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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많은 사람들이 제사나 명절(추석, 설) 차례t상를 올릴때 상차림에 올리는 술은 일명 정종으로 알려진 청주를 올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내 조상들은 청주를 올리지 않았다. 이는 일제시대와 그후 각 지방과 지방의 토속주와 전통주를 인위적으로 막았다. 그래서 제례에 올리는 술과 비슷한 술인 정종(청주)를 올리게 된것이다.

정종은 단순히 일본의 술 제조업체였다. 맥주하면 OB인 시절도 있었고, 소주하면 <진로>인 시절이 있었던 것 처럼, 청주하면 정종회사를 떠올린것이다. 청주(맑은술)을 올리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미료하면 <미원>이 대명사 인 시절도 있었다. 그러니 술을 올리는데 정종을 올린다는 말은 진로를 올린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잘못사용된 예이다.

그렇다면, 우리내 조상들은 차례상에 어떤 술을 올렸을까? 세종실록에 [조전에 평사시 예식 대로 소주로 지냈다] 라고 한다. 맑은 술을 조상에 진상하고 있다. 

 
소주라는 말은 기원이 오래되었는데 소주(燒酒)란 말그대로 불사르는(불타는) 술이라 한다.
지금의 화학소주나 쌀로 만든 20도 안팍의 희석주는 아니다.저알콜 소주와는 차원이 다른 증류술이다. 이화주나 안동소주가 옛 소주를 전승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불을 붙히면 불이 붙고 소주를 많이 먹으면 죽는다고 알려진 술이다.

알콜중독은 그때나 지금이나 어쩔수 없었던 모양이다. 양주/보드카/럼주나 중국 고량주에는 불을 붙혀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가 될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소주를 먹고 죽었다는 기록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다. 단순히 알콜중독이 아닌 소주를 먹고 갑작스레 그냥 죽어버리는 급사형태의 사고사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소주를 금한다고 여러차례 엄명을 내리기도 한다.

드라마 <대왕세종>에서 세종의 충복이고, 문종의 장인인 윤회가 궁내에서 소주를 마시다걸려서 태형을 당하기도 하고, 세종은 윤회에게 금주령을 내리기도한다. 또한, 드라마 <왕과나>에서 내시인 김처선도 궁궐내에서 소주를 마시다 태형을 맞기도 한다.


지방에서 왕에게 진상하는 술중에서 소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많았다..안동소주도 그중 하나이다.

동양인처럼 알콜 분해 효소가 선천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에겐 예나 지금이나 치명적이긴 하지만 그중에 한국인이 가장 부족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세계에서 가장 술을 즐겨 마시는 아이러니한 면이 있기는 하다.

소주는 왕이 신하나 외국의 사신이나 대마도 도주에게도 하사품으로 주는 물품중에 하나가 되겠다. 일본의 청주는 조선의 소주가 건너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일반인들은 범접하기 힘든 귀하디 귀한 술이다. 이런 귀하디 귀한 술을 제사에 올리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집안마다 대대로 내려오는 종주(宗酒)가 있었다. 집안 정통주를 빚어서 제사를 지내고, 필요에 의해서 진상을 하기도 하고, 귀한 손님이 오면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일반인들이 청주와 소주를 제사상에 올리는 시점은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일제시대 이후이다. 제사상에 청주(정종)을 올리는 행위가 일제의 잔재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토속주를 없앤 주범은 아이러니하게도 광복후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고난 후 기업형주류 생산업체와 독재정권의 결탁에 의해서 이니 말이다.

 
 

결론은 차례(다례)는 동지때만 "진짜 차를 가지고 제사"를 지냈었다. 요즘처럼 차례가 제사를 대치된 말은 차례(茶禮)는, 차마시기나 밥먹는 만큼 <일상다반사>가 된 제사의 빈번함에서 자조적인 말의 변형이다.

어떤이는 조선은 "제사로 시작해서 제사로 망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일반인들이 소주를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올린때는 그리 오래된일이 아니다.

 
차례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러니 너무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조상이 좋아라 하는것으로 하는 것이 어떨까? <예기>에도 "과하게 하지말고, 조상이 살아생전 좋아하던 것으로 하라"고 하고 있다. 만약, 제사를 지내는데, 살아생전 와인을 좋아했다면 청주를 올리는 것보다는 와인을 올리는게 보다 조상을 위하는 제사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남의 제삿상에 감놔라 대추놔라하면, 뺨 맞는다"는 말이 괜시리 있는 것이 아니다. 지방마다, 집안마다 다 다르다. 포털의 제사 차례 <상차림>이라고 올려져 있는 것에 구애 받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형식이 조상에 대한 예를 만들기도 하지만, 과도한 형식의 치우침이 조상에 대한 예를 망치는 경우가 더 많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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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neodol.tistory.com BlogIcon 너돌양 2010.09.20 07: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석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2. Favicon of https://preciousness.tistory.com BlogIcon ♡ 아로마 ♡ 2010.09.20 07: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는 탁주를씁니다 ^^

    명절 즐겁게 보내세용 ㅎ

  3. Favicon of https://jsapark.tistory.com BlogIcon 탐진강 2010.09.20 07: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형식에 치우칠 필요는 없겠지요.
    저도 차례를 지내지만 지킬 것은 지키지만 너무 형식에만 얽매이지 않으려고도 합니다.
    추석 명절 잘 보내세요

  4. 마른 장작 2010.09.20 08: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공감합니다. 제사나 차례상은 살아 생전에 당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올리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너무 형식에 구애받을 필요가 절대 없다는 것이죠. 쓰고 보니 위에 탐진강님과 같은 생각이군요.^^

  5. Favicon of https://jongamk.tistory.com BlogIcon 핑구야 날자 2010.09.20 08: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성을 다하면 그만인 것을... 너무 간섭하는 것도 아닌듯 하더라구요.

  6.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 BlogIcon 실비단안개 2010.09.20 0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군요.^^

    제사나 차례때는 어른들께서 하시는대로 따라 하지만,
    어머니 산소를 찾을 때는 사이다로 합니다.
    어머니께서 술을 전혀 드시지 않으셨거든요.

    갓쉰동님
    건강하시고 추석연휴 잘 보내셔요.^^

  7. Favicon of https://muznak.tistory.com BlogIcon 머 걍 2010.09.20 09: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군요. 별 생각없이 정종으로 했었네요.
    풍성하고 편안한 명절 보내세요^^

  8. 마른 장작 2010.09.21 0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한가위 명절 잘 보내세요.^^

  9.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10.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 2012.07.14 15: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11.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 2012.07.14 15: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12. Favicon of http://hubshout.com/ BlogIcon Berrong 2012.09.09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늘과 땅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이고 조상에 감사하는 제사는 후대에 생긴 것이다.

  13. Favicon of http://legeacosmica.tk/blog/view/1227/what-do-to-when-food-is-unusual BlogIcon emergency first aid kit checklist 2012.11.26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강력한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형벌로서 하였다. 조선에서는 5개의 중형이 있는데 사형에 해당하는 대벽이 있고, 남자의 성기를 짜르는 궁형이 있고, 아킬레스건 처럼 발뒤꿈치 힘줄을 짤라 버리는 월형(비형)이 있고, 코를 베어내는 의형이 있고, 머리에 문신을 하는 자자(묵형)이 있다.

  14. Favicon of http://www.mahost.in/blog/view/430/emergency-food-materials-101 BlogIcon n95 face mask wikipedia 2012.12.04 2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다면, 우리내 조상들은 차례상에 어떤 술을 올렸을까? 세종실록에 [조전에 평사시 예식 대로 소주로 지냈다] 라고 한다. 맑은 술을 조상에 진상하고 있다.

  15. Favicon of http://achetermedic.com/acheter-kamagra-france-fr.html BlogIcon acheter kamagra 2015.03.20 1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코올은 좋지 않습니다.

드라마 선덕여왕 43회와 44회는 미실이 난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곳으로 토끼몰이를 하듯 덕만이 압박을 하고, 미실이 드디어 칼을 빼어 들었다. 꿈을 위해서 옥이 깨지듯 찬란히 부저져 버리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미실의 최후와 퇴장이 가까웠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미실역을 맡은 고현정은 48회까지 연장을 합의한 상태이다. 그러니 앞으로 2주이상은 계속 보아야 한다. 미실 고현정의 하차는 미실의 난으로 인한 옥이 찬란히 부서지듯 찬란한 종말을 고하며 하차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알고 있거나 추론하고 있는 덕만이 '미실의 난'으로 명명한 미실이 난이 칠숙의 난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또한, 미실이 난을 일으킨 후에도 오래 동안 생존하고 있었다는 뜻이된다. 다만 합리적인 추론의 결과에서는 그렇다는 뜻이고, 미실의 난을 가지고 작가나 제작팀이 이야기를 길게 끌고 간다면 또다른 상황에 봉착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디로 튈지는 작가와 제작팀이 알아서 할일 이기 때문이다.


그럼 드라마 제작팀이나 선덕여왕 작가는 미실의 난이 언제 일어 났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정답은 드라마에 숨어 있다. 선덕여왕은 미실의 난이 일어난 때를 "병자년"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병자년은 언제일까를 찾아보면, 진평왕 몇년에 미실의 난이 일어났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병자년은 진평왕 38년에 해당한다. 이때는 616년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이미 잘알려진 631년 칠숙의 난과 미실의 난을 같은 시기로 보지말아 달라도 분명히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미실의 난이 칠숙의 난이라는 기사들이 난무한다.

선덕여왕에는 미실의 난과 칠숙의 난이 다르다는 증거들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미실의 난은 616년 병자년에 일어 났다.


AD616 병자丙子
신   라 :  진평왕 38년
백   제 :  무왕 17년
고구려 :  영양왕 27년
진평왕 38년(616) 겨울 10월에 백제가 모산성을 공격해 왔다. - 삼국사기 진평왕38년 616년 겨울

둘째. 미실의 난이 일어난 때 풍월주는 김유신이고, 상선은 호재이다. 김유신은 612년에서 615년까지 풍월주를 지낸다. 


셌째. 늙지 않는 미실을 비롯해서, 김유신을 비롯한 10화랑도 늙지 않고 있다.   631년에 일어난 칠숙의 난이 미실의 난이라면, 595년생인 김유신은 37살이 된다. 또한, 김춘추(유승호)는 29살이 된다. 최소한 남성들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수염이 나기 시작한다. 그러니 유신을 비롯한 10화랑의 턱에는 염소수염이던, 덥수룩한 수염이나 멋진 구렛나루가 있어야 한다.

그럼 미실은 이때 몇살일까? 545~8년생으로 추측되는 미실은 상상에 맡기겠다. 날로 먹으려 드는 구독자도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등장하는 미실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비결을 상상해보기 바란다. 왜 미실은 젊음을 유지할까?  현묘한 도의 궁극은 신선이고 늙지 않고 죽지 않는것이다.


진시황이 찾은 불사국이 신라라고 이야기 한다면 할말은 없다.

넷째. 하종은 미실의 치사한 수를 입안한 설원랑의 명으로 <화백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거나, 참석하더라도 늦게 참석하도록 미혼약을 타러 서현을 찾아간다. 하종은 영모(티아라 큐리:이지현)을 만난다. 이때 영모는 임신하고 있다. 하종은 영모에게 야위였구나, 해산달이 언제냐고 물어본다. 영모의 임신은 김유신이 풍월주가 된 후 귀족들이 매점매석이 일어난때 이다. 그런데 아직 해산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매점매석한 때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야 된다.


그외 수 없이 많은 증거들이 미실의 난과 칠숙의 난이 다른 난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미살의 난이 실패하고, 15년후에 칠숙이 난을 일으켰다고 한다면 극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다. 그렇지 않고 스스로의 증거를 없애고 미실의 난 이 칠숙의 난이라고 극중에서 설정한다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극중에서 스스로의 합리성도 무시를 하는 것이다.

현대판으로 이야기를 하면 미실의 난은 1960년 5.16  박정희의 쿠데타로 보면 되고, 박정희의 충복이자 자칭 양자라고 생각한 전두환은 1980년 쿠데타를 일으킨다. 전두환의 쿠데타는 미실의 충복인 631년 칠숙의 난으로 보면 된다. 두 정변이 같은 정변이라고 주장하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요즘 막장 현대극이나 코미디도 하지 앟는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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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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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sapientis.tistory.com BlogIcon 백두 대간 2009.10.21 18: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늙지 않는 미실을 비롯해서 김유신을 비롯한 10화랑은 늙지 않고 있다.
    요거 완전 대박 멘트네요. ㅎㅎㅎ
    요기 읽다가 배꼽 빠지는줄 알았어요.

  2.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10.21 18: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머...이젠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저 역시 드라마 속 세상으로만...ㅋㅋ 역사로 끼워맞춰서 나름 균형을 맞춰보려고도 했지만...솔직히 미실의 난은, 저도 보면서...이건 좀 심하지 않나 했답니다. 해도해도 너무 한다 싶은 마음이랄까요? ㅋㅋ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드라마 속 허구의 세상, 그 자체만으로 바라보며 즐긴답니다. 어쩔 수 없죠.^^ 저녁 맛있게 드세요. 가야를 드라마로 만들 땐..아마 더 심하겠죠? 내년에 방영할 계획이라던데 말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21 18: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드라마속 세상이라도 해도 드라마에서의 흐름은 있는거지용.. 그 흐름도 저해한다면.. 심각한 반면교사의 표본이 되지 않을까해용.. ㅋㅋ 습작을 해도 저리함 .F인뎅.. 인기는 최고봉이니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고민들 할것 같습니당.. ㅋㅋ

      가야는 아마 이병훈 피디가 만들지 않나요? 이병훈의 제자들이 선덕여왕을 만들었으니.. 이병훈은 좀 다르리라고 믿지만..

      좀 황당사극 말공, 합리적인 사극을 보고 싶은 심정입니당.. ㅋㅋ

  3. 2009.10.21 1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Favicon of https://shain.tistory.com BlogIcon Shain 2009.10.21 1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평왕이 거의 죽을 듯한 상황으로 후계와 부군을 논의하는 상황이고
    삼국사기와 화랑세기에 기록된 반란 중 명확한 건 칠숙의 난, 비담의 난 두가지니
    작가가 그 두가지를 염두에 두고 묘사하지 않았을까 했네요
    그러나 약간 상세한 부분은 조금 설정했던 모양이군요.
    연대기를 무시한 설정과 모티브
    이미 이 작가분에게 전례가 있지요 아마
    대장금에서 열 몇살에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를 때 즈음 입궁한 우리 장금이가
    진성대군이 중종임금으로 죽을 때 그러니까 무려 39년이 지난 ...
    그 나이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설정 ^^;
    기존 선례에 비춰 역사의 부분부분을 필요할 때 활용하는 방법을 자주 써먹었었다고 간주해버렸네요.

  5. Favicon of http://smallstory.tistory.com BlogIcon 윤서아빠세상보기 2009.10.21 20: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드라마속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만
    갓쉰동님의 지적이 계속 잡아주시네요

  6. Favicon of http://waarheid.tistory.com BlogIcon 펨께 2009.10.21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의 난, 박정희의 쿠데타와의 비교 역시 갓쉰동님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7. 리치왕 2009.10.21 2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실제 역사의 기록과 비교하여 보면 미실의 난이 칠숙의 난이 되는 것은 언급하신대로 극 스토리의 합리성을 무시하는 설정이 되겠지요. 하지만 요즘의 선덕여왕의 전개를 보면 '충분히 그런 설정을 하고도 남을 만한 작가진'을 갖추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한마디로 '실제역사적 사실의 무시'를 전제로 한 스토리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실제 역사에서 천명공주는 요절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덕만공주의 언니가 아니라 동생이였지요.
    - 덕만이 왕위에 오를 당시에는 그와 대등한 세력을 갖춘 정적이 없었고 덕만이 이미 왕실과 귀족사회의 실권을 장악한 상태에서 수월하게 왕위에 오른 것으로 보이는데 극에서는 중국 인근의 사막에서 유소년기를 보낸 것으로 나오지요.

    드라마 선덕여왕이 사극의 탈을 쓴 현실 세계의 풍자와 비판이라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다만, 극의 스토리 전개에 아쉬운 점은 덕만의 입궁이후 귀족세력과 싸우며 무너진 왕권을 확립하려는 덕만과 기득권을 사수하려는 미실과의 정치적 암투에 전혀 긴장감이 없고, 사실상 정치적 암투라고 부를만한 이렇다할 사건 자체가 없었다고 보는것이 맞을 정도로 맥빠진 대결이라는 점이군요.

    스토리의 전개는 개연성이 있어야 하는데, 왕도 자기 입맛에 따라 바꿀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자 미실의 덕만에 대한 대응은 마치 이전 우리나라 사극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조선왕조의 후궁 정도의 포스밖에는 느껴지지가 않고, 병권을 장악하고 있는 병부령을 수족처럼 부리는 정적을 상대로 한 덕만 추종파들의 행동양식이 참으로 대담하기 그지없을 뿐더러 상식적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도 없을 만한 도발행위들을 서슴없이 하는 스토리 전개는 참으로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도데체 왕실이 미실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어 보입니다.

  8.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10.22 10: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의 난 = 칠숙의 난 이 분명해요.
    미실이 칠숙에게 "나를 원망하느냐?" 뭐... 그런 식의 질문을 했을 때부터 짐작했어요...
    반란이 실패해도 칠숙을 희생양으로 해서 목숨을 구할 방법을 만든 것이 아닐까요?
    게다가 칠숙이 석품에게 세종을 찌르라 시켰으니...
    칠숙, 석품의 난이 맞습니다... ㅋㅋ
    아니라면 작가들이 오락가락 하는거지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9. 마음 2009.10.22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억지스런 현실세계풍자가 말이 많은 이유겠죠. 역사적 소재를 불러와 너무 끼워맞추기식의 전개로 일관하니 어이가 없을뿐입니다. 대장금처럼 차라리 사극의 외피를 두른 판타지극으로 설정했담 몰라도 미실을 제외하곤 역사서에 공히 기록된 인물들 그것도 유명한 인물들을 끌어와서 한다는 얘기가 허무맹랑이니 원.

  10.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10.23 1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늦게 올리시고
    전체 포맷도 바꾸시고...
    많이 노력하시는게 보이나 봅니다.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언제나 좋은 나날 되시길 바랍니다.

  11.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2. Favicon of http://https://www.google.com/ BlogIcon tony 2012.11.20 1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맷도 바꾸시고...
    많이 노력하시는게 보이나 봅니다. ㅎㅎㅎ
    잘보고 갑 <a title="tony" href="https://www.google.com/">tony</a>

많은 사람들이 제사나 명절(추석, 설) 차례를 올릴때 상차림에 올리는 술은 일명 정종으로 알려진 청주를 올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내 조상들은 청주를 올리지 않았다. 이는 일제시대와 그후 각 지방과 지방의 토속주와 전통주를 인위적으로 막았다. 그래서 제례에 올리는 술과 비슷한 술인 정종(청주)를 올리게 된것이다.

정종은 단순히 일본의 술 제조업체였다. 맥주하면 OB인 시절도 있었고, 소주하면 <진로>인 시절이 있었던 것 처럼, 청주하면 정종회사를 떠올린것이다. 청주(맑은술)을 올리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미료하면 <미원>이 대명사 인 시절도 있었다. 그러니 술을 올리는데 정종을 올린다는 말은 진로를 올린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잘못사용된 예이다.

그렇다면, 우리내 조상들은 차례상에 어떤 술을 올렸을까? 세종실록에 [조전에 평사시 예식 대로 소주로 지냈다] 라고 한다. 맑은 술을 조상에 진상하고 있다. 

 

정통 소주 내림

소주라는 말은 기원이 오래되었는데 소주(燒酒)란 말그대로 불사르는(불타는) 술이라 한다.
지금의 화학소주나 쌀로 만든 20도 안팍의 희석주는 아니다.저알콜 소주와는 차원이 다른 증류술이다. 이화주나 안동소주가 옛 소주를 전승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불을 붙히면 불이 붙고 소주를 많이 먹으면 죽는다고 알려진 술이다.

알콜중독은 그때나 지금이나 어쩔수 없었던 모양이다. 양주/보드카/럼주나 중국 고량주에는 불을 붙혀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가 될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소주를 먹고 죽었다는 기록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다. 단순히 알콜중독이 아닌 소주를 먹고 갑작스레 그냥 죽어버리는 급사형태의 사고사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소주를 금한다고 여러차례 엄명을 내리기도 한다.

드라마 <대왕세종>에서 세종의 충복이고, 문종의 장인인 윤회가 궁내에서 소주를 마시다걸려서 태형을 당하기도 하고, 세종은 윤회에게 금주령을 내리기도한다. 또한, 드라마 <왕과나>에서 내시인 김처선도 궁궐내에서 소주를 마시다 태형을 맞기도 한다.

윤회

지방에서 왕에게 진상하는 술중에서 소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많았다..안동소주도 그중 하나이다.

동양인처럼 알콜 분해 효소가 선천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에겐 예나 지금이나 치명적이긴 하지만 그중에 한국인이 가장 부족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세계에서 가장 술을 즐겨 마시는 아이러니한 면이 있기는 하다.

소주는 왕이 신하나 외국의 사신이나 대마도 도주에게도 하사품으로 주는 물품중에 하나가 되겠다. 일본의 청주는 조선의 소주가 건너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일반인들은 범접하기 힘든 귀하디 귀한 술이다. 이런 귀하디 귀한 술을 제사에 올리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집안마다 대대로 내려오는 종주(宗酒)가 있었다. 집안 정통주를 빚어서 제사를 지내고, 필요에 의해서 진상을 하기도 하고, 귀한 손님이 오면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일반인들이 청주와 소주를 제사상에 올리는 시점은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일제시대 이후이다. 제사상에 청주(정종)을 올리는 행위가 일제의 잔재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토속주를 없앤 주범은 아이러니하게도 광복후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고난 후 기업형주류 생산업체와 독재정권의 결탁에 의해서 이니 말이다.

 

대마도주


결론은 차례(다례)는 동지때만 "진짜 차를 가지고 제사"를 지냈었다. 요즘처럼 차례가 제사를 대치된 말은 이전 2009/09/28 - [역사이야기] - 여인의 애환이 담긴 차례상의 숨은 비밀 기사에서도 언급했지만, 차례(茶禮)는, 차마시기나 밥먹는 만큼 <일상다반사>가 된 제사의 빈번함에서 자조적인 말의 변형이다.

어떤이는 조선은 "제사로 시작해서 제사로 망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일반인들이 소주를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올린때는 그리 오래된일이 아니다.

 
차례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러니 너무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조상이 좋아라 하는것으로 하는 것이 어떨까? <예기>에도 "과하게 하지말고, 조상이 살아생전 좋아하던 것으로 하라"고 하고 있다. 만약, 제사를 지내는데, 살아생전 와인을 좋아했다면 청주를 올리는 것보다는 와인을 올리는게 보다 조상을 위하는 제사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남의 제삿상에 감놔라 대추놔라하면, 뺨 맞는다"는 말이 괜시리 있는 것이 아니다. 지방마다, 집안마다 다 다르다. 포털의 제사 차례 <상차림>이라고 올려져 있는 것에 구애 받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형식이 조상에 대한 예를 만들기도 하지만, 과도한 형식의 치우침이 조상에 대한 예를 망치는 경우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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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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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9.28 2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사나 차례상이 지방마다 집안마다 정말 다르지요..
    남의 상을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어보여요. 갓쉰동님 말씀처럼...
    저희 시댁은 집에서 담근 청주를 올리기도 하고 없으면 정종을 올리기도 하고 크게 정해두지는 않은 것 같던데...
    저는 그저 어머님이 하시는대로 지켜볼 뿐이지요...

  3. 김작가 2009.09.28 2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추석에도 어김없이 청주를 올리겠지만 글을 읽고 나니 생각이 달라지네요. 하지만 할아버지께선
    청주를 올리라 하시겠지요?^^;; 증조할아버지께서 무엇을 좋아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생전 좋아하신
    걸 올려드리고 싶은 건 저만의 생각은 아니겠지요. 글 잘 읽고 갑니다.^^

  4. Favicon of https://skagns.tistory.com BlogIcon skagns 2009.09.28 23: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그랬군요. 저도 솔직히 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었거든요.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

  5. Favicon of http://momnpapa.textcube.com BlogIcon 파아란기쁨 2009.09.29 0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정종이 일제시대의 잔재물이었군요...
    이번 추석부터는 정종쓰시지 말라고 권해 드려야겠군요...

  6. Favicon of http://wjlee4284.tistory.com BlogIcon 사이팔사 2009.09.29 09: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군요....참내.....

    요런글은 좀 많은분들이 봐야하는디....^^

  7. 조요조 2009.09.29 1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천 어케 하지요. 갓쉰동님의 글에 추천.원문도 퍼 담았습니다. 전 고리타분한 전통은 현세 우리실정에 맞게 고치는것에 찬성합니다. 특히 원문과 관계는 없지만 경조사 봉투에 넣는 과금.

  8. Favicon of http://blog.daum.net/gnathia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9.29 14: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좋은 글을 이제야 봤습니다.
    월말이다보니 바빠서요..^^;;;

  9. 감사합니다 2009.09.29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첫 추석인데
    정종 말고 우리의 전통술을 찾아봐야겠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추천 꾹 누르고 퇴장~ ㅎㅎ

  10. Favicon of http://link2u.textcube.com BlogIcon 아홉살인생 2009.09.29 15: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제사상에 정종을 쓰는 것이지요.
    다른것은 일제청산~ 일제청산~ 하면서 유독 제사상에 올리는 술만큼은 정종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건...

  11. 단현 최창부 2009.09.29 2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사에 소주나 막걸리나 청주를 쓴 것은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조선조에 왕실에서 제사를 지냈지만 귀족 양반들이 지낸 건, 조선 중엽이고.. 서민들은 조선조 말까지 안지낸 집이 많았습니다.
    귀족 양반들이 지내니까 좋은 것인양해서 차츰 따라하다보니 조선조 말에 일반화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막걸리를 제사에 사용한 것은 서민들이 제사를 지내고 난 이후였다고 추측되고, 막걸리보다는 용수를 박아 뜨는 청주를 먼저 사용했을 것입니다.
    물론 소주는 서민들이 만들기는 어려워, 양반가에서 사용했을 것입니다.

  12. 노가다 2009.09.29 2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뭔지 자세히는 못읽었지만....차례상에 올리는 술은...
    제 상식(?)으로는 맑고 깨끗한 술이라 기억 합니다....
    청주든 ...정종이든...소주,막걸리든.... 그냥 윗분(조상)들 생각 하며 올리면....좋지 않을까요...

    나름 조크 좀 올리면 바렌타인 3000년 산 올리면 효자 일겁니다...^^*
    (30년...아니고 3000년 산 입니다....)

    걍~ 우리를 지금에 살게 해주신 그분들 기립시다....ㅠ.ㅠ

  13. 롤리팝 2009.10.09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연히 옛날엔 약주를 올리는 집이나 탁주를 올리는 집이 많았겠지요....
    너무 글을 정확한 자료 없이 비약하시는건 아닐지...
    그만큼 옛날엔 청주가 귀한술이었기때문에 못올린게 아닐까요?
    물론 집안의 풍속에 따르긴 하겠지만 요즘 사람들이 당연스럽게 청주를 올리는건 일반 소주보단 청주가 더 귀한 술이라는 인식때문일겁니다.옛날에 주식으로 삼았던 쌀로 만든 술이니 지금으로는 아니지만 과거엔 귀한 술인게 맞았던거죠. 단순히 청주는 아니다라고 하는건 너무 자극적인 기사를 위한 네이밍이란 생각이 드네요...
    청주도 제사때 쓰던 술이에요...
    보시는 분들이 오해하시는 분이 많네요.

  14. Favicon of http://www.civilhome.com BlogIcon 김현익 2009.10.10 0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집은 금복주 회사에서 나온 <경주법주>를 오래전부터 사용합니다.
    그전에는 소주를 사용한 듯합니다. 분명한 것은 스페샬 술은 사용하지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문의 취향대로 하면 무난할 듯합니다.

  15.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용한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이고 상투를 틀면 성인이란 말은 들어 봤어도 사극에서 면도하면 미성년

  16. Favicon of http://percywarne.livejournal.com/62538.html BlogIcon food storage supplies colorado 2012.11.01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7. Favicon of http://www.petownertalk.com/showthread.php?t=21641 BlogIcon cost of owning a dog 2012.11.05 1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면도기는 투박한 도루코인가? 아니면 최근에 나온 질렛트인가? 상투를 틀지 않으면 미성년

  18. Favicon of http://earleneglover.typepad.com/blog/2012/04/emergency-emergency-kit-why-you-.. BlogIcon hurricane survival kit food 2012.12.10 2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아무리 미국이 광우병내성을 지니고 있더라도 유전적 결함으로 자연발생적으로 발견되어야 하는 광우병소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도축되기전에 소멸되었거나 도축과정에 은폐되거나 검역과정에 통과되어 전세계 식탁에 올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19. Favicon of http://profmcc.typepad.com/don_mccubbreys_blog/2007/07/new-business-id.html BlogIcon great web site layouts 2012.12.22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꾸 침대위로 올라가서 먹으려고 하는 바람에.. 내 앞발을 빌려주었다. 흠.. 근데 다른 강아지들은 등뼈 주면 살살 갈아

  20. Favicon of http://shareyouraim.com/the-benefits-of-dehydrated-foo/ BlogIcon emergency preparedness kits for kids 2012.12.31 2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을 붙히면 불이 붙고 소주를 많이 먹으면 죽는다고 알려진 술이다.

  21. COM 2014.09.04 1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쌀로 담근 탁주에 중앙 맑은술을 모아 이것으로 제사상에올리고 나머지는 막섞에 막걸리라고 함니다 제사에 사용되는 술로서 소주,청주(막걸리맑은술)가 쓰인다 시중에 파는 막걸리로 올리는집 있는데 아니올씨다 상놈애기 듣는다

부제 : 광복절, 신라의 전승기념일
진평왕은 미실의 치마폭에 있었을까?

mbc 선덕여왕, 진평왕(조민기)

mbc 사극 선덕여왕에서는 진평왕(조민기)이 미실(고현정)의 치마폭에 휘둘려 나약한 군주로 나온다. 하지만 실제의 역사는 진평왕을 전쟁영웅으로 기록하고 있다. 선덕여왕의 모본으로 삼고 있는 현존하는 화랑세기에도 진평왕이 나약하다는 내용은 없다. 또한, 진평왕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의 침략을 막는 전력을 가지고 있다. <선덕여왕>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예전 sbs 사극 <연개소문>에서는 나오는 내용이다.  선덕여왕은 602년 <아막성>전투를 통해서 신라의 화랑들의 활약상을 보여주었다.
 

알천(이승효)

이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다음 기사를 참조 하시길 바란다.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화랑 신화창조의 성지 아막성, 광개토태왕의 # , 이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뜬 사람은 알천 역을 맡았던 이승효이다. 연개소문에서는 화랑들의 활약상과 더불어 김유신(엄태웅)을 당시 전쟁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물론, 연개소문에서 김유신(595년생)이 603년에 9살로 전쟁이 참여하여 화랑의 무서움을 보여주었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8살로 아막성 전투에 참여하였다. 드라마 연개소문의 기록을 1년 갱신한 신기록이 되시겠다.


용춘(도이성)

그럼, 진평왕이 화랑과 군대를 이끌고 참여한 전쟁은 언제 였을까? 602년 백제의 침입을 막은 전쟁이 아막성 전투였다면, 603년 전쟁은 고구려가 자신들의 한강유역인 구토를 회복하는 전쟁이고, 신라는 지키지 않으면, 교역로를 잃는 신라의 명운이 걸린 전쟁이였다. 삼국사기는 이 전쟁을 북한산성 전쟁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화랑세기는 <한수>전쟁으로 기록하고 있다. 


화랑세기 13세 풍월주인 용춘는 형과 같이 따르던 9세 풍월주인 비보를 따라 603년 한수 전쟁을 참여하고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이때 용춘과 전쟁에 참여하여 공을 세운이가 <선덕여왕>에서는 천명을 독화살로 죽이는 미생의 아들 대남보(류상욱)이다. 

대남보(류상욱)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역사이야기] - '천명', 대남보의 독화살에 죽었다? 사실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시리즈 글을 보지 않는 분을 위해서 간략히 소개하자면, 대남보는 용춘의 심복이며, 그림자 무사였다.

또한, 대남보(류상욱)의 딸은 용춘(도이성)과 관계해서 3명의 자식을 낳고, 그 의 후손인 용태가  춘추와 관계하여 인태각간을 낳는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은 미실과 대척점에 있는 용춘의 충복을 미생(정웅인)의 아들로 만들어, 덕만을 죽이려 하다가 천명을 죽이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남보는 그 아들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도록 타일렀다. 세 아들은 모두 충절을 숭상하였다. 건복(建福) 20년(603) 공과 비보랑이 제(帝)를 좇아 한수(漢水)의 전쟁에 나갔다. 남보에게 공으로 대나마를 주었으나 받지 않았다. -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596~603년

 좀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위의 기사와 이 기사를  [역사이야기] - 천명 죽음, 대남보 천명 쏘고, 선덕여왕 국민 쏘다  참조하기 바란다. 


8월 15일은 광복절, 신라는 전승기념일

그럼 왜 신라는 8월 15일을 전승기념일이라고 기념하였을까? 그 해답은 해상왕 장보고와 동시대에 살고, 장보고와 연관되어 있던 일본의 엔닌이라는 승려가 기록한  <입당구법순례행기>이다.

1. 우리의 명절중 중국에서 비롯된것들이 많은데 중추절도 중국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중추절과 추석은 별도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이런 와중에 중국의 슝베이 역사학자가 <중추절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이다>라고 <중추절 한반도 기원설>을 주장하고 있으니 경청동지할 일이긴 합니다. 
  
사실 <중추절>과 <추석>과 <한가위>는 조금씩 기원의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의 추석의 기원은 중국쪽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들 간에 차이점에 대해서는 한가위를 즈음해서 포스팅 할 예정이다.

당나라 이전 시기에는 중국에서 중추절에 관한 기록이 전무하고, 당나라 중기 말기 시대의 기록인 <초학기>에도 8월 중에 있었던 <중추절>에 관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슝베이가 중추절은 "신라의 것으로 부터 이다"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9세기 중엽에 일본의 승려인 <엔닌>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라는 순례기에 의해서 입니다. <입당구법순례행기>는 9세기의 동아시아의 경제/문화/교통에 관한 중요한 사료입니다.

엔닌이 활동하는 시기는 <장보고>가 청해진에 터를 잡고 3국의 해상을 관할하고 있는 시기와 일치합니다. 엔닌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귀국할때 장보고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귀국하고 있음을 그의 순례행기에 알 수 있습니다.

이전에 드라마로 제작된 <해상왕장보고>도 이 사료를 참고했다고 합니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 5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동안 길삼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안압지출토 금동 초심가위

옛날 가위를 보면 화려하기도 합니다. 일본 국보급 유물들이 있는 <정창원>에서 보관중이 신라시기 금동가위나 신라의 무덤이나 안압지에서 출토된 금동초심지가위, 백제의 무덤에서 나온 가위를 보면 요즘 보는 가위랑 다르게 자르는 곳이 반달모양(송편)입니다. 두개의 면이 하나로 합쳐지면 영락없는 완전한 둥근달 모양이 되기도 합니다.  서로 따로 만든 반달모양의 송편이 나중에 두편이 하나로 합친 모양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조직을 양편으로 나누는 것은 원화제도에도 나타납니다. 2명의 공주급 여자를 대표자로 세워 그아래 원화들과 화랑들을 지휘통제하는 역활을 합니다. 한가위의 길삼놀이는 한시적인 행사이고 원화는 상설적인 조직이니 원화들이 한가위때 길삼 놀이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원화의 기원이 이전 유리왕때의 양편으로 나뉘어 길삼놀이던 하던 조직이 상설조직화 되어 원화제도가 되었을 겁니다. 
 
삼국사기의 초기 편년이 많은 의심을 받고 있지만 이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엔닌이 있는 시기와는 800년의 차이가 나지만 이를 지속적인 행사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엔닌의 (839년)기록에 의하면 발해와의 전쟁에 이겨서 8월15일 행사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발해는 698년 에서 926년 까지의 국가이고, 대진국에서 발해라 명한 때는 713년 대조영때이니 신라 성덕왕때 입니다. 발해와 신라의 전쟁기록은 유일하게 733년 겨울 전쟁기사 입니다.

 
하지만 엔닌이 신라노인의 말을 빌어 기록한 발해와 신라의 전쟁의 승전기록에 대한 문제점은 신라 성덕왕 32년(733년) 가을 7월 발해가 등주를 치자 발해의 배후에 있던 신라에 당의 현종이 발해를 쳐줄 것을 요구하고, 그해 겨울 신라가 발해의 남쪽 경계를 침입하였으나 눈이 많이 내려 수 많은 인명피해만 입고, 철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발해와의 전쟁승전기념일은 될 수 없고 기록과 상호 모순이 되어 채택될 수 없습니다.
 
가끔 신라에 등장하는 말갈이란 표현은 대체적으로 고구려와 말갈을 혼용하여 표기되는바 발해말갈 고구려/말갈을 혼동할 개연성은 다분히 있습니다.
 
<구당서>나 <신당서>에 의하면 신라는 8월 15일이 되면 왕앞에서 활쏘기, 승마를 하고 , 술과 음식을 나눠먹는 다고 합니다. 
 

sbs 사극 연개소문

SBS 사극 <연개소문>에서도 고구려가 신라의 <북한산성>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공교롭게도 603년 음력 8월이고, 진평왕이 직접 북한산성에 진주하여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왕이 직접 전장에 나아가서 싸우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당시 수와 전쟁에서 이긴 동북아의 패자 고구려를 신라 왕이 직접 통솔하여 물리 쳤다고 하는 의미에서 신라에게는 대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극 <연개소문>에서는 김유신이 화랑들을 이끌고 고구려군을 무찌르는 장면이 나오지만 김유신은 595년생입니다. 603년 북한산성 전투때 김유신의 나이는 우리나라 나이로 9살이 되니 사실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재미를 위한 허구가 항당한 SF물이 되어 버립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시기가 공교롭게도 668년 가을이니 한가위는 이를 기념했을 수도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시기는 추수철이 지난 늦가을인 경우가 많은데 추수철이 지난 가을에 물리쳤다면 먹거리도 많은 시기이니 잔치를 벌이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요. 이전 가베(길삼)과 승전일들이 겹치는 겹경사가 이니 더욱더 풍성한 명절 한가위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공교롭게도 8월15일은 광복절이고 신라에게는 음력 8월 15일이 승전기념일이란 공통점도 있습니다. 

광복절을 맞이 하여, 신라는 8월 15일을 어떻게 기념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재미가 있고 도움이 되셨습니까? 그렇다면  이 기사도 추천합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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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blog.daum.net/timur12/ BlogIcon 베르세르게케르 2009.08.14 1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평왕이 그런 인물이었군요.

    하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봐도 용맹한 전쟁군주로 나오지, 드라마에서처럼 미실이라는 여자한테 농락당하는 나약한 사람으로는 나오지 않으니까요.

    어찌보면 진흥왕과 더불어 신라가 강대국으로 도약하는 기틀을 다진 임금인데, 드라마에서는 그런 부분이 쏙 빠져 보는 내내 매우 아쉬웠습니다.

    좋고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제 블로그에도 재미있는 글들을 많이 올리고 있으니, 심심할 때 한 번 놀러오세요~ ^ ^

  3.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14 1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포스팅 읽을 때 마다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는 기분..
    앞으로는 이반님이라고 불러야 하남요? ㅎㅎ 참 버리기 아까운 닉네임인데 말이에요.

  4. 천지개벽 2009.08.14 1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mbc제작이라 그렇지요

    이드라마의 제작목적은 신라시대가 여성스럽고 나약한 이미지로 만들려는 의도!

    통상의 사극 남자출연자들이 어떤지 보면 알긋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3: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목적성이 있어서 그런거지요..
      강력한 진평과 강력한 미실의 대결이 더 흥미로울텐데요.

      요즘 트랜드가 여성의 강조이니.. 이해할 측면도 있음..

      천추태후도 그렇구요..

  5. Favicon of http://www.taijimania.co.kr BlogIcon 아지아빠 2009.08.14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주 들어와서 매번 잼나게 읽고 가는데 이제서야 RSS 구독을 하게 되었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6.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14 1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이라고 해서 저도 50이신 줄 알았어요... ㅋㅋ

    이반은 톨스토이의 소설 바보 이반인 줄 알았는데... ㅋㅋ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다닌까요.. ㅋㅋ
      이반은 바보 이반도 있음.. 바보스러움.. 오직 한길만 가는.. 머 그런뜻이 있지요..
      러시아나 불가리아에서는 차르(황제)였더군요.. ㅋㅋ

      한국에서 이반은 여성주의,,또는 동성애를 뜻하기도 하지요..
      일반에 합류하지 않은 이류,, 이반..

  7. 2009.08.14 1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3: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산x님 출현햇당.. ㅋㅋ
      메인에 떳나요.. 갑자기 트랙픽 폭탄이 터져서 살펴 봤는데 없던데요.. ㅋㅋ

      그런데 추천 안하는 사람 무지 많아요.. 글값좀 내 달라는뎅..

      추천하면 안된다는 좌우명을 가지고 사는 분들이 이렇게 많은지 첨 알았음... ㅋㅋ

  8. 흠... 2009.08.14 1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민기 인데.....

  9. Favicon of http://zazak.tistory.com/ BlogIcon 주작 2009.08.14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 메인 문화/연예 부분에 '전쟁영웅 진평왕?'이란 문구와 함께 그림으로 크게 나오셨답니다. ^^
    축하드려요. 늘 그렇지만 당연히 추천하고 갑니다.

    그동안 트랙백을 걸고 싶어도 소스가 없어서 '아! 갓쉰동님이 싫어하시나 보네'했답니다.
    앞으로 관련글 쓰게 되면 마구마구 트랙백 걸겠습니다.
    ㅎㅎㅎ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방금 확인했습니당.. 역시 제목은 다음이 잘만듭니당. ㅋㅋ

      저도 왜 트랙백을 안해주낭. 해서 다른데 트랙백도 못걸고 있었습니당.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해서리.. ㅠ.ㅠ. ㅋㅋ;;

      이제 그동안 못한것 까지 맘껏하셈.. ㅋㅋ

  10. 작은이 2009.08.14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이렇게 배우고 가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외국에 살면서 드라마로 확인하는 역사가 이렇게 다르다는걸 또 확인하며..
    걱정이예요. 드라마 보는 것으로 역사를 기억하는 우리 꼬마들..
    드라마 만드시는 분들 외국에 사는 어린 친구들도 좀 생각해 주시면서 만들면 인기가 없어져서 안될까요?
    그래도 한국 역사 알리기 위해 만드는 거면 좀 작가님들 PD님들 공부 좀 하시고 만들어 주세요...
    아님 갓쉰동님에게 조언을 좀 얻으시든지.. ㅠ.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5: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항상 조심스럽게 쓰고 있습니다.. 제가 잘못된 이야기를 하면, 잘못알게 되닌까요.. 그래서 글쓰기 어려워 지내요.. 확인 작업을 거치게 되고,, 오타는 그냥 무시해주셈.. ㅋㅋ

  11. BlogIcon TISTORY 2009.08.14 15: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TISTORY입니다.



    티스토리 메인에서 '8.15 광복절'을 주제로 회원님의 글을 소개해드렸습니다.^^
    혹시 노출과 관련하여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tistoryblog@hanmail.net 메일을 통해 말씀해주세요!


    앞으로도 재미있고 유익한 글로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2. Favicon of http://djtlsfudnf.tistory.com BlogIcon 어신려울 2009.08.14 16: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날씨가 너무나 더워 암것도 하기 싫어지네요...
    더위식히고 올께요.ㅎㅎ

  13. Favicon of http://blog.daum.net/doong2009 BlogIcon 둥둥 2009.08.14 2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시대 책을 한두권만 읽어봐도 지금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완전히 다름을 알게 되더라구요 드라마다 보니 픽션이 어느정도
    가미되는거야 이해해야겠지만 이 드라마 보고자란 사람들은 나중에는
    선덕여왕과 김유신이 사랑한 사이라고 믿을것 같네요
    선덕여왕 이야기가 나와서 써본 글입니다..ㅋㅋ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5 09: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쩌면 드라마가 당시 현실이였지동..
      단, 덕만이 나이가 유신보다 어리다는 전제가 깔린다면요..

      저는 덕만이 어렸을때 왕위에 올랐다고 보는 입장이니.. 유신이 더 나이가 많았겠지요.. ㅋㅋ

      애들이 걱정이긴 해요.. 삼국지를 읽고 중국의 삼국시대가 그랬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있으니.. ㅋㅋ

  14. Favicon of http://hwa2jin.textcube.com BlogIcon 참좋은미시 2009.09.13 1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이가 주인공이라 부각을 시켜야하기 때문이겠죠.
    전 개인적으로 김유신과 사랑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15. Favicon of http://1035.tistory.com/ BlogIcon toy 2009.09.13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사와 야사, 논란까지 있는 화랑세기까지.. 폭넓은 역사적 인식이 대단하시네요..
    거의가 선덕여왕에 관련된 걸 보면 갓쉰동님도 선덕여왕 광팬이신듯..ㅎㅎ..
    월요일 저녁이 빨리 왔으면 좋겠지만 일요일이 빨리 지나가는 건 너무 싫어요~ㅎㅎ

  16.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7.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8. Favicon of http://biancalaowe.livejournal.com/821.html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5 gallon 2012.11.01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9. Favicon of http://365ideasdenegocio.blogspot.com/2011/11/se-alquilan-perros.html BlogIcon petsafe invisible fence for cats 2012.11.06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대사관 공보참사관 집에서 열린 오찬에는 정부 관계자들과 인터넷 업체

  20. Favicon of http://strandkurv.blogspot.com/2008/05/lejes-hund-ah-og-i-gr-glemte-jeg-at.html BlogIcon innotek electric dog fence 2012.12.22 1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 기능을 갖춘 스크린 캡쳐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프로그램 없이도 웹페이지를 가장 빠르

  21. Favicon of http://emergencyfood.xanga.com/ BlogIcon what is a julian date on food 2013.01.02 16: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사기는 이 전쟁을 북한산성 전쟁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화랑세기는 <한수>전쟁으로 기록하고 있다.

예고한데로 오늘은 덕만의 남편인 <음갈문왕>을 통해서 덕만이 왕이 될수 밖에 없는 이유와 덕만이 젊어서 왕위를 이었고, 진평왕이 죽는 과정에서 벌어진 칠숙과 석품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까 한다.


王之匹飮葛文王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으로 삼을 생각이다. 삼국유사 왕력편에는 덕만이 결혼했음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온다. 글쓴이는 이 결정적인 증거를 놓아두고, 일부러 아래와 같은 시리즈 기사들을 송고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덕만과 천명은 진평왕의 친자매이긴 하지만, 덕만은 마야왕후의 소생이고, 진평은 정비 마야의 후생이 아닌 마야 이전의 왕후의 소생이거나 또다른 후비의 소생일 것이다. 그러니 왕위계승우선권에 정비후생인 덕만이 우선권이 있었고, 덕만이 진평왕의 <장녀>로 <삼국사기>에 기록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일단, 인평 갑오년은 언제 해당할까? 인평 갑오년은 선덕왕 3년 634년에 해당한다.

3년(634) 봄 정월에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바꾸었다. 분황사(芬皇寺)가 완성되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3년


삼국사기와 덕만과 관련될 사건들을 아무 생각 없이 삼국사기를 읽는 다면 이때의 선덕왕의 나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최소 48살이 된다. 그런데, 삼국유사 왕력편에 기록된 덕만이 왕으로 있고 난 3년차에 자신의 남편을 선택함을 알 수 있다.  

(c) mbc, 선덕여왕중 덕만과 천명

여왕벌이 배필을 맞이한 때가 여자로 치면 갱년기 다지난 48세이상에 남편을 얻어서 무엇에 쓰겠는가? 물론, 이때도 덕만의 후사를 잇고, 왕통을 계승할 후손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인구통계 조사중 하나인 여성가임인구당 조사를 할때, 나 가임여성 1인당 총출산율을 산출할때 연령대는 15세에서 45세로  설정한다. 요즘도 45세 이상 여성이 가임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신라시대 덕만이 이때 남편이 결혼을 했다고 한다. 물론, 첫 공식적인 남편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삼국의 시대에는 극히 나이가 어린 여자나이 13세 정도에는 첫 대다수 월경이 지나고, 이때 부터 성인 대접을 하며, 결혼을 한다. 멀리 갈것도 없이, 요즘 동남아나 아프리가에 원시 부족을 가보자 이들은 월경이 지나면 결혼을 시켜버린다. 하물며 덕만이 나이가 50에 가까운 나이에 첫 남편을 맞이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을 깨는 행위이다. 신라의 박혁거세나 알영은 공히 13세에 왕이 되고, 왕비가 되었다.

634년에 들어서 진평왕때 사용하던 연호를 왜 바꾸었을까?  대부분 나이어린 왕이 등극하고, 수렴청정이나 대리청청을 끝내고 성인이 되어 자신이 스스로 통치할 경우 연호를 바꾼다. 또는 나라의 구습을 혁신하고, 일신우일신 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에 의해서 도 바꾸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연호를 바꾼다는 행위는 기본적인 시간감각을 새로 셋팅하는 작업에 해당하는 것 만치 어려운 일이다.


진평왕의 계보도

덕만의 경우는 특별하게 진평왕때 사용한 연호를 자신의 임기3년차에 바꾸고, 공식적인 남편도 생겼다.


덕만이 선택한 '음'갈문왕은 덕만이 충분히 임신이 가능한 나이때 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후사를 보고 후손을 통해서 왕위를 물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음갈문왕은 나이가 덕만보다는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때 덕만의 나이는 몇살 정도가 되어야 할까? 30대 중후반을 넘기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여기까지 이르게 되면 덕만이 진평왕의 장녀라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잘못된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전 글에서 왕후의 소생만을 중심으로 카운트를 한다면 덕만은 충분히 공식적인 <장녀> 된다.


그렇다면 덕만의 남편 <음갈문왕>은 누구일까? 글쓴이는 덕만의 작은아버지이고 진덕왕의 아버지인 국반갈문왕으로  본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 있지만, 음(飮)자와 반(飯)자는 식각의 오탈자일 가능성이 높기때문이고, 결정적으로 덕만의 말년(647년) 반란이 있고,그 여파로 덕만이 죽은 뒤 국반갈문왕의 딸인 승만(진덕)이 별탈없이 왕위를 승계하었기 때문이다.

원년(579) 8월에 이찬 노리부(弩里夫)를 상대등으로 삼았다. 친동생 백반(伯飯)을 진정갈문왕(眞正葛文王)으로, 국반(國飯)을 진안갈문왕(眞安葛文王)으로 봉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진평왕 원년


진덕왕(眞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승만(勝曼)이고 진평왕의 친동생 국반갈문왕(國飯葛文王)의 딸이다. 어머니는 박씨(朴氏) 월명부인(月明夫人)이다. 승만은 생김새가 풍만하고 아름다웠으며, 키가 일곱 자였고 손을 내려뜨리면 무릎 아래까지 닿았다. - 삼국사기 신라 진덕왕 원년

덕만의 뒤를 이은 승만은 덕만의 의붓 딸이자, 고종사촌간이다. 이는 신라왕실에는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이니 덕만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고, 덕만이 백반을 남편으로 삼은 이유도 후사를 볼려하는 심사도 있었지만, 왕실의 가장 큰어른인 국반갈문왕인 작은아버지의 뒷배경을 염두해 두지 않으면 않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 나아가 계승서열상 승만을 자신의 자식으로 두어 왕위를 계승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또하나의 증거로 천명과 다르게 승만과 덕만의 공통점은 <만>자 돌림을 쓰고 있다. 그러니 천명과 덕만은 같은 왕후의 소생이 될 수 없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하겠다. 또한, 덕만은 죽은후 선덕이고, 승만은 즉은후 진덕이다. 이처럼 <덕>자 돌림의 시호를 받는다. 그러하니 덕만이 634년에 결혼한 남편은 자신의 작은아버지인 국반(진안)갈문왕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백반을 공식 남편으로 부른 이유는 창녕조씨의 족보에 처음 "이씨였던 조계룡이 진평왕의 사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경주김씨 중에 "김인평이 덕만의 남편이였다"는 기록을 염두해 둔것이다.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하기 전에 최소한 1번 이상은 결혼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김인평의 이름을 살펴볼짝시면 <인평>이다. 인평은 덕만이 연호로 사용된 <인평:仁平>과 동일하다. 일반적으로 왕의 이름자를 피하는게 상례이다. 그런데 연호와 같은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은 의심스런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인평이란 이름을 사용하다. 연호를 사용하는 즈음 이름을 바꾸었을 가능성도 열려 있다.  

덕만, 선덕여왕의 결혼관계도

어찌 되었던 백반과 결혼전에 남편이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덕만 3년 634년에 연호와 남편을 세웠다는 기록으로 덕만이 왕위를 이은 때 나이는 10대중반이일 수 밖에 없어진다. 어찌 되었던 덕만이 연호를 바꾼 시기에 독자노선을 걷는 낭낭18세가 되었던 20세가 되었던, 덕만과 관련한 삼국유사, 삼국사기의 기록들을 살펴볼때 덕만은 왕위에 오를때 아주 많이 봐주어서 30을 갖넘었거나 10대후반에서 20대 초반 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글쓴이의 결론이다. 그래야 삼국사기기록과 삼국유사의 기록들이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역사와 다른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미스 캐스팅같은 유신과 덕만의 비정상적인 나이를 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나이를 배재한 역할로 따진다면, 역사와 부합할 지도 모른다. 역사에서 덕만은 유신보다 한참 나이가 어리고, 춘추보다도 어렸을 지도 모른다.


634년 덕만의 결혼상대자가 백반(진정)갈문왕과 국반(진안)갈문왕 작은아버지들 중에서 국반(진안)갈문왕 일 수 밖에 없는 수 많은 증거를 앞선 기사와 이번 기사에서 언급했지만 보다 확실한 증거를 또하나 제시할 예정이다. 

기존 잘못된 정설을 깨는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도 글이 늘어져 버렸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충복으로 나오고, 뒤늦게 소화에게서 사랑을 느끼면 미실에서 벗어나려는 터미네이터 칠숙과 석품의 난을 통해서 이를 증명할 것이다. 또한, 칠숙과 석품이 난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이유에 대한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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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5 20: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이 유신 아니 김춘추보다 더 어렸을 지도 모르는군요...
    매일 기다려야 하는군요 ㅎㅎㅎ
    칠숙과 석품이 난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이유에
    대해서를 계속 포스팅 해주니 ㅎㅎㅎ
    고맙습니다.
    오늘도 많이 배우고 깨우치고 갑니다.
    편안한 저녁 되시길 바랍니다.

  2. 2009.07.25 2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애독자 2009.07.26 1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글을 재밌게 읽고 있는 독자입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근데 이번 글을 아무리 읽어봐도 잘 이해가 안가서 질문드립니다.
    선덕여왕 - 덕만이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는 근거가 잘 이해가 안갑니다.
    글에보면 근거가 분명히 나와있지 않고 단순히 가임나이로 추정하신듯 해서요..
    선덕여왕이 즉위때 몇살이었는지...
    학계의 통설과 갓쉰동님의 견해를 다시한번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딴지?를 거는 듯한 댓글을 날려서 죄송하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4. Favicon of http://선덕여왕 모구에 왕위에 올랏다 BlogIcon 최낙길 2009.07.26 1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은 진평왕의 둘째딸로 진지왕때 출생한 것으로 사료된다 진평왕의 부는 진흥왕 첫째 왕자 동륜태자의 아들이다
    삼국유사 왕력편에 음갈문왕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는 진평왕이 왕이되기전에 이미 그녀는 출생했다는 것을 의미하면 음갈문왕 즉 남편이 있었다는 것이 말하는 것이다 / 또한 모구로 표시하엿는데 모구란 무엇인가 50이상의 늙은 나이을 말한다 / 진평 무려 53년을 통치하다 모반의 충격으로 인하여 진평왕이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선뎍여왕이 왕위를 계승 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것이다 선덕여왕의 출생년도를 579년으로 본다면 왕위에 오른춘추는 53세가 된다

  5. 재밌네요 2009.07.26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위에 댓글단 애독자분 말처럼요...저도 이해가 안되네요
    덕만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는 것은 진평왕의 재위기간만 놓고 보더라도
    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진평왕이 대략 52년정도 재위했고, 드라마에서도 그무렵에 덕만을 낳은 것으로
    나오는데요 그렇게 따지면 대략 덕만이 재위한 나이가 50대 초반이라는 설정이
    맞는게 아닐까요?
    물론 진평왕이 재위 후 2~30년이 지난후 덕만을 얻을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정실 부인인 마야 부인과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덕만이 어린나이에 재위했다는 것은 다소 억측이 아닌가 싶네요..^^;;

  6. 잘봤습니다 2009.07.26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역사다큐를 보니까 거기서도 여러가지 주변사실을 통해 선덕여왕은 50초반 정도에 즉위했을거라고 말을하더군요..

  7. 그랑께 2009.07.30 2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계룡의 원래 성씨를 차치하고서 다시 살펴본다면, "曺"는 우리말로 즉 당시 신라말로 "마실"이다. 마실은 마을이나 관청을 가리키는 말이다. "曺"는 마실 조, 음갈문왕의 "飮"은 마실 음! 여기서 너무나 비슷한 발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마실 조, 마실 음! 단지 발음의 억양이 다를 뿐이다. 음갈문왕이 "曺"갈문왕이란 말인가?

    조계룡의 후손은 엄연히 지금까지 살고 있다. 바로 창녕 조씨이다. 화왕산에는 용지가 있다. 창녕조씨 시조 탄생지라고 전해 온다.

    족보상에는 조계룡의 부인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진평왕의 딸인 천명과 선화는 그 남편이 확연히 기록되어 있고 실제 인물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덕만공주의 남편 즉 선덕여왕의 남편은 삼국유사에 의하면 음갈문왕. 경주김씨 족보에 의하면 김인평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계룡이 진평왕의 사위라는 기록은 창녕조씨 족보, 경주이씨족보, 경주김씨 족보상에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8. Favicon of http://hera282.com BlogIcon hera 2009.08.07 1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에서 덕만은 유신보다 한참 나이가 어리고, 춘추보다도 어렸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건 좀 아닌거 가튼데 ^^

    김춘추가 29대 왕이고 덕만이 27대 왕이구요, 유신이 춘추의 딸(지소부인) 과 혼인했는데 어찌 덕만이 김유신, 김춘추 보다 나이가 어린지 ^^;;

    제 생각엔 덕만 > 유신 > 춘추 이 순서가 아닌가 싶은데요;

  9. Favicon of https://easygoing39.tistory.com BlogIcon 카타리나^^ 2009.08.21 22: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혼했다는것도 처음 알았네요 ㅡㅡ;;
    그렇군요...

  10. 레아 2009.10.18 1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게 아니며 덕만이 진평왕을 대신해 섭정을 한것을 왕위에 오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19 21: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진평왕은 죽었는데 무슨 섭정을 합니깡..유흔통치라면 모를깡.. 그렇다고 해도.. 죽음 다음대 임금이 되는거지용.. ㅋㅋ

  11.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2. Favicon of http://wennanieto.typepad.com/blog/2012/04/survival-sets-how-to-pick-the-best... BlogIcon food storage supplies denver 2012.11.01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3. Favicon of http://www.telegraph.co.uk/education/3357189/Free-time-10-ways-to-reclaim-the-.. BlogIcon cost of owning a dog vs cat 2012.11.05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비후생인 덕만이 우선권이 있었고, 덕만이 진평왕의 <장녀>로 <삼국사기>에 기록

  14. Favicon of http://www.cheaphelmetsonlineshop.com/ BlogIcon cheap helmets 2012.12.10 1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5. Favicon of http://elwirahayes.posterous.com/disaster-emergency-kits-for-handicapped-and-e BlogIcon 72 hour kits for kids 2012.12.10 2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아무리 미국이 광우병내성을 지니고 있더라도 유전적 결함으로 자연발생적으로 발견되어야 하는 광우병소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도축되기전에 소멸되었거나 도축과정에 은폐되거나 검역과정에 통과되어 전세계 식탁에 올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16. Favicon of http://quarterempty.wordpress.com/2007/08/ BlogIcon great web site designs 2010 2012.12.22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꾸 침대위로 올라가서 먹으려고 하는 바람에.. 내 앞발을 빌려주었다. 흠.. 근데 다른 강아지들은 등뼈 주면 살살 갈아

  17. Favicon of http://principealverto.com/camping-and-the-right-food-for-a-long-weekend/ BlogIcon emergency preparedness kits victoria bc 2012.12.31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부러 아래와 같은 시리즈 기사들을 송고했던 것이다.

  18. Favicon of http://principealverto.com/camping-and-the-right-food-for-a-long-weekend/ BlogIcon emergency preparedness kits victoria bc 2012.12.31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부러 아래와 같은 시리즈 기사들을 송고했던 것이다.

  19. Favicon of http://dailymiaminews.com/category/news/ BlogIcon Daily News 2013.03.13 0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상적 내용과 정보를 제공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유용한 생각과 다른 사람에게 아이디어를 공유 할 정말 작가를위한 훌륭한 작품입니다.좋은 일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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