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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공주의 남자>에서 신숙주는 수양대군의 복심이 되어 계유정란으로부터 단종을 폐위하고 수양대군을 왕위에 옹립하는 것으로 나온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신숙주의 살았는 큰아들(큰아들은 일찍죽었음) 신면이 아버지 대를 이어서 악역으로 등장을 한다.


<공주의 남자>에서 신면은 친구를 배신하고, 친구 김승유의 연인 세령공주를 빼앗고, 문종, 단종을 배반하고, 수양의 개로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기회가 되면 신면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글을 쓸까한다. 알고보면 불쌍한 영혼이 신면일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숙주를 <숙주나물>의 대명사로 하여 하루가 지나면 쉬어 버리는 나물을 숙주나물로 이름한다. 한마디로 변심의 아이콘이 신숙주이다. 

신숙주가 숙주나물로 불리우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글쓴이는 왜 신숙주가 숙주나물로 불리는 이유를 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저변에 깔린 프로파간다를 알지 못하고 선현들이 신숙주를 숙주나물로 불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신숙주가 계유정란에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계유정란으로 정란공신이 되고, 후에 단종 복위 운동에 성삼문과 함께 하지 않았다고 비난을 한다. 물론, 성삼문은 친구인 신숙주에게 의사를 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456년 6월 성삼문은 신숙주는 친구이지만 죽여야 한다고 말을 한다.


그런데 야사로 신숙주를 비난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사실처럼 돌아다닌다. 신숙주는 배신자이지만, 신숙주의 아내 윤씨는 사육신과 함께 단종복위에 참가하지 않고 돌아와서 신숙주를 꾸짖고 자결을 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숙주는 배신의 아이콘 이였지만, 신숙주의 아내 윤씨는 만고의 충신인 것이다.


신숙주의 후손이  신숙주의 제사를 지내고나서 제사에 사용한 봉개떡(방개떡)을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나눠줬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방개떡”을 먹지 않아 이유를 물으니 “성삼문”의 후손이었다고 한다.  방개떡은 봉개떡에서 유래한다. 방개잎은 하루가 지나면 쉬어버리는 숙주나물과는 다르게 방개잎으로 음식을 보관하면 한여름에도 몇일동안 상하지 않고 보관이 된다. 그래서 제사에 올릴때 방개잎으로 제물을 감싼다. 천연방부제가 방개잎(봉개잎)이다. 숙주나물과 비견되는 상징물이다.


당연히 성삼문의 후손으로서는 신숙주의 제사상에 오른 떡을 먹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나 같아도 먹지 않을 것 같다.


어떤 이가 성삼문의 후손이라는 아이에게 조용히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공물은 신숙주를 위한 공물이 아닌 사육신과 함께해 절개를 지킨 신숙주의 아내 “윤씨”에게 바치는 공물이니 먹어도 된다고 하자. 성삼문의 후손을 자처하는 아이가 그제야 먹었다는 훌륭한 고사가 아닐 수 없다.


절개와 절의의 상징인 사육신을 추앙하고 더불어 배신자 신숙주를 또한방 먹일 감자이니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아내보다 못한 신숙주가 되시겠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성삼문의 후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15만이 넘는다고 한다. 절손된 가문으로서는 참으로 많은 후손을 남겼다. 성삼문의 직계 후손은 절손이 되어 1902년 고종 때 성삼문의 방계 후손으로 하여금 제사를 봉사하게 하였다.

자세한 사항은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물론, 성삼문에게 막내아들이 있었는데 유모가 막내아들을 빼돌려서 숨어서 살았다는 이야기가 나름대로 전한다. 대부분 이런 과정으로 살아남긴 한다. 김종서의 손자 3명도 계유정란 때 유모의 손에 살아 남았다고 전한다. 어쨌든, 언제부터 어떻게 성삼문의 직계후손이 15만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누가 성삼문을 명예훼손하는지 알수가 없다.


어쨌든, 연산군때 반정을 성공한 중종  때부터 끊임없이 사육신 후손을 찾았고, 영, 정조 때는 사육신관련자, 계유정란관련으로 절손된 김종서를 비롯한 황보인 등 수 많은 사람의 후손을 찾아 관직을 하사하기 까지 했다.


그런데도 성삼문의 후손은 나오지 않았다. 1902년 고종 때 오죽하면 제사를 지낼 후손이 없자, 성삼문의 방계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겠는가? 고종 당시 왜 사육신에 집착을 하였을까? 조선을 끊임없이 청나라, 러시아, 일본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에 나라를 들어서 넘기려는 수작을 벌리는 자들도 넘쳐났다. 결국에는 일본에 나라를 넘긴 친일민족반역자들과 그 후손이 잘먹고 잘살고 있고 조선에 충성하고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은 절손되거나 3대가 망해서 비루먹는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설화의 문제점이 없을까? 미안한 이야기지만 처음부터 이 설화는 성립할 수 없다.


신숙주의 부인 윤씨는 세조 2년 1456년 1월 26일 죽는다. 계유정란은 1453년 10월 10일에 있었고 신숙주가 정란공신이 된 것은 맞다. 이때 사육신의 대부분이 정란공신이 되어 공신전과 계유정란으로 남은 여자들을 노비로 하사 받는다. 성삼문도 예외는 아니다.
 

 


대제학 신숙주의 처 윤씨의 상에 사재감 정 조효문을 보내어 호상하게 하다.
 

“신 대제학(申大提學)은 다른 공신의 예(例)와 다르고, 또 만리(萬里) 외방에 있으며, 또 여러 아들이 다 어리니, 나의 애측(哀惻)함을 다 진술할 수가 없다. 정원(政院)에서 포치(布置)하여 관(官)에서 염장(殮葬)하게 하며, 또 관원을 보내어 치제(致祭)하는 등의 일을 상실(詳悉)히 아뢰도록 하라.” - 세조 2년 1456년 1월 26일


사육신이 단종복위를 시도한 때는 1456년 6월 1일이다. 이 날의 쿠데타는 실패로 끝난다. 이튿날 김질과 김질의 장인인 정찬손이 세조(수양대군)에게 어제 왕을 죽이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고변을 함으로서 들통나고 끌려간다. 집에 있던 유성원만이 자신들의 반정(복위)가 물거품이 되었다고 자살하고 만다.


1456년 1월에 죽은 신숙주의 아내가 무슨 귀신도 아닌데 1456년 6월 일을 기억해서 신숙주가 사육신과 같이 하여 죽지 않고 살아돌아왔다고 신숙주 너는 충신도 아니다면서 죽을 수가 있겠는가?


더군다나 신숙주는 처 윤씨가 병환으로 죽을 때, 1455년 10월 24일 단종의 사은사로 멀리 명나라에 가 있어서 윤씨가 죽은 줄도 몰랐다. 공주의 남자에서 신면이 나오고 있지만, 신숙주의 아들들이 다 어렸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짜피 신숙주는 나쁜놈인데 윤씨가 있던 없던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마는 이렇게 말을 하면 신숙주와 신숙주의 아내 “윤씨”는 부창부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사육신을 치켜세우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더라도 없는 이야기까지 끌어들여서 신숙주를 모독할 필요가 없다.


신숙주와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이 갈린 순간은 사육신이 단종복위를 시도한 1455년 말부터다. 계유정란으로 정란공신을 받은 사람도 사육신이었고, 세조가 양위 받아 공신을 제수할 때 사육신들의 다수도 신숙주와 같이 <좌익공신>이 되었다. 신숙주가 단종을 배신한 배신자라면 사육신도 배신자일 뿐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사육신 중 이개가  신숙주에게 말하는 장면은 100% 허구이다.

신숙주와 사육신을 가른 이유은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참조하기 바란다.

사육신이 충신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단종의 복위를 하다 죽었다는 절개와 절의뿐이다. 분명히 절의한 사육신은 추앙받아 마땅하다. 왜냐하면 절의와 절개란 어떤 시대이던 상관없이 추앙해주어 하기 때문이다. 연산군을 위해서 죽은 자도 절의가 있다고 추앙해 주는 게 조선이었다. 절의를 지키고 충성하는 신하를 내치면 어떻게 될까?


어떤 배덕자들이 왕을 몰아내는데 왕을 위해서 충성을 받칠자가 없다면 그 나라는 망한다. 또한, 지속적으로 반역과 반역의 연속이 될 것이다. 그래서 고려의 정몽주, 이색 등을 만고의 충신이라고 추앙하는 것이다. 사육신도 그 범주에서 충신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조선의 왕들은 끊임없이 반정에 속을 썩어야 했다.

태종(이방원)처럼 형제를 죽이고 왕이 되거나, 숙부가 왕을 몰아 낼때 지켜줄 신하가 필요했다. 왕의 입장에서 숙부나 자신의 형제가 자신을 왕에서 쫓아내거나 세자가 왕이 되었을 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쫓아낸다면 좋아할 왕은 하나도 없을 것이고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겠는가?. 유교의 입각해서도 조선은 배덕의 역사이다. 배덕하지 말고, 반역하더라도 충성을 하는 자를 숭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육신들이 계유정란에서 안평대군, 김종서, 황보인을 따르던 인물들을 주살하도록 상주한 것처럼 세조(수양대군)편에 있던 사람들이 당연히 사육신 관련자를 처벌하려 시도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반대로 사육신이 쿠데타에 성공하더라도 피의 보복은 불보듯 뻔한 상황이다. 더군다나 어린 상왕의 존재는 세조를 옹립한 세력들에는 가시와 같다. 상왕 단종이 연루 되지 않았더라도 연루자로 몰아 밖으로 내치거나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문제는 단종을 죽이는 결정적인 동인을 제공한 자도 사육신중 성삼문과 권자신이였다는 것이다. 성삼문은 자신들의 배후에 상왕 단종이 있다고 당당하게 밝히고 만다. 단종의 외삼촌인 권자신도 우리의 배후에는 상왕전하가 있고, 상왕이 징표로 큰칼까지 주었다고 까발린다. 마지막 순간에 단종을 배신하고 만다.

성삼문과 권자신이 상왕이 모반을 알고 있었다고 하다
 

“상왕(上王)께서도 역시 너희들의 역모에 참여하여 알고 있는가?”

하니, 성삼문이 대답하기를,

“알고 있다. 권자신(權自愼)이 그 어미에게 고(告)하여 상왕께 알렸고, 뒤에 권자신·윤영손(尹令孫) 등이 여러 번 약속을 올리고 기일을 고하였으며, 그날 아침에도 권자신이 먼저 창덕궁(昌德宮)에 나아가니, 상왕께서 긴 칼을 내려 주셨다.”

하였다. 구치관이 또 권자신에게 물으니, 권자신의 대답도 성삼문과 같았다.

- 세조 2년, 1446년 6월 7일


그 후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영월로 유배를 떠난다. 이 와중에 단종의 어머니인 문종비 권씨는 비에서 강등되고, 묘의 기물도 파괴된다. 묘를 수리하지 않아 묘가 떠내려가는 참화까지 당한다. 이에 대한 허황된 이야기가 널리 사실인것처럼 퍼지고 또다시 신숙주와 세조는 죽일놈이 되지만 말이다.


분명히 사육신은 추앙해주어야 하지만, 없는 이야기까지 만들어서 추앙할 필요는 없고,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서 신숙주를 죽일놈으로 만들 필요도 없다. 신숙주가 죽어야 추앙할 사육신이라면 존경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신숙주는 성종 6년, 1475년 6월 21일에 죽는다. 6월 21일(음)이면 양력으로 7월 중.하순에서 8월 초순이다. 한여름 묘지에서 제사를 지낸다면 쉽게 음식이 상할 수 밖에 없다. 어린이가 신숙주의 제사떡을 먹지 않는 이유는 여름에 상했을까봐서이지, 신숙주의 변절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이 떡은 쉽게 쉬지 않는 방개잎으로 쌓은 것이니 쉬지 않는단다.가 정확한 이야기가 아닐까한다. 

어쨌든, 사육신의 다수가 <정란공신>직을 거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거부한 이유가 수양대군(세조)에 반기를 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환상적인 반전이 있다. 공주의 남자에서 얼마나 황당한 설정을 했는지 쉬이 알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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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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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에서 성삼문, 이개, 박팽년 등 사육신이 세조(수양대군) 암살에 실패하고 잡혀서 고신을 당한다.


그리고 참형을 당할 위기에 김승유는 빙옥관의 의형.의제와 같이 한성부 옥을 파옥하고 이개 등 사육신과 친구 정종을 구원하려고 들어간다.


신면은 김승유가 세령공주와 같이 한성부에 숨어 들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김승유가 하는 일에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도와준다.


김승유가 다음 기회를 노리자며 파옥을 하려하자. 이개와 박팽년, 성삼문 등은 당연히 자신들이 죽을 줄 알았으니 개념치 말라고 하면서 후일을 김승유에 맡기고 담담히 죽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죽어서 김종서를 뵙게 되었으니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정종의 아내 경혜공주는 세조를 찾아가 “전하“라는 말을 하면서 수양대군 니가 짱먹었으니 그만 정종을 풀어달라며 ”전하 전하~“를 수천 수만 번도 할 수 있다고 말을 한다.


세조(수양대군)은 정종을 전라도 광주에 유배시키는 것으로 정종을 살려준다.


그런데 정종은 1456년 6월1일 창덕궁 현장에 없었다. 왜냐하면 정종은 1455년 6월 11일(윤) 금성대군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어서 경기도 수원으로, 8월 정종 자신의 통진 농장에 유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세조(수양대군) 암살 음모를 꾸미는 장소로 영양위 정종의 집으로 그렸지만, 실제는 주로 성삼문의 집에서 모든 모의가 있었다.


또한, 사전에 단종에게 세조(수양대군)을 척살할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을 수시로 알리고, 거사일이 1456년 6월 1일 창덕궁 연회에서 할 것이라고 말하자, 단종은 칼을 직접 내준다.


하지만, 6월 1일에는 창덕궁 실내 행사장이 넓지 않아서 별운검을 세울 수가 없었다. 신숙주는 별운검을 세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알렸고, 성삼문은 예에 따라 별운검을 세워야 한다고 했지만, 세조(수양대군)은 신숙주의 말을 듣고 별운검을 세우지 않게 하였다.


모든 드라마에서 악신의 대명사로 나오는 한명회가 별운검을 세울 수 없다며 사육신을 잡아들인다는 설정은 허구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김질은 현장에서 잡히지 않고, 6월 2일 날 김질의 장인 정찬손과 함께 세조(수양대군)을 찾아가 어제 반란 계획이 있었느나 실패했다며 알린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를 보고 있으면 사건들을 당일로 압축하려는 경향이 농후하다.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란이 끝나고 김승유가 강화도에 갔다오니 어느덧 세월은 지나 1455년 6월 11일이 되고 정종과 금성대군이 유배를 떠나는 것으로 그려지고, 몇 일 지나지 않았는데 1456년 6월 1일 사육신들의 단종복위 사건이 일어난다.

공주의 남자에서 하루는 1년과도 같다. 최소한 세월이 지났다는 장면이라고 살포시 남겨주면 좋지 않을까? 장면하나 삽입한다고 돈드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고 재미가 있지도 않다. 극을 보다가 이게 “머뮝”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간관계의 리얼리티는 고사하고 최소한 극중 개연성이나 리얼리티라도 살려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사육신은 죽고 정종은 살아남아 전라도 유배를 떠나니 앞으로 정종은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보기 힘들것 같다. 정종역을 맡은 이민우는 디스크 증상이 있어서 촬영에 임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만약, 이민우가 디스크 이상증세가 없었다면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두고두고 나왔을 것인데 안타깝다고 할 수 있다.
 

승정원(承政院)에서 전지를 받들어 광주 목사(廣州牧使)에게 치서(馳書)하기를,

“건장하고 부지런하며 조심성 있는 사람을 골라서 이유(李瑜) 의 배소(配所) 네 모퉁이를 나누어 지키게 하고, 당자와 잡인(雜人)의 출입을 엄하게 금방(禁防)하되, 힘써 안정(安靜)을 기하여 놀라지 말게 하라.”

하고, 동시에 이영(李瓔) ·이어(李) ·이전(李瑔)·정종(鄭悰) 의 정배된 여러 고을에도 같은 글을 보내어 유시하였다. 1456년 6월 3일


물론, 공주의 남자에서 유배간 정종을 사육신의 사건현장에 등장시키는 만행까지 저질렀는데 극의 재미를 위해서라면 이민우의 디스크가 나가던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다시금 불러들여 단종이 영월로 유배를 떠나는 현장에 동원한다고 말이다. 유배 떠난 정종(이민우)를 따라 경혜공주가 쉼 없이 광주로 촬영을 떠나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누가 역사적인 사건 현장에서 뜬금없이 등장하는 정종이 재미가 있다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작가의 역사 망치는 재미라면 모를까 말이다.
 


그렇다면 극에서는 모두 사육신들이 거열형을 당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는 옥에서 죽은 자와 고신을 이기지 못하고 죽은 자, 집에 있다가 자살한 유성원 등 다양한 죽음을 맞이한다.
 

 전 집현전 부수찬(集賢殿副修撰) 허조(許慥)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허조는 이개(李塏)의 매부로 역시 모반에 참여하였기 때문이었다. 6월 6일


박팽년(朴彭年)이 이미 공초(供招)에 자복하여 옥중에서 죽으니, 의금부(義禁府)에서 아뢰기를,

“박팽년·유성원(柳誠源)·허조(許慥) 등이 지난해 겨울부터 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하위지(河緯地)·성승(成勝)·유응부(兪應孚)·권자신(權自愼)과 함께 당파를 맺어 반역을 도모하였으니, 그 죄가 능지 처사(凌遲處死)에 해당합니다.

청컨대 허조·박팽년·유성원의 시체를 거열(車裂) 하고, 목을 베어 효수(梟首)하고, 시체를 팔도에 전(傳)하여 보일 것이며, 그 재산을 몰수하고, 연좌된 자들도 아울러 율문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6월 7일

세조실록 1456년


그리고 계유정난 때처럼 역모에 연루된 120여명이 죽고, 살아남은 16세 미만의 남자들과 나이에 상관없이 살아남은 여자들은 노비가 된다.
 


계유정란에서 김종서의 남자 후손들은 유모의 손에 이끌려 송시열의 선조의 도움으로 살아 남은 김종서의 첫째 아들인 김승규의 3살 먹은 셋째 말동(행남)과 16살이 되지 않아서 노비로 간 둘째아들 김승벽의 첫째 아들인 중남과 유모의 손에 살아남은 팽(삼동), 그리고 공주의 남자 주인공으로 나오는 김승유의 아들 효달 뿐이었다.

공주의 남자 주인공 김승유는 실존인물로 계유정난 이전 죽었다. 그래서 역사에서 자리를 감춘다. 더군다. 김종서를 비롯한 모든 아들들이 복권되었지만, 김승유는 이미 죽어 변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록에 남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사육신의 쿠데타 실패에서 살아남은 후손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육신으로 명명된  사람중 참화에 살아남은 후손은 박팽년 뿐이었다.

1800년 정조 때 박팽년의 후손은 절손되지 않고 살아남아서 번창하였고, 하위지는 조카 원에 후사를 당부하여 자를 들여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오신의 집안인 이보흠, 성삼문, 유승원, 이개, 유승부는 절손되었다. 추후 성삼문도 살아남은 방계로 하여금 성삼문의 양자 사손이 되어 대를 잇게 하였다.

 

저 육신의 정성을 다한 충성과 큰 절의는 실로 하등의 차이가 없는데 박팽년의 한 가닥 핏줄은 다행히 끊기지 않았고 근래에 또 번창하고 있으니, 하늘이 복을 남긴 이치를 족히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저 오신(五臣) 집안의 혈통이 끊겨 후사가 없는 것은 실로 천지간에 유감이자 백대의 가슴아픈 일입니다.


과거 숙묘(肅廟) 을유년 에 예조 판서 민진후(閔鎭厚)가 경연에서 건의하기를 ‘하위지는 체포되어 가는 날 죽은 뒤의 일을 그의 조카 원(源)에게 부탁하였으니, 을사 명신(乙巳名臣) 김저(金䃴)에 대해 양자를 들여세운 사례에 따라 원의 후손으로 하여금 그 제사를 받들게 하소서.’ 하니, 숙묘께서 하교하기를 ‘육신은 다른 사람과 다르니 어찌 끊긴 후사를 이어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뢴 대로 특별히 시행하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위지는 비로소 그의 제사를 받드는 후손이 생겼으나 성·유·이·유의 집들만은 그와 똑같이 끊긴 자손을 이어주는 은전을 입지 못했는데, 사실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조 24년, 1800년 4월 12일


경기 유생 이유제(李維濟) 등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단종조(端宗朝)의 육신(六臣)인 고(故) 충정공(忠正公) 박팽년(朴彭年)·충문공(忠文公) 성삼문(成三問)·충간공(忠簡公) 이개(李塏)·충경공(忠景公) 유성원(柳誠源)·충렬공(忠烈公) 하위지(河緯地)·충목공(忠穆公) 유응부(兪應孚)의 우뚝한 충성과 높은 절개는 국사[國乘]에 소상히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저 이개·유성원·유응부 세 사람만은 유독 뒤를 이어 제사를 주관할 사람이 없으니, 하 충렬공(河忠烈公)·성 문충공(成文忠公) 두 신하에게 입후(立後)하게 한 사례에 의거하여, 그들의 제사를 받들도록 하는 것이 적당하겠습니다.”

- 순조 11년 1811년 4월 22일



이개의 경우 1900년대 까지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한산 이씨인 이개의 방계 친족인 이용직이 고종 39년, 1902년 2월 4일, 한산이씨 종종에 알리고, 이두복의 둘째 아들 이중원으로 하여금 이개의 사손이 되어 이개의 계통을 잇게 한다.  성삼문, 유성원, 하위지,유응부 가문도 방계 친족으로 하여근 사손하도록 한다.


신은 외람되고 망령됨을 헤아리지 않고 종중(宗中)에 알린 다음 일가(一家) 사람인 이두복(李斗馥)의 둘째 아들 이중원(李重遠)을 충간공 이개의 사손으로 세우려고 합니다마는 신중한 문제이므로 신의 집안의 사사로운 일이라고 해서 제멋대로 할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특별히 윤허하여 빨리 예원(禮院)에서 품처(稟處)하게 함으로써 대를 이을 사람을 세워 제사를 받들게 하는 동시에 또 정려문을 세우도록 명함으로써 풍속과 교화를 바로 세우소서.

이 밖의 네 신하인 충문공(忠文公) 성삼문(成三問), 충경공(忠景公) 유성원(柳誠源), 충렬공(忠烈公) 하위지(河緯地), 충목공(忠穆公) 유응부(兪應孚)에 대해서도 각기 그들의 집안에서 사손을 세우게 하며 모두 정려문을 세워주는 은전을 베풀어 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나라에서 충성과 절개를 장려하는 뜻에 부합되는 것이니 장례원(掌禮院)으로 하여금 모두 상소의 내용대로 시행하도록 하겠다.” - 고종실록 1902년



지금 현재 이개의 후손을 자처하는 한산이씨는 1902년 이두복의 후손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글쓴이도 아버지의 3형제 중 제일 큰아버지가 남자 후손을 남기지 않고 돌아가셔서 막내였던 아버지가 맏아들인 글쓴이를 큰아버지의 족보에 올리려한 적이 있었다.


후사를 잇지 못할 때 많은 사람들이 양자가 되어 대를 이어가고 족보에 오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었다. 정조도 사도세자의 아들이었지만, 영조의 일찍 죽은 맏아들 효장세자에 입적이 되어 원손, 세손이 되었다가,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자신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한 적이 있다.


삼국사기에서 신라의 계보나 백제의 계보가 생몰년과 후손관계에서 이상한 면이 보이는데 양자와 사손의 개념을 도입하면 충분히 해석가능한 부분이 많다.


공주의 남자를 보고 김종서의 후손들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너 김종서의 후손이라고 하는게 공주의 남자에서 김종서의 후손은 다 절손되었다는데 족보를 산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이다. 김종서의 후손은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인가? 간신히 난을 피해 살아 남았는데 겨우 듣는 다는 말이 역사와 100% 무관한 드라마를 보고 김종서 집안은 절손되었다는데 너 조상이 족보를 샀구나 하는 시덥잖은 소리를 들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김종서 집안과 적대적이었고 배신을 때린 사육신과 엮이니 얼마나 얼척없겠나?

 

 이현로(李賢老)·이승윤(李承胤)·이개(李塏)·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 등이 교결(交結)하여 마음으로 굳게 맹세하고 ‘문하(門下)’라고 칭하고, 모두 도서(圖書)의 헌호(軒號를 지어서 서로 한때의 문사임을 자랑하였으나, 모두 농락(籠絡)당한 것이었다

..중략..


한때 (안평대군) 용(瑢)에게 아첨하는 자들이 용(瑢)에게 글을 보내는 데 한결같이 계서(啓書)와 같이 하여, ‘용비(龍飛)’·‘봉상(鳳翔)’·‘번린(攀鱗)’·‘부익(附翼)’·‘계운(啓運)’·‘개치(開治)’ 등과 같은 용어를 쓰고도 의혹하지 않았으며, 혹은 신이라 칭하는 자도 있었다. 정난(靖難) 한 뒤에 많이 얼굴을 바꾸고 꼬리를 흔들었으나, 세조는 모두 묻지 않았다

- 단종 1년, 1453년 5월 19일


집의(執義) 이개(李塏)가 본부(本府)의 의논을 가지고 아뢰기를,

“신 등이 지금 정부에서 아뢴 죄목(罪目)을 보니, 이용(李瑢)이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정분(鄭笨)에게 지시하여 심복을 병조(兵曹) 군기감(軍器監)에 포열(布列)하게 하였다 하였으니, 정분의 죄가 황보인·김종서에 못하지 않습니다. 허후(許詡)는 집정 대신(執政大臣)으로서 자주 용(瑢)의 집에 갔으니, 당여(黨與)인 것이 분명합니다. 조수량(趙遂良)·안완경(安完慶) 등은 용(瑢)과 더불어 비밀한 말로 약속하였고, 또 조수량은 용(瑢)의 금대(金帶)를 받았으니, 이것도 또한 용(瑢)의 당입니다. 조순생(趙順生)·이석정(李石貞)·지정(池淨) 등은 모두 무관(武官)으로서 용(瑢)의 집에 왕래하여 당원(黨援)을 하였으니, 청컨대 모두 율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그 나머지 지당(支黨) 이보인(李保仁) 등은 밤낮으로 용의 집에 모였으니 어찌 역모를 알지 못하였겠습니까? 또한 법에 의하여 논단하소서.”

- 단종 1년, 1453년 10월 28일


 

더군다나 이개를 비롯한 많은 사육신들이 안평대군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가 안평대군과 황보인, 김종서가 수양대군 일파에 척살되자. 배신을 때리고 김종서, 황보인, 안평대군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들을 단종을 압박해서 죽이라고 한사람들이 사육신들의 다수였고, 정난공신이 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배우지 않고, 그저 사육신은 충신인데 왜 비난하냐는 사람들이 있다. 미안하지만, 김종서, 안평대군, 황보인 등도 충신가문으로 복원된다. 충신들의 가문과 후손을 죽이라고 사주한 사육신이 되는 것이다.


사육신에게 정난공신은 빼고, 단종폐위하고 세조 옹립한 공으로 받은 좌익공신은 빼고, 단종복위에 참가했다 멸족되고 추후 복원되었으니 충신가문이라고 해주어야하는 것인가?


최소한 사육신이 왜 계유정란 후에 김종서 일파를 죽이지 못해서 안달하고, 단종을 몰아내는데 혁혁한 공로가 있어서 세조옹립한 공으로 좌익공신이 되고, 후에 세조를 몰아내고 단종 복위를 꿈꾸었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저 단편적인 면을 보고 비난하는 초딩스런 댓글은 사양한다. 정치가 왜 생물이라고 불리우는 지 생각좀 하였음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이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글을 포스팅했다.

왜 유교의 나라인 조선에서 불교를 억압하고, 유학을 숭상하였는지는 사육신, 생육신, 김종서 등을 봐도 쉽게 알수 있다. 유교는 맹자를 받아들여 왕을 없애고 새로운 왕을 세워도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조선에서 반정이 많고 이를 합리화하고 반정에 맞서 죽은자들을 숭상하기도 한다. 

사육신 들은 유교를 유일한 종교처럼 이를 교조적으로 받아들였음을 알수 있다. 여타종교인 불교에 대해서 극히 격멸하였다. 이들은 세종까지 말년에 궁궐 내불당 불사를 한것에 망년되었다고 이야기한 사람들이다. 조선 초기 임금들은 불교도 유교처럼 백성을 다스리는 기본으로 삼고자 하였지만, 유학자들중 사육신 계열은 참지를 못했다. 이에 대해서 간략하게 다룬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참조하기 바란다.


역사는 역사,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하는 대부분이 너희 집 족보 샀지하는 얼척 없는 소리나 한다. 그리고 역사는 모르고 드라마를 보고 역사이야기를 하면서 역사는 역사, 드라마는 드라마라는 소리를 달고산다. 역사를 드라마를 보고 배웠어요라는 말처럼 어처구니 없는 말은 없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나는 역사를 몰라요라는 댓글을 달기도 한다. 더군나나 김종서가 어떻네, 세조가 어떻네 신숙주가 어떻네, 신면이 어떻네, 사육신이 어떻네 하는 사람투성이다. 키스를 책으로 배웠다는 개그가 떠올리게 된다.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세령공주 진짜 로미오 둘째 김승벽의 김석동일까? 첩 손자일까? 계유정란 김승유 3살? 대략난감,

2011/09/23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불쌍한 신면과 배신자 사육신 어떻게 충신 아이콘 되었나?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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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소쿠한 2011.09.22 1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논리는 좋네요.
    다만 어휘는 좀 신경써야할 듯.
    방개 > 방계
    종종 > 종중 .... 좋은 몸을 못따라가는 옷을 입은 듯... 아쉽네요.

  3. BlogIcon ㄷㅇㄷ 2011.09.22 1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의 기록이 사실이 아닐수도 있잖아요...세조가 자기입장에서 기록해놓은건데 성삼문이 정말 그렇게 이리 붙었다 저리붙었다 했나요? 그럼 신죽주보다 더 나쁘네요?

  4. Favicon of http://ㄹㄷhttp:// BlogIcon ㄷㅇㄷ 2011.09.22 17: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삼문이나 사육신이 한 일들은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위해서 그런거고. 세조가 한일들은 결국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한일이고...

  5. 기백 2011.09.23 0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렸을 때는 역사를 단순히 배웠으나 나이가 드니 역사는 이해를 하는 것이 된다. 세조, 단종, 한명회, 깁종서, 사육신, 생육신 등 의미있는 사람들로 보이지만 결국 서로 싸우고 죽이는 정치 집단의 횡보였을 뿐이다.

  6. 의문 2011.09.23 0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GUES메뉴에 들어가 글을 남겼는데, "비밀댓글"만 달려 있을 뿐 님의 답은 보이지 않네요.

    일단, 사육신에 대한 님의 평가는 재미있었습니다.
    근데 제가 알기로 사육신은 단순히 "몇 번의 모의와 한 번의 시도"로 그리 된게 아니란 겁니다.

    김질만 해도 장기간 사육신들의 모의에 가담하고,
    계속된 실패에 두려움을 느껴 배신을 한 겁니다.

    즉, 1456년 6월 1일 딸랑 한번의 거사에 실패하지마자,
    곧바로 다음 날인 6월 2일에 배신때리고 밀고하는게 아니란 거죠.

    물론 김질의 입장에서는 실록에 기록된 것처럼 빡빡 우기는 최상입니다.
    마치 자신은 적극적으로 가담한 적이 없었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근데 실록의 기록은 그대로 믿을 수 없습니다.
    그 기록대로라면 성삼문은 거의 바보천치니까 말입니다.
    그런 수준의 바보천치가 역모의 모의한다? 웃기는 일입니다.

    별다른 감정교류도 없는데 김질에게 혜성이 어떠니 저떠니...
    말도 안되는 기록입니다.

    따라서 사육신들은 1455년 아직 단종이 재위하던 시절에 수양대군을
    제거하려 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이미 재위해 버린 뒤에는 역모가 되지만,
    재위하기 전에는 역모가 아니니까요.

    그리고 1456년에 김질이 배신을 때린 이유도 중국에서 세조를
    정식왕으로 인정할 것 같으니까 배신을 때렸다고 봄이 타당합니다.
    (즉 대세가 기울자 바로 변신 한거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11.09.23 09: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육신의 모의는 1455년 말부터 시작한다고 하지요..

      설마 그낭 6월 1일에 모의를 하자고 했을까요? 모든 준비를 한후 결정적인 때를 기다렸다가 명사신이 오는 창덕궁 연회와 별운검이 된때로 잡았겠지요.. 문제는 별운검을 세울수 없었고, 하늘이 자신들을 버린다고 생각을 하고 김질이 배신을 때린것이고. .별운검을 없앤 신숙주가 반란의 낌새를 챈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김질의 배신으로 이끌지 않았을까요. .

      실질적으로 사육신이 세조를 배신한 이유는 저는 궁궐의 내불당 사건으로 생각합니다.. 세종말년에 세종이 내불당을 만들자 끊임없이 세종을 압박하고 불교탄압을 하지요. 사육신을 비롯한 집현전 학사들이.. 문종 때, 단종때 까지요. 문종때 박팽년은 세종을 망령되게 비난하다 옥에 갇히는 고초도 겪고, 성균관, 사간원, 집현전으로 부터 언론을 탄압하지 말라는 상소를 접하지요..

      계유정란이 끝나는 시점에서 불당을 없애자고 집현전의 학사들은 주장한단 말이지요.. 그런데 집현전 학사출신인 수양대군도 불사를 하는데 적극적이였던 거지요. 그래서 호랑이보다는 어린 토끼가 낫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단종은 말년에 불당을 없애려는 시도에 항복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이에 대해서 다음기회에 자세히 다뤄볼까합니다.

      성삼문은 바보 맞는것 같은데요.. 낼름 옥새를 넘겨주니 말이지요.. 당시에는 도사들을 잘 믿거군요.. 도사를 빌어서 내불당을 없애려는 시도도 하니..

      사육신들의 다수는 안평대군의 편에 있었으니 계유정난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사육신은 안평대군을 앞세워 수양대군(세조)를 척살하고 권력을 잡았을지도 모르지요..

    • 의문 2011.09.23 1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즉, 세조가 이미 왕이 되었고, 세조를 왕으로 인정하는 사신이 오는 때를 [반란시기]로 잡은 게 이상하다는 겁니다.

      생각하기에 1456.6.1에는 아무런 시도도 없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차라리 단종이 재위하고 있던 시절에 수양제거를 시도했음이 맞을 거고, 그렇다면 님이 주장하는 사육신과 수양의 짝짝꿍 뒤 배신은 그리 적절한 설명은 아니지 않나 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11.09.23 1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수양이 왕이 되기 전에 수양을 없애려 했다는 증거는 없지요.. 물론, 안평대군과 짝짝궁 해서 수양을 없애려한 흔적은 있지요.. 계유정란시기 안평과 김종서를 배신하고 이들과 관련된 자들은 주살하라고 하지만 말이지요.

      단종이 양위할때 성삼문은 옥새까지 바치구요.. 이는 님이 말한 단종시기 사육신이 수양을 죽이려 하지 않았다는 절대적인 증거가 되지요. 세조를 옹립하고 단종을 복위하려는 시도를 한 증거는 세조 초창기로 돌아가서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실록에서도 1455년 6월 11일(윤) 세조옹립하고, 1455년 년말에 당을 만들어 세조에 반기를 들었다고 했으니요.. 한마디로 사육신은 배신의 역사였다가 제 결론입니다.

      안평대군 배신->정란공신-> 단종배신 -> 좌익공신->수양(세조)배신->사육신

      신숙주보다 배신을 밥먹듯이 하지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11.09.23 1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데 사육신의 배신에서 일관성이 있는 구석이 있다는 거지요.. 저는 그것을 사육신의 유교를 학문이 아닌 유일종교로 믿었고 이를 실천하다 갔다는 걸로 해석하고 싶은데.. 계유정란에서 안평대군과 김종서를 배신한 부분은 해석이 안되더군요.. 물론, 김종서와 안평대군이 유.불을 조화한 점이 있고, 수양도 유.불을 조화시킨점이 있지만.. 이부분까지 계산을 하면 결론적으로 사육신은 요즘으로 치면 개독교적 유교관을 가졌다 입니다.

    • 의문 2011.09.23 16:32  댓글주소  수정/삭제

      1455년말에 사육신들이 수양을 제거하려 햇다는 것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님의 주장대로라면,
      사육신들은 수양이 왕으로 즉위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자 말자 곧바로 배신했다는 게 되니까요.

      물론 님은 기록이 그렇다고 할 것이고,
      불교(내불당)를 이유로 대시겠지만,

      기록에는 수양과 사육신들이 내불당 때문에 마찰을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게다가 수양이 불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사육신들 다 죽이고 나서 입니다.

      따라서 유교때문에 사육신들이 배신을 밥먹듯 했다는 것보다는,

      차라리...
      계유정란에서 사육신이 공신이 된 것은 수양을 견제하려고 단종이 그리 했다고 보는 게 맞고,

      수양제거시도는 수양이 즉위하기 직전에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수양이 왕에 오르기 직전에도 사신들 왔었습니다.)

  7. 하하 2011.09.24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월 21,22 국내최고 라이브가수 박완규 ..... 그리고 부활 패밀리 총출동!

    그동안 방송을 통해 볼수없었던 그와 그들의 최고의 무대, 2011년 10월 "사랑" 이라는 테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최고의 무대로 부활하는 이번 콘서트에서는 박완규 외에 부활 패밀리의 총출동으로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국내 그룹 부활의 보컬 정동하 그리고 역대보컬 이성욱, 정단 위대한 탄생의 최고의 히트메이커 등이 함께
    참여해 박완규와 함께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그동안 방송이나 공연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환상적인 무대 출연진들과 함께 꾸미는 최고의 하모니!

  8. Favicon of http://www.autoankauf-fahrzeug.de BlogIcon klaus 2011.09.30 0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ehr schön :)

  9. Favicon of http://etboosters.com BlogIcon 2012.01.01 15: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전체에 서있다면 당신은 파고있어, 당신은 파고를 중지해야합니다

  10. Favicon of http://blackcollegewire.com BlogIcon 유병수 2012.01.04 0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도 못 한다

  11. Favicon of http://thehamletnews.com BlogIcon 박기동 2012.01.04 2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2. Favicon of http://crantfordsflowers.com BlogIcon 원숭이 2012.01.07 0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는말이 고와야 오는말이 곱다

  13. Favicon of http://elephants.dontexist.net BlogIcon Alyssa 2012.04.06 0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에 영어를 하시는 분 계십니까?

  14. Favicon of http://camdentown.from-me.org BlogIcon 애디슨 2012.05.11 0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15.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륭한 읽기 위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싶은 찾기 위해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확실히 그것의 모든 조금을 즐기는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새로운 물건을 체크 아웃하는 당신이

  16. Favicon of http://www.hometravel-luggagebag.com/trolley-backpack.html BlogIcon trolley backpack 2012.08.21 1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llkjihygjhfg

  17. Favicon of http://ford.grupocaiuas.com.br/new-fiesta-hatch BlogIcon new fiesta 2013.01.30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시물 반갑습니다. 나는 매일 다른 블로그에 대한 자세한 도전 뭔가를 배우게됩니다. 항상 다른 작가의 콘텐츠를 읽고, 그들의 상점에서 뭔가를 조금 연습을 자극한다. 당신이 상관 없어 여부를 내 블로그에 콘텐츠를 일부 사용 싶어요. Natually 당신에게 당신의 웹 블로그에 링크를주지. 공유 주셔서 감사합니다.

  18. Favicon of http://hondacarros.grupocaiuas.com.br/civic BlogIcon civic 2013.03.21 0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기사으로 자리, 내가 정말이 웹사이트는 더 많은 배려를 필요로 생각합니다. 난 아마 그 정보를 훨씬 더 감사를 읽어 다시됩니다.

  19. Favicon of http://hondacarros.grupocaiuas.com.br/civic BlogIcon civic 2013.03.21 0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기사으로 자리, 내가 정말이 웹사이트는 더 많은 배려를 필요로 생각합니다. 난 아마 그 정보를 훨씬 더 감사를 읽어 다시됩니다.


<공주의 남자>에서 사육신 중 한명인 이개와 사육신 등이  절대로 김승유와 한편이 될 수 없다는 글을 송고했더니 이개의 후손이나 사육신 중의 후손 이라는 사람들이 가끔 댓글을 단다.


조상을 욕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조상을 욕보이는 측은 다름이 아닌 공주의 남자 작가인데도 말이다. 


목은 이색의 후손으로 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하였지만, 조선에 부용하지 않고 고려에 대한 충성과 절개를 지켰다는 것이다.


조선의 왕이 삼고초려를 해서 한산 이씨들이 조선 조정에 나갔는데 정난공신이 되고자 경솔한 판단을 했겠냐는 것이 골자이다.


논리적인 모순은 과연 이색의 후손이 이색의 고려에 충정을 이어 받았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조선의 왕들이 삼고초려를 해서 정치에 참가였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충절가문이거나 이색의 자손이라면 조선에서 정치를 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스스로 가문에 금칠을 하고 조선의 신하가 되었다고 하면 조상 이색을 배신한 건 한산 이씨들이다. 한산이씨들은 목은 이색을 어떻게 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색은 고려충신인데 후손들은 조선에 충성한 변절자들이란 말인가?


나는 이개선생 자손됩니다. 선생께서 쓰신 글을 보면서 어이없다 부족해 개탄을 느낍니다. 예로부터 우리 한산이씨 집안은 충신집안입이다. 목은(이색)선조께서도 쿠데타를 통해 국가를 세운 이성계를 인정하지 않으셨고, 그런 영양하에 우리 가문은 조선왕조초기엔 정치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국왕의 심고초려 끝에 정치에 나선 분들인데 그런 경솔한 판단을 하셨겠습니까? 그것도 정난공신 이 되고자? 정정하십시오. 만약 그런 불명예 스런 일이 있었다면 우리집안이 지금까지 '명문대가'로 남지 못했을 것 입니다. 바른 이해로 역사를 왜곡하시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한산이씨가문이 어떤 집안인지에 대해 알아보신 후에 쓰신 글을 다시 돌아보십시오


http://dreamlive.tistory.com/708


더불어 정난공신이 되고자 이색의 후손들이 정치를 했냐는 거냐고 반문을 하면서 어이가 없고 개탄스럽다고 말을 한다. 도대체 정난의 주동자인 안평대군과 김종서와 황보인이 충신이라는 말인가?

이들이 정난으로 숨진 김종서와 황보인과 안평대군이 단종을 보위하는데 적극적이였고 충신이였다는 증거를 제시해만 한다. 하지만, 단지 김종서는 충신이다 세조가 죽였다는 드라마에서나 봄직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들의 조상을 욕보이고 있다. 이는 드라마가 만든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드라마의 폐해가 자신의 조상을 역신으로 만들고 있다.


오히려 한산 이씨들의 후손을 자처하는 자의 입장에서 계유정란으로 죽은 황보인과 김종서와 안평대군이 어디로 봐서 충신이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일관성이 있다. 설령 김종서와 황보인과 안평대군이 충신이었다고 하자 그런데 이들을 몰아내는데 혁혁한 공이 있어서 정난공신이 된 이개와 사육신들은 무엇이 되는가?

 

더군나가 그런 불미스런 일이 있었다면 한산 이씨들이 지금까지 명문대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을 한다.


충신 김종서와 황보인, 안평대군을 죽이고 정난공신이 된 이개는 만고의 역신이라는 뜻인데 예로부터 한산이씨 집안은 충신집안이라고 하는 건 무슨 뜻인가? 충신을 때려죽이는 명문대가 충신집안도 있던가?  


도대체 한산이씨 후손들은 역사책은 보지 않는 모양이다. 단종복위를 위해서 죽음으로 단종에 충성했으니 충신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한산 이씨 모두가 역신일 필요도 없고, 모두 충신의 후손일 필요도 없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이중적인 형용모순을 범하는 이는 이들 뿐만 아니다.


글쓴이 같으면 오히려 김종서와 황보인과 안평대군이 역신이었고, 이를 제압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이개는 충신이라고 말하는 게 합리적일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야 만고의 충신가문이 되지 않겠는가?
 

한산이씨 가문이 어떤 집안인지는 알바가 아니다. 단지 이개는 계유정란공신이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개를 비롯한 사육신들은 단종으로부터 계유정란을 제압한 공으로 토지와 노비와 재물을 하사 받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개 등은 계유정란이 끝난 후에도 김종서와 황보인과 안평대군에 연루된 자들은 죽이라고 단종을 압박한 전력도 가지고 있다.

 

“신 등이 지금 정부에서 아뢴 죄목(罪目)을 보니, 안평대군 이용(李瑢)이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정분(鄭笨)에게 지시하여 심복을 병조(兵曹) 군기감(軍器監)에 포열(布列)하게 하였다 하였으니, 정분의 죄가 황보인·김종서에 못하지 않습니다. - 단종 1년 1453년 10월 28일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이개가 김승유를 끌어안고 우는 장면은 한편의 개그에서도 시도하지 않는 장면이다. 물론, 드라마로 역사를 배운 자들은 감동적인 장면이겠지만 말이다.

이는 계유정란으로 죽은 김종서와 황보인과 안평대군은 충신이라는 환상에서 오는 오류일 뿐이다. 이개나 사육신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김종서와 황보인과 안평대군은 대신이라는 미명하에 어린 단종을 핍박해서 자신들의 권력을 탐한 역신이라고 생각했다면 이개가 왜 계유정란공신이 되었는지 쉬이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을 때 사육신의 다수가 신숙주와 같은 좌익공신이 되었다. 공신은 아무나 주는 게 아니다. 일정한 공로가 있었거나 당대 영향력이 있어야 주어지는 게 공신이다. 단종을 몰아내고 수양대군이 왕이 되는 것에 반대하는데 공이 있다고 <좌익공신>을 주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소나개나 공신이 될 수가 없다.


한명회, 신숙주와 함께 단종폐위와 수양대군(세조) 옹립으로 좌익공신이 된 사육신 성삼문

임금이 좌익 공신(佐翼功臣)을 정하는데,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익현군(翼峴君) 이관(李璭)·한확(韓確)·윤사로(尹師路)·권남(權擥)·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를 1등으로 삼아 수충 위사 동덕 좌익 공신(輸忠衛社同德佐翼功臣)이라 이름하고, 정인지(鄭麟趾)·이사철(李思哲)·윤암(尹巖)·이계린(李季疄)·이계전(李季甸)·강맹경(姜孟卿)·윤형(尹炯)·최항(崔恒)·전균(田畇)·홍달손(洪達孫)·양정(楊汀)·권반(權攀)을 2등으로 삼아 수충 경절 좌익 공신(輸忠勁節佐翼功臣)이라 이름하고, 권공(權恭)·이징석(李澄石)·정창손(鄭昌孫)·황수신(黃守身)·박강(朴薑)·권자신(權自愼)·박원형(朴元亨)·구치관(具致寬)·윤사윤(尹士昀)·성삼문(成三問)·조석문(曹錫文)·이예장(李禮長)·원효연(元孝然)·한종손(韓終孫)·이휘(李徽)·황효원(黃孝源)·윤자운(尹子雲)·이극배(李克培)·이극감(李克堪)·권개(權愷)·최유(崔濡)·조효문(曹孝門)·한계미(韓繼美)·정수충(鄭守忠)·조득림(趙得琳)을 3등으로 삼아 추충 좌익 공신(推忠佐翼功臣)이라 이름하였다.

세조 1년 1455년 9월 5일 (음)



유학을 학문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종교화 되어 있는 유학자들이 있었는데 조선의 유학자들은 왕은 단지 유학자를 대신해서 나라를 경영하는 존재로 인식을 했었다. 더군나다 조선의 세종을 비롯한 왕들은 자신들 스스로 유학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왕이 정치를 잘못하면 같은 유자로서 왕을 교화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지만, 더 이상 교화할 수 없는 왕이라면 왕을 몰아내고 새로운 왕을 내세워도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물론, 몰아내야할 왕이 정말 패악스런 왕인지 아니면 교화가 가능한 왕인지는 유학자들마다 생각이 달랐다.


이 교리에 입각해서 계유정란으로 역신 김종서일파를 제거하고, 어린 단종을 몰아내고 수양대군이 왕이 되고, 세조(수양대군)을 몰아내고 단종을 복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측이 이개를 비롯한 사육신의 생각이었다. 그래야 사육신 이들의 일련의 행동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만고의 역적으로 몰린 신숙주를 비롯한 또 다른 유학자들은 세조가 정치를 잘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고, 단종복위에는 참가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신숙주와 사육신을 가르는 지점이다. 세조가 단종이 왕위를 찬탈했을 때 벼슬을 하지 않겠다고 초야에 뭍힌 김시습을 비롯한 생육신의 관점으로는 이개나 신숙주나 그 밥에 그 나물 일 뿐이었다.


이색이나 정몽주나 두문동에 숨은 자들은 고려를 계속 끌고 갈수 있다고 믿었고, 조선을 창업하는데 참여한 많은 유학자들은 더 이상 고려라는 왕씨의 나라는 존재가치가 없고, 새로운 역성혁명이 필요했다고 생각한 것처럼 말이다. 역성혁명을 옹호하는 측은 맹자였다. 그래서 맹자는 한때 왕조에 따라 금서이기도 했다. 역성혁명이나 반정을 한 세력들은 맹자를 받아들이고, 정권을 장악한 후에는 맹자를 금기시 한다. 이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수 있다.


문제는 조선에서 고려의 이색과 정몽주가 충신으로 추앙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조선이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조선과 왕을 위해서 충성할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정몽주, 이색 등이 반면교사로 충신의 반열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우리가 독립군을 본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이유와 같다.


그런데 왜 이개 등 사육신은 단종을 몰아내고 세조를 옹립하는데 혁혁한 공으로 공신의 반열에 올랐다가 세조를 배신하고 한때 배신했던 단종 복위를 꿈꿨을까?


단종은 만만했고, 세조는 만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개를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은 세종에게도 끊임없이 딴지맨 역할을 했다. 세종은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리지만 자신의 정치철학에 맞게 조선을 이끌어 갔다. 특히 조선은 유교를 바탕으로 정치를 하고 있었다. 유학자들은 고려가 불교 때문에 망했다는 선전을 줄기차게 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초기 조선왕들은 유교와 불교를 조화롭게 하면서 조선을 이끌어 가려하고 있었다. 이들 유학자들과 충돌하는 지점이다. 요즘으로 치면 여타종교는 안중에도 없는 개독처럼 유학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된 유일한 정치통치수단이라고 믿는 자들이 이개를 비롯한 사육신 들이였다.


 
세종는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하고,  석가의 일대기를 훈민정음으로 석보상절을 수양대군에게 편찬하게 하고, 세종 자신은 훈민정음으로 석보상절을 본 느낌을 월인천강지곡이란 대서사시로 만들기까지 했었다.


1448년 세종(30년) 말년 세종 창덕궁 북서편 궁궐 내에 내불당을 만들었다. 수시로 내불당에서 예불도 했었다.

그런데 성균관 유생들과 집현전 학사들은 집무를 정지하는 보이코트를 수시로 했었다. 더군다나 세종은 유교의 이상국가라고 생각하는 조선의 요.순이였지만 늙고 병들자 불교에 심취해서 망령되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단종 7권 1년 9월 30일 (계미) 2번째기사 / 나홍서가 황보인·김종서 등이 불당을 헐 수 없다고 말한 사실을 아뢰다

   단종 8권 1년 10월 4일 (정해) 1번째기사 / 정양 등이 불당을 허는 문제로 상소하다

   단종 8권 1년 10월 12일 (을미) 7번째기사 / 정양이 이용의 부자를 벨 것과 불당을 헐 것을 청하다

   단종 8권 1년 10월 13일 (병신) 3번째기사 / 이예장이 불당 철거를 급하게 하지 않아도 됨을 아뢰다

   단종 10권 2년 1월 3일 (을묘) 2번째기사 / 김구 등이 내불당을 철거하는 문제로 상서하다

   단종 10권 2년 1월 4일 (병진) 2번째기사 / 영의정·좌의정 등이 내불당을 철거하지 않음이 좋다고 아뢰다

   단종 10권 2년 1월 5일 (정사) 1번째기사 / 하위지·이석형 등이 불당 철거를 청하다

   단종 10권 2년 1월 6일 (무오) 1번째기사 / 유성원 등이 불당 철거를 청하다

   단종 10권 2년 1월 7일 (기미) 2번째기사 / 이개·유성원 등이 불당 철거를 청하다

   단종 10권 2년 1월 8일 (경신) 3번째기사 / 김구가 불당을 철거하는 문제로 상서하다



이개를 비롯한 사육신의 다수는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가 병들어 죽은 이유와 문종이 병약한 이유와 계유정란과 이징옥의 난 등이 내불당이 궁궐 내에 있었기 때문이라며 없애기를 줄기차게 문종과 어린 단종에게 주장하였지만, 병약한 문종이나 어려서 만만하다고 생각한 단종 때에도 이뤄지지 않았다.


 

세종(世宗)께서 병환이 위독하여 기도하였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어서, 몇 년 안에 잇달아 국상(國喪)을 당하였습니다. 또 근일에 변(變) 이 있어서 개국(開國) 이래로 이와 같은 참상(慘狀)이 있지 않았습니다. 지난번에 술사(術士)가 음양(陰陽)의 사위하는 것[拘忌]에 의거하여, 종묘와 사직을 침핍(侵逼)한다고 말하여 여러 번 번독(煩瀆)하여 마지 않았는데, 화난(禍難) 이 있은 이래로 스스로 증명이 되었음이 지극하다 하겠습니다. ‘불당(佛堂)을 혁파하지 아니하고는 이 궁궐을 다시 막을 수가 없다.



그래서 단종을 몰아내고 수양대군이 왕이 된다면 내불당과 조선에서 불교를 없앨 수 있다고 믿었다.


문제는 세조가 왕위에 올랐지만, 세조도 완강하게 내불당을 없애는데 반대를 하고, 오히려 내불당 예불에 참가하기 까지 했다. 사육신의 입장에서는 어린 토끼를 몰아냈더니 알고 보니 호랑이를 끌어들인 것이다. 그래서 사육신 입장에서 세조는 당연히 없애야할 군주가 된 것이다. 그리고 어린 단종이 만만했었던 것이고 말이다.


세종말년부터 단종말년까지 내불당철거를 주장하던 여론이 세조시기 내불당 철거나 이전에 대한 언급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세조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조가 죽자 다시 예종, 성종,연산군,중종 초년에 끊임없이 내불당을 없애자는 여론이 일어난다.

많은사람들이 세조(수양대군)가 조카을 왕위에서 몰아내고 결국에는 단종을 죽이고, 병이 들었고, 의경세자가 단명한후 잘못을 깨우치고 불교에 귀의했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세조는 그 이전 부터 불교와 땔래야 땔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종교전쟁이 단종복위사건에 숨어있었다고 글쓴이(갓쉰동)은 생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다음 기회에 올리겠습니다.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스승 이개 알고보면 계유정란공신, 사육신 단종폐위 좌익공신들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계백, 의자왕, 반란 실패한 사택비 죽고, 교기 왜로 쫓겨난다?

2011/09/19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광개토태왕, 계백, 사극 문헌고증 철저히 파괴해야 시청률 오른다?
2011/09/17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단종복위 위해 불구대천원수인 이개 성삼문 등 사육신과 동침한다?
2011/09/17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적과동침 실패. 단종 죽인건 사육신 충신인가? 배신 아이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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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7 - [역사이야기] - 은고 사비성 태울만큼 계백 사랑했을까? 공주의 남자 비롯한 역사파괴 끝은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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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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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www.smartbuyingstyle.com/shopping/best-christmas-gift-ideas-2012/ BlogIcon best christmas gifts 2012 2012.11.21 0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비 소설 이라고 하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진실 이다. 따라서, 그것은 드라마를 통합 하지 않습니다.

  3. Favicon of http://www.mixedmediawebsites.com BlogIcon Anchorage Website Design 2012.11.29 1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마 책자에서 과학자의 프로필을 찾을 것입니다. 많은 과학자는 책자를 작성합니다. 그것의 piblish 마일 그들의 작품.

  4. Favicon of http://www.coldlasertherapy.com BlogIcon Dallas Cold Laser 2012.11.29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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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Favicon of http://www.pelicanalaskafishing.com BlogIcon Southeast Alaska Fishing Lodge 2012.12.01 05: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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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Favicon of http://www.sqlsolutions.com/products/sql-deadlock-detector/index.html BlogIcon sql deadlock 2012.12.04 1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존의 지식을 실제로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을 계속할 것 이다 지역 중 하나입니다. 결과 대 한 노력을 계속 하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입니다.

  9. Favicon of http://houseofwealth.com.au/tax-and-accounting/property-accountants-nsw-vic/ BlogIcon investment property accountant Melbourne 2012.12.18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기존 과학 실로 급속 하 게 성장 하는 것입니다. 기지 밖으로 추구 하 고 지식을 확장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그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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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생각과 아이디어. 공유를위한 감사합니다. 좋은 일을 계속.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박시후)는 스승 이개와 사육신 등과 함께 세조(수양대군)을 척살하고 단종복위에 참여를 한다.

승유(박시후)는 세조를 죽이려하고 세령(문채원)은 승유가 목표로 한 인물이 누구일까 궁금해서 수시로 대호가 날뛰는 도성에서 호위무사도 없이 밤이슬을 맞으며 경혜공주를 찾아 나선다.

공주의 남자에서 세령은 김승유가 죽이려는 상대가 자신의 아버지 세조(수양대군)인것을 알고 아버지의 안위보다는 김승유의 안위를 걱정하며 궁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단종을 폐위하고 세조 옹립에 공을 세워 공신이 된  성삼문과 사육신의 일파들은 어찌하여 수양대군(세조)을 척살하고 단종복위를 꿈꾸었을까?


세조의 정치와 사육신으로 대표되는 성삼문의 정치의 목표가 달랐기 때문이다.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들은 유교를 바탕으로 신하들이 중심이 되는 정치를 하려했지만, 세조(수양대군)은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유교와 불교가 조화된 정치를 하려고 했다. 그러니 당연히 수양대군과 사육신들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계유정란 공신 성삼문에게 
 땅과 노비를 하사한 단종

숙부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기미를 알아내고 먼저 도모하여 흉한 무리들이 죄에 엎드렸다. (성삼문) 네가 명을 듣고 난에 다달아 같은 마음으로 협찬하여 종사에 공이 있으니 감히 대려(帶礪)를 잊겠는가? 그러므로 훈을 책정하여 3등을 삼고, 그 부모와 아내에게 벼슬을 주고 사유(赦宥)가 영원히 후대에 미치게 한다. 인하여 전지 1백 결·노비 7구·말 1필·백은 10냥·표리 1단을 주노니 이르거든 받으라. 아아! 비밀히 큰 계책을 도와서 이미 세상에 드문 공을 세웠으니, 특수한 공훈을 크게 보답하여 마땅히 비상한 은총(恩寵)을 가(加)하노라.”

- 단종 3년 1455년 1월 24일




단종시기 사육신으로 대표되는 인물들은 환관(내시)들이 정치에 관여하는 데 적극적으로 반대를 했었다. 절대 다수가 계유정란의 공신들이었던 사육신들은 환관인 엄자치와 전균도 정란공신이었지만, 엄자치와 전균이 군(君)이 되는 것을 자신들의 공신의 직위를 걸고 막는데 성공하였었다.


성삼문 옥새를 수양대군에게 넘기다.

 한확 등 군신들이 합사(合辭) 하여 그 명을 거둘 것을 굳게 청하고 세조 또한 눈물을 흘리며 완강히 사양하였다. 전균이 다시 들어가 이러한 사실을 아뢰었다. 조금 있다가 전균이 다시 나와 전교를 선포하기를, ‘상서사(尙瑞司) 관원으로 하여금 대보(大寶)를 들여오라는 분부가 있다.’고 하니, 모든 대신들이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을 변하였다. 또 명하여 재촉하니 동부승지(同副承旨) 성삼문(成三問)이 상서사(尙瑞司)로 나아가서 대보를 내다가 전균으로 하여금 경회루(慶會樓) 아래로 받들고 가서 바치게 하였다. 노산군이 경회루 아래로 나와서 세조를 부르니, 세조가 달려 들어가고 승지(承旨)와 사관(史官)이 그 뒤를 따랐다.

- 단종 3년, 세조 1년, 1455년 윤 6월 11일



한명회, 신숙주와 함께 단종폐위와 수양대군(세조) 옹립으로 좌익공신이 된 사육신 성삼문

임금이 좌익 공신(佐翼功臣)을 정하는데,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익현군(翼峴君) 이관(李璭)·한확(韓確)·윤사로(尹師路)·권남(權擥)·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를 1등으로 삼아 수충 위사 동덕 좌익 공신(輸忠衛社同德佐翼功臣)이라 이름하고, 정인지(鄭麟趾)·이사철(李思哲)·윤암(尹巖)·이계린(李季疄)·이계전(李季甸)·강맹경(姜孟卿)·윤형(尹炯)·최항(崔恒)·전균(田畇)·홍달손(洪達孫)·양정(楊汀)·권반(權攀)을 2등으로 삼아 수충 경절 좌익 공신(輸忠勁節佐翼功臣)이라 이름하고, 권공(權恭)·이징석(李澄石)·정창손(鄭昌孫)·황수신(黃守身)·박강(朴薑)·권자신(權自愼)·박원형(朴元亨)·구치관(具致寬)·윤사윤(尹士昀)·성삼문(成三問)·조석문(曹錫文)·이예장(李禮長)·원효연(元孝然)·한종손(韓終孫)·이휘(李徽)·황효원(黃孝源)·윤자운(尹子雲)·이극배(李克培)·이극감(李克堪)·권개(權愷)·최유(崔濡)·조효문(曹孝門)·한계미(韓繼美)·정수충(鄭守忠)·조득림(趙得琳)을 3등으로 삼아 추충 좌익 공신(推忠佐翼功臣)이라 이름하였다.

세조 1년 1455년 9월 5일 (음)



많은 사람들이 신숙주가 세종의 유명을 버리고, 조카인 단종을 폐위하는데 앞장섰다고 말하고 신숙주를 배신의 아이콘으로 쉬이 쉰다는 숙주나물을 만들어 버렸다.


신숙주는 세조를 옹립하는데 1등공신이었다면 성삼문은 조카를 폐위하고 수양대군이 왕이 되는데 3등공신이었다. 그래서 신숙주는 1등 좌익공신이고, 성삼문은 3등 좌익공신이다. 이들 간에 차이점은 없다. 똥통에 깊이 빠진 신숙주와 똥물만 뒤집어쓴 성삼문의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다. 성삼문은 신숙주에 어쩌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성삼문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데 수양대군은 신숙주를 더 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성삼문은 안평대군과 황보인, 김종서 일파를 몰아내는 계유정란 공신이였고,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수양대군(세조)가 왕이 되는 좌익공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문종실록이나 단종실록이 세조일파들이 기록한 것으로 김종서와 사육신을 폄훼하고, 세조를 높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종실록 수찬관에는 좌부승지 성삼문이 있다.
 

《문종실록(文宗實錄)》을 보록각(寶錄閣) 에 봉안하고 수찬관(修撰官)을 의정부에 〈모아〉 사연(賜宴)하였는데, 도승지 박원형(朴元亨), 좌부승지 성삼문(成三問)에게는, 명하여 선온(宣醞)을 하사하고, - 세조 1년 1455년 12월 19일



단종 복위 실패한 쿠데타 당일날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박팽년이 대답하기를,

“성삼문(成三問)·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이개(李塏)·김문기(金文起)·성승(成勝)·박쟁(朴崝)·유응부(兪應孚)·권자신(權自愼)·송석동(宋石同)·윤영손(尹令孫)·이휘(李徽)와 신의 아비였습니다.”

하였다. 다시 물으니 대답하기를,

“신의 아비까지도 숨기지 아니하였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을 대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그 시행하려던 방법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성승·유응부·박쟁이 모두 별운검(別雲劍) 이 되었으니,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그 시기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어제 연회에 그 일을 하고자 하였으나 마침 장소가 좁다 하여 운검(雲劍)을 없앤 까닭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대개 어전(御殿)에서는 2품 이상인 무반(武班) 2명이 큰 칼을 차고 좌우에 시립(侍立)하게 되어 있다. 이날 임금이 노산군과 함께 대전에 나가게 되고, 성승·유응부·박쟁 등이 별운검(別雲劍)이 되었는데, 임금이 전내(殿內)가 좁다고 하여 별운검을 없애라고 명하였다. 성삼문이 정원(政院)에 건의하여 없앨 수 없다고 아뢰었으나 임금이 신숙주(申叔舟)에게 명하여 다시 전내(殿內)를 살펴보게 하고, 드디어 〈별운검이〉 들어가지 말게 하였다.】 후일에 관가(觀稼) 할 때 노상(路上)에서 거사(擧事)하고자 하였습니다


- 세조 2년 1456년 6월 2일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는 창덕궁 경내의 야외에서 명나라 사신을 영접한 것으로 그리고 있고, 유승부 한사람만이 별운검으로 왕의 좌우에서 시위한 것으로 그리고 있지만, 실제는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과 유응부, 박쟁이 모두 별운검이었다. 하지만, 세조(수양대군)이 전내가 좁다는 이유로 별운검을 없앴다. 이때 성삼문은 의정부에 건의하여 없앨 수 없다고 말하지만, 세조가 신숙주에서 전내를 살펴보게 하고 별운검을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고 하였다.
 


드라마는 극적인 요소를 집어넣으려고 야외로 설정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야외 화면 빨이 살기 때문이다. 계유정란 장면에서도 전혀 다른 현장재현 전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공주의 남자에서 세조 2년 1456년 6월 2일의 일을 6월 1일 당일에 일어난 일로 그리고 있다. 실제는 6월 1일 세조와 의경세자(숭)과 예종이 되는 해왕대군(황)을 죽이고 단종 복위를 꿈꾸었지만, 실패하고 후일에 세조(수양대군)이 농사일을 살피려고 출궁할 때 노상에서 거사를 하려고 하였었다. 하지만, 6월 2일 김질이 장인인 정찬손과 함께 세조를 찾아가 전일의 사건을 고변하므로서 수양척살과 단종복위는 이뤄지지 않았다.


사육신 만고의 충신인가? 단종 죽음 이르게한 배신의 아이콘인가?

재미있게도 단종을 죽이는 단초를 제공한 이도 성삼문이었다. 상왕 단종의 존재는 수양대군을 왕으로 옹립한 세력에게는 커다란 위험부담이었다. 세조(수양대군)이 죽고 나서 의경세자나 왕자 황에게 대립할 수 있는 존재는 어린 상왕 단종이고, 세조에 반기들만 한 세력들이 사육신처럼 들고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상왕(단종)이 연루가 되지 않았더라도 단종을 엮어서 없앨 궁리를 하는 자들에게 성삼문,권자신은 다음과 같이 수괴가 단종이라고 말한다.
 

좌승지(左承旨) 구치관(具致寬)에게 명하여 의금부(義禁府)에 가서 성삼문(成三問) 등에게 묻기를,

“상왕(上王)께서도 역시 너희들의 역모에 참여하여 알고 있는가?”

하니, 성삼문이 대답하기를,

“알고 있다. 권자신(權自愼)이 그 어미에게 고(告)하여 상왕께 알렸고, 뒤에 권자신·윤영손(尹令孫) 등이 여러 번 약속을 올리고 기일을 고하였으며, 그날 아침에도 권자신이 먼저 창덕궁(昌德宮)에 나아가니, 상왕께서 긴 칼을 내려 주셨다.”

하였다. 구치관이 또 권자신에게 물으니, 권자신의 대답도 성삼문과 같았다.

- 세조 2년 1456년 6월 7일


자신들의 행위가 단종(상왕)이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칼까지 내려주어 정당성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단종(상왕)보고 같이 죽자는 소리다. 만고의 충신이 만고의 역신이라 불러도 할말이 없을 정도이다.


단종과 사육신들이 세조척살의 실패는 계유정란으로 김종서의 며느리와 자식들은 자신들이 하지도 않는 일에 쓰나미를 당한다.

큰아들 김승규의 아내 내은비와 딸 내은금, 첩의 딸 한금이 정인지에 하사되고 딸 숙희는 강곤에게 주어진다. 공주의 남자에서 강곤에서 하사된 김승규의 아내와 아강은 계유정란 때 강곤에서 주었다가, 세령공주와 신면이 빼돌려 돌보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사육신들의 반정(단종복위)실패 여파로 강곤과 정인지에 하사된 것이다.
 

 김승규(金承珪)의 아내 내은비(內隱非)·딸 내은금(內隱今)·첩의 딸 한금(閑今)은 영의정(領議政) 정인지(鄭麟趾)에게 주고,

..중략..

성삼문(成三問)의 아내 차산(次山)·딸 효옥(孝玉), 이승로(李承老)의 누이 자근아지(者斤阿只)는 운성 부원군(雲城府院君) 박종우(朴從愚)에게 주고, ..중략...

김승벽(金承壁)의 아내 효의(孝義)는 예조 참판(禮曹參判) 홍윤성(洪允成)에게 주고

이하 생략..

- 세조 2년 1456년 9월 7일 난신에 연루된 부녀들을 대신에게 나눠주다.



공주의 남자는 미래에 일어나는 일을 계유정란에 있었던 일로 퉁을 치고 있다. 과거나 현재가 미래를 결정한다는 말은 들어 봤어도 미래가 과거를 바꾼다는 말은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처음 보는 황당 SF 설정이다.


어쨌든, 드라마에서는 1456년 6월 1일 김질이 한명회에 잡혀서 일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공주의 남자가 사육신을 동원해서 세조를 척살하려는 장면을 넣은 이유는 김승유가 세조를 척살하는데 관여를 했다고 설정하고 싶은 과욕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역사와는 하등 상관없는 흐름으로 전개를 하였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은 계유정란 후 김종서일파를 죽이는데 적극적이였고, 경혜공주의 부마 영양위 정종(이민우)은 계유정란의 공신으로 영양위가 되었다. 한마디로 김종서 일가에게 사육신, 정정은 불구대천지 원수였다. 또한, 사육신들 대부분은 단종을 폐위하고 수양을 옹립하는데 적극적일뿐 아니라 공신이 되기도 한다.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이민우)은 세조척살을 앞둔 전날밤 처음으로 경혜공주(홍수현)와 합방하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공주의 남자를 보면 정종은 참으로 불쌍한 영혼이 아닐 수 없다. 1450년 결혼 한지 7년이나 1456년 5월 말이 되어서 첫날밤을 보냈다니 말이다. 경혜공주를 너무나 끔찍이 사랑해서 지켜준다는 설정은 좋으나 경혜공주의 이런 모습은 소박이나 이혼사유가 된다. 한마디로 개연성 무시의 한 장면이다. 무슨 오빠 믿지 손만 잡고 잘께도 아니고 말이다.



어쨌든, 정종은 김승유를 찾아가 수양대군(세조)의 척살에 실패해서 “김승유 너가 살아남는다면 경혜공주를 자신이 돌본 것처럼 돌봐 달라”고 한다. 정종은 오지랖도 넓다. 자신을 원수로 생각하는 승유를 찾아가 경혜공주를 돌봐달라고 말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원수인지도 모르는 승유는 넙죽 경혜공주를 돌보겠다고 한다. 언제부터 공주의 남자가 엽기 스릴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정종이 단종(상왕)을 찾아가 세조를 척살할 것이라고 말을 하고, 사육신과 회합을 하는 장면이 있고, 세조척살에 실패를 하자, 사육신들과 함께 끌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리 드라마에서 불가능은 없다고 하지만, 공주의 남자의 구성은 정말 너무한 구석이 많다. 불구대천지 원수인 사육신 중의 한명인 이개가 김승유의 스승으로 나오고, 또 다른 계유정난공신인 정종이 친구가 된다.


더군다나 김승유가 사육신과 회합을 하는데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들이 김종서를 죽인 것에 반성을 하거나 하는 대목은 없이 대호의 아들이 동참했다며 김종서가 지하에서도 자랑스러워 하였을 거라고 대사를 치게 만들어 버렸다.


 


드라마란 허구를 개연성 있게 끌고 가야 한다. 하지만, 공주의 남자에서 개연성은 전혀 무시되고 있다. 단지, 김승유와 세령공주의 사랑 놀음 밖에 없다. 더불어 오지랖 넓게 안 끼는 곳이 없다. 그냥 사랑 놀음만 하면 안되나? 역사의 현장에서 오물은 투척하지 말고 말이다.


정종은 사육신들과 모의를 하고, 창덕궁 연회장에서  "상왕전하 제가 상왕을 지키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정종은 사육신과 세조 척살과 단종복위를 할 수 있었을까? 이는 세령이 신면이 쏜 화살을  우사인 볼트처럼 미리 달려가 승유대신 맞는 것보다 어렵다. 왜냐하면 정종이 1456년 6월 1일 창덕궁 연회에 참석할 수 없고, 사육신들과 회합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종은 1456년 6월 11일(윤) 세조에게 성삼문이 넘겨준 옥새를 받는 날 금성대군과 연루되어 유배를 떠나야 했다.  다만 당시 경혜공주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정종의 유배를 늦추는 기지(꼼수?)를 발휘한다. 꼼수인줄 알고 있던 세조는 대신들의 유배를 보내라는 간언에도 정종의 유배를 늦추어 준다.


그리고 정종은 양근으로 수원으로 유배를 떠난다. 사육신들의 단종복위 사건으로 관련도 없는 정종도 고신을 당하고 재산도 빼앗기는 피해를 입는다. 사육신의 세조 척살 단종복위 사건이 일어난후 1456년 6월 27일 정종은 전라도 광주로 옮겨진다. 

공주의 남자에서처럼 사건현장에 있었다면 정종과 경혜공주는 도플갱어 일지 모른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는 불가능이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 작가들이 얼마나 실존인물 김승유와 세령의 사랑이 핏빛사랑이 아니였으면 역사를 파괴하면서까지 둘의 사랑을 핏빛으로 만들려 했을까? 그만큼 작가들 스스로 자신들의 작품을 억지로 역사파괴를 해야할 만큼 자신이 없었는가 보다..

실시간 생방송 사극용 쪽대본 시나리오가 개연성있고 치밀할 수가 없는건 당연하다. 가장 기본이 되는 뼈대에 해당하는 사건과 인물간 관계를 제대로 만들어 낼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인 사실을 충분히 살리고 허구적인 모습을 극중에 녹였다면 충분히 현재 공주의 남자의 실시간 생방송 사극보다 치밀하고 개연성 있고 극에 몰입할수 있는 비극적인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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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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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www.levitra-rezeptfrei.biz/ BlogIcon Levitra rezeptfrei 2013.01.01 0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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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Favicon of http://finance.7online.com/abclocal.wabc/news/read/22360046/survival BlogIcon mountain house community 2013.01.05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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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에서 계유정란의 후반부를 극화하였다.


죽었던 김종서(이순재)가 김승유(박시후)의 아버지 하는 소리에 부활하고, 김승유로 하여금 단종이 있던 경혜공주(홍수현)의 사저로 가서 김종서가 살아 있음을 알리고 수양대군(박영철)이 반란을 일으켰음을 알리라 한다.


 


계유정란으로 김종서가 죽은 때는 4대문이 다 닫힌 1453년 10월 10일 새벽이었다. 당시에는 70년대처럼 통행금지가 있었고 저녁이 되면 4대문은 철통같이 방어하여 도성 입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다. 물론, 특별한 국가 중대한 사유가 있다면 4대문을 통과할 수 있지만 말이다.


수양대군이 반란을 계획하고 제일 먼저 장악한곳이 요즘으로 친다면 수도경비 사령부이다. 그리고 4대문를 장악했다.


서대문 밖에서 살고 있던 김종서가 단종을 만나려면 4대문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4대문은 수양대군이 이미 장악을 하고 있어서 김종서가 난을 진압하기 위해서 병조를 장악하려 진입하려 할 때도 4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공주의 남자>에서 김종서는 나는 첫째아들 김승규의 처의 집으로 피난을 가 있을테니 승유 너는 단종의 시어소가 있는 경혜공주의 사저로 가서 자신이 수양대군에게 테러를 당했지만, 살아 있음을 알리라고 하는 순간 역사와는 무관한 계유정란이 되어 버리고, 역사와는 1인치도 싱크가 맞지않는 공주의 남자 극중에서도 개연성이 사라져 버린다.


김종서(金宗瑞)가 다시 깨어나서 원구(元矩)를 시켜 돈의문(敦義門)을 지키는 자에게 달려가 고하기를,


“내가 밤에 어떤 사람에게 상처를 입어 죽게 되었으니, 빨리 의정부(議政府)에 고하여 의원으로 하여금 약을 싸 가지고 와서 구제하게 하고, 또 속히 안평 대군(安平大君)에게 고하고, 아뢰어 내금위(內禁衛)를 보내라. 내가 나를 상하게 한 자를 잡으려 한다.”


하였으나, 문 지키는 자가 듣지 않았다. 김종서가 상처를 싸매고 여복(女服)을 입고서, 가마를 타고 돈의문(敦義門)·서소문(西小門)·숭례문(崇禮門) 세 문을 거쳐 이르렀으나 모두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와 그 아들 김승벽(金承壁)의 처가(妻家)에 숨었다. - 계유정난 1453년 10월 10일



김종서가 수양대군의 피습으로부터 철퇴를 맞고 살아나서 가장 먼저한일은 여장을 하고 돈의문, 서소문, 숭례문의 3문을 집입하려 했다. 하지만, 수양대군의 수하에게 장악된 대문 지기들은 누구도 통과시키지 않았다. 한마디로 물샐틈이 없고, 천리지망이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김종서는 일단 둘째 아들 김승벽의 처갓집으로 피했던 것이다. 하지만, 수양대군이 보낸 자들에게 목이 잘린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김승규는 등장한다. 하지만, 둘째 김승벽은 등장하지도 않는다. 더불어 김승규의 아내와 외동딸이 등장한다. 김승규와 김승벽, 김승유의 어린 아들들은 유모들의 손에 의해서 난을 피하고 살아 남는다. 이들 후손은 200여년 후 복권이 될 때 까지 자신들이 김종서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살아야 했다.


최소한 <공주의 남자>가 사극을 빙자한 로맨스를 그린다고 해도 김종서의 후손에 대한 예의는 아니다. 혹시 공주의 남자의 작가들은 김종서의 살아난 후손들이 다들 임진왜란 이후에 족보를 훔치거나 돈을 주고 산사람들로 만들고 싶은 것인가? 아무리 사극이 역사를 왜곡하고 팩트를 비틀어야 재미가 있다고 한다는 사명을 감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극히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부분이다.

 


김종서는 서대문 밖에 있고 도성에 진입하려면 성문을 통과해야 한다. 성문을 제외한 도성은 5미터 이상의 높은 담장이 있다. 그리고 문은 수양대군이 지키고 있고, 단종이 있던 시어소인 경혜공주의 사저는 창덕궁 뒤편 계동이었다. 이 또한 수양대군의 반란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공주의 남자>에서 계유정란이 벌어지기 전 수양대군이 자신의 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령의 핏빛연서를 받고 말을 타고 도성 안에 있는 절로 찾아간다. 이미 수양대군에 의해서 장악된 도성을 쉬이 드나들 수가 없었다. 김종서가 철퇴를 맞고 도성에 진입하려고 여장을 하였음에도 도성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승유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타고 도성을 드나들고 있다.


하지만, 승유는 집에 문제가 있음 감지하고 도성 안에서 도성 밖 김종서의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수양대군과 우연히 스쳐 지나간다.


승유가 어찌해서 말을 타고 도성을 통과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경혜공주 사저 이전에 쥐새끼 한 마리도 통과못하게 계엄령이 처진 곳을 유유히 말을 타고 지난나, 


세령은 승유가 경혜공주 사저에서 잡혔다는 말을 듣고, 말을 타고 경혜공주의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세령은 경혜공주의 사저 앞에서 제지를 당한다. 요즘에도 광화문근처에서 시위를 하면 경복궁인근과 청와대 근처는 전경들로 물샐틈없이 차단된다. 안에 자신의 집이 있더라도 일일이 신분조회가 되어야 통과된다. 하물며 반정을 하고 언제 반란을 진압하려는 세력이 단종과 연락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소나 개나 말을 타고 무사통과 할 수 있다는 끔찍한 상상은 괘씸하다.




극중 긴장감을 위해서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우연히 못 본 척 아닌 척 스쳐지나가는 장면은 한 두 번은 있을 수 있지만, <공주의 남자>에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워야 한다는 식으로 우연이 필연이라고 모두 다 스쳐 지나간다. 너무나 많은 우연을 가장하면 긴장감도 개연성도 없을뿐더러 보는 이는 "또야" 라며 식상해한다.


계유정란의 긴박하고 극적인 묘사는 사라지고 승유와 세령의 사랑의 숨바꼭질을 위해서 계유정란이 이용된다고 해도 나름대로 개연성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신면은 수양의 명에 의해서 숨은 김종서를 잡기위해 승유를 살려준다. 승유를 살려주는 이유는 수양에 반기를 드는 숨은 세력을 일순간에 잡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신면은 마지막에 승유를 죽이려는 순간 승유는 또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신면은 개과천선하여 승유를 살려준다. 그정도 칼침을 맞았으면 죽어도 몇번은 죽었을 것이다. 승유가 반 수양세력의 숨은 중추가 된다는 설정임은 쉬이 알 수가 있다. 더불어 수양을 배신한 세령이 은연중에 승유를 돕는 다는 설정도 공주의 남자를 보는 사람이라면 예측할 수 있다.



문제는 절친이였던 정종과 신면과 김승유가 계유정란을 기화로 원수가 되고, 정권을 되찾으려는 정종과 하나가 되어 승유를 돕는 설정이라고는 하지만, 이들이 절친이 될수 있는 지 조차 불분명하다. 김승유의 역할이 계유정란에서 김종서의 둘째 아들 김승벽과 유사하다. 첫째 김승규는 김종서를 지키려다 죽었다.


김승벽은 난을 피해서 지방으로 숨어들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잡혀죽었다. 도망자 신세가 된 김승벽이 김승유인 것이다. 사실 김승유는 계유정란이 일어난 시기 이미 죽고 없었다. 김승유는 계유정란 시 어린 아들만이 있었을 뿐이다.

유부남에 자식도 있고 귀신이 된  김승유가 공주의 남자에서 등장하는 순간 공주의 남자는 산으로 간 것이다. 죽은자가 산자의 영역을 침범해서 역사속에서 놀아나는데 산으로 가지 않는다면 이상하지 않겠는가? 유령 김승유와 이루워질수 없는 며느리 세령과의 사랑이 아니라면 말이다.


1453년 계유정란시기 경혜공주는 18살이였다. 정종도 경혜공주와 비슷한 나이 때 였을 것이다. 신숙주의 큰아들 신면은 1467년 이시애의 난때 이시애와 내통했다는 누명을 쓰고 아버지 신숙주와 한명회와 그의 자식들이 구금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하지만, 신면은 이시애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장렬히 전사한다.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는 이시애의 난을 충동질하는 인물로 그려질 것이 자명하다. 그리고 신면과 우정을 회복하고 화해를 하는 장면을 연출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면이 이시애의 난을 즈음해서 장렬히 전사할 때 나이가 몇 살이었을까? 이시애의 난은 1467년이었다. 이때, 1453년 계유정란의 중심세력으로 그린 신면의 나이는 깜짝 놀랄 만큼 어린 나이였다. 한국나이로 30살 밖에 되지 않았다.


신면은 신숙주(1417년생)가 22살에 낳았으니 1438년생이다. 계유정란이 있는 1453년 10월 10일에 신면의 나이는 16살이었다. 장가는 갈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공주의 남자>처럼 계유정란에서 수양대군의 심복으로 친구들을 배신하고 중추적인 역할을 도저히 할 수 없는 나이라는 것이다. 신면의 아버지 뻘이거나 삼촌벌인 계유정란 이전 한참전에 죽은 유부남이였던 김승유와의 우정은 가당키나 한가? 이를 두고 개연성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김종서가 계유정란으로 죽을때 김승유의 남은 자식들의 앞날을 생각하고 자신보다 먼저 죽은 김승유를 떠올렸다면 모를까?

신면은 16살 이전 단종 나이때 세령을 짝사랑하고 김승유와 정종과 기생집에서 농땡이를 치기도 한다. 신면은 실제 경혜공주보다 2살이나 어리다. 세령은 경혜공주보다 한참더 어렸을 것이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수양대군의 첫째 아들로 나오는 숭이 신면과 같은 1438년생이다. 숭의 동생일수 밖에 없는 세령은 이보다 나이가 어릴수 밖에 없다. 그런데 공주의 남자에서는 경혜보다 최소 3살은 어렸을 세령은 경혜공주와 친구처럼 지내고 경혜공주 노릇도 한다. 경혜공주의 동생으로 나오는 의숙공주는 1442년생으로 단종보다 어렸다. 하지만 공주의 남자에서는 단종보다 어른으로 나오고 세령과 나이차이가 없이 나온다.

단종은 1441년생으로 계유정란때 13살이였다. 한없이 어린 아이로 그려지는 공주의 남자에서 단종과 신면는 나이차이가 3살밖에 나지 않는다. 신면이 단종의 나이때와는 천지차이가 난다. 공주의 남자로만  본다면 단종은 어디가 모자란 모지리 마마보이인데 문종은 조선의 미래를 맡긴 것이다. 신면이나 정종이나 김승유는 성숙하거나 극히 정상적이고 노안이였을 것이다. 재미있게도 공주의 남자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수양대군의 쿠데타가 합리화 되는 순간이다.
 

신면은 승지(承旨)가 된 지 5년이 되었어도 일찍이 과실이 없었으며, 임금의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 자못 자상하고 명확하였다. 죽을 때의 나이가 30이며, 아들이 둘이 있으니, 신용관(申用灌)과 신용개(申用漑)이다. - 세조 14년(1467년) 이시애 난을 진압하다 죽다.


이시애의 난이 일어난 시점에 신면의 두아들의 나이는 5,6세였다.



<공주의 남자>에서 칼맞은 승유가 피뭍은 옷을 입고 효수된 김종서를 우연히 볼 수 있고, 그 앞에서 무릎까지 꿇고 피를 흘리고 있는데도 효수된 장소에 있던 관원들이 모른체하고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면 수양대군의 쿠데타는 실패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수양대군과 일족들이 김종서가 효수된 장소를 지나고 이를 승유가 발견해서 수양대군을 죽이려다 궁녀 여리인줄 알았던 세령이 알고보니 수양대군의 딸인 것을 알고 놀랐다는 설정은 개연성 제로의 우연이 필연이 되는 설정이다.

 


하지만, <공주의 남자>에서는 바보 김승유가 천재 김승유로 반전되는 설정이고 이들 두사람의 사랑이 더 이상 순탄치 않겠다고 말을 하지만, 오히려 공주의 남자의 복선은 그래도 승유와 세령은 국경도, 나이도, 죽음도, 가족의 철천지원수도 넘을 수 있는 사랑의 묘약을 먹어서 “아버지 수양이 원수이지 아버지를 버린 세령 니가 수양대군은 아니지 않냐“는 극히 단순한 명제로 새드엔딩이 아닌 해피엔딩이 될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어쨌든, 김승유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 어디로 갔을까? 아마도 김종서의 수하였던 이징옥의 품으로 달려가 아버지 김종서가 죽었다고 말하지 않을까? 이징옥이 계유정란이 있은 10일 후인 1453년 10월 20일에 이징옥이 반란을 일으키니 말이다. 반란으로 이징옥은 죽지만, 김승유가 계유정란시기 무수히 많은 칼침을 맞고도 죽여도 죽여도 살아나는 귀신 좀비처럼, 오지랖 김승유는 단종에서 세조시기 일어난 모든 반란사건에 연루가 될 것이다. 물론, 공주의 남자에선 반수양대군 세력의 아지트 빙옥관을 만들어 암중거사를 준비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계유정란 시기 승유와 세령의 행동은 닥치고 사랑놀음을 즐기는 사람들에는 극적으로 보이겠지만, 극히 개연성 없는 행동이고 승유와 세령의 연기는 변한 것이 없다. 한마디로 이들에게 감정이입이 안된다.


아무리 대본이 그때 그때 상황극을 보듯이 변하는 잉크도 마르지 않는 쪽대본이라고 해도 제대로 대본을 숙지했는지 조차 불분명하다. 단지 자신들에게 대사가 주어졌으니 한다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가장 클라이 막스 반전의 상황인 세령이나 승유보다 오히려 세령의 몸종으로 나오는 여리의 세령과 승유를 바라보는 연기와 신면(송종호)의 흔들리는 심리적 변화를 잘 묘사한 배신연기가 극 몰입도가 있다. 경혜(홍수현)의 연기는 언제그랬냐는 듯이 다시 옛날로 돌아가 버렸다.


사랑의 핏빛 로맨스를 다루고 싶다면 김종서, 수양대군 그리고 계유정란을 이용한 사극을 빙자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려낼 수가 있다.  하지만, 쪽대본과 대본의 리딩도 없이 대본을 받자마자 찍고 방송되는 생방송 드라마와 사극이 판을 치는 와중이라도 최소한 사극류(환타지, 멜로, 퓨전, 정통)는 좀 더 치밀함과 개연성이 담보되어야 하는 장르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극류는 가장 자유롭게 개연성 없어도 되는 장르가 되어 버렸다. 단지, 민속촌과 칼들고, 말타고, 궁궐이나 초가집에 삿갖과 한복만 입으면 드라마 등장인물의 공간성 , 동시성, 개연성은 무시되고  다 용서가 된다.  만나서는 안되는 죽은자도, 등장하고, 아버지 할아버지뻘인 사람이 친구가 되기도 하고, 같은 지역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한 방에서 노닥거려도 된다.

자신의 며느리를 사랑해서 아비의 위기도 몰라보고, 한량짓에 금선탈각하여 멋지게 주인공을 살리는 복수의 화신이 될것이고, 시아버지를 사랑해서 아버지를 버리는 드라마가 현대극이라면 아무리 포장해도 막장소리 듣기 딱 좋다.  하지만, 사극으로 포장한 드라마는 용서가 되고 칭찬받아야 마땅한 세상이 되었다.

어떠한 극중 장치없이 임진왜란에 등장해야 하는 이순신 장군이 계유정란에도 나오고, 병자호란에도 나오고, 삼국시대 계백에 나와도 하나 이상할 것이 없다. 역사는 왜곡해야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와 제작자와 시청자가 있을 뿐이다. 독립운동가를 때려잡던 친일매국노가 영웅이 되고, 친일매국노를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고용하여 백색테러를 일삼던 자가 건국의 아버지가 되는 다큐로 왜곡하고, 역사도 드라마처럼 만드는 이상한 나라에서 드라마라고 예외는 아니지만 말이다.

최소한 쪽대본에 생방송 사극이 아니라면, 사전에 대본의 오류를 잡을수 있고 드라마가 좀더 개연성있어지고 치밀해져, 배우들의 연기가 생뚱맞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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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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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에서 경혜공주는 정종과 결혼을 하고 출합(군,공주,옹주 등이 궁밖에 기거하는 행위)를 하였다. 그런데 경혜공주의 집은 화려한 집이다.


그렇다면 경혜공주가 들어간 집은 경혜공주의 집이였을가? 아니면 정종의 집이였을까?

문종은 시집간 경혜공주를 위해서 집도 장만해주지 않았을까? 아니면 <공주의 남자>에서 처럼 도깨비 방망이 처럼 어느날 갑자기 경혜공주를 위해서 하루아침에 집을 지어주었을가?

아니면 당시 좋은 집을 경혜공주를 위해서 사주었을까?

제목은 분명히 '경혜공주는 집이 없었다' 이다. 경혜공주가 집없는 설움을 알만큼 서민적이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공주의 남자에서 처럼 수양대군에 의해서 억지로 출합하는 과정에서 좋은 집이 주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혜공주가 찾아간 집은 너무나도 좋은집이였다. 문종이 경혜를 위해서 집을 만들어 준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주의 남자처럼 수양대군으로 얶지로 궁밖으로 쫓겨나서 불쌍하다고 할만큼 집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경혜공주가 들어간 집은 정종이 이미 살고 있던 집이였다.

세종 말년인 1450년 1월 순의 대부(順義大夫) 정종(鄭悰)이 평창 군주(平昌郡主)에게 장가들었다.
- 세종 말련 1450년 1월


평창군주는 아버지 문종이 즉위하자 경혜공주가 되었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정종이 경혜공주와 결혼한 이유가 단지 수양의 계략이였고, 문종시기에 결혼하였고, 정종은 부모가 죽어서 집이 빈하였다고 하며 친구들에게 빈대생활을 영위하였다고 그리고 있다. 공주의 남자에서처럼 정종이 빈대생활을 한 몰락한 가문의 한량이였다면 문종이 사랑스런 경혜를 위해서 집을 만들어 주었다고 할수 있다.
 


하지만, 실제 정종은 요즘으로 치면 문벌귀족에 재벌이었다. 조선의 지방 곳곳에 부동산이 없는 곳이 없었다. 당시에는 땅이 곧 재산이다. 땅에서 산출되는 생산품이 부를 만든다. 부를 상징하는 천석지기 만석지기처럼 정종은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더불어 공주와 결혼이 결정되어 정종의 집으로 들었갔다.


하지만, 경혜공주가 결혼을 하고 아버지 문종이 즉위하자,  문종과 정종은 공주의 격에 맞는 집을 지었다. 문종도 경혜공주의 집을 짓는데 국가재정까지 투입하였다. 경혜공주의 집은 현재 창덕궁 뒤편 계동지역 이였다.


하지만, 문종이 죽고 나서도 집은 완공이 되지 않았다. 완공을 할 수 없는 이유는 공주의 집은 50여칸으로 하는 게 당시의 제도였고 공사과정에서 철거민을 양성하여 논란 끝에 완공이 늦어진 것이다.
 

‘마땅히 옛집을 그대로 수선하여여 한다.’고 하나, 그 옛집 곁에는 모두 소민(小民)이 거주하는데, 국가의 제도로는 왕녀의 집을 50간으로 한정하니, 만약 이 수에 따라 본래 살던 곳에 그대로 짓는다면, 헐 집이 거의 40채가 될터이니, 가난한 소민이 이사하여 살 일이 더욱 가엾다. 지금 이 새 터는 모두 벼슬아치의 큰 집들이니, 비록 헐리더라도 오히려 갈 곳이 있지만, 하물며 그 수가 5채를 지나지 않는 경우이겠느냐?” - 문종 1년 1451년 4월


요즘에도 부동산 개발을 하면 원주민과 트라블이 생기는 것처럼 정종이 경혜공주의 집을 짓는데 기존에 살고 있는 40여 가구가 있었고, 이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어쨌든 문종과 대신들의 대화로 알아본다면, 정종과 문종이 경혜공주를 위해서 지어주려던 50칸의 집이 있던 양덕방 지역은 지금의 창덕궁 뒤편인 계동에는 벼슬아치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정종의 기존의 집 주위에는 가난한 소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였다는 것을 알수 있다. 조선시대나 이전 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집의 규모가 결정되었다. 아무리 잘 살더라도 왕의 집을 넘어설수가 없었다. 99칸 고래등 같은 집을 지었다면 반역에 해당하는 대역죄가 되었다.


공주의남자에서 경혜공주가 출합하여 들어간 집은 기존 정종의 집이였다. 그렇다면 경혜공주의 집은 언제 완공이 되었을까? 위에서 잠시 언급을 했지만, 경혜공주의 집은 문종이 죽고, 단종이 즉위하였음에도 완공이 되지 못하고 있다.
50칸의 집이 당시에도 쉽게 지어질수 있는 규모는 아니다. 한마디로 대역사였다. 더군다나 문종이 죽고 부역하던 역부들은 문종의 릉을 완성하는데 집중하여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이에 김종서는 어찌하여 선왕(문종)의 외딸인 경혜공주가 아직도 집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으니 서둘러 완성하여야 한다고 말을 한다. 1450년 1월부터 1453년 5월이전(?)까지 경혜공주는 집이 없었다. 
 

“가석한 일이다. 선왕(先王)의 외딸이 아직도 제택(第宅)이 없다니, 신 등은 마땅히 힘써 영건하여 선왕의 뜻에 맞게 하겠다.” - 단종 즉위년(1452년) 5월


그렇다면 경혜공주이자 영양위 정종의 집은 언제 완공이 되었을가? 단종이 즉위하고, 단종이 수강궁에서 나와 영양위의 집으로 이어하기 전일 것이다.


사인(舍人) 이예장(李禮長)이 당상(堂上)의 의논을 가지고 아뢰기를,

“주상께서 만약 영양위(寧陽尉)의 집에서 편안하시다면 그 나머지 작은 폐(弊)는 헤아릴 것 없습니다. 수강궁(壽康宮)은 아침저녁으로 볕이 쬐고 뜨겁기가 크게 심하여 이어(移御)하실 수 없으니 8월 이후를 기다려서 다시 의논하여 아뢰겠습니다. - 단종 1년 1453년 계유 7월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란이 일어난 때에도 단종은 경혜공주의 집에 있었다. 수양은 김종서를 서대문밖의 김종서의 둘째 아들 김승벽의 처갓집에서 죽일 때도, 단종이 있던 경혜공주의 집 주위를 포위하여 외부에서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하였다. 한마디로 창덕궁과 경혜공주의 집주변은 물 샐틈이 없이 수양대군의 군사로 천리지망이 펼쳐 있었다.


그런데 왜 단종은 수강궁을 버리고 영양위의 집으로 들어갔을까?  수강궁은 현재의 창경궁이다. 분명히 조선초기의 정궁은 경복궁이다. 그런데 조선초기에도 문종을 비롯한 많은 왕이 수강궁(창경궁)에서 정무를 보았다. 


단종이 수강궁을 버리고 영양위 정종이고 자신의 누이인 경혜공주의 집에서 기거한 이유는  단순히 수강궁은 계절에 따라 볕이 너무 따가와 피했을 수도 있다. 드라마적으로 해석한다면 수양대군을 피했다고 할 수도 있다. 일본을 피해 러시아의 힘을 빌리려고 러시아 공관으로 아관파천을 한 고종과도 같은 심정이였을 지도 모른다. 이 당시 권력을 쥐고 있는 집단은 김종서와 황보인 일파였고 수양대군과 치열한 물밑 정치 공방을 하고 있었다.


공주의 남자에서 단순히 경혜공주가 아프니, 단종이 누이 경혜공주의 안부를 확인하고 남매의 정을 확인하려 경혜공주의 집을 찾은 것은 아니고, 수양대군은 단종이 궁에 없는 틈을 타서 김종서와 황보인, 안평대군을 몰아내는 정란을 계획하는 시발점으로 삶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든, 단종은 1453년 5월 즈음 새롭게 완공된 창덕궁 뒤편 경혜공주의 집에서 정무를 보았다. 경혜공주는 단종이 ·1452년 즉위하고 2년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집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경혜공주는 당시에는 남편인 영양위의 집이 아닌 공주자신의 집이 없었다. 새롭게 만들어진 경혜공주의 집은 왕이 정무를 볼만큼 충분히 컸다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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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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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arden0817.tistory.com BlogIcon gardenland 2011.08.13 0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좋은주말되세요

  2. Favicon of http://www.thesydneyplumbers.com.au BlogIcon Plumbing 2011.08.15 0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싸며 사진까지 찍는다는 건 너무 무리가 많아서... 그냥 상상력에 맡기기로 하겠다.

  3. Favicon of http://dwellrentals.com BlogIcon 유병수 2012.01.04 05: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도 못 한다

  4. Favicon of http://etboosters.com BlogIcon 2012.01.04 2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는말이 고와야 오는말이 곱다

  5. Favicon of http://inoline.com BlogIcon 2012.01.07 04: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전체에 서있다면 당신은 파고있어, 당신은 파고를 중지해야합니다

  6. Favicon of http://andre3000.on-the-web.tv BlogIcon 이자벨 2012.04.03 1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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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Favicon of http://alphamale.dvrdns.org BlogIcon 키에라 2012.04.05 1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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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Favicon of http://camdentown.from-me.org BlogIcon 애디슨 2012.05.08 2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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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Favicon of http://ford.grupocaiuas.com.br/fiesta-sedan BlogIcon fiesta sedan 2013.01.25 0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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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계유정란을 다루고 있다. 수양대군은 김종서의 집을 찾아가 김종서를 죽이고, 남은 자들로 하여금 김승유를 척살하라고 명하고 사라진다.


수양대군이 김종서와 김승유를 죽이려는 것을 안 세령을 집에 가두고 집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세령은 꾀를 내어 집을 나와서 김종서를 찾아가 자신의 아버지 수양이 죽이려한다는 사실을 알리려한다. 하지만, 세령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는 여리는 하인들을 대동하고 김종서의 집앞에서 세령을 집으로 끌고 온다.


여리가 세령의 사랑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세령이 김종서에게 수양대군이 죽이려한다는 사실을 알리게 된다면 수양대군의 계략은 실패로 끝나고, 오히려 수양대군을 비롯한 일족이 멸문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광에 갇히 세령은 마지막으로 여리에게 피로 쓴 혈서를 승유에게 전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이날이 지나면 더 이상 승유를 볼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여리나 세령은 서로 마음이 통한것이다. 세령은 승유만이라도 살리고 싶은 마음에 혈서를 보냈지만, 머리 나쁜 김승유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세령을 만나고자 하는 일념으로 절을 찾아 나선다.

세령이 승유를 위해서 계유정란을 막으려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려는 노력은 일견 보였지만, 계유정란이 승유와 세령의 사랑다툼의 일환으로 그려지는 것은 개연성 없음이다. 그러니 세령의 몸부림이 와 닿지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김승유는 바당에 피를 흘리고 죽은 아버지 김종서와 김승유를 두고, 먼저 아버지를 찾기보다는 형인 승유를 끌어 앉고 울부짖는다. 김승규의 처도 남편인 김승규를 두고 아버님을 부르짖는데 아들인 승유는 “형님~”하고 있다.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는 겉멋만 든 한량에 허당 임을 계유정란에서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에게 몰입이 되지 않는  극히 드문 드라마이다. 이는 주인공을 주인공답지 못하게 그린 작가의 문제이지 주인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한가하게 사랑놀음만 하는 평면적인 세령과 승유 주인공들이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포스를 내고할 명분과 개연성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 아버지 김종서와 형인 김승규도 죽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할 수 없다는 복수의 화신이 된 승유(박시후)가 좀 더 입체적인 모습으로 바뀔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시후 특유의 목소리가 과연 입체적인 주인공으로 탈바꿈될 수 있을까는 의문이다. 박시후나 문채원의 문제라기 보다는 작가와 피디의 역랑문제가 크기 때문이다. 작가가 주인공에 맞는 배역과 대사를 주고 이를 피디가 잘 콘트롤 하지 않는다면 박시후와 문채원의 연기는 더 이상 발전이 없을 것이 자명하다. 지금까지 보여준 두 유령커플의 연기를 최종 OK한 사람은 다름 아닌 피디이고, 피디가 이들 주인공의 연기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드라마 <공주의 남자>의 반전과 클라이막스인 <계유정란>이  일어났고, 등장인물들이 이를 계기로 친구나 연인이었다 원수가 되는 대 변환를 맞이했다.


그렇다면 철퇴를 맞고 쓰러진 김종서는 이대로 <공주의 남자>에서 하차하고 말까? 사실 김종서는 김종서의 방안에서 철퇴를 맞지 않고, 마당에서 철퇴를 맞고 쓰러진다. 수양대군은 김종서의 방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수양대군은 김종서가 죽었다고 믿고 김종서의 집을 나온다.


하지만, 죽었다고 믿었던 김종서는 수양대군이 반정(?)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고 안평대군과 연락을 취하려하고 궁에 들어오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둘째 아들 김승벽의 처갓집에 숨어든다.


수양일파는 김종서가 살아나 돈의문, 서소문, 숭례문을 돌며 도성에 진입하려다 실패했다는 사실을 알고 김종서가 숨어 있을 만한 곳을 수색하고 김승벽의 처갓집에 처들어간다. 김종서가 최후를 맞이하는 장소는 김종서의 집이 아닌 둘째 아들 김승벽의 처갓집이다.


 

김종서(金宗瑞)가 다시 깨어나서 원구(元矩)를 시켜 돈의문(敦義門)을 지키는 자에게 달려가 고하기를,

“내가 밤에 어떤 사람에게 상처를 입어 죽게 되었으니, 빨리 의정부(議政府)에 고하여 의원으로 하여금 약을 싸 가지고 와서 구제하게 하고, 또 속히 안평 대군(安平大君)에게 고하고, 아뢰어 내금위(內禁衛)를 보내라. 내가 나를 상하게 한 자를 잡으려 한다.”

하였으나, 문 지키는 자가 듣지 않았다. 김종서가 상처를 싸매고 여복(女服)을 입고서, 가마를 타고 돈의문(敦義門)·서소문(西小門)·숭례문(崇禮門) 세 문을 거쳐 이르렀으나 모두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와 그 아들 김승벽(金承壁)의 처가(妻家)에 숨었다.


이튿날 아침에 이명민(李命敏)도 또한 다시 깨어나서 들것에 실려 도망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홍달손(洪達孫)에게 고하니 호군(護軍) 박제함(朴悌緘)을 보내어 베었다. 세조가 인하여 여러 적이 다시 깨어날 것을 염려하여, 양정(楊汀)과 의금부 진무(義禁府鎭撫) 이흥상(李興商)을 보내어 가서 보게 하고, 김종서를 찾아 김승벽의 처가에 이르러 군사가 들어가 잡으니, 김종서가 갇히는 것이라 생각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걸어 가겠느냐? 초헌(軺軒)을 가져오라.”하니, 끌어내다가 베었다.



사실 김종서의 집은 현재 서대문 밖에 있었다. 경혜공주의 집은 현재 창덕궁 뒤편인 계동에 있었다. 그러니 수양이 김종서 일파가 도성에 집입하지 못하게 돈의문, 서소문, 숭례문을 장악한 것이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수양은 드라마 상 전혀 정적으로서 능력을 보여주지 않고 고문관이였던 김승유를 죽이려고 자객들을 남겨두었다는 설정이 어설프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김승유를 죽이려고 남겨둔 자객이 있었다면 다시 살아난 김종서를 그냥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공주의남자>에서 절에서 돌아온 승유를 맞이하는 김종서의 칼든 하인들은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관심도 없다. 자신의 주군이 피격을 당했는데, 멀쩡히 자객들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어떠한 조치를 취하는 부하가 단 하나도 없고, 달랑 며느리와 손녀만 시체(?)를 부둥껴 앉고 울부짖는다. 이를 개연성이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승유가 다시 살아난 김종서를 보좌해서 단종에게 수양의 반란사건을 알리려고 도성으로 진입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예고편에서처럼 단종이 있던 영양위의 정종의 집에서 신면과 칼부림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단종은 경혜공주의 집으로 어가를 옮겨서 정치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드라마처럼 단종이 경혜공주의 집으로 가는 날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죽이려하지는 않았다.
 

“주상께서 만약 영양위(寧陽尉)의 집에서 편안하시다면 그 나머지 작은 폐(弊)는 헤아릴 것 없습니다. 수강궁(壽康宮)은 아침저녁으로 볕이 쬐고 뜨겁기가 크게 심하여 이어(移御)하실 수 없으니 8월 이후를 기다려서 다시 의논하여 아뢰겠습니다. - 단종 1년(1453년 7월)



재미있게도 분명히 김종서의 순천김씨 족보에는 김종서의 아들로는 3명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김승규와 김승벽, 그리고 김승유이다. 이들 후손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계유정란을 비롯해서 김승규, 김승벽에 대한 기록은 있지만, 김승유에 대한 기록은 한줄도 없다.

김종서의 아들들은 김종서의 위명으로 벼슬을 하였다. 하지만, 김승유는 벼슬이나 계유정란을 즈음에서 김승벽처럼 달아나 잡혀서 죽었다는 기록도 없고, 김승규처럼 아버지를 지키려다 죽었다는 기록도 없다. 세조이후 김승벽, 김승규에 대한 기록은 있다. 하지만, 승유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이는 김승유가 자손만 남기고 일찍죽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승유가 공주의남자에 등장할 수 없다. 승유가 공주의 남자에 등장하는 순간 공주의남자의 드라마 전체적인 틀은 흐트러지고 개연성이 없는 드라마가 되어버린다. 불필요한 승유와 세령간의 사랑으로 이야기 거리가 많을 거라고 생각한 작가의 무분별한 욕심이 자신의 작품 질을 스스로 망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공남에서 주인공인 김승유역을 맡은 박시후가 유령인것처럼 승유는 이미 유령이 되었을 것이 자명하니 말이다.  세령이 반대한건 <계유정란>보다는 단종폐위에 반대했을 것이다. 물론 말이 안되지만, 차라리 죽은 승유보다 공주의 남자에 등장하지 않는 김승벽을 사랑한 세령이 공주의 남자에 어울리고 그나마 개연성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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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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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ㅎㅎㅎ 2011.09.08 1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뭔 말씀이 이리 기신가. 참 딱하네. 김승유의 존재는 있으나 기록이 없으니 이야기를 꾸며내기가 좋은거라는 생각은 안드시오. 성문 진입을 시도했네 아니네 같은 시시콜콜한 건 생략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고. 김종서가 자택에서 부상당하고 사돈집에서 확인사살 당한 큰 그림은 사실에 입각했고, 많은 충신들이 수양의 수하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역사적 사실도 제대로 구현됐는데 뭐가 그리 문제인지 모르겠소. 역사적 사건에 대한 CSI라도 할 기세시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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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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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짚신도 짝이 있다

  5. Favicon of http://glbnews.com BlogIcon 고명진 2012.01.04 2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6. Favicon of http://sudowudo.com BlogIcon 아가 2012.01.07 0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7. Favicon of http://alex1983.dyndns.org BlogIcon 아멜리아 2012.04.06 0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채식주의자입니다.

  8. Favicon of http://dance.for-some.biz BlogIcon 시드니 2012.05.09 0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살 여유가 없습니다.

  9. Favicon of http://yep.homeunix.org BlogIcon 엘리 2012.05.11 05: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에 영어를 하시는 분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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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드라마 작가가 간과한 것이 있다. 태자 부여 융에 관한 것이다. 부여융은 615년에 태어나 682년 68세의 나이로 복망산에 뭍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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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드라마 <공주의 남자>의 반전과 클라이막스인 <계유정란>이 일어났고, 등장인물들이 이를 계기로 친구나 연인이었다 원수가 되는 대 변환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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