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갓쉰동 꿈꾸는 삶

<뿌리깊은 나무>가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흔들리고 있다.

 

어떻게 마무리를 할까? 제작자나 작가나 혼란스러운가 보다. 이유는 완성된 시나리오가 아닌 그때 그 때마다 만들어진 시나리오의 한계 때문이다.

 

이는 어떤 연기를 해야할 지 모르는 배우에게도 치명적이지만 뿌리깊은 나무를 시청하는 시청자에게도 난감할 수 밖에 없다.

어떻게하던 극을 마무리하려는 무리수가 곳곳에 보인다.

 

설계도가 완성되지 않는 건축물이 있는데 공기가 있는 건축물을 보자, 설계도 없는 건축물이 모진 풍파에 견딜수가 있을까? 완공날짜만 있고 완성되지 않는 시나리오로 만든 드라마가 재대로 마무리를 하며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4대강 살리기라는 미명하에 만들어진 2년 공기의 4대강 망치기 사업을 보자. 억지로 공기는 맞추었을지는 모르지만 실제 완성은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고 곳곳에 비가 새고 물이 새고 있다. 4대강 사업이야 돈을 더 퍼부어 공기를 연장하고 만들면 되지만, 드라마는 그렇지가 않다. 끝나면 그만인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연장하는 방법밖에 없지만, 어찌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마디로 뿌리깊은 나무에서 자신들의 뿌리는 빈약하기 그지 없었다.

 

글쓴이(갓쉰동)이야 간만에 재대로 고증된 사극을 보는 재미로 처음에는 보았지만, 사전제작이 끝나고 급급하게 쪽대본 생중계로 만들어지는 후반부의 시나리오와 대한민국의 드라마 제작환경과 장태유 특유의 뒤 마무리 못하는 용두사미의 사극을 본 것으로 만족하고 말야야 할것 같지만 말이다.

 

최근 <공주의 남자>에서 신면과 신숙주를 왜곡했다고 신숙주의 후손들이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공주의 남자 제작진과 방송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나 보다. 공주의 남자 제작진은 허구적인 일이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는 입장인 모양이고 신숙주의 후손은 허구가 용납할 수준을 넘었다는 입장이다.

 

글쓴이의 생각은 공주의 남자 측이 허구의 범위를 넘어선 과도하게 왜곡한 측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이에 대해서 충분한 사과로 끝나면 하는 바람이지만, 방송사측은 왜곡하면 어때 허구라고 문구를 내세웠는데 라고 빠져나갈 것 같다. 그런데 어디부터 어느부분이 허구이고 사실인지는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고 이를 드라마에서 보여준 적이 없다.

<공주의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숙주, 신면에 대해서는 왜곡에 날조 투성이지만, 이는 극적 허구와는 하등 상관없다. 신숙주, 신면은 실존인물로서 상상력으로 재조명은 될수 있지만, 실제 관여할수 없는 부분까지 상상력을 발휘한 측면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주의 남자를 본 시청자들은 신면과 신숙주를 어떻게 생각을 할까? 사실 신숙주 만큼 왜곡된 역사적인 인물도 없다. 이는 대부분 선후관계나 일자도 틀린 요즘 드라마 같은 야사류와 소설이 만든 허구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글(훈민정음)창제를 미스터리 추리 기법을 이용한 드라마를 만들었지만, 광수를 비롯한 공부하지 않는 소설가로 인해서 한글(훈민정음)에 대한 환상이 심어지고 소설 속 설정이 역사가 되어진 것도 사실이다.

  

역사드라마 정확히는 시대가 조금 올라가는 시대극을 만들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팩트는 손상시키지 않고 사건을 보는 관점에 따라 재해석해야 한다는 점이다. 팩트를 훼손할 때는 최소한 드라마적인 장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 시대극의 주류는 팩트를 무시하는 것을 재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오마이 뉴스와 프레시안 뉴스에게 뿌리깊은 나무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프레시안에서는 뿌리깊은 나무에서 작가가 훈민정음(한글)로 용비어천가를 처음 만들었는데 극적인 드라마 설정 때문에 훈민정음을 널리 퍼지게 하기 위해서 석가의 일대기를 훈민정음으로 석보상절을 선택한 것은 잘못이며, 훈민정음은 백성을 위한 세종의 고뇌가 아니고 조선을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든 것 뿐이라는 것이 요지다.

 

이에 오마이 뉴스는 프레시안의 반박으로 그 누가 훈민정음으로 처음 만들어진 것이 용비어천가라는 사실을 모르겠느냐?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봐야한다는 것이다.

 

글쓴이 입장에서는 오마이 뉴스나 프레시안이나 둘 다 덤앤더머들의 우물안 개구리들의 괜한 소리 같다는 생각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세종이 처음 한일은 <용비어천가>가 아니었다. 세종이 처음 한일은 성리학의 논리가 묻어 나는 <삼강행실도>와 <운회>의 번역작업이었다.
 

 《태조실록(太祖實錄)》을 내전(內殿)에 들여오기를 명하고, 드디어 언문청(諺文廳)을 설치하여 사적(事迹)을 상고해서 용비시(龍飛詩)를 첨입(添入)하게 하니,
- 1446년 11월 8일

집현전 교리(集賢殿校理) 최항(崔恒)·부교리 박팽년(朴彭年), 부수찬(副修撰) 신숙주(申叔舟)·이선로(李善老)·이개(李塏), 돈녕부 주부(敦寧府注簿) 강희안(姜希顔) 등에게 명하여 의사청(議事廳)에 나아가 언문(諺文)으로 《운회(韻會)》를 번역하게 하고, 동궁(東宮)과 진양 대군(晉陽大君) 이유(李瑈)·안평 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으로 하여금 그 일을 관장하게 하였는데, 모두가 성품이 예단(睿斷)하므로 상(賞)을 거듭 내려 주고 공억(供億)하는 것을 넉넉하고 후하게 하였다
- 1444년 2월 16일

사실 삼강행실도는 성리학의 논리 뿐만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기본에 관힌 일이였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삼강행실도와 더불어 세종이 심열을 기울린 건 통일화되어 있지 않았던 한자를 훈민정음(한글)로 음과 훈을 달아 한자를 바로 쓸 수 있는 통일화 작업이었다. 더군다나 사서, 삼경, 농서 등 수 많은 서적을 훈민정음으로 번역.간행 한다.

 

세종으로 인해서 조선의 한자는 음과 훈이 통일되었고, 한글 28자의 용례만 안다면 한자를 처음 배우는 사람도 글(한자)공부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 후대 성리학의 기반이 자리잡은 것이다.

 

그런데 성리학을 국가경영의 처음이자 끝으로 생각한 유림이나 신진사대부들이 반대했다는 상상들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단지 훈민정음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훈민정음으로 인해서 중국에 사대를 할 수 없다는 측이 최만리와 사육신의 하나인 하위지 등 7인의 생각이었고, 이들을 제외한 절대 다수의 유학자들은 사대를 위해서도 훈민정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 최만리(崔萬理)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이 엎디어 보옵건대, 언문(諺文)을 제작하신 것이 지극히 신묘하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혜를 운전하심이 천고에 뛰어나시오나,
 
만일 중국에라도 흘러 들어가서 혹시라도 비난하여 말하는 자가 있사오면, 어찌 대국을 섬기고 중화를 사모하는 데에 부끄러움이 없사오리까.

글자를 안다고 해서 모두 성리학 경전을 보는 것도 아니고, 같은 문자 같은 경전을 본다고 해서 똑같이 해독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요즘에는 소나 개나 다 한글을 알지만 한글을 안다는 것 자체만으로 모두 동등해지는 것이 아니고, 모두 똑 같은 책을 본다고 해서 모두 다 서울대 가고 판검사. 의사가 되지 않는 것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

당시에도 훈민정음이 새로 만들어지던 한자가 있던 차이가 없었다. 단지 훈민정음은 정보를 습득하는 가장 기본에 해당하는 쉬운 문자가 갖추어졌다는 것일 뿐이다. 요즘에는 누가 많이 아는가인 노하우가 아니라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노웨어가 된 세상이다. 더불어 있는 정보를 누가 잘 활용하고 이질적인 정보를 융합하는가로 넘어갔지만 말이다.

 

세종이 만든 훈민정음 서문에 어리석은 백성에는 한자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당대 성리학자를 비롯한 유림이나 신진사대부도 포함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신숙주나 성삼문의 동자습 서문에는 조선의 날고 긴다는 선비들이 한음을 재대로 알지 못해서 중국 사신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기까지 한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운회와 명나라 주원장의 명으로 만들어진 명나라 한자사전인 홍무정운을 번역한 동국정운이 만들어지고 나서야 비로서 중국인 선생이 없더라도 스스로 배우고 익혀서 중국의 말과 통하게 되었다고 좋아했던 사람들이 당대의 유림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이 책(동자습)이 한 번 번역되면 칠음과 사성(四聲)이 나오는 데 따라 절로 분별이 되어, 경위가 서로 분명하여 털끌만큼의 차질도 없을 것이니, 곁에서 밝혀 줄 사람이 없다고 근심할 것이 어디 있겠느냐.

배우는 자가 먼저 정음(正音) 몇 자만 배우고서 다음으로 이 책을 보면, 열흘 쯤으로 중국말도 통할 수 있고 운학(韻學)도 밝힐 수 있어, 중국을 섬기는 일이 이로써 다 될 것이니, 두 임금의 정묘하신 제작이 백 대에 뛰어났음을 볼 수 있다. 이 책의 번역이 외천보국(畏天保國)의 지극한 계획인 동시에 우리 임금님께서 선왕의 뜻을 잘 계승하신 미덕이 또한 지극하시다 하겠다.
- 동자습 서문 성삼문

 

후대에 학자들을 비판할 때 언문(훈민정음)으로 음.훈이 달린 서적을 보고 과거에 급제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는데 공부하지 않는 선비라고 비판한다. 그만큼 일상적으로 언문(훈민정음)이 사대부 사이에도 기본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수있다.

 

오죽하면 훈민정음 창제를 두고 유교 성리학의 이상향적인 국가모델이라는 신화 속의 요순보다 더 뛰어난 성군이라고 세종을 칭송했겠는가?


만약, 뿌리깊은 나무처럼 석보상절을 제일먼저 훈민정음으로 만들었다면 밀본처럼 극렬히 반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글 훈민정음을 반대한 것이 아닌 성리학적 이상국가를 꿈꾼 조선이기 때문에 불교에 대한 반발을 하는 것이다. 당시 시대상을 모를뿐만 아니라 드라마상으로도 논리적이지 못하고, 개연성이나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문제는 성리학 이상국가를 꿈꾼자들 중에서도 불교를 용인하는 집단과 불교를 용인하지 못하는 요즘같은 꼴보수.꼴진보 정치집단과 종교집단이 있었다. 세종 말년 내불당과 불교경전의 훈민정음 번역은 극심한 반발에 휩싸인다. 더군다나 문종 즉위초에 <정음청>을 없애라는 원인도 불경과 관계가 있었다. 내불당 사건과 불경 번역은 세종이 요순에서 말년에 망령되었다고 말을 듣게 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의 설정은 세종을 돋보이고 훈민정음(한글)을 돋보이기 위한 방편이지만, 한편으로는 당대의 시대상과는 동떨어진 일이다.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훈민정음을 비하하고 세종을 비하하는 측면이 더 강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글쓴이가 위의 오마이 뉴스나 프레시안의 두 기사가 왜 바보들의 놀이라고 했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만큼 훈민정음(한글)에 대한 오해가 심각하다고 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훈민정음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실제 훈민정음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아직도 언문(소리글)을 훈민정음을 비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인 상황이다. 언문을 제일 먼저 언급하고 언문청을 만든 이는 다름이 아닌 세종이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뿌리깊은 나무를 보기 전에는 극히 드물지 않는가? 물론, 아직도 언문은 양반들이 훈민정음(한글)을 비하는 말이다. 검색해서 사전을 보라는 초딩스런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사전이 잘못된 설을 따라 잘못되어 있는 것이지 글쓴이의 잘못은 아니다.

더군다나 실록뿐만 아니라 훈민정음 창제에 깊이 관여했다는 성삼문이나 신숙주 조차도 훈민정음을 친히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데 성삼문, 신숙주가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이제 뿌리깊은 나무는 신숙주는 사라지고 광평대군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극(시대극)이란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투영하고 현실을 비판하는 목적도 있지만, 기본적인 팩트를 왜곡했을 때 또다시 소설이나 드라마 속의 환상이 사실처럼 인식되어 진다. 특히 실존인물의 관계에서는 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

드라마가 보여주고자한 닥치고 결과도 중요하지만, 드라마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까지 무시한 드라마는 드라마 본질을 스스로 먹칠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주의 남자를 고소한 신숙주의 후손들처럼 한계를 넘어선것에 반발하는 것이다.

어쨌든,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 때 시체해부까지 했다는 설정이 <대왕세종>에서 <뿌리깊은 나무>에서 확인 사살된 것처럼 말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훈민정음 해례는 없고 소이가 곧 해례라고 말을 한다. 소이가 해례라면 세종은 하나뿐인 해례를 밖으로 돌린 것 이다. 궁궐도 넘나드는 밀본이니 소이를 궁궐밖으로 빼돌리고 싶었겠지만, 밖으로 나간 소이는 아무도 없는 벌판에 있게된다. 그래서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처럼 밀본의 추격을 받지만 말이다.

 

치밀한 추리기법을 추구한 뿌리깊은 나무에서 옥의티가 아닐까? 물론, 소이가 해례일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 동안 드라마 상에서 꾸준히 알려주었다. 한번 본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 걸어다니는 비활성 컴퓨터메모리 말이다. 해례인 소이만 사라지면 훈민정음은 사라질까?


뿌리깊은 나무에서 왜 밀본이 해례에 집작하는지가 불문명하다. 해례는 단순히 훈민정음 교본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다. 한글교본이 사라진다고 훈민정음이 사라지나? 해례는 소이의 머리속에 있는게 아니라 세종의 머리속에 있는데 말이다. 광평대군을 희생양 삼은 것처럼 또다시 세종은 소이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설정밖에 되지 않는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은 과정을 중요시 하지 않는 철저한 결과론자로 그려지고 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나오는 세종은 현재의 시각으로 봐도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은 상관이 없다는 위험한 인물이다. 하지만, 세종은 목적에 목메이지 않고 결과가 아닌 과정에 충실한 인물이였다. 오죽하면 세법하나 만드는데도 18만명의 가부조사를 했겠는가? 그리고 15년동안 세법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선해서 시행하겠는가?

한편에서 막말하는 세종을 복원한듯 하지만, 철저히 세종을 무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건이 천지계원의 문신, 시체해부, 광평대군의 죽음, 소이를 밖으로 빼돌린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왜 세종은 1443년 12월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2년 9개월이 지난 1446년 9월에 훈민정음을 정식 반포하였을까? 일부의 사람은 창제하고 반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를 들어서 사대부들이 반대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훈민정음이 왕성되지 않았고 그래서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등이 훈민정음 창제에 관여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훈민정음은 글을 쓰고, 읽는 데는 뛰어난 글자이지만, 조판, 활자로 찍어내는데는 한자보다도 더 어려운 문자다. 한자는 만들어질수 있는 글자가 약 5만자에 불과하지만, 초.중.종성으로 이뤄진 28자 훈민정음은 " ㆄㅹㅸㅵ ㅩ" 등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문자를 포함해서 쓰고자 한다면 무한대로 증식이 가능하고 최소 160만까지 글자를 만들어 낼 수가 있다. 어찌보면 훈민정음은 가장 쉬운 문자이지만, 가장 쓰기쉽고 읽기 쉽지만 무한대로 확장가능하기 때문에 가장 어려운 문자일수가 있다. 

IT시대에 적합한 문자라는 소리는 훈민정음을 재대로 본것이 아니다. IT 시대때문에 훈민정음의 창제원리가 막히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오히려 훈민정음 창제원리는 IT 시대에도 구현되지 못하고 있을 만큼 뛰어난 체계를 갖춘 문자다. 
  

 

어쨌든, 조선시대 활자를 만들 때 최소 15만자에서 20만자를 활자화 했다. 더군다나 세종시대에는 출판을 할 때 대.중.소 3가지 글자크기를 사용하였다. 더군다나 훈민정음이 창제되었을 때는 사성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사성에 따라 같은 글자라도 달라진다. 용례를 만들고, 출판하는데 필요한 활자를 주자소에서 만드는데 물리적으로 수 많은 시간과 인력과 돈이 필요했을 것이 자명하다.

어쨌든, 오히려 뿌리깊은 나무에서 밀본이 명나라 태평관과 연관이 되어 명나라가 훈민정음 창제를 방해했다는 설정이 뿌리깊은 나무에서 드라마의 극적인 요소로 필요한 것이 아니였을까? 하지만, 태평관의 창위(간자)들과 세종과의 싸움은 보이지 않고 있다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처음 뿌리깊은 나무에서 태평관에서 간자들의 활동과 훈민정음 창제와 연관시키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충분히 명으로 부터의 문자독립을 넘어서 실질적인 독립을 꿈꾼 세종과  손아귀에서 놓아 주려 하지 않는 명나라와 관계를 드라마적인 요소로서 충분하지 않을까?

어쨌든, 뿌리깊은 나무로 인해서 그동안 보여주지 못한 고증을 해서 새로운 보기 드문 사극이 만들어진것은 분명하지만, 연출 장태유가 꿈꾼 다큐사극과는 다른 또 다시 역사와는 무관한 한글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심어주고 역사가 된 드라마가 된것도 분명하다.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Favicon of http://empireatms.com/ BlogIcon buy an atm 2013.03.04 1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 재산은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당신이 해야 됩니다. 먼저 가장 작은 것 들과 평가액에서 수집할 수 있습니다.

  3. Favicon of http://www.valorjanitorial.com BlogIcon Janitorial Service Dallas 2013.03.06 0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업체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우수한 수행 할 수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나는 회사 이름이 정말 이해가되지 않는봤을 때 매우 좌절했습니다.

  4. Favicon of http://www.wetribet.com/web-design-long-island.html BlogIcon long island website design 2013.03.06 1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터넷 오늘날의 사람들이 가장 필요 됩니다. 그물은 각 요소에 대 한 일상 생활에 활용 하는 이유가 이다. 처음으로 그것은 발명으로 변경 된 사이버 웹에 공급자 개발 되었습니다.

  5. Favicon of https://www.freeshipmattress.com/bamboo-pillows.html BlogIcon bamboo pillow 2013.03.08 2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환경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해서 모든 사람에 의해 수행 많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녹색 환경과 아름다운 풍경이 많은 우려하고 있습니다.

  6. Favicon of http://androidappmarketingtips.com/ BlogIcon promoting android apps 2013.03.10 2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몇몇 사람들은 듣기 노래 비디오를보고 결정. 그들은 이야기를 볼 것을 선호합니다. 그런 다음,뿐만 아니라 그들은 더 많은 음악을 듣기보다는 이미지를보고처럼.

  7. Favicon of http://www.carinsurance90.com/how-much-does-car-insurance-cost/ BlogIcon how much is car insurance per month 2013.03.16 2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꽤 많은 남자 또는 여자 소원 때문에 스카이 사용 하 여 그림의 배경. 부드러운 하늘 그늘 진정으로 개체를 만들 것입니다. 순수 배경 더 좋은 되어야 합니다.

  8. Favicon of https://www.structuredsettlement-quotes.com/structured-settlement BlogIcon sell structured settlements 2013.03.16 2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에 순종에 거주하는 가능한 방법을 위반하고을 깰 수있는 기회를 모색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9. Favicon of http://bestrobotvacuumreviews.com/neato-xv-21-pet-allergy-automatic-vacuum-cle.. BlogIcon Neato XV-21 Review 2013.03.24 1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 나라에서 혁명 뒤에 나라 선진국 될 자리 있어야 합니다. 주민들에 게 매우 중요 하다입니다.

  10. Favicon of http://youraffordablepetmovers.com/ BlogIcon Pet Shipping 2013.03.26 0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부 일본 아마 공학에 걸쳐 선진국 이다. 민족의이 종류는 생산 전역 항목을 제공합니다. 개인 스트레이트 이해 가능 하 게 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악기에 대 한 우수한 상품 중 하나로 이야기.

  11. Favicon of http://www.roguerivertrips.info BlogIcon Salmon Fishing 2013.03.29 1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들이 알고 Jogja 프 람 바 난이 마. 실제 사원 실제로 국제 휴가 집에-기반 관광객에 걸쳐 잘 알려져 있다. 자리는 실제로 아름 다운.

  12. Favicon of http://adagiodj.com/ BlogIcon wedding djs in minneapolis 2013.04.01 1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경기는 각 팀의 많은 팬 들에 의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직접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팬과 함께 필드에 (게) 똑바로 했다.

  13. Favicon of https://plus.google.com/113336643098321114310/posts BlogIcon Sean Nevett 2013.04.04 14: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학생들에게 할 수있는 최선의 비전과 사명을 가지고 학교를 선택하고 찾을 수 있습니다. 이가 많은 교사의 관심 중 하나입니다.

  14. Favicon of http://www.mrrwheels.com/ BlogIcon staggered wheels 2013.04.07 2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거의 일이 참이 시간에 당신의 아이에게 제공 할 수있는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을. 당신은 그들에게 당신이 과거로부터 가지고 많은 것들을 제공 할 수 있습니다.

  15. Favicon of http://weddingtiarasuk.wordpress.com/2013/04/05/how-wedding-tiaras-may-help-yo.. BlogIcon wedding tiaras 2013.04.08 2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서비스를하는 것은 잘, 오른쪽으로 수행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많은 사람들이 주어 수행 할 수있는 최선의 많은으로이 작업을 수행 할 수 있습니다.

  16. Favicon of http://www.luisiglesias.net/info/site/coral-gables-luxury-communities/ BlogIcon Coral Gables Real Estate 2013.04.13 14: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충돌이 해결 되는 성공적으로 항상 내 많은 사람들에 게 많은 평화를 가져올 것 이다. 회전을 취할 수 있는 많은 솔루션을 확인 하 고 있습니다.

  17. Favicon of http://www.renewbodycontouring.com/ BlogIcon fat removal houston 2013.04.17 0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밝혀 충돌에서 사용할 수있는 솔루션은 바로 당신이 조용히 만들 수있는 하모니의 많은 원인이됩니다. 당신은 다른 솔루션을 많이 개발할 수 있습니다.

  18. Favicon of http://www.store4summer.com/student-storage-dorm-storage/ BlogIcon college dorm storage 2013.04.22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심각 하 게 자신을 훈련 한다고 증명 하는 데 개인 트레이너입니다. 그렇게 할 것을 결정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19. Favicon of http://watchhousemdonline.com/ BlogIcon watch house md online 2013.04.23 0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리화나가 널리 흥분 할 수있는 약물로 사용되는 사람들에 의해 사용됩니다. 음주 한 사람은 물론 또 다시 중독 될 것입니다.

  20. Favicon of http://shooting-range.weebly.com/1/post/2013/03/all-about-the-gun-you-may-want.. BlogIcon Gun 2013.05.02 1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컴퓨터가이 시간에 필요 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컴퓨터가 현재 연구의 많은 -이 있어야합니다 항목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21. Favicon of http://www.freeriderwebhosting.com BlogIcon free web hosting 2013.05.17 0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종이 만든 훈민정음 서문에 “어리석은 백성”에는 한자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당대 성리학자를 비롯한 유림이나 신진사대부도 포함한다는

<뿌리깊은 나무>에서 집현전 직제학 이자 밀본인 종수는 세종 이도 성리학을 버리고 유림을 압살하려 한다는 증거를 세법과 불경과 내불당 사건을 제시한다.

 

그런데 세종이 하려던 세법은 공법으로 기존의 토지세보다 부담을 적게 하는 정책이였고, 가진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가는 제도였다.

 

그래서 1430년 당시 약 18만명의 여론조사를 하였지만, 전라. 경상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특히 함길도, 평안도에서는 압도적인 반대에 직면하고, 경기, 충청 지역은 찬반이 엇비슷했다.

 

전라 경상이 찬성이 많은 이유는 토질이 좋고, 물과 환경이 좋아서 소출이 많았는데 이전 세금보다 1/3이나 줄어든 세금(감세)에 환영하지 않으며 이상하지 않겠는가?

 

사대부 양반. 유림의 기반은 토지에 있었고, 유림의 다수는 경상. 전라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니 혜택은 부동산 재벌인 유림들에게 갈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 세종은 반대에 직면한다. 왜냐하면, 권력을 차지하고 있던 성리학자들이 공법은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하니 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이는 부자감세를 해야 한다는 이명박정부나 신자유주의에 반하는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솔선수범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워린버핏이 부자들이 세금부담을 더해야 한다는 워린버핏세는 이미 조선 세종 시대에 성리학 공직자(위정자)들에게 공론화 되었고, 실현되었다.

세종 공법(토지소득세)은 지역을 경상.전라, 충청.경기, 함경,평안.황해,강원, 제주 등 4개지역으로 나누고 지역 내 토지의 질에 때라 5등급으로 세분화 하여 차등적으로 누진세액을 부담하게 하였다. 한마디로 부유한 지역,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하고, 가난한 자에게 세금을 감면. 축소해주는 대대적인 세금정책이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다음글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2011/11/02 - [역사IN드라마/뿌리깊은나무] - 뿌리깊은 나무, 세종 세법 밀본 기득권말살 정책? 부자감세 위정자들 워린버핏세 주장

심종수가 두번째 예로든 내불당 불사 사건은 세종 때 있었던 일이기는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 시제와는 어긋난다.

<
뿌리깊은 나무>시제는 1443년 12월 30 세종대왕이 직접 만든 언문(훈민정음) 28자를 만들었다 시점이 된다. 이를 알수 있는 증거는 심종수 13년전 세법으로 여론조사를 하였지만, 아전과 유림이 반대했다고 하였으니 공법문제는 1430년이 되니 <뿌리깊은 나무>시제는 1443년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세종은 즉위후 내불당을 없앤다. 그래서 유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세종 15 1433 1월 30 문소전(文昭殿)불당(佛堂)을 걷어 없애기를 명하고, 그 불상(佛傷)과 잡물(雜物)흥천사(興天寺)에 옮기게 하였다.

 

하지만, 세종 17 1435년 태조가 정릉 옆에 만들었던 흥천사 사리탑을 중수하고 경찬회를 개최하려고 하지만, 유림들의 반대에 직면한다. 세종이 흥천사 사리탑 경찬회를 열려고 한 때는 세종 22 1440년부터 였다. 하지만, 끊임없이 사간원, 사헌부, 집현전, 성균관 등으로부터 상소를 받아 반대에 직면한다.
반대에는 김종서, 정인지, 황희, 최만리, 박중림(박팽년의 아버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세종은 끊임없는 상소에 승정원으로 하여금 경찬회 관련 상소는 절대 받지 말라고 명한다. 한마디로 언로가 차단된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세종은 경찬회를 성삼문의 할아버지 성달생에게 맡기고 있다. 세종은 반대에 직면하자 하나의 꼼수를 내는데 세종 자신이 서울에 있지 않고, 행궁을 떠날 때 흥천사 사리각 경찬회를 한다면 상소를 할 수도 없고, 반대도 없지 않겠느냐는 계책을 내세운다.

 

결국 세종은 온정을 떠난 상태에서 세종 24 1442 3월 24 흥천사 사리각 경찬회가 개최된다. 이때 모인 중만 전국에서 1 8백명이 넘었다.

 

이 모임의 이름은 백팔공승(百八供僧)이라 하였으나, 승도(僧徒)들이 사방에서 모여서 공양한 중이 1 8 18명이고 속인(俗人) 3 87명이나 되어 그 비용이 적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리각(舍利閣) 담장 밖에는 부녀들이 늘어서서 밤낮으로 먼저 보려고 다투었다. 


2
년 넘게 질질 끌다 사리탑 경찬회가 열린 것이다. 만약, <뿌리깊은 나무>에서 성리학을 버리고 불교를 받아들이려는 것이 아니냐는 증거로 <내불당>이 아닌 흥천사 경찬회를 예로 들어야 합리적이다.

 

더군다나 세종 15년 내불당을 없애고, 불상과 잡물을 흥천사로 보내고 난 후 였다. 세종 30 1448 7월 17내불당을 문소전 서북쪽 궁궐에 만든 때는  "문소전 서북에 불당을 설치할 것을 명하자 이사철·이의홉 등이 불가함을 아뢰다"

이때 내불당을 만들자 흥천사 경찬회 때와 같이 수 없는 반대에 직면한다.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세종이 승하고 문종 즉위년, 단종 즉위 할 때 마다 내불당과 언문청, 정음청은 유자(유림,사대부)에게는 없애야 할 최대적이었다.
 
문종은 정음청을 없앴고, 단종 때는 내불당과 언문청이 없어질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세조가 들어선 이후엔 언급조차 없었다가 다시 예종, 성종 때 내불당, 언문청을 없앨 것을 청원하지만, 내불당은 연산군 10년에 흥천사로 옮겨지고, 언문청은 중종 반정 3일 후에 없어진다.

 

어쨌든, <뿌리깊은 나무>에서 내불당을 설치하여 성리학을 괴멸시키려 한다는 설정과 세법은 유림과 성리학을 말살하는 정책이라는 심종수의 말은 개연성이 없다.

 

144611월 유가들에게는 용비어천가를 언문청을 통해서 만들게 하고,
 

드디어 언문청(諺文廳)을 설치하여 사적(事迹)을 상고해서 용비시(龍飛詩)를 첨입(添入)하게 하니


사실 세종이 언문(훈민정음)을 만들고 직접한 일은 불교에 관한 일이다. 1447년 석가의 일대기를 그린 석보상절을 언문으로 세조(수양대군)에게 만들게 하고, 인쇄하여 배포한다. 석보상절을 보고 세종은 대서사시 <월인천강지곡>을 언문으로 직접 만든다.

 

<뿌리깊은나무>에서 한글창제(언문, 훈민정음)을 비밀리에 만들었다고 하지만, 실제 한글창제는 비밀스럽게 만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문자를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단지, 한글처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가 세종 혼자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 어려워서 그런것이고,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의 친위부대라고 할만한 집현전의 대장인 부제학 최만리가 반대했으니 비밀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 것 뿐이다.



<뿌리깊은 나무> 군나미욕(아설순후)이라 하여 분류 하고 있지만, 세종 28년 1446년 9월 29일 훈민정음 창제후 반포한 내용을 참고하더라도 실제는 "군규업두"나 "군탄별즉"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쉬이 알수 있다. 물론, 군나미욕은 아설순후음에서 기본글자이니 뿌리깊은 나무에서 군나미욕이라고 하는 것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ㄱ은 아음(牙音)이니 군(君)자의 첫 발성(發聲)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규(虯)자의 첫 발성(發聲)과 같고,
ㆁ은 아음(牙音)이니 업(業)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ㄷ은 설음(舌音)이니 두(斗)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담(覃)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ㅌ은 설음(舌音)이니 탄(呑)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ㄴ은 설음(舌音)이니 나(那)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ㅋ은 아음(牙音)이니 쾌(快)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ㅂ은 순음(脣音)이니 별(彆)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보(步)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ㅍ은 순음(脣音)이니 표(漂)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ㅁ은 순음(脣音)이니 미(彌)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ㅈ은 치음(齒音)이니 즉(卽)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자(慈)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ㅊ은 치음(齒音)이니 침(侵)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ㅅ은 치음(齒音)이니 술(戌)자의 첫 발성과 같는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사(邪)자의 첫 발성과 같고,
ㆆ은 후음(喉音)이니 읍(挹)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ㅎ은 후음(喉音)이니 허(虛)자의 첫 발성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홍(洪)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ㅇ은 후음(喉音)이니 욕(欲)자의 첫 발성과 같고,
ㄹ은 반설음(半舌音)이니 려(閭)자의 첫 발성과 같고,
ㅿ는 반치음(半齒音)이니 양(穰)자의 첫 발성과 같고,
· 은 탄(呑)자의 중성(中聲)과 같고,
ㅡ는 즉(卽)자의 중성과 같고,
ㅣ는 침(侵)자의 중성과 같고, ㅗ는 홍(洪)자의 중성과 같고, ㅏ는 담(覃)자의 중성과 같고, ㅜ는 군(君)자의 중성과 같고, ㅓ는 업(業)자의 중성과 같고, ㅛ는 욕(欲)자의 중성과 같고, ㅑ는 양(穰)자의 중성과 같고, ㅠ는 술(戌)자의 중성과 같고, ㅕ는 별(彆)자의 중성과 같으며, 종성(終聲)은 다시 초성(初聲)으로 사용하며, ㅇ을 순음(脣音) 밑에 연달아 쓰면 순경음(脣輕音)이 되고, 초성(初聲)을 합해 사용하려면 가로 나란히 붙여 쓰고, 종성(終聲)도 같다. ㅡ·ㅗ·ㅜ·ㅛ·ㅠ는 초성의 밑에 붙여 쓰고, ㅣ·ㅓ·ㅏ·ㅑ·ㅕ는 오른쪽에 붙여 쓴다.

무릇 글자는 반드시 합하여 음을 이루게 되니, 왼쪽에 1점을 가하면 거성(去聲)이 되고, 2점을 가하면 상성(上聲)이 되고, 점이 없으면 평성(平聲)이 되고, 입성(入聲)은 점을 가하는 것은 같은데 촉급(促急)하게 된다


 


어쨌든, 이미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글의 기본 캐릭터는 만들어졌다는 것을 집현전 학사의 죽음으로 한글로 곤구망기( 丨口亡己) "밀본"이라고 사자전언을 하여 이미 증명되었고, 성삼문이 한글창제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은 다행이라고 하겠다. 성삼문이 세종에게 우리글을 만들겠다고 했을때의 반응은 어쩌면 당시 유학자들에게 보이는 당연한 반응이지 않을까하다.
 
문제는 성삼문이 한글창제전에 집현전 학사에 있다는 것이다. 사실 성삼문은 한글이 창제된 세종 25년 1443년 12월 30일 이후에도 성삼문은 집현전 학사가 아닌 성균관쪽에 있었다. 
 

집현전 부수찬(副修撰) 신숙주(申叔舟)성균관 주부(注簿) 성삼문(成三問)행 사용(行司勇) 손수산(孫壽山)요동에 보내서 운서(韻書)를 질문하여 오게 하였다.
-세종 27년  1445년 1월 7일


사실 성삼문, 신숙주, 이개, 박팽년 등은 한글 창제가 아닌 한글이 만들어진후 응용편을 만들었다고 이미 세종실록 훈민정음 반포 서문에도 나오고 있다.
 

마침내 해석을 상세히 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이해하라고 명하시니, 이에 신(臣)이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 최항(崔恒), 부교리(副校理) 박팽년(朴彭年)신숙주(申叔舟), 수찬(修撰) 성삼문(成三問), 돈녕부 주부(敦寧府注簿) 강희안(姜希顔), 행 집현전 부수찬(行集賢殿副修撰) 이개(李塏)·이선로(李善老) 등과 더불어 삼가 모든 해석과 범례(凡例)를 지어 그 경개(梗槪)를 서술하여, 이를 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 세종 28년 1446년 9월 29일


한마디로 세종의 명으로 정인지가 한글교본(훈민정음혜례)을 집현전 학사들인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개, 이선로 그리고 돈녕부 강희안과 함께 만들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뿌리깊은 나무>는 연출자 장태유와 신경수의 조선시대 초기 고증에 이전 사극에서 볼수 없을 정도로 충실한 편이다. 그러나 작가 김영현의 스토리에는 개연성과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김영현의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좀더 개연성과 리얼리티를 살렸다면 연출자의 고증에 충실하려던 노고에 방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집현전은 세종의 일에 수없이 반대를 하고, 자문을 하는 집단이었다. 훈민정음(한글)의 반대도 내불당사건이나, 흥천사 사리탑 경찬회의 반대와 마찬가지 일뿐이다. 한글 창제이면을 다빈치 코드처럼 미스터리하게 극을 이끌어 나간다면 더욱더 가치가 있을 것이고 드라마틱한 요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나온 사상력의 산물일뿐이다.

 

사실 한글은 한문을 사용하던 조선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문자다. 한문과 한글 공통점은 다른 문자와는 다르게 풀어쓰기가 아닌 모아쓰기(합쳐쓰기)이다. 그리고 부수의 개념이 있듯이 한글에도 자모의 개념에 음운학적인 초성.중성.종성의 개념은 부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더군다나 <뿌리깊은 나무>에서처럼 인간이 발성기관에서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군나미욕)이라는 아음, 설음, 순음, 후음, 치음, 반치음, 반설음으로 나누고 문자자체를 발성기관을 본떠서 만든
상형문자라는 공통점까지 있다. 사성(평성,입성,거성,상성)점을 찍어 소리의 음운율을 맞추어 중국의 발음에도 쉽게 접근하도록 만들었다.

청음, 탁음, 반청음, 반탁음, 반청반탁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확장성을 만들어 냈다. 한글의 확장성은 오히려 한자의 약 5만자 보다 많아 한글의 확장성을 제한하더라도 160만자 이상이다.

 

. l 을 천지인으로 기본으로 생각하지만  . ㅣ ㅏ ㅓ ㅡ ㅗ ㅛ ㅜ ㅠ 의 중성 문자 자체도 입의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이다. 의 경우는 입이 위아래로 벌어지고, 의 경우는 입은 위로 벌어진 상태에서 소리를 입밖으로 내보내는 형상을 본뜨고 있다. 의 경우는 입을 위아래로 열고 입안으로 들이 마시는 모양을 본뜨고 있다. ,의 경우는 잎을 가로로 벌려야 한다.

 

현재의 한글은 세종이 의도한 바의 1/100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고, 운용하지 못하고 있다. "가나다라마사.."로 시작하는 아무의미도 없는 외우기에 급급한 한글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 세종이 언문인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창제원리에 맞추어 아설순후치음과 확장성에 맞춘 교육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 한다.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toyvillage.net BlogIcon 라이너스™ 2011.11.03 09: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혀연관이 없군요^^
    재미있게 잘보고갑니다.ㅎㅎ

  2. Favicon of http://www.medicalcodingandbillingschools.net/ BlogIcon medical billing and coding schools 2011.11.03 1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워린버핏세는 이미 조선 세종 시대에 성리학 공직자(위정자)들에게 공론화 되었고, 실현되었다.

  3. Favicon of https://system123.tistory.com BlogIcon 예또보 2011.11.03 18: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너무 잘배우고 갑니다.
    즐거운 오후 시간 되세요 ^^

  4. 마일즈 2011.11.04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저를 기억하시겠는지요. 예전에 마일드라고 합니다. 노하우 시절에 네티즌인데요.
    일단 반갑습니다. 정말 좋은 글 많이 쓰셨네요 존경스럽고요.
    티스토리 초대장 한 장 주셨으면 합니다.

  5. 객입니다 2011.11.05 0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삼문 등이 요동으로 파견되어 운서를 갖고 온 것을 증거로 이들이 훈민정음 창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글에서 주장하신 것처럼, 훈민정음 창제에는 이러저러한 언어학적 지식이 동원되었습니다. 소리를 어떻게 분절할 것인지, 소리가 만들어지는 장소는 어디이며, 그 소리의 성질은 무엇인지 등등 음성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최첨단의 언어학이 필요합니다. 당시 동아시아 문명에서 그 정도 언어학 지식을 보유하고 있던 것은 명나라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언어학적 지식의 결정체가 <운서>입니다. 글쓴이께서는 훈민정음의 문자 체계에 비중을 두고 이 문제에 접근하시는 듯한데, 그 배경에 있는 언어학적 지식의 수입과 적용에 대해서는 돌아보시지 않으신듯 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당시 요동에 명나라 제일의 음성학자(?)가 귀양왔기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세종이 성삼문 등을 여러 차례 파견하여 필요한 지식을 직접 묻고 배워오게 한 것입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또 성삼문 등에게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 발간되는 해례나 작성하게 하였다라고 하셨는데, 이 역시 이들이 훈민정음 창제에 깊히 관여하였고 새로운 문자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새 문자에 대한 해설서를 써야 하는데, 아무리 배우기 쉽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학자에게 일을 맡기겠습니까? 해례 작성에 참가한 이들은 그야말로 훈민정음 창제를 최측근에서 보좌한 이들이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6. Favicon of http://www.webstatsdomain.com BlogIcon website analyzer 2011.11.10 1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워린버핏세는 이미 조선 세종 시대에 성리학 공직자(위정자)들에게 공론화 되었고, 실현되었다.

  7. Favicon of http://www.geilekontakte.ch/waadt.php BlogIcon Parkplatzsex in CH 2011.11.14 1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재 무엇이 훌륭한 웹사이트입니다.

  8.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http://www.toeshoesvibram.com/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kso-c-1.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flow-c-2.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jaya-c-3.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bikila-c-4.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speed-c-5.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sprint-c-6.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classic-c-7.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bikila-ls-c-8.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kso-trek-c-9.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treksport-c-10.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komodosport-c-11.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komodosport-ls-c-12.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men-five-fingers-c-14.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women-five-fingers-c-13.html

  9.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료를 읽어본 바로는 조선처럼 하지 않았습니다. 태왕이란 칭호는 추모성왕 때부터?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이전버튼 1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 시사 사회 문화 스포츠 평론
갓쉰동
09-21 04:14
Yesterday118
Today10
Total12,303,283

최근에 달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