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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이복'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7.27 서녀 천명의 나이 어린 적통 동생 덕만 (28)
  2. 2009.07.25 선덕여왕, 덕만과 천명은 이복자매 (16)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지껏 덕만이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고, 인정하는 이유는 다음 3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삼국사기의 선덕왕 원년 즉위할때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다.
둘째는 신하들이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셋째는 동생이라고 추측되는 천명이 춘추를  603년에 낳았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미실(고현정과 덕만(이요원)

핵심적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라는 것이다. 만약, 천명이 덕만의 동생이 아니고, 언니라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할머니(姑) 덕만이 아닌, 시어미(姑) 정도의 나이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증거를 잡는 과정이 지귀, 모란씨, 영묘사 건축중에 벌어진 화재 사건이다.

또하나는 천명이 덕만의 언니인지 동생인지 상관없이 왕위를 잇지 못한 이유중에 천명이 진평왕의 정비인 마야부인의 소생이 아니라면 어찌될까? 

  의심스런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다름이 아니라 김춘추가 왕이 될때 그의 가계 내력을 기록한 것이다.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 삼국사기 신라 춘추왕 원년
.
김춘추의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이라고 했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마야부인(윤유선)

우리는 덕만이 진평왕과 마야부인(복승의딸) 사이에 태어났고, 장녀라는 기록을 읽었다. 춘추의 기록을 살피고 우리는 감각적으로, 또는 단순히 천명과 덕만은 형제이겠거니 한다. 그러나 같은 어머니(동복)을 두었을까? 하는 의심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진평왕은 아들이 없다. 그러니 여러 부인들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설령 아들이 있다고 해도 후비를 여럿 두는 것은 왕실의 기본 상식에 속한다. 


진평 또한 손씨인 승만을 후비로 두었다. 하지만 손씨 승만에게서 후손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마야의 장녀인 덕만이 왕위를 이였다.

(c)mbc 사극 선덕여왕 천명


그런데 왜? 우리는 천명이나 덕만을 마야부인의 소생으로 알고 있을까? 더불어 삼국유사에 나온 선화공주 또한 마야의 소생으로 만들었을까? 이 함정에서 벗어난다면, 어찌 될까?


진평은 천명의 어머니를 통해서 천명을 낳고, 마야부인을 통해서 덕만을 낳았다. 진평은 적통을 이을 후손을 보기 위해서 여러 부인들을 두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가장 일반적인 왕실의 살아가는 방법이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정식 왕후의 소생이 적통을 잇는다. 그리고 그 왕후와의 사이에 난 자식에게 대권이 넘어간다. 왕후가 아닌 후비사이에 태어난 왕자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왕후 사이에 태어난 적통왕자들이 없을 경우에 왕위계승권이 주어진다. 

그러니 천명과 덕만은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열려 있다. 오히려 이복자매간일 가능성이 더 많다. 또한, 천명이 덕만보다 손위언니에 해당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기록 어디를 봐도 천명의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단지,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 으로만 나온다. 그렇다면 천명의 어머니는? 누구인가? 마야인가? 만약, 마야라면, 그의 이름을 삼국사기는 기록하였을 것이다. 삼국사기를 작성할때 천명부인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이 없을 수는 있다. 하지만 단순히 진평왕의 딸로만 기록하고 있고, 덕만은 같은 천명과 같은 아버지인 진평왕을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 어미니의 출자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결론은 덕만과 천명은 같은 어머니가 아닌 이복자매라는  것을 삼국사기는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덕만은 적통을 이은 왕후의 손이고, 천명은 마야왕후의 후손이 아니라는 말이다. 

천명과 덕만의 이름으로도 천명과 덕만은 계통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진흥왕 시기 이후, 그들의 자손간에는 돌림자를 쓰고 있다. 진흥의 아들 동륜, 금륜 식이고, 금륜(진지왕)의 아들인 용수, 용춘 식이다. 동륜의 아들인 백정(진평), 백반, 국반 식으로 '백'과 '반'의 돌림자 흐름이 있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덕만(이요원), 천명(박예진)

(c) mbc 사극 선덕여왕, 덕만(이요원)

오히려 천명과는 다르게 덕만과 같은 돌림자를 쓰는 사람은 진평(백정)의 동복 동생이며, 덕만의 작은 아버지인  국반의 딸인  승만이다. 덕만과 승만는 같은 돌림자인 '만'자를 공유하고 있다. 


한마디로 천명은 후비의 자식이고, 덕만은 정비의 자식이란 이야기다, 그러니 적통을 이어 받은 덕만은 마야의 장녀가 될수 있지만, 천명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마야의 장녀는 될 수 없다. 

덕만이 왕위를 이을때, 덕만은 진평의 장녀이며, 어머니는 마야라고 했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진평왕(조민기)

그렇다면 진평과 마야 사이에는 덕만 말고도 또다른 덕만보다 손아래인 몇명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공주를 더 두었음을 가늠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증거는 창녕조씨의 시조인 조계룡이 진평왕의 사위였다는 전승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명, 덕만, 선화 말고도 또다른 공주가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만약, 조계룡이 덕만의 남편이였다면, 기록에 덕만의 남편으로 기록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사위로만 기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덕만은 후손을 남길 수 없는 석녀였는데, 조계룡이 남편있다면, 후손이 있을수 없다. 물론, 남편이 되었다가 남편의 지위에서 물러난 다음 새로운 츠자와 결혼을 해서 후손을 볼수는 있지만 말이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용춘(도이성)

하지만 진평은 왕자가 없었기 때문에 승만왕후를 또 들인다. 하지만, 승만으로 부터도 아들을 얻을 수 없었다.


이를 미루어 진평은 왕위를 이을 수 있는 남자(왕자)를 생산하기 위해서, 수 없이 왕후를 바꾸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첫번째는 잘 봐주면 천명의 어머니로 부터, 다음은 마야부인으로, 마지막은 손씨 승만까지 최소한 3번은 왕후를 바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가지, 천명의 적통을 이은 왕후의 소생이 아니라는 증거는 진평왕의 사후, 천명이 왕위에 오르거나 용수,용춘 이 사위왕으로나 천명/(용수,용춘)의 아들인 603년 생 장성한(30살) 춘추가 632년에 등극해야 한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알천(이승효)

하지만 선덕을 지나 진덕을 지나, 천명/(용수,용춘)의 아들인 춘추는 54세인 654년에 비로서 왕위를 잇는 것이다. 그것도 우선권이 있는 알천의 양보에 의해서 말이다.


이제 충분히 천명과 덕만은 배가 다른 형제라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기존 학설을 깨는데는 많은 시간과 노고가 필요하다. 그래서 글이 늘어지고 늘어질 수 밖에 없다.

사실 삼국유사 왕력편의 기사 한줄이면, 덕만이 천명과 다른 출자를 가지고 있고, 덕만이 나이가 어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덕만이 결혼한 때는 공교롭게 왕위에 있을때 이다. 인평 갑오년 (634)년 선덕왕 3년 왕의 남편은 음갈문왕이다.

이때 결혼하는 덕만이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환상이다. 이런 환상이 심어지게 된 이유는 단지, '천명과 덕만이 마야의 소생'이라는 기존 학설을 무심결에 따르기 때문이다. 


남편을 여럿 바꾼다고 하더라도 덕만이 후손을 볼 수 있는 나이때가 되어야 한다. 왕통을 이을 후사를 볼 수 없으면, 여왕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겟는가? 그러니 덕만은 아무리 나이가 많고, 기록은 안되어 있지만 무수히 많은 남편을 바꾸었다고 해도 634년에는 생물학적으로 40대를 넘길 수가 없다.

또하나, 덕만이 나이가 어렸을 것으로 짐작하는 이유는 수 없이 많은 덕만의 공주시절 행적을 뒤로 하고, 634년에 연호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3년(634) 봄 정월에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바꾸었다. 분황사(芬皇寺)가 완성되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3년

634년 덕만(선덕)왕 3년에 연호도 바꾸고, 시집도 간다. 신라시대에 처자들은 대부분 초경이 지나는 13세이상이면 결혼을 시작한다. 기존의 학설대로 한다면 덕만은 결혼도 하지않는 노처녀로 왕위를 이였다는 말이 되니 있을 수 없다.

즉위년이 한참지나고, 전왕의 연호를 바꾼때는 대부분 어린왕이 성인임을 선포하고, 친정체제를 구축할때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634년 선덕왕 3년은 이를 가름하는 기준년이 되는 것이다.  덕만은 이때에도 늦은 결혼이였지 모른다. 늦게 되는 이유는 진평왕 시기에 있었던 칠숙의 난을 평정하고, 내치를 다지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을제(신구)


선덕여왕 원년(632) 2월에 대신(大臣) 을제(乙祭)로 하여금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선덕여왕 원년

삼국사기에 의해도 덕만이 왕위에 오른 후 제일 먼저 한일은 대신인 을제로 하여금 국정전반을 관장하게 하고 있다. 화랑세기는 을제를 덕만의 남편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어찌 되었던, 삼국사기의 기록으로는 덕만이 아직 국정을 운영할 어떠한 기반도 없었다는 이야기 이기도 하고, 어렸다는 정황증거가 된다.


단한가지 삼국사기를 잘못 해석해서 덕만에 대해서 꼬이고 꼬인것이다.

그 한가지가 천명은 진평왕의 딸이다.라는 구절이다. 장녀라는 구절도 없고, 차녀라는 구절도 없다. 그냥 진평왕의 딸이란 한줄로 덕만이 천명의 언니가 되고, 천명이 마야의 딸이되고, 덕만의 나이가 왕위에 오를때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고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진평왕의 비와 자식과 사위


그러니 "천명의 언니는 덕만이다"  학설을 따르게 된다면, 덕만과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가 해결이 안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잘 관찰만 한다면, 덕만은 결코 천명보다 나이가 많을 이유가 전혀 없다. 천명은 정비의 소생이 아니구나, 덕만과는 배다른 자매간이구나, 마야의 딸은 덕만 말고도 또 있구나 등이다. 통설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다.  기존 학설을 깨기 위해서 위서논쟁이 휘말린 화랑세기를 한줄도 인용하지 않고, 덕만은 나이가 어린 공주였다는 것을 증명했다.

다음과 같이 덕만과 관련된 기록을 탐사하면서, 글쓴이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덕만과 천명 관련 기록들을 토대로 덕만과 천명 사이를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첫째, 덕만은 진평왕과 정비 마야의 장녀다.
둘째, 천명이 나이는 많지만, 정비인 마야의 소생은 아니다.
셋째, 천명과 덕만은 이복자매간이다.

넷째, 천명은 정비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에 덕만보다 왕위승계에서 후순위다.
다섯째, 마야의 후손으로는 덕만 말고도 또다른 자매(들)이 있다.  

여섯째, 덕만은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했다
.
일곱째, 덕만은 왕위를 오를때 현재 이요원만큼 어렸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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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름따라 2009.07.27 0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몇 시간을 읽었는데 끝내는 다 읽지 못했군요...ㅡ.ㅡ;;;
    첨부터 읽어야 하다 보니 양이 장난이 아닙니다....
    아침에 일어 나서 나머지를 다 읽어야 할 듯~~~
    님의 글을 읽고 화랑세기를 읽으면 훨씬 재미가 있을 듯합니다^^*
    들마를 통해 역사를 공부 하고 싶어 지고
    이렇게 좋은 글을 접하게 되고
    한마디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아침에 다시 찬찬히 잘~~~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 Favicon of http://blog.daum.net/wlalsdl1 BlogIcon 아르테미스 2009.07.27 07: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대단하세용~
    ^^;;

    오늘은 브레이크 댄스 부탁합니당~
    꼭요! ㅎㅎ

  3. 2009.07.27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Favicon of https://nermic.tistory.com BlogIcon 유쾌한 인문학 2009.07.27 12: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오!!!!! 역시 갓쉰동님은 짱이이에요.

    이걸 보고 나니 전 선덕여왕 글은 올리기가 싫어져요. 이건 머 부끄러워서...


    근데 왜 춤을 안추세요 ㅡㅡ^ 동영상 ㄱㄱ슁!!! ㅋㅋㅋㅋㅋ

  5.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7 1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중에 오죠 ㅎㅎ
    이번주도 홧~팅

  6. Favicon of https://mckdh.tistory.com BlogIcon 산골 김저자 2009.07.27 20: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간절한 마음으로..추천 했습니다. ^ ^;

  7. 역사매니아 2009.07.28 1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에서부터 계속 잘 보고 있습니다.
    몰랐던 비밀을 아는느낌?ㅋ
    기존 학설이라는게 어떻게 나온건지
    너무 쉽게 덕만이 천명보다
    나이가 많다고 한거군여
    그렇다면 드라마는 이런걸 알고
    배우를 캐스팅한걸까여?ㅋ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8 14: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혀 아닌줄 압니다.. ㅋㅋ 캐스팅에 덕만보다 늙어 보인 유신(엄태웅)을 선발한것 역사에 부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극의 나이는 별도로 하고.. ㅋㅋ

  8. ㅋㅋ 2009.07.28 1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글 진짜 좋아합니다ㅋ
    제가 화랑세기를 사서 보려고 하는데
    이런 글처럼 원래의 학설을 뒤집는
    이런 해석이 들어간 책이 있나여?

  9. 동감 2009.07.30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춘추가 왕이 될 때 성골남자가 더이상 없어서 진골이 왕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죠. 그런데 천명이 마야부인의 딸이면 도무지 말이 안되는 이야기죠. 아무리 폐위되었어도 용춘은 진지왕의 아들이고 김춘추는 딱! 성골인데요. 왕위계승서열도 선덕, 진덕, 그리고 누군가의 양보... 이런식으로 밀린다는게 납득이 안되어서 여러가지 학설이 있었죠. 천명이 서녀라면 그 부분도 매우 말이 되네요. ^^

  10. 2009.08.03 1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ㅡㅡ; 2009.08.07 0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란....

    다수가 동의한다고 정설이 되는 것은 아니죠.....!!!

    다만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는 설 일뿐....

    역사에서 만큼은 다수의 생각이 맞다 소수의 생각이 맞다 하는...

    그런 흑백논리는 없는것이라 생각 합니다...

    물론 갓쉰동님 말씀이 다수설이 정설이다라는 말은 없었지만....

    역사를 알고자 한다는 사람이라면....

    열린생각 늘 가지고 생각 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싶고요...



    마지막으로 갓쉰동님 글 잘 읽고 추천 눌러봅니다...

    나름 납득이 가는 글이었습니다....




    언능 타임머신이라는 녀석이 개발된다면 좋겠는데 하는 SF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는....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6: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다수와는 상관이 없지요..

      그래서 다수설이 잘못되엇다는 주장을 많이 하고 있는데용..

      덕만공주시절 엮어준.. 춘추와 문희,
      공주시절 모란씨 사건, 아무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했구요..
      솔거에 관한 다수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고,

      덕만이 다수설인 50대 근처에 왕위에 오르지 않고, 젊은 영계(욕먹을랑 여성분들은 어떤의도로 썼는지 알거라고 믿습니당. 그냥 이해해주셈) 시절에 왕위에 올랐다고 했는데용.

      역사는 끊임없는 대화의 산실이지요.. ㅋㅋ

  12. 여왕 2009.08.29 1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명이 서녀라서 덕만이 왕이 되었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이 내용과 상관없이

    천명이 용춘을 좋아한다고 어머니께 고백했는데 잘못 알아들어서 용수와 결혼시켰단 이야기에서

    어머니는 마야부인이라 생각했는데 아닌게 되는군요.


    용춘이 선덕여왕의 남편이 되는 것은 나이가 비슷할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용춘의 나이가 훨씬 많겠군요.

  13.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4. Favicon of http://maelanior.livejournal.com/1178.html BlogIcon mountain house mre 2012.11.01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5. Favicon of http://www.kwad9.ca/article/20022011-hey-ta-un-chien-toi-non-je-lai- BlogIcon invisible fence collars for small dogs 2012.11.05 15: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

  16. Favicon of http://popartpet.com/blog/2007/08/02/part-time-pets/ BlogIcon portable dog fencing panels 2012.12.20 1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함 때문에 쉽게 이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전문 소프트웨어인 포토샵만큼은 아니더라도

  17. Favicon of http://survivalguideetc.wordpress.com/ BlogIcon micro filtering or orbital depots 2012.12.31 2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니라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할머니(姑) 덕만이 아닌, 시어미(姑) 정도의 나이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글쓴이는 그 동안 다음 아래와 같은 선덕여왕의 공주시절에 있었던 기록을 하나 하나 추척해 들어 갔으며,
선덕왕의 <지기3사>중 첫번째 '사건인 모란씨 서되'는 진평왕의 노년인 627년 진평왕 49년에 있었던 일이라고, 그 동안 아무도 알지 못했던, 모란이 신라에 수입된 년도와 년을 특정하여 기사로 송고하였다.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또한, <지기삼사>에 얽킨 영묘사 옥문지사건과 영묘사의 창건과정을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에서 소상히 이야기 했으며, 영묘사가 만들어 지는 과정에 영묘사에 화재사건이 발생하여, 삼국사기가 선덕왕 3년 635년에 영묘사가 완성되었다는 기사와 <삼국유사>의 3년 635년에 영묘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이중적인 기록이 나온 배경에는 <지귀요탑>과 <혜공의 이적>과도 관련이 있다고 했다. 영묘사가 1차 완성 시기는 선덕왕 3년이며, 이즈음 일어난 화재사건을 <지귀요탑>이 원인되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에서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선덕여왕이 김춘추와 문희를 연결시켜 준것이 아니라, 덕만이 공주시절 김춘추와 문희의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하였으며, <김유신의 불쑈>을 한 시기는 김춘추/문희 사이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의 출생일을 근거로 628년 이전에 벌어진 사건임도 증명하였다.

그럼 이들 사건들을 연표로 작성해 보자.
 
627년 11월 모란씨가 당나라로 부터 들어왔다.
628년 이전 김춘추와 문희를 엮어주어었다.
628~635년 사이 지귀심화(지귀요탑)에 의해 영묘사에 화재가 발생하여 혜공이 영묘사 사찰 일부를 보호하고, 진화되었다. 


 모란씨 사건과 <지귀심화> 사건들을 살펴 보면, 나이가 어리지 않으면 도저히 일어 날 수 없는 상황이 전개 된다. 대표적으로 <지귀심화>같은 경우 젊은 남자 지귀가 일반적으로 그동안 알고 있는 선덕왕 원년 632년에 45살 이상이 된 여자를 보고, <상사병>에 걸려 마음에 불이 일어나 자연발화(SHC) 상태로 까지 발전할 수 있는가 이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더 나아가 삼국유사에 의하면 영묘사에 화재가 발생한 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는 635년 영묘사가 완성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삼국사기를 따른다면 영묘사 화재사건은 635년 이후에 발생한 사건이 된다. 이때 덕만의 나이는 635년 선덕왕 4년으로 48세를 넘어야만 한다. 이는 더더욱 지귀의 화재사건이 성립될 수 없다. 물론, 요즘처럼 나이가 많지만, 젊음을 유지하는 연예인들이 있다. 이들을 보면 팔팔한 청춘에 불을 댕길만한 미모를 지니기도 했다.

불세출의 잉그리트 버그만이나, 엘리자베스테일러 등은 나이가 일정하게 먹고 나서도 황홀할 정도의 미모를 자랑했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경우 나이를 먹고, 젊은날의 모습을 깡그리 없애 버렸지만 말이다. 이처럼 나이를 먹고 미모를 유지한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어기는 것이다. 요즘처럼 성형기술이 뛰어나 성형을 하거나 보톡스를 맞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래도 달리는 세월을 잡을 수 없는게 자연의 섭리이다.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지껏 덕만이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고, 인정하는 이유는 다음 3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삼국사기의 선덕왕 원년 즉위할때의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다.
둘째는 신하들이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셋째는 동생이라고 추측되는 천명이 춘추를  603년에 낳았다.

핵심적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라는 것이다. 만약, 천명이 덕만의 동생이 아니고, 언니라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할머니(姑) 덕만이 아닌, 시어미(姑) 정도의 나이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증거를 잡는 과정이 지귀, 모란씨, 영묘사 건축중에 벌어진 화재 사건이다.

또하나는 천명이 덕만의 언니인지 동생인지 상관없이 왕위를 잇지 못한 이유중에 천명이 진평왕의 정비인 마야부인의 소생이 아니라면 어찌될까? 

  의심스런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다름이 아니라 김춘추가 왕이 될때 그의 가계 내력을 기록한 것이다.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 삼국사기 신라 춘추왕 원년
.
김춘추의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이라고 했다.

 

진평 계보도

우리는 덕만이 진평왕과 마야부인(복승의딸) 사이에 태어났고, 장녀라는 기록을 읽었다. 춘추의 기록을 살피고 우리는 감각적으로, 또는 단순히 천명과 덕만은 형제이겠거니 한다. 그러나 같은 어머니(동복)을 두었을까? 하는 의심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진평왕은 아들이 없다. 그러니 여러 부인들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설령 아들이 있다고 해도 후비를 여럿 두는 것은 왕실의 기본 상식에 속한다. 진평 또한 손씨인 승만을 후비로 두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천명이나 덕만을 마야부인의 소생으로 알고 있을까? 더불어 삼국유사에 나온 선화공주 또한 마야의 소생으로 만들었을까? 이 함정에서 벗어난다면, 어찌 될까?


진평은 천명의 어머니를 통해서 천명을 낳고, 마야부인을 통해서 덕만을 낳았다. 진평은 적통을 이을 후손을 보기 위해서 여러 부인들을 두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가장 일반적인 왕실의 살아가는 방법이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정식 왕후의 소생이 적통을 잇는다. 그리고 그 왕후와의 사이에 난 자식에게 대권이 넘어간다. 왕후가 아닌 후비사이에 태어난 왕자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왕후 사이에 태어난 적통왕자들이 없을 경우에 왕위계승권이 주어진다.

그러니 천명과 덕만은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열려 있다. 오히려 이복자매간일 가능성이 더 많다. 또한, 천명이 덕만보다 손위언니에 해당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기록 어디를 봐도 천명의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단지,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 으로만 나온다. 

 
진평왕(眞平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백정(白淨)이고 진흥왕의 태자 동륜(銅輪)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 만호부인(萬呼夫人)으로 갈문왕 입종(立宗)의 딸이다. 왕비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으로 갈문왕 복승(福勝)의 딸이다. 왕은 태어날 때부터 기이한 용모였고 신체가 장대하고 뜻이 깊고 굳세었으며, 지혜가 밝아 사리에 통달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진평왕

만약, 마야 또한, 왕후가 아닌 여러 후비 중의 일인 부인일 경우를 설정할 수 있으나, 마야의 아버지는 복승갈문왕이라고 했다.

<갈문왕>은 왕의 형제나, 왕후의 아버지나 미추나 지증이나 진흥이나 진평이나 춘추 같이 왕의 아들(왕자)로 태어나지 않고 왕이 되었을 때 자신의 아버지를 갈문왕으로 봉한다.

그러니 마야는 정식왕후에 등극한 것으로 봐야 한다. 정식 왕후의 후생인 덕만은 장녀일까? 아닐까? 삼국사기나 일반적인 왕실의 왕위계승과 순위를 정할때 장녀는 공식(정식) 왕후사이에 태어난 사람을 일컸는 경우가 많다. 천명의 어미는 정식왕후 였지만 후에 일찍 죽고 복승의 딸인 마야가 정식왕후가 되었다면, 왕위 승계서열은 현재의 왕후소생이 된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진평왕에게는 정비인 마야부인과 후비인 손씨 승만부인이 있었다. 승만 손씨에는 후사가 없었다고 하니, 천명은 승만의 소생은 아닐것이고, 또 다른 후비의 소생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진평이 죽은 후에 천명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용수.용춘이 생존하고 있었다. 충분히 선대의 선례에 따라서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용수.용춘은 왕위계승권에 없었다. 그러니 천명이 정비인 마야의 후손이 아님이 증명된다.

신라사회는 대체적으로 사위가 왕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덕만의 경우는 사위가 왕이 되지 않았다. 이는 덕만에게는 남편이 없었거나, 싱글인 상태였거나, 당시 남편이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덕만은 632년 왕위를 이은 634년에 비로서 '음갈문왕'과 결혼을 한다.

글쓴이는 합리적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사실을 바탕으로 천명과 덕만은 배다른 이복 자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춘추의 어미 천명을 기준으로 동복 자매라는 증거가 없는한 덕만의 나이를 추론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왕실의 상식에 벗어 난다.

이제 덕만이 진평의 뒤를 이어 왕위를 승계할때 나이는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덕만의 기록들을 지기삼사 중 첫번째인 <모란씨>와 <춘추, 문희 중매>, <지귀요탑>,<영묘사화재> 사건 등을 종합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나이 많은 여왕일 하등의 이유가 없어진다. 

<성조황고>의 <황고>를 들어서 덕만이 나이가 많지 않았을까 한다면? 현재의 기준으로 한다면 "맞습니다"라고 해줄만 하다. 하지만, 신라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덕만은 충분히 <황고>소리를 듣고도 남을 나이에 왕위를 계승했다.

우리는 자신보다 나이가 조금 어린 사람에게 농담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내가 만약, 첫사랑에 실패만 하지 않았어도 너만한 아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당시 신라 사회는 첫사랑에 실패할때 결혼하고,20대에는 나이에 자식을 한둘과 30대에는 손자.손녀를 두는게 상식에 속할때이니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초경이 지나면 성인이 되어 "결혼을 시켜야 겠다"하고, 불알에 털나면 "장가가도 되겠네"하는 상식을 지니고 있는 시대와 30대가 넘어도 결혼은 무슨 소리하며,  오히려 노처녀.노총각이라고 놀리면, 시대에 덜떨어진 사람 취급 받는 세대와는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우리 어머니 할머니 세대만으로도 10대후반에 결혼하고, 20대 초반.중반에 결혼하면, 만혼이며 노처녀 소리를 들었다. 우리 어머니도 26살 늙은 아버지와  20살에 결혼하셨다. 

이번에도 글이 늘어지고 길어졌다. 이번 편으로 덕만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늙은 할매로 권력을 잡지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결정타가 한 두편이 더 남아 있다.

다음편 예고는 삼국유사 왕력편에 기록된 덕만의 남편인 '음'갈문왕에 관한 포스팅을 할 것이다.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우리가 알고 있는 덕만의 나이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을 할 것이다.

또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와는 다르게 미실의 충복 칠숙과 석품이 왕위계승전에 뛰어든 이유를 설명할 것이다. 사실 미실이 죽은 606년에서 미실의 추종자로 설정된 칠숙이 반란을 일으키는 631년과는 너무나 떨어져 있지 않는가? 또하나는 칠숙과 석품의 반란을 진압한 세력이 진평왕으로 나오지만 실제는 덕만이 진압의 중추였을지 모른다는 것을 이야기하려 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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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hangadak.com BlogIcon 한가닥 2009.07.25 0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상에서는 쌍둥이 자매로 나오던데 ..드라마는 약간의 비현실도 존재하니까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5 09: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비현실성..

      일부러 화랑세기는 인용하지 않았음..

      화랑세기 읽으면 읽을수록 대단한 책 같아요..ㅋㅋ

      천명이 언니다.. 나이차이는나오지 않았지만..

      박창화가 지었다면 대단한 천재같아요..

  2.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5 09: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인 관점...
    보면 볼수록 흥미진진합니다 ㅎㅎㅎ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0: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제가 봐도 흥미진진 하긴합니다..

      IT세상이 된후.. 더 쉽게 연구를할수 있어요..

      검색이 되니..

      예전에는 어떻게 연구를 했을까 생각하니..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심이 우러나와요..

      그래서 단편적인 것도 있겠고 오류가 있을 확율이 있겠지만..

  3. 2009.07.25 1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심전심이 맞을것 같음..

      그래서 베스트 선정은 전적으로 다음측에서 해야 한다고 봐요.. 열린편집자 제도 폐지하고..

      이시간에 올리면 조회수가 안나와요.. 몇번 실험을 해봤지만, 이시간에 다음 편집자가 저랑 코드가 맞지 않는 모양입니다.. ㅠ.ㅠ.

      대부분 아침에 올린글이 저녁이나 되어서 베스트 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ㅠ.ㅠ.

      벌써 3건정도..

      저녁타임에 저랑 코드가 맞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음..

      3교대라면.. 어쩌면.. 잘봐준 분이 베스트관리자 일수도..

    •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5 12: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는 말씀 같아요...
      와인이야기...
      오전 10시에서 12사이 올리면
      냉큼 베스트 오르는데,
      그 이외시간 올리면 잘 안오르다
      다음날 보면 올라가 잇더군요 ㅎㅎㅎ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7: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왜 다음 편집자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신세가 되었는지.. 난감..

      알아서 기어야 하낭..

      그래서 제가.. 개정된 미디어업 통과를 반대합니다..

      저 같은 경우도 밥과 연관이 없는데도 눈치를 살살보는 것 같은데..

      밥이 걸려있는 기자들은 어떻겠어요.. 현재도 충분히 많이 눈치를 보고 있는데.. 광고주를..

  4. 2009.07.25 1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Favicon of http://blog.daum.net/wlalsdl1 BlogIcon 아르테미스 2009.07.25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그냥 재밌게 보고 있어요~ㅎㅎ

    갓쉰동님~ 뵐수록 대단한데요~
    어찌 이 어려운 내용들을 ^^;;

    즐겁게 주말 보내세요~

  6. 역사맨 2009.07.28 0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너무 잘 읽었습니다.
    이복동생일 가능성도 있군여
    제가 천명공주를 백과사전에 검색했었는데
    이렇게 나오더군여
    (신라 진평왕과 마야왕후 김씨의 딸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그녀가 차녀라고 하고 《화랑세기》에는 그녀가 장녀라고 하여 어느 쪽이 맞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선덕여왕과 친자매간임은 분명하다. 그녀 역시 진평왕의 왕위를 계승할 권리가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자매인 덕만이 총명했던 탓에 왕위를 양보해야만 했다)

    그리고 또 여기에서는
    <화랑세기>의 13세(世) 용춘공 기사에서는 선덕공주(덕만공주) 위에 천명공주가 있었다고 알려주고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적자가 없는 진평왕이 처음에는 금륜왕(진지왕)의 아들인 용수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그를 천명공주와 결혼시켰지만, 나중에는 선덕공주가 왕위를 이를 만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판단되자 천명공주에게 지위를 양보하도록 권유했다고 한다.
    출처 : 오마이뉴스

    위에 두글을 봤을때 화랑세기에 천명공주와 용수에게도
    계승권이 있었다는거 아닌가여?
    그렇다면 이복자매일 가능성도 줄어들게 되고?

  7. Favicon of http://fiat.gruposinal.com.br/concessionaria-fiat BlogIcon concessionaria fiat 2012.04.26 05: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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