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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선덕(덕만)의 죽음에 대해서 다둘지 다루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덕만이 632년 왕위에 오르고, 647년 1월 8일 죽을 때까지 17년 동안 신라의 국왕으로 재위를 합니다. 비담의 난이 647년 1월 "여왕이 국정을 재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반란을 일으키는데 이에 가담하는 세력이 염종을 비롯해서 처형된 수뇌부만 30여명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들의 위세가 당시의 진압군 보다도 세력이 컸습니다. 또한, 이들에게는 보다 이로운 하늘의 징조(뜻)가 발생하는데 현재의 유성이 월성(궁)에 떨어지게 됩니다.

유신은 문노의 비급을 받지 못한다

이에 진압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반대로 반란군인 비담측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하게 됩니다. 이에 유신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와는 다르게 영특한 잔꾀를 내 세웁니다. 사실 유신은 출생부터가 잔꾀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나옵니다. 오죽하면 고구려의 멸망을 저주한 점쟁이의 화신으로 유신을 내세웠겠습니까? 유신은 우직한 것 보다는 전략과 전술력이 뛰어난 사람이였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유신이 어릴적 17세에 신검을 얻어 단석산에서 바위를 두쪽으로 조각내고, 그 이듬해 18세에 풍월주에 오른때에 선인으로 부터 비급을 전달 받게 됩니다. 비급이란, 병서와 천문지리를 막라한 책이지 않을까 합니다. 


드라마상에서는 비담의 스승으로 나온, 문노가 비급을 비담에 넘기지 않고, 유신에게 주었다는 설정을 합니다. 비담의 개인적인 성격도 바탕이 되겠지만, 북두의 화신이란 운명론에 입각해서 유신에게 주었겠다 싶지만 말입니다. 문노가 어릴적 부터 비담의 성격을 알았을텐데 그에게 물술과 병법을 가르친것도 좀 어설퍼 보기이기는 합니다. 드라마 전개상 이를 기회로 비담이 유신과 척을 지는 계기로 만들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덕만과 천명의 북두의 쌍생도 유신이 북두의 상징을 타고 난것을 차용한 것에 불과 합니다. 그러니 문노가 비급을 유신에 주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8세 풍월주 문노와 그의 아내인 윤궁은 606년 동시에 죽어 버립니다. 그러니 유신이 18세가 되는 612년에는 문노가 비급을 주려고 해도 줄 수가 없었겠지요.
 
공은 건복(建福) 23년(606)에 세상을 떠났으며, 나이가 69세였다. 윤궁낭주는 이해에 공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선(仙)이 되었다. 공보다 10살이 적었다. - 화랑세기 8세 풍월주 문노

아무튼 유신이 떨어진 유성을 연의 꼬리에 횃불을 달아 다시 하늘로 날려보내고, 이를 역천의 기운이 다시 하늘로 돌아갔다는 <프로파간다>로 여론을 다시 진압군으로 돌려세우고 반대로 반란군은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유성을 보고 사기가 떨어집니다.

16년(647) 봄 정월에 비담과 염종(廉宗) 등이 말하기를 “여자 임금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 하여 반역을 꾀하여 군사를 일으켰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8일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선덕(善德)이라 하고 낭산(狼山)에 장사지냈다.<당서(唐書)에 이르기를 『정관 21년(647)에 죽었다.』 하고 통감(通鑑)에는 『22년에 죽었다.』고 하였는데, 본사(本史)로써 고찰해 보건대 통감의 기록이 잘못이다.> 삼국사기 27대 신라 선덕(덕만)왕

원년(647) 정월 17일에 비담(毗曇)을 목베어 죽였는데, 그에 연루되어 죽은 사람이 30명이었다. 2월에 이찬 알천(閼川)을 상대등으로 삼고 대아찬 수승(守勝)을 우두주(牛頭州) 군주로 삼았다. 당 태종이 사신을 보내 부절(符節)을 가지고 앞 임금을 광록대부(光祿大夫)로 추증하고, 아울러 왕을 주국(柱國) 낙랑군왕(樂浪郡王)으로 책봉하였다. - 삼국사기 28대 진덕(승만)왕

덕만은 삼국유사의 지기삼사에서 자신의 죽은 날짜를 정확히 예측하고, 자신의 낭산 무덤자리까지 봐두고 있습니다. 이는 재위말년에  덕만의 몸이 좋은 형편은 아니였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후계를 선정하지 않을수 없었을겁니다.

비담은 덕만의 후계자 였을지도

어찌되었던, 덕만은 삼국사기 본기의 기록상으로는 647년 1월8일에 사망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니 덕만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한 것 처럼 비담이 난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사전에 탐지하고 있었을 개연성도 높습니다.

또한, 자신의 사후에 진덕(승만)이 바로 왕위를 승계받아 비담의 난을 진압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비담이 명분으로 내세운 "
여자 임금(女主)이 잘 다스리지 못한다" 동기는 덕만의 뒤를 이어 진덕에게 왕위가 넘어갈것을 알았다는 것이 됩니다.

이전 이찬 칠숙이 진평왕 말년인 631년 반란을 일으키게 된 이유를 칠숙이 진평왕의 사후에 최소한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왕족이였는데 후계로 덕만이 결정되자 반란을 일으켰다는 기사를 송고하였습니다. 2009/07/26 -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셋째는, 왕이 아무 병도 없을 때 여러 신하들에게 일렀다.  "나는 아무 해 아무 날에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도利天) 속에 장사지내도록 하라."  여러 신하들이 그게 어느 곳인지 알지 못해서 물으니 왕이 말하였다.  "낭산(狼山) 남쪽이니라."  그 날이 이르니 왕은 과연 죽었고, 여러 신하들은 낭산 양지에 장사지냈다.  10여 년이 지난 뒤 문호대왕(文虎(武)大王)이 왕의 무덤 아래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세웠는데 불경(佛經)에 말하기를, "사천왕천(四天王天) 위에 도리천(도利天)이 있다"고 했으니 그제야 대왕(大王)의 신령하고 성스러움을 알 수가 있었다. - 삼국유사 선덕왕 지기삼사 중 셋째 도리천과 사천왕사

"왕이 아무 병도 없을 때"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날이 이르니 왕은 죽었다"다고 하니 덕만이 죽은 시점이 647년 1월 8일에는 이미 죽음을 예감하고 준비를하고 있었다는 뜻이되고, 이미 병으로 골골하다는 반증입니다. 이때가 되면 덕만이 후사를 결정한 후라는 것이죠.

상대등 비담과 염종이 난을 일으키는 이유도 왕위승계에서 진덕(승만)에 밀려서 이지 않을까 합니다. 골골하던 덕만이 자신의 후계로 자신의 남편이였을 것으로 생각하는 작은아버지 국반갈문왕의 자식이며, 의붓딸인 진덕(국반/박월명)을 후계로 낙점한 상태에서 혹시 모르는 왕위를 승만에게 빼앗겼다는 울분이 반란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내몰았지 않았을까요?

"16년 정미(647)는 선덕왕 말년이고 진덕왕 원년이다. 대신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이 여자 임금(女主)이 잘 다스리지 못한다 하여 군사를 일으켜 왕을 폐하려 하니 왕은 스스로 왕궁 안에서 방어하였다. 비담 등은 명활성(明活城)에 주둔하고 왕의 군대는 월성(月城)에 머물고 있었다. 공격과 방어가 10일이 지나도 결말이 나지 않았다. 한밤 중에 큰 별이 월성에 떨어지니 비담 등은 사병들에게 말하였다. -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53세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는 김유신이 주동적으로 비담의 난을 진압한 것으로 나오지만, 삼국사기 본기 647년 전덕왕 1년 1월 17일 비담의 난을 진압하고 난 2월 사후 전공에 대한 직책의 이동을 보면, 이찬 알천이 비담으로 인해서 공석이 된 상대등이 되고, 대아찬 수승이 우두주 군주가 되는 인사 이동이 있습니다. 유신은 50살인 644년 소판(3등위)이 되고, 압량(독)주 군주가 되었다. 9월에는 상장군(대장군)이였습니다. 

647년 비담이 난을 진압하고도 유신은 여전히 648년 압독(량)주 도독의 직위에 변함이 없었다. (물론, 군주 위에 도독이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습니다.) 그러니 유신은 비담의 난을 진압하는데 알천이나 수승에 비해서 커다란 전공을 세웠다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비담의 반란 대상은 덕만이 아닌 승만(진덕)

삼국사기 본기와 삼국사기 열전과 삼국유사를 비교하건데 비담은 덕만이 왕위에 있을때 반란을 일으킨게 아니고, 덕만이 1월 8일 죽은 바로 그날이나 직후 승만이 왕위를 승계하자 바로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보입니다.

비담의 반란을 일으킨 대상은 직접적으로는 진덕(승만)을 향해서 이지만, 덕만(선덕)을 향해서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록은 왕은 스스로 왕성(월성)에서 방어를 하였다"하고,  "공격과 방어가 10일이 지나도 결말이 나지 않았다" 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이때 왕은 덕만(선덕)이 아니고, 승만(진덕)이였던 것이지요.

물론, 위에서 언급했지만, 덕만이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분명히 있어 보이기는 합니다. 덕만이 죽고, 내심 비담 자신이 왕위를 승계할 줄 알았는데 엉뚱하게 승만에 왕위가 넘어가 버렸으니 말입니다. "설마 덕만에 이어서 또다시 여자인 승만이 왕위를 잇게 되겠어"라는 설마가 사람을 잡아 버린 비담으로서는 모험을 택하도록 하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덕만이 비담을 후사로 지정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비담에 가담하는 세력이 많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비담은 알천 등에게 뒤통수를 재대로 맞은 것이 됩니다.

비담과 알천의 권력 투쟁

어찌보면 알천이 이찬에서 바로 상대등이 되는 것으로 봐서, 덕만이 죽고, 상대등 비담 모르게 승만을 왕위에 잇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유신과 비담의 다툼을 예고한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역사에서는 비담과 알천의 권력다툼에서 알천이 승리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647년 알천은 진덕(승만)을 세우는데 같은 편이였던 유신과 춘추가 654년 진덕 사후 알천을 비토하고 말지만 말입니다. 정치(권력)에서 아도 없고 적도 없다는 말이 진리에 가깝습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비담) 너는 언제 죽을것 같으냐?"고 물었을때 "폐하(진평왕)보다 3일 먼저 죽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함으로 자신을 죽일려면, 미실이 반란을 일으켜 진평을 죽이기 전까지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위기를 넘기게 됩니다. 어찌되었던, 비담은 덕만이 647년 1월 8일 죽고, 비담은 17일날 죽으니 비담은 "폐하보다 10일 후에 죽는다"고 하는게 잠언적인 내용도 포함하고 있으니 더 낫지 않았을까 합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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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8.31 08: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맞아요. 그러고보니 비담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진덕여왕 때문인 것 같아요. 처음엔 저도 오로지 덕만을 배신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3. Favicon of http://zazak.tistory.com/ BlogIcon 주작 2009.08.31 0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봤습니다.
    근데 최근 어느 학자는 선덕여왕이 죽은 게 아니라 김유신 세력에 의해 폐위되었다는 주장을 펴든데, 이에 대해 이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갑자기 궁금해져서 묻습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죽은건 맞지요.. 그렇지 않다면.. 죽은장소를 알려줄 이유가 없지요.. 그리고 삼국유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이미 덕만은 죽기전에 병이 심각한 같거든요.. 유언이 낭산아래 뭍어 달라.. 였으니..

      대구 지역에 있는 부인대에 선덕여왕의 위패를 모셨다는 내용을 가지고 설정한 것 같습니당..

      죽어도 부인대를 만들수는 있거든요..

  4.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31 09: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언제나 봐도
    중후한 맛이 나는 멋진 포스팅...
    잘보고 갑니다.
    8월 마무리 잘 하시고
    멋진 9월 맞이하시길 바라며...

  5. ^^ 2009.08.31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드라마를 다시 쓴다면 작가에 따라서 알천랑을 권력지향적인 야심가로 표현할 수도 있었겠네요. 유신랑이 덕만공주와 비슷한 또래라는 설정부터 약간 병맛설정인 것 같습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6. 2009.08.31 0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알천랑 2009.08.31 0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천랑이 진덕여왕 사후에 왕위계승자로 지목되었는데 거절하고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알천이 권략지향적인 야심가는 아닐 것 같아요. 그후 알천랑은 상대등 벼슬도 그만두고 가족들과 오래오래 살았다고 하더군요. 윗글에서는 진덕여왕 사후에 스스로 물러난게 아니라 밀려난거라고 되어 있는데 기록들이 조금씩 다른가봐요.

    • 두모 2009.08.31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진덕여왕 사후 알천이 서열1위 였던 건 맞는것 같아요.
      근데 나이가 많아서 사양해서, 김춘추가 왕위에 올랐다죠.

      이에 다른 이야기는 그 시절 왕위 계승에 최소 3번 고사하는게 관례인데, 한 번 고사한 것을 그대로 관철시키고 김춘추가 왕위에 올랐다는 것...

      병권을 쥔 김유신과 겹 혼인 사이인 김춘추의 결탁으로 생각되는 것.

      어쨌던 알천은 탐욕이 많은 사람은 아닌게 분명하네요.
      곧 진주로 낙향해서 성(진주 소씨)도 바꾸고 일가를 크게 일으켰다는데...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2: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통설에는 알천이 춘추를 옹립했다고 합니다.. 김유신 열전에 보면 알천과 더불어 춘추를 옹립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권력이란.. 맘만한 것은 아니지요.. 척했는데.. 턱하고 믿어 버린 케이스..

      춘추는 3번을 거절하거든요.. 알천과는 다르게.. ㅋㅋ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겹혼은 춘추가 왕위에 오른 이듬해.. 655년에 하지요.. 지조와..

  8.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31 1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반님,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만약 선덕여왕이 진덕여왕을 후계자로 지명한 것이 사실이라면, 비담 등이 반발할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진덕 또한 명군이라고 하니 비담이 개인적인 욕심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 같아요...

    이반님, 행복한 하루를 보내시고... 행복한 가을을 맞이하시길...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2: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명군이기 때문에 쿠데타가 아니라는 설정은 아닌것 같아요..

      좀 논란거리인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비담이 우선권이 있엇는가? 아니면 승만인가?

      물론, 저는 승만이 우선권이 있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이유는 승만은 왕성(월성)에 있고 비담은 명활성에서 있지요.. 이것도 비담이 월성에 들어가지 못해서 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스터리..

  9. 천년왕국 2009.08.31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 1000년 동안 한국이 발전을 했는가?
    고구려 백제 신라 시기에는 우리 나라는 무한한 발전을 했었다.
    만주를 포함 광활한 대지를 안았는데 유독 신라시기에는 조그만 땅덩어리에 갖혀 살았다.
    이후 고려시대에도 북벌을 추진하고자 하는 모습이 보였고 조선시대에는 몇번씩 만주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유독 신라시대에만 만주는 커녕 지금의 북한땅도 제대로 차지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신라라는 나라 자체가 배타적이고 독선적이어서 타지방 타민족을 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한반도 땅덩어리 하나 품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러한 이유로 만주로의 진출은 신라정신의 붕괴를 뜻하는 건 아니었을까?
    앞으로 제2의 신라시대가 절대 오지말아야 할 이유다.

    • 두모 2009.08.31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라 시기에 북으로 발전이 어려웠던 것은, 중국의 당이 워낙 강했던 시기이고, 발해까지 있었기 때문이오.

      우리 역사에 그나마 강한 시기는 중국이 분열하고 약해질 때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2: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를 역사로 보셈.. 그리고 환상은 금물..

      두모님 맞습니당..
      그런데 꼭 강한상대 옆에 있다고 해당국이 강한 건 아니지요.. 미국옆에 있다고 캐나다나 맥시코가 강한건 아니듯..

      중국옆에 있는 네팔이나 몽골, 부탄이 강국은 아니잖아요.

    • aa 2009.09.01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로마까지 세력을 떨치던 신라가 통일후 그렇게 된건... 백제인들의 떼쓰기와 발목잡기로 그리된걸로 아뢰오..진정한 불행은 백제인을 우리민족으로 통합한거 부터 시작이오

    • 스카 2009.09.08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에 모순이 있어 한말씀 드립니다.
      신라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라 북벌을 못했다...
      3국시기에는 포용력이 좋아 북벌도 여러번하고 만주도 쳤다...??
      이게 무슨 소립니까? 그리고 영토확장만이 능사는 아닐것이라 생각됩니다. 태평성대가 영토확장보다 훨씬 좋은거 아닌가요? 전 영토확장만이 능사라고 생각하스는 님의 제국주의에 공감하진 못하겠습니다.

  10.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31 1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그래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비담이 선덕여왕에게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드라마와 연관지어서 기뻐요,.
    진덕에 대한 반란이었다면 비담은 끝까지 덕만 곁에 있겠네요. 선덕 사후에 난을 일으켰다니...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3: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쿠데타 명분이 여자가 왕이 되는것이니.. 선덕에 대한 불만도 있지 않았을까요?

    • 스카 2009.09.08 15: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끝까지 덕만의 편이었다면 더욱이 덕만에 대한 불만이 많았겠지요. 자신이 왕이 될꺼라 믿어의심치 않았을 수도 있으니... 물론 난을 일으키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비담 본인의 권력욕일테지만요.

  11. Favicon of http://l7044337@hanmail.net BlogIcon 재밌네요 2009.08.31 14: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식의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봅니다. 역사란게 원래 승자의 것이기에 누구의 반란인지는 중요한게 아니겠죠^^ 근데 화랑세기는 위작에 의심이 가는 역사서라 ㅋㅋ 암튼,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12. Favicon of https://boskim.tistory.com BlogIcon 털보작가 2009.08.31 14: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갑니다.
    오늘밤 선덕여왕이 기대됩니다.

  13. Favicon of https://skagns.tistory.com BlogIcon skagns 2009.08.31 15: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덕분에 앞으로 선덕여왕의 이야기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많이 될 거 같습니다.
    참~ 그리고 노란펜 축하드립니다. ㅋ

  14. 드라마 선덕여왕은 2009.08.31 17: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 역사와는 전혀 상관 없는 판타지물이죠. 때문에 드라마에 나오는 비담의 역활과 선덕여왕과의 관계도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것일 뿐입니다. 굳이 실제 역사와 비교해 보기보다는 판타지 자체를 즐기고 마는게 나을듯합니다. 이런 식의 비교는 일부 시청자들이 드라마의 허구와 실제 역사를 혼돈케 하고 있는것으로 보입니다.

  15. 하루 2009.08.31 2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 사실을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바꾸거나 버리곤 하는데 이런 식으로 굳이 스스로 역사서를 들추지 않아도 알게되니 참 좋군요. 역사에 보다 충실한 드라마였다면 어떠헸을지도 궁금합니다.

  16. 착한아이 2009.08.31 2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17. 선덕여왕 2009.09.08 1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18. 지나가던 이 2009.09.15 0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의 난이 선덕이 아닌 진덕여왕을 향한 것이라고 하는 자료가 있네요. 야후 인명사전이네요.

    http://kr.dictionary.search.yahoo.com/search/dictionaryp?&p=%EC%97%BC%EC%A2%85&subtype=enc&pk=11757600&field=id

  19. 2009.09.17 0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21. Favicon of http://nextgenerationpestcontrol.com BlogIcon Complete Residential Pest Control Solutions 2012.09.05 0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하게 됩니다. 이에 유신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와는 다르게 영특한 잔꾀를 내 세웁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23회에서 예고한 대로 24회에서 천명(박예진)이 미생의 아들 대남보에게 죽었다. 글쓴이는 대남보와 천명에 관한 
[역사이야기] - '천명', 대남보의 독화살에 죽었다? 사실은 기시를 송고했었다. 이글에서 대남보(류상욱)는 미생의 백여명의 자식중 하나인 아들이 아니고, 용춘의 그림자 무사이며 충복이라고 했다. 또한, 대남보는 자신의 가산을 다 털어서 백여명의 무사를 고용해서 용춘도 모르게 용춘을 보호했다고 했다.

천명을 죽인 대남보는 누구? 

 
대남보는 원래 부유하였는데 그 재물을 모두 기울여 공이 사용하도록 하였으며, 결사대 백 명을 모아서 공을 호위하였으나, 공은 알지 못하였다.
공이 하루는 종자(從者)들과 더불어 미복으로 거리를 지나는데, 어린아이들이 노래(唱)하여 부르기를 처를 바쳐 부자가 되고 일곱 아들 모두 말을 탄다네 딸을 바쳐 가난해지고 세 아들 모두 베옷을 입었네 하였다. -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596~603년


사실 대남보는 용춘(578년생인 용춘보다도 나이가 많은 수하였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용춘의 수하는 커녕 적대적인 미실의 수하이며, 미생의 아들이며 백호의 수장(?)으로 은밀이 미실의 테러를 지원하는 역할이였다. 이제는 대단원의 종지부를 찍는 천명을 죽이는 것으로 악역을 다한것 같다. 물론, 대남보가 어찌살아날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미실은 수나라에 가있는 춘추를 신라로 불려 들이려는데 미생은 대남보를 보내서, 대남보를 보호하려 한다. 

화랑세기에는 대남보의 딸의 정절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대남보의 딸은 용춘을 위해서 정절을 지키려 했지만, 용춘이 받아 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남보의 딸은 우물에 몸을 던져 죽으려 했다.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이에 대씨녀를 첩으로 삼아 많은 자식들을 낳았다.


대남보의 딸은 (용춘)공을 위하여 스스로 정절을 지키고 유화(遊花)가 되기를 거부하였다. 공이 딱하게 여겨 여러 차례 말하였으나 안 되었다.대남보가 “한 명의 여자로 인하여 어찌 공께서 걱정을 하실 수 있습니까?” 하였다. 공이 말하기를 “내가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내가 너를 사사롭게 대한다고 할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하였다. 딸이 듣고 슬퍼하여 우물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 
(중략)..
서자는 다섯인데 용산(龍山)과 용석(龍石)은 대씨(大氏)가 낳았다. 용귀(龍貴)는 미생공의 딸 매생(梅生)이 낳았다. 용주(龍珠)와 용릉(龍凌)은 비보랑공의 딸 홍주(紅珠)가 낳았다. 서녀는 18명이었다. 용산의 누이 용태(龍泰)는 태종을 섬겨 인태(仁泰) 각간을 낳았다. 용주의 누이 용보(龍宝)는 태종을 섬겨 차득(車得)과 마득(馬得) 양공을 낳았다.

대씨녀를 통해, 용태,용산,용석이 있고, 용태는 춘추를 섬겨서 인태각간을 낳았다. 대씨는 천한(?) 사람인데, 그의 아들인 인태는 각간의 지위까지 올라갔다. 이유는? 성골.진골이 없어져서? 아니면 춘추가 왕이되어서? 각자 생각하시길 바란다.

잼있는 내용은 대씨녀가 우물에 빠졌지만, 살아 났다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 났을까? 우물이 얕아서? 대씨녀가 수영을 잘해서? 우물에 빠졌을때 살아나는 방법이 있는데 삶을 포기하고 하늘을 처다 보면 살아난다고 한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은 이유를 아실것이다.

어찌되었던 대남보의 자식들은 모두 귀하게 되었고, 용춘의 첩중에 미생의 딸도 있다. 그 딸을 통해서 '용귀'를 낳기도 한다.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전개이지 않는가?

천명은 언제 죽었나?

그럼 천명은 정말 덕만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죽은 것일까?
드라마 전개상 시대적 배경과 상황은 수나라를 언급하는 시기이니, 당나라가 세워지기 전인  618년 이전이 될것이다.

삼국사기의 김춘추가 654년 3월 왕위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은 4월에 자신의 죽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명예왕과 태후직을 올린다.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의 아들 이찬 용춘(龍春)<또는 용수(龍樹)라고도 하였다.>의 아들이다.<당서(唐書)에는 진덕의 동생이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어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은 진평왕의 딸이고, 왕비 문명부인(文明夫人)은 각찬(角湌) 서현의 딸이다.
- 삼국사기  654년 신라 29대 춘추 계보설명

원년(654) 여름 4월에 왕의 죽은 아버지를 문흥대왕(文興大王)으로 추봉(追封)하고 어머니를 문정태후(文貞太后)로 삼았다.  - 삼국사기 29대 춘추 654년 여름 4월

어떤가? 603년 생인 춘추가 654년 52살에 왕위에 올랐을때, 아버지 이찬 용춘(용수)는 이미 죽어 있어서 추봉한 것이고, 어머니 천명은 아들인 춘추가 왕이 되었기 때문에 문정태후가 된것이다. 이때 천명의 나이는 대략 65~68세 정도로 추측된다.  당시의 기준으로 하면 천수를 다하여 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천명도 이미 죽지 않았느냐고 하는 분들이 계신다. 하지만 위의 즉위초년 기사의 원문을 살펴보면, 천명은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을 살아 생전에 보았음이 확실하다. 김부식은 "
당서의 진덕왕의 동생이란 기사는 잘못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진덕왕의 동생이 맞다. 일단, 국반은 용춘과는 사촌간이다. 그러니 진덕과 춘추는 육촌동생이 된다. 이건 논외로 치고, 다음 기회에 이와 관련된 포스팅을 할 때가 있을것이다.

지금은 천명이 춘추가 왕위에 오를때 이미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따라가 보자. 일단 한자 원문을 보기로 하자.

元年 夏四月 追封王考爲文興大王 母爲文貞太后 추봉왕고위문흥대왕 모위문정태후

고(考)는 죽은아버지를 말한다. 그런데 모(母)는 생존한 어머니를 뜻한다. 만약, 죽었다면 모(母)대신에 비(妣), 죽은 어머니 비(妣)를 써야 한다. 물론,  제사를 지내는 지방에 표현하는 것이니, 당시에 죽은 아버지는 (考)로 쓰고, 죽은 어머니를 모(母)로 썼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한문 해석상에 <추봉왕고> 위 <문흥대왕> 이고 <모>위<문정태후)이다. <추봉왕고>와 <모>는 서로 대응한다. 그러니 추봉된 죽은 아버지(용수.용춘)는 문흥대왕으로, 어머니(천명)는 문정태후로 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자세히 읽어 보면 <죽은 추봉왕>이다. 이미 한번 추봉되었음을 짐작해 한다. 그래서 삼국유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 삼국유사 29대 춘추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이찬 용수.용춘의 아들 이라고 했다. 그런데 삼국유사는 '용수(용춘) 각간'으로 추봉된 문흥대왕의 아들이라고 하고 있다. 물론, <용수각간으로 추봉된>으로 끊어 읽느냐 아니면 <용수(용춘)각간으로>, 추봉된 문흥대왕에 따라서 해석상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는 각간의 밑인 <이찬>이고, 삼국 유사는 <각간>으로 나온다. 그러니 <이찬>에서 <각간>으로 추봉되었다고 보는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죽고나서 <갈문왕>으로 추봉되었다고 한다. 화랑세기는 용수와 용춘을 서로 다른 사람으로 기술하고 있다. 용수가 먼저 죽고, '용춘은 647년 8월 선덕(덕만)왕이 죽은 같은 달에 70살로 죽었다'고 한다.  만약, 현존 화랑세기가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필사한 것이라면, 이찬->각간->갈문왕->문흥대왕이 된다.

그런데 용수는 살아생전에 이미 이찬에 있었다. 그러니 각간->갈문왕->문흥대왕으로 추봉되었음직하다.

이대목이 용수와 용춘이 한사람이냐? 서로 다른 사람이냐를 가르는 갈림길이다. 이에 관해서는 별도로 포스팅을 할 예정이다.

어찌되었던, 춘추의 어머니인 천명은 춘추가 왕이 되는 영광을 살아생전에 봤다는 데는 별다른 하자가 없다. 화랑세기는 이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고, 다만,  용춘이 죽은 것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용춘이 647년 죽고 나서도 천명은 살아 있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신라를 한국 최초로 재현'했다는 명품사극 선덕여왕은 천명을 용춘이 죽기도 전에 덕만을 위해서 죽고,  용춘보다 나이가 적은 것으로도 부족해, 용춘의 아재(삼촌)같은 그림자 무사인 <대남보>를 미생의 아들로 만들고, 천명을 시해하는 국사범으로 만들어 버렸다.
 
또한, 드라마 전개상 진지(금륜)과 미실의 아들이라는 비담(579년생)과 천명.덕만(588전후)와 유신(595년생)이 서로 말을 까고 있다. 비담과 말을 까고 지낼수 있는 자는 알천밖에 없다. (소)알천을 선조라고 믿고 있는 진주소씨 사람의 족보에는 알천은 577(?)년생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에서 추후 추적보도할 예정에 있다.

식탐에서 맥가이버로 진화하는 비담

어찌 되었던, 덕만은 천명이 죽자, 천명이 남긴 유언을 지키지 않겠다고, 못지키는게 아니고 안지키겠다고, 옥빗을 계곡물에 던져 버린다. 미실과 맞서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예고편에서 진평에게 자신이 두번째 여식, 공주 덕만이라고 서찰을 보낸다. 덕만이 천명의 죽음으로 각성하고, 한때 인기를 끌었던 개그 코미디극 중 유행어 "이제 결심했어"처럼 도망과 투쟁 두가지 선택의 순간에 미실과의 투쟁으로 선회를 한다. 이제 드라마는 클라이막스로 치닫고 있는 중이다. 

천명의 죽음에도 식탐비담은 맥가이버비담으로 변해 있었다. 적을 혼란시키기위해서 연기를 피우고, 나룻배를 구하고, 대남보에게 발로 동작하는 다중미사일 화살을 발사해서 부상을 입히고, 독화살로 다친 천명을 수습하고, 나룻배를 움직이고, 의사가 되어 진단과 응급처치를 하고, 덕만과 함께 약을 구하고, 말도 훔치고, 유신과 덕만에게 먹는게 중요하다고 자신이 좋아하는 닭고기를 구해서 먹는 것도 가르친다. 그에 반해 유신이 한일은?

자신들이 죽이고 믿기지 않는다?

사극 선덕여왕은 천명이 죽은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진평을 비롯해서 마야와 용춘과, 미생과, 하종의 입을 통해서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들의 말을  녹취해보자.. 
 
알천 : 공주님이 승하하셨습니다.

설원랑 :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누가 말이냐?
을제 : 누가 죽어?

진평 : (미친듯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 무슨 말을 하느냐? 그게 말이 되느냐? 천명이.. 왜? 천명이 어찌? 뭐가 잘못된 것이다. 믿을수 없다. 말이 안되지 않느냐? 천명이 어찌.. 천명이 어찌.. 짐을 능멸하느냐..


하종 : 천명공주가 왜 죽었냐고?

미생 : 이런 일이 이런일이 

용춘 : 어찌해야 한단 말입니까? 이일을 어찌

을제 (속으로 ) 공주님 제 잘못입니다. 허나 소신 반드시 책임을 질것입니다. 용춘공! 수나라에 연통하여 춘추공을 불러야 하오..

미실 : 죽은 경위가 어찌되었던.. 책임을 피하긴 어렵게 되었어.....

하종 : 왜 갑자기 천명이.. 이해가 안되네..
미생 : (아들을 지키고자 하는 심정으로 ) 대남보를 보내겠습니다.

마야 : 다 ~ 니(진평)책임이고,  내책임이다.  블라 블라.. 

명품사극? 짝퉁사극? 막장사극? 환타지.퓨전사극?

어찌되었던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도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믿어달라도 선덕여왕에서 힘좀 쓴다는 주.조연 등장인물 모두를 등장시켜서 한마디씩 멘트를 따지 않았겠나?

이정도 되면 인기에 상관없이 막장사극이 되가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가 추구하는 명품사극은 물건너 간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나? 그런데 스스로 명품사극을 지향하고, '신라를 국내 최초로 재현'한다고 선언한 드라마 치고는 너무 막나가는 거 아니냐 말이다.

정확한 이야기 인지는 모르겠으나, 선덕여왕 작가진이 '선덕(덕만)은 공주시절 자료가 없어서 상상하기 좋았다'고 했다. 그런데 기록에는 덕만만큼 왕이 되기전 자료가 많은 사람도 없다.

결론은 선덕여왕 원작자가 이야기(구라)는 만들 재주는 있을 지 모르나 소설을 쓸 자질은 없는 것 같다. 특히 역사소설을 쓸때는 인물의 생사와 시대배경은 기초중에 기본적인 것이다. 인물의 성격부여와 사건의 인과관계는 그 다음 부차적인 것이다.

물론, 드라마에 출연해 호연을 하는 배우들과 엠비씨 드라마 제작팀이 쓰레기 원작을 재미있게 만드는 재주가 있음에 존경을 표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신라사 공부를 재대로 시키려는 고도의 전략이 아닐까? 자조적인 말이 입밖에 나올 때가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신라 중기의 시대를 공부하는데 반면교사이다. 또한, 역사소설을 쓰는 자들에게도 이보다 좋은 교재가 없을 것이다.


ps. 선덕여왕을 보면서 계속 궁금했던 게 있는데요.. 혹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온 동굴이 어디인지 아시는 분 있습니까? 너무나 좋더군요.  휴가철 피서지로 그만이 아닐까? 주상절리로 봐서는 남해쪽이나,  제주도 쪽이 아닐까? 하는데요.. 

사극 선덕여왕 역사를 왜곡(?)해서 재미가 없나면 그래도 재밌습니다..^____^;;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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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0063.tistory.com BlogIcon 카르페디엠^^* 2009.08.12 08: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 왜곡된 부분이 많기는 많았어요.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이라고 시청하면 괜찮겠지만...
    왜곡된 역사의 일부분을 시청자가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까 그게 걱정이네요..

  2.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12 08: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중에 다시 ㅎㅎㅎ
    추천만 ㅋ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2 08: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___^

    •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12 11: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제야 모두 봤습니다.
      명품드라마를 지향했는데
      막장드라마라 ㅋ
      글쎄요....
      드라마의 인기요인이 막장이
      대세인 모양입니다. ㅎㅎㅎ
      역사에 준해서 해도 저는 재미있으리라
      생각하는데 ㅎㅎㅎ
      여튼 후세의 역사학자를 위한
      갓쉰동님의 노고에 감사 드리며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궂은 날씨이지만
      마음은 밝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2 12: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인기가 곧 명품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요.. ㅋㅋ

  3. 2009.08.12 0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12 09: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여기와서 공부를 해야해요..갓쉰동님때문에 앞으로 다른 사극들은 더 사실적이 되겠지요?

  5.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12 09: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집필진이 갓쉰동님께 조언을 많이 받아야 되겠습니다.

    재미있게 잘 봤어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6. 2009.08.12 1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지나가다 2009.08.12 1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자주 좋은글 잘 보고 있습니다.

    저기 동굴은 "비둘기낭"(포천시 영북면 불무산자락에 )이라 하는데..

    한탄강댐 건설로 인해 물속에 잠긴다고 하네요..

    좋은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8. 2009.08.12 2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9. 프라미스 2009.08.14 1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에서는 용수 용춘이 다른 사람으로...용수가 용춘의 형으로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리고 이미 죽었구요.. 그리고 춘추의 아버지가 용수로 나옵니다만... 따라서 적어도 춘추 아버지가 어머니 천명보다는 먼저 죽는 것이 되는 셈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5: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왠 드라마 이야기를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용수는 최소한 603년 이후에 죽습니다. 춘추가 이때 태어나지요.. 기록에 의하면 용수는 더 오래 살지만요..

  10. 작은이 2009.08.14 14: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외국에 사는 아이들은 드라마 보면서 진짜인 줄 알고 그렇게 믿어요.

    확실히 정확한 드라마가 만들어져 외국에서 보는 교포어린친구들도 제대로 알았음해요.

    가끔 황당할 때가 많거든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5: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황당한 내용을 잘 알려줄 의무도 있지요.. 부모님은. ㅋㅋ

      그전에 잘 만들면 더 좋구요..

      엠비시 제작자는 작가가 아니닌깐.. 당연히 역사를 모른다고 보면 됩니다.. 원작이 재대로 만들어야지요.

      제작자는 단지, 원작에 맞추어 화면을 구성하고, 배우들의 연기만을 책임지지요.. 어쩔수 없는 것 같습니다.. 원작을 잘만드는 수밖에는..

  11. 강석우 2009.09.08 0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드라마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많이 뒤틀어 놓았죠...
    역사를 왜곡했다는 글 밑에 "그러면 드라마를 보지 마라!"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더라구요...
    그 사람들은 누군가가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에 이르는 역사(보통 일제시대라고 하죠?)를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상당히 궁금하더라구요...
    그런데...
    이 드라마를 제가 처음부터 보지 않아서일까요?
    정말 궁금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김춘추'는 분명 천명공주의 아들 맞죠? 이 드라마에서... 천명이 결혼을 했었나요? 결혼을 했다면 왜 '공주'라는 호칭으로 불렸나요? 그리고 천명이 '춘추'를 어떻게 낳았죠?
    정말 궁금하네요... 천명이 결혼을 했다면 출궁을 했을 것이고... 출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결혼을 하지 않았음이건만... 어떻게 중국게 그렇게 장성한 아들이 있는 것인지...
    이 역사가 이해가 되지 않아요...ㅠㅠ

  12. chtqnf 2009.09.27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
    하여간 생업을 뒤로 하고 열심히 드라마 보고
    열심히 님의 글, 읽고 있습니다.
    글 정말 잘 쓰시네요.***

  13. Favicon of http://www.monclermenjackets-sale.com/ BlogIcon moncler jackets sale 2011.11.09 18: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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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Favicon of http://www.movieleatherjacket.com/categories/Christmas-Costumes/ BlogIcon christmas clothing 2011.11.16 17: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중국게 그렇게 장성한 아들이 있는

  15. Favicon of http://www.movieleatherjacket.com/categories/Christmas-Costumes/ BlogIcon christmas clothing 2011.11.16 17: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중국게 그렇게 장성한 아들이 있는

  16. 2011.11.17 17: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7. Favicon of http://www.annual-free-credit-reports.com/ BlogIcon Annual Free Credit Report 2011.11.17 1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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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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