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갓쉰동 꿈꾸는 삶

월야(주상욱) 월광태자의 장자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복야의 수장 월야(주상욱)을 대가야의 마지막 왕이라고 알려진 이뇌왕의 아들인 월광태자(도설지왕)의 적자이자, 장자라고 한다. 그렇다면 월야의 아버지인 월광태자는 누구의 자식일까?  삼국사기의 기록을 우선 따라가 보자.

9년(522) 봄 3월에 가야국 왕이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였으므로, 왕이 이찬 비조부(比助夫)의 누이를 그에게 보냈다. - 삼국사기 신라 법흥왕 9년 522년

이 당시 대가야의 왕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단지, 비조부의 누이랑 결혼했다는 기록이다. 그런데, 이 비조부의 이름이 심상치가 않다. 비조부는 화랑세기에 문노(비조부/문화)의 아버지로 기록하고 있다.

그래도 정확히 대가야의 왕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통설에 의하면 이때의 왕의 이름이 대가야 9대 이뇌왕이라고 한다. 또한, 월광태자가 이뇌왕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만약, 월광태자가 이뇌왕과 비조부의 누이 사이에서 태어났다면 화랑세기 전하는 문노(비조부/문화)와는 사촌간이 된다.

비담(김남길) 580년생

알천(이승효) 577년생

그런데, 삼국사기를 봤을 것으로 생각되는 신동국여지승람에는 최치원의 석이정전을 인용해 이찬 비조부의 누이가 아니고 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문제는 562년 대가야가 이사부와 사다함에 멸망할 때 마지막 왕은 16대 도설지라고 알려져 있다. 월광태자는 9대 이뇌왕의 아들이라고 하고 있다. 그래서 통설의 절충안이 월광태자가 대가야의 16대 도설지 일것이라고 전한다.

그러니 도설지가 즉 월광태자가 된다는 뜻이다. 문제는 562년 도설지가 항복하고 낳은 아들이 월야가 된다고 해도 드라마 선덕여왕의 시대적 배경이 610년 전후이니 월야의 나이는 40대 후반이 된다. 그런데 유신과 비슷한 또래이고, 비담(579년생)과 비슷한 또래로 설정했다. 사실, 비담과 알천(577년생)과 비슷한 또래이고, 유신(595년생)만 붕떠 있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잘 봐주어서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3번째 아들 무력이 진흥왕의 딸인 아양과 결혼해서 서현을 낳았듯이, 도설지(월광태자)가

유신(엄태웅)595년생

신라에 귀부해서  왕족인 공주와 결혼하여 도설지 말년에 낳았다고 한다면 이해 해줄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 역사에 대한 문외한인 선덕여왕의 작가의 상상력으로는 대가야의 마지막 왕이라고 알려진 비운의 왕 월광(도설지)을 선덕여왕에 엮어보고자 하는 단순한 이유로 월야라는 인물을 창조한 것 같다.

복야회의 장군인 설지의 나이 쯤으로 월야라는 인물을 창조했다면 그나마 이해하고 갈만하지 않을까? 물론, 통설과 다르게 도설지와 월광태자가 다른인물이고, 도설지의 비운의 아들이라면 충분히 월야를 월광태자의 아들로 창조할 수 있다. 사실 태자면 태자고, 왕은 왕인것이다. 그러니 월광태자가 도설지 왕이라고 하는 통설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는 대가야의 복야와 멸망을 어떻게 기술하고 있을까?

화랑세기는 대가야의 멸망을 1차와 2차로 구분하고 있다. 첫번째는 이뇌왕 이전의 대가야가 1차 망하고, 이뇌를 북가야의 왕으로 삼고, 문노의 고모인 즉, 아버지인 비조부의 누이인 양화공주(호조/선혜)를 처로 삼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1차 대가야가 망한 때가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522년 이전에 해당한다. 금관가야가 534년 신라에 복속하기 한참전에 이미 대가야은 망했던 것이다.

300

8대 풍월주 문노(전호빈) 538년생

이뇌(異腦)를 북국왕(北國王)으로 삼고 양화공주(兩花公主)를 처로 삼게 하고, 청명(靑明)을 남국왕(南國王)으로 삼았다. 얼마 되지 않아 이뇌의 숙부인 찬실(贊失)이 이뇌를 내쫓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 때 호조공(好助公)이 가야에 사신으로 가서 책망하였다. 이보다 앞서 찬실은 야국왕의 사위가 되었는데, 문화공주는 생각하건대 틀림없이 찬실의 딸일 것이다. 처음 호조공의 첩이 되었는데, 비조부공과 더불어 몰래 통하여 공을 낳았다.

- 화랑세기 8세 풍월주 문노

그런데 화랑세기는 문노의 출자에 대해서 이뇌왕의 숙부인 찬실이 이뇌왕을 축출하고 왕위에 올랐다. 찬실왕은 야국왕의 사위로 문화공주를 낳는다. 이 문화공주가 처음에는 호조와 관계를 하였으나, 문노의 아버지인 비조와 관계하여, 538년 문노를 낳았다고 화랑세기 8세 풍월주(579~582)에 기술하고 있다.

557년 진흥왕 개국7년 국원에서 나갔고, 또 북가야를 쳤다.

문노는 557년 20살의 나이로 반란을 일으킨 국원의 북가야를 쳤다. 이때의 대가야의 국왕은 누구였을까? 찬실이였을까? 아니면 이뇌왕의 아들이라고 알려진 월광이였을까? 아니면 16대 도설지 였을까?

이때의 기록을 삼국사기는 단순히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18년(557) 국원(國原)을 소경(小京)으로 삼았다. 사벌주(沙伐州)를 폐하고 감문주(甘文州)를 설치하여 사찬 기종(起宗)을 군주로 삼았으며, 신주(新州)를 폐하고 북한산주(北漢山州)를 설치하였다. - 삼국사기 진흥왕 18년 개국 7년


또 하나 드라마 선덕여왕에는 아직 등장하지 않은 칠성우 중의 일인이며 16대 보종에 이어 풍월주에 오른, 덕만과 같이 칠숙의 난을 평정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염장에 대한 기록이 흥미롭다. 어짜피 덕만이 칠숙의 난을 평정하고 왕위를 오를려면 염장이 등장할 수 밖에 없다. 비담(김남길)이나 춘추(유승호)의 등장보다 염장이 언제, 어떠한 모습으로 등장할까 자못 궁금해진다.

아버지 천주공은 진흥대제의 아들이다. 그 어머니는 월화궁주(月華宮主)로 가야 이뇌왕(異腦王)의 딸이다. 곧 우리 양화공주(兩花公主)의 딸이다. 진흥의 소비로 들어가 천주공을 낳았다. - 화랑세기 17대 풍월주 염장(586년생)

임종(강지후)호국선도 서현.천주와 비슷한 또래

문노는 이뇌왕을 물리치고, 왕위에 오른 찬실의 딸인 문화공주의 자식이고, 염장은 이뇌왕의 딸인 월화의 손자가 된다.
재밌는 내용은 드라마상 용춘(도이성)과 을제의 수하로 나오는 임종(강지후)은 염장의 아버지인 천주(진흥/월화)를 풍월주에 오르게 하고, 유신의 아버지인 서현을 부제로 하여 화랑을 가야파로 만들려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임종은 용춘과 서현과 비슷한 세대를 살았던 인물이 된다. 아마도 577년생인 알천과 비슷한 나이가 아니였을까?
 
전설로는 월광사가 월광태자를 기리는 사찰로 알려져 있다. 또한, 550년경 세워진 단양적성비 상에 급간지로 나오며, 561년 창령진흥왕 순수비에는 사척간으로 금석문상에 기록된 동일인물이라고 한다면, 대가야의 마지막 왕 도설지는 562년 이전 진흥왕시기에 신라의 직위를 받는 신하가 된다. 그렇다면, 도설지는 가야의 왕자로 신라에서 숙위나 인질의 성격이 강했을 수 있다.

만약, 화랑세기가 신라 당대의 기록이라면 이뇌왕의 뒤를 522년경 찬실이 왕위를 찬탈하고, 정확히는 대가야 복원이겠민지만,  551년 이전 가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561년~562년 전후에 도설지가 16대 대가야 마지막 왕위에 오른 다음 신라에 대한 독립을 전개하다. 562년 완전히 대가야는 종말을 봤다고 할 수 있다.
 
562년 9월에 가야가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왕이 이사부에 명하여 토벌케 하였는데, 사다함(斯多含)이 부장(副將)이 되었다. 사다함은 5천 명의 기병을 이끌고 앞서 달려가 전단문에 들어가 흰 기(旗)를 세우니 성 안의 사람들이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사부가 군사를 이끌고 거기에 다다르자 일시에 모두 항복하였다. - 삼국사기 진흥왕 23년 562년

삼국사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가야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가야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말은 562년 이전 이미 신라의 속국의 위치에 있었다는 반증이다. 그러니 위서던 아니던 상관없이 화랑세기는 이를 간파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어찌되었던 월광태자는 522년이전 1차 대가야 멸망시기 8대왕의 아들이 될 수도 있고, 9대 이뇌왕의 아들이 될수도 있고, 10대 찬실의 아들이 될수도 있고, 찬실과 도설지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가실왕의 아들일 수도 있다. 마지막 16대 도설지 왕의 아들도 될 수 있다. 삼국사기와 신동국여지승람과 금석문을 종합해 본다면, 월광은 9대 이뇌왕의 아들로 신라에 귀부해서 살다가, 그의 후손인 도설지가 561년 즈음 해서 대가야 16대 왕위에 올랐다고 보는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다. 

일본서기를 보면 기존 통설과는 다르게,  대가야 멸망과 복야운동이 전방위적으로 벌려지고 있고, 삼국사기와 금석문과 일치 하는 기록들이 보인다.  추후 기회가 된다면, 일본서기에는 대가야가 어떻게 복야운동을 벌렸는지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다.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8.24 08: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닉넥임이 바껴서 처음엔 누군지 몰랐는데, 제목을 아하 했답니다. 갓쉰동님..ㅋㅋ
    그러면서 지난 번에 닉네임 변경 예고를 했던 기억이 나더군요.
    사실 가야사에 대해선 잘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복야운동도 드라마 때문에 알게 되었고,
    가만히 생각하면 우리 역사에서 가야가 다소 축소되어 있다는 느낌도 들어요.
    오늘도 행복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4 1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헉 닉을 바꾼다고 일주일전에 광고를 했는뎅..

      역시 닉을 바꾸니 예상한 대로 관심이 없군요..
      일종의 실험이였는뎅..

      글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닉을 보고 있는가? ㅋㅋ

      암튼 처참하군요.. ㅠ.ㅠ.;;;

  2. Favicon of https://myahiko.tistory.com BlogIcon 무량수won 2009.08.24 08: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글 모두를 보진 않았지만 논조가 점점 그래 니들이 화랑세기를 중심으로 썼다면, 화랑세기를 역사로 생각하고, 이야기해주마~ 뭐 이런 느낌으로 변하시는 것 같은데 맞는 건가요? ^^;;

    뭐 화랑세기가 역사니 아니니 하는 논쟁은 불필요 하다고 보고 있구요. 다만 역사와 비교해서 드라마를 읽는 다는 점에서 대단하시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저는 월야를 보면서 갑자기 왠 마의태자가 나오나 싶었습니다. 느낌이 그렇더라구요. ㅡㅡa

    잘 읽고 갑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4 10: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처음 부터 그랬는데용.. 역사이야기를 드라마에 접목..

      단,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삼았으니 화랑세기를 근거로 제시하는 정도.. 그안에서 역사를 찾자는 취지였습니당..

      사람들이 역시 공부를 무시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당.. ㅋㅋ

    • Favicon of https://myahiko.tistory.com BlogIcon 무량수won 2009.08.24 12: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확실히 직접 찾아보는 것에 대해서 싫어라 하긴 하지요. 저 또한 그런 편이구요. 그래서 전문가의 말이 잘 먹혀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ㅋㅋ

      그렇다고 저는 사람들이 공부를 싫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려구요. 분명 내가 재미나게 혹은 열심히 살펴보는 면이 있다면, 다른 사람도 그러한 부분이 있을 테니까요. ^^ 모두가 같은 지식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먹고 살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ㅋㅋ

  3.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24 11: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야 역사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화랑세기에 나온 가야의 인물들은 여전히 복잡하군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4. 2009.08.24 1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24 13: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오.. 월야는 일종의 창조된 인물인건가요? 처음 나올때부터 느낌이 좋았던 .. ^^
    발로 활을 쏘는 비담사진은 자주 출연하네요 ㅎㅎ

  6.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7.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신라사회를 재현을 목표로 만들어진, mbc 명품 사극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천명을 당나라가 서기전, 수나라 시기인 618년 이전에 죽은 것으로 설정하였다. 그렇다면, 실제 기록에는 천명은 언제 죽었을까? 결론을 말하면 언제 죽었는지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공히 기록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들 기록들을 토대로 언제까지 살아있었는 지는 유추해 볼 수 있다.  일단, 현존 화랑세기의 기록을 토대로 천명이 언제까지 살아있었는지를 추적하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서 천명이 언제까지 생존해 있었는지를 추적해 볼 생각이다. 이전 시리즈 글을 본사람이라면 천명이 언제까지 살아 있었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화랑세기에 기록된 천명의 수명

화랑세기의 13세 풍월주 용춘 (596~603)의 기록에 의하면 용춘이 한때 덕만의 남편으로 생활했던 632년 까지도 천명은 생존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용춘이 70세로 죽었다는 647년 선덕왕 말년까지도 천명은 생존해 있었다. 그럼 이를 따라가 보자.

선덕은 이에 정사를 을제에게 맡기고 공에게 물러나 살기를 허락하였다. 공은 이에 천명공주를 처로 삼고 태종을 아들로 삼았다. - 화랑세기 용춘

선덕여왕 원년(632) 2월에 대신(大臣) 을제(乙祭)로 하여금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선덕여왕 원년

선덕이 정사를 을제에 맡기는 때는 632년 즉위 초년이다. 이때 비로서 용춘은 천명을 공식적인 처로 삼고, 30살인 춘추(603년생) 를 아들로 삼았다.

공은 만년에 거문고와 바둑을 즐겼다. 천명(天明)·호명(昊明) 양궁과 더불어 산궁(山宮)에서 술상을 차려놓고 바둑을 두고 거문고를 탔다. 태종은 효성을 극진히 하여 안락하게 모셨다. 태화(太和) 원년(647) 8월 세상을 떠나(薨)니 수가 70살이었다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용춘은 647년 8월 70살에 세상을 떠났지만, 말년인 647년 8월까지도 천명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화랑세기는 여기서 기록이 사라진다. 하지만 천명은 용춘이 70살로 죽은 이후에도 죽었다는 기록이 없다. 천명은 아마도 춘추가 즉위하던 그 순간까지도 살아 있었던 것으로 추측 된다. 그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전하는 천명의 기록을 살펴 보도록 하자.

삼국사기.삼국유사가 전하는 천명은 언제 죽었나?

그럼 천명은 정말 덕만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죽은 것일까?

삼국사기의 김춘추가 654년 3월 왕위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은 4월에 자신의 죽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명예왕과 태후직을 올린다.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의 아들 이찬 용춘(龍春)<또는 용수(龍樹)라고도 하였다.>의 아들이다.<당서(唐書)에는 진덕의 동생이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어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은 진평왕의 딸이고, 왕비 문명부인(文明夫人)은 각찬(角湌) 서현의 딸이다.
- 삼국사기  654년 신라 29대 춘추 출자설명

원년(654) 여름 4월에 왕의 죽은 아버지를 문흥대왕(文興大王)으로 추봉(追封)하고 어머니를 문정태후(文貞太后)로 삼았다.  - 삼국사기 29대 춘추 654년 여름 4월

어떤가? 603년 생인 춘추가 654년 52살에 왕위에 올랐을때, 아버지 이찬 용춘(용수)는 이미 죽어 있어서 추봉한 것이고, 어머니 천명은 아들인 춘추가 왕이 되었기 때문에 문정태후가 된것이다. 이때 천명의 나이는 대략 65~68세 정도로 추측된다.  당시의 기준으로 하면 천수를 다하여 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천명도 "추봉"이란 용수(용춘)의 기록을 근거로 죽지 않았는가? 하는 분이 계신다. 하지만 만만의 꽁떡이 되시겠다. 위의 즉위초년 기사의 원문을 살펴보면, 천명은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을 살아 생전에 보았음이 확실하다. 

일단 잡설로 김부식은 "
당서의 진덕왕의 동생이란 기사는 잘못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진덕왕의 동생이 맞다. 일단, 국반은 용춘과는 사촌간이다. 그러니 진덕과 춘추는 육촌간이 된다. 당서의 기록에는 진덕이 춘추보다 나이가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진덕은 603년 이전 생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건 논외로 치고, 다음 기회에 이와 관련된 포스팅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천명이 춘추가 왕위에 오를때 이미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따라가 보자. 일단 한자 원문을 보기로 하자.

元年 夏四月 追封王考爲文興大王 母爲文貞太后 추봉왕고위문흥대왕 모위문정태후

고(考)와 부(父), 비(妣)와 모(母)의 차이

고(考)는 죽은아버지를 말한다. 그런데 모(母)는 생존한 어머니를 뜻한다. 만약, 죽었다면 모(母)대신에 비(妣), 죽은 어머니 비(妣)를 써야 한다.

물론,  제사를 지내는 지방에 표현하는 것이니, 당시에 죽은 아버지는 (考)로 쓰고, 죽은 어머니를 모(母)로 썼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원문 해석상에 '<추봉왕고>위<문흥대왕>' 이고 ,'<모>위<문정태후>'이다. <추봉왕고>와 <모>는 서로 대응하고 <문흥대왕>와 <문정태후>은 서로 대응한다. 그러니 추봉된 죽은 아버지(용수.용춘)는 문흥대왕으로, 어머니(천명)는 문정태후로 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자세히 읽어 보면 <죽은 추봉왕>이다. 이미 한번 왕으로 추봉 되었음을 짐작해 한다. 그래서 삼국유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대왕으로 추봉되기 전에 무슨왕으로 추봉된것일까?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 삼국유사 29대 춘추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이찬 용수.용춘의 아들 이라고 했다. 그런데 삼국유사는 '용수(용춘) 각간'으로 추봉된 문흥대왕의 아들이라고 하고 있다. 물론, <용수각간으로 추봉된>으로 끊어 읽느냐 아니면 <용수(용춘)각간으로>, 추봉된 문흥대왕에 따라서 해석상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는 각간의 밑인 <이찬>이고, 삼국 유사는 <각간>으로 나온다. 그러니 <이찬>에서 <각간>으로 추봉되었다고 볼수 있다.

문제는 문흥대왕으로 추봉하기 전에 이미 한번<추봉왕><고><위><문흥대왕>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죽은아버지(고) <추봉왕>을 <문흥대왕>으로 했다.

신라는 왕의 아랫단계인 <갈문왕>이란 제도(?)를 두고 있었다. 그러니 최소한 갈문왕이나 문흥대왕이 아닌 용수대왕이나 용춘대왕이지 않았을까? 그건 이름이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 진다. 용춘이 이름이였다면 용수갈문왕이였을 것이고, 용수가 이름이였다면 용춘갈문왕이였을 것이다. 단지 용수갈문왕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건 용수.용춘이 동일인물일때의 가정이다. 동일인물이 아니라면? 다른 이름이지 않았을까? 어떤 대왕이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삼국사기에의하면 문흥대왕 이전에 이미 <추봉왕>이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죽고나서 용춘이 <갈문왕>으로 추봉되었다고 한다. 화랑세기는 용수와 용춘을 서로 다른 사람으로 기술하고 있다. 용수가 먼저 죽고, '용춘은 647년 8월 선덕(덕만)왕이 죽은 같은 달에 70살로 죽었다'고 한다.  
화랑세기에는 용춘이 629년 낭비성 전투의 공적으로 각간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각간->갈문왕->문흥대왕이 된다. 이래서 화랑세기를 함부로 위서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할수가 없다.

그런데 용수는 살아생전에 이미 이찬에 있었다. 그러니 각간->갈문왕->문흥대왕으로 추봉 되었음직하다.

이대목이 용수와 용춘이 한사람이냐? 서로 다른 사람이냐를 가르는 갈림길이다. 이에 관해서는 별도로 포스팅을 할 예정이다.
* <추봉왕>처럼 하나로 묶을것인지, <추봉>,<왕>으로 추봉과 왕을 끊어서 해석할 것인지는 논의가 더 필요하다.

결론  고비. 부모의 차이를 안다면

고(考)와 부(父), 비(妣)와 모(母)의 차이를 안다면 춘추가 왕위에 오른 654년 이전 천명이 죽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춘추가 왕이 되었을 때 아비인 용춘(용수)는 죽었고(考), 어미인 천명은 살아 있었다(母)는 사실이 중요하다.
춘추의 어머니인 천명은 춘추가 왕이 되는 영광을 살아 생전에 봤다는 데는 별다른 하자가 없다. 하지만 천명이 언제 죽었는지는 모른다.  585~588년 생으로 추측하는 천명은, 654년 67~70세 에도 생존하고 있으니 당시 신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천수를 누리고, 만수를 누렸다고 할 수 있다.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3.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4.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Pussy Porn 2012.07.14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되시겠다. 위의 즉위초년 기사의 원문을 살펴보면, 천명은 아들이

  5. Favicon of http://nextgenerationpestcontrol.com BlogIcon Green Pest Control - Next Gen 2012.09.05 0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잔 테크니컬 평창홍보관에서 김연아를 보려고 아무리 많이 몰려오고 김연아와 사진을 찍으려고 하던 상관이 없다는 말이

  6. Favicon of http://nextgenerationpestcontrol.com BlogIcon Green Pest Control - Next Gen 2012.09.05 0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잔 테크니컬 평창홍보관에서 김연아를 보려고 아무리 많이 몰려오고 김연아와 사진을 찍으려고 하던 상관이 없다는 말이

  7. Favicon of http://www.free-brazzers.com/ BlogIcon Brazzers membership 2012.09.08 0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메시지 또는 다른 이름을 올려 놓을 수 있도록 명함은 일반적으로 각 장에 인쇄됩니다. 즉, 사용자의 이름에 대한 몇 가지를 사용하여 미니 브로셔에 대해 다른 시트를 사용합니다.

  8. Favicon of http://www.dresshope.co.uk/wedding-dresses/informal-wedding-dresses/prom-weddi.. BlogIcon Prom Wedding Dresses 2012.09.11 1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유 주셔서 감사합니다

  9. Favicon of http://www.saucylondon.com/ BlogIcon london escorts 2012.09.19 1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술은 어떤 방식으로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는이 물건으로 우리의 의존을 제한해야합니다.

  10. Favicon of http://www.jaysxlist.com/ BlogIcon montreal escorts 2012.10.02 1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보가된다는 것은 느낌 좋은 것입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과 비교 될만큼 할 수 있다는 보여줍니다.

  11. Favicon of http://blogskinny.com/ BlogIcon Laverne 2012.10.06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종의 관행적인 형태이니 이해하다고 하더라도 타 선수의 점수를 깍는 방법으로 진행되고, 완벽하다고

  12. Favicon of http://www.fashion-pascher.org/23-lacoste BlogIcon Polo lacoste 2012.10.24 2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이름을 올려 놓을 수 있도록 명함은 일반적으로 각 장에 인쇄됩니다. 즉, 사용자의 이름에 대한 몇 가지를 사용하여 미니 브로셔에 대해 다른 시트를 사용합니다.

  13. Favicon of http://bobstumpel.blogspot.com/2007/09/branding-20-domain-extension.html BlogIcon how to install electric dog fence 2012.11.14 1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니들도 그사람처럼 하던가 남들 다해놓은것만 빨아놓을려고 와이게 어디서온근성이야~

  14. Favicon of http://eavesgoss.com/blog/view/381/how-to-deal-with-emergency-food-products BlogIcon peanut flour allergy 2012.11.21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 관행적인 형태이니 이해하다고 하더라도 타 선수의 점수를 깍는 방법으로 진행되고,

  15. Favicon of http://www.cheaphelmetsonlineshop.com/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이름을 올려 놓을 수 있도록 명함은 일반적으로 각 장에 인쇄됩니다. 즉, 사용자의 이름에 대한 몇 가지를 사용하여 미니 브로셔에 대해 다른 시트를 사용합니다.

  16. Favicon of http://hazelespaza.multiply.com/journal/item/4/Endurance_Kits_-_Build_Your_Per.. BlogIcon food storage buckets home depot 2012.12.19 2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라리 성폭행한 성폭력범을 사랑한다는 말을 믿고 싶을 정도이다. 매맞는 아내가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얼척없기는 마찬가지 이지만 말이다

  17. Favicon of http://orangestorgaard1.onsugar.com/Lock-up-Dried-up-Foods-What-you-must-Conte.. BlogIcon survival food kits canada 2013.01.05 2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홍석의 입장에서 보면 복수를 하였으니 여한이 없다고 할수도 있다. 더불어 강동윤의 죄악을 투표로 심판한 국민들이 현실과는 다르지만, 권선징악에 해피앤딩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18. Favicon of http://www.techsling.com/2012/11/how-to-access-all-blocked-websites-with-ease/ BlogIcon access blocked websites with a VPN 2013.01.24 0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그냥 정보와 귀하의 웹 사이트를 주셔서 감사 드리고 싶습니다,이은 간단하지만, 좋은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내가 언제, 내가 좋아하는, 내가 오늘 뭔가를 배운 보았다! 감사

  19. Favicon of http://miami-beachcondo.blogspot.com BlogIcon miami beach condo 2013.02.17 1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사이트의 기사는 매우 유익하고 유용합니다. 더 많은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이 사이트를 방문 돌아 오는하겠습니다.

  20. Favicon of http://activerain.com/lhaizza BlogIcon Activerain 2013.02.26 1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매우 유용한 정보를 찾을 수 다행. 이 사이트는 끝내 주거든요.

  21. Favicon of http://www.backsizes.com/ BlogIcon website 2015.05.07 1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홈 아름답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나오지 않는 진평왕의 아들들에 관한 글이 될겁니다.

칠숙,비담,흥원이 반란을 하는 이유

진위 논란의 한가운데 있는 <화랑세기>에는 진평왕에게는 최소한 4명의 아들들 즉 왕자들이 보인다. 이들 왕자의 후손들 중에 681년 흠돌 반란에 동참이 아닌 주도적으로 정통성 회복을 시도한 인물도 있다. 이때, 김유신과 김흠순 가문도 이에 연루가 되어 역사에서 사라질뻔한 위기를 겪는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김유신이 김미추의 능에 나타나서 쇼를 하는 바람에 위기를 넘기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다고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의 기사가 될 것이다. 

이번 글은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칠숙이 반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송고한 기사의 반란 수괴들 시리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200
특정 집안이 반란에 연루가 되면 해당 집안은 쑥대밭이 될뿐만 아니라, 반란에 연루된 일가친척 구족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반란세력의 집은 허물고, 물을 채워 연못(늪)으로 만들어 버린다.

혹시, 집 주위에 전혀 연못이 있을 자리가 아닌데 연못이 있다면 한번의심을 해보시라. 혹시 연못터에 반란의 수괴가 살았던 적이 있는지? 예전 <처선>에 대한 이야기를 꾸민 사극을 SBS에서 했을 것이다. 반란에 연루가 되지 않았지만, 연산군에 의해서 처선의 집이 연못으로 바뀌었고, 처선의 이름자가 들어간 관청까지 개명을 하는 사례가 있었다. 

드라마 사극 <선덕여왕>에는 반란에 연루된 몇몇이 등장하여 극의 재미를 높이고 있다. 첫번째는 미실의 충실한 충복이며 터미네이터 같은 <칠숙>이다. 칠숙이 반란을 일으킨 631년는 진평왕의 말년이며,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 632년 바로 전해이다. 

칠숙이 반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선택을 하게 만든 이는 진평왕이고, 칠숙은 반란에 실패해서 기록이 망실되어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최근 <선덕여왕>에서 미실과 진지(금륜)사이에 태어나 비련한 어머니 미실에 의해서 버려진 <비담:김남길>이 그동안 알고 있었던 등장인물들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카리스마 넘치게 등장하였다. 비담에 관련된 글은 [역사이야기] - 카리스마 비담, 미실이 버린 아들? 사실은 과 [역사이야기] - 미실 아들, 용춘 동생, 카리스마 비담의 또다른 비밀 를 참조하기 바란다.

역사에 기록된 비담은 반란을 일으키는 647년에 상대등의 직위에 있었다. 하지만 이런 비담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군지 전혀 기록되지 않았다. 단지, 칠숙이나 비담은 신라의 최고위 관료인것으로 미루어 왕실의 최측근 인물임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진평왕의 아내들

그럼 진평왕의 아들이지만,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에서 사라진  인물들을 화랑세기는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 지 살펴보자.  화랑세기에도 <칠숙>이나 <비담>에 관한 기록을 찾아 볼 수는 없다. 단지, 화랑 출신들이 칠숙과 비담의 난을 제압했다는 기록이 있고, 흠돌의 난때에는 김대문 가문이 흠돌의 난을 평정을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기록이고, 흠돌의 세계도 단편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삼국사기,삼국유사,족보 기준 자식들



일단 우리가 알고 있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 관련 족보를 종합해 보면, 진평에게는 마야부인(황후?)와 손씨 승만의 기록만 보인다. 또한, 이들의 후손으로 천명, 덕만, 선화만 있고, 아들은 없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설마, 일국의 왕이 1부1처제를 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자유로운 신라시대에 진평이 달랑 공주 3명만 낳고, 왕통을 이을 후사를 보지 않고, 왕후가 죽고 나서 왕후를 뽑는 행동을 했다는 말은 상식에 반한다.
 
물론, 덕만이 50이 다 되어서 노처녀로 왕위를 이였고,  덕만이 왕에 있을때 춘추와 문희를 엮어 주는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또한, 신파극의 주인공 처럼 김유신이 첫사랑 <천관녀>를 못잊어, 전쟁터를 떠도는 전쟁광이 되고, 춘추의 강권에 어쩔 수 없이 655년 회갑에 자신의 조카와 첫번째 결혼을 하여 원술을 낳았는데, 원술이 유신의 첫번째 아들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된다.

그렇게 믿고 있는 분들이라면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글과 [역사이야기] - 조선 세종, 신라 덕만, 천명의 기록 비교해 보니 을 일독하기를 권한다.

진평왕의 아들을 낳은 여인들

이제 탈도 많은 <화랑세기>에 나타난 진평왕과 그의 정비/후비들과 그들에서 난 자식들을 볼 차례이다. 일단, 진평과 관계를 맺은 인물들을 진평왕을 기준으로 다이아그램을 만들어 봤다.

진평왕과 관계된 처와 자식과 그 후손을 한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들을 낳은 사람은 별도의 표시를 할 것이다.



진평의 여자 중에서 왕후라 추측되는 인물은 마야와 승만이다. 승만은 마야가 죽고, 난 후, 마야의 뒤를 이어서 왕후가 되었다.

삼국유사는 단지, 아들을 얻기 위해서 승만을 왕후로 인명하였다고만 기록되어 있고, 화랑세기는 마야가 죽은 후에 승만이 왕후과 되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아들을 생산한 비들은 승만을 비롯해서 태양, 보량(박은빈)이다. 승만은 아들을 낳았지만, 일찍 죽었다. 승만은 아들이 죽은 이유가 용춘.용수 형제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들 형제를 미워해서, 한때 이들 형제가 지방으로 떠돌았다.

진평의여자와 후손, 원본을 보고 싶으면 크릭

태양은 태원과 흥원 두 아들을 낳는다. 보량은 보로라는 아들을 낳았지만, 승만의 미움을 받아서 양도에 다시 시집을 갔다고 전한다.


그래서 보로는 진평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태양의 자식인 태원과 흥원은 어떨까? 화랑세기는 이들도 태양이 방탕한 생활을 하여 태원과 흥원이 왕위를 이을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진평에게는 마야와 승만 만이 왕후였고, 딸은 달랑 3명만 있었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천만에 만만에 말씀, 진평은 그 누구보다도 아들을 낳기 위해서 정비/후비를 많이 두었고, 이들로 부터 아들 4명을 보았지만, 승만의 자식은 일찍 죽고, 3명의 자식중 흥원의 자식들은 후에 흠돌반란의 수괴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드라마 선덕여왕에는 미실의 딸과 진평왕의 아들이 사라졌을까?

드라마 선덕여왕에는 나오지 않지만 진평/미실 사이에는 보화(진평/미실)라는 딸을 두고 있다. 보화도 왕위승계 자격이 충분히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보화의 남편은 구륜(진흥/사도)으로 진흥왕과 사도 사이에 난 정통성골이니 말이다. 이들도 극 속에 나왔더라면 드라마가 더 재밌지 않았을까?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하는 소설 선덕여왕을 극본하였다면, 사실 진평왕의 아들들을 조명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선덕이 어떻게 남자형제들( 보로, 태원, 호원)을 물리치고 왕이 되었는가? 이쪽이 더 스팩터클한 내용이 되었을테 말이다.  "그건 니 생각이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사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미실은 진평왕이 왕위를 이은 다음에 세종의 만류로 권력과 왕후가 되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미실이 사후 25~년 이후 인 632년 일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지 않나?

진평 아들과 그 후손


진평이 덕만을 선택한 이유?

재미있는 사실은 기존 통설대로 적통은 성골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마야보다 태양이 더 뼈속까지 성골이다.


덕만의 어미가 되는 마야는 복승/송화의 자식이다. 왕자인 태원.호원의 어미는 태양(진흥/사도)이다. 태양은 진흥/사도의 자식이다. 태양의 가문이 마야(복승/송화)의 가문보다는 더 왕실의 정통성에 부합니다. 마야의 아버지 복승은 상대적으로 태양의 아버지 진흥왕에 미치지 못한다.

또한, 마야의 어머니 송화(영실/지소)의 부계 영실보다는 태양(진흥/사도)의 부계가 진흥왕이니 마야의 후손보다는 태양의 후손이 왕위승계서열상 앞쪽에 있고, 보로(진평/보량)은 제외하더라도, 태원. 호원이 성골중에 성골이 된다. 그런데 그 많은 성골 왕자를 두고 성골남진이다?

하지만, 정비인 마야의 후손인 덕만이 왕위를 꽤찬다. 덕만은 진평왕과 마야의 적장녀이기 때문이다. 진평은 태양의 아들인 태원,호원보다도, 마야의 딸인 덕만을 선호했을 뿐이다. 덕만이 왕위를 잇는다는 사실을 알고, 이찬 <칠숙>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화랑세기에도 언급이 없는 태원과 칠숙이 모종의 썸씽이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비담이 태원의 자식일 지도 모르겠다. 화랑세기 내에서도 태원과 그의 후손에 관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진평의 "묻지고, 따지지도 않고", 선택한 덕만이기 때문에 덕만이 왕위를 잇는 것이다. 김정일.김일성이 결정하면 끝인것처럼 진평이 결정하면 끝이다. 

이유를 찾자면 아래 덕만 시리즈 글을 참조 하기 바람. 


 비담이 승만(국반/박씨)이 왕위를 잇기전 거창한 명분으로 내세운 <여왕은 더이상 안된다. 당나라도 그랬어요 여왕은 안된다고..>하였지만, 상대등 <비담>이 선덕(덕만) 말년 647년 반란을 일으키는 것도 칠숙의 사례와 본질은 같다.  

또한, 문무왕 사후 흠돌, 흥원, 진공 등이 정통성을 찾겠다고 반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호원(진평/태양)의 아들 흥원은 지금 통설로 하면 성골중에 성골이 된다. 그런데? 성골남진이 되어서 덕만이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면 개가 웃지 않겠는가?

또하나 잼있는 사실은 승만왕후의 성은 손씨이다. 그런데 진평은 손씨의 후손을 통해서 왕위를 잇겠다는 발상을 했었다는 것이다. 성골인 김씨나 박씨나 석씨도 아닌 일개 6부의 후손인 손씨를 통해서 신라의 성골정통을 잇겠다고 생각했겠는가? 기존 신라의 골품제 하에서는 성골>>>진골>>>>>>>>6부씨족>>>>>평민의 순서일텐데 말이다. 한마디로 진평왕이 "성골/진골 웃기고 있네" 하는것 같지 않는가?

죄수의 딜레마 화랑세기

많은 사람들이 <화랑세기>를 믿지 않는 이유중에 하나가. 지금의 관점으로 개족보 같은 혼맥도 있지만, 기존에 알고 있는 역사적인 상식인 성골.진골, 왕실계보, 화랑의 개념을 깨는데 있다. <화랑세기>를 인정한다면, 그동안의 축적된 연구성과물들이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성골.진골이다. 진평왕은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성골이 단절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성골여자인 덕만과 승만이 왕위를 이은 것이다. 화랑세기를 기준으로 한다면, 성골남자는 씨가 마른적도 없고, 성골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고 하니, 기가찰 노릇이 아닌가?

사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조금 꼼꼼하게 살펴보면, 성골은 존재자체도 없고, 성골이라고 하는 말은 당해 왕의 자손을 뜻한다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마야의 적손 왕자가 없고, 승만 왕후를 통해서 난 적자가 없다는 말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니들이 그동안 연구한 성과물들은 다 틀렸어"라고 하지 않는가?

인정하자니 그동안의 성과는 사라지고, 인정하지 않자니 화랑세기의 정교함에 치를 떨어야 하고, 안정하지 않고, 박창화 개인이 지어낸 저술이라고 한다면, 기존 사학계는 개인 박창화 한명보다도 못한 존재로 떨어져 버리고 만다. 그러니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졌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화랑세기를 믿는 자라면 성골/진골은 없다고 해야 한다. 화랑세기에서 성골로 알고 있는 자(왕.왕자.공주)들은 대부분 진골정통의 맥을 가지고 있다. 성골 = 대원신통 = 진골인 것이다. 화랑세기는 믿지만 성골.진골은 있다. 라고 생각한다면 웃기는 일이 아닌가?

화랑세기 신뢰는 글쎄?

사실 글쓴이는 화랑세기를 신뢰하는 편은 아니다, 화랑세기를 추적하는 동안 너무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믹스업 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이설이 있음을 주장하는 책이 삼국유사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삼국유사도 맞고, 삼국사기도 맞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고 있다. 또한, 이들을 교묘히 하나로 엮어서 일치 시키고 있다. 이는 화랑세기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 후대에 나온 작품이란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화랑세기를 파고 또 파고 들수록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 앞에 나온 책이란 화랑세기가  뒤에 나온 <삼국사기>, <삼국유사>을 참조한 듯 한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덕여왕을 비판을 할때가 아니고, 글쓴이가 주장을 하는 글에는 <화랑세기>를 절대로 인용하지 않고, 의문점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이에 필요한 자료를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나 삼국사절요에서 수집하여, 분석하고 재해석해서 가설을 검증하고, 가설이 합당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던 것이다.  진본을 필사한 화랑세기이던 박창화가 창작한 화랑세기이던 상관없이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많은 영감을 준다. 이정도 파괴력을 가진 책을 보지 못한것 같다.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Favicon of http://starculture.tistory.com BlogIcon 아이러니♡ 2009.08.06 09: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공부 열심히 하네요 ㅋㅋ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3. 임현철 2009.08.06 0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쉽지 않은 공부인데 이거 재밌게 봅니다.

  4.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6 11: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험치자니까요 ㅎㅎㅎ
    저는 옆에 요약 정리하면서 매일 공부하는데...
    오늘도 요약 정리를 나름대로 하고
    잘 배웠습니다. ㅎㅎㅎ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행복 가득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5. 잽돌이 2009.08.06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화랑세기의 진위여부는 이제 거의 진본 쪽으로 돌아 서고 있습니다.
    문헌비교를 통한 진위여부를 가리는 것도 중요 하지만
    그 고고학적 증거도 중요 하다고 할 수 있지요..
    역사학에 관심이 많으시고 화랑세기에 관심이 많으신것 같은데

    서강대학교 이종욱 교수가 그 전문가 이시고

    각종 고대 신라사에 대한 자료 구하기 쉬울 겁니다

    참고로 화랑세기가 진본 이라는 그 고고학적 증거 두가지만 밝히고 갈께요

    다른 역사서 어디에서도 언급 되지 않았던


    1.경주 월성의 해자가 발견 되었구요

    2.포석정 포석사 의 문양이 세겨진 기와 파편이 발견 되었습니다
    특히 문노가 결혼을 한곳이 포석사 라고 나오는데 그 포석사 라고 사당이라고 분명히
    화랑세기에 나오는 데 우리는 포석정 술마시고 노는 곳으로 알 고 있었습니다.

    이 두가지가.. 분명.. 화랑세기는 진본이라는 결정적 증거라 할 수 있고요

    너무나도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짜맞추기 하는 것 같다라고 하셨는데

    진본이기 때문 입니다.

    ^^

    지금 서울대 노태돈 교수쪽과
    이종욱 교수쪽이.. 엄청난 진위공방을 하고 있는데
    이종욱 교수쪽의 계속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논문 발표를
    하고 있지만 노태돈 교수쪽은 처음엔 대항하는 논리를 내세우다가 요즘은.. 대응을 안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아예 신라사를 다시 써야 할 지경에 이를테니까요

    도서관에 가셔서 화랑세기를 검색 하시면

    약 10~15권 정도의 책들이 있습니다..

    읽어 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6 13: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몰라서 제가 진위가 으심스럽다고 했을까요? 저는 진위여부에 상관없이 화랑세기는 엄청난 역사학계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고 봅니다. 최근에 발표된 논문들을 보면 이전과는 다른 화랑세기를 인용한듯하면서, 참고 문헌으로 등록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영향을 미쳤다는 거지요..

      노태돈이 반응을 하지 않는 이유는 만지면 커지기 때문입니다. 주고 받으면 이슈화 되거든요.. ㅋㅋ

      양쪽이 다 들어맞기때문에 진본이다가 아니고, 양쪽을 합쳐 놓았기 때문에 의심스럽다는 겁니다..

  6. 물음표 2009.08.06 1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넘 재미있게 읽고 갑니당.^^....
    수고에 늘 감사 합니다.

    갓쉰동님 글 읽고~~~~~ 선덕여왕 드라마 보면서 남편이랑 아이들한테
    무지 잘난척하며 설명해 주곤 한답니다.ㅎㅎ
    계속 부탁해요...

  7. 잽돌이 2009.08.06 1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결국은 학문적 접근이 아닌..

    파벌싸움의 양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고대사 연구는 여러가지 제한때문에

    한정적 연구일 수 밖에 없는데요

    고고학적 증거 마저 무시한다면

    진짜 연구를 위한 연구지 학문을 위한 연구는 아닌거 같습니다.




    결국 당대에 씌여진 문헌을

    후대에 씌여진 문헌과 비교해 봤을때

    차이가 있어야만 한다 라는 발상과

    그럴리가 없다 라는 전제하에 바라보시는 것 같습니다.

    싸움을 거는게 아니구요.. 그냥 의견을 제시 하는 거예요 오해 마세요~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6 18: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저도 파벌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이종욱이 공개하자 노태돈이 그랫지요. 난 이미 다 봤다. 그런데 가라당..

      연구해볼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라고 생각함.. 그러지 않다면 화랑세기를 탐독할 이유가 없지요..

      화랑세기는 진위와 상관없이... 아이디어 뱅크 같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재생각을 글로써 표현하는 거지요.. 전대 기록이 후대기록을 보충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그런것이니 양해 해주셈.. 물론, 박창화가 가지도 있던 다른 자료도 제생각에 반영되었다는 것도 있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6 18: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의심하고 회의를 하고 추적을 하다보면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 끝을 보겠지요.. 원래 회의주의자가 발견을 하지요.. 단, 회의한다고 해서 처다보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될 수 없지만..

  8. 지나가는사람 2009.08.07 0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쭤볼것이 있습니다
    보량이나 태원 등에 대한 다른 남자후손에 대한 이야기가 화랑세기에 어느 풍월주대에 언급이 되어있는지 혹시 자세하게 알려주실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진평왕대에 풍월주에 오른 자들을 대충 살펴보았는데, 잘 찾지못하여 부탁드립니다.

  9. 잽돌이 2009.08.07 0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랑은 견해가 다르시군요

    전대 기록이 후대 기록을 보충 할 수 없다라...

    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나.. 창작이 아니라면..

    특히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은 유교적인 관점에서 삼국사기를 썼었는데

    결국 자기 입맛에 맞는 내용만 발췌 했고 해석하고 자기의견을 넣었지요

    즉 고삼국기 원문에서 발췌를 했다면 전대 기록이 더 풍부하니

    후대기록을 보충 하고도 남는 거라고는 생각 하지 않으십니까?

    후대기록이 무조건 전대기록을 보충해서 더 많은 내용이 들어가 있다고는 볼 수 없다는게 저의 사견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역사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참 좋군요

    소주나 한잔 하실 까요?

    관심있으시면 메일 주시죠

    donygun@nate.com

    네이트 등록도 대 환영 입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7 15: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견해가 다르다니 별로 다를것도 없는 것 같은데요..

      저는 회의를 하면서 추적하는 중입니다. 아직 결론을 내지 않았거든요.. 의심스럽다와 위서다 진서다는 다른 말인뎅..

      대화는 블로그를 통해서.. ㅋㅋ 죄송합니다.. 꾸벅~~

  10. 잽돌이 2009.08.07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
    칼날을 살짝 피해버리시는 노련함...

    ㅋㅋㅋ

  11. 지나가는사람 2009.08.08 0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번에 알려주신대로 화랑세기를 뒤져보았으나 태원과 호원에 대한 기록은 찾지 못하고, 전군보로에 관한 기록만 찾게 되었습니다. 이를 토대로 님께 질문을 드리고자합니다.
    전군보로는 미실의 손녀인 보량의 아들입니다. 보량의 경우에는 부모가 모두 성골임을 만족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전군또한 성골이라 보기 힘듭니다. 제가 부모가 모두 성골이어야한다고 하는 이유는, 많은 학자들이 설명하듯이 천명과 용수사이에서 낳은 춘추가 성골로 인정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용수 또한 진지왕의 아들이었으나 폐위되었기에 성골에서 멀어져, 그 아들도 성골로 인정받지 못하였습니다. 이토록 성골이 성립되려면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그렇기에 전군보로는 진평의 아들이나, 성골이 아니기에 왕위계승권자로 거론되지 않은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반역에 가담하게되는 태양공주의 아들들은 많은 학자들이 거론하듯이, 태양공주가 방탕하여 진평왕 이외의 많은 남성들과 관계를 맺었기에 그 아비를 확신할수 없어 성골로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마도 그 아비가 진평이외의 다른 남자임을 확신할만큼 정황이 확실하여 배제된것이라 사료됩니다. 아들로는 입적이 되나 성골로는 인정되지 않은 것은, 위에서 언급하듯, 그 조건을 성립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이유입니다. 성골은 그렇기에 그토록 우월한 골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제 의견중 틀린점이나 보충할 말씀이 있으시다면 댓글을 달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2.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8 05: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에 앞서 흠돌은 호원공(好元公)의 아들 흥원(興元)을 부제로 삼았다. 애초에 태양공주(太陽公主)가 진평대제를 섬겨 태원(太元)과 호원(好元)을 낳았는데 제(帝)를 닮지 않았다. 공주는 어려서 금륜태자(金輪太子)339)를 섬겼는데 사신(私臣)을 좋아 하였다. 제(帝)를 섬길 때도 역시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양군(태원과 호원)은 통(統)을 얻지 못하였다. 흥원은 제통(帝統)이 자기에게 있다고 혼자 생각하여 조정을 원망하고, 누이를 흠돌의 첩으로 삼아 결탁하였다. - 27세 풍월주 흠돌에 나오는 기사입니다.

    단순히 사신을 좋아 했다고 해서 성골이 될 수 없다면, 지소의 자식들은 한명도 성골이 될수 없지요.. 지소 만큼 사신을 많이 둔 여인도 없거든요.. 사신을 두었기 때문에 골을 얻지 못한것이 아니고, 권력투쟁 싸움에 졌다고 보는게 합당하지요..

    또한, 만호도 사신을 두었습니다.. 그러니 진평 또한 성골이 될 수 없지 않겠어요.. 님의 말처럼 성골의 조건은 까다로운데요.. 지소와 이화랑의 사이에 난 여인이 만호입니다.. 이화랑(위화랑/준실)이니 만호는 성골 근처에 가보지도 못하는 거지요..

    • 지나가는사람 2009.08.08 2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아직까지는 공부가 미흡해서 만호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했군요. 성골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생각할만한 것은 아닌듯하네요. 공부할거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9 11: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용춘의 어머니 지도를 봐도 잼있음.. ㅋㅋ 기록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어서 찾기가 난해하지만요.. ㅋㅋ

  13.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8 06: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장 쉬운 방법은요.. 진평왕의 아들이 아니고, 왕비의 소생이 아니여서 밀렸다가 맞지 않을 까요?
    1. 순위자 왕+왕비 소생
    2. 순위자 왕+후비
    3. 왕의 형제
    4. 왕의 형제의 자식들..

    성골의 다른 말이 성조(祖) 입니다. 왕의 혈통을 이엇다는 거지요.. 왕은 당연히 성스러운거구요..

    성(聖)은 그냥 꾸민말에 지나지 않아요.. 당나라를 신라는 성조(聖朝)라고 불렀지요,, 아마도.. 물론, 신라만 그런것은 아니지만..

  14.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5.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6.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niches/hairy.php BlogIcon click here 2012.07.14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출/섭취되었다고 논증할 수 있다. 이는 더 적은 량으로도 인간광우

  17. Favicon of http://hubshout.com/?Ways-To-Resell-Website-Development-Properly&AID=661 BlogIcon Jeziorski 2012.10.01 2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렇지만 이는 정확히 말하면 식습관과 미국의 인구가 이를 막고 있는 것이다. 인구가 많기 때문에 더 많은 환자수가 발

  18. Favicon of http://www.dogcars.com BlogIcon electric fence for dogs lowes 2012.11.03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넌 악플 중에서도 최저인게
    단순히 보지말라는 수준을 넘어
    글쓴이를 드라마 인기에 편승하는 장사꾼으로 매도하면서 아무런 근거도 내세운게 없쟎아.
    말만 부드러우면 그냥 막 까도 인격이 생기나부네?

  19. Favicon of http://mariviclisy.blogspot.com/2012/04/this-baker-dozen-items-it-is-best-to.h.. BlogIcon mre heater bomb 2012.11.06 2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사극 <선덕여왕>에는 반란에 연루된 몇몇이 등장하여 극의 재미를 높이고 있다. 첫번째는 미실의 충실한 충복이며 터미네이터 같은 <칠숙>이다. 칠숙이 반란을 일으킨 631년는 진평왕의 말년이며,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 632년 바로 전해이다.

  20. Favicon of http://quarterempty.wordpress.com/feed/ BlogIcon portable dog fence dogs 2012.11.23 0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아레스가 퇴장을 건 승부가 없었다면 우루과이는 8강에 만족하고 짐을 싸고 집에 돌아가야만 했다.

    승부차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루과이는 이기고 들어갔고, 가나는 이미 지고 들어가는 승부였다.

  21. Favicon of http://social.msdn.microsoft.com/profile/modamer/ BlogIcon Giyim Markalari 2013.09.17 1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인상이 사이트를 찾아 기쁘다. 이 정보는 매우 나에게 유용하기 그리고 다른 독자들 것입니다. 이 멋진 아이디어를 공유하기위한 많은 감사.


촛불집회에 시위자를 분산시키는 용도로 등장하는 물대포가 있다. 그런데 왜 물을 쏘는 대포라고 했을까? 물총에 가까운것 같은데 어찌되었던 이는 예전 포석에서 유래를 찾을 수가 있다. 돌덩이를 모아서 성벽을 무너트리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발포하라', '방포하라'는 발석차나 포석 등이 속한다. 
 
그런데 물대포 처럼 '물'이 아닌 '술'에서 유래한 <대포>도 있다.
 
요즘 사람은 대포집하면 <대포>를 연상해서 커다란 포(화약 포)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대포에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커다란 포탄을 날리는 공격무기로 알고 있지만 조금 나이를 든 어른들은 아련히 입맛을 다시고 추억을 떠오르는 선술집을 떠울린다. <대포>란 커다란 술잔을 뜻하는 말이다. 커다란 술잔의 크기가 어느정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반적으로 <밥사발>정도의 크기이다.
 
최근에도 오래된 경륜을 자랑하는 음식점이나 맛나는 음식점 따라쟁이 들이 생기는 관계로 처음 방문자에는 원조집을 찾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앞쪽에 너도나도 없이 <원조>나 <태조>,<고조>를 붙혀서 부르 듯 예전에는 <왕>짜를 붙혀서 <왕대포>집이라고 불렸다. 너나 나나 <왕>짜를 붙히니 대포집들은 자취없이 사라지고 <왕대포>집들만이 남아 사용되어 졌다. 정말 왕대포집에 가면 일반 대포집에서 나오는 밥사발이 아닌 대접에 막걸리는 준다. 더 큰집은 요즘 냉면집에서 나오는 냉면사발만한 곳도 있었다.
 
왕대포집이 많았던 시대에 우스개 소리로 간첩들이 서울이나 지방곳곳에 있는 대포집을 보고 남한은 일반집에도 대포나 왕대포가 있어서 남침하면 안된다는 말이 전설처럼 전해지기도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다.
 
 
그럼 <대포>의 어원은 어떻게 될까?
 
<삼국사기> 신라 6대 지마(112년~134년)왕의 세계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마가 태자였을 때 선왕인 파사왕이 태자 지마와 사냥을 떠나 돌아오는 길에 한기부에 있는 허루의 집에 묵었다. 이에 <이찬>허루가 잔치를 배풀었다고 한다. 술이 거나게 취하자. 허루는 자신의 딸을 지마의 태자비로 엮어줄려는 계획으로 <이찬>허루가 아내를 시켜 나이어린 딸에게 춤을 추게 하였다고 한다. 이때 또 다른 이찬 김<마제>의 아내도 어린 추후 지마왕비가 되는 <애례>를 데리고 와서 춤추게 하였는데,  태자인 <지마>는 <허루>의 딸에게 혹하지 않고 오히려 객인 <마제>의 딸인 김<애례>에게 한눈에 반했다고 한다. 계획에 실패한 허루가 심히 불편해 하자.
 
 파사왕이 허루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이찬 허루가 있는 이곳 <한기부>의 땅 이름이 <대포(大)>이고 <허루>가 맛나는 음식과 술로 주연을 베풀어 기쁘게 하였으니 <허루>에게 <주다(酒多)>라는 직위를 주어 <이찬>의 계급보다 위에 있게 하였다. 이에 허루는 파사를 어길 수 없어 수구리 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보면 <허루>는 조금 억울할것도 같지만 <파사>왕의 정비는 김<허루>의 딸인 김<사성>이다. 이찬 <허루>는 파사왕의 장인이 되고 태자인 <지마>에게는 외할아버지가 된다. 그런데 파사왕 사위로 삼았고 한발 더나아가  외손자인 <지마>도 사위로 삼으려는 욕심이 있었던 듯 하다. 이를 간파한 <파사>가 적절한 조율을 통해 <김>마제의 딸인 <애례>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한다.
 
포()는 커다란 음식만드는 부엌이나 요리, 음식, 복희씨 등을 나타낸다. 여기서 대포는 맛나는 음식을 내온 요리인,이나 음식을 만드는 뜻으로 사용되어 진것 같다. <파사>가 했다는 땅이름 <대포>는 추측컨데 땅이름이 먼저 생기지 않고 <허루>가 내온 음식과 주연을 베풀었기 때문에 <대포>라는 지명이 생겼을 것이다.
 
<주다>는 술이 많다는 의미이다. 또한 술을 많이 먹다는 의미도 되고 주연이 좋아 술을 많이 마시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는 주연을 통해서 왕을 기쁘게 해주었다는 의미로 <주다>라는 직책을 만든것일 것이다. 이들이 먹던 잔이 <각배>이지 않을까? <주다>는 나중에 신라의 최고위 관등인 <각간>이라 불렸다고 한다. <각간>의 유래가 밝혀지는 순간이다.
 
이를 정리하면
 
<대포>=<주다>=<각간>이다.
 
각간(角干)은 뿔잔과 방패를 상징한다. 옛날에는 소의 뿔잔에 술을 마셨는데, 지배계급이 아니면 뿔잔에 마실수 없었다. 고대 유물로 세계 어느곳에서나 출토되는 각배는 진흙이나 황금, 청동으로 만든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고대 역사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굽은 잔에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어느 고대사회 공통으로 통용되는 지배층의 상징적인 잔이라고 하겠다. 또한, 전장에 나가는 장군에게 임금이 뿔잔에 술을 따라 줌으로 장군의 전승을 빌었다고 한다. 고대에는 소의 뿔에 한번 받치면 골로 가는 강력한 공격용 무기이니 신성시 했을 수도 있겠다.
 
각간의 간(干)은 방패를 뜻하기도 한다. 
 
<각간>은 중원에서 유래된 뚫을 수 있는 창과 모든 창을 막을 수 있는 <방패>라는 <모순>의 고사성어와도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간>이란 <칸>이나 <한>의 다른 뜻인 <우두머리>라는 뜻이겠지만, 외부의 적으로 공격을 막고 지키는 존재이거나 전쟁에 나가면 지지 않는 강력한 공격의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니 가장 뜻에 부합하고 유사한 한자의 음가를 취하는 관계로 <방패>를 뜻하는 <간:干)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각간>이란 공격과 방어가 완벽한 존재를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라에서는 왕 밑에 최고의 존재로 <각간>을 인식 하지 않았을까 한다.
 
<대포>란 공갈이나 허풍이란 말도 있으나 위의 추론이 허풍이나 거짓은 아닐것이다.
 
결론은 지금 우리가 잊고 있었던 <대포>라는 말은 근래에 사용되어진 말이 아닌 근 2,000년 전부터 내려오는 말이다는 의미이다.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www.beachtowelsclearance.org/funky-beach-towels/ BlogIcon funky beach towels 2011.12.13 0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된 것 I think it's about the news on the media, reporting how the government wanted to make some change in the regulations. I still don't believe it, though. I want to know where to find funky beach towels, do you?

  2. Favicon of http://www.calendariolunar2012.com/ BlogIcon calendario lunar 2012 2012.02.14 2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된 것 Part of the reason that our politics seems so tough right now and facts and science and argument does not seem to be winning the day all the time is because we're hardwired not to always think clearly when we're scared. And the country's scared. I want to know where to find calendario lunar 2012, do you?

  3.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http://www.toeshoesvibram.com/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kso-c-1.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flow-c-2.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jaya-c-3.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bikila-c-4.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speed-c-5.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sprint-c-6.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classic-c-7.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bikila-ls-c-8.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kso-trek-c-9.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treksport-c-10.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komodosport-c-11.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komodosport-ls-c-12.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men-five-fingers-c-14.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women-five-fingers-c-13.html

  4.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4: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인 그래서 진짜로 무언가일 이 화제를 나가 나를 생각하는 결코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당신 발표 그러나 나와 쉬운 찾아내십시오. 그것은 저를 위해 너무 복잡하고 아주 넓게 보인다. 나는 당신

  5.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visit website 2012.07.14 14: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징이라기 보다는 광개토대왕의 상징이었지요. 중국에서는 장수들의 깃

  6. Favicon of http://blogskinny.com/ BlogIcon Gennie 2012.09.29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사기 곳곳엔 우물에서 용이 하늘로 올랐다는 기사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우물과 용과 북두는 하나의 상징처럼 느

  7. Favicon of http://elviesyther.posterous.com/a-disastrous-situation-survival-kit-is-critic BlogIcon emergency essentials list 2012.11.01 1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진짜로 무언가일 이 화제를 나가 나를 생각하는 결코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당신 발표

  8. Favicon of http://davehillonline.com/blog/2008/07/ BlogIcon portable fences for dogs 2012.11.07 1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 놀라운 것입니다. 수많은 새로운 브랜드 이름은 다른 가전 제품과 함께 기기 전반

  9. Favicon of http://abelmelouxe.livejournal.com/1060.html BlogIcon mountain house foods reviews 2012.12.10 2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소한 광우병 전문가라면 기초적인 사실을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눈초가 사실을 왜곡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모르고 하는 일은 왜곡이라고 하지 않고 무식하다고 하는 것이다. 알고 해야 왜곡이 성립된다.

  10. Favicon of http://whydogs.wordpress.com/2007/07/30/34-why-own-when-you-can-rent/ BlogIcon wireless dog fence reviews 2012.12.25 2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왕대포집이 많았던 시대에 우스개 소리로 간첩들이 서울이나 지방곳곳에 있는 대포집을 보고 남한은 일반집에도 대포나 왕대포가 있어서 남침하면 안된다는 말이 전설처럼 전해지기도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다.

이전버튼 1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 시사 사회 문화 스포츠 평론
갓쉰동
09-25 11:34
Yesterday62
Today7
Total12,303,528

최근에 달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