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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공주의 남자>에서 궁을 나간 세령은 빙옥관에서 신면의 손에 이끌려 궁에 다시 돌아온다.


궁에 돌아온 세령은 세조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아버지의 죄업을 자식들에게까지 전달하겠는냐는 것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의경세자(숭:장)(덕종:성종의 아버지)이 피를 토하고 쓰러지자, 세조(수양대군)은 그동안 드라마에서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세조의 뒤를 이어 예종이 되는 둘째 왕자 해양대군(황)를 궁으로 불러들인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 설정으로는 정희왕후 처가에서 길러진 것으로 그리고 있다.


어쨌든 의경세자 숭(장)은  곧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의경세자는 1438년 생으로 20살이 되는 해에 죽는다. 드라마 시제는 1456는 6월 사육신의 쿠데타 실패와 의경세자(장)이 죽은 1457년 9월 2일 사이라는 것을 뜻한다.
 


수양대군은 악담을 퍼붓는 세령에게, 신면을 들어오게 하면서, 신면은 세령과 결혼할 수 없다고 말을 한다. 세령은 신면 너의 노비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시청자를 낚시하는 장면에 지나지 않지만, 신면의 노비가 된다고 해서 세령과 결혼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첩으로 삼으면 되니 말이다. 어쨌든, 그동안 신면은 수양대군에게 끊임없이 이용만 당한 것이 된 것인가? 아니면 세령공주를 노비로 부리니 좋아라 해야 하는 것인가?


<공주의 남자>에서는 1450년부터 신면은 세령을 향한 해바라기 였고, 2번의 결혼 식 실패를 맛봐야 했다. 7년 동안 세조의 노비였으니 신면의 노비가 된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어짜피 공주의 남자는 요즘으로 치면 막장 멜로 시대극이기 때문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시제는 무의미 하다. 작가의 작의적인 시간의 꼬임이 있다. 어쩌면 공주의 남자만의 시간의 왜곡현상이 있어서 블랙홀이 형성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실존인물이고 계유정란 전에 죽었던 김승유가 살아나 젊음을 유지하고 세령과 사랑놀음을 하고 있고, 공주의 남자에서 하루는 1년처럼 빠르게 진행된다. 더군다나 미래로 과거로 지멋대로 왔다리 갔다리 황당 타임머신을 타고 다닌다.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이 끝나고 김승유가 강화도에서 1박2일 입수를 하고 나오니 1년이 지나버렸다.


강화도에서 살아나 대호로 알리게 되는 온녕군을 암살하고 신죽주를 죽이려 실패하자, 세조와 한명회는 온녕군을 죽인 배후는 단종과 정종과 금성대군이 획책한 것이라며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다. 결국에는 김승유가 단종을 몰아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것이 된다.
 


하지만, 온녕군이 죽은 때는 1454년 5월 12일 이었고, 세조(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른 때는 1455년 6월 11일(윤)이였다.
 

단종 2년, 1454년 5월 12일,  온녕군(溫寧君) 이정(李裎)이 졸(卒)하였다

 

위키백과 사전에는 1453년 졸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1453년 10월 계유정란이 끝나고 김종서의 첫째아들 김승규의 아내와 손녀 아강이 강곤의 집에 노비로 팔린 것으로 그렸고, 세령과 신면이 강곤의 집에서 아강과 형수를 빼돌려 살게하다. 김승유가 돌아오자 빙옥관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그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주의 남자를 보고 김종서는 모두 절손된 것으로 알고, 김종서의 살아남은 후손들은 족보를 샀는줄 안다. 하지만, 김종서의 살아남은 손자만 해도 4명이 있었고, 자식도 3명이나 있었다. 물론, 드라마 주인공 김승유는 계유정란 전에 죽고 없었다. 공주의 남자의 이야기 구조는 납량극에서나 나올 스토리 구성이다.
 

전일에 정난(靖難)할 때 사람을 많이 죽이지 않으려고 하여 모두 너그러운 법[寬典]에 따랐는데, 근일에 대간(臺諫) 에서 와언(訛言)이 떠들썩하게 일어남으로 하여 간당(姦黨)의 근본(根本)을 모두 제거하자고 굳이 청하므로, 대신(大臣)에게 의논하였더니, 대신의 의논도 이와 같았다

..중략..

부처(付處)한 이용(李瑢)의 아들 이우직(李友直)과 황보석(皇甫錫)의 아들 황보가마(皇甫加麿)·황보경근(皇甫京斤), 김종서(金宗瑞)의 아들 김목대(金木臺), 김승규(金承珪)의 아들 김조동(金祖同)·김수동(金壽同), ..생략..을 죽여라


단종 2년 1454년 8월 15일


1453년 10월 10일 : 김승규와 김승벽의 두아들 차동과 사동이 죽음.

1453년 10월 11일 : 김종서 죽음

1453년 11월 23일 : 김승벽, 서자 김석대 죽음

1454년 8월 15일(추석) : 서자 김목대, 첫째 김승규 아들 김수동, 김조동 죽음


계유정란으로 노비가 되어 강곤에게 팔려간 며느리, 손녀 아강은 계유정란 때문에 강곤에게 노비가 된 것이 아니다. 실제는 사육신들이 수양대군(세조) 척살 쿠데타에 실패하고, 금성대군의 역모 여파로 그전에는 공노였다가 공신들의 사노비가 된 것이다.


이때 사육신들의 아내와 첩들과 딸들이 공신들의 노비가 되었다. 알고 보면 두고두고 김종서 일가와 사육신들은 악연의 연속이다. 더군다나 1457년 6월 금성대군이 순흥에서 반란를 모의한다는 말을 듣고 치계를 당하고, 금성대군을 사사시키라는 대신들의 간언이 있었으나 세조는 이를 물리친다. 1457년 9월 2일 의경세자가 죽는다. 일련의 사건이 김종서 일가에 쓰나미로 몰려온것이다. 김종서 일가는 사육신과 금성대군. 정종과도 악연의 연속인 것이다.


 

김승규(金承珪)의 아내 내은비(內隱非)·딸 내은금(內隱今)·첩의 딸 한금(閑今)은 영의정(領議政) 정인지(鄭麟趾)에게 주고,

김승규(金承珪)의 딸 숙희(叔熙)는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강곤(康袞)에게 주고

김승벽(金承壁)의 아내 효의(孝義)는 예조 참판(禮曹參判) 홍윤성(洪允成)에게 주고,

- 세조2년 1456년 9월 7일




<공주의 남자>에선 김승규의 아내와 딸 아강이 강곤의 노비가 되었지만, 실제는 영의정 정인지의 노비가 되는 것이다. 그것도 세조가 왕위에 오른 2년 후인 세조 2년, 1456년 9월 7일에 말이다.


형수와 조카를 빼돌릴 수 있는 때는 지금 드라마 시제인 1456년 9월 이후가 되어야 합리적이다. 문제는 형수와 조카와 김종서관련 여자들은 성종때 풀려나지만 말이다.  


그런데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는 김승유와 김종서가 정종과 경혜공주와 친하고, 금성대군과 친할뿐만 아니라, 사육신 이개와 스승관계에 세조를 척살할 계획을 세우고 정종과 금성대군과 함께 쿠데타를 꾀하고 있다.


물론,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한때의 적이라고 해도 공동의 적인 세조를 몰아내기 위해서 합종연횡은 당연하다. 적과의 동침처럼 극적인 설정이 없다. 단순히 처음부터 끝까지 한편이라는 것 보다는 말이다. 물론, 처음 사육신과 안평대군과 김종서.황보인은 한편이었다. 계유정란 시 사육신들이 배신을 때리고 살아남은 김종서 일파를 죽이는데 앞장섰지만 말이다.
 

이현로(李賢老)·이승윤(李承胤)·이개(李塏)·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 등이 교결(交結)하여 마음으로 굳게 맹세하고 ‘문하(門下)’라고 칭하고, 모두 도서(圖書)의 헌호(軒號를 지어서 서로 한때의 문사임을 자랑하였으나, 모두 농락(籠絡)당한 것이었다

..중략..


한때 (안평대군) 용(瑢)에게 아첨하는 자들이 용(瑢)에게 글을 보내는 데 한결같이 계서(啓書)와 같이 하여, ‘용비(龍飛)’·‘봉상(鳳翔)’·‘번린(攀鱗)’·‘부익(附翼)’·‘계운(啓運)’·‘개치(開治)’ 등과 같은 용어를 쓰고도 의혹하지 않았으며, 혹은 신이라 칭하는 자도 있었다. 정난(靖難) 한 뒤에 많이 얼굴을 바꾸고 꼬리를 흔들었으나, 세조는 모두 묻지 않았다

- 단종 1년, 1453년 5월 19일


집의(執義) 이개(李塏)가 본부(本府)의 의논을 가지고 아뢰기를,

“신 등이 지금 정부에서 아뢴 죄목(罪目)을 보니, 이용(李瑢)이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정분(鄭笨)에게 지시하여 심복을 병조(兵曹) 군기감(軍器監)에 포열(布列)하게 하였다 하였으니, 정분의 죄가 황보인·김종서에 못하지 않습니다. 허후(許詡)는 집정 대신(執政大臣)으로서 자주 용(瑢)의 집에 갔으니, 당여(黨與)인 것이 분명합니다. 조수량(趙遂良)·안완경(安完慶) 등은 용(瑢)과 더불어 비밀한 말로 약속하였고, 또 조수량은 용(瑢)의 금대(金帶)를 받았으니, 이것도 또한 용(瑢)의 당입니다. 조순생(趙順生)·이석정(李石貞)·지정(池淨) 등은 모두 무관(武官)으로서 용(瑢)의 집에 왕래하여 당원(黨援)을 하였으니, 청컨대 모두 율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그 나머지 지당(支黨) 이보인(李保仁) 등은 밤낮으로 용의 집에 모였으니 어찌 역모를 알지 못하였겠습니까? 또한 법에 의하여 논단하소서.”

- 단종 1년, 1453년 10월 28일



더군다나 이개를 비롯한 많은 사육신들이 안평대군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가 안평대군과 황보인, 김종서가 수양대군 일파에 척살되자. 배신을 때리고 김종서, 황보인, 안평대군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들을 단종을 압박해서 죽이라고 한사람들이 사육신들의 다수였고, 정난공신이 되었다.

더군다나 사육신들은 단종을 몰아내고 세조를 왕에 옹립하고 좌익공신이 된다.

한명회, 신숙주와 함께 단종폐위와 수양대군(세조) 옹립으로 좌익공신이 된 사육신 성삼문

임금이 좌익 공신(佐翼功臣)을 정하는데,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익현군(翼峴君) 이관(李璭)·한확(韓確)·윤사로(尹師路)·권남(權擥)·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를 1등으로 삼아 수충 위사 동덕 좌익 공신(輸忠衛社同德佐翼功臣)이라 이름하고, 정인지(鄭麟趾)·이사철(李思哲)·윤암(尹巖)·이계린(李季疄)·이계전(李季甸)·강맹경(姜孟卿)·윤형(尹炯)·최항(崔恒)·전균(田畇)·홍달손(洪達孫)·양정(楊汀)·권반(權攀)을 2등으로 삼아 수충 경절 좌익 공신(輸忠勁節佐翼功臣)이라 이름하고, 권공(權恭)·이징석(李澄石)·정창손(鄭昌孫)·황수신(黃守身)·박강(朴薑)·권자신(權自愼)·박원형(朴元亨)·구치관(具致寬)·윤사윤(尹士昀)·성삼문(成三問)·조석문(曹錫文)·이예장(李禮長)·원효연(元孝然)·한종손(韓終孫)·이휘(李徽)·황효원(黃孝源)·윤자운(尹子雲)·이극배(李克培)·이극감(李克堪)·권개(權愷)·최유(崔濡)·조효문(曹孝門)·한계미(韓繼美)·정수충(鄭守忠)·조득림(趙得琳)을 3등으로 삼아 추충 좌익 공신(推忠佐翼功臣)이라 이름하였다.

세조 1년 1455년 9월 5일 (음)



 



많은 사람들이 신숙주가 세종의 유명을 버리고, 조카인 단종을 폐위하는데 앞장섰다고 말하고 신숙주를 배신의 아이콘으로 쉬이 쉰다는 숙주나물을 만들어 버렸다.
신숙주는 한번의 배신을 했지만, 사육신은 3번의 배신을 하였다.

첫번째 안평대군과 김종서를 배신하고, 두번째 단종을 배신하고 세조를 옹립했으며, 세번째 세조를 배신하고 단종을 복위시켰다. 신죽주랑 비교해서 누가 더 많은 배신을 했을까? 신숙주가 하루만 지나면 쉰다는 숙주나물이라면 사육신은 3번 배신하고 돌고돌아 충신이 된건가?

가끔가다가 댓글로 충신인 사육신이 그럴리가 없다는 댓글이 달리고, 사육신의 후손인데 선조를 모욕하지 말라도 한다. 본인들이 정확히 사육신의 후손인지는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이글을 권한다.

그리고 세조가 쓴 문종, 단종, 세조실록을 어떻게 믿느냐고 합리화 시킨다.
물론, 세조의 입장을 강하게 어필할 수는 있다. 문종실록과 단종실록 편찬에 사육신도 깊이 관여를 했었다. 문제는 당대 그들 스스로 언행에 당당하였다는 것이다. 유일종교관을 가지고 있던 박팽년이 내불당 관련해서 세종을 모욕하자 문종이 박팽년을 하옥시킨다. 하지만, 박팽년을 구원한 자는 배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신숙주였다. 선왕이 욕보인다고 해도 '언로는 열어야 합니다.'라면서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사육신이 처음 단종을 배신하고 수양대군을 옹립했다고 다시 단종을 옹립하려 시도한 것은 사육신들의 편향된(?) 정치관 때문이였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미화할 필요도 별로 없었다. 더군다나 조선의 사관들은 왕이 화장실(매화틀)에 가는데 까지 붓을 들고 따라다닐 만큼 철저했다. 또한 사관이 아니며 실록을 볼수도 없었다. 문종의 경우 "사관이 너무 가까이서 왕의 말을 적는다고 밖에 나가서 기록을 하면 안되겠니"라며 푸념하는 장면까지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세종은 환관과 비밀 이야기를 하는데 사관을 내보냈다고 실록은 기록까지 한다. 자신들의 조상을 미화하기 위해서 역사까지 왜곡할 필요는 없다.
 

결의를 숭상하여 근본을 배양하면 될 것이다. 성삼문·박팽년 등의 일은 대신에게 물어야 하겠으나, 정몽주·길재 등의 일은 대신에게 묻지 않더라도 그 후손을 녹용(錄用)해야 하리라.”

하매, 이청(李淸)이 아뢰기를,

“아뢴바 절의를 배양하는 일은 지당합니다. 숭장해야 할 자는 성삼문·박팽년뿐 아니라 이개(李塏) 등도 숭장해야 합니다. 그때에는 불의(不義)인 듯하였으나, 대의(大義)가 정해진 뒤에는 사람들이 도리어 의(義)로 여기니 이제 난신(亂臣)이라는 이름을 가할 수 없습니다.”

하고, 기준(奇遵)이 아뢰기를,

성삼문·박팽년 등이 세조에게는 역적이 되고 노산에게는 충신이 되는데, 그때에는 부득이 죄를 가하였으나 이제는 무슨 혐의가 있겠습니까? 예전에 정공(丁公) 이 한 고조(漢高祖)에게로 돌아가매 한 고조가 참(斬)하였는데, 이 일이 성삼문의 일과 서로 비슷합니다. 단병(短兵) 으로 교전할 때에는 정공이 한 고조에게 덕이 되었으나 항우(項羽)에게는 실절(失節)이 되었으니, 한 고조가 개국(開國)한 뒤에는 참하여 절의를 격려한 것은 마땅합니다. 성삼문·박팽년을 이제껏 난신으로 지목하니 어찌 이처럼 답답한 일이 있겠습니까? 그 사람의 자손은 이제 없거니와, 그 외자손(外子孫)이 혹 있더라도 저애(阻礙)됨이 없지 않을 터이니 이것이 어찌 옳겠습니까! 다 허통(許通) 해야 합니다. 신이 매양 아뢰고자 하였으나 못한 것이거니와, 만약에 아뢴 대로 도타이 숭장하면 곧 국맥(國脈)을 연장하는 방도가 될 것입니다.”

하고, 민수원이 아뢰기를,

“좌우가 아뢴 대로 권장하여 사기를 격려해야 합니다.”

하고, 이청이 아뢰기를,

“세조께서 하늘에 응하고 백성을 따랐는데, 성삼문 등이 오히려 노산을 복위시키려고 꾀하였으니 세조에게는 역적이 됩니다. 그러나 이제껏 난신으로 지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 정몽주의 일은 더욱 가상하고 아름습니다.”

하고, 기준이 아뢰기를,

“위란(危亂)할 즈음에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여 이와 같은 몇몇 사람이 있는 것은 워낙 드문 일이니 추장(推奬)해야 합니다. 무왕(武王)은 지극히 거룩한데도 백이(伯夷)·숙제(叔齊)가 오히려 말을 당기면서 간(諫)한 까닭은 군신(君臣)의 분수를 어지럽혀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하고서야 나라가 쇠약해지더라도 전복하는 화(禍)가 없고, 어진 사람이 많이 나서 사직(社稷)이 힘입을 바가 있을 것입니다. 세조조에서도 어찌 성삼문 등의 절의를 몰랐겠습니까마는 문죄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감히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조정에 의논하면 될 것입니다 - 중종 12년, 1517년 8월 5일



사육신이 충신의 반열로 돌아간 때는 중종반정이 성공한 이후에 죄는 있지만, 상육신의 결의는 본받아야 된다고 하면서 시작된다. 선비의 결의는 본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건 조선의 예 뿐만 아니라 어떤 나라도 하는 짓이다.


조선의 선비에게는 ‘불사이군’뿐만 아니라 연산군에 반해서 중종반정을 하는 세력처럼 임금이 임금답지 않았을 때 임금을 없애고 새로운 군주나 역성혁명도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얼마나 조선의 왕들이 신하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겠나? 언제 자신들의 목을 쳐 없앨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불어 조선의 왕들 스스로 자신들이 잘못하거나 신하들의 눈에 벗어나면 왕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유학자였다. 단지 왕은 유학자의 대표자 정도로 생각을 했다. 더군다나 중종반정세력의 명분을 찾는데 사육신에서 찾는 것이다. 세조의 반정이나, 사육신을 죽어도 마땅한 세력으로 남기면 중종반정을 성공한 세력자체도 역모를 꾀한 세력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합리화하는데 사육신만한 세력이 없었다.

사육신이 충신이면 김종서는 역신이 된다. 더군나다 김종서를  척살한 세조는 쿠데타를 진압한 세력이 된다. 사육신과 함께 단종을 몰아낸 세조는 조선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일을 한것이다. 이런 딜레머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이해당사자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수 밖에 없는가를 보는 것이다. 역사를 단순하게 보지 않는것이다.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은 드라마를 보면서 역사인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드라마를 보고서 역사를 알았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누구누구는 어떻네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은 드라마와 역사를 혼돈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드라마는 역사를 알고 보면 재미가 있다. 글쓴이의 대부분의 글은 드라마 리뷰같지만, 실제는 드라마가 망친 역사바로 찾기 리뷰이다. 오죽하면 카테고리가 [역사이야기]이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김승유와 신면이 불쌍하다.  신면이 왜 불쌍하냐는 사림이 있다. 친구를 배신하고, 친구의 연인을 빼앗고, 단종을 배신했는데라면서 말이다. 대표적인 드라마를 역사로 아는 사람들의 전형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기회에..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스승 이개 알고보면 계유정란공신, 사육신 단종폐위 좌익공신들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계백, 의자왕, 반란 실패한 사택비 죽고, 교기 왜로 쫓겨난다?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적과동침, 단종 죽인건 사육신 충신인가? 배신 아이콘인가?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광개토태왕, 계백, 사극 문헌고증 철저히 파괴해야 시청률 오른다?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계백, 의자왕, 계백 백제 패망후 왜 천황 될지도?
2011/09/06 - [역사이야기] - 계백, 동명제 초혼관 의자, 교기와 흥수는 왜 왜색풍 옷을 입었나? 사실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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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ㄹㄷhttp:// BlogIcon ㄷㅇㄷ 2011.09.23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육신이 충신이면 김종서는 왜 역신이 되는것인가요? 사육신을 충신으로 봐도 김종서도 그 나름으로 충신으로 볼수 있는거 아니에요?

    • 의문 2011.09.23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양립이 가능할 것 같은데, 무작정 양립이 안되는 것처럼
      글을 쓰시니 다소 불편함이 있긴 하네요.

      게다가 기록에 대한 신뢰가 조금 지나치기도 합니다.

      이정도의 신뢰라면,

      [세조는 엄청나게 종친들을 챙겼다. 종친을 죽이고,
      귀양보내고 그런 건 전부 다 신하들 상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거다. 진정으로 불쌍한 것은 세조다.]

      라는 결론을 내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기록도 전후사정을 보아가며 해석을 해야할 텐데...
      흠...

  2. 하하 2011.09.24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월 21,22 국내최고 라이브가수 박완규 ..... 그리고 부활 패밀리 총출동!

    그동안 방송을 통해 볼수없었던 그와 그들의 최고의 무대, 2011년 10월 "사랑" 이라는 테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최고의 무대로 부활하는 이번 콘서트에서는 박완규 외에 부활 패밀리의 총출동으로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국내 그룹 부활의 보컬 정동하 그리고 역대보컬 이성욱, 정단 위대한 탄생의 최고의 히트메이커 등이 함께
    참여해 박완규와 함께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그동안 방송이나 공연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환상적인 무대 출연진들과 함께 꾸미는 최고의 하모니!

  3. 루비 2011.09.25 0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 또 흑백논리 써놓으셨네. 대체 김승유가 실존인물이고 계유정난전에 죽었다는건 어디서 또 들으셨데?; 님보면 참..머랄까 사극에 한맺힌 사람 같아요.ㅡㅡ 자료라고 내세우는것들도 유리한 부분 추리시고 님이 말하는 진실은 야사에서 이야기들 적절히 섞어 배합. 님아 접때도 리플 한번 달았었는데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에요. 재밌게 보면 그만이지 무슨 작가가 시간을 왜곡하니같은 말을 매번 하시나요? 공남 퓨전사극이에요. 퓨전 몰라요? 퓨전? 그냥 보고나서 역사공부했다 그런말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큰 줄기만 기억하지 뭐 드라마 달달외워서 다닙니까? 언제 몇월몇일 누가 죽었는지 날짜 기억하고 다니겠습니까? 님 생각에 아닌거 같으면 뭐 어차피 님 블로그니까 아닌거 같다고 쓰는건 좋은데 왜 늘 남을 비판하고 님말만 진리라고 우기십니까? 저번엔 어떤분을 역적집안 만드시더니.. 님 진지하게 이야기 하는데요, 진짜 성격 특이하십니다. 오프라인에서도 그러시는지? 주변인들 정말 피곤할거 같아요. 무서워서 무슨 말 하겠어요? 말꼬리 잡고 늘어질텐데.. 이 드라마 온통 불만이면서 드라마 꼬박꼬박 챙겨 보시는게 더 웃김. 님 공남작가한테 원수졌어요?ㅎ

    • 1234 2011.09.29 0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퓨젼을 진짜로 착각해서 정신병자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잉여 쓰레기가 있어서 쓰시는 것 같은데

  4. 2011.12.19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Favicon of http://huntingpastore.com BlogIcon 고명진 2012.01.02 2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일을 나의 친구를 계속, 이거 정말 끝내 준다

  6. Favicon of http://greenstarenergysaver.com BlogIcon 인형 2012.01.04 0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

  7. Favicon of http://meetthetanners.com BlogIcon 아가 2012.01.04 2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박 겉 핥기

  8. Favicon of http://no-credit-check-cell-phones.com BlogIcon 박기동 2012.01.07 0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9. Favicon of http://john.is-a-liberal.com BlogIcon 애비 게일 2012.04.06 0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속이고 있군요.

  10. 썰영 2012.04.23 0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으로 다행입니다. 역사를 오도하고 편협화한 극이 재미와 인기에 힘입어 역사를 그르칠까 열려했는데 올바른 사고와 역사적인 사서를 인용해 정확한 연도와 날짜를 표시해 사실에 입각한 해석과 분석적인 설명 을 하시고 역사적인 환경에서 일어난 사건을 객관적 입장에서 정리한것은 매우 중요하고 대단한 일입니다.
    글 전체에서 바른 역사인식을 알게됩니다. 모르고 따르는 일반 대중의 생각을 바르게 하는 모범답안 같습니다. 작가는 인기와 흥미에 영합 할수 있지만 역사를 오도하여 선인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잘못을 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흑백 논리나 개인적인 섣부른 판단으로 왜곡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역사를 오도하고 가치관을 혼란하게 하여 후손들의 판단을 흐리게하면 역사와 민족에게 죄인이 될테니까요.
    개인의 영달을 위해 뜻을 수시로 바꾸는 사람보다 오히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힘써 일한 충신 애국자 대인을 변절자 역적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는 연속극은 창작이라도 배격해야 할것입니다.
    역사의 인물을 인용할때는 사실에 입각해 좋은 점을 나타내던지 그의 숭고한 사상과 철학을 계승해야하는것이지 편협한 생각으로 위인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버린다면 후손들의 귀감이 무엇이며 무엇을 배운답니까? 글만 쓰고 재미만 있고 인기가 높다고 바른길이 아닌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는것은 좋은작가라고 할수 없지요. 바른 판단을 하도록 도와준 윗 글에 찬사와 존경을 보냄니다.

  11. Favicon of http://ginger.gotdns.org BlogIcon 마리아 2012.05.08 2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유대인 음식만 먹습니다.

  12.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륭한 읽기 위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싶은 찾기 위해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확실히 그것의 모든 조금을 즐기는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새로운 물건을 체크 아웃하는 당신이

  13. Favicon of http://www.hometravel-luggagebag.com/ABS-luggage.html BlogIcon ABS luggage 2012.08.21 1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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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Favicon of http://www.blondinensex.ch/ BlogIcon Blondinensex Videos 2012.12.30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의 영달을 위해 뜻을 수시로 바꾸는 사람보다 오히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힘써 일한 충신 애국자 대인을 변절자 역적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는 연속극은 창작이라도 배격해야 할것입니다.

  15. Favicon of http://ford.grupocaiuas.com.br/fiesta-sedan BlogIcon fiesta sedan 2013.01.25 0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Google에서 블로그 사이트를 발견하고 조기 게시물 몇 가지를 확인하십시오. 아주 좋은 작동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합니다. 난 그냥 내 MSN 뉴스 리더에 RSS 피드를 추가. 나중에 당신에게서 더 읽어 앞으로 추구! ...

 

공주의 남자에서 성삼문, 이개, 박팽년 등 사육신이 세조(수양대군) 암살에 실패하고 잡혀서 고신을 당한다.


그리고 참형을 당할 위기에 김승유는 빙옥관의 의형.의제와 같이 한성부 옥을 파옥하고 이개 등 사육신과 친구 정종을 구원하려고 들어간다.


신면은 김승유가 세령공주와 같이 한성부에 숨어 들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김승유가 하는 일에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도와준다.


김승유가 다음 기회를 노리자며 파옥을 하려하자. 이개와 박팽년, 성삼문 등은 당연히 자신들이 죽을 줄 알았으니 개념치 말라고 하면서 후일을 김승유에 맡기고 담담히 죽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죽어서 김종서를 뵙게 되었으니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정종의 아내 경혜공주는 세조를 찾아가 “전하“라는 말을 하면서 수양대군 니가 짱먹었으니 그만 정종을 풀어달라며 ”전하 전하~“를 수천 수만 번도 할 수 있다고 말을 한다.


세조(수양대군)은 정종을 전라도 광주에 유배시키는 것으로 정종을 살려준다.


그런데 정종은 1456년 6월1일 창덕궁 현장에 없었다. 왜냐하면 정종은 1455년 6월 11일(윤) 금성대군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어서 경기도 수원으로, 8월 정종 자신의 통진 농장에 유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세조(수양대군) 암살 음모를 꾸미는 장소로 영양위 정종의 집으로 그렸지만, 실제는 주로 성삼문의 집에서 모든 모의가 있었다.


또한, 사전에 단종에게 세조(수양대군)을 척살할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을 수시로 알리고, 거사일이 1456년 6월 1일 창덕궁 연회에서 할 것이라고 말하자, 단종은 칼을 직접 내준다.


하지만, 6월 1일에는 창덕궁 실내 행사장이 넓지 않아서 별운검을 세울 수가 없었다. 신숙주는 별운검을 세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알렸고, 성삼문은 예에 따라 별운검을 세워야 한다고 했지만, 세조(수양대군)은 신숙주의 말을 듣고 별운검을 세우지 않게 하였다.


모든 드라마에서 악신의 대명사로 나오는 한명회가 별운검을 세울 수 없다며 사육신을 잡아들인다는 설정은 허구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김질은 현장에서 잡히지 않고, 6월 2일 날 김질의 장인 정찬손과 함께 세조(수양대군)을 찾아가 어제 반란 계획이 있었느나 실패했다며 알린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를 보고 있으면 사건들을 당일로 압축하려는 경향이 농후하다.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란이 끝나고 김승유가 강화도에 갔다오니 어느덧 세월은 지나 1455년 6월 11일이 되고 정종과 금성대군이 유배를 떠나는 것으로 그려지고, 몇 일 지나지 않았는데 1456년 6월 1일 사육신들의 단종복위 사건이 일어난다.

공주의 남자에서 하루는 1년과도 같다. 최소한 세월이 지났다는 장면이라고 살포시 남겨주면 좋지 않을까? 장면하나 삽입한다고 돈드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고 재미가 있지도 않다. 극을 보다가 이게 “머뮝”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간관계의 리얼리티는 고사하고 최소한 극중 개연성이나 리얼리티라도 살려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사육신은 죽고 정종은 살아남아 전라도 유배를 떠나니 앞으로 정종은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보기 힘들것 같다. 정종역을 맡은 이민우는 디스크 증상이 있어서 촬영에 임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만약, 이민우가 디스크 이상증세가 없었다면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두고두고 나왔을 것인데 안타깝다고 할 수 있다.
 

승정원(承政院)에서 전지를 받들어 광주 목사(廣州牧使)에게 치서(馳書)하기를,

“건장하고 부지런하며 조심성 있는 사람을 골라서 이유(李瑜) 의 배소(配所) 네 모퉁이를 나누어 지키게 하고, 당자와 잡인(雜人)의 출입을 엄하게 금방(禁防)하되, 힘써 안정(安靜)을 기하여 놀라지 말게 하라.”

하고, 동시에 이영(李瓔) ·이어(李) ·이전(李瑔)·정종(鄭悰) 의 정배된 여러 고을에도 같은 글을 보내어 유시하였다. 1456년 6월 3일


물론, 공주의 남자에서 유배간 정종을 사육신의 사건현장에 등장시키는 만행까지 저질렀는데 극의 재미를 위해서라면 이민우의 디스크가 나가던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다시금 불러들여 단종이 영월로 유배를 떠나는 현장에 동원한다고 말이다. 유배 떠난 정종(이민우)를 따라 경혜공주가 쉼 없이 광주로 촬영을 떠나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누가 역사적인 사건 현장에서 뜬금없이 등장하는 정종이 재미가 있다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작가의 역사 망치는 재미라면 모를까 말이다.
 


그렇다면 극에서는 모두 사육신들이 거열형을 당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는 옥에서 죽은 자와 고신을 이기지 못하고 죽은 자, 집에 있다가 자살한 유성원 등 다양한 죽음을 맞이한다.
 

 전 집현전 부수찬(集賢殿副修撰) 허조(許慥)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허조는 이개(李塏)의 매부로 역시 모반에 참여하였기 때문이었다. 6월 6일


박팽년(朴彭年)이 이미 공초(供招)에 자복하여 옥중에서 죽으니, 의금부(義禁府)에서 아뢰기를,

“박팽년·유성원(柳誠源)·허조(許慥) 등이 지난해 겨울부터 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하위지(河緯地)·성승(成勝)·유응부(兪應孚)·권자신(權自愼)과 함께 당파를 맺어 반역을 도모하였으니, 그 죄가 능지 처사(凌遲處死)에 해당합니다.

청컨대 허조·박팽년·유성원의 시체를 거열(車裂) 하고, 목을 베어 효수(梟首)하고, 시체를 팔도에 전(傳)하여 보일 것이며, 그 재산을 몰수하고, 연좌된 자들도 아울러 율문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6월 7일

세조실록 1456년


그리고 계유정난 때처럼 역모에 연루된 120여명이 죽고, 살아남은 16세 미만의 남자들과 나이에 상관없이 살아남은 여자들은 노비가 된다.
 


계유정란에서 김종서의 남자 후손들은 유모의 손에 이끌려 송시열의 선조의 도움으로 살아 남은 김종서의 첫째 아들인 김승규의 3살 먹은 셋째 말동(행남)과 16살이 되지 않아서 노비로 간 둘째아들 김승벽의 첫째 아들인 중남과 유모의 손에 살아남은 팽(삼동), 그리고 공주의 남자 주인공으로 나오는 김승유의 아들 효달 뿐이었다.

공주의 남자 주인공 김승유는 실존인물로 계유정난 이전 죽었다. 그래서 역사에서 자리를 감춘다. 더군다. 김종서를 비롯한 모든 아들들이 복권되었지만, 김승유는 이미 죽어 변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록에 남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사육신의 쿠데타 실패에서 살아남은 후손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육신으로 명명된  사람중 참화에 살아남은 후손은 박팽년 뿐이었다.

1800년 정조 때 박팽년의 후손은 절손되지 않고 살아남아서 번창하였고, 하위지는 조카 원에 후사를 당부하여 자를 들여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오신의 집안인 이보흠, 성삼문, 유승원, 이개, 유승부는 절손되었다. 추후 성삼문도 살아남은 방계로 하여금 성삼문의 양자 사손이 되어 대를 잇게 하였다.

 

저 육신의 정성을 다한 충성과 큰 절의는 실로 하등의 차이가 없는데 박팽년의 한 가닥 핏줄은 다행히 끊기지 않았고 근래에 또 번창하고 있으니, 하늘이 복을 남긴 이치를 족히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저 오신(五臣) 집안의 혈통이 끊겨 후사가 없는 것은 실로 천지간에 유감이자 백대의 가슴아픈 일입니다.


과거 숙묘(肅廟) 을유년 에 예조 판서 민진후(閔鎭厚)가 경연에서 건의하기를 ‘하위지는 체포되어 가는 날 죽은 뒤의 일을 그의 조카 원(源)에게 부탁하였으니, 을사 명신(乙巳名臣) 김저(金䃴)에 대해 양자를 들여세운 사례에 따라 원의 후손으로 하여금 그 제사를 받들게 하소서.’ 하니, 숙묘께서 하교하기를 ‘육신은 다른 사람과 다르니 어찌 끊긴 후사를 이어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뢴 대로 특별히 시행하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위지는 비로소 그의 제사를 받드는 후손이 생겼으나 성·유·이·유의 집들만은 그와 똑같이 끊긴 자손을 이어주는 은전을 입지 못했는데, 사실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조 24년, 1800년 4월 12일


경기 유생 이유제(李維濟) 등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단종조(端宗朝)의 육신(六臣)인 고(故) 충정공(忠正公) 박팽년(朴彭年)·충문공(忠文公) 성삼문(成三問)·충간공(忠簡公) 이개(李塏)·충경공(忠景公) 유성원(柳誠源)·충렬공(忠烈公) 하위지(河緯地)·충목공(忠穆公) 유응부(兪應孚)의 우뚝한 충성과 높은 절개는 국사[國乘]에 소상히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저 이개·유성원·유응부 세 사람만은 유독 뒤를 이어 제사를 주관할 사람이 없으니, 하 충렬공(河忠烈公)·성 문충공(成文忠公) 두 신하에게 입후(立後)하게 한 사례에 의거하여, 그들의 제사를 받들도록 하는 것이 적당하겠습니다.”

- 순조 11년 1811년 4월 22일



이개의 경우 1900년대 까지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한산 이씨인 이개의 방계 친족인 이용직이 고종 39년, 1902년 2월 4일, 한산이씨 종종에 알리고, 이두복의 둘째 아들 이중원으로 하여금 이개의 사손이 되어 이개의 계통을 잇게 한다.  성삼문, 유성원, 하위지,유응부 가문도 방계 친족으로 하여근 사손하도록 한다.


신은 외람되고 망령됨을 헤아리지 않고 종중(宗中)에 알린 다음 일가(一家) 사람인 이두복(李斗馥)의 둘째 아들 이중원(李重遠)을 충간공 이개의 사손으로 세우려고 합니다마는 신중한 문제이므로 신의 집안의 사사로운 일이라고 해서 제멋대로 할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특별히 윤허하여 빨리 예원(禮院)에서 품처(稟處)하게 함으로써 대를 이을 사람을 세워 제사를 받들게 하는 동시에 또 정려문을 세우도록 명함으로써 풍속과 교화를 바로 세우소서.

이 밖의 네 신하인 충문공(忠文公) 성삼문(成三問), 충경공(忠景公) 유성원(柳誠源), 충렬공(忠烈公) 하위지(河緯地), 충목공(忠穆公) 유응부(兪應孚)에 대해서도 각기 그들의 집안에서 사손을 세우게 하며 모두 정려문을 세워주는 은전을 베풀어 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나라에서 충성과 절개를 장려하는 뜻에 부합되는 것이니 장례원(掌禮院)으로 하여금 모두 상소의 내용대로 시행하도록 하겠다.” - 고종실록 1902년



지금 현재 이개의 후손을 자처하는 한산이씨는 1902년 이두복의 후손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글쓴이도 아버지의 3형제 중 제일 큰아버지가 남자 후손을 남기지 않고 돌아가셔서 막내였던 아버지가 맏아들인 글쓴이를 큰아버지의 족보에 올리려한 적이 있었다.


후사를 잇지 못할 때 많은 사람들이 양자가 되어 대를 이어가고 족보에 오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었다. 정조도 사도세자의 아들이었지만, 영조의 일찍 죽은 맏아들 효장세자에 입적이 되어 원손, 세손이 되었다가,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자신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한 적이 있다.


삼국사기에서 신라의 계보나 백제의 계보가 생몰년과 후손관계에서 이상한 면이 보이는데 양자와 사손의 개념을 도입하면 충분히 해석가능한 부분이 많다.


공주의 남자를 보고 김종서의 후손들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너 김종서의 후손이라고 하는게 공주의 남자에서 김종서의 후손은 다 절손되었다는데 족보를 산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이다. 김종서의 후손은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인가? 간신히 난을 피해 살아 남았는데 겨우 듣는 다는 말이 역사와 100% 무관한 드라마를 보고 김종서 집안은 절손되었다는데 너 조상이 족보를 샀구나 하는 시덥잖은 소리를 들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김종서 집안과 적대적이었고 배신을 때린 사육신과 엮이니 얼마나 얼척없겠나?

 

 이현로(李賢老)·이승윤(李承胤)·이개(李塏)·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 등이 교결(交結)하여 마음으로 굳게 맹세하고 ‘문하(門下)’라고 칭하고, 모두 도서(圖書)의 헌호(軒號를 지어서 서로 한때의 문사임을 자랑하였으나, 모두 농락(籠絡)당한 것이었다

..중략..


한때 (안평대군) 용(瑢)에게 아첨하는 자들이 용(瑢)에게 글을 보내는 데 한결같이 계서(啓書)와 같이 하여, ‘용비(龍飛)’·‘봉상(鳳翔)’·‘번린(攀鱗)’·‘부익(附翼)’·‘계운(啓運)’·‘개치(開治)’ 등과 같은 용어를 쓰고도 의혹하지 않았으며, 혹은 신이라 칭하는 자도 있었다. 정난(靖難) 한 뒤에 많이 얼굴을 바꾸고 꼬리를 흔들었으나, 세조는 모두 묻지 않았다

- 단종 1년, 1453년 5월 19일


집의(執義) 이개(李塏)가 본부(本府)의 의논을 가지고 아뢰기를,

“신 등이 지금 정부에서 아뢴 죄목(罪目)을 보니, 이용(李瑢)이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정분(鄭笨)에게 지시하여 심복을 병조(兵曹) 군기감(軍器監)에 포열(布列)하게 하였다 하였으니, 정분의 죄가 황보인·김종서에 못하지 않습니다. 허후(許詡)는 집정 대신(執政大臣)으로서 자주 용(瑢)의 집에 갔으니, 당여(黨與)인 것이 분명합니다. 조수량(趙遂良)·안완경(安完慶) 등은 용(瑢)과 더불어 비밀한 말로 약속하였고, 또 조수량은 용(瑢)의 금대(金帶)를 받았으니, 이것도 또한 용(瑢)의 당입니다. 조순생(趙順生)·이석정(李石貞)·지정(池淨) 등은 모두 무관(武官)으로서 용(瑢)의 집에 왕래하여 당원(黨援)을 하였으니, 청컨대 모두 율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그 나머지 지당(支黨) 이보인(李保仁) 등은 밤낮으로 용의 집에 모였으니 어찌 역모를 알지 못하였겠습니까? 또한 법에 의하여 논단하소서.”

- 단종 1년, 1453년 10월 28일


 

더군다나 이개를 비롯한 많은 사육신들이 안평대군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가 안평대군과 황보인, 김종서가 수양대군 일파에 척살되자. 배신을 때리고 김종서, 황보인, 안평대군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들을 단종을 압박해서 죽이라고 한사람들이 사육신들의 다수였고, 정난공신이 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배우지 않고, 그저 사육신은 충신인데 왜 비난하냐는 사람들이 있다. 미안하지만, 김종서, 안평대군, 황보인 등도 충신가문으로 복원된다. 충신들의 가문과 후손을 죽이라고 사주한 사육신이 되는 것이다.


사육신에게 정난공신은 빼고, 단종폐위하고 세조 옹립한 공으로 받은 좌익공신은 빼고, 단종복위에 참가했다 멸족되고 추후 복원되었으니 충신가문이라고 해주어야하는 것인가?


최소한 사육신이 왜 계유정란 후에 김종서 일파를 죽이지 못해서 안달하고, 단종을 몰아내는데 혁혁한 공로가 있어서 세조옹립한 공으로 좌익공신이 되고, 후에 세조를 몰아내고 단종 복위를 꿈꾸었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저 단편적인 면을 보고 비난하는 초딩스런 댓글은 사양한다. 정치가 왜 생물이라고 불리우는 지 생각좀 하였음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이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글을 포스팅했다.

왜 유교의 나라인 조선에서 불교를 억압하고, 유학을 숭상하였는지는 사육신, 생육신, 김종서 등을 봐도 쉽게 알수 있다. 유교는 맹자를 받아들여 왕을 없애고 새로운 왕을 세워도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조선에서 반정이 많고 이를 합리화하고 반정에 맞서 죽은자들을 숭상하기도 한다. 

사육신 들은 유교를 유일한 종교처럼 이를 교조적으로 받아들였음을 알수 있다. 여타종교인 불교에 대해서 극히 격멸하였다. 이들은 세종까지 말년에 궁궐 내불당 불사를 한것에 망년되었다고 이야기한 사람들이다. 조선 초기 임금들은 불교도 유교처럼 백성을 다스리는 기본으로 삼고자 하였지만, 유학자들중 사육신 계열은 참지를 못했다. 이에 대해서 간략하게 다룬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참조하기 바란다.


역사는 역사,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하는 대부분이 너희 집 족보 샀지하는 얼척 없는 소리나 한다. 그리고 역사는 모르고 드라마를 보고 역사이야기를 하면서 역사는 역사, 드라마는 드라마라는 소리를 달고산다. 역사를 드라마를 보고 배웠어요라는 말처럼 어처구니 없는 말은 없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나는 역사를 몰라요라는 댓글을 달기도 한다. 더군나나 김종서가 어떻네, 세조가 어떻네 신숙주가 어떻네, 신면이 어떻네, 사육신이 어떻네 하는 사람투성이다. 키스를 책으로 배웠다는 개그가 떠올리게 된다.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세령공주 진짜 로미오 둘째 김승벽의 김석동일까? 첩 손자일까? 계유정란 김승유 3살? 대략난감,

2011/09/23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불쌍한 신면과 배신자 사육신 어떻게 충신 아이콘 되었나?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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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소쿠한 2011.09.22 1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논리는 좋네요.
    다만 어휘는 좀 신경써야할 듯.
    방개 > 방계
    종종 > 종중 .... 좋은 몸을 못따라가는 옷을 입은 듯... 아쉽네요.

  3. BlogIcon ㄷㅇㄷ 2011.09.22 1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의 기록이 사실이 아닐수도 있잖아요...세조가 자기입장에서 기록해놓은건데 성삼문이 정말 그렇게 이리 붙었다 저리붙었다 했나요? 그럼 신죽주보다 더 나쁘네요?

  4. Favicon of http://ㄹㄷhttp:// BlogIcon ㄷㅇㄷ 2011.09.22 17: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삼문이나 사육신이 한 일들은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위해서 그런거고. 세조가 한일들은 결국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한일이고...

  5. 기백 2011.09.23 0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렸을 때는 역사를 단순히 배웠으나 나이가 드니 역사는 이해를 하는 것이 된다. 세조, 단종, 한명회, 깁종서, 사육신, 생육신 등 의미있는 사람들로 보이지만 결국 서로 싸우고 죽이는 정치 집단의 횡보였을 뿐이다.

  6. 의문 2011.09.23 0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GUES메뉴에 들어가 글을 남겼는데, "비밀댓글"만 달려 있을 뿐 님의 답은 보이지 않네요.

    일단, 사육신에 대한 님의 평가는 재미있었습니다.
    근데 제가 알기로 사육신은 단순히 "몇 번의 모의와 한 번의 시도"로 그리 된게 아니란 겁니다.

    김질만 해도 장기간 사육신들의 모의에 가담하고,
    계속된 실패에 두려움을 느껴 배신을 한 겁니다.

    즉, 1456년 6월 1일 딸랑 한번의 거사에 실패하지마자,
    곧바로 다음 날인 6월 2일에 배신때리고 밀고하는게 아니란 거죠.

    물론 김질의 입장에서는 실록에 기록된 것처럼 빡빡 우기는 최상입니다.
    마치 자신은 적극적으로 가담한 적이 없었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근데 실록의 기록은 그대로 믿을 수 없습니다.
    그 기록대로라면 성삼문은 거의 바보천치니까 말입니다.
    그런 수준의 바보천치가 역모의 모의한다? 웃기는 일입니다.

    별다른 감정교류도 없는데 김질에게 혜성이 어떠니 저떠니...
    말도 안되는 기록입니다.

    따라서 사육신들은 1455년 아직 단종이 재위하던 시절에 수양대군을
    제거하려 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이미 재위해 버린 뒤에는 역모가 되지만,
    재위하기 전에는 역모가 아니니까요.

    그리고 1456년에 김질이 배신을 때린 이유도 중국에서 세조를
    정식왕으로 인정할 것 같으니까 배신을 때렸다고 봄이 타당합니다.
    (즉 대세가 기울자 바로 변신 한거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11.09.23 09: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육신의 모의는 1455년 말부터 시작한다고 하지요..

      설마 그낭 6월 1일에 모의를 하자고 했을까요? 모든 준비를 한후 결정적인 때를 기다렸다가 명사신이 오는 창덕궁 연회와 별운검이 된때로 잡았겠지요.. 문제는 별운검을 세울수 없었고, 하늘이 자신들을 버린다고 생각을 하고 김질이 배신을 때린것이고. .별운검을 없앤 신숙주가 반란의 낌새를 챈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김질의 배신으로 이끌지 않았을까요. .

      실질적으로 사육신이 세조를 배신한 이유는 저는 궁궐의 내불당 사건으로 생각합니다.. 세종말년에 세종이 내불당을 만들자 끊임없이 세종을 압박하고 불교탄압을 하지요. 사육신을 비롯한 집현전 학사들이.. 문종 때, 단종때 까지요. 문종때 박팽년은 세종을 망령되게 비난하다 옥에 갇히는 고초도 겪고, 성균관, 사간원, 집현전으로 부터 언론을 탄압하지 말라는 상소를 접하지요..

      계유정란이 끝나는 시점에서 불당을 없애자고 집현전의 학사들은 주장한단 말이지요.. 그런데 집현전 학사출신인 수양대군도 불사를 하는데 적극적이였던 거지요. 그래서 호랑이보다는 어린 토끼가 낫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단종은 말년에 불당을 없애려는 시도에 항복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이에 대해서 다음기회에 자세히 다뤄볼까합니다.

      성삼문은 바보 맞는것 같은데요.. 낼름 옥새를 넘겨주니 말이지요.. 당시에는 도사들을 잘 믿거군요.. 도사를 빌어서 내불당을 없애려는 시도도 하니..

      사육신들의 다수는 안평대군의 편에 있었으니 계유정난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사육신은 안평대군을 앞세워 수양대군(세조)를 척살하고 권력을 잡았을지도 모르지요..

    • 의문 2011.09.23 1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즉, 세조가 이미 왕이 되었고, 세조를 왕으로 인정하는 사신이 오는 때를 [반란시기]로 잡은 게 이상하다는 겁니다.

      생각하기에 1456.6.1에는 아무런 시도도 없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차라리 단종이 재위하고 있던 시절에 수양제거를 시도했음이 맞을 거고, 그렇다면 님이 주장하는 사육신과 수양의 짝짝꿍 뒤 배신은 그리 적절한 설명은 아니지 않나 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11.09.23 1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수양이 왕이 되기 전에 수양을 없애려 했다는 증거는 없지요.. 물론, 안평대군과 짝짝궁 해서 수양을 없애려한 흔적은 있지요.. 계유정란시기 안평과 김종서를 배신하고 이들과 관련된 자들은 주살하라고 하지만 말이지요.

      단종이 양위할때 성삼문은 옥새까지 바치구요.. 이는 님이 말한 단종시기 사육신이 수양을 죽이려 하지 않았다는 절대적인 증거가 되지요. 세조를 옹립하고 단종을 복위하려는 시도를 한 증거는 세조 초창기로 돌아가서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실록에서도 1455년 6월 11일(윤) 세조옹립하고, 1455년 년말에 당을 만들어 세조에 반기를 들었다고 했으니요.. 한마디로 사육신은 배신의 역사였다가 제 결론입니다.

      안평대군 배신->정란공신-> 단종배신 -> 좌익공신->수양(세조)배신->사육신

      신숙주보다 배신을 밥먹듯이 하지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11.09.23 1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데 사육신의 배신에서 일관성이 있는 구석이 있다는 거지요.. 저는 그것을 사육신의 유교를 학문이 아닌 유일종교로 믿었고 이를 실천하다 갔다는 걸로 해석하고 싶은데.. 계유정란에서 안평대군과 김종서를 배신한 부분은 해석이 안되더군요.. 물론, 김종서와 안평대군이 유.불을 조화한 점이 있고, 수양도 유.불을 조화시킨점이 있지만.. 이부분까지 계산을 하면 결론적으로 사육신은 요즘으로 치면 개독교적 유교관을 가졌다 입니다.

    • 의문 2011.09.23 16:32  댓글주소  수정/삭제

      1455년말에 사육신들이 수양을 제거하려 햇다는 것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님의 주장대로라면,
      사육신들은 수양이 왕으로 즉위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자 말자 곧바로 배신했다는 게 되니까요.

      물론 님은 기록이 그렇다고 할 것이고,
      불교(내불당)를 이유로 대시겠지만,

      기록에는 수양과 사육신들이 내불당 때문에 마찰을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게다가 수양이 불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사육신들 다 죽이고 나서 입니다.

      따라서 유교때문에 사육신들이 배신을 밥먹듯 했다는 것보다는,

      차라리...
      계유정란에서 사육신이 공신이 된 것은 수양을 견제하려고 단종이 그리 했다고 보는 게 맞고,

      수양제거시도는 수양이 즉위하기 직전에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수양이 왕에 오르기 직전에도 사신들 왔었습니다.)

  7. 하하 2011.09.24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월 21,22 국내최고 라이브가수 박완규 ..... 그리고 부활 패밀리 총출동!

    그동안 방송을 통해 볼수없었던 그와 그들의 최고의 무대, 2011년 10월 "사랑" 이라는 테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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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해 박완규와 함께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그동안 방송이나 공연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환상적인 무대 출연진들과 함께 꾸미는 최고의 하모니!

  8. Favicon of http://www.autoankauf-fahrzeug.de BlogIcon klaus 2011.09.30 0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ehr schön :)

  9. Favicon of http://etboosters.com BlogIcon 2012.01.01 15: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전체에 서있다면 당신은 파고있어, 당신은 파고를 중지해야합니다

  10. Favicon of http://blackcollegewire.com BlogIcon 유병수 2012.01.04 0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도 못 한다

  11. Favicon of http://thehamletnews.com BlogIcon 박기동 2012.01.04 2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2. Favicon of http://crantfordsflowers.com BlogIcon 원숭이 2012.01.07 0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는말이 고와야 오는말이 곱다

  13. Favicon of http://elephants.dontexist.net BlogIcon Alyssa 2012.04.06 0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에 영어를 하시는 분 계십니까?

  14. Favicon of http://camdentown.from-me.org BlogIcon 애디슨 2012.05.11 0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15.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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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Favicon of http://www.hometravel-luggagebag.com/trolley-backpack.html BlogIcon trolley backpack 2012.08.21 1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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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Favicon of http://ford.grupocaiuas.com.br/new-fiesta-hatch BlogIcon new fiesta 2013.01.30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시물 반갑습니다. 나는 매일 다른 블로그에 대한 자세한 도전 뭔가를 배우게됩니다. 항상 다른 작가의 콘텐츠를 읽고, 그들의 상점에서 뭔가를 조금 연습을 자극한다. 당신이 상관 없어 여부를 내 블로그에 콘텐츠를 일부 사용 싶어요. Natually 당신에게 당신의 웹 블로그에 링크를주지. 공유 주셔서 감사합니다.

  18. Favicon of http://hondacarros.grupocaiuas.com.br/civic BlogIcon civic 2013.03.21 0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기사으로 자리, 내가 정말이 웹사이트는 더 많은 배려를 필요로 생각합니다. 난 아마 그 정보를 훨씬 더 감사를 읽어 다시됩니다.

  19. Favicon of http://hondacarros.grupocaiuas.com.br/civic BlogIcon civic 2013.03.21 0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기사으로 자리, 내가 정말이 웹사이트는 더 많은 배려를 필요로 생각합니다. 난 아마 그 정보를 훨씬 더 감사를 읽어 다시됩니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는 금성대군과 정종의 노력으로 단종이 결심하여 참수를 면하고 유배를 떠난다.


수양대군은 유배를 떠나는 김승유를 살려두지 말고 죽이라고 말을 한다. 안평대군도 유배를 떠나는 도중에 사사되고 만다.


승유는 찾아온 세령의 목을 조르며 왜 자신을 속였느냐며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을 한다. 세령은 제발 살아 남아 자신 세령과 아버지 수양대군을 용서하지 말라한다.


승유는 신면에게 어찌 친구로서 자신에게 적대시 하려하느냐고 말을 하지만, 신면은 김종서가 수양을 먼저 쳤다면 지금 옥에 갇혀 있는건 승유 너가 아니고 신면 자신이라고 말을 한다.


승유는 부모들의 반목 등 어떠한 일이 생기더라도 친구들간에 우정은 변치 말자고 하지만, 승유의 맹세는 한탓 허풍선에 지나지 않는다. 신면인 친구도 죽이려하고, 죽도록 사랑하는 세령도 죽이려고 한다.


승유의 우정과 사랑은 말뿐이다. 하지만, 신면은 정적이지만 승유를 살리고, 승유의 남은 형수와 조카까지 돌봐준다.

도대체 공주의 남자에서 승유가 여자들 꼬시는 능력말고 어떠한 능력이 있는 것일까? 아버지  김종서의 빽만 믿고 한량생활을 한 것 말고는 없다.
 

 

 

반면에 신면은 왕에 대한 충성과 시류에 따르고 정치권력사이에서 선택을 하는 모습과 친구들 간에 우정과 친구를 사랑하는 짝사랑 세령를 바라보는 시선과 세령으로부터 상식이하의 모멸감도 감수를 하는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이를 신면을 맡은 송종호는 심리적인 변화를 잘 표현하고 있다.


반면에 주인공 승유는 계유정란 때 죽어가던 승유를 살려준 신면을 배신하고 피흘리며 도성을 배회하고, 아무생각없이 수양을 척살하겠다고 나서다 잡힌다. 이번에는 배에서 몰살을 당할 위기에 있음에도 탈출하여 복수 할 생각은 안중에도 없이 죽을 때를 기다리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로 그리고 있고, 배가 전복되고 탈출할 때도 주체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민폐를 끼치고 남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목숨을 구명 받는다.


 


세령은 조선에서 가장 권력을 가진 수양대군의 장중지보이면서 수양대군과 맞서기 보다는 승유의 친구이고 수양의 손가락 하나면 언제든지 죽어 없어질 지도 모르는 신면에게 친구를 왜 죽이려 하냐며 승유를 살려달라고 철없이 조르기 까지 한다. 승유가 옥에 갇히고, 김종서를 죽인건 아비 수양이지 힘없는 신면은 아니다. 신면은 알게 모르게 수양에 반하여 승유를 여러번 살려준다.
 


한마디로 철없는 민폐커플이 세령이고 김승유다. 공주의 남자에서 왜 주인공이 승유인지를 알 수 없는 대목이다.

작가가 승유.세령이라는 인물을 잘못 창조했거나 승유 배역을 맡은 박시후나 세령역을 맡은 문채원의 내공이 부족한 것인지 아리송하다. 오히려 신면의 캐릭터 성격은 다면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이미 절대로 이루워 질수 없는 승유와 세령이 사랑하는 사이라는 설정을 할때 부터 이들 커플은 잘못 창조된 커플이라는 것이 증명되고도 남지만 말이다.

물론, 좋게 보아서 닥치고 사랑만 있는 한가지 성격만 가지면 할 수 있는 연기이니 박시후나 문채원이 잘 표현했다고 할 수도 있다.


아버지가 죽어서 오열을 하는데 오열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아 감정이입이 안 된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두고 숨어야 할 때 숨지도 않고 목숨을 도외시하면서 탈출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친다. 승유가 움직일 때 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가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장면의 연속이다.


그런데 민폐 승유를 꼭 죽이고 말겠다는 수양도 참으로 어리석다고 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공주의 남자에서 수양이 김승유를 죽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냅둬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릴 것 같은 나약한 모습뿐이었다. 그런데도 김승유를 죽이겠다고 바다로 섬으로 시간과 수하들만 낭비하고 있다.


실제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죽이는 계유정란에서 수양대군은 조금 어리버리한 실수를 한다. 죽인 줄 알았던 김종서가 살아나서 반정을 진압하고 수양을 죽이려고 모습을 보여주긴 한다. 계유정란이 성공한 건 수양대군에게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승유나 세령처럼 억지로 만들어진 멜로 캐릭터 주인공은 연기력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배우로서 연기력을 보여주기에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다. 그렇더라도 작가가 부여한 세령과 승유에게는 개연성이나 합리성이 없다. 더군다나 이들 커플의 연기는 대사톤이나 표현력에도 한계가 보인다. 그래서 인지 더더욱 이들 민폐커플의 연기에는 몰입이 되지가 않는다.


어쨌든, 승유가 신면에게 부탁한 형수와 조카를 세령이 자신의 만족감이나 용서를 비는 마음이나 승유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와주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종서(金宗瑞)가 죽으니, 손녀가 있어 악한 말을 하기를,

“적(賊)이 항상 이와 같은 일을 꾀하리라고 매양 저물면 무거운 갑옷을 입고 동산을 오르내리시더니……”하고,


김승규(金承珪)의 처가 또한 악한 말을 하기를,

“매양 담을 넘는 것을 시험하더니, 이제 이와 같이 되었구나!”하고,


김종서의 늙은 첩이 또한 말하기를,

“부자가 홀로 더불어 꾀하고 의논하기를 7, 8일을 하더니, 죽음을 당하였구나!”

하였다.  - 조선왕조실록 단종1년 1453년 10월 10일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계유정란으로 살아남는 김종서의 후손으로 달랑 어린 여 조카와 형수만이 있다. 그리고 김승유가 있다. 김승유는 세령과 사랑을 해야하는 멜로의 주인공이니 살아남는다고 하고 어린 조카는 왜 살아남았을까?


단지,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에 세령이 승유를 만났을 때 승유가 세령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장치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승유가 형수를 찾아갔는데 그곳에 형수와 조카를 돌보는 세령의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


하지만, 실제 계유정란으로 살아 남은 김종서의 자손들은 많이 있다. 단지 김종서의 큰아들 김승규는 김종서를 구하려다 죽고, 둘째 아들 김승벽은 도망하여 지방을 전전하다 붙잡혀 효수된다.


계유정란 시 김종서의 둘째 김승벽과 첩의 자식인 김석대와 김목대는 살아 남았다. 하지만, 이들도 1454년경에는 모두 죽고 김승벽의 아들 김석동만 살아 남는다.


김종서(金宗瑞)의 아들 김승벽(金承璧)은 충청도(忠淸道)의 청주(淸州)·공주(公州)·전의(全義) 등지로 가고, 첩의 자식 김석대(金石臺)는 충주(忠州)로 가고 - 계유정난 1453년 10월 12일


 김종서(金宗瑞)의 아들 김목대(金木臺), 김승규(金承珪)의 아들 김조동(金祖同)·김수동(金壽同)를 죽이다. - 단종실록 단종 2년 1454년 8월 15일


“김승벽(金承璧)의 아들 김석동(金石同)은 그 나이 16세가 차기를 기다려서 전라도(全羅道) 극변(極邊)의 관노(官奴)로 영속(永屬)시키소서.” - 1454년 8월 15일



김승규의 아들 김조동과 김수동은 계유정란 이듬해 추석날 죽임을 당하는 교서가 내려온다. 이때 김조동과 김수동은 현재 드라마 공주의 남자의 승유 나이보다 많았을 것이다.


조선의 법은 대명률을 근간으로 하고 있어서 16세 이상은 처형해 처해진다. 하지만, 수양은 계유정란에 관여된 자들의 자손을 죽이지 않고 있다가 계유정란 이듬해 1454년 8월 15일에 16세 이상인 자들을 죽인다. 다만, 김종서의 둘째 김승벽의 아들 김석동은 계유정란 때 나이가 어려 어미와 함께 관노가 되었다.


그리고 김종서의 첩이나 김승규, 김승벽의 아내나 여식들은 정인지를 비롯한 반정 인사들에게 노비로 주어진다.
 

김승규(金承珪)의 아내 내은비(內隱非)·딸 내은금(內隱今)·첩의 딸 한금(閑今)은 영의정(領議政) 정인지(鄭麟趾)에게 주고,


김승규(金承珪)의 딸 숙희(叔熙)는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강곤(康袞)에게 주고


김승벽(金承壁)의 아내 효의(孝義)는 예조 참판(禮曹參判) 홍윤성(洪允成)에게 주고,

- 세조2년 1456년 9월 7일


의금부(義禁府)에 전지(傳旨)하여 신천군(信川君) 강곤(康袞)이 하사받은 김승규(金承珪)의 딸 숙희(叔姬)를 놓아 보내게 하였다. - 1471년 성종 2년 7월


김승규(金承圭)의 처 내은비(內隱非)와 딸 내은금(內隱今)을 풀어주다. - 1472년 성종 3년 5월



많은 사람들이 김승유나 세령이 실존인물이 아니고 작가가 창조한 인물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세령이나 김승유는 실존인물이었다.


김종서는 1383년 생으로 1453년 계유정란 때는 71살이었다. 70이 넘은 김종서에게 20대의 김승유가 있었다고 한다면 김종서가 50대에 낳은 늦동이 아들이 될 것이다. 김승유의 어머니도 김종서랑 비슷한 나이이거나 어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승유의 어머니는 1450년에 죽었다. 생물학적으로 김승유가 나이가 어렸다는 가정은 성립하지 않는다.
 

“김종서(金宗瑞)는 연로한 대신으로서 나라의 막중한 부탁을 받아 멀리 변경에 있으니, 그 마음을 위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아들 소윤(少尹) 김승규(金承珪)가 지금 모상(母喪)을 당하였으니, 빌건대 탈상(脫喪)을 하도록 명하여 그 아비를 따라가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라서 즉시 김승규를 불러 역마(驛馬)를 주어서 보냈다. - 조선왕조실록 문종즉위년(1450년) 12월


 

순천김씨 족보에 의하면 김종서의 셋째 김승유는 여흥민씨에 장가를 들었고, 1453년 계유정란 한참 전에 사동과 효달이란 아들을 둔다.


계유정란 시 첩의 자식까지 기록으로 남았는데 김승유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김승유 아내나 자식들도 말이다. 만약, 김승유가 실존인물이라면 계유정란 이전 출사하기 전에 죽었고, 아내도 계유정란이전에 죽었다고 봐야한다. 또한, 승유의 아들 사동과 효달은 난을 피했다고 할수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대다수의 족보가 돈으로 세탁이 되었듯이 김승유는 후대에 족보가 세탁되었다고 할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 오천만 국민중에 빼대있는 왕족이나 양반의 후손이 아닌 사람들이 없다. 계유정란처럼 멸절된 집안으로 족보를 세탁하는것 만큼 쉬운것은 없다. 숙.영.정조 시기에 계유정란으로 살아남은 후손에 대한 복권을 시행한다. 이당시 김종서 후손에 대한 진위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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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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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games-google.pennsylvaniabass.com BlogIcon 헤일리 2012.04.03 2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속이고 있군요.

  3. Favicon of http://alphamale.dvrdns.org BlogIcon 키에라 2012.04.05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크 아웃하고 싶습니다.

  4. Favicon of http://andre3000.on-the-web.tv BlogIcon 리아 2012.05.09 0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크 아웃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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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Favicon of http://www.mortgageloanxperts.com/mortgage-loan-basics.html BlogIcon loan basics 2013.08.21 2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방지에 사사를 받은 강채윤은 이방지의 적통제자로 출상술과 북방의 무예와 투박술까지 고루 익힌 숨은 고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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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지에 사사를 받은 강채윤은 이방지의 적통제자로 출상술과 북방의 무예와 투박술까지 고루 익힌 숨은 고수이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는 참으로 고약한 사극이라고 할 수 있다. 장르를 정통사극이라고 할수도 없고, 퓨전사극이라고 할수도 없다.


아무리 좋게 해주어도 <공주의 남자>를 정의한다면 <엽기사극>이라고 할수 있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지는 사극의 대부분은 고증은 전무한 막장. 엽기사극이지만 말이다.

<공주의 남자>는 도가 지나치다고 할수 있다. <공주의 남자>에서 세령에 대한 사랑이 전해지는데 이는 김종서의 아들과의 사랑이 아닌 계유정난으로 인해서 피난한 김종서의 손자와의 사랑이다.

그런데 <공주의 남자>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손자가 아닌 김종서의 아들과의 사랑을 그린다고 당당히 말하고 있다. 기본 팩트가 바뀔려면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합리적인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김종서에게는 큰아들 김승규와 작은 아들 김승벽, 그리고 김승유가 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김종서에게도 첩의 자식인 김목대도 있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 어디에도 김승유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순천 김씨 족보에 김종서의 세 번째 아들로 김승유가 있을 뿐이다.


“김승벽(金承璧)의 아들 김석동(金石同)은 그 나이 16세가 차기를 기다려서 전라도(全羅道) 극변(極邊)의 관노(官奴)로 영속(永屬)시키소서.” - 단종실록 1451년 계유년


1451년 단종 1년 10월 10일 계유정란이 수양대군에 의해 성공한 후 김종서의 자식들에 대한 처형이 이뤄지고 둘째 김승벽는 남부지방으로 도망을 치지만 이내 잡혀서 참형된다. 둘째 이들 김승벽의 아들 김석동은 나이가 16세 이상이 되지 않아 역적에 해당하는 교수형에 처해지지 않고 관노가 되었다.


첫째 김승규의 아들 김조동, 김수동은 16살이 넘어 처형된다.


계유정란에서 김종서의 남자 후손으로 살아남은 자에 대한 기록으로는 둘째 김승벽의 아들 김석동이 유일하다.


하지만, 영조 2년 (1726년) 계유정란에 참화를 당한 사람들의 신원을 복원하고 그들 후손에 대한 신분 복원과 정계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이때 김승규의 후손인 김익량은 신원이 복원되어 정계에 진출한다.


“김익량(金翼亮)의 일은 일찍이 선정신(先正臣) 김장생(金長生)과 송시열(宋時烈) 양가(兩家)의 말을 들어보건대, 김익량은 김종서(金宗瑞)의 자손임이 분명했습니다. 송시열의 5대 조부가 김종서의 질녀서(姪女壻)로 그때 3세의 아이를 숨겨주어 김종서의 뒤가 보존되게 했었는데, 곧 김익량의 선조(先祖)이었습니다. 송시열의 가문에서 당초에 기휘(忌諱)하면서 감히 분명하게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드디어 김종서는 후손이 없다는 말이 있게 되어, 접때의 대관(臺官)의 상소에 곧장 ‘김종서는 후손이 없는데 김익량이 사칭(詐稱)한 것이라.’고 하게된 것입니다. 어찌 세속에 떠다니는 말 때문에 두 선정의 가문에 전해 오는 말을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영조실록 2년 1726년


 

조선왕조 실록에 김승유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1451년 계유정란 이전에 정계에 진출하지 않고 일찍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단지 순천김씨 족보에 의하면 김승유의 아들로 효달이 있는 것으로 보아 김승유의 아들 효달은 나이가 어렸을 가능성이 높다. 순천 김씨에서 계유정란에 살아남은 자들은 다음과 같다.


김종서의 후손이 살아남은 이유는 김승규의 자손이 살아남은 것처럼 나이가 어렸을 가능성이 높고, 유모의 손에 이끌려 참화를 모면했다고 하는 전승이 전해진다.


더군다나 전승으로 전해지는 것처럼 김승규, 김승벽, 김승유의 자손이 살아날 가능성이 높지 당대에 나이가 많은 김종서의 아들들이 살아날 가능성은 전무하다.
 

순천김씨 www.schkim.co.kr/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수양대군의 딸 세령이 김승유와 결혼할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공주의 남자 제작자는 금계필담과 설화에서 전해지는 김종서의 손자와 세령의 사랑을 그의 아비 인듯한 김승유와 결혼을 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더불어 김종서의 손자들 중 세령과 엮일 가능성이 있는 자는 김승벽이나 김승유, 서자들 자식 중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아무리 드라마라고 해도 지켜야할 룰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김승유를 자신의 며느리와 사랑을 하는 인륜을 저버린 패륜아로 만든 것이다. 이미 자손만 남기고 이른 나이에 죽었음직한 김승유와 세령의 영혼결혼식은 개연성이 전무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공주의 남자>제작진은 자신들이 어떠한 막장드라마를 만드는지 알면서도 스스로 김승유(?)의 자식과 세령의 만남을 극의 재미를 위해서 김승유와 만남으로 극화하고 있다.


공주의 남자는 드라마가 재미가 있으려면 그만이고, 역사의 기록대로 하면 재미가 없다는 막장드라마에서도 하지 않고 개그소재로도 사용하지 못할 엽기 야동에서나 나옴직한 막장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살아있는 자도 아니,고 죽은자와 산자의 영혼의 사랑도 아니고, 그의 자식과의 사랑을 며느리와 사랑으로 변질한 소재가 재미있으면 된다고 댓글을 다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할 수가 없다. 최소한 지킬 건 지켜야하고 극에 맞는 개연성을 갖추는게 드라마가 할 일이지 전혀 개연성도 없는 소재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암담하기 까지하다.

더군다나 실존인물과 관련된 드라마는 기본골격과 치밀함과 사건의 개연성이 생명이다. 이를 왜곡해야만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당당히 말할수 있다면 드라마도 모르고, 역사도 모르고, 사극도 모른다고 자인하는 꼴이다.

2011/07/27 - [역사이야기] - 계백, 의자왕 어머니 선화황후 아닌 사택비 가능성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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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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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84 inch shower curtain 2011.11.18 1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주의 남자는 시대와 배경과 이름만 빌린걸로 다들 아는데 넘 깊이 생각하신듯....

  3. Favicon of http://www.84inchshowercurtain.net BlogIcon 84 inch shower curtain 2011.11.18 1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은글을 보니 공주의 남자라는 드라마가 인기는 있는가 봅니다. 이런말도..저런말도 관심에서 나오는거잔나요 ... 요즘 게그콘서트에서 불편한 진실보시죠...

  4. Favicon of http://www.reclinersforsales.net BlogIcon recliners for sale 2011.11.18 1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사는 와전될 가능성이 높기때문에 신뢰성이 떨어집니다. 순천김씨 족보에는 김승유만 살아남앗다고 전하고 있슴. 한번 확인바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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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씨, 한씨... 그녀는 아주 매력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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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자들 자식 중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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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2011.12.29 1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5. Favicon of http://rocville.com/?p=News BlogIcon Matya 2012.06.23 1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정란에 참화를 당한 사람들의 신원을 복원하고 그들 후손

  16. Favicon of http://nextgenerationpestcontrol.com BlogIcon Next Gen Services 2012.09.05 0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초 계획으로는 사업비가 157억이여서 서울시의 지분이 29%였지만, 113억이 증액되어 서울시 지분은

  17. Favicon of http://theblogtest.com/ BlogIcon theblogtest 2012.10.03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에서 갖다 쓸만한 배경이 얼마나 많습니까. 역사 공부 하며 받은 영감으로 소설이나 드라마 만드

  18. Favicon of http://www.fashion-pascher.org/23-lacoste BlogIcon Polo lacoste 2012.10.24 2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오바하시네요 드라마라는 장르 자체가 픽션인데 드라마에서 사실운운하시면 안되죠
    정 그렇게 불편하고 심기가 꼬이시면 그냥 역사스페셜을 보세요ㅎㅎ
    다른글들도 보니 사극 드라마를 무조건 꼬투리 잡아서 까려고
    눈에 불을 켜고 보시나보네... 참 한가하신가봐요^^;

  19. Favicon of http://www.ecommercegroup.com.au/ BlogIcon Ecommerce Australia 2012.11.06 0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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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资料后,我真的很喜欢这个...我将这个链接复制并粘贴我的Facebook状态。由于这个网站的管理员。......:)

김수로는 석탈해에게 여의를 구하지 못했다고 자책을 한다.

석탈해는 여의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수로의 용기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부조리함을 바꾸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힘없는 자의 외침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공허한 외침이라고 한다. 그러니 잘못된 것을 바꾸려 한다면 힘을 길러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수로나 석탈해나 순장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신라에서 순장이 없어진 때는 500년 대 지증왕 때이다.

공부의신에도 나오는 대사가 사극 김수로에서도 나온다.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사실이니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니였을까한다.

신귀간은 염사치와 함께 조방에게 수로의 정체를 가지고 야철 기술을 알려달라고 협박한다. 하지만, 단야장 조방은 천군을 배반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조방은 수로를 낳은 건 내처와 내가 낳은 것이니 협박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신귀간과 공부을 넘길 때 만든 계약 문서를 가지고 신귀간에 역공을 한다.

조방은 수로에게 쇠불이 가마를 만드는 방법을 전수한다. 그런데 과연 수로는 대장장이 였을까? 많은 사람들은 수로나 석탈해가 야철장의 수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역사에 대한 환상이다.

가야인과 이질적인 수로를 정견부인이 몰라 볼까?

수로의 탄생을 알고 있는 왜인 여자에 의해서 정견부인은 자신의 아들인 수로의 정체를 알게 될까?
 


정견부인은 수로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수로가 태어난 시점과 조방의 자식인 수로가 태어난 시점이 같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

정견부인은 자신의 아들인지 모르는 수로를 단순히 이진아시의 경쟁자로 생각하고 견재를 하고 핍박을 한다. 핏줄은 통하고 끌린다는 말은 허언이다. 그리고 사람은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것을 쉬이 알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정견은 자신의 아들인 수로를 알아 볼수 없었을까? 최소한 수로는 남방의 가야지역에 있는 사람과 틀린 골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최소한 수로의 얼굴은 기존 가야인보다 하얀피부에 가까워야 하고, 남방인과 다르게 속쌍거풀이 없어야 한다. 눈은 둥굴기 보다는 찌져진 눈이 되야 정상적이다.


또한, 광대뼈가 유난히 튀어 나와 있어야 한다. 코댓가 가야인들 보다는 높게 형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현재도 남방인과 북방인의 차이는 극명하게 들어난다.하물며 당시에는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었을 것은 자명하다.

더한 차별성은 제천금인이라는 흉노족 김융과 정견부인을 닮아 있어서 어릴적 김융의 얼굴이 수로를 통해서 발현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정견부인이 수로를 몰라볼 가능성은 전무해 진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조방의 부인이 수로를 자신의 아들이라고 믿는것은 어쩔수 없지만, 동네사람들이 이질적으로 생겼을 수로를 단야장 조방과 조방부인의 자식이라고 생각한다는 건 이야기 구조상 맞지를 않다. 재미있는 여담 중에 김수로의 후손 인 김해김씨를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거시기 근처에 점이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속설이 있다.

왜 최인호는 흉노족 제천금인족의 세력이 아닌 정견과 수로 두명만이 구야국에 들어온 것으로 설정을 하였을까? 거기에는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구별하고 민족의 구성은 삼한의 가야족들이라는 다수인을 설정한 것이 아닐까한다.

거대한 강물에 한바가지 물은 전체 구성원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뿔뿌리 흩어진 흉노족을 받아들이는 민족이동을 시도할 지도 모르겠다.

철을 지배하면 권력자가 될까?


어쨌든, 철을 지배하는 자가 권력을 가진다. 하지만 권력자에 의해서 철이 지배되는 것이다. 대장장이가 권력자가 되지 않는 것과 같이 비행기 만드는 기술자가 하늘을 지배하지 않는 것과 같다. 철이 있기전에 지배자와 피지배가 구분되고 권력은 이미 존재하고 있기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술자는 그저 권력자의 순한 종에 불과하고 이용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가야가 철을 생산할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중앙집권적 권력을 가지지 못한 이유 이기도 하다. 만약, 기존의 통설대로 철을 지배한 자가 권력까지 지배했다면 가야가 삼한을 제일 먼저 통일하였을 것이다.

다음편은 구야국은 수로시대에 있었을까?에 대한 고찰을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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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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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rockandroll.tistory.com BlogIcon 배리본즈 2010.06.07 08: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는글 잘 읽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3. 2010.06.07 0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Favicon of http://isblog.joins.com/jk7111 BlogIcon 둔필승총 2010.06.07 1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멋진 글 잘 보고 갑니다.
    늘 건승하세요.~~

  5. BlogIcon kue lebaran 2011.08.14 1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그냥 내가 정말 블로그처럼 정말 정말 버전 genious 기사 또는 블로그의 더 많은를 검토 수있는 나중에 돌려 보내 모든 사파리 주위 항목을 책 표시된 사용자 이름 glasscannonz 내부 Jumptag에서 추구를 위해이 사이트를 관찰 게시물!

  6. Favicon of http://huntingpastore.com BlogIcon 고명진 2012.01.01 0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일을 나의 친구를 계속, 이거 정말 끝내 준다

  7. Favicon of http://inoline.com BlogIcon 2012.01.07 0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전체에 서있다면 당신은 파고있어, 당신은 파고를 중지해야합니다

  8. Favicon of http://boris.worldtravelgate.net BlogIcon 마야 2012.04.03 1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살 여유가 없습니다.

  9. Favicon of http://isthismy.selfip.com BlogIcon 가브리엘라 2012.04.05 2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10. Favicon of http://ok-coral.is-a-celticsfan.org BlogIcon 루시 2012.05.08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지내십니까?

  11. Favicon of http://rosey.homeftp.net BlogIcon Liliana 2012.05.11 0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습니다, 그것을 사겠습니다

  12.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5.31 1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김수로에서는 어린 김수로가 따돌림을 받았거나 놀림감이 되었다는 장치 조차 없었다.

  13.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niches/wet.php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wet.php 2012.07.14 1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 쇠불이 가마를 만드는 방법을 전수한다. 그런데 과연 수로는 대장장이 였

  14.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niches/wet.php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wet.php 2012.07.14 1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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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Favicon of http://nextgenerationpestcontrol.com BlogIcon Next Generation Pest Control 2012.09.05 0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하면 게임이 되지 않는다. 지원이나 관리는 하지 않고 김연아로 부터 얻은 소득만을 취하는 형태를 보여주고

  16. Favicon of http://nextgenerationpestcontrol.com BlogIcon Next Generation Pest Control 2012.09.05 0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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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Favicon of http://rocville.com/?p=Forums BlogIcon Chase 2012.09.23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르는 수로를 단순히 이진아시의 경쟁자로 생각하고 견재를 하고 핍박을 한다. 핏줄은 통하고 끌린다는 말은 허언이

  18. Favicon of http://www.alqotr.com/blog/view/15141/ideal-guidelines-for-emergency-food-prod.. BlogIcon ready to eat quinoa 2012.11.26 2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강력한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형벌로서 하였다. 조선에서는 5개의 중형이 있는데 사형에 해당하는 대벽이 있고, 남자의 성기를 짜르는 궁형이 있고, 아킬레스건 처럼 발뒤꿈치 힘줄을 짤라 버리는 월형(비형)이 있고, 코를 베어내는 의형이 있고, 머리에 문신을 하는 자자(묵형)이 있다.

  19. Favicon of http://www.levitra-kaufen.org BlogIcon Levitra kaufen 2012.12.02 2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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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의신에도 나오는 대사가 사극 김수로에서도 나온다.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사실이니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니였을까한다.

  21. Favicon of http://www.sbwire.com/press-releases/text-your-ex-back-review-and-examples-fro.. BlogIcon text your ex back 2013.05.12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수로나 석탈해나 순장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신라에서 순장이 없어진 때는 500년 대 지증왕 때이다.

최인호의 소설 <제4의 제국>을 드라마화한 역사드라마 가야의 건국시조 김수로가 처음 방영되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에 대해서 김수로를 어떠한 인물로 그려 나갈것인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사극 <김수로>에는 김수로가 없었다.

한마디로 정리를 하면 붕어빵에 붕어 없고, 칼국수에 칼이 없는 것은 맞는것이지만 외형적으로 붕어빵은 붕어모양을 갖추었고, 칼국수는 칼로 만든 국수라고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사극 김수로에는 <팼밀리가 떴다>의 김수로도 없고, 역사의 김수로도 없다.

소설이란 개연성의 허구이다.  장치(기록)과 기록사이에 개연성을 만드는 장치를 만들고 이를 연결하는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극 김수로에는 모든 역사적 기록이나 <가설>들은 김수로로 합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사극 김수로에는 대가야의 건국신화와 김알지로 이어지는 신라의 김씨의 들의 시조설화와 금관가야의 김수로의 건국신화와 김유신묘에 있는 출자신화를 교묘히(?) 섞어 만든 부대찌개나 잡탕류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문제는 김수로를 흉노족의 일족인 김일제의 후손으로 그려버렸다는 것이다. 김일제의 후손을 자처하는 김씨는 신라의 김씨들이지 가야의 김씨들은 아니다.

김수로의 후손이라는 김유신의 묘에는 자신들의 출자를 황제헌원의 자식인 소호금천를 시조로 보고 있다.  

김유신 자신은 시조를 소호금천으로 보지도 않았다. 정확히는 그의 후손들이 만든 지석에 의한 것이지만 소호금천과 문무왕의 묘비에 있는 제천금인인 휴도왕의 아들 김일제의 후손과는 괴리가 있었도 너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선조들도 인간이 아버지도 없이 또는 아버지 어머니도 없이 알에게 태어났다는 것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뿌리찾기를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 것이다.

김알지는 어디서 왔을까? 김수로는 어디서 왔을까? 고주몽은 어디서 왔을까? 그래서 김해김씨는 소호금천에서 김수로의 출자를 찾았고, 경주김씨인 신라김씨들은 김일제에서 김알지의 출자를 찾았다. 이처럼 이들이 찾은 시조들은 당대 형성된 것이 아닌 후대에 만들어진 조작일 뿐이다. 

신라의 김씨들이 김일제를 시조로 내세운 이유는 중원의 황제에 귀부한 휴도왕의 아들이 한나라 고조에 김씨성을 사성받은 것을 자신들과 연관시켜 자신들이 조상들을 미화시키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스스로 중원 황제의 영원한 변방의 외신을 자처한 것이다.


반면에 가야의 김씨들은 가야시기에는 김씨성을 사사로이 쓸 수 없었다. 사실 가야시대에 <김씨>라는 성이 있었는지도 불투명하다 오히려 김씨성은 없었다는게 합리적일 것이다. 어쨌든, 신라에 투항한 후 김씨성을 사성을 받아 신김씨가 되고, 이후 신라의 김씨보다 김씨의 연원이 오래 되었다는 황제헌원의 아들 소호금천을 자신들의 시조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고구려도 자신의 출자를 황제헌원의 자손인 고양씨에서 찾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국가는 커야하고 자신들의 조상은 남들보다 연원이 오래 되고 족보가 빵빵하여야 한다는 "우리 조상은 <통뼈>였다"는 거대 컴플렉스와 사대 컴플렉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산물일 뿐이다. 그런다고 조상들이 위대해 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조상의 무덤에 침을 뱉는 무도한 무뢰배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조상들이 얼마나 부끄러웠으면 되지도 않는 남의집 족보를 자신의 족보에 채워 넣었겠는가? 한마디로 치열하게 살다간 선조들에 대한 예의는 둘째치고 나는 내 조상들이 부끄러워요라는 자뻑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한국인이던 유대인이던 어떤 사람이던 상관없이 아담의 후손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동아시아의 중심이였던 중원을 지배했었다는 삼황오제의 후손을 자처하는 것은 종교와도 같았고 유행이였다. 이는 안봐도 DVD인것이다.

현재 일본에는 자신들을 예수의 직계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일족도 있다. 이들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이 있다면 웃어주면 그만이다.

무조건 믿는다는 것은 종교이지 과학이고 역사는 아니다. 드라마는 드라마 역사는 역사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역사도 모르고 드라마도 모른다는 고해성사와 같다.

어쨌든 MBC 사극 김수로는 또다시 역사왜곡의 한복판에 서 있을 것이고, 성범죄자들 때문에 성범죄 예방이 되어 좋다는 류의 왜곡된 역사로 인해서 역사공부를 다시 하게 되어서 좋은것 아닌가? 라는 사극 김수로 공로론이 나올것이 자명해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위대한 신라의 선덕여왕이나 있지도 않는 <제4의 제국>이라고 주체적인 가야를 표방한 <김수로>나 컴플렉스를 깨기위한 드라마가 아닌 컴플렉스에 찌든 작가들이 스스로 컴플렉스에 빠져들었다는 것을 스스로 알리고 대중에게 컴플렉스에 동참하도록 종용시키는 소설이고 드라마일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드라마는 요원한 것인가?

그냥 사극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지 않고, 따로 공부하지 않고, 믿고 그럴수도 있겠네 고개를 끄덕이는 역사 드라마 만들기가 그렇게 힘든것인가?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marketing360.tistory.com BlogIcon 미스터브랜드 2010.05.30 09: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특히 사극에 있어서는 최소한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2. Favicon of https://qlcanfl.tistory.com BlogIcon 빛무리~ 2010.05.30 10: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갓쉰동님 덕분에 더욱 깊은 지식을 알고 갑니다..^^

  3. 2010.05.30 1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마른 장작 2010.05.30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수로 아직 시청 시작 못하고 있는데.. 진짜 이것 저것 볼 것 많고. 하하하. 하여튼 사극 김수로에 이런 문제가 있다니. 알고 보겠음^^니다.

  5. Favicon of https://gamjastar.tistory.com BlogIcon 또웃음 2010.05.30 13: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뵙네요.
    김수로와 함께 갓쉰동님 글도 자주 뵐 수 있길 바래요. ^^

  6. 양현 2010.05.31 0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상의 무덤에 침을 뱉는 건 사실상 소호금천이나 고양씨를 자기 조상으로 삼은 저들뿐이 아니죠.
    국민의 100%가 정승판서의 후손인 현대 한국인도 마찬가지.
    따지고 보면 정말 엄청난 아이러니...
    한국인들이 조상을 대단히 모시는 것 같이 굴지만 따지고 보면 정말 세계에서 한국처럼 조상이라는 것을 개취급하고, 자신의 위신을 위한 엑세서리쯤으로 관념화 하는 민족이 또 없다는 거...
    천한 조상이 부끄러워 남의 조상을 가져다가 모시거나 만들어서 모시는, 또 그렇게 해야만 살 수 있었던 사회를 만든 우리 한국민이 참 부끄럽습니다. 조상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그 행태 자체가 조상을 진정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존중한다기 보다 단지 그 "뼈대" 자랑이 도그마화된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의 반증...

    옆나라 일본을 조상도 모르고 뿌리도 없다며 비웃지만 걔네들은 소나무 아래에서 섹스를 해서 태어난 조상, 섬 안에서 섹스를 해서 태어난 조상이라도 (물론 그것도 기모노의 오비가 아무데서나 섹스하기 위한 담요였다는 근거없는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악의적인 날조에 지나지 않지만, 그런건 차치하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연원이 확실한 조상을 가지고 있건만 한국인의 조상은 전부다 가짜.
    일본인이 뿌리 없는 걸 비웃을 시간의 10분의 1이라도 상것이면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는, 조상이 천하면 그 후손도 볼것없이 무조건적인 천시와 멸시를 받는 사회를 부끄러워 하는데 썼으면 아마 한국인의 문화적 품위는 지금보다 많이 올라가지 않았을까...
    천것들은 한날 한시에 자손도 못 남기고 다 휴거를 했는지 다 같이 무릉도원에 갔는지 어째서 현대 한국인 중에 천것들 후손은 단 한명도 없으니 미스테리일뿐...
    투탁, 공명첩, 별보, 위보...
    한국은 정말 민족주의를 버리고 한발짝 떨어져서 들여다 보면 정말 성경에 나오는 "회칠한 무덤"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수가 없는 사회더라구요. 위선과 가식과 거짓, 열등감이 가득한...

  7. 글쎄다 2010.06.01 2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kbs에서 방영된 다큐에서
    고대 무덤 유전자 조사 결과 흉노족과 신라 김씨와 동일 부족임을 확있했다고 하는데?
    대체 무슨 근거로 글쓴이는 다 허위로 몰아가는 것인지?
    증거라고는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하고 단지 의견뿐이네

    • 경주김씨는 흉노족후손이맞구요 2010.06.10 2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단 인간은 모든걸 다 알수없고 그 유명한 뉴튼조차 아인슈타인조차 난 바다의 수많은 모래와 조개속에서 흙장난하는 아이일뿐이다라는 말을 했듯이 지금사실도 모르는데 과거를 완전하게 정확히 아는 사람은 한개도 없구요.특히 성씨에 대해선 우리나라는 체면과 권력이 중요한 나라라서 나라가 망할때마다 성이없던 중인들이 족보를 사들이는경우가 많고 특히 김씨들이 권세가 많았으므로 김씨족보를 사는 경우가 많아서 김씨가 이다지도 많아진것이라합니다.민중역사가가 쓴 책에 따르면 경주김씨는 흉노족 (중국이나 아랍에서 건너왔을 가능성)이라고 나오고 김해김씨는 러시아쪽이라고 하던데,,그것도 정확치않아요..그리고 김씨가 다 한조상이 아닙니다.제가 김해김씨인데 김해김씨와 경주김씨(김해김씨외에 모든 김씨는 경주김씨후손에서 갈라짐) 나온 김씨는 엄연히 조상이 다릅니다.문제는 김씨라는 성이 같기때문에 김씨하면 다 한 조상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그래서 저희 큰아버지가 몇년전에 다 모인자리에서 앞으론 아마 가야김씨로 성을 바꿀거라고 하시더군요..경주김씨후손들과 헷갈려서..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10.06.11 1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든걸 다 알수는 없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잘알지요.. ㅋㅋ 냅두셈.. 저러다 가시겡..

  8. 글쎄다 2010.06.01 2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록이 남기 시작한 7세기 이후에 후손들이 다 조작한거라고?
    신라가 역사기록을 시작한 7세기 훨씬 이전에
    당시 4세기에 신라무덤형태에서 갑자기 출현한 북방기마민족의 적석목곽분 같은 것은 그럼 어떻게 설명할래? 수많은 증거는 다 무시하고 그냥 일방적인 의견뿐이네 ㅉㅉㅉㅉ

  9. 글쎄다 2010.06.01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덤도 그러면 사망 당시에 축조한게 아니라
    과거에 죽었던 사람들 모두를 모아서 7세기 이후에 한꺼번에 동시에 축조한거야? 그런거야?
    다 후손들의 조작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무덤에서 나온 유골을 토대로한 유전자 검사결과가 같은 일족이라는 것에는 어쩔꺼야?

  10. 글쎄다 2010.06.01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야의 무덤에서 출토된
    당시 한반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북방 기마민족의 전형적인 형태의 유물들은 어쩔꺼야?
    이것도 몇세기 뒤에 나중에 후손들이 추가로 집어 넣어놨나?

  11.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vibram shoes 2012.05.31 1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김수로에서는 어린 김수로가 따돌림을 받았거나 놀림감이 되었다는 장치 조차 없었다.

  12.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niches/milf.php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milf.php 2012.07.14 1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은 시조를 소호금천으로 보지도 않았다. 정확히는 그의 후손들이 만든 지석에

  13. Favicon of http://nextgenerationpestcontrol.com BlogIcon Next Gen Services 2012.09.05 0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들고 전자책 선전을 해서 문제를 일으킨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유인촌은 유명한 말을 한다.

  14. Favicon of http://rocville.com/?p=News BlogIcon Torrie 2012.09.16 2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측이 구동회를 꾀어냈던, 구동회가 김연아 측을 꼬셨던 구동회 부사장이 올댓 스포츠를 세우는데 뒤에서 앞에서 깊숙이

  15. Favicon of http://mon-odc.org/blog/view/271/a-guide-for-emergency-food-items BlogIcon ready to eat popcorn 2012.11.26 2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강력한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형벌로서 하였다. 조선에서는 5개의 중형이 있는데 사형에 해당하는 대벽이 있고, 남자의 성기를 짜르는 궁형이 있고, 아킬레스건 처럼 발뒤꿈치 힘줄을 짤라 버리는 월형(비형)이 있고, 코를 베어내는 의형이 있고, 머리에 문신을 하는 자자(묵형)이 있다.

  16. Favicon of http://mytravelmap.net/blog/view/763/saving-your-crisis-package-correctly BlogIcon coleman emergency poncho 2012.12.03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치(기록)과 기록사이에 개연성을 만드는 장치를 만들고 이를 연결하는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극 김수로에는 모든 역사적 기록이나 <가설>들은 김수로로 합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 36회에서는 크게 몇가지 이야기를 동시 다발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티아라의 큐리(이지현)이 드라마 선덕여왕의 김유신(엄태웅)의 첫번째 부인인 영모 배역에 낙점이 되었군요.

첫째. 춘추의 세상 속이기

춘추는 미생이 하자는 대로 모든 것을 다한다. 미생은 춘추를 데리고 유곽에서 나아가 춘추의 여자 보는 눈을 실험한다. 신라판 미인 선발대회이다. 이는 춘추 한 개인을 위한 미인대회이다. 미생은 보종을 통해서 춘추가 보량(박은빈)을 좋아하다는 이야기를 미실에 전한다. 이에 우리의 찌질남 하종은 왜 자신의 딸들에게도 아름다운 미인들이 많은데 왜? 하필 보량이냐고 푸념을 한다. 하지만, 춘추는 도박장에서 비담을 만나서 눈인사를 하는 과정에 이미 미생의 술수를 다 알고 있다고 시청자에게 알려준다.

여기서 하종의 찌질거림은 미실의 속내가 있다는 암시와도 같다. 영모(큐리:이지현)와 유신을 짝으로 만들어 주려는 고도의 술책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하종의 입을 통해서 <영모>가 미인임을 암시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영모(이지현)>와 <보라>, <보량>이 얼마나 어여쁜 신인(?) 연기자가 출연하는지 보는것도 재미가 있지 않을까? 여성시청자를 위해서 10화랑, 알천(이승효), 비담(김남길), 김춘추(유승호)를 비밀 병기로 발탁했다면, 남성 시청자의 눈을 즐겁게 해줄 뉴페이스도 필요할 때이지 않을까 한다.

미실은 미생이 춘추는 <보량(박은빈)> 타입이라고 말을 보종의 보고를 받는다. 미실은  "미생이 그렇다면 그런것이다"라고 말을 한다. 미생은 카사노바도 울고갈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실은 미생의 여자를 보는 눈은 정확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춘추의 여자보는 눈을 탓하는 것이다. 이는 시청자에게 조금의 함정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이다. 춘추는 미생의 눈을 속이고, 미실의 눈도 속일 정도로 심계가 깊다는 뜻을 내비치는 것이다.

보량은 보종과 양명공주 사이에 태어난다. 양명은 진평과 보명사이에 태어난다.


보량(보종/양명)은 할머니 미실처럼 바람끼가 농후하다. 또한, 진평왕의 후비로 왕자 <보로>을 낳는다. 하지만, 보로는 승만후의 방해와 보량의 바람끼가 합해져 보로는 왕이되지 못한다. 실제로 미실이 신라 왕실을 접수하려 했다면 자신의 증손인 보로(진평/보량)를 통해서 했을 것이다.


물론, 춘추는 보종의 딸과 결혼을 한다. 하지만 <보량>이 아닌 <보라(보종/양명)>와 결혼을 한다.  보라는 춘추와 결혼하여 고타소를 낳는다, 고타소는 남편과 함께 642년 대야주에서 백제군에 의해서 죽는다. 김유신과 다르게 춘추가 백제를 삶킬 궁리를 한것은 자신의 여식의 복수심에 의해서다. 김유신은 이런 춘추를 꼬드겨 <삼한일통>의 대업을 이루고저 한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춘추는 왜? 왜(일본)에 갔을까?" 라는 주제로 송고할 예정이다.

둘째. 유신으로 인한 비담과 문노의 갈등

문노는 자신이 꿈꾸고자 한 꿈을 이뤄줄 사람은 유신으로 낙점을 한다. 그리고, 왕은 덕만이 되어야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운명론에 사로 잡힌다. 그래서 비담이 아닌 <삼한비기>를 유신에 넘겨주려고 한다. 이에 비담은 낙담을 하고, 문노와 헤어질 결심을  굳힌다.


셋째. 유신과 덕만의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

유신은 덕만에게 왕으로서 가야할 길을 가도록 한다. 또한, 그게 덕만이 하고자한 꿈을 이루는 길이라고 한다.

넷째. 유신의 미실에 대한 투항

미실은 유신에게 가야의 복야회를 희생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뜻에 따를 것인가를 종용한다. 
덕만도 유신에게 자신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설지를 선택할 것인가?를 물어본다.

하지만 우리의 에너자이저,
유신은 덕만에게 복야회의 단 한명도 희생시킬수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적국의 1만의 병사나 백성을 희생하더라도 내 백성은 하나라도 다치게 해서는 안되는게 군주의 도리"라고 한다.

이는 요즘의 세태를 정확히 비판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국민 하나가 다친다면, 백배 천배 보복을 감행한다. 자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짓이라도 하는게 국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은 어떠하냐?라는 반문이다. 각자 알아서 판단하시길 바란다.


어찌되었던, 유신은 마음은 덕만에 두고 몸은 미실에 무릎이라도 꿇는다. 이는 한나라 한신의 고사를 생각하면 쉬이 이해할 수 있다. 지금 비록 힘이 미약하지만, 때가 되면 일어서겠다는 생각이다.

미실은 유신을 얻기 위해서 풍월주 비재에 승리한 유신을 또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한다. 복야회의 일원이고, 신라내이 가야인들을 반란를 획책했다는 누명을 씌워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다. 이는 단순히 풍월주를 자신의 아들인 보종에 양보하도록 압박하려는 수단은 아니다. 유신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려는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덕만과 유신의 사랑은? 신분의 제약일까? 아니면 나이차이일까?


덕만은 유신이 미실에 끌려갈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알고, 자신의 속내을 유신에게 보여준다. 하지만 유신은 공주는 공주의 길을 가야한다고 한다. 또한, 소화도 덕만에게 "어짜피 마음으로 밖에 못하세요"라며 공주로서의 삶이 있으니 감내하고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이야기를 한다.


소화의 단순한 발언속에는 이런 이야기가 함축하고 있다. 유신은 진골이고, 덕만 공주는 <성골>이니 <이루워 질수 없는 사랑>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성골은 무치인데, 진골이면 어떻고, 성골이면 어떠한가? 소화가 나이를 들어서 유신과 이루워질 수 없는 사랑이며, 바라만 봐도 좋은 사랑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미실을 찾아간 유신은 자신의 몸은 가질 수 있으나 마음을 가질수 없다고 이야기를 하며, 유신은 "이제 세주 미실의 품으로 들어가겠다"한다. 그런데 미실은 "내가 조금만 젊었어도 너를 직접 내품에 안을텐데"라는 말을 한다. 이는 유신에 향한 말이 아니다. 유신 뒤를 쫓아온 덕만을 자극하기 위한 말이다. 이에 덕만은 사랑하는 유신이 자신의 곁을 떠나는데 여인으로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 내가 가질수 없는 사랑은 남이 가져서도 않된다는 한마디로 질투이다.

또한, 미실의  "내가 젊었어도 직접 유신을 품에 안겠다"라는 말은 시청자를 향해서 하는 말이다. 나 미실은 "이런 여자야" 남자를 많이 다뤄본 여자야 그러니 알아서 해.. 라는 뜻이다.

어린 유신을 두고 두여인의 연기가 불꽃을 튀고 있다.

덕만 공주의 왕으로 가는 길과 유신이 가고자한 신하의 길은 넘을수 없는 멀고도 먼 사랑 같이 보인다. 그저 단순히 덕만이 유신을 사랑하는데 무슨 걸림돌이 있겠는가? 반문할 수도 있다. "신분의 벽이 무섭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들 덕만과 유신의 사랑이 신분의 격차 때문에 이뤄질수 없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덕만은 임술년생이다. 임술년은 602년이다. 595년 생인 유신이 덕만보다는 나이가 7살은 많다. 풍월주 비재가 있던 612년에는 덕만은 11살이 된다.

하지만, 드라마상에서는 곧죽어도 덕만이 천명과 같이 580년대 중반의 사람이다. 그러니 덕만이 유신보다는 10여살은 나이가 많은 설정이다. 그런데 드라마를 파고들면 천명과 덕만은 579년에 태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더한 것은..버려진 덕만이 소화의 손에 의해서 문노를 찾아간다. 이때 문노는 비담과 덕만의 사주를 살핀다. 비담과 덕만의 첫만남을 연출했던 장면이 있다. 이때, 비담은 건복원년(586년)생이라고 말을 하고, 어린 비담과 방금 태어난 덕만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덕만은 587~8년이 생이 된다.

요즘은 능력있는 여자들이 나이어린 남자를 애인이나 남편으로 삼는게 트랜드화 되었다. 물론, 예전에도 꼬마신랑은 있었다. 그러니 신세대의 복고풍 바람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한다. 

이처럼 드라마 <선덕여왕>은 덕만과 천명의 출생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럴때 "천명과 덕만이 언제 태어났다는 말이냐?"라고 반문해주는게 정상이다. 하지만, 선덕여왕을 보는 사람들중 드라마 스토리가 탄탄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들이 말한 드라마의 스토리의 탄탄함은 주인공이던 주변인들이던 SF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 같다. 선덕여왕을 보면서 많은 사람으로 부터 비판받는 엄태웅을 비롯해서 배우들의 연기에는 흡족하지만, 원작의 부실함에는 어찌 저런 기초도 안된 허접한 황당소설이 다 있을까 혀를 찬다.

어찌되었던, 오래전 미실은 아막성. 속함성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서현과 유신을 가야파로 부터 떼어 놓을 계락으로 <사다함의 매화>를 이용한다. 정확히는 사다함의 매화는 책력이 아니고 월천대사이다. 미실은 월천대사를 이용하여, 월식을 예측하고, <인력구(人力口)>의 파자로 가야(伽倻)파의 맹주인 서현을 미실 자신측으로 돌려 세우고, 하종의 딸인 영모와 결혼시켜려는 계략을 꾸몄다. 하지만, 천명의 죽음으로 실패하고 만다. 그러부터 몇년이 지난 풍월주 비재 후  실패한 영모와의 혼사를 다시 추진하려고 하는 것이다.

영모(큐리)와 보량, 보라는 누구?


위의 가계도를 보시면 알겠지만, 미실이나 유신이나 설원랑이나 화랑의 시초인 1번째 풍월주 위화랑의 후손들이다.  또한, 설원랑의 후손중에는 원효와 설총도 보인다. 드라마에서는 찌질이 하종이 설원랑을 무시하듯 나오지만, 설원랑은 미모(설원랑/준모)를 하종에 시집보낸다.

그러니 설원랑은 하종의 장인이 된다. 사사로이 장인에게 <선덕여왕> 드라마처럼 막대한다면, 후레자식 취급 받을 것이다. 신라는 괜찮다고? 아무리 개족보처럼 막나가는 듯 보이지만, 신라도 사람사는 세상이다. 왕도 장인에게는 함부로 못한다.

어찌되었던, 미실은 왜 영모를 유신에게 시집을 가도록 강요를 하는 것일까? 단순히 정치적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까? 아니면 정말로 <영모>가 유신의 짝이라고 생각해서 일까?


삼국사기에 의하면 유신의 부인은 춘추의 딸이며, 자신의 누이의 문희(서현/만명)의 딸인 지조(춘추/문희)와 655년에 결혼을 한다. 그리고 유명한 원술을 낳는다. 그렇다면, 유신의 첫번째 부인은 지조일까?

여기서 유신의 나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신은 595년생이다. 지조와 결혼하는 때 61세 회갑이 된다. 춘추가 유신에게 단순히 회갑선물로 자신의 딸인 지조공주를 유신에게 주었을까? 또는 유신은 655년에 결혼한 때가 첫번째 결혼일까?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유신을 너무 모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유신의 첫사랑(?)인 천관녀를 잊지 못해서, 전쟁광으로 전장을 누빈것으로 생각한다면, 신라사회와 유신을 너무나 모른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천관녀가 영모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쓴이는 영모에서 천관녀의 냄새를 맡은 적이 많다.

어찌되었던, 삼국사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원술(유신/지조)말고도 몇명의 유신의 자식들이 등장한다. 물론, 지조와 결혼하기 전이다. 그러니 "유신은 지조와 첫번째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하지만, 통설은, 유신이 655년 첫번째 결혼하는 상대가 자신의 조카인 지조가 되고, 원술이 유신의 장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필사본 화랑세기는, "유신이 지조랑 첫번째 결혼했다고?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또한, 유신은 18세가 되던 즈음에 11세 풍월주 하종의 딸인 영모와 결혼한다.
유신의 자식들 중 <광>자 돌림를 사용하는 자식들은 <영모>의 소생이라고 말을 한다.  여기서도 현존하는 화랑세기 유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던, 또는, 단순히 지조의 자식이라고 생각한 <광>돌림 자식은 <영모>의 소생이고, <원>자 돌림은 <지조>의 소생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 그래서 현존하는 화랑세기를 무시할 수 없다. 또다른, 일단은 <화랑세기>가 박창화의 위작이라고 말을 하지만, 위작을 주장하는 사람들 조차도 <필사본> 화랑세기의 정교함에는 두손 두발을 다 들어 버렸다. 

현존 화랑세기가 박창화의 <역사>소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박창화는 1930년대에 이미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던, 김유신의 첫번째 부인과 그들의 후손을 정확히 구분해서 소설을 쓰고 있다. 지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는 빈틈을 찾아보기 힘들정도의 <역사소설>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삼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은 곳곳에 치명적인 오류가 보인다. 지금까지 36회를 진행하는 동안, 발견된 오류만 100여개는 넘을 것이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오류 리스트를 작성할 것이다.

진정한 승리자는 미실? 서현? 설원랑?

위의 계보도를 보면 보종의 첫번째 부인이 현강이다. 현강은 문노와 윤중(거칠부/?)의 자식이다. 그러니 보종의 장인이 문노인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은 두번에 걸쳐 영모와의 혼사를 성사시키려 노력한다. 만약, 미실이 유신을 자신의 집안사람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면 미실은 신라를 접수 할 수 있을까? 사실 드라마 선덕여왕은 <덕만>을 주인공으로 신라의 왕이 되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미실 집안이 어떻게 신라의 왕가를 접수해 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듯 하다.

하지만,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영모를 유신에 소개 시켜준 측은 미실이 아니다. 이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9/22 - [역사이야기] -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하는 미실의 비밀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당연히, 가시기 전에 추천하는 것을 잊지 마시라. 시청률이 배우에게 연기하는 힘이 되지만, 글쓴이에게는 추천이 힘이 된다.)

실제로, 덕만은 왕이 되어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후사를 잇지 못했다. 그러니 절반의 성공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실은 자신의 후손들이 부터 신라를 접수하는데 성공 한다. 사실은 부계로 따진다면 보종, 하종의 승리이고, 보종 아버지인 설원랑의 인간승리이다.


하지만, 진정한 승리자는 김서현 가문이다. 김서현의 딸인 문희는 춘추와 결혼해서 문무를 낳고, 춘추/문희의 후손들이 대대로 신라의 왕이 된다. 물론, 가끔 삐딱선을 타는 왕이 나오기는 하지만 말이다.

 
배우에겐 시청율이, 글쓴이에게는 추천이 힘이 됩니다. 비로그인 추천가능 숫자크릭 ^__^;;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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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나가던 객 2009.09.23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선덕여왕 닥본사 중인데 갓쉰동님 글 넘 잼있게 보고갑니다. 선덕여왕보다 더 잼있네요~.^^

  3. 바씨 2009.09.23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잘봤습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계보도로 정확하게 파악하게 되어어요.
    좋은 하루 되세요.~

  4. 신버미 2009.09.23 1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었습니다.
    아 그리고 유신과 결혼하는 춘추의 딸의 이름은 지소입니다.
    그리고 보량궁주가 바람기 때문에 보로전군이 왕이 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승만부인이 보량이 아들을 낳자 질투하여 사가로 물러나 살다 양도와 결혼합니다.
    바람기가 많은 진평왕 후궁은 태양공주(진평왕 고모 ㅡㅡ;;)
    진평왕의 아들인 태원과 호원을 낳았지만 태양공주의 바람기 때문에 진평왕의 자식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호원의 후손인 진공과 신공이 반란(흠돌의 난)에 가담하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김서현의 딸인 문명왕후가 문무왕을 낳아서 유신파의 승리였지만 나중에 흠돌의 난으로
    유신의 가야파계열이 몰락하는 계기를 갖고 옵니다.
    참고로 흠돌은 유신과 문명왕후의 조카입니다.
    신라 왕계는 진지왕계인 무열계가 왕비계열은 진골정통이 승리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3 12: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량은 바람기도 있었지요. 태양도 마찬가지 이지만, 다분히 승만이 보량과 태양을 축출하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지만요..
      지조라고 합니다..지소라고도 하공.. 대부분 지조부인이라고 표현하지요.. 지소태후(진흥모후)와 헛갈리지 않도록..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3 12: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른 글도 봐주실레요..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뎅.. 역사카테고리의 글입니다... ^___^

      님이 지적하신 글에 많이 공감을 하는 글들을 발견하시게 될겁니당..

  5. 어이없음 2009.09.23 1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삽질을 하시지요~

  6. Favicon of https://blogsabo.ahnlab.com BlogIcon 보안세상 2009.09.23 13: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을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바쁘다 보니까 보지 못하고 있네요

    맨날 다음 뷰에올라온 포스팅을 보면서

    아쉬움을 달랠 뿐 ㅠ

  7. 상록수 2009.09.23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족보를 볼 때마다 머리 아프지만...ㅋㅋ
    갓쉰동님 글은 언제나 흥미진진 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8. 2009.09.23 1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3 23: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들켜버렸다. 글을 블로그 에디터에서 바로 그냥 막씁니당.. ㅠ.ㅠ.
      대화를 하듯 쓰다보니 그런 면이 있다고 봅니당..

      습관화 되어서 고치기가 힘드네용.. 한마디로 채팅하듯 글을 쓰거든요..

      충분히 지적가능한 내용이지요.. ^____^

  9. ahnkbae 2009.09.23 16: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휴~~뭘 머리 아프게 그런 걸 따지면서 보나요? 재미없게스리~~어차피 드라마 각본은 역사적으로 딱 맞지 않는 부분인데....드라마는 단지 드라마로써 즐기면서 보자구요....

  10. 노재운 2009.09.23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의 구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많이 유익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11. Favicon of https://skagns.tistory.com BlogIcon skagns 2009.09.23 19: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언제봐도 복잡한 가계도입니다. ㅋㅋㅋ

  12. Favicon of http://potatobook.tistory.com/ BlogIcon 감자꿈 2009.09.23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 님 덕분에 역사 공부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늘 감사드려요. *^^*

  13. 2009.09.23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4. 갓쉰동님 광팬 2009.09.23 2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 말씀대로 진정한 승자는 김서현의 가문이네요. 그나저나 선덕여왕 요즘 재미가 떨어져 간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히려 덕만이 공주가 되기 전이 재미나고 다음주가 궁금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띄엄띄엄 봅니다. 흡입력 부족한 덕만공주를 보면 배우가 잘못인지 극본이 잘못인지 헷갈리지만(제가 보기엔 둘 다...) 들마 보면 점점 삼천포로 빠지는 기분이 들어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4 00: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고려의 최종승자는 신라계이듯이..

      저는 잼있던뎅.. 재미 없어 하는 분들이 좀 늘어나긴 하나봐용.. 늘어진다공.. ㅋㅋ

    • nightbird 2009.09.24 0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요원이 너무 흡입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참 매가리없이 한다는 느낌...
      주인공 매력이 없으니 조연들로 버티는 형세랄까.
      늘 아쉬운 부분이지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4 02: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점차 중심을 잡아가고 있는것 같던데용.. 선덕여왕은 덕만의 성장드라마잖아요.. 그러니 성장하는 과정으로 봅니당.. 유신동.. 미실같은 경우는 이미 성장이 끝나고 쇠퇴기 정도..

  15. 누리 2009.09.24 0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재밌게 공부를 하고 갑니다~^^
    선덕여왕을 보면서 가끔 이해되지가 않는 것들이 있는데...
    갓쉰동님 덕분에 알게돼네요~ㅎㅎ
    갓쉰동님의 노고에 감동(?)하여 추천을 꾹 누르고 갑니다~

  16. joomin11 2009.09.24 0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내용은 사학을 전공하거나 역사에 관심이 많으면 알수 있는 내용입니다.드라마 내용에대한 이해도를위한 글은 좋지만 물론 필사본 화랑세기가 정교한 면이 없지않아있지요. 그러나 단순히 김유신 가문의 이야기만 가지고는 진위를 논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부 기존의 기록들을 뛰어넘는 내용이 있지만 그에 반해 화랑들에 대한 일부 기록에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적절히 조합한 듯한 내용도 많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문제는 박창화씨가 고대사가 펌훼되던 일제시기에 지어졌다는 점과 일부 내용에서 근대적 어투가 발견되는 점등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학과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요즘 서울대를 비롯한 일부 학계에 뉴라이트를 비롯한 이단학계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님같은 분들이 지식을 얻는 대부분의 내용들은 신뢰못하는 사학자들의 연구자료랍니다. 그리고 역사를 전공한 자와 재야고수간의 기본적인 지식의 깊이는 차이가 없지만 심층적인 부분에서는 원전을 더 많이 접하고 역사만을 연구한 사학자들을 무시할수는 없다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언제 기회가 되신다면 성균관대 동아시아 학술원이나 고대 동북아 문제연구소에 방문해 주시지요.
    님과같은 재야 고수들과의 역사를 위한 토른을 한번 하고싶어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
    이번내용은 내용의 질면에서 충분히 연구하고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서 ㅊㅊ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4 0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사학을 전공하거나 역사에 관심이 많으면 알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신뢰하지 않는다고 무시한다고 생각하지 마셈..

      그러니 신뢰하지 못하는 사학자들이 연구자료이기 때문에 무시했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제가 아마도 화랑세기에 대한 언급은 제글 수십군데에 하고 있을 겁니다.. 물론, 님처럼 화랑세기 너무 정교해서 의심스럽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전대(704년즈음)기록이 후대의 기록을 믹스한듯한 모양은 선후관계가 뒤바뀌었다고 보거든요..

      드라마 원작자에 향한 비판은 자신의 사료로 인정한 <화랑세기>조차도 비틀어 버린점입니다.

      퓨전환타지 사극이라고 말을 하면 그건 정말 원작자를 무시하는 발언 같은데요.. 스스로 신라를 알려주겠다는 사람들 보고, 니들은 극이나 만들어 돈이나 벌어라 한다면.. 욕이지요..

      저는 상대가 주장하는 바에 맞추어 비판할 따름입니다.. 제가 화랑세기를 인용한것도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인용하고 있기때문에 화랑세기를 인용해서 사료비판을 하는 거지요.. 만약, 화랑세기를 인용하지 않았다면, 선덕여왕에 관한 글에서 저는 화랑세기 인용을 한 줄도 안했을 겁니다.

      학문이 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거지요.. 믿어주어야 하지요? 믿느나면 그냥 수용하면 될텐데 말이지요.. 전공자 믿음이 안가요.. 기존에 내 놓은 연구자료들을 보면.. 이렇게 말하면 모든 연구자를 폄훼하는 것 처럼 보이시겠지만, 이는 오독입니다. 잘못된 사항을 지적하면 전체를 지적한 것 처럼 보이겠지만, 잘못된 부분만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확대해석을 금물입니다...

      님의 신뢰못하는 사학자들의 연구자료라는 말씀에.. 좀 그랫거든요.. 신뢰를 하지 않으니 인용이나 언급도 말라는 뜻처럼 말입니다.

      암튼 이번 내용은 질적으로 연구해볼 대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허접글인데요..
      언제나 기회가 되겠지요.. 재야고수는 넘치고 넘치지요.. 저같은게 무슨 재야고수축에나 끼겠씁니까? 정말 그렇다면 재야고수들 다 죽어야 할겁니당. ㅋㅋ..그저 관심정도 밖에 없습니당..

  17. joomin11 2009.09.24 0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선덕여왕의 경우 태왕사신기 보다는 약간 덜한 퓨전사극정도라고 생각하고 보면 괜찮을 듯 합니다.
    사실 화랑세기가 진위가 가려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인용했다는 것 자체가 사기죠.

  18. joomin11 2009.09.24 0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살 역사드라마의 절반 정도는 재미를 위해 역사를 장난감삼아 갖고노는 것에 불과하죠. 약간 덜한 천추태후부터 봐주기힘든 자명고 선덕여왕까지 사실 저도 배우만아니면 선덕여왕 보지않습니다.
    그리고 님의 글들 중 대부분의 글에는 공감을 표합니다. 그러나 가끔 자만하시는 부분이 있으시더군요.
    대한민국에 역사를 제대로아는 사람은 1%도 되지않는다 등의 내용의 글들 말입니다.
    물론 님이 역사전공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역사에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하시고 비판하시는 자세는 좋지만 사실 님처럼 블로그에 대놓고 지식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역사적 안목이 뛰어나고 지식이 풍부하신 분들도 많고 나아가 역사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많답니다. 앞으로는 글쓰실때 조금 겸손하셨으면 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4 02: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주민님..역사로 밥을 빌어먹는 사람도 많은 것은 알고 있어요.. 전공도 작가 영역이 있는 겁니당..
      1%도 되지 않는다고 하면, 자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가요? 꼭 역사를 50%이상 알필요도 없어용.. 바쁜뎅.. 1%도 모르는게 정상입니다.. 그래야 역사로 밥을 빌어먹는 직종도 생기지 않겠어요? 남들 다아느네 그런 직업을 선택한다는건 문제가 심각하지요.. 다른 직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저의 지식을 들어냈다고 보지 않습니다. 밑에 글에도 언급했지만,.. 충분히 겸손하다고 생각하는데 님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봅니당.

      님 제글 몇개나 봤는지 궁금해요.. 정말로...

  19. rrrr 2009.09.28 1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분 나쁘네요. 덕만은 왕이 되어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후사를 잇지 못했다. 그러니 절반의 성공에도 미치지 못한다.

    라뇨? 선덕여왕 무시합니까?

  20. 별별별별 2009.10.07 2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읽고 있는 박순교님이 지으신 김춘추 외교의 승부사 이 책에는 고타소가 문희의 딸로 나와있습니다.옛날에 불에 기울고 무너질 뻔한 아이' 라는 뜻으로 고타소(古陀炤) 이렇게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8 01: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만약, 문희는 고타소의 어미가 될수 없지용.. 연령대가 잘 맞지 않음..
      문희와 춘추는 627년에 만나서 이즘에 법민을 낳고, 629년에 인문을 낳습니당.. 고타소는 그렇다면 630년생이후가 되어야 한다는 뜻인뎅..

      그렇게 되면 고타소는 644년에 15살이됩니당.. 물론, 고타소가 품석에게 이때 갈수도 있지만, 문제는 품석의 직위가 성주급인뎅 3~4등위에 해당합니다. 이정도 될려면 적어도 40대가 되어야 합니당. 물론, 유신의 사례가 있으니 꼭 안된다고 생각할수는 없겠지만요..

  21.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드라마 선덕여왕은 춘추(유승호)의 아버지를 <화랑세기>의 기록에 따라 <용수>라고 설정을 하고, 용수와 용춘를 서로 다른 인물로 설정하였다. 용수가 형이되고, 용춘이 동생이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선덕여왕은 용수를 미실의 계략으로 춘추가 태어나기 전에 죽은 것으로 설정하였고, 춘추는 유복자로 태어 났다고 하였다. 하지만,  위 설정이 얼마나 역사의 기록과 부합하며, 원작자가 인용한 <화랑세기>와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지 않는가?

일단,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살펴보면, 기존 역사학계의 통설과는 다르게 용수와 용춘은 동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춘추의 아버지로 기록된, 용수.용춘을 동일인으로 기록하고 있을까? 아니면 다른 이로 기록하고 있을까? 겉보기로는 용수.용춘을 동일인으로 기록하는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통설은 용수(용춘) 또는 용춘(용수)로 기록하고 있고, 이들을 동일인으로 취급하고 있다. 하지만, 좀더 신경을 쓰고 본다면, 용수와 용춘은 별도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용수와 용춘의 기록들을 다 뽑아 보자. 그럼 확실히 이들이 동일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622년 진평 44년(622) 봄 정월에 왕이 몸소 황룡사에 거동하였다. 2월에 이찬 용수(龍樹)를 내성 사신(內省私臣)으로 삼았다. - 삼국사기 진평왕 44년

629년 51년(629) 가을 8월에 왕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였다. - 삼국사기 진평왕 51년

635년 선덕 4년 10월에 이찬 수품(水品)과 용수(龍樹) <또는 용춘(龍春)이라고도 하였다.>를 보내 주·현을 두루 돌며 위문하였다.- 삼국사기 선덕왕 4년

정관(貞觀) 17년 계묘(癸卯; 643) 3월 16일에 자장 돌아와 탑을 세워야한다고 선덕왕에 보고, 이후 이간(伊干) 용춘(龍春; 혹은 용수龍樹)이 그 역사를 주관하는데 거느리고 일한 소장(小匠)들은 200 명이나 되었다. - 삼국유사 황룡사 9층 목탑

654년 3월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의 아들 이찬 용춘(龍春)<또는 용수(龍樹)라고도 하였다.>의 아들이다. - 삼국사기 29대 춘추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 삼국유사 29대 춘추

654년 태종 원년(654) 여름 4월에 왕의 죽은 아버지를 문흥대왕(文興大王)으로 추봉(追封)하고 어머니를 문정태후(文貞太后)로 삼았다 - 삼국사기 춘추 1년 4월

삼국사기는 춘추의 아비로 용춘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고, 삼국유사는 용수를 춘추의 아비라고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서로다르게 말을 하니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용수와 용춘을 철저히 분리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용수를 별도로 한번 언급하고 있고, 용춘을 한번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 이들은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통설이 용춘(용수) 또는 용수(용춘)으로 이들을 같은 동일인으로 취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용춘(金龍春)
생몰년 미상. 신라시대 왕족. 일명 용수(龍樹). 진지왕의 아들이며 태종무열왕의 아버지. 어머니는 지도부인(知道夫人) 박씨이고, 부인은 진평왕의 딸인 천명부인(天明夫人) 김씨이다.
아버지 진지왕의 신분은 성골이나, 왕위에 재위한 지 4년 만인 579년에 폐위당하였으며, 용춘의 아들인 김춘추의 신분은 진골로 되어 있다.


통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는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기사로 공주시절에 엮어준것이 아니고, 선덕왕이 덕만공주 시절에 문희와 춘추의 매파가 되었다고 증명하였다. 또한, 모란꽃과 모란씨가 언제 들어온지 아무도 몰라서 하지 않은 이야기를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을 토대로 2009/07/23 -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증명하였다.

위의 용수와 용춘의 기록들을 시간순으로 직위와 이름순으로 도표를 만들어 보았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기록된 용수, 용춘

 

용수가 등장한 때는 삼국사기에 622년 이찬으로 내성사신이 되었다는 기록이다. 용춘은 삼국사기에 629년 8월 고구려 낭비성을 공격할때 파진찬(4급) 대장군으로 참전하는 기록이다.

삼국사기는 용수와 용춘을 별개의 인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635년 1월 주.군을 순시하는 자가 용수인지 용춘인지를 알 수 없다고 하고 있으며, 용춘이 춘추의 아비인것 같은데 용수라고 하는 기록도 있다는 것을 남겨 두었다.


용수는 이찬(2등)급이고 용춘은 629년에 파진찬(4등)위에 해당한다고 기록한 것이다. 용수와 용춘이 동일 인물이라면 2 등위 이찬이 7년 6개월 후에 4등위 파진찬이 되었다는 뜻인데 이는 국무총리가 장군이 되어서 전장에 참여하는 꼴이 된다. 또는 장군이 계급이 강등되어 일개 사병으로 참전하는 꼴이다. 이순신 처럼 백의종군을 할려면 충분히 그만한 기록이 있어야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용수를 602~3년 즈음, 미실의 계략으로 용수가 죽은 것으로 설정했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아무리 빨리 죽었다고 해도, 622년까지 용수는 생존하고 있었다. 또한, 천명은 춘추가 왕이 될때에도 굳건히 살아 있었다.

어찌되었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용수와 용춘을 철저히 분리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기존 통설은 서로 다른 자를 하나의 인물로 만들어 괴물을 만들어 버린것이다. 

<화랑세기>는 용춘이 어떻게 629년 낭비성 전투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기록이 있다. 마야의 뒤를 이어 황후가 된 손승만이 아들을 낳았지만, 일찍 죽는 일이 생겼다. 하지만, 승만황후는 왕자가 일찍 죽은 이유가 용수.용춘 형제라고 의심을 한다. 그리고 용수.용춘을 지방으로 축출해 버린다. 이후 용춘은 고구려 낭비성 원정군에 합류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승만왕후도 무시하지 못할 권력을 쥐고 서라벌로 금의환향한다.

만약, 현존하는 화랑세기가 704년경 김대문이 저작한 것이 아니라면, 박창화는 현재 괴물이된 키메라 용수.춘을 만든 이들보다 역사적 안목과 역량이 몇수는 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춘추의 아버지는 누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하나하나 살펴본다면 위에서 언급한것 처럼 용수와 용춘은 철저히 다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단지, 춘추의 아버지가 용수인가? 용춘인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화랑세기에는 용수의 나이와 용춘의 생몰년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춘추의 아버지는 용춘의 형인 용수이며, 용수가 죽고나서 형수인 천명을 아내로 맞이하고, 춘추를 자식으로 입양한다.

생부는 용수이지만, 어머니 천명이 작은 아버지 용춘에 시집을 가서, 자동으로 춘추는 법적으로 용춘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화랑세기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서 춘추의 아버지를 용수라고 하는 것도 당연하고, 용춘이라고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한다.

용춘의 아들이 된 춘추

최근 총리지명을 받은 정운찬은 형제가 있었다. 하지만, 아들이 없는 큰아버지의 아들로 입적을 한다. 그래서 정운찬은 독자로 군대를 면제받게 된다. 또한, 정운찬의 동생도 독자로 군대를 면제 받게 된다. 예전에 주로 군대를 면제받는 방법으로 많이 사용하던 편법이다.

물론, 정운찬이 정말 군대를 면제받기 위해서 <양자입적>이라는 편법을 동원했는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정운찬이 일반적으로 20대 초반이면 다 가는 군대를 가지 않고, 뒤 늦게 큰아버지의 아들로 호적을 옮기고, 더 나아가 나이가 30세가 넘어서 군대를 면제 받는 것으로 보았을 때, 정운찬은 국방의 의무를 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는 것을 쉬이 알수는 있다.
이런 자들이 나라를 걱정하고, 공직에 올라가 세금을 낭비하며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발상은 어패가 있다. 단순히 자신의 부귀와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서 <국가봉사>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국가에 봉사할 생각이 있다면, 국무총리직을 사양하는게 정운찬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국가에 대한 봉사이다.

어찌되었던, 
양자를 들여서 가문의 종통을 잇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  아버지에게는 삼형제가 있었는데, 가장 큰 아버지는 딸을 하나만, 낳고 일찍 돌아 가셨다. 두번째 큰아버지는 외아들을 두었다. 그런데, 막내인 아버지는 아들이 둘이 있었다. 그래서 막내인 아버지는 큰아들을 자신의 큰형님의 양자로 입적시키고, 족보도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큰아버지가 죽고 한참후에 막내인 아버지는 장가를 가서 아들 둘을 낳았다. 그러니 입양된 큰아버지의 아들은 생물학적으로는 도저히 큰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없다. 기록이 제일 큰아버지의 기록만 남았다면, 입양된 큰아버지의 아들은 생물학적으로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아들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이 불신되는 이유도 초기기록이 불분명한 이유도 있지만, 법통을 이은 아들과 생물학적인 부자관계 혼동해서 읽다보면 그런 불신하는 경우가 많다. 생물학적 아버지만을 찾다보면 역사의 기록을 불신할 수 밖에 없어져 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이산>을 봐서 알겠지만, 정조(이서진)의 아버지는 사도태자라고 한다. 하지만, 정조가 왕이 되기전까지는 생부는 사도일지 모르지만, 종통과 법통은 사도의 형에게 있었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면서, 자신의 생부도 사도이고, 종통과 법통도 사도에게 있다고 천명한다.

천명만이 알 수 있는 춘추의 생부. 그러나


삼국사기의 기록을 토대로 살펴본다면, 춘추는 603년 생이다.

622년 용수는 이찬(2등위)이였다. 그러니 나이가 적지 않았다. 629년 용춘은 파진찬으로 4등위에 해당한다. 이들 용수. 용춘 형제는 나이 차이가 있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용춘은 576년생 즈음이다. 용춘이 춘추를 낳았다면, 28살에 춘추를 낳은 것이다. 용수가 낳았다면 이보다는 많은 30대에 낳은 것이 된다.

통설로 천명은 15세 전후에 춘추를 낳았다고 보는게 일반적이다. 진평왕13세가 되는 579년에 태어 났다고 해도 천명은 602년에 24살이다.

용수. 용춘이 당시의 신라 사회의 통념으로 보았을때  굉장히 늦은 나이에 <춘추>를 낳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용수.용춘 누가 되었던 상관없이 용수. 용춘은 천명과 첫 결혼이 아님을 쉬이 알 수 있다. 화랑세기는 용수.용춘이 이미 결혼을 하고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기도 하다.


어찌되었던 춘추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물론, 기록을 남겼지만, 망실되었을 수도 있고, 정확히 천명이 누구와 관계를 하여 춘추를 낳았는지 당대부터 설왕설래 하였을 수도 있다.


신화나 설화를 보더라도, 어머니는 알아도 아버지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몽의 아버지는 해모수라고 하지만, 알길이 없다. 단지 주몽의 어머니는 유화부인임을 알 수 있다. 예수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어머니인 마리아이다.

그러니 춘추의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춘추의 어머니는 천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를 화랑세기는 춘추의 생부는 용수이고, 양부가 용춘이다. 용춘이 양부가 된 이유는 진평왕이 용춘으로 하여금 천명을 아내로 삼아서 왕위를 잇게 하기 위해서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빠져 나갈 구멍을 하나 만들어 놓았다. 낮엔 용수의 처인 천명이 밤에는 용춘의 처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슬쩍 흘리고 있다. 이쯤되면 천명자신도 춘추의 진짜 아버지가 용수인지 용춘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하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춘추의 아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그렇지만, 춘추는 나이 많은 용수보다는 상대적으로 젊고, 천명과 관계를 많이 가진 용춘이 진짜 아버지 였을 것이다. 춘추와 용춘의 이름에서도 <춘>자를 쓰는 용춘이 생물학적인 아버지의 냄새가 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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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서은영 2009.09.21 15: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궁금합니다. 김춘추의 아버지가 누구인지요... 가르쳐 주세요ㅗ.~~!

    선덕여왕 재미 있게 보고 있어요....

  3. Favicon of https://ceo2002.tistory.com BlogIcon 불탄 2009.09.21 17: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가 내렸던 월요일이에요.
    지금도 잠시 멈추고는 있지만 언제 쏟아질 지 모를 분위기를 담고 있네요.
    남은 오후시간 마무리 잘하시고, 이번주는 더욱 활기차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4. 2009.09.21 18: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세기는 다르지만 이 드라마는 선덕여왕 소설로 만든 드라마인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찾아서 봐봤자 어차피 소용없는짓..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2 0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소설의 모본이 화랑세기이고 삼국유사와 삼국사이지요.. 그러니 문제라고 하는 겁니당.. 소설은 그안에서 있음직한 이야기지요..

  5. Favicon of http://김춘추의 생부는 용운공의 형 용수전군이다 BlogIcon 감사하리 2009.09.21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명공주는 진평왕의 첫째딸이다 / 용춘공의 용수전공과 결혼했는데 / 천명공주가 사랑한 사람은 용충공이다 / 용수전공이 죽으면서 천명공주와 용수공의 아들 춘추공을 부탁하여 결합하였다 용춘공은 뒤에 선덕여왕이 등극하자 용춘공을 올아비로 선택하엿는데 용춘공은 벼슬에 뜻이 없어 말하기를 아들이 없ㅎ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물러가서 살았다 이에 선덕여왕은 을제공을 총사로 임명하였다 / 이것이 화랑세기의 내용이다

  6. 2009.09.21 2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잘보았습니다 김춘추 아버지가 누구인지 궁굼합니다 글로보면 용수아들갓고 용춘은 양아버지같은데 확신응없습니다 좋은자료주셔서 감사합니다 늘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2 00: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로 보면 용수인지 용춘인지 모른다이고, 문제가되는 화랑세기는 용수라고 단정을 하지만,
      용춘이 될수도 있다고 기술하고있지요.

      저의 생각은 용춘이지 않을까합니다.. 여러 정황들이..

  7. Favicon of http://blog.daum.net/doong2009 BlogIcon 둥둥 2009.09.21 2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읽었던 책에는 용춘이라는 인물과 천명, 덕만 공주가 삼각관계로 나오더군요
    천명은 용수와 결혼하고도 용춘과 정을 통해 춘추를 낳게 되구요..
    용춘과 용수라는 인물들도 진지왕의 자식들로 왕권에 도전한 인물들로 나오던데
    드라마에서는 비중이 거의 없어서 조금은 아쉬워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2 00: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천명과 덕만이 삼각관계로 설정한 이유는 천명과 덕만이 나이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통설에 따른것같습니당. 용수와 용춘이 다른 인물이라고 한 것은 화랑세기를 따른것 같구요.

      용수와 용춘이 왕위를 도전할 만한 역량이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당.. 복위하기 위한 생각은있었을 것 같기는 합니당.

  8. 갓쉰동님 광팬 2009.09.21 2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것들을 보면 신라는 다른 삼국보다는 모계의 냄새가 강한 것 같네요.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이 군주가 되고 아들이 아닌 사위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흔한 일이었던 것, 화랑제도 초기에 화랑의 우두머리가 여성이었던 점, 미실같은 거물 여성정치가 비교적 많이 등장했던 것을 보면 그렇네요. 뭐... 오늘도 글 잘봤습니다^^

  9. joomin11 2009.09.22 0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이 정말 역사에대해 얼마나 전문가적인 지식을 갖추셨고 사학계에 몸을 담고 계신지 아니면 그냥 역사연구를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고대사는 학자들이나 사학과 조차도 파헤치기 가장 어렵고 어물쩍넘어가는 부분이지요.. 우선 화랑세기의 위서논란과같이 자료가 부족한경우가 많을뿐더러 그나마 정통한 서적인 삼국사기는 신라위주로 애곡이 되어있고 삼국유사가 야사등을 잘 결합하고 여러서적을 망라한 부분인 만큼 가치는 있으나 앞의 서적들이 부족한 면이 많고 화랑세기의 경우 대조조차가 불가하니 아주 완벽한 서적이라고는 할수 없지요. 물론 고대사는 기존 사학계의 입장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의견 피력 뿐만이 아닌 블로거를 통해서 본인의 의견을 검증도 받지않고 기존의 사학계를 비판하시는 것은 옳지않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고대사는 누가 옳다고 할수없거든요. 부디 사학계의 이단아인 이덕일 교수같은 고대사를 이용한 사기꾼은 되지 마시길 그래도 충분히 논의될수있는 의견이고 선덕여왕드라마의 왜곡을 콕콕 짚어주시는 부분은 추천 꾹 드립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2 01: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료가 부족하니 있는 부족한 자료라도 재대로 쓰자는 글입니당.. ㅋㅋ

      없으니 망가트려야 한다가 아니고,, 없는 자료이니 소중하게 여기자는 거지요..

      그리고 저 이덕일 싫어해요.. ㅋㅋ

  10. 2009.09.22 0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2009.09.22 07: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2. 두번째입니다. 2009.09.23 1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의 글에 글을 남기네요.
    님은 그나마 남아있는 삼국 역사서를 들고 같이 비교를 하면서
    역사를 꿰뚫어보시려고 하네요.
    정말 재밌고, 이성적인 관찰법이라고 생각됩니다.

    단지 재미로 이렇게 비교해가면서 과거를 추리해보는 것에는 적극찬성입니다.
    하지만, 역시 삼국시대가 아닌 훨씬 뒤 세대에 만들어진 책들로
    과거를 정확하게 추론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거 같습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후대에 쓰여진 역사서일수록
    저자의 의도가 다분히 섞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후대에서는 큰 줄거리의 역사는 이해하되,
    그 역사서에 얽혀 소소한 이론을 만드는 것은 오히려 경계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는 선덕여왕 드라마를 보면서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복식이 왜 당나라 복장이냐?
    한글을 쓰지 않고 중국한자를 쓴다.
    결국 한국은 중국 짝퉁에 지나지 않는다.

    이게 중국인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역사를 찢어발기고 부끄러워하는 동안,
    타국에서는 우리의 역사를 비웃고 멸시합니다.

    믿지 못할 삼국 역사서로 우리드라마 우리 역사를 비웃기보다는
    오히려, 저 드라마로
    우리나라를 발아래로 생각하는 나라들에게
    우리나라 인물과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초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화강국이야말로 총알없이 다른 나라를 포섭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니까요.
    님의 정교한 글들을 보면서
    님의 주제가 좀더 미래를 위해 발전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내봅니다.^^

    또한, 저는 이 드라마가 단지 신라만을 띄우기 위한 드라마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삼한일통.
    현대에 있어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가 또하나의 일통을 이루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강대해져갑니다.
    미국은 오히려 힘이 위축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불황중이지만, 부자가 망해도 삼년은 간다고 합니다.
    그 활화산 한가운데 위치한 분단국가 한국...남한이던 북한이던
    일통....통일이야말로 살길이다, 라는 게 지금 이 드라마의 속내입니다.

    저는 그렇게 봤습니다.

    현대에 살기에, 드라마는 옛 옷을 입고 과거의 풍경을 보여주지만,
    결국 현대에서 만들기에
    우리의 차가운 현실을 반영해줍니다.

    님처럼 이성적이고 역량있는 역사가라면, 좀 더 큰 틀에서 드라마를 평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글을 남겨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3 10: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작자의 의도는 있습니당. 그 안에서 합리성을 찾는 거지요.. 역사학중에서 문헌사학의 그런것 아니겠어용..

      믿지 못할 역사라니 어떤것을 말하는지요?
      비웃는다고 없는사실을 만들어 사극으로 넣어야 할까요?

      그렇다면 한글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삼국시대에..
      당복식은 잘못된거지요.. 사실.. 고구려식 복장이면 모를깡..

      진덕왕 3년이전에 당복식은 의복의 고증을 못한거지요..

      문화의 우수성은 있는 그대로를 바로 알리는 겁니당.. 남에게 역사왜곡하고 동북공정한다고 할것이 아니고 우리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극은 현대극입니다. 극단적으로 말을 하면..
      현실을 역사라는 거울로 투영해서 보여주는 것이거든요..

      재글 대부분이 사극의 원작을 비판하고, 사극을 비판하는 것 같지만 전혀 아닙니다. 사극을 비판하는게 아니고,, 원작자의 허구에 찬 거짓말을 비판하는데 할양되어 있을 뿐만 아니고, 현실과 세태 비판이니 현실과 잘 쾌를 같이해서 보면 더 사극이 잼있다는 내용이 주류입니당..

      자주오셔서 글 많이 읽어 주시고 추천도 많이 해주시길 바랍니다.. ^___^

      존댓글 ㄳ합니다.. ^____^

  13. Yuna 2009.10.13 14: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글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흥미롭게 역사공부 잘하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14. Favicon of http://blog.daum.net/danaw87 BlogIcon 김용재 2009.10.14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시원한 분석평입니다.

    정말 궁금했었는데 말이죠. ㅎㅎ

    드라마에서도 용춘공과 춘추가 별로 부자처럼 붙어있지도 않은 것이

    아예 안친한 것처럼 신하와 왕족의 관계로만 설정되어 보이는 것이 이상했었습니다. ^^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

  15. 프러스 2009.10.16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재미있다고 표현하는게 맞는건지 모르겠는데..
    재미있네요..

  16.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7. Favicon of http://albertwolfe6.blogspot.com/2012/04/emergency-endurance-kits-save-world.h..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los angeles 2012.11.01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8. Favicon of http://www.psfk.com/2007/07/regine-debatty-from-wmmna-on-what-happens-when-art..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cats uk 2012.11.06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니면 다른 이로 기록하고 있을까? 겉보기로는 용수.용춘을 동일인으로 기록하

  19. Favicon of http://www.cheaphelmetsonlineshop.com/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20. Favicon of http://spluch.blogspot.com/2007_07_01_archive.html BlogIcon above ground electric dog fence 2012.12.22 17: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 기능을 갖춘 스크린 캡쳐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프로그램 없이도 웹페이지를 가장 빠르

  21. Favicon of http://survivalfoodpacks.beep.com/ BlogIcon best food survival kits 2013.01.02 16: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들을 동일인으로 취급하고 있다. 하지만, 좀더 신경을 쓰고 본다면, 용수와 용춘은 별도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미실의 남자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대놓고 드러내지 않지만, 은연중에 미실이 수많은 남자를 거르렸음직한 장면을 종종 보여 주고 있다. 이에 대해서 미실의 남자에 관한 기사를 송고 했었다.
2009/07/31 -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관심이 계신분은 일독을 해보시길 바란다.


어찌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현존 화랑세기를 읽다 보면 처음에는 "머 이런 개족보가 다 있나"한다, 하지만 요즘의 개들의 족보도 사실 화랑세기의 기록된 신라의 성생활에 비하면 건전해 보이기 까지 한다. 그런데 겉보기는 분명이 개족보 보다도 못한것 같지만, 심도 있게 파고 들면, 의외의 상황을 대면하게 된다.

한 일단은 자유로운 성을 누리고 있지만, 또 다른 일단은 정조와 절개를 목숨만큼이나 귀히 여긴다.

정절을 지키기 위해 우물에 몸을 던진 용수첩

지금부터 정절을 지키기 위해서 우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려던 용춘의 첩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용춘의 첩의 아버지는 화랑의 낭두로 풍월주인 용춘에 충성을 다 하였다. 용춘의 첩도 용춘의 첩이 되기 전에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화랑의 뒤바라지를 하는 유화가 될 수 있었다.

사해에서의 휴식장면

하지만, 용춘첩은 유화가 된다면, 용춘을 섬길 수 없다 하여, 유화가 되는 길을 거부하였다. 이에 풍월주인 용춘(596~603년)은
처음에 용춘첩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용춘첩은 차리리 유화가 되느니 죽음을 선택하겠다며 우물에 몸을 던졌다.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사랑을 위해서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린 것이다.


하지만, 용춘첩은 죽지를 못하고 구원받게 되었다. '죽으려 하면 살것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라는 이순신 장군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하다. 몸을 던져 우물에 투신을 하였지만, 죽고자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우물에서 떠올라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바닷물보다 더 짜서 맨몸으로 누어서 휴식을 취할수 있는 사해같이 짠 우물물은 아닐 것이다.

만약, 용춘첩이 살고자 발버둥을 쳤더라면 우물속에서 죽었을 것이다. 용춘첩은 우물속에서 하늘을 보며, 이승에서 못다 이룬 용춘에 대한 사랑으로 눈물을 흘리며, 저승에서 인연이 되어 용춘과 사랑을 이루게 해달라고 부처님과 하늘에 기원했을 지도 모른다.


물위에 드는 남자

어찌 되었던 용춘첩은 우물에 빠져서도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어쩌면 김유신이 문희를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불쇼'를 하는 것처럼, 용춘첩이 대국민 '물쇼'를 했을 수도 있다. 김유신의 불쇼는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용춘첩을 우물에서 구한
낭두들이 13세 풍월주 용춘에게 용춘첩을 받아들이기를 부탁하였다. 용춘은 어쩔 수 없이 용춘첩을 받아 들인다. 용춘첩과에 사이에서 용산과 용석 두 아들을 낳고, 딸로는 용태를 낳았다. 용태는 춘추를 섬겨 인태 각간을 낳았다. 용춘은 첩에 몸에서 난 자신의 딸 용태를 양자인지 친자 인지 모르는 춘추와 결혼시켰음을 알 수 있다. 춘추에게는 용춘은 아버지이자 장인이 된다. 용춘이 춘추의 아버지인지 작은아버지 인지를 알고 싶다면 2009/08/20 - [역사이야기] - 괴물이 되어버린 춘추(유승호)의 아버지 기사를 참고 하길 바란다. 
  

기록과 너무나 다른 사극 선덕여왕

대남보(류상욱)

용춘의 첩의 아버지는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생의 벽여명의 자식중 한명으로 나온 대남보이다. 그러니 대남보는 용춘의 여자인 천명을 죽이므로 해서 자신의 딸이 용춘의 정처가 될 수 있다고 상상한 것일까? 물론, 대남보는 덕만을 죽이기 위해서 화살을 날렸지만, 덕만인줄 알았던 여자가 천명공주이고 이에 의도하지 않게 천명이 죽어서 수나라로 춘추를 모셔오는 역할을 한다. 

드라마에선 나오지 않지만 대남보는 아마도 자신의 외손녀인 용태를 춘추와 엮어 주려 하는 의도 있었는 지도 모른다. 그래야 용춘과 척을 지지도 않고, 자신의 사위인 용춘과 대씨녀가 잘되는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춘추의 어미 천명을 죽인자는 <대남보>다. 춘추는 어머니를 죽인 원수의 손녀와 결혼해서 인태 각간을 낳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아무리 드라마 지만 너무 얼척 없지 않는가?

용춘첩은 용춘의 충복 대남보의 딸

하지만, 화랑세기는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대남보는 용춘의 충복이고 미생과는 척을 지고 있었다. 대남보는 재산가 였지만, 자신의 전재산을 용춘을 호위하는 무사를 양성하고, 용춘을 지키는데 탕진하였다.

천명(박예진)

그래서 자신의 아들 딸들은 끼니를 때우지 못하고, 삼을 엮어서 장사로 근근히 입에 풀칠을 하고 살았다. 대남보가 용춘을 지키는데 혈안이 된 이유는 용춘을 죽이려는 세력이 있었다는 반증이 될것이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세력은 아니다. 미실세력의 일원인 미생의 딸 매생은 용춘에 시집을 가서 용귀를 낳았다.  정적들간에 정략적인 결혼이 성행하니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될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 

하지만, 미실과 설원랑의 후손들은 춘추가 알천을 밀어내고 왕이 되는데 적극적으로 후원한 배후세력이 였다.

 대남보에 좀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미 송고한 두편의 기사를 참조 하기 바란다.


만약, 현존하는 화랑세기가 박창화의 창작품이 아니라면, 선덕여왕의 원작자는 대남보와 그의 후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극을 만들때는 좀더 치밀하게 분석해야 하고, 기본 팩트는 논란이 있지 않는 이상 바꾸면 안된다. 역사소설이나, 사극은 팩트와 팩트를 연결하는 인과관계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꾸고 풀어가는 것이다.

다음 기사에서는 화랑세기에 기록된 또다른 정절녀를 소개하려고 한다. 한마디로 하면, 화랑세기에 기록된 여인열전 시리즈가 되지 않을까 한다. 용춘첩의 예에서 보듯이 화랑세기에는 난삽한 성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 시대에도 귀감이 될만한 이야기도 곳곳에 숨어 있다. 이름하여 숨어있는 일인치 찾기라고 할 수 있다. 약간의 서비스를 하자면, 드라마상 비담과도 관련이 있고, 용수. 용춘과도 관련이 있다. 사실 예고를 하지 않는다면,  써야할 소재가 너무 많아 취사선택이 쉽지 않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약속을 하는 것이다.

물론, 호흥(추천)이 없으면, 다음편을 쓰지 않을 수도 있다. 호흥이 없는데 글을 쓰는 것 처럼 낭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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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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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tarculture.tistory.com BlogIcon 아이러니♡ 2009.08.21 06: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은 역사랑 맞는 부분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네요.
    하지만 드라마이니 뭐라 할 수는 없죠..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1 12: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충분히 그런 면이 많아요..

      이게 왜 중요하냐면 선점의 효과거든요.. 선덕여왕을 해렸으니 당분간 미실과 선덕여왕에 관한 드라마는 볼수가 없게 되어 버렸잔아요.. 그래서 처음 만들때 잘 만들어야함..

  2.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8.21 07: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 호응해 줬습니다. 다음 편 기대할게요. 드라마와는 별개로 색다른 흥미를 줍니다.

  3. Favicon of http://blog.daum.net/gnathia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8.21 0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글을 접하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지만 볼수록
    이야기를 풀어나가시는 내용이 저와 딱 맞는데요? ^^

  4. 임현철 2009.08.21 0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 좋았는데 아쉽네요.
    이반으로도 뵐게요

  5. 2009.08.21 0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21 11: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응이 없으면
    다음편 없다니요???????????
    저 처럼 갓쉰동 매니아들을 무시하시나요???????????
    스토크 할겁니다 ㅋㅋㅋㅋ
    아니면 저도 우물에 몸을 던질 수 있다는 ㅎㅎㅎ
    정절녀 열심히 기다리고 있을테니
    포스팅 해주시길 ....
    글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즐겁고 편안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1 12: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호흥이 없으면.. 흥이 안나거든요.. 사실.. ㅋㅋ

      매니아가 많은 것도 좋지만 보다 많은 사람이 알고 드라마를 보는게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해서 투정을 하는 거지요..

      사실 눈팅과 싸워서 성공한 경우가 없거든요..

      손가락이 워낙 천금과 같아요.. 그들은.. ㅋㅋ

    • aaa 2009.08.25 1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계속
      '호흥'이라 하심은 일부러 그러시는건가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5 18: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계속 추천하면 됩니당.. ㅋㅋ

  7.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21 1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춘, 용수 정말 헷갈리네요... ㅋㅋ

    용춘의 아내처럼 쇼하는 경우가 있을거예요...

    가끔은 쇼를 했는데... 빠져 죽은 경우도 있겠지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1 1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용수용춘이 헛갈릴때가

      가장 많이 헛갈리는 사람이 의외로 알천과 월천이라눈..
      염종과 염장이 그렇구요.. ㅠ.ㅠ.

      지소, 지조, 사도, 지도 이들도 헛갈리공..

  8.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21 13: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에 나오는 인물들은 너무 이름이 비슷비슷해서...

  9. Favicon of http://www.ilovenews.co.kr BlogIcon 대한민국 황대장 2009.08.21 16: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보고 시험 문제 틀렸다는 놈 있으면 갓쉰동님 블로그를 알려줘야 겠네요 ㅋㅋㅋ
    역사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잘 봤습니다 ^^

  10. Favicon of http://waarheid.tistory.com BlogIcon 펨께 2009.08.21 2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보고 갑니다.

  11.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나오지 않는 진평왕의 아들들에 관한 글이 될겁니다.

칠숙,비담,흥원이 반란을 하는 이유

진위 논란의 한가운데 있는 <화랑세기>에는 진평왕에게는 최소한 4명의 아들들 즉 왕자들이 보인다. 이들 왕자의 후손들 중에 681년 흠돌 반란에 동참이 아닌 주도적으로 정통성 회복을 시도한 인물도 있다. 이때, 김유신과 김흠순 가문도 이에 연루가 되어 역사에서 사라질뻔한 위기를 겪는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김유신이 김미추의 능에 나타나서 쇼를 하는 바람에 위기를 넘기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다고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의 기사가 될 것이다. 

이번 글은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칠숙이 반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송고한 기사의 반란 수괴들 시리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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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집안이 반란에 연루가 되면 해당 집안은 쑥대밭이 될뿐만 아니라, 반란에 연루된 일가친척 구족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반란세력의 집은 허물고, 물을 채워 연못(늪)으로 만들어 버린다.

혹시, 집 주위에 전혀 연못이 있을 자리가 아닌데 연못이 있다면 한번의심을 해보시라. 혹시 연못터에 반란의 수괴가 살았던 적이 있는지? 예전 <처선>에 대한 이야기를 꾸민 사극을 SBS에서 했을 것이다. 반란에 연루가 되지 않았지만, 연산군에 의해서 처선의 집이 연못으로 바뀌었고, 처선의 이름자가 들어간 관청까지 개명을 하는 사례가 있었다. 

드라마 사극 <선덕여왕>에는 반란에 연루된 몇몇이 등장하여 극의 재미를 높이고 있다. 첫번째는 미실의 충실한 충복이며 터미네이터 같은 <칠숙>이다. 칠숙이 반란을 일으킨 631년는 진평왕의 말년이며,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 632년 바로 전해이다. 

칠숙이 반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선택을 하게 만든 이는 진평왕이고, 칠숙은 반란에 실패해서 기록이 망실되어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최근 <선덕여왕>에서 미실과 진지(금륜)사이에 태어나 비련한 어머니 미실에 의해서 버려진 <비담:김남길>이 그동안 알고 있었던 등장인물들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카리스마 넘치게 등장하였다. 비담에 관련된 글은 [역사이야기] - 카리스마 비담, 미실이 버린 아들? 사실은 과 [역사이야기] - 미실 아들, 용춘 동생, 카리스마 비담의 또다른 비밀 를 참조하기 바란다.

역사에 기록된 비담은 반란을 일으키는 647년에 상대등의 직위에 있었다. 하지만 이런 비담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군지 전혀 기록되지 않았다. 단지, 칠숙이나 비담은 신라의 최고위 관료인것으로 미루어 왕실의 최측근 인물임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진평왕의 아내들

그럼 진평왕의 아들이지만,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에서 사라진  인물들을 화랑세기는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 지 살펴보자.  화랑세기에도 <칠숙>이나 <비담>에 관한 기록을 찾아 볼 수는 없다. 단지, 화랑 출신들이 칠숙과 비담의 난을 제압했다는 기록이 있고, 흠돌의 난때에는 김대문 가문이 흠돌의 난을 평정을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기록이고, 흠돌의 세계도 단편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삼국사기,삼국유사,족보 기준 자식들



일단 우리가 알고 있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 관련 족보를 종합해 보면, 진평에게는 마야부인(황후?)와 손씨 승만의 기록만 보인다. 또한, 이들의 후손으로 천명, 덕만, 선화만 있고, 아들은 없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설마, 일국의 왕이 1부1처제를 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자유로운 신라시대에 진평이 달랑 공주 3명만 낳고, 왕통을 이을 후사를 보지 않고, 왕후가 죽고 나서 왕후를 뽑는 행동을 했다는 말은 상식에 반한다.
 
물론, 덕만이 50이 다 되어서 노처녀로 왕위를 이였고,  덕만이 왕에 있을때 춘추와 문희를 엮어 주는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또한, 신파극의 주인공 처럼 김유신이 첫사랑 <천관녀>를 못잊어, 전쟁터를 떠도는 전쟁광이 되고, 춘추의 강권에 어쩔 수 없이 655년 회갑에 자신의 조카와 첫번째 결혼을 하여 원술을 낳았는데, 원술이 유신의 첫번째 아들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된다.

그렇게 믿고 있는 분들이라면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글과 [역사이야기] - 조선 세종, 신라 덕만, 천명의 기록 비교해 보니 을 일독하기를 권한다.

진평왕의 아들을 낳은 여인들

이제 탈도 많은 <화랑세기>에 나타난 진평왕과 그의 정비/후비들과 그들에서 난 자식들을 볼 차례이다. 일단, 진평과 관계를 맺은 인물들을 진평왕을 기준으로 다이아그램을 만들어 봤다.

진평왕과 관계된 처와 자식과 그 후손을 한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들을 낳은 사람은 별도의 표시를 할 것이다.



진평의 여자 중에서 왕후라 추측되는 인물은 마야와 승만이다. 승만은 마야가 죽고, 난 후, 마야의 뒤를 이어서 왕후가 되었다.

삼국유사는 단지, 아들을 얻기 위해서 승만을 왕후로 인명하였다고만 기록되어 있고, 화랑세기는 마야가 죽은 후에 승만이 왕후과 되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아들을 생산한 비들은 승만을 비롯해서 태양, 보량(박은빈)이다. 승만은 아들을 낳았지만, 일찍 죽었다. 승만은 아들이 죽은 이유가 용춘.용수 형제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들 형제를 미워해서, 한때 이들 형제가 지방으로 떠돌았다.

진평의여자와 후손, 원본을 보고 싶으면 크릭

태양은 태원과 흥원 두 아들을 낳는다. 보량은 보로라는 아들을 낳았지만, 승만의 미움을 받아서 양도에 다시 시집을 갔다고 전한다.


그래서 보로는 진평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태양의 자식인 태원과 흥원은 어떨까? 화랑세기는 이들도 태양이 방탕한 생활을 하여 태원과 흥원이 왕위를 이을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진평에게는 마야와 승만 만이 왕후였고, 딸은 달랑 3명만 있었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천만에 만만에 말씀, 진평은 그 누구보다도 아들을 낳기 위해서 정비/후비를 많이 두었고, 이들로 부터 아들 4명을 보았지만, 승만의 자식은 일찍 죽고, 3명의 자식중 흥원의 자식들은 후에 흠돌반란의 수괴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드라마 선덕여왕에는 미실의 딸과 진평왕의 아들이 사라졌을까?

드라마 선덕여왕에는 나오지 않지만 진평/미실 사이에는 보화(진평/미실)라는 딸을 두고 있다. 보화도 왕위승계 자격이 충분히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보화의 남편은 구륜(진흥/사도)으로 진흥왕과 사도 사이에 난 정통성골이니 말이다. 이들도 극 속에 나왔더라면 드라마가 더 재밌지 않았을까?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하는 소설 선덕여왕을 극본하였다면, 사실 진평왕의 아들들을 조명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선덕이 어떻게 남자형제들( 보로, 태원, 호원)을 물리치고 왕이 되었는가? 이쪽이 더 스팩터클한 내용이 되었을테 말이다.  "그건 니 생각이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사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미실은 진평왕이 왕위를 이은 다음에 세종의 만류로 권력과 왕후가 되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미실이 사후 25~년 이후 인 632년 일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지 않나?

진평 아들과 그 후손


진평이 덕만을 선택한 이유?

재미있는 사실은 기존 통설대로 적통은 성골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마야보다 태양이 더 뼈속까지 성골이다.


덕만의 어미가 되는 마야는 복승/송화의 자식이다. 왕자인 태원.호원의 어미는 태양(진흥/사도)이다. 태양은 진흥/사도의 자식이다. 태양의 가문이 마야(복승/송화)의 가문보다는 더 왕실의 정통성에 부합니다. 마야의 아버지 복승은 상대적으로 태양의 아버지 진흥왕에 미치지 못한다.

또한, 마야의 어머니 송화(영실/지소)의 부계 영실보다는 태양(진흥/사도)의 부계가 진흥왕이니 마야의 후손보다는 태양의 후손이 왕위승계서열상 앞쪽에 있고, 보로(진평/보량)은 제외하더라도, 태원. 호원이 성골중에 성골이 된다. 그런데 그 많은 성골 왕자를 두고 성골남진이다?

하지만, 정비인 마야의 후손인 덕만이 왕위를 꽤찬다. 덕만은 진평왕과 마야의 적장녀이기 때문이다. 진평은 태양의 아들인 태원,호원보다도, 마야의 딸인 덕만을 선호했을 뿐이다. 덕만이 왕위를 잇는다는 사실을 알고, 이찬 <칠숙>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화랑세기에도 언급이 없는 태원과 칠숙이 모종의 썸씽이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비담이 태원의 자식일 지도 모르겠다. 화랑세기 내에서도 태원과 그의 후손에 관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진평의 "묻지고, 따지지도 않고", 선택한 덕만이기 때문에 덕만이 왕위를 잇는 것이다. 김정일.김일성이 결정하면 끝인것처럼 진평이 결정하면 끝이다. 

이유를 찾자면 아래 덕만 시리즈 글을 참조 하기 바람. 


 비담이 승만(국반/박씨)이 왕위를 잇기전 거창한 명분으로 내세운 <여왕은 더이상 안된다. 당나라도 그랬어요 여왕은 안된다고..>하였지만, 상대등 <비담>이 선덕(덕만) 말년 647년 반란을 일으키는 것도 칠숙의 사례와 본질은 같다.  

또한, 문무왕 사후 흠돌, 흥원, 진공 등이 정통성을 찾겠다고 반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호원(진평/태양)의 아들 흥원은 지금 통설로 하면 성골중에 성골이 된다. 그런데? 성골남진이 되어서 덕만이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면 개가 웃지 않겠는가?

또하나 잼있는 사실은 승만왕후의 성은 손씨이다. 그런데 진평은 손씨의 후손을 통해서 왕위를 잇겠다는 발상을 했었다는 것이다. 성골인 김씨나 박씨나 석씨도 아닌 일개 6부의 후손인 손씨를 통해서 신라의 성골정통을 잇겠다고 생각했겠는가? 기존 신라의 골품제 하에서는 성골>>>진골>>>>>>>>6부씨족>>>>>평민의 순서일텐데 말이다. 한마디로 진평왕이 "성골/진골 웃기고 있네" 하는것 같지 않는가?

죄수의 딜레마 화랑세기

많은 사람들이 <화랑세기>를 믿지 않는 이유중에 하나가. 지금의 관점으로 개족보 같은 혼맥도 있지만, 기존에 알고 있는 역사적인 상식인 성골.진골, 왕실계보, 화랑의 개념을 깨는데 있다. <화랑세기>를 인정한다면, 그동안의 축적된 연구성과물들이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성골.진골이다. 진평왕은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성골이 단절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성골여자인 덕만과 승만이 왕위를 이은 것이다. 화랑세기를 기준으로 한다면, 성골남자는 씨가 마른적도 없고, 성골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고 하니, 기가찰 노릇이 아닌가?

사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조금 꼼꼼하게 살펴보면, 성골은 존재자체도 없고, 성골이라고 하는 말은 당해 왕의 자손을 뜻한다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마야의 적손 왕자가 없고, 승만 왕후를 통해서 난 적자가 없다는 말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니들이 그동안 연구한 성과물들은 다 틀렸어"라고 하지 않는가?

인정하자니 그동안의 성과는 사라지고, 인정하지 않자니 화랑세기의 정교함에 치를 떨어야 하고, 안정하지 않고, 박창화 개인이 지어낸 저술이라고 한다면, 기존 사학계는 개인 박창화 한명보다도 못한 존재로 떨어져 버리고 만다. 그러니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졌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화랑세기를 믿는 자라면 성골/진골은 없다고 해야 한다. 화랑세기에서 성골로 알고 있는 자(왕.왕자.공주)들은 대부분 진골정통의 맥을 가지고 있다. 성골 = 대원신통 = 진골인 것이다. 화랑세기는 믿지만 성골.진골은 있다. 라고 생각한다면 웃기는 일이 아닌가?

화랑세기 신뢰는 글쎄?

사실 글쓴이는 화랑세기를 신뢰하는 편은 아니다, 화랑세기를 추적하는 동안 너무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믹스업 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이설이 있음을 주장하는 책이 삼국유사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삼국유사도 맞고, 삼국사기도 맞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고 있다. 또한, 이들을 교묘히 하나로 엮어서 일치 시키고 있다. 이는 화랑세기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 후대에 나온 작품이란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화랑세기를 파고 또 파고 들수록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 앞에 나온 책이란 화랑세기가  뒤에 나온 <삼국사기>, <삼국유사>을 참조한 듯 한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덕여왕을 비판을 할때가 아니고, 글쓴이가 주장을 하는 글에는 <화랑세기>를 절대로 인용하지 않고, 의문점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이에 필요한 자료를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나 삼국사절요에서 수집하여, 분석하고 재해석해서 가설을 검증하고, 가설이 합당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던 것이다.  진본을 필사한 화랑세기이던 박창화가 창작한 화랑세기이던 상관없이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많은 영감을 준다. 이정도 파괴력을 가진 책을 보지 못한것 같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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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starculture.tistory.com BlogIcon 아이러니♡ 2009.08.06 09: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공부 열심히 하네요 ㅋㅋ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3. 임현철 2009.08.06 0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쉽지 않은 공부인데 이거 재밌게 봅니다.

  4.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6 11: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험치자니까요 ㅎㅎㅎ
    저는 옆에 요약 정리하면서 매일 공부하는데...
    오늘도 요약 정리를 나름대로 하고
    잘 배웠습니다. ㅎㅎㅎ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행복 가득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5. 잽돌이 2009.08.06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화랑세기의 진위여부는 이제 거의 진본 쪽으로 돌아 서고 있습니다.
    문헌비교를 통한 진위여부를 가리는 것도 중요 하지만
    그 고고학적 증거도 중요 하다고 할 수 있지요..
    역사학에 관심이 많으시고 화랑세기에 관심이 많으신것 같은데

    서강대학교 이종욱 교수가 그 전문가 이시고

    각종 고대 신라사에 대한 자료 구하기 쉬울 겁니다

    참고로 화랑세기가 진본 이라는 그 고고학적 증거 두가지만 밝히고 갈께요

    다른 역사서 어디에서도 언급 되지 않았던


    1.경주 월성의 해자가 발견 되었구요

    2.포석정 포석사 의 문양이 세겨진 기와 파편이 발견 되었습니다
    특히 문노가 결혼을 한곳이 포석사 라고 나오는데 그 포석사 라고 사당이라고 분명히
    화랑세기에 나오는 데 우리는 포석정 술마시고 노는 곳으로 알 고 있었습니다.

    이 두가지가.. 분명.. 화랑세기는 진본이라는 결정적 증거라 할 수 있고요

    너무나도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짜맞추기 하는 것 같다라고 하셨는데

    진본이기 때문 입니다.

    ^^

    지금 서울대 노태돈 교수쪽과
    이종욱 교수쪽이.. 엄청난 진위공방을 하고 있는데
    이종욱 교수쪽의 계속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논문 발표를
    하고 있지만 노태돈 교수쪽은 처음엔 대항하는 논리를 내세우다가 요즘은.. 대응을 안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아예 신라사를 다시 써야 할 지경에 이를테니까요

    도서관에 가셔서 화랑세기를 검색 하시면

    약 10~15권 정도의 책들이 있습니다..

    읽어 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6 13: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몰라서 제가 진위가 으심스럽다고 했을까요? 저는 진위여부에 상관없이 화랑세기는 엄청난 역사학계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고 봅니다. 최근에 발표된 논문들을 보면 이전과는 다른 화랑세기를 인용한듯하면서, 참고 문헌으로 등록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영향을 미쳤다는 거지요..

      노태돈이 반응을 하지 않는 이유는 만지면 커지기 때문입니다. 주고 받으면 이슈화 되거든요.. ㅋㅋ

      양쪽이 다 들어맞기때문에 진본이다가 아니고, 양쪽을 합쳐 놓았기 때문에 의심스럽다는 겁니다..

  6. 물음표 2009.08.06 1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넘 재미있게 읽고 갑니당.^^....
    수고에 늘 감사 합니다.

    갓쉰동님 글 읽고~~~~~ 선덕여왕 드라마 보면서 남편이랑 아이들한테
    무지 잘난척하며 설명해 주곤 한답니다.ㅎㅎ
    계속 부탁해요...

  7. 잽돌이 2009.08.06 1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결국은 학문적 접근이 아닌..

    파벌싸움의 양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고대사 연구는 여러가지 제한때문에

    한정적 연구일 수 밖에 없는데요

    고고학적 증거 마저 무시한다면

    진짜 연구를 위한 연구지 학문을 위한 연구는 아닌거 같습니다.




    결국 당대에 씌여진 문헌을

    후대에 씌여진 문헌과 비교해 봤을때

    차이가 있어야만 한다 라는 발상과

    그럴리가 없다 라는 전제하에 바라보시는 것 같습니다.

    싸움을 거는게 아니구요.. 그냥 의견을 제시 하는 거예요 오해 마세요~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6 18: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저도 파벌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이종욱이 공개하자 노태돈이 그랫지요. 난 이미 다 봤다. 그런데 가라당..

      연구해볼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라고 생각함.. 그러지 않다면 화랑세기를 탐독할 이유가 없지요..

      화랑세기는 진위와 상관없이... 아이디어 뱅크 같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재생각을 글로써 표현하는 거지요.. 전대 기록이 후대기록을 보충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그런것이니 양해 해주셈.. 물론, 박창화가 가지도 있던 다른 자료도 제생각에 반영되었다는 것도 있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6 18: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의심하고 회의를 하고 추적을 하다보면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 끝을 보겠지요.. 원래 회의주의자가 발견을 하지요.. 단, 회의한다고 해서 처다보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될 수 없지만..

  8. 지나가는사람 2009.08.07 0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쭤볼것이 있습니다
    보량이나 태원 등에 대한 다른 남자후손에 대한 이야기가 화랑세기에 어느 풍월주대에 언급이 되어있는지 혹시 자세하게 알려주실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진평왕대에 풍월주에 오른 자들을 대충 살펴보았는데, 잘 찾지못하여 부탁드립니다.

  9. 잽돌이 2009.08.07 0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랑은 견해가 다르시군요

    전대 기록이 후대 기록을 보충 할 수 없다라...

    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나.. 창작이 아니라면..

    특히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은 유교적인 관점에서 삼국사기를 썼었는데

    결국 자기 입맛에 맞는 내용만 발췌 했고 해석하고 자기의견을 넣었지요

    즉 고삼국기 원문에서 발췌를 했다면 전대 기록이 더 풍부하니

    후대기록을 보충 하고도 남는 거라고는 생각 하지 않으십니까?

    후대기록이 무조건 전대기록을 보충해서 더 많은 내용이 들어가 있다고는 볼 수 없다는게 저의 사견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역사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참 좋군요

    소주나 한잔 하실 까요?

    관심있으시면 메일 주시죠

    donygun@nate.com

    네이트 등록도 대 환영 입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7 15: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견해가 다르다니 별로 다를것도 없는 것 같은데요..

      저는 회의를 하면서 추적하는 중입니다. 아직 결론을 내지 않았거든요.. 의심스럽다와 위서다 진서다는 다른 말인뎅..

      대화는 블로그를 통해서.. ㅋㅋ 죄송합니다.. 꾸벅~~

  10. 잽돌이 2009.08.07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
    칼날을 살짝 피해버리시는 노련함...

    ㅋㅋㅋ

  11. 지나가는사람 2009.08.08 0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번에 알려주신대로 화랑세기를 뒤져보았으나 태원과 호원에 대한 기록은 찾지 못하고, 전군보로에 관한 기록만 찾게 되었습니다. 이를 토대로 님께 질문을 드리고자합니다.
    전군보로는 미실의 손녀인 보량의 아들입니다. 보량의 경우에는 부모가 모두 성골임을 만족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전군또한 성골이라 보기 힘듭니다. 제가 부모가 모두 성골이어야한다고 하는 이유는, 많은 학자들이 설명하듯이 천명과 용수사이에서 낳은 춘추가 성골로 인정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용수 또한 진지왕의 아들이었으나 폐위되었기에 성골에서 멀어져, 그 아들도 성골로 인정받지 못하였습니다. 이토록 성골이 성립되려면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그렇기에 전군보로는 진평의 아들이나, 성골이 아니기에 왕위계승권자로 거론되지 않은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반역에 가담하게되는 태양공주의 아들들은 많은 학자들이 거론하듯이, 태양공주가 방탕하여 진평왕 이외의 많은 남성들과 관계를 맺었기에 그 아비를 확신할수 없어 성골로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마도 그 아비가 진평이외의 다른 남자임을 확신할만큼 정황이 확실하여 배제된것이라 사료됩니다. 아들로는 입적이 되나 성골로는 인정되지 않은 것은, 위에서 언급하듯, 그 조건을 성립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이유입니다. 성골은 그렇기에 그토록 우월한 골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제 의견중 틀린점이나 보충할 말씀이 있으시다면 댓글을 달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2.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8 05: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에 앞서 흠돌은 호원공(好元公)의 아들 흥원(興元)을 부제로 삼았다. 애초에 태양공주(太陽公主)가 진평대제를 섬겨 태원(太元)과 호원(好元)을 낳았는데 제(帝)를 닮지 않았다. 공주는 어려서 금륜태자(金輪太子)339)를 섬겼는데 사신(私臣)을 좋아 하였다. 제(帝)를 섬길 때도 역시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양군(태원과 호원)은 통(統)을 얻지 못하였다. 흥원은 제통(帝統)이 자기에게 있다고 혼자 생각하여 조정을 원망하고, 누이를 흠돌의 첩으로 삼아 결탁하였다. - 27세 풍월주 흠돌에 나오는 기사입니다.

    단순히 사신을 좋아 했다고 해서 성골이 될 수 없다면, 지소의 자식들은 한명도 성골이 될수 없지요.. 지소 만큼 사신을 많이 둔 여인도 없거든요.. 사신을 두었기 때문에 골을 얻지 못한것이 아니고, 권력투쟁 싸움에 졌다고 보는게 합당하지요..

    또한, 만호도 사신을 두었습니다.. 그러니 진평 또한 성골이 될 수 없지 않겠어요.. 님의 말처럼 성골의 조건은 까다로운데요.. 지소와 이화랑의 사이에 난 여인이 만호입니다.. 이화랑(위화랑/준실)이니 만호는 성골 근처에 가보지도 못하는 거지요..

    • 지나가는사람 2009.08.08 2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아직까지는 공부가 미흡해서 만호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했군요. 성골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생각할만한 것은 아닌듯하네요. 공부할거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9 11: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용춘의 어머니 지도를 봐도 잼있음.. ㅋㅋ 기록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어서 찾기가 난해하지만요.. ㅋㅋ

  13.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8 06: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장 쉬운 방법은요.. 진평왕의 아들이 아니고, 왕비의 소생이 아니여서 밀렸다가 맞지 않을 까요?
    1. 순위자 왕+왕비 소생
    2. 순위자 왕+후비
    3. 왕의 형제
    4. 왕의 형제의 자식들..

    성골의 다른 말이 성조(祖) 입니다. 왕의 혈통을 이엇다는 거지요.. 왕은 당연히 성스러운거구요..

    성(聖)은 그냥 꾸민말에 지나지 않아요.. 당나라를 신라는 성조(聖朝)라고 불렀지요,, 아마도.. 물론, 신라만 그런것은 아니지만..

  14.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5.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6.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niches/hairy.php BlogIcon click here 2012.07.14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출/섭취되었다고 논증할 수 있다. 이는 더 적은 량으로도 인간광우

  17. Favicon of http://hubshout.com/?Ways-To-Resell-Website-Development-Properly&AID=661 BlogIcon Jeziorski 2012.10.01 2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렇지만 이는 정확히 말하면 식습관과 미국의 인구가 이를 막고 있는 것이다. 인구가 많기 때문에 더 많은 환자수가 발

  18. Favicon of http://www.dogcars.com BlogIcon electric fence for dogs lowes 2012.11.03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넌 악플 중에서도 최저인게
    단순히 보지말라는 수준을 넘어
    글쓴이를 드라마 인기에 편승하는 장사꾼으로 매도하면서 아무런 근거도 내세운게 없쟎아.
    말만 부드러우면 그냥 막 까도 인격이 생기나부네?

  19. Favicon of http://mariviclisy.blogspot.com/2012/04/this-baker-dozen-items-it-is-best-to.h.. BlogIcon mre heater bomb 2012.11.06 2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사극 <선덕여왕>에는 반란에 연루된 몇몇이 등장하여 극의 재미를 높이고 있다. 첫번째는 미실의 충실한 충복이며 터미네이터 같은 <칠숙>이다. 칠숙이 반란을 일으킨 631년는 진평왕의 말년이며,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 632년 바로 전해이다.

  20. Favicon of http://quarterempty.wordpress.com/feed/ BlogIcon portable dog fence dogs 2012.11.23 0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아레스가 퇴장을 건 승부가 없었다면 우루과이는 8강에 만족하고 짐을 싸고 집에 돌아가야만 했다.

    승부차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루과이는 이기고 들어갔고, 가나는 이미 지고 들어가는 승부였다.

  21. Favicon of http://social.msdn.microsoft.com/profile/modamer/ BlogIcon Giyim Markalari 2013.09.17 1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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