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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충

계백, 의자왕 머리위 은고 요녀된 진짜 이유? 당.신라.왜 국제정세 때문 에서 의자왕이 은고와 계백의 사랑을 시기하고 질투해서 은고의 목씨일가를 몰살시키고 비로서 취한다. 은고는 의자왕이 자신을 취하려고 자신의 일족인 목씨를 죽였다고 원수를 갚으려고 계백과 힘을 합치려 하지만, 계백은 은고의 계략이 말려들지 않는다. 은고는 연태후를 죽이고 자신의 아들 부여 효를 태자로 세우려 하지만, 계백이 눈치를 까고 연태후 시해사건은 묻히고 만다. 은고는 계백이 자신의 아들 부여효를 태자로 내세우지 않았다고 의자왕과 같이 계백을 없앨 궁리를 한다. 에서 은고는 의자왕의 빽을 믿고 점차로 마녀로 변하고 있다. 드라마 이 백제의 마지막 황후 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드라마 내에서도 은고에게 왕후가 되지 않는다면 백제가 망하지 않을거라고 말을하지만, 이미 드라마도 백제가 망한 이유는 은고가 욕.. 더보기
계백, 의자왕 서자만 41명인 정자왕, 백제 비운의 마지막 태자 부여융 양자? 사실은 의 처음은 창대하게 시작하였지만, 끝은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대부분 대한민국 사극의 한계점이다. 처음에 물량공세를 하고 사전제작으로 시청자의 눈을 현혹하지만, 초반 몇편을 제외하면 실시간 시나리오에 생중계 사극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자료조사는 등한시 되고, 제작비의 고갈로 전쟁신은 20명도 안 되는 엑스트라를 동원하거나 후반부로 가면 말로 때우기 일수다. 도 여타 사극의 범주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대 사극의 주류는 여성주의 사극을 표방한다. 여성 시청자를 끌어들이지 못하는 사극은 시청률에서 고생할 뿐만 아니라 여론을 주도하는 예능이나 드라마에서 이슈화 될 수가 없다. 은 최근 사극 드라마 트랜드에 따라 무왕과 사택비 무진의 3각관계를 핵심으로, 대를 이어 의자왕과 계백 그리고 은.. 더보기
계백, 의자왕 질투 화신, 은고 아들 태자 부여융은 의자왕 양자? 너무 나간것 아닌가? 에서 흥수는 부여태와 부여효는 나이가 어리지만, 내신 좌평 흥수는 연태후의 아들 부여태로 태자를 세워야 한다고 말을 한다. 극중에서 부여태는 의자왕이 태자가 되기 전해(?)에 태어난 것으로 그리고 있다. 의자왕은 632년에 태자가 되었다. 극중 시제가 642년을 그리고 있으니 11살~12살이 된것이다. 부여태는 귀가 열려있어서 우리가 꿈꾸는 백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계백에게 말한다. 하지만 성충은 아직 때가 아니며, 흥수 너는 말 잘 듣는 부여태로 하여금 너의 꿈을 빙자해서 백제를 좌지우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냐고 말을 한다. 성충과 흥수의 관계는 백제판 사육신 성삼문과 신숙주 인가? 성충은 백제의 주인은 황제폐하의 것이라고 말하나 계백은 황제폐하의 주인은 백제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부여융은 의자왕.. 더보기
의자왕, 계백 연인 은고 빼앗은 파렴치한 일까? 사실 계백 은고의 사랑은 불륜 에서 은고와 계백은 어릴적부터 서로 마음을 주고 사랑하는 사이다. 의자왕 또한 은고를 사랑하지만, 계백과 은고가 사랑하는 사이임을 알고 있지만, 자신의 욕망을 감춘다. 그리고 마침내 사택비를 몰아내고 태자가 되자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고 계백에게서 은고를 빼앗는다. 그렇다면 계백과 은고가 사랑하는 사이일수 있을까? 은고나 계백이나 의자왕은 실존인물이다. 의자왕은 백제의 마지막왕(?)이다. 하지만, 실제 마지막왕은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풍이다. 또한 중국 건안성에 있던 백제왕은 의자왕 아들 부여융이였다. 의자왕이 당에 항복하고 백제는 웅진도독부가 설치되었고 부여융은 웅진도독이 되어서 백제를 다스리려 하였다. 하지만 신라에 의해서 웅진도독부는 철폐되고, 당은 웅진도독부를 요동의 건안성으로 옮기고 당은 부여융에게.. 더보기
선덕여왕, 덕만의 부자감세 백제 침공을 자초했다. 드라마 선덕여왕 55회에 56회에서 백제 윤충군이 대야성을 공략하고, 뒤이어 백제 붉은 투구를 쓴 삐에로 계백(최원영)이 유군(별동대)를 이끌고 신라의 청도를 넘어 현재 경산까지 침범을 해서 신라는 누란의 위기에 처하고 유신을 다시 상장군에 임명해서 계백과 일전을 벌리게 한다. 그런데 왜 신라는 삼한일통을 꿈꾸면서 전쟁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했을까? 덕만이 왕이 된 후 10여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평화를 지킬려면 전쟁준비를 해야한다"는 고사는 들지 않더라도 최소한 드라마 세종대왕이 이순신처럼 국방에 힘을 쓰고, 신무기를 개발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전혀 국방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고 비담의 덕만에 대한 짝사랑에 빠져 있다가 , 백제의 신무기와 변형된 군사편제에 속수무책 당하기.. 더보기
선덕여왕, 김춘추 유승호 병풍으로 전락한 이유 - 대야성 함락 사실은 드라마 선덕여왕 55회에서 유신의 허위정보를 받은 비담은 유신의 정보를 캐기위해서 대야성에 보종을 보낸다. 하지만 보종이 갔을때에는 이미 대야성이 불타고 있었다. 그리고,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은 윤충의 군대에 맞서 장열히 죽여버린다. 사실 서현이 언제 죽었는지는 알수 없다. 서현에 관한 기록은 629년 고구려 낭비성 전투에 나온 이후 기록에서 사라진다. 여기서 왜 유신의 허위정보라고 했을까? 유신은 계백의 지도에서 를 보고 한다. 이는 유신의 잘못된 정보에 의해서 신라가 위기에 처하는 것이다. 첩보의 생명은 정확한 정보에 있고, 이를 분석하고 가공해서 최종 정보로써 가치를 가지게 되는것이다. 만약, 아이리스 프로파일러 최승희라면 어떠한 분석을 했을까? 일단 김유신이 본 글짜의 진위를 파악했을 것이다. .. 더보기
선덕여왕 누가 덕만을 능욕하나? 비담일까? - 대야성 함락과 검일 드라마 선덕여왕 54회에서 비담이 덕만을 껴안고 자신의 감정을 들어낸다. 하지만 덕만은 비담을 내치며 주절주절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말한다. 요약하면 자신도 왕이지만 여자다, 하지만 왕권을 강화하고 삼국통일(삼한일통)을 위해서 멸사봉공 수처녀로 늙어 죽을 것이라는 뜻이다. 왕권의 강화의 최우선은 후사이고, 왕실인물들이 많아 지는 것이다. 왕실에 후사가 없으면 권력이 흔들린다. 왕실뿐아니고 일반 가정에서도 기본 상식에 속한다. 노처녀(?) 선덕여왕의 생각이기 보다는 극히 개인적인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의 빈곤한 상상력의 산물이고 희망사항일 뿐이다. 여인인 덕만이 왕이 된다고 해서 왜 여러 남자를 거느리고 성을 문란하게 했냐는 비아냥이고, 덕만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삼국통일 사업에 매진해야 하는데 문란.. 더보기
선덕여왕 누란 위기, 귀신잡는 비담 복야회 소탕작전 - 삼서제도 역사와 무관한 사극 드라마 선덕여왕 51회에서 미실의 난이 아닌 칠숙의 난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진평이 죽고 덕만이 신라의 왕위를 올랐다. 실제 역사는 진평왕이 631년 5월 칠숙의 난을 진압하고 동시에 칠숙을 효수하고 석품이 백제로 도망가다 향수병이 걸려 집으로 들어왔을때 잡혀 처형되었다. 그래서 칠숙과 석품은 9족이 멸문지화 되었다.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전개이다. 드라마는 진평왕이 미실의 난이 일어난 즈음에 죽은 것으로 나온다. 이처럼 드라마는 역사와는 하등 관계없이 역사극을 만들면서 신라를 재현하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더나아가 백제와 고구려에 비해서 유적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아는 바가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그런가? 아는바 없기 때문에 지들 맘대로 신라를 재현해도 된다는 발상인가 보다. "기록된 인물들의 당시 .. 더보기
선덕여왕 49회, 고현정 미실 최후 자살 죽음장소, 대야성 선택이유? 수노(手弩)는 왜(일본)산 최고? 미실 최후 자살 대야성 선택한 까닭은? 드라마 선덕여왕 49회에서 미실(고현정)의 난이 실패하고 찾아 들어간 성은 대야성이다. 대야성은 현재 경남 합천지역에 있었다는 요충지의 성이다. 대야성이 함락되면 신라 경주(서라벌)까지 무방비 상태에 놓인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은 그렇지도 않지만 말이다. 여차 하면 백제로 망명하여 망명정부라도 세울려고? 아니면 대야성주에게 미실이 신국의 왕인 진평왕보다 더 많은 대의를 주고, 먹여주어서? 그런것도 아니면 왜? 어찌되었던 미실은 왜? 하고 많은 경주(서라벌)에 있는 성들을 두고, 백제와 대치중인 최전선에 있는 대야성으로 근거지를 옮겼을까? 드라마상 아들인 비담은 647년 비담의난을 일으킬때 신라 선대 왕들이 왕성으로 삼은 명활성에서 난을 일으키는데 말이다. 드라마상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