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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음청

뿌리깊은 나무, 한글 피를 먹고 창제? 사실은 요순 뛰어넘은 성군 칭송 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뿌리깊은 나무는 그 동안의 사극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시대고증을 하는 것으로서도 대단한 사극이고 명품사극의 반열에 올라도 될 만한 드라마였다. 뿌리깊은 나무 제작자 장태유는 를 시대상을 재연하는 을 표방하고 있었고 초기에는 일정하게 이를 완성하는 듯 하였다. 하지만, 후반에 갈수록 장태유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어린 세종 이도가 왕이 되고 나이가 드는 장면 하나에도 심열을 기울렸던 장태유에게는 나이가 들지 않는 한 사람이 있다. 소이역을 맡은 신세경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해례를 만들었고, 세종 이도는 이를 반포하게 한다. 그런데 소이는 세종 이도가 즉위할 때 나이가 여닐곱 정도의 아이였고, 세종 이도가 훈민정음을 반포할 때인 세종 28년 1446.. 더보기
뿌리깊은 나무, 집현전 철폐와 한글 창제 극심한 반대했을까? 사실은 환영분위기 에서 세종 이도의 비밀 조직인 천지회에서 언문(소리글) 훈민정음이 창제 된다. 밀본은 세종 이도가 하려는 일이 글을 만드는 일인지를 알게 되지만, 글이 어떠한 형식인지 모른다. 하지만, 글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밀본과 유림은 글을 만들어 스스로 이적이 되려하느냐고 반발한다. 유림의 영수인 혜강을 필두로 성균관 집현전, 사관들 까지 들고 일어난다. 문제는 세종 이도가 만들려는 글이 얼마나 좋은지, 나쁜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강채윤은 훈민정음 28자로 반나절만에 글을 읽고 쓴다. 북촌의 어리숙한 밀본의 자객은 자신의 반나절 만에 자신의 이름를 쓰고, 어린 아이는 밀본 정기준의 말을 바로 듣고 글로 써내려 간다. 밀본 정기준은 글은 지배자와 지배하지 않는자를 가르는 기준인데 모든 백성들이 글을 알게 된.. 더보기
뿌리깊은나무, 군나미욕과 곤구망기 성삼문,박팽년 한글창제 무관 증명 에서 집현전 직제학 이자 밀본인 심종수는 세종 이도 성리학을 버리고 유림을 압살하려 한다는 증거를 세법과 불경과 내불당 사건을 제시한다. 그런데 세종이 하려던 세법은 공법으로 기존의 토지세보다 부담을 적게 하는 정책이였고, 가진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가는 제도였다. 그래서 1430년 당시 약 18만명의 여론조사를 하였지만, 전라. 경상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특히 함길도, 평안도에서는 압도적인 반대에 직면하고, 경기, 충청 지역은 찬반이 엇비슷했다. 전라 경상이 찬성이 많은 이유는 토질이 좋고, 물과 환경이 좋아서 소출이 많았는데 이전 세금보다 1/3이나 줄어든 세금(감세)에 환영하지 않으며 이상하지 않겠는가? 사대부 양반. 유림의 기반은 토지에 있었고, 유림의 다수는 경상. 전라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 더보기
공주의 남자, 훈민정음(한글)창제 성삼문 요동밀사는 세종 모독인 이유 - 한글날 제자리찾기 에서 성삼문, 신숙주, 이개 등 한글창제에 관여한 인물이라고 알려진 사육신이 나온다. 10월 9일이 한글날이기는 한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에 대한 상식이 얼마나 잘못된것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10월 9일이 훈민정음(한글)을 만든 565회 한글날이라고 한다. 이부터 잘못된 상식중에 하나다. 훈민정음(한글)이 만들어진 것과 반포일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더군다나 훈민정음 창제에 성삼문 신숙주는 훈민정음 창제에 커다란 공이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성상문과 신숙주, 이개 등 사육신을 포함한 집현전은 한글창제에 전혀 관여한적이 없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이글을 끝까지 읽고 나면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잘못된 암기식 역사교육을 받았는지 알게될 것이다. 는 세종 이도가 훈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