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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가 죽고 경혜공주는 복중에 아기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경혜공주는 공노비가 된다. 그런데 이는 역사와 무관하다.


경혜공주는 공노비가 된적도 없다. 그런데 왜 드라마 <공주의 남자>는 경혜공주가 관노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을까?


이는 이긍익의 열려실기술이나 수 많은 문헌에서 경혜공주가 관노비가 되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조는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자신의 저서에서 문헌고증으로 밝히고 있다.



공주의 남자에서 경혜공주가 처음 정종에서 마음을 열고 몸을 연것은 사육신 단종복위 사건이 일어나기 전 날밤으로 그리고 있다.
 
더군다나 정종은 죽기전에 자식의 이름을 지어주고 죽는 다는 설정이다.

그렇다면 정종이 죽을 때 경혜공주는 복중에 아기를 임신하고 있었을까? 이도 사실이 아니다. 

 

 


1455년 6월 11일(윤) 경혜공주는 금성대군과 정종이 연루되어 유배를 떠나고, 단종이 수양대군(세조)에게 양위를 할 때 이미 정미수를 임신하고 있었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경혜공주는 단종이 폐위되고, 남편인 정종이 유배를 떠나게 되자, 수양대군을 찾아가 “전하”를 수없이 되 풀이 말한다.

전하가 원하는 대로 님이 짱 되었으니 나의 남편만은 유배를 보내주지 말라고 하면서 말이다. 이 장면에서 세조는 비열한 웃음을 한다. 이제 니가 나를 임금으로 인정을 하는 구나 하고 말이다.

 



좀 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려 했다면 경혜공주가 약간 배가 부르게 했다면 그 장면은 명장면으로 남았을 것이다. 물론, 배가 부른다고 티는 나지 않는다. 왜냐 하면 한복의 특성이 배를 충분히 가릴만 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경혜공주가 정종이 죽기 전에 아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까?


정종은 세조 7년 1461년 10월 20일에 죽는다. 경혜공주는 1473년 성종 4년 12월 30일  죽는다.


1474년 1월 1일 성종 5년 파란만장한 삶을 산 경혜공주 졸
 

호조(戶曹)에 전지(傳旨)하여 경혜 공주(敬惠公主)에게 부의(賻儀)로 쌀·콩 아울러 70석(碩), 정포(正布) 50필, 종이 1백권, 석회(石灰) 60석, 촉랍(燭蠟) 30근을 내려 주게 하였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처음에 정종(鄭悰)이 주살(誅殺)되니, 공주(公主)는 머리를 깎고 여승(女僧)이 되었는데, 매우 가난하였으므로, 세조(世祖)가 불쌍히 여겨 노비[藏獲]를 돌려주고, 내수사(內需司)로 하여금 집을 지어서 주게 하였다. 아들 정미수(鄭眉壽)는 나이 16세로 공주가 병이 위독해지면 약이(藥餌)를 반드시 먼저 맛보았고, 옷은 띠를 풀지 않았으며, 똥을 맛보기까지 하면서 병을 보살폈다.” 하였다. - 성종 5년 1474년 1월 1일



1473년 경혜공주 28살로 새해가 되기전에 죽는다. 죽기 전에 병이 위독했다. 아들 정미수는 16살로 공주가 병이 위독해지면 똥을 맛보기 까지 하면서 간호를 하였다. 정조는 1461년 정종이 죽을때 여닐곱이라고 했다.


그러니 정미수는 세조 2년 1455년생 일 수밖에 없다. 정미수가 12월생이라고 해도 단종이 폐위되고 아버지 정종이 유배 되는 1455년 6월(윤)이면 경혜공주는 임신 4개월이 된다. 이때 경혜공주는 최소 4~6개월 임산부가 되었음 직하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정종이 유배를 떠나려고 할때 경혜공주는 병이 있다고 상왕 단종에게 알린다. 이에 세조(수양대군)과 단종은 경혜공주가 병을 핑계되는 건 정종의 유배를 늦추고자하는 계략이라고 생각을 한다.
 

의금부(義禁府)에 전지(傳旨)하기를,

“이어(李)는 아산(牙山)으로, 이전(李瑔)은 안성(安城)으로, 정종(鄭悰)은 양근(楊根)으로 이배(移配)하도록 하라.”


세조 1년 1455년 6월 17일(윤) 강원도 양근 유배


어제 들으니 공주가 편치 않다고 한다. 내 몹시 놀라고 걱정되어 시녀(侍女)로 하여금 문병하게 하고, 또 의원(醫員)과 약물을 보내었다. 이제 상왕(上王)께서 사람을 보내어 이르시기를, ‘영양 위(寧陽尉)의 공주가 그 병을 내게 고해 왔는데, 그의 의중이 아마도 정종을 돌아오게 하려는 것 같다.’고 하였다. 내가 명을 듣고 황공하여 드디어 의금부(義禁府)에 전지하여 정종을 놓아 보내게 하라고 하였다.”

하고, 이내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에게 전(傳)을 주어 올려 보내라고 유시(諭示)하였다

- 세조 1년 1455년 6월 18일(윤) 



경혜공주가 처음 정종이 1455년 6월 11일 (윤) 유배계획이 있다가 경혜공주가 아프다는 핑계가 아닌 정종의 유배소식과 단종이 수양대군(세조)에게 양위하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이미 임신한 상태에 있던 경혜공주가 쓰러졌던 것이 아닐까 한다. 요즘은 임신진단은 2주미만도 체크가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배가 부르고 입덧이라도 해야 알 수 가 있었다.


임신한 상태에서 작은 충격에도 유산될 확률이 높다. 1455년 6월 당시 경혜공주가 아프다고 한 건 꾀병이 아니었다.


결국 정종은 금성대군과 연루되어 1455년 6월 11일(윤) 영월로 유배계획이 되었다가 단종이 하야하면서 보류되고, 강원도 양근 이배 계획도 경혜공주가 아프다는 이유로 보류된다. 결국에는 8월 12일 수원으로 갔다가, 곧바로 1455년 8월 19일 정종 자신의 목장이 있는 통진으로 간다. 1456년 6월 26일 광주로 이배되는 것이다.


정종이 유배를 떠나지 않게 된 이유는 복중 정미수가 아버지 정종과 어머니 경혜공주를 위한 효도가 아니였을까? 정종은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에 효도를 하고, 경혜공주가 죽기전에는 어머니 경혜공주의 아픈 똥맛을 볼 정도로 효자였던 듯 하다.


그리고 정미수는 1455년 8월 20일 이후 통진 목장에서 낳았을 것이 자명하다.


정미수가 태어난 때는 정종이 광주로 이배된 때는 1456년 6월 1일 사육신의 반란사건 발각된 후, 1456년 6월 27일 사육신과 관련이 없었던 정종과 경혜공주는 통진 자기농장에서  전라도 광주로 이배된다.


정종이 죽은 때는 1461년 세조 7년 10월 20일이고, 경혜공주가 광주에서 돌아온 때는 정종이 죽은 3일 후인 1461년 세조 7년 10월 23일 이였다. 정조가 순천노비설을 배척한 이유가 명확해지는 것이다.
 



1456년 6월 27일 통진에서 광주로 이배될 때 정미수는 첫돌이 바로 지난 2살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공주의 남자에서 경혜공주와 세령공주가 만났을 때 경혜공주는 어린 정미수를 앉고 있거나 정미수가 똘망한 눈망울을 굴리고 세령과 김승유를 바라보았다면 좀더 극적이지 않았을까?



1461년 정종이 죽을 때 정종의 아들 정미수는 7살이었다.
더군다나 정종이 죽을때 경혜공주는 아직 광주에 있었다. 경혜공주가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온때는 정종이 죽고 3일 후였다. 남편의 임종도 보지 못한 경혜공주와 아들 정미수다.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과 경혜공주의 달달한 임신사실과 서로 기뻐하는 장면이 나오고 유복자로 남긴 자식을 위해서 이름을 지어주는 장면은 왠지 뜸끔 없고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대목이다.
 



어쨌든, 정미수는 태어나기 전부터 효자였고, 어머니가 죽기 전에도 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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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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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크리스폴 2011.09.30 1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미수가 왜 1455년생이죠? 1459년생 아닌가요? 1474년에 16세라고 나오는데..그리고 경혜공주는 1473년 12월 30일에 죽었습니다..^^

  2. Favicon of http://www.smpark.kr BlogIcon 풀칠아비 2011.09.30 1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 사실을 같이 비교해서 보니, 드라마도 역사도 새롭게 보여지네요.
    잘 보고 갑니다.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3. 의문 2011.09.30 2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미수 나이 문제에 힘을 너무 빼시는 듯....

    다음은 님이 좋아하시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
    성종 29권, 4년(1473 계사 / 명 성화(成化) 9년) 4월 27일(정해)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서거정(徐居正) 등이 상소하기를,
    - 중략 -
    정종(鄭悰)은 세조조(世祖朝)에 당자가 난역(亂逆)의 죄를 입었는데,
    정미수(鄭眉壽)는 그 아들입니다.
    - 중략 -
    이제 나이가 15세가 찼으니 율(律)을 상고하여 죄를 정하여서 마땅히
    정속(定屬)할 것이나, 대왕 대비 전하(大王大妃殿下)께서 천성(天性)이
    인자(仁慈)하시고
    - 중략 -
    --------------------------------------------------------------

    위 기록대로라면,
    1455년이 정미수가 태어날 가능성은 없어집니다만...


    괜스레 힘빼지 마시고,
    백과사전에 나오는대로 1456년으로 정정하세요.

    • 크리스폴 2011.09.30 1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1459년생이 맞겠죠..1473년에 15세니..

    • 의문 2011.09.30 2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크리스폴 /

      조선왕조실록대로라면 님이 맞습니다.

      아님 1458년이거나...
      (15세가 찼다)는 말을 만 나이로 해석하면 말입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 뿐만아니라,
      각종 사료들을 종합해서 나온게 1456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조선왕조실록이 정사라 해도...
      그것만 믿을 수는 없잖습니까.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11.10.01 13: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은 정말나이에 힘을 빼는 듯 하군요.. 그리고 조선왕조 실록 좋아하지 않는데요.. 댓글을 쓸때 주의 하시길.. 또한, 토론을 하고자하면 예의는 좀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이글은 핵심은 1455년 윤 6월 11~17일에 경혜공주가 임신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글입니다. 그러니 1455년생이 될수도 있고 1456년생이 될수도 있어요.. 이미 충분히 설명했다고 보는뎅.. 가설을 세울때 1455년 생이라고 해도 임신중이고 1456년생이라고 해도 임신가능성이 있어요..

      태어날 가능성이 왜 없어요.. 임신은 10개월을 기준으로 하지만, 실제는 40주 약 280일입니당. 가임기간 까지 해서 편하게 10개월로 계산을 하지만..

      그리고 임신중 가장 주의 해야할 기간이 임신초기 임은 다 아는 사실이구요..

      경혜공주가 아프다는 핑계는 자신이 알고 있던 없던 임신과 관련이 있다. 남편 유배되, 동생 왕에서 쫓겨나 경혜공주의 몸은 정상이 될수가 없지요..

      이미 서거정의 기록은 확인 한 상태입니다. 설마 그것도 모르고 글을 썼을 만큼 만만하게 글을 쓰지 않아요..

      정조도 자기 문집에 여닐곱이라고 말을 하고 있지요..

      백과사전에 나오는 대로 1456년생으로 정정하라고 하니 백과사전이 무슨 만병통치약으로 아시는군요. 물론, 백과사전에 나올정도면 충분히 검증된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실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백과사전을 전적으로 신뢰를 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걸 몰라서 글을 쓸만큼 한가한 사람도 아니고..

      저는 년도에 진착하고 있지 않거든요. 님이 진을 빼고 있는거지요. .

      님은 초기 댓글에 문종 상중이기 때문에 임신가능성은 없다고 하셨지요.. 지금은 지웠지만, 상중이기 때문에 1455년 절대 불가였다가 님이 왜 지웠는지는 예상이 되요.. 문제는 님은 그것을 근거로 경혜공주와 저를 비난하셨지요..

      저는 님의 댓글을 보고 웃고 말았아요.. 왜냐 당연히 님이 주장하는 상중이면 가능할것 같은데 불가하다고 했으니 얼만 웃었겠습니까?

      물론, 정미수가 몇년생인가 정말 알고 싶기도 하고 기회가 된다면 1455년생인지 1456년생인 검증하고 싶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글은 1455년 6월 경혜가 임신했을 것이다. 경혜는 정종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것이 아니다. 자신이 임신했는지 아닌지는 인지못했을수도 있지만, 말이지요..

      그런데 어느 근거로 상중 3년상이 만3년이 된거지요.. 사실 만 3년이 된다고 해도 경혜공주가 임신가능하지만 말입니다.

      문종은 1452년 5월 14일에 죽었으니 만 3년을 하더라도 1455년 5월이면 상이 끝나고, 경혜는 출가외인이니 복이 감했다는 것은 상식이고..

      1455년은 윤달이 있어서 (윤)6월 17일이면 2달이나 지났어요.

      님처럼 경혜가 잘못알고 만3년상을 했다고 해도 2~3개월의 여유가 있답니다.

      님은 무슨 근거로..1456년설을 그리 믿고 저에게 강요를 하지요.. 저도 확신을 못하고 있는뎅..

      님에게 처음 배워요.. 6월경에 임신상태이면 무조건 다음해에 태어나야 한다는 말은..

      님같은 분이 조선시대에 살았다면 많은 사람 죽었겠어요. 상중에 임신.출산을 하면 죽거나 바보 병신취급을 받았을텐..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저는 요즘 댓글을 달지 않습니다. 시간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래도 최소한 대화가 되는 사람이라면 시간을 내서 성의있게 댓글을 달아 주고싶었거든요.. 님은 최소한 근거를 제시해서 이사람은 그나마 대화가 될것같구나 했는데..

      하지만, 예상을 벗어났어요.. 님은 토론에 대한 기본이 되어 있지 않더란 말이지요..

      그래서 이글을 마지막으로 댓글을 답니다. 또다시 괜한 시간낭비를 했구나 정도로 배우고 말았지요

      기본부터 배우고 오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글을 읽을때 전체를 보고, 작은것에 집착하지 마세요..

      마지막으로 저는 나이문제에 힘뺀적 없어든요.. 님이 나이에 진착했지...

      그리고 각종 사료들을 종합해서 나온게 1456년이다. 무슨 확신인지 모르겠어요.. 백과사전?

      어쨌든 님때문에 그동안 즐거웠습니당.. 저는 무슨 1456년이 무덤의 묘지명을 근거로 하는줄 알았어용.. 그렇다고 해도 임신설을 부인할려면 4월말에서 5월 이후생이여야 할텐뎅. 물론, 7삭둥이 한명회도 있고 김유신처럼 20개월만에 태어났다는 말도 있으니...조산도 있을수있고, 만산도 있을수 있겠지요.

      무슨 무대포인지 모르겠어요.. 나이에 진착하지 않았는데 진착했다고 하고, 조선실록에 진착하지 않았는데.. 실록만 믿냐고 하고,, 1455년 윤 6월에 임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 1455년은 아니다. 1455년생이라고 하면서 비난을 하니 말입니다.

      최소한 님은 역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그래서 댓글 대화를 하려고 했지만..

      좀더 열린 사고를 하셈.. 그리고 백과사전과 기존학설을 너무 믿지 마시구요.. 본인스스로 연구하는 자세도 가져보셈..

      예를 하나 드리지요.. 솔거는 진흥왕 시절에 활동하는 사람이다. 백과사전에 나온 이야기 입니다. 솔거는 진흥왕 시절에 활동한 사람이 맞을까요?

      님은 조선왕조 실록은 믿지 못하겠다.. 다른 서책과 비교해봐야 한다고 한분입니당. 정확히는 조선왕조 실록 믿지 못하겠다가. 저변에 깔려있는 생각이지만.. 님이 좋아하는 조선왕조실록입니다.. 할때 그리고 수없이 부정하는 글로보았을때 충분히 알수 있는 대목이지요..

      자신이 보고 싶은 건만 볼때 믿고, 그렇지 않을땐 믿지 않겠다는 편협하고 좁은 사고는 금물이지요. 이번 댓글도 마찬가지 였지만, 말이지요.. 역사공부와 연구는 냉철한 머리를 가지고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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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하나 드리지요.. 솔거는 진흥왕 시절에 활동하는 사람이다. 백과사전에 나온 이야기 입니다. 솔거는 진흥왕 시절에 활동한 사람이 맞을까요?

    님은 조선왕조 실록은 믿지 못하겠다.. 다른 서책과 비교해봐야 한다고 한분입니당. 정확히는 조선왕조 실록 믿지 못하겠다가. 저변에 깔려있는 생각이지만.. 님이 좋아하는 조선왕조실록입니다.. 할때 그리고 수없이 부정하는 글로보았을때 충분히 알수 있는 대목이지요..

    자신이 보고 싶은 건만 볼때 믿고, 그렇지 않을땐 믿지 않겠다는 편협하고 좁은 사고는 금물이지요. 이번 댓글도 마찬가지 였지만, 말이지요.. 역사공부와 연구는 냉철한 머리를 가지고 하는 겁니


<공주의 남자>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세령과 정종이 있다.

실제 <공주의 남자>의 주인공은 경혜공주와 정종일 수 밖에 없다.

정종은 문종의 사위가 되어 호위호식하였고, 단종이 왕이 되자, 어린 단종을 대신해서 수 없이 많은 재산을 불렸다. 단종은 1453년 중반 부터 계유정란이 일어나는 1453년 10월 10일 까지도 정종과 경혜공주의 집에서 이어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양대군이 안평대군과 김종서, 황보인 등을 몰아내자. 정란공신이 되었지만, 점차 권력을 잃어가야 했다. 이에 정종은 금성대군과 혜빈과 함께 수양대군을 몰아낼 궁리를 하였지만, 오히려 수양대군에게 역습을 받게 된다.

이 사건으로 단종은 1455년 6월 11일(윤) 수양에게 양위를 하고 상왕이 된다. 이때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왕이였을때 권력이 있는 것이지, 왕에서 물러나 상왕이 된 다음은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진다. 요즘도 대통령이 끝발이 있지, 전직대통령은 감옥이나 안가면 다행인 시절이다.

하물여 무소불위의 권력의 정점과 명분이 있는 왕이 상왕이 된다면 말이 왕위에 왕이지 무슨 권력이 있겠는가? 자신의 안위가 언제 불안해질지 모르는 상황인데 말이다.

하지만,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들은 목숨을 걸고 막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들은 좌익공신의 작위까지 받는다. 물론, 후에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들이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서 그랫다는 변명을 사실처럼 전하지만 말이다. 배 떠난 후에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배는 오지 않는다.

어쨌든, 정종과 경혜공주는 끈떨어진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정종은 유배를 떠나고 유배를 떠난 후에도 반정을 꿈꾸었다. 다만 이때 사육신은 정종곁에 없었다. 오히려 사육신이 단종복위 실패를 하자, 정종과 금성대군 등은 서울 인근에서 더 멀리 찢어진다. 

사육신이 금성대군이나 정종과 함께 반정을 하지 않는 이유는 사육신과 금성대군과 정종과는 정치적 견해가 달랐을 가능성이 높다.

<공주의 남자>에서 사육신과 정종이 함께 모의를 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실제 정종은 한번의 반정실패로 자유로웠던 통진 자신의 목장 유배지에서 감시가 더심해지는 정도에 그치는 형벌을 받았다. 사육신 사건이 터질때 정종과 경혜공주는 통진 유배지에 있었다.

사육신 반정복위 사건이 있었던 때는 실패하자 정종은 광주로 이배되고 남은 재산도 없어진다. 이때가 1456년 6월 20일 이후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가 세령과 같이 광주에 도착하자, 경혜공주는 잘 왔다며 반기면서 세령에게 김승유가 자신을 받아 들였냐고 물어보고, 세령은 고개를 끄덕인다. 4명이 술자리를 하고 있는데 경혜공주는 부마 정종이 아버지가 될것이라고 말을 한다. 공주의 남자에서 1456년 6월 1일 단종복위 사육신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밤 처음으로 사랑을 확인했을때 잉태된 생명임을 공주의 남자는 보여주고 있다.


<공주의 남자>뿐만 아니라 많은 옛기록에 정종과 경혜공주의 아들 정미수는 정종이 죽은 후에 낳은 유복자로 알려져 있고, 정종이 죽고 나서 경혜공주가 순흥부사 여자신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16세기 중엽 이전부터 윤근수의 <월정만록>, 18중후반~19세기초반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도 경혜공주가 순흥관노로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정조는 이에 대해서 완벽한 사료비판을 하면서 경혜공주는 관노인적이 없다는 사실을 밝힌다. 이에 관해서는 두개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또하나, 경혜공주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데 경혜공주가 유배지에서 정미수를 낳았고, 정미수는 정종이 죽은 이후 태어난 유복자라는 유언비어가 사실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 정조는 또다시 사료를 통해서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고 자신의 문집인 <홍재전서>에 남겼다.

<해평가전(海平家傳)>에는 공주가 유배지에서 아들을 낳은 것을 정희왕후(貞熹王后)가 대내로 데려다 친히 길렀는데, 예닐곱 살이 되어 궁정에서 장난을 치며 노는 것을 보고 세조가 누구의 아이냐고 묻자 정희왕후가 곧장 전각에서 내려가 사실대로 대답하였다고 하였다.



지금 실록을 상고한 바, 종이 을해년(1455, 세조1)에 유배지로 갔다가 곧바로 풀려나서 병자년(1456년)에 비로소 광주에 안치되었고, 처첩과 자녀들이 같이 따라가 살기를 자원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공주가 유배지로 따라간 시기는 당연히 병자년(1456,세조2년)일 것이고 병자년에서 신사년(세조7년, 1461)까지는 겨우 5년 동안인데, 설령 병자년에 곧바로 아들을 두었다 하더라도 예닐곱 살이 되도록 자랐다면 공주가 소환된 것은 이미 오래되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때까지 대내에 머물러 있지도 못하거니와, 또 과연 유배지에서 낳은 아이를 데려올 리도 없으니, 이 말은 매우 믿을 수 없다.


예종이 일찍이 “종의 아들과 그의 아내를 들여 뵙도록 하니, 세조께서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나머지 눈물을 훔치며, 나로 하여금 전교를 써 내려서 연좌를 윤허하지 말도록 하셨다. 내가 지금 어찌 감히 법으로 다스릴 수 있겠는가.” 한 전교가 국사에 실려 있는데, 하신 말씀이 정녕하고, 영양위의 유사(遺事)에 미수(眉壽)가 공주를 따라 대내로 들어갔다고 한 기 실록과 합치되므로 지금 영양위의 유사를 따라 쓴다.



정조가 유학자에 뛰어난 역사학자라는 것이 다시금 증명이 되고, 똑똑한 정조가 신하들을 왜 비난을 하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첫 임신한 경혜공주가 출산한 영아는 딸일까? 아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들이다.


그리고 경혜공주는 광주로 내려가기 전에 이미 출산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이름은 정미수다. 1461년 정종이 죽고, 정미수가 서울로 경혜공주와 돌아올 때 7살이었다.


1474년 1월 1일 성종 5년 파란만장한 삶은 산 경혜공주 졸

호조(戶曹)에 전지(傳旨)하여 경혜 공주(敬惠公主)에게 부의(賻儀)로 쌀·콩 아울러 70석(碩), 정포(正布) 50필, 종이 1백권, 석회(石灰) 60석, 촉랍(燭蠟) 30근을 내려 주게 하였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처음에 정종(鄭悰)이 주살(誅殺)되니, 공주(公主)는 머리를 깎고 여승(女僧)이 되었는데, 매우 가난하였으므로, 세조(世祖)가 불쌍히 여겨 노비[藏獲]를 돌려주고, 내수사(內需司)로 하여금 집을 지어서 주게 하였다. 아들 정미수(鄭眉壽)는 나이 16세로 공주가 병이 위독해지면 약이(藥餌)를 반드시 먼저 맛보았고, 옷은 띠를 풀지 않았으며, 똥을 맛보기까지 하면서 병을 보살폈다.” 하였다. - 성종 5년 1474년 1월 1일


정미수는 경혜공주가 아프자 경혜공주의 똥까지 맛을 보며 치료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1474년 1월 1일 새해 경혜공주는 이승을 등졌다. 정미수는 어머니의 똥까지 맛 볼정도로 효자였던듯 하다.

위 사실로 정종과 경혜공주의 아들 정미수는 1455년생 임을 알 수 있다.

정종이 광주로 이배된 때는 1456년 6월 1일 사육신의 반란사건 발각된 후, 1456년 6월 27일 사육신과 관련이 없었던 정종과 경혜공주는 통진 자기농장에서  전라도 광주로 이배된다.


정종은 금성대군과 연루되어 1455년 6월 11일(윤) 영월로 유배계획이 되었다가 단종이 하야하면서 보류되고, 양근이배 계획도 경혜공주가 아프다는 이유로 보류된다. 결국에는 8월 12일 수원으로 갔다가, 곧바로 1455년 8월 19일 정종의 목장이 있는 통진으로 간다. 1456년 6월 26일 광주로 이배되는 것이다.


정종이 죽은 때는 1461년 세조 7년 10월 20일이고, 경혜공주가 광주에서 돌아온 때는 정종이 죽은 3일 후인 1461년 세조 7년 10월 23일 이였다. 정조가 순천노비설을 배척한 이유가 명확해지는 것이다. 어쨌든 정미수는 1455년 생이다.


통진에서 광주로 이배될 때 정미수는 이미 2살이었다.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과 경혜공주의 달달한 임신사실과 서로 기뻐하는 장면이 왠지 뜸끔없고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대목이다.


경혜공주가 처음 정종이 1455년 6월 11일 (윤) 유배계획이 있다가 경혜공주가 아프다는 핑계가 아닌 정종의 유배소식과 단종이 수양대군(세조)에게 양위하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이미 임신한 상태에 있던 경혜공주가 쓰러졌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요즘은 임신진단은 2주미만도 체크가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배가 부르고 입덧이라도 해야 알 수 가 있었다.


임신한 상태에서 작은 충격에도 유산될 확률이 높다. 1455년 6월 당시 경혜공주가 아프다고 한 건 꾀병이 아니었다. 그리고 정미수는 1455년 8월 20일 이후 통진 목장에서 낳았을 것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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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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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떠도링 2011.09.29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육신이 배신한건 어떻게아신거죠.....? 그럼 제가 읽은책들은 하나같이 사육신이 안죽었는데 다 죽어가며 살았다고하는건지.. 알려주세요

  2. 하하 2011.09.29 0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1년 10월 21,22 악스코리아
    최고의 무대! 최고의 가수들이 함께하는 ‘나는 가수다’ 출연확정

    국내최고 라이브가수 박완규 ..... 그리고 부활 패밀리 총출동! 그 동안 방송을 통해 볼수 없었던 그와 그들의 최고의 무대,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활보컬로 데뷔해 lonely night,천년의 사랑, 사랑해서 사랑해서 ,비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을 곡을 히트시켰고 현재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드라마 "공주의 남자" OST "하루애"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9월 발매된 앨범 "사랑하기 전에는" 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로 각종 순위 차트에서도 상위권에 랭크 되고 있다. 박완규는 수많은 라이브 무대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많은 팬들에게 찬사를 받으며 매공연 매진 사례를 기록해왔다. 또한‘남자의 자격’청춘 합창단을 통해 그동안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활발한 활동을 시작해 다시금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고 최고의 가수들이 서는 최고의 무대인 MBC "나는 가수다" 출연이 확정 되었다. 최고의 무대로 부활하는 이번 콘서트에서는 박완규 외에 부활 패밀리의 총출동으로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국내 no1 그룹 부활의 보컬 정동하 그리고 역대보컬 이성욱, 정단 위대한 탄생의 최고의 히트메이커 백청강, 이태권, 손진영 등이 함께 참여해 박완규와 함께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그 동안 방송이나 공연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환상적인 무대 출연진들과 함께 꾸미는 최고의 하모니!
    2011년 10월21,22일 악스코리아에서 팬들과 함께 하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매력적이고 폭팔적인 가창력의 가수, 최고의 퍼포먼스,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가수, 박완규! 팬들과의 셀레이는 만남은 기분좋은 상상을 하게 될 것이다.

  3. 이개또라이 2011.09.29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그시대사관이었냐? 당장옆에있는사람이무슨생각하는지나아냐? 니잘났다고실록들쳐가면서 그시대사람들니좃대로 평가하지말고 할짓없으면 걍딸이나잡아 존만한새끼야

  4. 만년지기우근 2011.09.30 0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랫만입니다.
    잘계시지요?

  5. Favicon of http://www.autoankauf-fahrzeug.de BlogIcon Laura 2011.09.30 06: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ehr schön :)

  6. 읭?ㅋ 2011.09.30 1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년도가 틀렸네요ㅋㅋㅋ 정미수가 1555년 생이랬다가 1455년 생이랬다가ㅋㅋㅋ 100년 차이
    경혜공주가 죽은 해도 1574년이었다 1474년이었다 왔다갔다 하네요 글이ㅋㅋㅋ
    올리기 전에 한 번 꼼꼼히 읽어보고 올리시지

  7. Favicon of http://www.sexfenster.com BlogIcon Sex & Pornos 2011.11.14 1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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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llkjihygjhfg


 <공주의 남자>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세령공주는 세조(수양대군)에 반기를 들다가 결국에는 노비가 되어 신면에게 하사된다.


신면은 노비가 된 세령이지만, 알뜰히 보살핀다.


하지만, 신면의 영원한 방해꾼, 김승유가 등장해서 세령을 빼돌린다.


그런데 김승유는  유배를 떠난 정종의 밀서를 보고, 광주로 떠나려 하였지만, 세령이 신면의 집에 노비로 갔다는 말을 듣고, 계획을 변경하고 신숙주의 집에 처들어가 세령을 구하고 또다시 애마부인을 찍는다. 작가가 어릴 적 애마부인을 무척 사랑했던 모양이다. 시도 때도 없이 세령과 김승유를 말에 태우니 말이다.

죽음을 앞에 둔 이들 커플은 만나기만 하면 키스신을 남발한다. 사랑을 확인하고 이들 세령과 김승유의 사랑이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다는 암시와도 같다.

 


문제는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민폐를 끼치는 역할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단종복위를 꿈꾸던 김승유가 광주로 가서 정종과 밀약을 하고 거병을 하는 게 합당할까? 아니면 신면의 집에 들어가서 세령을 구하는 게 급할까? 철통같이 방어를 하고 있는 신면의 집에서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물론, <공주의 남자>는 시대배경이 계유정란 이후를 그린 시대 멜로물이다. 명분도 명예도 없다. 무조건 “사랑밖엔 난몰라“하면 되는 극히 유치한 드라마임에는 틀림이 없다. 멜로물은 유치찬란할수록 재미가 있는 건 사실이다.


유치찬란한 멜로를 보고 승유와 세령의 사랑을 지켜주세요. 정종과 경혜공주의 사랑도 지켜주는 해피엔딩으로 만들어주세요. 자식을 노비로 보내는 폐륜아 세조 나쁜넘, 신숙주, 신면, 사육신 안타깝다,라는 멜로가 역사인 듯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넘쳐나서 우려스럽지만 말이다.

이에 대해서 비판하면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라는 유딩들도 하지 않는 말을 너무나 뻔뻔하게 하는 인간들이 가끔씩 있는 게 아니고 넘처난다.

그냥 시대배경만 빌려온 <추노>나 <최종병기 활>처럼 멜로만 하면 안될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왜 자신도 없는 역사에 똥물까지 퍼부어야 하는지 도대체 이해할수가 없다. 재미를 위해서 역사는 빌려오지만  망가져도 된다는 발상은 끔찍하기 까지 하다. 박시후, 문채원, 이민우, 홍수현, 송종호, 이호정, 김영철, 이순재라고 극중에서 배우 이름으로 부른다면 그나마 나을지도 모른다.


시대를 알고 역사를 알고 보면 <공주의 남자>는  한편의 눈물없이 볼수 없는 원수를 사랑한 김승유가 아닌 원수와 한편이 되어 아버지 김종서를 모욕한 황당극일 뿐이다.

김승유에게 정종과 사육신이 얼마나 철천지 원수인지 알고 싶다면 다음 글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최소한 자녀들에게는 드라마와 역사는 어떻게 다른지 설명정도는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김종서를 죽이는데 앞장선 사육신과 김승유가 한편이 된다는 상상만으로도 작가는 오르가즘을 느끼겠지만 말이다. 최소한 비스무리라도  해야 극에 몰입을 할수 있는 것이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시청자를 속이는 재미가 솔솔한 건 사실이다.

속이더라도 하얀 거짓말로 속여야 재미가 있는데 새빨간 거짓말로 속이면 속는 사람도 나중에 기분이 좋을리는 없다. 드라마를 보고 사실인것 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민망하기까지 하다. 설마 드라마 작가가 거짓말을 했겠느냐고 반문하면 당황스럽다.
 


어쨌든, 빙옥관의 조석주가 김승유와 함께 세령을 구하고 빙옥관의 주인 초희의 안부가 걱정이 되어 빙옥관에 돌아왔을 때, 사랑하는 여인 초희의 목에 칼이 들어올 때 순순히 잡히고, 빙옥관의 주인이 조치수를 살리기 위해서 김승유가 광주로 갔다는 말을 너무나 쉽게 한 이유도 대의, 명분, 정리가 무슨 소용 살고 봐야지 사랑이 최고야.<사랑>으로 다 해결되는 문제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1456년 6월 1일 단종복위에 실패한 사육신은 죽고, 같이 참여한 정종은 세조(수양대군)의 바다와 같은 은혜를 입고 광주로 유배를 떠났다. 정종과 경혜공주는 단종복위 전날 5년 만에 처음 사랑을 나누고 정미수를 임신한다. 정종과 경혜공주는 아들일까 딸일까? 경혜공주만 닮은 딸이었으면 좋겠다며 행복한 순간을 보낸다.


여기서 정종을 닮은 아들을 낳게 해달라는 대사를 치면 그날로 공주의 남자 제작진은 남녀차별로 난타를 당할 것이 자명하다. 작가가 <공주의 남자> 주시청자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처음부터 공주의 남자는 역사를 망쳐서라도 절대다수는 아니더라도 여성들을 대리만족 시키기 위해서 기획된 드라마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해주고 넘어갈 만하다.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와 세령이 말이 아닌, 오픈 스포츠카나 KTX나 국내항공편을 이용해서 내려간다는 설정을 해도 상관이 없다. 어짜피 공주의 남자는 시대를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드라마에서 아직까지 경혜공주는 노비가 아닌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경혜공주가 노비로 떨어지는 때는 정종이 죽은 다음이다. 이긍익의 열려실기술에 정종이 죽고, 경혜공주가 공노비가 되어 순천부사 여자신에게 모욕을 당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정종(鄭悰) 


본관은 해주(海州)인데, 문종의 부마(駙馬)이다. 경혜공주(敬惠公主)에게 장가들어 영양위에 봉해졌다. 시호는 헌민공(獻愍公)이다.


○ 공이 적소에 있다가 사사된 뒤에, 공주가 순천 관비가 되었다. 부사 여자신(呂自新)은 무인인데, 장차 공주에게 관비의 사역을 시키려 하니, 공주가 곧 대청에 들어가 교의(交椅)를 놓고 앉아서 말하기를, “나는 왕의 딸이다. 죄가 있어 귀양은 왔지마는, 수령이 어찌 감히 나에게 관비의 사역을 시킨단 말이냐.” 하므로 마침내 부리지 못하였다. 여자신은 뒤에 벼슬이 형조 판서에 이르렀는데, 여유길(呂裕吉)의 방조(旁祖)이다.


- 연려실기술(이긍익) 단종고사본말 정난에 죽은 여러신하



영.정조 시대 이긍익이 열려실기술을 쓴 1777년 이전부터 문종의 경혜공주 공노비는 사실처럼 퍼져 있었던 듯하다. 열려실기술 말고도 윤근수(1537~1616)가 지은 <월정만록>에도 경혜공주가 공노비였다고 기록하고 있고, 안정복(1712~1791)의 <순암집>도 경혜공주 공노비는 사실처럼 되어 있었다. 다만, 안정복의 순암집은 순천부사가 아닌 장흥의 관노라는 사실만 다르다.
 

소릉의 어머니 최씨(崔氏)와 소릉의 아우 권자신(權自愼)이 처형되었으며, 영양위(寧陽尉) 정종(鄭悰)이 처벌당했으며, 경혜공주(敬惠公主)가 장흥(長興)의 관비(官婢)가 되었으며, 심지어는 단종(端宗)의 왕비(王妃) 송씨(宋氏)까지 관비로 되었습니다.  - 안정복 순암집



아직까지도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중에 연려실기술을 들어서 경혜공주가 노비가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정조는 경혜공주의 관노비설을 사료비판을 통해서 허구라고 증명을 한다. 더군다나 정종과 경혜공주의 아들 정미수에 대한 이야기도 사료를 들어서 허구라고 증명한다.



《홍재전서》는 1799년(정조23) 12월에 1차 정리되었고, 1801년(순조1) 12월에 2차 정리되었으며, 1814년 3월에 간행되었다. 홍재전서는 정조(이산)의 왕세자 시절부터 죽기전까지의 개인의 시와 저술 자료를 총망라한 개인문집이다.


정조 이산, 경혜공주 순천유배 사실은 없다.
 

윤근수(尹根壽)의 《월정만록(月汀漫錄)》을 상고해 보면, 종이 죽고 나서 공주가 순천(順天) 고을의 노비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세조실록》에 의거하면, 기묘년(1459, 세조5)에 광주(光州)에 안치된 정종과 그의 아내에게 의복을 내려 주었을 뿐, 그 뒤 순천으로 유배한 사실은 없다.


실록의 초본(抄本)에만 경진, 임오, 을유, 병술 4년이 빠져 있으니, 이는 아마 참고될 만한 사실이 없어서 생략한 것이겠고, 《월정만록》은 당연히 오류이다.


그러나 지금 신사년(1461, 세조7)에 소환한 것으로 적으면서 특별히 영양위(寧陽尉)의 묘지문을 증거로 삼았으니, 당시에 이미 영양위가 죽었다는 사실 역시 믿을 만하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11/09/2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 된다? 사실은 진실과 허구 왜 퍼졌을까?을 참고하기 바란다. 

정조가 유학자에 뛰어난 역사학자라는 것이 다시금 증명이 되고, 똑똑한 정조가 신하들을 왜 비난을 하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첫 임신한 경혜공주가 출산한 영아는 딸일까? 아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들 정미수다.

그런데 정미수는 드라마처럼 단종복위를 위해 거사를 하는 1456년 6월 1일 전날 저녁에 처음 경혜와 정종이 사랑을 하면서 만들어졌을까? 그리고 경혜와 정종은 광주 유배지에서 처음 알았을까?

이 또한, 이산 정조는 그럴수 없다고 다시한번 사료비판을 한다. 더불어 정미수는 정종의 유복자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글쓴이도 정조(이산)의 견해에 동조하며 더나가 유복자로 알려진 정미수가 언제태어났는지 증명하려한다.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다음글에 계속..

2011/09/29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산 정조, 정종과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는 유복자가 아님을 증명하다

2011/09/2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 된다? 사실은 진실과 허구 왜 퍼졌을까?

2011/09/2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 처 윤씨 사육신 편에서 자살했나? 사실은 방개떡 고사
2011/09/27 - [역사이야기] - 계백, 부여복신, 무왕과 의자왕 어머니 선화공주 사랑 없었다 증언하다?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제작자 계유정란 김승유 3살? 그럼 김승유와 아들 효달이 동갑? 대략난감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광개토태왕, 계백, 사극 문헌고증 파괴해야 시청률 오른다?
2011/09/24 - [스포츠] - 김연아 키드 김해진 세계 JrGP 3위와 성장통, 손연재 올림픽 진출과 언플?
2011/09/23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불쌍한 신면과 배신자 사육신 어떻게 충신 아이콘 되었나?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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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하 2011.09.29 0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1년 10월 21,22 악스코리아
    최고의 무대! 최고의 가수들이 함께하는 ‘나는 가수다’ 출연확정

    국내최고 라이브가수 박완규 ..... 그리고 부활 패밀리 총출동! 그 동안 방송을 통해 볼수 없었던 그와 그들의 최고의 무대,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활보컬로 데뷔해 lonely night,천년의 사랑, 사랑해서 사랑해서 ,비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을 곡을 히트시켰고 현재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드라마 "공주의 남자" OST "하루애"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9월 발매된 앨범 "사랑하기 전에는" 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로 각종 순위 차트에서도 상위권에 랭크 되고 있다. 박완규는 수많은 라이브 무대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많은 팬들에게 찬사를 받으며 매공연 매진 사례를 기록해왔다. 또한‘남자의 자격’청춘 합창단을 통해 그동안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활발한 활동을 시작해 다시금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고 최고의 가수들이 서는 최고의 무대인 MBC "나는 가수다" 출연이 확정 되었다. 최고의 무대로 부활하는 이번 콘서트에서는 박완규 외에 부활 패밀리의 총출동으로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국내 no1 그룹 부활의 보컬 정동하 그리고 역대보컬 이성욱, 정단 위대한 탄생의 최고의 히트메이커 백청강, 이태권, 손진영 등이 함께 참여해 박완규와 함께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그 동안 방송이나 공연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환상적인 무대 출연진들과 함께 꾸미는 최고의 하모니!
    2011년 10월21,22일 악스코리아에서 팬들과 함께 하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매력적이고 폭팔적인 가창력의 가수, 최고의 퍼포먼스,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가수, 박완규! 팬들과의 셀레이는 만남은 기분좋은 상상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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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 승유와 세령의 사랑을 지켜주세요. 정종과 경혜공주의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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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어릴 적 애마부인을 무척 사랑했던 모양이다. 시도 때도 없이 세령과 김승유를 말에 태우니 말이다

  11. Favicon of http://theworldaroundus.blogsome.com/2007/04/28/ BlogIcon stay and play wireless fence 2012.12.25 2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죽음을 앞에 둔 이들 커플은 만나기만 하면 키스신을 남발한다. 사랑을 확인하고 이들 세령과 김승유의 사랑이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다는 암시와도 같다.

우리는 드라마를 드라마로 보자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드라마를 드라마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역사는 역사고 드라마는 드라마이고, 그러니 역사를 왜곡해도 드라마니 용납하자고 한다.

그것이 정통사극을 지향하던, 환타지 사극을 지향하던 상관없다고 한다. 백번 양보해서 드라마를 드라마로 보자. 사실 글쓴이도 드라마를 드라마로 본다. 다만, 드라마나 원전인 소설
 내에서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시높시스나 극중 흐름을 저해하는 요소를 보면 왜 그럴까한다.

그럼 역사는 어떠할까? 역사는 승리자의 역사이니 당연히 승자의 역사로 왜곡되어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드라마가 왜곡한들 역사만 하겠냐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역사를 읽다보면 기본적(사건일시 당사자 나이 등) 인 것은 왜곡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서를 만들 당시 사료의 부족을 느끼는 경우와 사료를 취사선택에 채택되는가? 아닌가? 하는 경우가 많다. 아예 역사에 기록하지 않거나 하는 수를 동원하기는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 대한 상식중 잘못 알려진 사실이 있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우리가 대표적으로 잘 알고 있는 김유신과 김춘추와 문희에 관한 이야기 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니 관련 원글을 인용하지는 않겠다.


보희가 오줌발 꿈을 꾸고, 문희가 꿈을 산다. 그리고 문희는 춘추와 결혼하고, 왕비로 등극한다. 문희로서는 언니 보희의 꿈을 산 대가로 왕비를 얻었으니 요즘으로 치면 로또 대박을 이르킨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꿈을 사고파는 데 주저하거나 꿈을 산 대가로 로또나 복권을 사고, 대리 소개팅을 나가기도 한다. 한마디로 꿈에 대한 <문희증후군>이지 않을까 한다.

유신이 김춘추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공작을 한다. 그리고 처음 맞 누이인 보희를 엮어 주려고 했지만 보희는 때마침 아퍼서 춘추와 관계를 할 수 없었다. 때마침 아퍼서 관계를 할 수 없는 아픔이라면 츠자들과 결혼한 남자는 츠자가 아픈 원인을 캐치했을 것이다. (요건 다른 식으로 포스팅 할까 한다)

그래서 대타인 문희가 춘추와 관계를 하였다. 하지만 사단이 일어 났다. 춘추는 임신한 문희를 자신의 처로 받아드리려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요즘 처럼 성이 개방화된 사회에서도 여자를 임신 시켜놓고,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파렴치한 같은 행동을 김춘추는 한것이다. .당시 많은 처/첩을 거느린 신라 사회에서 문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니 당시 신라사회로 봤을땐 김춘추는 지탄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이에 공작의 달인인 김유신은 경주 한복판에 장작더미를 올려 놓고 문희를 죽이려는 시늉을 한다. 이는 김춘추에게 협박하기 위한 것이다. 남산에놀이를 하려가던 선덕여왕이 이 광경을 보고, 말리며, 김춘추에게 문희를 책임지도록 하였다.  그래서 문희의 성공시대와 김유신가의 성공시대가 열린 것이다.

대략, 간략하게 요약하면 문희의 꿈이 미치는 효과를 이야기 했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우리가 역사에 대한 상식에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살펴보자. 역사를 조금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잘못된 상식을 전파하는 첨병으로 할동하고 있다. 그러니 잘못된 상식이 고착화 되어 버린다. 그리고 잘못된 상식이 역사가 된다. 소설 삼국지를 읽고 그 것이 중국 삼국사이에 진짜 있었던 일처럼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문희 사건에서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문희, 보희, 김유신, 김춘추, 선덕여왕 그리고 사건 결과로 잉태된 문희 뱃속의 김법민(문무)이다.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선덕여왕이 문희와 김춘추를 엮어 주었다는 말이 상식이 되고 정설이 되고 사실화 되었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잘못된 상식이고 잘못된 역사지식이다.

그럼 얼마나 잘못된 상식인지 문희의 뱃속의 김법민으로 부터 추적을 시작해 보자.

문무왕(文武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법민(法敏)이고 태종무열왕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 문명왕후(文明王后)인데, 소판(蘇判) 서현(舒玄)의 막내딸이고 유신(庾信)의 누이이다.

그 언니[姉]가 꿈에 서형산(西兄山) 꼭대기에 올라앉아서 오줌을 누었더니 온 나라 안에 가득 퍼졌다. 꿈에서 깨어나 동생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 동생이 웃으면서 “내가 언니의 이 꿈을 사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비단치마를 주어 꿈값을 치루었다. 며칠 뒤 유신이 춘추공(春秋公)과 축국(蹴鞠)을 하다가 그만 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떼었다. 유신이 말하기를 “우리 집이 다행히 가까이 있으니 청컨대 가서 옷고름을 답시다.”라 하고는 함께 집으로 갔다. 술상을 차려 놓고 조용히 보희(寶姬)를 불러 바늘과 실을 가지고 와서 [옷고름을] 꿰메게 하였다. 그의 언니는 무슨 일이 있어 나오지 못하고, 동생이 나와서 꿰메어 주었다. 옅은 화장과 산뜻한 옷차림에 빛나는 어여쁨이 눈부실 정도였다. 춘추가 보고 기뻐하여 혼인을 청하고 예식을 치루었다. 곧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법민(法敏)이다. - 삼국사기 문무왕 원년

삼국사기는 "춘추가 기뻐하여 혼인을 청하고 예식을 치루었다. 곧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법민" 즉 문무왕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연선사는 "웃기지 마라, 기뻐하며 혼인을 청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임신한 문희를 김춘추가 살살 피하다. 선덕여왕 때문에 할 수 없이 결혼했다"라고 까발리고 있다. 이처럼 삼국유사는 삼국사기가 하지 않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래서 삼국유사는 참으로 소중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춘추공은 유신의 뜻을 알고 드디어 아지와 관계하고 이로부터 자주 왕래했다.  유신은 그 누이가 임신한 것을 알고 꾸짖었다.  "너는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아이를 배었으니 그게 무슨 일이냐."  그리고는 온 나라 안에 말을 퍼뜨려 그 누이를 불태워 죽인다고 했다.  어느 날 선덕왕(善德王)이 남산(南山)에 거동한 틈을 타서 유신은 마당 가운데 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질렀다.  연기가 일어나자 왕이 바라보고 무슨 연기냐고 물으니, 좌우에서 아뢰기를, "유신이 누이동생을 불태워 죽이는 것인가 봅니다"했다.  왕이 그 까닭을 물으니, 그 누이동생이 남편도 없이 임신한 때문이라고 했다.  왕이 "그게 누구의 소행이냐"고 물었다.  이때 춘추공은 왕을 모시고 앞에 있다가 얼굴빛이 몹시 변했다.  왕은 말한다.  "그것은 네가 한 짓이니 빨리 가서 구하도록 하라."  춘추공은 명령을 받고 말을 달려 왕명(王命)을 전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고 그 후에 버젓이 혼례를 올렸다. - 삼국유사

여기서 김법민의 태어난 때를 알 수 있는 힌트가 나온다. 선덕여왕(632~647년) 재위시절이다. 그렇다면 김법민(문무)는 왕위에 오른 661년에 선덕여왕 초년에 태어났다면 30살이고, 선덕여왕 말년에 태어났다면 14살이 된다.

하지만, 위사실로는 법민의 나이를 유추할 수 가 없다. 그래서 김춘추의 자식중 김법민의 바로 첫번째 동생인 김인문의 기록을 살펴보자. 김인문의 출생을 알 수 있는 기사가 나온다.

"김인문(金仁問)은 자(字)는 인수(仁壽)이고, 태종대왕의 둘째 아들이다. 어려서 학문을 시작하여 유가(儒家)의 책을 많이 읽었고, 겸하여 장자(莊子)·노자(老子)·불교의 책도 읽었다. 또한 예서(隷書)와 활쏘기·말타기·향악(鄕樂)[주석300]을 잘 하였는데, 행동의 법도가 수수하고 세련되었으며, 식견과 도량이 넓어 당시 사람들이 추앙하였다. 영휘(永徽 2년(진덕왕 5년: 651), 인문의 나이 23세에 왕명을 받아 대당에 들어가 숙위하였다. - 삼국사기 열전 김인문

김법민의 아우인 "김인문은 영휘(永徽 2년(진덕왕 5년: 651), 인문의 나이 23세에 왕명을 받아 대당에 들어가 숙위하였다." 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김인문은 629년생이 된다. 김인문이 김법민과 터울이 없는 연년생이라고 해도 김법민은 628년이전 출생하여야 한다. 물론, 김인문이 늦은 629년생이고, 법민이 629년 정월생이라면 같은 나이가 될 수 있다. 내 친구도 11개월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자식들을 둔 사람도 있다. 최근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천명과 덕만이 쌍둥이  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김법민은 629년 이전 생임은 분명해 보인다.

이제 결론으로 들어가 보자.

그렇다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종합해보면 장작더미 위에 놓인 김법민, 문희 모자를 살려준 사람은 선덕여왕이 아닌 공주 덕만이 될 수 밖에 없다. 선덕(덕만)은 632년에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니, 629년은 진평왕 51년에 해당한다. 

글쓴이는 이전 기사에서 덕만이 모란그림과 모란씨를 언제 받았을까를 추적보도 했다. 결론은 627년 11월이라는 기사를 송고 했지만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특종 보도를 했지만 무관심 속에 뭍혀 버린 것이다. 관심이 있는 분은 참조 하시길 바란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알고 있었던, 선덕여왕이 남산에 거동하는 동안에 이뤄진 것이 아닌 공주시절 남산에 노닐러 가는 것을 캐치한 김유신의 고도의 작전이였음을 알 수 있다.  

628년이전
장작더미 퍼포먼스 사건이 있었다면 김유신(595년생)은 34살이전이고, 김춘추(603년생)는 26살이전 때 일이다. 사건 당시 보희와 문희는 김유신과 나이 차이가 좀 나는 아주 어린 결혼적령기(13~16세)에 접어든 동생들이 되는 것이다.  

왜 김유신은 진평왕이 움직일때 작전을 구사하지 않고, 덕만이 움직일때 작전을 구사했을까?

실제 진평왕 말년에 신라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은 덕만이였다는 것을 <모란씨 서되> 사건과 <김춘추/문희 불쇼사건>으로 알 수 있다.  그러하니 덕만이 별다른 장애없이(반란 사건이 있기는 했지만) 진평왕의 뒤를 이어 김서현
가문과 김용춘가문의 도움으로 632년 왕위를 이을 수 있었다. 

그동안 사학을 하는 사람들은 무던히 우리들에게 선덕여왕이 문희와 법민을 살려 주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우리는 그들의 말에 쇄뇌되어 있었다. 그리고 글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이를 확대 재생산 유포하고 있다. 하지만 조그만 살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으로 치부한 역사가 너무나 쉽게 무너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파천황적인 주장을 하는 책이 등장했는데, 그 책이 진위논쟁에 휩싸인 필사본(?) 화랑세기이다. 화랑세기에는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에 이르러 풍월주에 오르니 보령이 24살이었다. 유신공의 누이인 문희(文姬)를 화군(花君)으로 삼아 장자인 법민(法敏)을 낳았는데 곧 우리 문무제(文武帝)이다.
(...중략..)
유신은 이에 장작을 마당에 쌓아놓고 막 누이를 태워 죽이려 하며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물었다. 연기가 하늘로 올라갔다. 그 때 공은 선덕공주를 따라 남산에서 놀고 있었다. 공주가 연기에 대하여 물으니, 좌우에서 고하였다. 공이 듣고 얼굴색이 변하였다. 공주가 “네가 한 일인데 어찌 가서 구하지 않느냐?” 하였다. 공은 이에 …하여 구하였다. 포사(鮑祠)에서 길례를 행하였다. - 화랑세기 17대 풍월주 춘추

화랑세기는 춘추가 24세전후인 626년 전후에 벌어진 사건이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화랑세기의 정교함에 글쓴이는 치를 떠는 것이다. 너무 정교하고, 완벽해서 오히려 위서의 증거로 사용될 정도이다. 조작된 아리바이는 쉽게 들통이 나지 않는다. 너무나 완벽하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가지고 있는 빈틈을 교묘하게 파고 들고 있지 않는가? 김대문의 화랑세기는 700년 초년에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가 삼국사기를 보고 나서 이설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 처럼, 화랑세기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 4~500년전에 나온책인데 되도 불구하고 오히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 후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보고 섞어서 만든 책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글쓴이만 받는 느낌은 아닐 것이다. 


화랑세기는 김유신 감독의 제일 선발 캐스팅 보희는 대타인 문희의 대박 성공에 배가 아파 결혼을 하지 않고, 후에 김춘추의 정비가 아닌 후비가 되었다고 전한다. 우리도 가끔 뜻하지 않게 캐스팅을 보이콧트하고, 후발 대타로 나온 배우들이 대박 스타로 발돋음하는 것을 종종 보는 수가 있다.  이처럼 한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어찌 되었던, 현존하는 화랑세기가 진짜던 가짜던 상관없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만으로 김유신 감독, 각본, 주연, "김춘추를 내사람으로 " 드라마에서 등장한 덕만이 신라 여왕(632년~647년) 시기에 있었던 일이 아닌 진평왕의 공주시절(628년 이전)에 있었던 일임을 증명하였다. 

앞으로 김유신/김춘추/문희/보희/덕만 <불쑈사건>을 들먹이며, 선덕여왕이 말이야 블라 블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면 된다. "웃기 시네, 내가 알아보니 공주시절에 했더라"

PS. 여전히 재미가 없는 글인가 보다. 조회수에 비해서 추천수가 없는 것을 보면 글쓰는데 한계를 느낄때가 있다. 이글을 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글쓴이가 투자했을 거라고 생각해 본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장담하건데 하루 이틀 생각으로 나올수 있는 글은 아니다.

이전에 포스팅한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글이 뒤늦게 베스트에 올랐다. 글은 06시에 포스팅을 했는데 저녁에 베스트에 오르다니 다음의 발빠른(?) 조치에 감사를 드려야 하는건가? 어찌 되었던 베스트까지 보내 주었으니 말이다. 안보내 준것보다는 ㄳ해야 할것 같다. 문화.연예 면을 담당하는 담당자가 여러명이 있는 것 같다. 글 선택 선호가 너무나 차이가 나는 것을 보면..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다음에 베스트 안보내주지는 않겠지요? 한번찍히면 무서운데...ㅠ.ㅠ.

즐겁게 보셨습니까? 그렇다면 가시기전 추천해주실거죠? (추천은 숫자가 써진 viewon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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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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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7.24 1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정보 공부 잘하고 갑니다 ^^

  3. lol 2009.07.24 1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길어요 ㅠㅜ

  4. 네리야 2009.07.24 1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가...삼국사기는 사기를 잘 쳐서 사기고
    삼국유사는...유사품이라 삼국유사라고
    우기더군요ㅋㅋ

    또 화랑세기는...세기의 로맨스책이라고
    우기더만ㅋㅋ....포스팅 잘 봤어요ㅋㅋ

  5. 김성중 2009.07.24 1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밋게 보고갑니다.
    근데요... 추천은 어디서 해요??

  6. 수고하셨습니다 2009.07.24 1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봤습니다 ^^

  7. 플로라 2009.07.24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드라마를 통해서 역사에 대한 흥미가 생기는 건 좋은데 재미를 추구하다 보니 아무래도 실제 역사랑 너무 틀리더라구요. 덕분에 다시 한번 그 때 역사를 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

  8. 재밌게 2009.07.24 14: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게 잘봤습니다~
    맞춤법만 쵸큼 주의하신다면 더 완벽한 글이 될듯^^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4 21: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언제나 걸리는 문제지요.. 문서편집기에서 작성하지 않고, 바로 블로그에서 글을 쓰는 관계로 ..

      글을 쓸때는 그냥 막 날려서 쓰거든요..

  9. 2009.07.24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0. 기아만세 2009.07.24 15: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는 글이네요^^
    역사 드라마를 보는 시각을 좀 더 넓힌 것 같아 좋네요^^
    다음에 또 유익한 글 부탁드려요ㅎㅎ

  11. 물음표 2009.07.24 1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수고에 감사 드립니다.^^
    쉽게 역사 공부 하고 갑니다.

  12. 나그네여 2009.07.24 1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 공부 의미있게 하고 갑니다. 수고에 감사 드리면 당신한테 항상 행운이~~^^*

  13. 흠.. 2009.07.24 18: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선덕여왕 공주시절 얘기로 알고 있었는데요..
    예전에 언젠가 선덕여왕을 복길어머님이 하셨던 드라마에서는..
    여왕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아마도 그 영향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역사에 대해 저도 해박하진 않지만 선덕여왕 즉위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14. ㅋㅋㅋ 2009.07.27 0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쇼사건... 말이 재미있네요 ㅋㅋㅋ

  15. 한숨뿐 2009.07.27 0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암만 비공식 개인블로그라고 해도.......
    글 좀 제대로 적으시면 안될까요...
    뭐라고 해야하나 막.. 전체적으로 좀.. 글이..

  16. 역사맨 2009.07.28 0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 정말 흥미진진하네여
    분석이 너무나도 완벽한데다가
    화랑세기와도 딱딱 맞아떨어지는..ㅋ
    저도 화랑세기는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계속 화이팅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8 15: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화랑세기가 존재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공개된 화랑세기 말공..

      필사본 화랑세기는 너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약점을 파고들어서 오히려 의심하고 잇는중.. 정교함이 너무 지나쳐요..

      이설이 많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와는 다르게.. 교묘한 짬뽕스타일이라고 할까요.. ㅋㅋ

  17. 잘 봤습니다 2009.09.09 0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꼼꼼하게 비교해가며 살피셨네요^^ 공주시절 이야기라는 것은 저도 오늘 이글을 보고야 압니다.
    그런데.... 간혹 님께서 기사 중에 쓰시는 농담이.. 그닥 재미가 없습니다..ㅎㅎ;;재밌으라고 쓰신 것 같은데 재미없는 뭐 그런 느낌?;; 차라리 장난스런 말이나 단어 빼버리시고 진지하게 글을 이어나가시는 게 더 반응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추천 하나 올리고 갑니다~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18. 잘 읽었어요 2009.10.22 2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어요 자주와서 읽습니다 ,
    역사에 대해 열심히 글 쓰신 흔적이 곳곳에서 배어납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식을 너무 문장마다 쏟으시려고 하시는 것 같아요
    물론 아시는 게 많고 또 그것을 읽는 독자에게 전해주려는 마음때문이시겠죠 ^^
    흥미로운 소재만큼이나 글도 흥미롭게 써나가 주신다면 정말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아요... 곳곳에 농담을 넣는게 아니라 뭐랄까 글쓰면서 생각나는대로 전개하는 게 아니라 흥미로운 전개 있잖아요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23 1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간락하게 쓰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되더군요.. 안그럼 글 수가 많아지거든요..

      농담속에 뼈를 좀 넣은 편입니다. 행간을 읽으면..

      좀더 생각해보겠습니당. 흥미로운 전개라.. ㅋㅋ ^__^

  19. Favicon of http://www.unny.com BlogIcon montreal florist 2009.12.11 1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도 재밌고 역사책도 나름 또 재밌네여

  20. Favicon of http://www.balloonking.co.uk BlogIcon balloons 2011.12.19 0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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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짜패에게 보쌈이 되어 물속에 던져진짜패에게 보쌈이 되어 물속에 던져진럼 너무 딱딱할 것 같아서요..사실 알고 계시겠지만. 농담속에 뼈가 있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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