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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공주의 남자, 불쌍한 신면과 배신자 사육신 어떻게 충신 아이콘 되었나? 에서 궁을 나간 세령은 빙옥관에서 신면의 손에 이끌려 궁에 다시 돌아온다. 궁에 돌아온 세령은 세조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아버지의 죄업을 자식들에게까지 전달하겠는냐는 것이다. 에서 의경세자(숭:장)(덕종:성종의 아버지)이 피를 토하고 쓰러지자, 세조(수양대군)은 그동안 드라마에서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세조의 뒤를 이어 예종이 되는 둘째 왕자 해양대군(황)를 궁으로 불러들인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 설정으로는 정희왕후 처가에서 길러진 것으로 그리고 있다. 어쨌든 의경세자 숭(장)은 곧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의경세자는 1438년 생으로 20살이 되는 해에 죽는다. 드라마 시제는 1456는 6월 사육신의 쿠데타 실패와 의경세자(장)이 죽은 1457년 9월 2일 사이라는 것을 뜻한다. 수양대군은 악담을 퍼.. 더보기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공주의 남자에서 성삼문, 이개, 박팽년 등 사육신이 세조(수양대군) 암살에 실패하고 잡혀서 고신을 당한다. 그리고 참형을 당할 위기에 김승유는 빙옥관의 의형.의제와 같이 한성부 옥을 파옥하고 이개 등 사육신과 친구 정종을 구원하려고 들어간다. 신면은 김승유가 세령공주와 같이 한성부에 숨어 들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김승유가 하는 일에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도와준다. 김승유가 다음 기회를 노리자며 파옥을 하려하자. 이개와 박팽년, 성삼문 등은 당연히 자신들이 죽을 줄 알았으니 개념치 말라고 하면서 후일을 김승유에 맡기고 담담히 죽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죽어서 김종서를 뵙게 되었으니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정종의 아내 경혜공주는 세조를 찾아가 “전하“라는 말을 하면서 수양대군 니가 짱먹었으니 그만 정종을 풀어달.. 더보기
공주의 남자, 민폐 김승유, 박시후 잘못인가? 작가 잘못인가?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는 금성대군과 정종의 노력으로 단종이 결심하여 참수를 면하고 유배를 떠난다. 수양대군은 유배를 떠나는 김승유를 살려두지 말고 죽이라고 말을 한다. 안평대군도 유배를 떠나는 도중에 사사되고 만다. 승유는 찾아온 세령의 목을 조르며 왜 자신을 속였느냐며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을 한다. 세령은 제발 살아 남아 자신 세령과 아버지 수양대군을 용서하지 말라한다. 승유는 신면에게 어찌 친구로서 자신에게 적대시 하려하느냐고 말을 하지만, 신면은 김종서가 수양을 먼저 쳤다면 지금 옥에 갇혀 있는건 승유 너가 아니고 신면 자신이라고 말을 한다. 승유는 부모들의 반목 등 어떠한 일이 생기더라도 친구들간에 우정은 변치 말자고 하지만, 승유의 맹세는 한탓 허풍선에 지나지 않는다. 신면인 친구도 죽이.. 더보기
공주의 남자, 시아버지를 사랑한 세령공주? 엽기.막장사극의 끝 드라마 공주의 남자는 참으로 고약한 사극이라고 할 수 있다. 장르를 정통사극이라고 할수도 없고, 퓨전사극이라고 할수도 없다. 아무리 좋게 해주어도 를 정의한다면 이라고 할수 있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지는 사극의 대부분은 고증은 전무한 막장. 엽기사극이지만 말이다. 는 도가 지나치다고 할수 있다. 에서 세령에 대한 사랑이 전해지는데 이는 김종서의 아들과의 사랑이 아닌 계유정난으로 인해서 피난한 김종서의 손자와의 사랑이다. 그런데 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손자가 아닌 김종서의 아들과의 사랑을 그린다고 당당히 말하고 있다. 기본 팩트가 바뀔려면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합리적인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김종서에게는 큰아들 김승규와 작은 아들 김승벽, 그리고 김승유가 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김종서에게도.. 더보기
정견부인 아들 수로 몰라볼 수 있을까? 김수로는 석탈해에게 여의를 구하지 못했다고 자책을 한다. 석탈해는 여의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수로의 용기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부조리함을 바꾸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힘없는 자의 외침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공허한 외침이라고 한다. 그러니 잘못된 것을 바꾸려 한다면 힘을 길러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수로나 석탈해나 순장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신라에서 순장이 없어진 때는 500년 대 지증왕 때이다. 공부의신에도 나오는 대사가 사극 김수로에서도 나온다.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사실이니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니였을까한다. 신귀간은 염사치와 함께 조방에게 수로의 정체를 가지고 야철 기술을 알려달라고 협박한다. 하지만, 단야장 조방은 천.. 더보기
정체를 알 수 없는 사극 김수로에 김수로는 없었다 최인호의 소설 을 드라마화한 역사드라마 가야의 건국시조 김수로가 처음 방영되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에 대해서 김수로를 어떠한 인물로 그려 나갈것인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사극 에는 김수로가 없었다. 한마디로 정리를 하면 붕어빵에 붕어 없고, 칼국수에 칼이 없는 것은 맞는것이지만 외형적으로 붕어빵은 붕어모양을 갖추었고, 칼국수는 칼로 만든 국수라고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사극 김수로에는 의 김수로도 없고, 역사의 김수로도 없다. 소설이란 개연성의 허구이다. 장치(기록)과 기록사이에 개연성을 만드는 장치를 만들고 이를 연결하는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극 김수로에는 모든 역사적 기록이나 들은 김수로로 합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사극 김수로에.. 더보기
미실가문의 김유신 아내 영모(티아라 큐리)와 김춘추 처 보량(박은빈), 감춰진 진실 드라마 선덕여왕 36회에서는 크게 몇가지 이야기를 동시 다발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티아라의 큐리(이지현)이 드라마 선덕여왕의 김유신(엄태웅)의 첫번째 부인인 영모 배역에 낙점이 되었군요. 첫째. 춘추의 세상 속이기 춘추는 미생이 하자는 대로 모든 것을 다한다. 미생은 춘추를 데리고 유곽에서 나아가 춘추의 여자 보는 눈을 실험한다. 신라판 미인 선발대회이다. 이는 춘추 한 개인을 위한 미인대회이다. 미생은 보종을 통해서 춘추가 보량(박은빈)을 좋아하다는 이야기를 미실에 전한다. 이에 우리의 찌질남 하종은 왜 자신의 딸들에게도 아름다운 미인들이 많은데 왜? 하필 보량이냐고 푸념을 한다. 하지만, 춘추는 도박장에서 비담을 만나서 눈인사를 하는 과정에 이미 미생의 술수를 다 알고 있다고 시청자에게 알려준다. 여.. 더보기
천명만 알 수 있는 김춘추의 생부(용수?,용춘?) 드라마 선덕여왕은 춘추(유승호)의 아버지를 의 기록에 따라 라고 설정을 하고, 용수와 용춘를 서로 다른 인물로 설정하였다. 용수가 형이되고, 용춘이 동생이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선덕여왕은 용수를 미실의 계략으로 춘추가 태어나기 전에 죽은 것으로 설정하였고, 춘추는 유복자로 태어 났다고 하였다. 하지만, 위 설정이 얼마나 역사의 기록과 부합하며, 원작자가 인용한 와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지 않는가? 일단,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살펴보면, 기존 역사학계의 통설과는 다르게 용수와 용춘은 동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춘추의 아버지로 기록된, 용수.용춘을 동일인으로 기록하고 있을까? 아니면 다른 이로 기록하고 있을까? 겉보기로는 용수.용춘을 동일인으로 기록하는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통.. 더보기
용춘의 아내는 왜 우물에 몸을 던졌을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대놓고 드러내지 않지만, 은연중에 미실이 수많은 남자를 거르렸음직한 장면을 종종 보여 주고 있다. 이에 대해서 미실의 남자에 관한 기사를 송고 했었다. 2009/07/31 -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관심이 계신분은 일독을 해보시길 바란다. 어찌되었던, 드라마 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현존 화랑세기를 읽다 보면 처음에는 "머 이런 개족보가 다 있나"한다, 하지만 요즘의 개들의 족보도 사실 화랑세기의 기록된 신라의 성생활에 비하면 건전해 보이기 까지 한다. 그런데 겉보기는 분명이 개족보 보다도 못한것 같지만, 심도 있게 파고 들면, 의외의 상황을 대면하게 된다. 한 일단은 자유로운 성을 누리고 있지만, 또 다른 일단은 정조와 절개를 목숨만큼이나 귀히 여긴.. 더보기
덕만의 사라진 남자형제들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나오지 않는 진평왕의 아들들에 관한 글이 될겁니다. 칠숙,비담,흥원이 반란을 하는 이유 진위 논란의 한가운데 있는 에는 진평왕에게는 최소한 4명의 아들들 즉 왕자들이 보인다. 이들 왕자의 후손들 중에 681년 흠돌 반란에 동참이 아닌 주도적으로 정통성 회복을 시도한 인물도 있다. 이때, 김유신과 김흠순 가문도 이에 연루가 되어 역사에서 사라질뻔한 위기를 겪는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김유신이 김미추의 능에 나타나서 쇼를 하는 바람에 위기를 넘기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다고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의 기사가 될 것이다. 이번 글은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칠숙이 반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송고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