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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공주의 남자, 신숙주 처 윤씨 사육신 편에서 자살했나? 사실은 방개떡 고사 에서 신숙주는 수양대군의 복심이 되어 계유정란으로부터 단종을 폐위하고 수양대군을 왕위에 옹립하는 것으로 나온다. 에서는 신숙주의 살았는 큰아들(큰아들은 일찍죽었음) 신면이 아버지 대를 이어서 악역으로 등장을 한다. 에서 신면은 친구를 배신하고, 친구 김승유의 연인 세령공주를 빼앗고, 문종, 단종을 배반하고, 수양의 개로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기회가 되면 신면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글을 쓸까한다. 알고보면 불쌍한 영혼이 신면일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숙주를 의 대명사로 하여 하루가 지나면 쉬어 버리는 나물을 숙주나물로 이름한다. 한마디로 변심의 아이콘이 신숙주이다. 신숙주가 숙주나물로 불리우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글쓴이는 왜 신숙주가 숙주나물로 불리는 이유를 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저변에 .. 더보기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공주의 남자에서 성삼문, 이개, 박팽년 등 사육신이 세조(수양대군) 암살에 실패하고 잡혀서 고신을 당한다. 그리고 참형을 당할 위기에 김승유는 빙옥관의 의형.의제와 같이 한성부 옥을 파옥하고 이개 등 사육신과 친구 정종을 구원하려고 들어간다. 신면은 김승유가 세령공주와 같이 한성부에 숨어 들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김승유가 하는 일에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도와준다. 김승유가 다음 기회를 노리자며 파옥을 하려하자. 이개와 박팽년, 성삼문 등은 당연히 자신들이 죽을 줄 알았으니 개념치 말라고 하면서 후일을 김승유에 맡기고 담담히 죽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죽어서 김종서를 뵙게 되었으니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정종의 아내 경혜공주는 세조를 찾아가 “전하“라는 말을 하면서 수양대군 니가 짱먹었으니 그만 정종을 풀어달.. 더보기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에서 사육신 중 한명인 이개와 사육신 등이 절대로 김승유와 한편이 될 수 없다는 글을 송고했더니 이개의 후손이나 사육신 중의 후손 이라는 사람들이 가끔 댓글을 단다. 조상을 욕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조상을 욕보이는 측은 다름이 아닌 공주의 남자 작가인데도 말이다. 목은 이색의 후손으로 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하였지만, 조선에 부용하지 않고 고려에 대한 충성과 절개를 지켰다는 것이다. 조선의 왕이 삼고초려를 해서 한산 이씨들이 조선 조정에 나갔는데 정난공신이 되고자 경솔한 판단을 했겠냐는 것이 골자이다. 논리적인 모순은 과연 이색의 후손이 이색의 고려에 충정을 이어 받았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조선의 왕들이 삼고초려를 해서 정치에 참가였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충절가문이거나 이색.. 더보기
공주의 남자, 김승유 적과동침, 단종 죽인건 사육신 충신인가? 배신 아이콘인가? 에서 김승유(박시후)는 스승 이개와 사육신 등과 함께 세조(수양대군)을 척살하고 단종복위에 참여를 한다. 승유(박시후)는 세조를 죽이려하고 세령(문채원)은 승유가 목표로 한 인물이 누구일까 궁금해서 수시로 대호가 날뛰는 도성에서 호위무사도 없이 밤이슬을 맞으며 경혜공주를 찾아 나선다. 공주의 남자에서 세령은 김승유가 죽이려는 상대가 자신의 아버지 세조(수양대군)인것을 알고 아버지의 안위보다는 김승유의 안위를 걱정하며 궁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단종을 폐위하고 세조 옹립에 공을 세워 공신이 된 성삼문과 사육신의 일파들은 어찌하여 수양대군(세조)을 척살하고 단종복위를 꿈꾸었을까? 세조의 정치와 사육신으로 대표되는 성삼문의 정치의 목표가 달랐기 때문이다.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들은 유교를 바탕으로 신하들이 중심.. 더보기
공주의 남자, 생방송 사극 빈번한 우연남발 개연성 없는 김승유와 세령의 사랑 에서 계유정란의 후반부를 극화하였다. 죽었던 김종서(이순재)가 김승유(박시후)의 아버지 하는 소리에 부활하고, 김승유로 하여금 단종이 있던 경혜공주(홍수현)의 사저로 가서 김종서가 살아 있음을 알리고 수양대군(박영철)이 반란을 일으켰음을 알리라 한다. 계유정란으로 김종서가 죽은 때는 4대문이 다 닫힌 1453년 10월 10일 새벽이었다. 당시에는 70년대처럼 통행금지가 있었고 저녁이 되면 4대문은 철통같이 방어하여 도성 입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다. 물론, 특별한 국가 중대한 사유가 있다면 4대문을 통과할 수 있지만 말이다. 수양대군이 반란을 계획하고 제일 먼저 장악한곳이 요즘으로 친다면 수도경비 사령부이다. 그리고 4대문를 장악했다. 서대문 밖에서 살고 있던 김종서가 단종을 만나려면 4대문을 통과해야 한다.. 더보기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는 집이 없었다. 그렇다고 수양대군에게 궁에서 쫓겨난건 아니다. 공주의 남자에서 경혜공주는 정종과 결혼을 하고 출합(군,공주,옹주 등이 궁밖에 기거하는 행위)를 하였다. 그런데 경혜공주의 집은 화려한 집이다. 그렇다면 경혜공주가 들어간 집은 경혜공주의 집이였을가? 아니면 정종의 집이였을까? 문종은 시집간 경혜공주를 위해서 집도 장만해주지 않았을까? 아니면 에서 처럼 도깨비 방망이 처럼 어느날 갑자기 경혜공주를 위해서 하루아침에 집을 지어주었을가? 아니면 당시 좋은 집을 경혜공주를 위해서 사주었을까? 제목은 분명히 '경혜공주는 집이 없었다' 이다. 경혜공주가 집없는 설움을 알만큼 서민적이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공주의 남자에서 처럼 수양대군에 의해서 억지로 출합하는 과정에서 좋은 집이 주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혜공주가 찾아간 집은 너무나도 좋은집이였다. .. 더보기
공주의남자, 부활한 김종서? 계유정란 김승유와 세령공주 낄자리 있을까? 드라마 에서 계유정란을 다루고 있다. 수양대군은 김종서의 집을 찾아가 김종서를 죽이고, 남은 자들로 하여금 김승유를 척살하라고 명하고 사라진다. 수양대군이 김종서와 김승유를 죽이려는 것을 안 세령을 집에 가두고 집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세령은 꾀를 내어 집을 나와서 김종서를 찾아가 자신의 아버지 수양이 죽이려한다는 사실을 알리려한다. 하지만, 세령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는 여리는 하인들을 대동하고 김종서의 집앞에서 세령을 집으로 끌고 온다. 여리가 세령의 사랑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세령이 김종서에게 수양대군이 죽이려한다는 사실을 알리게 된다면 수양대군의 계략은 실패로 끝나고, 오히려 수양대군을 비롯한 일족이 멸문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광에 갇히 세령은 마지막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