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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공주의 남자>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세령공주는 세조(수양대군)에 반기를 들다가 결국에는 노비가 되어 신면에게 하사된다.


신면은 노비가 된 세령이지만, 알뜰히 보살핀다.


하지만, 신면의 영원한 방해꾼, 김승유가 등장해서 세령을 빼돌린다.


그런데 김승유는  유배를 떠난 정종의 밀서를 보고, 광주로 떠나려 하였지만, 세령이 신면의 집에 노비로 갔다는 말을 듣고, 계획을 변경하고 신숙주의 집에 처들어가 세령을 구하고 또다시 애마부인을 찍는다. 작가가 어릴 적 애마부인을 무척 사랑했던 모양이다. 시도 때도 없이 세령과 김승유를 말에 태우니 말이다.

죽음을 앞에 둔 이들 커플은 만나기만 하면 키스신을 남발한다. 사랑을 확인하고 이들 세령과 김승유의 사랑이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다는 암시와도 같다.

 


문제는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민폐를 끼치는 역할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단종복위를 꿈꾸던 김승유가 광주로 가서 정종과 밀약을 하고 거병을 하는 게 합당할까? 아니면 신면의 집에 들어가서 세령을 구하는 게 급할까? 철통같이 방어를 하고 있는 신면의 집에서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물론, <공주의 남자>는 시대배경이 계유정란 이후를 그린 시대 멜로물이다. 명분도 명예도 없다. 무조건 “사랑밖엔 난몰라“하면 되는 극히 유치한 드라마임에는 틀림이 없다. 멜로물은 유치찬란할수록 재미가 있는 건 사실이다.


유치찬란한 멜로를 보고 승유와 세령의 사랑을 지켜주세요. 정종과 경혜공주의 사랑도 지켜주는 해피엔딩으로 만들어주세요. 자식을 노비로 보내는 폐륜아 세조 나쁜넘, 신숙주, 신면, 사육신 안타깝다,라는 멜로가 역사인 듯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넘쳐나서 우려스럽지만 말이다.

이에 대해서 비판하면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라는 유딩들도 하지 않는 말을 너무나 뻔뻔하게 하는 인간들이 가끔씩 있는 게 아니고 넘처난다.

그냥 시대배경만 빌려온 <추노>나 <최종병기 활>처럼 멜로만 하면 안될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왜 자신도 없는 역사에 똥물까지 퍼부어야 하는지 도대체 이해할수가 없다. 재미를 위해서 역사는 빌려오지만  망가져도 된다는 발상은 끔찍하기 까지 하다. 박시후, 문채원, 이민우, 홍수현, 송종호, 이호정, 김영철, 이순재라고 극중에서 배우 이름으로 부른다면 그나마 나을지도 모른다.


시대를 알고 역사를 알고 보면 <공주의 남자>는  한편의 눈물없이 볼수 없는 원수를 사랑한 김승유가 아닌 원수와 한편이 되어 아버지 김종서를 모욕한 황당극일 뿐이다.

김승유에게 정종과 사육신이 얼마나 철천지 원수인지 알고 싶다면 다음 글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최소한 자녀들에게는 드라마와 역사는 어떻게 다른지 설명정도는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김종서를 죽이는데 앞장선 사육신과 김승유가 한편이 된다는 상상만으로도 작가는 오르가즘을 느끼겠지만 말이다. 최소한 비스무리라도  해야 극에 몰입을 할수 있는 것이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시청자를 속이는 재미가 솔솔한 건 사실이다.

속이더라도 하얀 거짓말로 속여야 재미가 있는데 새빨간 거짓말로 속이면 속는 사람도 나중에 기분이 좋을리는 없다. 드라마를 보고 사실인것 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민망하기까지 하다. 설마 드라마 작가가 거짓말을 했겠느냐고 반문하면 당황스럽다.
 


어쨌든, 빙옥관의 조석주가 김승유와 함께 세령을 구하고 빙옥관의 주인 초희의 안부가 걱정이 되어 빙옥관에 돌아왔을 때, 사랑하는 여인 초희의 목에 칼이 들어올 때 순순히 잡히고, 빙옥관의 주인이 조치수를 살리기 위해서 김승유가 광주로 갔다는 말을 너무나 쉽게 한 이유도 대의, 명분, 정리가 무슨 소용 살고 봐야지 사랑이 최고야.<사랑>으로 다 해결되는 문제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1456년 6월 1일 단종복위에 실패한 사육신은 죽고, 같이 참여한 정종은 세조(수양대군)의 바다와 같은 은혜를 입고 광주로 유배를 떠났다. 정종과 경혜공주는 단종복위 전날 5년 만에 처음 사랑을 나누고 정미수를 임신한다. 정종과 경혜공주는 아들일까 딸일까? 경혜공주만 닮은 딸이었으면 좋겠다며 행복한 순간을 보낸다.


여기서 정종을 닮은 아들을 낳게 해달라는 대사를 치면 그날로 공주의 남자 제작진은 남녀차별로 난타를 당할 것이 자명하다. 작가가 <공주의 남자> 주시청자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처음부터 공주의 남자는 역사를 망쳐서라도 절대다수는 아니더라도 여성들을 대리만족 시키기 위해서 기획된 드라마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해주고 넘어갈 만하다.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와 세령이 말이 아닌, 오픈 스포츠카나 KTX나 국내항공편을 이용해서 내려간다는 설정을 해도 상관이 없다. 어짜피 공주의 남자는 시대를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드라마에서 아직까지 경혜공주는 노비가 아닌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경혜공주가 노비로 떨어지는 때는 정종이 죽은 다음이다. 이긍익의 열려실기술에 정종이 죽고, 경혜공주가 공노비가 되어 순천부사 여자신에게 모욕을 당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정종(鄭悰) 


본관은 해주(海州)인데, 문종의 부마(駙馬)이다. 경혜공주(敬惠公主)에게 장가들어 영양위에 봉해졌다. 시호는 헌민공(獻愍公)이다.


○ 공이 적소에 있다가 사사된 뒤에, 공주가 순천 관비가 되었다. 부사 여자신(呂自新)은 무인인데, 장차 공주에게 관비의 사역을 시키려 하니, 공주가 곧 대청에 들어가 교의(交椅)를 놓고 앉아서 말하기를, “나는 왕의 딸이다. 죄가 있어 귀양은 왔지마는, 수령이 어찌 감히 나에게 관비의 사역을 시킨단 말이냐.” 하므로 마침내 부리지 못하였다. 여자신은 뒤에 벼슬이 형조 판서에 이르렀는데, 여유길(呂裕吉)의 방조(旁祖)이다.


- 연려실기술(이긍익) 단종고사본말 정난에 죽은 여러신하



영.정조 시대 이긍익이 열려실기술을 쓴 1777년 이전부터 문종의 경혜공주 공노비는 사실처럼 퍼져 있었던 듯하다. 열려실기술 말고도 윤근수(1537~1616)가 지은 <월정만록>에도 경혜공주가 공노비였다고 기록하고 있고, 안정복(1712~1791)의 <순암집>도 경혜공주 공노비는 사실처럼 되어 있었다. 다만, 안정복의 순암집은 순천부사가 아닌 장흥의 관노라는 사실만 다르다.
 

소릉의 어머니 최씨(崔氏)와 소릉의 아우 권자신(權自愼)이 처형되었으며, 영양위(寧陽尉) 정종(鄭悰)이 처벌당했으며, 경혜공주(敬惠公主)가 장흥(長興)의 관비(官婢)가 되었으며, 심지어는 단종(端宗)의 왕비(王妃) 송씨(宋氏)까지 관비로 되었습니다.  - 안정복 순암집



아직까지도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중에 연려실기술을 들어서 경혜공주가 노비가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정조는 경혜공주의 관노비설을 사료비판을 통해서 허구라고 증명을 한다. 더군다나 정종과 경혜공주의 아들 정미수에 대한 이야기도 사료를 들어서 허구라고 증명한다.



《홍재전서》는 1799년(정조23) 12월에 1차 정리되었고, 1801년(순조1) 12월에 2차 정리되었으며, 1814년 3월에 간행되었다. 홍재전서는 정조(이산)의 왕세자 시절부터 죽기전까지의 개인의 시와 저술 자료를 총망라한 개인문집이다.


정조 이산, 경혜공주 순천유배 사실은 없다.
 

윤근수(尹根壽)의 《월정만록(月汀漫錄)》을 상고해 보면, 종이 죽고 나서 공주가 순천(順天) 고을의 노비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세조실록》에 의거하면, 기묘년(1459, 세조5)에 광주(光州)에 안치된 정종과 그의 아내에게 의복을 내려 주었을 뿐, 그 뒤 순천으로 유배한 사실은 없다.


실록의 초본(抄本)에만 경진, 임오, 을유, 병술 4년이 빠져 있으니, 이는 아마 참고될 만한 사실이 없어서 생략한 것이겠고, 《월정만록》은 당연히 오류이다.


그러나 지금 신사년(1461, 세조7)에 소환한 것으로 적으면서 특별히 영양위(寧陽尉)의 묘지문을 증거로 삼았으니, 당시에 이미 영양위가 죽었다는 사실 역시 믿을 만하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11/09/2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 된다? 사실은 진실과 허구 왜 퍼졌을까?을 참고하기 바란다. 

정조가 유학자에 뛰어난 역사학자라는 것이 다시금 증명이 되고, 똑똑한 정조가 신하들을 왜 비난을 하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첫 임신한 경혜공주가 출산한 영아는 딸일까? 아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들 정미수다.

그런데 정미수는 드라마처럼 단종복위를 위해 거사를 하는 1456년 6월 1일 전날 저녁에 처음 경혜와 정종이 사랑을 하면서 만들어졌을까? 그리고 경혜와 정종은 광주 유배지에서 처음 알았을까?

이 또한, 이산 정조는 그럴수 없다고 다시한번 사료비판을 한다. 더불어 정미수는 정종의 유복자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글쓴이도 정조(이산)의 견해에 동조하며 더나가 유복자로 알려진 정미수가 언제태어났는지 증명하려한다.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다음글에 계속..

2011/09/29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산 정조, 정종과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는 유복자가 아님을 증명하다

2011/09/2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 된다? 사실은 진실과 허구 왜 퍼졌을까?

2011/09/2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 처 윤씨 사육신 편에서 자살했나? 사실은 방개떡 고사
2011/09/27 - [역사이야기] - 계백, 부여복신, 무왕과 의자왕 어머니 선화공주 사랑 없었다 증언하다?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제작자 계유정란 김승유 3살? 그럼 김승유와 아들 효달이 동갑? 대략난감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광개토태왕, 계백, 사극 문헌고증 파괴해야 시청률 오른다?
2011/09/24 - [스포츠] - 김연아 키드 김해진 세계 JrGP 3위와 성장통, 손연재 올림픽 진출과 언플?
2011/09/23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불쌍한 신면과 배신자 사육신 어떻게 충신 아이콘 되었나?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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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하 2011.09.29 0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1년 10월 21,22 악스코리아
    최고의 무대! 최고의 가수들이 함께하는 ‘나는 가수다’ 출연확정

    국내최고 라이브가수 박완규 ..... 그리고 부활 패밀리 총출동! 그 동안 방송을 통해 볼수 없었던 그와 그들의 최고의 무대,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활보컬로 데뷔해 lonely night,천년의 사랑, 사랑해서 사랑해서 ,비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을 곡을 히트시켰고 현재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드라마 "공주의 남자" OST "하루애"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9월 발매된 앨범 "사랑하기 전에는" 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로 각종 순위 차트에서도 상위권에 랭크 되고 있다. 박완규는 수많은 라이브 무대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많은 팬들에게 찬사를 받으며 매공연 매진 사례를 기록해왔다. 또한‘남자의 자격’청춘 합창단을 통해 그동안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활발한 활동을 시작해 다시금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고 최고의 가수들이 서는 최고의 무대인 MBC "나는 가수다" 출연이 확정 되었다. 최고의 무대로 부활하는 이번 콘서트에서는 박완규 외에 부활 패밀리의 총출동으로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국내 no1 그룹 부활의 보컬 정동하 그리고 역대보컬 이성욱, 정단 위대한 탄생의 최고의 히트메이커 백청강, 이태권, 손진영 등이 함께 참여해 박완규와 함께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그 동안 방송이나 공연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환상적인 무대 출연진들과 함께 꾸미는 최고의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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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어릴 적 애마부인을 무척 사랑했던 모양이다. 시도 때도 없이 세령과 김승유를 말에 태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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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앞에 둔 이들 커플은 만나기만 하면 키스신을 남발한다. 사랑을 확인하고 이들 세령과 김승유의 사랑이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다는 암시와도 같다.

545~548년 미실 탄생

미실은 아버지 미진부와 묘도사이에 태어났다. 어머니 묘도는 진흥왕비가 되는 사도와 자매간이다. 사도는 7살에 진흥왕의 비가 되었다.

미실의 외할아버지는 영실각간으로 법흥왕이 왕위를 물려줄 생각을 하였던 사람이다.

미실의 동생은 미생으로 550년에 태어났다. 그러니 미실은 550년 이전에 태어나야 한다.

551년 미실은 사다함의 동복아우인 설원랑과 함께 화랑을 이끌고, 진흥왕의 한수침공과 마운령 전투에 참전한다.

설원랑은 545년생인 사다함보다 3살이 어렸다. 그러니 설원랑은 548년생이 된다.


12년 신미(진흥왕 12년: 551)에 왕이 거칠부와 대각찬(大角)(특등위)구진(仇珍), 각찬(1~2등) 비태(比台), 잡찬(3등) 탐지(耽知), 잡찬 비서(非西), 파진찬 노부(奴夫), 파진찬(4등) 서력부(西力夫), 대아찬(5등) 비차부(比次夫) 아찬(6등) 미진부(未珍夫) 등 여덟 장군에게 명하여 백제와 더불어 고구려를 침공하게 하였다. 백제 사람들이 먼저 평양(平壤)을 격파하고 거칠부 등은 승리의 기세를 타서 죽령 바깥, 고현(高峴) 이내의 10군을 취하였다. - 삼국사기 거칠부 열전

551년 설원랑은 4살이고, 미실은 사다함과 같은 나이라면 6살이 되어, 수천의 군사를 이끌고 마운령 전투에 참전을 하였지만, 수백명도 안되는 군사만을 남겨두고 후퇴할수 밖에 없었다. 이때에 비로소 미실은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고, 덕만이 612년 유신이 풍월주에 오른 직후, 안강성에서 귀족의 매점매석으로 배고픔에 지친 백성들이 난을 일으킨다. 덕만이 안강성의 민란주동자를 직접 죽였을 때 설원랑과 한담을 하면서 덕만도 업그레이드 될것이라고 이야길 한다.

561년 이전 미실은 사다함과 관계를 하기전에 지소태후와 이사부 사이에 태어난 세종과 관계를 한다. 하지만, 지소태후의 미움을 받고 궁에서 쫓겨난다. 궁을 나온 미실은 사다함과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다. 사다함은 대가야가 반란을 일으키자 출전하여 전공을 세운다. 사다함이 돌아 왔을땐 미실은 다시 세종과 사이가 좋아졌고, 지소태후가 세종과 결혼하는 것을 허락한다. 사다함은 닭쫓던 개 지붕처다보듯 헛물만 켠것이다. 미실은 다시 세종 여자가 되어 있었다.

545년 이사부, 노리부, 12살 진흥왕

576년
 진흥왕은 설원에게 "신라의 적 미실을 척살하고 신라의 정의를 바로 세우라"는 비밀지령을 내린다. 하지만 설원은 진흥을 배신하고 미실의 편에 선다. 미실은 진흥왕을 독살하려 했지만 진흥왕이 자연사를 하는 바람에 독살에 실패를 하였다.

동륜의 장자인 백정(진평원)을 옹립하라는 진흥왕의 유지도 거부하고 유서를 조작한다. 그리고 황후로 만들어준다는 금륜(진지왕)을 옹립한다.

진지는 진흥의 유지인 삼국통일의 꿈을 받을 생각이 없이 세월을 보낸다. 또한, 미실에게 황후가 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후 진흥왕 6년 545년에 만들어진 <국사>에서 "덕업일신 망라사방'을 빼버린다.

6년(545) 가을 7월에 이찬 이사부(異斯夫)가 아뢰었다. “나라의 역사는 임금과 신하의 선악을 기록하여 포폄(褒貶)을 만대(萬代)에 보이는 것이니, 이를 편찬하지 않으면 후대에 무엇을 보이겠습니까?” 왕이 진실로 그렇다고 여겨 대아찬 거칠부(居柒夫) 등에게 명하여 선비들을 널리 모아 [국사를] 편찬케 하였다. - 삼국사기 진흥왕 6년

진흥왕 6년은 진흥왕 나이 12 살이였다. 하지만, 이순재가 아역배우 빰치게 수염도 기르고 아역을 훌륭히 소화하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아니면 배우 이순재가 12살 영계 진흥왕을 소화할 수 있겠는가? 이순재 개인으로서도 12살 아역을 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영광스럽지 않을까 한다.


579년
거칠부와 문노는 진흥왕의 유지를 받들지 않는 진지(금륜)에 불만이 많았다. 진지왕과 미실사이에는 형종(비담)이 태어났지만, 황후가 되지 못한 미실은 거칠부와 문노와 동상이몽의 꿈을 같이하여 진지왕를 폐위시켜 버리고 어린 진평(백정)을 왕위에 올린다. 그리고 비담을 버린다. 하지만 이때 문노가 형종을 몰래 키운다. 형종은 579년에 태어났다.
 
원년(579) 8월에 이찬 노리부(弩里夫)를 상대등으로 삼았다. 친동생 백반(伯飯)을 진정갈문왕(眞正葛文王)으로, 국반(國飯)을 진안갈문왕(眞安葛文王)으로 봉하였다.

백정이 왕위에 오를 때, 동생인 백반은 진정갈문왕 국반은 진안갈문왕을 삼는다. 하지만, 이들은 극중 내내 어디로 사라졌는지 언급이 없다. 아마도 미실이 죽여버렸을 수도 있다. 아니면 미실의 손아귀에서 손도 쓰지 못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580년 13살 어린 진평왕을 왕위에 옹립하고, 진평의 어린 아내인 마야를 죽이려 한다. 이때 마야는 천명과 덕만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명과 덕만은 신성이 있어서 문노와 소엽도의 도움의 구사일생 위기 탈출을 한다. 그리고 임술년이 되어 쌍둥이를 낳는다.

이때 국사 재편찬을 주장한 문노의 장인인 거칠부도 죽여 버린다. 거칠부는 재주가 좋아서 젊은 시절 진흥왕의 목숨을 구해준 소엽도를 만들고, 소엽도에 이루어 질수 없는 꿈인 삼한일통의 '덕업일신 망라사방' 여덟글자을 남긴다. 거칠부는 죽기전에 소엽도에 비밀이 있다고 진평에게 사방지 놀이로  밀서를 전달한다. 

쿠데타에 성공한 미실은 자신의 사람들로 궁을 비롯해서 병부까지 장악을 한다.


임신한 마야는 천명과 덕만 쌍둥이가 태어난다. 진평은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 때문에 왕통이 끊길 것을 염려하고, 사랑하는 부인을 위해서 둘째 덕만(인명)을 버린다.

미실은 덕만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다만, 자신의 <천신황녀> 후계자로 삼아 신라를 경영할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문노는 덕만과 소화를 비담이 있는 은신처로 피신을 시킨다.


아장아장 걸을 때 보았던 어린 덕만(인명)을 보고, 한눈에 반해서, 일생일대의 비운의 짝사랑을 시작한다. 


문노는 비담과 덕만(인명)의 사주를 보고 이들처럼 환상적인 궁합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평이 아들을 낳을 수 없는 쌍둥이를 낳았으니 비담이 덕만과 결혼하여 사위왕으로 신라의 왕이 되어 진흥왕의 유업인 <삼국통일>을 이룰수 있다는 환상에 빠진다.

비담은 <건복원년> 칠월칠석에 태어났고, 덕만과 천명은 <임술년>에 태어났다. 소화는 비담이 진지왕과 미실의 자식임을 알고, 결혼을 시킬수 없다며, 신라를 떠나 사막으로 피해 살아간다.


비담과 덕만의 사주가 끝내준다면 비담과 천명과의 사주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도망간 덕만보다는 천명과 결혼시킬 생각을 해야하는데 용수에게 천명을 빼앗기고 만다.

584년 건복원년 세월은 흘러 진평왕이 성인이 되었다. 이때 연호를 <건복>으로 바꾸고 직접통치를 하지만, 실권은 여전히 미실에게 있었다.

612년, 579년에 태어난 줄 알았던 비담은, 유신이 풍월주가 되던 해에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 수 있는 단서를 문노가 감춰둔 사주단지에서 발견 한다. 그리고 국사 진지왕 마지막 편에서 자신의 흔적을 발견 한다.

너무나 또렸이 건복원년에 진지왕과 미실 사이에 형종이 태어났다는 기록을 보고 자신도 왕의 혈손이니 덕만과 결혼할 수 있다는 꿈을 꾸지만, 덕만은 사랑하는 유신만 쳐다본다.

612년 15대 풍월주 비재로 김유신이 풍월주가 되었을 때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된 비담은 579년생으로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584년생으로 알고 있었을까? 한살이라도 젊은 584년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한다.


무신년, 588년

588년 무신년
진흥왕은 설원랑에게 죽으면서 "신라의적 미실을 척살하고 신라의 정의를 세우라"고 밀서를 준다. 하지만 설원랑은 미실을 죽이지 않고, 미실의 편에서 진흥왕을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 미실의 난중에 비담의 손에 들어 갔지만, 비담은 덕만에게 사실을 숨긴다. 덕만이 비담을 신뢰하지 않는 모티브로 사용되어 질것 같다.

사실 밀서를 줄때는 옥새를 찍지 않는다. 진흥왕 말년에 드라마상 옥새를 관장하는 자는 미실이였고, 그래서 <새주>라고 불리지 않았던가. 당연히 옥새가 찍히지 않아야 하고 진흥왕의 <수결>이 있어야 한다.  또한, 진흥왕은 576년에 사망한다. 만약, 비담이 숨기지 않았다고 해도, 공개되었다면 다치는건 미실이 아니고 덕만이 된다. 문서위조의 달인을보유한 죽방이 있는 덕만이기 때문이다.

설마 한나라를 40여년 동안 책임진 미실이 무신년(588년)이 언제이고, 진흥왕이 죽은 <병신년>을 모르겠는가? 그리고 직접 미실 자신이 설원에게 보관시키고 있었는데 말이다. 또한, 공식문서에 연호도 사용하지 않고 <무신년>이라고 쓸이유도 없다. 576년은 태창 9년에 해당한다. 그런 의미로 비담은 너무나 잘 숨긴것이다. 안그럼 전세는 미실편으로 급격히 바뀌고, 미실이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드라마 <미실>의 주인공 미실 고현정 투혼으로 지금까지 인기를 유지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난을 일으키지만 덕만의 반격으로 경남 합천에 있었던 대야성으로 숨어든다. 덕만은 대야성에 독을 푼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리자. 내부혼란에 빠진 미실 고현정은 난에 실패하고, 미실은 대야성에서 독배를 마시고 아름다운 자살로 생을 마친다. 한마디로 자살미화이다. 고현정의 자살로 마감된 드라마 <미실>은 시즌 2  드라마 <선덕여왕>이 만들어 지는 시점이다.

또다시 선덕여왕 추가연장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주인공인 덕만 이요원과 자신들이 이전에 대본에서 뭘 대사로 썼는지도 모른작가 중  일인인 김영현이 반대하고 있는 입장이지만, mbc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추가연장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드라마 선덕여왕은 드라마 미실이였다. 사실 선덕여왕을 다룰려면 지금까지 한 50회를 다시해야만 정상적인 덕만이 여왕이 되는 준비기간과 여왕으로서 삼국통일의 초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야 애초 제작팀의  기획의도에 맞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쪽대본에, 대본의 부실속에서도 배우들이 부상이 일상화가 된 시점에서 다시 추가 연장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차라리 미드처럼 시즌 1으로 종료를 하고, 숙려기간을 두고, 쪽대본이 아닌 완성된 대본을 바탕으로 역사 전문가들에 감수를 받고, 치밀하게 준비하여 완성도 높은 극을 선보여야 할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1주일 1회방영하는 금요일로 편성을 바꾸어 좀 더 배우들이 연기에 집중하고, 내실을 다지면서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어쨌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온 기록을 바탕으로 미실의 탄생부터 젊은 시절을 시간순으로 재구성하였다. 처음 기획은 미실이 태어나서 난의 실패로 자살하는데 까지를 정리할 생각이였다. 하지만 글이 너무 길어져 버렸다. 그래서 588년 무신년 진흥왕의 칙서까지만 다뤘다. 2부는 다음기회로 넘기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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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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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11.12 08: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봤습니다..
    2부도 기대할게요~~^^
    오늘 너무 추운데..
    따뜻하게 완전무장 하시고~
    감기조심 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1.12 11: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대하지마셈.. 안쓸수도 있습니당.. 추천을 보니 쓰지 말라는 것 같공.. 다음 관리자도 무조건 선덕여왕빠라서 메인도 안걸어주공..힘이 없습니당. ㅋㅋ 오히려 역사와 드라마의 차이를 분석한 글이 필요한것이 아닌가 하는데.. 관리자는 그렇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머 역사를 알고 드라마를알아야 하는데 전혀 아니니.. 점점 분석글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편집진에 따라서 수준이 결정된다고 하는데..암튼..

  2. Favicon of http://waarheid.tistory.com BlogIcon 펨께 2009.11.12 0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역사공부 톡톡히 하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1.12 11: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공부와 국민드라마인 선덕여왕 작가를 까는글이지요.. 문제는 작가를 까는데 시청자들이.. 자신을 욕한다고 생각한다는 아이러니.. ㅋㅋ

  3. Favicon of https://greensol.tistory.com BlogIcon 여행사진가 김기환 2009.11.12 08: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 읽어도 참 대단한 포스팅입니다.
    공부 잘 하고 갑니다.

  4.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11.12 1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들여 이토록 멋지게
    정리하셨는데...
    반응은 영 ...
    안타까운 생각이 ...
    잘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1.12 1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두셈.. 글읽는 자신들을 욕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요.. 그런데 왜 글을 읽는지 모르겠어용.. 글을 신나게 읽고,, 쌩까는건 먼지.. 정보는 얻고 추천은 않하겠다는 발상인지.. 하여간 요지경 세상입니당..ㅋㅋ

    • ... 2009.11.12 2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 진정으로 좋은 글은 언제나 채택됩니다. 착각하길 마시길. 뿌린대로 거두는 법이랍니다 ㅇㅇ

    • 생각있는 사람들은 말이 많지 않은 법이지요. 2009.11.13 0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혹시 이 글들을 더 이상 안 쓰실까,
      걱정하면서 읽고 있었습니다.ㅎㅎ

      쓰레기 선덕여왕 덕분에
      진주를 건집니다.

  5. 2009.11.12 1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1.12 11: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무 다작을 하시는건 아닌가요?
      선덕여왕에서 설정을 그렇습니당.. 비담은 형종이고, 형종은 비<형>랑이고..비형랑의 <비>를 빼와서 비담이고, 비형에서 <형>을 빼왕서 형종이 된거지요.

  6.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11.12 1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도별로 정리해주시니 역사 속의 한 장면이면서 그렇지 않기도 한 드라마라는 생각이 드네요.
    후자가 더 강하긴 합니다만ㅎㅎㅎ
    역사의 반영도 잘 되면 좋겠지만..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어쩔 수 없는 한계이겠죠.
    주말에 추워진다는데 감기 조심하세요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1.13 09: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음 편을 보면 명확해질겁니당..
      재미를 위해서 였으면 좋겠는뎅.. <위해서>는 의도가 있다는 뜻인데..전혀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요..

      저야 극이 망가질수록 더 재미를 발견하는 쪽이지만요..

      숨은 그림을 찾는 재미가 솔솔하거든요.. ㅋㅋ

  7. 2009.11.13 06: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사서에 나온 내용이 아니어도 드라마에 나온 설정과 순서대로 연도를 푼 것인가요?
    천명과 덕만은 쌍둥이도 아니었고 뭐.. 드라마 선덕여왕은 연대가 온통 뒤죽박죽에 아예 세대 자체가 다른 인물들이 또래로 나온다던데..

  8. Favicon of https://boskim.tistory.com BlogIcon 털보작가 2009.11.13 1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햐! 역사책을 한페이지에 요약하셨군요.
    멋진 포스트 잘보고 갑니다.
    날씨는 흐리지만 마음은 밝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9. Favicon of http://blog.daum.net / uri - modu BlogIcon 시림, 김 재덕 2009.11.13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l^*..........
    드 높던 파란 하늘
    너 가고는

    곁 두었으나
    너 느끼지 못 했어

    긴~겨우 지나야
    다시

    내 가슴 속
    아름다운 너에 모습을...

    행복은 곁에 있어요
    사랑으로...
    기다림에

  10. ... 2009.11.13 2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덕여왕으로 고현정으로 캐스팅하면 영웅본색2가 되면서 재밌어 질듯 싶습니다~

  11. 갓쉰동님 광팬 2009.11.15 0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순재님이 12세 진흥왕을 연기한다는 대목에서 마시던 물 뿜을뻔 했습니다. ㅎㅎㅎ 그 대목 강렬하게 오는대요? ㅋㅋ

  12. Favicon of https://dynamide.tistory.com BlogIcon 디나미데 2009.11.15 11: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맨 위 사진 설원랑 머리에 흰색 고리는 뭐죠?

    날아오는 화살까지 막아주는 소엽도도 보입니다.

    4살, 6살, 12살... ^^ 신라는 어린이들이 이끌었나 봅니다. ㅋㅋ

  13.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niches/hairy.php BlogIcon Hairy Pussy 2012.07.12 1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제는 극중 리얼리티는 그동안 꾸준히 선덕여왕이 보여준것 처럼 시청자를 무지하고 무식

  14. Favicon of http://mycustomerreview.com/ BlogIcon Amos 2012.10.14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라고 말을 한다. 미실과 설원랑이 참전을 했지만, 삼천명이 수백명만이 남았고, 탈영하는사람이

  15. Favicon of http://rexmaneally.blogspot.com/2012/04/emergency-emergency-kits-save-lifetime.. BlogIcon food storage supplies mylar 2012.11.01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6. Favicon of http://caloriecount.about.com/forums/the-lounge/flexpetz-flexible-pet-ownership BlogIcon cost of owning a dog calculator 2012.11.05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 매우 전문 블로거입니다. 내 피드에 가입하여 큰 게시물의 여분의 탐구에에 남아

  17. Favicon of http://ritaloyan.posterous.com/wild-survival-kits-basic-necessities BlogIcon 72 hour kits for toddlers 2012.12.10 2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톤을 먹던 수백톤을 먹던 광우병에 안걸리지 않는가 말이다. 혹시라도 모르니 M/M형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고 필히 확인하기 바란다. 1%내각에 1%수석들에 1%보좌관들이지 혹시 우리나라에서는 5%밖에 없는 특이 체질인 M/V형이거나 V/V형인지 모르지 않는가 말이다.

  18. Favicon of http://shawnmorales.typepad.com/blog/2012/04/office-endurance-kits-should-the-.. BlogIcon 5 gallon water bottle 2012.12.10 2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선덕여왕을 다룰려면 지금까지 한 50회를 다시해야만 정상적인 덕만이 여왕이 되는 준비기간과 여왕으로서 삼국통일의 초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야 애초 제작팀의 기획의도에 맞지 않을까 한다.

  19. Favicon of http://questionthedogma.com/blog7/2007/07/im_not_sure_why_i_find_this_id.html BlogIcon flexpetz.com 2012.12.22 1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꾸 침대위로 올라가서 먹으려고 하는 바람에.. 내 앞발을 빌려주었다. 흠.. 근데 다른 강아지들은 등뼈 주면 살살 갈아

  20. Favicon of http://freezeddryfood.tumblr.com/ BlogIcon food for survival planning 2013.01.01 1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선덕여왕이 아니면 배우 이순재가 12살 영계 진흥왕을 소화할 수 있겠는가? 이순재 개인으로서도 12살 아역을 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영광스럽지 않을까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 43회와 44회는 미실이 난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곳으로 토끼몰이를 하듯 덕만이 압박을 하고, 미실이 드디어 칼을 빼어 들었다. 꿈을 위해서 옥이 깨지듯 찬란히 부저져 버리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미실의 최후와 퇴장이 가까웠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미실역을 맡은 고현정은 48회까지 연장을 합의한 상태이다. 그러니 앞으로 2주이상은 계속 보아야 한다. 미실 고현정의 하차는 미실의 난으로 인한 옥이 찬란히 부서지듯 찬란한 종말을 고하며 하차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알고 있거나 추론하고 있는 덕만이 '미실의 난'으로 명명한 미실이 난이 칠숙의 난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또한, 미실이 난을 일으킨 후에도 오래 동안 생존하고 있었다는 뜻이된다. 다만 합리적인 추론의 결과에서는 그렇다는 뜻이고, 미실의 난을 가지고 작가나 제작팀이 이야기를 길게 끌고 간다면 또다른 상황에 봉착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디로 튈지는 작가와 제작팀이 알아서 할일 이기 때문이다.


그럼 드라마 제작팀이나 선덕여왕 작가는 미실의 난이 언제 일어 났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정답은 드라마에 숨어 있다. 선덕여왕은 미실의 난이 일어난 때를 "병자년"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병자년은 언제일까를 찾아보면, 진평왕 몇년에 미실의 난이 일어났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병자년은 진평왕 38년에 해당한다. 이때는 616년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이미 잘알려진 631년 칠숙의 난과 미실의 난을 같은 시기로 보지말아 달라도 분명히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미실의 난이 칠숙의 난이라는 기사들이 난무한다.

선덕여왕에는 미실의 난과 칠숙의 난이 다르다는 증거들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미실의 난은 616년 병자년에 일어 났다.


AD616 병자丙子
신   라 :  진평왕 38년
백   제 :  무왕 17년
고구려 :  영양왕 27년
진평왕 38년(616) 겨울 10월에 백제가 모산성을 공격해 왔다. - 삼국사기 진평왕38년 616년 겨울

둘째. 미실의 난이 일어난 때 풍월주는 김유신이고, 상선은 호재이다. 김유신은 612년에서 615년까지 풍월주를 지낸다. 


셌째. 늙지 않는 미실을 비롯해서, 김유신을 비롯한 10화랑도 늙지 않고 있다.   631년에 일어난 칠숙의 난이 미실의 난이라면, 595년생인 김유신은 37살이 된다. 또한, 김춘추(유승호)는 29살이 된다. 최소한 남성들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수염이 나기 시작한다. 그러니 유신을 비롯한 10화랑의 턱에는 염소수염이던, 덥수룩한 수염이나 멋진 구렛나루가 있어야 한다.

그럼 미실은 이때 몇살일까? 545~8년생으로 추측되는 미실은 상상에 맡기겠다. 날로 먹으려 드는 구독자도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등장하는 미실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비결을 상상해보기 바란다. 왜 미실은 젊음을 유지할까?  현묘한 도의 궁극은 신선이고 늙지 않고 죽지 않는것이다.


진시황이 찾은 불사국이 신라라고 이야기 한다면 할말은 없다.

넷째. 하종은 미실의 치사한 수를 입안한 설원랑의 명으로 <화백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거나, 참석하더라도 늦게 참석하도록 미혼약을 타러 서현을 찾아간다. 하종은 영모(티아라 큐리:이지현)을 만난다. 이때 영모는 임신하고 있다. 하종은 영모에게 야위였구나, 해산달이 언제냐고 물어본다. 영모의 임신은 김유신이 풍월주가 된 후 귀족들이 매점매석이 일어난때 이다. 그런데 아직 해산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매점매석한 때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야 된다.


그외 수 없이 많은 증거들이 미실의 난과 칠숙의 난이 다른 난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미살의 난이 실패하고, 15년후에 칠숙이 난을 일으켰다고 한다면 극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다. 그렇지 않고 스스로의 증거를 없애고 미실의 난 이 칠숙의 난이라고 극중에서 설정한다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극중에서 스스로의 합리성도 무시를 하는 것이다.

현대판으로 이야기를 하면 미실의 난은 1960년 5.16  박정희의 쿠데타로 보면 되고, 박정희의 충복이자 자칭 양자라고 생각한 전두환은 1980년 쿠데타를 일으킨다. 전두환의 쿠데타는 미실의 충복인 631년 칠숙의 난으로 보면 된다. 두 정변이 같은 정변이라고 주장하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요즘 막장 현대극이나 코미디도 하지 앟는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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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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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sapientis.tistory.com BlogIcon 백두 대간 2009.10.21 18: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늙지 않는 미실을 비롯해서 김유신을 비롯한 10화랑은 늙지 않고 있다.
    요거 완전 대박 멘트네요. ㅎㅎㅎ
    요기 읽다가 배꼽 빠지는줄 알았어요.

  2.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10.21 18: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머...이젠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저 역시 드라마 속 세상으로만...ㅋㅋ 역사로 끼워맞춰서 나름 균형을 맞춰보려고도 했지만...솔직히 미실의 난은, 저도 보면서...이건 좀 심하지 않나 했답니다. 해도해도 너무 한다 싶은 마음이랄까요? ㅋㅋ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드라마 속 허구의 세상, 그 자체만으로 바라보며 즐긴답니다. 어쩔 수 없죠.^^ 저녁 맛있게 드세요. 가야를 드라마로 만들 땐..아마 더 심하겠죠? 내년에 방영할 계획이라던데 말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21 18: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드라마속 세상이라도 해도 드라마에서의 흐름은 있는거지용.. 그 흐름도 저해한다면.. 심각한 반면교사의 표본이 되지 않을까해용.. ㅋㅋ 습작을 해도 저리함 .F인뎅.. 인기는 최고봉이니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고민들 할것 같습니당.. ㅋㅋ

      가야는 아마 이병훈 피디가 만들지 않나요? 이병훈의 제자들이 선덕여왕을 만들었으니.. 이병훈은 좀 다르리라고 믿지만..

      좀 황당사극 말공, 합리적인 사극을 보고 싶은 심정입니당.. ㅋㅋ

  3. 2009.10.21 1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Favicon of https://shain.tistory.com BlogIcon Shain 2009.10.21 1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평왕이 거의 죽을 듯한 상황으로 후계와 부군을 논의하는 상황이고
    삼국사기와 화랑세기에 기록된 반란 중 명확한 건 칠숙의 난, 비담의 난 두가지니
    작가가 그 두가지를 염두에 두고 묘사하지 않았을까 했네요
    그러나 약간 상세한 부분은 조금 설정했던 모양이군요.
    연대기를 무시한 설정과 모티브
    이미 이 작가분에게 전례가 있지요 아마
    대장금에서 열 몇살에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를 때 즈음 입궁한 우리 장금이가
    진성대군이 중종임금으로 죽을 때 그러니까 무려 39년이 지난 ...
    그 나이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설정 ^^;
    기존 선례에 비춰 역사의 부분부분을 필요할 때 활용하는 방법을 자주 써먹었었다고 간주해버렸네요.

  5.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10.21 2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드라마속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만
    갓쉰동님의 지적이 계속 잡아주시네요

  6. Favicon of http://waarheid.tistory.com BlogIcon 펨께 2009.10.21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의 난, 박정희의 쿠데타와의 비교 역시 갓쉰동님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7. 리치왕 2009.10.21 2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실제 역사의 기록과 비교하여 보면 미실의 난이 칠숙의 난이 되는 것은 언급하신대로 극 스토리의 합리성을 무시하는 설정이 되겠지요. 하지만 요즘의 선덕여왕의 전개를 보면 '충분히 그런 설정을 하고도 남을 만한 작가진'을 갖추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한마디로 '실제역사적 사실의 무시'를 전제로 한 스토리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실제 역사에서 천명공주는 요절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덕만공주의 언니가 아니라 동생이였지요.
    - 덕만이 왕위에 오를 당시에는 그와 대등한 세력을 갖춘 정적이 없었고 덕만이 이미 왕실과 귀족사회의 실권을 장악한 상태에서 수월하게 왕위에 오른 것으로 보이는데 극에서는 중국 인근의 사막에서 유소년기를 보낸 것으로 나오지요.

    드라마 선덕여왕이 사극의 탈을 쓴 현실 세계의 풍자와 비판이라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다만, 극의 스토리 전개에 아쉬운 점은 덕만의 입궁이후 귀족세력과 싸우며 무너진 왕권을 확립하려는 덕만과 기득권을 사수하려는 미실과의 정치적 암투에 전혀 긴장감이 없고, 사실상 정치적 암투라고 부를만한 이렇다할 사건 자체가 없었다고 보는것이 맞을 정도로 맥빠진 대결이라는 점이군요.

    스토리의 전개는 개연성이 있어야 하는데, 왕도 자기 입맛에 따라 바꿀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자 미실의 덕만에 대한 대응은 마치 이전 우리나라 사극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조선왕조의 후궁 정도의 포스밖에는 느껴지지가 않고, 병권을 장악하고 있는 병부령을 수족처럼 부리는 정적을 상대로 한 덕만 추종파들의 행동양식이 참으로 대담하기 그지없을 뿐더러 상식적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도 없을 만한 도발행위들을 서슴없이 하는 스토리 전개는 참으로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도데체 왕실이 미실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어 보입니다.

  8.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10.22 10: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의 난 = 칠숙의 난 이 분명해요.
    미실이 칠숙에게 "나를 원망하느냐?" 뭐... 그런 식의 질문을 했을 때부터 짐작했어요...
    반란이 실패해도 칠숙을 희생양으로 해서 목숨을 구할 방법을 만든 것이 아닐까요?
    게다가 칠숙이 석품에게 세종을 찌르라 시켰으니...
    칠숙, 석품의 난이 맞습니다... ㅋㅋ
    아니라면 작가들이 오락가락 하는거지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9. 마음 2009.10.22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억지스런 현실세계풍자가 말이 많은 이유겠죠. 역사적 소재를 불러와 너무 끼워맞추기식의 전개로 일관하니 어이가 없을뿐입니다. 대장금처럼 차라리 사극의 외피를 두른 판타지극으로 설정했담 몰라도 미실을 제외하곤 역사서에 공히 기록된 인물들 그것도 유명한 인물들을 끌어와서 한다는 얘기가 허무맹랑이니 원.

  10.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10.23 1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늦게 올리시고
    전체 포맷도 바꾸시고...
    많이 노력하시는게 보이나 봅니다.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언제나 좋은 나날 되시길 바랍니다.

  11.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2. Favicon of http://https://www.google.com/ BlogIcon tony 2012.11.20 1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맷도 바꾸시고...
    많이 노력하시는게 보이나 봅니다. ㅎㅎㅎ
    잘보고 갑 <a title="tony" href="https://www.google.com/">tony</a>

일단 일식이 일어나는 조건을 살펴 보겠습니다. 일식은 위의 그림처럼 태양 - 달 - 지구가 나란히 서서 달이 태양을 가리는 때를 가리킵니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보름날을 즈음해서 절대로 일식이 일어 날 수 없습니다.

보름날을 즈음해서는 태양 - 지구 - 달 순으로 해서 보름날 지구가 태양을 가려 월식이 일어 나는 겁니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은 옥에 티가 되는 겁니다.

기본적인 상식을 알았으니 2009년에 있었던 일식과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공주였던 진평왕 시기부터 그 이후 일식이 있었던 해를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일식은 대체적으로 년중 최대 4번에서 2번 정도 지구의 어느곳에서 던 발생합니다. 일식이 한번 발생하면 해당지역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권에서는 집중적으로 나타난 해는 590년에서 610여년 동안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때 고대인들은 하늘의 섭리에 국왕이 정치를 잘 하지 못했다고, 하늘을 원망하기 보다는, 하늘의 아들을 자임하는 임금을 원망하였을 겁니다.  이시기가 중국에서는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남북조시대를 끝내고 수나라가 통일한 시기도 580년대이고, 수나라가 멸망한 시기도 618년입니다.

당시 사회적으로 대변혁의 시대인 것이지요. 백성들은 하늘의 뜻을 이용한 수나 당의 교체를 일정정도 용인하고, 왕이 될려는 자는 하늘의 일식을 이용해서 정권교체의 정당성을 설파하고, 대국민 선전전을 펼쳤을 겁니다. 물론, 수가 멸망한 이유는 고구려에 대한 공격의 실패와, 수 양제의 대규모 토목공사로 인해서 이기도 하지만, 반역을 꿈꾸는 위정자들은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한 일식을 대국민 프로파간다(여론조작,선동)로 역성혁명의 정당성으로 이용했을 겁니다.

이런 저변을 생각하시고 2009년 일식으로 부터 6세기말에서 7세기 초의 일식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2009년 7월22일 일식


2009년 일식을 보시면 제주도 남단을 지나고 있습니다. 푸른색 지역을 관통하는 지역은 개기일식에 가까웠을 겁니다. 한반도의 남단은 개기일식은 아니지만 50%이상 태양이 잠기는 부분일식을 발견하게 됩니다. 2009년 7월 일식으로 중국대륙은 광분의 상태에 빠졌습니다. 일식을 가장 많이 볼 수 있었으니까요.

572년 9월 23일 이 일식은 백제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 본기 - 백제 위덕왕 19년(572)에  가을 9월 초하루 경자에 일식이 있었다.

이시기 이후 거의 매년 일식이 태평양과 아시아권에서 발생합니다. 아마도 이들 지역의 고대인들은 천지가 개벽하는 줄 알았을 것 같습니다.  
  

594년 7월 23일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39년(592) 가을 7월 임신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만약,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진평왕시기 일식이 있었다면 신라가 관찰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일식이 있던 해입니다.

 이시기를 즈음해서 중국은 수와 당의 교체기에 해당합니다. 아마도 민심이 흉흉했을 것 같습니다. 고구려와 전쟁중에 일식이라니, 하늘이 수나라를 버렸다고 믿었을지도 모르지요.

삼국사기 본기 - 원성왕 3년(787) . 여름 5월에 금성[太白]이 낮에 나타났다.  8월 초하루 신사에 일식이 있었다.
 

 
 
언제 일식이 있었고 앞으로 언제 일식이 있었을까 알고 싶거나, 일식테마 여행을 떠나고 싶으신 분은 이곳에서 검색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추후 삼국시기에 기록된 일식과 비교하는 기사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주실거죠?
 
오늘은 토요일이라서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포스트를 올렸습니다. ^___^
 Five Millennium (-1999 to +3000) Canon of Solar Eclipses Database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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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29 06: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식에 대해서 정말 많이 이해가 되네요.

    작가가 조금만 더 신경썼다면 보다 멋진 각본이 되었을텐데요...

    달이 미치지 않았다면 일식은 보름에 올 수 없는 것이지요?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2.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8.29 07: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롭게 봤습니다. 매년 일식이 있었을 땐...정말 신의 시대였던 당시로선 백성들이 정말 걱정이 많았을 듯.
    요즘도 일식이 벌어진다 하면 세계적 관심이 집중되는데 말이죠.
    주말 잘 보내세요.

  3. Favicon of https://boramirang.tistory.com BlogIcon Boramirang 2009.08.29 07: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대단하시군요. 행복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

  4. Favicon of http://waarheid.tistory.com BlogIcon 펨께 2009.08.29 0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리신 글 잘 읽고 갑니다.
    행복한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5.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8.29 0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멋진 주말 보내세요.

  6.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8.29 0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어서 포스트 올리셨다는데..이거 공부 엄청 해야 작성할 수 있는 포스트인걸요. 'ㅁ'

  7.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8.29 08: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금펜 감축드립니다. 더 멋진 포스팅 기대하겠습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8.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8.29 1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봐도 잘 모르겠슴.
    갓쉰동님 때문에 어제 엄청 퍼마셔
    아직도 하늘이 빙빙.....
    나중에 다시 ㅋ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9.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8.29 1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포스팅 ㅎㅎㅎㅎ감사해요.

    저때 일식이 빈번했다니 덕만이가 일식의 힘을 등에 업고 공주로 등극하는건 그렇다 쳐도
    보름달때 일식이 일어나는 설정이었다는게 아직도 아쉽네요.
    이것도 갓쉰동님 포스트 보고 안거... ^^

  10. Favicon of http://blog.daum.net/gnathia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8.29 1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볼때마다 정말 대단하신 것을 느낍니다.
    짝짝짝~!!

  11. 2009.08.29 14: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2. 2009.08.30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0 13: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시간나면 오셈.. 저도 다 방문못하고..댓글도 못다는데용.. 항상 이웃들에 미안하지요.. 하지만,,오시는 님께는 최선을 다해서 댓글을 달려고 노력함..

  13. Favicon of http://blog.daum.net/cameratalks BlogIcon 카메라톡스 2009.08.30 18: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펜슬 축하드립니다.

    잘보고 갑니다.

  14.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천명(박예진)

그동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만을 토대로 천명과 덕만이 어머니가 다른 이유를 증명하였다.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천명은 덕만과 같은 어머니 일지라도 천명이 나이가 많고, 덕만은 나이가 어린 동생이라고 주장했었다. 이제 천명은 절대로 마야의 소생이 아님을 증명하고, 마지막 가능성을 버릴려고 한다.

일단, 천명의 나이를 정확히는 알수는 없지만, 천명의 아들인 춘추가 603년 생이라는 사실은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천명의 나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천명이 13~15세에 용수(용춘)에게 시집을 가서 603년 춘추를 낳았다면, 천명은 587~589년 생이다.

그럼 천명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살펴 볼 차례이다. 천명의 아버지는 진평왕이다. 진평왕은 13세인 579년 진지왕이 폐위되고, 26대 신라국왕에 등극했다. 그렇다면 진평왕은 567년 생이 된다. 만약, 마야가 천명의 어머니라는 가정하에서 마야의 나이를 유추해 보자,

마야가 진평왕과 같이 등극시나 등국후 바로 왕후가 되었다면, 진평과 나이가 비슷할 것이다. 신라에는 13세 이전에 결혼하는 것 보다 더 빠르게 결혼을 하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는다. 또한, 민며느리제도가 꼭 동옥저만의 풍습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안의 어린 신부를 맞아 키워서 정식 며느리로 삼는 경우가 조선시대까지도 비일비재 했었다. 진위를 알 수 없는 화랑세기에는 12세 풍월주 보리는 13세에 결혼을 했지만, 아내인 보룡(만호/숙태자)는 7살에 시집을 갔다.  또한, 일제시기 여성를 성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막기위해서 어린신부들이 일찍이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성만이 알 수 있는 진평/마야와 천명/덕만의 생리학적 접근

그렇다면 마야는 진평왕과 같은 나이로 유추해 보자.


진평,용춘,천명,춘추의 생몰년 비교와 마야,천명,덕만 나이 추정


진평왕은 천명을 19~23살 정도에 낳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시 시대상황으로 보면 조금 늦은 나이때 천명을 낳은  것이다. 그렇다면 천명위로 진평왕에게 몇몇의 자식이 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이제 천명의 주변에 관한 이야기는 그만 하고, 이전에 추적한대로 덕만의 출생시기는 632년 15~18세에서 정도로 추측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이유는 632년 등극과 동시에 대신인 을제에 국정전반을 관할하게 하여, 일종의 을제 섭정기간이 지나고, 634년 선덕왕 2년 음갈문왕과 결혼을 하고, 진평왕이 사용하던 <건복>이란 연호를 <인평>으로 바꾸면서, 진평왕의 유흔통치를 끝내고, 직접통치의 길을 나섰음을 신라에 천명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덕만은 615년(18세등극시)생에서 618년(15세등극시)생 사이가 된다. 

왜 덕만은 어린나이에 왕이 될 수 밖에 없는가? 이와 관련된 기사는 다음 목록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럼 천명과 덕만의 기록을 비교해 보자, 천명은 585~589년생이고, 덕만은 615~618년 생이다. 이들간에 나이차는 최소 27살에서 많게는 34살 차이가 난다.

615년에 덕만의 아버지 진평(567년생)과 어머니 마야는 567년생이니 이들이 덕만을 낳을때 나이는 49~52살이 된다. 아버지 진평으로써도 늦은 나이이기도 하지만, 남자라는 동물은 문지방 넘을 힘만 있다면 얼라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문지방 넘을 힘이 없고,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애를 낳을 수 있다.

덕만(이요원)

하지만 여성인 어머니 마야의 나이는 여성의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이례적이지 않는가? 더 나아가 덕만이 618년 생이라면 마야의 나이는 52세가 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분명히 덕만는 마야의 소생이라고 했다.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은 마야는 진평왕이 679년 왕위에 있을때 왕후가 아니라는 반증이지 않을까? 물론, 현재 기네스 북에 등재 된 최고령 자연임신과 출산은 59세이다. 현재 의료가 발달된 혜택을 충분히 보고 있는 영국의 사례이다. 한국의 사례는 52세가 최고령 출산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현대 여성의 폐경기는 45~50세 전후로 알려졌다. 과거 신라사회에서도 여성의 폐경기가 44~52세 정도였을까? 마야가 아주 늙은 나이때 덕만을 낳았을 수도 있다. 이는 아주 특별한 케이스가 된다. 차라리 천명이 덕만을 낳았다면 믿겠지만, 마야가 20전후에 천명을 낳고, 49~52세에 덕만을 낳았다고 한다면 한번은 의심해 봐야 한다. 또한, 마야가 18세~19세에 천명을 첫딸로 낳았다라고 생각한다면, 신라의 결혼 풍습을 알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2007년 기준 통계청 자료, 여성 년령대별 합계출산율표


위의 표는 2007년 전국의 가임여성15~49세의 합계출산율을 반영한 것이다. 45~49세 여성은 이처럼 현대의학과 영양이 충분히 공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1.25명의 0.2%만을 담당하고 있다. 그냥 표로 보았을때 실감이 나지 않지만, 이를 그림으로 본다면 어찌될까?

2007년 통계청자료, 여성 연령대별 합계출산율

삼국사기 기록대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여서 "천명은 진평왕의 딸이고, 덕만은 진평왕과 마야의 장녀이다"를  받아 들인다면, 합리적으로 천명은 진평왕 초년에 왕비인지 후비인지 이름을 알 수 없는 비에게서 낳았고, 덕만은 진평왕 초년의 왕비가 죽거나, 늙어서 아들을 낳기 위해서 들은 후비였거나, 정비로 받아들이고 덕만을 낳았다고 보는게 합리적이 해석이 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기록대로 마야의 나이가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진평과 마야의 장녀인 덕만을 615~8년경 낳았다고 보는게 합리적일까요? 아니면 기록되지 않는 천명의 어머니까지도 마야가 되어 588년경 천명을 낳고, 615~8년경인 49~52살 정도에 덕만을 낳아다고 보십니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는 다르게 화랑세기는 "천명과 덕만의 모후를 마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박창화가 1930년대에 창작한 역사소설이 될수 밖에 없는 핵심적인 키가 됩니다. 마야가 천명과 덕만의 모후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생리학적으로 근거가 부족하다, 그러니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박창화의 창작 역사소설이다. 라고 결론을 낼 수도 있습니다.

마야(윤유선)

하지만, 여기에는 약간의 트릭이 숨어 있습니다. 마야를 진평왕과 같은 나이로 추측했다는 겁니다. 이 함정에 벗어 난다면 쉽게 생리학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진평은 13세에 왕위에 등극하고 18세 친정체제를 구축하면서 꽃다운 13세 전후의 복승/송화(지소/영실)의 딸, 마야를 왕비로 맞이 했다면 당연히 마야가 더 어렸을 수도 있습니다. 진흥왕은 7살에 왕이 되었는데, 화랑세기에는 진흥비인 사도(기오/흥도) 또한, 7살이였다고 합니다.

그럼 위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49~52세는 가능한 44~47세가 됩니다. 49~52세는 불가능한 나이가 되지만, 물론, 3%의 극히 낮은 분포에 해당합니다만, 44~47세는 생리학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 않습니다. 진평왕이 22살, 마야는 꽃다운 낭낭14~18세 미만에 천명을 낳았고, 44~47세 이전인 615년에 늦둥이 덕만을 낳았다. 그러니 천명은 덕만과 같이 마야의 소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단, 삼국사기의 기록을 부정했을때 라는 단서가 붙습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을 신뢰한다면 덕만과 천명은 이복자매 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천명과 덕만의 모후는 마야' 라는 화랑세기를 불신할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위에서 언급을 했지만, 40대 중반에 덕만을 낳았다는 불가능한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해 9월 진평제는 보명과 미실을 좌우후로 삼았다. - 화랑세기 22세 풍월주 양도

화랑세기에는 마야가 진평왕 초년의 왕후가 아니였음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진평은 초년에 보명(지소/구진)과 미실(미진부/묘도)을 좌.우 왕후로 했다고 합니다. 마야가 진평의 첫번째 왕후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화랑세기를 무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겁니다. 화랑세기는 파고들면 파고 들수록 빠지는 마약과도 같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방점을 찍어 두고, 화랑세기의 동부동모 자매간을 가능성으로 열어 두고자 합니다. 어떤것을 선택하던 덕만은 18세미만에 왕위에 올랐다는 불변입니다. 마야는 진평의 첫번째 왕후가 아니였다는 겁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왜 홍시가 홍시맛이 나는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습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봐야 아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천명을 마야의 소생으로 볼것인가 말것인가를 결정하고 삼국사기.유사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느냐 하는 거지요. 만약, 삼국사기를 불신한다면, 최소한 천명, 덕만, 마야의 관계는 화랑세기가 정확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문화.연예 카테고리 다수를 차지 하고 있는 여성들이 그 답을 줄 차례입니다. 어떠십니까?

문제의 핵심은 마야가 진평의 초기 정비라는 가정에 따른 겁니다. 만약, 마야가 진평의 첫번째 왕후가 아니고, 손승만 왕후처럼, 왕자를 생산하기 위해서, 알려지지 않았지만 천명을 낳은 생모 뒤를 이어서 왕후가 되었다면, 천명과 마야, 덕만과 천명의 관계가 아주 자연스럽게 해결이 됩니다. 또한, 천명을 대신해서 덕만이 왕위를 이을수 밖에 없는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합니다.

화랑세기에서 처럼  덕만도 천명의 양보로 진평의 뒤를 이어 27세 신라왕에 올랐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물론, 조선시대 세종이 형들의 양보(?)로 이방원(태종)의 4째 아들로 왕위를 이을 수 있습니다. 왜? 세종이 이방원의 셋째아들이 아니고 넷째 아들이냐?고 반문하는 분들 
2009/07/30 - [역사이야기] - 조선 세종, 신라 덕만, 천명의 기록 비교해 보니  기사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어짜피 천명이 덕만보다 나이가 최소한 27~34살은 많은 진평의 자매간이다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마야는 진평의 첫번째 왕후인것 같습니까? 천명과 덕만이 마야의 딸인것 같습니까? 아니면 천명과 덕만이 다른 어머니를 두었던 것 같습니까? 이 세가지 명제가 모두  참이 되기 위한 조건은 여성은 폐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리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마야는 진평의 첫번째 왕후는 아니다'. '천명은 덕만의 나이 많은 언니다'라는 명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으로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봅니다.

다만, '천명과 덕만은 마야의 딸이다'라는 화랑세기의 명제는 불가능하지만 여성의 생리학적으로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만 언급을 하겠습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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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8.17 06: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후. 복잡하군요. 나이가^^ 그런데 이걸 어떻게 다 정리하셨어요? 전 그냥 봐도 머리가 아픈데. 존경합니다.

  2.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8.17 0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엄청난 분석이신데요. 눈이 띠용~ @_@

  3.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8.17 0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복잡하지만 한눈에 보기 좋게 정리하신 갓쉰동님 덕분에 또 새로 복습하고 갑니다. 블로그 제목은 바꾸셨는데 닉네임은 아직 안바꾸셨나봐요?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07: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___^
      닉을 한꺼번에 바꿔어 버림 기존 사람들이 모르잖아요.. ㅋㅋ

      이번주내에 다음 메인에 한 두번 올라가면.. 그럴리는 없겠지만,.. ㅋㅋ

  4. Favicon of http://blog.daum.net/gnathia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8.17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대단하십니다.. ^^

  5.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8.17 0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야 정말 엄청난 글을 올려주셨네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6. 2009.08.17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8.17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기를 누설 하셨군요...
    이젠 왠만한 남성도 감 잡게 되었다는 ㅋ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막바지 무더위 잘 넘겨
    건강하게 지내시시는 이번주 되시길 바랍니다.

  8.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17 14: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9.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8.17 2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특한 분석에 한 수 배웁니다.
    갓쉰동보다 이반도 더 맘에 들고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8 08: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댓글을 달아 주시고..

      이반이 좀 부드러운 이미지 같기는 하지요? 숨어 있는 이미지는 전혀 상반되는데요.. ㅋㅋ

  10.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삼고, 만들어진 소설 중에서 <선덕여왕>은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가 기록한 덕만이 맏언니, 천명이 동생과는 다르게 설정을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텍스트로 사용하고 있는 화랑세기의 천명의 동생 덕만으로 설정한듯 하지만, 화랑세기와는 다르게 천명을 같은 나이 동복의 쌍둥이로 설정하였다. 하지만 천명의 쌍둥이 동생으로 설정하는 바람에  많은 부분에서 역사와는 다른 시대 상황을 만들고, 그에 따라 등장인물과 사건들이 얼키고 설켜 버렸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덕만과 천명 그리고 통설

그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는 다르게 화랑세기에서는 덕만에 대해서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 알아 보도록 하자.

삼국사기는 덕만을 진평왕의 맏딸이고. 덕만의 어머니는 마야부인이다.

반면에, 천명은 진평왕의 딸이다. 

이 둘의 기록을 그냥 생각없이 읽는다면, 진평왕의 맏딸은 덕만이고, 천명은 진평왕의 딸이니, 천명은 진평왕과 마야부인의 딸이 된다. 그리고  덕만이 맏딸이니 천명은 당연히 첫째는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삼단논법이다. 만약, ~라면, ~다. 이런 류의 소설을 기반으로 논설을 쓰는 자칭,  국내 유수의 자신들의 할말 만 하는 신문사도 있다. 일명 라면사설 또는 라면일보라고도 불리운다. 대부분 이런 라면소설은 그럴듯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고 보면,  기본 개념이 미 장착인 경우가 많다.

더 나아가 <삼국유사>에 보이는 서동요로 너무나 유명한 <서동과 선화>에서 '선화'가 진평왕의 3번째 딸이라고 했으니, 이들의 서열을 비교하면 덕만이 맏이 되고, 천명이 둘째가 되고, 선화가 셋째가 된다. 그런데 이런 설정이 맞는 걸일까?

통설의 문제점

하지만, 글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덕만은 진평왕의 맏딸이 맞다. 문제는 마야왕후인 정비의 소생으로 맏 딸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천명은 단지 진평왕의 딸이라고 만 기록하고 있다. 몇번째 딸인지도 기록하지 않고 있다. 마야의 소생이라고 기록하지도 않았다.
 
만약, 천명이 마야의 소생이였다면, 삼국사기는 천명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했을 것이다. 하지만 삼국사기는 분명히 진평왕의 정비가 마야인것을 알면서도 천명을 마야의 소생이라고 기록하지 않았다. 현재와 같이 1부1처제가 확립된 관점이라면, 누구나 천명의 어머니도 마야라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50년전으로만 돌아가더라도 첩실이란 용어가 공공연히 사용될 정도로 첩의 자식이 있었다. 홍길동전에도 첩도 아니고, 집안 노비를 어머니로 둔 홍길동이지만, 홍판서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설움을 이야기한다. 고려시대만도 사대부 정도만 되더라도 첩은 무수히 많았다.

하물며, 왕의 아내들인 정비와 후비와 비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무수리의 몸에서 난 자식도 왕이 될수 있는게 왕이 가지는 성스러운 특수성이다. 그러니 고려시대를 살아간 김부식이나 일연으로써는 당연히 진평왕의 소생인 것은 맞지만, 천명의 모후가 누구인지 모를때는 덕만의 어머니인 마야를 천명의 어머니로 보지 않았다.
 
천명이 진평왕의 소생인것은 맞지만,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마야의 딸이라고 기록할 수 없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천명의 어머니를 삼국사기.유사에 기록하지 않은 이유는 마야의 소생이 아닐뿐더러, 손씨 승만왕후의 소생도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의 상식으로 과거를 단지, 겉보기 기록을 가지고, 덕만의 어미인 마야를 기록하지 않는 천명의 어머니로 만들고, 이를 기준으로 알 수 없는 덕만이 언제(몇살) 왕위에 올랐을까를 추적한다. 추적의 기준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닌 '천명'을 기준으로 한다. 만약 천명과 덕만이 동부이모라면 이 추척은 아무 의미가 없는데도 말이다.

통설이 가는 곳은 삼천포

가설이나 가정을 잘못세우면 결과가 전혀 다른 길로 빠져들게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통설로 알려진 가설을 따라 추적을 해볼 생각이다.

천명을 기존으로 했을때 덕만의 나이를 추적하는 방법은 없다. 단지, 천명이 낳았다는 춘추를 기준으로 할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춘추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603년에 태어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603년 8월은 신라에서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다. 603년 8월 고구려와 신라가 경기도 영역을 걸고, 고구려는 잃어버린 옛영토를 수복하기 위해서 이고, 신라는 대 중국 교역로의 교두보를 잃어 버릴수 없다는 절체절명의 신라국운을 걸고,  한수에서 일대 결전을 벌인다. 이때, 진평왕은 손수 군대를 이끌고, 침입하는 고구려 군을 북한산성(한수) 전쟁(투)에서 무찔러 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한가위와 추석과 중추절을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같은 날짜이기는 하지만, 전혀 다른 명절이다. 공교롭게 중첩되었을 뿐이다. 광복절과 한가위가 겹치는 것처럼 말이다. 광복절은 광복절이고 추석은 추석이고 한가위는 한가위 일뿐이다. 603년 8월 이때의 승전을 기념하여 중추절이 생겼다. 이에 관한 글은 별도로 포스팅 할 예정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춘추가 603년에 태어 났다면, 천명의 대략적인 나이를 추측할 수가 있다. 천명이 15세~20세에 춘추을 낳았다면, 천명은 584~589년 사이가 된다는 것이다.
천명의 언니인 덕만의 탄생 시기는 582~588년 사이가 된다. 그러니 덕만은 왕위에 오르는 632년에는 45~51세가 된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천명과 덕만이 동복이란 어떠한 기록도 없다. 그런데 잘못된 가정이 덕만을 40중~50초반에 왕에 등극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 대참사가 발생되었다. 만약, 이 사실을 죽은 선덕여왕이 알았다면, 대성통곡할 일이 아닌가?

칭찬한 답시고, 잘 알지 못하는 길가던 아가씨에게 "아줌마 너무 섹시해요"라고  말을 해도 별 "미친놈을 다 봤나"라는 듯 눈흘김을 당하거나 좋은 말 들어 보기 힘들 것이다. 물론, 아줌마에게 "아가씨 너무 섹시해요" 라고 한다면 아줌마가 별미친놈 하면서 돌아서며 내가 아직도 먹어주는구나 하고 입가에 미소를 짓겠지만 말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문제가 아닌 연구자의 문제

사실 덕만을 50대로 설정하는 순간, 덕만과 관련된 삼국.유사 모든 기록은 덕만과 관련이 없는 또는 다 늙은 노처녀의 이야기로 치부해 버릴 수는 있다. 하지만, '모란꽃'사건이나 '지귀심화', 634년 결혼과 연호 변경을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없어진다.

이 같은 사건들이 40대 넘은 노처녀나 50이 넘은 노처녀가 할 만한 일은 아니다. 또한, 등극 후 3년이 지난 635년 남편을 두었다는 기록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모란꽃은 애들에게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나 아빠랑 결혼할래 엄마랑 결혼할래를 갓 졸업한 아이에게나 했음직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관점이 아닌 당대의 관점으로 역사를 본다면

이제 아래의 글을 차분히 현재의 1부일처제 관점이 아닌 과거 수 없이 많은 여자를 거느렸을 진평왕 시대로 돌아가 읽어 보기 바란다.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선덕여왕 원년(632) 2월에 대신(大臣) 을제(乙祭)로 하여금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선덕여왕 원년
634년 3년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3년(634) 봄 정월에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바꾸었다. 분황사(芬皇寺)가 완성되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3년

가정하지 않고, 삼국.유사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고, 해석한다면, 덕만이 632년 왕위에 오른시기는 절대 20 대를 넘기지 못한다.

화랑세기가 본 덕만과 용춘

화랑세기는 기존의 통설을 통쾌하게 반박하고 있다, 그건 "니들 생각이고~" 너희들이 틀렸다라고, 만약, 현존하는 화랑세기가 김대문이 저작한 화랑세기를 필사한 필사본이라면, 그동안 역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는 한마디로 엿먹은 것이다. 그래도 화랑세기라는 필사본이 발견되었으니 쪽팔림은 있더라도 학계발전을 위해서는 만족할 만 하다.


하지만, 박창화가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모방한 가짜라면 이는 더더욱 문제가 된다. 1930년대의 종이에 필사된 화랑세기라면, 1930년대에 이미 개인 박창화는 현재 2010년 즈음의 전체 역사학계 보다도 뛰어난 역사적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역사학계는 밥숫가락 놓고, 모두 대운하 삽질공사에 일일잡부로 참여하거나  다른일을 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던, 덕만과 천명을 화랑세기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따라가 보도록 하자.

화랑세기는 좀 더 나아가 천명이 덕만보다 나이가 많았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화랑세기도 덕만의 출생일이 언제인지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화랑세기의 기록들을 토대로 덕만의 나이를 유추해 볼 수 밖에 없다. 덕만의 나이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정황증거 기록을 살펴보자.

그렇다면, 언제 이런 기록을 남기게 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용춘(龍春)은 무술(戊戌)년(578) 생이고 병진(丙辰)년(596)에 낭주(郎主)가 되었다.〉


공의 손 윗누이인 용명공주는 곧 진흥의 딸이다. 진(평)을 섬겨 총애가 있었다. 공의 처지를 열심히 도와 (풍월)주의 지위를 얻게 하였다.  화랑세기 13세 용춘

용춘은 이 기록으로 19살에 13세 풍월주에 올랐다. 용춘의 어미인 지도(기오/흥도)는 금륜(진지)뿐만 아니라, 진흥도 섬겼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도의 딸인 용명공주가 진평을 섬기고, 용춘을 뒤에서 밀어주어서 용춘이 13세 풍월주에 올랐다는 새로운 기록을 보는 것이다. 

그럼 지금 까지 알지 못했던 용수.용춘 누이에 관한 기록이다. 용수, 용명공주, 용춘이거나 용명, 용수, 용춘이 된다. 그런데 지도는 천주공과도 관계해서 17세 풍월주가 되는 염장을 낳기도 한다. 어찌 되었던 이는 다른 포스팅으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용춘의 나이를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용춘은 578년생이고, 천명은 588~590년 사이에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춘추의 아비인 용수는 용춘보다 보다도 나이가 많아야 한다. 그러니 용수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576~7년 생이 된다.

결국은 용수는 금륜이 왕위에 오르는 시점에 태어났고, 용춘은 금륜이 왕위를 내주고, 폐위되어 살아가는 동안에 아비의 얼굴을 모르고 컸다는 말이 된다. 용수는 26~28살 전후에 자신보다 최소 나이가 10살 어린신부 천명과 관계를 하여 603년 춘추를 낳은 것이다.
이말은 용수.용춘에게는 이미 본처가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호림공에게 풍월주의 지위를 물려주게 되자, 조정에 들어가 요직에 있었는데 대사 이하에 재능이 있는 낭도를 많이 등용하였다. 이로서 낭도로 등용된 자들이 또한 공을 심히 존중하여 모두 목숨을 바치기를 원하였다.

호림에 풍월주 지위를 넘겨 주는 시기는 603년이다. 그후 용춘은 조정에 들어가서 열심히 조정일을 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문노와 천명을 구하려 출동한 대남보는 여래사에서 16세 풍월주이며 미실과 설원랑의 아들인 보종을 활로 상처를 입힌다. 용춘의 충성스런 '대남보'도 이때 기용한것이 아닐까 한다. 용춘의 기록중 대남보의 기록을 보면 꼭 일본의 자객집단인 닌자들을 보는 듯 하기도 한다. 그래서 선덕여왕에서도 가면을 쓰고 음지에서 용춘을 호위하는 음병으로 나온다. 김유신이 죽을때에 유신의 집에서 나오는 한 무리들이 있엇다고 한다. 유신 평생 뒤에서 유신을 호위했지만, 유신이 죽자 울려 떠나 버렸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되겠다.

 (선덕여왕에서는 대남보가 미생의 알려지지 않은 아들중에 하나로 나왔나 봅니다.  또한, 보종(미실/설원랑)을 쏜사람은 임종으로 나왔다고 하네요.. 당연히 용춘의 그림자 무사 대남보 일줄 알았는데.. 소설 선덕여왕은 견적이 안나오는 군요.. 진심으로 견적이 안나오는 원소설을 가지고, 대단하고 재미있는 사극을 만든 mbc에 경의를 표함 ^^)  


건복(建福) 20년(603) 공과 비보랑이 제(帝)를 좇아 한수(漢水)의 전쟁에 나갔다. 남보에게 공으로 대나마를 주었으나 받지 않았다.
그 때 대왕은 적자(嫡子)가 없어 (용춘)공의 형인 용수 전군(殿君)을 사위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다. 전군이 (용춘)공에게 물었다. 공이 답하기를 “대왕의 나이가 한창 강성할 때인데 혹시 왕위를 이으면 불행할까 염려가 됩니다” 하였다. 전군은 이에 따라 사양하였으나 마야황후가 들어주지 않고, 마침내 전군을 사위로 삼았다. -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603년 진평왕은 적자가 없어서 용수를 천명의 부군으로, 즉 사위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려 했다" 여기서 주의해서 봐야 할 것은 용수를 부군으로 삼아 물려주려 했다는 대목이 아니고 적자 가 없다는 말이다. 이는 다른 말로 왕후의 소생인 왕자가 없다는 말이다. 다른 비를 통해서는 왕자가 있다는 다른 표현인것이다.

603년 시기까지 덕만은 존재가 없는 것이다. 있더라도 나이가 어려서 결혼적령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시기에 용수와 천명이 결혼해서 '춘추'를 낳은 것이다. 

삼국사기나 화랑세기에 의하면 진흥은 7살에 왕위에 올랐고, 화랑세기 12세 풍월주 보리의 기록에 의하면, 진흥의 비인 사도는 7살에 진흥에 시집을 갔다고 한다. 또한 12세 풍월주인 보리는 13살에 결혼을 하는데 7살의 어린 신부를 얻어서 업고 궁궐 출입을 하였다고 한다. 이런 사례가 있는 것으로 보았을때, 덕만이 있었다면 용수랑 엮어 주지 않았을까? 아무리 어린신부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문근영이 고딩때 결혼해서 어린신부였지만 당시는 어린신부 축에도 끼지도 못하고 10세 미만이 되야 어린 신부축에 들었다.

선덕공주(善德公主)가 점점 자라자 용봉의 자태와 태양의 위용이 왕위를  이을 만 하였다. 그 때는 마야황후가 이미 죽었(崩)고, 왕위를 이을 아들이 달리 없었다. 그러므로 대왕은 (용춘)공을 마음에 두고 (천명)공주에게 그 지위를 양보하도록 권하였다. (천명)공주는 효심으로 순종하였다. -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596년~603년

"그때는 마야황후가 이미 죽었(崩)다"

덕만이 다 자라기도 전에 마야왕후는 죽었다. 덕만의 어린시절에 모후가 없었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어린 나이에 죽은 마야가 다큰 성인이 된 시점에 모녀 상봉을 하는 것은 엽기에 가깝고, 매년 여름방학 납량특선에나 나옴직한 설정이 된다. 또한, 진평은 덕만이 어린나이때 승만 손씨를 왕후로 받아 들인것이다. 물론, 승만 왕후가 후비였을때 왕자를 생산해서 왕후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예사로 넘기기 어려운 단락이 있다. "왕위를 이를 아들이 달리 없었다"는 기록이다. 이는 왕자들은 있지만, 대권(왕권)을 넘기기에는 '왕자들의 자질이 덕만에 비해 부족함이 있다'는 다른 표현이다. 또한, 그전에 천명이 왕위를 받는 수업을 받았음도 짐작할 수 있고, 진평은 전왕들의 선례에 비추어 사위를 왕으로 삼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또한가지 579년 13세에 왕위에 오른 진평(567년생)은 603년 37살이 될때까지 적자가 없었다.하고 있고, 603년이 한참 지난후 선덕이 자라면서 왕의 자질이 보였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도 마야가 죽고, 덕만이 어려서 왕의 자질을 보일때에도 왕위를 이을 아들이 달리 없었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왕의 자질을 보인 덕만에게 도전자가 생긴다. 다름 아닌 손승만후가 아들을 낳아 덕만을 밀어낼 꿈을 꾸는 것이다. 하지만 아들이 일찍 죽어 버린다. 이 시기 승만은 왕자를 생산한 비들을 음모를 꾸며서 궁밖으로 축출한다. 어찌 보면 어부지리를 덕만이 한것이고, 아니면, 어리지만 덕만의 정치술수가 뛰어났을 수도 있다.

선덕은 공이 능히 자기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여 사신(私臣)이 되기를 청하였다. 대왕이 이에 공에게 공주의 뜻을 받들도록 명하였다. 선덕은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감정이 풍부하였다. 공이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고 굳이 사양하였으나 어쩔 수 없이 받들게 되었는데 과연 자식이 없어 물러날 것을 청하였다. 대왕은 용수공에게 모시도록 명하였는데 또한 자식이 없었다.

그 때 승만황후(僧滿皇后)가 … 아들을 낳자, 선덕의 지위를 대신하고자 하였는데 그 아들이 일찍 죽었다. 승만은 (용춘)공의 형제를 미워하였다. 공은 이에 지방으로 나갔다. 고구려에 출정하여 큰 공을 세우게 되자 승진하여 각간(角干)에 봉해졌다. 용수전군이 죽기(薨) 전에 부인과 아들을 공에게 맡겼다. 

1차로 덕만이 용춘과 관계를 가지고, 천명이 궁을 벗어난 때를 알아보자. 이시기에 덕만은 용봉의 자질을 가지고 결혼을 한때이다.  

승만왕후가 아들을 낳았지만, 아들이 일찍 죽었다. 아들이 죽은 원인을 용수.용춘형제로 하고, 지방으로 축출한다. 이는 단순히 용수.용춘을 대상으로 하는게 아닌 덕만의 지지세력을 축출하는 것이다. 그런 용춘이 고구려 원정에 출정하여 큰공을 세운다. 화랑세기에는 고구려에 출정한 전쟁이 어느때인지는 언급이 없다. 하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서현, 용춘, 유신이 고구려의 낭비성을 치는데 큰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51년(629) 가을 8월에 왕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였다. 고구려인이 성을 나와 진을 벌려 치니 군세가 매우 성하여 우리 군사가 그것을 바라보고 두려워서 싸울 마음이 전혀 없었다. - 삼국사기 본기 진평왕 51년

위의 기록을 보면, 승만왕후의 자식이 죽은 때는 629년 8월 낭비성 전투 이전시기 임을 알 수 있다. 이때, 용춘의 나이는 50세가 된다. 603년까지 덕만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다가, 629년 8월 낭비성 전투가 일어나기 바로 전에 용봉의 자질을 보이는 덕만이 용춘과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승만 왕후의 자식이 죽자, 승만 왕후는 자식이 죽은 용춘.용수 형제 때문이라고 생각하자. 이에 지방으로 나아가고, 낭비성 전투를 계기로 서라벌로 복귀하는 것이다. 

그러니 629년 전후를 기해서 덕만의 나이는 성숙한 성인의 나이에 접어 들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여기서 성숙한 여인이란 당대 13세 전후 결혼하는 일반적인 신라 상황을 고려할때, 덕만도 13세~16세 전후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용춘,용수와 관계하고 몇년 후가 629년이 된다. 그러니 덕만이 632년 진평을 이어 왕위에 오른때는 16~20세 이전이 된다. 또한, "
선덕은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감정이 풍부하였다" 라고 한다. "총명하고, 감성이 풍부하다"는 말은 당시 기준으로도 어린사람들에게나 하는 말이지, 50살 근처에 있는 늙은 할머니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또한,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은 늙은 용춘과 용수가 젊은 여인 덕만에 할 말이지, 같이 늙은 사람을 대상으로 애를 낳기 위해서 멸사봉공할 수는 없는 말이다. 아무리 날고 기는 용수.용춘형제라도 50근처의 여인에게서 후사를 보는 것은 하늘의 도움이 아니면 생물학적으로 있을 수 없다. 많이 양보해도 629년 즈음 용춘의 나이 50일때 덕만은 20초반을 넘길 수는 없는 것이다.  이로써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의 기록을 토대로 덕만의 나이를 유추해 보았다.

현존하는 화랑세기가 진서이던 위서이던 관계없이 상당히 합리적으로 기술되었다고 보여진다. 실제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살펴봐도 덕만이 50세의 노파로는 왕위에 올랐다고 볼 근거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단지 차이점이라면 마야의 소생으로 천명을 기록한 것 같지만, 화랑세기에는 천명의 어미로 마야를 묘사한 대목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여전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는 다르게 천명의 모후가 마야라고 기술하고 있다. 다만, 천명이 덕만보다 나이가 아주 아주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또한, 마야의 여식으로 천화, 천명, 덕만이다. 천화는 용수에게 시집을 갔다. 용수가 천명과 혼인을 하자, 천화는 추후 603년 낭비성 전투에 용춘과 같이 참여했던 백룡에게 다시 시집을 간다.  그러니 삼국유사의 서동과 선화는 잘못되었다고 반박을 하는 셈이다.


덕만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심층해부 시리즈

화랑세기는 단 한줄도 인용하지 않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의 기록을 토대로 덕만이 현재의 이요원의 나이가 아닌 어린 아역을 해서 주목을 받았던, 남지현 나이때 왕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시리즈 글을 기시로 송고했었다.

위 기사들의 결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덕만은 진평왕과 정비 마야의 장녀다.
둘째, 천명이 나이는 많지만, 정비인 마야의 소생은 아니다. 또는 마야 이전 황후의 소생이다.

셋째, 천명과 덕만은 이복자매간이다.
넷째, 천명은 정비인 마야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에 덕만보다 왕위승계에서 후순위다.
다섯째, 마야의 후손으로는 덕만 말고도 또다른 자매(들)이 있다.  설령, 덕만과 천명이 같은 마야의 소생일지라도 덕만은 천명보다 나이가 한참 어렸다.

여섯째, 덕만은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했다.
일곱째, 덕만은 왕위를 오를때, 현재 80년생이며 한국나이 30살인 이요원보다도 어렸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의 아역역할을 한 남지현은 2009년 현재 15세이다. 덕만은 실제로 632년에 15~18세 정도에 늦어도 20세 전후에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다음은 신라사 연구의 전설이며 철옹성으로  통하는 <성골>, <진골>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성골, 진골의 허구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만으로 얼마나 잘못된 역사 상식속에서 살아왔는지 조목조목 파헤칠 예정이다. 물론, 단지 예정이지 꼭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기사를 송고하는 중간 중간에 간간히 언급을 할 것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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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dar 2009.08.10 1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론은 드라마는 구라라는거네요.ㅡ;;
    하긴 좀 전체적으로 이상하긴했어요
    먼가 않 맞는느낌?
    드라마는 드라마니 역사와 다르다<<라고 우리나라 pd들은 그러는데.ㅡㅡ
    그럼 이름을 왜 역사이름으로 쓰는건지???
    이름 전혀다르게해서 이건 퓨전사극이다<라고 할것이지
    우리나라는 요즘 특히 드라마에서 역사왜곡이 심하네요.
    PD들 역사 공부 점 해야겠음

  3. Favicon of http://www.news119.net BlogIcon news119 2009.08.10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노력 많이 하셨네요. 초딩때 삼국사기를 열심히 읽어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심오한 글은 첨이어요~

  4. 물음표 2009.08.10 16: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롭게 잘 읽고 갑니다.
    기쁜 날 되세요.

  5. 백마강 2009.08.10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청난 노력의 산물입니다.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재미나게 봤습니다 ^^
    역사라는게 기록이 모두 옳다고 할수 없듯이 유추한 자의 기록도 옳다고 볼순 없겠죠

  6.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8.10 2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정말 유익한 글이였습니다~

  7.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11 13: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많은 걸 연구하셨네요...

    역사학 교수님도 갓쉰동님처럼 자세한 연구는 하지 못한 것 같아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8. 현아엄마 2009.08.11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았습니다. 재미있네요^_^
    그럼 여기서 드리는 질문하나!
    유신은 덕만공주보다 한참 아래연배이지요?
    지금 드라마상에서는 유신과 덕만공주가 러브라인인데, 유신이 김춘추의 셋째딸과 결혼한다고 알려져있는데.. 드라마상에서는 천명이 15~6세에 낳은설정이자나요.. 지금 유신은(엄태웅) 아무리봐도 서른전중반인데..ㅋㅋ 내생각으로는 김춘추 결혼도 멀은것 같은데.. 언제 셋째딸 기다리나.. ㅎㅎㅎㅎ 아니면 부인중 하나가 김춘추의 셋째딸인건가요.. 드라마 설정으로 유신이 더 어리다고 한번 지나가듯이 나왔기도 했는데..
    (아역에서 성인으로 넘어오면서 너무 나이를 먹었나..)ㅎㅎ 알려주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1 15: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춘추 셋째딸은 문희와의 사이에 난 지조부인인데요..
      유신과 결혼한 때는 유신이 한갑인 655년에 합니당..
      이때 지조는 꽃다운 15~6세 정도지용..

      춘추와 문희의 결혼은 626~628년 사이이구용..

      화랑세기에 의하면 춘추 24세 바로 직전에 결혼한다고 하네용.. 603년 생이니 626년이 되는군요.. 드라마상 최소 앞으로 20년후가 되겠습니당.

  9. Favicon of https://tradition.tistory.com BlogIcon 피오나신랑 2009.08.11 17: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잘보고 갑니다 ^^

  10. Favicon of http://wrgu.tistory.com BlogIcon 구여사 2009.08.28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보면서 뭉게뭉게 피어오른 의문들이 풀리는 글이었습니다. ^^

    역사드라마를 보는 매력은 이런 것인가 봅니다.ㅎㅎㅎ

  11. Favicon of http://www.jocuri-online.be BlogIcon jocuri online 2011.08.25 0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을 지키기 위해 중악으로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

  12. 2011.11.03 2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3. 2011.11.03 2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4. Favicon of http://www.olacabs.com/car-rentals/mumbai BlogIcon Mumbai Car Hire 2011.12.26 1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Really great work,I would like to join your blog anyway.24세 바로 직전에 결혼한다고 하네용.. 603년 생이

  15.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6. Favicon of http://stuff2india.in/about-us/ BlogIcon Discount offers in India 2012.11.22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라당 후보, 장상 민주당 후

  17. Favicon of http://www.facebook.com/pages/Anthony-Morrison-Author-Speaker-and-Internet-Ent.. BlogIcon internet marketing 2013.02.18 1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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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Favicon of https://www.youtube.com/user/adrianmorrisonceo BlogIcon internet marketing 2013.02.18 1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치의 가감도 없이 왜곡도 없어야 하는데 기존 통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안목도 없고, 능력도 없이 왜곡하고 있지요. 사실 왜곡이 아니라.. 수준이 낮은 거지만.. 알아야 왜곡도 하는 거지요.. 모르면 왜곡도 못해요.. 모르고 한일은 그냥 무식하다고 하는 겁니다.

  19. Favicon of https://www.facebook.com/AdrianMorrisonCEO BlogIcon internet marketing 2013.02.18 2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는 안목으로 쓰는게 아니다 이미 일어난사실을 한치의 가감도 없이 왜곡도 피하며 그 옳고 그름을 읽는 사람이 판단할것을 맡겨두고 적어가는 일종의 계산서다. 이렇듯이나 비뚤어진 사고방식으로 "모든것을 거꾸로!"를 외치고 싶다면 일본의 후쇼샤는 좋아 할것이다. 동지의식에........

  20. Favicon of https://www.youtube.com/user/DeanGraziosiInc BlogIcon real estate 2013.02.18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치의 가감도 없이 왜곡도 없어야 하는데 기존 통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안목도 없고, 능력도 없이 왜

  21. Favicon of http://www.bestmattress-reviews.org/adjustable-bed-reviews-reveal-best-brands/ BlogIcon adjustable beds review 2013.04.03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치의 가감도 없이 왜곡도 없어야 하는데 기존 통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안목도 없고, 능력도 없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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