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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설, 추석, 한가위, 중추절과 차례 상차리는 방법 감춰진 진실찾기

차례상 차리는 방법은 지방마다 시대마다 달랐다. 지금도 차례상 차리는 방법에 대해서 설왕설래한다.

그런데 차례상 차리는 방법에는 정도가 있을까? 우리민족 고유의 가장 큰 3대 명절(설,대보름,추석)인 추석을 "추석은 우리것이 아니(였)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로 부터 돌이 날라올지도 모르겠다.

차례상 차리는 방법에서 차례의 유래등 감춰진 진실을 찾아 보려 한다.

설마 추석이 우리것이 아니라니 좋은밥 먹고 헛소리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이다. 그리고 추석의 유래에 대해서 장황설을 늘여놓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나 추석의 유래를 보면 우리것이 아닌것을 설령 우리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우리의 문화에 깊숙히 스며들었으니 우리 민족의 고유의 명절이 된것이 아닌가 이야기를 할것이다.

당연히 현재의 <추석>은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겠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는 없는 특이한 제례문화이다.

 
하지만 정확한 유래를 알고 있는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추석>은 <중추절>, <한가위(가베)>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추석>과 <중추절>과 <한가위>는 서로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1번째, 한가위 유래 (추수감사제와 놀이성격)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 동안 길삼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때 조상에 감사하고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2번째, 중추절 유래 ( 승전기념일 + 한가위 )
 
<예기>의 <맹추>,<중추>,<계추> 중에서 가을의 한가운데 있는 중추절에서 이름을 빌려왔겠지만, 이름만 중추이고 실제는 신라의 고유의 한가위인 가베를 중국식 작명법에 의해서 기록한것 뿐이다.<중추>와 중추절은 서로 다른다. 단지, 중추란 한자화된 용어의 차용에 불과하고 중추절은 카니발 성격의 축제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슝베이도 중추절은 신라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중추절은 당나라에 유학한 일본의 구법승려 <엔닌의 일기>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서>,<구당서>,<신당서>의 기록에도 신라는 8월15일날 왕앞에서 활쏘고, 말타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고 한다. 이 당시 중추절은 한가위의 풍습과 전승기념일을 합한 행사가 된다.
 
전승기념일이다 라는 있는 근거를 2009/09/26 - [역사이야기] - 중국 중추절은 신라 진평왕의 고구려 승전기념일?  글에서 <삼국사기>를 근거로 중추절은 진평왕의 603년 8월 대고구려 북한산성전쟁이나 668년 가을 고구려의 멸망을 기념하는 전승기념일이라고 주장했다.    

SBS 사극 <연개소문>에서도 고구려가 신라의 <북한산성>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공교롭게도 603년 음력 8월이고, 진평왕이 직접 북한산성에 진주하여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왕이 직접 전장에 나아가서 싸우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당시 수와 전쟁에서 이긴 동북아의 패자 고구려를 신라 왕이 직접 통솔하여 물리 쳤다고 하는 의미에서 신라에게는 대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삼한일통을 한시기도 668년 가을이다.  이때의 승리를 기념해서 축제를 벌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까지 신라로써는 한가위와 전승기념일이 충첩된 날이니 즐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3번째, 추석 유래 [춘조일(春朝日), 추석월(秋夕月)] ( 한가위 + 중추절 + 유교제례 )
 
위에 중추절과 중추는 다른 의미라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형식과 내용면에서 추석은 추석제의 미미한 변형이다.
 
네이버 통합검색 화면에는 다음과 같이 추석관련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추석의 유래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추석은 중국의 유교경전인 <예기>에 천자는 이른봄에 태양에 제사를 지내고, 가을에는 저녁 달에 제사를 지낸다해서 비롯되었다. 동지는 태양이 낮은 고도에서 점차 크게 떠올라 시작을 알리는 시기이고 가을 중추에 뜨는 달이 가장 높이 크게 보이는 시기이기 때문에 <춘조일>, <추석월>같은 유래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예전 <네이버> 백과사전(두산백과사전)에서 <추석>의 유래를 검색하면 <예기>의 <조춘일>,<추석월>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달처럼 해처럼 번쩍이는 레슬러 <조춘>선생을 기념하는 날도 아니고 실제는 <춘조일>의 오기이다. 글쓴이도 오랫동안 관심이 없어서 무관심하게 지나갔지만 <조춘일>, <추석월>인줄 알았다. 그래서 추석에 관한 여러가지 자료를 조사할일이 있어서 이곳 저곳 찾다보니 <조춘일>이 <춘조일>의 오기라는 것을 알았다. 
 
네이버에 올려진 백과사전이 잘못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알고 오래전에 수정할려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이유는 예전에 솔거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솔거의 활동시기가 <진흥왕>시기(540년이후)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꼼꼼히 솔거는 <진흥왕>시기 사람이 아니고, 신라의 황금기인 경덕왕(8세기)때 활동한 사람이며, 솔거의 작품인 황룡사 <노송도>와 단속사 <유마상도>, 분황사 <천수관음보살도> 등 잘못이 있으니 수정하였으면 한다고 자세하게 논거를 제시하여 보냈지만 근 한달이 지난후에 솔거관련 기록들은 수정도 하지 않은체 <솔거>라는 항목만 수정을 하고 고맙다는 말도 없었다. 
 
솔거 관련글을 자세히 보실려면   2009/08/02 - [역사이야기] - 덕만에서 솔거까지 역사상식을 깬다
글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현재 추석은 3가지의 유래중에서 어디에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추석의 유래 중 <예기>를 인용하지 않고 있다. 있는 사실을 감추고 유래를 단지 국내에서 찾으려는 또다른 역사왜곡 사례이다.
 
<한가위>나 <중추절>의 행사와 놀이문화는 잊혀지고 단지, 제사(차례)의식만이 남아 있다. 그리고 <한가위>라는 말을 쓰기는 하지만 <추석>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또한 추석이 민족의 3대명절인 <설>,<단오>,<추석>에 진입한 시기를 보면 조선시대 중종?이후 일이다. 
  
조선시대의 추석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추석에 관한 기록은 모두 왕이 조상에 대한 제사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조에 보면 아침에 추석제를 지낸후 저녁 밤늦게까지 대신들과 왕족들을 불러 술마시고, 흥겹게 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연산군때에도 추석제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연산군은 자신의 친모인 <윤씨>에게 추석제사를 지내려하나 신하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하지만 효자였던 연산군은 신하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윤씨>의 사당을 세우고 추석제사를 강행한다.

<추석제>를 지낸것은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신라 종묘의 제도에 <추석제>가 있었다고 흔적이 있다. 

37대 선덕왕이후 일년에 여섯 번 5묘에 제사지냈으니, 곧 정월 2일·5일, 5월 5일, 7월 상순, 8월 1일·15일이었다.

그러니 삼국시대부터 신라왕실에서는 추석제사를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추석제를 지키는 것은 김춘추가 당에 구원요청하고 신라의 관제와 복식을 당나라식으로 바꾼 이후부터 일것으로 추측된다. 이때 지낸 제사의 형식은 <유교>형식의 제사일것 이다.
 
또한, 삼국사기 권제32 (잡지 제1)  제사/백제 편에 책부원귀를 인용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백제는 매년 네 철의 가운뎃 달[四仲之月]에 왕이 하늘과 오제(五帝)의 신에게 제사지냈다. 그 시조 구태(仇台)의 묘(廟)를 나라의 도성에 세우고 일년에 네 번 제사지냈다.』

고대의 <추석제>는 민간 백성들은 지낼수 없는 황제나 제왕들만이 지내는 제사였기 때문에 왕실에서만 지냈고 민가에 까지는 널리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추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추석제는 기회가 된다면 따로 글을 쓰도록 하겠다. 
  
조상은 사라진 차례와 제사, 르레상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차례를 지냄에 있어서 상차림에 관한 이야기들이 설왕설래 한다. 그 근거는 <예기>일 수 밖에 없는데 <예기>을 보면 제사는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너무 많은 제사를 하지 말고, 겸약하고 겸손하게 지내라"라고 하였다.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조상이 평상시 좋아하던것으로 하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홍동백서>,<좌포우혜> 등 조상과는 무관한 형식과 절차 만이 남아 있다. 조상이 왼손잡이던 오른손잡이던 상관하지 않고 숫가락을 놓아야 한다. 왼손잡이가 귀신이 되면 갑자기 오른손잡이로 변하나? 또한, 조상이 살아생전 좋아하던 음식과는 전혀 상관하지도 않고 있다.
 
소주를 좋아하면 소주를,  탁주를 좋아하면 탁주를, 양주를 좋아하면 양주를 올리면 되는 것이 아닐가?. 바나나를 좋아하면 바나나, 파인애애플이면 어떤가?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귀신이 털달린 과일을 좋아라 하지않는다고 해서 죄악시하고, 매운음식과 고추는 귀신을 쫓아내는 벽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해서 고추가루가 들어가지 않는 음식으로 올려야 한다.
 
실제로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임진왜란 전후라고 전해진다. 유입경로는 명/청이나 일본 양쪽으로 어느쪽이 앞선 시기인지는 아직 확실치는 않다. 조상이 매운음식을 즐기던 즐기지 않던 상관없이 귀신은 고추가루 싫어한다는 믿기지도 않는 낭설에 따라야 한다. 만약, 예기를 만들기 이전에 고추가루가 있었다면 당연히 고추가루가 들어간 음식이 제사상에 올려졌을 지도 모른다. 과일중에 붉은색 과일을 올리는 것을 보면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제사나 차례의 주체인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과 조상은 사라지고  단지 제사 형식에 치우치고 있다. 제사 형식과 차례를 규정한 <예기>는 조상이 평상시 좋아라 하는것으로 하라고 했는데도 말이다. 제사나 차례도 중세유럽의 <르레상스>운동처럼 본류를 찾는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시대에 따라 민속도, 명절도, 내용도 달라져야.. 
 
현재의 추석은 과거 우리가 알고 있는 한가위나 중추절과 다른 의미이고 <추석>,<한가위>,<중추절>은 서로 믹스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뿐이다. 현재의 추석이 다른 어떠한 민족도 하지 않는 아주 특이한 고유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추석이 고래부터 한민족의 고유의 명절이라고 하기에는 내용도 바뀌고 성격도 바뀐 다양한 문화가 접목이 되어 있어서 문제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부처탄신일, 팔관회가 국가의 중대축제였고, 조선시대에는 유교적인 단오, 한식, 추석, 공자탄신일 등이 중대 행사였다. 현재는 단오, 한식 보다는 실제와는 다르지만 예수의 탄신일이라고 알려진 크리스마스가 중대한 명절 풍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먼훗날 크리스마스가 우리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토착화될 때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고유의 민족의 행사라고 모두들 이야기를 할것이다. 그때 무슨 소리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고유의 명절이 아니고 유대교의 선지자중 일인인 예수라는 인물의 생일을 기념하는 날에서 유래된것이야 그리고 산타크로스는 예수의 탄생과는 전혀 관계없는 북유럽의 신화에서 나온인물이고, 산타와 산타의 붉은 복장은 코카콜라가 자신들의 상품을 선전하기 위해서 만든 허구야 한다면 벼락 맞을 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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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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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런 2010.09.17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이런!! 이렇게 내공쌓인 글을 이리 방치 하다니...
    다음이 실수 하고 있군요 ㅋㅋ
    근데 어쩜 사람들이 자극적이거나 달달한 이야기만 좋아하는 것 같으니
    다음도 당연 거기에 영합하는걸지도... 아닌가 그리 선도하는건가?? 에효

    그럼에도 이렇게 새로운 글 내 놓으라고 조르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길...

  2. Favicon of https://peter0317.tistory.com BlogIcon 제로드™ 2010.09.18 1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꼼꼼하고 열심히 자료를 찾아서 글을 쓰시네요~. 즐거운 추석 되시길..

  3. Favicon of https://vibary.tistory.com BlogIcon 비바리 2010.09.18 19: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명절 즐거이 지내세요.

  4. 2010.09.22 0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Favicon of http://solnebane.com BlogIcon 조용형 2012.01.02 2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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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Favicon of http://carbon21.homeunix.com BlogIcon Jordyn 2012.04.04 0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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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Favicon of http://extratime.isa-geek.com BlogIcon 빅토리아 2012.04.06 0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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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Favicon of http://zonda.is-very-evil.org BlogIcon Aaliyah 2012.05.09 0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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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Favicon of http://onlyme.hobby-site.org BlogIcon Arianna 2012.05.11 1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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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12.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 2012.07.14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해서 눈 속에 덮혀 있다. 그런데 이번 강릉 빙상장은 경기를 보는

  13. Favicon of http://blogskinny.com/ BlogIcon Berrong 2012.09.09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14. Favicon of http://www.frankolenko.com/blog/view/9430/what-supplies-to-enter-case-of-an-em.. BlogIcon emergency first aid guide 2012.11.26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어쩜 사람들이 자극적이거나 달달한 이야기만 좋아하는 것 같으니
    다음도 당연 거기에 영합하는걸지도... 아닌가 그리 선도하는건가?? 에효

  15. Favicon of http://mysbi.tk/blogs/viewstory/168 BlogIcon water canister camping 2012.12.04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 동안 길삼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대왕의 꿈 김춘추 문명왕후(문희) 보라, 김유신 천관녀 사랑보다 진부하지 않았다

 

대왕의 꿈에서 승만왕후는 진평왕이 쓰러지자 섭정을 한다. 김춘추는 승만왕후가 섭정으로 국정을 농단하지도 않았는데 반대를 한다. 그리고 처형장으로 끌려간다. 김유신에게 김춘추를 죽이려 하지만, 김춘추는 충신을 죽일 수 없다며 같이 죽이라고 한다.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승만왕후에 반기를 들자. 모두 진압할 것을 명령한다. 양측간에 피해가 발생하자.

 

아퍼서 누워있던 진평왕이 덕만공주와 함께 나타나 승만왕후를 제압한다. 그리고 승만왕후를 폐위시키려 하지만, 덕만공주가 반대하고 승만왕후가 임신을 하자 폐위를 보류시킨다.


의자왕으로 왕자인 이진우가 등장했다. 그런데 왜 백제의 왕자인 의자 신라 서라벌에 등장을 하는 것일까? 대왕의 꿈에서 처음 의자왕으로 내정되었던 배우는 여성폭력과 거짓말로 드라마 동이에서 하차한 최철호였다. 여론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고 생각한 제작자나 KBS 상부의 지시때문이지 않을까?
 

대왕의 꿈의 시제는 625년으로 이 상황을 그렸다. 실제 승만왕후와 김춘추가 충돌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승만왕후와 김춘추가 깊숙히 관련이 있다고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때 김춘추의 나이는 23살에 불과했다.

문희(문명왕후)는 보라궁주를 찾아가 미안함을 전한다. 보라궁주는 출산을 앞두고 있다가 문희를 보자 김춘추를 잘 모시자고 말한다. 보라궁주가 하열을 하고 출산을 하게 되자, 문희가 보라궁주의 출산을 돕는다. 하지만, 보라는 고타소를 출산 후 죽고 만다.



대왕의 꿈은 문희와 김춘추의 사랑을 너무나 가볍게 처리하고 있다. 문희와 김춘추의 맺음은 신라 사회에 변혁을 가져올 단초를 제공한다. 김춘추와 덕만과 김유신과의 연합체가 구성되는 연결고리다. 하지만, 김유신과 천관녀의 사랑보다도 비중이 낮다. 물론, 김유신과 천관녀의 사랑도 대왕의 꿈에서는 더이상 볼수 없다. 너무나 스토리전개가 어설프다.

김춘추가 승만에 대항하는 모습은 실제와 얼마나 부합될까? 사실 김춘추의 일은 오히려 김춘추의 아버지 김용수/김용춘이 관련이 있다. 승만왕후가 국정을 농단하자 김용춘김용수가 승만왕후에 반기를 들었다. 그래서 승만왕후는 김용수/김용춘 형제를 미워했다.

그런데 승만왕후가 낳은 어린 왕자가 죽는 일이 발생했다. 왕자가 살아 있었다면 덕만공주 대신에 실제 왕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승만왕후는 왕자의 죽음에 용수/용춘 형제가 배후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승만은 김용수 형제를 더욱 미워했다.

 

629년 그래서 김용수를 지방으로 보내 버리고, 김용춘은 진평왕이 고구려 낭비성을 공략할 때 김서현, 김유신 부자와 함께 대아찬으로 종군하여 승만왕후의 눈에서 벗어난다. 김용춘은 낭비성 전투에서 전공을 세우고 돌아와 각각이 된다.

 

이게 대왕의 꿈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의 이야기다. 왜 대왕의 꿈에서 화랑세기를 정통사극에 자료로 활용했는지는 알수가 없다. 현존하는 박창화의 화랑세기는 정교하기는 하지만, 역사책은 아니다. 단지 소설일 뿐이다.

문제는 화랑세기가 아주 정교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교묘히 조합하여 빈틈을 좀처럼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완결성을 갖췄다는 점이다. 오히려 화랑세기의 완결성이 박창화의 화랑세기가 위서 논쟁을 할 필요도 없이 소설임을 증명하고 있다.

 

최소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충돌하는 지점이 많다. 일연선사는 삼국사기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의의를 제기한다. 이 부분은 삼국사(삼국사기)가 잘못 기록 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딴지맨 역할이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삼국사기도 맞고 삼국유사도 맞다는 식으로 줄타기를 한다. 같은 팩트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하는데 삼국유사도 맞도 삼국사기도 맞다. 그리고 삼국유사의 잘못된 부분까지 포괄할 뿐만 아니라 양쪽 사서가 캐치하지 못한 부분까지 보완하기 까지 한다.

 

대표적인 사항이 김춘추의 아버지 김용수/김용춘이 동일 인물인가? 아니면 다른 인물인가에 관한 부분에서 박창화의 화랑세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검토하고 김용수김용춘은 동일인물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고 형제라는 것을 논증하듯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문명왕후와 김춘추의 이야기도 화랑세기는 삼국유사에서 선덕여왕시절에 있었다는 기록에 반하여 무슨 소리 선덕여왕때가 아닌 진평왕 시기 625년에 있었다고 쓰고 있다. 이는 삼국사기가 증명하고 있기도 하다. 단지 진평왕 시기 625년이냐 하는 문제가 남을 뿐이다. 삼국사기만 봐도 김춘추와 문희(문명왕후)의 불쑈는 절대로 선덕여왕시기 벌어질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겉보기에 김유신김서현의 장자로 595년에 태어났다. 그런데 선덕여왕 시기(632~647)이라면 보희나 문희의 나이는 적지 않는 나이가 된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다. 신라 때 지금처럼 만혼시기도 아닌데 보희 문희가 아지/아혜라는 아명을 사용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선덕여왕 초년이라고 해도 37김유신에 결혼하지 않는 10대 중반의 아주 어린 동생들이 있었다고 믿기 어렵다.

 

실제로 김춘추와 문명왕후(문희)사이에 태어난 첫번째 아들 김법민(문무왕)은 김춘추와 문희의 불륜에 의해서 잉태했고불쇼가 아니 였다면 태어나지도 못했다. 문제는 문명왕후(문희)와 김춘추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은 629년생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삼국사기 열전 김인문편에 나온다는 점이다.

 

조금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살피고 연구를 했다면 알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박창화 이전이나 이후에 이를 검증한 학자가 없었다. 무조건 선덕여왕 시기 문희와 김춘추가 불륜의 씨앗을 잉태하고 결혼했다고 믿고 있었고, 선덕여왕이 이들의 매파가 되었다고 가르쳤고 일고 있었을 뿐이다.

 

소설은 박창화처럼 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써야 한다. 요즘 사극은 사서연구는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장 기초적인 인물의 생몰연대 조차 지키지 않고 아무 때나 등장하지 않아야 할 인물들이 같은 공간 같은 시기에 등장시킨다.

 

박창화 처럼 역사소설을 쓰면 사서가 되고 위서논쟁이 일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박창화는 역사학자였고, 수 많은 역사소설을 창작했다. 박창화의 역사소설은 모두다 요즘으로 하면 난혼이 난무하는 왜설역사소설이다. 화랑세기도 그 중에 하나일 뿐이다. 박창화가 죽을 때 까지 정교한 역사소설을 쓰고 발표/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명확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소설을 발표하지 않아서 화랑세기가 일부에서 사서대접을 받는 기현상이 발생했지만 말이다.

 

실제 박창화가 소설이 아닌 논문으로 발표했다면 아주 훌륭한 역사학자로 이름을 날렸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보다 정확한 역사상식을 갖췄을 것이 명확하다. 김춘추의 아버지가 진짜 누구인지, 문명왕후와 김춘추를 선덕여왕이 아닌 덕만공주가 엮어주었다는 것 등 수 많은 역사상식이 바뀌었을 것이다.

실제로 역사학자들에게 역사연구의 영감을 제공하는 특이한 소설가라고 할 수가 있다. 대체적으로 역사학자의 연구결과에 영감을 얻어 소설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반대되는 기현상은 그만큼 역사학자들이 연구에 등한시 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다시 대왕의 꿈으로 돌아가서 승만왕후와 김춘추가 격돌하고 있지만, 승만왕후와 격돌하는 사람은 김용춘김용수가 되어야 하는데 그의 아들인 김춘추가 전면에 등장하고 김용춘은 꿔다논 보리자루가 되어 버렸다.

아버지의 일이 자식의 일로 바뀌었다. 김일성의 일이 김정일의 일화인 것처럼 미화된 것이고 박정희가 한일이 박근혜가 한일처럼 미화된 것이다. 실제 김춘추가 얼마나 존재감이 없으면 아버지나 삼촌의 일이 되겠는가?

 

그런데 왜 대왕의 꿈에서 진흥왕비인 사도태후와 김유신의 첫사랑 천관녀는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 일까? 물론 사도태후가 죽은 때는 614년이니 대왕의 꿈 시제인 625년에는 볼 수 없는게 당연한다.


강력한 권력을 행사한 인물에 대해서 너무나 쉽게 버려진 다는 게 대왕의 꿈 작가의 역량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더군다나 천관녀와 김유신의 사랑을 그리다 만 것도 너무 어설프기는 마찬가지다. 문희와 김춘추의 사랑도 이야기 꺼리가 많은데 오히려 김유신과 천관녀가 대왕의 꿈 주인공이 아닌가 의심스러운 정도였다. 그런데 주인공 같던 천관녀가 어느 순간 사라진다는 게 드라마 개연성상 있을 수 있는가?

 

대왕의 꿈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천관녀에게는 영모라는 이름이 있다. 영모는 미실의 아들인 하종의 딸이다. 김유신은 영모와 사랑을 했지만 화랑세기의 실제 주인공인 미실의 정적이었던 만호태후가 반대해서 이뤄질 수가 없었다.

 

미실이 만호태후에게 양보를 하고 천관녀 영모와 김유신과 맺어질 수 있었다. 영모 사이에 태어난 김유신의 자식들은 신광/작광/영광/삼광/진광 등 김유신의 광자돌림은 모두 영모의 자식이라고 화랑세기는 말하고 있다. 원술 등 원자돌림만이 김유신과 지소(지조)공주의 소생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또한 화랑세기의 정교함을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되기도 한다.

 

재미있게도 김용춘김용수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덕만공주의 남편들이 된다. 천명공주와 맺어진 김용수는 자매와 관계를 맺은 것이다. 김춘추는 덕만공주의 자식이나 마찬가지 설정이다. 천명과 덕만은 남편들을 공유했다는 이야기가 화랑세기에는 수시로 나오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왕의 꿈에서는 화랑세기를 차용 하지만, 감출 것은 감추고 있는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난혼의 관계를 공영방송에서 드라마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는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했음직한 일을 한량아들 김춘추가 했음직하다고 말한다면 이는 김춘추가 그만큼 존재감이 없는 인물이라고 대왕의 꿈 작가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625년이면 김춘추 나이 23살에 불과한데 역사 전면에 등장할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왕족의 아들로 놀고먹던 김춘추가 대외적으로 전쟁에 참전하거나 외교나 국정에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대왕의 꿈은 MBC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사서 (삼국사기/삼국유사)박창화의 화랑세기에 충실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주인공 김춘추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부분을 미화하고 왜곡하고 아전인수식 남의 기록을 김춘추에 가져다 쓰고 있다.

대왕의 꿈이 얼마나 이슈화 되지 않았으면 대왕의 꿈에 내용 기사도 없고, 대왕의 꿈 외적인 최철호가 이슈가 될까? 더군다나 네티즌 리뷰조차 없다. 김춘추가 매력이 없어서도 있지만, 작가의 스토리 전개가 진부하고 낡았을 뿐만 아니라 연출자체도 흥미를 끌지못하고 있다. 수백억 투자한 드라마가 이처럼 이슈가 안되는 것도 아이러니 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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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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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즘드라마 2012.10.24 1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편부터 봐야지 하고 보는 드라마도 있지만 보통은 주변사람들이 재밌으니 보라고 해서, 지나가다 보니 재밌을것 같아서, 재밌어서 보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드라마는 볼까 하다가 그만뒀죠..
    최수종씨 좋은 배우지만.. 이런 비슷한 배역(왕.. 영웅.. 이런거) 나올때마다 하시니까 그것도 나이도 안맞게.. 좀 거부감이 듭니다.
    꼭 주몽 송일국이 바람의 나라 무휼 역 맡은거랑 비슷해요. 15세에 왕이 된 대무신왕 역을.. 이건 무슨 판타지도 아니고(차라리 판타지로 갔었어야..) 원작만화에선 이름만 따오고.. 제목이 아까운 드라마였죠. 서른이 넘은데다 동안도 아닌 배우가 왕자역할(15세 이하)을 그리도 오래;; 얼마든지 재밌게 만들수 있는 드라마였는데.. 소재가 시대가 너무 아까웠던.
    대조영도 최수종이었고.. 왕건도 최수종.. 김춘추도 최수종.. ;;; 대하사극 전문?! 이제 나이가 꽤 되셔서.. 청년역은 좀 다른 배역에 맡기셨다면 내용에 진정성이 더 있어서 몰입감이 있었을 거에요.ㅠㅠ
    또 여배우들이 예쁘거나 연기 잘하거나 해야 하는데 그런 몰입감, 매력이 넘 부족해요. 문희역을 하는 배우가 너무 안이뻐서 놀란 1인;;; 승만왕후역도 좀 어색하죠.. 이영아 좋아하는 배우라서 뱀파이어검사 잘보고 있는데 승만왕후 역에는 좀 안맞는듯 해요.
    덕만공주는 너무 맥아리 없게 나오고.. 너무 요조숙녀ㅋㅋㅋ 같고.
    드라마는 작가놀음이라는데 드라마 내용이 재미가 없으니 그 재미를 배우들한테서 찾아보려 해도 없고.. 그러니 안보게 되는듯요. 사극이라면 그래도 한번씩은 다 볼까해서 살펴보는데.. 이 드라마는 포기....

  2. 비열한악녀 2012.10.28 1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열한악녀 승만왕후!
    사도태후 다음으로
    정말꼴도보기싫은인물이다!

  3. Favicon of http://www.submitarticle.us/ BlogIcon Submit It 2012.11.27 14: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인 의자 신라 서라벌에 등장을 하는 것일까? 대왕의 꿈에서 처음 의자왕으로 내정되었던 배우는 여성폭력과

  4. Favicon of http://forum.topnews.in/member.php/64260-modamer BlogIcon womens bag 2013.09.06 1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사이트에서 유용한 정보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의 위대한 생각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김춘추가 축국 이후 김유신의 집에가서 술을 마시고 취하고 잠을 잤는데 문희가 침상에 있어서 놀라 자빠진다.

대왕의 꿈처럼 부인을 생각해서 놀랐을까?

김춘추와 문희, 보희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보희가 문희에게 양보한 이유는 단순히 꿈을 팔고 사서 그런 것이 아니다. 보라부인과 결혼한 유부남 이기 때문에는 더더욱 아니다.

 

보희는 꿈에 서형산에서 오줌을 누자 서라벌이 홍수가 나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희는 보희의 꿈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하고 보희의 꿈을 비단으로 산다.

 

돼지 꿈을 꾸었는데 로또를 사지 않고 친구에게 팔아버린 것과 같다. 요즘도 횡재수가 있는 꿈을 구면 문희처럼 꿈을 팔라는 말을 하지만 보희가 되지 않으려고 꿈을 팔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유신의 계략이 넘어간 춘추가 김유신의 집에 오자 김유신은 보희에게 김춘추를 맞이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보희가 자신은 아퍼서 김춘추을 모실 수가 없습니다. 라며 거부하자 문희가 대타로 김춘추를 모시게 된다.

 

김춘추는 문희를 임신시키고서 나몰라 문희를 쌩깐다. 이에 분노한 잔머리 김유신은 김춘추가 자기 동생을 임신 시켜놓고 생깠다고 동네방네에 소문을 퍼트리고 문희를 장작에 태워죽이겠다고 언플을 한다.

 

 

문무왕(文武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법민(法敏)이고 태종무열왕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 문명왕후(文明王后)인데, 소판(蘇判) 서현(舒玄)의 막내딸이고 유신(庾信)의 누이이다.

그 언니[]가 꿈에 서형산(西兄山) 꼭대기에 올라앉아서 오줌을 누었더니 온 나라 안에 가득 퍼졌다. 꿈에서 깨어나 동생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 동생이 웃으면서 “내가 언니의 이 꿈을 사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비단치마를 주어 꿈값을 치루었다. 며칠 뒤 유신이 춘추공(春秋公)과 축국(蹴鞠)을 하다가 그만 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떼었다
.

유신이 말하기를 “우리 집이 다행히 가까이 있으니 청컨대 가서 옷고름을 답시다.”라 하고는 함께 집으로 갔다. 술상을 차려 놓고 조용히 보희(寶姬)를 불러 바늘과 실을 가지고 와서 [옷고름을] 꿰메게 하였다. 그의 언니는 무슨 일이 있어 나오지 못하고, 동생이 나와서 꿰메어 주었다. 옅은 화장과 산뜻한 옷차림에 빛나는 어여쁨이 눈부실 정도였다. 춘추가 보고 기뻐하여 혼인을 청하고 예식을 치루었다. 곧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법민(法敏)이다. - 삼국사기 문무왕 원년

 
이에 선덕여왕이 연기가 피어오른 모습을 보고 김춘추가 들으라고 저 연기가 무슨연기냐며 묻는다. 이에 신하들이 김유신의 동생이 아비도 없이 임신을 해서 집안망신이라며 태워죽이려는 것이라고 찔러버린다.

김춘추가 선덕여왕에 머리를 조아려 문희를 임신시키고 쌩깐 망나니가 자신이라고 고한다. 이에 선덕여왕은 김춘추에게 니가 사내라면 책임을 져야하지 않느냐고 질책하고 김춘추는 마지못해 문희를 구했는데 임신한 아들이 태어나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법민)이였다는 것이 그동안 알려진 이야기다.

 

 

춘추공은 유신의 뜻을 알고 드디어 아지와 관계하고 이로부터 자주 왕래했다.  유신은 그 누이가 임신한 것을 알고 꾸짖었다.  "너는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아이를 배었으니 그게 무슨 일이냐."  그리고는 온 나라 안에 말을 퍼뜨려 그 누이를 불태워 죽인다고 했다.  

어느 날 선덕왕(善德王)이 남산(南山)에 거동한 틈을 타서 유신은 마당 가운데 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질렀다.  연기가 일어나자 왕이 바라보고 무슨 연기냐고 물으니, 좌우에서 아뢰기를, "유신이 누이동생을 불태워 죽이는 것인가 봅니다"했다.  왕이 그 까닭을 물으니, 그 누이동생이 남편도 없이 임신한 때문이라고 했다.  왕이 "그게 누구의 소행이냐"고 물었다.  이때 춘추공은 왕을 모시고 앞에 있다가 얼굴빛이 몹시 변했다.  왕은 말한다.  "그것은 네가 한 짓이니 빨리 가서 구하도록 하라."  춘추공은 명령을 받고 말을 달려 왕명(王命)을 전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고 그 후에 버젓이 혼례를 올렸다. - 삼국유사

 

삼국사기는 김춘추가 자발적으로 문희를 임신시키자 혼례를 올렸다고 하지만, 요즘도 임신 시켜놓고 쌩까는 남자들이 많지만 김춘추도 책임지지 못하는 찌질이었다.

 

일연선사는 삼국사(삼국사기)에 나온 이야기는 거짓말 말이고 김춘추는 비겁하게 나몰라라 했다가 선덕여왕과 김유신의 합동작전에 어쩔 수 없이 문희를 받아들였다고 까발린다.

 

 하지만, 일연선사도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사실 선덕여왕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고 선덕여왕이 공주시절에 벌어진 일이다. 왜냐하면 선덕여왕 재위 기간는 632~647년까지였다.

 

 

위 사건이 정확이 어떤 시기에 일어난 일인지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역사학자들은 단순히 검증도 하지 않고 삼국유사의 기사를 보고 선덕여왕시기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확히는 언제였을까? 당연히 김법민이 언제 출생했는지를 알면 된다. 그런데 김법민이 언제 태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선덕여왕 시기라고 이야기할 뿐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헌고증에는 단순히 써 있는 대로  받아 들이면 안 된다. 교차검증이 필요하다.

 

   

김법민이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김법민의 동생인 김인문에 대한 기록이 삼국사기 열전에 나온다. 김인문은 진덕여왕 5651년 당나라 숙위로 떠난다. 이때 나이가 23살이라고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김인문(金仁問)은 자()는 인수(仁壽)이고, 태종대왕의 둘째 아들이다. 어려서 학문을 시작하여 유가(儒家)의 책을 많이 읽었고, 겸하여 장자(莊子)·노자(老子)·불교의 책도 읽었다. 또한 예서(隷書)와 활쏘기·말타기·향악(鄕樂)을 잘 하였는데, 행동의 법도가 수수하고 세련되었으며, 식견과 도량이 넓어 당시 사람들이 추앙하였다. 영휘(永徽 2(진덕왕 5: 651), 인문의 나이 23세에 왕명을 받아 대당에 들어가 숙위하였다. - 삼국사기 열전 김인문

 

그렇다면 651 23살이니 김인문은 629년생이다. 당연히 김인문의 큰형인 김법민(문무왕)은 629년 이전에 태어나야 한다. 629년이면 선덕여왕 시기(632~647)가 아닌 진평왕 때임을 알 수가 있다


김춘추가 문희를 받아 들일수 없었던 이유는 김춘추의 나이에서 쉬이 알 수 있다.  김춘추는 602년생이니 629년 이전이면 28살이다. 김춘추는 이미 결혼한 상태인 유부남이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김춘추가 문희를 거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고타소의 생모가 살아있기 때문에 문희를 받아 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대왕의 꿈에서 김춘추가 결혼한 상태에 있고 복중에 애를 가지고 있는 보라 김춘추의 아내라고 나오고 있지만, 이는 실존인물이 아니다. 박창화 화랑세기에 나온 이야기를 갖다 쓴것이다.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하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김춘추가 진평왕의 후비인 보량군주와 결혼시키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보량군주가 아닌 보량의 자매인 보라와 결혼한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했다면 김춘추는 할아버지 진평왕의 후비인 할머니랑 결혼했다는 망나니 짓을 한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런데 왜 보희는 문희에게 김춘추를 양보했을까? 김춘추가 유부남이기 때문에 그랬을까? 그렇지가 않다.

 

언니인 보희에게 문제가 있어서 문희가 대타로 김춘추를 받아들였다고 했다. 보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보희에게는 여자로서 차마 말할 수 없고 여자라면 다는 관계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보희는 생리를 하고 있으니 김춘추를 받아들일 수 가 없는 것이다. 요즘도 마찬가지이지만,당시에도 오라버니에게 나는 그날이니 문희에게 대타를 뛰게하세요라고 말하지 못하고 아프다는 핑계를 댄 것 뿐이다.

 

단순히 그날이라고 말을 하면 결혼한 사람이나 애인을 둔 남자들은 관계를 할 수 없다는 말이거나 실제로 그날이구나 잘 알아 듣는다. 보희는 김춘추와 맺어질 운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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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houseinhanoi.com/houses/properties/2/0 BlogIcon hanoi houses for rent 2013.05.06 1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김춘추 최수종은 아내인 보라궁주를 화재로 잃어 버릴 뻔 한다.

 

진평왕은 승만왕후에게 속아서 보량군주와 보로전군을 궁밖으로 내 쫓아 낸다.


덕만공주는 김춘추가 화랑도를 겨냥해서 감찰을 강화하자 화랑도와 김춘추의 감찰기관간에 관계를 개선시키고자 축국대회를 개최한다.

 

김춘추는 보희의 눈에 띄었지만, 실제 김춘추와 야합하는 이는 문희였다. 김춘추는 잠에 깨어나 문희를 보고 경악한다. 같은 시간 때 보량은 임신한 상태에서 김춘추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임신한 아이는 김춘추의 딸로 고타소임을 짐작할 수 있다. 고타소의 죽음은 대왕의 꿈에서 김춘추가 어렸을 때부터 삼한일통을 꿈꾸었다고 나오지만, 실질적으로 백제와 원수가 되는 계기가 되고, 김춘추는 이때부터 고구려, , 당나라로 종횡무진 군사원조 외교전을 벌린다.

 

한마디로 대왕의 꿈에서 김춘추가 어릴 때부터 삼한일통을 꿈꿨다는 말은 김영삼이 일제식민지 시대 어릴 때부터 대통령이 꿈이였다고 하는 말처럼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다.

 

대왕의 꿈 작가들은 김춘추를 영웅으로 만들고 싶은 모양이지만, 실제 대왕의 꿈에서 나타난 김춘추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김춘추가 아무생각 없이 살다가 자기의 개인 원수를 갚겠다고 중구난방 천방지축 똘아이 짓을 했다는 것을 증명해줄 뿐이다.

 

더군다나 대왕의 꿈 작가는 아역 김춘추를 내세워 안하무인 천방지축 엉덩이에 뿔난 망아지 로 만들어 버렸다. 한마디로 김춘추는 어릴적부터 미친놈이였다는 것이다.

 

대왕의 꿈은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박창화의 소설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화랑세기에서 빌려온 것은 화랑 풍월주와 화랑제도, 등장인물들이다.

 

김춘추의 처 보라이나 보로전군, 보량군주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등장하지 않는다.

 

화랑세기를 빌려왔다면 박창화의 후손들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다. 하지만, 어떠한 행동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대왕의 꿈에서 김춘추와 김유신이 임신서기석의 맹세처럼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에서 맹세를 하고 석각에 담았다는 묘사를 하였다.

 

 

신라시대 진평왕 시기 임신년은 612년이다. 김유신 나이 17, 김춘추 10살 때 일이다. 김춘추가 대왕의 꿈에서는 신성이 있다고 하지만, 10살에 북한산 정상에 올라가 대망을 꿈꿨다고 믿는 시청자는 작가들 빼고 없을 것이다.

 

그 후 시간이 지나 김춘추가 어른이 되고 승만 왕후가 등장하고 있다. 덕만공주의 어머니 마야는 이제 등장하지 않는다. 대왕의 꿈에서 가장 권력의 정점에 있는 진흥왕비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김유신과 천관녀는 어찌되는 것인가?

 

 



김춘추와 문희의 사랑이 싹트던 때를 역산한다면 진평왕 시기 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그 동안 어떠한 역사학자도 선덕여왕이 김춘추와 문희의 중신애비라고 하였다.

 

 

그런데 박창화는 자신의 화랑세기에서 무슨 소리 김춘추와 문희를 엮어준 사람은 진평왕 시기 덕만공주일 수밖에 없다며 글을 남겼다. 더불어 김법민은 626년생이라고 목을 박았다.

 

사실 글쓴이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을 가지고 김춘추와 문희의 사랑이 이뤄진 때는 진평왕 시기 덕만공주라고 논리적 논증을 하여 증명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 대한 상식중 잘못 알려진 사실이 있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우리가 대표적으로 잘 알고 있는 김유신과 김춘추와 문희에 관한 이야기 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니 관련 원글을 인용하지는 않겠다
.

보희가 오줌발 꿈을 꾸고, 문희가 꿈을 산다. 그리고 문희는 춘추와 결혼하고, 왕비로 등극한다. 문희로서는 언니 보희의 꿈을 산 대가로 왕비를 얻었으니 요즘으로 치면 로또 대박을 이르킨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꿈을 사고파는 데 주저하거나 꿈을 산 대가로 로또나 복권을 사고, 대리 소개팅을 나가기도 한다. 한마디로 꿈에 대한 <문희증후군>이지 않을까 한다
.

유신이 김춘추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공작을 한다. 그리고 처음 맞 누이인 보희를 엮어 주려고 했지만 보희는 때마침 아퍼서 춘추와 관계를 할 수 없었다. 때마침 아퍼서 관계를 할 수 없는 아픔이라면 츠자들과 결혼한 남자는 츠자가 아픈 원인을 캐치했을 것이다. (요건 다른 식으로 포스팅 할까 한다
)

 


그래서 대타인 문희가 춘추와 관계를 하였다. 하지만 사단이 일어 났다. 춘추는 임신한 문희를 자신의 처로 받아드리려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요즘 처럼 성이 개방화된 사회에서도 여자를 임신 시켜놓고,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파렴치한 같은 행동을 김춘추는 한것이다. .당시 많은 처/첩을 거느린 신라 사회에서 문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러니 당시 신라사회로 봤을 땐 김춘추는 지탄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

이에 공작의 달인인 김유신은 경주 한복판에 장작더미를 올려 놓고 문희를 죽이려는 시늉을 한다. 이는 김춘추에게 협박하기 위한 것이다. 남산에 놀이를 하려 가던 선덕여왕이 이 광경을 보고, 말리며, 김춘추에게 문희를 책임지도록 하였다그래서 문희의 성공시대와 김유신가의 성공시대가 열린 것이다
.

대략, 간략하게 요약하면 문희의 꿈이 미치는 효과를 이야기 했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

우리가 역사에 대한 상식에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살펴보자. 역사를 조금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잘못된 상식을 전파하는 첨병으로 할동 하고 있다. 그러니 잘못된 상식이 고착화 되어 버린다. 그리고 잘못된 상식이 역사가 된다. 소설 삼국지를 읽고 그 것이 중국 삼국 사이에 진짜 있었던 일처럼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

문희 사건에서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

문희, 보희, 김유신, 김춘추, 선덕여왕 그리고 사건 결과로 잉태된 문희 뱃속의 김법민(문무)이다
.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선덕여왕이 문희와 김춘추를 엮어 주었다는 말이 상식이 되고 정설이 되고 사실화 되었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잘못된 상식이고 잘못된 역사지식이다
.

그럼 얼마나 잘못된 상식인지 문희의 뱃속의 김법민으로 부터 추적을 시작해 보자.

문무왕(文武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법민(法敏)이고 태종무열왕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 문명왕후(文明王后)인데, 소판(蘇判) 서현(舒玄)의 막내딸이고 유신(庾信)의 누이이다.

그 언니[]가 꿈에 서형산(西兄山) 꼭대기에 올라앉아서 오줌을 누었더니 온 나라 안에 가득 퍼졌다. 꿈에서 깨어나 동생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 동생이 웃으면서내가 언니의 이 꿈을 사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비단치마를 주어 꿈값을 치루었다. 며칠 뒤 유신이 춘추공(春秋公)과 축국(蹴鞠)을 하다가 그만 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떼었다.

유신이 말하기를우리 집이 다행히 가까이 있으니 청컨대 가서 옷고름을 답시다.”라 하고는 함께 집으로 갔다. 술상을 차려 놓고 조용히 보희(寶姬)를 불러 바늘과 실을 가지고 와서 [옷고름을] 꿰메게 하였다. 그의 언니는 무슨 일이 있어 나오지 못하고, 동생이 나와서 꿰메어 주었다. 옅은 화장과 산뜻한 옷차림에 빛나는 어여쁨이 눈부실 정도였다. 춘추가 보고 기뻐하여 혼인을 청하고 예식을 치루었다. 곧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법민(法敏)이다. - 삼국사기 문무왕 원년


   

삼국사기는 "춘추가 기뻐하여 혼인을 청하고 예식을 치루었다. 곧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법민" 즉 문무왕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연선사는 "웃기지 마라, 기뻐하며 혼인을 청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임신한 문희를 김춘추가 살살 피하다. 선덕여왕 때문에 할 수 없이 결혼했다"라고 까발리고 있다. 이처럼 삼국유사는 삼국사기가 하지 않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래서 삼국유사는 참으로 소중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춘추공은 유신의 뜻을 알고 드디어 아지와 관계하고 이로부터 자주 왕래했다.  유신은 그 누이가 임신한 것을 알고 꾸짖었다.  "너는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아이를 배었으니 그게 무슨 일이냐."  그리고는 온 나라 안에 말을 퍼뜨려 그 누이를 불태워 죽인다고 했다.  

어느 날 선덕왕(善德王)이 남산(南山)에 거동한 틈을 타서 유신은 마당 가운데 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질렀다.  연기가 일어나자 왕이 바라보고 무슨 연기냐고 물으니, 좌우에서 아뢰기를, "유신이 누이동생을 불태워 죽이는 것인가 봅니다"했다.  왕이 그 까닭을 물으니, 그 누이동생이 남편도 없이 임신한 때문이라고 했다.  왕이 "그게 누구의 소행이냐"고 물었다.  이때 춘추공은 왕을 모시고 앞에 있다가 얼굴빛이 몹시 변했다.  왕은 말한다.  "그것은 네가 한 짓이니 빨리 가서 구하도록 하라."  춘추공은 명령을 받고 말을 달려 왕명(王命)을 전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고 그 후에 버젓이 혼례를 올렸다. - 삼국유사


여기서 김법민의 태어난 때를 알 수 있는 힌트가 나온다. 선덕여왕(632~647) 재위시절이다. 그렇다면 김법민(문무)는 왕위에 오른 661년에 선덕여왕 초년에 태어났다면 30살이고, 선덕여왕 말년에 태어났다면 14살이 된다.

하지만, 위사실로는 법민의 나이를 유추할 수 가 없다. 그래서 김춘추의 자식중 김법민의 바로 첫번째 동생인 김인문의 기록을 살펴보자. 김인문의 출생을 알 수 있는 기사가 나온다.

"김인문(金仁問)은 자()는 인수(仁壽)이고, 태종대왕의 둘째 아들이다. 어려서 학문을 시작하여 유가(儒家)의 책을 많이 읽었고, 겸하여 장자(莊子노자(老子불교의 책도 읽었다. 또한 예서(隷書)와 활쏘기·말타기·향악(鄕樂)[주석300]을 잘 하였는데, 행동의 법도가 수수하고 세련되었으며, 식견과 도량이 넓어 당시 사람들이 추앙하였다. 영휘(永徽 2(진덕왕 5: 651), 인문의 나이 23세에 왕명을 받아 대당에 들어가 숙위하였다. - 삼국사기 열전 김인문


김법민의 아우인 "김인문은 영휘(永徽 2(진덕왕 5: 651), 인문의 나이 23세에 왕명을 받아 대당에 들어가 숙위하였다." 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김인문은 629년생이 된다.

김인문이 김법민과 터울이 없는 연년생이라고 해도 김법민은 628년 이전 출생하여야 한다. 물론, 김인문이 늦은 629년생이고, 법민이 629년 정월 생이라면 같은 나이가 될 수 있다. 내 친구도 11개월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자식들을 둔 사람도 있다. 최근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천명과 덕만이 쌍둥이  일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렇다고 해도 김법민은 629년 이전 생임은 분명해 보인다
.

이제 결론으로 들어가 보자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종합해보면 장작더미 위에 놓인 김법민, 문희 모자를 살려준 사람은 선덕여왕이 아닌 공주 덕만이 될 수 밖에 없다선덕(덕만) 632년에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니
둘째 김인문도 진평왕시기에 태어났는데 맏아들 김법민(문무왕)이야 오죽 겠는가? 629년은 진평왕 51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김춘추의 나이는 언제였을까? 605년생인 김춘추이니 최소 21~24살때의 일이다.

그런데 왜 대왕의 꿈에서 덕만공주의 지기삼사는 나오지 않는것일까? 덕만이 왕이 될 결정적인 이유가 지기삼사중 모란꽃이야기 인데 말이다. 아무리 김춘추가 주인공이더라도 할 일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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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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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에서 육지로] 사랑하는 부모님께

 

대왕의 꿈이나 대부분의 사극에서 김춘추의 아버지를 김용춘이라고 하고 김용춘김용수를 다른 이름을 가진 동일 인물이라고 한다.

 

물론, 그런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릴 적 이름과 성인이 되었을 때 이름은 다른 경우가 많다. 글쓴이도 2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조카도 집에서 부르는 이름과 가족등록부에 올라있는 이름이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글쓴이(갓쉰동)이 다른 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예전에도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김용춘김용수는 동일인물이 절대로 될 수 없는 기록들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용수와 용춘의 기록들을 다 뽑아 보자. 그럼 확실히 이들이 동일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622년 진평 44(622) 2월에 이찬 용수(龍樹)를 내성 사신(內省私臣)으로 삼았다. - 삼국사기 진평왕 44

629
51(629) 가을 8월에 왕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였다. - 삼국사기 진평왕 51


635
년 선덕 4 10월에 이찬 수품(水品)과 용수(龍樹) <또는 용춘(龍春)이라고도 하였다.>를 보내 주·현을 두루 돌며 위문하였다.- 삼국사기 선덕왕 4

643년 선덕 3 16일에 자장 돌아와 탑을 세워야 한다고 선덕왕에 보고, 이후 이간(伊干) 용춘(龍春; 혹은 용수龍樹)이 그 역사를 주관하는데 거느리고 일한 소장(小匠)들은 200 명이나 되었다. - 삼국유사 황룡사 9층 목탑

654
3월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의 아들 이찬 용춘(龍春)<또는 용수(龍樹)라고도 하였다.>의 아들이다. - 삼국사기 29대 춘추

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 삼국유사 29대 춘추

654
년 태종 원년(654) 여름 4월에 왕의 죽은 아버지를 문흥대왕(文興大王)으로 추봉(追封)하고 어머니를 문정태후(文貞太后)로 삼았다 - 삼국사기 김춘추 1 4

 

삼국사기는 춘추의 아비로 용춘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고, 삼국유사는 용수를 춘추의 아비라고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서로 다르게 말을 하니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용수와 용춘을 철저히 분리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용수를 별도로 한번 언급하고 있고, 용춘을 한번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 이들은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통설이 용춘(용수) 또는 용수(용춘)으로 이들을 같은 동일인으로 취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용춘(金龍春) 생몰년 미상. 신라시대 왕족. 일명 용수(龍樹). 진지왕의 아들이며 태종무열왕의 아버지. 어머니는 지도부인(知道夫人) 박씨이고, 부인은 진평왕의 딸인 천명부인(天明夫人) 김씨이다.
아버지 진지왕의 신분은 성골이나, 왕위에 재위한 지 4년 만인 579년에 폐위당하였으며, 용춘의 아들인 김춘추의 신분은 진골로 되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표로 만들면 다음과 위와 같다.

 

 

삼국사기에 용수가 등장한 때는 6222등급인 이찬 내성사신이다. 삼국사기에 용춘은 629 8월 고구려 낭비성을 공격할 때 대장군으로 파진찬(4)이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도 용춘과 함께 대장군으로 부장군 김유신과 함께 참전하는 기록이다.

용수는 이찬(2)급이고 용춘은 629년에 대장군 파진찬(4)위에 해당한다고 기록한 것이다. 용수와 용춘이 동일 인물이라면 2 등위 이찬이 7 6개월 후에 4등위 파진찬이 되었다는 뜻인데 이는 국무총리가 장군이 되어서 전장에 참여하는 꼴이 된다. 또는 장군이 계급이 강등되어 일개 사병으로 참전하는 꼴이다. 이순신처럼 백의종군을 하려면 충분히 그만한 기록이 있어야 한다.

 

635년 용수 혹은 용춘이 이찬 수품과 함께 주군을 위무하고 있다. 만약, 용수와 용춘이 동일인물이라면 622년 이찬(2등급)에서 629년 파진찬(4등급)으로 강등되고 635년 이찬(2등급)으로  직위가 강등되었다고 승급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결론은 김용수김용춘은 별개의 인물이라는 뜻이다. 또한, 용수는 내성사신과 황룡사9층목탑 관리자처럼 문에 치중한 인물이고 용춘은 파진찬 대장군으로 무에 치중한 인물이다.

 

삼국사기도 용수와 용춘을 별개의 인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635 1월 주.군을 순시하는 자가 용수인지 용춘인지를 알 수 없다고 하고 있으며, 용춘이 춘추의 아비인 것 같은데 용수라고 하는 기록도 있다는 것을 남겨 두었다.

 

일단 용수와 용춘은 별개의 인물임이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용수와 용춘이 형제라면 누가 형일까? 직급으로 봐서 용수가 형이고 용춘이 동생일 수 밖에 없다.

 

김용수의 아버지 진지왕(사륜/금륜)은 진흥왕(24)의 둘째 아들로 신라 25대왕 576~579년까지 재위하다 폐위되었다. 진흥왕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던 동륜태자의 아들 진평왕은 나이가 어려 왕이 되지 못하고 작은아버지 진지왕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성인이 되자 진평왕을 지지하는 세력이 진지왕을 몰아내고 왕권을 회복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왕의 꿈처럼 진평왕이 무능한 왕은 아니다. 기록에도 진평왕은 기골이 장대하고 고구려가 북한산성을 공격하자 직접 전쟁을 수행할 만큼 강골기질을 갖고 있었다.

 

어쨌든, 진지왕이 죽은 때는 비형랑과 도화녀의 전설 때문에 폐위된 이후 얼마간 생존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도 김용수나 용춘은 비형랑보다는 형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용수 용춘 형제는 진지왕이 폐위되고 비형랑이 태어나기 전 늦어도 579~582년 이전 임을 알 수 있다.

 

<대왕의 꿈>이나 MBC <선덕여왕>박창화의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하고 있지만, 선덕여왕은 퓨전사극이기에 화랑세기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특히 미실을 등장시킨 점은 선덕여왕 드라마가 정통사극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반면에 KBS <대왕의 꿈>은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하여 몇몇 인물과 화랑의 체계를 따 왔지만, 미실도 등장하지 않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실 화랑세기는 박창화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창작한 요즘에도 보기 드문 정교한 소설이다.

 

화랑세기는 용수와 용춘을 별도 인물로 보고 있고, 진평왕의 딸 천명이 용춘을 좋아했지만, 용수와 혼례를 하고 잠자리는 용춘과 했다며 김춘추를 김용춘과 천명공주의 아들로 만들었다. 그리고 용수가 일찍 죽자 동생 김용춘과 합법적으로 결혼시키고 김춘추를 김용춘의 자식으로 만들었다. 결국 김춘추를 생물학적, 법적으로 김용춘의 자식으로 만들었다. 화랑세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교묘히 절충해서 두 사서에 위반되지 않게 창조를 하고 있다. 소설로서 이보다 정교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그렇다면 김춘추는 김용수김용춘 중 누구의 아들일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보더라도 누구의 자식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김춘추의 어머니 천명공주만이 아는 사실일지 모른다. , 김용수김용춘과는 직급에서 알 수 있듯이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을까? 622년 이찬(2)이 된 용수와 7년 후인 629년 파진찬(4)급으로 나온 김용춘이니 말이다.

 

진흥왕은  534년생으로 7살인 540년에 왕위에 올랐다. 진평왕의 아버지 동륜태자는 566년 태자가 되었다가 572년 죽었다 진평왕은 57915살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니 진평왕은 565년생이다. 진흥왕 32살에 원손인 진평왕(백정)이 태어난 것이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 564년생으로 추측된다. 김서현629년 용춘과 같은 대장군이지만, 직급은 1단계 높은 소판(3등급)급 대장군이었다. 김서현과 진평왕은 비슷하거나 동년배이지 않았을까? 더불어 김용수는 진흥왕의 둘째인 진지왕(사륜/금륜)의 아들이므로 진평왕(백정)이나 김서현보다 어린 565년 이후에 태어났을 것이다. 결국엔 김용춘김서현보다 나이가 한참은 적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천명공주는 580년 전후에 태어났을 것이다. 602년생 김춘추와 천명공주의 나이를 추측할 때 아버지나 삼촌뻘인 김용수보다는 비슷한 연배의 김용춘와 결혼하고 김용춘이 김춘추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왜 대왕의 꿈의 시대배경은 609년으로 춘추나이 7~8살인데 채상우(99년생)으로 14살 중학생이 유치원 아역을 하고, 천명공주는 많아봐야 20 중후반 인데 조경숙은 1962년생으로 51살이 나오고, 김용춘은 많아봐야 30대 초반 밖에 안되었을 텐데 정동환:1949년생 64세가 나올까? 

 

좀더 개연성 있는 사극보기가 그렇게 힘든 것인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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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ornets 2012.09.24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평왕이 565년생이라는 기록은 어디에 있나요?


<>에서 사비로 들어온 김춘추를 은고는 암살하려 하지만, 계백이 김춘추를 살려낸다.

 

사실 김춘추가 642 7월 미후성을 비록한 40개성이 함락된 직후 백제의 수도에 당의 복식을 입고 나타날 이유가 없지만, <계백>에서는 못하는 것 없다.

 

오죽하면 <천일의 약속> 작가인 김수현<뿌리깊은 나무>에 대해서 똘복이가 언제 어디서한문을 배웠지 하는 드라마 개연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였을까?

 

더군다나 김수현은 자신의 트위터에 상상으로 쓸 수 없는 부분은 철저히 자료조사를 한다며 요즘 드라마의 극중 개연성 뿐만 아니라 무분별하게 상상으로 쓸 수 없는 부분인 역사적인 팩트와는 다른 드라마를 쓰는 작가에 대한 일침을 하였을까?

 

김수현의 일침에 벗어날 대한민국 사극작가는 단 한 사람도 없다.

<
선덕여왕>을 쓴 김영현은 선덕여왕에서 역사와 일치하는 단 하나의 장면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뿌리깊은 나무>에서 조차 역사와 일치하는 단 하나의 장면도 넣지 않았다.

사극을 쓰는 작가가 역사를 공부하지 않고 시나리오를 쓴다는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어떠한 비난이나 비판을 받지 않고 쓸 수 있는 영역이 현대극이 아닌 시대극인 사극류이다.

 

계백도 이에 벗어날 수가 없다.
 

 2011/10/25 - [역사IN드라마/뿌리깊은나무] - 천일의 약속, 김수현 뿌리깊은 나무 개연성 의문, 비난은 마녀사냥

<계백>에서 계백은 전쟁의 신으로 나온다. 노비였을 때부터 고구려의 성을 함락하고, 백제로 귀환하기 전에 노비로서 가잠성도 공취를 한다. 이 당시 가잠성은 백제의 성이었는데 백제가 공취하고 전쟁영웅이 되는 황당설정을 하였었다.

 

 

가을 7월에 왕은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를 쳐서 미후성(獼猴城) 40여 성을 함락하였다. 8월에 장군 윤충(允忠)을 보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였다. 성주 품석(品石)이 처자와 함께 나와 항복하자 윤충은 모두 죽이고 그 머리를 베어 서울[王都]에 전달하고, 남녀 1천여 명을 사로잡아 나라 서쪽의 주·(州縣)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그리고] 군사를 남겨 두어 그 성을 지키게 하였다. 왕은 윤충의 공로를 표창하여 말 20필과 곡식 1천 섬을 주었다.
-
삼국사기 백제 의자왕 2 642


11
(642) 봄 정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가을 7월에 백제 왕 의자(義慈)가 군사를 크게 일으켜 나라 서쪽 40여 성을 쳐서 빼앗았다. 8월에 또 고구려와 함께 모의하여 당항성을 빼앗아 당나라와 통하는 길을 끊으려 하였으므로 왕이 사신을 보내 [] 태종에게 위급함을 알렸다. 이 달에 백제 장군 윤충(允忠)이 군사를 이끌고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는데, 도독 이찬 품석(品釋)과 사지(舍知) 죽죽(竹竹용석(龍石) 등이 죽었다.
-
삼국사기 신라 선덕왕 11 642


 의자왕은 왕이 된 이듬해 642년 가을 7월 대대적으로 직접 군대를 이끌고 신라의 성을 침략하기 시작하고 미후성을 비롯한 40성을 공취 한다. 하지만, <계백>에서는 계백이 미후성을 비롯한 39개성을 공취 하자, 계백에게 질투심이 있었던 의자왕이 계백의 공을 빼앗기 위해서 숟가락을 얹었다고 그리고 있고, 계백이 모든 일을 하였다고 그렸다.


 

<계백>에선 의자왕은 자신을 군주로 만들어준 계백의 여자인 은고도 빼앗고, 계백의 공을 가로챈 몰렴치에 파렴치한 찌질한 군주다.

 

642년은 삼국시대 전환기가 되는 해이다. 백제가 신라를 압박하자 신라는 이때부터 당나라에 구원을 요청한다. 하지만, 백제는 고구려와 연합하여 신라를 압박하는 정책을 취하여 신라는 누란위기에 처한다.

 

선덕여왕시 엉뚱 대야성 설정


642
8월에는 의자왕은 윤충에게 1만의 군대를 주어 대야성(합천)을 공취하도록 하지만, 대야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대야성 성주는 김춘추의 사위로 품석이었는데 품석은 검일의 아내를 취하는 몰염치한 범죄행위를 한다. <계백>에서 의자왕이 계백의 연인 은고를 빼앗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분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검일은 윤충과 내응하여 대야성 내에서 불을 질러 버린다.

 

대야성에 돌입한 윤충은 품석과 고타소의 목을 베고 모척과 검일을 우대한다. 검일과 모척은 백제에 귀부하여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백제의 선봉에 서서 신라와 맞선다. 백제가 멸망할 때 모척과 검일은 목이 베어 버려진다.

 


하지만, <계백>에서는 못하는 것은 단지 연애뿐인 계백이 대야성의 선봉에 섰다가 질투심에 눈이 먼 의자왕이 흥수에게 계략을 하여 모척을 통해서 검일을 꼬시고 내흥하여 대야성을 함락하게 하고, 신라가 배후를 칠지 모르니 계백은 후방군이나 맡으라고 한다.

 

이에 계백을 비롯한 부하들은 다 넘어온 대야성의 공을 의자왕이 빼았었다고 투덜거린다. 그런데 이상하다. 백전백승 전신인 계백이 대야성을 3일 동안 공격하고도 공취를 못하다니. 달랑 40명으로 서곡성을 공취한 계백의 운도 다했나 보다..

 

의자왕은 김품석과 고타소를 불러다가 목을 베어버리라고 하자, 계백이 쌍심지를 들고 왕명에 반항을 한다. 신은 황명을 받들 수 없습니다 항복하지 않는 적장의 목을 베는 것은 전쟁에서 예의다. 당시에도 제네바협정은 없었을지라도 전쟁의 룰이 있었다. 항복한 장수는 우대하고 군사에게도 우대를 하고 자국의 신민으로 삼는다. 설마 고타소와 품석이 신라를 배신하고 백제에 귀부라도 했겠는가?

 


더군다나 의자왕은 뜸금 없이 겨우 품석과 고타소를 죽이면서
할아버지의 원수를 들먹인다.

 

의자왕이 들먹인 할아버지는 누구일까? 아마도 성왕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대부분 광개토태왕이 백제에 원수를 진 이유가 고국원왕(사유)가 백제 근초고왕에게 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철천지 원수로 치자면 모용씨의 연나라다. 미천왕의 무덤은 파헤쳐지고 국내성은 박살나고 미천왕비는 연나라에 끌려가는 수모까지 당했었다. 단순히 눈먼 화살에 맞았다고 원수가 되기나 했겠나?

 

반면에 백제는 한강 유역을 백제의 배신으로 빼앗기고 성왕까지 죽었으니 백제의 원수는 철천지 원수인 것을 사실이다. 그래서 위덕왕시기부터 백제는 끝없이 신라를 공격한다. 그런데 무왕이 신라 진평왕 3째 딸 선화공주와 결혼한다는 설정은 어설퍼 보인다. 오죽하면 삼국유사를 쓴 일연조차 미륵사 연기조사를 채록하고 의심스럽다고 했겠는가?
 


삼국사기 백제왕력으로 보면 성왕->위덕왕(창왕)->혜왕(성왕2자)->법왕->무왕->의자왕 순이 된다.

 

삼국사기 계보라면 의자왕의 할아버지는 법왕이 된다. 무왕이 위덕왕의 형제라면 의자왕의 할아버지는 성왕이 된다. 하지만, 어떠한 사료에도 무왕이 위덕왕이 형제라는 자료는 없다. 북사만이 중간 생략이 된채 무왕이 위덕왕의 아들로 추측할 뿐이다.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의자왕의 "할아버지 원수"는 위덕왕(창왕)이 되는데 무슨 원수를 갚겠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물론, 성왕을 뜻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계백>에서 의자왕이 대야성에 나타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실제는 항복한 신라군과 백성 수천 명은 백제의 서쪽 주군에 나눠져 배치된다. 설령 의자왕이 <계백>에서처럼 직접 군을 이끌고 대야성을 공격했더라도 <계백>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키높이 구두신은 이서진?


<계백>에서는 계백같이 않은 계백 하나 살리자고 정확히는 계백이 아닌 주인공 이서진 하나 살리자고 수없이 많은 백제의 장군들을 모욕하고 있고, 의자왕을 모욕하고 있다. 더군다나 실제 의자왕의 비인 은고를 정체를 알 수 없는 계백의 연인으로 만들어 대야성의 품석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에 불만을 품은 은고가 계백을 찾으려는 일념으로 백제를 멸망의 길로 이끈다는 스토리가 <계백>의 물밑에 흐르는 설정이다.

 


막장극의 대표주자로 김수현을 지목하지만, 실제 김수현 작품에는 개연성과 리얼리티가 살아있다. 불륜드라마로 따져도 김수현보다는 <계백>의 작가나 <공주의 남자> 작가를 따라올 자는 없다. 최소한 김수현은 상상력을 발휘할 부분에 상상력을 발휘하지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할 부분에 대한 자료조사는 충실히 한다.

하지만, 사극작가들은 자료조사 자체도 안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할 부분까지 자신들의 상상력으로 글을 쓰고 창작의 자유라거나 시청자가 원해서라고 자신들의 무능을 시청자들에 전가하기 까지 한다.

 


어쨌든 <계백>에서 무왕의 충신으로 나오는 윤충은 의자왕자가 가잠성을 점령하는 시점에 홀연히 사라지고 의자왕자가 사택비와 싸울때도 나타나지 않고, 정말 나타나야 할 때는 사라지고 없다. 사실 윤충이 <계백>에 등장하는 이유는 대야성 때문이다. 그런데 대야성의 주인공인 윤충이 드라마 <계백>에는 나오지 않을 만큼 개연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제작자 멋대로 고증없이 극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하겠다.

 

어쨌든, 역사적으로 사실 계백은 그리 뛰어난 장수는 아닌 듯 하다. 왜냐하면, 대부분 정예기병으로 채워졌을 중앙군 오천의 결사대를 가지고도 황산벌에서 식량배달 수송부대나 다름없던 오만의 신라 잡병들의 4번 공격을 막고 죽기 때문이다.

 
실제 백제에는 명장들이 많이 있었다. 백제 부흥군을 이끈 무왕의 조카이자 의자왕의 사촌인 부여복신이 있었고, 여자신(여자진)도 있었다. 2차 대전에서 일본의 왕은 히로시마와 나카사기에서 원자폭탄을 맞고 항복한다. 이에 태평양에 있던 일본군과 중국, 만주, 한반도에 있던 일본군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한다.

 

마찬가지로 의자왕이 항복하자 백제군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한다. 하지만, 복신과 여자신은 무기가 없는 상황에서 당군과 신라군을 몰아내고 백제의 대부분의 성을 회복한다.

 

백제 부흥군을 막는데 당은 30만의 대군을 동원한다. 660 13만 당군 보다 더 많은 병사들이 부흥군과 싸운 것이다.

 

<계백>의 작가는 계백이 백제의 삼충신으로 성충과 흥수와 함께 계백이 추앙 받은 이유는 백제가 멸망에 즈음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신라군에 맞섰다가 죽었기 때문이지 전투를 잘했기 때문에 추앙 받는 존재가 아님을 모르는 듯 하다.
 
임진왜란 시 신립은 충주의 탄금대에서  왜군을 맞아 싸우지만, 조선 군의 유리한 전술을 마다하고 왜군에 유리한 전투를 하다 패전하고 만다. 신립을 전쟁영웅으로 추앙하지는 않는다 단지 전쟁에 죽은 충신으로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원균이 칠전량 전투에서 조선 수군을 몰살시키지만, 이를 전쟁영웅이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원균은 이순신보다 높은 등급의 공신이 되었다가 이순신의 등급이 원균과 동급이 된다. 어쨌든 원균도 충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만약 <계백>처럼 전쟁의 신은 아닐지라도 적군의 사기를 높이는 전략을 구사하는 전술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신라군은 백강의 당군과 신라군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신라군과 당군은 식량난에 고립되어 철군할 수밖에 없었다.

 

계백은 겨우 5천의 군대를 지휘했었다. 단독으로 오천의 군대를 통솔한 것이 아니라 달솔 상영과 그 위에 좌평도 있었다. 백강전투에서 당군 13+신라군 100척 군사와 2차례 전투중 죽은 백제군사만 해도 수만이었다. 그러고도 백제의 주력군은 백강전투에 투입되었고, 당 신라연합군은 사비성을 중심으로 하루거리에 진을 치고 백제와 대치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기술은 다음기회에..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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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meetthetanners.com BlogIcon 김성환 2012.01.04 2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박 겉 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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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일을 나의 친구를 계속, 이거 정말 끝내 준다

  4. Favicon of http://heaven.asiareps.cl BlogIcon 브룩 2012.04.03 2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은 오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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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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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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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제 말하면 온다이해가 안갑니다.

  9. Favicon of http://blogskinny.com/?p=Recent BlogIcon Isabel 2012.06.18 2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쟁의 신으로 나온다. 노비였을 때부터 고구려의 성을 함락하고, 백

  10. Favicon of http://www.focaltablet.com/97-inch-tablet-pc_c408.html BlogIcon 9.7" tablets 2012.09.02 17: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탈한 세조를 비난하기 위한 또 하나의 좋은 소스를 제공한다. 세조가 나쁜놈 임

  11. Favicon of http://www.jihoy.com/ BlogIcon free car advertising 2012.09.17 2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서기에만 기록으로 남아 있다. 더군다나 일본서기에는 백제가 망한 이유를 의자왕에게 찾지 않고, 의자왕의 처 은고에게 원

  12. Favicon of http://www.freeshipping.org/blog/should-i-rent-or-buy/ BlogIcon estimated yearly cost of owning a dog 2012.11.14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긴것은 세종대왕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말로 세종 이도를 극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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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초옥은 너무나 쉽게 자신의 영혼을 연이에게 빼앗긴 것이 아닐까? 연이와 초옥은 별도의 몸과 영혼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날한시에 태어난 운명공동체였고, 전생에 한 몸이 딴 몸이 되어서 현생에 태어난 것이 아닐까?

  15. Favicon of http://www.boston.com/news/local/breaking_news/2008/06/ BlogIcon petsafe wireless fence 2012.12.26 2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한민국에서는 어떠한 비난이나 비판을 받지 않고 쓸 수 있는 영역이 현대극이 아닌 시대극인 사극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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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백에서 의자는 태자가 된다. 이때가 632년이다.


이듬해 계백은 무왕과 의자의 계략에 의해서 거열성의 군관으로 있다가 신라의 김유신의 동생 김흠순이 2천의 군사로 지키던 서곡성을 20명의 군인으로 공취하였다며 영웅이 된다.

가잠성 전투에서는 50명을 투입하고 몇 만의 군대가 있다고 뻥을 치더니 이제 아에 20명으로 2천의 군사를 무찔렀다고 대놓고 시청자를 우롱한다.


광개토태왕에서는 200여 군사로 수백이 지키고 있던 거란이 점령한 성을 빼앗었다고 사기를 치기도 한다.

시청자들이 아무리 봐도 몇십명 밖에 안되는 초등학교 교내 기마전을 보는것 같이 너무 심한 전쟁신이 아니냐고 비판을 하니 대놓고 그래 수십명 수백명이 성을 점령했다고 대놓고 사기질이다.

이때 의자는 신라 서라벌에 들어가 김춘추와 당항성을 두고 같이 사용하자는 협상을 한다.


하지만, 김춘추는 당나라 이세민이 건내준 모란도를 의자에게 주고, 의미를 해석하게 하고 정확한 뜻을 해석한다면 의자를 만나 협상하겠다고 말을 한다.
 

의자와 은고와 흥수, 성충은 모란도는 단순히 이세민이 신라에서 선덕여왕이 여자로서 왕이 된 것을 모독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고 해석하고, 모란도를 받고 선덕여왕이 쓰러진 이유는 신라 귀족들의 충성경쟁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의미를 해석한다.

하지만, 선덕여왕이 왕일때 모란씨 서되와 모란꽃 그림을 선물 받지 않았다. 진평왕 시절 선덕여왕이 어릴적에 진평왕에게 선물 한것이다.  


모란꽃 서되에 대한 해석은 아래 글을 참고 하기 바람.


2009/10/19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모란꽃 이야기는 나왔다? 나온다? 사실은
2009/07/23 -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모란씨 서되

2009/07/24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


김춘추는 의자왕자의 해석이 정확하다고 하면서 본격적으로 당항성을 두고 협상을 하자고 한다. 다만, 김춘추는 의자왕자에게 자신은 언젠가는 왕이 될 것인데, 자신의 딸 용보와 결혼을 한다면 당항성을 백제와 같이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도대체 백제가 무엇이 아쉬워서 빼앗긴 당항성을 같이 사용하자고 할까? 대당 교역로가 없어서 그랬을까? 백제에겐 당항성이 없더라도 대당교역로는 있다. 다만 신라가 당항성이 없으면 대당교역을 할 때 보다 멀리 해상교역로가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계백이 서곡성을 점령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의자왕자 일행은 서라벌을 벗어나 서곡성과 거열성을 통해서 백제 사비로 돌아온다.
 

거창 거열성

합천 대야성

진주 광의의 진주목 거열성



633년경에 백제가 거열성을 확보하고 있었을까? 천만에 만만의 말씀이다. 642년 7월 대야성 인근의 신라 40개성을 함락시키고, 642년 8월, 백제 윤충이 대야성(합천)을 점령하기 전까지 거열성은 신라 수중에 있었다. 거열성은 광의적인 해석으로 경상도 진주부에 해당하고 협의로 해석할 때는 경남 거창지역으로 비정한다.

 

가을 7월에 왕은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를 쳐서 미후성(獼猴城) 등 40여 성을 함락하였다. 8월에 장군 윤충(允忠)을 보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였다.
- 백제 의자왕 2년 642년


드라마 광개토태왕에서도 405년 광개토태왕 시절 빼앗은 후연의 요동성을 광개토태왕이 고국양왕 386년 태자 이전에 요동성을 지키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요즘 사극들은 하나같이 문헌고증조차 하지 않고, 자신들 맘대로 지명을 갖다 붙이고 세월도 자신들 맘대로 선후가 바뀌게 미래에서 과거로 진행되기도 한다.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광개토태왕, 계백, 사극 문헌고증 파괴해야 시청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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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계백도 참으로 이상한 드라마이다. 계백은 김유신의 생구가 되고, 가잠성을 공취할때는 가잠성 성주가 알천이었고 김유신을 이긴다. 이제 서곡성 성주는 김유신의 동생 김흠순이고 계백은 형제를 이긴 거라고 한다. 계백은 너희 형 김유신에게 이리 계백이 서곡성을 빼앗았다고 전하라고 말한다.


드라마 설정 상 거열성에서 서곡성이 지척 간으로 그리고 있지만, 서곡성이 어디인지는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건 633년 8월 백제가 신라 서곡성을 공취했다는 기록밖에 없다.  그것도 13일동안 공격해서 겨우 빼앗은 성이다. 계백이 20명으로 서곡성을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왕 34년(633) 가을 8월에 장수를 보내 신라의 서곡성(西谷城)을 공격하여 13일만에 함락하였다.
선덕왕 2년, 8월에 백제가 서쪽 변경을 침략하였다.

 



633년경 의자왕자는 김춘추와 만났는데 김춘추는 602년생으로 의자보다 조금 어린나이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김춘추는 수염이 덥수룩하고 33살인 의자왕자는 수염 한 자락 없다. 백제는 나이가 먹더라도 수염을 기르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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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유승호가 맡은 김춘추는 40이 넘어서도 수염 한 자락 없었다. 그런데 드라마 계백에서는 김춘추와 의자왕자의 설정이 바뀐 것이다. 도대체 일관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공주의 남자>에서나 <무사 백동수>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유승호는 수염 알러지가 있는듯하다. 등장하는 사극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파르라니 말끔하니 말이다. 주연급이면 수염이 없고, 주연급이 아니면 계백의 형으로 나오는 문근처럼 20대에도 수염은 기본인가 보다. 고증보다는 주연급 배우들을 위한 배려인가?


계백에서 김춘추는 자신의 동생 용보낭주와 결혼을 한다면 동맹을 성사시키겠다고 말을 하한다. 용보라는 이름은 박창화의 <화랑세기>에서만 나오는 인물이다.


그런데 용보는 비보랑과 덕명사이에 태어난 홍주를 어머니로 두고 있다. 덕명은 진흥왕과 대가야 이뇌왕의 딸 월화공주 사이에 태어난다. 김춘추의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인 천명공주이고, 아버지는 김용춘(김용수)이다. 김춘추의 아버지가 정확히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다음 아래

천명만 알 수 있는 김춘추의 생부(용수?,용춘?)

글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정설로 굳어진 일들이 얼마나 고증없이 잘못되었는지 아시게 될 겁니다.


어쨌든, 드라마 계백은 족보에도 없는 김용춘의 동생 용보를 등장시키고, 용보를 의자와 맺어주려고 하고 있다. 은고는 의자왕자에게 용보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지만, 의자왕자는 은고에게 내가 은고 너를 여자로 생각하는데 은고 너는 계백만을 생각하고 나 의자왕자를 남자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타박을 한다.


드라마 계백은 백제가 망한 이유를 계백의 여자 은고를 빼앗아 비로 세웠고, 계백에 대한 질투가 백제를 망하게 하였다고 만들고 싶은가 보다, 그렇다고 해서 드라마 계백이 여성주의 사극인 <공주의 남자>에서 처럼 멜로가 주가 되는 드라마도 아니다. 좀 더 은고, 계백, 의자왕자의 삼각관계를 처음부터 다뤘다면 조금 더 인기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문제는 김춘추의 동생 용보이다. 용보는 위에서 언급했지만, 김춘추의 동생이 될 수가 없다. 용보는 김춘추의 동생이 아닌 마누라다. 김춘추와 용보는 마득과 차득을 낳는다. 신라의 족보가 아무리 물구나무가 서 있더라도 자신들 나름대로 룰이 있었다. 김춘추가 아무리 막장이라고 해도 자신의 마누라를 동생이라고 속이고 백제 의자왕자에게 팔아넘기겠는가?


아무리 인기가 있는 드라마의 대사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하지만, 잘못된 상식과 잘못된 역사는 남는다. 과학은 침대가 아닐지라도 침대는 과학이다. 역사도 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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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에서 무왕이 드디어 선화공주의 아들인 의자왕자를 세자로 내세운다.

의자가 세자가 된때는 무왕 33년 632년, 정월 이었다. 의자왕자는 30살이 넘어서 세자가 된것이다. 

그런데, 의자왕은 무왕의 큰아들이였을까? 대부분 태자는 성년이 되기 전에 미리 찜해두는게 관례이다.

그래야 왕실이 안정이 되고 후계싸움이 벌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무왕은 의자왕을 30살이 넘도록 두고 보고 있다가 즉위 33년이 된 때에 의자를 태자로 책봉한 것이다.

그래서 <계백>처럼 왕자들간에 싸움이 있었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백제의 왕자나 태자들은 대부분 왜에 출장을 가는 경우가 많다. 백제 태자들을 찾는건 삼국사기에서 보다 일본서기에서 찾는게 더 빠르고 여러왕자들을 볼수가 있다. 660년 백제가 멸망한후 백제부흥군을 이끄는 부여풍(장)은 당시에 왜에 있다가 귀국한다.

백제와 왜는 이웃국가하라고 하기에는 친밀도가 지나치다. 오히려 2국가 1체제가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어쨌든, <계백>에서 사택비와 사택가문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 의자왕자는 태자가 되고, 연인관계로 설정된 계백과 은고를 때어 놓을 생각을 한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의자도 계백만큼 은고를 사랑하는 것으로 나오고, 정란에 성공한후 제일 먼저 은고에게서 눈을 때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은고와 계백의 사랑은 허구이지만, 왜 계백이 황산벌 싸움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백제를 위해서 싸우기보다는 초연한 모습을 보여주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공주의 남자나 계백이나 광개토태왕은 의복 고증은 하지 않는 걸까? 그리고 왜 계백에서는 왜인들 복장같은 모습이 너무 많이 보여주는 걸까? 더군나 공주의 남자나 계백이나 무사 백동수는 주인공들이 나이도 먹지 않는 걸까? 최소한 개연성있게 수염좀 그리고 나오면 안되나? 무슨 작당들을 했나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계백, 의자왕, 반란 실패한 사택비 죽고, 교기 왜로 쫓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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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어려운때를 같이 하여 창업을 할수는 있지만, 수성은 같이 하면 안된다는 고사가 여럿있다. 오왕 부차와 오자서는 어려울 때를 같이하여 초나라와 월나라 구천을 복속시켰지만, 오자서는 버림을 받았다.

한왕 유방이 한신을 받아들어서 초나라 항우를 무찌르고 중원을 통일했지만, 한신은 결국에 사냥이 끝난 개처럼 삶아지는 고초를 당했다. 월왕 구천은 범려를 받아 들여서 오왕 부차를 이겼지만, 범려는 구천이 고생과, 창업은 할수 있지만, 수성은 같이 할 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제나라로 도망하여 이름을 숨기고 살아간다.

어쨌든, 은고와 계백이 사랑하는 관계일수 없는 허구이다. 계백에서는 내신좌평 연씨의 딸을 맞이하여  부여효나 부여태를 낳은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에 당나라로 끌려가는 이는 의자왕의 처 은고이다. 처란 첩이나 후비와는 다르다. 한마디로 정비라는 뜻이다. <계백>에서 이제 태자비 연씨를 버린다는 설정을 해야만 할것이다. 의자왕 때 백제가 망한건 의자가 자신의 동지들을 끊임없이 없애서 라는 식상한 구성을 할것 같아서 조금 우려스럽다.

<계백>에서 무왕과 의자가 공모하여 선화공주의 원수를 갚고 사택비를 쫓아낸다는 설정은 개연성이 있을까? 물론, 사택비가 살려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무왕의 장수를 빌기위애서 639년 잠시 등장하고, 의자를 몰아내고 교기를 다시 백제왕에 앉힐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으로 그려질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선화공주와 사택비의 기록들로 진실찾기를 해보려고 한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무왕인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3번째 딸 선화공주가 이쁘다는 소문이 백제까지 퍼져 있자, 선화공주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고자 신라 경주에 들어간다.


그리고 <마>로 서라벌 어린이들을 꾀어 서동과 잠자리를 했다는 음담패설 참요를 가르친다. 서라벌의 음담패설은 진평왕의 귀에 들어가고 진평왕은 진노하여 선화공주를 궁밖으로 유배를 보내 버린다.


서동은  유배를 떠나는 선화을 꾀어 정을 통하고 백제로 돌아온다.  신망을 얻은 서동은 법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는 것이 골자이다.


그런데 일연은 어디서 서동(무왕)과 선화공주의 이야기를 들었을까? 일연은 중으로 고려의 국사였다. 그래서 전국각지에 퍼져있는 절의 창건에 관한 설화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었다. 서동과 선화공주에 관한 설화는 미륵사 청건에 관한 연기설화 기록을 보고 자신의 견해를 삽입하여 기록한 것이다.


일연은 요즘으로 치면 채록가가 아닌 역사학자의 풍모를 보여준다. 삼국사(삼국사기)의 오류를 지적하거나 또 다른 이설이 있다고 딴지맨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

 

미륵사 창건설화의 무왕과 선화공주의 서동요도 일연특유의 역사지식과 비판의식을 보여준다. 옛 기록에 미륵사 관련 무왕과 선화공주이야기가 있는데 그 곳에 나오는 “무왕”은 백제의 왕으로 기록했는데 백제에는 “무강왕”이 없다. 그러니 알 수가 없다고 말이다.


일연은 3개의 사서를 통해서 서동과 선화의 국경을 넘는 사랑의 이야기를 분석하고 있다.

첫 번째는 미륵사 연기설화인 옛기록(고기)에는 백제 무강왕에 대한 기록이었다는 것이다. 일연은 이때 백제에는 무강왕이 없다는 말로 무왕에 대한 설화가 아닐까 추측한다.


더불어 서동의 출자가 과부인 어머니와 사비(부여) 남쪽 연못가에 살고 있던 과부인 어머니와 용이 통정을 해서 서동을 낳았다고 말을 하는데 <삼국사>에는 무왕(장)이 법왕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과부의 아들이라고 하니 자세히 알 수 없다고 한발을 뺀다.


일연은 삼국사기와 견해가 달리하면 자신의 견해를 철저히 밝히고 자신은 이렇게 생각한다고 명확하게 이야기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서동(무왕)과 선화공주와의 사랑에 대해서는 자신도 모르겠다 말을 한 것이다.



미륵사는 일연이 살고 있던 고려 말엽에도 보존되어 있었고 그 후 조선시기에도 사찰이 유지되 있었다.  미륵사는 3당 3탑으로 조성되어 있었고, 3탑 중에서 무너져 내린 좌측 탑만이 현재까지 남아 있었다. 무너진 좌측탑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탑이 세워진 시기를 알 수 있는 사리장엄구 금판 기록물이 발견되었다.


사리장엄 봉안기에는 서탑이 639년에 조성하였고, 삼국유사의 기록과는 다르게 사택적덕의 딸인 사택왕비가 무왕의 장수를 기원하며 탑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사찰을 조성하는데 수십 년이 걸린다. 신라의 황룡사의 경우 조성하는데 14여년이 걸렸다. 그만큼 사찰을 만드는데 한두 해만에 만들어 지지 않는다.


탑과 불당을 같이 조성했다면 미륵사는 무왕 말년인 639년에 무왕이 늙어서 왕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서 사택비가 조성한 것이 되고, 미륵사 전체윤곽이 완성된 후 탑만 후에 조성되었다면, 완성시기는 639년 이후가 될 것이다.


문제는 동탑이나 서탑이 처음부터 설계에 반영된 듯한 균형미를 갖춰져 있으니 미륵사 창건과 동시에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신라 황룡사 9층목탑처럼 중앙탑은 후에 조성이 가능해도 한쪽으로 치우친 서탑이나 동탑만 별도로 만들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뜻이다


본찰(미륵사)를 창건한건 선화공주이고, 단지 서탑만이 사택비가 만들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중앙탑과 동탑은 또 다른 무왕의 비가 시주를 해서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그중에 선화공주가 시주한 자금으로 만든 탑도 있을 수 있다.


그러니 무왕의 왕비는 사택비이지 선화공주는 단순히 설화에 지나지 않고, 선화공주가 무왕과 결혼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삼국유사에는 절 이름이 미륵사가 아닌 국사에는 왕흥사라고 했다는 대목도 있다는 것이다. 


선화가 만든 절은 왕흥사이고 미륵사는 사택비가 만든 절일 가능성도 있다. 사택지적비에 의하면 사택가문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절을 만들만큼 부유했다.


그러니 미륵사는 사택가문이, 600년(법왕 2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왕흥사는 무왕과 선화가 만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신라의 경우 진흥왕 14년 553년 황룡사를 창건하기 시작해  567년 완공한다. 진흥왕 35년(574년) 장육상은 별로도 만들어지고, 황룡사 9층탑은 선덕여왕시기에 조성이 된다. 한마디로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


 

그런데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무왕은 법왕의 아들이라고 하고, 수서에는 무왕은 법왕의 아들로, 북사에는 위덕왕(창)의 뒤를 이었다고 나온다. 뒤를 이은 것과 아들은 엄연히 다르다. 북사에 위덕왕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무왕과 법왕은 형제간이 된다. 무왕처럼 다양한 출자도 보기 드물다.


수서에서는 위덕왕(창)->법왕(선)->무왕(장)으로 이어진다. 무왕의 출자가 다양한 이유는 중원의 나라들과 교류를 할 때 위덕왕(창)이후 단명한 왕들(혜왕, 법왕)이 있었기 때문에 교류를 하지 않은 왕을 몰랐을 수도 있다. 수서, 삼국사기에 이하면 무왕은 법왕의 아들임에는 변함이 없다.


삼국사기에는 무왕이 왕위를 이을 때 단순히 법왕의 아들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법왕에게 여러 왕자가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무왕은 왕위계승권에서도 멀어져 있었다.

 

무왕(武王)은 이름이 장(璋)이고 법왕(法王)의 아들이다. 풍채와 거동이 빼어났고 뜻과 기개가 호방하고 걸출하였다. 법왕이 즉위한 이듬해에 죽자 아들이 왕위를 이었다.

武王 諱璋
法王之子 風儀英偉 志氣豪傑 法王卽位翌年薨 子嗣位

- 삼국사기, 백제 무왕 즉위년, 600년 


단순히 왕의 아들로 표현한 건 또다른 왕자들이 있었고, 서동(무왕)은 큰아들도 아니고 둘째아들도 아니다. 법왕에게 무왕(서동) 말고도 또 다른 왕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무왕 28년 627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고 백제가 660년 멸망한 후 백제 부흥운동을 주도한 <복신>의  기록으로 쉬이 알 수 있다.

 

무왕 28년(627년) 가을 8월에 왕의 조카 복신(福信)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니, 태종은 [백제가] 신라와 대대로 원수가 되어 서로 빈번히 침략·토벌한다라고 하면서 왕에게 조서[璽書]를 내려 말하였다.

- 삼국사기 백제 무왕 28년(627년)


복신은 무왕의 조카다. 무왕의 조카가 될려면 무왕(장)과 형제가 되는 법왕의 아들들이 있어야 한다.


드라마 계백에서 언제 부여복신이 등장할까 유심이 살폈지만, 부여복신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다큰 의자왕자의 많은 자식들도 없다. 의자와 계백과 은고의 삼각관계와 사택비와 무왕의 싸움으로  등장해야할 인물들이 사라졌다. 극초반 등장했던 윤충도 가잠성이후 홀연히 사라졌다.

삼국유사에서 단순히 무왕(서동)이 과부의 자식으로 용과 사통해서 낳은 자라면 복신의 아버지는 무왕과 같이 용의 자식일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용으로 형상화된 왕족이나 왕의 자식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다면 복신의 아버지와 무왕은 이복형제간일수도 있다. 

 

불교와 밀접한 백제의 왕은 위덕왕과 법왕이 있고, 신라에는 법흥왕, 진흥왕이 있다. 법왕은 단순히 왕위를 2년 재위했지만, 위덕왕의 왕자시절부터 불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위덕왕의 뜻에 따라 사찰건립을 주도 하였을 것이다. 법왕이 위덕왕의 명으로 오랜시간 동안 익산 미륵사 만들기 위해서 웅진과 사비를 왕래하다 서동의 어미와 눈이 맞아서 사통했고, 서동을 낳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복신의 예에서 보듯이 삼국유사의 무왕과 선화공주는 단순한 미륵사 연기설화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첫 번째는 어쨌든, 627년 당나라 사신으로 가는 무왕의 조카 부여복신의 존재는 삼국유사의 한미한 과부의 아들 마동과 신라 선화공주의 사랑을 방해하는 첫 번째 방해물이다.


두 번째는 일본서기의 642년 정월 의자왕 모후의 사망기사와 와 미륵사 사리장엄 봉안기이다.


왜 여왕인 황극 천황기에 의자왕의 어머니가 언제 죽었는지는 알 수 있다.
 

일본서기, 황극, “금년(642년) 정월 국왕의 어머니가 죽었다“


라고 왜에 사신으로 온 백제 사신의 입을 빌려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국왕은 641년 무왕의 뒤를 이은 의자왕을 지칭한다.


세 번째는 일연이 미륵사 연기설화를 채록하고 일연 자신이 의심스럽다고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고, 여타 기록과 부합하지 않는 곳이 너무나 많다. 더군다나 양국이 결혼동맹이 이뤄졌음에도 백제와 신라는 무왕 초년부터 의자왕 시기까지 신라와 너무나 빈번한 전쟁을 한다. 재벌간에 결혼을 하는 이유도 국가간의 혼인과 다름이 없다. 화친과 교린이 목적이지 싸우기 위해서는 아니다. 더군다나 삼국유사에도 서동과 선화의 사랑후 서로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전쟁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삼국유사, 일본서기와 미륵사 사리장엄 봉안기에 의하면 의자왕의 어머니는 신라 진평왕의 3째딸 선화공주가 아닌  미륵사 사리장엄구 봉안기에 기록된 사택비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렇다면 서동요 설화는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힌트는 백제와 신라간의 결혼에서 찾을수 있다. 백제와 신라간의 결혼은 4번 나온다.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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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1 - [역사이야기] - 계백, 의자왕, 반란 실패한 사택비 죽고, 교기 왜로 쫓겨난다?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계백, 의자왕, 계백 백제 패망후 왜 천황 될지도?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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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를 비롯해서 계백에서도 기본적인 팩트를 무시하는 작가의 자의적인 망상 사극이 철찬리에 방송중이다.


드라마 <계백>에서 당나라 사신으로 공손사가 등장한다.


공손사는 631년 봄 당나라 광주자사였지만, 고구려 사신으로 간다. 수나라와 대결한 고구려가 수나라를 물리치고 경관을 설치였었다. 고구려에 간 공손사는 경관을 없애 줄 것을 청원하고 고구려는 당나라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경관해체작업에 동의를 하고 없애준다.


이런 공손사가 백제 사신으로 오면서 자신이 한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냥 공손사의 말은 스쳐 지나면 된다. 단지, 계백에서 현재 시제가 언제인지만 알면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드라마 계백의 시제는 631년이라고 친절히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백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몇 살 정도인지 대충 나오게 된다.


의자왕(왕자)는 삼국유사를 기준으로 600년 전후에 출생한 것으로 나오니 30대 중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 계백과 은고는 612년 선화왕후가 죽은 시점에 태어났으니 631년이면 딱 20살이 된다.


그런데 이때 의자왕과 연문진의 딸과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태어난다. 드라마 계백에서 의자왕이 낳은 첫 아들일 것이다. 의자왕은 첫 아들을 631년에 낳았다? 라고 믿는다면 대단한 착각에 빠지지 시작한다.


왜냐하면 의자왕의 3째 아들로 추측되는 부여융은 자신의 흔적을 묘지명에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부여융은 660년 백제가 망하자 의자왕과 왕비와 여러 왕자들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갔다가 웅진도독이 되어 백제부흥운동을 진압한다. 백제 부흥운동 진압에 실패한 부여융은 다시 당나라로 돌아간다. 당나라는 고구려가 망한 후 요동지역 건안성에 웅진도독부를 만들고 웅진도독에 백제왕으로 부여융을 세운다.


백제 멸망 후 백제는 신라와 (발해)말갈에 망했다고 한 기록이 증명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 부여융은 682는 장안에서 죽고 북망산에 묻히고 묘지명을 남긴다. 묘지명에 의하면 부여융은 615년에 태어나 682년에 죽어 68세에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부여융이 첫째아들인지 셋째 아들인지는 아직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부여효, 부여융, 부여태 중 둘째가 부여태라는 것만 알 수가 있다. 하지만, 드라마 계백에서 615년에 태어난 부여융은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다.

 

문제는 631년경에 의자의 첫아들이 태어났다면 근본적으로 부여융은 아비, 어미가 누군지 모르는 자식이 된다. 부여융에게 아버지 어머니를 찾아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30살이 다되어서 의자가 첫 번째 결혼한다는 것도 황망한데 이미 태어난 부여융을 16년이 지난 후 태어나게 만든 작가의 황당한 창작의 자유는 지켜줄 의무가 없다. 이는 비판받아 마땅한 부분이다.


 

드라마 계백에서는 계백이나 교기나 의자나 내시나 면도하고 나온다. 이들의 나이를 알 수가 없다. 배우들에게 수염을 다는 일은 시간적으로 오래 걸린다. 더불어 여배우와 키스신은 여배우에게는 곤욕이다. 털이 난 남자들과 키스를 해본 여성이라면 쉬이 알 수가 있을 것이다.


특히 요즘 드라마 키스신은 직접접촉을 하고 비비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의 실제 키스와는 다르게 드라마 키스신을 찍을 때 다양한 화면을 잡는다. 멀리서 줌인, 줌아웃, 바디컷, 롱컷, 여배우 화면, 남자화면 등 요란스럽다. 이때 마다 여배우는 수염과 전쟁을 해야 한다.


 

한번 키스신을 찍고 나면 여배우들 입술과 얼굴은 피부트러블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충분히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어짜피 고증과는 하등 상관없는 의상을 입고, 역사와는 무관한 계백과 의자가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여배우를 위해서 남자배우 수염이 없다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사실 글쓴이는 계백에서 양복을 입고 나오고 쫄쫄이를 입고 나오던 상관하지 않는다. 말 대신에 스포츠카를 타고나오던 BMW를 타고 나오거나 탱크를 몰고 나오던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를 재조명, 재해석했다거나 재미를 위해서 있는 기록을 바꾸었다고 당당히 말은 하지 않았음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드라마 계백에서 교기는 계백과 흥수의 계략에 말려들어서 왕의 지위에서 서민으로 강등이 된다. 그리고 사택비는 위제단을 동원해서 무왕을 암살한다. 무왕은 계백의 도움으로 살아나 국상으로 위장되어 상여를 움직이는 와중에 사택비 일당을 일망타진한다.

 


 

631년 역모에 실패한 사택비와 교기와 사택적덕은 당당하게 궁을 나선다. 그렇다면 사택비와 교기와 사택적덕은 어디로 갔을까? 의자와 무왕에 의해서 살아남은 사택비와 교기가 추후 반란을 획책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문제는 드라마 계백에서 그냥 어물쩡 넘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다. 계백은 역사와 100% 무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교기와 의자왕의 모후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기록은 일본의 일본서기를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교기와 교기 형제들이 반란을 시도하다 실패한 때는 의자가 왕이 된 후이다. 642년 정월(1월) 백제의 사신로 갔던 왜인은 왜에 들어가 백제에서 대란이 있었다 알린다. 조문사로 참석한 백제 사신은 백제에서 왕의 모후가 죽었고, 교기와 교기의 누이동생 들이 섬으로 추방되었다고 알려준다. 


642년 봄 정월, 백제에 사신으로 갔던 大仁 阿曇連比羅夫가 筑紫로부터 驛馬를 타고 달려와 “백제국이 천황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弔問使를 받들어 보냈는데, 저는 조문사를 따라 함께 筑紫國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장례식에 奉仕하고자 하여 혼자서 먼저 왔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는 지금 매우 어지럽습니다”라고 하였다. -일본서기 황극 원년


642년 2월, 금년 정월에 국왕의 어머니가 죽었고 또 아우 왕자 翹岐와 누이동생 4명, 內佐平 岐味 그리고 이름높은 사람 40여명이 섬으로 추방 되었습니다” -일본서기 황극 원년 2월



그런데 642년 봄 섬으로 쫓겨난 교기와 그의 가족들이 왜에 등장을 한다. 더불어 의자왕의 모후가 대란전후에 죽었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의자왕이 모후가 죽자 교기가 반란을 했던지, 아니면 교기 일행이 의자왕의 모후를 죽이고 반란을 시도 했을 지도 모른다.  반란에 실패한 교기는 왜로 쫓겨난다. 백제에서 섬은 왜를 뜻한다.  왜왕 황극은 642년 2월 12일 교기를 받아들인다.

  

642년 2월 12일 庚戌 翅岐를 阿曇山背連의 집에 안치하였다.


641년 3월 무왕이 죽자 태자 의자가 왕이 된다. 

의자왕(義慈王)은 무왕의 맏아들이다. 웅걸차고 용감하였으며 담력과 결단력이 있었다. 무왕이 재위 33년(632)에 태자로 삼았다. 어버이를 효성으로 섬기고 형제와는 우애가 있어서 당시에 해동증자(海東曾子)라고 불렀다. - 삼국사기 백제 무왕 0년


632년. 무왕 33년 三十三年 春正月 封元子義慈爲太子



위의 기록에서 의자왕은 무왕의 맏아들이라고 했지만, 약간의 해석상에 문제가 있다. 대부분 맏아들은 장자(長子)라고 한다. 하지만, 원문에는 원자(元子)라고 기술하고 있다.


원자와 장자는 엄연한 차이점이 있는 단어이다. 원자는 정통성이 있는 정비의 맏아들이나 당시까지 살아 있는 정비의 맏아들을 가르키는 경우이거나 태자가 되기 전 단계에서 정통성을 부여하는 아들을 뜻한다. 무조건 원자를 맏아들로 번역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어쨌든, 삼국사기에 의자왕은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와 우애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애가 깊었던 의자왕은 교기 일당을 참형하는 방법보다는 백제와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던 왜로 추방하는 것으로 난을 진압하는 것이다.


642년 2월에 왕은 주·군(州郡)을 순행하면서 위무하고 죄수를 살펴서 사형할 죄[死罪] 이외에는 모두 용서해 주었다. - 삼국사기 백제 의자왕 2년 642년 2월


난을 진압한 의자는 대대적인 사면을 행한다. 이 사면에는 반란에 가담한 세력도 있을 것이 자명하다.


위의 기록들에서 알 수 있듯이 639년에 사택비는 무왕을 위해서 미륵사 서탑을 만들고 사리봉안기를 쓴다. 사리봉안기에는 무왕의 무병장수를 빌고 있다.  639년에 무왕은 늙어 병들고, 힘이 없었음에 틀림이 없고, 태자 의자가 대신 정치를 하였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태자 의자가 641년 3월 무왕이 죽고 왕이 된후, 641년 11월 사택지적이 죽고, 왜에서는 이때  대란이 있었다고 말을 하고 있다. 642년 정월에 의자왕의 모후가 죽고, 교기를 비롯한 교기의 여자 형제들과 대신들이 섬(왜)으로 추방된다.
 
의자왕의 어머니는 최소한 642년 정월까지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사실이지 않는가? 삼국유사를 쓴 일연도 감히 선화공주와 무왕이 사랑했는지 알수가 없다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지만, 많은 드라마에서 의자왕의 어머니로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공주로 그리고 있다.

더군다나 의자와 어머니인 사택비를 계모이고 적대적인 관계로 까지 그리고 있다. 너무 막나갔다는 생각을 감출수가 없다.

위의 여러정황 기록으로 의자왕의 어머니가 신라 선화공주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지만, 삼국사기에 의자왕의 어머니가 선화가 아님을 증거하는 또다른 결정적인 기록이 있다. 이는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하겠다.

2011/09/20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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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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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는 왜 알천에게 아저씨라고 했을까?


드라마 <계백>에서 의자(조재현)는 은고(송지효)와 함께 계백(이서진)과 생구(포로)들을 구출하려고 가잠성에 침투한다.

하지만, 독개(윤다훈)에게 정체가 들통나 의자는 은고를 탈출시키지만, 김유신(박성웅)에게 잡히고 만다.

의자는 신라의 가잠성 성주 알천에게 잡혀 무릎을 꿇고 알천에게 아저씨라고 말을 한다.


알천은 사사로이 사촌인 선화의 자식이니 아저씨가 되겠지만, 사택비(오연수)가 선화를 죽였다며 더 이상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라고 한다.

아저씨에게도 배척되는 의자왕자가 되겠다. 불쌍한 건 의자이고 원수는 사택비지 의자는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도 의자는 알천에게 아저씨라는 말을 한다.


한마디로 의자와 알천은 인척관계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삼촌이나 오촌의 관계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뜸금없이 의자와 알천의 계보가 나왔을까? 사실 알천의 출자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다. 단지 인터넷에 떠다니는 김대문의 화랑세기가 아닌 박창화의 화랑세기에 알천이 선화의 아버지인 진평왕과 인척관계라고 해서 나온 이야기이다.
 

알천(閼川, 생몰년 미상. 활동연대 636년 ~ 654년)은 신라 선덕·진덕여왕, 태종무열왕 때의 귀족으로 화백회의 의장인 상대등(上大等)을 역임하였다. 진덕여왕 사후에 섭정으로 추대되었으나 태종 무열왕에게 양보하였다. 진골이며 섭정으로 지목되었던 것으로 보아 김알지의 후손인 김씨라 보는 것이 신빙성이 있다.[1] 진위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 따르면 진흥왕의 아우 숙흘종과 보리부인의 아들이라고 한다. - 위키백과


 

알천 위키백과 계보도


위키백과에 알천은 화랑세기를 인용해서 입종갈문왕의 아들인 숙흘공의 아들로 되어 있다. 하지만, 박창화의 화랑세기에 알천의 부모 내력을 알 수 있는 내용은 한구절도 없다.


어찌되었던 위키에서 나와 있는 숙흘공과 보리의 아들 알천이라면 진평왕의 외손자인 의자와는 인척관계일 수 있다.


만약, 알천이 숙흘공의 아들이라면 오히려 알천은 김유신과 인척관계가 있다.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은 숙흘종과 만호부인 사이에 태어났다. 그러니 알천과 만명은 배다른 남매가 된다. 김유신에게는 알천은 외삼촌이 된다.


하지만, 드라마 <계백>에서 알천은 김유신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의자에게 알천이 아저씨라면 김유신은 이웃사촌보다 더 가까운 존재이다. 하지만, 의자는 김유신에게 형님소리는 하지 않는다.


모계로본 의자왕과 김유신 가계도


만호태후는 진흥왕의 아들 동륜태자 사이에서 진평왕을 낳는다. 동륜태자가 진평(백정)을 낳고 일찍 죽자 숙흘종 사이에 만명을 낳은 것이다. 만명과 진평왕은 어머니가 같은 동복 남매간이다. 선화는 진평왕의 딸이고 김유신은 만명의 딸이니 할머니가 같다. 선화와 김유신은 사촌간이다.


한마디로 의자에게 아저씨는 알천이 아니라 김유신이 된다. 오히려 알천보다 김유신과 의자가 더 가까운 사이인 김유신에게 의자는 조카가 되고 의자에게는 아저씨가 된다. 하지만, 김유신과 의자는 전혀 모르는 사이처럼 나온다. 사택비에 핍박받은 조카의자가 가잠성에 잡혔는데 의자 너 누구니 하듯 개가 닭쳐다 보듯 한다.


그런데 정말 알천은 의자의 아저씨일까? 위키에 나와 있는 계보라면  의자와 알천은 먼 친척인 할아버지 뻘이다. 계백에서 의자가 알천에게 아저씨라고 하면 안된다.



문제는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위키의 알천에 대한 정보가 잘못되었다.


인터넷 위키에서 입종의 아들인 숙흘종과 보리의 아들이 알천이라고 했지만,  보리는 세속오계를 만든 원광법사의 동생이다. 또한, 보리는 15대 풍월주인 김유신보다 위대인 12대 풍월주였다. 보리는 이화랑과 숙명공주 사이에 태어나 후에 만룡과 결혼한다. 보리는 화랑세기를 만든 김대문의 증조할아버지가 된다.


위키에 떠도는 알천의 출자는 남자인 숙흘종과 남자인 보리 사이에 알천이 태어났다고 하는 꼴이다.


알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남자없이 빛으로 태어난 동명도 있고, 예수도 있으니 남자와 남자 사이에 태어나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드라마 인데 여자와 여자사이에 태어나던 남자와 남자 사이에 태어나던 알에서 태어나던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알천은 김춘추와 왕위 쟁탈전에서 패해서 진주로 낙향해서 진주소씨의 선조가 된다. 알천은 사로국 6촌장의 소벌도리의 후손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알천이 진덕여왕시절 6두품의 최상위 등급인 이찬으로 국정을 장악했다고 해서 김알지의 후손이 아닐까 추측하기는 한다.

어쨌든 드라마 <계백>에서 왜 알천이 가잠성 성주로 등장했을까? 알천은 636년 선덕여왕 5년 시절 경주 인근 여근곡에 침투한 백제 우소의 별동대를 소탕한 전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계백과 김유신이 황산벌 싸움은 한다고 해서 계백이 김유신의 생구(포로)가 되어 어릴적 부터 김유신을 알고 지냈다는 둘간에 운명적인 만남과 끊임없이 트러블이 있었다는 설정을 한것 처럼 말이다.
 



<계백>에서 우소를 따라 여근곡까지 침투한 인물 중에 계백이 있고 알천과 대립하는 구도를 그리고자 하는 미끼이지 않을까한다. 그리고 알천과 의자는 사적으로는 인척관계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이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도 의자와 알천의 전혀 개연성도 없는 친인척 설정은 최소한 피해야 하지 않을까?  차라리 의자와 김유신의 인척관계 설정이라면 모를까? 알천과 의자의 대화를 의자와 김유신과의 대화였다면 그나마 개연성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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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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