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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설, 추석, 한가위, 중추절과 차례 상차리는 방법 감춰진 진실찾기

차례상 차리는 방법은 지방마다 시대마다 달랐다. 지금도 차례상 차리는 방법에 대해서 설왕설래한다.

그런데 차례상 차리는 방법에는 정도가 있을까? 우리민족 고유의 가장 큰 3대 명절(설,대보름,추석)인 추석을 "추석은 우리것이 아니(였)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로 부터 돌이 날라올지도 모르겠다.

차례상 차리는 방법에서 차례의 유래등 감춰진 진실을 찾아 보려 한다.

설마 추석이 우리것이 아니라니 좋은밥 먹고 헛소리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이다. 그리고 추석의 유래에 대해서 장황설을 늘여놓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나 추석의 유래를 보면 우리것이 아닌것을 설령 우리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우리의 문화에 깊숙히 스며들었으니 우리 민족의 고유의 명절이 된것이 아닌가 이야기를 할것이다.

당연히 현재의 <추석>은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겠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는 없는 특이한 제례문화이다.

 
하지만 정확한 유래를 알고 있는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추석>은 <중추절>, <한가위(가베)>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추석>과 <중추절>과 <한가위>는 서로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1번째, 한가위 유래 (추수감사제와 놀이성격)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 동안 길삼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때 조상에 감사하고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2번째, 중추절 유래 ( 승전기념일 + 한가위 )
 
<예기>의 <맹추>,<중추>,<계추> 중에서 가을의 한가운데 있는 중추절에서 이름을 빌려왔겠지만, 이름만 중추이고 실제는 신라의 고유의 한가위인 가베를 중국식 작명법에 의해서 기록한것 뿐이다.<중추>와 중추절은 서로 다른다. 단지, 중추란 한자화된 용어의 차용에 불과하고 중추절은 카니발 성격의 축제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슝베이도 중추절은 신라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중추절은 당나라에 유학한 일본의 구법승려 <엔닌의 일기>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서>,<구당서>,<신당서>의 기록에도 신라는 8월15일날 왕앞에서 활쏘고, 말타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한다. 이 당시 중추절은 한가위의 풍습과 전승기념일을 합한 행사가 된다.
 
전승기념일이다 라는 있는 근거를 2009/09/26 - [역사이야기] - 중국 중추절은 신라 진평왕의 고구려 승전기념일?  글에서 <삼국사기>를 근거로 중추절은 진평왕의 603년 8월 대고구려 북한산성전쟁이나 668년 가을 고구려의 멸망을 기념하는 전승기념일이라고 주장했다.    

SBS 사극 <연개소문>에서도 고구려가 신라의 <북한산성>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공교롭게도 603년 음력 8월이고, 진평왕이 직접 북한산성에 진주하여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왕이 직접 전장에 나아가서 싸우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당시 수와 전쟁에서 이긴 동북아의 패자 고구려를 신라 왕이 직접 통솔하여 물리 쳤다고 하는 의미에서 신라에게는 대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삼한일통을 한시기도 668년 가을이다.  이때의 승리를 기념해서 축제를 벌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까지 신라로써는 한가위와 전승기념일이 충첩된 날이니 즐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3번째, 추석 유래 [춘조일(春朝日), 추석월(秋夕月)] ( 한가위 + 중추절 + 유교제례 )
 
위에 중추절과 중추는 다른 의미라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형식과 내용면에서 추석은 추석제의 미미한 변형이다.
 
네이버 통합검색 화면에는 다음과 같이 추석관련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추석의 유래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추석은 중국의 유교경전인 <예기>에 천자는 이른봄에 태양에 제사를 지내고, 가을에는 저녁 달에 제사를 지낸다해서 비롯되었다. 동지는 태양이 낮은 고도에서 점차 크게 떠올라 시작을 알리는 시기이고 가을 중추에 뜨는 달이 가장 높이 크게 보이는 시기이기 때문에 <춘조일>, <추석월>같은 유래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예전 <네이버> 백과사전(두산백과사전)에서 <추석>의 유래를 검색하면 <예기>의 <조춘일>,<추석월>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달처럼 해처럼 번쩍이는 레슬러 <조춘>선생을 기념하는 날도 아니고 실제는 <춘조일>의 오기이다. 글쓴이도 오랫동안 관심이 없어서 무관심하게 지나갔지만 <조춘일>, <추석월>인줄 알았다. 그래서 추석에 관한 여러가지 자료를 조사할일이 있어서 이곳 저곳 찾다보니 <조춘일>이 <춘조일>의 오기라는 것을 알았다. 
 
네이버에 올려진 백과사전이 잘못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알고 오래전에 수정할려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이유는 예전에 솔거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솔거의 활동시기가 <진흥왕>시기(540년이후)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꼼꼼히 솔거는 <진흥왕>시기 사람이 아니고, 신라의 황금기인 경덕왕(8세기)때 활동한 사람이며, 솔거의 작품인 황룡사 <노송도>와 단속사 <유마상도>, 분황사 <천수관음보살도> 등 잘못이 있으니 수정하였으면 한다고 자세하게 논거를 제시하여 보냈지만 근 한달이 지난후에 솔거관련 기록들은 수정도 하지 않은체 <솔거>라는 항목만 수정을 하고 고맙다는 말도 없었다. 
 
솔거 관련글을 자세히 보실려면   2009/08/02 - [역사이야기] - 덕만에서 솔거까지 역사상식을 깬다
글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현재 추석은 3가지의 유래중에서 어디에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추석의 유래 중 <예기>를 인용하지 않고 있다. 있는 사실을 감추고 유래를 단지 국내에서 찾으려는 또다른 역사왜곡 사례이다.
 
<한가위>나 <중추절>의 행사와 놀이문화는 잊혀지고 단지, 제사(차례)의식만이 남아 있다. 그리고 <한가위>라는 말을 쓰기는 하지만 <추석>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또한 추석이 민족의 3대명절인 <설>,<단오>,<추석>에 진입한 시기를 보면 조선시대 중종?이후 일이다. 
  
조선시대의 추석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추석에 관한 기록은 모두 왕이 조상에 대한 제사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조에 보면 아침에 추석제를 지낸후 저녁 밤늦게까지 대신들과 왕족들을 불러 술마시고, 흥겹게 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연산군때에도 추석제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연산군은 자신의 친모인 <윤씨>에게 추석제사를 지내려하나 신하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하지만 효자였던 연산군은 신하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윤씨>의 사당을 세우고 추석제사를 강행한다.

<추석제>를 지낸것은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신라 종묘의 제도에 <추석제>가 있었다고 흔적이 있다. 

37대 선덕왕이후 일년에 여섯 번 5묘에 제사지냈으니, 곧 정월 2일·5일, 5월 5일, 7월 상순, 8월 1일·15일이었다.

그러니 삼국시대부터 신라왕실에서는 추석제사를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추석제를 지키는 것은 김춘추가 당에 구원요청하고 신라의 관제와 복식을 당나라식으로 바꾼 이후부터 일것으로 추측된다. 이때 지낸 제사의 형식은 <유교>형식의 제사일것 이다.
 
또한,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백제 편에 책부원귀를 인용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백제는 매년 네 철의 가운뎃 달[四仲之月]에 왕이 하늘과 오제(五帝)의 신에게 제사지냈다. 그 시조 구태(仇台)의 묘(廟)를 나라의 도성에 세우고 일년에 네 번 제사지냈다.』

고대의 <추석제>는 민간 백성들은 지낼수 없는 황제나 제왕들만이 지내는 제사였기 때문에 왕실에서만 지냈고 민가에 까지는 널리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추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추석제는 기회가 된다면 따로 글을 쓰도록 하겠다. 
  
조상은 사라진 차례와 제사, 르레상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차례를 지냄에 있어서 상차림에 관한 이야기들이 설왕설래 한다. 그 근거는 <예기>일 수 밖에 없는데 <예기>을 보면 제사는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너무 많은 제사를 하지 말고, 겸약하고 겸손하게 지내라"라고 하였다.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조상이 평상시 좋아하던것으로 하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홍동백서>,<좌포우혜> 등 조상과는 무관한 형식과 절차 만이 남아 있다. 조상이 왼손잡이던 오른손잡이던 상관하지 않고 숫가락을 놓아야 한다. 왼손잡이가 귀신이 되면 갑자기 오른손잡이로 변하나? 또한, 조상이 살아생전 좋아하던 음식과는 전혀 상관하지도 않고 있다.
 
소주를 좋아하면 소주를,  탁주를 좋아하면 탁주를, 양주를 좋아하면 양주를 올리면 되는 것이 아닐가?. 바나나를 좋아하면 바나나, 파인애애플이면 어떤가?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귀신이 털달린 과일을 좋아라 하지않는다고 해서 죄악시하고, 매운음식과 고추는 귀신을 쫓아내는 벽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해서 고추가루가 들어가지 않는 음식으로 올려야 한다.
 
실제로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임진왜란 전후라고 전해진다. 유입경로는 명/청이나 일본 양쪽으로 어느쪽이 앞선 시기인지는 아직 확실치는 않다. 조상이 매운음식을 즐기던 즐기지 않던 상관없이 귀신은 고추가루 싫어한다는 믿기지도 않는 낭설에 따라야 한다. 만약, 예기를 만들기 이전에 고추가루가 있었다면 당연히 고추가루가 들어간 음식이 제사상에 올려졌을 지도 모른다. 과일중에 붉은색 과일을 올리는 것을 보면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제사나 차례의 주체인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과 조상은 사라지고  단지 제사 형식에 치우치고 있다. 제사 형식과 차례를 규정한 <예기>는 조상이 평상시 좋아라 하는것으로 하라고 했는데도 말이다. 제사나 차례도 중세유럽의 <르레상스>운동처럼 본류를 찾는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시대에 따라 민속도, 명절도, 내용도 달라져야.. 
 
현재의 추석은 과거 우리가 알고 있는 한가위나 중추절과 다른 의미이고 <추석>,<한가위>,<중추절>은 서로 믹스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뿐이다. 현재의 추석이 다른 어떠한 민족도 하지 않는 아주 특이한 고유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추석이 고래부터 한민족의 고유의 명절이라고 하기에는 내용도 바뀌고 성격도 바뀐 다양한 문화가 접목이 되어 있어서 문제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부처탄신일, 팔관회가 국가의 중대축제였고, 조선시대에는 유교적인 단오, 한식, 추석, 공자탄신일 등이 중대 행사였다. 현재는 단오, 한식 보다는 실제와는 다르지만 예수의 탄신일이라고 알려진 크리스마스가 중대한 명절 풍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먼훗날 크리스마스가 우리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토착화될 때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고유의 민족의 행사라고 모두들 이야기를 할것이다. 그때 무슨 소리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고유의 명절이 아니고 유대교의 선지자중 일인인 예수라는 인물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에서 유래된것이야 그리고 산타크로스는 예수의 탄생과는 전혀 관계없는 북유럽의 신화에서 나온인물이고, 산타와 산타의 붉은 복장은 코카콜라가 자신들의 상품을 선전하기 위해서 만든 허구야 한다면 벼락 맞을 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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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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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런 2010.09.17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이런!! 이렇게 내공쌓인 글을 이리 방치 하다니...
    다음이 실수 하고 있군요 ㅋㅋ
    근데 어쩜 사람들이 자극적이거나 달달한 이야기만 좋아하는 것 같으니
    다음도 당연 거기에 영합하는걸지도... 아닌가 그리 선도하는건가?? 에효

    그럼에도 이렇게 새로운 글 내 놓으라고 조르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길...

  2. Favicon of https://peter0317.tistory.com BlogIcon 제로드™ 2010.09.18 1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꼼꼼하고 열심히 자료를 찾아서 글을 쓰시네요~. 즐거운 추석 되시길..

  3. Favicon of https://vibary.tistory.com BlogIcon 비바리 2010.09.18 19: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명절 즐거이 지내세요.

  4. 2010.09.22 0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Favicon of http://solnebane.com BlogIcon 조용형 2012.01.02 2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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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Favicon of http://inoline.com BlogIcon 2012.01.07 0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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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Favicon of http://carbon21.homeunix.com BlogIcon Jordyn 2012.04.04 0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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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Favicon of http://extratime.isa-geek.com BlogIcon 빅토리아 2012.04.06 0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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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Favicon of http://zonda.is-very-evil.org BlogIcon Aaliyah 2012.05.09 0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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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Favicon of http://onlyme.hobby-site.org BlogIcon Arianna 2012.05.11 1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11.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12.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 2012.07.14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해서 눈 속에 덮혀 있다. 그런데 이번 강릉 빙상장은 경기를 보는

  13. Favicon of http://blogskinny.com/ BlogIcon Berrong 2012.09.09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14. Favicon of http://www.frankolenko.com/blog/view/9430/what-supplies-to-enter-case-of-an-em.. BlogIcon emergency first aid guide 2012.11.26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어쩜 사람들이 자극적이거나 달달한 이야기만 좋아하는 것 같으니
    다음도 당연 거기에 영합하는걸지도... 아닌가 그리 선도하는건가?? 에효

  15. Favicon of http://mysbi.tk/blogs/viewstory/168 BlogIcon water canister camping 2012.12.04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 동안 길삼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공주의 남자에서 사육신의 대표로 이개를 내세워 사육신들이 김종서의 지지세력이고 단종을 보위하는  역할로 그리고 있다.


그런데 정말 사육신은 계유정란에는 관여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사육신은 계유정난때 김종서의 반대파였다. 그리고 사육신 등 다수는 계유정란 공신이 된다.

더군다나 사육신 등 다수는 단종이 폐위될때 오히려 단종폐위에 앞장서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단종 복위를 노렸다고 해서 단종폐위에도 반대했을 거란 짐작은 가능하겠지만, 알고 보면  단종폐위까지 수양대군과 사육신은 한통속이였다. 다만, 추후 지향하는 바가 달랐을 뿐이다.

그래서 후에 수양대군이 단종에게 양위를 받고 반목하여 세조와 세자 등을 암살하려고 시도하다 들켜서 처형되고 말지만 말이다. 최소한 사육신은 세조가 왕이 되기 전까지는 수양대군의 편이였다.


엄자치와 전균은 단종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던 내시들이다.

이들은 계유정란의 공신으로 인정되고 군에 봉작되었다. 하지만, 사헌부와 사육신인 성삼문, 이개 등의 탄핵으로 군은 취소되고 다만 판내시부사 두자리를 만들어 판내시부사가 되었다.


 

정난 공신(靖難功臣) 일등(一等)인 정인지(鄭麟趾) 이하 11인에게 각각 안장 갖춘 내구마(內廐馬) 1필과 백은(白銀) 50냥(兩), 채단(綵段)의 안팎 옷감[表裹] 2벌씩을 하사하고, 2등인 11인에게 내구마 1필, 백은 25냥, 채단의 안팎 옷감 1벌, 3등인 20인에게 내구마 1필, 백은 10냥, 채단의 안팎 옷감 1벌씩 하사하였다.


“엄자치(嚴自治)와 전균(田畇) 등이 정난(靖難) 때에 공이 있었으므로 군(君)을 봉하였는데, 금후로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 둘을 더 두어 이를 제수하고, 봉군(封君)한 것을 취소하라.”

하였으니, 대개 대간(臺諫)의 청을 따른 것이었다. - 단종 1년 1453년 12월 2일



성삼문과 이개, 박팽년 등 사육신 등이 엄자치와 전균의 공신에서 빼려는 목적은 간단하다. 이들이 내시이기 때문이다. 다른 어떠한 이유도 없었다. 이들이 명분으로 내세운 이유는 내시(환관)이 공신이나 봉작을 받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었다.


성삼문과 이개, 박팽년는 계유정란의 공신이었는데 정란공신에서 자신들을 제외하라는 협박까지 하였다. 사육신들의 요즘으로 치면 내시(환관)차별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내시가 같은 계유공신이고 더군다나 내시에 불과한 자들이 자신보다 높은 등위 정란공신에 있는 게 맘이 상했던 것이다.
 

“난신전(亂臣田) 으로서 1등 공신 영의정(領議政)에게는 1백 50결(結), 그 나머지에게는 각각 50결, 2등 공신에게는 각각 30결, 3등 공신에게는 각각 15결씩 나누어 주고, 또 혜빈(惠嬪)과 경혜 공주(敬惠公主)에게 각각 1백 50결,

.. 중략..


단종 1년 1453년 12월 26일


계유정란으로 김종서, 안평대군, 황보인 등으로 빼앗은 토지를 정난공신들에게 나눠준다. 그중에 계유정란 공신으로 영양위를 제수받은 정종과 경혜공주가 있다.


영양위(寧陽尉)가 말하기를, ‘문종(文宗)의 상(喪)이 있을 때 안평 대군(安平大君)과 금성 대군(錦城大君)·화의군(和義君)·의창군(義昌君) 등이 풍악을 울리며 연회를 베풀었다.

- 단종 2년 1454년 8월 28일



 공주의 남자에서 영양위 정종은 안평대군과 금성대군과 함께 김종서을 도와 단종을 지키는 중요배역으로 나오지만, 최소한 정종은 처음에 안평대군과 금성대군에 좋은 감정은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장인인 문종의 상중인데 동생이란 자들이 풍악을 울리고 연회를 베풀었다는데 심히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왕이 죽은 국상 중에 종친들이 술판을 벌리고 놀았다면 미친놈들이 분명하다.


공주의 남자에서 영양위 정종은 문종의 큰딸 경혜공주에게 장가를 간다. 정종이 영양위가 된 이유는 계유정란의 공으로 된 것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승유와 신면은 정종이 영양위가 된 것을 축하하는 장면이 나온다. 승유는 자신의 아버지와 일족을 몰살하면서 받은 영양위가 단순히 부마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나오니 참으로 김승유의 속내를 알 수가 없다.
 


계유정란을 즈음해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보았을 때 김종서. 김승유의 적은 정종이고, 경혜공주와 사육신이 된 성삼문, 이개 등이다. 신숙주나 수양대군과 하등 다를 게 없는 적이란 뜻이다. 그런데 신숙주는 적이고, 이개는 스승에 정종은 수양대군과 승유를 끔찍이도 생각하는 존재들로 그린다면 이를 이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끔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역사는 아니라고 댓글을 다는 단순한 사람들이 있다. 더군다나 드라마는 작가의 장착의 영역이라고 말을 한다. 아마도 김승유가 살아 있었다면 작가와 그런 댓글을 단 인간들에게 무어라고 말을 했을까? 사실 드라마는 개연성과 장르 안에서 리얼리티를 살리는 하얀 거짓말이다. 동네 양아치들의 계집후려치기 구라 경험담이나 1대 18로 싸웠다는 허황된 새까만 거짓말이 아니다.


공주의 남자에서 제작자 스스로 "역사속 감춰진 드라마틱 사랑"이라고 말을 했다. 역사속에 감춰진 사랑이야기를 다루는 거라고 말이다. "역사는 역사고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자신있게 댓글 다는 사람을 뻘춤하게 하는 말이다.

김종서의 적들 정종,신면을 김승유의 친구로 삼을 만큼 절실함도 없다. 단순히 사랑의 삼각관계를 만들기 위한 장치로 정종과 신면과 승유를 친구로 만들고, 경혜공주와 세령을 친자매보다 친한 사이이로 그리다. 공주에서 노비가 된 경혜공주와 대군의 딸에서 공주가된 세령을 대비하고자한 작가의 끝없는 오지랖 때문이다.


그래서 세령이 경혜공주보다 나이가 어린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수양대군의 큰 아들 숭(의경세자)이는 세령에게 누나라고 부른다. 도대체 족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신이 없다. 숭(의경세자)는 1438년생이고, 경혜공주는 1436년생이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세령(세령공주)는 1437년생인가? 하지만 세령은 숭의 동생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신면이 정종. 승유와 친구라는 설정에서는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 신면은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다 화살을 맞고 죽는다. 이때 나이가 30살이었다. 그리고 신면이 죽었을때 5~6세 먹은 2명의 아들이 있었다. 이시애의 난은 1467년에 일어났다.


그렇다면 신면은 1438년 생으로 수양대군의 큰아들 숭(의경세자)와 같은 나이다. 사회생활 10년은 막 먹는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지만, 신면, 정종은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지만, 아버지나 삼촌벌인 승유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16살 꼬꼬마 들이 계유정란에서 정국을 주도해 활개를 칠만큼 조선이란 나라가 만만한 나라도 아니었다. 


오죽하면 16살 아래는 어미젖을 더 먹고 오라고 반역자의 자식들도 살려주었겠는가? 그래서 계유정란으로 살아남은 김종서의 손자도 있다. 김종서 둘째 아들 김승벽의 첫째 아들인 김중남(석동)이 16살이 되지 않아서 살아남아 절손되지 않고 후손들을 남길 수 있었다. 중남(석동)은 당시에는 유일한 김종서의 후손이었다. 도망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살아남은 김승규의 셋째 말동(행남), 김승벽의 셋째 삼동(팽), 김승유의 외독자 효달을 제외하고 말이다.


김승유가 실존인물이라고 하니 작가가 창조한 인물이라고 말하는 이들까지 있는 게 현실이다. 김승유는 실존인물일 뿐만 아니라 계유정란 이전에 죽고, 김승유의 처는 여흥민씨였고, 아들 효달까지 있다고 한다면 놀라기는 커녕 드라마는 드라마라는 초딩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공주의 남자는 역사를 바탕으로 재해석 했다고 한다. 공주의 남자 어디에 역사가 있고, 역사를 재해석한 부분이 있던가? 역사를 바탕으로 했다는 인물 군상들이 이개, 정종, 성삼문 모두 김종서 일파를 죽이는데 혁혁한 공로가 있었는데 이들이 김승유의 친구와 스승이 된다는 설정이 역사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인가?


사실 정종과 김승유가 친구일수는 없다. 김승유는 이미 계유정란 전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설령 김승유가 나이어린 정종과 친구였다고 현재 신면처럼 그려져야 그나마 합리적이고 개연성이 있게 된다. 1450년 15살 경혜공주에게 장가 간 정종이 나이를 먹었으면 얼마나 먹었겠나? 비슷한 나이이거나 많아봐야 두세 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마찬가지로 사육신 이개가 김승유 자신의 스승이었지만, 정적으로 대립할 수는 있다. 그런데 단종이 수양에게 양위하려고 옥새를 넘기는 장면에서 이개가 신숙주에게 너가 그럴 줄 몰랐다고 말하고 범옹(신숙주) 너의 자식 신면에게 학보다는 충의를 가르쳤는데 그럴 수는 없다고 하는 부분은 고개조차 떨구게 된다. 이개나 신숙주 모두 계유정란공신이었고,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양위하는데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이었다.




적인데 김종서를 남몰래 후원자였다고 한 부분이 역사를 재해석하고 재조명했다는 것인가?


역사를 무시하고 한복 입은 배우들이 나와서 사랑놀음하는 걸 즐기는 사람들을 배려해서 좋게 말해서 곡학아세했다고 말을 하고, 사실대로 직시하면 역사왜곡을 넘어 역사를 파괴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문제는 작가의 상상력을 넘어선 역사파괴를 비판하는데 뜸금없이 자신들을 비난하는 줄 알고 제발 절이듯이 댓글로 드라마는 드라마라는 초딩도 달지 않는 댓글을 단다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잘보고 있는데 초치는 것 같으니 비유가 상하는 것은 알겠으나 초딩보다 못한 댓글은 사양한다. 드라마를 잘보고 있는데 해당 드라마를 비판하면 좋은 소리 듣지 못한다는 것을 모를 만큼 우매하지도 않다.


사실 비판하는 부분은 작가가 밝힌 역사를 바탕으로 재해석, 재조명하고 , 드라마틱(극적) 리얼사랑이라고 한 부분이다. 공주의 남자 어디에 리얼이 있는가? 극중 장치도 없이 시공간을 넘나드는 황당SF 이야기 구조에 그냥 뻥이야 뿐이지,


차라리 제작자와 작가가 계유정란, 역사, 재해석, 재조명, 리얼 이런 말을 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사건과 이해당자를 다루지 않고, 배경만 빌려왔다면 얌전히 보기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이런 설정을 했는데 사실은 이렇다고만 했을 것이다. 드라마의 극적인 이득을 보기 위해서 이해당사자를 주요배역으로 드라마에 등장시켰다면 최소한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었어야 한다. 그래야 극도 살고 보는 이들이 재미와 극에 더 몰입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계유정란과 이징옥의 난으로 추석(한가위)날 목이 달아난 김종서의 아들과 손자들
 

“전일에 정난(靖難)할 때 사람을 많이 죽이지 않으려고 하여 모두 너그러운 법[寬典]에 따랐는데, 근일에 대간(臺諫) 에서 와언(訛言)이 떠들썩하게 일어남으로 하여 간당(姦黨)의 근본(根本)을 모두 제거하자고 굳이 청하므로, 대신(大臣)에게 의논하였더니, 대신의 의논도 이와 같았다.


 

내가 종사(宗社)의 대계(大計)를 위하여 사(私)를 버리고 마지못해 대신과 대간의 청을 따르니,


 

부처(付處)한 이용(李瑢)의 아들 이우직(李友直)과 황보석(皇甫錫)의 아들 황보가마(皇甫加麿)·황보경근(皇甫京斤), 김종서(金宗瑞)의 아들 김목대(金木臺), 김승규(金承珪)의 아들 김조동(金祖同)·김수동(金壽同), ..생략..을 죽여라

단종 2년 1454년 8월 15일



어쨌든 김승유의 배다른 형인 김목대와 큰형인 김승규의 아들 김조동, 김수동은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던 추석(한가위)날에 목숨을 잃어 버린다.
 


그것도 계유정란 1453년 10월 10일에서 근 1년이 지난 1454년 8월 15일에 말이다. 요즘은 죄인들도 한가위 특사로 나오고, 많은 죄인들이 감형을 받는 날인데 김승유의 형과 조카 두 명은 차디찬 이슬이 되었다.

김종서 일가가 계유정란으로 멸족되는 과정은 4차례에 걸처서 기나긴 과정에서 일어난다.
공주의 남자에서처럼 계유정란 이틀만에 멸족되지가 않았다.

1453년 10월 10일 : 김승규와 김승벽의 두아들 차동과 사동이 죽음.
1453년 10월 11일 : 김종서 죽음
1453년 11월 23일 : 김승벽, 서자 김석대 죽음
1454년 8월 15일(추석) : 서자 김목대, 첫째 김승규 아들 김수동, 김조동 죽음


죽이고 또 죽이고 1년 동안 죽어 나갔다. 살았다고 생각할 때 죽이고, 더이상은 죽이지 않겠지 할때 또 죽였다. 살아남은 자들은 피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또다시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을 것이고 피가 말랐을 것이 분명하다. 한과 원한이 깊어도 한꺼번에 몰살되는 것보다는 깊었을 것이다. 그래서 살아남은 후손중에 요동(만주)으로 중국의 산동반도로 국외 도피(망명) 하기도 한다.

공주의 남자에서 일가족을 몰살시킨 것을 극적인 표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 역사와 드라마 공주의 남자 중 어느쪽이 더 비극적일까? 실제역사가 더 비극적이지 않았을까?

김종서의 살아 남은 어린 후손들이 신분을 속이고 더 깊숙히 숨어들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16살이 안되 살아 남아 노비로 지내다 방면된 김승벽 아들 김석동이 이름을 중남으로 바꾸고 숨었던 이유도 언제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때문이지 않았을까?

추석 보름달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보름달은 다르게 다가온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이는 보름달이 연인의 웃는모습으로, 마음이 풍성한 사람은 보름달도 넘치고 따스하게, 하지만, 죽지못해 사는 사람은 어떻게 추석을 보낼까하는 한숨으로 각자 의미를 보름달에 투영해서 자신을 볼것이다.

만약,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처럼 김승유가 살아있었다면 추석(한가위) 달은 원한으로 시퍼렇게 날이 서있지 않았을까?

한가위가 다가왔습니다. 모두들 무탈하시고, 좋은 추억만 만드는 추석을 만드세용 ^___^
추석과 한가위에 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 아래 글들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2011/09/14 - [역사이야기] - 계백, 의자왕, 계백 백제 패망후 왜 건너가 천황 될지도?

2011/09/09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스승 이개 알고보면 계유정란공신 척살1순위, 사육신 단종폐위 공신들
2011/09/0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찌질남 민폐 제작자 인증. 사육신 성삼문 단종 폐위 일등공신
2011/09/06 - [역사이야기] - 계백, 동명제 초혼관 의자, 교기와 흥수는 왜 왜색풍 옷을 입었나? 사실은
2011/09/07 - [역사이야기] - 은고 사비성 태울만큼 계백 사랑했을까? 공주의 남자 비롯한 역사파괴 끝은 어디까지?
2011/09/05 - [역사이야기] - 광개토태왕, 광개토태왕이 없다. 사갈현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대표로?
2011/09/04 - [역사이야기] - 광개토태왕, 동북공정, 독도침탈보다 부끄러운 고구려 창조하기?
2011/09/03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종서 후손중 김승유 제외하고 절손되었을까? 사실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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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이트를 찾아 정말 행복 해요 즐길 여기 게시 된 유용한 기사를 읽는 않았다.저자의 아이디어는 공유에 대한 감사 굉장했다.

10월 3일은 하늘이 열리는 개천의 날이라고 한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날이라고 한다. 음력 10월 3일이던 날이 양력 10월 3일이 되고, 환웅이 신시를 만들었다고 알려지는 개천의 날이 단군이 나라를 세운날이라고 잘못 알려지게 된다.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탄신일이 아니듯, 크리스마스에 눈이오지 않음 안된다는 환상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유대땅에서 눈을 보기는 천지개벽을 하기만큼 힘들다라고 이야기를 해줘봐야 별무 신통이다. . 예수와 동방박사는 사라지고 그자리에 <산타>가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이 되는 일처럼 원형이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민족의 시조가 나라를 세웠다는 날이 바뀐다고 달라질것도 없다.

길림에 있는 곰상(쑥과 마늘이 보인다)

 단군이 기원전 2333년에 개국을 하였다. 단군이 태어난때로 돌아가면 환웅이 범과 곰에게 마늘과 쑥을 주어 동굴에서 빛을 보지 않고 치성을 드린다면 100일만에 인간이 될수 있다고 한다. 

곰이야 동면을 하는 동물이니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100일을 참을 수 있지만 범이야 일주일만 굶어도 굶주림에 목놓아 울어버릴것이고 배고픔에 탈출하는 것이 범의 성격에 맞는 일이다.

 범이야 애초부터 마늘과 쑥을 먹지 않는 육식동물이니 예초부터 게임이 되지 않는 불공정 시합을 환웅은 시킨 것이다. 환웅은 이미 범보다는 곰에게 마음이 있었지 않을까 한다. 한마디로 범이 풀을 뜯어먹냐?라는 개가 풀뜯어 먹는 이야기다. 

그 증거로 호랑이가 배가 고파 더이상 참을 수 없어서 동굴을 빠져나가자 100일이 지나야 인간이 될수 있다는 <약속>은 간곳이 없고, 곰은 21일만에 인간이 되고, 환웅과의 사이에 단군을 낳는다. 그래서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도 환웅이 애초부터 <웅녀>에 마음이 있었던것이 아닐까하고 그려가지 않던가?

 한웅이 인간세상에 올때를 보면 <우사>,<운사>,<풍백>과 남.여 삼천인을 데불고 온다. 바람과 구름과 비는 농사를 짓는데 없어서는 않된다. 360개의 생노병사를 관장하여 삼라만상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기치로 인간계에 구현을 하는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기자가 오자 단군이 기자를 피해서 구월산에서 하늘로 올라갔다고는 것으로 봤을때. 기원전 1000~1200년전 기자에 밀린것 같다.

 마한은 위만에 쫓겨난 기준이 현재의 한반도 남쪽땅에서 <진>을 멸하고 <마한>이라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나라의 후손이 다시 기준의 후손을 물리치고,목지국에서 마한을 다스렸지만 마한이 들어선후에도 백성들 사이에서는 <기준>을 기리는 제사를 했다고 한다. 이때가 250년전후이니 기원전 194~5년 기준이 위만에 쫓겨난후에 근 450여년 만이다. 요즘 이야기로는 호랑이 담배를 피워던 시절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단군의 후손들은 기자에 쫓기고 기자의 후손인 기준에 쫓기는 웃지 못할 상황에 봉착한것 같다.

 마한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땅에도 제사를 지낸다고 하는데 소도가 있어서 <천군(天君)>이 제를 주제한다고 한다. 천군은 박종훈이 주연한 <천군(天軍)>과는 다르다. 천군은 하늘군대이고 마한의 천군은 하늘임금이 된다. 천군이 환인이 된다. 천군(天君)>을 옛고음으로 발음하면 어떻게 될까? 훈민정음 창제시절에는 천이 <텬>이고 중국식 발음으로는 (tian)이니 고음으로는 오히려 단군에 가깝지 않았을까?

환(桓)은 이름이 하늘의 음차이고 천(天)은 훈이니 하늘을 뜻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마한의 천군은 환인이던 환웅이던 단군이던 연관성이 있을것 같다. 절에 있는 칠성각(당)과 삼신당(각)이 환인/환웅/단군을 이름한다는 이도 있으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문제는 왜 <우사>,<운사>,<풍백>일까? <산해경>을 볼라치면 풍백은 바람의 신으로 오른손에 부채를 들rh 있는 것으로 묘사가 되고 있다. <비렴>이나  방천군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하늘에 있는 별자리중에서 기(箕)성에 해당한다.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신라 종묘의 제도
입춘 후 축일(丑日)에는 견수곡문(犬首谷門)에서 풍백(風伯)에 제사지내고, 입하 후 신일(申日)에는 탁저(卓渚)에서 우사(雨師)에 제사지내고, 입추 후 진일(辰日)에는 본피유촌(本彼遊村)에서 영성(靈星)에 제사지냈다

삼국사기 신라/제사에 보면 우사/풍백 등에게는 때가 되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상전인 환웅을 제사지냈다는 말은 없다. 연결시킬려면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냈으니 환웅/환인/단군에 제사를 지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단지 우리만이 지내는 것이 아닌  전세계 어떤 민족이나 지냈으니 꼭집어서 <환인>,<환웅>,<단군>을 지칭한다고 할 수 없다.

단지, 삼국사기만으으로는 단군에게 제사를 지냈는지는 모르지만, 유사와 삼국지 위지동이전을 빌리면 <단군>에게도 제사를 지내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단, 고조선이 망한후 수천년 수백년이 지난관계로 그 흔적이 사라지고 민간 종교화하지 않았을까? 할 뿐이다. 신라 중후기 <솔거>가 <단군>그림을 수천장을 그려 신라가정마다 단군그림이 없는 집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고구려·백제의 제사 의례/고구려/중국기록/당서 
당서(唐書)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고구려는 풍속에 음사(淫祠)가 많고 영성(靈星) 및 해[日]·기자(箕子)·가한(可汗) 등의 신에게 제사지냈다. 나라의 왼쪽에 큰 굴이 있어 이를 신수(神隧)라고 하며, 매년 10월에 왕이 모두에게 친히 제사지냈다.』

국동대혈

고구려의 제사기록을 살펴보면 <가한>에 제사를 지내고, 부여신(유화), 고등신(주몽), 나라의 동쪽에 커다란 굴이 있는데 동굴에서 제를 올린다고 한다. 동굴속 <웅녀>의 모습이 느껴지지 않는가? 고구려와 전혀 관련이 없는 듯한 동굴속에서 제사를 지낼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고구려와 더불어 동굴을 숭상하는 족속 중에 선비족이 있는데 그 족속은 동호에서 갈라진 자들로 선비산에 있는 동굴이 자신들의 출생지라고 생각을 하고 제를 올린다.  고조선의 곰동굴과 고구려의 동굴과 선비족이 동굴이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한과 동혈(국동대혈)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말은 하고 있지만, 같은 단락에 당서를 빌어서 <기자>에 제사를 지냈다는 글은 쏘~~옥 빼놓고 있다. 일종의 <기자> 죽이기에 해당 한다. 공교롭게도 10월인것도 재미있다.

고구려가 기자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신라가 금관가야의 제사를 지내는 것과 같고, 조선이 단군묘나 기자묘나 이전 나라의 묘를 관리.유지하면서 제사를 지내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어미인 유화부인은 <하백>의 딸로 나온다. <하백>은 압록곡에 사는 물의 신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산해경>에는 하백은 황하를 지키는 강물의 신이다. 또한, 하백은 모든 강들의 신이 되기도 한다.

장천1호분 사냥, 왼쪽 나무아래 곰이 숨어있다.

대륙사관를 추종하는 많은 이들이 산해경을 동이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자신을 동쪽에 있는 <동이>로 부르는 족속은 없다. 산해경의 중심은 현재의 중국 황하 중심부를 기준으로 내경과 외경으로 분리하고 있다. 고조선 지역인 요령/요동/한반도지역은 산해경의 기준으로 외경에 해당한다.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보면 장천1호분에 굴속에  곰과 범이 굴속에 쪼그리고 있는 장면이 있다. 단군탄생의 웅녀와 범녀의 모티브이다. 고분중 사냥하는 장면에서는 호랑이는 사냥군에 쫓기지만 곰은 굴속에 숨어 있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사람은 환웅의 사람(신족)이고 범족은 쫓기고 곰족은 일종의 보호를 받는 듯한 묘사가 삼국유사에서 한웅과 웅녀의 원형처럼 느껴진다.  실제는 고구려에 광범위하게 퍼저 있는 전승된 이야기들을 위서가 받아 쓰고  삼국유사가 <위서>를 빌어 채록하였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동아시아 고대 3대 문화권중의 하나인 홍산문화는 기원전 3000년~2000년으로 추정되는데 불교의 가부좌상에 해당하는 가부좌를 하고 가슴을 들여낸 부인상이 발견되었다. 어쩌면 이 부인상이 단군조선의 시조인 웅녀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숭배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홍산문화지역이 초기 단군이 개국한 땅이고 기원전 1100~1200년 주나라에 의해서 은나라가 망하자 기자가 홍산지역으로 피난을 오니 초기 전기단군조선의 후왕들은 현재의 요동/평양으로 물러나고 결국에는 평양까지 기자조선에 먹히지 않았을까 추측 된다.  

 수양산에서 불에 타 죽어 충철의 표상이고 불을 피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는 한식의 유래가 된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의 왕자였는데 고죽국이 홍산과 현재의 북경사이에 있는 나라이다.(후에 동호라 불리던 지역) 이때 기자는 고죽국 넘어 조선에 와서 왕이 되었다 하고 삼국유사는 기자가 오자 단군이 구월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고 전한것이 아닐까한다.  

단군상을 파괴하는 행위도 비난받아야 하지만 과도한 고조선의 역사단절도 마땅치 한다. 일연은 왜 고조선이라고 했을까? 우리역사에 조선은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조선 4개의 조선이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고려말년에 쓴 것이니 이성계의 조선왕조는 있지 않았다. 그러니 조선을 중심으로 고조선을 기술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고조선이란 말을 썼다는 것은. 기자조선 앞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 옛조선이 있었다.. 이를 단군조선이라한다. 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단군이 기자에 의해서 망했다고 일연은 <위서>를 빌어서 전한 것이다.  

길림 웅녀상

한때 언론은 개천절날 단군상 철거이야기와 중국의 길림지역의 웅녀상으로 동북공정의 또다른 방편이라는 이야기가 이슈였다. 

반 동북공정이란 이름만으로 사학연구소들이 먹은 국가재정만 하더라도 상당한 액수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커다란 연구성과를 내 놓은 것을 본적이 없다.

단군을 역사로 만들고자 한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을 전하는 것은 왜곡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은폐왜곡이 고구려가 <기자>에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을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누구도 신라가 <풍백>,<우사> 등에 1년에 한번씩 제사를 지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주장에 필요한 것만 추려서 이야기를 하면 역사의 수레바퀴에 아귀가 맞지 않아 잡음 같은 충돌음이 생긴다. 똥을 누다 말고 일어선 찜찜함이 있다. 단군을 역사로 만들고 싶다면 합리적인 해석을 해야하지 않을까 한다. <기자>를 빼고 나면 요동이던 한반도던 역사는 단절된다.  

즐거운 추석 한가위가 되길 소망하면서 고조선을 이야기할때 누구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늘이 열리고, 한가위 전날 주절거려 보았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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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jintonyleo.tistory.com BlogIcon 진 토니 2009.10.02 21: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조선에 대해 자세한 리뷰를 하셨네요. 큰 작업에 추천을 꾹 눌렀습니다. 전 티스토리를 한지 몇일 안됬는데. 여기는 보고 배울 것이 많은 홈피군요.

    님은 삼국사기를 어디서 번역본을 구하셨나요? 궁금합니다. 전 문광부에하는 조선왕조실록은 봤지만

    삼국사기는 krpia인가에서 봤는데 일년에 한 몇십만원돈이어서 꼭 필요한 일 아니면 못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구하시는 곳이 있으시면 제 홈피에 귀한 걸음 하셨을 때 남겨 주세요.

    신종플루 조심하시고, 좋은 추석 보내세요^^

  3. 갓쉰동최고 2009.10.02 2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내에서 원래 한족출신이 아닌 위만을 제외하고 정식 중화국가에서 왕래한 외국인은 진시황의 동방원정대중 하나인 서복이 최초로유력하죠. 기자의 경우 도래설만이 존재하고 도래의 근거가 아직까지는 발견이 제대로되지 않았죠. 그리고 조선초기까지는 소격서에 제사를 모시고 단군조선을 최초의 국가로 여겼으나 조광조가 등장한이후 소격서를 폐지하고 기자조선을 우리민족의 최초의 국가체제를 갖춘 나라로 인정하엿죠. 따라서 기자도래설의 경우 우리학계와 중국학계의 공동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조선의 예는 잘못된 예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유교이상주의를 꿈꾼 조광조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우리 사학계의 연구에 대해서 무조건 신회하지않고 성과가 없다고해서 비판하는 것은 열린 학자의 자세가 아니라고 봅니다. 단지 주류학계안으로 모든학계와 학자들을 평가할수는 없다고 봅니다.
    역사의 진실이란 언제 누구에의해서 밝혀질지 모르기 때문이죠. 그냥 조용히 연구과정을 지켜볼 뿐이죠.
    그래도 앞장서서 역사에대한 열정을품고 연구를 하는 자들이니까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5 16: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흔적은 있지요.. 다만 국내에서 말을 하지 않고 있지요. 요동.요서에는 기자의 후손으로 생각되는 흔적들이 종종 발견된다고 합니다. 감추고 싶은것이겠지요.. 한국사를 전공하는 자들은.. ㅋㅋ 물론, 한국사의 주류안에서도 새로운 물결이 나오는것은 사실임.. 아님 비주류에 주류를 빼앗길 위기감이 있으니요.. ㅋㅋ

    • Favicon of http://f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08 2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공자도 아니시고 학계에 인맥이 있으시지 않으시면
      학계의 동향을 알기 힘든데 요즘 학계정보는 어떻게 구하시나요? 물론 저는 전공자나 재야 전공자들과 정보공유를하지만

    • Favicon of http://f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08 2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기자설의 경우 대단히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지요
      서복도래설처럼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9 10: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직까지는 저의 취미이고 나름대로 시간이 없는 관계로.. 별로 알고는 싶지 않습니당.. ㅋㅋ 언제 기회가 된다면 교류가 있겠지용.. ^__^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9 1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자와 왜 문제는 한국에서 금기지용.. ㅋㅋ

    • Favicon of http://f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09 2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자설의 경우 금기가항이 아닙니다.
      학계의 움직임을 잘모르시나 보신데
      고조선학회같은 상고사 관련 학회의 경우에는 언급을 합니다.또한 주류인 진단학회또한 언급을 하지요.
      다만 문물교류사를 연구하시는 분들이나 동북아재단 측에서는 기자도래설을 중시하지 않기는 합니다.
      기자도래 자체가 유교적 이상을 꿈꾼 조선시대에 활발해지기 때문이죠. 그리고 기자도래의 경우 관련 기록이 거의 없죠.
      저도 고등학생인데다가 정보공유의 한계때문에 이정도 밖에 모릅니다

  4. Favicon of http://f BlogIcon 갓쉰동최고 2009.10.02 2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우리민족은 님 말대로 중국에 의해서만 동이족이라고 불리웠습니다. 만주지방의 고구려를 비롯한 우리민족은 예맥족의 일종으로 맥족이라고 불렸죠.
    그 예는 돌궐이나 서역국가들이 우리를 맥클리 맥구려라고 불렀다는 점에서 드러납니다
    동이족은 한족의 중화사상에서 나온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는 표현으로 우리역사에있어서 별로 좋은 이름은 아니지요. 이는 학자들이 고쳐야 할듯 합니다

  5. 김호성 2009.10.03 0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그런데 글 내용에 오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식은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서 충절을 지키기 위해 불에 타죽어 불을 피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는 유래를 가진 날이 아닙니다. 백이와 숙제는 충절을 지키기 위해 수양산에서 고사리로 연명하다 굶어 죽게 됩니다. 한식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는 백과사전에서 퍼온 내용입니다.

    한식이라는 명칭은, 이 날에는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다는 옛 습관에서 나온 것인데, 한식의 기원은 중국 진(晉)나라의 충신 개자추(介子推)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개자추가 간신에게 몰려 면산(緜山)에 숨어 있었는데 문공(文公)이 그의 충성심을 알고찾았으나 산에서 나오지 않자, 나오게 하기 위하여 면산에 불을 놓았다. 그러나 개자추는 나오지 않고 불에 타죽고 말았으며, 사람들은 그를 애도하여 찬밥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5 16: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2가지의 학설중에 저는 백이.숙제를 언급했는데..님이 지적을 해주시니 보는 분들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6. Favicon of http://potatobook.tistory.com/ BlogIcon 감자꿈 2009.10.03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는 역사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에요.
    갓쉰동 님 행복한 추석 보내고 계시죠? ^^

  7. Favicon of http://toribugs.tistory.com BlogIcon 토리벅스 2009.10.03 14: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동대혈의 사진을 이렇게 본 거는 처음이네요^^ ㅎㅎ

  8. Favicon of http://waarheid.tistory.com BlogIcon 펨께 2009.10.03 1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이 배우고 갑니다.
    외국에서 살면서 실지로 얼마나 많은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잊고 살아가는지를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것 같습니다.

    즐거운 한가위되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5 16: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하드라구요.. 님처럼.. ㅋㅋ 그곳에도 한가위 달이 따스하고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당.

    • 팸께님아 2009.10.10 1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팸께님아
      역사를 배워도 올바른 역사를 배우셔야지
      저런 식민사학에 물드린 역사를 배우면 님 정신만 망가질 뿐입니다. 우리나라가 그렇거든요.
      대다수가 왜곡된 역사를 배우니 당연히 민족정신이 없는것이고......

  9. Favicon of http:// bldg.daum.net / uri - modu BlogIcon 시림, 김 재덕 2009.10.05 04: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l^*..........
    마음에 뜨거운 사랑
    하나 하나 기억 꺼내어
    그 사랑 담으며
    나 저~길 걸어가리

    추억, 행복 담긴 시간되세요
    사랑으로...
    기다림에

  10. 2009.10.05 0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그러게요 2009.10.06 1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개천절 없앤 x는 그냥 "빨간날 줄이자"라는 취지 밖에 생각 못 했겠지만요. 그 날에 깃들인 뜻까지 소멸되어 간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어요..

  12. 개천절은 2009.10.10 0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천절은 단군 탄생일이 아니라
    환웅천황께서 신시에서 배달국을 세우신 날입니다.
    아직도 단군에 탄생일이 개천절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직도 왜곡된 역사서 삼국사기를 믿는겁니까?
    역사왜곡이 가장 심한나라는 우리나라말고 거의 없습니다.
    어느 나라든 역사가 왜곡되기 마련인데 우리나라 만큼 역사왜곡이 심한 나라 없습니다.
    개천절은 단군 탄생일이 아닙니다.
    크리스마스 또한 예수 탄생일이 아니란것이 밝혀졌는데
    아직도 우리는 개천절이 단군탄생일이라고 생각하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틀린 말입니다.

  13. 그리고 2009.10.10 1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서 불타 없어진거 맞습니다.
    일본놈들과 서양 중국놈들에 의해서 없어지기도 했고
    우리나라 사대주의학자에 의해 없어지기도 했죠.
    지금 주류학계들은 죄 다 이병도 사학에 영향을 받았는데
    그 이병도는 대표적인 식민사학자이지요.

  14. 그리고 2009.10.10 1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그리고 곰이 사람이 된다? 이게 말이 됩니까?
    곰이 사람이 되었다는것은 비유적인 표현일 가능성이 있는것이지
    아직도 님은 신화를 역사로 착각하고 계십니까?
    해석을 해도 어쩜 그리 못할수가......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11 0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닉은 통일 시켜주셈..
      어디에 곰이 사람이 되었다고 주장하던가요? 당연히 비유지요.. 신화속에는 역사가 숨어 있어용.. 또한, 신화자체도 역사의 기록물입니당.. 그러니 신화도 역사의 일부에용.. 해석의 문제는 별개로 하고용..

      일일리 반박하거나 대응할만한 댓글이 없는게 아쉽습니당.. 그래서 이댓글로 님이 남겨논 댓글에 대한 대응을 갈음 할까 합니당.

  15. Favicon of https://sephia.tistory.com BlogIcon sephia 2010.10.03 18: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잠깐...... 이거 잘 쓰셨다 싶어서 글 써진 연도를 봤더니........ 작년 글입니까???

    뭐, 사실 개천절에 대해서 어떤 날인지 잘 모르는 정부니... 답답할 노릇이죠.

  16. Favicon of http://ㅁㄴㅇㄹ BlogIcon ㅁㄴㅇㄹ 2010.10.07 0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ㅁㄴㅇㄻㄴㅇㄻㄴㅇㄹ zzzz메렁메렁 ㅎㅎㅎ 장난입니다..

  17. Favicon of http://ㅁㄴㅇㄹ BlogIcon ㅁㄴㅇㄹ 2010.10.07 0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18. 오스왈드 2010.10.07 0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보았습니다
    그 유명한 사냥도 벽화는 단군신화라기 보다는 그냥 사냥을 그린 것인데 우연찮게 비슷했다고 해야 하나...
    그정도인 것 같고요
    환웅이 기록에 없는 이유는 환웅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원 단군신화는 환인-단군인데 나중에 환인-환웅-단군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고구려 신화에서도 천제의 아들이자 유화를 건드리는 해모수는 후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군요
    환웅의 존재는 중앙집권이 확립되면서 백성이 왕을 직접 친견한다는 사고가 사라지고 난 뒤 일종으 중개자로서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합니다

  19.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niches/mature.php BlogIcon Mature Pussy 2012.07.12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중에 김영랑의 시처럼 모란이 피기까지는 삼백예순날은 아니더라도

  20. Favicon of http://www.qtoursindia.com/?p=66 BlogIcon meal ready to eat individual 2012.12.10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드라마 작가가 간과한 것이 있다. 태자 부여 융에 관한 것이다. 부여융은 615년에 태어나 682년 68세의 나이로 복망산에 뭍힌다.

  21. Favicon of http://mariviclisy.blogspot.com/2012/04/this-baker-dozen-items-it-is-best-to.h.. BlogIcon dehydrated strawberries esophageal cancer 2012.12.25 1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운사>,<풍백>일까? <산해경>을 볼라치면 풍백은 바람의 신으로 오른손에 부채를 들rh 있는 것으로 묘사가 되고 있다. <비렴>이나 방천군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하늘에 있는 별자리중에서 기(箕)성에 해당한다.

우리의 명절중 중국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은데 추석이나, 중추절도 중국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중추절과 추석은 별도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이런 와중에 중국의 슝베이 역사학자가 <중추절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이다>라고 <중추절 한반도 기원설>을 주장했었습니다.

사실 <중추절>과 <추석>과 <한가위>는 조금씩 기원의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의 추석의 기원은 중국쪽에서 찾아야 합니다. 


당나라이전 시기에는 중국에서 중추절에 관한 기록이 전무하고, 당나라 중기 말기 시대의 기록인 <초학기>에도 8월 중에 있었던 <중추절>에 관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슝베이가 중추절은 "신라의 것으로 부터 이다"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9세기 중엽에 일본의 승려인 <엔닌>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라는 순례기에 의해서 입니다. <입당구법순례행기>는 9세기의 동아시아의 경제/문화/교통에 관한 중요한 사료입니다.

엔닌이 활동하는 시기는 <장보고>가 청해진에 터를 잡고 3국의 해상을 관할하고 있는 시기와 일치합니다. 엔닌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귀국할때 장보고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귀국하고 있음을 그의 순례행기에 알 수 있습니다. 이전에 드라마로 제작된 <해상왕장보고>도 이 사료를 참고했다고 합니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 5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동안 길삼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
다.


옛날 가위를 보면 화려하기도 합니다. 일본 국보급 유물들이 있는 <정창원>에서 보관중이 신라시기 금동가위나 신라의 무덤이나 안압지에서 출토된 금동초심지가위, 백제의 무덤에서 나온 가위를 보면 요즘 보는 가위랑 다르게 자르는 곳이 반달모양(송편)입니다.

두개의 면이 하나로 합쳐지면 영락없는 완전한 둥근달 모양이 되기도 합니다.  서로 따로 만든 반달모양의 송편이 나중에 두편이 하나로 합친 모양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면 궁궐이나 실내장면을 보면 무수히 많은 초불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선덕여왕>에서의 촛불들이 당시의 촛불형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신라시대에 최소한 초를 이용해서 불을 밝혔을 것으로 추측되는 유물이 초심지 가위입니다. 초심지 가위는 백제, 신라, 일본에서도 발견됩니다. 
 

조직을 양편으로 나누어 서로 견재를 하여 대결, 화랑이전 원화제도에도 나타납니다. 2명의 공주급 여자를 대표자로 세워 그아래 원화들과 화랑들을 지휘통제하는 역활을 합니다. 한가위의 길삼놀이는 한시적인 행사이고 원화는 상설적인 조직이니 원화들이 한가위때 길삼 놀이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원화의 기원이 이전 유리왕때의 양편으로 나뉘어 길삼놀이던 하던 조직이 상설조직화 되어 원화제도가 되었을 겁니다. 

다만, 원화제도는 원화인 남모와 준정의 다툼으로 540년 진흥왕 원년에 폐지되고, 화랑 풍월주 제도가 생겼다고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말하고 있습니다. 화랑세기에는 남모를 법흥왕과 백제의 보과공주의 소생으로 나옵니다. 서현이 만명과 사랑의 도피를 하듯이 백제 보과공주는 법흥(원종)을 사랑하여 신라로 사랑을 찾아 도피해 옵니다.

어찌되었던, 삼국사기의 초기 편년이 많은 의심을 받고 있지만 이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엔닌이 있는 시기와는 800년의 차이가 나지만 이를 지속적인 행사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엔닌의 (839년)기록에 의하면 발해와의 전쟁에 이겨서 8월15일 행사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발해는 698년 에서 926년 까지의 국가이고, 대진국에서 발해라 명한 때는 713년 대조영때이니 신라 성덕왕때 입니다. 발해와 신라의 전쟁기록은 유일하게 733년 겨울 전쟁기사 입니다. 
 

하지만 엔닌이 신라노인의 말을 빌어 기록한 발해와 신라의 전쟁의 승전기록에 대한 문제점은 신라 성덕왕 32년(733년) 가을 7월 발해가 등주를 치자 발해의 배후에 있던 신라에 당의 현종이 발해를 쳐줄 것을 요구하고, 그해 겨울 신라가 발해의 남쪽 경계를 침입하였으나 눈이 많이 내려 수 많은 인명피해만 입고, 철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발해와의 전쟁승전기념일은 될 수 없고 기록과 상호 모순이 되어 채택될 수 없습니다.
 


가끔 신라에 등장하는 말갈이란 표현은 대체적으로 고구려와 말갈을 혼용하여 표기되는바 발해말갈 고구려/말갈을 혼동할 개연성은 다분히 있습니다. 

<구당서>나 <신당서>에 의하면 "신라는 8월 15일이 되면, 왕앞에서 활쏘기, 승마를 하고 , 술과 음식을 나눠먹는다"고 합니다.  

SBS 사극 <연개소문>에서도 고구려가 신라의 <북한산성>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공교롭게도 603년 음력 8월이고, 진평왕이 직접 북한산성에 진주하여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왕이 직접 전장에 나아가서 싸우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당시 수와 전쟁에서 이긴 동북아의 패자 고구려를 신라 왕이 직접 통솔하여 물리 쳤다고 하는 의미에서 신라에게는 대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랑세기에는 이때의 전쟁을 한수전쟁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용춘과 비보랑 등 화랑들과 용춘의 부하이며 장인인 대남보가 한수전쟁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웁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진평왕을 허수아비 왕으로 그리고 있지만, 실제의 진평왕은 백제와 고구려에 공세적인 자세를 취하고 <한수전쟁>처럼 직접 군을 이끌고 전쟁에도 참전하는 <전쟁영웅>입니다. 억지로 <미실>을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서 전쟁영웅인 진평왕을 허수아비로 만든거지요. 실지로 덕만이 왕이 될수 있었던 이유도 <진평왕>의 절대적인 힘에 의해서 입니다.

어찌되었던, 연개소문에서는 나오지 말아야할 유신이 등장한다는 겁니다. 유신은 595년생이고 한수전쟁은 603년이다. 유신의 나이 9살이 된때가 된다. 유신이 아무리 전쟁광(?)이던 전쟁의신(?)이던 등장할 수 없는 거지요.

KBS <대조영>이나 그전에 MBC에서 정통역사물과 반동북공정을 기치로 내걸어 국민사극으로 각광을 받은 <주몽>에서도 역사적인 기록과 부합되지 않는 장면을 너무 남발해서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역사를 희화화 했다고 지탄을 받고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과 하등 다를것이 없다고 지적된 적도 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고구려가 멸망한 시기가 공교롭게도 668년 가을이니 한가위는 이를 기념했을 수도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시기는 추수철이 지난 늦가을인 경우가 많은데 추수철이 지난 가을에 물리쳤다면 먹거리도 많은 시기이니 잔치를 벌이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요.

이전 가베(길삼)과 승전일들이 겹치는 겹경사가 이니 더욱더 풍성한 명절 한가위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현재 8월15일은 광복절이고, 신라에게는 음력 8월 15일이 승전기념일이란 공통점도 있습니다. 

2006년 중국 역사학자 슝베이의 발언으로 촉발된 중추절 <한반도기원설> 주장은 중국내 네티즌의 반발과 포털업체의 발빠른 대응으로 중추절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하고자 하는 네티즌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전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여 한국은 고구려학을 국가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역사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거리때문에 상고시대 고구려를 연구하는 학자가 한국내에는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극히 드문 경우 였지만, 이를 기화로 고구려에 대한 연구과 활발하고 한국과 북한간의 학문적 교류가 활성화 되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오월 강릉단오제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을 시도할때 중국에서는 이를 정부차원에서 발발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사실 대부분 민속에 관한 경우 중국으로 부터 수입된것이 많습니다. 단오도 중국으로 부터 건너온 것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단오제를 한국에서 유네스코에 등록을 시도하는 것은 중국인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것일 겁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시도하여 고조선에서부터 고구려,발해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을 시도하고 해당 왕조를 중국의 지방민족사로 폄하를 하고 있는 데 한국에서는 삼국사기와 유물을 들어 한민족의 역사를 침탈하는 행위로 받아들이고 분노하는 입장과 비슷할것 같습니다.


사실 단오제의 유네스코등록의 이면에는 동북공정에 대한 반발심리도 작용한것이 사실입니다. 강릉단오제를 유네스코에 등록하려는 것은 '단오'라는 풍속을 등록하려는 것이 아니고. '단오제'라는 축제(카니발)를 등록하는 것 입니다. 조금 미묘한 차이가 있기는 있습니다.

결론은 추석과 다르게 중추절은 신라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며, 이는 신라가 고구려와 전쟁에서 승전한 것을 기념한 승전기념일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현재 중국의 중추절은 신라로 부터 수입된것이 됩니다. 정확히는 대당신라인에 의해서 라는 단서가 붙지만 말입니다.

즐겁고 풍성하며 따스한 추석명절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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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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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dunpil.joins.com BlogIcon 둔필승총 2010.09.21 09: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잘 몰랐던 역사공부 덕분에 잘 하고 갑니다.~~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3. Favicon of https://muznak.tistory.com BlogIcon 머 걍 2010.09.21 09: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전 죄다 첨 들어보는 내용이네요.
    마음 넉넉한 한가위 보내세요,갓쉰동님^^

  4. Favicon of http://lowr.tistory.com BlogIcon White Rain 2010.09.21 1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 생각해요.
    그 축제, 그 행사 속에 그 나라만의 문화가 스며들기 마련이니까요.
    누가 원조네 아니네..하는 건 자기 만족에 불과한 듯해요.

    참..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세요.

  5. Favicon of https://ilovemytree.tistory.com BlogIcon 걸어서 하늘까지 2010.09.21 11: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풍성하고 즐거운 추석 한가위 되세요^^

  6. Favicon of https://jsapark.tistory.com BlogIcon 탐진강 2010.09.21 1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에서 시작된 것이 중추절이군요

    역사에 대하여 아는 게 중요하지요

    추석 잘 보내세요

  7. Favicon of https://gamjastar.tistory.com BlogIcon 또웃음 2010.09.21 17: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공부 하고 갑니다.
    갓쉰동님 비가 많이 오네요.
    비 피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8. BlogIcon Masdar 2011.09.04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털 블로그는 전반적으로 가볍고 일상적이며, 사진 위주의 콘텐츠가 주를 이룬 반면, 티스토리와 같은 자유도 높은 블로그에는 심층적이고 전문적이며 텍스트 위주의 콘텐츠가 담기는 경향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9. Favicon of http://www.thetotaloffice.biz/ BlogIcon Dubai furniture 2011.09.04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반적으로 후보들이 다루는 주제의 범위가 넓어진 점은 긍정적이다. 아쉬운 점은 마케팅 콘텐츠가 등장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점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콘텐츠의 퀄리트 측면에서도 1~2년 전에 비교해 더 깊고 전.

  10. BlogIcon office chairs 2011.09.04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적인 후보군들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아쉬움을 남긴다. 블로그가 한단계 더 성장하기 위한 새로운 기회 마련이 시급해보인다.

  11. Favicon of http://joesbasement.com BlogIcon 조용형 2012.01.01 0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12. Favicon of http://faultytowers.greece-greece.com BlogIcon Ashlyn 2012.04.03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아침입니다.

  13. Favicon of http://peppa.is-a-nurse.com BlogIcon 사라 2012.04.05 2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아침입니다.

  14. Favicon of http://colin.is-a-therapist.com BlogIcon 스칼렛 2012.05.08 2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15.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 2012.07.14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

  16. Favicon of http://rocville.com/?p=News BlogIcon Cordie 2012.09.11 1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톨릭과 개신교를 믿는 기독교 계열이 합세한 세력싸움이란 느낌을 저버릴

  17. Favicon of http://jalmadaya.com/blogs/viewstory/2457 BlogIcon radio am fm sw 2012.11.26 2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밴쿠버 올림픽이 끝나고 오서코치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지만 올림픽을 앞둔 1개월전인 2010년 1월말 4대륙 대회 기간중 김연아는 발목부상 중이였다. 발목부상중인 김연아가 빙상연맹과 ISU와 전주시측의 참여 압력에 굴복하여 부상를 치료 못하고 대회에 참여하였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다.

  18. Favicon of http://rxapp.org/blog/view/10935/saving-your-disaster-package-properly BlogIcon survival first aid supplies 2012.12.04 2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해 겨울 신라가 발해의 남쪽 경계를 침입하였으나 눈이 많이 내려 수 많은 인명피해만 입고, 철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9. Favicon of http://rxapp.org/blog/view/10935/saving-your-disaster-package-properly BlogIcon survival first aid supplies 2012.12.04 2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해 겨울 신라가 발해의 남쪽 경계를 침입하였으나 눈이 많이 내려 수 많은 인명피해만 입고, 철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0. Favicon of http://www.bestmattress-reviews.org/adjustable-bed-reviews-reveal-best-brands/ BlogIcon adjustable beds ratings 2013.04.03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해 겨울 신라가 발해의 남쪽 경계를 침입하였으나 눈이 많이 내려 수 많은 인명피해만 입고, 철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추석>은 <중추절>, <한가위(가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추석>과 <중추절>과 <한가위>는 서로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동양 삼국에서도 보기 드문 문화가 되었다. 추석이나 설만 되면 귀성을 하는 것 또한, 대가족이 상존하고 도시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시적인  새로운 현대문화로 변형 되었다.

그런데 앞으로도 귀성행렬이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유는 점점 도시화 되고, 삶의 터전이 도시중심으로 변화되고, 핵가족화되면서 찾아갈 고향도 도시이고, 참여할 가족도 극히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 실례가 귀향행렬이고 지금은 제례용품을 직접 조달하기 보다는 집에서 만들었던 송편까지고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는 형태로 변형되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가배(가베), 한가위, 중추절, 추석이 어떻게 변형되고 서로 다른 이질적인 한가위, 중추절, 추석이 하나의 문화를 정착되었는지 유래부터 알아 보도록 하자.

한가위 유래 (추수감사제와 놀이성격)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 동안 길쌈마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때 조상에 감사하고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오는 화랑의 원형은 <원화>였다. 원화는 유례(유리)왕 시대의 공주급 여성이 2명이 청백으로 나뉘어 편을 갈라 대결을 하듯이 <원화>를 양편으로 나누어 일상적인 제사와 가배(한가위)를 대비하는 상설기구화(?) 된것이다. 이를 화랑으로 통합하고 신라의 귀족사회를 통합하고, 교육는 기관으로 변형된 것이다.

중추절 유래 ( 승전기념일 + 한가위 )
 
<예기>의 <맹추>,<중추>,<계추> 중에서 가을의 한가운데 있는 중추절에서 이름을 빌려왔겠지만, 이름만 중추이고 실제는 신라의 고유의 한가위인 가배를 중국식 작명법에 의해서 기록한것 뿐이다.<중추>와 중추절은 서로 다른다. 단지, 중추란 한자화된 용어의 차용에 불과하고 중추절은 카니발 성격의 축제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슝베이도 중추절은 신라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중추절은 당나라에 유학한 일본의 구법승려 <엔닌의 일기>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서>,<구당서>,<신당서>의 기록에도 신라는 8월15일날 왕앞에서 활쏘고, 말타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한다. 이 당시 중추절은 한가위의 풍습과 전승기념일을 합한 행사가 된다.

이와 관련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9/26 - [역사이야기] - 중국 중추절은 신라 진평왕의 고구려 승전기념일?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진평왕 시기 가배(한가위) 풍속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량(박은빈)은 춘추(유승호)가 선물한 비단과 귀금속들을 가지고, 가배(한가위)에서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써먹겠다고 한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듯 하다.

하지만, 당시 진평왕시기에는 수서, 당서에 따라 낮에는 <한수전쟁>에서 승전을 기념해서, 남성들은 왕앞에서 자신의 무예인 말타기, 활쏘기, 칼싸움 등을 한다. 

왕족이나 귀족 여성들은 비단을 받어서 옷을 만들겠다고 할 수 있다. 편을 나누어 대결중인 여성들간에 한달전부터 준비한 길쌈의 승리한 편이 누가 될까?가 관심사였을 것이다. 김홍도의 풍속화나 신윤복의 단오날 남자들이 여성들이 목욕장면을 훔쳐보듯이 신라시대 한가위(가배)때는 남성들 화랑이나 낭도들 중 누가 이길것인가?에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풍월주 비재는 없었지만, 가배(한가위)배 쟁탈 비재는 충분히 있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추석 유래 [춘조일(春朝日), 추석월(秋夕月)] ( 한가위 + 중추절 + 유교제례 )
 
중추절과 중추는 다른 의미라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형식과 내용면에서 추석은 추석제의 변형이다.

추석은 중국의 유교경전인 <예기>에 천자는 이른봄에 태양에 제사를 지내고, 가을에는 저녁 달에 제사를 지낸다해서 비롯되었다. 동지는 태양이 낮은 고도에서 점차 크게 떠올라 시작을 알리는 시기이고 가을 중추에 뜨는 달이 가장 높이 크게 보이는 시기이기 때문에 <춘조일>, <추석월>같은 유래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2009/09/27 - [역사이야기] - 추석, 한가위, 중추절과 차례상의 감춰진 진실찾기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고대의 <추석제>는 민간 백성들은 지낼수 없는 황제나 제왕들만이 지내는 제사였기 때문에 왕실에서만 지냈고 민가에 까지는 널리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유교가 한반도에 유입되던 시기, 집단적인 행사에서 각각의 가정에서 제사를 지내는 때는 이때부터 변형되기 시작했다. 집단적인 조상의 제사와 전쟁기념 축제에서 낮에는 길쌈과 무예대결이 밤에는 제사가 추가 되었고, 왕이나 귀족들이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형태로 변형되기 시작하였고, 추후 각각의 개별 일반백성 가정에서 조상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제사로 확장되었다.

조상은 사라진 차례와 제사

설.추석.제사 차례상차림과 형식이 예를 파괴하다.
  

차례를 지냄에 있어서 상차림에 관한 이야기들이 설왕설래 한다. 그 근거는 <예기>일 수 밖에 없는데 <예기>에는 "제사는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너무 많은 제사를 하지 말고, 겸약하고 겸손하게 지내라"라고 하였다.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조상이 평상시 좋아하던것으로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은 <홍동백서>,<좌포우혜> 등 조상과는 무관한 형식과 절차 만이 남아 있다. 조상이 왼손잡이던 오른손잡이던 상관하지 않고 숫가락을 놓아야 한다. 왼손잡이가 귀신이 되면 갑자기 오른손잡이로 변하나? 또한, 조상이 살아생전 좋아하던 음식과는 전혀 상관하지도 않고 있다.
 
소주를 좋아하면 소주를,  탁주를 좋아하면 탁주를, 양주를 좋아하면 양주를 올리면 되는 것이 아닐까?. 바나나를 좋아하면 바나나, 파인애플이면 어떤가?


제사와 차례(다례)는 다른 것

엄밀히 이야기해서 제사와 차례는 다르다. 하지만 요즘은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특정인을 기념할때는 제사라고 하고, 조상신 전체를 대상으로 할때는 차례라고 하는 듯하고, 상차림과 행사전반을 <차례>라고 구분하는 듯하다. 하지만 옛 조상들은 엄밀하게 구분하여 지낸것 같다.
 
왕실이나 양반들은 조상의 묘에 특별히 제사와 묘를 관리하는 <수묘인>을 두었는데, 이에 필요한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와 <수묘인>의 생활과 음식장만 등 전반적인 묘관리소를  <재실>이라고 불렀다. 왕실에서는 녹을 받은 관리를 두고 왕릉을 보살피고 <전답>에서 나온 물품으로 제사를 치르고 하였다. 
  
제사와 차례를 구분해서 사용하였다고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특별히 제사말고도 차례만을 지낸 기록이 보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차례만 지낸때는 언제일까? <동지다례>라고 해서 동짓날만 다례를 지낸다. 동지에 다례를 지내는 이유는 겨울의 끝이고, 태양이 가장 낮은 곳에서 떠오르는 첫날이며, 실질적인 당해년의 시작과 전년의 끝이다. 그러니 새롭게 시작한다해서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깨끗한 물로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것이 아닐까한다. 산천에 제를 지내는 것은 제왕이 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다례를 검색하다 보면 수천개의 <다례>기록이 나온다.  태종 이방원이 태상왕인 이성계와 차마시기 기록으로 부터 철종때까지 차마시기에 관한 무수한 기록들이 널려있다. 외국사신과 차마시기를 했다. 신하와 차마시기를 했다. 왕이 신하의 집을 방문해서도 차마시기를 즐겼다고 한다. 조선이 불가에서 널리 퍼진 차문화을 억압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또한, <차마시기>가 억불숭유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고 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한다


제사가 차례(다례)가 된 이유? 여인의 한이 보인다.


최소한 손님이 찾아오면 차마시기가 일상사였을 것이다. 요즘 사극을 보면 무조건 손님이 찾아오면 술마시는 것을 그리고 있지만, 술상보다 먼저 차를 대접한다. 그러니 사극에서 안주인이나 노비들에게 "주안상을 내와라" 하는 술마시고 놀자판으로 그리는 것은 고증에서 벗어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자주 목격되는 장면중 여러사람이 모여있으면 차를 마시는 장면이나 다기들이 테이블위에 자주 등장한다. 어찌되었던 조선시대 제사는 손님이 찾아오는 것 만큼 다반사이다. 다반사란 말이 차마시고 밥먹는 만큼이란 상시적이고 일상적인 뜻이다. 그래서 차례란? 제사가 흔함의 자조섞인 말의 변형이 이다.

예전에 종가집이나 어느정도 산다는 집은 1년에 지내는 제사가 수십차례이니 일상의 <차마시기> 만큼 흔하디 흔했다. 차를 내오는 것만큼 그집 안주인에게는 흔한일이고 한번의 제사를 지낼려면 수일은 준비해야 하니 일년중에 50~100일은 제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요즘은 제사가 많이 줄고 단촐해 졌다. 처자들이 종가집 장손이나 일반 적으로 맏아들에 시집을 가려하지 않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사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중에 하나였다. 그렇지 않다면, 제사가 차례가 될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한다. 며느리들의 자조적인 말이거나 종손들의 자조섞인 제사상이 차례상으로 변형 되었을 것이다.
 
또한 제사에 참여해야하는 사람도 차마시기 정도에 지나지 않을 만큼 <일상사> 정도로 치부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않을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르신들이 아랫사람들에게 조상을 손님맞이하는 것처럼 성심과 정갈하게 하라는 뜻일 지도 모른다. 어려운듯 하지만 쉽게 정성으로 지내라는 의미일수도 있다.

왜 차례상에 정종을 올려야 하지? 일제의 잔재?

정종은 단순히 일본의 술 제조업체였다. 맥주하면 OB인 시절도 있었고, 소주하면 <진로>인 시절이 있었던 것 처럼, 청주하면 정종회사를 떠올린것이다. 청주(맑은술)을 올리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미료하면 <미원>이 대명사 인 시절도 있었다. 그러니 술을 올리는데 정종을 올린다는 말은 진로를 올린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잘못사용된 예이다.

그렇다면, 우리내 조상들은 차례상에 어떤 술을 올렸을까? 세종실록에 [조전에 평사시 예식 대로 소주로 지냈다] 라고 한다. 맑은 술을 조상에 진상하고 있다.

소주는 왕이 신하나 외국의 사신이나 대마도 도주에게도 하사품으로 주는 물품중에 하나가 되겠다. 일본의 청주는 조선의 소주가 건너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일반인들은 범접하기 힘든 귀하디 귀한 술이다. 이런 귀하디 귀한 술을 제사에 올리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집안마다 대대로 내려오는 종주(宗酒)가 있었다. 집안 정통주를 빚어서 제사를 지내고, 필요에 의해서 진상을 하기도 하고, 귀한 손님이 오면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일반인들이 청주와 소주를 제사상에 올리는 시점은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일제시대 이후이다. 제사상에 청주(정종)을 올리는 행위가 일제의 잔재라고는 말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잘못된 행태를 일제의 만행으로 모는 것 처럼 안일한 태도는 없다. 외부세력에 의해서 민족의 고유문화가 침탈되는 것에 분노할 이유는 없다. 이는 일본뿐만 아니고 외부 다른 민족을 지배하려는 자가 보이는 보편적인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스스로 고유문화를 없애는게 더욱 나쁘기 때문이다. 토속주.전통주를 없앤 주범은 아이러니하게도 광복후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고난 후 기업형주류 생산업체와 독재정권의 결탁에 의해서 이니 말이다.


명절 증후군을 벗어나고, 없는 부부애도 있게하는 방법

최근에는 많이 변하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명절이나 제사를 준비하는 건 여인들의 몫이였다. 지금도 며느리들이 명절날 시집에 가서 제사상이나 차례상을 차리고 나면, 명절증후군이 생긴다. 이시기를 지나면 부부간에 금이 가는 수가 많고, 이혼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명절은 우리내 어머니이고, 며느리, 누나 동생인 여성들에는 힘들고 힘든 고역이 된다.


추석과 명절이 되면 인터넷에서는 지방 쓰는 방법과 차례상 차리는 법이 검색 순위 상위를 차지한다. 이유는 그만큼 명절날 차례상과 제사에 사용되는 지방쓰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세월은 가고, 문화도 바뀌고 있다.

위에서 추석의 유래부터 차례가 된 이유까지 언급을 했다. 시대에 따라 명절의 내용과 형식이 바뀌고 있다. 남성들이 여성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면, 명절날 스스로 음식이나 설거지 등에 적극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한다. <참여>라는 말을 사용했지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도와주는 행위>는 자신의 일이 아니고 남의 일이기 때문에 사용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명절(제사.차례)는  남의 일이 아닌 남.여구분없이 자신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명절이후 벌어진 명절증후군에서 쉽게 벗어나고 가정이 화목해지는 길이 아닐까 한다. 또한, 문화는 옛것만을 고수하는게 아니다. 시대에 맞게 계승되고, 변형되고 발전되는 것이다.  한쪽은 즐겁고, 다른 한쪽은 준비하느라고 즐겁지 않다면 그건 차라리 없어져야할 구습일 뿐이다. 그러니 현재 남여평등 사회에 맞게 남성들이 스스로 참여하여야 한다. 그래야 즐거운 명절이 되고, 명절증후군이 없고, 가족간에 골이 깊어지지 않고, 이혼하는 가정이 줄어들지 않을까한다. 농담식으로 "밤일을 잘한다"고 아침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따스한 말한마디와 명절날 자발적인 설거지라도 참여한다면, 말은 "사내놈이 무슨 설거지?" 하면서도 아침밥이 달라지고, 없는 <부부애>도 살아나지 않을까 한다.

보름달에는 계수나무와 달토끼가 산다고 합니다.이는 달의 모양을 보고 느끼는 착시일겁니다. 하지만, 어느지역에서는 전갈이라고 하고, 옛 고대에는 태양에 삼족오가 살고 달에는 달토끼보다는 두꺼비가 산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이처럼 달을 볼때 사람마다 지역마다, 현재 자신의 사정에 따라 똑같은 달이 달라 보일 겁니다.

경제 사정이 극히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명절 추석이 즐거운 사람도 있을것이고, 좋아만 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없는 회사사정에 월급을 주어야 하고, 상여금을 더주어야 하는데 못주어 안타까워 하는 분들도 계실것이고, 적은 월급에 명절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명절 보름날 떠오른 달이 한없이 따스하게 보이는 분들도 계실것이고, 반면에 한없이 차갑고, 한숨나오게 하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가고 싶어도 개인사정 때문에 귀경을 포기하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명절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글을 보신분이나 추천해주신 분이나, 댓글을 달아 주시는 분이나, 추천없이 그냥 글만 구독하고 가시는 분이나, 이글에 동의하는 분이나, 동의하지 않는 분이나 모두 마음만은 한가위같이 풍성한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글로서 제글을 보시는 분들께 드리는 추석선물이라고 생각해주셈. ^___^
 
즐거운 추석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귀성하는 분들은 차조심 몸조심 ^___^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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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careernote.co.kr BlogIcon 따뜻한카리스마 2010.09.18 08: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모로 어려운 것이 많은 국면이지만 우리 모두 행복한 추석 명절 보내길 기원해봅니다^^ㅎ

  2. Favicon of http://blog.daum.net/design11111 BlogIcon Yujin 2010.09.18 1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따뜻한 말한마디가 가장 중요한것 같습니다^^ have a good day!!

  3. Favicon of http://3rdrate.tistory.com BlogIcon 울트라솔이 2010.09.19 03: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 에휴 추석이네요!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4.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6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에게는 덕만이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순간이고

  5.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Pussy Tube 2012.07.21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밝힌 코치는 아이스쇼가 끝난 직후에 발표하겠다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동어반복적인 기사를 송고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6. Favicon of http://blogskinny.com/?p=Recent BlogIcon Margo 2012.08.12 1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운데 있는 중추절에서 이름을 빌려왔겠지만, 이름만 중추이고 실제는 신라의 고

  7. Favicon of http://comblank.com/blog/view/16044/what-you-need-to-prepare-a-crisis-food-sou.. BlogIcon emergency first aid 2012.11.26 2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강력한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형벌로서 하였다. 조선에서는 5개의 중형이 있는데 사형에 해당하는 대벽이 있고, 남자의 성기를 짜르는 궁형이 있고, 아킬레스건 처럼 발뒤꿈치 힘줄을 짤라 버리는 월형(비형)이 있고, 코를 베어내는 의형이 있고, 머리에 문신을 하는 자자(묵형)이 있다.

제사와 차례는 엄밀히 이야기해서 조금 차이가 있다. 그러나 추석은 제사였지 차례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설날이나 추석, 한식 등 명절에는 조상에 차례를 지낸다고 한다. 차례를 말할때 한자로 다(茶)례로 쓰고 읽기는 <차례>라고 한다. 차마시는 다도는 같이 차다(茶)를 쓰면서 <다>라고 읽는다. 그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다. 유사한 사례로 수레차(車)를 수레거(車)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37대 선덕왕이후 일년에 여섯 번 5묘에 제사지냈으니, 곧 정월 2일·5일, 5월 5일, 7월 상순, 8월 1일·15일이었다. - 삼국사기 제사 신라

요즘 드라마 <선덕여왕> 때문에 오해가 있는 분을 위해서 신라의 제사기록은 27대 선덕여왕이 아니고, 780년 37대 선덕왕때 일이다. 신라는 1년에 6번의 제사를 지냈는데 그중 8월 15일 한가위 날에도 제사를 지냈다. 일본승려 엔닌의 기록이나 수서의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라에게는 8월 15일은 지금의 광복절 만큼 중요한 날로 기념하고 있다. 추수감사제로 중요한 날이 이날 하필 전승기념일까지 겹쳤다면 겹경사가 아닌가? 만약, 8월15일 광복절이 음력 8월15일이 되었다면 안봐도 DVD가 아닐까한다. 
 
관련글: 전승기념일이다 라는 있는 근거를 2009/09/26 - [역사이야기] - 중국 중추절은 신라 진평왕의 고구려 승전기념일? 글에서 <삼국사기>를 근거로 중추절은 진평왕의 603년 8월 대고구려 북한산성전쟁이나 668년 가을 고구려의 멸망을 기념하는 전승기념일이라고 주장했다.  

엄밀히 이야기해서 제사와 차례는 다르다. 하지만 요즘은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특정인을 기념할때는 제사라고 하고, 조상신 전체를 대상으로 할때는 차례라고 하는 듯하고, 상차림과 행사전반을 <차례>라고 구분하는 듯하다. 하지만 옛 조상들은 엄밀하게 구분하여 지낸것 같다.
 
왕실이나 양반들은 조상의 묘에 특별히 제사와 묘를 관리하는 <수묘인>을 두었는데, 이에 필요한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와 <수묘인>의 생활과 음식장만 등 전반적인 묘관리소를  <재실>이라고 불렀다. 왕실에서는 녹을 받은 관리를 두고 왕릉을 보살피고 <전답>에서 나온 물품으로 제사를 치르고 하였다. 
  
제사와 차례를 구분해서 사용하였다고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특별히 제사말고도 차례만을 지낸 기록이 보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차례만 지낸때는 언제일까? <동지다례>라고 해서 동짓날만 다례를 지낸다. 동지에 다례를 지내는 이유는 겨울의 끝이고, 태양이 가장 낮은 곳에서 떠오르는 첫날이며, 실질적인 당해년의 시작과 전년의 끝이다. 그러니 새롭게 시작한다해서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깨끗한 물로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것이 아닐까한다. 산천에 제를 지내는 것은 제왕이 만이 할수 있는 일이다.

어찌 되었던, 새해의 시작이란 의미가 강하고, 동지때가 되면 먹거리가 떨어질때 이니 하늘맞이로 차릴것은 없으니 차례로 대신한 것이 아닐까? 아니면 벽사의 의미가 강하지 않았을까한다. 민가에서의 <정안수>떠 놓고 하늘에 비는 것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현재까지 알려지기로는 보성의 차밭이 유명하지만 처음 차가 들어와 재배된 시기은 신라시대 말엽이 아닐까 한다. 물론, 차와, 다례예법은 그보다 오래 되었을 것이다. 도교 선의 용도로 사용되어진 차가 불가의 선종과 결합하여 다예가 되고 다도(차도)가 되었다. 그런 많은 사람들은 <차도(다도)>를 산사의 암자에서나 선을 행하면서 먹는 것으로 치부를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차마시는 것을 일상처럼 하고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다례를 검색하다 보면 수천개의 <다례>기록이 나온다.  태종 이방원이 태상왕인 이성계와 차마시기 기록으로 부터 철종때까지 차마시기에 관한 무수한 기록들이 널려있다. 외국사신과 차마시기를 했다. 신하와 차마시기를 했다. 왕이 신하의 집을 방문해서도 차마시기를 즐겼다고 한다. 조선이 불가에서 널리 퍼진 차문화을 억압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또한, <차마시기>가 억불숭유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고 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한다.

제사가 차례로 바뀐 이유?
 

천명과 미실사이에 있는 다기


최소한 손님이 찾아오면 차마시기가 일상사였을 것이다. 요즘 사극을 보면 무조건 손님이 찾아오면 술마시는 것을 그리고 있지만, 술상보다 먼저 차를 대접한다. 그러니 사극에서 안주인이나 노비들에게 "주안상을 내와라" 하는 술마시고 놀자판으로 그리는 것은 고증에서 벗어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자주 목격되는 장면중 여러사람이 모여있으면 차를 마시는 장면이나 다기들이 테이블위에 자주 등장한다. 물론, 당시에는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화려한 칠보채색자기는 등장하면 안되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던 조선시대 제사는 손님이 찾아오는 것 만큼 일상사이다. 그래서 차례란? 제사가 흔함의 자조섞인 말의 변형이 아닐까?

최근에는 많이 변하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명절이나 제사를 준비하는 건 여인들의 몫이였다. 지금도 며느리들이 명절날 시집에 가서 제사상이나 차례상을 차리고 나면 명절증후군이 생긴다. 이시기를 지나면 부부간에 금이 가는 수가 많고, 이혼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명절은 우리내 어머니이고, 며느리, 누나 동생인 여성들에는 힘들고 힘든 고역이 된다.

제사, 차례 상차림


예전에 종가집이나 어느정도 산다는 집은 1년에 지내는 제사가 수십차례이니 일상의 <차마시기> 만큼 흔하디 흔했다. 차를 내오는 것만큼 그집 안주인에게는 흔한일이고 한번의 제사를 지낼려면 수일은 준비해야 하니 일년중에 50~100일은 제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요즘은 제사가 많이 줄고 단촐해 졌다. 처자들이 종가집 장손이나 일반 적으로 맏아들에 시집을 가려하지 않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사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중에 하나였다. 그렇지 않다면, 제사가 차례가 될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한다. 며느리들의 자조적인 말이거나 종손들의 자조섞인 제사상이 차례상으로 변형 되었을 것이다.

 
또한 제사에 참여해야하는 사람도 차마시기 정도에 지나지 않을 만큼 <일상사> 정도로 치부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않을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르신들이 아랫사람들에게 조상을 손님맞이하는 것처럼 성심과 정갈하게 하라는 뜻일 지도 모른다. 어려운듯 하지만 쉽게 정성으로 지내라는 의미일수도 있다.

현재 이글을 올린  포스팅한 기사가도 다음 뷰 사는이야기/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이다. 차례란, 일상다반사<茶飯事>사 처럼 차나 밥먹는 것 만큼 일상적인 일이다. 옛날 여성들에게는 제사가 일상다반사 인것이다.

추석, 한가위, 중추절 처럼 
모든 문화 유래에는 한가지로만 이루워진 것이 없고,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융화되어서 생긴것이니 한가지로 유래를 찾는것은 맞지 않는것 같다. 

위에서 언급을 했지만 시대에 따라 명절의 내용과 형식이 바뀌고 있다. 남성들이 여성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면, 명절날 스스로 음식이나 설거지 등에 적극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한다. 그것이 명절이후 벌어진 명절증후군에서 쉽게 벗어나고 가정이 화목해지는 길이 아닐까 한다.

2009/09/27 - [역사이야기] - 추석, 한가위, 중추절과 차례상의 감춰진 진실찾기
2009/09/26 - [역사이야기] - 중국 중추절은 신라 진평왕의 고구려 승전기념일?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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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전 댓글 더보기
  2. Favicon of http://www.nanjang.go.kr BlogIcon 문화메타블로그 난장 2009.10.01 1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문화메타블로그 난장의 운영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문화메타블로그의 글들 중
    우수한 포스팅을 모아 오픈캐스트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
    갓쉰동님의 글이 우수하여 문화메타블로그 난장 오픈캐스트
    http://opencast.naver.com/NJ555 에 실었습니다.
    우수한 포스팅을 난장에 제공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링크는 블로그로 바로 걸리기 때문에, 트래픽은 바로 이곳으로
    연결됩니다.
    구독하시면, 추후 난장의 좋은 포스팅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갓쉰동님의 글이 또 실릴수도 있겠지요? :)

    난장에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

    * 난장 이야기 추석 특집호를 만들다 보니, 갓쉰동님의 포스팅이 좋아
    두개나 싣게 되었습니다. 영광입니다 :)

  3. 미나 2009.12.18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례는 간단하게 차나 마시면서 지내는 것이랍니다.

  4. Favicon of http://getreadylosangeles.com BlogIcon 김용대 2012.01.01 0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티끌모아 태산

  5. Favicon of http://bikexcapes.com BlogIcon 고명진 2012.01.07 04: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큰 최고야, 당신은 날 계몽있다

  6. Favicon of http://james1950.garmanage.com BlogIcon 사만다 2012.04.04 0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해가 안갑니다.

  7. Favicon of http://edward.is-a-hard-worker.com BlogIcon 새디 2012.04.06 0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8. Favicon of http://hollywood.blogdns.org BlogIcon 줄리아나 2012.05.11 0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은 오해였습니다.

  9.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0.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1.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2.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niches/granny.php BlogIcon check this out 2012.07.14 1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수는 극히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시위를 하였고 경찰들이 폭력진압이였을 뿐이다

  13. Favicon of http://hubshout.com/?As-A-Web-Design-Reseller,-You-Can-Achieve-Great-Things-In.. BlogIcon Neeper 2012.09.29 1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을 초월한다. 한신이 동네 불량배들에게 몹쓸 짓을 다 당하고, 바짓가랑이 밑을 기어가면서도, 인내하듯이 비담도 김서현의 부하들에 죽도록 맞아 가면서 참았다. 하지만, 식탐, 정확히

  14. Favicon of http://marizmonroy.livejournal.com/1764.html BlogIcon n100 respirator protection 2012.11.01 1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왕이 마흔일곱의 나이에 등극했다고 기록하고 있네요. 젊은 나이에 성조황고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

  15. Favicon of http://grasshopperherder.com/business-model-canvas-for-puppies-part-i/ BlogIcon puppy fence panels 2012.11.07 1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적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수많은 새로운 브랜드 이름은 다른 가전 제품과 함께

  16. Favicon of http://www.cheaphelmetsonlineshop.com/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수는 극히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시위를 하였고 경찰들이 폭력진압이였을 뿐이다

  17. Favicon of http://www.cheaphelmetsonlineshop.com/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수는 극히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시위를 하였고 경찰들이 폭력진압이였을 뿐이다

  18. Favicon of http://mackhuise.posterous.com/survival-kits-for-any-situations BlogIcon hurricane survival kit hawaii 2012.12.10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아무리 미국이 광우병내성을 지니고 있더라도 유전적 결함으로 자연발생적으로 발견되어야 하는 광우병소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도축되기전에 소멸되었거나 도축과정에 은폐되거나 검역과정에 통과되어 전세계 식탁에 올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19. Favicon of http://mackhuise.posterous.com/survival-kits-for-any-situations BlogIcon hurricane survival kit hawaii 2012.12.10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아무리 미국이 광우병내성을 지니고 있더라도 유전적 결함으로 자연발생적으로 발견되어야 하는 광우병소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도축되기전에 소멸되었거나 도축과정에 은폐되거나 검역과정에 통과되어 전세계 식탁에 올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20. Favicon of http://twokittiesandapuppy.blogspot.com/2008/07/pet-rentals.html BlogIcon portable dog fence for camping 2012.12.22 2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야 하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다. 단지, 광우병소의 총노출수와 환자수 만을 알 수 있다. 이를 기준으

우리의 명절중 중국에서 비롯된것들이 많은데 추석이나, 중추절도 중국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중추절과 추석은 별도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이런 와중에 중국의 슝베이 역사학자가 <중추절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이다>라고 <중추절 한반도 기원설>을 주장하였습니다.

사실 <중추절>과 <추석>과 <한가위>는 조금씩 기원의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의 추석의 기원은 중국쪽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에 관한 포스트는 한가위 맞이 시리즈 글로 올리려고 한다.

당나라이전 시기에는 중국에서 중추절에 관한 기록이 전무하고, 당나라 중기 말기 시대의 기록인 <초학기>에도 8월 중에 있었던 <중추절>에 관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슝베이가 중추절은 "신라의 것으로 부터 이다"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9세기 중엽에 일본의 승려인 <엔닌>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라는 순례기에 의해서 입니다. <입당구법순례행기>는 9세기의 동아시아의 경제/문화/교통에 관한 중요한 사료입니다. 엔닌이 활동하는 시기는 <장보고>가 청해진에 터를 잡고 3국의 해상을 관할하고 있는 시기와 일치합니다. 엔닌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귀국할때 장보고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귀국하고 있음을 그의 순례행기에 알 수 있습니다. 이전에 드라마로 제작된 <해상왕장보고>도 이 사료를 참고했다고 합니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안압지 출토, 금동초심지가위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 5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동안 길삼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옛날 가위를 보면 화려하기도 합니다. 일본 국보급 유물들이 있는 <정창원>에서 보관중이 신라시기 금동가위나 신라의 무덤이나 안압지에서 출토된 금동초심지가위, 백제의 무덤에서 나온 가위를 보면 요즘 보는 가위랑 다르게 자르는 곳이 반달모양(송편)입니다.

두개의 면이 하나로 합쳐지면 영락없는 완전한 둥근달 모양이 되기도 합니다.  서로 따로 만든 반달모양의 송편이 나중에 두편이 하나로 합친 모양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면 궁궐이나 실내장면을 보면 무수히 많은 초불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선덕여왕>에서의 촛불들이 당시의 촛불형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신라시대에 최소한 초를 이용해서 불을 밝혔을 것으로 추측되는 유물이 초심지 가위입니다. 초심지 가위는 백제, 신라, 일본에서도 발견됩니다. 
 

조직을 양편으로 나누어 서로 견재를 하여 대결, 화랑이전 원화제도에도 나타납니다. 2명의 공주급 여자를 대표자로 세워 그아래 원화들과 화랑들을 지휘통제하는 역활을 합니다. 한가위의 길삼놀이는 한시적인 행사이고 원화는 상설적인 조직이니 원화들이 한가위때 길삼 놀이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원화의 기원이 이전 유리왕때의 양편으로 나뉘어 길삼놀이던 하던 조직이 상설조직화 되어 원화제도가 되었을 겁니다. 

다만, 원화제도는 원화인 남모와 준정의 다툼으로 540년 진흥왕 원년에 폐지되고, 화랑 풍월주 제도가 생겼다고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말하고 있습니다. 화랑세기에는 남모를 법흥왕과 백제의 보과공주의 소생으로 나옵니다. 서현이 만명과 사랑의 도피를 하듯이 백제 보과공주는 법흥(원종)을 사랑하여 신라로 사랑을 찾아 도피해 옵니다.

어찌되었던, 삼국사기의 초기 편년이 많은 의심을 받고 있지만 이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엔닌이 있는 시기와는 800년의 차이가 나지만 이를 지속적인 행사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엔닌의 (839년)기록에 의하면 발해와의 전쟁에 이겨서 8월15일 행사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발해는 698년 에서 926년 까지의 국가이고, 대진국에서 발해라 명한 때는 713년 대조영때이니 신라 성덕왕때 입니다. 발해와 신라의 전쟁기록은 유일하게 733년 겨울 전쟁기사 입니다. 
 

하지만 엔닌이 신라노인의 말을 빌어 기록한 발해와 신라의 전쟁의 승전기록에 대한 문제점은 신라 성덕왕 32년(733년) 가을 7월 발해가 등주를 치자 발해의 배후에 있던 신라에 당의 현종이 발해를 쳐줄 것을 요구하고, 그해 겨울 신라가 발해의 남쪽 경계를 침입하였으나 눈이 많이 내려 수 많은 인명피해만 입고, 철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발해와의 전쟁승전기념일은 될 수 없고 기록과 상호 모순이 되어 채택될 수 없습니다.

 가끔 신라에 등장하는 말갈이란 표현은 대체적으로 고구려와 말갈을 혼용하여 표기되는바 발해말갈 고구려/말갈을 혼동할 개연성은 다분히 있습니다. 

<구당서>나 <신당서>에 의하면 "신라는 8월 15일이 되면, 왕앞에서 활쏘기, 승마를 하고 , 술과 음식을 나눠먹는다"고 합니다.  

SBS 사극 <연개소문>에서도 고구려가 신라의 <북한산성>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공교롭게도 603년 음력 8월이고, 진평왕이 직접 북한산성에 진주하여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왕이 직접 전장에 나아가서 싸우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당시 수와 전쟁에서 이긴 동북아의 패자 고구려를 신라 왕이 직접 통솔하여 물리 쳤다고 하는 의미에서 신라에게는 대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랑세기에는 이때의 전쟁을 한수전쟁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용춘과 비보랑 등 화랑들과 용춘의 부하이며 장인인 대남보가 한수전쟁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웁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대남보는 미생의 아들이고 천명을 죽이는 역할이였지만 전혀 기록에 부합하지도 않습니다. 대남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8/12 - [역사이야기] - 천명 죽음, 대남보 천명 쏘고, 선덕여왕 국민 쏘다 기사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진평왕을 허수아비 왕으로 그리고 있지만, 실제의 진평왕은 백제와 고구려에 공세적인 자세를 취하고 <한수전쟁>처럼 직접 군을 이끌고 전쟁에도 참전하는 <전쟁영웅>입니다. 억지로 <미실>을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서 전쟁영웅인 진평왕을 허수아비로 만든거지요. 실지로 덕만이 왕이 될수 있었던 이유도 <진평왕>의 절대적인 힘에 의해서 입니다.

연개소문

어찌되었던, 연개소문에서는 나오지 말아야할 유신이 등장한다는 겁니다. 유신은 595년생이고 한수전쟁은 603년이다. 유신의 나이 9살이 된때가 된다. 유신이 아무리 전쟁광(?)이던 전쟁의신(?)이던 등장할 수 없는 거지요.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한술 더 떠서 8살 유신이 602년 아막성 전투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KBS <대조영>이나 그전에 MBC에서 정통역사물과 반동북공정을 기치로 내걸어 국민사극으로 각광을 받은 <주몽>에서도 역사적인 기록과 부합되지 않는 장면을 너무 남발해서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역사를 희화화 했다고 지탄을 받고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과 하등 다를것이 없다고 지적된적도 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고구려가 멸망한 시기가 공교롭게도 668년 가을이니 한가위는 이를 기념했을 수도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시기는 추수철이 지난 늦가을인 경우가 많은데 추수철이 지난 가을에 물리쳤다면 먹거리도 많은 시기이니 잔치를 벌이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요. 이전 가베(길삼)과 승전일들이 겹치는 겹경사가 이니 더욱더 풍성한 명절 한가위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현재 8월15일은 광복절이고, 신라에게는 음력 8월 15일이 승전기념일이란 공통점도 있습니다. 

2006년 중국 역사학자 슝베이의 발언으로 촉발된 중추절 <한반도기원설> 주장은 중국내 네티즌의 반발과 포털업체의 발빠른 대응으로 중추절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하고자 하는 네티즌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전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여 한국은 고구려학을 국가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역사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거리때문에 상고시대 고구려를 연구하는 학자가 한국내에는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극히 드문 경우 였지만, 이를 기화로 고구려에 대한 연구과 활발하고 한국과 북한간의 학문적 교류가 활성화 되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오월 강릉단오제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을 시도할때 중국에서는 이를 정부차원에서 발발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사실 대부분 민속에 관한 경우 중국으로 부터 수입된것이 많습니다. 단오도 중국으로 부터 건너온 것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단오제를 한국에서 유네스코에 등록을 시도하는 것은 중국인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것일 겁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시도하여 고조선에서부터 고구려,발해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을 시도하고 해당 왕조를 중국의 지방민족사로 폄하를 하고 있는 데 한국에서는 삼국사기와 유물을 들어 한민족의 역사를 침탈하는 행위로 받아들이고 분노하는 입장과 비슷할것 같습니다.


사실 단오제의 유네스코등록의 이면에는 동북공정에 대한 반발심리도 작용한것이 사실입니다. 강릉단오제를 유네스코에 등록하려는 것은 '단오'라는 풍속을 등록하려는 것이 아니고. '단오제'라는 축제(카니발)를 등록하는 것 입니다. 조금 미묘한 차이가 있기는 있습니다.

결론은 추석과 다르게 중추절은 신라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며, 이는 신라가 고구려와 전쟁에서 승전한 것을 기념한 승전기념일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현재 중국의 중추절은 신라로 부터 수입된것이 됩니다. 정확히는 대당신라인에 의해서 라는 단서가 붙지만 말입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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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fmpenter.com BlogIcon 바람나그네 2009.09.26 06: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주말되세요^^

  2. 임현철 2009.09.26 0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배우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3.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9.26 08: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예전에 학교에서 한국 중세사 배울때 교수님께서 얘기해주신 기억이 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역시 갓신동님은 멋져!

  4. Favicon of https://greensol.tistory.com BlogIcon 여행사진가 김기환 2009.09.26 1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흥미로운 가설입니다.
    고대사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데...
    사실 드라마는 거의 안보는 편이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정말 좋아한답니다.

    많은 공부...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6 14: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설 검증은 끝났는데.. 문제는 문무왕때인가 진평왕때를 이르는가는 모르겠음. 668년 문무왕 때일 가능성도 농후하기 때문에 문무왕때의 가능성도 열어 놓았습니당..

  5.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9.26 1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추절이 그런 연유에서 그참...
    추석은 중국 유입이라 하여 한가위로
    부르자 하든때도 있었는데...
    또다른 공부를 하게 하시는군요.
    제가 머리통이 좀 크서 케파가 되니
    갓쉰동님 글 잘 저장해두지 ㅎㅎㅎ
    배우는게 엄청 많습니다. ㅋ
    (물론 공짜지요 ㅎㅎㅎ 대신
    와인사라고 하시면 언제든지 O.K 입니다.)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길 빕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6 14: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가위는 물건너 가고 추석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다음 포스팅은 추석에 관한 글로.. ㅋㅋ

      제가 술을 못먹음.. ㅠ.ㅠ. 안타깝게도용..ㅠ.ㅠ

      주말이네용.. 즐거운 주말 보내셈..

  6. ㅇㅅㅇ 2009.09.26 1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의 단오, 중국의 그것과 다른 겁니다.
    이름만 같고 기원이 다릅니다.
    본래 수릿날이란 이름으로 불리웠습니다.

  7. Favicon of https://jsapark.tistory.com BlogIcon 탐진강 2009.09.26 2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훌륭하게 정리를 해주셨군요.
    멋진 글 잘 봤습니다.
    좋은 주말되세요.

    ps; 200만 돌파를 했군요.
    축하드립니다.

  8. Favicon of http:// bldg.daum.net / uri - modu BlogIcon 시림, 김 재덕 2009.09.27 0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l^*...............
    벼 베는 초생달
    송편 담는 쟁반달
    가져담는 사랑 손길
    한가위 저~달처럼

    사랑으로...
    기다림에

  9. 그레이트코리아 2009.09.27 17: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습니다. 매우 훌륭한 증명이며 , 자료입니다.


    이글 보고 반발하는 중국계사람들의 댓글이 보이네요.


    중공은 과거나 현재나 남의나라 역사,문화,유물을 왜곡하고, 기록하는데 주안점을 뒀죠.

    현재의 중공이 공정이란 미명하에 하는 작태를 봐도 충분히 알수가 있죠.

    중공인들이 바보가 된 이유가. 자신들의 역사와,문화는 주변국에서 영향을 받앗다는건 순전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다른나라에 자신들이 전파시켰다고 하느 순 거짓말만 교육받는게 중공의 역사교육입니다.


    사마천의 사기란 것도 역사의 진실에 거짓을 주객을 전도하여 버무린 거짓 역사기록일 정도니깐요.
    -일본사학자.오향청언-

    만주원류고,송막기문,금사.대금국지 ..등등에서도 금,.후금(청나라)가 명백히 한민족의 역사임에도
    자국사라고 거짓말하는게 중공이고, 몽골이 버젓히 있는데도 원나라 징기스칸이 자국사라고 하는 것들이 중공인들의 사고입니다.

  10. esbi 2009.09.28 0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의 글들을 모두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작성하는데에 시간과 노력이 참 많이 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하지만 님의 글들에는 님의 가설과 학계에서 인정되는 통설이 한데 섞여 약간은 혼란스럽군요. 이를 구분하여 기술하셨더라면 더욱 훌륭한 포스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님께서는 '증명' 하였다고 하여 '~~으로 증명되었다' 혹은 '~~이다' 라고 단정적인 표현을 쓰시는데, 이보다는 완곡한 표현을 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사실 '증명'이라고 할 수도 있을 만한 엄밀한 '추론'도 있습니다만 (특히 모란의 도입시기는 매우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은 '추측'도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칠숙이 왕족으로서 왕위계승 상위권자였다는 것 등).
    님의 노력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나, 님 가설의 설득력은 님의 단정적 어법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 의해서 평가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어찌되었건 님의 글 덕분에 인터넷 서핑이 즐겁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8 07: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물론 그렇지요..되도록이면 확정적으로 쓰지 않을 려고 하는 편인데.. 그런 면이 보였나 봅니당.. 물론, 독자에 의해서 평가될수도 있지만, 저는 독자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 편이라서요.. ㅋㅋ 제가 한 회의주의자 거든요.. 그래서 역사를 취미로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요..

  11. 우리나라 역사는 2009.09.29 1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어디로 증발한 것일까요?
    중국에 남은 증거, 일본에 사라져버린 증거,
    심지어는 우리나라 사가의 손에서 중국사대주의에 의해 쓰여진 증거들 뿐.

    "우리의 역사를 왜곡되게, 아름답게 꾸미고자 함이 아니라 "
    우리의 존재 자체를 증명하고자
    처절하게 남은 역사를 추론하고 유물을 뒤지고...

    저는 솔직히 국사라는 과목을 머리아파했지만,
    중국이던 일본이던 가끔 한국을 모욕할때마다
    님처럼 역사적 지식이 해박했더라면
    나서서 이러저러한 증거로 너희들 말은 틀리다..라고 당당히 말해보고 싶을때가 많습니다.
    다만, 지식이 얕은 것이 부끄럽고 한스러울 뿐이죠.

    그런 의미에서 갓쉰동님처럼 해박한 역사지식이 마냥 부러울뿐입니다.

    우리 후손들이 우리나라를 당당해하지는 못해도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존감이 없는 나라야말로 암울한 나라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님의 글을 잘 읽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9 12: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근에 마한(전북)지역에 발굴이 있었지요.. 그것에서 사국 교류에 관한 유물들이 대량 출토되었답니다..

      저야 4세기이후까지도 마한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존 발견이라고 생각합니다..

  12.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check this out 2012.07.14 14: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이 진평왕의 맏딸이고, 천명이 두번째 딸이

  13. Favicon of http://www.glowtrend.com/apps/developer/ BlogIcon social site 2012.09.11 1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종적인 고시를 함에 있서서 실질적인 재협상에 준하는 협상을 했다는 김종훈에 따르더라도 협상을 하였다면 행정절차법에

  14. Favicon of http://hubshout.com/ BlogIcon Gennie 2012.09.29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라고 묻는다. 이대목에서 떠오르는 장면은 덕만이 사막에서 생과 사를 선택하는 것으로 죽음의 처지에 처하게 된다. 이때 덕만은 장기알을 먹어 버려 죽음에서 벗어난

  15. Favicon of http://www.loveofflute.com/blogs/viewstory/11934 BlogIcon military mre 2012.11.26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언제부터 피겨가 정확히 채점하는 스포츠였나? 항상 일본의 눈치를 보고, 유럽과 미국의 눈치를 보는 스포츠 강대국의 놀음에 지나지 않았다. 피겨 변방국 출신의 미천한 나라에서 온 김연아가 자신들이 구축해 놓은 이너서클에 들어와 물을 흐려놓았다고 생각하고 있는게 현재의 피겨이다.

  16. Favicon of http://www.neighborhoodspecialistcouncil.com/2012/04/disaster-success-kits-for.. BlogIcon dried kidney beans how to cook 2012.12.06 2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중추절>과 <추석>과 <한가위>는 조금씩 기원의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의 추석의 기원은 중국쪽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에 관한 포스트는 한가위 맞이 시리즈 글로 올리려고 한다.

우리민족 고유의 가장 큰 3대 명절(설,대보름,추석)인 추석을 "추석은 우리것이 아니(였)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로 부터 돌이 날라올지도 모르겠다.

설마 추석이 우리것이 아니라니 좋은밥 먹고 헛소리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이다. 그리고 추석의 유래에 대해서 장황설을 늘여놓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나 추석의 유래를 보면 우리것이 아닌것을 설령 우리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우리의 문화에 깊숙히 스며들었으니 우리 민족의 고유의 명절이 된것이 아닌가 이야기를 할것이다.

당연히 현재의 <추석>은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겠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는 없는 특이한 제례문화이다.

 
하지만 정확한 유래를 알고 있는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추석>은 <중추절>, <한가위(가베)>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추석>과 <중추절>과 <한가위>는 서로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1번째, 한가위 유래 (추수감사제와 놀이성격)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 동안 길삼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때 조상에 감사하고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2번째, 중추절 유래 ( 승전기념일 + 한가위 )
 
<예기>의 <맹추>,<중추>,<계추> 중에서 가을의 한가운데 있는 중추절에서 이름을 빌려왔겠지만, 이름만 중추이고 실제는 신라의 고유의 한가위인 가베를 중국식 작명법에 의해서 기록한것 뿐이다.<중추>와 중추절은 서로 다른다. 단지, 중추란 한자화된 용어의 차용에 불과하고 중추절은 카니발 성격의 축제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슝베이도 중추절은 신라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중추절은 당나라에 유학한 일본의 구법승려 <엔닌의 일기>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서>,<구당서>,<신당서>의 기록에도 신라는 8월15일날 왕앞에서 활쏘고, 말타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한다. 이 당시 중추절은 한가위의 풍습과 전승기념일을 합한 행사가 된다.
 
전승기념일이다 라는 있는 근거를 2009/09/26 - [역사이야기] - 중국 중추절은 신라 진평왕의 고구려 승전기념일?  글에서 <삼국사기>를 근거로 중추절은 진평왕의 603년 8월 대고구려 북한산성전쟁이나 668년 가을 고구려의 멸망을 기념하는 전승기념일이라고 주장했다.    

SBS 사극 <연개소문>에서도 고구려가 신라의 <북한산성>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공교롭게도 603년 음력 8월이고, 진평왕이 직접 북한산성에 진주하여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왕이 직접 전장에 나아가서 싸우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당시 수와 전쟁에서 이긴 동북아의 패자 고구려를 신라 왕이 직접 통솔하여 물리 쳤다고 하는 의미에서 신라에게는 대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삼한일통을 한시기도 668년 가을이다.  이때의 승리를 기념해서 축제를 벌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까지 신라로써는 한가위와 전승기념일이 충첩된 날이니 즐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3번째, 추석 유래 [춘조일(春朝日), 추석월(秋夕月)] ( 한가위 + 중추절 + 유교제례 )
 
위에 중추절과 중추는 다른 의미라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형식과 내용면에서 추석은 추석제의 미미한 변형이다.
 
네이버 통합검색 화면에는 다음과 같이 추석관련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추석의 유래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네이버 추석의 유래 초춘일, 추석월? 실제는 춘조일, 추석월


추석은 중국의 유교경전인 <예기>에 천자는 이른봄에 태양에 제사를 지내고, 가을에는 저녁 달에 제사를 지낸다해서 비롯되었다. 동지는 태양이 낮은 고도에서 점차 크게 떠올라 시작을 알리는 시기이고 가을 중추에 뜨는 달이 가장 높이 크게 보이는 시기이기 때문에 <춘조일>, <추석월>같은 유래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예전 <네이버> 백과사전(두산백과사전)에서 <추석>의 유래를 검색하면 <예기>의 <조춘일>,<추석월>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달처럼 해처럼 번쩍이는 레슬러 <조춘>선생을 기념하는 날도 아니고 실제는 <춘조일>의 오기이다. 글쓴이도 오랫동안 관심이 없어서 무관심하게 지나갔지만 <조춘일>, <추석월>인줄 알았다. 그래서 추석에 관한 여러가지 자료를 조사할일이 있어서 이곳 저곳 찾다보니 <조춘일>이 <춘조일>의 오기라는 것을 알았다. 
 
네이버에 올려진 백과사전이 잘못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알고 오래전에 수정할려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솔거가 진흥왕때 사람? 천만에


이유는 예전에 솔거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솔거의 활동시기가 <진흥왕>시기(540년이후)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꼼꼼히 솔거는 <진흥왕>시기 사람이 아니고, 신라의 황금기인 경덕왕(8세기)때 활동한 사람이며, 솔거의 작품인 황룡사 <노송도>와 단속사 <유마상도>, 분황사 <천수관음보살도> 등 잘못이 있으니 수정하였으면 한다고 자세하게 논거를 제시하여 보냈지만 근 한달이 지난후에 솔거관련 기록들은 수정도 하지 않은체 <솔거>라는 항목만 수정을 하고 고맙다는 말도 없었다. 
 
솔거 관련글을 자세히 보실려면   2009/08/02 - [역사이야기] - 덕만에서 솔거까지 역사상식을 깬다
글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현재 추석은 3가지의 유래중에서 어디에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추석의 유래 중 <예기>를 인용하지 않고 있다. 있는 사실을 감추고 유래를 단지 국내에서 찾으려는 또다른 역사왜곡 사례이다.
 
<한가위>나 <중추절>의 행사와 놀이문화는 잊혀지고 단지, 제사(차례)의식만이 남아 있다. 그리고 <한가위>라는 말을 쓰기는 하지만 <추석>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또한 추석이 민족의 3대명절인 <설>,<단오>,<추석>에 진입한 시기를 보면 조선시대 중종?이후 일이다. 
  
조선시대의 추석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추석에 관한 기록은 모두 왕이 조상에 대한 제사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조에 보면 아침에 추석제를 지낸후 저녁 밤늦게까지 대신들과 왕족들을 불러 술마시고, 흥겹게 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연산군때에도 추석제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연산군은 자신의 친모인 <윤씨>에게 추석제사를 지내려하나 신하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하지만 효자였던 연산군은 신하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윤씨>의 사당을 세우고 추석제사를 강행한다.

<추석제>를 지낸것은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신라 종묘의 제도에 <추석제>가 있었다고 흔적이 있다. 

37대 선덕왕이후 일년에 여섯 번 5묘에 제사지냈으니, 곧 정월 2일·5일, 5월 5일, 7월 상순, 8월 1일·15일이었다.

그러니 삼국시대부터 신라왕실에서는 추석제사를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추석제를 지키는 것은 김춘추가 당에 구원요청하고 신라의 관제와 복식을 당나라식으로 바꾼 이후부터 일것으로 추측된다. 이때 지낸 제사의 형식은 <유교>형식의 제사일것 이다.
 
또한,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백제 편에 책부원귀를 인용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백제는 매년 네 철의 가운뎃 달[四仲之月]에 왕이 하늘과 오제(五帝)의 신에게 제사지냈다. 그 시조 구태(仇台)의 묘(廟)를 나라의 도성에 세우고 일년에 네 번 제사지냈다.』

고대의 <추석제>는 민간 백성들은 지낼수 없는 황제나 제왕들만이 지내는 제사였기 때문에 왕실에서만 지냈고 민가에 까지는 널리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추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추석제는 기회가 된다면 따로 글을 쓰도록 하겠다. 
  
조상은 사라진 차례와 제사, 르레상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추석 차례상


차례를 지냄에 있어서 상차림에 관한 이야기들이 설왕설래 한다. 그 근거는 <예기>일 수 밖에 없는데 <예기>을 보면 제사는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너무 많은 제사를 하지 말고, 겸약하고 겸손하게 지내라"라고 하였다.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조상이 평상시 좋아하던것으로 하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홍동백서>,<좌포우혜> 등 조상과는 무관한 형식과 절차 만이 남아 있다. 조상이 왼손잡이던 오른손잡이던 상관하지 않고 숫가락을 놓아야 한다. 왼손잡이가 귀신이 되면 갑자기 오른손잡이로 변하나? 또한, 조상이 살아생전 좋아하던 음식과는 전혀 상관하지도 않고 있다.
 
소주를 좋아하면 소주를,  탁주를 좋아하면 탁주를, 양주를 좋아하면 양주를 올리면 되는 것이 아닐가?. 바나나를 좋아하면 바나나, 파인애애플이면 어떤가?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귀신이 털달린 과일을 좋아라 하지않는다고 해서 죄악시하고, 매운음식과 고추는 귀신을 쫓아내는 벽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해서 고추가루가 들어가지 않는 음식으로 올려야 한다.
 
실제로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임진왜란 전후라고 전해진다. 유입경로는 명/청이나 일본 양쪽으로 어느쪽이 앞선 시기인지는 아직 확실치는 않다. 조상이 매운음식을 즐기던 즐기지 않던 상관없이 귀신은 고추가루 싫어한다는 믿기지도 않는 낭설에 따라야 한다. 만약, 예기를 만들기 이전에 고추가루가 있었다면 당연히 고추가루가 들어간 음식이 제사상에 올려졌을 지도 모른다. 과일중에 붉은색 과일을 올리는 것을 보면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제사나 차례의 주체인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과 조상은 사라지고  단지 제사 형식에 치우치고 있다. 제사 형식과 차례를 규정한 <예기>는 조상이 평상시 좋아라 하는것으로 하라고 했는데도 말이다. 제사나 차례도 중세유럽의 <르레상스>운동처럼 본류를 찾는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시대에 따라 민속도, 명절도, 내용도 달라져야.. 
 
현재의 추석은 과거 우리가 알고 있는 한가위나 중추절과 다른 의미이고 <추석>,<한가위>,<중추절>은 서로 믹스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뿐이다. 현재의 추석이 다른 어떠한 민족도 하지 않는 아주 특이한 고유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추석이 고래부터 한민족의 고유의 명절이라고 하기에는 내용도 바뀌고 성격도 바뀐 다양한 문화가 접목이 되어 있어서 문제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부처탄신일, 팔관회가 국가의 중대축제였고, 조선시대에는 유교적인 단오, 한식, 추석, 공자탄신일 등이 중대 행사였다. 현재는 단오, 한식 보다는 실제와는 다르지만 예수의 탄신일이라고 알려진 크리스마스가 중대한 명절 풍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먼훗날 크리스마스가 우리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토착화될 때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고유의 민족의 행사라고 모두들 이야기를 할것이다. 그때 무슨 소리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고유의 명절이 아니고 유대교의 선지자중 일인인 예수라는 인물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에서 유래된것이야 그리고 산타크로스는 예수의 탄생과는 전혀 관계없는 북유럽의 신화에서 나온인물이고, 산타와 산타의 붉은 복장은 코카콜라가 자신들의 상품을 선전하기 위해서 만든 허구야 한다면 벼락 맞을 짓인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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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tsori.net BlogIcon Boramirang 2009.09.27 0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류문화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목소리 큰 놈'이 진실로 변하는 시대 같습니다. 우리가 배워왔던 적지않은 역사속 이야기들은 왜곡된 채 생존하고 있고 진실인양 호도되는 부분이 적지않지요. 글 잘 보고 갑니다. ^^

  2. 2009.09.27 0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2009.09.27 0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Favicon of http://kousa.tistory.com BlogIcon 미국얄개 2009.09.27 08: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휴일 되세요.

  5.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9.27 09: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갓쉰동님 말씀처럼 우리것이 아니라 해도
    이미 우리에게 스며진 풍습이니 고유명절이라해도
    무방하지만 정확한 유래를 안다는 것
    나쁠것도 없지만 중요하다는 ㅎㅎㅎ
    요즈음은 많이 바뀌어 생전에 좋아하시는 것도
    상위에 놓더군요 저만해도 ㅎㅎ
    오늘이 어머님 돌아가신지 딱 1 년인데...
    팔순부친이 생전에 좋아하시든 밀크 카라멜을 ....
    그렇죠 먼 후일 크리스마스도 그렇게
    되리라 봅니다.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휴일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7 10: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1주기기 시군요..

      저의집도 아버지께서 살아생전 좋아하던 소주와 담배가 주로 올라갑니당.. 무척 좋아라 하셔서..

      다음 포스트로 차례를 지낼때 어떤 술이 올라갔을까?를 포스팅할까 합니당.. ^___^

  6. 2009.09.27 1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7 1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당. 님의 주장이 당초= 고추라는 말때문에 생긴 오해 같은데요.. 고추는 아메리카가 원산지입니다..
      물론, 고추랑 비슷한 놈이 인도에도 있지만 말이지요.
      시기적으로 맞지 않잖아요.. 설마, 님은 아메리카를 삼국이전시기에 한반도 사람이 발견했다는 주장을 하시는 겁니까? 유의태와 허준은 허구지요.. ㅋㅋ

    • 고추의유래 2009.09.27 1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익숙하지 않다 보니 엉뚱한 곳에 댓글을 달았었네요.
      아래 병신꺼져님 미안합니다. 병신눈에는 병신만 보이는지라..
      ---------------------------------------------------
      여긴 엉뚱한곳에 달았던 글
      비약이 상당히 심하시군요?
      님도 지금 자신의 주장만 맞다고 하는 오류를 범하시는겁니다. ㅋㅋㅋㅋㅋ

      고추가 임진왜란이 전후가 아니라는걸 말씀드린겁니다.

      -----------------------------------------------
      <여긴 추가글>
      한반도 사람이 발견했다라는 주장이 어디에 있나요?
      거슬러 오라간다는것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각설하고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7 12: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삼국시대까지 올라갈수 없다는 말씀을 드린거지요.. 그렇지 않다면 고추의 원산지가 아메리카에서 아시아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고, 그렇지 않다면, 삼국시대 근처에서 아메리카를 발견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건데요..

      제가 그래서 인도고추를 말씀하시는가? 하는 반문을 드린건데요. 그것도 고추로 말을 해야하는가? 하는 겁니다.

      암튼 ㄳ 합니당.. ㅋㅋ

    • 갓쉰동최고 2009.09.29 0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추과에 해당하는 식물이 무조건 아메리카대륙에만 있으라는법은 없죠. 유리의경우도 4세기에 들어오고 동방기독교도 삼국시대에 들어온것을 보면 서역을통해서 고추과의 식물이 들어왔을 가능성은 있지요. 그러나 현재는 아메리카산이 정설이니 연구를 꾸준히 해봐야겠죠.

    • 갓쉰동최고 2009.09.29 0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다고해서 원산지는 바뀌지 않을 듯합니다.
      기후나 풍토만 맞으면 여러곳에서 제배가 가능할테니까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9 08: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사품종은 있었겠지용.. 동방기독교가 삼국시대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설을 알고 있는 것 보니 내공이 상당하시군요.. ㅋㅋ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9 08: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산지도 바귈수 있는게 과학이니.. 좀더 기둘려 봐야지요. 하지만, 현재의 고추는 아메리카.. ㅋㅋ

  7. Favicon of https://greensol.tistory.com BlogIcon 여행사진가 김기환 2009.09.27 11: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8. Favicon of https://jejuin.tistory.com BlogIcon 광제 2009.09.27 13: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관심있게 보고갑니다..
    일요일 잘 보내시구요^^

  9. 우리것은 소중한것 2009.09.27 1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인은

    고구려 300년도 넘게 고구려 식민지배 당했다

    300년이면 문화가 비슷해 지기도 한다.

    그런데

    누구의 것인가? 하는것은 고려가 지금의 중국보다

    잘사는.발전된.우수한 생활문화.문화적 자존심

    지금의 중국보다 고려가 훨씬 발전된 국가였다. (고려도경 검색하면 중국인이 고려방문한 동영상 있음)

    못사는 나라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잘사는 나라를 (고려) 부러워하고. 따라기 마련이다.

    고려시대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중국사람이 한국사람을 따라하는 습성때문에

    이런문제가 발생한것 같다.

    근데 한국사람이면서 중국사람의 주장에 맞다고 박수치는 인간은 뭐냐? 그냥 짱깨 냐?

  10. 우리것은 소중한것 2009.09.27 1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려도경은

    지금의 중국공무원이 고려를 방문하고 기록한 문서이다.

    그러면 지금의 중국이 왜 고구려 방문한 기록 문서는 없냐?

    그 이유는 식민지배 당했기 때문에 방한하는것 자체가 불가능 했고

    식민지 생활했던 지금의 중국인들이

    지배했던 고려사람의 풍습을 많이 배웠을것이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8 07: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댓글로 두개의 답글을 대신할께요..
      저는 대륙사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역사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당.. 이점 양지해주시길 바랍니다..

  11. ksmjdp3569 2009.09.27 16: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만 제가 걱정하는 문제는 우리나라 역사가 많이 왜곡 되어있다는 사실을 기준으로 한다면 님께서 참고하신 자료가 혹시 왜곡되어 있는 자료를 근거로 한것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저의 이런 쓸데없는 걱정은 웬지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삼국시대는 한반도에 없었다 이런얘기를 들었을때 그때 별 개념치 않고 들었는데 기억에 없음 이제와서 중국의 하는일이나 일본이 대한민국 잘되는 꼴을 못보는 형태의 일들을 볼때 우리나라 역사를 새로 정립해야 하는게 아닌지... 하는 엉뚱한 생각을 가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8 07: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쎙요. 제글은 주장하는 바의 원출처는 꼭 밝히는데요...

      님의 생각이 어떠하지는 모르겠으나..저는 삼한이 한반도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보면 머리를 쥐어 박고 싶어용.. 이정도로 정리를 하지요.. ㅋㅋ

  12. Favicon of http://fucking.china.chink BlogIcon 천멸중공 2009.09.27 1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습니다. 매우 훌륭한 증명이며 , 자료입니다.


    이글 보고 반발하는 중국계사람들의 댓글이 보이네요.


    중공은 과거나 현재나 남의나라 역사,문화,유물을 왜곡하고, 기록하는데 주안점을 뒀죠.

    현재의 중공이 공정이란 미명하에 하는 작태를 봐도 충분히 알수가 있죠.

    중공인들이 바보가 된 이유가. 자신들의 역사와,문화는 주변국에서 영향을 받앗다는건 순전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다른나라에 자신들이 전파시켰다고 하느 순 거짓말만 교육받는게 중공의 역사교육입니다.


    사마천의 사기란 것도 역사의 진실에 거짓을 주객을 전도하여 버무린 거짓 역사기록일 정도니깐요.
    -일본사학자.오향청언-

    만주원류고,송막기문,금사.대금국지 ..등등에서도 금,.후금(청나라)가 명백히 한민족의 역사임에도
    자국사라고 거짓말하는게 중공이고, 몽골이 버젓히 있는데도 원나라 징기스칸이 자국사라고 하는 것들이 중공인들의 사고입니다.

  13. Favicon of http://smallstory.tistory.com BlogIcon 윤서아빠세상보기 2009.09.27 17: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역사의 몰랐던 정보를 배우고 가네요.
    주말 마무리 잘 하시고 또 힘찬 한주 맞으시길...

  14. Favicon of http://blog.daum.net/duck52 BlogIcon 기서맘 2009.09.27 2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좋은 자료...너무 쉽게 잘 보고 가네요.
    감사합니다.^^*

  15. Favicon of https://sapzzil.kr BlogIcon sapzzil 2009.09.28 0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그렇군요...잘 배우고 갑니다..^^

  16. Favicon of https://gamjastar.tistory.com BlogIcon 또웃음 2009.09.28 13: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배'가 거기에서 유래되었군요.
    그럼 죄송한데요.
    왜 추석엔 '햅쌀'과 '햇곡식, 햇과일'을 먹을까요?
    추석이 추수 때이니까 그 해에 새로 난 것을 먹는 것일까요? ^^;;;

  17. Favicon of http://www.gobet1x2.com BlogIcon betting tips 2012.09.03 15: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만약 춘추가 대립할 사람을 찾는다면 자신의 아버지라고 생각되는 용수와 용춘과의 대립이 되어야 한다.덕만과 결혼을 유지했다면 덕만의

일반적으로 <추석>은 <중추절>, <한가위(가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추석>과 <중추절>과 <한가위>는 서로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동양 삼국에서도 보기 드문 문화가 되었다. 추석이나 설만 되면 귀성을 하는 것 또한, 대가족이 상존하고 도시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시적인  새로운 현대문화로 변형 되었다.

그런데 앞으로도 귀성행렬이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유는 점점 도시화 되고, 삶의 터전이 도시중심으로 변화되고, 핵가족화되면서 찾아갈 고향도 도시이고, 참여할 가족도 극히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 실례가 귀향행렬이고 지금은 제례용품을 직접 조달하기 보다는 집에서 만들었던 송편까지고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는 형태로 변형되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가배(가베), 한가위, 중추절, 추석이 어떻게 변형되고 서로 다른 이질적인 한가위, 중추절, 추석이 하나의 문화를 정착되었는지 유래부터 알아 보도록 하자.

한가위 유래 (추수감사제와 놀이성격)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 동안 길쌈마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때 조상에 감사하고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오는 화랑의 원형은 <원화>였다. 원화는 유례(유리)왕 시대의 공주급 여성이 2명이 청백으로 나뉘어 편을 갈라 대결을 하듯이 <원화>를 양편으로 나누어 일상적인 제사와 가배(한가위)를 대비하는 상설기구화(?) 된것이다. 이를 화랑으로 통합하고 신라의 귀족사회를 통합하고, 교육는 기관으로 변형된 것이다.

중추절 유래 ( 승전기념일 + 한가위 )
 
<예기>의 <맹추>,<중추>,<계추> 중에서 가을의 한가운데 있는 중추절에서 이름을 빌려왔겠지만, 이름만 중추이고 실제는 신라의 고유의 한가위인 가배를 중국식 작명법에 의해서 기록한것 뿐이다.
<중추>와 중추절은 서로 다른다. 단지, 중추란 한자화된 용어의 차용에 불과하고 중추절은 카니발 성격의 축제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슝베이도 중추절은 신라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중추절은 당나라에 유학한 일본의 구법승려 <엔닌의 일기>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서>,<구당서>,<신당서>의 기록에도 신라는 8월15일날 왕앞에서 활쏘고, 말타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한다. 이 당시 중추절은 한가위의 풍습과 전승기념일을 합한 행사가 된다.

이와 관련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09/09/26 - [역사이야기] - 중국 중추절은 신라 진평왕의 고구려 승전기념일?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진평왕 시기 가배(한가위) 풍속도
 

춘추(유승호)의 선물 받는 보량(박은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보량(박은빈)은 춘추(유승호)가 선물한 비단과 귀금속들을 가지고, 가배(한가위)에서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써먹겠다고 한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듯 하다. 하지만, 당시 진평왕시기에는 수서, 당서에 따라 낮에는 <한수전쟁>에서 승전을 기념해서, 남성들은 왕앞에서 자신의 무예인 말타기, 활쏘기, 칼싸움 등을 한다. 

왕족이나 귀족 여성들은 비단을 받어서 옷을 만들겠다고 할 수 있다. 편을 나누어 대결중인 여성들간에 한달전부터 준비한 길쌈의 승리한 편이 누가 될까?가 관심사였을 것이다. 김홍도의 풍속화나 신윤복의 단오날 남자들이 여성들이 목욕장면을 훔쳐보듯이 신라시대 한가위(가배)때는 남성들 화랑이나 낭도들 중 누가 이길것인가?에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풍월주 비재는 없었지만, 가배(한가위)배 쟁탈 비재는 충분히 있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추석 유래 [춘조일(春朝日), 추석월(秋夕月)] ( 한가위 + 중추절 + 유교제례 )
 
중추절과 중추는 다른 의미라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형식과 내용면에서 추석은 추석제의 변형이다.

추석은 중국의 유교경전인 <예기>에 천자는 이른봄에 태양에 제사를 지내고, 가을에는 저녁 달에 제사를 지낸다해서 비롯되었다. 동지는 태양이 낮은 고도에서 점차 크게 떠올라 시작을 알리는 시기이고 가을 중추에 뜨는 달이 가장 높이 크게 보이는 시기이기 때문에 <춘조일>, <추석월>같은 유래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2009/09/27 - [역사이야기] - 추석, 한가위, 중추절과 차례상의 감춰진 진실찾기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고대의 <추석제>는 민간 백성들은 지낼수 없는 황제나 제왕들만이 지내는 제사였기 때문에 왕실에서만 지냈고 민가에 까지는 널리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유교가 한반도에 유입되던 시기, 집단적인 행사에서 각각의 가정에서 제사를 지내는 때는 이때부터 변형되기 시작했다. 집단적인 조상의 제사와 전쟁기념 축제에서 낮에는 길쌈과 무예대결이 밤에는 제사가 추가 되었고, 왕이나 귀족들이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형태로 변형되기 시작하였고, 추후 각각의 개별 일반백성 가정에서 조상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제사로 확장되었다.

조상은 사라진 차례와 제사

설.추석.제사 차례상차림과 형식이 예를 파괴하다.
  

명절 제사 차례상차림

차례를 지냄에 있어서 상차림에 관한 이야기들이 설왕설래 한다. 그 근거는 <예기>일 수 밖에 없는데 <예기>에는 "제사는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너무 많은 제사를 하지 말고, 겸약하고 겸손하게 지내라"라고 하였다.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조상이 평상시 좋아하던것으로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은 <홍동백서>,<좌포우혜> 등 조상과는 무관한 형식과 절차 만이 남아 있다. 조상이 왼손잡이던 오른손잡이던 상관하지 않고 숫가락을 놓아야 한다. 왼손잡이가 귀신이 되면 갑자기 오른손잡이로 변하나? 또한, 조상이 살아생전 좋아하던 음식과는 전혀 상관하지도 않고 있다.
 
소주를 좋아하면 소주를,  탁주를 좋아하면 탁주를, 양주를 좋아하면 양주를 올리면 되는 것이 아닐까?. 바나나를 좋아하면 바나나, 파인애플이면 어떤가?


제사와 차례(다례)는 다른 것

엄밀히 이야기해서 제사와 차례는 다르다. 하지만 요즘은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특정인을 기념할때는 제사라고 하고, 조상신 전체를 대상으로 할때는 차례라고 하는 듯하고, 상차림과 행사전반을 <차례>라고 구분하는 듯하다. 하지만 옛 조상들은 엄밀하게 구분하여 지낸것 같다.
 
왕실이나 양반들은 조상의 묘에 특별히 제사와 묘를 관리하는 <수묘인>을 두었는데, 이에 필요한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와 <수묘인>의 생활과 음식장만 등 전반적인 묘관리소를  <재실>이라고 불렀다. 왕실에서는 녹을 받은 관리를 두고 왕릉을 보살피고 <전답>에서 나온 물품으로 제사를 치르고 하였다. 
  
제사와 차례를 구분해서 사용하였다고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특별히 제사말고도 차례만을 지낸 기록이 보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차례만 지낸때는 언제일까? <동지다례>라고 해서 동짓날만 다례를 지낸다. 동지에 다례를 지내는 이유는 겨울의 끝이고, 태양이 가장 낮은 곳에서 떠오르는 첫날이며, 실질적인 당해년의 시작과 전년의 끝이다. 그러니 새롭게 시작한다해서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깨끗한 물로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것이 아닐까한다. 산천에 제를 지내는 것은 제왕이 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다례를 검색하다 보면 수천개의 <다례>기록이 나온다.  태종 이방원이 태상왕인 이성계와 차마시기 기록으로 부터 철종때까지 차마시기에 관한 무수한 기록들이 널려있다. 외국사신과 차마시기를 했다. 신하와 차마시기를 했다. 왕이 신하의 집을 방문해서도 차마시기를 즐겼다고 한다. 조선이 불가에서 널리 퍼진 차문화을 억압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또한, <차마시기>가 억불숭유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고 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한다


제사가 차례(다례)가 된 이유? 여인의 한이 보인다.


최소한 손님이 찾아오면 차마시기가 일상사였을 것이다. 요즘 사극을 보면 무조건 손님이 찾아오면 술마시는 것을 그리고 있지만, 술상보다 먼저 차를 대접한다. 그러니 사극에서 안주인이나 노비들에게 "주안상을 내와라" 하는 술마시고 놀자판으로 그리는 것은 고증에서 벗어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자주 목격되는 장면중 여러사람이 모여있으면 차를 마시는 장면이나 다기들이 테이블위에 자주 등장한다. 어찌되었던 조선시대 제사는 손님이 찾아오는 것 만큼 다반사이다. 다반사란 말이 차마시고 밥먹는 만큼이란 상시적이고 일상적인 뜻이다. 그래서 차례란? 제사가 흔함의 자조섞인 말의 변형이 이다.

예전에 종가집이나 어느정도 산다는 집은 1년에 지내는 제사가 수십차례이니 일상의 <차마시기> 만큼 흔하디 흔했다. 차를 내오는 것만큼 그집 안주인에게는 흔한일이고 한번의 제사를 지낼려면 수일은 준비해야 하니 일년중에 50~100일은 제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요즘은 제사가 많이 줄고 단촐해 졌다. 처자들이 종가집 장손이나 일반 적으로 맏아들에 시집을 가려하지 않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사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중에 하나였다. 그렇지 않다면, 제사가 차례가 될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한다. 며느리들의 자조적인 말이거나 종손들의 자조섞인 제사상이 차례상으로 변형 되었을 것이다.
 
또한 제사에 참여해야하는 사람도 차마시기 정도에 지나지 않을 만큼 <일상사> 정도로 치부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않을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르신들이 아랫사람들에게 조상을 손님맞이하는 것처럼 성심과 정갈하게 하라는 뜻일 지도 모른다. 어려운듯 하지만 쉽게 정성으로 지내라는 의미일수도 있다.

왜 차례상에 정종을 올려야 하지? 일제의 잔재?

정종은 단순히 일본의 술 제조업체였다. 맥주하면 OB인 시절도 있었고, 소주하면 <진로>인 시절이 있었던 것 처럼, 청주하면 정종회사를 떠올린것이다. 청주(맑은술)을 올리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미료하면 <미원>이 대명사 인 시절도 있었다. 그러니 술을 올리는데 정종을 올린다는 말은 진로를 올린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잘못사용된 예이다.

그렇다면, 우리내 조상들은 차례상에 어떤 술을 올렸을까? 세종실록에 [조전에 평사시 예식 대로 소주로 지냈다] 라고 한다. 맑은 술을 조상에 진상하고 있다.

소주는 왕이 신하나 외국의 사신이나 대마도 도주에게도 하사품으로 주는 물품중에 하나가 되겠다. 일본의 청주는 조선의 소주가 건너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일반인들은 범접하기 힘든 귀하디 귀한 술이다. 이런 귀하디 귀한 술을 제사에 올리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집안마다 대대로 내려오는 종주(宗酒)가 있었다. 집안 정통주를 빚어서 제사를 지내고, 필요에 의해서 진상을 하기도 하고, 귀한 손님이 오면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일반인들이 청주와 소주를 제사상에 올리는 시점은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일제시대 이후이다. 제사상에 청주(정종)을 올리는 행위가 일제의 잔재라고는 말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잘못된 행태를 일제의 만행으로 모는 것 처럼 안일한 태도는 없다. 외부세력에 의해서 민족의 고유문화가 침탈되는 것에 분노할 이유는 없다. 이는 일본뿐만 아니고 외부 다른 민족을 지배하려는 자가 보이는 보편적인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스스로 고유문화를 없애는게 더욱 나쁘기 때문이다. 토속주.전통주를 없앤 주범은 아이러니하게도 광복후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고난 후 기업형주류 생산업체와 독재정권의 결탁에 의해서 이니 말이다.


명절 증후군을 벗어나고, 없는 부부애도 있게하는 방법

최근에는 많이 변하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명절이나 제사를 준비하는 건 여인들의 몫이였다. 지금도 며느리들이 명절날 시집에 가서 제사상이나 차례상을 차리고 나면, 명절증후군이 생긴다. 이시기를 지나면 부부간에 금이 가는 수가 많고, 이혼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명절은 우리내 어머니이고, 며느리, 누나 동생인 여성들에는 힘들고 힘든 고역이 된다.


추석과 명절이 되면 인터넷에서는 지방 쓰는 방법과 차례상 차리는 법이 검색 순위 상위를 차지한다. 이유는 그만큼 명절날 차례상과 제사에 사용되는 지방쓰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세월은 가고, 문화도 바뀌고 있다.

위에서 추석의 유래부터 차례가 된 이유까지 언급을 했다. 시대에 따라 명절의 내용과 형식이 바뀌고 있다. 남성들이 여성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면, 명절날 스스로 음식이나 설거지 등에 적극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한다. <참여>라는 말을 사용했지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도와주는 행위>는 자신의 일이 아니고 남의 일이기 때문에 사용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명절(제사.차례)는  남의 일이 아닌 남.여구분없이 자신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명절이후 벌어진 명절증후군에서 쉽게 벗어나고 가정이 화목해지는 길이 아닐까 한다. 또한, 문화는 옛것만을 고수하는게 아니다. 시대에 맞게 계승되고, 변형되고 발전되는 것이다.  한쪽은 즐겁고, 다른 한쪽은 준비하느라고 즐겁지 않다면 그건 차라리 없어져야할 구습일 뿐이다. 그러니 현재 남여평등 사회에 맞게 남성들이 스스로 참여하여야 한다. 그래야 즐거운 명절이 되고, 명절증후군이 없고, 가족간에 골이 깊어지지 않고, 이혼하는 가정이 줄어들지 않을까한다. 농담식으로 "밤일을 잘한다"고 아침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따스한 말한마디와 명절날 자발적인 설거지라도 참여한다면, 말은 "사내놈이 무슨 설거지?" 하면서도 아침밥이 달라지고, 없는 <부부애>도 살아나지 않을까 한다.

보름달에는 계수나무와 달토끼가 산다고 합니다.이는 달의 모양을 보고 느끼는 착시일겁니다. 하지만, 어느지역에서는 전갈이라고 하고, 옛 고대에는 태양에 삼족오가 살고 달에는 달토끼보다는 두꺼비가 산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이처럼 달을 볼때 사람마다 지역마다, 현재 자신의 사정에 따라 똑같은 달이 달라 보일 겁니다.

경제 사정이 극히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명절 추석이 즐거운 사람도 있을것이고, 좋아만 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없는 회사사정에 월급을 주어야 하고, 상여금을 더주어야 하는데 못주어 안타까워 하는 분들도 계실것이고, 적은 월급에 명절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명절 보름날 떠오른 달이 한없이 따스하게 보이는 분들도 계실것이고, 반면에 한없이 차갑고, 한숨나오게 하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가고 싶어도 개인사정 때문에 귀경을 포기하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명절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글을 보신분이나 추천해주신 분이나, 댓글을 달아 주시는 분이나, 추천없이 그냥 글만 구독하고 가시는 분이나, 이글에 동의하는 분이나, 동의하지 않는 분이나 모두 마음만은 한가위같이 풍성한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글로서 제글을 보시는 분들께 드리는 추석선물이라고 생각해주셈. ^___^

 
즐거운 추석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귀성하는 분들은 차조심 몸조심 ^___^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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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s://toyvillage.net BlogIcon 라이너스™ 2009.10.01 12: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집니다^^
    잘보고가구요. 즐거운 추석되시길빕니다^^

  3. thfql 2009.10.01 1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례의 차 자가 마시는 차라면.. 그냥 차만 올리고 제사를 지내면 어떨지요? 예전에 부처님한테 상 올릴 때도 차를 올렸다는 걸 들은 것 같은데...먹는 건 집에서 먹던지..싸 가지고 오던지.. 아니면 식 때를 피해서 오던지.. 사실 가서 먹고 오는 것도 어떤 땐 미안하기도 하고 부담스럽다. 그만큼 뭔가 보상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뭘 사 가지고 가야 하거나 돈으로 주거나.. 근데 그걸 받는 사람도 부담스러울 거고.. 가벼운 걸로 사 가면 안될 것 같고..요즘 댓글 보면 만들어 놓고 먹을 사람도 없고 버려야 하나..이런 글도 가끔 올라오던데..잘 사는 분들은 더 맛있는 것 사 먹을 기회도 많으니 먹지도 않을 것 같아.. 보통 사람들은 중간 정도.. 못 사는 사람들은 잘 먹는 날.. 정도?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1 16: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절에서는 부처님에게 제를 올릴때는 술을 먹지 않으니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서 다예(다도)가 발전했겟지만요. 그런데 왜 한국기독교나 불교는 술을 멀리 하라고 할까요? 다들 먹던뎅.. ㅋㅋ 그리고 다그런건 아니지만 고승들 치고 곡차좋아하지 않는분 없더군요.. ㅋㅋ

      요즘은 각자 음식을 나눠서 만들거나 장만하는 경우도 있군요.. 미리 가족간에 상의를 하거나, 모임을 할때 물어보거나요..

      저같은 경우도 미리 물어봅니다. 부족한게 무엇인가. 무얼사가면 될까? 하고요.. 그러면 상대방도 편하고 중복되지 않고 좋더군요.. 가족모임 같은경우도 마찬가지..

      먹거리가 남는 문제가 있기는 합니당. ㅋㅋ 처리 곤란할때도 있고, 저희집은 남은 음식으로 비빔밥. 또는 찌개용으로 사용합니당.

    • Favicon of http://f BlogIcon 갓쉰동 최고 2009.10.01 2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 만해선생같은 분들도 곡차를 좋아하셨죠.
      기독교의 경우 청교도논리를 따른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교히의 경우 청교도는 커녕 이미 충분히 세속화되었죠 사실 제사는 양보다는 정성이죠.

  4. Favicon of http://inbusan.tistory.com/ BlogIcon 낭만인생 2009.10.01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갓쉰동의 놀랍고 세심한 관찰력과 연구의 글이군요..
    멋진 추석, 가베?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01 16: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종합편입니당.. ㅋㅋ 이글을 쓸려고.. 떡밥 기사 3개나 투여했다눈.. ㅠ.ㅠ. 이미 제글을 지속적으로 보신분은 논문 중복개제다 라고 할 정도이지요..그런데도 길어용..ㅠ.ㅠ.

  5. Favicon of https://sapzzil.kr BlogIcon sapzzil 2009.10.01 16: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운 추석 되세요~~

  6. 2009.10.01 1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Favicon of http://waarheid.tistory.com BlogIcon 펨께 2009.10.01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어딜 다녀오느라 방문이 좀 늦은것 같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제사상을 잘 차릴줄 모르지라 그냥 인터넷으로 본적은 있는데...
    좋은 정보인것 같네요.
    풍성한 한가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8. 갓쉰동 최고 2009.10.01 2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절일을 비롯한 가사일들이 여인들의 임무로 변한 것은 조선시대 정도전이 혼례풍습중 장가가는풍습을 지적하고 이후 4대임금인 세종대왕이 자신의 딸인 숙신옹주를 친영례의예로 혼인을시키고나서 장가가는것이 시집가는 것으로 처가살이가 시집살이로 변한 이후부터였습니다. 그이후 여성은 출가외인이라는 이유로 재산분배에서 밀려나고 절정을 지켜야하는 등 부당한 처우를당하고 삼종지도 칠거지악등 맗도 되지않는 법도들이 적용되었죠. 그리고 제사자체는 여러 그림에서들어나듯이 조선 중기까지는 자식을이 돌아가면서 제사를받들었고 남편들도 가사를 담당했던만큼 제사자체에 여성의 한이담김 것이아닌 유교적 이상을 꿈꾼 조선의 남존여비사상에 입각한 여성차별에의한 풍습이 여성들로 하여금 명정에 한을 맺히게 하였다고 할수 있습니다.

  9.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0.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Pussy.Org 2012.07.12 1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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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Favicon of http://artomania.lt BlogIcon artomania 2012.09.10 1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

  14. Favicon of http://www.webistudio.com/proothisi-istoselidon/ BlogIcon proothisi istoselidon 2012.09.11 1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는 것이라면 그래도 존일 같은데요.. 독점출판 계약

  15. Favicon of http://reklamasvarbu.blog.com BlogIcon http://reklamasvarbu.blog.com 2012.09.16 1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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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Favicon of http://www.tutoringhut.com/blog BlogIcon Virtual Classroom mathematics 2012.09.18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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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Favicon of http://www.pvcverticalblinds.co.uk/vertical-blinds-replacement-slats.html BlogIcon Vertical Blinds Replacement Slats 2012.09.20 1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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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20. Favicon of http://nizonty.x10.mx/blogs/viewstory/618 BlogIcon emergency water storage tanks 2012.11.26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조금만 오서의 인터뷰나 메일만 확인해도 오서의 거짓말은 그냥 들통나고 만다. 하지만, 한국의 발기자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이들은 한 발기자가 글을 쓰면 카피앤패스트 밖에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급수가 높은 발기자들은 위치만 위로 아래로 순서만 바꾸어 조절만 한다. 이들에게 분석기사를 바라는 것은 지구가 멸망하는 날이 되어도 오지 않을 것이다.


  21. Favicon of http://www.fb.arjanbongers.nl/blog/view/45519/excellent-guidelines-for-emergen.. BlogIcon post apocalypse survival gear 2012.12.06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 동안 길쌈마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부제 : 광복절, 신라의 전승기념일
진평왕은 미실의 치마폭에 있었을까?

mbc 선덕여왕, 진평왕(조민기)

mbc 사극 선덕여왕에서는 진평왕(조민기)이 미실(고현정)의 치마폭에 휘둘려 나약한 군주로 나온다. 하지만 실제의 역사는 진평왕을 전쟁영웅으로 기록하고 있다. 선덕여왕의 모본으로 삼고 있는 현존하는 화랑세기에도 진평왕이 나약하다는 내용은 없다. 또한, 진평왕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의 침략을 막는 전력을 가지고 있다. <선덕여왕>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예전 sbs 사극 <연개소문>에서는 나오는 내용이다.  선덕여왕은 602년 <아막성>전투를 통해서 신라의 화랑들의 활약상을 보여주었다.
 

알천(이승효)

이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다음 기사를 참조 하시길 바란다.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화랑 신화창조의 성지 아막성, 광개토태왕의 # , 이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뜬 사람은 알천 역을 맡았던 이승효이다. 연개소문에서는 화랑들의 활약상과 더불어 김유신(엄태웅)을 당시 전쟁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물론, 연개소문에서 김유신(595년생)이 603년에 9살로 전쟁이 참여하여 화랑의 무서움을 보여주었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8살로 아막성 전투에 참여하였다. 드라마 연개소문의 기록을 1년 갱신한 신기록이 되시겠다.


용춘(도이성)

그럼, 진평왕이 화랑과 군대를 이끌고 참여한 전쟁은 언제 였을까? 602년 백제의 침입을 막은 전쟁이 아막성 전투였다면, 603년 전쟁은 고구려가 자신들의 한강유역인 구토를 회복하는 전쟁이고, 신라는 지키지 않으면, 교역로를 잃는 신라의 명운이 걸린 전쟁이였다. 삼국사기는 이 전쟁을 북한산성 전쟁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화랑세기는 <한수>전쟁으로 기록하고 있다. 


화랑세기 13세 풍월주인 용춘는 형과 같이 따르던 9세 풍월주인 비보를 따라 603년 한수 전쟁을 참여하고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이때 용춘과 전쟁에 참여하여 공을 세운이가 <선덕여왕>에서는 천명을 독화살로 죽이는 미생의 아들 대남보(류상욱)이다. 

대남보(류상욱)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역사이야기] - '천명', 대남보의 독화살에 죽었다? 사실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시리즈 글을 보지 않는 분을 위해서 간략히 소개하자면, 대남보는 용춘의 심복이며, 그림자 무사였다.

또한, 대남보(류상욱)의 딸은 용춘(도이성)과 관계해서 3명의 자식을 낳고, 그 의 후손인 용태가  춘추와 관계하여 인태각간을 낳는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은 미실과 대척점에 있는 용춘의 충복을 미생(정웅인)의 아들로 만들어, 덕만을 죽이려 하다가 천명을 죽이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남보는 그 아들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도록 타일렀다. 세 아들은 모두 충절을 숭상하였다. 건복(建福) 20년(603) 공과 비보랑이 제(帝)를 좇아 한수(漢水)의 전쟁에 나갔다. 남보에게 공으로 대나마를 주었으나 받지 않았다. -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596~603년

 좀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위의 기사와 이 기사를  [역사이야기] - 천명 죽음, 대남보 천명 쏘고, 선덕여왕 국민 쏘다  참조하기 바란다. 


8월 15일은 광복절, 신라는 전승기념일

그럼 왜 신라는 8월 15일을 전승기념일이라고 기념하였을까? 그 해답은 해상왕 장보고와 동시대에 살고, 장보고와 연관되어 있던 일본의 엔닌이라는 승려가 기록한  <입당구법순례행기>이다.

1. 우리의 명절중 중국에서 비롯된것들이 많은데 중추절도 중국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중추절과 추석은 별도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이런 와중에 중국의 슝베이 역사학자가 <중추절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이다>라고 <중추절 한반도 기원설>을 주장하고 있으니 경청동지할 일이긴 합니다. 
  
사실 <중추절>과 <추석>과 <한가위>는 조금씩 기원의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의 추석의 기원은 중국쪽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들 간에 차이점에 대해서는 한가위를 즈음해서 포스팅 할 예정이다.

당나라 이전 시기에는 중국에서 중추절에 관한 기록이 전무하고, 당나라 중기 말기 시대의 기록인 <초학기>에도 8월 중에 있었던 <중추절>에 관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슝베이가 중추절은 "신라의 것으로 부터 이다"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9세기 중엽에 일본의 승려인 <엔닌>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라는 순례기에 의해서 입니다. <입당구법순례행기>는 9세기의 동아시아의 경제/문화/교통에 관한 중요한 사료입니다.

엔닌이 활동하는 시기는 <장보고>가 청해진에 터를 잡고 3국의 해상을 관할하고 있는 시기와 일치합니다. 엔닌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귀국할때 장보고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귀국하고 있음을 그의 순례행기에 알 수 있습니다.

이전에 드라마로 제작된 <해상왕장보고>도 이 사료를 참고했다고 합니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 5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동안 길삼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안압지출토 금동 초심가위

옛날 가위를 보면 화려하기도 합니다. 일본 국보급 유물들이 있는 <정창원>에서 보관중이 신라시기 금동가위나 신라의 무덤이나 안압지에서 출토된 금동초심지가위, 백제의 무덤에서 나온 가위를 보면 요즘 보는 가위랑 다르게 자르는 곳이 반달모양(송편)입니다. 두개의 면이 하나로 합쳐지면 영락없는 완전한 둥근달 모양이 되기도 합니다.  서로 따로 만든 반달모양의 송편이 나중에 두편이 하나로 합친 모양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조직을 양편으로 나누는 것은 원화제도에도 나타납니다. 2명의 공주급 여자를 대표자로 세워 그아래 원화들과 화랑들을 지휘통제하는 역활을 합니다. 한가위의 길삼놀이는 한시적인 행사이고 원화는 상설적인 조직이니 원화들이 한가위때 길삼 놀이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원화의 기원이 이전 유리왕때의 양편으로 나뉘어 길삼놀이던 하던 조직이 상설조직화 되어 원화제도가 되었을 겁니다. 
 
삼국사기의 초기 편년이 많은 의심을 받고 있지만 이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엔닌이 있는 시기와는 800년의 차이가 나지만 이를 지속적인 행사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엔닌의 (839년)기록에 의하면 발해와의 전쟁에 이겨서 8월15일 행사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발해는 698년 에서 926년 까지의 국가이고, 대진국에서 발해라 명한 때는 713년 대조영때이니 신라 성덕왕때 입니다. 발해와 신라의 전쟁기록은 유일하게 733년 겨울 전쟁기사 입니다.

 
하지만 엔닌이 신라노인의 말을 빌어 기록한 발해와 신라의 전쟁의 승전기록에 대한 문제점은 신라 성덕왕 32년(733년) 가을 7월 발해가 등주를 치자 발해의 배후에 있던 신라에 당의 현종이 발해를 쳐줄 것을 요구하고, 그해 겨울 신라가 발해의 남쪽 경계를 침입하였으나 눈이 많이 내려 수 많은 인명피해만 입고, 철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발해와의 전쟁승전기념일은 될 수 없고 기록과 상호 모순이 되어 채택될 수 없습니다.
 
가끔 신라에 등장하는 말갈이란 표현은 대체적으로 고구려와 말갈을 혼용하여 표기되는바 발해말갈 고구려/말갈을 혼동할 개연성은 다분히 있습니다.
 
<구당서>나 <신당서>에 의하면 신라는 8월 15일이 되면 왕앞에서 활쏘기, 승마를 하고 , 술과 음식을 나눠먹는 다고 합니다. 
 

sbs 사극 연개소문

SBS 사극 <연개소문>에서도 고구려가 신라의 <북한산성>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공교롭게도 603년 음력 8월이고, 진평왕이 직접 북한산성에 진주하여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왕이 직접 전장에 나아가서 싸우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당시 수와 전쟁에서 이긴 동북아의 패자 고구려를 신라 왕이 직접 통솔하여 물리 쳤다고 하는 의미에서 신라에게는 대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극 <연개소문>에서는 김유신이 화랑들을 이끌고 고구려군을 무찌르는 장면이 나오지만 김유신은 595년생입니다. 603년 북한산성 전투때 김유신의 나이는 우리나라 나이로 9살이 되니 사실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재미를 위한 허구가 항당한 SF물이 되어 버립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시기가 공교롭게도 668년 가을이니 한가위는 이를 기념했을 수도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시기는 추수철이 지난 늦가을인 경우가 많은데 추수철이 지난 가을에 물리쳤다면 먹거리도 많은 시기이니 잔치를 벌이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요. 이전 가베(길삼)과 승전일들이 겹치는 겹경사가 이니 더욱더 풍성한 명절 한가위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공교롭게도 8월15일은 광복절이고 신라에게는 음력 8월 15일이 승전기념일이란 공통점도 있습니다. 

광복절을 맞이 하여, 신라는 8월 15일을 어떻게 기념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재미가 있고 도움이 되셨습니까? 그렇다면  이 기사도 추천합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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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blog.daum.net/timur12/ BlogIcon 베르세르게케르 2009.08.14 1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평왕이 그런 인물이었군요.

    하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봐도 용맹한 전쟁군주로 나오지, 드라마에서처럼 미실이라는 여자한테 농락당하는 나약한 사람으로는 나오지 않으니까요.

    어찌보면 진흥왕과 더불어 신라가 강대국으로 도약하는 기틀을 다진 임금인데, 드라마에서는 그런 부분이 쏙 빠져 보는 내내 매우 아쉬웠습니다.

    좋고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제 블로그에도 재미있는 글들을 많이 올리고 있으니, 심심할 때 한 번 놀러오세요~ ^ ^

  3.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14 1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포스팅 읽을 때 마다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는 기분..
    앞으로는 이반님이라고 불러야 하남요? ㅎㅎ 참 버리기 아까운 닉네임인데 말이에요.

  4. 천지개벽 2009.08.14 1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mbc제작이라 그렇지요

    이드라마의 제작목적은 신라시대가 여성스럽고 나약한 이미지로 만들려는 의도!

    통상의 사극 남자출연자들이 어떤지 보면 알긋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3: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목적성이 있어서 그런거지요..
      강력한 진평과 강력한 미실의 대결이 더 흥미로울텐데요.

      요즘 트랜드가 여성의 강조이니.. 이해할 측면도 있음..

      천추태후도 그렇구요..

  5. Favicon of http://www.taijimania.co.kr BlogIcon 아지아빠 2009.08.14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주 들어와서 매번 잼나게 읽고 가는데 이제서야 RSS 구독을 하게 되었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6.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14 1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이라고 해서 저도 50이신 줄 알았어요... ㅋㅋ

    이반은 톨스토이의 소설 바보 이반인 줄 알았는데... ㅋㅋ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다닌까요.. ㅋㅋ
      이반은 바보 이반도 있음.. 바보스러움.. 오직 한길만 가는.. 머 그런뜻이 있지요..
      러시아나 불가리아에서는 차르(황제)였더군요.. ㅋㅋ

      한국에서 이반은 여성주의,,또는 동성애를 뜻하기도 하지요..
      일반에 합류하지 않은 이류,, 이반..

  7. 2009.08.14 1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3: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산x님 출현햇당.. ㅋㅋ
      메인에 떳나요.. 갑자기 트랙픽 폭탄이 터져서 살펴 봤는데 없던데요.. ㅋㅋ

      그런데 추천 안하는 사람 무지 많아요.. 글값좀 내 달라는뎅..

      추천하면 안된다는 좌우명을 가지고 사는 분들이 이렇게 많은지 첨 알았음... ㅋㅋ

  8. 흠... 2009.08.14 1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민기 인데.....

  9. Favicon of http://zazak.tistory.com/ BlogIcon 주작 2009.08.14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 메인 문화/연예 부분에 '전쟁영웅 진평왕?'이란 문구와 함께 그림으로 크게 나오셨답니다. ^^
    축하드려요. 늘 그렇지만 당연히 추천하고 갑니다.

    그동안 트랙백을 걸고 싶어도 소스가 없어서 '아! 갓쉰동님이 싫어하시나 보네'했답니다.
    앞으로 관련글 쓰게 되면 마구마구 트랙백 걸겠습니다.
    ㅎㅎㅎ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방금 확인했습니당.. 역시 제목은 다음이 잘만듭니당. ㅋㅋ

      저도 왜 트랙백을 안해주낭. 해서 다른데 트랙백도 못걸고 있었습니당.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해서리.. ㅠ.ㅠ. ㅋㅋ;;

      이제 그동안 못한것 까지 맘껏하셈.. ㅋㅋ

  10. 작은이 2009.08.14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이렇게 배우고 가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외국에 살면서 드라마로 확인하는 역사가 이렇게 다르다는걸 또 확인하며..
    걱정이예요. 드라마 보는 것으로 역사를 기억하는 우리 꼬마들..
    드라마 만드시는 분들 외국에 사는 어린 친구들도 좀 생각해 주시면서 만들면 인기가 없어져서 안될까요?
    그래도 한국 역사 알리기 위해 만드는 거면 좀 작가님들 PD님들 공부 좀 하시고 만들어 주세요...
    아님 갓쉰동님에게 조언을 좀 얻으시든지.. ㅠ.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5: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항상 조심스럽게 쓰고 있습니다.. 제가 잘못된 이야기를 하면, 잘못알게 되닌까요.. 그래서 글쓰기 어려워 지내요.. 확인 작업을 거치게 되고,, 오타는 그냥 무시해주셈.. ㅋㅋ

  11. BlogIcon TISTORY 2009.08.14 15: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TISTORY입니다.



    티스토리 메인에서 '8.15 광복절'을 주제로 회원님의 글을 소개해드렸습니다.^^
    혹시 노출과 관련하여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tistoryblog@hanmail.net 메일을 통해 말씀해주세요!


    앞으로도 재미있고 유익한 글로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2. Favicon of http://djtlsfudnf.tistory.com BlogIcon 어신려울 2009.08.14 16: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날씨가 너무나 더워 암것도 하기 싫어지네요...
    더위식히고 올께요.ㅎㅎ

  13. Favicon of http://blog.daum.net/doong2009 BlogIcon 둥둥 2009.08.14 2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시대 책을 한두권만 읽어봐도 지금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완전히 다름을 알게 되더라구요 드라마다 보니 픽션이 어느정도
    가미되는거야 이해해야겠지만 이 드라마 보고자란 사람들은 나중에는
    선덕여왕과 김유신이 사랑한 사이라고 믿을것 같네요
    선덕여왕 이야기가 나와서 써본 글입니다..ㅋㅋ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5 09: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쩌면 드라마가 당시 현실이였지동..
      단, 덕만이 나이가 유신보다 어리다는 전제가 깔린다면요..

      저는 덕만이 어렸을때 왕위에 올랐다고 보는 입장이니.. 유신이 더 나이가 많았겠지요.. ㅋㅋ

      애들이 걱정이긴 해요.. 삼국지를 읽고 중국의 삼국시대가 그랬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있으니.. ㅋㅋ

  14. Favicon of http://hwa2jin.textcube.com BlogIcon 참좋은미시 2009.09.13 1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이가 주인공이라 부각을 시켜야하기 때문이겠죠.
    전 개인적으로 김유신과 사랑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15. Favicon of http://1035.tistory.com/ BlogIcon toy 2009.09.13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사와 야사, 논란까지 있는 화랑세기까지.. 폭넓은 역사적 인식이 대단하시네요..
    거의가 선덕여왕에 관련된 걸 보면 갓쉰동님도 선덕여왕 광팬이신듯..ㅎㅎ..
    월요일 저녁이 빨리 왔으면 좋겠지만 일요일이 빨리 지나가는 건 너무 싫어요~ㅎㅎ

  16.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7.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8. Favicon of http://biancalaowe.livejournal.com/821.html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5 gallon 2012.11.01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9. Favicon of http://365ideasdenegocio.blogspot.com/2011/11/se-alquilan-perros.html BlogIcon petsafe invisible fence for cats 2012.11.06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대사관 공보참사관 집에서 열린 오찬에는 정부 관계자들과 인터넷 업체

  20. Favicon of http://strandkurv.blogspot.com/2008/05/lejes-hund-ah-og-i-gr-glemte-jeg-at.html BlogIcon innotek electric dog fence 2012.12.22 1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 기능을 갖춘 스크린 캡쳐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프로그램 없이도 웹페이지를 가장 빠르

  21. Favicon of http://emergencyfood.xanga.com/ BlogIcon what is a julian date on food 2013.01.02 16: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사기는 이 전쟁을 북한산성 전쟁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화랑세기는 <한수>전쟁으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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