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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독도는 삼국시대 신라 장군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키므로 해서 부속도서인 독도까지 신라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울릉도 원주민의 생각과는 다르게 어찌되었던 신라의 땅이 되고, 신라가 고려에 복속이 됨으로서 울릉도와 독도 또한 고려의 영토가 되었다.  이런 전차로 조선을 이어 대한민국이 될때 까지 울릉도와 독도는 대한민국의 땅이다. 그래서 일본이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 땅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 신라장군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키지 않았다면 어찌될까? 또는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켰다는 기록을 없었다면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미 잘 알려진 일이고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에 반하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이미 잘알려진'이란 단서가 붙는다. 만약, 많은 사람이 독도에 대한 논란이 없어서 독도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모른다면 어찌될까?


그리고 어떤 역사 드라마가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기록을 했다면, 많은 사람들이 공분을 할까? 무슨 소리냐? 독도가 일본땅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한발 더나아가 울릉도와 독도가 당시에 왜의 고유한 영토였다. 이사부는 왜군을 무찌르고 신라에 편입시켰다.라는 설정을 하였다면 어찌될까?

아무리 드라마나 역사드라마라고 할지라도 작가는 매국노나 친일파라고 불리우기에 하등 지장이 없을 것이다. 지하에서 이사부가 울던 말던, 드라마는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인데 이를 용인해야 한다. 재미를 위해서는 어쩔수 없는 것 아닌가? 재미가 있어야 드라마를 보고,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될거라고 수순히 말할 사람이 몇명이 될것인이며, 이에 동조할 사람이 몇명이나 될것인가?


그렇다면 좀더 발전을 시켜보도록 하자. 울릉도와 독도는 신라의 이사부가 복속시켰다. 하지만, 왜가 이사부를 무찌르고 울릉도와 독도를 복속시켰다고 드라마를 설정한다면 어찌될까? 한국드라마니 괞찮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일본 드라마니 괜찮아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역사왜곡이라고 이야기를 할까? 드라마를 통해서 군국주의를 확산하는 고도의 전략이라고 할까?

하지만, 글쓴이는 충분히 작가의 상상력을 존중해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울릉도와 독도는 스스로 국가를 형성하고 있다가, 신라에 복속되고 난 후에 한국의 고유의 영토로 편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그렇게 만든다면 "짜식들 배가 아파도 한참을 아프구나" 했을 것이다.

이제 선덕여왕이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주장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최고의 전투신으로 아막성과 속함성 전투를 들것이다. 그후에 전투신이 없어서 아쉽기는 하다. 더이상 전투신이 없는 이유는 제작비의 압박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덕만(이요원)과 유신(엄태웅), 알천(이승효)과 10화랑이 화랑답게 만든 전투가 아막성 전투였다.

지금까지 드라마로 본 전투신중에서 최고라고 할 정도로 전투에 참여하는 군인들의 전투에 참여하여 두려움에 떠는 심리적인 묘사와 전투장면이 압권이였다. 관련기사 2009/06/25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화랑 신화창조의 성지 아막성, 광개토태왕의 #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아막성과 속함성을 백제의 것이다. 미실(고현정)은 백제의 아막성과 속함성을 빼앗기 위한 전략과 김서현을 진평왕으로 부터 멀어지게 하거나 최대 죽일계책을 만든다.

하지만, 아막성과 속함성은 빼앗는데는 성공했지만, 서현을 몰락시키려던 계략은 실패하고 오히려 서현이 아막성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서라벌로 입성하여 진골에 다시 편입하게 된다.


하지만, 아막성과 속함성은 백제의 땅이 아니고, 신라의 땅이였다. 백제 무왕은 신라의 아막성을 빼앗기 위해서 대군을 출동시킨다. 하지만, 아막성에서 이들을 무찌르고 잘 방어를 한다. 속함성도 신라의 성이였다. 아막성과 속함성은 백제의 성이 아니였다는 뜻이다.

여러분이 독도는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키므로 부속도서인 독도도 한국의 땅이 된것은 잘 알고 있지만, 아막성과 속함성은 누구의 땅인지도 몰랐을 뿐만 아니고, 이들 성이 백제의 성이였겠거니 했을 것이다.

24년(602) 가을 8월에 백제가 아막성(阿莫城)을 공격해 왔으므로 왕이 장수와 사졸로 하여금 맞서 싸우게 하여 크게 쳐부수었으나 귀산(貴山)과 추항(箒項)이 전사하였다. - 삼국사기 진평왕 24년 602년
25년(624) 겨울 10월에 신라의 속함성(速含城), 앵잠성(櫻岑城), 기잠성(岐岑城), 봉잠성(烽岑城), 기현성(旗懸城), 용책성(冗柵城) 등 여섯 성을 공격하여 빼앗았다. - 삼국사기 백제 무왕 25년

속함성이 백제에 귀속된 때는 624년이다. 그전에는 신라의 땅이라는 소리다. 이제 아막성과 속함성은 신라의  땅이란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또하나의 사례가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온다.

한가위전에 김춘추는 설원랑의 집으로 찾아가 보량에게 비단과 귀걸이를 선물한다. 그런데 이때 춘추는 설원랑의 집으로 뇌물을 받치려온 자가 누군지 보량에게 물어본다.

이때 보량은 춘추에게 몇번을 설명했는데 춘추씨는 까마귀 고기나 꿩고기를 쳐 잡수셨는지 알아 먹지 못한다고 구박을 하면서, 저놈은 가잠성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현재 북한산주의 도독으로 있는 놈이라고 말한다. 

가잠성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면 가잠성은 백제의 성일 것이다. 또는 백제가 신라의 가잠성을 침입했지만, 한산주 도독이 된 자가 백제를 무찔렀을 것이다.

33년(611) 겨울 10월에 백제 군사가 가잠성(椵岑城)을 포위하여 100일이나 지속되었다. 현령(縣令) 찬덕(讚德)이 굳게 지켰으나 힘이 다하여 죽고 성은 함락되었다. - 삼국사기 진평왕 33년 611년

하지만 가잠성은 신라의 성이였는데 백제가 침입하였지만 대패를 하고  가잠성을 백제에 빼앗기고 만다. 이런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승진할려면 어찌해야 할까?

춘추가 보량을 보쌈해서 납치혼을 하자, 추후 춘추가 왕이 되었을때 설원랑 가문이 왕의 외척이 되어 세종자신보다 더한 권력을 가지게 되거나, 세종 자신이 왕이 되는데 걸림돌이 춘추나 설원랑이 될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설원랑을 제거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상주>당의 성주인 <주진>에게 밀서를 보내고 자신에 동조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당시 상주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 상주라는 지명이 있는데 상주가 없다고 이야기를 하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평왕 시기에 상주당은 존재할 수 없다. 이는 조선시대에 제주로 죄인을 유배보내는 것처럼, 신라에서 제주로 죄인을 유배보낸다는 설정이랑 별반 다르지 않다.

"상주(尙州)는, 첨해왕 때에 사벌국(沙伐國)을 빼앗아 주(州)로 삼은 것이었다.법흥왕 11년(524), 양(梁)나라 보통(普通)6년(525)에 처음으로 군주(軍主)를 두어 상주(上州)로 삼았다. 진흥왕 18년(557)에 주를 폐지하였다.신문왕 7년, 당나라 수공(垂拱)3년(687)에 다시 [주를] 설치하고 성을 쌓았는데 둘레가 1,109보였다. 경덕왕 16년(757)에 이름을 상주(尙州)로 고쳤다. - 삼국사기 지리

상주는 557년 진흥왕 18년에 폐지되었다가 757년인 경덕왕 16년에 비로서 상주(尙州)가 되는 것이다.

설령 상주당이 있었다고 하자. 세종이 상주당 성주인 주진에게 군사를 동원할 밀서를 보내는데 주진은 받아 볼 수 있을까? 상주당이 있던 없던 상관없이 <주진>은 편지를 받아 볼 수 없다.

9년(548) 봄 2월에 고구려가 예인(穢人)과 함께 백제 독산성(獨山城)을 공격하였으므로 백제에서 구원을 청하였다. 왕은 장군 주령(朱玲)을 보내 굳센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치게 하였는데, 죽이거나 사로잡은 사람이 매우 많았다.
- 삼국사기 진흥왕 9년 봄 2월

왜 주령을 보고서 주진과 같이 이야야기 하냐고 반문을 한다면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도록 하자.

26년(548) 봄 정월에 고구려 왕 평성(平成)[양원왕]이 예(濊)와 모의하여 한강 북쪽[漢北]의 독산성(獨山城)을 공격하였다. 왕은 사신을 신라에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다. 신라 왕은 장군 주진(朱珍)에게 명령하여 갑옷 입은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떠나게 하였다. 주진이 밤낮으로 길을 가서 독산성 아래에 이르러 고구려 군사와 한 번 싸워 크게 격파하였다. - 삼국사기 백제 성왕 26년

<주진>은 <주령>이다. 단지 령<玲>와 진<珍>의 오탈자이다. 백제와 고구려의 기록은 <주진>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단지 신라만 <주령>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주령, 또는 주진이라고 하는 것이다.

주진은 548년 갑주병 3천을 움직일 수 있는 장군이다. 김유신(595년생)이 열전이 아닌 처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기록이 있다. 629년 <낭비성>전투때이다. 이때 유신은 35살에 <부장군>으로 참전한다. 신성한 유신이 부장으로 35살이였다면 장군인 주진은 548년 몇살이였을까? 장군과 부장의 차이가 나니 유신보다는 나이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신과 비슷한 나이에 장군이 되었을 것이라고 가정하자.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의 시제는 여러 정황상 614년경일 수 밖에 없다. 이때 주진의 나이는 100세가 넘는다는 뜻이다. 신라는 이때 이미 타임머신을 개발했다는 것을 드라마 선덕여왕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아니면 영화 <시월애>처럼 과거와 현재를 관통해서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우편함>이 있었던지 말이다.

이처럼 드라마 선덕여왕은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너무나도 많다.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해주었니 <괜찮아> 라고 아직까지 말을 할 수 있을까?

지금도 드라마니 괞찬아. 만약, 신라 땅이라고 했으면 재미가 없었을 것이고, 사극을 보지 않았을 것이고, 역사에 관심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고,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는 작가의 고도의 전략에 따른 일부러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가?

일부러 독도가 일본땅인데 이사부가 일본으로 부터 빼앗았다는 설정이 현재로 보았을때 더 극적이지 않는가? 그래야 일본놈 니들이 힘이 없어서 빼앗기고 이제와서 그런 소리하면 안된다거나 지금의 일본과 당시의 왜는 서로 다른 민족이고, 본토 왜와 울릉도 왜는 다른 왜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는 작가의 상상력이나 인기를 위해서거나 역사에 무관심한 시청자를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하려는 고도의 술책이 아니다. 재미를 위해서 였다면 정말 대책이 서지 않는다. 재미를 위해서 <역사를 왜곡>한 것이니 말이다. 성폭행범에게 성폭행을 해주고, 관심이 없는 여론을 환기시키고, 성폭행의 위험성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으니, 국민들이 성폭행범에게 고마워해야 할 판인가? 단지 작가의 역사에 대한 <몰이해>이고 <무지>일 뿐이다. 다른 어떠한 해석이 가능한가?

편하게 볼 수 있는 사극을 만들면 안되나? "아하 그렇구나"나 "아하 그럴수도 있겠네", 또는 "몰랐던 역사적인 사실을 알려주어서 좋았다"라고 보는게 사극이다. 가장 좋은 사극은 글쓴이 같은 이가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사극이다.

선덕여왕작가는 "백성(시청자)은 진실을 버거워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스스로 극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알고 모르고 이용한것이다.  자기희생(?)으로 몸소 실천해 희생자가 된것이다. 한마디로 결과도 없는 결과지상주의에 빠진 현재의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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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나나 2009.10.16 0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 낚시같은 제목에 이것저것 딴지거는 내용들 뿐이네요..

    설정자체가 픽션인데 이게 안맞다 저게 안맞다 딴지걸면서 이건 꼭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우기는거와

    같다니...속함성이 신라꺼라고 우기는거랑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우기는 거랑은 완전 천지차이아닙니까?

    그러면서 대놓고 작가들 까대는 말투며 리플에 공격성 대꾸며...어이가 없네요...

    선덕여왕에서 이러이러한 점은 역사적 사실에 맞지않으니 좀더 신경써줬으면 좋겠다...라는 글쓴이의

    의도는 알겠지만 같은 말이라도 아다르고 어다르다고 표현에 좀더 신경을 쓰셨다면 이렇게 눈쌀이

    찌푸려지지는 않았을텐데 아쉽네요.. 대체 선덕여왕보면서 저게 정말 역사적 사실인양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런지 그것도 의문이구요..

    선덕여왕에서 많은걸 느끼는 사람들도 많은데 작가들수준이 딱 그수준이라고 까대는 글쓴이의 수준도

    딱 그수준인거같네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16 06: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픽션도 합리적이여야 한다는 말이지용.

      공격적인 댓글은 그 수준보다 조금 높게 돌려주는 겁니당. 양해하셈.. 님처럼

      님의 말도 아다르고 어다르다고 하시는데 수준좀 높여주셈..

      님은 많은 부분을 이미 받아 들였을 걸용.. 아니시라면 지금 처럼 댓글 절대로 못달아용.. ㅋㅋ

  3. 세이지 2009.10.16 0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저런 역사적 고증은 이제 알겠는데요
    선덕여왕에서 어느 부분에서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한것인지...?

    그리고 댓글다시는 태도가 아주 훌륭하시군요

  4. 보노보노 2009.10.16 0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선, 이런 글이 탑에 올라온 것에 놀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글쓴이의 역사적 지식이 정확한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또, 언급한 드라마의 역사 왜곡이 심할 지라도 이런 식의 글쓰기는 안됩니다. 이런 글쓰기는 말도 안되는 거죠. 위의 댓글들이 바로 왜 이렇게 글을 쓰면 안되는지에 대한 좋은 보기입니다. 단순하게 역사왜곡이 심각한 문제임을 지적했으면 많은 분들이 공감하면서 호의적 반응을 보였을 겁니다. 그러나,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을 무리하게 갖다 붙이므로서 오히려 반감을 사고 역풍을 맞게 되는 거죠. 한마디로 선정주의의 반작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적하신 부분들은 물론, 고쳐야 할 부분임에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fiction의 자유도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려고 손가락에 똥을 뭍혀서 찍을 필요는 없는거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16 06: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군요.. 원작자는 아무렇게나 극을 만들어도 되고,,그것을 지적하면 안되는 군요.. 유별나셈.. 님은..

      사실이 아닌것을 무리하게 갖다 붙힌게 없거든요.. 제목부터 잘 읽는 습관을 기르셈.. 이미 비유법임을 암시하고 있으니닌까용.. 왜 그렇다는 거냐?라는 내용이 있을 뿐입니당..

      픽션의 자유는 장려해야되용.. 하지만, 기본 팩트는 무시하면 안되지요.. 아막성,속함성, 울릉도의 예를 드렸는데도 모르겠다면 님의 탓이지 제탓은 아닙니다.. ^___^

  5. 인간적으로 낚시는 하지 말자 2009.10.16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식으로 조회수 올리고 분란 일으키는 블로거 아름다워 보이지 않아요. 님께서는 '(제목은) 낚시스런데 내용은 낚시가 아니지요..' 라는 댓글을 다셨지만, 그게 바로 낚시라고 하는 거죠 - _-a 내용과 관련없는 제목, 내용을 과장한 제목, 쓸데없이 자극적인 제목 등등. 아무튼 낚인 한 사람으로서 유쾌하지 않네요.

  6. lsk5444 2009.10.17 1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 도서가 된 것은 언제? 제대로 역사 공부나 하고 글을 쓰시오....우산국은 울릉도만 말하는 것...

  7. Favicon of https://naya7931.tistory.com BlogIcon 버드나무그늘 2009.10.24 23: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은 잘 담고 있지만, 블로그 포스트의 제목이 조금 자극적이면서 시의적절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목에 낚여서 방문자가 많이 늘기는 하겠지만요.

  8. 미생 2009.11.10 2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글은 항상 잘 보고있습니다~ㅋ

    드라마는 단지 드라마다.....라고
    그냥 좋게 생각하는게 어떨까요??물론 작가의 지난친 왜곡도 문제가 있지만
    이로써 역사 공부를 하게 만드는 고마움(?)도 있잖아요~ㅋ
    그럼 수고하세용~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1.11 02: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작가는 역사를 왜곡한적이 없어요.. ㅋㅋ

      드라마로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사극은 고사하고.. 개콘이 되었던, 일반 시대극이 되었던. 현대극이 되었던..퓨전 사극이 되었던, SF던 환타지던 장르에 상관없이 가장 갖춰야할 극중 개연성과 합리성과 리얼리티가 없다는 이야기 였습니당..

  9. 아쿠아 2009.11.10 2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길어서 다 읽기 귀찮네요.. 마음 상하셨다면 ㅈㅅ
    일단 이 생각뿐이네요
    댓글 넘겨보다 일본에 수출한다고 하는데
    그럼 일본놈들이 작가한테 수출하는 대신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말하라 이렇게 조건 달았을수도..있고
    미쳤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전 그렇게 느낍니다 ㅋㅋㅋ

  10.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1.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niches/mature.php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mature.php 2012.07.21 2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형에서 부메랑을 맞은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어찌 될지는 뚜껑을 열어보고 시리즈가 중간정도 되어야 개정룰이 어떻게 적용될지 판가름 날 것이다.

  12. Favicon of http://hubshout.com/?Choosing-To-Resell-SEO-Marketing-Services-Can-Help-You-An.. BlogIcon Gerardo 2012.08.18 2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르고 울릉도와 독도를 복속시켰다고 드라마를 설정한다면 어찌될까? 한국드라마

  13. Favicon of http://https://www.google.com/ BlogIcon tony 2012.11.19 2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고 하는데
    그럼 일본놈들이 작가한테 수출하는 대신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말하라 이렇게 조건 달았을수도..있고 <a title="tony" href="https://www.google.com/">tony</a>

  14. Favicon of http://typer.me/blog/view/258/the-thing-you-need-to-get-ready-an-urgent-situat.. BlogIcon tank emergency 2012.11.26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밴쿠버 올림픽이 끝나고 오서코치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지만 올림픽을 앞둔 1개월전인 2010년 1월말 4대륙 대회 기간중 김연아는 발목부상 중이였다. 발목부상중인 김연아가 빙상연맹과 ISU와 전주시측의 참여 압력에 굴복하여 부상를 치료 못하고 대회에 참여하였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다.

  15. Favicon of http://www.appaloosa1969.com/archives/102 BlogIcon ultimate storage shed 2012.12.04 2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만약, 신라장군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키지 않았다면 어찌될까? 또는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켰다는 기록을 없었다면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미 잘 알려진 일이고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에 반하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

  16. Favicon of http://www.appaloosa1969.com/archives/102 BlogIcon ultimate storage shed 2012.12.04 2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만약, 신라장군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키지 않았다면 어찌될까? 또는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켰다는 기록을 없었다면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미 잘 알려진 일이고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에 반하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

  17. Favicon of http://www.cuffcrazy.com/cufflink-backs-diy BlogIcon cuff link blanks 2013.01.16 0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 작가는 매국노나 친일파라고 불리우기에 하등 지장이 없을 것이다. 지하에서 이사부가 울던 말던, 드라마는 작

  18. Favicon of http://www.saffrolean.com/saffroleans-90-day-challenge/ BlogIcon Saffron Diet 2013.01.22 0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면 가잠성은 백제의 성일 것이다.

  19. Favicon of http://www.europcar.com.pl BlogIcon wynajem samochodów wroclaw 2013.01.23 0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울릉도와 독도는 신라의 이사부가 복속시켰다. 하지만, 왜가 이사부를 무찌르고 울릉도와 독도를 복속시켰다고

  20. Favicon of http://photo-graphica.co.uk/movie-legends.aspx BlogIcon movie legends 2013.01.26 06: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상력을 존중해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울릉도와 독도는

  21. Favicon of http://www.nandobando.com/ BlogIcon Fernando Bernardino 2013.01.28 0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가 울릉도를 복속시키지 않았다면 어찌될까? 또는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켰다는 기록을 없었다면 울릉도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선덕(덕만)의 죽음에 대해서 다둘지 다루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덕만이 632년 왕위에 오르고, 647년 1월 8일 죽을 때까지 17년 동안 신라의 국왕으로 재위를 합니다. 비담의 난이 647년 1월 "여왕이 국정을 재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반란을 일으키는데 이에 가담하는 세력이 염종을 비롯해서 처형된 수뇌부만 30여명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들의 위세가 당시의 진압군 보다도 세력이 컸습니다. 또한, 이들에게는 보다 이로운 하늘의 징조(뜻)가 발생하는데 현재의 유성이 월성(궁)에 떨어지게 됩니다.

유신은 문노의 비급을 받지 못한다

이에 진압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반대로 반란군인 비담측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하게 됩니다. 이에 유신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와는 다르게 영특한 잔꾀를 내 세웁니다. 사실 유신은 출생부터가 잔꾀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나옵니다. 오죽하면 고구려의 멸망을 저주한 점쟁이의 화신으로 유신을 내세웠겠습니까? 유신은 우직한 것 보다는 전략과 전술력이 뛰어난 사람이였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유신이 어릴적 17세에 신검을 얻어 단석산에서 바위를 두쪽으로 조각내고, 그 이듬해 18세에 풍월주에 오른때에 선인으로 부터 비급을 전달 받게 됩니다. 비급이란, 병서와 천문지리를 막라한 책이지 않을까 합니다. 


드라마상에서는 비담의 스승으로 나온, 문노가 비급을 비담에 넘기지 않고, 유신에게 주었다는 설정을 합니다. 비담의 개인적인 성격도 바탕이 되겠지만, 북두의 화신이란 운명론에 입각해서 유신에게 주었겠다 싶지만 말입니다. 문노가 어릴적 부터 비담의 성격을 알았을텐데 그에게 물술과 병법을 가르친것도 좀 어설퍼 보기이기는 합니다. 드라마 전개상 이를 기회로 비담이 유신과 척을 지는 계기로 만들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덕만과 천명의 북두의 쌍생도 유신이 북두의 상징을 타고 난것을 차용한 것에 불과 합니다. 그러니 문노가 비급을 유신에 주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8세 풍월주 문노와 그의 아내인 윤궁은 606년 동시에 죽어 버립니다. 그러니 유신이 18세가 되는 612년에는 문노가 비급을 주려고 해도 줄 수가 없었겠지요.
 
공은 건복(建福) 23년(606)에 세상을 떠났으며, 나이가 69세였다. 윤궁낭주는 이해에 공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선(仙)이 되었다. 공보다 10살이 적었다. - 화랑세기 8세 풍월주 문노

아무튼 유신이 떨어진 유성을 연의 꼬리에 횃불을 달아 다시 하늘로 날려보내고, 이를 역천의 기운이 다시 하늘로 돌아갔다는 <프로파간다>로 여론을 다시 진압군으로 돌려세우고 반대로 반란군은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유성을 보고 사기가 떨어집니다.

16년(647) 봄 정월에 비담과 염종(廉宗) 등이 말하기를 “여자 임금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 하여 반역을 꾀하여 군사를 일으켰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8일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선덕(善德)이라 하고 낭산(狼山)에 장사지냈다.<당서(唐書)에 이르기를 『정관 21년(647)에 죽었다.』 하고 통감(通鑑)에는 『22년에 죽었다.』고 하였는데, 본사(本史)로써 고찰해 보건대 통감의 기록이 잘못이다.> 삼국사기 27대 신라 선덕(덕만)왕

원년(647) 정월 17일에 비담(毗曇)을 목베어 죽였는데, 그에 연루되어 죽은 사람이 30명이었다. 2월에 이찬 알천(閼川)을 상대등으로 삼고 대아찬 수승(守勝)을 우두주(牛頭州) 군주로 삼았다. 당 태종이 사신을 보내 부절(符節)을 가지고 앞 임금을 광록대부(光祿大夫)로 추증하고, 아울러 왕을 주국(柱國) 낙랑군왕(樂浪郡王)으로 책봉하였다. - 삼국사기 28대 진덕(승만)왕

덕만은 삼국유사의 지기삼사에서 자신의 죽은 날짜를 정확히 예측하고, 자신의 낭산 무덤자리까지 봐두고 있습니다. 이는 재위말년에  덕만의 몸이 좋은 형편은 아니였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후계를 선정하지 않을수 없었을겁니다.

비담은 덕만의 후계자 였을지도

어찌되었던, 덕만은 삼국사기 본기의 기록상으로는 647년 1월8일에 사망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니 덕만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한 것 처럼 비담이 난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사전에 탐지하고 있었을 개연성도 높습니다.

또한, 자신의 사후에 진덕(승만)이 바로 왕위를 승계받아 비담의 난을 진압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비담이 명분으로 내세운 "
여자 임금(女主)이 잘 다스리지 못한다" 동기는 덕만의 뒤를 이어 진덕에게 왕위가 넘어갈것을 알았다는 것이 됩니다.

이전 이찬 칠숙이 진평왕 말년인 631년 반란을 일으키게 된 이유를 칠숙이 진평왕의 사후에 최소한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왕족이였는데 후계로 덕만이 결정되자 반란을 일으켰다는 기사를 송고하였습니다. 2009/07/26 -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셋째는, 왕이 아무 병도 없을 때 여러 신하들에게 일렀다.  "나는 아무 해 아무 날에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도利天) 속에 장사지내도록 하라."  여러 신하들이 그게 어느 곳인지 알지 못해서 물으니 왕이 말하였다.  "낭산(狼山) 남쪽이니라."  그 날이 이르니 왕은 과연 죽었고, 여러 신하들은 낭산 양지에 장사지냈다.  10여 년이 지난 뒤 문호대왕(文虎(武)大王)이 왕의 무덤 아래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세웠는데 불경(佛經)에 말하기를, "사천왕천(四天王天) 위에 도리천(도利天)이 있다"고 했으니 그제야 대왕(大王)의 신령하고 성스러움을 알 수가 있었다. - 삼국유사 선덕왕 지기삼사 중 셋째 도리천과 사천왕사

"왕이 아무 병도 없을 때"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날이 이르니 왕은 죽었다"다고 하니 덕만이 죽은 시점이 647년 1월 8일에는 이미 죽음을 예감하고 준비를하고 있었다는 뜻이되고, 이미 병으로 골골하다는 반증입니다. 이때가 되면 덕만이 후사를 결정한 후라는 것이죠.

상대등 비담과 염종이 난을 일으키는 이유도 왕위승계에서 진덕(승만)에 밀려서 이지 않을까 합니다. 골골하던 덕만이 자신의 후계로 자신의 남편이였을 것으로 생각하는 작은아버지 국반갈문왕의 자식이며, 의붓딸인 진덕(국반/박월명)을 후계로 낙점한 상태에서 혹시 모르는 왕위를 승만에게 빼앗겼다는 울분이 반란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내몰았지 않았을까요?

"16년 정미(647)는 선덕왕 말년이고 진덕왕 원년이다. 대신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이 여자 임금(女主)이 잘 다스리지 못한다 하여 군사를 일으켜 왕을 폐하려 하니 왕은 스스로 왕궁 안에서 방어하였다. 비담 등은 명활성(明活城)에 주둔하고 왕의 군대는 월성(月城)에 머물고 있었다. 공격과 방어가 10일이 지나도 결말이 나지 않았다. 한밤 중에 큰 별이 월성에 떨어지니 비담 등은 사병들에게 말하였다. -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53세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는 김유신이 주동적으로 비담의 난을 진압한 것으로 나오지만, 삼국사기 본기 647년 전덕왕 1년 1월 17일 비담의 난을 진압하고 난 2월 사후 전공에 대한 직책의 이동을 보면, 이찬 알천이 비담으로 인해서 공석이 된 상대등이 되고, 대아찬 수승이 우두주 군주가 되는 인사 이동이 있습니다. 유신은 50살인 644년 소판(3등위)이 되고, 압량(독)주 군주가 되었다. 9월에는 상장군(대장군)이였습니다. 

647년 비담이 난을 진압하고도 유신은 여전히 648년 압독(량)주 도독의 직위에 변함이 없었다. (물론, 군주 위에 도독이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습니다.) 그러니 유신은 비담의 난을 진압하는데 알천이나 수승에 비해서 커다란 전공을 세웠다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비담의 반란 대상은 덕만이 아닌 승만(진덕)

삼국사기 본기와 삼국사기 열전과 삼국유사를 비교하건데 비담은 덕만이 왕위에 있을때 반란을 일으킨게 아니고, 덕만이 1월 8일 죽은 바로 그날이나 직후 승만이 왕위를 승계하자 바로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보입니다.

비담의 반란을 일으킨 대상은 직접적으로는 진덕(승만)을 향해서 이지만, 덕만(선덕)을 향해서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록은 왕은 스스로 왕성(월성)에서 방어를 하였다"하고,  "공격과 방어가 10일이 지나도 결말이 나지 않았다" 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이때 왕은 덕만(선덕)이 아니고, 승만(진덕)이였던 것이지요.

물론, 위에서 언급했지만, 덕만이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분명히 있어 보이기는 합니다. 덕만이 죽고, 내심 비담 자신이 왕위를 승계할 줄 알았는데 엉뚱하게 승만에 왕위가 넘어가 버렸으니 말입니다. "설마 덕만에 이어서 또다시 여자인 승만이 왕위를 잇게 되겠어"라는 설마가 사람을 잡아 버린 비담으로서는 모험을 택하도록 하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덕만이 비담을 후사로 지정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비담에 가담하는 세력이 많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비담은 알천 등에게 뒤통수를 재대로 맞은 것이 됩니다.

비담과 알천의 권력 투쟁

어찌보면 알천이 이찬에서 바로 상대등이 되는 것으로 봐서, 덕만이 죽고, 상대등 비담 모르게 승만을 왕위에 잇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유신과 비담의 다툼을 예고한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역사에서는 비담과 알천의 권력다툼에서 알천이 승리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647년 알천은 진덕(승만)을 세우는데 같은 편이였던 유신과 춘추가 654년 진덕 사후 알천을 비토하고 말지만 말입니다. 정치(권력)에서 아도 없고 적도 없다는 말이 진리에 가깝습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비담) 너는 언제 죽을것 같으냐?"고 물었을때 "폐하(진평왕)보다 3일 먼저 죽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함으로 자신을 죽일려면, 미실이 반란을 일으켜 진평을 죽이기 전까지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위기를 넘기게 됩니다. 어찌되었던, 비담은 덕만이 647년 1월 8일 죽고, 비담은 17일날 죽으니 비담은 "폐하보다 10일 후에 죽는다"고 하는게 잠언적인 내용도 포함하고 있으니 더 낫지 않았을까 합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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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8.31 08: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맞아요. 그러고보니 비담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진덕여왕 때문인 것 같아요. 처음엔 저도 오로지 덕만을 배신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3. Favicon of http://zazak.tistory.com/ BlogIcon 주작 2009.08.31 0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봤습니다.
    근데 최근 어느 학자는 선덕여왕이 죽은 게 아니라 김유신 세력에 의해 폐위되었다는 주장을 펴든데, 이에 대해 이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갑자기 궁금해져서 묻습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죽은건 맞지요.. 그렇지 않다면.. 죽은장소를 알려줄 이유가 없지요.. 그리고 삼국유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이미 덕만은 죽기전에 병이 심각한 같거든요.. 유언이 낭산아래 뭍어 달라.. 였으니..

      대구 지역에 있는 부인대에 선덕여왕의 위패를 모셨다는 내용을 가지고 설정한 것 같습니당..

      죽어도 부인대를 만들수는 있거든요..

  4.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31 09: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언제나 봐도
    중후한 맛이 나는 멋진 포스팅...
    잘보고 갑니다.
    8월 마무리 잘 하시고
    멋진 9월 맞이하시길 바라며...

  5. ^^ 2009.08.31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드라마를 다시 쓴다면 작가에 따라서 알천랑을 권력지향적인 야심가로 표현할 수도 있었겠네요. 유신랑이 덕만공주와 비슷한 또래라는 설정부터 약간 병맛설정인 것 같습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6. 2009.08.31 0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알천랑 2009.08.31 0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천랑이 진덕여왕 사후에 왕위계승자로 지목되었는데 거절하고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알천이 권략지향적인 야심가는 아닐 것 같아요. 그후 알천랑은 상대등 벼슬도 그만두고 가족들과 오래오래 살았다고 하더군요. 윗글에서는 진덕여왕 사후에 스스로 물러난게 아니라 밀려난거라고 되어 있는데 기록들이 조금씩 다른가봐요.

    • 두모 2009.08.31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진덕여왕 사후 알천이 서열1위 였던 건 맞는것 같아요.
      근데 나이가 많아서 사양해서, 김춘추가 왕위에 올랐다죠.

      이에 다른 이야기는 그 시절 왕위 계승에 최소 3번 고사하는게 관례인데, 한 번 고사한 것을 그대로 관철시키고 김춘추가 왕위에 올랐다는 것...

      병권을 쥔 김유신과 겹 혼인 사이인 김춘추의 결탁으로 생각되는 것.

      어쨌던 알천은 탐욕이 많은 사람은 아닌게 분명하네요.
      곧 진주로 낙향해서 성(진주 소씨)도 바꾸고 일가를 크게 일으켰다는데...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2: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통설에는 알천이 춘추를 옹립했다고 합니다.. 김유신 열전에 보면 알천과 더불어 춘추를 옹립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권력이란.. 맘만한 것은 아니지요.. 척했는데.. 턱하고 믿어 버린 케이스..

      춘추는 3번을 거절하거든요.. 알천과는 다르게.. ㅋㅋ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겹혼은 춘추가 왕위에 오른 이듬해.. 655년에 하지요.. 지조와..

  8.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31 1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반님,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만약 선덕여왕이 진덕여왕을 후계자로 지명한 것이 사실이라면, 비담 등이 반발할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진덕 또한 명군이라고 하니 비담이 개인적인 욕심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 같아요...

    이반님, 행복한 하루를 보내시고... 행복한 가을을 맞이하시길...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2: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명군이기 때문에 쿠데타가 아니라는 설정은 아닌것 같아요..

      좀 논란거리인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비담이 우선권이 있엇는가? 아니면 승만인가?

      물론, 저는 승만이 우선권이 있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이유는 승만은 왕성(월성)에 있고 비담은 명활성에서 있지요.. 이것도 비담이 월성에 들어가지 못해서 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스터리..

  9. 천년왕국 2009.08.31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 1000년 동안 한국이 발전을 했는가?
    고구려 백제 신라 시기에는 우리 나라는 무한한 발전을 했었다.
    만주를 포함 광활한 대지를 안았는데 유독 신라시기에는 조그만 땅덩어리에 갖혀 살았다.
    이후 고려시대에도 북벌을 추진하고자 하는 모습이 보였고 조선시대에는 몇번씩 만주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유독 신라시대에만 만주는 커녕 지금의 북한땅도 제대로 차지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신라라는 나라 자체가 배타적이고 독선적이어서 타지방 타민족을 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한반도 땅덩어리 하나 품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러한 이유로 만주로의 진출은 신라정신의 붕괴를 뜻하는 건 아니었을까?
    앞으로 제2의 신라시대가 절대 오지말아야 할 이유다.

    • 두모 2009.08.31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라 시기에 북으로 발전이 어려웠던 것은, 중국의 당이 워낙 강했던 시기이고, 발해까지 있었기 때문이오.

      우리 역사에 그나마 강한 시기는 중국이 분열하고 약해질 때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2: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를 역사로 보셈.. 그리고 환상은 금물..

      두모님 맞습니당..
      그런데 꼭 강한상대 옆에 있다고 해당국이 강한 건 아니지요.. 미국옆에 있다고 캐나다나 맥시코가 강한건 아니듯..

      중국옆에 있는 네팔이나 몽골, 부탄이 강국은 아니잖아요.

    • aa 2009.09.01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로마까지 세력을 떨치던 신라가 통일후 그렇게 된건... 백제인들의 떼쓰기와 발목잡기로 그리된걸로 아뢰오..진정한 불행은 백제인을 우리민족으로 통합한거 부터 시작이오

    • 스카 2009.09.08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에 모순이 있어 한말씀 드립니다.
      신라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라 북벌을 못했다...
      3국시기에는 포용력이 좋아 북벌도 여러번하고 만주도 쳤다...??
      이게 무슨 소립니까? 그리고 영토확장만이 능사는 아닐것이라 생각됩니다. 태평성대가 영토확장보다 훨씬 좋은거 아닌가요? 전 영토확장만이 능사라고 생각하스는 님의 제국주의에 공감하진 못하겠습니다.

  10.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31 1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그래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비담이 선덕여왕에게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드라마와 연관지어서 기뻐요,.
    진덕에 대한 반란이었다면 비담은 끝까지 덕만 곁에 있겠네요. 선덕 사후에 난을 일으켰다니...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3: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쿠데타 명분이 여자가 왕이 되는것이니.. 선덕에 대한 불만도 있지 않았을까요?

    • 스카 2009.09.08 15: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끝까지 덕만의 편이었다면 더욱이 덕만에 대한 불만이 많았겠지요. 자신이 왕이 될꺼라 믿어의심치 않았을 수도 있으니... 물론 난을 일으키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비담 본인의 권력욕일테지만요.

  11. Favicon of http://l7044337@hanmail.net BlogIcon 재밌네요 2009.08.31 14: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식의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봅니다. 역사란게 원래 승자의 것이기에 누구의 반란인지는 중요한게 아니겠죠^^ 근데 화랑세기는 위작에 의심이 가는 역사서라 ㅋㅋ 암튼,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12. Favicon of https://boskim.tistory.com BlogIcon 털보작가 2009.08.31 14: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갑니다.
    오늘밤 선덕여왕이 기대됩니다.

  13. Favicon of https://skagns.tistory.com BlogIcon skagns 2009.08.31 15: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덕분에 앞으로 선덕여왕의 이야기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많이 될 거 같습니다.
    참~ 그리고 노란펜 축하드립니다. ㅋ

  14. 드라마 선덕여왕은 2009.08.31 17: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 역사와는 전혀 상관 없는 판타지물이죠. 때문에 드라마에 나오는 비담의 역활과 선덕여왕과의 관계도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것일 뿐입니다. 굳이 실제 역사와 비교해 보기보다는 판타지 자체를 즐기고 마는게 나을듯합니다. 이런 식의 비교는 일부 시청자들이 드라마의 허구와 실제 역사를 혼돈케 하고 있는것으로 보입니다.

  15. 하루 2009.08.31 2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 사실을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바꾸거나 버리곤 하는데 이런 식으로 굳이 스스로 역사서를 들추지 않아도 알게되니 참 좋군요. 역사에 보다 충실한 드라마였다면 어떠헸을지도 궁금합니다.

  16. 착한아이 2009.08.31 2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17. 선덕여왕 2009.09.08 1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18. 지나가던 이 2009.09.15 0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의 난이 선덕이 아닌 진덕여왕을 향한 것이라고 하는 자료가 있네요. 야후 인명사전이네요.

    http://kr.dictionary.search.yahoo.com/search/dictionaryp?&p=%EC%97%BC%EC%A2%85&subtype=enc&pk=11757600&field=id

  19. 2009.09.17 0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21. Favicon of http://nextgenerationpestcontrol.com BlogIcon Complete Residential Pest Control Solutions 2012.09.05 0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하게 됩니다. 이에 유신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와는 다르게 영특한 잔꾀를 내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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