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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하 고양이 보다 못하지 않았을까? 연예인은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이라고 한다. 사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은 맞지만, 대중 앞에 서기까지는 수 없이 많은 난관을 거쳐야 한다. 대중 앞에 내 놓는 이는 PD나 감독이기 때문이다. PD나 감독이나 기사들이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자신의 능력이 출중하다고 해도 대중은 그 사람이 있는지 조차도 모른다. 실질적으로 연예인들을 지배하는 자들에게 찍히면 대중이 아무리 원해도 생매장이 되고 만다. 이들에게 잘못보이면 대중은 있는지 조차도 모른다. . 그러니 여자 연예인 같은 경우는 보다 빠른 진입을 위해서 스폰서를 두기도 하고, 성을 매개로 올라 갈려고 하는 것이다. 남자연예인들이라고 스폰서가 없겠는가? 박용하는 오랫동안 무명생활을 하였을 것이고 누구 말 마따나 “눈물 젖은 빵.. 더보기
박주영 자책골 눈물? 에 악플이 왠말 박주영 눈물이 실시간 이슈 검색어 상위를 차지했다. 진짜 박주영이 울었는지 마음속으로 울었는지는 알 수 없다. 경기중이나 경기가 끝날 즈음 까지 박주영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박주영이 경기가 끝난 후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었는지를 검색해 봤다. 그런데 박주영 눈물 기사 어디에도 박주영이 눈물을 흘리는 사진 캡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눈물 왕자 정대세처럼 화면상에 박주영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보이지 않았다. 작가적 관점에서 발기자들이 상상력을 발휘해서 작문을 한것이다. 이전 2010/06/17 - [스포츠] - 메시로 부터 시작해서 메시로 끝난 한국 vs 아르헨티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였다 " 박주영의 월드컵 첫골이 아쉽게도 자책골이 되는 상황이였다. 박주영의 잘못이라.. 더보기
경주 첨성대는 선덕여왕 2년에 세워졌다. - 세종실록 지리지 경주편 선덕여왕 원작자 두사람은 무슨생각으로 역사소설을 쓰나? 신라에는 두개의 궁궐이 있었다. 하나는 명활성이고, 하나는 반월성(월성)이다. 이 두성은 때에 따라서 번갈아 궁궐로 사용되였다. 하지만, 진평왕시기에는 반월성(월성)이 궁궐이였다. 647년 1월 8일 덕만이 죽고나서 비담이 반란을 일으킨 장소는 명활성이다. 반란군을 진압하는 정부군의 지휘부는 궁궐인 월성이였다. 이곳에서 진덕(승만)이 10여일을 비담에 시달렸다. 김유신열전에 김유신이 로 비담의 군대의 사기를 떨어트리기도 했다. 이와관련해서는 2009/08/31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비담이 덕만을 배신했다고? 사실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예전 보름날에 연을 날릴때 불을 연의 꼬리에 달고 날리는 풍습이 있었다. 액운을 하늘로 다시 보낸다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