낸다면 좋아할 왕은 하나도 없을 것이고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겠는가?. 유교의 입각해서도 조선은 배덕의 역사이다. 배덕하지 말고, 반역하더라도 충성을 하는 자를 숭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육신들이 계유정란에서 안평대군, 김종서, 황보인을 따르던 인물들을 주살하도록 상주한 것처럼 세조(수양대군)편에 있던 사람들이 당연히 사육신 관련자를 처벌하려 시도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반대로 사육신이 쿠데타에 성공하더라도 피의 보복은 불보듯 뻔한 상황이다. 더군다나 어린 상왕의 존재는 세조를 옹립한 세력들에는 가시와 같다. 상왕 단종이 연루 되지 않았더라도 연루자로 몰아 밖으로 내치거나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문제는 단종을 죽이는 결정적인 동인을 제공한 자도 사육신중 성삼문과 권자신이였다는 것이다. 성삼문은 자신들의 배후에 상왕 단종이 있다고 당당하게 밝히고 만다. 단종의 외삼촌인 권자신도 우리의 배후에는 상왕전하가 있고, 상왕이 징표로 큰칼까지 주었다고 까발린다. 마지막 순간에 단종을 배신하고 만다.

성삼문과 권자신이 상왕이 모반을 알고 있었다고 하다
 

“상왕(上王)께서도 역시 너희들의 역모에 참여하여 알고 있는가?”

하니, 성삼문이 대답하기를,

“알고 있다. 권자신(權自愼)이 그 어미에게 고(告)하여 상왕께 알렸고, 뒤에 권자신·윤영손(尹令孫) 등이 여러 번 약속을 올리고 기일을 고하였으며, 그날 아침에도 권자신이 먼저 창덕궁(昌德宮)에 나아가니, 상왕께서 긴 칼을 내려 주셨다.”

하였다. 구치관이 또 권자신에게 물으니, 권자신의 대답도 성삼문과 같았다.

- 세조 2년, 1446년 6월 7일


그 후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영월로 유배를 떠난다. 이 와중에 단종의 어머니인 문종비 권씨는 비에서 강등되고, 묘의 기물도 파괴된다. 묘를 수리하지 않아 묘가 떠내려가는 참화까지 당한다. 이에 대한 허황된 이야기가 널리 사실인것처럼 퍼지고 또다시 신숙주와 세조는 죽일놈이 되지만 말이다.


분명히 사육신은 추앙해주어야 하지만, 없는 이야기까지 만들어서 추앙할 필요는 없고,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서 신숙주를 죽일놈으로 만들 필요도 없다. 신숙주가 죽어야 추앙할 사육신이라면 존경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신숙주는 성종 6년, 1475년 6월 21일에 죽는다. 6월 21일(음)이면 양력으로 7월 중.하순에서 8월 초순이다. 한여름 묘지에서 제사를 지낸다면 쉽게 음식이 상할 수 밖에 없다. 어린이가 신숙주의 제사떡을 먹지 않는 이유는 여름에 상했을까봐서이지, 신숙주의 변절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이 떡은 쉽게 쉬지 않는 방개잎으로 쌓은 것이니 쉬지 않는단다.가 정확한 이야기가 아닐까한다. 

어쨌든, 사육신의 다수가 <정란공신>직을 거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거부한 이유가 수양대군(세조)에 반기를 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환상적인 반전이 있다. 공주의 남자에서 얼마나 황당한 설정을 했는지 쉬이 알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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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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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www.quality-western-boots.com BlogIcon Western Wear 2012.11.29 0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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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숙주가 숙주나물로 불리우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글쓴이는 왜 신숙주가 숙주나물로 불리는 이유를 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저변에 깔린 프로파간다를 알지 못하고 선현들이 신숙주를 숙주나물로 불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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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놀라운 각도가 있습니다. 그들의 각도도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학자의 관점은 일반적으로 논리적이고 비논리적 일의 두에 의한 결과 이유입니다.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는 김종서를 죽이는데 일조한 한명회의 수하 두명을 참살하고 나무위에 걸어둔다.


김승유는 빙옥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개를 만난다.


사육신중의 한명인 이개는 김승유와 정종과 신면의 스승으로 나온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는 주인공들은 자라지도 않고 늙지도 않았는데 어느 새 6년의 시간이 구렁이 담넘어 가듯이 지나가고 있다. 극중에서 몇일 지나지도 않았는데 1~2년이 훌쩍 넘나든다.

1452년 문종이 죽고 단종이 즉위하고,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란이 끝나기 무섭게 1455년 6월 11일 단종이 폐위되고 수양대군이 왕이 되었다가 몇일 지나지 않아서 1456년 6월 2일 단종복위 사건을 다루고 있다.  

공주의 남자에서 하루는 1년인듯 하다. 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관심이 없을 지도 모른다. 박시후와 문채원이 사랑만 하면 그만이니 말이다. 4년이 넘도록 세령공주의 뒤꽁무니만 쫒던 신면이나 김승유는 무어란 말인가?

승유를 대신해서 화살을 맞은  다 낫지 않은 상태에서 말을 타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말에서 종종 신음을 내 뱉는다. 승유는 세령을 배려해서 말에서 내리고 걸어간다. 시청자로 하여금 둘의 사랑이 원수를 넘어 물이 익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박시후와 문채원이 말을 타고 형수를 찾아가는 장면이나 수없이 많이 나오는 승유와 세령의 말 위의 애정신을 보면서 든 생각은 2011년판 애마부인을 보는듯 했다.  

어쨌든, 이개는 살인귀가 된 김승유에게 더 이상 피를 흘리는 작은 복수에 연연하지 말라며 단종복위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동참하기를 바란다.
 


김승유는 김종서를 죽인 이들을 모두 차례차례 죽이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개는 곧바로 세조(수양대군)을 척살하고 단종을 복위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어쨌든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는 수양대군을 죽일 기회가 너무 많아서 셀수가 없다. 그런데 김승유는 모든 기회를 날려먹었다. 왜 작가는 수양대군을 척살할 수 많은 기회를 김승유가 날려먹도록 만들었을까?


그냥 수양대군을 죽이더라도 드라마를 진행하는데 하등 지장이 없다. 오히려 김승유가 수양대군을 죽이면 수양대군이 김승유의 아버지를 죽였고, 김승유는 수양대군을 죽였으니 세령공주와의 사랑이 더 극적이였을 텐데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수양대군은 세조가 되는데 어떻게 죽인 것으로 그릴 수 있느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드라마인데 어떤가? 김승유와 세령공주의 극적인 사랑인 서로 죽이고 죽인 원수들간의 핏빛 로맨스의 절정인데 말이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역사와 비슷한 장면은 한 대목도 없다. 오히려 있는 기록과 사건까지도 드라마 작가의 맘대로 바꾼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역사를 파괴하고 있다. 역사를 파괴하면서 "재미를 위해서"라고 말을 하고 있다. 더불어 김승유는 실존인물이고, 세령공주는 이름만 다를뿐 실존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인물이다. 공주의 남자의 모티브를 제공한 금계필담 이야기를 제외하고 말이다.

무슨 남을 패거나 자신을 학대하면서 절정을 느끼는 성변태처럼 역사를 파괴해야 재밌다는 역사파괴도착증환자들인가? 어쨌든 공주의 남자에서 세조(수양대군)이 죽는다고 달라질것이 하등에 없다는 것이다.



사육신들은 정종의 집에서 반정 모의를 하고 단종복위를 구상한다. 그리고 정종과 이개의 꾐에 빠진 김승유는 복수대신에 세조(수양대군)을 죽이는 모의에 참가한다. 사육신들은 승유가 자신들과 같이 한다고 하자 김종서 대감이 지하에서도 기뻐할것이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사육신으로 등장하고 김승유의 스승이며, 김종서와 단종과 정종의 스승인 이개는 김승유에게는 철천지 원수다. 그런데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는 가장 김승유를 걱정하고 단종을 걱정하는 인물로 그리고 있다.


계유정란 때 김승규의 아내인 형수와 김승규의 어린 딸 아강만 남기고 모두 죽인 적중에 사육신의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김종서의 후손중에 살아남은 자들이 많아서 셀수가 없을 정도이지만 말이다.

이개를 포함한 성삼문, 박팽년, 유성원 등 사육신의 다수는 계유정란 공신이 된다.


사육신 중 한명인 박팽년은 계유정란의 두목격인 안평대군을 대역죄인 대법으로 다스리라고 신숙주와 함께 간언하기도 한다.


안평대군을 대역죄로 다스리라 간언한 사육신 박팽년, 권자신

최항(崔恒)·신숙주(申叔舟)·박팽년(朴彭年)·박원형(朴元亨)·권자신(權自愼)은 아뢰기를,

“지금 정부(政府)·육조(六曹)의 청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 등의 뜻에도 또한 꼭 대법(大法)에 처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이계전은 아뢰기를,

“주상께서는 이미 신 등의 청을 윤허하시었다가, 다시 수양의 말로 인하여 이루어진 명령을 도로 회수하셨는데, 이것이 어찌 대군이 관여할 바입니까? 청컨대 대군과 더불어 함께 들어와서 친히 아뢰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오늘은 편치 못하니, 인견(引見)하지 못하겠다. 다른 날에 마땅히 인견하겠다.”

하였다. - 단종 1년 1453년 10월 16일


경회루(慶會樓) 아래에서 인견하였다. 세조(世祖) 및 좌의정(左議政) 정인지(鄭麟趾)·우의정(右議政) 한확(韓確)·좌찬성(左贊成) 이사철(李思哲)·이조 판서(吏曹判書) 정창손(鄭昌孫)·예조 판서(禮曹判書) 김조(金銚)·호조 판서(戶曹判書) 이견기(李堅基)·공조 판서(工曹判書) 권맹손(權孟孫)·형조 판서(刑曹判書) 박중림(朴仲林)·병조 판서(兵曹判書) 이계전(李季甸)·대사헌(大司憲) 권준(權蹲)·도승지(都承旨) 최항(崔恒)·우승지(右承旨) 신숙주(申叔舟)·좌부승지(左副承旨) 박팽년(朴彭年)·우부승지(右副承旨) 박원형(朴元亨)·동부승지(同副承旨) 권자신(權自愼)·우사간(右司諫) 성삼문(成三問) 등이 모두 들어가 힘껏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중략..

“그렇다면 억지로라도 청하는 것을 따르겠다.”

하고, 의금부 진무(義禁府鎭撫) 이순백(李淳伯)을 보내어 안평대군(이용)에게 사사(賜死)하고, (안평대군의 아들) 이우직(李友直)을 진도(珍島)로 옮기었다.

- 단종 1년 1453년 10월 18일




사육신과 신숙주 등은 계유정란 시 안평대군을 죽이고, 안평대군의 아들인 이우직 까지 죽이라고 단종을 압박한 자들이었다. 이런 증거를 제시하면 드라마를 보고 역사를 알았다고 생각하는 무지한 자들은 단종실록은 단종을 폐위한 세조시기 만들어졌기 때문에 믿을 게 못된다고 역사에 대해서 한 푼 어치도 모르는 말을 한다. 그 당시 목을 걸고 기록한 사관들을 무시를 해도 개 무시를 한다.



계유정란공신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공주의 남자에서 수양대군 편으로 김승유의 적으로 나오는 인물들
 

신숙주(申叔舟)를 수충 협책 정난 공신 승정원 좌승지로,

한명회(韓明澮)를 수충 위사 협책 정난 공신으로,

강곤(康袞) 추충 정난 공신(推忠靖難功臣)으로 삼고

권남(權擥)을 수충 위사 협책 정난 공신 승정원 동부승지(同副承旨)로,



적이지만 김승유를 적극적으로 밀고 안평대군과 금성대군의 편으로 그리고 있는 계유정란 공신 정종과 경혜공주

정종(鄭悰)을 광덕 대부(光德大夫) 영양위(寧陽尉)로,


계유정란공신에 제수된 단종복위 사육신관련자


성삼문(成三問)을 수충 정난 공신 사간원 좌사간 대부(左司諫大夫)로

집의(執義) 이개(李塏)는 중훈(中訓)을 더하고,

성승(成勝)을 충청도 병마 도절제사(忠淸道兵馬都節制使)로,

박팽년(朴彭年)을 승정원 우승지로,

유성원(柳誠源)을 수사헌 장령(守司憲掌令)으로

권자신(權自愼)을 승정원 우부승지로,



더군다나 단종복위 사육신의 다수는 수양대군이 단종폐위 시 적극적인 동참자였다.

사육신 성삼문은 옥새를 지키는 자였지만, 옥새를 쉬이 수양대군에게 넘겨준다.

 

환관(宦官) 전균(田畇)으로 하여금 한확(韓確) 등에게 전지하기를,

“내가 나이가 어리고 중외(中外)의 일을 알지 못하는 탓으로 간사한 무리들이 은밀히 발동하고 난(亂)을 도모하는 싹이 종식하지 않으니, 이제 대임(大任)을 영의정(領議政)에게 전하여 주려고 한다.”

하였다. 한확 등이 놀랍고 황공하여 아뢰기를,

“이제 영의정이 중외의 모든 일을 다 총괄하고 있는데, 다시 어떤 대임을 전한다는 것입니까?”

하여, 전균(田畇)이 이를 아뢰니, 노산군(魯山君)이 말하기를,

내가 전일부터 이미 이런 뜻이 있었거니와 이제 계책을 정하였으니 다시 고칠 수 없다. 속히 모든 일을 처판(處辦)하도록 하라.”


하였다. 한확 등 군신들이 합사(合辭) 하여 그 명을 거둘 것을 굳게 청하고 세조 또한 눈물을 흘리며 완강히 사양하였다.


전균이 다시 들어가 이러한 사실을 아뢰었다. 조금 있다가 전균이 다시 나와 전교를 선포하기를, ‘상서사(尙瑞司) 관원으로 하여금 대보(大寶)를 들여오라는 분부가 있다.’고 하니, 모든 대신들이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을 변하였다


동부승지(同副承旨) 성삼문(成三問)이 상서사(尙瑞司)로 나아가서 대보(옥새)를 내다가 전균으로 하여금 경회루(慶會樓) 아래로 받들고 가서 바치게 하였다. 노산군(단종)이 경회루 아래로 나와서 세조를 부르니, 세조가 달려 들어가고 승지(承旨) 성삼문와 사관(史官)이 그 뒤를 따랐다. 단종 3년 1455년 윤6월 11일




단종복위 연류자

“근일에 이개(李塏)·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박중림(朴仲林)·권자신(權自愼)·김문기(金文起)·성승(成勝)·유응부(兪應孚)·박쟁(朴崝)·송석동(宋石同)·최득지(崔得池)·최치지(崔致池)·윤영손(尹令孫)·박기년(朴耆年)·박대년(朴大年) 등이 몰래 반역(反逆)을 꾀하였으나, 다행하게도 천지 신명(天地神明)과 종묘·사직의 신령(神靈)에 힘입어 흉포한 역모가 드러나서 그 죄상을 다 알았다. 그러나, 아직도 소민(小民)들이 두려워할까 염려하니, 경 등은 이 뜻을 선유(宣諭)하여 경동(驚動)하지 말게 하라.” - 세조 2년 1456년 6월 6일 단종복위 연류자



단종복위에 동참하지 않은 신숙주만이 하루가 다르게 쉬어 버린다는 숙주나물의 대명사가 된 신숙주만 충의가 없는 나쁜 놈으로 그려지고 있다. 사육신들이나 신숙주나 단종폐위에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위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보고 이개와 김승유와 정종을 바라고 보고 있으면 개콘이 떠올라 웃음이 가시지를 않는다.  더군다나 정종은 반정에 실패한 후 승유 너가 살아 남는다면 경혜공주를 돌봐달라고 이야기까지 한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좀 더 극적인 구성을 할려면 계유정란을 기점으로 원수가 되어 버린 스승 이개와 원수가 되어 버린 정종과 경혜공주 그리고 신면을 그렸다면 보다 역사와 부합되고 극적일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악역으로 나오는 신숙주의 아들 신면이 친구 김승유를 배신한 것으로 그리고 있지만, 신면은 김승유를 배신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신면은 1453년 계유정란시기 16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사극에서 금성대군과 수양대군과 나이차이가 별로 없는 것으로 그려서 많은 사람들이 수양대군과 금성이 비슷한 나이 때 인줄 안다. 그리고 수양대군이 계유정란이나 단종폐위를 할 때 나이가 많은 줄 안다. 하지만, 수양대군이 계유정란에서 정적 안평대군, 김종서, 황보인을 처단할 때 30대 중후반이었다는 것을 안다면 놀랄 것이다.


수양대군 세조는 1417년생이고, 안평대군은 1418년생으로 안평대군과 연년생이었다. 형제간에 나이차이가 나지 않으면 싸우면서 크는 것처럼 안평과 수양은 권력을 두고 정적관계에 있었다. 더군다나 금성대군은 수양과 안평에게 한참 어린 동생인 1426년생 이였다. 1453년 계유정란 시 수양대군은 37살 이었고, 안평대군은 36살, 금성대군은 28살 밖에 되지 않았다. 계유정란 시 경혜공주는 18살이었다.


단순히 신숙주는 나쁜 놈이라는 고정관념으로 정적의 아들들이 친구라는 설정에서 배신과 연적이라는 코드를 삽입해서 만든 극중 개연성도 리얼리티도 없는 허구적이 구성이다. 신숙주가 김종서에 나쁜놈이였다면 계유정란으로 풍비박산이 난 김종서 집안으로서는 사육신들도 나쁜 놈들이고 불구대천의 원수들 일뿐이다.


정말 경혜공주의 부마 정종은 김승유의 적은 끊임없이 친구 김승유와 신면사이에서 신면을 질책하고 김승유를 암중에서 후원하는 하였을까?


정종은 공주의 남자에서 부마가 되자 영양위가 되었다고 그려졌지만, 실제는 계유정란공신으로 영양위가 되었다.


계유정란으로 아비와 일족을 죽인 원수가 되었지만, 세조가 왕위에 등극하고 사육신들이 생각하는 정치와 세조가 하는 정치와 차이 때문에 사육신들이 세조를 배반하고 반정을 꿈꾸다,

 

집의(執義) 이개(李塏)가 본부(本府)의 의논을 가지고 아뢰기를,
 

“신 등이 지금 정부에서 아뢴 죄목(罪目)을 보니, 안평대군 이용(李瑢)이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정분(鄭笨)에게 지시하여 심복을 병조(兵曹) 군기감(軍器監)에 포열(布列)하게 하였다 하였으니, 정분의 죄가 황보인·김종서에 못하지 않습니다. - 단종 1년 1453년 10월 28일


철천지 원수였던 사육신과 공동의 적이 되어 버린 세조(수양대군)에 나의 적의 적은 친구라는 고금의 진리에 맞추어 김승유와 이개와 정종/경혜공주는 공통의 적 세조에 대항하여 단종복위를 한다고 그렸다면 극적 반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단순히 처음부터 단종복위를 하다 죽은 이개와 정종은 수양의 적이니, 계유정란으로 죽은 김종서와 동질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복선도 없는 단순한 선악 구도보다는 치밀한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 구조가 완성되지 않았을까?


이래야 역사도 망치지 않고 공주의 남자가 의도한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드라마틱한 리얼 핏빛 로맨스가 완성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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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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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arden0817.tistory.com BlogIcon garden0817 2011.09.15 07: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요즘 공주의 남자가 재미있는것같은데 통못보내요 흠
    즐거우하루되세요

  2. Favicon of https://donzulog.tistory.com BlogIcon 으노야 2011.09.15 07: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남 어제 잠깐봤는데 김승유가 웃더라구요 ㅎㅎ

    오늘은 부마하고 공주의 애틋한 모습이 그려질거같은데 ㅎㅎ

    좋은글 잘보았습니다. ~~!!

  3. Favicon of https://toyvillage.net BlogIcon 라이너스™ 2011.09.15 1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하십니다. 역사와 관계도까지 깊이있게 다루셨네요^^

  4. Favicon of https://easygoing39.tistory.com BlogIcon 카타리나^^ 2011.09.15 10: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저는 안보는 드라마라서 ㅎㅎ

  5. Favicon of http://kind.go5.kr BlogIcon 카인드프라이스 향이 2011.09.15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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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Favicon of http://facebulgaria.com BlogIcon 유병수 2012.01.02 0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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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Favicon of http://hkjobonline.com BlogIcon 유병수 2012.01.07 04: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13. Favicon of http://irene.forestcityasp.net BlogIcon 벨라 2012.04.03 1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해가 안갑니다.

  14. Favicon of http://peppa.is-a-nurse.com BlogIcon 사라 2012.04.06 0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아침입니다.

  15. Favicon of http://xmusic.dontexist.org BlogIcon 라일리 2012.05.09 0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은 오해였습니다.

  16. Favicon of http://jealous.servebbs.net BlogIcon 피리 부는 사람 2012.05.11 1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은 오해였습니다.

  17.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6 1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18.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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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Favicon of http://www.nbdlfd.com BlogIcon compressor valves 2012.08.21 1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세종과 미실의 아들로 나오는 하종은 어리숙하면서도 아버지가 다른 나이어린 보종에 대해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또한, 미실의 정부(?)인 설원랑(전노민)에 대해서는 비호감의 감정을 스스럼 없이 분출하고 있다. 왕인 진평에게나 왕비인 마야에게도 맘에 안들면 치받아 버린다.

김정현이 하종 배역을 맡고 있는데, 어쩜저리 어리숙하고, 찌질하게 연기를 잘하는지 보는 내내 웃음을 짓게 한다. 선덕여왕에서 나오는 인물중에서 미워할 수 없는 악역중에 일인이라고 하겠다. 


선덕여왕에서 상천관 서리(송옥숙)이 미실(고현정)이 건낸 사약(?)을 먹고 죽는다. 그 뒤를 이어서 서리의 보조 신녀인 설매가 상천관의 지위를 계승하였다. 설매역을 맡은 조명진이 삼성 야구선수 박한이와 결혼을 예정한것 처럼, 김정현도 약속한 연인과 11월 결혼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김정현이 맡은 하종이 어떤인물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갔도록 하겠다. 하종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와 같이 악인이였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비담은 삼국사기에 647년 1월 염종과 난을 일으킨다. 그래서 비담은 악역으로 나올수 밖에 없다. 문제는 비담이 정말 악인이였을까? 아니면 쿠데타에 실패한 정치인이였을까는 역사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엇갈림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정말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쓰여진 기록"이기때문에 <사건>을 어떻게 해석할까?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많다. 또한,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아무데나 역사는 승자에 의한 기록이기 때문에 생몰년이나 부모까지 바꾸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해석상의 문제가 아니고 기본 인물정보에 대한 팩트이다. 사건을 해석하는데 있어서는 상상력을 발휘할 공간이 있다. 하지만 기본팩트는 바꾸면 안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하종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단지, 논란의 중심에 있는 <화랑세기>에서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하종은 세종과 미실사이에 태어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5세 풍월주 사다함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사다함은 미실을 사랑하였다. 세종 또한 미실을 사랑하였다. 미실은 사다함이 전장에 참전을 할때 송전가를 구구절절 읆어, 전장에 나가는 사다함에 "고무신꺼꾸로 신지 않겠다"고 사다함을 안심시킨다.

하지만 미실은 사다함이 대가야에 참전을 할때 세종과 결혼을 해버린다. 전장에 나가 돌아온 사다함은 미실이 세종과 결혼한 사실을 알고 낙담하였다. 사다함은 실연의 아픔과 자신의 부하의 죽음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하지만 사다함은 자신의 다음 풍월주을 자신의 연적인 <세종>에게 물려준다. 


이런 사다함을 위해서 세종과 미실은 천주사에 진심으로 사다함에 공양을 들이고 관계를 가진다. 천주사에 관한 설화는 화랑세기에 여러번 등장을 한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천주사에 대한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어찌되었던 천주사에서 관계를 가진후 미실은 564년 하종을 낳는다. 이런 연휴로 하종은 어릴적 부터 <사다함> 화신으로 불리웠다.

애송공주(567년생)는 미실과 진평왕의 아버지 동륜태자 사이에 태어났지만, 진흥은 자신의 자식인줄 알았다. 진흥과 미실사이에는 반야공주, 난야공주가 태어나고 572년 즈음 수종전군이 태어난다.

하종은 어머니 미실이 진흥을 섬기고 아이를 낳을때 마다 직위가 상승하고, 하종의 나이 9살인 572년 태자 동륜이 보명궁의 담을 넘어 개에게 물려 죽기 전에는 <전군>의 지위까지 상승하게 된다.  하종은 진흥왕의 자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진흥에 의해서 전군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578년 (하종)공은 15살에 화랑에 들어가 역사를 토함공에게 배웠고, 노래를 이화공에게 배웠고, 검술을 문노에게 배웠고, 춤을 미생공에게 배워 모두 그 정수를 얻었다.

드라마에서는 하종이 안하무인, 무식한 캐릭터 이지만, 하종은 역사를 사다함의 형인 토함에게 배우고, 노래를 이화랑(4세풍월주)에 배우고, 검술을 8세 풍월주인 문노에 배웠다. 또한, 춤을 삼촌인 미생(10세 풍월주)에 배웠다. 그러니 하종은 다방면에 능통한 사람이였다는 것이다.


하종은 미모(설원랑/준모)에 장가를 가서, 유모, 영모, 모종을 낳고, 나중에 사도태후의 명으로 진평의 후비였던 사도의 막내딸인 은륜(진흥/사도)과 결혼하여 하희,월희, 효종을 낳는다. 드라마에서 설원랑에 팅팅거리는 것으로 나오지만, 설원랑은 하종의 장인이다. 장인에 틱틱거리는 사위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은륜과 결혼을 하므로서 진흥왕의 부마가 된다.

화랑세기는 보리공이 하종을 평할때 "지금 세상에 하종같은 효자와 충신은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진평에 틱틱거리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하종이 진평보다도 나이가 어리고, 용춘보다도 나이가 어린것으로 나오지만, 하종은 564년생으로 565년생인 진평(백정)보다 나이가 1살이 많다.

또한, 용춘은 576년생이다. 그러니 용춘보다는 12살이나 많았다. 하종은 용춘의 아버지뻘이였고, 사사로이는 용춘의 아버지 금륜의 막내누이인 은륜과 결혼한 상대이니 용춘의 고모부가 하종이다. 그러니 용춘(576년)이 화백회의에서 하종(564년)이나 미생(550년)에게 막말을 하는 행동은 인륜을 저버린 행동이다.


우리의 찌질이 하종은 은륜의 언니인 태양(진흥/사도)가 유혹하여도 넘어가지 않고, 은륜에 충심으로 대접하였다고 한다. 방탕한 은륜을 자신의 아버지 세종이 미실을 섬기듯이 따스하게 감싼다.

한마디로 무골공자이면서, 공직에 나아가서는 청렴하였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매점매석의 주체로 하종을 집어 넣었지만 하종은 첨렴함의 신표인 청백리같은 이였다.


 공은 검소하고 색을 삼갔으며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윗사람을 공경하여 세종(世宗)의 풍모를 크게 가졌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공에게 복종하지 않는 사람도 끝내는 귀부하였다.

 3년간 재위하다가 보리공에게 양보하며 말하기를 “앞선 풍월주들이 큰 성인이었는데도 오히려 3년간 재위하였는데 내가 어찌 감히 오래 머물겠는가?” 하였다. 보리공이 말하기를 “주형(主兄)은 곧 미실 원화의 아들이다. 어찌 뭇 화랑들과 더불어 같은 예로 하겠습니까?” 하였다. 공이 굳이 사양하였다. 보리공이 이에 풍월주의 자리에 올랐다. 보리공은 곧 나(김대문)의 증조이다. 일찍이 나(김대문)의 아버지(오기공)에게 하종공을 칭찬하여 말하기를 “지금 세상에 이 같은 효자·충신은 없다” 하였다.

대개 미실궁주가 삼조(三朝)를 차례로 섬겼는데, 형제가 핏줄이 달라 움직이면 어려움이 많았다. 은륜공주 또한 골을 믿고 방탕하였다. 공은 한결같이 세종공이 미실을 대접하는 것처럼 하고 불문에 부쳤다. 태양공주는 은륜의 형으로 공과 더불어 가까이 살았는데 공을 유혹함이 심하였으나, 공은 한번도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공의 청렴과 지킴이 이와 같았다고 한다. - 화랑세기 11세 풍월주 하종

한마디로 표현하면 하종은 요즘 뜨고 있는 <엄친아>의 표본이였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가장 최악질 찌질이 하종으로 변한것이다. 물론, 드라마이니 충분히 설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다음의 예를 들어서 표현하자면 전두환이 민주투사로 나오고, 노무현이나 김대중이 쿠데타를 이르킨다는 설정이나, 세종대왕이 연산군보다 더한 폭군으로 나오고, 이순신이 원균을 넘어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기려는 이완용이나 송병준같은 만고의 역적으로 표현한다면 황당하지 않았을까?

단순히 드라마니 괜찮아? 또는 재미를 위해서는 괜찮아. 다큐가 아니니 괜찮아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드라마에서 김정현이 열연하고 있는 <하종>을 위한 변론으로 마치고자 한다.

글쓴이는 하종을 선덕여왕의 대표찌질이로 표현해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하종>을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이 글을 보기 전까지는 김정현이 배역을 맡은 <엄친아> <하종>이 정말 <찌질남>의 대표선수인줄 알았을 것이다. 세종이나 이순신이나 전두환이나 이완용이나 송병준은 드라마를 위해서 인물을 변형시키면 안되고 자신들이 모르고, 잘 알려지지 않은 <하종>은 <찌질남>으로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편협한 생각이 아닐까?

2009/10/12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실(고현정) 언제 죽어 하차해야 하나?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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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s://gamjastar.tistory.com BlogIcon 또웃음 2009.10.11 11: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워할 수 없는 악인 하종이죠.
    하는 짓이 초딩 같습니다.
    그래서 귀엽기까지하다는...^^
    화랑세기에선 그런 모습이었군요. ^^

  3. ECLAT 2009.10.11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드라마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캐러였던.ㅋㅋㅋ
    세종과 하종부자. 너무 찌질하게 나오더라구요ㅠ 아버지닮아서 엄친아에 성격좋고 훈남이었는데.
    갓쉰동님게서 이렇게 제대로 잡아주시네요.ㅎㅎ
    화랑세기에서 김대문이 가장 칭찬했다는 세종의 아들인데...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용.. 각자 개인적인 성향이 다르겠지만.. 김대문이 아버지인 오기에게 전해들었다... 김대문의 증조인 보리가 극찬한 인물이라고 하니요.. ㅋㅋ

  4. ..... 2009.10.11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배다른 나이어린 보종이 아니라 동복동생 보종 아닌가요?;; 하종과 보종은 같은배에서 태어났습니다....

  5. Favicon of http://link2u.textcube.com BlogIcon 아홉살인생 2009.10.11 1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의 마지막 부분은 한 번 생각해 볼만한 문제겠군요.

  6. 공수래 2009.10.11 1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춘(576년)이 화백회의에서 하종(564년)이나 미생(550년)에게 막말을 하는 행동은 인륜을 저버린 행동" 이라는 대목은 좀 그렇네요...용춘은 골품제도로 운영됐던 신라에서 하종이나 미생보다 윗사람이었습니다. 족보를 보시면 알수있습니다. 용춘은 무늬만 진골인 성골입니다. 김춘추보다 더 성골에 가깝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라를 개나라로 만든게 성골.진골이예용.. 골이 높다고 해서. 나이 많은 고모부에 하대하고 욕을 할것이라는 상상은 끔찍한거지요.. 왕도 자신의 장인에게는 하대를 못해용.. ㅋㅋ

  7.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10.11 12: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휴일인데 노고를 아끼지 않셨군요...
    연속된 드라마의 잘못된 캐릭터 선정에 대한
    이야기이군요. 엄친아라...
    재미있게
    잘보고 갑니다.
    휴일 잘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11 12: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인물창조를 하더라도 좀 그럴듯 하게 했음 좋겠다 싶더라구요.. 대남보, 보종, 하종. 정말로 안타까운 인물들인뎅..

  8. 2009.10.11 1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괜찮

  9. 맑은바람 2009.10.11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선 풍월주들이 큰 성인이었는데도 오히려 3년간 재위하였는데 내가 어찌 감히 오래 머물겠는가?”

    ...단순한 겸양의 표현이라고 보기엔 깊은 격조가 있군요.
    드라마에 묻혀 자칫 간과하기 쉬운 실제 역사를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10. 조예린 2009.10.11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이런 글이 올라왔을까?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11. qillip 2009.10.11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오~ 선덕여왕은 안봐도 님글은 꼬박꼬박 찾아본다는....늘 감사....^^;

  12. 갔도록->갖도록 2009.10.11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거같네요 가지다의 준말 갖다

  13. 와웅 2009.10.11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네요!
    놀라운사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밌게보고갑니당!

  14. Favicon of https://leeesann.tistory.com BlogIcon pennpenn 2009.10.11 19: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좋은 공부 하고 갑니다.
    해박한 역사 지식에 탄복하면서요~

  15. 김정현 2009.10.11 2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나마 저승에 간 하종이는
    1300년뒤 찌질남으로 변모하지만
    그나마 3,40대 중에서도 꽃미남에 속하고
    연기력도 정상급인(인기가 안습이지만...실력이 중요하지요.only 실력!!)
    김정현이 맡아줬다는데 위안 삼아야죠.
    다만 삼국시대 기록 역사가 부실하고
    화랑세기의 진실여부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화랑세기의 인물까지 갖다붙이는데 한계가 많아 많은 픽션과 변형을 붙였다는게
    아쉽죠. 특히나 극문학의 특성상 반동인물이 필요한데
    거기에 미실을 넣는 과정에서 하종까지 왜곡 시킬수 밖에 없다는건 어쩔수 없나보네요.
    다만 화랑세기의 진실여부와 삼국시대의 기록이 좀 더 많이 발굴된다면
    다른 인물로 변모 될 수도 있었을텐데...
    다만 세상을 뜬지 1300년 후에 후손들이 자신을 묘사한걸 본다면
    하종이 생전 진짜로 인간말종이 아닌 이상은
    너무 안타까워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불쌍한 하종...

  16. Favicon of https://rubygarden.tistory.com BlogIcon 루비™ 2009.10.12 1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종에 대한 멋진 글 잘 읽고 갑니다.
    갓쉰동님이 글에서 늘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17. yoo 2009.10.12 1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근거로 이야기를 만들때는 당연히 사실을 근거로 해야한다고 생각됩니다...
    이처럼 완전히 반대의 인물로 묘사하는건 억지스럽고 역사를 왜곡하는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역사를 왜곡할거면 선덕여왕과 그밖의 인물이름을 달리 해야겠지요...

  18. conniewon 2009.10.12 1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놀라운사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해박한 지식에 놀랍고, 부럽습니다.

  19.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0

  20.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niches/mature.php BlogIcon Mature Pussy 2012.07.12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중에 김영랑의 시처럼 모란이 피기까지는 삼백예순날은 아니더라도

  21. Favicon of http://www.cheaphelmetsonlineshop.com/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놀라운사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우리민족 고유의 가장 큰 3대 명절(설,대보름,추석)인 추석을 "추석은 우리것이 아니(였)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로 부터 돌이 날라올지도 모르겠다.

설마 추석이 우리것이 아니라니 좋은밥 먹고 헛소리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이다. 그리고 추석의 유래에 대해서 장황설을 늘여놓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나 추석의 유래를 보면 우리것이 아닌것을 설령 우리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우리의 문화에 깊숙히 스며들었으니 우리 민족의 고유의 명절이 된것이 아닌가 이야기를 할것이다.

당연히 현재의 <추석>은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겠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는 없는 특이한 제례문화이다.

 
하지만 정확한 유래를 알고 있는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추석>은 <중추절>, <한가위(가베)>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추석>과 <중추절>과 <한가위>는 서로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1번째, 한가위 유래 (추수감사제와 놀이성격)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 동안 길삼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때 조상에 감사하고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2번째, 중추절 유래 ( 승전기념일 + 한가위 )
 
<예기>의 <맹추>,<중추>,<계추> 중에서 가을의 한가운데 있는 중추절에서 이름을 빌려왔겠지만, 이름만 중추이고 실제는 신라의 고유의 한가위인 가베를 중국식 작명법에 의해서 기록한것 뿐이다.<중추>와 중추절은 서로 다른다. 단지, 중추란 한자화된 용어의 차용에 불과하고 중추절은 카니발 성격의 축제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슝베이도 중추절은 신라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중추절은 당나라에 유학한 일본의 구법승려 <엔닌의 일기>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서>,<구당서>,<신당서>의 기록에도 신라는 8월15일날 왕앞에서 활쏘고, 말타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한다. 이 당시 중추절은 한가위의 풍습과 전승기념일을 합한 행사가 된다.
 
전승기념일이다 라는 있는 근거를 2009/09/26 - [역사이야기] - 중국 중추절은 신라 진평왕의 고구려 승전기념일?  글에서 <삼국사기>를 근거로 중추절은 진평왕의 603년 8월 대고구려 북한산성전쟁이나 668년 가을 고구려의 멸망을 기념하는 전승기념일이라고 주장했다.    

SBS 사극 <연개소문>에서도 고구려가 신라의 <북한산성>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공교롭게도 603년 음력 8월이고, 진평왕이 직접 북한산성에 진주하여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왕이 직접 전장에 나아가서 싸우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당시 수와 전쟁에서 이긴 동북아의 패자 고구려를 신라 왕이 직접 통솔하여 물리 쳤다고 하는 의미에서 신라에게는 대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삼한일통을 한시기도 668년 가을이다.  이때의 승리를 기념해서 축제를 벌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까지 신라로써는 한가위와 전승기념일이 충첩된 날이니 즐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3번째, 추석 유래 [춘조일(春朝日), 추석월(秋夕月)] ( 한가위 + 중추절 + 유교제례 )
 
위에 중추절과 중추는 다른 의미라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형식과 내용면에서 추석은 추석제의 미미한 변형이다.
 
네이버 통합검색 화면에는 다음과 같이 추석관련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추석의 유래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네이버 추석의 유래 초춘일, 추석월? 실제는 춘조일, 추석월


추석은 중국의 유교경전인 <예기>에 천자는 이른봄에 태양에 제사를 지내고, 가을에는 저녁 달에 제사를 지낸다해서 비롯되었다. 동지는 태양이 낮은 고도에서 점차 크게 떠올라 시작을 알리는 시기이고 가을 중추에 뜨는 달이 가장 높이 크게 보이는 시기이기 때문에 <춘조일>, <추석월>같은 유래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예전 <네이버> 백과사전(두산백과사전)에서 <추석>의 유래를 검색하면 <예기>의 <조춘일>,<추석월>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달처럼 해처럼 번쩍이는 레슬러 <조춘>선생을 기념하는 날도 아니고 실제는 <춘조일>의 오기이다. 글쓴이도 오랫동안 관심이 없어서 무관심하게 지나갔지만 <조춘일>, <추석월>인줄 알았다. 그래서 추석에 관한 여러가지 자료를 조사할일이 있어서 이곳 저곳 찾다보니 <조춘일>이 <춘조일>의 오기라는 것을 알았다. 
 
네이버에 올려진 백과사전이 잘못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알고 오래전에 수정할려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솔거가 진흥왕때 사람? 천만에


이유는 예전에 솔거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솔거의 활동시기가 <진흥왕>시기(540년이후)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꼼꼼히 솔거는 <진흥왕>시기 사람이 아니고, 신라의 황금기인 경덕왕(8세기)때 활동한 사람이며, 솔거의 작품인 황룡사 <노송도>와 단속사 <유마상도>, 분황사 <천수관음보살도> 등 잘못이 있으니 수정하였으면 한다고 자세하게 논거를 제시하여 보냈지만 근 한달이 지난후에 솔거관련 기록들은 수정도 하지 않은체 <솔거>라는 항목만 수정을 하고 고맙다는 말도 없었다. 
 
솔거 관련글을 자세히 보실려면   2009/08/02 - [역사이야기] - 덕만에서 솔거까지 역사상식을 깬다
글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현재 추석은 3가지의 유래중에서 어디에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추석의 유래 중 <예기>를 인용하지 않고 있다. 있는 사실을 감추고 유래를 단지 국내에서 찾으려는 또다른 역사왜곡 사례이다.
 
<한가위>나 <중추절>의 행사와 놀이문화는 잊혀지고 단지, 제사(차례)의식만이 남아 있다. 그리고 <한가위>라는 말을 쓰기는 하지만 <추석>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또한 추석이 민족의 3대명절인 <설>,<단오>,<추석>에 진입한 시기를 보면 조선시대 중종?이후 일이다. 
  
조선시대의 추석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추석에 관한 기록은 모두 왕이 조상에 대한 제사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조에 보면 아침에 추석제를 지낸후 저녁 밤늦게까지 대신들과 왕족들을 불러 술마시고, 흥겹게 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연산군때에도 추석제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연산군은 자신의 친모인 <윤씨>에게 추석제사를 지내려하나 신하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하지만 효자였던 연산군은 신하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윤씨>의 사당을 세우고 추석제사를 강행한다.

<추석제>를 지낸것은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신라 종묘의 제도에 <추석제>가 있었다고 흔적이 있다. 

37대 선덕왕이후 일년에 여섯 번 5묘에 제사지냈으니, 곧 정월 2일·5일, 5월 5일, 7월 상순, 8월 1일·15일이었다.

그러니 삼국시대부터 신라왕실에서는 추석제사를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추석제를 지키는 것은 김춘추가 당에 구원요청하고 신라의 관제와 복식을 당나라식으로 바꾼 이후부터 일것으로 추측된다. 이때 지낸 제사의 형식은 <유교>형식의 제사일것 이다.
 
또한,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백제 편에 책부원귀를 인용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백제는 매년 네 철의 가운뎃 달[四仲之月]에 왕이 하늘과 오제(五帝)의 신에게 제사지냈다. 그 시조 구태(仇台)의 묘(廟)를 나라의 도성에 세우고 일년에 네 번 제사지냈다.』

고대의 <추석제>는 민간 백성들은 지낼수 없는 황제나 제왕들만이 지내는 제사였기 때문에 왕실에서만 지냈고 민가에 까지는 널리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추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추석제는 기회가 된다면 따로 글을 쓰도록 하겠다. 
  
조상은 사라진 차례와 제사, 르레상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추석 차례상


차례를 지냄에 있어서 상차림에 관한 이야기들이 설왕설래 한다. 그 근거는 <예기>일 수 밖에 없는데 <예기>을 보면 제사는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너무 많은 제사를 하지 말고, 겸약하고 겸손하게 지내라"라고 하였다.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조상이 평상시 좋아하던것으로 하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홍동백서>,<좌포우혜> 등 조상과는 무관한 형식과 절차 만이 남아 있다. 조상이 왼손잡이던 오른손잡이던 상관하지 않고 숫가락을 놓아야 한다. 왼손잡이가 귀신이 되면 갑자기 오른손잡이로 변하나? 또한, 조상이 살아생전 좋아하던 음식과는 전혀 상관하지도 않고 있다.
 
소주를 좋아하면 소주를,  탁주를 좋아하면 탁주를, 양주를 좋아하면 양주를 올리면 되는 것이 아닐가?. 바나나를 좋아하면 바나나, 파인애애플이면 어떤가?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귀신이 털달린 과일을 좋아라 하지않는다고 해서 죄악시하고, 매운음식과 고추는 귀신을 쫓아내는 벽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해서 고추가루가 들어가지 않는 음식으로 올려야 한다.
 
실제로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임진왜란 전후라고 전해진다. 유입경로는 명/청이나 일본 양쪽으로 어느쪽이 앞선 시기인지는 아직 확실치는 않다. 조상이 매운음식을 즐기던 즐기지 않던 상관없이 귀신은 고추가루 싫어한다는 믿기지도 않는 낭설에 따라야 한다. 만약, 예기를 만들기 이전에 고추가루가 있었다면 당연히 고추가루가 들어간 음식이 제사상에 올려졌을 지도 모른다. 과일중에 붉은색 과일을 올리는 것을 보면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제사나 차례의 주체인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과 조상은 사라지고  단지 제사 형식에 치우치고 있다. 제사 형식과 차례를 규정한 <예기>는 조상이 평상시 좋아라 하는것으로 하라고 했는데도 말이다. 제사나 차례도 중세유럽의 <르레상스>운동처럼 본류를 찾는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시대에 따라 민속도, 명절도, 내용도 달라져야.. 
 
현재의 추석은 과거 우리가 알고 있는 한가위나 중추절과 다른 의미이고 <추석>,<한가위>,<중추절>은 서로 믹스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뿐이다. 현재의 추석이 다른 어떠한 민족도 하지 않는 아주 특이한 고유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추석이 고래부터 한민족의 고유의 명절이라고 하기에는 내용도 바뀌고 성격도 바뀐 다양한 문화가 접목이 되어 있어서 문제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부처탄신일, 팔관회가 국가의 중대축제였고, 조선시대에는 유교적인 단오, 한식, 추석, 공자탄신일 등이 중대 행사였다. 현재는 단오, 한식 보다는 실제와는 다르지만 예수의 탄신일이라고 알려진 크리스마스가 중대한 명절 풍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먼훗날 크리스마스가 우리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토착화될 때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고유의 민족의 행사라고 모두들 이야기를 할것이다. 그때 무슨 소리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고유의 명절이 아니고 유대교의 선지자중 일인인 예수라는 인물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에서 유래된것이야 그리고 산타크로스는 예수의 탄생과는 전혀 관계없는 북유럽의 신화에서 나온인물이고, 산타와 산타의 붉은 복장은 코카콜라가 자신들의 상품을 선전하기 위해서 만든 허구야 한다면 벼락 맞을 짓인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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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tsori.net BlogIcon Boramirang 2009.09.27 0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류문화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목소리 큰 놈'이 진실로 변하는 시대 같습니다. 우리가 배워왔던 적지않은 역사속 이야기들은 왜곡된 채 생존하고 있고 진실인양 호도되는 부분이 적지않지요. 글 잘 보고 갑니다. ^^

  2. 2009.09.27 0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2009.09.27 0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Favicon of http://kousa.tistory.com BlogIcon 미국얄개 2009.09.27 08: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휴일 되세요.

  5.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9.27 09: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갓쉰동님 말씀처럼 우리것이 아니라 해도
    이미 우리에게 스며진 풍습이니 고유명절이라해도
    무방하지만 정확한 유래를 안다는 것
    나쁠것도 없지만 중요하다는 ㅎㅎㅎ
    요즈음은 많이 바뀌어 생전에 좋아하시는 것도
    상위에 놓더군요 저만해도 ㅎㅎ
    오늘이 어머님 돌아가신지 딱 1 년인데...
    팔순부친이 생전에 좋아하시든 밀크 카라멜을 ....
    그렇죠 먼 후일 크리스마스도 그렇게
    되리라 봅니다.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휴일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7 10: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1주기기 시군요..

      저의집도 아버지께서 살아생전 좋아하던 소주와 담배가 주로 올라갑니당.. 무척 좋아라 하셔서..

      다음 포스트로 차례를 지낼때 어떤 술이 올라갔을까?를 포스팅할까 합니당.. ^___^

  6. 2009.09.27 1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7 1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당. 님의 주장이 당초= 고추라는 말때문에 생긴 오해 같은데요.. 고추는 아메리카가 원산지입니다..
      물론, 고추랑 비슷한 놈이 인도에도 있지만 말이지요.
      시기적으로 맞지 않잖아요.. 설마, 님은 아메리카를 삼국이전시기에 한반도 사람이 발견했다는 주장을 하시는 겁니까? 유의태와 허준은 허구지요.. ㅋㅋ

    • 고추의유래 2009.09.27 1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익숙하지 않다 보니 엉뚱한 곳에 댓글을 달았었네요.
      아래 병신꺼져님 미안합니다. 병신눈에는 병신만 보이는지라..
      ---------------------------------------------------
      여긴 엉뚱한곳에 달았던 글
      비약이 상당히 심하시군요?
      님도 지금 자신의 주장만 맞다고 하는 오류를 범하시는겁니다. ㅋㅋㅋㅋㅋ

      고추가 임진왜란이 전후가 아니라는걸 말씀드린겁니다.

      -----------------------------------------------
      <여긴 추가글>
      한반도 사람이 발견했다라는 주장이 어디에 있나요?
      거슬러 오라간다는것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각설하고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7 12: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삼국시대까지 올라갈수 없다는 말씀을 드린거지요.. 그렇지 않다면 고추의 원산지가 아메리카에서 아시아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고, 그렇지 않다면, 삼국시대 근처에서 아메리카를 발견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건데요..

      제가 그래서 인도고추를 말씀하시는가? 하는 반문을 드린건데요. 그것도 고추로 말을 해야하는가? 하는 겁니다.

      암튼 ㄳ 합니당.. ㅋㅋ

    • 갓쉰동최고 2009.09.29 0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추과에 해당하는 식물이 무조건 아메리카대륙에만 있으라는법은 없죠. 유리의경우도 4세기에 들어오고 동방기독교도 삼국시대에 들어온것을 보면 서역을통해서 고추과의 식물이 들어왔을 가능성은 있지요. 그러나 현재는 아메리카산이 정설이니 연구를 꾸준히 해봐야겠죠.

    • 갓쉰동최고 2009.09.29 0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다고해서 원산지는 바뀌지 않을 듯합니다.
      기후나 풍토만 맞으면 여러곳에서 제배가 가능할테니까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9 08: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사품종은 있었겠지용.. 동방기독교가 삼국시대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설을 알고 있는 것 보니 내공이 상당하시군요.. ㅋㅋ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9 08: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산지도 바귈수 있는게 과학이니.. 좀더 기둘려 봐야지요. 하지만, 현재의 고추는 아메리카.. ㅋㅋ

  7. Favicon of https://greensol.tistory.com BlogIcon 여행사진가 김기환 2009.09.27 11: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8. Favicon of https://jejuin.tistory.com BlogIcon 광제 2009.09.27 13: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관심있게 보고갑니다..
    일요일 잘 보내시구요^^

  9. 우리것은 소중한것 2009.09.27 1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인은

    고구려 300년도 넘게 고구려 식민지배 당했다

    300년이면 문화가 비슷해 지기도 한다.

    그런데

    누구의 것인가? 하는것은 고려가 지금의 중국보다

    잘사는.발전된.우수한 생활문화.문화적 자존심

    지금의 중국보다 고려가 훨씬 발전된 국가였다. (고려도경 검색하면 중국인이 고려방문한 동영상 있음)

    못사는 나라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잘사는 나라를 (고려) 부러워하고. 따라기 마련이다.

    고려시대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중국사람이 한국사람을 따라하는 습성때문에

    이런문제가 발생한것 같다.

    근데 한국사람이면서 중국사람의 주장에 맞다고 박수치는 인간은 뭐냐? 그냥 짱깨 냐?

  10. 우리것은 소중한것 2009.09.27 1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려도경은

    지금의 중국공무원이 고려를 방문하고 기록한 문서이다.

    그러면 지금의 중국이 왜 고구려 방문한 기록 문서는 없냐?

    그 이유는 식민지배 당했기 때문에 방한하는것 자체가 불가능 했고

    식민지 생활했던 지금의 중국인들이

    지배했던 고려사람의 풍습을 많이 배웠을것이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8 07: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댓글로 두개의 답글을 대신할께요..
      저는 대륙사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역사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당.. 이점 양지해주시길 바랍니다..

  11. ksmjdp3569 2009.09.27 16: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만 제가 걱정하는 문제는 우리나라 역사가 많이 왜곡 되어있다는 사실을 기준으로 한다면 님께서 참고하신 자료가 혹시 왜곡되어 있는 자료를 근거로 한것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저의 이런 쓸데없는 걱정은 웬지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삼국시대는 한반도에 없었다 이런얘기를 들었을때 그때 별 개념치 않고 들었는데 기억에 없음 이제와서 중국의 하는일이나 일본이 대한민국 잘되는 꼴을 못보는 형태의 일들을 볼때 우리나라 역사를 새로 정립해야 하는게 아닌지... 하는 엉뚱한 생각을 가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8 07: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쎙요. 제글은 주장하는 바의 원출처는 꼭 밝히는데요...

      님의 생각이 어떠하지는 모르겠으나..저는 삼한이 한반도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보면 머리를 쥐어 박고 싶어용.. 이정도로 정리를 하지요.. ㅋㅋ

  12. Favicon of http://fucking.china.chink BlogIcon 천멸중공 2009.09.27 1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습니다. 매우 훌륭한 증명이며 , 자료입니다.


    이글 보고 반발하는 중국계사람들의 댓글이 보이네요.


    중공은 과거나 현재나 남의나라 역사,문화,유물을 왜곡하고, 기록하는데 주안점을 뒀죠.

    현재의 중공이 공정이란 미명하에 하는 작태를 봐도 충분히 알수가 있죠.

    중공인들이 바보가 된 이유가. 자신들의 역사와,문화는 주변국에서 영향을 받앗다는건 순전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다른나라에 자신들이 전파시켰다고 하느 순 거짓말만 교육받는게 중공의 역사교육입니다.


    사마천의 사기란 것도 역사의 진실에 거짓을 주객을 전도하여 버무린 거짓 역사기록일 정도니깐요.
    -일본사학자.오향청언-

    만주원류고,송막기문,금사.대금국지 ..등등에서도 금,.후금(청나라)가 명백히 한민족의 역사임에도
    자국사라고 거짓말하는게 중공이고, 몽골이 버젓히 있는데도 원나라 징기스칸이 자국사라고 하는 것들이 중공인들의 사고입니다.

  13. Favicon of http://smallstory.tistory.com BlogIcon 윤서아빠세상보기 2009.09.27 17: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역사의 몰랐던 정보를 배우고 가네요.
    주말 마무리 잘 하시고 또 힘찬 한주 맞으시길...

  14. Favicon of http://blog.daum.net/duck52 BlogIcon 기서맘 2009.09.27 2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좋은 자료...너무 쉽게 잘 보고 가네요.
    감사합니다.^^*

  15. Favicon of https://sapzzil.kr BlogIcon sapzzil 2009.09.28 0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그렇군요...잘 배우고 갑니다..^^

  16. Favicon of https://gamjastar.tistory.com BlogIcon 또웃음 2009.09.28 13: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배'가 거기에서 유래되었군요.
    그럼 죄송한데요.
    왜 추석엔 '햅쌀'과 '햇곡식, 햇과일'을 먹을까요?
    추석이 추수 때이니까 그 해에 새로 난 것을 먹는 것일까요? ^^;;;

  17. Favicon of http://www.gobet1x2.com BlogIcon betting tips 2012.09.03 15: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만약 춘추가 대립할 사람을 찾는다면 자신의 아버지라고 생각되는 용수와 용춘과의 대립이 되어야 한다.덕만과 결혼을 유지했다면 덕만의

 
SBS에서 환관 김처선의 일대기를 그리는 역사드라마(사극) <왕과나>를 방영하고 있다. 환관을 전면에 내세워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환관이 왕과 정사에 어떻게 관여를 하고 관료들과 궁중암투를 벌렸는가 보여주는 것은 새로운 재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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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명 : 왕과 나
방송 : SBS 월,화 저녁 9시 55분
소개 : 환관으로서 조선 5대 문종에서 부터 10대 연산군에까지 시종에 임했던 김처선 이야기
출연 : 오만석(김처선), 구혜선(윤소화), 고주원(성종), 전광렬(조치겸), 양미경(정희왕후)

 
 
다음 포털에 나와 있는 <왕과나>의 소개글에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환관으로서 조선 5대 문종에서 부터 10대 연산군에까지 시종에 임했던 김처선 이야기
 
그러나, SBS <왕과나>는 문종때의 환관 김처선은 그리지도 않고 있다.
전광렬이 배역을 맞고 있는 조치겸이 환관 실제 김처선이고 김처선의 양자인 이공신을 김처선으로 그리고 있는것 처럼 보인다.

 

 
극을 극으로 보아야하고 역사를 역사로 보아야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역사와 <극>은 서로 다르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극이 표방하는 바가 았다. 사극을 표방했다면 사극다워야한다. 퓨전사극을 표방하고 퓨전사극을 이야기한다면 그에 합당한 비판을 하면 된다. 
 
하지만 SBS <왕과나>는 작가의 상상력을 넘어선 <사기극>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사극이란 타이틀을 달려면 최소한 주인공과 연관된 기본적인 팩트를 건들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황당개그 <사기극>이 되기 때문이다. 재미를 위해서 역사를 난도질하는 것은 작가의 역사에 대한 인식과 스스로 아이디어가 없음을 스스로 까발리는 짓이다.
 
최소한 기본적인 팩트를 지키지도 못하고 팩트와 팩트사이에 일어남직한 개연성의 스토리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작가의 상상력 빈곤이다. 상상력이 없는 작가가 무슨 작가인가? 구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작가의 기본이지만 구라를 구라처럼 안보이게 하는 것이 작가가 아닐까?
 
SBS는 제발 사극을 만들지 않았음 하는 바람이 있다. 이전에 만든 <연개소문>이나 그전에 만든 <서동요>등.. 무수히 만들어낸 SBS역 역사물들은 새롭고 알지 못하는 역사를 알려주는 것이 아닌 그나마 부족한 역사기록조차도 왜곡하고 난도질하고 희롱하고 있다. 근대 뉴스 기사의 왜곡을 넘어서 역사기록조차 왜곡한다. 그래서 SBS를 <시방새>라고 하는 지도 모르겠다.
 

 
<왕과나>가 <사극>이란 타이틀을 달지 않았다면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태왕사신기>는 SF 환타지라고 스스로 내걸고 있으니 봐줄만 하다. 박종훈이 주연한 SF 황당역사물 <천군>은 이순신장군을 소재로 현대와 과거를 넘나드는 <백퓨터 퓨처>식의 보는 재미라도 있다.
 

(천군)

 

(MBC 태왕사신기)
최소한 사극을 표방했다면 주인공의 생몰일, 연령대와 주인공과 관련된자의 관계도는 씨줄과 날줄처럼 정교함이 있어야 하고, 등장하는 인물의 복장,건축물이나 엑서서리까지도 고증을 걸쳐야 하는 것이 기본중의 기본이다. 그러한데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주인공이 생몰연도까지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사극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와 관련된 인물간의 관계도와 인과관계를 흩트려 버리는 드라마를 <사극>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사기극>이라면 모를까? 
 
최소한 SBS는 방송을 내볼때 마다  "<왕과나>는 역사의 기록과 전혀 일치하지 않습니다"라고 자막을 내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한다.
 
실제 역사서의 환관 김처선에 관한 기록은 조금만 뒤적여도 수 없이 나온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검색을해도 75건의 기록이 나오고.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도 3건의 기록이 나오고 <해동잡록>에도 1건이 나온다. 그외에도 많은 기록들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환관 김처선의 기록은 <단종> 1년 1453년의 기록을 시작으로
 

단종 01계유(1453, 경태 4) 10월13일(병신)   허후·이세문·유형 등을 각기 다른 장소에 안치하고 김처선을 석방하도록 의금부에 전지하다

 
연산군 11을축(1505, 홍치 18) 4월1일(병진)   환관 김처선과 양자 이공신을 금중에서 죽이다

 
1505년 죽음을 맞이 한다. 단종 3년 (1453년)에 나이어린 환관 축에 들었더라도 약관(20)는 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죽을때의 나이가 최소 53세+20여세가 되어 73세가 된다.
 
조선왕조 실록에 환관 김처선의 기록은 75번째 영조27년(1751) 기록으로 끝을 맺는다.
 
 
영조 27신미(1751, 건륭 16) 2월3일(신미)   환관 김처선에게 정문을 세울 것을 명하다
 이다.
 
단종때부터 환관인 김처선은 폐비윤씨가 26세로 죽은 1482년이면 최소한 50세가 넘은 나이가 된다. 이게 무슨 변실장과 신정아의 사랑도 아니고.. 윤씨가 태어나기도 전인데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어찌 거세를 할수가 있더란 말인가? 혹, 윤씨가 김처선의 용모에 반해 가까이 가기위해서 성종의 후궁이 되었다면 더 자극적이지 않을까?
 
이처럼 성종과 폐비윤씨와 김처선의 로망에 들어설 자리가 없다. SBS가 좋아하는 황당역사극이라면 차라리 김처선 때문에 죽임을 당한 김처선의 양자 <이공신>과  <성종>과 <폐비윤씨>의 로망이라면 이해라도 되겠다. 또한 이공신과 폐비윤씨는 그렇고 그런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 연산군을 낳았다. 연산군이 자신의 아들인줄안 성종이 지속적인 이공신과 윤씨의 부적절한 관계를 눈치를 채고, 폐비윤씨에게 사약을 내리지만 막강한 권력을 쥔 김처선 때문에 이공신을 죽이지 못하고 끝내 성종이 화병에 죽는다. 연산군은 어머니 폐비윤씨의 복수를 위해서 관련자 모두를 죽인다. 그리고 김처선과 이공신을 죽였지만 알고보니 연산군은 자신의 진짜 아비를 죽인 폐륜아였다는  SBS식의 황당역사개그 사기극의 대미를 장식할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역사의 기본골격인 연표는 흩트러지지 않는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
 
○ 윤씨가 폐위된 뒤에 폐주가 세자로 동궁에 있던 어느 날, “제가 거리에 나가 놀다 오겠습니다.” 하므로 성종이 허락하였다. 저녁 때 대궐로 돌아오자 성종이 “네가 오늘 거리에 나가서 놀 때 무슨 기이한 일이 있더냐?” 하니 폐주는 “구경할 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송아지 한 마리가 어미소를 따라가는데,그 어미소가 소리를 하면 그 송아지도 문득 소리를 내어 응하여 어미와 새끼가 함께 살아 있으니 이것이 가장 부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였다. 성종은 이 말을 듣고 슬피 여겼다. 대개 연산군이 본성을 잃은 것은 윤씨가 폐위된 데 원인이 있는 것이지만 왕위에 처음 올랐을 때는 자못 슬기롭고 총명한 임금으로 일컬어졌었다. 《아성잡기(鵝城雜記)》
 

환관(宦官) 김처선(金處善)
김처선은 관직이 정2품이었다. 연산주가 어둡고 음란하였으므로 김처선이 매양 정성을 다하여 간하니, 연산주는 노여움을 속에 쌓아 둔 채 겉으로 나타내지 아니하였다. 일찍이 궁중에서 임금이 처용(處容) 놀이를 하며 음란함이 도를 지나쳤다. 김처선은 집안 사람에게, “오늘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고 들어가서 거리낌없이 말하기를,“늙은 놈이 네 분 임금을 섬겼고, 경서와 사서를 대강 통하지마는 고금에 전하처럼 행동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하였다. 이에 연산주가 성을 참지 못하여 활을 당겨 쏘아서 갈빗대에 맞히자, 김처선은 “조정의 대신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늙은 내시가 어찌 감히 죽음을 아끼겠습니까. 다만 전하께서 오래도록 보위에 계시지 못할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하였다.연산주는 화살 하나를 더 쏘아 맞쳐서 공을 땅에 넘어뜨리고, 그 다리를 끊고서 일어나 다니라고 하였다. 이에 처선은 임금을 쳐다보면서, “전하께서는 다리가 부러져도 다닐 수 있습니까.” 하자, 또 그 혀를 자르고 몸소 그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 내었는데, 죽을 때까지 말을 그치지 아니하였다. 마침내 그 시체를 범에게 주고 조정과 민간에 ‘처(處)’ 자를 말하지 못하게 하였다. 《소문쇄록》

○ 권발(權?)이 갑자년 시험에 합격했는데, 책문(策問) 시험에 합격되어 이름을 떼어 본 뒤에 시관이 시권 안에 처(處)자가 있는 것을 깨닫고 낙방시키기를 청하였으니, 이는 앞서 연산주가 노하여 조정과 민간에 처선(處善)이란 두 글자를 쓰지 못하게 한 까닭이었다. 권발은 뒤에 정묘년에 과거에 합격되었다. <행장>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서 <처>라는 글짜때문에 낙방하는 선비가 있는가 하면, 24절기 <처서>에 들어가는 <처>자도 김처선과 같다하여 다른 글짜로 바꾸었고, <김처선>이란 이름을 쓰는 모든 자들에게 개명을 하도록 하였다고 <조선왕조실록>는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 왕의 이름에 들어가는 글자를 피해서 기록하는 것은 역사서에 수없이 보이는데 죄인의 이름짜에 들어간 글짜까지 피하게 만들었다는 <김처선>이 어떤인물이고 연산군이 어떠한 인물인지는 알만하다.
 
역사란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우리는 일제시대는 잊어야하는 시대로, 망각해야 하는 역사로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일제시대에 수많은 역사흔적들을 없애버리고, 감추고, 잊어 버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광개토대왕이나 대륙백제, 백제의 담로국은 없어도 만들어야 하고, 일제시대, 우토로나 위안부, 광주518 등 아프픈역사는 감추고 싶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장 웃기게 왜곡된 용어가 있다. <한일합방>이란 말인데.. 일반적인 해석은 한국과 일본이 하나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합방한 주체가 한국이고 객체가 일본이 된다. 만약, 미래에 어떤이가 <한일합방>을 해석한다면 한국이 일본을 합방했는줄 알것이다. 그리고 한국이 일본을 점령햇는데 일본이 왜곡했거나, 사대주의자들이 역사를 감추고 삭제했다고 방방 뜰것이다. 얼마나 얼척없는 일이 발생할것인가? 정확하게는 <일한합방>이 되어야 한다.
 
불행한 역사도 사실에 부합되게 기록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그런것이 역사인것이다. 그래야 역사와 끝임없이 대화를 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화려한 역사만 기록된것은 역사라고 할 수 없다. 화려함만 있는 역사는 그저그런 선전 찌라시에 불과하다.
 
역사는 희망을 적는 기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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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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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Favicon of http://regentonnentest.de BlogIcon regentonnentest 2017.10.07 08: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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