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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

'선덕여왕' 원작자 "독도는 일본땅" 주장하나? 독도는 삼국시대 신라 장군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키므로 해서 부속도서인 독도까지 신라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울릉도 원주민의 생각과는 다르게 어찌되었던 신라의 땅이 되고, 신라가 고려에 복속이 됨으로서 울릉도와 독도 또한 고려의 영토가 되었다. 이런 전차로 조선을 이어 대한민국이 될때 까지 울릉도와 독도는 대한민국의 땅이다. 그래서 일본이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 땅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 신라장군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키지 않았다면 어찌될까? 또는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켰다는 기록을 없었다면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미 잘 알려진 일이고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에 반하는 이야기를 할.. 더보기
선덕여왕 역사왜곡에 자유로울까? 사실은 드라마 선덕여왕 32회에서 진지왕은 삼한일통의 염원이 담기 국사의 기록을 삭제하고, 불살라 버린다. 이에 반대한 이사부와 거칠부가 미실과 결탁을 한것으로 처리를 했다. 이로서 거칠부는 진지왕이 진흥왕의 유업인 삼한일통을 계승할 뜻이 없음을 알게 된다. 거칠부는 이사부와 노리부와 함께 진지왕을 폐위하는데 미실의 뜻에 동의를 한다. 거칠부와 이사부는 삼한일통의 꿈을, 미실은 황후의 꿈을, 문노는 풍월주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한마디로 미실과 거칠부/이사부 문노는 동상이몽을 꿈꾼것이다. 선덕여왕을 보다 보면 어디선가 본듯한 데자뷰 같은 내용들이 참으로 많이 나온다. 진지의 분서와 역사의 훼손은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떠올린 글쓴이 만은 아닐 것이다. 비담의 화형식 장면은 김유신이 자신의 누이인 문희를 화형에 처.. 더보기
선덕여왕은 사극판 트루먼쇼 덕만의 뿌리찾기에 이은 비담의 뿌리찾기 선덕여왕 31회에서 문노와 소화의 대화를 들은 비담은 자신이 덕만과 결혼할 수 있었던 사실을 엿듣게 된다. 공주와 결혼할 수 있는 신분이라면, 비담은 자신의 출신성분이 낮은 천민이나 평민계급이 아니라는 사실을 감각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32회에서 비담은 문노를 찾아가 두번째 문제는 무엇을 낼것인지 궁금하다고 한다. 비담이 문노를 찾아간 목적은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묻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 주저하며 그저 비재의 이야기를 한다. 누구나 부탁을 할때 일상적인 문제부터 꺼낸다. 오늘 날씨 좋지? 또는, 요즘 건강은 어때? 등 자신의 속내를 주변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면서 비담은 화랑이 되고 싶다고 한다. 화랑이 되기 위해서는 출신성분을 알아야 한다. 귀족.. 더보기
보과와 법흥 그리고 진흥왕은 천수를 누리지 않았다. 백제와 신라의 결혼동맹(?)은 4번에 걸처 있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자세한 사항은 이전에 포스팅한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에는 나오지 않는 백제와 신라 결혼, 서동과 선화공주 그리고 를 참조하길 바랍니다. 여기서는 법흥(원종)과 보과공주의 사랑인데, 보과공주는 과연 백제의 어느왕의 자식인가에 대해서 논의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니 동성왕녀은 아닐것이라는 암시를 했었습니다. 첫번째 법흥(원종과 보과공주) 첫 결혼의 첫테이프를 끊은 사람은 법흥(원종)과 동성왕녀 보과공주, 일단 보과공주라고만 하자. (3세) 모랑(毛郞)은 남모의 아우이다. 이에 앞서 법흥대왕이 국공(國公)으로 백제에 들어가 보과공주(宝果公主)와 더불어.. 더보기
이차돈은 김씨일까? 박씨일까? 이차돈에 대한 고사는 삼국사기 신라 법흥왕14년(527년)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는 과정에서 이차돈의 순교로 인해 신라의 불법이 왕성하고 신라 왕권의 강화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차돈(염촉,염도)의 가계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삼국사기는 성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삼국유사는 씨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고 그이 세계를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를 인용하고 아도비의 기록을 인용하고 있지만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이나 그 당시까지 전해진 기록을 상고했을 때 박씨라고 기록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단 삼국사기의 기록과 삼국유사의 기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5년(528) 불교를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일찍이 눌지왕 때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고구려로부터 일선군(一善郡)에 왔는데, 그 고을 사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