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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공주의 남자>에서 성삼문, 신숙주, 이개 등 한글창제에 관여한 인물이라고 알려진 사육신이 나온다.
 
10월 9일이 한글날이기는 한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에 대한 상식이 얼마나 잘못된것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10월 9일이 훈민정음(한글)을 만든 565회 한글날이라고 한다. 이부터 잘못된 상식중에 하나다.

훈민정음(한글)이 만들어진 것과 반포일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더군다나 훈민정음 창제에 성삼문 신숙주는 훈민정음 창제에 커다란 공이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성상문과 신숙주, 이개 등 사육신을 포함한 집현전은 한글창제에 전혀 관여한적이 없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이글을 끝까지 읽고 나면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잘못된 암기식 역사교육을 받았는지 알게될 것이다.
 

<뿌리깊은 나무: 뿌리>는 세종 이도가 훈민정음을 만들게 되는 계기를 장인 심온의 죽음으로부터 찾고 있다.


심온은 사은사로 명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심온과 관련된 자들의 문제로 심온 또한 자리를 보전할 수가 없었다.


요동에서 돌아오는 심온에게 서울의 사정을 알리려는 자가 있었는데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심온의 노비 어리숙한 석삼으로 그렸다.


석삼이 어리석어서 심온에게 정확히 말로써 밝히지 못하고 또한, 글로써 심온에게 전하지 않아서 심온이 결국에는 서울로 돌아왔지만, 유배를 떠나고 심온이 자결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뿌리 깊은 나무는 어리석은 백성이 쉽게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글이 있었다면 심온도 죽지를 않았을 것이고 석삼이도 죽지 않았을 거니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자를 만들어 자신이 뜻한바를 글로써 표현한다면 억울함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결심을 하는 변곡점으로 삼은 것이다.




이는 훈민정음 반포 기념 정인지의 서문에도 명확히 나오고 있다.


우리동방의 예악 문물(禮樂文物)이 중국에 견주되었으나 다만 방언(方言)과 이어(俚語)만이 같지 않으므로, 글을 배우는 사람은 그 지취(旨趣)의 이해하기 어려움을 근심하고,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사람은 그 곡절(曲折)의 통하기 어려움을 괴로워하였다. 옛날에 신라의 설총(薛聰)이 처음으로 이두(吏讀)를 만들어 관부(官府)와 민간에서 지금까지 이를 행하고 있지마는, 그러나 모두 글자를 빌려서 쓰기 때문에 혹은 간삽(艱澁)하고 혹은 질색(窒塞)하여, 다만 비루하여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사이에서도 그 만분의 일도 통할 수가 없었다.

- 세종 28년, 1446년 9월 29일(음)  훈민정음 반포


 그런데 왜 세종은 훈민정음(한글)을 비밀스럽게 만들었을까? 당시의 시대상황을 알게 된다면 세종 이도가 비밀프로젝트로 훈민정음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유학자의 다수는 한자를 제외한 문자는 오랑캐들이나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조선이 소중화인 것은 중국과 같은 문자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다. 왜 스스로 문자를 만들어 오랑캐가 되어야 하느냐고 하던 사람들이 당시의 사림파 유학자의 대다수였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반포하고 <언문청>,<정음청>을 만들어서 수많은 저술활동을 한다.

세종은 수양대군(세조)에게 석가의 일생을 훈민정음으로 기록한 <석보상절>을 만들게 하였다. 더불어 세종 스스로 석가의 탄생과 일생을 다룬 <월인천강지곡>의 대서사시를 훈민정음으로 만들었다. 세종과 세조는 불교와 훈민정음(한글)과는 땔 수 없는 불가분의 존재였다.


언문청에서는 <사서>를 훈민정음으로 번역케하고, <소학>, 농서나 삼강행실도 등 모든 방면에 훈민정음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중종반정을 한 사림파들이 1506년 9월 2일 중종반정 후 가장먼저 한일은 9월 4일 <언문청>을 없애는 일이였다.


세종이 죽고 문종이 즉위한 초년에도 <정음청>을 없애라는 끝없는 상소가 올라온다.

하지만, 문종이 죽고 단종 즉위년 1452년 12월 2일 <정음청>을 없앤다.


사림파가 세조 죽이기를 감행한건 겉보기에는 단종폐위에 있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불교와 훈민정음과 당시에는 잡기라고 천대시한 천문, 지리, 국방 등 다양한 학문에 집착한 세조(수양대군)을 이단이라고 하는 데 서도 찾을 수가 있다.


오직 <유학> 그것도 주희(주자)에 집착해 국가경영에 유학만이 유일한 <종교>라고 생각한 사림파 사람들에게 세조나 세종은 이단이었다. 세종이 죽고 나서 세종은 초기에는 요.순이었지만, 말년에 망년이 들었다고 공격했던 자들이 당시 사림파 유학자였다. 중종반정에 성공한 세력에게는 세조가 죽어야 조선이 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신숙주와 성삼문이 훈민정음 창제에 깊이 관여를 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학자군에서 조차 말이다. 하지만, 신숙주와 성삼문이 요동의 황찬을 찾아간 일은 훈민정음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신숙주와 성삼문이 명나라의 한림학사인 언어학자 황찬을 찾아간 일은 <운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운회 요즘으로 치면 영어사전처럼 한자의 정확한 발음을 통일 시키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한자의 발음은 중구난방이여서 통일되지 않았다. 조선뿐만 아니라 명나라도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오히려 당나라 시대 고어 발음은 조선이 더 비슷하고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세종은 당시 <한자>의 정확한 발음을 알고자 성삼문과 신숙주를 파견했던 것이다.


집현전 부수찬(副修撰) 신숙주(申叔舟)와 성균관 주부(注簿) 성삼문(成三問)과 행 사용(行司勇) 손수산(孫壽山)을 요동에 보내서 운서(韻書)를 질문하여 오게 하였다.


세종 27년, 1445년 1월 7일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훈민정음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보면 쉬이 알 수 있다.  훈민정음 창제는 신숙주와 성삼문이 요동의 황찬을 찾아가 <운서>를 질문하기 전인 세종 25년 1443년 12월 30일 이다. 운서란 중국의 발음과 훈을 기록한 <홍무정음>을 말하는 것이지 한글(훈민정음)의 문자, 운서와는 하등 관련이 없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 세종 25년 1443년 12월 30일



훈민정음이 만들어지고 나서 공식적으로 반포된 때는 위에도 언급했지만, 세종 28년 1446년 9월 29일(음) 이였다.


1445년 1월 7일부터 황찬을 만나러간 신숙주와 성삼문, 손수산은 <운서>에 대해서 알아오고 1447년 결과물을 내 놓는다. 이름하여 동국정운이다.


이달에 《동국정운(東國正韻)》이 완성되니 모두 6권인데, 명하여 간행하였다.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 신숙주(申叔舟)가 교지를 받들어 서문(序文)을 지었는데

..중략..

이에 사성(四聲)으로써 조절하여 91운(韻)과 23자모(字母)를 정하여 가지고 어제(御製)하신 《훈민정음》으로 그 음을 정하고, 또 ‘질(質)’·‘물(勿)’ 둘의 운(韻)은 ‘영(影)’ 으로써 ‘내(來)’) 를 기워서 속음을 따르면서 바른 음에 맞게 하니, 옛 습관의 그릇됨이 이에 이르러 모두 고쳐진지라, 글이 완성되매 이름을 하사하시기를, ‘《동국정운(東國正韻)》’이라 하시고, 인하여 신(臣) 숙주(叔舟)에게 명하시어 서문(序文)을 지으라 하시니.. 생략..

- 세종 29년 1447년 9월 29일


신숙주가 죽고 나서 쓰여진 신숙주 졸기에도 정운에 대한 언급을 한다.
 

정음(正音)을 알고 한어(漢語)에 능통하여 《홍무정운(洪武正韻)》을 번역하였으며, 한음(漢音)을 배우는 자들이 많이 이에 힘입었다. - 성종 6년, 1475년 6월 21일


홍무정운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한 저서가 <동국정운>인 것이다.
 

세종조(世宗朝)에 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 등을 보내어 요동에 가서 황찬(黃瓚)에게 어음(語音)과 자훈(字訓)을 질정(質正) 하게 하여 《홍무정운(洪武正韻)》과 《사성통고(四聲通考)》 등의 책을 이루었기 때문에,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이에 힘입어서 한훈(漢訓) 을 대강 알게 되었습니다. - 성종 1487년 2월 2일


세종께서 또 언문 글자로써 화음(華音)을 번역하고자 하여 한림학사 황찬(黃瓚)이 죄로써 요동에 유배 되었다는 말을 듣고 공에게 명하여 조경사(朝京使)를 따라 요동에 들어가서 황찬을 보고 질문하게 하였다. 공은 말만 들으면 문득 해득하여 털끝만큼도 틀리지 아니하니 황찬은 크게 기특히 여겼으므로 이로부터 요동에 갔다온 것이 무릇 13번 이었다

- 신숙주 묘비명 <동문선>



황찬에게 간 일은 훈민정음 때문이 아니라. 신숙주의 묘비명에 있는 것처럼 언문(훈민정음) 한글로 정확한 화음(한음), 한자훈 번역하기 위해서 황찬을 13번이나 찾아간 것이다.


하지만, 많은 학자나 소설가들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위해서 성삼문, 신숙주가 요동까지 찾아가 명나라 몰래 유배된 황찬을 찾아 훈민정음 창제에 필요한 정보를 배워왔다고 퍼트린 것이다.


년도별로 정리를 하면 집현전학사들을 비롯해서 신숙주와 성삼문이 훈민정음 창제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443년 12월 30일(음) 훈민정음 창제 세종대왕 직접 만듬
1445년 1월 7일 성삼문, 신숙주, 요동 한림학사에 중국(화음) 운서(홍무정운)에 대해서 질문
1446년 9월 29일(음) 훈민정음 반포
1446년 12월 이과와 이전의 취재에 훈민정음 시험

1447년 4월 20일 함길도 자제의 관리 선발에 훈민정음을 시험하게 하다
1447년 9월 29일 신숙주, 홍무정운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해 동국정운을  만듬


조금만 훈민정음 창제에 관심이 있었다면 황당한 소설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과 드라마가 역사가 되는 현장에 다시금 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제발 한글창제를 위해서 황찬을 찾아가는 황당한 설정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에서 비밀조직 프로젝트 팀으로 성삼문이 한글창제에 깊이 관여했다는 것으로 봐서 뿌리깊은 나무도 어쩔수 없는 선택을 할것같다는 생각이다. 이는 또다시 사육신 성삼문의 신화창조에 일조할것 같다.
 
가장 적극적으로 훈민정음을 사용한 이는 세조(수양대군)과  비인 정희왕후였다. 정희왕후는 수시로 대신들에게도 언문(훈민정음)으로  명령을 내리기도 했었다.
 


공주의 남자에서 세령공주는 계유정난 시 김승유만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갇혀있는 광에서 여리를 통해 한자로 쓰여진 혈서를 김승유에게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좀더 극중 리얼리티를 살렸다면 수양대군의 딸 세령공주는 한자 혈서가 아닌 훈민정음(언문)으로 "승법사 여리"라고 보내지 않았을까?


훈민정음(언문, 한글)은 세종대왕 스스로 만든 글자이다. 그것도 음운학에 조예가 깊었던 세종대왕이 말이다. 실록을 비롯한 고전들이 모두 세종(世宗)어제(御製) 세종임금이 만든 이라고 하는데 무슨 배짱으로 극히 일부 학자와 소설가들은 이를 부정하는지 알수가 없다.


대한민국은 한글날을 10월 9일로 되어 있지만, 세종대왕이 한글(훈민정음)을 창제한 1443년 12월 30일(음)을 기준으로 양력으로 환산해서 1월 15일로 복원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1443년 12월 30일(음) 훈민정음 창제일도 아니고, 1446년 9월 29일(음) 훈민정음 반포일도 아닌 훈민정음 혜례본에 책을 발간한 9월 10일(음)에 맞춘 정체불명의 양력 10월 9일 한글날은 뜸금 없다고 하겠다.


정상적으로 복원하자는데 북한(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조선글날 1월 15일로 했다고 빨갱이 따라하는 거냐며 너 빨갱이지라는 초딩 같은 소리는 하지 말자.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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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봉성 2011.10.08 0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세종대왕은 처음에는 중국어 발음을 표기하는 소리문자로서의 한글을 창제하였는데 이 부분에서 집현전 학자들과 마주치게 된다. 집현전 학자들이 반대한 것은 한글 창제를 반대한 것이 아니고 중국문헌을 중국식 발음으로 한글로 토를 달려고 한데 있는 것이다.

  2. 지나가던 이 2011.10.15 0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뿌리 깊은나무 인물 소개에 그런게 있었는지 몰랐네요
    그렇다면 진짜 실망인데
    요즘 드라마는 한국사람만이 아닌 외국인들도 보는데 더 신중해야 할일을 저렇게 어이없이 만들다니
    만약 저런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진짜 화날거 같네요
    제발 저따위로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역사를
    왜곡한다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죠 아니 만들지를 말아야겠죠

  3. 전휘정 2011.10.28 0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읽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군요.. 성삼문이 중국에 간것이 훈민정음과 관련이 없다는 것만으로 성삼문이 한글창제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완벽한 주장이 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단지 그이유만으로는 불충분한 것 같은데요..

  4. 이규삼 2011.11.08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글 창제가 뿌리깊은나무 극중내용이 틀림없다고 봅니다. 가림토 문자 인용하는이들은 신미대사를 말하는 이들이 있으나 세종대왕과 만남이 한글반포 이후였음으로 말이안되고, 환단고기의 가림토문자를 말하는 이들은 환단고기가 1911년에 완성된 책이므로 믿을것이 못됩니다. 집현전에 언문청을 만든것은 반포한 이후이므로 학사들의 역할도 직접적인 관계가 없을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검색해 보시면 세종대왕 단독 창제로 밖에 말할께 없읍니다.

  5. Favicon of http://www.angeljackets.com/ BlogIcon winter clothing 2011.11.16 1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종대왕과 만남이 한글반포 이후였음으로 말이안되고, 환단고기의

  6. Favicon of http://crossnh.tistory.com BlogIcon 성현도사 2011.12.09 0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그렇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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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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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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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 정난공신이 되고자 이색의 후손들이 정치를 했냐는 거냐고 반문을 하면서 어이가 없고 개탄스럽다고 말을 한다. 도대체 정난의 주동자인 안평대군과 김종서와 황보인이 충신이라는 말인가?

  13. Favicon of http://1000moon.pe.ne.kr/board.php?board=Chunmoonhaeza&category=6&command=body.. BlogIcon hdhghh 2013.01.17 1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一聲雞已報春風
    새벽 닭 우는 소리 봄소식 알리네


<공주의 남자>에 관한 기사를 보면 역사와 야사와 픽션을 절묘하게 믹스한 최고의 사극이라고 칭찬을 한다.
공주의 남자 결말은 <금계필담>의 결말과 유사하게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김승유와 세령공주만의 해피엔딩이라는 것만 빼고 말이다.

김승유의 신숙주집의 신면의 노비가 된 세령구하기 프로젝트라는 철없는 사랑놀음 때문에 죽어나간 사람들을 계산하면 세조(수양대군)이 죽인자보다 많다.

친구라는 정종죽여, 금성대군 죽여, 단종도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시애의 난에 동원된 수 많은 사람들도 김승유 때문에 반란군이 되었으니 말이다. 결국에는 신면도 죽음에 이르게 했으니 말이다.

물론, 사랑으로 다 용서가 되는 멜로에서는 철이 있던 없던 김승유는 사랑을 위해서 목숨을 건 주인공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다. 그렇더라도 주인공으로서는 참으로 감당이 안되는 민폐주인공임에도 분명하다.

공주의 남자 결말이 그래서 개인 김승유와 세령공주만의 해피엔딩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단지, 김승유가 장님이 되었다는 설정만 빼고 나면 말이다.

그런데 김승유가 낳은 아들은 효달일까?
 
정말 역사와 야사와 픽션을 절묘하게 믹스한 최고의 사극일까?

기자들이 역사를 연구한 적도 없고, 조선의 역사를 읽어본적도 없고. 시청자들이 역사를 알고 보지 않는것이니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공주의 남자 제작자는 스스로 "조선의 역사속 감춰진 리얼 드라마틱 러브"라고 선전을 하였다.

하지만, 공주의 남자에서 역사적인 사건은 제대로 다룬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보면 볼수록 역사를 망가트린것만 보았다. 대부분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재해석을 하는게 일반적인데 공주의 남자에선 재해석이 없다. 왜 사건이 일어났을까 보다는 적대적인 사람들이 한편이 되어서 역사모독을 하는 수준이다.

더군다나 극적인 전개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 드라마나 역사스페셜은 만드는 순간 픽션이 가미될수 밖에 없다.

사실 공주의 남자를 보는 사람에게는 불편한 글일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공주의 남자를 보는 사람이 검색을 통해서나 알음알음 같이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서 글을 찾아 볼텐데 비판을 하고 있으니 좋은 평가를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최소한 공주의 남자에서 받은 감흥도 좋지만, 실제역사와 비교해서 보는 것이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더불어 드라마와 역사를 구분해서 볼수 있으니 말이다.

드라마는 지나면 잊혀지만, 역사는 남는다. 잘못된 드라마의 설정으로 드라마를 보고 역사처럼 이야기는 하지 않을수가 있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최소한 다른이에게 또는 자식들에게 드라마와 역사의 차이점까지 알려줄수 있으니 말이다.

공주의 남자를 보고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렸는데 자신이 멍청해서 눈물을 흘린거냐며 반발한다. 사실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물을 다루지 않고 배경만 따왔다면 글쓴이도 눈물을 흘렸을 지도 모른다. 또한, 충분히 공주의 남자는 재미가 있고 감동코드가 있다. 그렇더라도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어쨌든, 사극을 비롯한 시대극이란 기록의 빈틈을 합리적인 설정으로 메꾸어 가야 한다.  빼대는 지키고, 살과 피를 돌려 살아움직이게 하는게 드라마나 역사다큐나 차이점이 없다. 단지, 드라마는 좀더 작가의 자유도(창의력)이 발휘될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인 사건의 선후관계까지 자유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시대를 넘나드는 SF 역사극도 기본적인 팩트(사건)은 지키고 있고,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들어가 관계되어서 사건이 미래에 미치지 않도록 설정하고 고민하는 장면을 필히 넣는다. 
 
잘못된 드라마의 설정이 앞으로 공주의 남자를 보고 드라마가 역사인척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 질것이다. 정종과 김승유와 신면의 삼각관계와 배신자 신면를 이야기 할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선덕여왕과 같은 시대에 있었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김승유.정종을 사육신이나 생육신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란 법은 없다.

공주의 남자에서 한없이 불쌍한 인물로 경혜공주와 정종을 말하고, 실질적인 주인공이 문종의 딸인 경혜공주와 정종이 아닐까하는 사람들도 있다. 더군다나 정종과 경혜공주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정종은 계유정란 공신이였고, 문종이전 시절부터 조선의 대단한 권력자 가문이였다.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단종을 정종과 경혜공주의 집으로 이어시켜서 지냈고, 어린 단종의 뒷배를 이용해서 수 많은 재산을 불렸다. 요즘으로 치면 권력형 비리의  몸통에 정종과 경혜공주가 있었던 것이다.
 


위와 같은 정종이 한미한 가문일 수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김승유와 친구가 가당키나 한가? 김승유가 살아 있었다면 권력자의 2세들로 왕자당을 만들어서 기생집에 드나들었음직 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정종은 계유정난으로 조선에서 가장 혜택받은 존재였다. 넘쳐나는 재산에 정난으로 망한 집안의 전토와 공신전과 노비를 수 없이 받았으니 말이다. 그런 김승유와 정종이 계유정란시 친구이고 이후로도 친구가 될수 있었을까? 친구였다가도 견원지간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더군다나 사육신의 한사람인 이개가 신면과 김승유와 정종의 스승이라고 떠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사육신과 김종서는 철천지 원수일 수 밖에 없고, 사육신과 정종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고, 오히려 정종에게 적대적이였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공주의 남자는 조선후기 금계필담에 채록된 세조의 큰딸과 김종서의 손자와의 사랑을 모티브로 탄생한 드라마다.


김종서의 손자는 계유정난으로 유모의 손에 살아남아 백악산 보굴로 숨어든다.


세조의 큰 딸 세희는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려고 하자, 세조에게 어찌하여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려하느냐고 반기를 들고, 정희왕후가 세희를 죽은 것으로 위장하여 유모와 함께 나가살도록 한다.


세희와 김종서의 손자는 백악산 보굴에서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세조가 요양 차 지나는 길에 우연히 세희와 외손녀를 만나게 되자. 세희와 김종서 손자는 더 깊은 산으로 숨어들어 살았다는 것이 골자이다.


이 이야기는 정조시기에 백악산에서 김종서의 오래된 위패가 발견됨으써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공주의 남자 작가와 제작자는 세희를 세령이라 이름을 바꾸었고, 김종서의 손자를 김종서의 셋째 아들인 김승유로 바꾸어서 세령과 김승유의 사랑으로 극화하였다.


금계필담 이야기가 전해지는 대로 세조의 큰딸과 김종서의 손자로 극화했다면 보다 개연성 있고 역사도 망치지 않는 드라마가 만들어 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김종서에게는 3명의 적자와 2명의 서자가 있었다. 그리고 기록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손자는 김종서의 둘째 아들 김승벽의 큰아들 김석동(중남)이였다. 둘째 아들 김승벽의 막내 삼동(팽)은 유모의 손에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김승유의 아들 효달은 유모가 자신의 아들을 효달로 속여 대신 죽고, 효달이 살아남았다고 순천김씨 대동보는 전한다. 문제는 서자 중 김목대는 15살이 되지 않아 나이가 어렸을 것으로 추측되고, 서장자인 김석대는 커서 자식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외 큰아들 김승규의 막내 말동(행남)은 송시열의 5대조가 김종서의 조카 사위였는데 정난이 일어나자 3살 김말동(김행남)을 몰래 빼돌려 강화도로 보내서 길렀다고 한다.


계유정난에서 김승유가 살아 있을 확률은 0%도 안 된다. 왜냐하면 정난 후 김종서의 서자를 비롯해 식솔들인 손녀까지 기록으로 남아 있는데 김승유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더불어 순천김씨 대동보에서 정란 시 김승유의 아들 효달이 어렸다고 하였고, 김승유의 처는 여흥민씨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승유가 계유정난 이전부터 총각으로 등장하는 순간 공주의 남자는 산으로 간다. 더군다나 등장하지 말아야할 죽은자가 등장하므로서 인물간의 관계가 흐트러져 버린다.


유부남에 자식까지 있고, 이미 죽은 김승유가 세령과 사랑하는 사이로 그리는 순간 공주의 남자는 막장코드가 된다. 오히려 살아남은 김종서의 손자 김석동(중남)과 세령과 엮었다면 충분히 극으로 만들어도 딴지를 걸 수 없게 된다.


더군다나 경혜공주의 결혼, 계유정란, 세조의 왕위 찬탈, 사육신의 단종복위, 정종의 반정, 이시애의 난, 그리고 세령과 김승유의 행복한 삶까지 1450년부터 1468년까지 19년을 한 두해에 이뤄진 것으로 다루는 무리수를 두었다.


그러니 이시애의 난이 끝난 이듬해 죽은 세조가 죽지도 않고 유령도 아닌 상태에서 늙어서 나타나는 처음부터 황당한 극 전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개그프로 감수성에도 다루지 않을 극의 전개이다. 그러니 개연성과 리얼리티가 있을수가 없다.


공주의 남자에서 등장하는 인물간의 관계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다음과 같다.



공주의 남자 극의 시작은 경혜공주의 결혼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아래의 사건들이 공주의 남자에서 그린 처음부터 끝까지다.


공주의 남자 황당설정
세조의 큰딸 세희(세령)과 김종서 아들 김승유와 사랑
1453년 김승유 20살(1434년생) 설정
세령,  숭(1438년)보다 누나 
신면(1438년)생 김승유와 동갑
정종, 김승유, 신면 사육신 이개의 제자
신면 죽을때 까지 한성부 판관
사육신 처음부터 김종서파, 정종, 금성대군파, 단종파
세종
문종 말년,경혜공주 유부남 김승유에 시집보내려다 실패  정종과 결혼
1450년 1월 24일 경혜공주(평창군주) 정종과 결혼
문종 1452년 5월 14일 문종 죽음
단종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 김종서, 안평대군, 황보인 등 죽임
김승규, 김종서만 죽었지만, 모두 몰살된것으로 그림 
이개와 정종, 김승유 살려줌, 강화도 유배수장되다 탈출
1456년 9월 7일 의금부에 난신 연좌된 부녀 대신들에게 나눠줌
김승규의 아내, 딸 아강 강곤의 노비됨
신면과 세령공주 김승규 아내,아강 살려줌 
1471년 윤 9월28일, 강곤에 하사된 김승규의 딸 숙희 방면
1472년 5월 정인지에 하사된 김승규의 처 내은비 딸 내은금 방면
세조 1456년 5월 12일 온녕군 죽음
김승유, 신숙주 척살 실패
1455년 6월 11일(윤) 세조의 왕위찬탈
1455년 8월 19일 정종 수원에서 통진 농장으로 이배
김승유, 사육신, 정종과 함께 서울 집에서 반란모의 
 
1456년 6월 1일 사육신의 단종복위 사건, 단종 반란수괴
1455년 8월 19일 정종 수원에서 정종의 통진 목장으로 이배
1457년 6월 21일 단종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격하되고 영월로 유배
정종 경혜공주가 세조에 무릎꿇어 서울에서 광주로 유배됨 
1457년 6월 27 정종 통진 목장에서 전라도 광주 유배
1461년 7월 정종 반란모의 
1461년 10월 23일 경혜공주, 정미수와 전라도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옴
1461년 10월 20일 정종의 죽음
1457년 10월 22일 이후, 송현수, 금성대군, 단종 죽음
1455년 정종과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 태어남
1467년 5월 17일 이시애의 난
1467년 5월 18일 신면, 이시애의 난 진압하다 30살로 죽음
1457년 9월 2일 세자 도원군 장(숭) 20살 죽음
김승유, 세령,아강 같은 나이 딸있음
1468년 9월 8일 세조(수양대군) 수강궁(창경궁)에서 죽음
성종
세령과 김승유 앞에 나타난 세조(수양대군)은 유령?


공주의 남자를 보면 세조(수양대군)이 이시애의 난이 있고 늙도록 왕에 있었는줄 알것이다. 하지만, 세조는 이시애의 난이 있고 이듬해 죽는다. 세령과 김승유 앞에 나타난 세조에게 유령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것은 극히 정상적인 생각이다. 그렇다면 공주의 남자가 망친 역사를 복원하면 어떻게 될까?


실제 역사
세조의 큰딸 세희(세령)과 김종서 손자의 사랑
김승유 계유정란 이전 죽음. 아내 여흥민씨 사이 아들 효달있음
경혜공주 1436년생, 숭 1438년생, 세령 숭보다 어림
신면 1438년생, 의숙공주 1442년생
사육신 안평대군,김종서 배신, 금성대군, 정종과는 처음부터 적대적임
사육신, 김종서 남은 일파 죽이라 주장, 수없이 죽이고 정난공신됨
사육신 일부 성삼문 등 단종폐위, 세조옹립 좌익공신됨 
사육신 단종복위 반란, 하지만 단종 반란수괴 실토 단종 유배빌미 제공 
세종
1450년 1월 24일 15살 경혜공주(평창군주) 정종과 결혼
1450년 2월 세종 죽음
문종 1452년 5월 14일 문종 죽음
단종 1453년 숭, 신면 16살, 경혜공주 18살, 세령(세희) 13~15살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 김종서, 안평대군, 황보인 등 죽임
1453년 11월 8일 성삼문, 권자신,박팽년, 이개, 유성원, 성승 등 사육신 계유정란공신3등, 정종 1등공신
1453년 11월 김종서 아들 김승벽, 김석대 사사
1454년 8월 15일 김종서 아들 김목대, 김승규 아들 김조동·김수동 사사
1454년 8월 15일 김승벽 아들 김석동 전라도 극변 관노로 영속
1455년 6월 혜빈 양씨, 금성대군, 정종 반란모의
세조
1455년 6월 11일(윤) 세조의 왕위찬탈
1455년 8월 12일 정종 양근에서 수원으로 이배
1455년 8월 19일 정종 수원에서 통진 농장으로 이배
1455년 9월 5일 수양대군(세조) 왕위찬탈 공 권자신, 성삼문 좌익공신
1455년 정종과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 태어남
1455년 원종공신 행부승 신면 18세
1456년 5월 12일 온녕군 죽음
1456년 6월 1일 사육신의 단종복위 사건, 단종 반란수괴
                      단종 외삼촌 권자신, 외할머니 최아지 반란연류 
1456년 6월 29일 현덕왕후 서인으로 격하되고 개장(이장)
1456년 9월 7일 의금부에 난신 연좌된 부녀 대신들에게 나눠줌
1457년 6월 단종 장인 송현수, 권완의 반란 사건
1457년 6월 21일 단종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격하되고 영월로 유배
1457년 6월 27일 금성대군, 이보흠 반란 사건
1457년 6월 27 정종 통진 목장에서 전라도 광주 유배
1457년 8월 송현수 관노 됨
1457년 9월 2일 세자 도원군 장(숭) 20살 죽음
1457년 10월 22일 이후, 송현수, 금성대군, 단종 죽음
1458년 평안도 도체찰사 신숙주에게 회군하길 바라는 수찰 내림 
1458년 도염서령 신면
1460년 신숙주 함길도 도체찰사, 종부소윤 신면 함께감
1461년 3월 신면 장령
1461년 7월 정종 반란모의 
1461년 10월 20일 정종의 죽음
1461년 10월 23일 경혜공주, 정미수와 전라도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옴
1464년 신면 우승부지 지공조사
1467년 5월  신면 도승지겸 함길도 관찰사
1467년 5월 17일 이시애의 난
1467년 5월 18일 신면, 이시애의 난 진압하다 30살로 죽음
1468년 9월 8일 세조(수양대군) 수강궁(창경궁)에서 죽음
성종
1471년 윤 9월28일, 강곤에 하사된 김승규의 딸 숙희 방면
1472년 5월 정인지에 하사된 김승규의 처 내은비 딸 내은금 방면

공주의 남자에서 가장 불쌍한 배역은 신면이다. 아버지 신숙주 때문에 아들 신면까지 도매금을 넘어갔다. 그런데 배신의 역사인 시육신은 언제부터 그리 충신이 되어야 하는걸까? 배신을 해도 신숙주보다 더 많이 했는데 말이다. 중종반정을 하고 권력을 쟁취한 사림파들이 만든 허구와 신화가 사육신이다. 사림파들에게는 이교도라도 생각한 세조를 죽이기 위해서 사육신을 신격화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동안 공주의 남자가 망친 역사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아래글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2011/10/07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결말, 김승유 세령공주 때문에 억울한 누명 쓴 신면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모 시체 바다에 버렸다는 사림의 선동결과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관노비 없었고, 아들 정미수 수양대군 지어준 이름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결말, 단종도 죽인 김승유, 이시애와 수양대군 죽이고 왕될 기세?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 경혜공주 똥도 먹은 효자였다.
2011/10/0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불쌍한 신면과 배신자 사육신 어떻게 충신 아이콘 되었나?
2011/10/04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사육신 박팽년 성삼문, 단종 양위시 경회루 투신사건 사실일까?
2011/09/30 - [TV&ETC] - 공주의 남자, 정종 죽고 경혜공주 공노비 된건 김승유 신묘한 계책?
2011/09/30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정종과 경혜공주 복중 아기 정미수 유복자될까? 사실은 이산 정조가 알고 있다
2011/09/29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될까? 사실은 정조만 알고 있었다.
2011/09/2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 된다? 사실은 진실과 허구 왜 퍼졌을까?
2011/09/2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 처 윤씨 사육신 편에서 자살했나? 사실은 방개떡 고사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제작자 계유정란 김승유 3살? 그럼 김승유와 아들 효달이 동갑? 대략난감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광개토태왕, 계백, 사극 문헌고증 파괴해야 시청률 오른다?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스승 이개 알고보면 계유정란공신, 사육신 단종폐위 좌익공신들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적과동침, 단종 죽인건 사육신 충신인가? 배신 아이콘인가?
2011/09/17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단종복위 위해 불구대천원수인 이개 성삼문 등 사육신과 동침한다?
2011/09/10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추석 보름달은 원한에 시퍼런 날이 서있었을 것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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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11.10.09 0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딸이 죽어 그 고통으로 일년만에 늙었다는 설정이 아닐지요.
    작가도 그 정도는 알 텐데요.
    갓쉰동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사극을 제작할 때 갓쉰동님께 감수를 받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2. aa 2011.10.29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령은 숭보다 누나인 설정이 맞았다고 봅니다.
    계유정난 당시 숭의 나이는 고작 15살인데요..
    아버지에게 대적할 힘이 잇을 정도라면 최소한 숭보다 나이가 많았어야 하지 않을까요...

  3. 가지가지 2011.11.27 2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요. 제가 볼 땐 가지가지하신다는 느낌이..드는데요. 사극의 틀을 빌린 또 하나의 로맨스 드라마로도 보세요. 님만큼 역사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많고, 지금 글쓰는 저도 님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 바보인 듯 하고 역사적 사실은 도외시한 채 이 내용만 가지고 역사를 안다고 생각하며 볼까요? 이것을 계기로 하여 경혜공주를 알고 영양위 정종도 알고 인터넷을 통해 많은 실제적 역사를 검색해가며 공부해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쥔장 글은 헛똑똑이의 행동의 전형적인 형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극이 무조건 다 재해석이 아니고, 사극의 장르에 따라 다른 것 아니겠습니까? 천편일률적인 사극만 가대하지 마시길.

  4. Favicon of http://lionfilmstudio.com BlogIcon 박기동 2011.12.31 1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한다

  5. Favicon of http://no-credit-check-cell-phones.com BlogIcon 박기동 2012.01.07 0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6. Favicon of http://get.scrapping.cc BlogIcon 사라 2012.04.06 0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아침입니다.

  7. Favicon of http://hollyholly.is-a-chef.com BlogIcon Gianna 2012.05.11 0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8.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6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9.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10. Favicon of http://www.perfectmotoindustry.com BlogIcon Exhaust Pipes 2012.08.21 18: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llkjihygjhfg


<공주의 남자>에서 궁을 나간 세령은 빙옥관에서 신면의 손에 이끌려 궁에 다시 돌아온다.


궁에 돌아온 세령은 세조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아버지의 죄업을 자식들에게까지 전달하겠는냐는 것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의경세자(숭:장)(덕종:성종의 아버지)이 피를 토하고 쓰러지자, 세조(수양대군)은 그동안 드라마에서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세조의 뒤를 이어 예종이 되는 둘째 왕자 해양대군(황)를 궁으로 불러들인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 설정으로는 정희왕후 처가에서 길러진 것으로 그리고 있다.


어쨌든 의경세자 숭(장)은  곧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의경세자는 1438년 생으로 20살이 되는 해에 죽는다. 드라마 시제는 1456는 6월 사육신의 쿠데타 실패와 의경세자(장)이 죽은 1457년 9월 2일 사이라는 것을 뜻한다.
 


수양대군은 악담을 퍼붓는 세령에게, 신면을 들어오게 하면서, 신면은 세령과 결혼할 수 없다고 말을 한다. 세령은 신면 너의 노비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시청자를 낚시하는 장면에 지나지 않지만, 신면의 노비가 된다고 해서 세령과 결혼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첩으로 삼으면 되니 말이다. 어쨌든, 그동안 신면은 수양대군에게 끊임없이 이용만 당한 것이 된 것인가? 아니면 세령공주를 노비로 부리니 좋아라 해야 하는 것인가?


<공주의 남자>에서는 1450년부터 신면은 세령을 향한 해바라기 였고, 2번의 결혼 식 실패를 맛봐야 했다. 7년 동안 세조의 노비였으니 신면의 노비가 된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어짜피 공주의 남자는 요즘으로 치면 막장 멜로 시대극이기 때문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시제는 무의미 하다. 작가의 작의적인 시간의 꼬임이 있다. 어쩌면 공주의 남자만의 시간의 왜곡현상이 있어서 블랙홀이 형성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실존인물이고 계유정란 전에 죽었던 김승유가 살아나 젊음을 유지하고 세령과 사랑놀음을 하고 있고, 공주의 남자에서 하루는 1년처럼 빠르게 진행된다. 더군다나 미래로 과거로 지멋대로 왔다리 갔다리 황당 타임머신을 타고 다닌다.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이 끝나고 김승유가 강화도에서 1박2일 입수를 하고 나오니 1년이 지나버렸다.


강화도에서 살아나 대호로 알리게 되는 온녕군을 암살하고 신죽주를 죽이려 실패하자, 세조와 한명회는 온녕군을 죽인 배후는 단종과 정종과 금성대군이 획책한 것이라며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다. 결국에는 김승유가 단종을 몰아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것이 된다.
 


하지만, 온녕군이 죽은 때는 1454년 5월 12일 이었고, 세조(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른 때는 1455년 6월 11일(윤)이였다.
 

단종 2년, 1454년 5월 12일,  온녕군(溫寧君) 이정(李裎)이 졸(卒)하였다

 

위키백과 사전에는 1453년 졸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1453년 10월 계유정란이 끝나고 김종서의 첫째아들 김승규의 아내와 손녀 아강이 강곤의 집에 노비로 팔린 것으로 그렸고, 세령과 신면이 강곤의 집에서 아강과 형수를 빼돌려 살게하다. 김승유가 돌아오자 빙옥관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그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주의 남자를 보고 김종서는 모두 절손된 것으로 알고, 김종서의 살아남은 후손들은 족보를 샀는줄 안다. 하지만, 김종서의 살아남은 손자만 해도 4명이 있었고, 자식도 3명이나 있었다. 물론, 드라마 주인공 김승유는 계유정란 전에 죽고 없었다. 공주의 남자의 이야기 구조는 납량극에서나 나올 스토리 구성이다.
 

전일에 정난(靖難)할 때 사람을 많이 죽이지 않으려고 하여 모두 너그러운 법[寬典]에 따랐는데, 근일에 대간(臺諫) 에서 와언(訛言)이 떠들썩하게 일어남으로 하여 간당(姦黨)의 근본(根本)을 모두 제거하자고 굳이 청하므로, 대신(大臣)에게 의논하였더니, 대신의 의논도 이와 같았다

..중략..

부처(付處)한 이용(李瑢)의 아들 이우직(李友直)과 황보석(皇甫錫)의 아들 황보가마(皇甫加麿)·황보경근(皇甫京斤), 김종서(金宗瑞)의 아들 김목대(金木臺), 김승규(金承珪)의 아들 김조동(金祖同)·김수동(金壽同), ..생략..을 죽여라


단종 2년 1454년 8월 15일


1453년 10월 10일 : 김승규와 김승벽의 두아들 차동과 사동이 죽음.

1453년 10월 11일 : 김종서 죽음

1453년 11월 23일 : 김승벽, 서자 김석대 죽음

1454년 8월 15일(추석) : 서자 김목대, 첫째 김승규 아들 김수동, 김조동 죽음


계유정란으로 노비가 되어 강곤에게 팔려간 며느리, 손녀 아강은 계유정란 때문에 강곤에게 노비가 된 것이 아니다. 실제는 사육신들이 수양대군(세조) 척살 쿠데타에 실패하고, 금성대군의 역모 여파로 그전에는 공노였다가 공신들의 사노비가 된 것이다.


이때 사육신들의 아내와 첩들과 딸들이 공신들의 노비가 되었다. 알고 보면 두고두고 김종서 일가와 사육신들은 악연의 연속이다. 더군다나 1457년 6월 금성대군이 순흥에서 반란를 모의한다는 말을 듣고 치계를 당하고, 금성대군을 사사시키라는 대신들의 간언이 있었으나 세조는 이를 물리친다. 1457년 9월 2일 의경세자가 죽는다. 일련의 사건이 김종서 일가에 쓰나미로 몰려온것이다. 김종서 일가는 사육신과 금성대군. 정종과도 악연의 연속인 것이다.


 

김승규(金承珪)의 아내 내은비(內隱非)·딸 내은금(內隱今)·첩의 딸 한금(閑今)은 영의정(領議政) 정인지(鄭麟趾)에게 주고,

김승규(金承珪)의 딸 숙희(叔熙)는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강곤(康袞)에게 주고

김승벽(金承壁)의 아내 효의(孝義)는 예조 참판(禮曹參判) 홍윤성(洪允成)에게 주고,

- 세조2년 1456년 9월 7일




<공주의 남자>에선 김승규의 아내와 딸 아강이 강곤의 노비가 되었지만, 실제는 영의정 정인지의 노비가 되는 것이다. 그것도 세조가 왕위에 오른 2년 후인 세조 2년, 1456년 9월 7일에 말이다.


형수와 조카를 빼돌릴 수 있는 때는 지금 드라마 시제인 1456년 9월 이후가 되어야 합리적이다. 문제는 형수와 조카와 김종서관련 여자들은 성종때 풀려나지만 말이다.  


그런데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는 김승유와 김종서가 정종과 경혜공주와 친하고, 금성대군과 친할뿐만 아니라, 사육신 이개와 스승관계에 세조를 척살할 계획을 세우고 정종과 금성대군과 함께 쿠데타를 꾀하고 있다.


물론,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한때의 적이라고 해도 공동의 적인 세조를 몰아내기 위해서 합종연횡은 당연하다. 적과의 동침처럼 극적인 설정이 없다. 단순히 처음부터 끝까지 한편이라는 것 보다는 말이다. 물론, 처음 사육신과 안평대군과 김종서.황보인은 한편이었다. 계유정란 시 사육신들이 배신을 때리고 살아남은 김종서 일파를 죽이는데 앞장섰지만 말이다.
 

이현로(李賢老)·이승윤(李承胤)·이개(李塏)·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 등이 교결(交結)하여 마음으로 굳게 맹세하고 ‘문하(門下)’라고 칭하고, 모두 도서(圖書)의 헌호(軒號를 지어서 서로 한때의 문사임을 자랑하였으나, 모두 농락(籠絡)당한 것이었다

..중략..


한때 (안평대군) 용(瑢)에게 아첨하는 자들이 용(瑢)에게 글을 보내는 데 한결같이 계서(啓書)와 같이 하여, ‘용비(龍飛)’·‘봉상(鳳翔)’·‘번린(攀鱗)’·‘부익(附翼)’·‘계운(啓運)’·‘개치(開治)’ 등과 같은 용어를 쓰고도 의혹하지 않았으며, 혹은 신이라 칭하는 자도 있었다. 정난(靖難) 한 뒤에 많이 얼굴을 바꾸고 꼬리를 흔들었으나, 세조는 모두 묻지 않았다

- 단종 1년, 1453년 5월 19일


집의(執義) 이개(李塏)가 본부(本府)의 의논을 가지고 아뢰기를,

“신 등이 지금 정부에서 아뢴 죄목(罪目)을 보니, 이용(李瑢)이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정분(鄭笨)에게 지시하여 심복을 병조(兵曹) 군기감(軍器監)에 포열(布列)하게 하였다 하였으니, 정분의 죄가 황보인·김종서에 못하지 않습니다. 허후(許詡)는 집정 대신(執政大臣)으로서 자주 용(瑢)의 집에 갔으니, 당여(黨與)인 것이 분명합니다. 조수량(趙遂良)·안완경(安完慶) 등은 용(瑢)과 더불어 비밀한 말로 약속하였고, 또 조수량은 용(瑢)의 금대(金帶)를 받았으니, 이것도 또한 용(瑢)의 당입니다. 조순생(趙順生)·이석정(李石貞)·지정(池淨) 등은 모두 무관(武官)으로서 용(瑢)의 집에 왕래하여 당원(黨援)을 하였으니, 청컨대 모두 율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그 나머지 지당(支黨) 이보인(李保仁) 등은 밤낮으로 용의 집에 모였으니 어찌 역모를 알지 못하였겠습니까? 또한 법에 의하여 논단하소서.”

- 단종 1년, 1453년 10월 28일



더군다나 이개를 비롯한 많은 사육신들이 안평대군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가 안평대군과 황보인, 김종서가 수양대군 일파에 척살되자. 배신을 때리고 김종서, 황보인, 안평대군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들을 단종을 압박해서 죽이라고 한사람들이 사육신들의 다수였고, 정난공신이 되었다.

더군다나 사육신들은 단종을 몰아내고 세조를 왕에 옹립하고 좌익공신이 된다.

한명회, 신숙주와 함께 단종폐위와 수양대군(세조) 옹립으로 좌익공신이 된 사육신 성삼문

임금이 좌익 공신(佐翼功臣)을 정하는데,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익현군(翼峴君) 이관(李璭)·한확(韓確)·윤사로(尹師路)·권남(權擥)·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를 1등으로 삼아 수충 위사 동덕 좌익 공신(輸忠衛社同德佐翼功臣)이라 이름하고, 정인지(鄭麟趾)·이사철(李思哲)·윤암(尹巖)·이계린(李季疄)·이계전(李季甸)·강맹경(姜孟卿)·윤형(尹炯)·최항(崔恒)·전균(田畇)·홍달손(洪達孫)·양정(楊汀)·권반(權攀)을 2등으로 삼아 수충 경절 좌익 공신(輸忠勁節佐翼功臣)이라 이름하고, 권공(權恭)·이징석(李澄石)·정창손(鄭昌孫)·황수신(黃守身)·박강(朴薑)·권자신(權自愼)·박원형(朴元亨)·구치관(具致寬)·윤사윤(尹士昀)·성삼문(成三問)·조석문(曹錫文)·이예장(李禮長)·원효연(元孝然)·한종손(韓終孫)·이휘(李徽)·황효원(黃孝源)·윤자운(尹子雲)·이극배(李克培)·이극감(李克堪)·권개(權愷)·최유(崔濡)·조효문(曹孝門)·한계미(韓繼美)·정수충(鄭守忠)·조득림(趙得琳)을 3등으로 삼아 추충 좌익 공신(推忠佐翼功臣)이라 이름하였다.

세조 1년 1455년 9월 5일 (음)



 



많은 사람들이 신숙주가 세종의 유명을 버리고, 조카인 단종을 폐위하는데 앞장섰다고 말하고 신숙주를 배신의 아이콘으로 쉬이 쉰다는 숙주나물을 만들어 버렸다.
신숙주는 한번의 배신을 했지만, 사육신은 3번의 배신을 하였다.

첫번째 안평대군과 김종서를 배신하고, 두번째 단종을 배신하고 세조를 옹립했으며, 세번째 세조를 배신하고 단종을 복위시켰다. 신죽주랑 비교해서 누가 더 많은 배신을 했을까? 신숙주가 하루만 지나면 쉰다는 숙주나물이라면 사육신은 3번 배신하고 돌고돌아 충신이 된건가?

가끔가다가 댓글로 충신인 사육신이 그럴리가 없다는 댓글이 달리고, 사육신의 후손인데 선조를 모욕하지 말라도 한다. 본인들이 정확히 사육신의 후손인지는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이글을 권한다.

그리고 세조가 쓴 문종, 단종, 세조실록을 어떻게 믿느냐고 합리화 시킨다.
물론, 세조의 입장을 강하게 어필할 수는 있다. 문종실록과 단종실록 편찬에 사육신도 깊이 관여를 했었다. 문제는 당대 그들 스스로 언행에 당당하였다는 것이다. 유일종교관을 가지고 있던 박팽년이 내불당 관련해서 세종을 모욕하자 문종이 박팽년을 하옥시킨다. 하지만, 박팽년을 구원한 자는 배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신숙주였다. 선왕이 욕보인다고 해도 '언로는 열어야 합니다.'라면서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사육신이 처음 단종을 배신하고 수양대군을 옹립했다고 다시 단종을 옹립하려 시도한 것은 사육신들의 편향된(?) 정치관 때문이였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미화할 필요도 별로 없었다. 더군다나 조선의 사관들은 왕이 화장실(매화틀)에 가는데 까지 붓을 들고 따라다닐 만큼 철저했다. 또한 사관이 아니며 실록을 볼수도 없었다. 문종의 경우 "사관이 너무 가까이서 왕의 말을 적는다고 밖에 나가서 기록을 하면 안되겠니"라며 푸념하는 장면까지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세종은 환관과 비밀 이야기를 하는데 사관을 내보냈다고 실록은 기록까지 한다. 자신들의 조상을 미화하기 위해서 역사까지 왜곡할 필요는 없다.
 

결의를 숭상하여 근본을 배양하면 될 것이다. 성삼문·박팽년 등의 일은 대신에게 물어야 하겠으나, 정몽주·길재 등의 일은 대신에게 묻지 않더라도 그 후손을 녹용(錄用)해야 하리라.”

하매, 이청(李淸)이 아뢰기를,

“아뢴바 절의를 배양하는 일은 지당합니다. 숭장해야 할 자는 성삼문·박팽년뿐 아니라 이개(李塏) 등도 숭장해야 합니다. 그때에는 불의(不義)인 듯하였으나, 대의(大義)가 정해진 뒤에는 사람들이 도리어 의(義)로 여기니 이제 난신(亂臣)이라는 이름을 가할 수 없습니다.”

하고, 기준(奇遵)이 아뢰기를,

성삼문·박팽년 등이 세조에게는 역적이 되고 노산에게는 충신이 되는데, 그때에는 부득이 죄를 가하였으나 이제는 무슨 혐의가 있겠습니까? 예전에 정공(丁公) 이 한 고조(漢高祖)에게로 돌아가매 한 고조가 참(斬)하였는데, 이 일이 성삼문의 일과 서로 비슷합니다. 단병(短兵) 으로 교전할 때에는 정공이 한 고조에게 덕이 되었으나 항우(項羽)에게는 실절(失節)이 되었으니, 한 고조가 개국(開國)한 뒤에는 참하여 절의를 격려한 것은 마땅합니다. 성삼문·박팽년을 이제껏 난신으로 지목하니 어찌 이처럼 답답한 일이 있겠습니까? 그 사람의 자손은 이제 없거니와, 그 외자손(外子孫)이 혹 있더라도 저애(阻礙)됨이 없지 않을 터이니 이것이 어찌 옳겠습니까! 다 허통(許通) 해야 합니다. 신이 매양 아뢰고자 하였으나 못한 것이거니와, 만약에 아뢴 대로 도타이 숭장하면 곧 국맥(國脈)을 연장하는 방도가 될 것입니다.”

하고, 민수원이 아뢰기를,

“좌우가 아뢴 대로 권장하여 사기를 격려해야 합니다.”

하고, 이청이 아뢰기를,

“세조께서 하늘에 응하고 백성을 따랐는데, 성삼문 등이 오히려 노산을 복위시키려고 꾀하였으니 세조에게는 역적이 됩니다. 그러나 이제껏 난신으로 지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 정몽주의 일은 더욱 가상하고 아름습니다.”

하고, 기준이 아뢰기를,

“위란(危亂)할 즈음에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여 이와 같은 몇몇 사람이 있는 것은 워낙 드문 일이니 추장(推奬)해야 합니다. 무왕(武王)은 지극히 거룩한데도 백이(伯夷)·숙제(叔齊)가 오히려 말을 당기면서 간(諫)한 까닭은 군신(君臣)의 분수를 어지럽혀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하고서야 나라가 쇠약해지더라도 전복하는 화(禍)가 없고, 어진 사람이 많이 나서 사직(社稷)이 힘입을 바가 있을 것입니다. 세조조에서도 어찌 성삼문 등의 절의를 몰랐겠습니까마는 문죄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감히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조정에 의논하면 될 것입니다 - 중종 12년, 1517년 8월 5일



사육신이 충신의 반열로 돌아간 때는 중종반정이 성공한 이후에 죄는 있지만, 상육신의 결의는 본받아야 된다고 하면서 시작된다. 선비의 결의는 본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건 조선의 예 뿐만 아니라 어떤 나라도 하는 짓이다.


조선의 선비에게는 ‘불사이군’뿐만 아니라 연산군에 반해서 중종반정을 하는 세력처럼 임금이 임금답지 않았을 때 임금을 없애고 새로운 군주나 역성혁명도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얼마나 조선의 왕들이 신하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겠나? 언제 자신들의 목을 쳐 없앨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불어 조선의 왕들 스스로 자신들이 잘못하거나 신하들의 눈에 벗어나면 왕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유학자였다. 단지 왕은 유학자의 대표자 정도로 생각을 했다. 더군다나 중종반정세력의 명분을 찾는데 사육신에서 찾는 것이다. 세조의 반정이나, 사육신을 죽어도 마땅한 세력으로 남기면 중종반정을 성공한 세력자체도 역모를 꾀한 세력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합리화하는데 사육신만한 세력이 없었다.

사육신이 충신이면 김종서는 역신이 된다. 더군나다 김종서를  척살한 세조는 쿠데타를 진압한 세력이 된다. 사육신과 함께 단종을 몰아낸 세조는 조선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일을 한것이다. 이런 딜레머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이해당사자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수 밖에 없는가를 보는 것이다. 역사를 단순하게 보지 않는것이다.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은 드라마를 보면서 역사인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드라마를 보고서 역사를 알았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누구누구는 어떻네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은 드라마와 역사를 혼돈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드라마는 역사를 알고 보면 재미가 있다. 글쓴이의 대부분의 글은 드라마 리뷰같지만, 실제는 드라마가 망친 역사바로 찾기 리뷰이다. 오죽하면 카테고리가 [역사이야기]이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김승유와 신면이 불쌍하다.  신면이 왜 불쌍하냐는 사림이 있다. 친구를 배신하고, 친구의 연인을 빼앗고, 단종을 배신했는데라면서 말이다. 대표적인 드라마를 역사로 아는 사람들의 전형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기회에..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스승 이개 알고보면 계유정란공신, 사육신 단종폐위 좌익공신들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계백, 의자왕, 반란 실패한 사택비 죽고, 교기 왜로 쫓겨난다?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적과동침, 단종 죽인건 사육신 충신인가? 배신 아이콘인가?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광개토태왕, 계백, 사극 문헌고증 철저히 파괴해야 시청률 오른다?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계백, 의자왕, 계백 백제 패망후 왜 천황 될지도?
2011/09/06 - [역사이야기] - 계백, 동명제 초혼관 의자, 교기와 흥수는 왜 왜색풍 옷을 입었나? 사실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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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ㄹㄷhttp:// BlogIcon ㄷㅇㄷ 2011.09.23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육신이 충신이면 김종서는 왜 역신이 되는것인가요? 사육신을 충신으로 봐도 김종서도 그 나름으로 충신으로 볼수 있는거 아니에요?

    • 의문 2011.09.23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양립이 가능할 것 같은데, 무작정 양립이 안되는 것처럼
      글을 쓰시니 다소 불편함이 있긴 하네요.

      게다가 기록에 대한 신뢰가 조금 지나치기도 합니다.

      이정도의 신뢰라면,

      [세조는 엄청나게 종친들을 챙겼다. 종친을 죽이고,
      귀양보내고 그런 건 전부 다 신하들 상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거다. 진정으로 불쌍한 것은 세조다.]

      라는 결론을 내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기록도 전후사정을 보아가며 해석을 해야할 텐데...
      흠...

  2. 하하 2011.09.24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월 21,22 국내최고 라이브가수 박완규 ..... 그리고 부활 패밀리 총출동!

    그동안 방송을 통해 볼수없었던 그와 그들의 최고의 무대, 2011년 10월 "사랑" 이라는 테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최고의 무대로 부활하는 이번 콘서트에서는 박완규 외에 부활 패밀리의 총출동으로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국내 그룹 부활의 보컬 정동하 그리고 역대보컬 이성욱, 정단 위대한 탄생의 최고의 히트메이커 등이 함께
    참여해 박완규와 함께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그동안 방송이나 공연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환상적인 무대 출연진들과 함께 꾸미는 최고의 하모니!

  3. 루비 2011.09.25 0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 또 흑백논리 써놓으셨네. 대체 김승유가 실존인물이고 계유정난전에 죽었다는건 어디서 또 들으셨데?; 님보면 참..머랄까 사극에 한맺힌 사람 같아요.ㅡㅡ 자료라고 내세우는것들도 유리한 부분 추리시고 님이 말하는 진실은 야사에서 이야기들 적절히 섞어 배합. 님아 접때도 리플 한번 달았었는데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에요. 재밌게 보면 그만이지 무슨 작가가 시간을 왜곡하니같은 말을 매번 하시나요? 공남 퓨전사극이에요. 퓨전 몰라요? 퓨전? 그냥 보고나서 역사공부했다 그런말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큰 줄기만 기억하지 뭐 드라마 달달외워서 다닙니까? 언제 몇월몇일 누가 죽었는지 날짜 기억하고 다니겠습니까? 님 생각에 아닌거 같으면 뭐 어차피 님 블로그니까 아닌거 같다고 쓰는건 좋은데 왜 늘 남을 비판하고 님말만 진리라고 우기십니까? 저번엔 어떤분을 역적집안 만드시더니.. 님 진지하게 이야기 하는데요, 진짜 성격 특이하십니다. 오프라인에서도 그러시는지? 주변인들 정말 피곤할거 같아요. 무서워서 무슨 말 하겠어요? 말꼬리 잡고 늘어질텐데.. 이 드라마 온통 불만이면서 드라마 꼬박꼬박 챙겨 보시는게 더 웃김. 님 공남작가한테 원수졌어요?ㅎ

    • 1234 2011.09.29 0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퓨젼을 진짜로 착각해서 정신병자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잉여 쓰레기가 있어서 쓰시는 것 같은데

  4. 2011.12.19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Favicon of http://huntingpastore.com BlogIcon 고명진 2012.01.02 2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일을 나의 친구를 계속, 이거 정말 끝내 준다

  6. Favicon of http://greenstarenergysaver.com BlogIcon 인형 2012.01.04 0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

  7. Favicon of http://meetthetanners.com BlogIcon 아가 2012.01.04 2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박 겉 핥기

  8. Favicon of http://no-credit-check-cell-phones.com BlogIcon 박기동 2012.01.07 0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9. Favicon of http://john.is-a-liberal.com BlogIcon 애비 게일 2012.04.06 0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속이고 있군요.

  10. 썰영 2012.04.23 0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으로 다행입니다. 역사를 오도하고 편협화한 극이 재미와 인기에 힘입어 역사를 그르칠까 열려했는데 올바른 사고와 역사적인 사서를 인용해 정확한 연도와 날짜를 표시해 사실에 입각한 해석과 분석적인 설명 을 하시고 역사적인 환경에서 일어난 사건을 객관적 입장에서 정리한것은 매우 중요하고 대단한 일입니다.
    글 전체에서 바른 역사인식을 알게됩니다. 모르고 따르는 일반 대중의 생각을 바르게 하는 모범답안 같습니다. 작가는 인기와 흥미에 영합 할수 있지만 역사를 오도하여 선인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잘못을 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흑백 논리나 개인적인 섣부른 판단으로 왜곡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역사를 오도하고 가치관을 혼란하게 하여 후손들의 판단을 흐리게하면 역사와 민족에게 죄인이 될테니까요.
    개인의 영달을 위해 뜻을 수시로 바꾸는 사람보다 오히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힘써 일한 충신 애국자 대인을 변절자 역적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는 연속극은 창작이라도 배격해야 할것입니다.
    역사의 인물을 인용할때는 사실에 입각해 좋은 점을 나타내던지 그의 숭고한 사상과 철학을 계승해야하는것이지 편협한 생각으로 위인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버린다면 후손들의 귀감이 무엇이며 무엇을 배운답니까? 글만 쓰고 재미만 있고 인기가 높다고 바른길이 아닌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는것은 좋은작가라고 할수 없지요. 바른 판단을 하도록 도와준 윗 글에 찬사와 존경을 보냄니다.

  11. Favicon of http://ginger.gotdns.org BlogIcon 마리아 2012.05.08 2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유대인 음식만 먹습니다.

  12.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륭한 읽기 위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싶은 찾기 위해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확실히 그것의 모든 조금을 즐기는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새로운 물건을 체크 아웃하는 당신이

  13. Favicon of http://www.hometravel-luggagebag.com/ABS-luggage.html BlogIcon ABS luggage 2012.08.21 1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llkjihygjhfg

  14. Favicon of http://www.blondinensex.ch/ BlogIcon Blondinensex Videos 2012.12.30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의 영달을 위해 뜻을 수시로 바꾸는 사람보다 오히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힘써 일한 충신 애국자 대인을 변절자 역적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는 연속극은 창작이라도 배격해야 할것입니다.

  15. Favicon of http://ford.grupocaiuas.com.br/fiesta-sedan BlogIcon fiesta sedan 2013.01.25 0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Google에서 블로그 사이트를 발견하고 조기 게시물 몇 가지를 확인하십시오. 아주 좋은 작동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합니다. 난 그냥 내 MSN 뉴스 리더에 RSS 피드를 추가. 나중에 당신에게서 더 읽어 앞으로 추구! ...

 

<공주의 남자>는 모티브를 제공한 조선말 서유영의 <금계필담>에서 세조(수양대군)의 딸 세희와 김종서의 손자는 누구일까?


금계필담에서는 세령(세희)가 계유정란을 눈치를 채고 수양대군에게 피를 흘리지 말 것을 고하다  수양대군의 눈 밖에 나서 세희의 어머니인 정희왕후가 세희를 죽은 것으로 꾸며 유모와 같이 도망가서 살도록 조치를 하였다고 한다.


김종서의 손자는 난 중에 유모의 손에 이끌려 도망한 곳이 세희가 살고 있던 동굴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세희와 김종서의 손자는 서로 사랑에 빠지고 누구누구의 자식인 것이 알려졌지만 이 또한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혼인을 하게 되었다는 미담이다.


사실 수양대군과 세희와 김종서 손자의 미담은 사랑으로 원수를 극복한다는 미담은 될 수 있으나 드라마로 극화하기에는 어딘가 단순하고 부족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공주의 남자> 작가는 계유정난 전에 이들이 사랑에 빠진 것으로 극화를 한다면 좀 더 재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더불어 계유정란으로 파국을 맡은 경혜공주와 세희 그리고 이들을 사랑하는 3인을 등장시켰다. 계유정난으로 피해를 보는 경혜공주와 정종, 그리고 계유정란으로 죽마고우인 3인이 얽히고설키는 관계를 묘사하고 싶었을 것이다. 더불어 복수극까지 포함한다면 금상첨화일것이다. 


동기보다 절친한 경혜와 세희의 한남자를 두고 다투고, 경혜를 끔찍이 사랑한 정종과 경혜가 사랑한 남자, 하지만 운명처럼 수양대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긴 경혜와 수양때무에 어쩔수 없이 선택한 정종, 세희를 짝사랑하는 신면과 원수의 딸을 사랑하는 주인공. 또한, 우정보다는 사랑 때문에 친구를 배신하는 신면의 존재가 있다면 보다 극적일 수 있겠다.고 작가는 생각한 것 같다. 이런 구도라면 식상한 삼류신파이지만, 충분히 극적인 드라마적인 요소가 갖춰졌다고 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조차 계유정란에서 김종서의 자식으로 유일하게 존재가 사라진 김승유,와 수양의 둘 딸 중 의숙공주를 제외하고 사라진 딸, 이들이 기록에서 사라진 이유를 둘이 사랑을 해서 수양(세조)가 기록을 말살시켰다라는 미스테리적인 합리화를 한다면 충분히 승유와 세희(세령)의 관계가 성립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을 한 것 같다.


문제는 김종서의 아들 승유를 등장시키지 않더라도 금계필담의 원전과 조선왕조실록을 훼손하지 않더라고 충분히 극적으로 극화할 수 있었지만, 작가는 김종서의 손자보다는 김종서의 아들로 바꾸는 무리수를 두었다. 왜 꼭 그런 무리수를 두어야만 했는지 명확하게 드라마 공주의 남자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승유와 수양의 딸과 사랑을 하는 관계로 전환하는 순간 극은 산으로 가버린 것이다.


1453년 계유정란 때 김종서는 71살의 고령이었다. 아무리 막내아들 승유가 어리더라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승유는 유부남일 수밖에 없었다. 김승유에게는 이미 여흥민씨와 결혼을 한 상태였다. 계유정란 시 승유의 어린 아들 효달이 유모의 손에 이끌려 살아남았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세령이 자식이 있는 유부남 김승유를 사랑한 것이 된다. 더군다나 김승유가 계유정란이란 급박한 상황에서 등장하지 못한 것은 이미 계유정란 전에 죽었다고 봐야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김종서의 첩의 아들 석대와 목대까지 기록으로 남아 있고, 김종서의 첩과 김승규의 첩, 그리고 김승규의 여식까지 기록으로 남아 있는데 김승유만 빠졌다면 계유정난 이전 김승유는 죽었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계유정난으로 살아남은 김종서의 후손은 없을까? 금계필담에 등장하는 세희와 김종서의 손자는 누구일까?


김종서는 3명의 적자와 2명의 서자가 있었다. 적자 중 큰아들 김승규, 작은 아들 김승벽, 그리고 셋째인 김승유가 있고, 서자로는 석대와 목대가 있었다.



김승규는 계유정란 때 김종서를 보호하다 칼에 맞아 죽는다. 그리고 김승벽.김석대는 계유정란 때 지방으로 도망을 갔다가 잡혀서 11월23일에 죽는다. 이들이 이때 죽은 이유는 이징옥이 계유정란 10.10일 김종서와 그의 일파가 죽고 이징옥이 자신도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반란을 일으키다 10.20일 죽고, 두 난에 남은 자들이 반란에 연루되었다는 죄목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김종서(金宗瑞)의 아들 김승벽(金承璧)은 충청도(忠淸道)의 청주(淸州)·공주(公州)·전의(全義) 등지로 가고, 첩의 자식 김석대(金石臺)는 충주(忠州)로 가고 - 계유정난 1453년 10월 12일


 황보석(皇甫錫)·황보흠(皇甫欽)·김승벽(金承壁)·김석대(金石臺)·이승윤(李承胤)·민보창(閔甫昌)·민보해(閔甫諧)·윤경(尹經)·윤위(尹渭)·윤탁(尹濯)·윤식(尹湜)·이수동(李秀同) 등의 아들로 나이 16세 이상된 자는 거제·남해·진도·제주 등의 관노(官奴)로 영속(永屬)시키고, 15세 이하는 그 어미에게 주어 기르게 하여, 장정이 된 뒤에 관노에 속하게 하라.”

- 단종 1년 1453년 11월 23일



김종서의 아들 김목대와 김승규의 아들 조동, 수동은 계유정란이 끝난 이듬해 다시 한 번 죽임을 당한다.
 

김종서(金宗瑞)의 아들 김목대(金木臺), 김승규(金承珪)의 아들 김조동(金祖同)·김수동(金壽同)를 죽이다. - 단종실록 단종 2년 1454년 8월 15일


하지만, 김승규의 막내아들 행남은 송시열의 5대조의 도움으로 도망하여 살아남는다.

김승벽의 어린 막내아들 팽도 유모의 손에 살아남고, 김승유 어린 아들 효달도 유모의 손에 살아남아 피신한다.


다만 김승벽의 큰아들 석동은 16살이 되지 않아서 관노로 영속하다 세조(수양대군) 1년  방면된다.


“김승벽(金承璧)의 아들 김석동(金石同)은 그 나이 16세가 차기를 기다려서 전라도(全羅道) 극변(極邊)의 관노(官奴)로 영속(永屬)시키소서.” - 1454년 8월 15일


흥의(興義) 일수로 정역한 원득룡(元得龍)·김석동(金石同)·방면 1456년 5월 23일 세조 2년



그래서 김종서의 자손 중 변란에서 살아남은 자는 김승규의 막내 3살아들 행남과 승벽의 큰아들 김석동(중남), 3째아들 삼동(팽), 김승유의 효달이다.



세령은 세조의 5남 2녀 중에 장녀일 가능성이 높다. 1450년 세종이 죽을 때 수양대군의 두딸이 어렸다고 하였다. 수양대군의 큰아들 의경세자(덕종)는 1438년생이고, 둘째 딸인 의숙공주는 1442년 생이다. 그러니 맏딸인 세령(세희)는 1439년 ~ 1441년생일 수 밖에 없다.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란이 일어나는 시기 세령의 나이는 적게는 13살, 많게는 ~15살이다. 이때에 세령은 충분히 결혼할만한 성인이었고 수양대군과 맞서서 반정의 부당성을 설파할 나이이다.


그러니 세령(세희)와 결혼할 가능성이 있는 나이의 대에 해당하는 김종서의 손자 후보군은 김승벽의 큰아들 석동(중남)과 셋째인 삼동(팽), 그리고 승유의 아들 효달이다.


이중 승벽의 3째인 삼동(팽)은 능천구씨와 결혼을 하고, 승유의 아들 효달은 하남정씨와 결혼을 한다. 그래서 세령(세희)와 결혼할 가능성이 15세 ~16세정도 연령대에 있는 김종서의 손자는 누구와 결혼했는지 모르는 김승벽의 큰아들 석동(중남)밖에 없다.


문제는 김석동(중남) 또한, 계유정란 이후 정역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에 금계필담에 의하면 계유정란 시 유모의 손에 이끌려 도망한 김종서의 손자와 일치하지 않는다.


결국 남은 자는 김종서의 서자이자 김승유의 형들인 김석대와 김목대의 자식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금계필담처럼 세령과 결혼할 가능성이 높은 김종서의 손자는 김석대나 김목대의 자식들 중 하나 일 것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유령이고 유부남에다 한참 연상인 세령과 승유를 엮을 필요없이 서자의 자식 중 한명을 세령과 사랑하는 사이라고 했다면 보다 역사적인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까 한다. 승유하나가 들어가서 이야기 전체 골격을 흔들어 버리고 있다.


신면은 승지(承旨)가 된 지 5년이 되었어도 일찍이 과실이 없었으며, 임금의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 자못 자상하고 명확하였다. 죽을 때의 나이가 30이며, 아들이 둘이 있으니, 신용관(申用灌)과 신용개(申用漑)이다. - 세조 14년(1467년) 이시애 난을 진압하다 죽다.


충분히 정종과 신면은 친구일수가 있다. 신면은 1467년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30살의 나이로 죽는다. 신면는 5~6살의 신용관, 신용개 두 아들을 두었다. 신면은 1438년 생으로 수양대군의 큰아들 덕종(의경세자)와 같은 나이다.

1453년 계유정란 시기 신면의 나이는 16살 이었다. 승벽의 아들 석동(중남)의 나이도 14~15세이고, 세령(세희)는 13~15살이었으니 <공주의 남자>처럼 신면이 세령을 짝사랑 했을 개연성도 있고 친구이자 연적인 석동(중남) 때문에 수양대군의 편에 서지만, 우정과 사랑과 충에서 혼란을 겪는다는  충분한 개연성도 있다.


더불어 공주의 남자가 알고 보니 김종서의 서자들의 자식중 하나라면 좀 더 극적이지 않았을까? 이를 문헌고증이라고 한다. 단지, 승유를 김종서의 손자인 승벽의 아들 중남(석동)이나 돌아이나 돌쇠라고 바꿨다면 충분히 개연성 있는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다. 무리하게 승유를 등장하는 순간 산으로 간 유령드라마가 되었지만 말이다.


사실 금계필담에서 세희와 김종서의 손자가 난을 피해 동굴에서 생활했다는 설화는 역사적인 기록과 순천김씨족보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어쩌면 김종서의 손자 석동(石同)의 이름에서 모티브가 되었을 수도 있다.


단순히 이름만 빌린 역사와 무관한 사극이 아닌 역사 속에서 살아 숨쉬는 멜로사극이 개연성도 있고 극에 좀 더 몰입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역사적인 인물을 등장시킨 이유는 개연성과 서사구조의 완결성 그리고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이고자 하는 것이지 단순히 이름만 빌리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승유는 섬에서 탈출한 후 아픈 몸을 이끌고 김종서의 집을 찾아간다. 그런데 패문이 되어 있다. 그리고 승유는 죽은 김종서와 죽은 줄 알고 있는 형수와 어린 조카의 환청을 듣는다.


글쓴이(갓쉰동)은 블루스 윌리스가 주연한 심리학자인 자신이 총에 맞아 죽은 유령인줄 모르고 유령이 보인다는 소년과 대화하면서 심리치료를 한다는 <식스센스> 영화가 떠올랐다. 승유 너가 이미 죽은 자이고 보는 자들이 산자라고 말해주고 싶은걸 참았다.


그만큼 처음 기획과 사전조사가 중요하다. 사실 유령일 수밖에 없는 승유가 공주의 남자 극중에서 열심히 동분서주 돌아다니지만 민폐만 끼치고 허당인 경우가 많다.
 


간신히 살아나서 기껏 찾아간 곳이 자신의 집이고, 원수를 갚겠다는 것도 아니면서 수양대군의 집까지 찾아가 신면과 세령의 사랑의 시작을 목도하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까지 보여준다. 승유는 재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작가의 뇌속에는 이유도 따지지 않고 닥치고 사랑만 들어 있나? 전혀 보는 사람이 승유의 아픈 사랑을 느낄수가 없다. 그러니 승유의 인물 성격도 살리지 못해서 오죽하면 민폐 승유이겠는가?

어쨌든 <식스센스>처럼 <공주의남자>가 세령(문채원)과 신면(송종호)이 유령인 승유(박시후)를 달래는 진혼치료라는 반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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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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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arden0817.tistory.com BlogIcon garden0817 2011.08.26 06: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지고는 못살아 보느라 공주의 남자는 이제 재방송으로 보려고합니다 ㅎ
    잘보고갑니다 좋은하루되세요

  2. dbfla 2011.08.26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재미나게 잘 보고 있는데
    재미나 없나요?

  3. Favicon of https://writerly.tistory.com BlogIcon 파바석계 2011.08.26 10: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주의 남자 다시보기로 봐야겠네요.. 띄엄띄엄봐서 ㅎㅎ;

  4. ligi 2011.08.26 1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주의 남자는 사극이긴해도 시대만 빌린거라 생각하며 잘 보고있는데 너무 조목조목 따지면 재미없어요.

  5. 쓰레기 글 2011.08.26 2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가 이미 김종서의 손자와 수양대군의 딸의 얘기지만 손자가 되면 할아버지 대의 갈등에서는 아무래도 둔감해지기 때문에 아들로 설정했고, 김종서와 수양대군의 역사상 나타나는 34년의 나이차에 그나마 가깝게 김종서의 막내아들로 설정한다고 했고, 공주의 남자에 조금만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김승유가 실은 손자라는 것을 다 압니다.
    원수의 자식간에 사랑을 할때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떤 갈등을 하게 될지 인간성을 그리는 드라마에 아들이면 어떻고 손자이면 어떻습니까? 실제 역사상 김승유캐릭터가 아들이 되었건 손자가 되었건 원수집안의 이성에게 사랑을 느낄때 갈등하게 되는 것은 강도의 차이이지 마찬가지입니다. 드라마 설정도 읽어보지 않고 지엽적인 지식이나 자랑하려고 아들이 되면 유부남과의 사랑이네, 역사왜곡이네 하는 드라마감상을 할줄 모르는 쓰잘데 없는 글이나 쓰는 갓쉰동이 쓰레기이고 교활한 드라마 방해꾼이며 시청자에게 민폐끼치는 인간입니다.

  6. 내ㅜㅎㅁ그 2011.08.28 2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위대하십니다. 직업이 의심될 정도로 상세하시네요.

  7. 황당. 2011.08.29 0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 꼬인 글이네요. 감정이 메마르신건지 드라마를 드라마로 보시지않고, 무슨 대단한 지식을 자랑하는양 이렇게 오만하게 쓰신 글보니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목욕일 kbs1에서 같은시간 10시에 역사스페셜이란 방송을 합니다. 그 방송보세요. 이렇게 꼬인 시점으로 공주의 남자를 보신다니 드라마가 다 아깝습니다.
    역사스페셜 꼭 보세요. 님에게는 쓰레기같은 드라마보며 시간 축내서 이런 민폐스런 글 끄적이지 마시고요.
    글에서 오만함이 물쒼 풍깁니다.

  8. 바다 2011.08.29 2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걸 보고 아는게 병이라고 하나 봅니다.

  9. 정통사학 2011.08.30 0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 해이~ ㅋㅋㅋ 김종서 어찌 친손자만 생각하누.. 외손자일 가능성은 있지 않는감..ㅋㅋㅋ

  10. 드라마는 2011.09.09 2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일뿐~^^

  11. Favicon of http://etboosters.com BlogIcon 원숭이 2012.01.01 06: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전체에 서있다면 당신은 파고있어, 당신은 파고를 중지해야합니다

  12. Favicon of http://blackcollegewire.com BlogIcon 유병수 2012.01.04 0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13. Favicon of http://etboosters.com BlogIcon 원숭이 2012.01.05 0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14. Favicon of http://adamsfamilypainting.com BlogIcon 이청용 2012.01.07 04: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

  15. Favicon of http://ireland.blogsite.org BlogIcon 루시 2012.04.05 2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16. Favicon of http://indigo.dnsdojo.com BlogIcon 브룩클린 2012.05.08 2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죄송합니다.

  17.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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