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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
뿌리깊은 나무>에서 성삼문과 박팽년이 세종의 비밀세력 천지계의 일원으로 나온다.

 

천지계는 문신을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고, <뿌리깊은 나무>에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의 원리를 사용하는 듯하다.

 

하지만, 좀더 깊숙히 들여다 보면 천지계 문신은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다. <뿌리깊은 나무>는 언문(훈민정음) 창제를 다룬 미스터리 물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언문의 초성만을 딴 + 의 합자라야 합리적이고 개연성이 있다.

 

글쓴이(갓쉰동)이 훈민정음이나 한글이라는 말보다 언문을 사용하니 어떤 이들은 어째서 한글을 비하하는 말을 쓰느냐고 타박하고. 조선왕조 실록에 있는 단어 언문도 세종이 직접쓴 것이 아니고 사후 후대에 유학자가 세종실록을 만들었으니 언문은 비하한 말이라고 한다.

 

사실, 글쓴이가 꾸준히 일부러 언문이라고 쓰는 이유는 잘못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언문을 제자리 찾아주기 위한 방편이다.

그래서 훈민정음이나 한글로 써야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일부러
언문이라고 자주 언급을 하는 이유다.

 

 

 

일반적으로 언문(諺文)은 훈민정음을 비하하기 위해서 한문을 숭상한 양반 유림들이 만든 단어라고 생각하고 있고, 백과사전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올라올 만큼 그 동안 홀대 된 단어이다.



하지만, 언문은 훈민정음과 같이 세종대왕이 처음 만든 단어이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 세종 25년, 1443년 12월 30일

 

한글을 언급할 때 세종의 보위세력인 집현전에서도 반대했으니 세종이 은밀이 한글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이는 위대한 글자인 훈민정음이 개인 세종의 저작물은 될 수 없고 도움을 받았을 것이니 당연히 은밀히 말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더군다나 집현전의 대빵인 부제학 최만리와 2인자인 직제학까지 반대했으니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어쨌든, 언문
이란 단어는 세종대왕이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들을 하고 훈민정음이나 한글이라고 말하라고 한다.

 

문제는 최만리가 언문이 왜 필요한가? 우리 조선은 기자로부터 중국의 문자를 사용했는데 어찌하여 언문을 만드냐고 타박하는 상소를 하고 있고, 세종 이도 또 언문꾸준히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임금이 말하기를,

“전번에 김문(金汶)이 아뢰기를, 언문을 제작함에 불가할 것은 없습니다.’ 하였는데, 지금은 도리어 불가하다 하고, 정창손(鄭昌孫)은 말하기를,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반포한 후에 충신·효자·열녀의 무리가 나옴을 볼 수 없는 것은, 사람이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자질(資質) 여하(如何)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꼭 언문으로 번역한 후에야 사람이 모두 본받을 것입니까.’ 하였으니, 이따위 말이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용속(庸俗)한 선비이다.

하였다. 먼젓번에 임금이 정창손에게 하교하기를,

“내가 만일 언문으로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번역하여 민간에 반포하면 어리석은 남녀가 모두 쉽게 깨달아서 충신·효자·열녀가 반드시 무리로 나올 것이다.

하였는데, 창손이 이 말로 계달한 때문에 이제 이러한 하교가 있은 것이었다.

- 세종 103, 26(1444 갑자 / 명 정통(正統) 9) 2 20(경자)

 

 

사실 언문(諺文)에서 언()의 한자발음은 이라기 보다는 에 가까운 yàn 발음이다.

 

후에 언문에서 언()자가 상놈들이 배운다는 의미로 쓰이면서 상말언()이 된 것이다. 처음 만들 때와 다른 의미로 변질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세종대왕은 언문 28자를 만들고 훈민정음이라고 했으며, 훈민정음(언문)을 창제하고 반포한 후 정음청과 언문청을 만든다. 언문청을 만든 세종대왕이 그렇다면 훈민정음을 비하하기 위해서 언문청까지 만들었겠는가?

 

드디어 언문청(諺文廳)을 설치하여 사적(事迹)을 상고해서 용비시(龍飛詩)를 첨입(添入)하게 하니,

언문청(諺文廳)은 얕아서 드러나게 되고 외인(外人)의 출입이 무상(無常)하니, 신 등은 매우 옳지 못하였다고 여깁니다.

세종 114, 28(1446 병인 / 명 정통(正統) 11) 11 8(임신)

 

()의 첫 번째 훈()이 언문을 뜻한다는 언문()이고, 두 번째가 상말()이다. 안으로 발음할 때는  자랑하다()이다. 정음(正音)이라 하고 상말이라고 할 만큼 세종대왕이 사이코는 아닐 것이다.

한마디로 세종대왕은 바른소리 영창피아노를 연상하듯이 언문을
바른소리 정음(正音)라고 하였고, 이를 자랑할만한 문자라는 뜻으로 안문(諺文)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오히려 언문(諺文)이 아닌 안문(諺文)이라고 해야 세종대왕 때의 발음이 아닐까?

 

중국 한자사전에는 언()은 어()와 같은 뜻으로 영어로 saying으로 번역된다. 이는 단순히 말()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언문(諺文)말글 소리 글자이란 뜻이다.

 

사실은 언문이란 소리글자라는 뜻 이상도 이하도 없다. 왜냐하면 세종대왕이 친히(어제(御製)) 언문28자를 만드니 이를 훈민정음이라 했다.라는 것이 골자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언문이 상말이라면 해석이 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나 많이 있다.

 

 상말 28자를 만들었는데 초성, 중성, 종성으로 이뤄지고 문자에 관한 것과 이어(조선말, 일본말, 몽골말, 여진말 등)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지만,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라고 해석이 되겠는가? 초성, 중성, 종성이라 하면 말의 기본구조를 뜻하는데 말이다. 그러니 언문이란 소리글자 28자를 만드니 초성. 중성 .종성으로 이뤄진 글이다. 라고 해석 해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소리문자를 뜻하는 어문(語文)이나 언문(言文)이라 하지 않고 언문(諺文)이라고 했을까?


이달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이루어졌다. 어제(御製),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漢字)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우매한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28()를 만들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쉬 익히어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할 뿐이다.

 

- 세종 113, 28(1446 병인 / 명 정통(正統) 11) 9 29(갑오)

 

 

훈민정음 창제(완성)하는 날의 정인지 서문에 보면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로 시작하고 있다.


이때 나라말의 원문은 國之語音(국지어음)”이다. 훈민정음(한글)이 단순한 말글(소리글)이라면 어문(語文)이나 언문(言文) 28자를 만들었다고 하지 않고 왜 언문/안문(諺文) 28자를 만들었다고 했을까

 

 


재미있게도 ()자를 파자하면 ()+()으로 이뤄진 합자이다. ()은 선비, 훌륭한 사람, 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언()은 선비나 훌륭한 사람대인의 말이란 뜻일 뿐만 아니라
선비나 대인이나 훌륭한 사람이 배워야 하는 말글(소리글)이다. 란 뜻이 숨어있는 것이지만, 한문에 능통한 당시 언문이 뜻하는 바를 당시 임금도 알고 집현전 학사도 알고 유림들도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사실
당시 언문이 발표되고 가장 많은 이득을 본 집단은 다름 아닌 성리학 유림들이었다. 왜냐 하면 당시 한자음은 지방마다 달랐고, 선생마다 발음이 달랐다. 이를 통일시킨 것이 언문(훈민정음)이었다.


한자음 통일작업에 동원 된사람이 신숙주와 성삼문, 박팽년, 이개, 최항 등 이었다.  이들은 단지 漢韓 한자사전을 만드는 작업에 동원되었을 뿐이다. 영한사전을 만들면 세종대왕과 함께 한글 만든것이 되나?
 


아직도 언문이 우리말을 낮게 본데서 비롯되었고, 세종과 훈민정음을 제작한 학자를 제외하고 모두 언문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생각 하는가?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한 글자를 만들고 얼마나 이름을 고심해서 만들었을까? 고심해서 만든 언문/안문(諺文)을 후대에
상말로 비하하는 용도로 사용했다고 해서 현대를 사는 우리들까지 기존의 속되게 비하한 말에 따라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세종대왕이 지하에서 벌떡 일어나지 않았을까? 이제 언문을 제자리 찾아주어야 할 때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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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oteltatilturizm.com BlogIcon otel 2011.12.14 05: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ㅣ는 침(侵)자의 중성과 같고, ㅗ는 홍(洪)자의 중성과 같고, ㅏ는 담(覃)자의 중성과 같고 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

  3. Favicon of http://koltuktemizleme.com BlogIcon koltuk yıkama 2011.12.14 1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성제자원리가 천지인(삼제)가 맞다는 것은 고등학교 1학년도 알고 있습니다. 현학적인 태도는 버리시길...

  4. Favicon of http://www.caris.com.tr BlogIcon sandalye 2011.12.31 1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는 나오지 않을 만큼 개연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제작자 멋대로 고증없이 극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하겠다.

  5. Favicon of http://campusvt.com BlogIcon 원숭이 2012.01.01 0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6. Favicon of http://greenstarenergysaver.com BlogIcon 인형 2012.01.04 0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

  7. Favicon of http://getreadylosangeles.com BlogIcon 2012.01.05 0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는말이 고와야 오는말이 곱다

  8. Favicon of http://greenstarenergysaver.com BlogIcon 고명진 2012.01.07 0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큰 최고야, 당신은 날 계몽있다

  9. Favicon of http://funtimes.windmills-travel.com BlogIcon 애비 게일 2012.04.03 1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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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희는 선거본부 차원에서 개입한 것이 아니고 보좌관 개인이 한 것으로 치부하였지만, 조 보좌


<공주의 남자>에서 성삼문, 신숙주, 이개 등 한글창제에 관여한 인물이라고 알려진 사육신이 나온다.
 
10월 9일이 한글날이기는 한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에 대한 상식이 얼마나 잘못된것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10월 9일이 훈민정음(한글)을 만든 565회 한글날이라고 한다. 이부터 잘못된 상식중에 하나다.

훈민정음(한글)이 만들어진 것과 반포일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더군다나 훈민정음 창제에 성삼문 신숙주는 훈민정음 창제에 커다란 공이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성상문과 신숙주, 이개 등 사육신을 포함한 집현전은 한글창제에 전혀 관여한적이 없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이글을 끝까지 읽고 나면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잘못된 암기식 역사교육을 받았는지 알게될 것이다.
 

<뿌리깊은 나무: 뿌리>는 세종 이도가 훈민정음을 만들게 되는 계기를 장인 심온의 죽음으로부터 찾고 있다.


심온은 사은사로 명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심온과 관련된 자들의 문제로 심온 또한 자리를 보전할 수가 없었다.


요동에서 돌아오는 심온에게 서울의 사정을 알리려는 자가 있었는데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심온의 노비 어리숙한 석삼으로 그렸다.


석삼이 어리석어서 심온에게 정확히 말로써 밝히지 못하고 또한, 글로써 심온에게 전하지 않아서 심온이 결국에는 서울로 돌아왔지만, 유배를 떠나고 심온이 자결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뿌리 깊은 나무는 어리석은 백성이 쉽게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글이 있었다면 심온도 죽지를 않았을 것이고 석삼이도 죽지 않았을 거니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자를 만들어 자신이 뜻한바를 글로써 표현한다면 억울함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결심을 하는 변곡점으로 삼은 것이다.




이는 훈민정음 반포 기념 정인지의 서문에도 명확히 나오고 있다.


우리동방의 예악 문물(禮樂文物)이 중국에 견주되었으나 다만 방언(方言)과 이어(俚語)만이 같지 않으므로, 글을 배우는 사람은 그 지취(旨趣)의 이해하기 어려움을 근심하고,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사람은 그 곡절(曲折)의 통하기 어려움을 괴로워하였다. 옛날에 신라의 설총(薛聰)이 처음으로 이두(吏讀)를 만들어 관부(官府)와 민간에서 지금까지 이를 행하고 있지마는, 그러나 모두 글자를 빌려서 쓰기 때문에 혹은 간삽(艱澁)하고 혹은 질색(窒塞)하여, 다만 비루하여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사이에서도 그 만분의 일도 통할 수가 없었다.

- 세종 28년, 1446년 9월 29일(음)  훈민정음 반포


 그런데 왜 세종은 훈민정음(한글)을 비밀스럽게 만들었을까? 당시의 시대상황을 알게 된다면 세종 이도가 비밀프로젝트로 훈민정음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유학자의 다수는 한자를 제외한 문자는 오랑캐들이나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조선이 소중화인 것은 중국과 같은 문자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다. 왜 스스로 문자를 만들어 오랑캐가 되어야 하느냐고 하던 사람들이 당시의 사림파 유학자의 대다수였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반포하고 <언문청>,<정음청>을 만들어서 수많은 저술활동을 한다.

세종은 수양대군(세조)에게 석가의 일생을 훈민정음으로 기록한 <석보상절>을 만들게 하였다. 더불어 세종 스스로 석가의 탄생과 일생을 다룬 <월인천강지곡>의 대서사시를 훈민정음으로 만들었다. 세종과 세조는 불교와 훈민정음(한글)과는 땔 수 없는 불가분의 존재였다.


언문청에서는 <사서>를 훈민정음으로 번역케하고, <소학>, 농서나 삼강행실도 등 모든 방면에 훈민정음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중종반정을 한 사림파들이 1506년 9월 2일 중종반정 후 가장먼저 한일은 9월 4일 <언문청>을 없애는 일이였다.


세종이 죽고 문종이 즉위한 초년에도 <정음청>을 없애라는 끝없는 상소가 올라온다.

하지만, 문종이 죽고 단종 즉위년 1452년 12월 2일 <정음청>을 없앤다.


사림파가 세조 죽이기를 감행한건 겉보기에는 단종폐위에 있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불교와 훈민정음과 당시에는 잡기라고 천대시한 천문, 지리, 국방 등 다양한 학문에 집착한 세조(수양대군)을 이단이라고 하는 데 서도 찾을 수가 있다.


오직 <유학> 그것도 주희(주자)에 집착해 국가경영에 유학만이 유일한 <종교>라고 생각한 사림파 사람들에게 세조나 세종은 이단이었다. 세종이 죽고 나서 세종은 초기에는 요.순이었지만, 말년에 망년이 들었다고 공격했던 자들이 당시 사림파 유학자였다. 중종반정에 성공한 세력에게는 세조가 죽어야 조선이 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신숙주와 성삼문이 훈민정음 창제에 깊이 관여를 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학자군에서 조차 말이다. 하지만, 신숙주와 성삼문이 요동의 황찬을 찾아간 일은 훈민정음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신숙주와 성삼문이 명나라의 한림학사인 언어학자 황찬을 찾아간 일은 <운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운회 요즘으로 치면 영어사전처럼 한자의 정확한 발음을 통일 시키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한자의 발음은 중구난방이여서 통일되지 않았다. 조선뿐만 아니라 명나라도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오히려 당나라 시대 고어 발음은 조선이 더 비슷하고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세종은 당시 <한자>의 정확한 발음을 알고자 성삼문과 신숙주를 파견했던 것이다.


집현전 부수찬(副修撰) 신숙주(申叔舟)와 성균관 주부(注簿) 성삼문(成三問)과 행 사용(行司勇) 손수산(孫壽山)을 요동에 보내서 운서(韻書)를 질문하여 오게 하였다.


세종 27년, 1445년 1월 7일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훈민정음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보면 쉬이 알 수 있다.  훈민정음 창제는 신숙주와 성삼문이 요동의 황찬을 찾아가 <운서>를 질문하기 전인 세종 25년 1443년 12월 30일 이다. 운서란 중국의 발음과 훈을 기록한 <홍무정음>을 말하는 것이지 한글(훈민정음)의 문자, 운서와는 하등 관련이 없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 세종 25년 1443년 12월 30일



훈민정음이 만들어지고 나서 공식적으로 반포된 때는 위에도 언급했지만, 세종 28년 1446년 9월 29일(음) 이였다.


1445년 1월 7일부터 황찬을 만나러간 신숙주와 성삼문, 손수산은 <운서>에 대해서 알아오고 1447년 결과물을 내 놓는다. 이름하여 동국정운이다.


이달에 《동국정운(東國正韻)》이 완성되니 모두 6권인데, 명하여 간행하였다.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 신숙주(申叔舟)가 교지를 받들어 서문(序文)을 지었는데

..중략..

이에 사성(四聲)으로써 조절하여 91운(韻)과 23자모(字母)를 정하여 가지고 어제(御製)하신 《훈민정음》으로 그 음을 정하고, 또 ‘질(質)’·‘물(勿)’ 둘의 운(韻)은 ‘영(影)’ 으로써 ‘내(來)’) 를 기워서 속음을 따르면서 바른 음에 맞게 하니, 옛 습관의 그릇됨이 이에 이르러 모두 고쳐진지라, 글이 완성되매 이름을 하사하시기를, ‘《동국정운(東國正韻)》’이라 하시고, 인하여 신(臣) 숙주(叔舟)에게 명하시어 서문(序文)을 지으라 하시니.. 생략..

- 세종 29년 1447년 9월 29일


신숙주가 죽고 나서 쓰여진 신숙주 졸기에도 정운에 대한 언급을 한다.
 

정음(正音)을 알고 한어(漢語)에 능통하여 《홍무정운(洪武正韻)》을 번역하였으며, 한음(漢音)을 배우는 자들이 많이 이에 힘입었다. - 성종 6년, 1475년 6월 21일


홍무정운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한 저서가 <동국정운>인 것이다.
 

세종조(世宗朝)에 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 등을 보내어 요동에 가서 황찬(黃瓚)에게 어음(語音)과 자훈(字訓)을 질정(質正) 하게 하여 《홍무정운(洪武正韻)》과 《사성통고(四聲通考)》 등의 책을 이루었기 때문에,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이에 힘입어서 한훈(漢訓) 을 대강 알게 되었습니다. - 성종 1487년 2월 2일


세종께서 또 언문 글자로써 화음(華音)을 번역하고자 하여 한림학사 황찬(黃瓚)이 죄로써 요동에 유배 되었다는 말을 듣고 공에게 명하여 조경사(朝京使)를 따라 요동에 들어가서 황찬을 보고 질문하게 하였다. 공은 말만 들으면 문득 해득하여 털끝만큼도 틀리지 아니하니 황찬은 크게 기특히 여겼으므로 이로부터 요동에 갔다온 것이 무릇 13번 이었다

- 신숙주 묘비명 <동문선>



황찬에게 간 일은 훈민정음 때문이 아니라. 신숙주의 묘비명에 있는 것처럼 언문(훈민정음) 한글로 정확한 화음(한음), 한자훈 번역하기 위해서 황찬을 13번이나 찾아간 것이다.


하지만, 많은 학자나 소설가들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위해서 성삼문, 신숙주가 요동까지 찾아가 명나라 몰래 유배된 황찬을 찾아 훈민정음 창제에 필요한 정보를 배워왔다고 퍼트린 것이다.


년도별로 정리를 하면 집현전학사들을 비롯해서 신숙주와 성삼문이 훈민정음 창제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443년 12월 30일(음) 훈민정음 창제 세종대왕 직접 만듬
1445년 1월 7일 성삼문, 신숙주, 요동 한림학사에 중국(화음) 운서(홍무정운)에 대해서 질문
1446년 9월 29일(음) 훈민정음 반포
1446년 12월 이과와 이전의 취재에 훈민정음 시험

1447년 4월 20일 함길도 자제의 관리 선발에 훈민정음을 시험하게 하다
1447년 9월 29일 신숙주, 홍무정운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해 동국정운을  만듬


조금만 훈민정음 창제에 관심이 있었다면 황당한 소설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과 드라마가 역사가 되는 현장에 다시금 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제발 한글창제를 위해서 황찬을 찾아가는 황당한 설정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에서 비밀조직 프로젝트 팀으로 성삼문이 한글창제에 깊이 관여했다는 것으로 봐서 뿌리깊은 나무도 어쩔수 없는 선택을 할것같다는 생각이다. 이는 또다시 사육신 성삼문의 신화창조에 일조할것 같다.
 
가장 적극적으로 훈민정음을 사용한 이는 세조(수양대군)과  비인 정희왕후였다. 정희왕후는 수시로 대신들에게도 언문(훈민정음)으로  명령을 내리기도 했었다.
 


공주의 남자에서 세령공주는 계유정난 시 김승유만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갇혀있는 광에서 여리를 통해 한자로 쓰여진 혈서를 김승유에게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좀더 극중 리얼리티를 살렸다면 수양대군의 딸 세령공주는 한자 혈서가 아닌 훈민정음(언문)으로 "승법사 여리"라고 보내지 않았을까?


훈민정음(언문, 한글)은 세종대왕 스스로 만든 글자이다. 그것도 음운학에 조예가 깊었던 세종대왕이 말이다. 실록을 비롯한 고전들이 모두 세종(世宗)어제(御製) 세종임금이 만든 이라고 하는데 무슨 배짱으로 극히 일부 학자와 소설가들은 이를 부정하는지 알수가 없다.


대한민국은 한글날을 10월 9일로 되어 있지만, 세종대왕이 한글(훈민정음)을 창제한 1443년 12월 30일(음)을 기준으로 양력으로 환산해서 1월 15일로 복원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1443년 12월 30일(음) 훈민정음 창제일도 아니고, 1446년 9월 29일(음) 훈민정음 반포일도 아닌 훈민정음 혜례본에 책을 발간한 9월 10일(음)에 맞춘 정체불명의 양력 10월 9일 한글날은 뜸금 없다고 하겠다.


정상적으로 복원하자는데 북한(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조선글날 1월 15일로 했다고 빨갱이 따라하는 거냐며 너 빨갱이지라는 초딩 같은 소리는 하지 말자.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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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봉성 2011.10.08 0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세종대왕은 처음에는 중국어 발음을 표기하는 소리문자로서의 한글을 창제하였는데 이 부분에서 집현전 학자들과 마주치게 된다. 집현전 학자들이 반대한 것은 한글 창제를 반대한 것이 아니고 중국문헌을 중국식 발음으로 한글로 토를 달려고 한데 있는 것이다.

  2. 지나가던 이 2011.10.15 0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뿌리 깊은나무 인물 소개에 그런게 있었는지 몰랐네요
    그렇다면 진짜 실망인데
    요즘 드라마는 한국사람만이 아닌 외국인들도 보는데 더 신중해야 할일을 저렇게 어이없이 만들다니
    만약 저런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진짜 화날거 같네요
    제발 저따위로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역사를
    왜곡한다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죠 아니 만들지를 말아야겠죠

  3. 전휘정 2011.10.28 0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읽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군요.. 성삼문이 중국에 간것이 훈민정음과 관련이 없다는 것만으로 성삼문이 한글창제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완벽한 주장이 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단지 그이유만으로는 불충분한 것 같은데요..

  4. 이규삼 2011.11.08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글 창제가 뿌리깊은나무 극중내용이 틀림없다고 봅니다. 가림토 문자 인용하는이들은 신미대사를 말하는 이들이 있으나 세종대왕과 만남이 한글반포 이후였음으로 말이안되고, 환단고기의 가림토문자를 말하는 이들은 환단고기가 1911년에 완성된 책이므로 믿을것이 못됩니다. 집현전에 언문청을 만든것은 반포한 이후이므로 학사들의 역할도 직접적인 관계가 없을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검색해 보시면 세종대왕 단독 창제로 밖에 말할께 없읍니다.

  5. Favicon of http://www.angeljackets.com/ BlogIcon winter clothing 2011.11.16 1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종대왕과 만남이 한글반포 이후였음으로 말이안되고, 환단고기의

  6. Favicon of http://crossnh.tistory.com BlogIcon 성현도사 2011.12.09 0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그렇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_^

  7.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6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8.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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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llkjihygjh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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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제에 커다란 공이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성상문과 신숙주, 이개 등 사육

  12. Favicon of http://www.sbwire.com/press-releases/survival-warehousecom-helps-survivalists-.. BlogIcon survival radio amazon 2013.01.05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불어 정난공신이 되고자 이색의 후손들이 정치를 했냐는 거냐고 반문을 하면서 어이가 없고 개탄스럽다고 말을 한다. 도대체 정난의 주동자인 안평대군과 김종서와 황보인이 충신이라는 말인가?

  13. Favicon of http://1000moon.pe.ne.kr/board.php?board=Chunmoonhaeza&category=6&command=body.. BlogIcon hdhghh 2013.01.17 1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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