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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갈문왕

선덕여왕, 김유신 밀서에 담긴 성조황고의 비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선덕여왕이 즉위하고 라 불리운다. 또한, 김유신(엄태웅)이 비담(김남길)의 술수에 속아 로 유배를 떠난다. 이때 선덕여왕 덕만(이요원)은 김유신에게 밀서를 주고 서쪽 변경을 염탐하도록 밀명을 내린다. 일단 선덕여왕시기에 우산국(울릉도)를 쓸 수 있는 말인지는 지금 논한다면 글이 길어지니 다음 기회에 논하기로 하자. 다음 포스팅을 본다면 정말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별도로 포스팅을 할 예정이다. 덕만 "성조황고"를 쓸 수 있을까? 밀서에 다음과 같은 황제의 밀서임을 알리는 단어가 들어간다. 덕만의 수결이 아닌 의 덕만을 지칭하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이다. 사실 선덕여왕은 죽은 다음에 사용하는 시호 용어이니 선덕여왕 당시에 선덕여왕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안된다. 우리는 잠깐 .. 더보기
선덕여왕 누가 덕만을 능욕하나? 비담일까? - 대야성 함락과 검일 드라마 선덕여왕 54회에서 비담이 덕만을 껴안고 자신의 감정을 들어낸다. 하지만 덕만은 비담을 내치며 주절주절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말한다. 요약하면 자신도 왕이지만 여자다, 하지만 왕권을 강화하고 삼국통일(삼한일통)을 위해서 멸사봉공 수처녀로 늙어 죽을 것이라는 뜻이다. 왕권의 강화의 최우선은 후사이고, 왕실인물들이 많아 지는 것이다. 왕실에 후사가 없으면 권력이 흔들린다. 왕실뿐아니고 일반 가정에서도 기본 상식에 속한다. 노처녀(?) 선덕여왕의 생각이기 보다는 극히 개인적인 드라마 선덕여왕 작가의 빈곤한 상상력의 산물이고 희망사항일 뿐이다. 여인인 덕만이 왕이 된다고 해서 왜 여러 남자를 거느리고 성을 문란하게 했냐는 비아냥이고, 덕만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삼국통일 사업에 매진해야 하는데 문란.. 더보기
선덕여왕, 덕만이 결혼할수 없는 이유? 남편들이 죽어서.. 드라마 전개상 시제는 여전히 풍월주 비재가 있은지 얼마안되는 시점이다. 이를 어찌 알수 있는가하면 춘추가 설원랑의 집을 찾아가 보량을 만나서 보량에게 한가위(가배)선물을 한다. 그런데 가잠성 전투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가잠성 전투는 진평왕 33년 611년 10월부터 100일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가잠성전투가 신라의 승리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가잠성 전투는 신라의 대패로 끝났다. 그래서 40년 신라가 가잠성를 수복하려고 했지만 이때도 대패하고 말았다. 614년 진평왕 35년 봄에 가뭄이 들었다. 그러니 안강성(비화현)에서 민란이 일어났음직한 때이다. 유신과 결혼한 영모가 임신을 한 시점이기도 하다. 이때 진평왕의 나이는 49살이 된다. 드라마 선덕여왕 40회에서 진평왕이 심장.. 더보기
서녀 천명의 나이 어린 적통 동생 덕만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지껏 덕만이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고, 인정하는 이유는 다음 3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삼국사기의 선덕왕 원년 즉위할때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다. 둘째는 신하들이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셋째는 동생이라고 추측되는 천명이 춘추를 603년에 낳았다. 핵심적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라는 것이다. 만약, 천명이 덕만의 동생이 아니고, 언니라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더보기
선덕여왕, 덕만은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예고한데로 오늘은 덕만의 남편인 을 통해서 덕만이 왕이 될수 밖에 없는 이유와 덕만이 젊어서 왕위를 이었고, 진평왕이 죽는 과정에서 벌어진 칠숙과 석품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까 한다. 王之匹飮葛文王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으로 삼을 생각이다. 삼국유사 왕력편에는 덕만이 결혼했음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온다. 글쓴이는 이 결정적인 증거를 놓아두고, 일부러 아래와 같은 시리즈 기사들을 송고했던 것이다.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을 사랑해 자연발화현상(shc)으로 죽은 지귀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 더보기
선덕여왕, 덕만과 천명은 이복자매 글쓴이는 그 동안 다음 아래와 같은 선덕여왕의 공주시절에 있었던 기록을 하나 하나 추척해 들어 갔으며, 선덕왕의 중 첫번째 '사건인 모란씨 서되'는 진평왕의 노년인 627년 진평왕 49년에 있었던 일이라고, 그 동안 아무도 알지 못했던, 모란이 신라에 수입된 년도와 년을 특정하여 기사로 송고하였다.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또한, 에 얽킨 영묘사 옥문지사건과 영묘사의 창건과정을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에서 소상히 이야기 했으며, 영묘사가 만들어 지는 과정에 영묘사에 화재사건이 발생하여, 삼국사기가 선덕왕 3년 635년에 영묘사가 완성되었다는 기사와 의 3년 635년에 영묘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이중적인 .. 더보기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 선덕여왕 덕만에 관한 기록들을 하나 접수하여 역사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상식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하나씩 추적 탐사 검증하고 새로운 주장을 하는 포스팅 했습니다. 지금은 덕만 탐사의 종착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또는 추측하고 있었던 상식을 상식이 아님을 증명하였고, 마지막으로 덕만은 왕위를 이을때 도대체 몇살이였는가? 할머니 였다는데 정말 할머니 였을때 왕위를 이은것인가?를 찾아 갈겁니다. 이글은 그 최종 종착역의 구부능선을 타는 덕만과는 땔래야 땔 수 없는 영묘사에 관한 기록들을 검토해 볼겁니다. 선덕왕 4년(635) 당나라가 사신을 보내 부절(符節)을 가지고 왕을 주국(柱國) 낙랑군공(樂浪郡公) 신라왕(新羅王)으로 책봉하여 아버지의 봉작(封爵)을 잇게 하였다. 영묘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