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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삼고, 만들어진 소설 중에서 <선덕여왕>은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가 기록한 덕만이 맏언니, 천명이 동생과는 다르게 설정을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텍스트로 사용하고 있는 화랑세기의 천명의 동생 덕만으로 설정한듯 하지만, 화랑세기와는 다르게 천명을 같은 나이 동복의 쌍둥이로 설정하였다. 하지만 천명의 쌍둥이 동생으로 설정하는 바람에  많은 부분에서 역사와는 다른 시대 상황을 만들고, 그에 따라 등장인물과 사건들이 얼키고 설켜 버렸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덕만과 천명 그리고 통설

그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는 다르게 화랑세기에서는 덕만에 대해서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 알아 보도록 하자.

삼국사기는 덕만을 진평왕의 맏딸이고. 덕만의 어머니는 마야부인이다.

반면에, 천명은 진평왕의 딸이다. 

이 둘의 기록을 그냥 생각없이 읽는다면, 진평왕의 맏딸은 덕만이고, 천명은 진평왕의 딸이니, 천명은 진평왕과 마야부인의 딸이 된다. 그리고  덕만이 맏딸이니 천명은 당연히 첫째는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삼단논법이다. 만약, ~라면, ~다. 이런 류의 소설을 기반으로 논설을 쓰는 자칭,  국내 유수의 자신들의 할말 만 하는 신문사도 있다. 일명 라면사설 또는 라면일보라고도 불리운다. 대부분 이런 라면소설은 그럴듯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고 보면,  기본 개념이 미 장착인 경우가 많다.

더 나아가 <삼국유사>에 보이는 서동요로 너무나 유명한 <서동과 선화>에서 '선화'가 진평왕의 3번째 딸이라고 했으니, 이들의 서열을 비교하면 덕만이 맏이 되고, 천명이 둘째가 되고, 선화가 셋째가 된다. 그런데 이런 설정이 맞는 걸일까?

통설의 문제점

하지만, 글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덕만은 진평왕의 맏딸이 맞다. 문제는 마야왕후인 정비의 소생으로 맏 딸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천명은 단지 진평왕의 딸이라고 만 기록하고 있다. 몇번째 딸인지도 기록하지 않고 있다. 마야의 소생이라고 기록하지도 않았다.
 
만약, 천명이 마야의 소생이였다면, 삼국사기는 천명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했을 것이다. 하지만 삼국사기는 분명히 진평왕의 정비가 마야인것을 알면서도 천명을 마야의 소생이라고 기록하지 않았다. 현재와 같이 1부1처제가 확립된 관점이라면, 누구나 천명의 어머니도 마야라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50년전으로만 돌아가더라도 첩실이란 용어가 공공연히 사용될 정도로 첩의 자식이 있었다. 홍길동전에도 첩도 아니고, 집안 노비를 어머니로 둔 홍길동이지만, 홍판서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설움을 이야기한다. 고려시대만도 사대부 정도만 되더라도 첩은 무수히 많았다.

하물며, 왕의 아내들인 정비와 후비와 비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무수리의 몸에서 난 자식도 왕이 될수 있는게 왕이 가지는 성스러운 특수성이다. 그러니 고려시대를 살아간 김부식이나 일연으로써는 당연히 진평왕의 소생인 것은 맞지만, 천명의 모후가 누구인지 모를때는 덕만의 어머니인 마야를 천명의 어머니로 보지 않았다.
 
천명이 진평왕의 소생인것은 맞지만,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마야의 딸이라고 기록할 수 없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천명의 어머니를 삼국사기.유사에 기록하지 않은 이유는 마야의 소생이 아닐뿐더러, 손씨 승만왕후의 소생도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의 상식으로 과거를 단지, 겉보기 기록을 가지고, 덕만의 어미인 마야를 기록하지 않는 천명의 어머니로 만들고, 이를 기준으로 알 수 없는 덕만이 언제(몇살) 왕위에 올랐을까를 추적한다. 추적의 기준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닌 '천명'을 기준으로 한다. 만약 천명과 덕만이 동부이모라면 이 추척은 아무 의미가 없는데도 말이다.

통설이 가는 곳은 삼천포

가설이나 가정을 잘못세우면 결과가 전혀 다른 길로 빠져들게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통설로 알려진 가설을 따라 추적을 해볼 생각이다.

천명을 기존으로 했을때 덕만의 나이를 추적하는 방법은 없다. 단지, 천명이 낳았다는 춘추를 기준으로 할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춘추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603년에 태어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603년 8월은 신라에서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다. 603년 8월 고구려와 신라가 경기도 영역을 걸고, 고구려는 잃어버린 옛영토를 수복하기 위해서 이고, 신라는 대 중국 교역로의 교두보를 잃어 버릴수 없다는 절체절명의 신라국운을 걸고,  한수에서 일대 결전을 벌인다. 이때, 진평왕은 손수 군대를 이끌고, 침입하는 고구려 군을 북한산성(한수) 전쟁(투)에서 무찔러 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한가위와 추석과 중추절을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같은 날짜이기는 하지만, 전혀 다른 명절이다. 공교롭게 중첩되었을 뿐이다. 광복절과 한가위가 겹치는 것처럼 말이다. 광복절은 광복절이고 추석은 추석이고 한가위는 한가위 일뿐이다. 603년 8월 이때의 승전을 기념하여 중추절이 생겼다. 이에 관한 글은 별도로 포스팅 할 예정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춘추가 603년에 태어 났다면, 천명의 대략적인 나이를 추측할 수가 있다. 천명이 15세~20세에 춘추을 낳았다면, 천명은 584~589년 사이가 된다는 것이다.
천명의 언니인 덕만의 탄생 시기는 582~588년 사이가 된다. 그러니 덕만은 왕위에 오르는 632년에는 45~51세가 된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천명과 덕만이 동복이란 어떠한 기록도 없다. 그런데 잘못된 가정이 덕만을 40중~50초반에 왕에 등극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 대참사가 발생되었다. 만약, 이 사실을 죽은 선덕여왕이 알았다면, 대성통곡할 일이 아닌가?

칭찬한 답시고, 잘 알지 못하는 길가던 아가씨에게 "아줌마 너무 섹시해요"라고  말을 해도 별 "미친놈을 다 봤나"라는 듯 눈흘김을 당하거나 좋은 말 들어 보기 힘들 것이다. 물론, 아줌마에게 "아가씨 너무 섹시해요" 라고 한다면 아줌마가 별미친놈 하면서 돌아서며 내가 아직도 먹어주는구나 하고 입가에 미소를 짓겠지만 말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문제가 아닌 연구자의 문제

사실 덕만을 50대로 설정하는 순간, 덕만과 관련된 삼국.유사 모든 기록은 덕만과 관련이 없는 또는 다 늙은 노처녀의 이야기로 치부해 버릴 수는 있다. 하지만, '모란꽃'사건이나 '지귀심화', 634년 결혼과 연호 변경을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없어진다.

이 같은 사건들이 40대 넘은 노처녀나 50이 넘은 노처녀가 할 만한 일은 아니다. 또한, 등극 후 3년이 지난 635년 남편을 두었다는 기록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모란꽃은 애들에게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나 아빠랑 결혼할래 엄마랑 결혼할래를 갓 졸업한 아이에게나 했음직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관점이 아닌 당대의 관점으로 역사를 본다면

이제 아래의 글을 차분히 현재의 1부일처제 관점이 아닌 과거 수 없이 많은 여자를 거느렸을 진평왕 시대로 돌아가 읽어 보기 바란다.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선덕여왕 원년(632) 2월에 대신(大臣) 을제(乙祭)로 하여금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선덕여왕 원년
634년 3년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3년(634) 봄 정월에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바꾸었다. 분황사(芬皇寺)가 완성되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3년

가정하지 않고, 삼국.유사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고, 해석한다면, 덕만이 632년 왕위에 오른시기는 절대 20 대를 넘기지 못한다.

화랑세기가 본 덕만과 용춘

화랑세기는 기존의 통설을 통쾌하게 반박하고 있다, 그건 "니들 생각이고~" 너희들이 틀렸다라고, 만약, 현존하는 화랑세기가 김대문이 저작한 화랑세기를 필사한 필사본이라면, 그동안 역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는 한마디로 엿먹은 것이다. 그래도 화랑세기라는 필사본이 발견되었으니 쪽팔림은 있더라도 학계발전을 위해서는 만족할 만 하다.


하지만, 박창화가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모방한 가짜라면 이는 더더욱 문제가 된다. 1930년대의 종이에 필사된 화랑세기라면, 1930년대에 이미 개인 박창화는 현재 2010년 즈음의 전체 역사학계 보다도 뛰어난 역사적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역사학계는 밥숫가락 놓고, 모두 대운하 삽질공사에 일일잡부로 참여하거나  다른일을 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던, 덕만과 천명을 화랑세기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따라가 보도록 하자.

화랑세기는 좀 더 나아가 천명이 덕만보다 나이가 많았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화랑세기도 덕만의 출생일이 언제인지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화랑세기의 기록들을 토대로 덕만의 나이를 유추해 볼 수 밖에 없다. 덕만의 나이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정황증거 기록을 살펴보자.

그렇다면, 언제 이런 기록을 남기게 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용춘(龍春)은 무술(戊戌)년(578) 생이고 병진(丙辰)년(596)에 낭주(郎主)가 되었다.〉


공의 손 윗누이인 용명공주는 곧 진흥의 딸이다. 진(평)을 섬겨 총애가 있었다. 공의 처지를 열심히 도와 (풍월)주의 지위를 얻게 하였다.  화랑세기 13세 용춘

용춘은 이 기록으로 19살에 13세 풍월주에 올랐다. 용춘의 어미인 지도(기오/흥도)는 금륜(진지)뿐만 아니라, 진흥도 섬겼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도의 딸인 용명공주가 진평을 섬기고, 용춘을 뒤에서 밀어주어서 용춘이 13세 풍월주에 올랐다는 새로운 기록을 보는 것이다. 

그럼 지금 까지 알지 못했던 용수.용춘 누이에 관한 기록이다. 용수, 용명공주, 용춘이거나 용명, 용수, 용춘이 된다. 그런데 지도는 천주공과도 관계해서 17세 풍월주가 되는 염장을 낳기도 한다. 어찌 되었던 이는 다른 포스팅으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용춘의 나이를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용춘은 578년생이고, 천명은 588~590년 사이에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춘추의 아비인 용수는 용춘보다 보다도 나이가 많아야 한다. 그러니 용수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576~7년 생이 된다.

결국은 용수는 금륜이 왕위에 오르는 시점에 태어났고, 용춘은 금륜이 왕위를 내주고, 폐위되어 살아가는 동안에 아비의 얼굴을 모르고 컸다는 말이 된다. 용수는 26~28살 전후에 자신보다 최소 나이가 10살 어린신부 천명과 관계를 하여 603년 춘추를 낳은 것이다.
이말은 용수.용춘에게는 이미 본처가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호림공에게 풍월주의 지위를 물려주게 되자, 조정에 들어가 요직에 있었는데 대사 이하에 재능이 있는 낭도를 많이 등용하였다. 이로서 낭도로 등용된 자들이 또한 공을 심히 존중하여 모두 목숨을 바치기를 원하였다.

호림에 풍월주 지위를 넘겨 주는 시기는 603년이다. 그후 용춘은 조정에 들어가서 열심히 조정일을 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문노와 천명을 구하려 출동한 대남보는 여래사에서 16세 풍월주이며 미실과 설원랑의 아들인 보종을 활로 상처를 입힌다. 용춘의 충성스런 '대남보'도 이때 기용한것이 아닐까 한다. 용춘의 기록중 대남보의 기록을 보면 꼭 일본의 자객집단인 닌자들을 보는 듯 하기도 한다. 그래서 선덕여왕에서도 가면을 쓰고 음지에서 용춘을 호위하는 음병으로 나온다. 김유신이 죽을때에 유신의 집에서 나오는 한 무리들이 있엇다고 한다. 유신 평생 뒤에서 유신을 호위했지만, 유신이 죽자 울려 떠나 버렸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되겠다.

 (선덕여왕에서는 대남보가 미생의 알려지지 않은 아들중에 하나로 나왔나 봅니다.  또한, 보종(미실/설원랑)을 쏜사람은 임종으로 나왔다고 하네요.. 당연히 용춘의 그림자 무사 대남보 일줄 알았는데.. 소설 선덕여왕은 견적이 안나오는 군요.. 진심으로 견적이 안나오는 원소설을 가지고, 대단하고 재미있는 사극을 만든 mbc에 경의를 표함 ^^)  


건복(建福) 20년(603) 공과 비보랑이 제(帝)를 좇아 한수(漢水)의 전쟁에 나갔다. 남보에게 공으로 대나마를 주었으나 받지 않았다.
그 때 대왕은 적자(嫡子)가 없어 (용춘)공의 형인 용수 전군(殿君)을 사위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다. 전군이 (용춘)공에게 물었다. 공이 답하기를 “대왕의 나이가 한창 강성할 때인데 혹시 왕위를 이으면 불행할까 염려가 됩니다” 하였다. 전군은 이에 따라 사양하였으나 마야황후가 들어주지 않고, 마침내 전군을 사위로 삼았다. -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603년 진평왕은 적자가 없어서 용수를 천명의 부군으로, 즉 사위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려 했다" 여기서 주의해서 봐야 할 것은 용수를 부군으로 삼아 물려주려 했다는 대목이 아니고 적자 가 없다는 말이다. 이는 다른 말로 왕후의 소생인 왕자가 없다는 말이다. 다른 비를 통해서는 왕자가 있다는 다른 표현인것이다.

603년 시기까지 덕만은 존재가 없는 것이다. 있더라도 나이가 어려서 결혼적령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시기에 용수와 천명이 결혼해서 '춘추'를 낳은 것이다. 

삼국사기나 화랑세기에 의하면 진흥은 7살에 왕위에 올랐고, 화랑세기 12세 풍월주 보리의 기록에 의하면, 진흥의 비인 사도는 7살에 진흥에 시집을 갔다고 한다. 또한 12세 풍월주인 보리는 13살에 결혼을 하는데 7살의 어린 신부를 얻어서 업고 궁궐 출입을 하였다고 한다. 이런 사례가 있는 것으로 보았을때, 덕만이 있었다면 용수랑 엮어 주지 않았을까? 아무리 어린신부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문근영이 고딩때 결혼해서 어린신부였지만 당시는 어린신부 축에도 끼지도 못하고 10세 미만이 되야 어린 신부축에 들었다.

선덕공주(善德公主)가 점점 자라자 용봉의 자태와 태양의 위용이 왕위를  이을 만 하였다. 그 때는 마야황후가 이미 죽었(崩)고, 왕위를 이을 아들이 달리 없었다. 그러므로 대왕은 (용춘)공을 마음에 두고 (천명)공주에게 그 지위를 양보하도록 권하였다. (천명)공주는 효심으로 순종하였다. -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596년~603년

"그때는 마야황후가 이미 죽었(崩)다"

덕만이 다 자라기도 전에 마야왕후는 죽었다. 덕만의 어린시절에 모후가 없었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어린 나이에 죽은 마야가 다큰 성인이 된 시점에 모녀 상봉을 하는 것은 엽기에 가깝고, 매년 여름방학 납량특선에나 나옴직한 설정이 된다. 또한, 진평은 덕만이 어린나이때 승만 손씨를 왕후로 받아 들인것이다. 물론, 승만 왕후가 후비였을때 왕자를 생산해서 왕후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예사로 넘기기 어려운 단락이 있다. "왕위를 이를 아들이 달리 없었다"는 기록이다. 이는 왕자들은 있지만, 대권(왕권)을 넘기기에는 '왕자들의 자질이 덕만에 비해 부족함이 있다'는 다른 표현이다. 또한, 그전에 천명이 왕위를 받는 수업을 받았음도 짐작할 수 있고, 진평은 전왕들의 선례에 비추어 사위를 왕으로 삼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또한가지 579년 13세에 왕위에 오른 진평(567년생)은 603년 37살이 될때까지 적자가 없었다.하고 있고, 603년이 한참 지난후 선덕이 자라면서 왕의 자질이 보였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도 마야가 죽고, 덕만이 어려서 왕의 자질을 보일때에도 왕위를 이을 아들이 달리 없었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왕의 자질을 보인 덕만에게 도전자가 생긴다. 다름 아닌 손승만후가 아들을 낳아 덕만을 밀어낼 꿈을 꾸는 것이다. 하지만 아들이 일찍 죽어 버린다. 이 시기 승만은 왕자를 생산한 비들을 음모를 꾸며서 궁밖으로 축출한다. 어찌 보면 어부지리를 덕만이 한것이고, 아니면, 어리지만 덕만의 정치술수가 뛰어났을 수도 있다.

선덕은 공이 능히 자기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여 사신(私臣)이 되기를 청하였다. 대왕이 이에 공에게 공주의 뜻을 받들도록 명하였다. 선덕은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감정이 풍부하였다. 공이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고 굳이 사양하였으나 어쩔 수 없이 받들게 되었는데 과연 자식이 없어 물러날 것을 청하였다. 대왕은 용수공에게 모시도록 명하였는데 또한 자식이 없었다.

그 때 승만황후(僧滿皇后)가 … 아들을 낳자, 선덕의 지위를 대신하고자 하였는데 그 아들이 일찍 죽었다. 승만은 (용춘)공의 형제를 미워하였다. 공은 이에 지방으로 나갔다. 고구려에 출정하여 큰 공을 세우게 되자 승진하여 각간(角干)에 봉해졌다. 용수전군이 죽기(薨) 전에 부인과 아들을 공에게 맡겼다. 

1차로 덕만이 용춘과 관계를 가지고, 천명이 궁을 벗어난 때를 알아보자. 이시기에 덕만은 용봉의 자질을 가지고 결혼을 한때이다.  

승만왕후가 아들을 낳았지만, 아들이 일찍 죽었다. 아들이 죽은 원인을 용수.용춘형제로 하고, 지방으로 축출한다. 이는 단순히 용수.용춘을 대상으로 하는게 아닌 덕만의 지지세력을 축출하는 것이다. 그런 용춘이 고구려 원정에 출정하여 큰공을 세운다. 화랑세기에는 고구려에 출정한 전쟁이 어느때인지는 언급이 없다. 하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서현, 용춘, 유신이 고구려의 낭비성을 치는데 큰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51년(629) 가을 8월에 왕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였다. 고구려인이 성을 나와 진을 벌려 치니 군세가 매우 성하여 우리 군사가 그것을 바라보고 두려워서 싸울 마음이 전혀 없었다. - 삼국사기 본기 진평왕 51년

위의 기록을 보면, 승만왕후의 자식이 죽은 때는 629년 8월 낭비성 전투 이전시기 임을 알 수 있다. 이때, 용춘의 나이는 50세가 된다. 603년까지 덕만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다가, 629년 8월 낭비성 전투가 일어나기 바로 전에 용봉의 자질을 보이는 덕만이 용춘과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승만 왕후의 자식이 죽자, 승만 왕후는 자식이 죽은 용춘.용수 형제 때문이라고 생각하자. 이에 지방으로 나아가고, 낭비성 전투를 계기로 서라벌로 복귀하는 것이다. 

그러니 629년 전후를 기해서 덕만의 나이는 성숙한 성인의 나이에 접어 들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여기서 성숙한 여인이란 당대 13세 전후 결혼하는 일반적인 신라 상황을 고려할때, 덕만도 13세~16세 전후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용춘,용수와 관계하고 몇년 후가 629년이 된다. 그러니 덕만이 632년 진평을 이어 왕위에 오른때는 16~20세 이전이 된다. 또한, "
선덕은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감정이 풍부하였다" 라고 한다. "총명하고, 감성이 풍부하다"는 말은 당시 기준으로도 어린사람들에게나 하는 말이지, 50살 근처에 있는 늙은 할머니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또한,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은 늙은 용춘과 용수가 젊은 여인 덕만에 할 말이지, 같이 늙은 사람을 대상으로 애를 낳기 위해서 멸사봉공할 수는 없는 말이다. 아무리 날고 기는 용수.용춘형제라도 50근처의 여인에게서 후사를 보는 것은 하늘의 도움이 아니면 생물학적으로 있을 수 없다. 많이 양보해도 629년 즈음 용춘의 나이 50일때 덕만은 20초반을 넘길 수는 없는 것이다.  이로써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의 기록을 토대로 덕만의 나이를 유추해 보았다.

현존하는 화랑세기가 진서이던 위서이던 관계없이 상당히 합리적으로 기술되었다고 보여진다. 실제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살펴봐도 덕만이 50세의 노파로는 왕위에 올랐다고 볼 근거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단지 차이점이라면 마야의 소생으로 천명을 기록한 것 같지만, 화랑세기에는 천명의 어미로 마야를 묘사한 대목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여전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는 다르게 천명의 모후가 마야라고 기술하고 있다. 다만, 천명이 덕만보다 나이가 아주 아주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또한, 마야의 여식으로 천화, 천명, 덕만이다. 천화는 용수에게 시집을 갔다. 용수가 천명과 혼인을 하자, 천화는 추후 603년 낭비성 전투에 용춘과 같이 참여했던 백룡에게 다시 시집을 간다.  그러니 삼국유사의 서동과 선화는 잘못되었다고 반박을 하는 셈이다.


덕만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심층해부 시리즈

화랑세기는 단 한줄도 인용하지 않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의 기록을 토대로 덕만이 현재의 이요원의 나이가 아닌 어린 아역을 해서 주목을 받았던, 남지현 나이때 왕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시리즈 글을 기시로 송고했었다.

위 기사들의 결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덕만은 진평왕과 정비 마야의 장녀다.
둘째, 천명이 나이는 많지만, 정비인 마야의 소생은 아니다. 또는 마야 이전 황후의 소생이다.

셋째, 천명과 덕만은 이복자매간이다.
넷째, 천명은 정비인 마야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에 덕만보다 왕위승계에서 후순위다.
다섯째, 마야의 후손으로는 덕만 말고도 또다른 자매(들)이 있다.  설령, 덕만과 천명이 같은 마야의 소생일지라도 덕만은 천명보다 나이가 한참 어렸다.

여섯째, 덕만은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했다.
일곱째, 덕만은 왕위를 오를때, 현재 80년생이며 한국나이 30살인 이요원보다도 어렸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의 아역역할을 한 남지현은 2009년 현재 15세이다. 덕만은 실제로 632년에 15~18세 정도에 늦어도 20세 전후에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다음은 신라사 연구의 전설이며 철옹성으로  통하는 <성골>, <진골>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성골, 진골의 허구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만으로 얼마나 잘못된 역사 상식속에서 살아왔는지 조목조목 파헤칠 예정이다. 물론, 단지 예정이지 꼭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기사를 송고하는 중간 중간에 간간히 언급을 할 것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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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dar 2009.08.10 1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론은 드라마는 구라라는거네요.ㅡ;;
    하긴 좀 전체적으로 이상하긴했어요
    먼가 않 맞는느낌?
    드라마는 드라마니 역사와 다르다<<라고 우리나라 pd들은 그러는데.ㅡㅡ
    그럼 이름을 왜 역사이름으로 쓰는건지???
    이름 전혀다르게해서 이건 퓨전사극이다<라고 할것이지
    우리나라는 요즘 특히 드라마에서 역사왜곡이 심하네요.
    PD들 역사 공부 점 해야겠음

  3. Favicon of http://www.news119.net BlogIcon news119 2009.08.10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노력 많이 하셨네요. 초딩때 삼국사기를 열심히 읽어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심오한 글은 첨이어요~

  4. 물음표 2009.08.10 16: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롭게 잘 읽고 갑니다.
    기쁜 날 되세요.

  5. 백마강 2009.08.10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청난 노력의 산물입니다.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재미나게 봤습니다 ^^
    역사라는게 기록이 모두 옳다고 할수 없듯이 유추한 자의 기록도 옳다고 볼순 없겠죠

  6. Favicon of http://ytrty.tistory.com BlogIcon Nehe 2009.08.10 21: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정말 유익한 글이였습니다~

  7.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11 13: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많은 걸 연구하셨네요...

    역사학 교수님도 갓쉰동님처럼 자세한 연구는 하지 못한 것 같아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8. 현아엄마 2009.08.11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았습니다. 재미있네요^_^
    그럼 여기서 드리는 질문하나!
    유신은 덕만공주보다 한참 아래연배이지요?
    지금 드라마상에서는 유신과 덕만공주가 러브라인인데, 유신이 김춘추의 셋째딸과 결혼한다고 알려져있는데.. 드라마상에서는 천명이 15~6세에 낳은설정이자나요.. 지금 유신은(엄태웅) 아무리봐도 서른전중반인데..ㅋㅋ 내생각으로는 김춘추 결혼도 멀은것 같은데.. 언제 셋째딸 기다리나.. ㅎㅎㅎㅎ 아니면 부인중 하나가 김춘추의 셋째딸인건가요.. 드라마 설정으로 유신이 더 어리다고 한번 지나가듯이 나왔기도 했는데..
    (아역에서 성인으로 넘어오면서 너무 나이를 먹었나..)ㅎㅎ 알려주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1 15: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춘추 셋째딸은 문희와의 사이에 난 지조부인인데요..
      유신과 결혼한 때는 유신이 한갑인 655년에 합니당..
      이때 지조는 꽃다운 15~6세 정도지용..

      춘추와 문희의 결혼은 626~628년 사이이구용..

      화랑세기에 의하면 춘추 24세 바로 직전에 결혼한다고 하네용.. 603년 생이니 626년이 되는군요.. 드라마상 최소 앞으로 20년후가 되겠습니당.

  9. Favicon of https://tradition.tistory.com BlogIcon 피오나신랑 2009.08.11 17: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잘보고 갑니다 ^^

  10. Favicon of http://wrgu.tistory.com BlogIcon 구여사 2009.08.28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보면서 뭉게뭉게 피어오른 의문들이 풀리는 글이었습니다. ^^

    역사드라마를 보는 매력은 이런 것인가 봅니다.ㅎㅎㅎ

  11. Favicon of http://www.jocuri-online.be BlogIcon jocuri online 2011.08.25 0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을 지키기 위해 중악으로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

  12. 2011.11.03 2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3. 2011.11.03 2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4. Favicon of http://www.olacabs.com/car-rentals/mumbai BlogIcon Mumbai Car Hire 2011.12.26 1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Really great work,I would like to join your blog anyway.24세 바로 직전에 결혼한다고 하네용.. 603년 생이

  15.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6. Favicon of http://stuff2india.in/about-us/ BlogIcon Discount offers in India 2012.11.22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라당 후보, 장상 민주당 후

  17. Favicon of http://www.facebook.com/pages/Anthony-Morrison-Author-Speaker-and-Internet-Ent.. BlogIcon internet marketing 2013.02.18 1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8. Favicon of https://www.youtube.com/user/adrianmorrisonceo BlogIcon internet marketing 2013.02.18 1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치의 가감도 없이 왜곡도 없어야 하는데 기존 통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안목도 없고, 능력도 없이 왜곡하고 있지요. 사실 왜곡이 아니라.. 수준이 낮은 거지만.. 알아야 왜곡도 하는 거지요.. 모르면 왜곡도 못해요.. 모르고 한일은 그냥 무식하다고 하는 겁니다.

  19. Favicon of https://www.facebook.com/AdrianMorrisonCEO BlogIcon internet marketing 2013.02.18 2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는 안목으로 쓰는게 아니다 이미 일어난사실을 한치의 가감도 없이 왜곡도 피하며 그 옳고 그름을 읽는 사람이 판단할것을 맡겨두고 적어가는 일종의 계산서다. 이렇듯이나 비뚤어진 사고방식으로 "모든것을 거꾸로!"를 외치고 싶다면 일본의 후쇼샤는 좋아 할것이다. 동지의식에........

  20. Favicon of https://www.youtube.com/user/DeanGraziosiInc BlogIcon real estate 2013.02.18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치의 가감도 없이 왜곡도 없어야 하는데 기존 통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안목도 없고, 능력도 없이 왜

  21. Favicon of http://www.bestmattress-reviews.org/adjustable-bed-reviews-reveal-best-brands/ BlogIcon adjustable beds review 2013.04.03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치의 가감도 없이 왜곡도 없어야 하는데 기존 통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안목도 없고, 능력도 없이 왜

선덕여왕 미실(고현정)과 덕만(이요원)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고대하고 기다리던, 모녀상봉인 마야왕후와 덕만이 만났다. 예고편에는 덕만이 공주의 신분을 알고도, <어출쌍생>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중악으로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극이 흥미진진 접입가경으로 흐르고 있다.


그동안 글쓴이는 덕만과 천명이 어미가 다른 형제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증명하였다.

그런데 덕만이 몇살때 왕위에 올랐는지는 확증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성조황고(聖祖皇姑)때문이였다. 그중에 <황고: 왕의 시어머니 뻘여자 자식이라니>

<성조황고>의 일반적인 해석은 성스런 조상을 둔 임금의 시어머니(姑)라는 뜻이 된다. 설마, 덕만이 진평의 시어머니뻘은 아니지 않는가? 아니면 진평의 나이만큼이라도 되었단 말인가?

아무리 천명과 덕만이 어머니가 다른 자매라고 주장을 하고 증명했지만, 시어머니뻘을 어떻게 해석할까의 의문이 걸릴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슬퍼하는 천명(박예진)


그래서 덕만이 현재의 30대~40미만 이라면 충분히 시어머니뻘 소리를 들을 수있겠다는 생각이였다. 또한, 당시 신라사회에 일반적으로 이뤄진 조혼의 풍습 때문이였다. 박혁거세도 13세에 왕위를 이였고, 그의 부인 알영도 혁거세와 같은 나이에 왕후가 되었다. 그러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면, 충분히 충분히 시어미(姑)를 쓰기에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문이 생기는 것은 선덕왕 즉위원년 인 632년 대신 을제의 국정관장, 634년 3년 기사를 보고, 30대초반 보다는 나이가 어리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들었다.

마야왕후(윤유선)

삼국사기에는 이해(634년) 진평왕이 584년 진평왕 6년 부터 사용한 <건복> 연호를 <인평>으로 바꾸었다.그래서 진평왕이 나이 어린 13세 전후에 왕위를 이었을 것으로 다들 추측하고 있다. 연호를 바꾸는 행위는 진흥왕

진평왕(조민기)

이 7살에 왕위에 오른 후 법흥의 딸이며, 어머니인 지소태후의 수렴청정에서 벗어난  551년 진흥왕 12년, 연호를 <개국>으로 바꾸고 있었다. 551년 이해가 삼국사기의 기록상으로 진흥(심맥종)이 18세가 되는 해이다.


그렇다면, 덕만도 즉위 3년차에 비로소 스스로 통치할 수 있는 나이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첫번째 의문이고, 결정적인 의문은 634년 이해에 <삼국유사>에 의하면 작은아버지 국반(진안)갈문왕과 결혼을 하였다는 기록이다. 

기존 통설로는 50세가 넘었을것으로 짐작하는 나이에 첫 결혼이라? 좀 의심스럽지 않는가? 덕만이 나이가 많았다면, 아무리 석녀인 덕만의 결혼한 남편도 있었을 것이고, 덕만보다는 사위왕을 선호한(?) 신라에서 남편을 냅두고, 덕만을 왕위에 오르게 했다?.  50세를 넘어서 자신보다 10살이상 많을 것으로 추측되는 작은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해서 무엇하게?


덕만에게는 즉위 3년인 634년이 그 어느때 보다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시기이다.

또다른 의문을 증폭시키는 사례는 즉위 초년에 행해진 처사 때문이다. 국정을 <대신> 을제에서 의지하고 있다. 진흥왕이 어미니인 지소태후에 의지하고, 진평왕이 모후인 만호태후에게 의지하고 있듯히 말이다.  그리고 독자적인 노선을 펼칠때 연호까지 바꾼다.

그렇다면 덕만은 634년에 몇살이 되는 것일가?

덕만(남지현), 천명(신세경)

아무리 늦춰 잡아도 20대초반 밖에 안되지 않는가? 그래도 걸리는 문제는 <황고>이다.  그래서 도대체 <姑:시어미고>를 당대에는 어떻게 사용하고, 현재 한자를 쓰는 중국에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아니면 또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어사전을 보고, 뒤통수를 크게 한방 먹은 충격을 받고 말았다. 글쓴이가 추측한 덕만은 어릴때 왕위에 올랐다는 것을 너무나도 쉽게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역시 안될땐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성현의 말씀이 또다시 뒤덜미를 잡는 순간이다.  

중국어 사전에서 姑의 활용 예
 [gū]  

시어미-고 부수: 女   총획수: 8

[번체]  부수: 女   총획수: 8

1. [명] 〔~儿〕 고모.

我的大姑到新疆支边去了。 - 우리 고모는 신장의 변경 개발을 지원하러 가셨다.
뜻풀이 검색결과 (1-5 / 총 13개)

고모(姑母)

[名] 1.  [gū mǔ]

고모부(姑母夫)

[名] 1.  [gū fù]

고식(姑息)

[名] 1.  [gū xī]

고종 사촌(姑從四寸)

[名] 1.  [gū biǎo]

내종(內從)

[名] 表兄弟姐妹  [gū biǎo xiōng dì jiě mèi]

 

我的大姑到新疆支边去了。 - 우리 고모는 신장의 변경 개발을 지원하러 가셨다.

大姑를 고모라고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해석을 할때는 큰시어니뻘 나이많은 어머니뻘 츠자 정도이다.
고종 사촌(姑從四寸) : 아버지 자매의 자식들

乡里子乡里样
촌 처녀는 촌티가 난다. 고자는 나이가 작은 여자 즉 처녀

顺得来失嫂意
올케에게 잘 보이면, 형수의 미움을 산다.
  • 관용구, 속담
    守好邻,学好邻,守着尼会参神
    좋은 이웃을 가까이하면 따라 배우고, 비구니가 옆에 있으면 참선(參禪)하는 것을 배운다.
  • 관용구, 속담
    舍不得娘,逮不住和尚
    처녀를 아까워하면 중을 잡지 못한다.

  • 니고 = 비구니, 고랑 = 처녀,고자= 처녀

    위의 사례를 볼때 姑는 그냥 성인 여자 를 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여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정을 일구고 살아갈 그정도 뜻이지 않는가?
     

    姑란 여자를 높여 부른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제 <시어미고:姑>가 가지고 있는 의문도 풀렸다.
    大姑를 고모라고 하듯이 <황고>는 진평왕의 시어미뻘이 되는게 아니라.진평왕의 시어머니뻘이라고 한다면 클날이지 않는가? 진평왕과 마야의 장녀는 진평왕의 시어미뻘이라니, 그러니 왕의 다큰 여식 또는 왕의 여식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조황고:聖祖皇姑>란 성스런 조상을 둔 황제의 딸 : 아들이 있어서 장가를 보낼 나이정도에 있는 것으로 해석해도 30세전후 라는 뜻이 되지만,진평왕의 뒤를 잇기에 핏줄에 하자가 없는 정통성 있는 진평왕의 다 큰(성숙한) 자식 정도이다.<황고>의 황과 대응하여 황제(진평)의 결혼해서 어른 노릇할 정도의 나이인 성인여식이란 뜻이다. 

    진평의 왕비와 후손들


    왜? 덕만이 왕위를 이을때 <성조황고>를 올리게 되었을까?
     

    칠숙(안길강), 소화(서영희)

    진평왕은 적통을 이을 만한 아들은 없었으나, 딸들은 넘치고 넘쳤다는 의미도 된다.또한, 진평왕 말년 631년 에 있었던 이찬 칠숙의 난으로 이를 무마시킬 무언가가 필요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관련족보들을 살펴본다면, 최소한 진평에게는 천명,?, 선화,덕만,덕만과 같이 마야왕후을 어미로 둔 동복자매 아우들 , 600년 이전 선화가 3번째 딸이라고 했으니 천명과 선화 사이에 둔 딸, 김인평을 남편으로 둔딸, 조계룡을 남편으로 둔딸 등 최소 7명이 그 흔적을 보이고 있다.

    그 많은 딸들 중에 적통을 이을 딸은 마야왕후 사이의 장녀인 정통성이 있는 덕만이라는 뜻이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여자라고 놀리지 말아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훌륭한 전왕의 딸이예요." 유행가 가사 같지 않는가? 그러니 덕만에 이찬 칠숙처럼 딴지(631년 반란)를 거는 행위는 하지 말라는 대국민 선언문이고, 덕만에 대한 국인(왕족과 귀족들)의 <충성서약문>인것이다. 
     

    알천(이승효)


    천명은 이전 왕후의 여식이나 후비의 소생이란 뜻이고, 정통성이 없다는 선언과도 같다. 이전 시리즈글 부터 읽어온 사람은 중복된 말이지만, 천명과 덕만은 같은 돌림자 자체도 없다. 또한, 진평의 딸이며, 진지왕의 아들인 용수.용춘의 남편이지만, 덕만보다 왕위계승에는 후순위가 된다. 자신의 아들인 춘추가 왕위에 오를때도 알천보다도 왕위승계서열에서 밀려 있었다.



    기존의 우리가 일반적인 상식이라고 알고 있었던 덕만과 천명
     

    덕만이 진평왕의 맞이라 했으니 천명은 덕만보다 나이가 어렸을 것이다.

    용춘(도이성)

    천명의 과 용춘(용수)의 아들인  춘추(603년)을 기준으로 덕만은 천명보다 나이가 많이 먹었을 것이다.그래서 <황고>라고 쓴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덕만이 공주시절 모란씨 서되 사건은 그냥 지어낸 이야기다,선덕여왕이 김춘추와 문희를 엮어준것도 여왕시절에 해주었다.

    50

    자연발화(shc)

    대의 늙은 왕인 덕만을 보고, 사랑에 빠질 인간은 없다. 그러니 영묘사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은 덕만과 혜공의 이적과 일체화 시키고, 지귀설화는 이전의 대지도론의 기사를 베낀것이다.분황사에서 발견된 바늘과 가위는 여자의 신물이기 때문에 넣어 놓은 것이다. 더 나아가 50세가 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634년 결혼은 작은아버지의 뒤배를 이용하기 위한 정략적으로 나이 많을 때 한것이고, 연호도 그때 바꾼것이다.출산을 염두한 행위는 결코 아니다.

    이말을 그냥 따라야 하는 것인가? 이야기들이 서로 미심쩍고, 화장실에 가서 똥을 다 눟지 못하고, 중간에 뒤처리도 못하고, 나온 찜찜함이 뭍어 있지 않는가? 

     

    딱한가지만 바꾸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문제.

    정확히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정확히 해석한다면 어머니가 다른 형제인 천명과 덕만이 있다.실제로 천명과 덕만이 같은 모후의 소생이라고 삼국유사와 삼국사기가 한줄이라도 언급한적이 없다.

    천명은 마야부인 이전의 왕후(후비) 소생이다. 그러니 천명은 덕만보다 충분히 나이가 많다. <
    성조황고>는 성스런 조상의 핏줄을 이어 받는 임금의 딸이며 여황을 말한다.

    덕만(이요원)

    성조황고는 우리시대에도 있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 국민교육헌장에 나오는 첫대목이다. 일종의 선언문이지 않는가? 우리들이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나긴했나? 그냥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과정에서 태어난거지 거창하게 역사적 사명을 띠우고 태어 났겠는가? 남.여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관계를 맺었겠는가? 하긴 요즘처럼 줄어드는 애들과 키우기 힘든 환경에서는 역사적인 사명을 감을 가지지 않으면, 애를 낳기가 힘든 시기에 도달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오죽하면 애를 낳는게 애국하는 지름길이라고 하겠는가?

    어찌되었던, <성조황고> 당시 충성서약을 뒤로 하고, 632년 원년 을제의 기사와 634년는 덕만 3년의 기사를 다시 읽어 보자.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을제(신구)

    선덕여왕 원년(632) 2월에 대신(大臣) 을제(乙祭)로 하여금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선덕여왕 원년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3년(634) 봄 정월에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바꾸었다. 분황사(芬皇寺)가 완성되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3년

    어떻게 읽히는가? 덕만이 왕위를 잇고, 직접통치를 못하고, 을제에게 의지했구나, 634년 진흥왕이나 진평왕의 사례에 비추어 덕만은 634년에 비로서 연호를 바꾸는 것으로 낭낭18세에 접어 들어구나,덕만은 634년 작은 아버지 국반과 결혼하는 것으로 보았을때 많이 잡아도 18세는 넘지 않았을 것이다. 영묘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덕만이였기에 삼국유사에 기록된 젊은 덕만과 지귀심화도 영묘탑 화재사건과 관련이 있구나. 이게 합리적인 해석이 되는 것이 아닐까?


    위의 다음 view로 송고된 시리즈 기사를 몇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덕만(남지현), 소화(서영희)

    첫째, 덕만은 진평왕과 정비 마야의 장녀다.

    둘째, 천명이 나이는 많지만, 정비인 마야의 소생은 아니다.
    셋째, 천명과 덕만은 이복자매간이다.

    넷째, 천명은 정비인 마야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에 덕만보다 왕위승계에서 후순위다.
    다섯째, 마야의 후손으로는 덕만 말고도 또다른 자매(들)이 있다.  

    여섯째, 덕만은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했다.
    일곱째, 덕만은 왕위를 오를때, 현재 80년생이며 한국나이 30살인 이요원보다도 어렸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의 아역역할을 한 남지현은 2009년 현재 15세이다.덕만은 실제로 632년에 15~18세 정도에 늦어도 20세 전후에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이제 마지막 걸림돌인 <황고>도 충분히 사례를 들어서 증명하고, 해결하였다. 덕만의 출생의 비밀과 덕만의 기록들을 시리즈로 엮은 것을 끝내려고 한다.그동안 덕만이 어린나이(당시에는 충분한 나이)에 즉위했다는 사실을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을 바탕으로 충분히 증명했다고 본다. ( 드라마 선덕여왕관련 사진의 저작권은 mbc에 있음 )

    다음편에는 선덕왕 원년에 보이는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를 해석해 볼것이다. 단순한 미사어구인가? 아닌가?하는 글이다. 시리즈 글을 읽은 분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이미 충분히 글로써 표현했기 때문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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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역사맨 2009.07.28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기존 학설보다 훨씬 설득력있네여
      공감합니다
      근데 궁금한게 있어여
      즉위때가 10대 중반에서 20대라면
      진평왕과 나이차이가 너무 많이
      나지 않나여? 게다가 김춘추보다도
      어리게 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8 14: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579년 진평왕이 왕위에 오른 때는 13세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566년 생인거지요.
        632년에 죽을 때 나이는 77세입니다.. 한갑이 다되어서 얻은 귀한 자식이 되는 겁니다..

        김유신도 61세인 회갑맞이 신부 지조(춘추/문희)을 맞이 하여 많은 자식을 낳지요.. 원술등 원짜 돌림 아들들..

        김유신에 비하면 김진평은 약과 입니다..
        김진평은 60이 한참 넘은 나이에 승만 손씨를 후비로 들이기도 합니다.. 아들보기 프로젝트 일환으로..

        결국에는 손들고 말지요. 덕만으로..

    3.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7.28 14: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요즘 마음 비우고 있는 중입니다. 그저 픽션일뿐이다 이러고 세뇌시켜가면서요...ㅎ 그러고 보니까 색다른 재미도 생기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8 14: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즐길줄 아시는 군요.. 저는 이미 포기 했어용.. 그저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재미는 있거든요.. ㅋㅋ

        원작이 부실해서 그렇징..

    4. 역사맨 2009.07.28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궁금한게 또 있습니다
      만약 즉위때가 10대중반에서 20세정도라면
      김춘추와 문희를 엮어주는 사건에서
      나이가 너무 어리게 되지 않나여?

    5. ㅎㅎㅎ 2009.07.29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윤유선 님이세요.. 마야왕후역 맡으신분 ㅎㅎ 오타 .ㅎㅎ

    6. 지옥천사 2009.07.31 0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으로, 덕만의 결혼과 관련된 것인데요,

      선덕여왕 이후의 왕이 진덕여왕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진덕여왕의 아비가 국반갈문왕으로 되어있는데,

      미리 선덕여왕이 진덕여왕을 차기 왕으로 점찍어두고 있고,

      이후 이에 대한 정당성 확보차원으로 국반갈문왕을 남편으로 둔 게 아닐까 하네요..

      물론 선덕여왕이 석녀라는 건 저도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성적 욕구(?) 해결 차원에서는

      그 당시 아주 개방적인 성문화였을 거라는 전제하에, '궁녀' 급에 해당하는 남성이 없진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위키디피아에서 선덕여왕에 대한 남편에 대한 언급으로,

      "신라의 규례에 따라 3명의 남편을 두었다."라는 말이 있는데,

      제가 고대사에 대한 끈은 짧아서 신라의 규례까지는 알지 못하고, 이것의 진위 또한 잘 알지 못하지만,

      법칙으로 인해 3명의 남편을 두어야 했다면, 어차피 후사를 두지 못했던 선덕여왕의 당시 사정 상,

      후계자를 든든히 하기 위해서 작은아버지와 결혼할 수 밖에 없었다..라는 추측도 성립하지 않을까요?

    7. 지옥천사 2009.07.31 0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딴지 좀 걸어 볼까요..

      우선, 저 중국어 사전, '신장' 어쩌고 저쩌고 나오는 걸 보아하니 최신 중국어 사전 같은데요,

      무려 1000년보다도 전에 쓰인 단어를, 것도 여러 해석이 가능한 한자어를 현대적 기준으로 보신 건 좀 오류라 봅니다.

      한국어의 '영감'도 현재의 의미로 쓰이기에는 그리 오래된 역사도 아니고,

      섬나라의 '오마에'도 원래는 귀인을 지칭한 단어였지요..

      '고'자에 시어미가 붙어있는 건, 우리나라에 들어올 당시에는 '시어미'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요?

      '지(地)'가 현재는 '땅'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당시 고어인 '땅>따' 에서 따와

      아직까지도 '따 지'라고 하는 것처럼요..

    8. 2009.08.13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3 19: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봉황은 기존의 통설을 따른거지요.. 분석없이..

        덕만이 맏이로 나온건,, 재대로 읽지 않아서 그런것 같습니다. 그것도 통설..

        덕만이 천명의 동생으로 나온것은 화랑세기를 따른 것 같습니다..

    9. 좋은 시도입니다만 2009.08.17 05: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설인지 사실인지 신뢰하기 어려운 화랑세기를 제쳐두면, 덕만은 분명히 천명의 언니입니다. 김춘추가 602년생인데 천명이 아무리 어려도 585년 정도에는 태어났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632년에 등극한 덕만의 나이는? 성조황고가 전혀 어색하지 않죠. 아울러 고대 신라어의 '고'가 무엇인지 알려면 현대 중국어에서보다는 현대 한국어에서 '고'가 어떻게 쓰이는지 보면 될 일 아닌가요?

      그럴듯한 추측들이지만 결국 사상누각이 아닌가 합니다. 아울러 삼국사기, 유사의 원본을 보시고 쓰시는지는 알 수 없으나, 왕의 자식이 여럿 있을 때에 굳이 구별이 필요하지 않은 때가 아니면 서로 동복인지 이복인지 언급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랑세기는 기존의 기록과 상충하는 부분이 많은데, 예를 들어 '성골남진'도 있습니다. 주인장께서 여러가지 흥미로운 추측을 하셨지만, 이 모든 것이 현대 중국어의 한자 뜻 = 고대 신라어의 한자 뜻, 그리고 화랑세기=진짜, 삼국유사=믿기 어려움 이라는 것을 가정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화랑세기가 아직 '불명확하다'는 점을 확실히 전제해 두고 추론하면, 위의 일곱 까지 추론 중 어느 하나 남는 것이 없군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07: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화랑세기를 인용하지 않고 진행하고 있는뎅..

        황고는 황제의딸이란 말 밖에 안되요.. 아무리 찾아봐도,..

        왜 할머니라고 하지요.. 신라사회를 알면 님처럼 말은 전혀 하지 않을텐데.. 아쉽군요..

        다른글도 보는 센스를..

    10. 좋은 시도입니다만 2009.08.17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세기 자체는 인용하고 있지 않지만, 다른 몇몇 글들을 봐도 화랑세기를 칭찬하는 등 화랑세기는 이미 사실이라는 가정을 깔고 시작하고 있지요. 삼국사기, 삼국유사만 가지고는 쉰동님과 같은 주장을 할 여지가 도저히 없습니다. 다른 글에서는 조선왕조실록과 비교하면서 말씀하셨는데, 사실 썩 좋은 비교는 아닙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나온 신라 기사들과 비교를 하셨어야 합니다. 화랑세기가 진실이라는 '가정'이 증명되기 이전에 갓쉰동님의 주장은 모두 '가정'에 불과합니다.(신라사회를 알면... 이라고 하셨지만 화랑세기에 나온 부분들이 사실이 아니고, 미실이라는 인물도 지어낸 사람이라면, 쉰동님께서 알고계신 신라사회는 모 역사소설가가 지어낸 상상력의 산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쥬신이 어쩌구 하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쥬신의 출처는 모 만화가의 책일 뿐, 어떠한 사료적인 고증도 없습니다.

      갓쉰동님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상관 없지만, 지금 여기 나온 것들이 '사실'인 것처럼 묘사하시는 것은 환단고기 신봉자들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역사에 대한 혼란을 가져오지 않을지 약간 걱정이 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1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떤이는 화랑세기를 왜 인정하지 않느냐고 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님은 왜 화랑세기를 인정하냐고 하는군요..
        저 굉장히 화랑세기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도대체 어떤의도로 썼길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그리도 절묘하게 사이를 오가는지..

        그리고 삼국사기의 기록을 검토해 본적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님은 번역본 말고 원전을 본적이라도 있나요?

        여태까지 미실을 실존인물이라고 확정해서 한마디도 한적이 없는데.. 오히려 화랑세기 너무 정교해서 의심스럽다는 말은 수없이 했습니다만,,

        삼국사기의 기록은 삼국사기와 비교해야 한다고 했는데 절대적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인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님은 글을 님이 보고 싶은 것만 필터링 해서보는 습관이 있는것 같군요..

        아참, 그리고 삼국시대는 똑같은 시대라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도 서로 다른 행태를 보여주는 것이 상례예요..님이 저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 패턴을 보이고, 서로다른 상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조선은 비교하면 안된다? 삼국시대와 비교해라? 도대체 삼국시대랑 비교를 그렇게 했는데도 왜? 조선과 비교하냐?니 대략 난감하네요..

        제가 삼국시대 자료를 가지고 기존의 설을 비판했으니 님이 삼국시대의 자료를 근거로 아님을 증명해주시는게 먼저 아닐까요? 그래야 제가 반박을 하지요?
        논쟁이나 토론은 이런 방식으로 하는 겁니다.

        님처럼 뜬구름 잡는게 아니고..

    11.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12: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고'가 현대에만 성인여인들에 쓰인 말이다 이말은 님이 증명하시면 되요.. 제가 할일이 아니고.. 뜸금없이 용례도 밝히지 않고 현대에만 성인여성에 쓰인말이고 과거에는 다르게 썼다니.. 님은 이미, '고'의 용법에 저의 주장에 동의를 하는 겁니다..

      또한, 삼국사기 어디를 살펴봐도 마야가 진평의 아내라는 기록은 있지만, 천명의 어머니라는 기록은 없어요.. 해당 기록을 가져와서 반박을 하시면 됩니다.

    12.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1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은 <성조황고>를 어떻게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님의 해석좀 알려주세요..

    13. 난독증 2009.08.17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 대체 어디에 덕만이 둘째라고 나왔다는거야 ? ㅎㅎ 없는 기록 지어내기 쩌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19: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천명이 어디에 둘째라고 나오던가요?
        덕만은 진평왕의 맏이며, 마야의 딸이라는 말은 있는데.

        이게 어찌 천명의 어미가 마야가 된다는 뜻이되지요..

        신라시대가 무슨 1부1처제 인줄 아시나? 신라왕이 1부1처를 했다는 증거좀 내 놓아 보시길 바랍니다.

    14. 난독증 2009.08.17 1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도 않은 1부1처 지어내질 않나 ㅋ 삼국사기 다른 기록 뒤져봐요 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명확하게 계보를 정리 했나 안했나

    15. 난독증 2009.08.17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handic.daum.net/dicha/view_detail.do?q=12-01-24-02

      어이없는 중국어사전보다는 한자 옥편이 훨 나을듯. 어떻게든 어거지로 붙이려고 하지 마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20: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시어머니
        ㉡고모(姑母)
        ㉢계집, 여자(女子), 부녀(婦女)의 통칭(通稱)

        계집,여자, 부녀의 통칭.. 됐습니까?

        님이 인용한 자전에도 명백히 나와 있잖아요... 안봐서 그럴까봐 그러십니까?

        증거를 제시하라니까 그러시넹.. 천명이 마야의 소생이다를..

        천명이 마야의 소생이며 덕만보다 언니라고 언급한건 현존하는 화랑세기 밖에 없어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천명의 어머니를 언급조차 않하고있다구요..

    16. 난독증 2009.08.17 2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쉰동님은 어떻게 '고'에서 '어린 여자'를 찾아내셨는지 궁금하네요. 천명이 마야의 소생이라고 안나와 있다고 하는데 천명이 덕만보다 언니라는 말 역시 없군요^^

      皇姑(황고) ①'돌아간 시어머니'의 높임말 ②아버지의 고모(姑母).

      이걸 보면 김춘추의 후손들의 고모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 것 같은데 말이죠

      일단 기존 국사학계가 선덕여왕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부터 보고 오셔야 할듯?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20: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皇姑(황고) ①'돌아간 시어머니'의 높임말 ②아버지의 고모(姑母). 곧 할아버지의 누이
        님이 제시한 겁니다. 이것도 이미 봤어요.. 님처럼 안보고 한게 안니고..

        님의 해석이면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되요..

        그래서 본문에 이야기 놓았잖습니까?

        님처럼 말하는 분이 계실까봐.. 덕만이 진평의시어미뻘이냐고..

        그냥 성숙한 여인, 성인 여인,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라고.. 황고는 그냥 여황..요말입니다. 다른 용법이 없어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20: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즉위년에 존호를 성조황고를 올리면서 춘추의 고모라고 하는 있겠습니까?

        기존 다수설을 깨자고 글을 쓰는 거지.. 기존 학설을 따를 바에는 왜글을 쓰겠습니까?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2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재의 기준으로 하면 어린여자이고, 당대의 기준으로 하면 성인여성이라고 했을텐데요.. 13세 시집가고, 유신의 처인 지조도 15~6세정도인뎅..

        여성인 경우.. 생리하면 성인식을 치르는 것은 아시지요..

        설마 현재의 기준으로 신라를 보고 있는겁니까?

    17. 나그네 2009.10.12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글입니다.
      그런데 이 글 퍼가도 되나요?

    18. 레아 2009.12.07 17: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은 공주시절에 세번이나 결혼했지만 천성적으로 자식을 낳지 못하는 몸이었죠. 게다 남지현의 시절 등극한것은 덕만이 아닌 진평왕이죠.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제위를 했으니까요.

    19. 레아 2009.12.07 17: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을제로 하여금 국사를 총괄하게 하였다는 것은 선덕여왕의 나이가 젊지않다는 것을 의미하죠. 만약에 선덕여왕이 젊은 나이였다면 그건 진평왕이 늦게 마야왕후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다는 이야기인데 사실 진평왕이 늦은 나이에 결혼한 사람은 승만왕후이죠. 그리고 선덕여왕이 재우 십년에 죽었는데 그 젊은 나이에 별다른 이유없이 죽었다는게 말도 안되고요.

    20. Favicon of https://salm.pe.kr BlogIcon koc/SALM 2010.01.13 09: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 내용이 맞다면 황고 칭호를 젊어서 받은 여자는 "선덕왕"이 유일하다는 게 됩니다.
      비슷한 시기의 측천무후가 "고" 칭호를 자신에 붙인 때가 40대 말이었죠. 자칭인데도 그랬는데, 타칭을 절은 사람에게 붙여준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21.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글쓴이는 그 동안 다음 아래와 같은 선덕여왕의 공주시절에 있었던 기록을 하나 하나 추척해 들어 갔으며,
    선덕왕의 <지기3사>중 첫번째 '사건인 모란씨 서되'는 진평왕의 노년인 627년 진평왕 49년에 있었던 일이라고, 그 동안 아무도 알지 못했던, 모란이 신라에 수입된 년도와 년을 특정하여 기사로 송고하였다.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또한, <지기삼사>에 얽킨 영묘사 옥문지사건과 영묘사의 창건과정을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에서 소상히 이야기 했으며, 영묘사가 만들어 지는 과정에 영묘사에 화재사건이 발생하여, 삼국사기가 선덕왕 3년 635년에 영묘사가 완성되었다는 기사와 <삼국유사>의 3년 635년에 영묘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이중적인 기록이 나온 배경에는 <지귀요탑>과 <혜공의 이적>과도 관련이 있다고 했다. 영묘사가 1차 완성 시기는 선덕왕 3년이며, 이즈음 일어난 화재사건을 <지귀요탑>이 원인되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에서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선덕여왕이 김춘추와 문희를 연결시켜 준것이 아니라, 덕만이 공주시절 김춘추와 문희의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하였으며, <김유신의 불쑈>을 한 시기는 김춘추/문희 사이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의 출생일을 근거로 628년 이전에 벌어진 사건임도 증명하였다.

    그럼 이들 사건들을 연표로 작성해 보자.
     
    627년 11월 모란씨가 당나라로 부터 들어왔다.
    628년 이전 김춘추와 문희를 엮어주어었다.
    628~635년 사이 지귀심화(지귀요탑)에 의해 영묘사에 화재가 발생하여 혜공이 영묘사 사찰 일부를 보호하고, 진화되었다. 


     모란씨 사건과 <지귀심화> 사건들을 살펴 보면, 나이가 어리지 않으면 도저히 일어 날 수 없는 상황이 전개 된다. 대표적으로 <지귀심화>같은 경우 젊은 남자 지귀가 일반적으로 그동안 알고 있는 선덕왕 원년 632년에 45살 이상이 된 여자를 보고, <상사병>에 걸려 마음에 불이 일어나 자연발화(SHC) 상태로 까지 발전할 수 있는가 이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더 나아가 삼국유사에 의하면 영묘사에 화재가 발생한 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는 635년 영묘사가 완성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삼국사기를 따른다면 영묘사 화재사건은 635년 이후에 발생한 사건이 된다. 이때 덕만의 나이는 635년 선덕왕 4년으로 48세를 넘어야만 한다. 이는 더더욱 지귀의 화재사건이 성립될 수 없다. 물론, 요즘처럼 나이가 많지만, 젊음을 유지하는 연예인들이 있다. 이들을 보면 팔팔한 청춘에 불을 댕길만한 미모를 지니기도 했다.

    불세출의 잉그리트 버그만이나, 엘리자베스테일러 등은 나이가 일정하게 먹고 나서도 황홀할 정도의 미모를 자랑했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경우 나이를 먹고, 젊은날의 모습을 깡그리 없애 버렸지만 말이다. 이처럼 나이를 먹고 미모를 유지한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어기는 것이다. 요즘처럼 성형기술이 뛰어나 성형을 하거나 보톡스를 맞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래도 달리는 세월을 잡을 수 없는게 자연의 섭리이다.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지껏 덕만이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고, 인정하는 이유는 다음 3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삼국사기의 선덕왕 원년 즉위할때의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다.
    둘째는 신하들이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셋째는 동생이라고 추측되는 천명이 춘추를  603년에 낳았다.

    핵심적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라는 것이다. 만약, 천명이 덕만의 동생이 아니고, 언니라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할머니(姑) 덕만이 아닌, 시어미(姑) 정도의 나이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증거를 잡는 과정이 지귀, 모란씨, 영묘사 건축중에 벌어진 화재 사건이다.

    또하나는 천명이 덕만의 언니인지 동생인지 상관없이 왕위를 잇지 못한 이유중에 천명이 진평왕의 정비인 마야부인의 소생이 아니라면 어찌될까? 

      의심스런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다름이 아니라 김춘추가 왕이 될때 그의 가계 내력을 기록한 것이다.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 삼국사기 신라 춘추왕 원년
    .
    김춘추의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이라고 했다.

     

    진평 계보도

    우리는 덕만이 진평왕과 마야부인(복승의딸) 사이에 태어났고, 장녀라는 기록을 읽었다. 춘추의 기록을 살피고 우리는 감각적으로, 또는 단순히 천명과 덕만은 형제이겠거니 한다. 그러나 같은 어머니(동복)을 두었을까? 하는 의심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진평왕은 아들이 없다. 그러니 여러 부인들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설령 아들이 있다고 해도 후비를 여럿 두는 것은 왕실의 기본 상식에 속한다. 진평 또한 손씨인 승만을 후비로 두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천명이나 덕만을 마야부인의 소생으로 알고 있을까? 더불어 삼국유사에 나온 선화공주 또한 마야의 소생으로 만들었을까? 이 함정에서 벗어난다면, 어찌 될까?


    진평은 천명의 어머니를 통해서 천명을 낳고, 마야부인을 통해서 덕만을 낳았다. 진평은 적통을 이을 후손을 보기 위해서 여러 부인들을 두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가장 일반적인 왕실의 살아가는 방법이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정식 왕후의 소생이 적통을 잇는다. 그리고 그 왕후와의 사이에 난 자식에게 대권이 넘어간다. 왕후가 아닌 후비사이에 태어난 왕자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왕후 사이에 태어난 적통왕자들이 없을 경우에 왕위계승권이 주어진다.

    그러니 천명과 덕만은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열려 있다. 오히려 이복자매간일 가능성이 더 많다. 또한, 천명이 덕만보다 손위언니에 해당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기록 어디를 봐도 천명의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단지,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 으로만 나온다. 

     
    진평왕(眞平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백정(白淨)이고 진흥왕의 태자 동륜(銅輪)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 만호부인(萬呼夫人)으로 갈문왕 입종(立宗)의 딸이다. 왕비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으로 갈문왕 복승(福勝)의 딸이다. 왕은 태어날 때부터 기이한 용모였고 신체가 장대하고 뜻이 깊고 굳세었으며, 지혜가 밝아 사리에 통달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진평왕

    만약, 마야 또한, 왕후가 아닌 여러 후비 중의 일인 부인일 경우를 설정할 수 있으나, 마야의 아버지는 복승갈문왕이라고 했다.

    <갈문왕>은 왕의 형제나, 왕후의 아버지나 미추나 지증이나 진흥이나 진평이나 춘추 같이 왕의 아들(왕자)로 태어나지 않고 왕이 되었을 때 자신의 아버지를 갈문왕으로 봉한다.

    그러니 마야는 정식왕후에 등극한 것으로 봐야 한다. 정식 왕후의 후생인 덕만은 장녀일까? 아닐까? 삼국사기나 일반적인 왕실의 왕위계승과 순위를 정할때 장녀는 공식(정식) 왕후사이에 태어난 사람을 일컸는 경우가 많다. 천명의 어미는 정식왕후 였지만 후에 일찍 죽고 복승의 딸인 마야가 정식왕후가 되었다면, 왕위 승계서열은 현재의 왕후소생이 된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진평왕에게는 정비인 마야부인과 후비인 손씨 승만부인이 있었다. 승만 손씨에는 후사가 없었다고 하니, 천명은 승만의 소생은 아닐것이고, 또 다른 후비의 소생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진평이 죽은 후에 천명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용수.용춘이 생존하고 있었다. 충분히 선대의 선례에 따라서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용수.용춘은 왕위계승권에 없었다. 그러니 천명이 정비인 마야의 후손이 아님이 증명된다.

    신라사회는 대체적으로 사위가 왕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덕만의 경우는 사위가 왕이 되지 않았다. 이는 덕만에게는 남편이 없었거나, 싱글인 상태였거나, 당시 남편이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덕만은 632년 왕위를 이은 634년에 비로서 '음갈문왕'과 결혼을 한다.

    글쓴이는 합리적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사실을 바탕으로 천명과 덕만은 배다른 이복 자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춘추의 어미 천명을 기준으로 동복 자매라는 증거가 없는한 덕만의 나이를 추론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왕실의 상식에 벗어 난다.

    이제 덕만이 진평의 뒤를 이어 왕위를 승계할때 나이는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덕만의 기록들을 지기삼사 중 첫번째인 <모란씨>와 <춘추, 문희 중매>, <지귀요탑>,<영묘사화재> 사건 등을 종합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나이 많은 여왕일 하등의 이유가 없어진다. 

    <성조황고>의 <황고>를 들어서 덕만이 나이가 많지 않았을까 한다면? 현재의 기준으로 한다면 "맞습니다"라고 해줄만 하다. 하지만, 신라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덕만은 충분히 <황고>소리를 듣고도 남을 나이에 왕위를 계승했다.

    우리는 자신보다 나이가 조금 어린 사람에게 농담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내가 만약, 첫사랑에 실패만 하지 않았어도 너만한 아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당시 신라 사회는 첫사랑에 실패할때 결혼하고,20대에는 나이에 자식을 한둘과 30대에는 손자.손녀를 두는게 상식에 속할때이니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초경이 지나면 성인이 되어 "결혼을 시켜야 겠다"하고, 불알에 털나면 "장가가도 되겠네"하는 상식을 지니고 있는 시대와 30대가 넘어도 결혼은 무슨 소리하며,  오히려 노처녀.노총각이라고 놀리면, 시대에 덜떨어진 사람 취급 받는 세대와는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우리 어머니 할머니 세대만으로도 10대후반에 결혼하고, 20대 초반.중반에 결혼하면, 만혼이며 노처녀 소리를 들었다. 우리 어머니도 26살 늙은 아버지와  20살에 결혼하셨다. 

    이번에도 글이 늘어지고 길어졌다. 이번 편으로 덕만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늙은 할매로 권력을 잡지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결정타가 한 두편이 더 남아 있다.

    다음편 예고는 삼국유사 왕력편에 기록된 덕만의 남편인 '음'갈문왕에 관한 포스팅을 할 것이다.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우리가 알고 있는 덕만의 나이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을 할 것이다.

    또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와는 다르게 미실의 충복 칠숙과 석품이 왕위계승전에 뛰어든 이유를 설명할 것이다. 사실 미실이 죽은 606년에서 미실의 추종자로 설정된 칠숙이 반란을 일으키는 631년과는 너무나 떨어져 있지 않는가? 또하나는 칠숙과 석품의 반란을 진압한 세력이 진평왕으로 나오지만 실제는 덕만이 진압의 중추였을지 모른다는 것을 이야기하려 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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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hangadak.com BlogIcon 한가닥 2009.07.25 0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상에서는 쌍둥이 자매로 나오던데 ..드라마는 약간의 비현실도 존재하니까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5 09: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비현실성..

        일부러 화랑세기는 인용하지 않았음..

        화랑세기 읽으면 읽을수록 대단한 책 같아요..ㅋㅋ

        천명이 언니다.. 나이차이는나오지 않았지만..

        박창화가 지었다면 대단한 천재같아요..

    2.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5 09: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인 관점...
      보면 볼수록 흥미진진합니다 ㅎㅎㅎ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0: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제가 봐도 흥미진진 하긴합니다..

        IT세상이 된후.. 더 쉽게 연구를할수 있어요..

        검색이 되니..

        예전에는 어떻게 연구를 했을까 생각하니..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심이 우러나와요..

        그래서 단편적인 것도 있겠고 오류가 있을 확율이 있겠지만..

    3. 2009.07.25 1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심전심이 맞을것 같음..

        그래서 베스트 선정은 전적으로 다음측에서 해야 한다고 봐요.. 열린편집자 제도 폐지하고..

        이시간에 올리면 조회수가 안나와요.. 몇번 실험을 해봤지만, 이시간에 다음 편집자가 저랑 코드가 맞지 않는 모양입니다.. ㅠ.ㅠ.

        대부분 아침에 올린글이 저녁이나 되어서 베스트 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ㅠ.ㅠ.

        벌써 3건정도..

        저녁타임에 저랑 코드가 맞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음..

        3교대라면.. 어쩌면.. 잘봐준 분이 베스트관리자 일수도..

      •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5 12: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는 말씀 같아요...
        와인이야기...
        오전 10시에서 12사이 올리면
        냉큼 베스트 오르는데,
        그 이외시간 올리면 잘 안오르다
        다음날 보면 올라가 잇더군요 ㅎㅎㅎ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7: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왜 다음 편집자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신세가 되었는지.. 난감..

        알아서 기어야 하낭..

        그래서 제가.. 개정된 미디어업 통과를 반대합니다..

        저 같은 경우도 밥과 연관이 없는데도 눈치를 살살보는 것 같은데..

        밥이 걸려있는 기자들은 어떻겠어요.. 현재도 충분히 많이 눈치를 보고 있는데.. 광고주를..

    4. 2009.07.25 1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Favicon of http://blog.daum.net/wlalsdl1 BlogIcon 아르테미스 2009.07.25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그냥 재밌게 보고 있어요~ㅎㅎ

      갓쉰동님~ 뵐수록 대단한데요~
      어찌 이 어려운 내용들을 ^^;;

      즐겁게 주말 보내세요~

    6. 역사맨 2009.07.28 0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너무 잘 읽었습니다.
      이복동생일 가능성도 있군여
      제가 천명공주를 백과사전에 검색했었는데
      이렇게 나오더군여
      (신라 진평왕과 마야왕후 김씨의 딸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그녀가 차녀라고 하고 《화랑세기》에는 그녀가 장녀라고 하여 어느 쪽이 맞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선덕여왕과 친자매간임은 분명하다. 그녀 역시 진평왕의 왕위를 계승할 권리가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자매인 덕만이 총명했던 탓에 왕위를 양보해야만 했다)

      그리고 또 여기에서는
      <화랑세기>의 13세(世) 용춘공 기사에서는 선덕공주(덕만공주) 위에 천명공주가 있었다고 알려주고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적자가 없는 진평왕이 처음에는 금륜왕(진지왕)의 아들인 용수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그를 천명공주와 결혼시켰지만, 나중에는 선덕공주가 왕위를 이를 만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판단되자 천명공주에게 지위를 양보하도록 권유했다고 한다.
      출처 : 오마이뉴스

      위에 두글을 봤을때 화랑세기에 천명공주와 용수에게도
      계승권이 있었다는거 아닌가여?
      그렇다면 이복자매일 가능성도 줄어들게 되고?

    7. Favicon of http://fiat.gruposinal.com.br/concessionaria-fiat BlogIcon concessionaria fiat 2012.04.26 05: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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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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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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