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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

대왕의꿈 천관녀 이세영 첫사랑 김유신 실패했을까? 결혼해서 자식까지 둔다 대왕의 꿈에서 김유신과 신관을 지키는 천관녀와의 사랑이 그려지고 있다. 천관녀는 비형랑이 전쟁고아를 주어서 기른것으로 회상한다. 그리고 신분의 벽때문에 김유신을 멀리한다. 하지만, 김유신은 죽도록 천관녀를 사랑하겠노라며 천관녀를 흔들다. 그리고 천관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자신이 신관을 떠나면 술을 따르고 술을 따르는 기녀가 될 것인데 그래도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김유신의 첫사랑(?) 천관녀와의 사랑은 너무나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천관녀가 이름일까? 미안한 이야기 지만 천관녀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하늘을 보고 천문을 연구하며 왕에게 보고하는 요즘의 천문대나 기상청에서 근무하는 직무를 수행하는 관리인 천관의 딸이라는 뜻이지 천관녀가 이름이 될 수 없다. 이를 재대로 분석한 박창화는 화랑.. 더보기
선덕여왕, 사실은 유신과 보종 너무나 친한 사이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이전 여왕은 있었다. 첫번째는 누구?!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수 많은 여인들이 나온다. 현재 고현정이 맡고 있는 미실도 화랑세기에는 중요한 여인중에 하나이다. 역사물을 다루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라면, 사랑, 야망, 권력욕, 천재성을 두루 갖춘 주인공으로 내세울수 있는 최상의 캐릭터다. 하지만 미실 전에 지소, 금진, 옥진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지소는 법흥왕의 딸로서 작은아버지 입종에 시집을 가서 진흥을 낳는다. 하지만 진흥이 왕이 되기 위해서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법흥은 진흥보다는 지소의 두번째 남편인 영실이나, 미진(법흥/벽화)를 후계로 점지 했었다. 하지만, 지소의 반대로 법흥은 진흥을.. 더보기
선덕여왕 이전 여왕은 있었다. 첫번째는 누구?!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글에서 덕만이 왕위에 쉽게 오를 수 있는 배경으로 덕만 선대에 있었던, 지소, 금진, 사도, 미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지소는 법흥의 딸이고, 법흥의 동생인 입종에 시집을 간다. 법흥이 죽고 나자, 7살의 어린 진흥(심맥종)이 왕위에 오르지만, 실질적인 전권을 행사하고,수렴청정을 하는 지소(법흥/보도)라고 했었다. 또한, 지소에게는 입종말고도, 진흥왕비인 사도의 아버지인 영실을 두번째 남편으로 두고 있었다. 이런 기록들은 현존하고 있는 의 기록들의 단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미실의 선대 여인에 대한 이야기기들이 빠져있다. 미실이 존재하게 된 이유는 지소와 옥진, 금진이 있었기 때문에 미실이 살아갈 수 있었고.. 더보기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진면목인 색공에 관련된 사항을 밝힐 수 없는 나름의 속사정이 있지만, 그래도 화랑세기에 나온 미실의 성격을 고현정이 잘 묘사한 것 같다. 능숙히 사람을 다루는 경지가 과히 화랑세기에 나타난 미실의 정치적인 면이다. 또한, 예술적이 소양을 '소엽도'를 그리는 행동으로 단순이 색공만을 잘하는 사람이 아닌 예술과 정치력, 정치술수 등 이 뛰어남을 나타내 주었다. 화랑세기에는 미실이 정치,색공,술수 뿐만 아니라 글에도 조예가 깊어서 수많은 저술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쟁에 출전하는 사다함에게 사랑의 세레나데와 님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절절한 환송시를 쓰기도 한다. 풍랑가 - 미실 바람이 불(분)다고 하되, 임 앞에 불지 말고 물결이 친다고 하되, 임 앞(에) 치지 말고 빨리 빨리.. 더보기
보과와 법흥 그리고 진흥왕은 천수를 누리지 않았다. 백제와 신라의 결혼동맹(?)은 4번에 걸처 있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자세한 사항은 이전에 포스팅한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에는 나오지 않는 백제와 신라 결혼, 서동과 선화공주 그리고 를 참조하길 바랍니다. 여기서는 법흥(원종)과 보과공주의 사랑인데, 보과공주는 과연 백제의 어느왕의 자식인가에 대해서 논의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니 동성왕녀은 아닐것이라는 암시를 했었습니다. 첫번째 법흥(원종과 보과공주) 첫 결혼의 첫테이프를 끊은 사람은 법흥(원종)과 동성왕녀 보과공주, 일단 보과공주라고만 하자. (3세) 모랑(毛郞)은 남모의 아우이다. 이에 앞서 법흥대왕이 국공(國公)으로 백제에 들어가 보과공주(宝果公主)와 더불어.. 더보기
신라 성골은 없다고 신라인 설계두가 말하다. 성골이 진골이고 진골이 성골이다. 글쓴이는 [[역사이야기] - 사극으로 배우는 역사, 성골은 없다.] 에서 성골은 없고, 진골이 곧 성골이며, 왕족이라고 주장했다. 위글에 이어서 글을 이어 가고자 한다. 일명 , 있었다고 생각 하는 진평왕때의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열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설계두(薛頭)도 신라 귀족 가문의 자손이었다. 일찍이 친구 네 사람과 함께 모여 술을 마시면서 각자 자기의 뜻을 말하였는데 계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신라에서 사람을 등용하는 데 골품을 따지기 때문에 진실로 그 족속이 아니면, 비록 큰 재주와 뛰어난 공이 있어도 그 한계를 넘을 수가 없다. 나는 원컨대 서쪽 중국[中華國]으로 가서 세상에서 보기 드문 지략을 드날려 특별한 공을 세워 스스로의 힘으로 영광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