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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난공신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 된다? 사실은 진실과 허구 왜 퍼졌을까? 에서 경혜공주는 문종 말년(1452년 경) 비루한 가문의 정종에게 시집을 간다. 에서 문종은 김종서와 밀약을 맺고 김종서의 막내 아들 김승유를 경혜공주의 부마로 세우려 했지만, 수양대군(세조)의 반대로 정종에게 시집을 가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경혜공주는 처음에 마지못해 맞이한 부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정종이 자신을 지키고 문종이 승하하고 단종이 왕위에 있었을 때에도 충실히 왕실을 위해서 노력하는 면에 점차 마음을 열고 자신의 배필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경혜공주는 문종과 현덕왕후의 소생인 경혜공주(1436년생)는 세종 말년 1450년 1월에 세자 문종의 맏딸로 평창군주 시절 15살에 영양위 정종에게 시집을 간다. 작가가 자신이 목적한 이야기로 이끌어 가려고 사실이 아님을 알고 서도 허위로 만든 허.. 더보기
공주의 남자, 광개토태왕, 계백, 사극 문헌고증 파괴해야 시청률 오른다? 드라마 에서 후연의 모용보가 백제의 진사왕을 찾아가 백제가 고구려의 남방경계를 쳐서 평양성까지 취한다면 연이 고구려가 남방으로 군대를 이동할 때 요동을 공략해서 요동성을 회복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사왕의 조카이자 침류왕의 큰아들이였던 아신이 먼저 연이 고구려의 요동성을 친다면 후방에서 고구려를 공략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참으로 드라마 광개토태왕은 알 수 없는 드라마다. 왜 남의 나라 땅에 그리 집착을 할까? 요동성도 고구려땅, 부여도 고구려땅으로 요즘으로 치면 일본의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우기고, 중국의 동북공정을 보는듯 하다. 요동지역을 장악한 때는 담덕 광개토태왕 12년경인 402년 연의 숙군성과 연군을 공격하였을 때이다. 부여의 도성인 부여성은 담덕사후 100년이 지난 담덕의 손자인 문자왕때의 .. 더보기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에서 사육신 중 한명인 이개와 사육신 등이 절대로 김승유와 한편이 될 수 없다는 글을 송고했더니 이개의 후손이나 사육신 중의 후손 이라는 사람들이 가끔 댓글을 단다. 조상을 욕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조상을 욕보이는 측은 다름이 아닌 공주의 남자 작가인데도 말이다. 목은 이색의 후손으로 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하였지만, 조선에 부용하지 않고 고려에 대한 충성과 절개를 지켰다는 것이다. 조선의 왕이 삼고초려를 해서 한산 이씨들이 조선 조정에 나갔는데 정난공신이 되고자 경솔한 판단을 했겠냐는 것이 골자이다. 논리적인 모순은 과연 이색의 후손이 이색의 고려에 충정을 이어 받았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조선의 왕들이 삼고초려를 해서 정치에 참가였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충절가문이거나 이색.. 더보기
공주의 남자, 김승유 단종복위 위해 불구대천원수인 이개 성삼문 등 사육신과 동침한다? 에서 김승유는 김종서를 죽이는데 일조한 한명회의 수하 두명을 참살하고 나무위에 걸어둔다. 김승유는 빙옥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개를 만난다. 사육신중의 한명인 이개는 김승유와 정종과 신면의 스승으로 나온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는 주인공들은 자라지도 않고 늙지도 않았는데 어느 새 6년의 시간이 구렁이 담넘어 가듯이 지나가고 있다. 극중에서 몇일 지나지도 않았는데 1~2년이 훌쩍 넘나든다. 1452년 문종이 죽고 단종이 즉위하고,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란이 끝나기 무섭게 1455년 6월 11일 단종이 폐위되고 수양대군이 왕이 되었다가 몇일 지나지 않아서 1456년 6월 2일 단종복위 사건을 다루고 있다. 공주의 남자에서 하루는 1년인듯 하다. 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관심이 없을 지도 모른다. 박시후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