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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끌려갈것인가? 주체적으로 볼것인가?

드라마 선덕여왕이 그동안 최후의 떡밥으로 준비한 춘추(유승호)가 드디어 34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떡밥만으로 끝날것인지, 아니면 최후의 비밀병기의 역할을 해서 여심을 사로잡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준비된 잔치상에 먹거리가 없는 경우도 있으니 지켜보는 도리 밖에 없다.

춘추(유승호)는 대남보에게 말을 타지 못하고, 배멀미와 흔들리는 가마에 멀미가 난다고 한다. 또한, 말을 타지 못한다고 한다. 이에 대남보가 말타기를 가르치려 하지만 바로 내려버리고 만다.

금오산을 넘어선 춘추 일행은 춘추의 꾐에 빠져 여관에서 잠시 쉬어간다. 그런데 쉬고 있던 춘추를 찾아 나선 대남보는 춘추가 사라진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춘추는 죽방과 고도의 뒤에서 뜸금없이 나타나 비재에 관심을 두고 자신이 "내이름 김춘추"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정오 넘어 금오산을 넘어오고 있는 춘추는 비재를 볼 수 있을까? 금오산은 구미와 김천.선산에 걸쳐 있고 현재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이다.


경주까지의 직선 거리는 얼마나 될까? 약 120여km정도 이다. 드라마상 정오가 넘어서 금오산을 넘어선 춘추가 경주 서라벌에서 벌어진 비재를 볼 수 있을까? 술시(밤7~9시)에 벌어진 유신과 비담의 배재를 죽었다 깨어나도 볼 수 없다. 그런데 춘추는 비재를 보고 있다, 말도 타지 못하는 춘추가 어떻게 비재를 볼 수 있었을까? 혹시 춘추는 축지법을 사용한 것인가?

여기서 정말 그렇겠네 하는 분이 있다면 재대로 낚시에 걸려든 것이다. 금오산은 두군데가 있다.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구미와 김천에 있는 금오(金烏)산이고, 또 하나는 경주인근 내남면에 있는 금오산(金鰲山)이다.


구미.선산에 있던 금오산이 금오산이 된 이유는 금오신화를 쓴 김시습과 관련이 있다. 금오산에 오르다 보면 명금폭포가 있다. 그 폭포 옆으로 바위 굴이 하나 있다. 김시습이 그곳에서 금오신화를 작성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그래서 구미와김천에 있던 산이 금오(金烏)산이 된것이다.  김시습이 수도를 하면서 글을 쓸때 황금까마귀가 날아들었다고 해서 금오산, 금오신화라고 했다는 설도 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던 구미에 있는 금오산이나 경주 내남면에 있는 금오산이나 등장하면 안된다. 당항성으로 부터 금오산을 넘어오는 길은 김천을 관통해서 금오산에 도착하는 방법이 있지만, 거리상 경주까지는 반나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또한, 경주 남쪽에 있는 금오산을 예상했다면, 당항성으로 부터 들어오는 입구도 아니고, 금오산을 넘어왔다면 이미 경주에 도착한 것이다. <선덕여왕>에서는 월성(궁성) 북서쪽에 있는 첨성대도 월성(궁성) 동북쪽에 있다고 뻔뻔스레 말을 하니 그냥 그려려니 하시길 바란다.


어찌되었던 중요한것은 금오산이 아니다. 대부분 글이나, 소설이나 드라마를 볼때, 화자가 이끄는데로 끌려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배역을 소화하는 배우들을 욕을 하거나 칭찬을 한다. <선덕여왕>에 금오산이 나와서 화자(작가, 드라마)에 끌려가지 말고, 주체적으로 판단하자라는 의미로 낚시를 던져보았다.


미생이 비웃음을 받은 이유?

미생이 춘추가 말을 못탄다고 하자. 하종과 세종과 설원랑과 미실은 미생을 보면서 웃음을 짓는다. 왜 미생이 말이야기를 하자 미생을 비웃는 것일까?


미생은 경오(庚午)년(550) 생이고 을사(乙巳)년(585)에 화랑의 주가 되었다. 미실이 (미생)공에게 명하여 사다함공을 따르게 하여 낭도가 되었다. 당시 나이가 겨우 12살(561년)이었는데 말에 오를 수 없었다. 미진부공이 쫓아내려 하자, 미실이 말하기를 “어찌 나의 아우를 한번에 내칩니까?” 하였다. 사다함 또한 부득이 받아들였다. 문노가 꾸짖어 “무릇 낭도란 자의 힘이 말에 오를 수 없고, 검을 사용할 수 없다면, 하루아침에 일을 당할 때 어디에 쓸 것인가?” 하였다. 사다함이 용서를 빌며 말하기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우입니다. 얼굴이 아름답고 춤을 잘 추어 또한 여러 사람을 위로할 수 있으니, 이에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문노가 다시 따지지 않았다. 공은 검도를 좋아하지 않았다. 속으로 문노를 꺼려하여 경의를 표하지 않았기에, 사다함이 곤란하게 어려워하였다.

미생은 나이가 12살이 되도록 말을 타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당시의 기준으로 보았을때 말도 타지 못하는 화랑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 미진부에게 집밖으로 내쫓김을 당할 위기에도 처하게 된다. 그러니 당연히 문노는 미생을 가르칠 자질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간신히 사다함의 부탁으로 미생을 받아 들이나 미생은 검도를 좋아 하지 않고, 글과 노래와 춤추는 것으로 즐거움을 주었다.

미실과 미생의 아버지 미진부는 어떤 인물일까? 진흥왕 시기 백제와 고구려를 밀어내고 충주지역. 한강유역과 저 멀리 함경도까지 영토를 확장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8대 장군중에 하나이다. 그러니 미진부로 보았을때 미생이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겠는가?

12년 신미(진흥왕 12년: 551)에 왕이 거칠부와 대각찬(大角)(특등위)구진(仇珍), 각찬(1~2등) 비태(比台), 잡찬(3등) 탐지(耽知), 잡찬 비서(非西), 파진찬 노부(奴夫), 파진찬(4등) 서력부(西力夫), 대아찬(5등) 비차부(比次夫) 아찬(6등) 미진부(未珍夫) 등 여덟 장군에게 명하여 백제와 더불어 고구려를 침공하게 하였다. 백제 사람들이 먼저 평양(平壤)을 격파하고 거칠부 등은 승리의 기세를 타서 죽령 바깥, 고현(高峴) 이내의 10군을 취하였다. - 삼국사기 거칠부 열전

유신과 알천 그리고 문노의 비기로 위기를 넘긴 비담

유신과 알천이 치열한 싸움을 하다가 둘이 쓰러진다. 그리고 알천이 일어서고, 유신이 일어선다. 그리고 유신이 소리를 한번 지르자 알천이 쓰러진다.

우리는 여기서 왜 알천이 쓰러졌을까?  하는 의심을 해볼 필요가 있다. 그냥 유신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그러할까? 아니면 유신이 7번 넘어져도 일어나는 개구리 왕눈이여서 일까?

우리는 세도가를 보고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날으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위세가 대단하다고 하지만. 유신은 정말 날으는 새도 떨어트리는 이적을 행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날으는 새도 떨어트리는 기세와 위세를 표현한 말이 아닐까 한다. 660년 백제 계백에 발목이 잡힌 후 유신과 소정방의 만남을 상기한다면, 유신이 알천을 소리로 제압한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비담은 보종과의 싸움에서 정석 플레이로는 싸움에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문노의 비기를 사용한다. 비담은 문노로 부터 직접 비기를 배울 수 없었다. 하지만, 비담은 무의 천재이다 ,그래서 문노가 하는 몸짓을 몰래 보고 스스로 깨우친것이다. 하지만 비담의 비기에서 태극권이나 취권의 냄새가 난다.

물론, 원작자는 잃어버린 신라고유의 무술이거나 태견이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노는 5세 사다함으로 부터, 14세 풍월주인 호림까지도 무예를 가르친 스승이다. 그런 문노의 비기를 보고 다들 놀란 표정을 짓는다.

공은 용력이 많고, 격검을 좋아하여 일찍 문노의 문하에 들어갔다. 검소하게 지냈으며  골품으로 뽐내지 않았다. - 화랑세기 14세 풍월주 호림

문노가 늙어서 비기를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죽어서도 612년 비재를 주관하는 문노이니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공은 건복(建福) 23년(606)에 세상을 떠났으며, 나이가 69세였다. 낭주는 이해에 공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선(仙)이 되었다. 공보다 10살이 적었다 - 화랑세기 8세 풍월주 문노

미실은 왜 패한 보종에게 참 잘싸웠다고 이야기를 했을까?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암중모색의 암살이나 감추고 싶은 어두운일은 다 보종이 처리한다. 30여차례 비재에서 패한적이 없을 만큼 천하무적인 보종이 15세 풍월주 비재에 참여하여 비담에 참패를 한다. 보종은 한없이 부끄러워한다.

그런데 미실은 의외로 보종을 찾아가 따스히 안아 주면서 보종아 "참 잘했다. 내아들"이라고 말을 해준다. 의외의 모습이지 않는가? 미실의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표현하고자 한것일까?

아니다. 미실과 보종을 바라보는 설원랑과 칠숙의 측은한듯 하면서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모습을 기억하기 바란다. 보종은 자신의 나약함을 어머니 미실에게 보이지 않고, 미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서 30여차례 비재에서 패한적이 없을 만큼 천하무적이 된것이다.
 
그리고 미실이 시키는 일이라면 지옥이라도 찾아 간다. 대다수의 격투가들에게 질문을 한다면 보종과 같은 역경을 이겨내고 최고수가 되었다고 말을 한다. 어릴적 너무나 약해서 몸을 단련시켰는데 어느덧 최고수가 되었다고 말이다. 이런 보종은 어떤 인물일까 궁금하지 않는가? 

(보종)공의 성품은 청아하였고 문장을 좋아하였고 …정이 많았다. 사람들을 위하여 웃고 울었으며, 온화함과 순량함은 마치 부녀와 같았다. 사람들이 병들어 고통을 받는 것을 보면, 슬프고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마치 자기가 아픈 것 같았다. 새와 짐승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였다. 한 마리의 벌레나 한 포기의 풀도 해친 적이 없었다. 선과 악, 이(利)와 해를 나누지 않았다. 술과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늘 작은 청려(靑驪)에 걸터앉아 피리를 불며 시가를 지나가면 사람들이 공을 가리켜 ‘진선공자(眞仙公子)’라고 하였다. 얼굴은 관옥과 같았고 손은 마치 하얀 새싹과 같았다. 그림을 잘 그렸는데, 인물과 산수의 절묘함은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호림이 사랑하여 부제로 삼았다. 정이 마치 부부와 같아 스스로 여자가 되어 섬기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 하였다. - 화랑세기 16세 풍월주 보종

현대 의학적 관점으로 보종은 여성호르몬 과다 남성이였다. 또한, 호림을 향한 사랑은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써의 사랑이였다. 요즘 같으면 트랜스잰더이고, 성전환 수술을 단행했을 만한 하지 않은가?

선덕여왕 최대 떡밥 춘추를 뒤로 하고

사실 이번편은 춘추에 대한 기사를 송고할려고 했다. 그러나 글이 너무 늘어져 버렸다. 짧게 쓸려고 했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참으로 재미있는 요소가 너무 많다. 역사를 배우는 자는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다.

또한, 너무나 다르게 신라를 보여주고 있어서 더욱 흥미롭다. 환타지 사극의 최정점은 <태왕사신기>일 것이다. 하지만, 태왕사신기는 스스로 환타지 사극을 표방하고 있다, 또한, 기록상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들인 기본적인 팩트는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

하지만, 사극을 표방하고, 스스로 불충분한 사료를 바탕으로 "신라를 재현하겠다"는 정통사극을 표방한 <선덕여왕>은 태왕사신기도 시도하지 않은 기본팩트까지도 자의적(?)으로 바꿔 버린다. 최소한  불충분한 사료가 있다면, 그 사료만이라도 충실히 따르고, 미싱링크를 채워갈 생각을 해야한다. 그런게 사극이 갖추어야할 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사극의 뼈대가 재대로 선것이다. 그런데, 선덕여왕은 그나마 적은 사료 조차도 쓰레기 통으로 처박아 버린다.

다음 뷰의 문화/연예 카테고리를 보시고, 역사에 관심이 없는 많은 여성 네티즌들은 갓쉰동이 일주일 내내 선덕여왕만을 주제로 지치지도 않고, 지겹도록 매일 장문의 글을 쓰는 것을 이해 하지 못할 것이다. 추천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갓쉰동이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서 미칠지경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선덕여왕에서 너무나 많은 떡밥을 투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한회 한회를 할때마다 글쓸 재료가 넘쳐난다. 오히려 못한 이야기가 더 많다. 이번편도 마찬가지로 많은 이야기꺼리가 있고, 선덕여왕의 최대 떡밥인 춘추를 다뤄보지도 못하고 글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춘추가 등장한 시간으로 치면 1분도 채 안될것이다. 몇주동안 밑밥만 투여하다 잠깐 춘추를 선보인 <선덕여왕>보다는 갓쉰동은 신의를 지킬것이다. 그러니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예고편. 춘추는 왜?어떻게? 비재에 나타났을까?

술시부터 풍월주 비재 장원전을 한다. 술시면 밤 7~9시에 해당한다. 그런데 춘추는 술시에 벌어진 비담과 유신의 결투를 구경하고 있다. 금오산에서 황금까마귀를 타고 날아서 왔을까? 아니면 축지법을 사용하고 왔을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왔을까? 당연히 말을 타고 왔다. 말을 타지 못한다는 말은 대남보를 속이려는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이유는 다음편으로 넘기도록 하겠다.

힌트는 춘추가 대남보에게 질문을 합니다. "서라벌에서 풍월주 비재가 있다며?" 이말이 함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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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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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화랑세기가 2009.09.16 1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역사서에도 저자가 있기에 그가 처한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인물이 선인이 되기도 하고, 악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미 내려오는 역사서조차 그 진위를 알 수 없고,
    저자에 따라 중국찬양론으로 흐를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짜피 역사란 판타지입니다.
    사실적 기술은 있을지라도, 선과 악은 나눌 수 없습니다.

    역사극이 환타지라고 논하며 비평하는 것도 좋지만,
    현대에 이 역사극이 우리나라와 이 드라마를 보는 이웃나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하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이미 현재에 발을 담그고 있고,
    그 현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16 10: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른 글도 봐주실래요.. 제가 화랑세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쉽게 알수 있을 겁니다..


      선덕여왕은 사극판 트루먼쇼133'선덕여왕', 납량극보다 섬뜩한 비담, 그리고 640선덕여왕, 천추태후 사극의 묘미는 현실풍자146

      다음 최신글 목록에 보면 위 리스트가 있을 겁니다.

      사실 행간을 읽으시면 대부분 현실 비판입니다. 제글. 사극을 빙자한..

  3.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9.16 10: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춘추 글도 기대가 벌써 되는군요.
    드라마 사극이야 어찌 굴러가든 ㅎㅎㅎ
    글쎄요...
    길어질 수 밖에 없는 글 맥락이라 ㅋ
    호흡이 가쁘긴 하지만 ㅎㅎ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4. 떼르미 2009.09.16 1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내용과는 별 관계없는 사족입니다만, 죄송합니다만, 술시는 19시~21시 아닌가요? 자시와 착각하신 듯? 어제 드라마에서도 오후7시~9시라고 자막에 나온 것 같았는데...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16 11: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앗 그렇군요.. 그렇다면 더더욱 올수가 없겠네요.. 김춘추가 .. ㅋㅋ 수정해야 겠습니당.. 왜이리 사소한 것에 실수를.. ㄳ 합니다..

  5. 꼬꼬 2009.09.16 1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미실이 보종을 끌어안고 하는 말과 행동이
    꼭 비담에게 하는 것처럼 느껴졌네요...
    비담에게 '잘 싸웠다' '내 아들'아.. 이걸 다른 아들인
    보종을 대신 끌어안고 말하는 것 같았다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16 1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들인지 아직 모를때이지요.. 비담이..
      보종이 어릴적 부터 미실의 사랑을 받았지만, 보종은 유약했거든요. 그러니 자신을 이기고, 신라 최고의 전투사가 되었으니 그 아니 기쁘겠어요.. 비롯젔지만.. 최선을 다한 보종이 자랑스러웠던 거지요..

  6.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2009.09.16 1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고 재미도 있고..
    선덕여왕 끝난후면 의례히 찾아보게 되네요..ㅎㅎㅎ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7. 글쵸 2009.09.16 1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어제 보면서 춘추가 구라 치는구나 싶더군여. 춘추는 얼핏 보기에 대원군 이하응 같은 인물 입니다.
    외극유내극강이죠. 어쩌면 덕만은 춘추를 통하여 왕이란 무엇이고 신라의 왕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배워갈지도 모른다 싶네여. 춘추는 중국에서 왕의 그림자를 마음 속에 간직했다 보이고요. 다른 이야기이지만
    요즘 전개되는 JYP 사태. 개인적으로 그가 백홈 한다면 진영이나 그 주변에 미실급 사람이 있다 보입니다.
    어차피 감싸고 가봤자 사태만 키울 터, 그냥 쫓아보낸 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아 동정론이 우세하면 복귀, 아니면 냅두고. 완전 바둑의 꽃놀이패네여. 여론을 다룰줄 안다 보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16 19: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럴수도 있는뎅.. 왕을 노리진 않았을 거예용.. 당시에는 춘추는 그저 공주의 자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요..

      박진영과 재범은 모르겠네용.. 미실급이 있는지.. 없는지.. 어짜피 진영은 욕을 바가지로 먹어도 할말 없는 상황이니..

  8. Favicon of http://5pm5am.tistory.com BlogIcon 에이프릴S 2009.09.16 14: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떡밥 선덕여왕 ㅠ_ㅠ 그래도 너무 재밌어서 미치겠네요 ㅋ 한주의 사이클의 중심이 월화드라마가
    되다니... ㅠ_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16 19: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그러게용.. 한주의 사이클은 토.일이 되어야 하는뎅.. ㅋㅋ 떡밥이 너무 많아용.. ㅠ.ㅠ. 다 한주 내내 먹어도 못먹음..ㅋㅋ

  9. 푸른달 2009.09.16 1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정방 아닌가요?
    소방정이 아니라...

  10. Favicon of http://leeesann.tistory.com BlogIcon pennpenn 2009.09.16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 부분에 구미 금오산 이야기를 하기에
    뜬금없다고 생각했지만 경주 금오산과 비교했더군요~

    전문적인 분석글 잘 보았습니다.

  11. 스앵 2009.09.16 1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기요,,

    소방정이 아니고,

    소정방 입니다...

    소방정 ㅋㅋ

  12. Favicon of http://blog.daum.net/bad2begood BlogIcon 2009.09.16 1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떡밥이 너무 많아서,..... 여기저기 알아보고자 인터넷 돌아다녔다라는...

  13. 2009.09.16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두 미실이 끌어안고 얘기할때 비담에게 한 말인줄 알았는데요..^^

  14. 최대적 2009.09.16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춘추의 행적을 보면 실제로 권모술수에 능했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춘추가 유년기를 수나라에서 보냈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인 소통이 있었던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큰 타격을 입은 수나라는 당나라에 패망했으나 신라는 당에도 협력적이며 굴욕적인 외교자세를 보입니다. 실제 백제와의 전투에서 신라는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 이길수 없는 싸움이란걸 알고 있었으므로 당나라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됩니다. 이후 당의 세력을 백제에서 몰아낼때도 실제적으로는 백제세력을 교묘하게 이용하게 됩니다. 실제적으로 자신의 힘보다는 세력간의 균형을 교묘하게 이용하며 적으로 적을 이기는 술수를 이용하여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비정상적인 통일을 이끌어냅니다. 가장 약한 나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신라의 입장으로는 높이 살만한 것이지만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보자면 민족 최대의 적이 되는 일이 벌어진것이지요.

  15. Favicon of http://tvfun.tvian.com/ BlogIcon TV FUN 2009.09.16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 님.
    이번에도 글 잘 읽었습니다.

    드라마 내용과 실제 역사를 함께 비교해주셔서
    재미도 있고 공부도 되는... 일석이조라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갓쉰동님...:)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16 19: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게 봐주시니 언제나 ㄳ 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조금더 빨리 tv펀에 노출이 되었음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만.. tv-fun 나름의 내부 사정이 있겠다 싶습니당..

  16. jhaesea 2009.09.16 17: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춘추가 당항성에서 배를 타고 경주로 올 것이고 그렇다면 금오산을 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16 19: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당항성에서 배를 타고 오지도 않을 뿐만 아니고, 당항성에서 배를 타고 백제의 근해를 경유해서오더라도.. 울산.토함산쪽으로 와야지용..

      경주 금오산은 남쪽에 있다눈..

  17. 갓쉰동님 광팬 2009.09.16 2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에 관심 없는 여성 네티즌이라... 그동안 갓쉰동 님의 글을 쭉 봐왔고 가급적인면 추천과 댓글을 날리던 저로서는 이번 대목은 기분 좋지 않군요.(전 20대 중반의 여성이고 일반 회사원이지만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이 많은 시민입니다.) 저 한줄의 글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 보면 오해를 살 수 있는 글입니다. 언어 표현에 신중을 기해주시길...

    근데 정말 궁금한 점은 선덕여왕에서 주인공들의 나이대가 어떻게 되는 지 궁금합니다. 아직 젊은 덕만의 얼굴과 벌써 청소년이 되버린 조카 춘추의 얼굴과 파파할머니가 되어야 할 미실의 팽팽한 얼굴을 보면 이 드라마 자체가 판타지 드라마로 흐르는게 아닌가 의구심이 드는군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17 01: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다수의 여성들은 역사보다는 등장하는 배우인물과 의상과 악세사리에 관심이 많지요.. 오히려 님이 특이한 케이스 입니당.. ㅋㅋ

      다음 주제가 여성사극에 관한 이야기 입니당.. 아마도 실망할지도.. 하지만 밑밥이라고 생각하셈.. 오늘글은 일종의 백신

      언젠가 함 정리를 해볼께용.. 불사와 도인의 나라에 대해서.. ㅋㅋ

  18. Favicon of https://sapzzil.kr BlogIcon sapzzil 2009.09.17 0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선덕여왕도 너무 재밌지만...갓쉰동님의 해설도 너무 재밌네요...^^

  19. nightbird 2009.09.17 15: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입담이 살아있는 전문적인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쭉 부탁드려요~~

    - 인물들의 의상과 악세사리에는 전혀 관심없는 특이 케이스 삼심대 여성으로부터.ㅋㅋ

  20.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21. Favicon of http://nissan.grupocaiuas.com.br/versa BlogIcon versa 2013.03.21 0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유에 대한 훌륭한 Post.thanks ... 더 기다려 .. ...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선덕(덕만)의 죽음에 대해서 다둘지 다루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덕만이 632년 왕위에 오르고, 647년 1월 8일 죽을 때까지 17년 동안 신라의 국왕으로 재위를 합니다. 비담의 난이 647년 1월 "여왕이 국정을 재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반란을 일으키는데 이에 가담하는 세력이 염종을 비롯해서 처형된 수뇌부만 30여명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들의 위세가 당시의 진압군 보다도 세력이 컸습니다. 또한, 이들에게는 보다 이로운 하늘의 징조(뜻)가 발생하는데 현재의 유성이 월성(궁)에 떨어지게 됩니다.

유신은 문노의 비급을 받지 못한다

이에 진압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반대로 반란군인 비담측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하게 됩니다. 이에 유신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와는 다르게 영특한 잔꾀를 내 세웁니다. 사실 유신은 출생부터가 잔꾀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나옵니다. 오죽하면 고구려의 멸망을 저주한 점쟁이의 화신으로 유신을 내세웠겠습니까? 유신은 우직한 것 보다는 전략과 전술력이 뛰어난 사람이였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유신이 어릴적 17세에 신검을 얻어 단석산에서 바위를 두쪽으로 조각내고, 그 이듬해 18세에 풍월주에 오른때에 선인으로 부터 비급을 전달 받게 됩니다. 비급이란, 병서와 천문지리를 막라한 책이지 않을까 합니다. 


드라마상에서는 비담의 스승으로 나온, 문노가 비급을 비담에 넘기지 않고, 유신에게 주었다는 설정을 합니다. 비담의 개인적인 성격도 바탕이 되겠지만, 북두의 화신이란 운명론에 입각해서 유신에게 주었겠다 싶지만 말입니다. 문노가 어릴적 부터 비담의 성격을 알았을텐데 그에게 물술과 병법을 가르친것도 좀 어설퍼 보기이기는 합니다. 드라마 전개상 이를 기회로 비담이 유신과 척을 지는 계기로 만들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덕만과 천명의 북두의 쌍생도 유신이 북두의 상징을 타고 난것을 차용한 것에 불과 합니다. 그러니 문노가 비급을 유신에 주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8세 풍월주 문노와 그의 아내인 윤궁은 606년 동시에 죽어 버립니다. 그러니 유신이 18세가 되는 612년에는 문노가 비급을 주려고 해도 줄 수가 없었겠지요.
 
공은 건복(建福) 23년(606)에 세상을 떠났으며, 나이가 69세였다. 윤궁낭주는 이해에 공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선(仙)이 되었다. 공보다 10살이 적었다. - 화랑세기 8세 풍월주 문노

아무튼 유신이 떨어진 유성을 연의 꼬리에 횃불을 달아 다시 하늘로 날려보내고, 이를 역천의 기운이 다시 하늘로 돌아갔다는 <프로파간다>로 여론을 다시 진압군으로 돌려세우고 반대로 반란군은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유성을 보고 사기가 떨어집니다.

16년(647) 봄 정월에 비담과 염종(廉宗) 등이 말하기를 “여자 임금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 하여 반역을 꾀하여 군사를 일으켰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8일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선덕(善德)이라 하고 낭산(狼山)에 장사지냈다.<당서(唐書)에 이르기를 『정관 21년(647)에 죽었다.』 하고 통감(通鑑)에는 『22년에 죽었다.』고 하였는데, 본사(本史)로써 고찰해 보건대 통감의 기록이 잘못이다.> 삼국사기 27대 신라 선덕(덕만)왕

원년(647) 정월 17일에 비담(毗曇)을 목베어 죽였는데, 그에 연루되어 죽은 사람이 30명이었다. 2월에 이찬 알천(閼川)을 상대등으로 삼고 대아찬 수승(守勝)을 우두주(牛頭州) 군주로 삼았다. 당 태종이 사신을 보내 부절(符節)을 가지고 앞 임금을 광록대부(光祿大夫)로 추증하고, 아울러 왕을 주국(柱國) 낙랑군왕(樂浪郡王)으로 책봉하였다. - 삼국사기 28대 진덕(승만)왕

덕만은 삼국유사의 지기삼사에서 자신의 죽은 날짜를 정확히 예측하고, 자신의 낭산 무덤자리까지 봐두고 있습니다. 이는 재위말년에  덕만의 몸이 좋은 형편은 아니였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후계를 선정하지 않을수 없었을겁니다.

비담은 덕만의 후계자 였을지도

어찌되었던, 덕만은 삼국사기 본기의 기록상으로는 647년 1월8일에 사망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니 덕만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한 것 처럼 비담이 난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사전에 탐지하고 있었을 개연성도 높습니다.

또한, 자신의 사후에 진덕(승만)이 바로 왕위를 승계받아 비담의 난을 진압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비담이 명분으로 내세운 "
여자 임금(女主)이 잘 다스리지 못한다" 동기는 덕만의 뒤를 이어 진덕에게 왕위가 넘어갈것을 알았다는 것이 됩니다.

이전 이찬 칠숙이 진평왕 말년인 631년 반란을 일으키게 된 이유를 칠숙이 진평왕의 사후에 최소한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왕족이였는데 후계로 덕만이 결정되자 반란을 일으켰다는 기사를 송고하였습니다. 2009/07/26 -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셋째는, 왕이 아무 병도 없을 때 여러 신하들에게 일렀다.  "나는 아무 해 아무 날에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도利天) 속에 장사지내도록 하라."  여러 신하들이 그게 어느 곳인지 알지 못해서 물으니 왕이 말하였다.  "낭산(狼山) 남쪽이니라."  그 날이 이르니 왕은 과연 죽었고, 여러 신하들은 낭산 양지에 장사지냈다.  10여 년이 지난 뒤 문호대왕(文虎(武)大王)이 왕의 무덤 아래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세웠는데 불경(佛經)에 말하기를, "사천왕천(四天王天) 위에 도리천(도利天)이 있다"고 했으니 그제야 대왕(大王)의 신령하고 성스러움을 알 수가 있었다. - 삼국유사 선덕왕 지기삼사 중 셋째 도리천과 사천왕사

"왕이 아무 병도 없을 때"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날이 이르니 왕은 죽었다"다고 하니 덕만이 죽은 시점이 647년 1월 8일에는 이미 죽음을 예감하고 준비를하고 있었다는 뜻이되고, 이미 병으로 골골하다는 반증입니다. 이때가 되면 덕만이 후사를 결정한 후라는 것이죠.

상대등 비담과 염종이 난을 일으키는 이유도 왕위승계에서 진덕(승만)에 밀려서 이지 않을까 합니다. 골골하던 덕만이 자신의 후계로 자신의 남편이였을 것으로 생각하는 작은아버지 국반갈문왕의 자식이며, 의붓딸인 진덕(국반/박월명)을 후계로 낙점한 상태에서 혹시 모르는 왕위를 승만에게 빼앗겼다는 울분이 반란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내몰았지 않았을까요?

"16년 정미(647)는 선덕왕 말년이고 진덕왕 원년이다. 대신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이 여자 임금(女主)이 잘 다스리지 못한다 하여 군사를 일으켜 왕을 폐하려 하니 왕은 스스로 왕궁 안에서 방어하였다. 비담 등은 명활성(明活城)에 주둔하고 왕의 군대는 월성(月城)에 머물고 있었다. 공격과 방어가 10일이 지나도 결말이 나지 않았다. 한밤 중에 큰 별이 월성에 떨어지니 비담 등은 사병들에게 말하였다. -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53세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는 김유신이 주동적으로 비담의 난을 진압한 것으로 나오지만, 삼국사기 본기 647년 전덕왕 1년 1월 17일 비담의 난을 진압하고 난 2월 사후 전공에 대한 직책의 이동을 보면, 이찬 알천이 비담으로 인해서 공석이 된 상대등이 되고, 대아찬 수승이 우두주 군주가 되는 인사 이동이 있습니다. 유신은 50살인 644년 소판(3등위)이 되고, 압량(독)주 군주가 되었다. 9월에는 상장군(대장군)이였습니다. 

647년 비담이 난을 진압하고도 유신은 여전히 648년 압독(량)주 도독의 직위에 변함이 없었다. (물론, 군주 위에 도독이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습니다.) 그러니 유신은 비담의 난을 진압하는데 알천이나 수승에 비해서 커다란 전공을 세웠다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비담의 반란 대상은 덕만이 아닌 승만(진덕)

삼국사기 본기와 삼국사기 열전과 삼국유사를 비교하건데 비담은 덕만이 왕위에 있을때 반란을 일으킨게 아니고, 덕만이 1월 8일 죽은 바로 그날이나 직후 승만이 왕위를 승계하자 바로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보입니다.

비담의 반란을 일으킨 대상은 직접적으로는 진덕(승만)을 향해서 이지만, 덕만(선덕)을 향해서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록은 왕은 스스로 왕성(월성)에서 방어를 하였다"하고,  "공격과 방어가 10일이 지나도 결말이 나지 않았다" 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이때 왕은 덕만(선덕)이 아니고, 승만(진덕)이였던 것이지요.

물론, 위에서 언급했지만, 덕만이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분명히 있어 보이기는 합니다. 덕만이 죽고, 내심 비담 자신이 왕위를 승계할 줄 알았는데 엉뚱하게 승만에 왕위가 넘어가 버렸으니 말입니다. "설마 덕만에 이어서 또다시 여자인 승만이 왕위를 잇게 되겠어"라는 설마가 사람을 잡아 버린 비담으로서는 모험을 택하도록 하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덕만이 비담을 후사로 지정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비담에 가담하는 세력이 많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비담은 알천 등에게 뒤통수를 재대로 맞은 것이 됩니다.

비담과 알천의 권력 투쟁

어찌보면 알천이 이찬에서 바로 상대등이 되는 것으로 봐서, 덕만이 죽고, 상대등 비담 모르게 승만을 왕위에 잇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유신과 비담의 다툼을 예고한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역사에서는 비담과 알천의 권력다툼에서 알천이 승리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647년 알천은 진덕(승만)을 세우는데 같은 편이였던 유신과 춘추가 654년 진덕 사후 알천을 비토하고 말지만 말입니다. 정치(권력)에서 아도 없고 적도 없다는 말이 진리에 가깝습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비담) 너는 언제 죽을것 같으냐?"고 물었을때 "폐하(진평왕)보다 3일 먼저 죽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함으로 자신을 죽일려면, 미실이 반란을 일으켜 진평을 죽이기 전까지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위기를 넘기게 됩니다. 어찌되었던, 비담은 덕만이 647년 1월 8일 죽고, 비담은 17일날 죽으니 비담은 "폐하보다 10일 후에 죽는다"고 하는게 잠언적인 내용도 포함하고 있으니 더 낫지 않았을까 합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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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8.31 08: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맞아요. 그러고보니 비담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진덕여왕 때문인 것 같아요. 처음엔 저도 오로지 덕만을 배신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3. Favicon of http://zazak.tistory.com/ BlogIcon 주작 2009.08.31 0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봤습니다.
    근데 최근 어느 학자는 선덕여왕이 죽은 게 아니라 김유신 세력에 의해 폐위되었다는 주장을 펴든데, 이에 대해 이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갑자기 궁금해져서 묻습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죽은건 맞지요.. 그렇지 않다면.. 죽은장소를 알려줄 이유가 없지요.. 그리고 삼국유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이미 덕만은 죽기전에 병이 심각한 같거든요.. 유언이 낭산아래 뭍어 달라.. 였으니..

      대구 지역에 있는 부인대에 선덕여왕의 위패를 모셨다는 내용을 가지고 설정한 것 같습니당..

      죽어도 부인대를 만들수는 있거든요..

  4.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31 09: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언제나 봐도
    중후한 맛이 나는 멋진 포스팅...
    잘보고 갑니다.
    8월 마무리 잘 하시고
    멋진 9월 맞이하시길 바라며...

  5. ^^ 2009.08.31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드라마를 다시 쓴다면 작가에 따라서 알천랑을 권력지향적인 야심가로 표현할 수도 있었겠네요. 유신랑이 덕만공주와 비슷한 또래라는 설정부터 약간 병맛설정인 것 같습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6. 2009.08.31 0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알천랑 2009.08.31 0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천랑이 진덕여왕 사후에 왕위계승자로 지목되었는데 거절하고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알천이 권략지향적인 야심가는 아닐 것 같아요. 그후 알천랑은 상대등 벼슬도 그만두고 가족들과 오래오래 살았다고 하더군요. 윗글에서는 진덕여왕 사후에 스스로 물러난게 아니라 밀려난거라고 되어 있는데 기록들이 조금씩 다른가봐요.

    • 두모 2009.08.31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진덕여왕 사후 알천이 서열1위 였던 건 맞는것 같아요.
      근데 나이가 많아서 사양해서, 김춘추가 왕위에 올랐다죠.

      이에 다른 이야기는 그 시절 왕위 계승에 최소 3번 고사하는게 관례인데, 한 번 고사한 것을 그대로 관철시키고 김춘추가 왕위에 올랐다는 것...

      병권을 쥔 김유신과 겹 혼인 사이인 김춘추의 결탁으로 생각되는 것.

      어쨌던 알천은 탐욕이 많은 사람은 아닌게 분명하네요.
      곧 진주로 낙향해서 성(진주 소씨)도 바꾸고 일가를 크게 일으켰다는데...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2: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통설에는 알천이 춘추를 옹립했다고 합니다.. 김유신 열전에 보면 알천과 더불어 춘추를 옹립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권력이란.. 맘만한 것은 아니지요.. 척했는데.. 턱하고 믿어 버린 케이스..

      춘추는 3번을 거절하거든요.. 알천과는 다르게.. ㅋㅋ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겹혼은 춘추가 왕위에 오른 이듬해.. 655년에 하지요.. 지조와..

  8.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31 1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반님,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만약 선덕여왕이 진덕여왕을 후계자로 지명한 것이 사실이라면, 비담 등이 반발할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진덕 또한 명군이라고 하니 비담이 개인적인 욕심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 같아요...

    이반님, 행복한 하루를 보내시고... 행복한 가을을 맞이하시길...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2: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명군이기 때문에 쿠데타가 아니라는 설정은 아닌것 같아요..

      좀 논란거리인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비담이 우선권이 있엇는가? 아니면 승만인가?

      물론, 저는 승만이 우선권이 있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이유는 승만은 왕성(월성)에 있고 비담은 명활성에서 있지요.. 이것도 비담이 월성에 들어가지 못해서 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스터리..

  9. 천년왕국 2009.08.31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 1000년 동안 한국이 발전을 했는가?
    고구려 백제 신라 시기에는 우리 나라는 무한한 발전을 했었다.
    만주를 포함 광활한 대지를 안았는데 유독 신라시기에는 조그만 땅덩어리에 갖혀 살았다.
    이후 고려시대에도 북벌을 추진하고자 하는 모습이 보였고 조선시대에는 몇번씩 만주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유독 신라시대에만 만주는 커녕 지금의 북한땅도 제대로 차지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신라라는 나라 자체가 배타적이고 독선적이어서 타지방 타민족을 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한반도 땅덩어리 하나 품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러한 이유로 만주로의 진출은 신라정신의 붕괴를 뜻하는 건 아니었을까?
    앞으로 제2의 신라시대가 절대 오지말아야 할 이유다.

    • 두모 2009.08.31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라 시기에 북으로 발전이 어려웠던 것은, 중국의 당이 워낙 강했던 시기이고, 발해까지 있었기 때문이오.

      우리 역사에 그나마 강한 시기는 중국이 분열하고 약해질 때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2: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를 역사로 보셈.. 그리고 환상은 금물..

      두모님 맞습니당..
      그런데 꼭 강한상대 옆에 있다고 해당국이 강한 건 아니지요.. 미국옆에 있다고 캐나다나 맥시코가 강한건 아니듯..

      중국옆에 있는 네팔이나 몽골, 부탄이 강국은 아니잖아요.

    • aa 2009.09.01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로마까지 세력을 떨치던 신라가 통일후 그렇게 된건... 백제인들의 떼쓰기와 발목잡기로 그리된걸로 아뢰오..진정한 불행은 백제인을 우리민족으로 통합한거 부터 시작이오

    • 스카 2009.09.08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에 모순이 있어 한말씀 드립니다.
      신라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라 북벌을 못했다...
      3국시기에는 포용력이 좋아 북벌도 여러번하고 만주도 쳤다...??
      이게 무슨 소립니까? 그리고 영토확장만이 능사는 아닐것이라 생각됩니다. 태평성대가 영토확장보다 훨씬 좋은거 아닌가요? 전 영토확장만이 능사라고 생각하스는 님의 제국주의에 공감하진 못하겠습니다.

  10.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31 1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그래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비담이 선덕여왕에게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드라마와 연관지어서 기뻐요,.
    진덕에 대한 반란이었다면 비담은 끝까지 덕만 곁에 있겠네요. 선덕 사후에 난을 일으켰다니...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1 13: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쿠데타 명분이 여자가 왕이 되는것이니.. 선덕에 대한 불만도 있지 않았을까요?

    • 스카 2009.09.08 15: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끝까지 덕만의 편이었다면 더욱이 덕만에 대한 불만이 많았겠지요. 자신이 왕이 될꺼라 믿어의심치 않았을 수도 있으니... 물론 난을 일으키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비담 본인의 권력욕일테지만요.

  11. Favicon of http://l7044337@hanmail.net BlogIcon 재밌네요 2009.08.31 14: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식의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봅니다. 역사란게 원래 승자의 것이기에 누구의 반란인지는 중요한게 아니겠죠^^ 근데 화랑세기는 위작에 의심이 가는 역사서라 ㅋㅋ 암튼,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12. Favicon of https://boskim.tistory.com BlogIcon 털보작가 2009.08.31 14: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갑니다.
    오늘밤 선덕여왕이 기대됩니다.

  13. Favicon of https://skagns.tistory.com BlogIcon skagns 2009.08.31 15: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덕분에 앞으로 선덕여왕의 이야기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많이 될 거 같습니다.
    참~ 그리고 노란펜 축하드립니다. ㅋ

  14. 드라마 선덕여왕은 2009.08.31 17: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 역사와는 전혀 상관 없는 판타지물이죠. 때문에 드라마에 나오는 비담의 역활과 선덕여왕과의 관계도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것일 뿐입니다. 굳이 실제 역사와 비교해 보기보다는 판타지 자체를 즐기고 마는게 나을듯합니다. 이런 식의 비교는 일부 시청자들이 드라마의 허구와 실제 역사를 혼돈케 하고 있는것으로 보입니다.

  15. 하루 2009.08.31 2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 사실을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바꾸거나 버리곤 하는데 이런 식으로 굳이 스스로 역사서를 들추지 않아도 알게되니 참 좋군요. 역사에 보다 충실한 드라마였다면 어떠헸을지도 궁금합니다.

  16. 착한아이 2009.08.31 2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17. 선덕여왕 2009.09.08 1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18. 지나가던 이 2009.09.15 0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의 난이 선덕이 아닌 진덕여왕을 향한 것이라고 하는 자료가 있네요. 야후 인명사전이네요.

    http://kr.dictionary.search.yahoo.com/search/dictionaryp?&p=%EC%97%BC%EC%A2%85&subtype=enc&pk=11757600&field=id

  19. 2009.09.17 0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21. Favicon of http://nextgenerationpestcontrol.com BlogIcon Complete Residential Pest Control Solutions 2012.09.05 0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하게 됩니다. 이에 유신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와는 다르게 영특한 잔꾀를 내 세웁니다.

미실의 남자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대놓고 드러내지 않지만, 은연중에 미실이 수많은 남자를 거르렸음직한 장면을 종종 보여 주고 있다. 이에 대해서 미실의 남자에 관한 기사를 송고 했었다.
2009/07/31 -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관심이 계신분은 일독을 해보시길 바란다.


어찌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이 모본으로 삼고 있는 현존 화랑세기를 읽다 보면 처음에는 "머 이런 개족보가 다 있나"한다, 하지만 요즘의 개들의 족보도 사실 화랑세기의 기록된 신라의 성생활에 비하면 건전해 보이기 까지 한다. 그런데 겉보기는 분명이 개족보 보다도 못한것 같지만, 심도 있게 파고 들면, 의외의 상황을 대면하게 된다.

한 일단은 자유로운 성을 누리고 있지만, 또 다른 일단은 정조와 절개를 목숨만큼이나 귀히 여긴다.

정절을 지키기 위해 우물에 몸을 던진 용수첩

지금부터 정절을 지키기 위해서 우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려던 용춘의 첩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용춘의 첩의 아버지는 화랑의 낭두로 풍월주인 용춘에 충성을 다 하였다. 용춘의 첩도 용춘의 첩이 되기 전에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화랑의 뒤바라지를 하는 유화가 될 수 있었다.

사해에서의 휴식장면

하지만, 용춘첩은 유화가 된다면, 용춘을 섬길 수 없다 하여, 유화가 되는 길을 거부하였다. 이에 풍월주인 용춘(596~603년)은
처음에 용춘첩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용춘첩은 차리리 유화가 되느니 죽음을 선택하겠다며 우물에 몸을 던졌다.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사랑을 위해서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린 것이다.


하지만, 용춘첩은 죽지를 못하고 구원받게 되었다. '죽으려 하면 살것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라는 이순신 장군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하다. 몸을 던져 우물에 투신을 하였지만, 죽고자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우물에서 떠올라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바닷물보다 더 짜서 맨몸으로 누어서 휴식을 취할수 있는 사해같이 짠 우물물은 아닐 것이다.

만약, 용춘첩이 살고자 발버둥을 쳤더라면 우물속에서 죽었을 것이다. 용춘첩은 우물속에서 하늘을 보며, 이승에서 못다 이룬 용춘에 대한 사랑으로 눈물을 흘리며, 저승에서 인연이 되어 용춘과 사랑을 이루게 해달라고 부처님과 하늘에 기원했을 지도 모른다.


물위에 드는 남자

어찌 되었던 용춘첩은 우물에 빠져서도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어쩌면 김유신이 문희를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불쇼'를 하는 것처럼, 용춘첩이 대국민 '물쇼'를 했을 수도 있다. 김유신의 불쇼는 2009/07/23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용춘첩을 우물에서 구한
낭두들이 13세 풍월주 용춘에게 용춘첩을 받아들이기를 부탁하였다. 용춘은 어쩔 수 없이 용춘첩을 받아 들인다. 용춘첩과에 사이에서 용산과 용석 두 아들을 낳고, 딸로는 용태를 낳았다. 용태는 춘추를 섬겨 인태 각간을 낳았다. 용춘은 첩에 몸에서 난 자신의 딸 용태를 양자인지 친자 인지 모르는 춘추와 결혼시켰음을 알 수 있다. 춘추에게는 용춘은 아버지이자 장인이 된다. 용춘이 춘추의 아버지인지 작은아버지 인지를 알고 싶다면 2009/08/20 - [역사이야기] - 괴물이 되어버린 춘추(유승호)의 아버지 기사를 참고 하길 바란다. 
  

기록과 너무나 다른 사극 선덕여왕

대남보(류상욱)

용춘의 첩의 아버지는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생의 벽여명의 자식중 한명으로 나온 대남보이다. 그러니 대남보는 용춘의 여자인 천명을 죽이므로 해서 자신의 딸이 용춘의 정처가 될 수 있다고 상상한 것일까? 물론, 대남보는 덕만을 죽이기 위해서 화살을 날렸지만, 덕만인줄 알았던 여자가 천명공주이고 이에 의도하지 않게 천명이 죽어서 수나라로 춘추를 모셔오는 역할을 한다. 

드라마에선 나오지 않지만 대남보는 아마도 자신의 외손녀인 용태를 춘추와 엮어 주려 하는 의도 있었는 지도 모른다. 그래야 용춘과 척을 지지도 않고, 자신의 사위인 용춘과 대씨녀가 잘되는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춘추의 어미 천명을 죽인자는 <대남보>다. 춘추는 어머니를 죽인 원수의 손녀와 결혼해서 인태 각간을 낳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아무리 드라마 지만 너무 얼척 없지 않는가?

용춘첩은 용춘의 충복 대남보의 딸

하지만, 화랑세기는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다르게 대남보는 용춘의 충복이고 미생과는 척을 지고 있었다. 대남보는 재산가 였지만, 자신의 전재산을 용춘을 호위하는 무사를 양성하고, 용춘을 지키는데 탕진하였다.

천명(박예진)

그래서 자신의 아들 딸들은 끼니를 때우지 못하고, 삼을 엮어서 장사로 근근히 입에 풀칠을 하고 살았다. 대남보가 용춘을 지키는데 혈안이 된 이유는 용춘을 죽이려는 세력이 있었다는 반증이 될것이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세력은 아니다. 미실세력의 일원인 미생의 딸 매생은 용춘에 시집을 가서 용귀를 낳았다.  정적들간에 정략적인 결혼이 성행하니 드라마 선덕여왕처럼 될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 

하지만, 미실과 설원랑의 후손들은 춘추가 알천을 밀어내고 왕이 되는데 적극적으로 후원한 배후세력이 였다.

 대남보에 좀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미 송고한 두편의 기사를 참조 하기 바란다.


만약, 현존하는 화랑세기가 박창화의 창작품이 아니라면, 선덕여왕의 원작자는 대남보와 그의 후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극을 만들때는 좀더 치밀하게 분석해야 하고, 기본 팩트는 논란이 있지 않는 이상 바꾸면 안된다. 역사소설이나, 사극은 팩트와 팩트를 연결하는 인과관계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꾸고 풀어가는 것이다.

다음 기사에서는 화랑세기에 기록된 또다른 정절녀를 소개하려고 한다. 한마디로 하면, 화랑세기에 기록된 여인열전 시리즈가 되지 않을까 한다. 용춘첩의 예에서 보듯이 화랑세기에는 난삽한 성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 시대에도 귀감이 될만한 이야기도 곳곳에 숨어 있다. 이름하여 숨어있는 일인치 찾기라고 할 수 있다. 약간의 서비스를 하자면, 드라마상 비담과도 관련이 있고, 용수. 용춘과도 관련이 있다. 사실 예고를 하지 않는다면,  써야할 소재가 너무 많아 취사선택이 쉽지 않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약속을 하는 것이다.

물론, 호흥(추천)이 없으면, 다음편을 쓰지 않을 수도 있다. 호흥이 없는데 글을 쓰는 것 처럼 낭비는 없다.
 
글이 도움이 되셨습니까? 그렇다면 추천과 다음 글도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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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tarculture.tistory.com BlogIcon 아이러니♡ 2009.08.21 06: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은 역사랑 맞는 부분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네요.
    하지만 드라마이니 뭐라 할 수는 없죠..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1 12: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충분히 그런 면이 많아요..

      이게 왜 중요하냐면 선점의 효과거든요.. 선덕여왕을 해렸으니 당분간 미실과 선덕여왕에 관한 드라마는 볼수가 없게 되어 버렸잔아요.. 그래서 처음 만들때 잘 만들어야함..

  2.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8.21 07: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 호응해 줬습니다. 다음 편 기대할게요. 드라마와는 별개로 색다른 흥미를 줍니다.

  3. Favicon of http://blog.daum.net/gnathia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8.21 0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글을 접하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지만 볼수록
    이야기를 풀어나가시는 내용이 저와 딱 맞는데요? ^^

  4. 임현철 2009.08.21 0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 좋았는데 아쉽네요.
    이반으로도 뵐게요

  5. 2009.08.21 0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21 11: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응이 없으면
    다음편 없다니요???????????
    저 처럼 갓쉰동 매니아들을 무시하시나요???????????
    스토크 할겁니다 ㅋㅋㅋㅋ
    아니면 저도 우물에 몸을 던질 수 있다는 ㅎㅎㅎ
    정절녀 열심히 기다리고 있을테니
    포스팅 해주시길 ....
    글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즐겁고 편안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1 12: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호흥이 없으면.. 흥이 안나거든요.. 사실.. ㅋㅋ

      매니아가 많은 것도 좋지만 보다 많은 사람이 알고 드라마를 보는게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해서 투정을 하는 거지요..

      사실 눈팅과 싸워서 성공한 경우가 없거든요..

      손가락이 워낙 천금과 같아요.. 그들은.. ㅋㅋ

    • aaa 2009.08.25 1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계속
      '호흥'이라 하심은 일부러 그러시는건가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5 18: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계속 추천하면 됩니당.. ㅋㅋ

  7.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21 1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춘, 용수 정말 헷갈리네요... ㅋㅋ

    용춘의 아내처럼 쇼하는 경우가 있을거예요...

    가끔은 쇼를 했는데... 빠져 죽은 경우도 있겠지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1 1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용수용춘이 헛갈릴때가

      가장 많이 헛갈리는 사람이 의외로 알천과 월천이라눈..
      염종과 염장이 그렇구요.. ㅠ.ㅠ.

      지소, 지조, 사도, 지도 이들도 헛갈리공..

  8.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21 13: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에 나오는 인물들은 너무 이름이 비슷비슷해서...

  9. Favicon of http://www.ilovenews.co.kr BlogIcon 대한민국 황대장 2009.08.21 16: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보고 시험 문제 틀렸다는 놈 있으면 갓쉰동님 블로그를 알려줘야 겠네요 ㅋㅋㅋ
    역사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잘 봤습니다 ^^

  10. Favicon of http://waarheid.tistory.com BlogIcon 펨께 2009.08.21 2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보고 갑니다.

  11.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200

(C) mbc 사극 드라마 선덕여왕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수 많은 여인들이 나온다. 현재 고현정이 맡고 있는 미실도 화랑세기에는 중요한 여인중에 하나이다. 역사물을 다루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라면, 사랑, 야망, 권력욕, 천재성을 두루 갖춘 주인공으로 내세울수 있는 최상의 캐릭터다.

하지만 미실 전에 지소, 금진, 옥진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지소는 법흥왕의 딸로서 작은아버지 입종에 시집을 가서 진흥을 낳는다. 하지만 진흥이 왕이 되기 위해서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법흥은 진흥보다는 지소의 두번째 남편인 영실이나, 미진(법흥/벽화)를 후계로 점지 했었다. 하지만, 지소의 반대로 법흥은 진흥을 자신의 후사로 결정할 수 밖에 없었고, 영실도 법흥의 후계가 되지를 못했다. 만약, 영실이 왕이 되었다면, 김씨에서 박씨로 성씨가 교체되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이전 여왕은 있었다. 첫번째는 누구?! 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번편은 금진/옥진 자매중 사다함의 어머니로 유명한, 금진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사다함의 죽음에 관한 비화

(C) MBC 선덕여왕, 사다함(박재정)

금진은 수 없이 많은 남성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지소와 미실과는 다르게 권력욕보다는 색욕이 강한 여성이였다. 사다함의 부장이였던, 무관이 금진과 사통하는 일이 발생한다. 금진과 무관의 관계는 사다함에 들키게 되고, 무관은 월성 담장을 넘어 도망치다 성을 보호하려 만들어놓은 해자(물웅덩이)에 빠져 죽고 만다.

사다함은 무관의 죽음에 비관하여  죽고 만다. 사다함이 죽게 되는 여러 이유 중에는 미실을 사랑하였으나, 미실은 세종에게 시집을 가벼렸다. 그리고 자신의 충직한 부관인 무관이 자신의 어미와 사통하다. 죽음에 이르게 된것이다. 사다함이 어머니의 색욕에 의해서 죽게되는 운명에 처한다. 사다함의 죽음에는 결국 어머니에 의한점이 많다.


금진의 남자들


이전글에서 지소의 남성편력을 상세히 이야기 했지만, 금진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알고 미실의 팜므파탈은 지소나 금진에 비하면 하수에 가깝다.

사실 사다함은 금진의 남편편력에 대해서 증오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미를 어미라 부르지 않던 사다함에게 이사부는 신도의 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에 사다함은 깨달음을 얻어  무관이 죽을 시점에는 어머니의 남성편력에 대해서 달관의 경지에 도달할 때 였다. 무관으로서는 이전 사다함이 어머니의 편력을 미워한 사실을 알고 있던터라 사다함에 들키자 무작정 도망을 치다 죽어버린 것이다.

상상을 해보자.  달이 밝지 않은 월성에서 도망자와 추적자..사다함이 무서워 무작정 도망가는 무관과 오해를 풀어주려던 사다함과, 자신을 죽일 것 같은 사다함.  "도망가지 마라 무관~, 괜찬다 무관", 말은 도망가지 말라고 하지만, 잡히면 죽을 것 같은 무관. 561년 가야정벌에서 가야인을 안심시키고 한번의 진공(공격)으로 가야를 무너트린 사다함의 계략을 잘고 있던 무관으로써는 당연히 오해를 살만 하지 않던가? 

구리지와 결혼을 하기전에는 금진은 법흥의 후비였지만, 법흥과 사이에는 후사를 보지 못했다. 540년 법흥이 죽고 나자. 구리지와 결혼을 하여 토함과 새달 그리고 5세 풍월주 사다함을 낳는다. 

법흥의 아우이며 지소의 남편인 입종을 통해서는 숙흘종을 낳는다. 숙흘종은 만호(지소/이화랑)의 사이에서 만명을 낳고, 만명이 김서현과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후 김유신을 낳는 것이다. 진흥을 통해서는 난성공주를 낳고, 누군지를 알 수 없는 상대에게서 준영을 낳는다. 

금진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남편의 양자인 설성과 관계해서 7세 풍월주인 설원랑을 낳는다.

 입종은 법흥과 같은 해인 540년 죽었다고 화랑세기는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금진의 첫째 아들은 숙흘종이 아닌가 한다. 이들의 순서는 설원랑이 사다함(546년생)보다 3살 어리다고 기록하였으니, 숙흘종(입종), 토함(구리지), 색달(구리지), 사다함(구리지), 설원랑(설성:549년생):(그림에는 548년생으로 나왔지만 오류), 난성(진흥), 준영(?) 이며 금진의 동복 형제자매가 되고, 순서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를 닮아 끈질긴 구리지

구리지는 이름이 현재에 봐도 조금 머시기 한 이름이 아닌가? 너~ 먼가 구리지..한마디로 하면 너 똥냄새 난다는 말이다. 
사실 구리지는 그의 아비인 비량이 법흥의 비였던 벽화(섬신/벽아)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머지 벽화와 화장실에서 관계를 해서 낳은 아들이다. 그래서 이름이 '구린내'를 뜻하는 구리지가 된 것이다. 

구리지는 아버지인 비량의 피를 이어 받아 끈질김이 있었다. 처음 금진이 법흥의 비가 되었을때, 한눈에 반해 사모하는 마음이 깊었다. 그래서 구리지는 '천주사'에서 5년동안을 금진을 자신에게 달라고 빌고, 빌었다. (천주사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그리고 마침 법흥과 입종이 죽자. 금진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구리지가 취한게 아니고 실은 금진이 구리지를 간택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던, 구리지는 "열번찍어 안넘어가는 여자 없다"는 고사를 만들어(?)낸 인물이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요즘도 여성에 대한 허황된 환상에 빠져 열번찍어 보는 경우도 있지만, 한결같이 5년동안 빌고비는 행위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성이지 않을까 한다. 미인을 얻는자는 그만한 대가를 치루게 되는 모양이다. 금진은 구리지에 만족하지 않고, 그후에도  수 없이 많은 남성을 자신의 남자로 만들고, 그로 인해 자식인 사다함까지 죽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으니 말이다. 

 

금진의 후손들

위의 금진의 남자들과 후손들을 보면 금진과 유신과는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금진 할미를 둔 덕만과 유신

금진/입종(법흥/연제) -> 숙흘종/만호(지소/이화랑) ->만명/서현 -> 유신 .
지소/이화랑->만호/동륜[진흥/사도(영실/옥진)] -> 진평/마야 [복승/송화(지소/영실)]-> 천명,덕만,천화

이로써 덕만과 유신은 만호를 할머니로 둔 사이가 된다.

설원랑과 미실의 손녀 사위 유신

또한, 설원랑과 유신은 금진의 자손이 된다. 또한, 설원랑이 준모(모랑/준화)를 통해서 낳은 미모가 미실/세종이 낳은 하종/미모과 결혼하여 영모를 낳는다. 영모는 유신이 풍월주에 오르는 18세가 되기 바로 전에 결혼을 한다. 

그러니 유신은  설원랑의 손녀사위가 되는 것이다. 또한 유신은 미실의 손녀사위가 되기도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미실과 설원랑은 김서현 가문과 척을 진적이 없고, 끈끈한 핏줄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과 전혀 다른 성격의 보종(미실/설원랑)

 

보종

15세 풍월주 유신에 이어서 16세 풍월주에 오르는 이도 설원랑/미실의 아들인 보종이 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보종은 청아하고, 정이 많고,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아는 사람으로 나온다. 보종은 유신이 어려움에 처했을때나 병이 났을때, 치료를 해주는 유신의 주치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드라마처럼 약역전담 처리반이 아니였다는 것이다.

 유신공이 병이 나자 공이 문득 몸소 치료하며 “우리 공은 국가의 보배이니 나의 의술을 숨길 수 없습니다” 하였다. 이로써 그가 편작(扁鵲)243)의 학(의학)을 갖추었음을 모두 알게 되었다. - 화랑세기 16세 보종

또하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하종과 보종이 나오고 하종이 보종의 형으로 나오지만, 비슷한 연배로 나온다. 하지만, 실제는 하종은 563~4년생이고 보종은 580(?)년생이다. 유신은 595년생이다. 당시 기준으로 하면 하종은 유신의 할아버지뻘이고, 보종의 아버지 뻘이다. 그리고 11세 풍월주 하종의 딸인 영모가 유신과 결혼을 하니 유신은 하종의 사위가 되는 것이다.

남성 기능 장애자 세종 (댓글로 지적을 받아 삭제 해야 하나 남겨둡니다.)
 

세종

이전글에서 하종은 세종의 자식이 아닌, 미실과 사다함의 자식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하종의 모습이 너무나도 사다함을 닮았다고 하며, 세종은 미실과는 다르게 하종을 제외하고는 후사가 없다. 세종에게 남성기능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하종은 사다함의 자식이 될 수 밖에 없다.

( 세종과 미실사이에는 하종 이외에 옥종이 있었습니다)

금진의 아들인 설원랑 편에서도 언급을 하겠지만 설원랑 가문은 진평과 끈끈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진평의 아들들 중 한명을 생산하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전혀 언급이 되어 있지 않는 왕자들이다. 승만왕후 소생은 일찍 죽고, 나머지 진평왕의 아들인 보로전군 이야기도 나온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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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daybreak81.tistory.com BlogIcon 사자의새벽 2009.08.03 07: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정말 선덕여오앙에 대해 이렇게 심도있게 쓴글 처음입니다.
    돈이라도 드리고 싶네요 ㅋ
    갓쉰동님 좋은 한주 되세요!! 글 잘 봤습니다.

  2. Favicon of https://preciousness.tistory.com BlogIcon ♡ 아로마 ♡ 2009.08.03 09: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전문 블로거로 임명 합니다~
    ^^

  3.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3 10: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역사전문 블로그로 말씀드리고 싶군요.
    한때 역사선생님이 되실려고 하셨기도 하고...
    잘 공부합니다.
    더불어 좋은글도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이번주도 행복한 한주 되시길 바랍니다.

  4. 희망 2009.08.03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춤법에좀 신경을 쓰시면서 글을 쓰면 좋겠네요.
    전문적이고 역사적인 글이 맞춤법 하나 틀리면서 얼마나 신뢰성을 잃는지 아신다면..

    띄어쓰기나 잘 쓰지 않은 표현을 틀린다면 몰라도
    세발의 피, 거늘이다 는 조금 알아두셔야 할듯 합니다.

  5. BlogIcon agkrihl 2009.08.03 1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나치게 본인의 입맛에 맞추신듯... 내용을 미묘하게 누락하셨네요...

    화랑세기 필사본에 따르면 미실은 세종공과의 사이에서 하종외에 옥종공을 낳았습니다...

    하종공에 대해서도 하종이 사다함을 닮았으나 세종의 아들이라고 못을 밖고 있으며,

    사다함이 금진의 아들이고,

    미실이 금진의 언니인 옥진의 외손녀로 외모가 옥진과 닮아있었다 하니...

    미실의 아들이 사다함을 닮았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6. 뇽자 2009.08.04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너무 좋아 하는데...~~

    이렇게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을 줄이야 .....

    여튼 좋은 글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7.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8. Favicon of http://garnertondy.multiply.com/journal/item/2/The_5_Most_Favored_Emergency_Su.. BlogIcon pilot crackers alaska 2012.11.01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9. Favicon of http://www.e-news.name/louer-un-chien/ BlogIcon invisible fence collar 2012.11.05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문 블로거입니다. 내 피드에 가입하여 큰 게시물의 여분의 탐구에에 남아

  10. Favicon of http://poofygoo.blogspot.com/2008/07/do-you-believe-in-coincidences.html BlogIcon portable dog fencing camping 2012.12.20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 화랑세기에는 중요한 여인중에 하나이다. 역사물을 다루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라면, 사랑, 야망,

  11. Favicon of http://bhuokit.beep.com/ BlogIcon food supplies for restaurants 2012.12.31 1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다함이 어머니의 색욕에 의해서 죽게되는 운명에 처한다. 사다함의 죽음에는 결국 어머니에 의한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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