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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뿌리깊은 나무, 조선제일검 무휼 실제 모델은 성삼문 조부 성달생? 에서 무휼은 조선 제일검이라 칭하지만 젊은시절 정도전의 호위 무사였던 이방지에 패하였다. 그래서 무휼은 이방지를 꺾을 생각을 하고 쉼 없이 무술연마를 하고 이방지가 사라진 후 조선제일검이 된다. 이방지에 사사를 받은 강채윤은 이방지의 적통제자로 출상술과 북방의 무예와 투박술까지 고루 익힌 숨은 고수이다. 이방지에 사사를 받은 윤평은 강채윤이나 무휼에 패하였고, 심종수에게 까지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북방의 사라진 무림고수인 개파이는 조선제일검 무휼과 비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고, 늙은 이방지를 몰아세우지만 두 사람 다 상처를 입고 이방지는 물로 피한다. 개파이는 물을 두려워하는 공수병이 있었서 계곡물로 뛰어든 이방지를 추적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항상그렇듯이 강채윤과 개파이가 싸울 때 처음 강채윤이 .. 더보기
광개토태왕 담덕 태왕이면 태종 이방원은 태상황? 광개토태왕에 대해서 글을 쓰다 보면 이상한 댓글이 달린다. 대왕이 아니라 태왕이다. 이말은 사실일까? 대왕도 맞고 태왕도 맞고, 토왕도 성왕도 맞다. 고구려는 태왕이라고 했다고? 살어서 태왕을 참칭한적은 없다. 대왕이였을 뿐이다. 장수왕이 413년 광개토왕의 유명으로 자신의 무덤에 자신이 점령한 지역의 한예인으로 능을 관리할 고구려인과 수묘(능지기)할 사람들의 수효를 정한다. 그런데 그냥 수묘할 사람만 정하지 않고, 광개토태왕이 점령한 지역을 자세히 나열하고 있다. 광개토태왕비에 보면 광개토왕이 왕위에 올라 이라고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광개토태왕, 광개토왕, 광개토대왕, 영락대왕, 광개토대왕이라 해도 하나 틀리지 않는다. 후연의 모용수는 처음 왕에서 자신을 천왕(天王)이라고 했다가. 후에 황제라.. 더보기
뿌리깊은나무, 똘복 강채윤 한문공부 김수현 당연한 의문 에 대해서 작가 김수현이 뿌리깊은 나무에 대해서 간단 리뷰를 하였다. 내용은 “똘복이 언제 어디서 얼마 동안 한문공부를 했는지 아시는 분 가르쳐 주세요. 엄청 궁금합니다.”라는 내용이다. 똘복은 아비가 노비로서 한자를 몰라 살해된 것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니 똘복이 글 한문(한자)에 한이 되었을 것은 자명하다. 에서 세종 이도가 어리석은 백성이 자유롭게 글을 읽고 쓰게 하는데 글이 필요하다는 핵심 사건이다. 태종 이방원은 세종 이도에게 너의 조선은 어떤 조선이냐?는 물문에 대한 답이 언문 창제인 것이다. 훈민정음이나 한글을 언문이라고 썼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세종대왕이 만든 단어가 과 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자세한 글은 다음 아래글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어쨌든, 그렇다면 일반 백성이 한자를 .. 더보기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모 시체 바다에 버렸다는 사림의 선동결과 공주의 남자에서 세자가 죽음에 이르자 이제 가야한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문종과 현덕왕후가 자신을 보고 손짓하고 있다고 말을 한다. 공주의 남자는 미스테리 추리물보다 복잡하다. 공주의 남자에서 단종이 죽는것을 간략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끝냈다. 더군다나 금성대군도 사약을 받고 죽는 것으로 끝냈다. 문제는 정종이 죽고, 금성대군도 죽고, 단종이 죽는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마침내 문종과 단종 등이 저승사자가 되어 세자를 끌고 간다는 설정이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설정인지 모르겠다. 정종이 죽은 때는 1461년 이고, 세자 도원군(장: 숭)이 죽은 때는 1457년이다. 숭이 죽자, 금성대군이 죽고, 단종이 죽는 순서이다. 그리고 정종은 1461년에 죽는다. 더군다나 경혜공주의 유복자로 나오는 정미수는 14.. 더보기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관노비 없었고, 아들 정미수 수양대군 지어준 이름 에서 정종은 죽기 전에 태중 이름을 지어준다. 아들인지 딸인지 모른다며 두 개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그런데 왜 정종은 태중 아이의 이름을 지어줄까? 사실 정종이 정미수의 이름을 지어준다는 설정은 잘못된 기록에서 기인한다. 정미수는 세조가 궁궐에서 정미수를 키우면서 "鄭眉壽"라고 지어준 이름이다. 오래오래 살라는 의미가 있다. 물론, 아명은 정종과 경혜공주가 지었을 것이다. 1461년 10월 정종이 죽을때 정조는 정미수는 여닐곱이라고 기록하고 있었다. 서거정의 예와 사관이 경혜공주가 죽을 때 정미수는 1473년 16세 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부러 정종과 경혜공주가 세조와 적대적인 것으로 만들다 보니 에서 정종이 죽으면서 지어준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다. 1455년 6월 정미수는 정종이 유.. 더보기
여성만 알 수 있는 선덕여왕의 비밀 그동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만을 토대로 천명과 덕만이 어머니가 다른 이유를 증명하였다.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천명은 덕만과 같은 어머니 일지라도 천명이 나이가 많고, 덕만은 나이가 어린 동생이라고 주장했었다. 이제 천명은 절대로 마야의 소생이 아님을 증명하고, 마지막 가능성을 버릴려고 한다. 일단, 천명의 나이를 정확히는 알수는 없지만, 천명의 아들인 춘추가 603년 생이라는 사실은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천명의 나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천명이 13~15세에 용수(용춘)에게 시집을 가서 603년 춘추를 낳았다면, 천명은 587~589년 생이다. 그럼 천명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살펴 볼 차례이다. 천명의 아버지는 진평왕이다. 진평왕은 13세인 579년 진지왕이 폐위되고, .. 더보기
조선 세종, 신라 덕만, 천명의 기록 비교해 보니 삼국사기는 덕만을 진평왕의 장녀이며, 마야부인의 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삼국사기의 기록에 대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거나 이설이 있음을 곧잘 지적하던 일연은 진평왕의 장녀이며, 마야부인의 딸이라는데 이의제기하지 않고 있다. 화랑세기의 무서움은 기존 사서의 빈틈을 칼처럼 파고 들고 있다. 그동안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거나, 또는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한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선덕여왕이 덕만에 관한 기록에서도 화랑세기의 위력은 발휘된다. 그런데 뜸금없이 화랑세기는 무슨 소리, 덕만은 진평왕의 딸인것은 분명하고, 마야부인의 딸인것은 맞지만, 천명이 맏이고, 덕만은 천명의 동생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화랑세기도 덕만이 천명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말하지 않고 있다, 화랑세기는 무엇을 근.. 더보기
보과와 법흥 그리고 진흥왕은 천수를 누리지 않았다. 백제와 신라의 결혼동맹(?)은 4번에 걸처 있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자세한 사항은 이전에 포스팅한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에는 나오지 않는 백제와 신라 결혼, 서동과 선화공주 그리고 를 참조하길 바랍니다. 여기서는 법흥(원종)과 보과공주의 사랑인데, 보과공주는 과연 백제의 어느왕의 자식인가에 대해서 논의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니 동성왕녀은 아닐것이라는 암시를 했었습니다. 첫번째 법흥(원종과 보과공주) 첫 결혼의 첫테이프를 끊은 사람은 법흥(원종)과 동성왕녀 보과공주, 일단 보과공주라고만 하자. (3세) 모랑(毛郞)은 남모의 아우이다. 이에 앞서 법흥대왕이 국공(國公)으로 백제에 들어가 보과공주(宝果公主)와 더불어.. 더보기
이차돈은 김씨일까? 박씨일까? 이차돈에 대한 고사는 삼국사기 신라 법흥왕14년(527년)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는 과정에서 이차돈의 순교로 인해 신라의 불법이 왕성하고 신라 왕권의 강화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차돈(염촉,염도)의 가계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삼국사기는 성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삼국유사는 씨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고 그이 세계를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를 인용하고 아도비의 기록을 인용하고 있지만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이나 그 당시까지 전해진 기록을 상고했을 때 박씨라고 기록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단 삼국사기의 기록과 삼국유사의 기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5년(528) 불교를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일찍이 눌지왕 때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고구려로부터 일선군(一善郡)에 왔는데, 그 고을 사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