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갓쉰동 꿈꾸는 삶

200

(C) mbc 사극 드라마 선덕여왕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수 많은 여인들이 나온다. 현재 고현정이 맡고 있는 미실도 화랑세기에는 중요한 여인중에 하나이다. 역사물을 다루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라면, 사랑, 야망, 권력욕, 천재성을 두루 갖춘 주인공으로 내세울수 있는 최상의 캐릭터다.

하지만 미실 전에 지소, 금진, 옥진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지소는 법흥왕의 딸로서 작은아버지 입종에 시집을 가서 진흥을 낳는다. 하지만 진흥이 왕이 되기 위해서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법흥은 진흥보다는 지소의 두번째 남편인 영실이나, 미진(법흥/벽화)를 후계로 점지 했었다. 하지만, 지소의 반대로 법흥은 진흥을 자신의 후사로 결정할 수 밖에 없었고, 영실도 법흥의 후계가 되지를 못했다. 만약, 영실이 왕이 되었다면, 김씨에서 박씨로 성씨가 교체되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이전 여왕은 있었다. 첫번째는 누구?! 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번편은 금진/옥진 자매중 사다함의 어머니로 유명한, 금진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사다함의 죽음에 관한 비화

(C) MBC 선덕여왕, 사다함(박재정)

금진은 수 없이 많은 남성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지소와 미실과는 다르게 권력욕보다는 색욕이 강한 여성이였다. 사다함의 부장이였던, 무관이 금진과 사통하는 일이 발생한다. 금진과 무관의 관계는 사다함에 들키게 되고, 무관은 월성 담장을 넘어 도망치다 성을 보호하려 만들어놓은 해자(물웅덩이)에 빠져 죽고 만다.

사다함은 무관의 죽음에 비관하여  죽고 만다. 사다함이 죽게 되는 여러 이유 중에는 미실을 사랑하였으나, 미실은 세종에게 시집을 가벼렸다. 그리고 자신의 충직한 부관인 무관이 자신의 어미와 사통하다. 죽음에 이르게 된것이다. 사다함이 어머니의 색욕에 의해서 죽게되는 운명에 처한다. 사다함의 죽음에는 결국 어머니에 의한점이 많다.


금진의 남자들


이전글에서 지소의 남성편력을 상세히 이야기 했지만, 금진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알고 미실의 팜므파탈은 지소나 금진에 비하면 하수에 가깝다.

사실 사다함은 금진의 남편편력에 대해서 증오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미를 어미라 부르지 않던 사다함에게 이사부는 신도의 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에 사다함은 깨달음을 얻어  무관이 죽을 시점에는 어머니의 남성편력에 대해서 달관의 경지에 도달할 때 였다. 무관으로서는 이전 사다함이 어머니의 편력을 미워한 사실을 알고 있던터라 사다함에 들키자 무작정 도망을 치다 죽어버린 것이다.

상상을 해보자.  달이 밝지 않은 월성에서 도망자와 추적자..사다함이 무서워 무작정 도망가는 무관과 오해를 풀어주려던 사다함과, 자신을 죽일 것 같은 사다함.  "도망가지 마라 무관~, 괜찬다 무관", 말은 도망가지 말라고 하지만, 잡히면 죽을 것 같은 무관. 561년 가야정벌에서 가야인을 안심시키고 한번의 진공(공격)으로 가야를 무너트린 사다함의 계략을 잘고 있던 무관으로써는 당연히 오해를 살만 하지 않던가? 

구리지와 결혼을 하기전에는 금진은 법흥의 후비였지만, 법흥과 사이에는 후사를 보지 못했다. 540년 법흥이 죽고 나자. 구리지와 결혼을 하여 토함과 새달 그리고 5세 풍월주 사다함을 낳는다. 

법흥의 아우이며 지소의 남편인 입종을 통해서는 숙흘종을 낳는다. 숙흘종은 만호(지소/이화랑)의 사이에서 만명을 낳고, 만명이 김서현과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후 김유신을 낳는 것이다. 진흥을 통해서는 난성공주를 낳고, 누군지를 알 수 없는 상대에게서 준영을 낳는다. 

금진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남편의 양자인 설성과 관계해서 7세 풍월주인 설원랑을 낳는다.

 입종은 법흥과 같은 해인 540년 죽었다고 화랑세기는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금진의 첫째 아들은 숙흘종이 아닌가 한다. 이들의 순서는 설원랑이 사다함(546년생)보다 3살 어리다고 기록하였으니, 숙흘종(입종), 토함(구리지), 색달(구리지), 사다함(구리지), 설원랑(설성:549년생):(그림에는 548년생으로 나왔지만 오류), 난성(진흥), 준영(?) 이며 금진의 동복 형제자매가 되고, 순서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를 닮아 끈질긴 구리지

구리지는 이름이 현재에 봐도 조금 머시기 한 이름이 아닌가? 너~ 먼가 구리지..한마디로 하면 너 똥냄새 난다는 말이다. 
사실 구리지는 그의 아비인 비량이 법흥의 비였던 벽화(섬신/벽아)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머지 벽화와 화장실에서 관계를 해서 낳은 아들이다. 그래서 이름이 '구린내'를 뜻하는 구리지가 된 것이다. 

구리지는 아버지인 비량의 피를 이어 받아 끈질김이 있었다. 처음 금진이 법흥의 비가 되었을때, 한눈에 반해 사모하는 마음이 깊었다. 그래서 구리지는 '천주사'에서 5년동안을 금진을 자신에게 달라고 빌고, 빌었다. (천주사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그리고 마침 법흥과 입종이 죽자. 금진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구리지가 취한게 아니고 실은 금진이 구리지를 간택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던, 구리지는 "열번찍어 안넘어가는 여자 없다"는 고사를 만들어(?)낸 인물이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요즘도 여성에 대한 허황된 환상에 빠져 열번찍어 보는 경우도 있지만, 한결같이 5년동안 빌고비는 행위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성이지 않을까 한다. 미인을 얻는자는 그만한 대가를 치루게 되는 모양이다. 금진은 구리지에 만족하지 않고, 그후에도  수 없이 많은 남성을 자신의 남자로 만들고, 그로 인해 자식인 사다함까지 죽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으니 말이다. 

 

금진의 후손들

위의 금진의 남자들과 후손들을 보면 금진과 유신과는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금진 할미를 둔 덕만과 유신

금진/입종(법흥/연제) -> 숙흘종/만호(지소/이화랑) ->만명/서현 -> 유신 .
지소/이화랑->만호/동륜[진흥/사도(영실/옥진)] -> 진평/마야 [복승/송화(지소/영실)]-> 천명,덕만,천화

이로써 덕만과 유신은 만호를 할머니로 둔 사이가 된다.

설원랑과 미실의 손녀 사위 유신

또한, 설원랑과 유신은 금진의 자손이 된다. 또한, 설원랑이 준모(모랑/준화)를 통해서 낳은 미모가 미실/세종이 낳은 하종/미모과 결혼하여 영모를 낳는다. 영모는 유신이 풍월주에 오르는 18세가 되기 바로 전에 결혼을 한다. 

그러니 유신은  설원랑의 손녀사위가 되는 것이다. 또한 유신은 미실의 손녀사위가 되기도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미실과 설원랑은 김서현 가문과 척을 진적이 없고, 끈끈한 핏줄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과 전혀 다른 성격의 보종(미실/설원랑)

 

보종

15세 풍월주 유신에 이어서 16세 풍월주에 오르는 이도 설원랑/미실의 아들인 보종이 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보종은 청아하고, 정이 많고,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아는 사람으로 나온다. 보종은 유신이 어려움에 처했을때나 병이 났을때, 치료를 해주는 유신의 주치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드라마처럼 약역전담 처리반이 아니였다는 것이다.

 유신공이 병이 나자 공이 문득 몸소 치료하며 “우리 공은 국가의 보배이니 나의 의술을 숨길 수 없습니다” 하였다. 이로써 그가 편작(扁鵲)243)의 학(의학)을 갖추었음을 모두 알게 되었다. - 화랑세기 16세 보종

또하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하종과 보종이 나오고 하종이 보종의 형으로 나오지만, 비슷한 연배로 나온다. 하지만, 실제는 하종은 563~4년생이고 보종은 580(?)년생이다. 유신은 595년생이다. 당시 기준으로 하면 하종은 유신의 할아버지뻘이고, 보종의 아버지 뻘이다. 그리고 11세 풍월주 하종의 딸인 영모가 유신과 결혼을 하니 유신은 하종의 사위가 되는 것이다.

남성 기능 장애자 세종 (댓글로 지적을 받아 삭제 해야 하나 남겨둡니다.)
 

세종

이전글에서 하종은 세종의 자식이 아닌, 미실과 사다함의 자식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하종의 모습이 너무나도 사다함을 닮았다고 하며, 세종은 미실과는 다르게 하종을 제외하고는 후사가 없다. 세종에게 남성기능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하종은 사다함의 자식이 될 수 밖에 없다.

( 세종과 미실사이에는 하종 이외에 옥종이 있었습니다)

금진의 아들인 설원랑 편에서도 언급을 하겠지만 설원랑 가문은 진평과 끈끈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진평의 아들들 중 한명을 생산하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전혀 언급이 되어 있지 않는 왕자들이다. 승만왕후 소생은 일찍 죽고, 나머지 진평왕의 아들인 보로전군 이야기도 나온다.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daybreak81.tistory.com BlogIcon 사자의새벽 2009.08.03 07: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정말 선덕여오앙에 대해 이렇게 심도있게 쓴글 처음입니다.
    돈이라도 드리고 싶네요 ㅋ
    갓쉰동님 좋은 한주 되세요!! 글 잘 봤습니다.

  2. Favicon of https://preciousness.tistory.com BlogIcon ♡ 아로마 ♡ 2009.08.03 09: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전문 블로거로 임명 합니다~
    ^^

  3.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8.03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역사전문 블로그로 말씀드리고 싶군요.
    한때 역사선생님이 되실려고 하셨기도 하고...
    잘 공부합니다.
    더불어 좋은글도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이번주도 행복한 한주 되시길 바랍니다.

  4. 희망 2009.08.03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춤법에좀 신경을 쓰시면서 글을 쓰면 좋겠네요.
    전문적이고 역사적인 글이 맞춤법 하나 틀리면서 얼마나 신뢰성을 잃는지 아신다면..

    띄어쓰기나 잘 쓰지 않은 표현을 틀린다면 몰라도
    세발의 피, 거늘이다 는 조금 알아두셔야 할듯 합니다.

  5. BlogIcon agkrihl 2009.08.03 1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나치게 본인의 입맛에 맞추신듯... 내용을 미묘하게 누락하셨네요...

    화랑세기 필사본에 따르면 미실은 세종공과의 사이에서 하종외에 옥종공을 낳았습니다...

    하종공에 대해서도 하종이 사다함을 닮았으나 세종의 아들이라고 못을 밖고 있으며,

    사다함이 금진의 아들이고,

    미실이 금진의 언니인 옥진의 외손녀로 외모가 옥진과 닮아있었다 하니...

    미실의 아들이 사다함을 닮았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6. 뇽자 2009.08.04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너무 좋아 하는데...~~

    이렇게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을 줄이야 .....

    여튼 좋은 글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7.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8. Favicon of http://garnertondy.multiply.com/journal/item/2/The_5_Most_Favored_Emergency_Su.. BlogIcon pilot crackers alaska 2012.11.01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9. Favicon of http://www.e-news.name/louer-un-chien/ BlogIcon invisible fence collar 2012.11.05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문 블로거입니다. 내 피드에 가입하여 큰 게시물의 여분의 탐구에에 남아

  10. Favicon of http://poofygoo.blogspot.com/2008/07/do-you-believe-in-coincidences.html BlogIcon portable dog fencing camping 2012.12.20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 화랑세기에는 중요한 여인중에 하나이다. 역사물을 다루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라면, 사랑, 야망,

  11. Favicon of http://bhuokit.beep.com/ BlogIcon food supplies for restaurants 2012.12.31 1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다함이 어머니의 색욕에 의해서 죽게되는 운명에 처한다. 사다함의 죽음에는 결국 어머니에 의한점이 많다.


삼국유사에 내제석궁과 천주사와 사금갑에 관한 재미있는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의 다음과 같다.
 
<< 삼국유사 사금갑 >>
 
488년 제21대 비처왕(毗處王; 소지왕炤智王이라고도 한다)이 즉위한 10년 무진(戊辰; 488)에 천천정(天泉亭)에 거동했다.  이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사람의 말로,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 보시오”한다(혹은 말하기를, 신덕왕神德王이 흥륜사興輪寺에 가서 행향行香하려 하는데 길에서 보니 여러 마리 쥐가 꼬리를 물고 있었다.  괴상히 여겨 돌아와 점을 쳐 보니 “내일 제일 먼저 우는 까마귀를 따라가 찾아 보라”고 했다 한다.  하지만 이 설說은 잘못이다).  왕은 기사(騎士)에게 명하여 까마귀를 따르게 했다.  남쪽 피촌(避村; 지금의 양피사壤避寺村이니 남산南山 동쪽 기슭에 있다)에 이르러 보니 돼지 두 마리가 싸우고 있다.  이것을 한참 쳐다보고 있다가 문득 까마귀가 날아간 곳을 잊어버리고 길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때 한 늙은이가 못 속에서 나와 글을 올렸는데, 그 글 겉봉에는, “이 글을 떼어 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떼어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입니다”했다.  기사(騎士)가 돌아와 비처왕(毗處王)에게 바치니 왕은 말한다.  “두 사람을 죽게 하느니보다는 차라리 떼어 보지 않아 한 사람만 죽게 하는 것이 낫겠다.”  이때 일관(日官)이 아뢰었다.  “두 사람이라 한 것은 서민(庶民)을 말한 것이요, 한 사람이란 바로 왕을 말한 것입니다.”  왕이 그 말을 옳게 여겨 글을 떼어 보니 “금갑(琴匣)을 쏘라[射琴匣]”고 했을 뿐이다.  왕은 곧 궁중으로 들어가 거문고 갑(匣)을 쏘았다.  그 거문고 갑 속에는 내전(內殿)에서 분향수도(焚香修道)하고 있던 중이 궁주(宮主)와 은밀히 간통(奸通)하고 있었다.  이에 두 사람을 사형(死刑)에 처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 그 나라 풍속에 해마다 정월 상해(上亥)·상자(上子)·상오일(上午日)에는 모든 일을 조심하여 하고, 감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16(5)일을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찰밥을 지어 제사지냈으나 이런 일은 지금까지도 계속 행해지고 있다.  이언(俚言)에 이것을 달도(怛忉)라고 한다.  슬퍼하고 조심하며 모든 일을 금하고 꺼린다는 뜻이다.  또 노인이 나온 못을 이름하여 서출지(書出池)라고 했다.
 
<< 삼국유사 천사옥대편 >>
 
579년 제26대 백정왕(白淨王)의 시호(諡號)는 진평대왕(眞平大王), 성(姓)은 김씨(金氏)다.  대건(大建) 11년 기해(己亥; 579) 8월에 즉위했다.  신장(身長)이 11척이나 되었다.  내제석궁(內帝釋宮; 천주사天柱寺라고도 하는데 왕王이 창건創建한 것이다)에 거동하여 섬돌을 밟자 두 개가 한꺼번에 부러졌다.  왕이 좌우 사람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 돌을 옮기지 말고 그대로 두었다가 뒷 세상 사람들이 보도록 하라.󰡓��  이것이 바로 성 안에 있는 다섯 개의 움직이지 않는 돌의 하나다.
 
내제석궁의 천주사를 진평왕이  만들었다고 하나 사금갑편을 보면 내전에서 분향수도를 하던 중이 궁주와 간통하고 있다가 죽임을 당하는 내용이 나온다. 내제석궁이 천주사이고 내전에서 분향수도할 수 있는 전각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사금갑의 사건이 신덕왕시기(912~917)이 아니라고 한 것은 김춘추와 김유신, 김문희, 김법민의 고사에 정월 오기일이 나오는 것으로 보았을때 타당하다고 하겠다.
 
천주사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동국여지승람에는 천주사는 안압지 북서쪽에 있었다고 하고 있고,  기록대로 천주사지에서 천주사를 증명하는 기와편이 발견되었다. 그러므로 천주사란 절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며 내제석궁을 천주사라 했을 수 있다. 처음 천주는 불교적인 색채보다는 신라고유의 신궁에 가깝지 않았을까 추측하게 된다.
 
527년 법흥왕 10년 이차돈이 순교하고 신라에서 공식적으로 불교가 공인된 것을 천주사가 그 이전 시기에 궁내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최소한 사찰로써 천주사는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488년 소지왕 시기 내전에서 죽어 나간 사람에 관한 기록을 찾아보면 화랑세기에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진다.
 
소지왕의 비는 선혜황후인데 선혜황후는 눌지왕의 딸인 조생과 내숙사이에 태어나고, 소지왕은 눌지왕의 아들인 자비왕과 미사흔의 딸인 (수리) 사이에 태어난다.  수리는 박제상과 치술성모(실성왕녀) 사이에 태어난 보미와 미사흔 사이에서 태어난다
 
선혜황후는 천주공의 아들 묘심과 사사로이 정을 통하다 소지(비처)왕에 발각되어 묘심은 죽고 선혜황후도 죽음직전에 이르나 보기공의 의술로 살아난다. 삼국유사에는 단순히 궁주와 중의 일로 이일로 인해서 둘이 죽었다고 하나 선혜왕후는 죽지않고 단지 폐위되서 위화랑의 처인 오도부인을 낳는다. 또한 폐위된 선혜비는 신궁의 궁주가 되어 보기공의 아들인 흥기와 관계를 가져 기오공을 낳는다. 기오공은 후에 김춘추의 아버지인 용춘공의 어머니인 지도태후를 낳는다. 또한 비지공의 아들인 호조공과 관계를 가져 비조공와 양화공주를 낳는다.  선혜황후는 소지왕과 사이에 법흥왕비인 보도를 낳았으니 다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488년 비처왕(소지왕)사금갑 사건은 소지왕이 왕비인 선혜가 사통함에 이를 죽이려던 사건임이 나타난다.
499년 소지왕은 염신(섬신)공의 딸인 16살 벽화를 맞이하여 비를 삼았고 아들을 낳았으나 바로 죽고 지증왕에 왕위를 넘겨주게 된다.
 
천주사에 관한 또다른 기록으로는
 
화랑세기 5대 풍월주 사다함조에 사다함의 아버지인 구리지와 어머니인 금진낭주 관한 기록으로
 
법흥왕의 후비였던 금진은 법흥왕과 밤일이 맞지않아 문천의 상류에 물러나 살았다. 구리지는 낭도를 모아 금진을 원화(源花)로 삼고자 했다. 앞서 구리지는 숙위두상(宿衛頭上)으로서 금진의 명을 전(殿) 아래에서 늘 받들었다. 구리지는 마음 속으로 그것을 원해, 천주사(天柱寺)에서 무릇 5년(536~540)을 발원했는데, 금진이 비로소 홀로 살게 되었다. 구리지는 이에 날마다 가서 원화가 될 계책을 바쳤다. 금진은 나이가 또한 적었기에 명리를 탐해 허락을 했다.
 
 
또 한가지 기록은 사다함과 관련된 기록인데 6세 풍월주 인 세종과 미실의 사랑의 라이벌인 세종조에 관한 기록이다. 사다함이 가야정벌을 마치고 돌아와서 미실과 세종이 결혼한 것을 보고 실의에 빠지다 무관랑이 죽은 후 7일만에 죽고나서 세종과 미실이 천주사에 명목을 빌었다는 기록이다.
 
천주사(天柱寺)에서 사다함의 명복을 빌었는데, 그날 밤 과연 미실이 꿈에 사다함공이 품에 들어오며 말하기를 ‘내가 그대가 부부가 되고자 했으니, 그대 배를 빌려 태어날 것이다’라고 했다. 이에 공에게 아뢰었다. 공 또한 이상하게 여겼다. 바로 임신이 되어 하종공(夏宗公:564)을 낳았다. 하종공은 모습이 사다함과 심히 비슷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혹 사다함과 정을 통할 때에 이미 임신을 하고서 입궁해 낳은 아들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 세종은 금지옥엽 귀한 왕족이었으나, 능히 사다함공의 어루만짐의 도를 이어 낭도를 많이 뽑아 당(幢)을 이루었다. 도의에 힘써 상하에 두루 미쳤다. 미실이 실로 대궐에 거하며 끌어준 것이다.
 
천주사는 묘심과 선혜후가 죽은 후  묘심의 아버지인 천주공이  묘심과 선혜후를 기리기 위해 자기가 살고 있는 궁을 사찰로 변경할 계연성이 있고 진평왕이 즉위초년(500년) 에 내제석궁인 천주사에 발길을 한것은 그의 선조인 선혜의 위패를 보기위한 것일 수 있으며 내제석궁이 신궁의 역활과 사찰의 역할을 했을 계연성이 많다. 후에는 신궁의 용도 보다는 궁내에 있는 사찰의 역할이 더 컸겠지만..
 
487년 소지왕 9년 봄 2월에 나을(奈乙)에 신궁(神宮)을 설치하였다. 나을은 시조가 처음 태어난 곳이다.
       7월에 월성을 수리하였다.
488년 소지왕 10년 봄 정월에 왕이 월성에 옮겨 거처하였다.
488년 소지(비처)왕 10년 사금갑사건 <삼국유사>
527년 법흥왕 10년 이차돈 순교 <삼국유사>,<삼국사기>
528년 ~535년 천주사 완공
536~540년 구리지의 금진구애 <화랑세기>
563년 진흥왕 24년 미실과 세종의 사다함 명복 기원 <화랑세기>
579~632 진평왕의 천사옥대 <삼국유사>
 
천주사의 조성연대를 추측할때 삼국유사와 기타 조선조의 기록을 비교해서 비처(소지)때 479~500과 진평왕(579~632)중에 하나라고 하나. 화랑세기와 삼국유사 사금갑,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을 종합해 볼때
이차돈의 순교가 있고 536년 구리지가 금진에 구애를 하는 이전시기여야 합당하다.
 
또한가지 487년 소지왕 9년 2월 나을 신궁을 설치하였을때, 2대 남해왕의 동생인 여동생 아노가 제사의 주제였듯이 신궁의 제주가 소지비인 선혜왕후이어야 하는데 화랑세기는 선혜황후가 신궁의 주제였고 묘심이 그를 보좌하는 역활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487년 가을 7월 월성을 수리하고 488년 1월 15일에 사금갑 사건이 터진것으로 보았을때 선혜왕후가 미리 월성에 가 있었을 개연성도 있다.
 
오기일이 정월대보름에 해당하고 찰밥을 해 먹는 풍습이 아직까지 전해오는 것을 보니 사금갑사건이  알게 모르게 전해준 일이 아닐까한다. 기록은 파편으로 남아 사금갑의 흔적은 사라지고 정월대보름 풍습만 남았으니 아이러니 하다고 하겠다.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http://www.toeshoesvibram.com/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kso-c-1.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flow-c-2.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jaya-c-3.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bikila-c-4.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speed-c-5.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sprint-c-6.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classic-c-7.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bikila-ls-c-8.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kso-trek-c-9.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treksport-c-10.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komodosport-c-11.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komodosport-ls-c-12.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men-five-fingers-c-14.html
    http://www.toeshoesvibram.com/vibram-women-five-fingers-c-13.html

  2.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4: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인 그래서 진짜로 무언가일 이 화제를 나가 나를 생각하는 결코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당신 발표 그러나 나와 쉬운 찾아내십시오. 그것은 저를 위해 너무 복잡하고 아주 넓게 보인다. 나는 당신

  3. Favicon of http://yarohouwer.multiply.com/journal/item/209/All-natural_Problem_Survival_K.. BlogIcon emergency meals 2012.11.01 1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4. Favicon of http://chloe.20minutes-blogs.fr/archive/2008/05/index.html BlogIcon cost of owning a dog in singapore 2012.11.05 1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주사를 진평왕이 만들었다고 하나 사금갑편을 보면 내전에서 분향수도를

  5. Favicon of http://gregclarcke9.blogspot.com/2012/04/business-survival-kit-to-get-business.. BlogIcon 72 hour kits checklist 2012.12.10 2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톤을 먹던 수백톤을 먹던 광우병에 안걸리지 않는가 말이다. 혹시라도 모르니 M/M형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고 필히 확인하기 바란다. 1%내각에 1%수석들에 1%보좌관들이지 혹시 우리나라에서는 5%밖에 없는 특이 체질인 M/V형이거나 V/V형인지 모르지 않는가 말이다.

  6. Favicon of http://susiecrowell.typepad.com/blog/2012/04/budget-endurance-kits-an-affordab.. BlogIcon 5 gallon water bottle caps 2012.12.10 2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선덕여왕을 다룰려면 지금까지 한 50회를 다시해야만 정상적인 덕만이 여왕이 되는 준비기간과 여왕으로서 삼국통일의 초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야 애초 제작팀의 기획의도에 맞지 않을까 한다.

  7. Favicon of http://radiofreestan.blogspot.com/2007/08/rent-pooch.html BlogIcon flexpetz in delaware 2012.12.22 1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동국여지승람에는 천주사는 안압지 북서쪽에 있었다고 하고 있고, 기록대로 천

  8. Favicon of http://bhuokit.beep.com/ BlogIcon long grain white rice calories 2013.01.01 2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음 천주는 불교적인 색채보다는 신라고유의 신궁에 가깝지 않았을까 추측하게 된다.

이전버튼 1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 시사 사회 문화 스포츠 평론
갓쉰동
11-29 08:10
Yesterday37
Today10
Total12,306,979

최근에 달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