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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뿌리깊은 나무>에서 무휼은 조선 제일검이라 칭하지만 젊은시절 정도전의 호위 무사였던 이방지에 패하였다.

 

그래서 무휼은 이방지를 꺾을 생각을 하고 쉼 없이 무술연마를 하고 이방지가 사라진 후 조선제일검이 된다.

 

이방지에 사사를 받은 채윤은 이방지의 적통제자로 출상술과 북방의 무예와 투박술까지 고루 익힌 숨은 고수이다.

이방지에 사사를 받은 윤평은 강채윤이나 무휼에 패하였고, 심종수에게 까지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북방의 사라진 무림고수인 개파이는 조선제일검 무휼과 비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고, 늙은 이방지를 몰아세우지만 두 사람 다 상처를 입고 이방지는 물로 피한다.

개파이는 물을 두려워하는 공수병이 있었서 계곡물로 뛰어든 이방지를 추적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항상그렇듯이 강채윤과 개파이가 싸울 때 처음 강채윤이 밀리다. 기지를 발휘하여 결국에는 강채윤이 개파이를 물속으로 끌어들여서 죽이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결론은 뿌리깊은 나무에서 조선제일의 무예를 가지고 있는자는 강채윤이 되지 않을까 한다.
강한자가 살아 남는 게 아니고 살아 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란 가장 기본적인 삶과 죽음에 대한 무인의 법칙이고 적자생존의 법칙이다.

 

 

 

 

사실 조선에서는 칼(,)는 의전용 장식의 의미가 강했다. 세종이전 시기에는 시위 무관들이 검을 패검하지도 않았다. , 창검 등 자신의 주무기를 가지고 호위를 하였었다. 세종 때에 와서 의전용 칼을 패검하도록 하였다. 정도전, 정몽주를 죽인 것도 검이 아닌 철퇴였고, 김종서를 죽인 무기도 철퇴였다.


병조에서 아뢰기를,
“내금위(內禁衛)의 상시 시위(常時侍衛)는 갑옷을 입지 말게 하고, 단지 환도(環刀)만 차게 하옵되, 대조회 때에는 모두 흰 철갑[白鐵甲]을 입게 하고, 전내에 각각 10인씩 좌우로 분립하게 하되, 그 나머지는 월대(月臺)의 동서로 나누어 서게 하옵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오죽하면 임진왜란 시기 포로로 잡힌 왜인이나 투항한 왜인들로부터 검술을 받아들였겠는가? 그런데 임진왜란 시 명나라의 검술과 왜인의 검술을 배웠지만, 근접전에서 효과는 별반 없었다고 선조가 투털거리는 장면이 수시로 목도된다.

 

그렇다면 조선 군사들의 주 무기는 무엇이었을까? 조선의 군사조직은 근접전이 아닌 원거리 전술이었다. 무협사극에서 칼들고 설치는 장면은 무협지나 무협만화나 무협영화에서나 나오는 장면일 뿐이다.


 

 

조선무기의 기본은 <>이었다. 그리고 창과 창검이 조선무기의 핵심이였고, 장거리 무기로 화포나 신기전 등 화약무기를 갖추고 있었다. 당연히 근접전인 검술에서는 왜인들에게 밀릴 수 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검술을 가르쳐 놓았더니 검을 빼어 들기보다는 활로 왜인의 검을 막았다고 선조가 푸념했겠는가?

 

조선의 활은 무인이나 문인들이나 누구나 할 수 있었고, 왕도 수시로 활쏘기를 하였다. 임진왜란에서 원거리에서 치고 빠지는 전술이 가능한 활이나 창검술을 활용했기 때문이지 검술과는 거리가 있었다.

 

왜인의 조총은 초기에는 무기의 특성을 모른 상태에서 위협적이었지만, 장전에서 걸리는 시간 때문에 조선군에게 실질적으로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근접전이 되었을 때 박투술에서 왜인의 검에 속수무책이였을 뿐이다.  그래서 접근전 자체를 배격한 척계광의 <기효신서> 전술을 활용하여 왜인을 무찌를 수가 있었다.

 

어쨌든, <뿌리깊은 나무>에서나 어떠한 사극에서도 칼을 들고 설치는 장면은 고증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 최소한 임진왜란 이후가 아니라면 말이다. 단지 멋있게 보이고자 하는 설정일 뿐이다.


 

 

문제는 칼에는 검과 도가 있는데 사극에서는 검을 쓰는 방법이나 도를 쓰는 방법이 휘두르는 형태로 동일하다. 하지만, 실제 날이 하나인 도는 휘둘러서 베는 용도의 칼이고, 검은 날이 두 개여서 찌르기 용도에 가까운 것이다. 칼이 일자로 되어 있는데 휘두른다면 무예의 기본을 무시한 행동이다. 한마디로 총을 휘두르는 용도로 쓰거나 핸드폰을 망치로 사용한다는 설정만큼 웃기는 장면이다. 도와 검을 재대로 고증한 사극영화는 서극의 <와호장룡>이였다.

 

어쨌든, 뿌리깊은 나무에서 주인공 강채윤은 조선제일의 무예가가 될 것이다. 그래야 주인공이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정말 드라마 설정이 아닌 조선의 최고 무예가인 무과를 통해서 본 조선제일은 누구였었을까?

 

그렇다면 무과에는 어떠한 종목이 있었을까? 첫번째는 활을 서서 쏘는 입사, 두번째는 말을 타고 달리면서 여러 개의 과녁을 맞추는 활쏘기, 세번째는 말을 타고 창술.창검 겨루기, 네번째는 땅에서 창술.창검술 겨루기로 이뤄져 있다. 처음부터 칼(.) 겨루기 종목은 있지도 않았다. 그러니 조선 무인들이 칼쓰기를 잘할 수는 없었다.

 

“문신(文臣)을 선발하여 집현전(集賢殿)에 모아 문풍(文風)을 진흥시키시는 동시에, 문과는 어렵고 무과는 쉬운 때문으로, 자제(子弟)들이 많이 무과로 가니, 지금부터는 《사서(四書)를 통달한 뒤에라야 무과에 응시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옵소서.

- 세종 11419
 

그런데 무과는 <무경칠서>7가지 <병법서>를 알고 있어야 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던 손자병법도 무경칠서 중 하나였다. 더불어 <사서>를 알고 있어야 했다. 문제는 무과에 급제를 하려면 한자에 능통해야 가능했다는 것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강채윤를 비롯한 겸사복으로 나오는 무관들이 무과를 준비할려면 한자 천자는 알고 있었야 한다고 했지만, 천자문 가지고는 택도 없었다.

 

요즘도 마찬가지이지만, 이과가 취업은 좋지만, 추후 승진에서 누락되기도 하고, 돈도 벌지 못하는 것과 같이 조선시대에도 무과에 문과 지망생들이 무과를 본 후 문과를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당시에도 무과는 문과에 비해서 승진은 잘 되지 않았지만, 최소한 취업률은 좋았기 때문이다.

 

사실 무과급제자는 무예가 제일 뛰어난 자는 아니다. 대다수 무과급제자는 문무가 겸비된 사람이지 조선제일검이나 조선제일 일수는 없다. 무과급제자는 지휘자를 뽑는 자리이고 전략을 구사하는 전략가를 뽑는 것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조말생이 이방지에게 같은 무인으로 이방지의 연인을 인질로 잡아 미안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말생은 무인과는 관계없다. 조말생은 문과 장원급제자 출신이다.

 

드라마만 보았던 많은 사람들이 김종서이방원, 수양대군을 무인출신인줄 안다. 하지만, 이방원이나 김종서나 수양대군은 무인이 아니였다. 어쨌든 문과 출신인 김종서 6진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이고, 문무를 겸비한 문과 출신들인 양반들이 임진왜란 시기 의병들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에서 무과가 처음 생긴 때는 태종 2 1402년이었다. 무과 최초 장원급제자는 다름 아닌 성삼문의 할아버지인 27살의 성달생이다. 단종복위 사건에서 별운검을 선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도 무과급제한 무인출신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태종 이방원이 자신의 호위무사인 무휼을 세종 이도에게 넘기며 세종 이도에 충성하라고 말한다. 무휼은 태종과 세종의 일촉측발속에서 세종의 신하임을 자인하고 태종에 칼을 겨눈다.
 
정도전이 피살된 때는 1398년으로 성달생은 23살로 혈기가 왕성할때이기도 하며, 첫출전에 이방지에게 패한것도 어린나이로 출전했다고 하니 비슷할 수 있다. 문제는 성달생은 1444년 69세로 죽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소이는 세종이 등극할때 여닐곱 정도인데 세종 25년 1443년이 되었다면 32살 이상이지만, 소이역을 맡은 신세경은 20대 초반도 안되게 나온다. 그러니 성달생이던 아니던 상관이 없지 않을까?

어쨌든,  뿌리깊은 나무에서처럼 태종에 충성하고 깊은 신뢰를 받은 인물은 성달생이다. 물론, 뿌리깊은 나무에서처럼 시위장으로만 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무휼에 가장 근접한 실존인물은 성달생과 유사하다.

처음에 태종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에 한 번 보고 심히 사랑하여서 항상 일컫기를, ‘호남아(好男兒)라’ 하였다. 이때부터 남달리 대우를 받았고 태종이 세자[東宮]로 책봉 되었을 때에 왕에게 아뢰어 호군(護軍)으로 뛰어 제수하였다. 임오년에 나라에서 처음으로 무과(武科)를 설치하였는데, 달생이 제1등으로 뽑혀 대호군임명되고, 나가서 흥덕진 병마사(興德鎭兵馬使)가 되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무인이니 어릴 적부터 보았던 가락으로 성삼문도 무예가 출중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극에서 성삼문은 유약한 선비로 나오고 있는 건 사실과 다름을 알 수가 있다. 오히려 뿌리깊은 나무에서 윤평을 몰아세우고 무휼보다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집현전 직제학 심종수가 성삼문의 실제 모습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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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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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azz.tistory.com BlogIcon [블루오션] 2011.12.03 1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루 왔씁니다~
    그렇군요..ㅎ
    뿌리깊은나무 잘보고 갑니다~
    손가락도 꾹누르고~ 블루 다녀가요~

  2. chrispaul3 2011.12.03 2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삼문이 유약한 선비로 나왔다는 건 금시초문입니다..

  3. 나무닭 2011.12.03 2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별건 아닌데요..
    위에 개파이가 공수병이라고 쓰셨는데...
    공수병은 광견변에 걸린 개에게 물린 사람이 걸린 병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물린 사람은 여러가지 증상을 보이는데 그 중 한가지가 물을 무서워한다고 하거든요..

    개파이가 환자는 아니니....공수병은 아니겠죠..^^
    아마도 북방에서 왔으니..수영을 못한다는 것 같거든요.....

  4. 손님000 2011.12.10 0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는 글을 많이 적으시는 군요.

    사실 저도 "~카더라" 통신에서 벗어나긴 힘들지만 조선시대에 제일 뛰어난 무인으로는 백동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백동수"라는 드라마도 있긴하지만 전 보지 못했습니다. 이놈의 일이 뭔지 ㅠㅠ.
    일단 백동수는 유일(한지 아닌지는 확실친 않지만 일단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다고 합니다.)한 역사에 기록된 고수입니다. 정조가 백동수에게 일본에가서 검술을 조사하고 익히고 오라는 명을 받고 갔다와서 시범을 보였는데... 그 시범이라는 것이 그냥 칼춤 추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칼춤을 추고나서 그 자리에 발자국이 남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뭐 이정도면 무협지에 나오는 허황된 이야기들보다 일단 사서(? 조선왕조실록은 사서라기보다 기록이죠...)에 기재된 인물들 중엔 최강이 아닌가 싶습니다.

  5. 지나가다가 2011.12.10 1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호장룡은 서극이 아니라 이안감독의 작품아니가요?

  6. Favicon of http://www.balloonking.co.uk BlogIcon balloons 2011.12.11 2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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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않았다고 하는군요. 뭐 이정도면 무협지에 나오는 허황된 이야기들보다 일단 사서

  10. Favicon of http://maryboshears8.livejournal.com/807.html BlogIcon katadyn combi review 2012.12.19 1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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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Favicon of http://www.lesquotidiennes.com/print/10812 BlogIcon discount wireless pet fences 2012.12.27 1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지를 발휘하여 결국에는 강채윤이 개파이를 물속으로 끌어들여서 죽이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12. Favicon of http://www.shootwhitetaildeer.com/hunting-directory/partners.php BlogIcon medical accessories for ipad 2013.01.05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방지에 사사를 받은 강채윤은 이방지의 적통제자로 출상술과 북방의 무예와 투박술까지 고루 익힌 숨은 고수이다.

광개토태왕에 대해서 글을 쓰다 보면 이상한 댓글이 달린다.

 

대왕이 아니라 태왕이다.

 

이말은 사실일까?

 

대왕도 맞고 태왕도 맞고, 토왕도 성왕도 맞다.

 

고구려는 태왕이라고 했다고? 살어서 태왕을 참칭한적은 없다. 대왕이였을 뿐이다.

 

장수왕이 413년 광개토왕의 유명으로 자신의 무덤에 자신이 점령한 지역의 한예인으로 능을 관리할 고구려인과 수묘(능지기)할 사람들의 수효를 정한다. 그런데 그냥 수묘할 사람만 정하지 않고, 광개토태왕이 점령한 지역을 자세히 나열하고 있다.

 

광개토태왕비에 보면 광개토왕이 왕위에 올라 <영락대왕>이라고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광개토태왕, 광개토왕, 광개토대왕, 영락대왕, 광개토대왕이라 해도 하나 틀리지 않는다.

 

후연의 용수는 처음 왕에서 자신을 천왕(天王)이라고 했다가. 후에 황제라고 바꾸었다. 북연의 풍발도 천왕이 되었다가 후에 황제가 된다.

 

 

 

 

고구려 광개토태왕 시기는 5 16국시대로 소나개나 다들 황제라고 칭했다. 그 중에 고구려 광개토태왕도 있다. 광개토태왕이 왕에 올라 <영락> 건원한 것도 당시 시대에 자신들만이 황제라고 하던 시기일 뿐이다. 단지 고구려는 광개토왕 생존 시 <영락대왕>이라고 하고 사후에 장수왕이 아버지의 시호를 정할 때 광개토태왕이라고 한 것 이다.

 

조선시대 세종 이도는 상왕 이방원(태종)에게 태상황이란 존호를 올리지만, 이방원은 너무 과한 존호라며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왜 태종은 태상황을 거절했을까? 자신은 황제급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낮춰 태상왕이라고 부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때 태상황이라고 존호를 올릴 때 조선의 신하들은 반대나 찬성했을까? 그냥 그냥 지난 것으로 봐서 태상황이 되던 태상왕이 되던 상관하지 않았던듯하다. 이를 두고 조선이 사대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삼기도 힘들지 않을까?

 

그런데 일본 구주의 다다량덕웅이 공물을 바치며 죽은 이방원을 태상왕이 아닌 태상황으로 부른다.

 

다다량덕웅이 예조에 글을 올려 말하기를,

“받들어 듣건대, 지난해에 태상황께서 세상을 버리셨다 하니, 이는 귀국의 큰 상고(喪故)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금상 전하(今上殿下)께옵서 공경히 오히려 상복중에 계시오니 비통(悲痛)하시고 애모(哀慕)하심이 어떠하오리까. 다시 슬픔을 억제하시고 예절에 좇으시어 큰 효도(孝道)를 온전히 하시옵기를 바랍니다.


 

다다량덕웅을 근거로 이방원이 태상황이니 세종 이도는 태황이나 황제라고 불러도 되는 것 인가? 그리고 이방원은 황제였다고 말할수 있는가?

 

 

광개토태왕에서 담덕이 왕위에 올랐다. 물론, 영락대왕이 왕이 된 때는 광개토태왕비에 의하면 신묘년(391)이다. 하지만, 드라마 <광개토태왕>에서는 고국양왕이 선위한 것으로 그리고 있는데 태자가 된 직후로 그리고 있다. 광개토태왕이 태자가 된 때는 삼국사기에는 고국양왕 3년으로 386년에 해당한다. 하지만, 광개토태왕 비에 의하면 385년에 태자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국양왕이 [재위] 3년에 태자로 삼았고, 8년에 왕이 죽자 태자가 즉위하였다.

 

광개토태왕은 선위한 것으로 그리고 있지만, 삼국사기는 고국양왕이 죽자 태자가 즉위하였다고 그리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삼국사기를 봤을 이유가 없고, 또한, 광개토태왕비문을 봐을 이유가 없다. 사실 다 역사책을 달달 암송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그냥 역사는 대학가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어떻게 광개토태왕을 그리던 대부분의 일반시청자는 알필요도 알수도 없는 내용을 작가가 마음껏 지지고 볶고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역사에 대해서 상당한 조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관심이 있는 사람도 원전이나 번역본을 읽어본 적이 없다.

 

광개토태왕이 12살에 태자가 되고, 18세에 왕이 되었는데도 29살에 왕이 되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더군다나 공영방송 KBS에서 조차 광개토태왕의 일대기를 재현하고 재조명하겠다는데도 12살도 되지 않는 광개토태왕이 수염을 기르고 만주벌판에서 귀신장군이 되었다고 그리고, 12살에 태자가 된후 18세에 고국양왕이 죽고나서 왕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고국양왕이 죽기전에 선위한 것으로 그리고 있겠는가?

이를 지적하면 머 어때 드라마인데 라는 말이 돌아올 정도면 할말을 잊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지켜야 하는 생존까지도 팩트를 지키지 않는 드라마에서 어떻게 일대기를 재현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지금 드라마 광개토태왕에 등장하는 담덕이 광개토태왕인가? 아니면 단지 이태곤인가? 이름만 빌리면 해당왕을 재현하고 고구려를 재현한 것이 되나? 차라리 만화가 오일룡이 축구 만화 주인공이나 캐릭터로 등장하는 유비, 관우, 조조 등은 삼국시대를 재현했다고 하는 것인가? 최소한 오일룡은 유비,관우,조자룡, 조조를 주요 인물로 등장시키지만 자신이 삼국시대를 재현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공방송 KBS 작가나 제작자는 광개토태왕이 빠진 고구려를 드라마로 제작하면서  고구려와 광개토태왕을 재현했다고 했다면 이는 사기극이지 사극은 아니다.

그렇다면 광개토태왕을 생전에는 어떻게 불렀고, 사후에는 어떻게 불렀을까? 일반적으로 태왕으로 불렀을까? 
 

광개토태왕비문에는

광개토경평안호태왕
살아생전 영락대왕
二九登祚號爲永樂大王

죽어서는
 
上廣開土境好太王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

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광개토태왕>에 등장하는 모두루는 실존인물로 광개토태왕 담덕과 같은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다. 자신의 묘에 묵서를 남긴다. 이때 광개토태왕을 무엇이라고 부를까? 

世遭官恩▨▨▨▨上聖太王之世(국강상성태왕)
育如此遝至國上大開土地好太聖王緣祖父(국강상대토지호태성왕)

 

어쨌든, 광개토태왕을 살아서는 영락대왕이고 죽어서는 호태왕, 성태왕, 태성왕, 태왕으로 부르던, 성왕으로, 대왕으로 부르던, 왕으로 부르던 하나 이상할 것이 없다. 지들 꼴리는 대로 부르면 된다. 왜 태왕인데 대왕이라고 하느냐고 하는 자가 이상한 것뿐이다.
 


왜 광대토왕 사후에 모두루는 <광개토태>왕이 아닌 <대토지성태>왕, <태성왕>인데 태왕이라고 부르냐고 한다면 어찌 대답할지 궁금하다.

세종은 "세종 장헌 영문 예무 인성 명효 대왕" 이라고 했다. 하지만, 조선시대 세종을 그냥 세종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세종대왕이라 부르기도하고, <세종장헌왕>이라고 불러도 세종인것 처럼 말이다. 세종을 대왕이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욕하는 사람없다. 욕하는 사람이 이상한 것뿐이다.

한마디로 부르고 싶은대로 부르면 된다는 것이다. 부르고 싶은데로 불러도 경찰출동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당시에도 호칭이 통일되지 않았는데 무슨근거로 태왕이지 대왕은 아니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다만, 광개토태왕 살아있을 때 태왕이라고 한다면 문제인 것이다. 살아있을 때 태왕이라 한적이 없고, <영락대왕>이라 했으며 광개토태왕비에 업적을 기록할때 영락 몇년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광개토태왕>에 광개토태왕 담덕은 언제 나오는 건지 아는사람 있으면 알려주기 바랍니다. 버럭대마왕 이태곤은 나오는데 담덕이 보이질 않는군요.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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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t-1004.tistory.com BlogIcon 일프로 인 코리아 2011.11.07 16: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정보 잘읽었습니다..^^

  2. 김한선 2011.11.07 1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왕사신기가 더 나은듯

  3. ㅇㄹㅇㄹㅇ 2011.11.08 1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왕이라는 칭호는 아무래도 대왕과 병용해서 쓰는 것으로 보아 살아생전의 칭호라기보다는
    후에 매우 높이기 위해 쓰는 칭호인거 같네요.그리고 태왕이라는 칭호는 광개토태왕이전의 왕들도 태왕을 사용하였었습니다.

  4. 2011.11.14 0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이원태 2011.12.31 1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요한건 당시에는 면도기가 없었다는 사실 !! 등장인물들이 몇몇을 제외하고는 몽땅 면도를 깨끗이 하고 나오니....쩝
    20세안돼도 수염이 자라 모든남자는 검은수염을 달고나와야----------- 정상. 노인들은 모두 수염에 염색 하고 나오니???--- 개판

  6. 땡땡땡 2012.01.12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사료를 읽어본 바로는 조선처럼 하지 않았습니다. 태왕이란 칭호는 추모성왕 때부터?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일찍 그런 칭호를 사용해왔고 황제국 고구려의 지도자를 칭하는 극도의 존칭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7.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료를 읽어본 바로는 조선처럼 하지 않았습니다. 태왕이란 칭호는 추모성왕 때부터?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8. Favicon of http://hubshout.com/?How-Search-Engine-Optimization-Benefits-Online-Businesses.. BlogIcon Delbert 2012.07.21 1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데 그냥 수묘할 사람만 정하지 않고, 광개토태왕이 점령한 지역을 자세히 나열하고 있다.

  9. Favicon of http://www.1-health-insurance-quotes.com/top-10-health-insurance-companies/ BlogIcon medical insurance providers 2012.07.24 16: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리깊은 나무는 훈민정음 창제의 미스터리를 다룬 추리물로 집현전 학사의 죽음을 다루고

  10. Favicon of http://insurancedirectly.com/health-insurance-quotes/is-aarp-health-care-plans.. BlogIcon aetna vision plan 2012.08.08 0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확실히 그것의 모든 조금 즐기면서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 새로운 것들을 알아 보려고 당신 즐겨찾기 있습니다.

  11. Favicon of http://lowestcarinsurancequote.com/ BlogIcon auto car insurance quotes 2012.08.09 0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은 좋은 작품이다 나는 이와 유사한 것들을 봤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까지 가장 좋습니다.

  12. 나그네 2012.08.31 1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왕호가 생전에, 제위에 있을 때 쓰인 용례는 중원고구려비, 진흥태왕 순수비, 울진 봉평비, 갈항사 석탑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본문에 첨부된 광개토태왕비 탁본에도 영락'태왕'이라고 되어있네요.
    二九登祚 號爲永樂 太王恩澤...
    이 부분은 18살에 제위에 올라, 연호를 영락이라고 했다.
    태왕의 은택은...(황천에까지 미쳤고..)라고 띄어읽는 것이 보통이죠.

    이구등조는 귀신같이 네모 쳐놓고 영락'태왕'을 발견 안 하시다니 의외네요.

  13. Favicon of http://www.focaltablet.com/ BlogIcon android 4.0 tablet 2012.09.02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의 세 시간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습니다. 당신은 많은 실제로, 읽기와 나에

  14. Favicon of http://www.jihoy.com/ BlogIcon free classified advertising 2012.09.17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이란 존호를 올리지만, 이방원은 너무 과한 존호라며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왜 태종은 태상황을 거

  15. Favicon of http://thestarryeye.typepad.com/pets/2007/10/time-share-pets.html BlogIcon petsafe wireless pet fences 2012.11.14 1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긴것은 세종대왕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말로 세종 이도를 극찬하기도 한다

  16. Favicon of http://trainwithme.co.uk/blog/view/3113/crisis-food-items-101 BlogIcon water container with tap 2012.11.20 18: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에 첨부된 광개토태왕비 탁본에도 영락'태왕'이라고 되어있

  17. Favicon of http://gailarciniega8.livejournal.com/1533.html BlogIcon pocket rocket stove fuel 2012.12.19 1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이병훈은 조선왕조실록에서 극히 드물게 나온 숙빈최씨의 성장과정을 드라마화는데는 무난하다고 할 수 있으나, 동이(숙빈최씨)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함을 드러내고 말았다.

  18. Favicon of http://www.eleconomista.es/blogs/frikieconomia/?m=200707 BlogIcon petsafe invisible fence manual 2012.12.27 15: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그냥 수묘할 사람만 정하지 않고, 광개토태왕이 점령한 지역을 자세히 나열하고 있다.

  19. Favicon of http://essentialswaterbarrel.jimdo.com/ BlogIcon katadyn pocket filter review 2013.01.05 2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구성으로 이루어 졌다. 하지만, 미션의 내용과 해결하는 방법은 이전 이병훈 사극이 주었던 치밀함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20. Favicon of http://www.jpaulbrown.net/%E3%82%B9%E3%83%8B%E3%83%BC%E3%82%AB%E3%83%BC-c-20.h.. BlogIcon skyslefly 2013.10.16 0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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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나무>에 대해서 <천일의 약속> 작가 김수현이 뿌리깊은 나무에 대해서 간단 리뷰를 하였다.

 

 내용은 똘복이 언제 어디서 얼마 동안 한문공부를 했는지 아시는 분 가르쳐 주세요. 엄청 궁금합니다.라는 내용이다.

 

<뿌리깊은 나무> 똘복은 아비가 노비로서 한자를 몰라 살해된 것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니 똘복이 글 한문(한자)에 한이 되었을 것은 자명하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 이도가 어리석은 백성이 자유롭게 글을 읽고 쓰게 하는데 글이 필요하다는 핵심 사건이다. 태종 이방원은 세종 이도에게 너의 조선은 어떤 조선이냐?는 물문에 대한 답이 언문 창제인 것이다.

 

훈민정음이나 한글을 언문이라고 썼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세종대왕이 만든 단어가 <언문> <훈민정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자세한 글은 다음 아래글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어쨌든, 그렇다면 일반 백성이 한자를 읽고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려주는 것도 <뿌리깊은나무에서 보여주어야 할 핵심인 것도 불문가지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뿌리깊은 나무>에서 똘복이 한자를 배우기 위한 노력은 없었다.

 

(한문)에 원수가 된 똘복이 복수를 위해서 실질적인 천하제일검 이방지에게 협박을 해서 검을 배웠고, 다양한 잡기를 배웠다는 것은 회상신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방지에게서 한문도 배울 수 있었을 것이 아닌가? 라고 반문한다면 충분할 수는 있다.

 

그런데 무예와 한문을 배운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무예는 몸으로 때우면 가능하지만, 학문은 이와 다르다. 세종이 똑똑한 사람은 하루 만에 배울 수 있고,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10일이면 배울 수 있다는 언문(훈민정음)을 창제한 이유는 한문이 가지는 복잡성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이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으면 배울 수 없었던 것이 한문이다. 특수 몇몇 사람만이 배울 수 있었던 한문을 돌빡이 단순히 타임워프가 되었다고 알게 되었다고 한다면 드라마상 과한 설정인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아직 <뿌리깊은 나무>에서 똘복의 회상신이 계속 될 것이라는 점에서 돌빡이 머리를 쥐어터지게 맞아가면서 한문를 배웠다는 신을 넣는다면 충분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노비 출신인 똘복이 신분을 위장해서 일반인이 되고 한문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당시 조선초기에 있었을까? 김수현은 이 지점에 대한 지적을 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글쓴이는 김수현의 작품은 잘 보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김수현이 시나리오에는 빈틈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개연성과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수현 작품을 보지 않는 이유는 글쓴이가 시간도 없을 뿐만 아니고 김수현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다. 하지만, 글쓴이는 약속도 따로 잡을 만큼 사극이라면 시간을 빼서도 보는 편이다.

 

<뿌리깊은나무>는 최근에 나온 어떠한 사극보다 좋은 작품이기는 하지만, 개연성 없는 부분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태종과 이도가 정치적으로 반목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세종 이도는 태종 이방원에게 극히 효도한 효자라는 사실이다.

 

정도전 집안을 몰살시키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고 정도전의 아들 정진을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등용시키도 하고, 정도전의 형제도 우대하였다.

 

더군다나 최소한 <집현전>을 태종이 세종 이도로 하여금 놀라고 집현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집현전은 이미 고려 인종시대부터 있었고, 태조, 태종시기 수 없이 집현전에 대한 논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집현전은 태종 이방원의 최 측근인 <박은>이 상소를 하면서 구체화 된다. 더군다나 요즘으로 치면 상설기관이 된 초대 학장에 해당하는 초대 집현전 부제학은 <박은>이였고, 부학장에 해당하는 직제학에는 신숙주의 아버지 <신장>이었다.

 

사실 성삼문, 박팽년이 언문(훈민정음)창제에 관여했다는 논리적 근거도 없다. 그만큼 <뿌리깊은 나무>은 자료조사 부실인 것도 사실이다.

 

김수현 작품을 비판하면서 막장드라마를 만드는 김수현김영현의 명품작품에 딴지를 걸다니 하는 부분은 김영현의 그 동안의 작품을 대충 봐서 그렇다고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막장 드라마는 김영현의 작품에서는 기본으로 깔고 가는 코드이다.

 

단지, 일반 시청자들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왜 시청자의 눈에 띄지 않느냐면 김영현의 대부분은 시청자가 모르는 장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역사는 왜곡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일본과 중국의 독도침탈이나 동북공정과 드라마를 비판한다. 사실 일본의 드라마는 고증은 철저하게 하고 있지만 말이다. 사실 알고 보면 우리나라 역사를 가장 왜곡하고 비하는 집단은 다름아닌 사극을 만드는 작가들이다.

 

김수현자료 취합, 취재 합니다. 상상으로 쓸 수 없는 부분은 당연히 꼼꼼한 조사가 필요하죠 ^^라는 트위터 글도 남겼다.

 

김영현의 드라마 작품은 주로 원작 소설을 시나리오 각색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원작소설 자체가 자료 취합 취재나 자료조사가 재대로 되어 있을까? 한마디로 하면 가장 기본적인 자료조사조차 안되어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김영현의 최근 대표적인 작품은 <선덕여왕>이였다.

 

김영현일식이 보름날에 일어난다. 설정을 한적이 있다. 과연, 일식이 보름날에 일어날 수 있을까? 이는 요즘 초등학생들도 아는 문제이다. 그리고 삼국시대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신라인들도 아는 문제이다. 단지, 시청자만 모르고 지나갈 수 있는 문제일 뿐 이다.

 

그렇다면 일식은 언제 일어 날까? 당연히 초승달이 뜰 때나 일어난다. 일식이란 달이 태양을 가려야 한다. 보름날 달이 태양을 가릴 수 있을까? 천지가 개벽해도 일어날수 가 없다.

 

이는 가장 기초적 상식에 관한 일이고 간단한 예에 불과하다. <선덕여왕>에서 역사왜곡 한 부분만 찾더라도 역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편당 3회 이상은 꾸준히 찾을 수가 있다. 이외 김영현 작품에는 개연성 없는 치명적인 결함투성이다. 단지 대다수 일반인들이 모르고 지나칠 뿐이다.

 

김수현이 지적하는 지점은 똘복이 한문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만한 극중 장치와 개연성이 있느냐는 지적이고, 그 이면에는 상상으로 쓸 수 없는 부분은 당연히 꼼꼼한 조사가 있었냐는 반문이다.

 

어쨌든 글쓴이(갓쉰동)은 사극 매니아 일뿐만 아니고 <뿌리깊은 나무>가 최근에 나온 어떠한 사극보다 좋은 작품이고 명품사극이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한 글을 여러 편 쓴 적이 있다.

 

하지만, 작가 김영현의 부실한 자료조사는 지적하는 편이다. 뿌리깊은 나무가 명품사극인 이유는 작가의 공보다는 제작자의 고증 덕분이다. 물론, 고증에서도 잘못된 점은 많지만, <뿌리깊은 나무>제작자 만큼 고증에 충실한 제작자도 이전에는 없었다.

 

조사에만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가장 조사가 치밀해야 하고 문헌고증을 비롯해서 소품이나 시대고증을 해야해서 가장 힘들게 나오는 작품이 사극(시대극)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쓰기 쉬운 장르가 사극이다.

 

그만큼 고증이나 자료조사는 불필요하다. 그 대표적인 작가가 김영현이다. 상상력의 범주를 넘어선 영역을 너무 쉽게 사극작가들이 조사조차 하지 않고 생방송 역사드라마를 집필하고 있기 때문에 극히 일부이지만 사실은 이렇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드라마를 보면서 당대 역사가 시청자들에게 스며드는 방법이 역사교육에는 제일 좋다. 그리고 드라마와 다른 역사에 대해서 시시콜콜 쓰는 글쓴이(갓쉰동) 같은 이가 없는 게 가장 좋다. 그 동안 역사는 딱딱하다고 배웠지만, 역사처럼 재미있는 학문도 없고, 기본 시청률을 가지고 가는 장르도 없다. 역사는 옛날이야기이고, 옛날이야기가 재미가 없다면 작가의 능력 탓 일 뿐이다.

 

그렇다면 조선 시대 똘복이가 노비의 신분을 감추고 한문을 쉽게 읽고 쓸 수 있을까? 이는 개연성 0에 도전하는 것만큼 힘들다. 한문은 양반에게나 허용된 신의 글자였기 때문이다.

 

한문은 스승이 없이는 배울 수도 없다. 더군다나 신분상의 제약까지 있었다. 독학으로는 배울 수 없는 문자가 한문이다. 더군다나 지방마다 한문의 훈과 음이 다르다. 세종이 언문을 만들고 심열을 기울린 일도 조선의 한자음과 훈의 통일화 작업이다. 이 작업에 신숙주와 성삼문 이개, 최항 등 집현전 학사들이 동원되었다.

 

<뿌리깊은 나무>는 글에 한 맺힌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한글창제를 다룬 드라마이다.

 

그런데 똘복이 달필의 흘려 쓰는 소이의 글을 읽을 정도면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났으니 그냥 이방지에게 배웠다 치고라고 넘어갈 수는 있지만, 글에 한이 있던 똘복이에게는 필요한 장면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단순히 운전을 하는데 운전면허 따는 장면을 삽입해야 하느냐?의 범주를 넘어선 것이다. 운전에 한이 맺힌 사람을 다룬 드라마라면 당연히 운전면허를 따는데 들어간 노력을 극중에 녹여내야 한다. 그러니 얼마나 글(한문)때문에 백성들이 착취를 당했고, 죽어갔는지 더 많은 장면이 <뿌리깊은 나무>에 필요한 부분이다. 이를 두고 드라마의 주제에 맞는 개연성과 리얼리티라고 말하는 것이다.

 

운전면허가 있다고 드라이버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 경주의 최고봉인 F1 근처에도 못 간다.

 

F1드라이버 드라마를 찍는데 기본적으로 드라이버에 필요한 기술을 배웠다는 장면이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지 그냥 시간이 지나서 슈마허를 능가하는 최고의 드라이버가 되었다고 그렸다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무사 백동수>에서 조선제일검은 여운이 아니냐는 비아냥을 듣지만, 최소한 백동수가 스승으로부터 조선 제일검이 되는 배움의 과정과 싸움의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설정이 필요하고 들어간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왜 세종 이도가 비밀프로젝트 팀까지 꾸려야 할만큼 절대적인 반대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서 언문을 만들겠다고 하는 드라마라면 한글이 필요한가에 대한 언급이 단지 똘복의 아비와 노비들이 한자를 몰라서 죽었다는 설정으로는 부족할 수 밖에 없다.

 

한글이 배우고 쉽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아직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어르신도 많을 뿐만 아니라 문맹률도 높다. 이유는 가난해서 학교를 갈수 없었고 배울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읽기는 가능해도 흘려 쓰는 한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고, 읽을 수는 있어도 쓸 수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많은 게 현실이다.

 

한글에 한이 맺힌 할머니의 한글배우기는 당연히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현재도 한글 보다 수 만 배 어려운 한문은 배우기 어렵다. 그런데 배움에 제약이 많은 조선초기에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똘복처럼 시간이 지나서 한자를 자유자재로 썼다는 것으로 그린다면 얼마나 똘복이가 어렵게 한문을 익혔는지를 보여주는 게 시청자를 위한 예의 일뿐만 아니라 뿌리깊은 나무가 해주어야 할 최소한의 서비스다.

 

일반 노비도 똘복이처럼 시간이 지나 공부하면 한문을 자유자재로 읽고 쓸 수 있는데 세종이 비밀팀까지 만들어서 뻘 짓 하는 드라마가 <뿌리깊은나무>가 되는 건가? 언문을 반대한 최만리, 하위지 등 집현전 학사들의 논리적 근거를 똘복이가 제공해 준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그러니 작가로서 당연한 <뿌리깊은 나무> 주제에 맞는 개연성과 리얼리티에 대한 의문이 아닐까?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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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27 16: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구절절 개소리뿐이야.......너무 길만 쓰잘데없이 길뿐 이치도맞지않고 글에 김수현마냥 억지만가득 ㅡ.ㅡ;;

    다른거검색하다 어떻게 들어와봤는데 뭔 지말합리화할라고 개소리만 꺠알같이해놨네~~~!!
    10년이면강산이변하고 한이맺힌이에게 글자를 배울시간은 충분히 차고넘쳐 ~~~ 대부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걸 꼬투리잡기 대마왕인 삐따끼들이 깐다고 해서 그게 맞는 이치고 정상은 아닌거야??
    불필요한 서비스는 너같은것들이나 즐기라고 알아들어??

    똘복이의 한이가진 가장큰 카테고리는 복수심고 힘이우선이지 ~ 한자가 우선은 아니기에 한자에까지 굳이
    할애하지않아도 시청자는 무리없이 받아들인다. ...... 씨밸 억지꼬투리 잡을라면 누구나 한가득일따름이야.

    개소리는 김수현 할마시랑 니 뇌에서만 하세요~~!!

    글재주도없으니 억지합리화좀 해볼라고 개소리를 드럽게 길게만 쳐 써놨네 ㅡ.ㅡ;

  2. 우껴~ 2011.10.28 1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막장의 대명사 "출생의 비밀"을 표현할려면 꼭 응응하는 장면을 넣어야 되겠네?

  3. ㅎㅎㅎ 2011.11.04 1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도 글이라고...ㅉㅉㅉ 하나만 물어보자. 넌 드라마를 보는거니 아니면 다큐멘터리를 보는거니? 드라마가 실제와 다르다고 ㅈㄹ하는건 무슨 무개념이니?ㅎㅎㅎ 아주 김수현 쉴드치느라 쑈를 하세요 쑈를... 김수현 할머니보고 '당신꺼나 잘하세요' 라고 전해주쇼.

  4. dmaa 2011.11.08 0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똘복이 한문공부를 하는 장면이 나오려면 강채윤이 그 장면을 회상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도를 죽일 생각만 가득찬 똘복이가 구지 그런 장면을 회상하는 것은 개연성이 떨어집니다. 무술을 연마하고 하는 장면은 복수심 뿐만 아니라 수사와도 연관이 있어 회상장면이 나왔지만, 글에 대한 부분은 시청자들은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아도 복수를 위해 공부며 무술이며 닥치는대로 했을것이라 상상하는 거죠. 엄청난 무술을 연마한 인물이 죽도록 공부할 독기정도 없겠습니까? 무술은 익히면 된다고 표현하셨는데 그정도 무술은 아무나 익히나요? 후에 마땅히 그런 장면을 회상할만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그런 장면이 구구절절 나오는 것은 사족이라 생각합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는 이유를 구지~~ 똘복이가 보여주어야 하는 이유가 등장한다면 또 모르지만요.

  5. Favicon of http://thejuveniledefender.com BlogIcon 김보경 2012.01.01 0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

  6. Favicon of http://blackcollegewire.com BlogIcon 김성환 2012.01.04 0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박 겉 핥기

  7. Favicon of http://reliablegrouparchitects.com BlogIcon 김용대 2012.01.05 0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티끌모아 태산

  8. Favicon of http://sudowudo.com BlogIcon 아가 2012.01.07 05: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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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Favicon of http://help.directlinkmar.com BlogIcon 빅토리아 2012.04.04 0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습니다, 그것을 사겠습니다

  10. Favicon of http://oh-no.is-into-anime.com BlogIcon 케이트 2012.04.06 0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에 영어를 하시는 분 계십니까?

  11. Favicon of http://oscar-roy.endofinternet.org BlogIcon 사바나 2012.05.08 2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살 여유가 없습니다.

  12. Favicon of http://mafia.is-a-photographer.com BlogIcon Aaliyah 2012.05.11 0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해가 안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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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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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정말 내 문제를 답변, 감사합니다!

  19. Favicon of http://hondacarros.grupocaiuas.com.br/honda fit BlogIcon honda fit 2013.03.29 0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은 정말 내 문제를 답변, 감사합니다!

공주의 남자에서 세자가 죽음에 이르자 이제 가야한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문종과 현덕왕후가 자신을 보고 손짓하고 있다고 말을 한다.

공주의 남자는 미스테리 추리물보다 복잡하다.

공주의 남자에서 단종이 죽는것을 간략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끝냈다. 더군다나 금성대군도 사약을 받고 죽는 것으로 끝냈다.

문제는 정종이 죽고, 금성대군도 죽고, 단종이 죽는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마침내 문종과 단종 등이 저승사자가 되어 세자를 끌고 간다는 설정이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설정인지 모르겠다. 정종이 죽은 때는 1461년 이고, 세자 도원군(장: 숭)이 죽은 때는 1457년이다. 숭이 죽자, 금성대군이 죽고, 단종이 죽는 순서이다. 그리고 정종은 1461년에 죽는다. 더군다나 경혜공주의 유복자로 나오는 정미수는 1455~1456년경에 태어난다. 시계를 돌려도 타임머신 모드인가.

세자 숭이 죽을 때는 20살이 되었을 때이다. 1461년을 기년으로 하면 세령은 30살이 넘고, 숭은 24살이 넘어야 한다. 그런데 어느덧 1467년 5월 이시애의 난이 일어난 것으로 그리고 있다. 정미수가 1467년에 태어났다는 말인가? 아니면 세자 숭이 1467년에 죽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이시애가 1457년에 반란을 획책했다는 것인가?

아무리 막장 멜로에 민폐 김승유를 주인공으로 했다고 해도, 너무한것 아닌가?

오늘날만 막장극이 있었던건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공주와남자 같은 막장 드라마가 있었다.


조카의 왕위를 강탈한 세조를 비난하기 위한 또 하나의 좋은 소스를 제공한다. 세조가 나쁜놈 임을 증명하는 증거물로 형왕(문종)의 아들 단종도 죽이고, 문종의 딸 경혜공주까지도 관노비로 만들고 단종의 어머니 묘도 파헤쳐 바다에까지 버린 세조는 파렴치한 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소릉은 문종(文宗)의 비(妃)인 현덕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의 옛 능호(陵號)이다.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어 시해한 뒤 세조의 꿈에 현덕왕후의 영혼이 나타나 “죄 없는 내 아들을 죽였으니, 나도 네 아들을 죽이겠다.” 하였는데, 꿈을 깨자마자 세자의 운명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격분한 세조는 소릉을 파헤쳐 버리도록 명하였다.

이때 어떤 승려가 바닷가에 떠 있는 현덕왕후의 관을 발견하고 숲 속에 묻어 두었는데, 중종 8년에 소릉을 복위하자는 소세양(蘇世讓)의 주청으로 인하여 문종의 능인 현릉(顯陵) 곁으로 이장하고는 함께 현릉이라 부르게 되었다. 《燃藜室記述 文宗朝故事本末 昭陵廢復》


세조가 단종을 죽이자, 문종 비인 현덕왕후가 세조의 꿈에 나타나 내아들 (단종) 도 죽였으니  니(수양대군) 아들(의경세자)도 죽일거라는 꿈을 꾸었다“는데 단종이 죽고나서 의경세자(숭)이 진실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조가 현덕왕후가 묻혀 있는 경기도 안산의 현덕왕후의 능인 소릉를 허물고 관을 파서 버렸다는 말도 진실처럼 돌아다닌다.

한마디로 어떤 효자가 어머니 병을 고치기 위해서 무덤을 파서 시체를 뜯어와 어미에게 먹이려는데 시체가 벌떡일어나 내다리 돌려줘 하는 전설따라 삼천리에 나옴직한 이야기다.


단종이 죽은 때는 세조 7년 1457년 10월 이였고, 세조(수양대군)의 맏아들 의경세자가 죽은 때는 1457년 9월 2일이었다. 의경세자(장,숭)이 먼저죽고 단종이 후에 죽었다. 요즘으로 하면 불가능한 일이 당시에는 사실처럼 퍼진 것이다. 이를 근거로 세조가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의 소릉을 파서 관을 버렸다는 말이 퍼진 것이다.


더군다나 소릉이 파헤쳐 바다에 버려진 적도 없다. 단지, 소릉이 일반인의 무덤으로 지위가 떨어지고, 소릉에서 사용된 왕비로써의 사용된 기물들이 철거하고 이장된 것이다.


1456년 6월1일 사육신의 단종복위가 실패로 돌아갔는데 사육신의 단종복위에는 사육신의 배후에 단종이 있었고, 단종이 수괴였다. 성삼문과 권자신은 상왕 단종이 자신들과 여러 번 반정복위에 대한 계획을 세웠고, 1456년 6월 1일 당일에 상왕 단종이 세조를 죽이는데 사용할 큰칼까지 주었다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곧 단종이 사육신의 배후이며 수괴라고 자복한 것과 같다.


사육신 중의 한명인 권자신은 현덕왕후 권씨의 동생이었다. 만약, 단종이 권력에서 물러나지 않았다면 권자신은 외척으로 어린 단종을 대신해서 권력을 행사했었을 것이 자명하다.


단종의 매부인 정종과 누나인 경혜공주도 단종이 왕이었을 때  수 없이 많은 재산을 불렸다.


그래서, 권력의 정점에서 물러난 권자신으로서는 단종복위의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만했다. 문제는 권자신 뿐만 아니라 권자신의 어머니 최씨와 연락책인 최씨의 노비가 연루가 되었다.


1456년 6월 사육신 사건은 상왕 단종이 수괴가 되고, 외삼촌 권자신, 외할머니 최씨가 연루된 중대한 사건이 된 것이다.


그래서 현덕왕후는 왕후에서 일반인으로 격하된다. 묘에도 격식이 있었고, 주택에도 격식이 있었고 복식에도 격에 맞아야 했다. 공신이 되면 아버지나 자식도 공직이 증가된다. 마찬가지로 반역을 하게 되면 격하되는 것도 일반화 되어 있었다. 이런 연유로 현덕왕후가 격하되고 격식에 맞게 이장된 것이다.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현덕 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의 어미 아지(阿只)와 그 동생 권자신(權自愼)이 모반(謀反)하다가 주살(誅殺)을 당하였는데, 그 아비 권전(權專)이 이미 추후하여 폐(廢)하여서 서인(庶人)으로 만들었으며, 또 노산군(魯山君)이 종사(宗社)에 죄를 지어 이미 군(君)으로 강봉(降封)하였으나, 그 어미는 아직도 명위(名位)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마땅하지 않으니, 청컨대 추후하여 폐(廢)하여서 서인(庶人)으로 만들어 개장(改葬)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세조 2년 , 1456년 6월 29일


예조에서 종묘서(宗廟署) 의 정문(呈文)에 의하여 아뢰기를,

“현덕 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의 신주(神主)와 의물(儀物)을 일찍이 이미 철거하였으니, 그 고명(誥命)과 책보(冊寶)와 아울러 장구(粧具)를 해당 관사로 하여금 수장(收藏)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세조 3년 1457년 9월 7일



하지만, 현덕왕후 소릉에 사용 내용물들은 종시부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성종 때 고명과 장구들을 종시부에서 내려 태워버린다.
 

현덕빈(顯德嬪) 의 교명(敎命)·죽책(竹冊)과 보(寶)를 종부시(宗簿寺)에 내려 불사르도록 하였다.

- 성종 7년, 1476년 4월 15일


연려실기술이나 현덕왕후 관련 세조가 소릉을 내다 버렸다는 설은 세조 2년 1456년 6월 29일의 소릉을 일반서인의 묘로 격하시키고 개장(이장)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1457년 10월 단종이 죽고, 1459년 9월 2일 의경세자 숭(장)이 죽고, 1456년 6월 29일 세조가 소릉(현덕왕비릉)을 판 것이 아니다.


1456년 6월 1일 사육신 사건으로 단종, 권자신, 현덕왕비의 어머니 최씨가 연루되어 현덕왕후가 서인으로 격하되고, 1456년 6월 29일 능도 그이 맞추어 이장된 것이 사실이다. 개장(이장)과 버린다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 무슨 수양대군(세조)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있었겠는가?
 

1456년 6월 이후 사육신 사건으로 단종의 외삼촌 권자신, 외할머니 최씨가 죽는다.

1456년 6월 29일 현덕왕후가 역모의 주역의 가족이란 이유로 서인으로 격하되고 개장(이장)된다.


1457년 6월 단종 장인인 송현수가 반란을 획책하다.

1457년 6월 21일 단종이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격하되고 영월로 유배를 떠난다.

1457년 6월 27일 금성대군, 이보흠과 반란 획책하다 들킴

1457년 8월 송현수가 관노가 됨.
 

1457년 9월 2일 의경세자(장,숭)이 죽음.


1457년 10월 21일 송현수가 교형에 처해지고, 금성대군은 사약을 받고 이후 죽음.


1457년 10월 21일 단종(노산군)이 죽고 예로서 장사지내게 함.



이긍익이 채록한 열려실기술의 기록은 1457년으로부터 1456년 과거로 진행되는 이야기구조이다.


정상적인 이야기라면 의경세자가 죽자, 현덕왕후가 세조(수양대군)의 꿈에 나타나 “니 자식은 내가 죽였다”라고 해서 세조가 단종을 죽였다라고 하면 좀 더 그럴듯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드라마틱하게 세조는 나쁜놈에 또 하나의 덧칠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단지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사실처럼 널리 퍼지고 진실처럼 되어 버렸다.


태종 이방원은 왕자의 난으로 세자였던 방석을 몰아내고, 아버지 이성계가 죽자 1409년 현재 정동에 있던 계모 신덕왕후 강씨의 묘를 성 밖 (현재 서울 성북구 정릉2동) 정릉으로 옮겨 버린다. 왕비릉에서 사용되어진 석물들은 광통교 다리건설에 사용되어지기도 한다.


다음은 1456년 현덕왕비 소릉을 폐한 후 일반 서인의 무덤으로 이장해서 묻은 현덕왕비의 무덤을 58년이 흐른 후 사림파들의 연산군을 몰아내고 반역에 성공한 후 1513년 중종 8년 개장(이장)하여 문종이 있는 현릉의 부부릉으로 옮길 때의 기록이다.
 

여름 4월 17일에 소릉의 옛 무덤을 열었다. 제조 송일과 김응기 등은, “신 등이 당초에는 기간이 오래되어 관곽이 부패해서 남은 것이 없을까 깊이 염려하였으나, 막상 열어서 살펴보니 안팎 관곽이 다 있고 염습(歛襲)이 완전하나 너무 오래되어 다만 형체만 있으므로 새 관곽과 새 의금(衣衾)으로 바꾸어서 범사에 유감없이 하였으며 또한 다시 염할 때는 궁인 및 내관이 나아갔지만 막대한 일을 친히 감독하지 아니할 수 없으므로 신들이 염습을 친히 감독하였습니다.” 하고 아뢰었다. 《동각잡기》


처음 능을 파헤쳐서 해변에 옮겨 묻은 뒤로는 전소(奠掃)와 수호(守護)의 끊어진 지가 수십 년이 되니, 거민들이 단지 언덕 하나가 그곳이라고 전해온다고 알고 있을 뿐 타설(他說)이 있어 사람을 의혹케 하였다.


천장하려 할 때 땅을 깊이 팠으나 관이 보이지 않아 어찌할 줄을 몰랐더니 포초록(圃樵錄)에는 관 있는 곳을 알 수 없었으므로 군인(軍人)이 물가에 늘어서서 일제히 그 진흙을 파헤쳐 산발치까지 갔으나 보이지 아니 했는데 감역관(監役官)이 꿈에 신의 말씀을 받아서……”라고 하였다.


이 날 밤에 감관(監官)이 졸고 있는데 꿈에 왕후를 뵈니 장전(帳殿)에서 안석에 기대어 왕후의 위의를 갖추고 두 시녀가 모시고 있었다. 감관을 불러 위로하기를, “너희들이 고생하는구나.” 하니, 감관이 엎드려 절하고 놀라 땀을 흘렸다. 잠을 깨어 이상하게 생각하고 다음날 아침, 두어 자 더 깊이 파니 곧 손바닥 넓이만한 관의 칠편(漆片)이 삽날에 찍혀 나와 관을 발견함으로써 능히 일을 잘 마쳤다. 《음애일기(陰崖日記)》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 합록(合錄)》


창졸간에 옮겨 묻고 성소(省掃)를 폐한 지 너무 오래되어 시신을 찾지 못할까 걱정했으나 능을 열고 본즉, 안팎 관이 다 형체가 있고 염습이 완전하였다. 관은 바꾸고 법의(法衣)로 관의 빈 구석을 메 꾸었다. 《음애일기(陰崖日記)》



위의 기록 등 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개장(이장)을 위해서 삽으로 팠지만, 예상보다 깊이 묻혀있었고, 칠편(옻칠)으로 안팍 관곽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도 정성껏 묻은 묘도 60년 가까이 지나 묘를 파면 묘가 제대로 있을 확률은 별로 없다. 현덕왕비 묘가 제대로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닷가였고, 벌이 침투해서이지 않을까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이라가 발견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조선의 잘못된 장묘법이 미이라를 양산했다. 주자(주희)가 주창한 매장법은 미이라를 양성할 수밖에 없었다. 회(생석회)갑으로 둘려쳐저 있어 공기와 차단이 되고, 생석회는 물과 만나면 발열반응이 생겨 시체와 묘속에 있는 초기 미생물을 죽이게 되고, 요즘도 생회가루가 구제역 등 방역에 많이 사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석회가루는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져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된다.


주희는 무덤 속 시체가 빨리 썩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장묘법을 만들었지만, 오히려 주희가 주장한 장묘는 아이러니하게 미라만 양성했다. 시체가 썩지 않고 있으면 당시에는 영혼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원한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서인의 묘로 격하된 현덕왕비의 묘는 조금은 다른 과정으로 멀쩡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니 바다에 떠내려가 현덕왕비의 관을 중이 창졸간에 묻었다는 말은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하겠다. 한마디로 비극적인 왕비의 전설따라 삼천리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물론, 창졸간에 왕비릉에서 단종이 폐위되고, 형제와 어머니가 서인이 되었고, 마침내는 아들 단종까지 세조로 인해서 죽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무덤에서 벌떡 일어설 만한 건 사실이다. 더불어 세조가 무덤까지 파서 바다에 버렸다는 세조(수양대군) 나쁜 넘 프로젝트 이야기는 사실처럼 비쳐질 만큼 충분한 드라마틱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또 하나의 세조 죽이기 작업과 사육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림 측의 선전물임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낭설이 사실인 것처럼 소설로 만들어지고, 드라마로 제작되어서 드라마로 역사를 배운 사람들이 세조를 비난하면 지식인처럼 호도되는 지경에 까지 왔다.


소설과 드라마는 역사와 하등 상관이 없다. 특히 최근에는 사이비 역사학자들조차 교차검증이나 문헌고증을 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낭설을 사실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믿고 싶은 것이 사실이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역사도 아니다. 드라마가 아닌 역사를 알고 싶다면 다음 아래글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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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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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www.focaltablet.com/8-inch-tablet-pc_c407.html BlogIcon 8" android tablet 2012.09.02 17: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탈한 세조를 비난하기 위한 또 하나의 좋은 소스를 제공한다. 세조가 나쁜놈 임

  3. Favicon of http://www.jihoy.com/ BlogIcon free advertising for small business 2012.09.17 2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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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만 막장극이 있었던건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공주와남자 같은 막장 드라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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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21. Favicon of http://ford.grupocaiuas.com.br/fiesta-sedan BlogIcon fiesta sedan 2013.01.25 0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Google에서 블로그 사이트를 발견하고 조기 게시물 몇 가지를 확인하십시오. 아주 좋은 작동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합니다. 난 그냥 내 MSN 뉴스 리더에 RSS 피드를 추가. 나중에 당신에게서 더 읽어 앞으로 추구! ...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은 죽기 전에 태중 이름을 지어준다.


아들인지 딸인지 모른다며 두 개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그런데 왜 정종은 태중 아이의 이름을 지어줄까?


사실 정종이 정미수의 이름을 지어준다는 설정은 잘못된 기록에서 기인한다.
 
정미수는 세조가 궁궐에서 정미수를 키우면서 "鄭眉壽"라고 지어준 이름이다. 오래오래 살라는 의미가 있다. 물론, 아명은 정종과 경혜공주가 지었을 것이다. 1461년 10월 정종이 죽을때 정조는 정미수는 여닐곱이라고 기록하고 있었다. 서거정의 예와 사관이 경혜공주가 죽을 때 정미수는 1473년 16세 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부러 정종과 경혜공주가 세조와 적대적인 것으로 만들다 보니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이 죽으면서 지어준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다.

1455년 6월 정미수는 정종이 유배를 떠야야 하고,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양위를 할 시점에 이미 경혜공주의 복중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경혜공주는 유배를 떠날때 이례적으로 교자를 타는 복을 누린다. 왜 경혜공주는 특혜를 받아야 했을까? 

당연히 경혜공주의 배가 불러왔기 때문에 걸어서는 움직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경혜공주가 관노비가 되었다는 설도 잘못된 이야기에서 전해진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세자 숭(장)이 정종이 죽고난 후에 죽는 것으로 그리고 있고, 숭이 죽기전에 단종과 금성대군이 죽은것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세자 도원군 장(숭)은 1457년 9월 2일 죽는다. 김승유는 1463년 이시애의 난에 참가를 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1457년 도원군 장이 죽고, 금성대군이 죽고, 단종이 죽고, 그리고 1461년 정종이 죽는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시계가 꺼꾸로 가다 못해 뒤죽박죽이다. 공주의 남자를 따라가기도 힘에 부친다.


현대는 역사자료도 인터넷으로 쉽게 찾을 수가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기록을 찾기가 힘들었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책을 통해서 일수밖에 없다.


속담에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말이 있듯이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간다.

문제는 말로서 퍼지는 여론은 살이 붙는다는 것이다. 감기가 걸렸다고 하면 마지막에는 죽었다고 알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에도 잘못된 정보가 인터넷에서 퍼지는 것처럼 당시는 지금보다 더 빠르게 잘못된 정보가 넘쳐나게 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양반들이 여론을 주도했고 이를 알리는 방법은 사발통문이었다.


정종이 죽고 경혜공주가 복중에 유복자 정미수를 가지고, 관노가 되어서 모욕을 당했다는 말도 그렇게 만들어져 사실처럼 세조시기 전국방방곡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순천관노가 되었다거나 아니다 장흥관노라더라고 살이 붙고, 피가 되어 소문이 살이 되어 진실이 되어간다. 



공주의 남자에서도 세조(수양대군)은 정종이 반란으로 죽고, 금성대군을 사사하고, 단종도 사사한다. 그리고 경혜공주는 변방의 순흥 관노로 보내버린다.  드라마를 보고 세조와 한명회, 신숙주 나쁜놈이라고 했다면 드라마가 역사가 되는 현장을 보고 있는 것이고 사림파의 프로파간다에 속아넘어간 것이다. 그동안 많은 드라마들이 역사가 아닌것을 역사처럼 드라마에 차용하였다. 그에 놀아난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역사화 되었다.

경혜공주 관노비설과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에 대해서 역사적 진실을 알고 싶다면 다음 글들을 참고 하기 바랍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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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www.howmakemoneyeasy.com/ BlogIcon how to make fast money 2012.10.24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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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 후 이제 귀하의 웹사이트에 블로그 게시물의 일부, 그리고 진정한 블로깅의 방법이 좋아요. 난 곧 내 북마크 사이트 목록에 북마크를 다시 확인합니다. PLS으로 내 웹 사이트를 확인하고 내가 뭘 생각하는지 알려주십시오.

천명(박예진)

그동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만을 토대로 천명과 덕만이 어머니가 다른 이유를 증명하였다.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천명은 덕만과 같은 어머니 일지라도 천명이 나이가 많고, 덕만은 나이가 어린 동생이라고 주장했었다. 이제 천명은 절대로 마야의 소생이 아님을 증명하고, 마지막 가능성을 버릴려고 한다.

일단, 천명의 나이를 정확히는 알수는 없지만, 천명의 아들인 춘추가 603년 생이라는 사실은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천명의 나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천명이 13~15세에 용수(용춘)에게 시집을 가서 603년 춘추를 낳았다면, 천명은 587~589년 생이다.

그럼 천명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살펴 볼 차례이다. 천명의 아버지는 진평왕이다. 진평왕은 13세인 579년 진지왕이 폐위되고, 26대 신라국왕에 등극했다. 그렇다면 진평왕은 567년 생이 된다. 만약, 마야가 천명의 어머니라는 가정하에서 마야의 나이를 유추해 보자,

마야가 진평왕과 같이 등극시나 등국후 바로 왕후가 되었다면, 진평과 나이가 비슷할 것이다. 신라에는 13세 이전에 결혼하는 것 보다 더 빠르게 결혼을 하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는다. 또한, 민며느리제도가 꼭 동옥저만의 풍습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안의 어린 신부를 맞아 키워서 정식 며느리로 삼는 경우가 조선시대까지도 비일비재 했었다. 진위를 알 수 없는 화랑세기에는 12세 풍월주 보리는 13세에 결혼을 했지만, 아내인 보룡(만호/숙태자)는 7살에 시집을 갔다.  또한, 일제시기 여성를 성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막기위해서 어린신부들이 일찍이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성만이 알 수 있는 진평/마야와 천명/덕만의 생리학적 접근

그렇다면 마야는 진평왕과 같은 나이로 유추해 보자.


진평,용춘,천명,춘추의 생몰년 비교와 마야,천명,덕만 나이 추정


진평왕은 천명을 19~23살 정도에 낳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시 시대상황으로 보면 조금 늦은 나이때 천명을 낳은  것이다. 그렇다면 천명위로 진평왕에게 몇몇의 자식이 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이제 천명의 주변에 관한 이야기는 그만 하고, 이전에 추적한대로 덕만의 출생시기는 632년 15~18세에서 정도로 추측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이유는 632년 등극과 동시에 대신인 을제에 국정전반을 관할하게 하여, 일종의 을제 섭정기간이 지나고, 634년 선덕왕 2년 음갈문왕과 결혼을 하고, 진평왕이 사용하던 <건복>이란 연호를 <인평>으로 바꾸면서, 진평왕의 유흔통치를 끝내고, 직접통치의 길을 나섰음을 신라에 천명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덕만은 615년(18세등극시)생에서 618년(15세등극시)생 사이가 된다. 

왜 덕만은 어린나이에 왕이 될 수 밖에 없는가? 이와 관련된 기사는 다음 목록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럼 천명과 덕만의 기록을 비교해 보자, 천명은 585~589년생이고, 덕만은 615~618년 생이다. 이들간에 나이차는 최소 27살에서 많게는 34살 차이가 난다.

615년에 덕만의 아버지 진평(567년생)과 어머니 마야는 567년생이니 이들이 덕만을 낳을때 나이는 49~52살이 된다. 아버지 진평으로써도 늦은 나이이기도 하지만, 남자라는 동물은 문지방 넘을 힘만 있다면 얼라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문지방 넘을 힘이 없고,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애를 낳을 수 있다.

덕만(이요원)

하지만 여성인 어머니 마야의 나이는 여성의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이례적이지 않는가? 더 나아가 덕만이 618년 생이라면 마야의 나이는 52세가 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분명히 덕만는 마야의 소생이라고 했다.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은 마야는 진평왕이 679년 왕위에 있을때 왕후가 아니라는 반증이지 않을까? 물론, 현재 기네스 북에 등재 된 최고령 자연임신과 출산은 59세이다. 현재 의료가 발달된 혜택을 충분히 보고 있는 영국의 사례이다. 한국의 사례는 52세가 최고령 출산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현대 여성의 폐경기는 45~50세 전후로 알려졌다. 과거 신라사회에서도 여성의 폐경기가 44~52세 정도였을까? 마야가 아주 늙은 나이때 덕만을 낳았을 수도 있다. 이는 아주 특별한 케이스가 된다. 차라리 천명이 덕만을 낳았다면 믿겠지만, 마야가 20전후에 천명을 낳고, 49~52세에 덕만을 낳았다고 한다면 한번은 의심해 봐야 한다. 또한, 마야가 18세~19세에 천명을 첫딸로 낳았다라고 생각한다면, 신라의 결혼 풍습을 알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2007년 기준 통계청 자료, 여성 년령대별 합계출산율표


위의 표는 2007년 전국의 가임여성15~49세의 합계출산율을 반영한 것이다. 45~49세 여성은 이처럼 현대의학과 영양이 충분히 공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1.25명의 0.2%만을 담당하고 있다. 그냥 표로 보았을때 실감이 나지 않지만, 이를 그림으로 본다면 어찌될까?

2007년 통계청자료, 여성 연령대별 합계출산율

삼국사기 기록대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여서 "천명은 진평왕의 딸이고, 덕만은 진평왕과 마야의 장녀이다"를  받아 들인다면, 합리적으로 천명은 진평왕 초년에 왕비인지 후비인지 이름을 알 수 없는 비에게서 낳았고, 덕만은 진평왕 초년의 왕비가 죽거나, 늙어서 아들을 낳기 위해서 들은 후비였거나, 정비로 받아들이고 덕만을 낳았다고 보는게 합리적이 해석이 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기록대로 마야의 나이가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진평과 마야의 장녀인 덕만을 615~8년경 낳았다고 보는게 합리적일까요? 아니면 기록되지 않는 천명의 어머니까지도 마야가 되어 588년경 천명을 낳고, 615~8년경인 49~52살 정도에 덕만을 낳아다고 보십니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는 다르게 화랑세기는 "천명과 덕만의 모후를 마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박창화가 1930년대에 창작한 역사소설이 될수 밖에 없는 핵심적인 키가 됩니다. 마야가 천명과 덕만의 모후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생리학적으로 근거가 부족하다, 그러니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박창화의 창작 역사소설이다. 라고 결론을 낼 수도 있습니다.

마야(윤유선)

하지만, 여기에는 약간의 트릭이 숨어 있습니다. 마야를 진평왕과 같은 나이로 추측했다는 겁니다. 이 함정에 벗어 난다면 쉽게 생리학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진평은 13세에 왕위에 등극하고 18세 친정체제를 구축하면서 꽃다운 13세 전후의 복승/송화(지소/영실)의 딸, 마야를 왕비로 맞이 했다면 당연히 마야가 더 어렸을 수도 있습니다. 진흥왕은 7살에 왕이 되었는데, 화랑세기에는 진흥비인 사도(기오/흥도) 또한, 7살이였다고 합니다.

그럼 위에서 불가능할 것 같은 49~52세는 가능한 44~47세가 됩니다. 49~52세는 불가능한 나이가 되지만, 물론, 3%의 극히 낮은 분포에 해당합니다만, 44~47세는 생리학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 않습니다. 진평왕이 22살, 마야는 꽃다운 낭낭14~18세 미만에 천명을 낳았고, 44~47세 이전인 615년에 늦둥이 덕만을 낳았다. 그러니 천명은 덕만과 같이 마야의 소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단, 삼국사기의 기록을 부정했을때 라는 단서가 붙습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을 신뢰한다면 덕만과 천명은 이복자매 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천명과 덕만의 모후는 마야' 라는 화랑세기를 불신할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위에서 언급을 했지만, 40대 중반에 덕만을 낳았다는 불가능한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해 9월 진평제는 보명과 미실을 좌우후로 삼았다. - 화랑세기 22세 풍월주 양도

화랑세기에는 마야가 진평왕 초년의 왕후가 아니였음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진평은 초년에 보명(지소/구진)과 미실(미진부/묘도)을 좌.우 왕후로 했다고 합니다. 마야가 진평의 첫번째 왕후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화랑세기를 무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겁니다. 화랑세기는 파고들면 파고 들수록 빠지는 마약과도 같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방점을 찍어 두고, 화랑세기의 동부동모 자매간을 가능성으로 열어 두고자 합니다. 어떤것을 선택하던 덕만은 18세미만에 왕위에 올랐다는 불변입니다. 마야는 진평의 첫번째 왕후가 아니였다는 겁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왜 홍시가 홍시맛이 나는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습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봐야 아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천명을 마야의 소생으로 볼것인가 말것인가를 결정하고 삼국사기.유사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느냐 하는 거지요. 만약, 삼국사기를 불신한다면, 최소한 천명, 덕만, 마야의 관계는 화랑세기가 정확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문화.연예 카테고리 다수를 차지 하고 있는 여성들이 그 답을 줄 차례입니다. 어떠십니까?

문제의 핵심은 마야가 진평의 초기 정비라는 가정에 따른 겁니다. 만약, 마야가 진평의 첫번째 왕후가 아니고, 손승만 왕후처럼, 왕자를 생산하기 위해서, 알려지지 않았지만 천명을 낳은 생모 뒤를 이어서 왕후가 되었다면, 천명과 마야, 덕만과 천명의 관계가 아주 자연스럽게 해결이 됩니다. 또한, 천명을 대신해서 덕만이 왕위를 이을수 밖에 없는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합니다.

화랑세기에서 처럼  덕만도 천명의 양보로 진평의 뒤를 이어 27세 신라왕에 올랐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물론, 조선시대 세종이 형들의 양보(?)로 이방원(태종)의 4째 아들로 왕위를 이을 수 있습니다. 왜? 세종이 이방원의 셋째아들이 아니고 넷째 아들이냐?고 반문하는 분들 
2009/07/30 - [역사이야기] - 조선 세종, 신라 덕만, 천명의 기록 비교해 보니  기사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어짜피 천명이 덕만보다 나이가 최소한 27~34살은 많은 진평의 자매간이다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마야는 진평의 첫번째 왕후인것 같습니까? 천명과 덕만이 마야의 딸인것 같습니까? 아니면 천명과 덕만이 다른 어머니를 두었던 것 같습니까? 이 세가지 명제가 모두  참이 되기 위한 조건은 여성은 폐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리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마야는 진평의 첫번째 왕후는 아니다'. '천명은 덕만의 나이 많은 언니다'라는 명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으로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봅니다.

다만, '천명과 덕만은 마야의 딸이다'라는 화랑세기의 명제는 불가능하지만 여성의 생리학적으로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만 언급을 하겠습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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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8.17 06: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후. 복잡하군요. 나이가^^ 그런데 이걸 어떻게 다 정리하셨어요? 전 그냥 봐도 머리가 아픈데. 존경합니다.

  2. Favicon of http://theruth.tistory.com BlogIcon 루스(ruth) 2009.08.17 06: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엄청난 분석이신데요. 눈이 띠용~ @_@

  3.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17 07: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복잡하지만 한눈에 보기 좋게 정리하신 갓쉰동님 덕분에 또 새로 복습하고 갑니다. 블로그 제목은 바꾸셨는데 닉네임은 아직 안바꾸셨나봐요?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07: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___^
      닉을 한꺼번에 바꿔어 버림 기존 사람들이 모르잖아요.. ㅋㅋ

      이번주내에 다음 메인에 한 두번 올라가면.. 그럴리는 없겠지만,.. ㅋㅋ

  4. Favicon of http://blog.daum.net/gnathia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8.17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대단하십니다.. ^^

  5. Favicon of http://starculture.tistory.com BlogIcon 아이러니♡ 2009.08.17 08: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야 정말 엄청난 글을 올려주셨네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6. 2009.08.17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17 10: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기를 누설 하셨군요...
    이젠 왠만한 남성도 감 잡게 되었다는 ㅋ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막바지 무더위 잘 넘겨
    건강하게 지내시시는 이번주 되시길 바랍니다.

  8.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17 14: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9. Favicon of http://dreamnet21.tistory.com BlogIcon 김명곤 2009.08.17 22: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특한 분석에 한 수 배웁니다.
    갓쉰동보다 이반도 더 맘에 들고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8 08: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댓글을 달아 주시고..

      이반이 좀 부드러운 이미지 같기는 하지요? 숨어 있는 이미지는 전혀 상반되는데요.. ㅋㅋ

  10.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삼국사기는 덕만을 진평왕의 장녀이며, 마야부인의 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삼국사기의 기록에 대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거나 이설이 있음을 곧잘 지적하던 일연은 진평왕의 장녀이며, 마야부인의 딸이라는데 이의제기하지 않고 있다.


화랑세기의 무서움은 기존 사서의 빈틈을 칼처럼 파고 들고 있다. 그동안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거나, 또는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한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선덕여왕이 덕만에 관한 기록에서도 화랑세기의 위력은 발휘된다.

그런데 뜸금없이 화랑세기는 무슨 소리, 덕만은 진평왕의 딸인것은 분명하고, 마야부인의 딸인것은 맞지만, 천명이 맏이고, 덕만은 천명의 동생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화랑세기도 덕만이 천명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말하지 않고 있다, 화랑세기는 무엇을 근거로 덕만이 천명의 동생이라고 했을까? 그건 화랑세기에 맡기도록 하자. 언젠가는 화랑세기를 심층 분석할 때가 올것이다.


사실 덕만의 기록을 심층분석하고 있는 이유도 현존 화랑세기의 진위논쟁에 뛰어들려는 의도도 어느정도 가지고 있다.
 
글쓴이는 그동안 덕만은 진평왕과 마야부인 사이에 태어났지만, 천명은 마야의 소생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더나아가 덕만이 기존에 알고 있던 늙었을때 왕위에 오르지 않고, 극히 젊은 나이때 즉위했다는  여러 증거를 제시하고, 이를 증명하였다.

또하나, 덕만과 천명이 다른 출자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이전글에서 흘렸다.

덕만이 가지고 있는 남성스런 이름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신라 당시에도 여성은 여성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덕만의 어미인, 마야, 진평의 어미인 만호(이것도 약간의 중성을 넘어 남성성이 보이긴한다.) 지소, 지조, 선혜왕후, 보희,문희 등 그 나름대로 여성성이 보이지만, 뜸금없이 덕만이라니, 덕만이 가지고, 있는 뜻은 결코 나쁜 뜻은 아니다. 덕을 널리 퍼트리고 길게 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전 글 [역사이야기] - 천명이 말한 덕만의 촌(?)스런 이름의 이유 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덕만의 이름이 가지는 남성성

덕만이 천명의 나이어린 이복동생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또 하나 있는데, 진평왕이 아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예전부터 아들은 없고 딸만 있는 집에서는 여자 아이의 이름에 남자의 이름을 붙혀 다음 출생자가 남자이길 소망하는 이름을 짓기고 한다. 또한, 여자이름 중에 끝순이, '말희', '끝네', '말자'라는 이름은 대부분 아이를 더 이상 낳지 말자는 뜻도 있지만, 여자 아이는 그만 낳자란 뜻을 포함하고, 삼신할미에게 다음은 아들을 점지해달라는 기원이기도 하다.

이름에서도 덕만은 위로 많은 언니들을 두었음직하지 않는가? 덕이 있으라는 뜻도 되겠지만, 태어나자 마자, 왕실에 아들들로 번창할 덕을 빌었음 직한 이름이니 말이다.

 
만약, 덕만이 천명보다 언니라면 진평왕의 첫번째 공주의 이름을 '덕만'이란 남성의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여쁜 공주의 이름에 덕만이라니, 다음에 왕자를 생산을 염원하기 위해서 '덕만'이라고 지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만만의 콩떡이 된다. 진평은 왕이다. 언제든지 왕자를 생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진평왕 초년에 덕만의 이름을 지었다면 진평왕의 머리가 좀 이상스러운 것이다.

 
덕만의 이름은 진평왕과 왕실의 절실한 적통을 이을 왕자를 바라는 이름이다. 또한, 마야도 제일 왕후는 아닌 것이다.  

덕만과 천명이 이복자매라는 또 다른 증거 (세종과 그의 형 경녕군)

또하나,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려고 한다. 우리가 너무나 잘알고 있는 조선시대 세종에 관한 기록이다. 세종을 우리는 이방원의 3번째 아들로 알고 있다. 그리고 세종이 즉위하게된 배경도 너무나 잘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에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과연 세종은 태종의 3번째 아들일까? 아니라고 한다면 총맞을 것이다. 그런데 세종은 태종(이방원)의 3번째 아들이 아니다.


일단, 세종(이도)을 태종(이방원)의 3째아들로 기록하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의 세종즉위 초년 세종이 세계를 기록한 내용을 살펴 보자.

세종 장헌 영문 예무 인성 명효 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
의 휘는 도(祹)요, 자는 원정(元正)이니, 태종 공정 대왕(太宗恭定大王)세째 아들이요, 어머니는 원경 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이다. - 조선왕조 실록 세종


이기록만 있다면, 세종은 태종의 3째 아들 같지 않는가? 그리고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라고 기록하고 있다.

녕군의 휘는 비(裶)이고 자는 정숙(正叔), 시호는 제간(齊簡)이다. 1395년(태조 4) 12월 13일 개성의 정안군(후의 태종)의 사저에서 효빈 김씨의 소생으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관후하며 효성과 우애가 깊었다. - 전주이씨 대동종보 경녕군

드라마 대왕세종을 본 사람은 이방원의 또다른 아들 경녕군이란 이름을 들어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태종의 아들이고, 후비 효빈 김씨 소생이다. 그런데 경녕군은 1397년생 세종(이도)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러니 경녕군은 세종보다 형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어머니는 효빈김씨로 세종과는 다른 후비 효빈 김씨라는 사실 뿐이다. 경녕군과 충녕군은 서로 출신성분 자체가 다르다.


그럼, 태종의 셋째아들은 누구일까? 세종일까? 아니면 경녕군일까? 경녕군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다. 답은 둘째로 알고 있는 효령대군이다. 드라마 세종대왕에서는 경녕군을 효령대군보다 아우(?)로 했었던것 같다. 기억에 의존하는 관계로 틀릴 수도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상식으로는 경녕군이였다.

사실 경녕군은 태종(이방원)의 첫째인 양녕대군(1394년) 다음 1395년에 태어났다. 그러니 1396년 태어난 효령대군 보다도 형이다. 그렇다고 해서 경녕군이 세종이 어미인 원경왕후 민씨는 될 수 없다. 물론, 의붓 큰어미이기는 하다.

그렇다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태종의 3번째 아들 세종(이도:충녕대군)은 잘못된 것일까?  답은 아니다, 세종은 태종의 3번째 아들이 맞다. 이유는 정비인 원경왕후 민씨의 3번째라는 것이고, 적통을 이을 3번째 왕자가 세종(충녕군:이도)이란 뜻이 된다. 왕의 계승서열 3순위인 3번째 왕자라는 것이다. 사사로이는 경녕군이 충녕군(세종)의 형이 되지만, 왕통서열은 존재조차 미미한 후비의 소생이 된다. 물론, 정비인 원경왕후 민씨가 후비가 되거나 폐출되어 폐서인이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왕가의 일은 적자/서자를 확실히 구분하고 있다. 양반, 서얼을 구분하고 있는 것처럼, 서얼은 처주지도 않았다. 특별히 기록하지 않는 한에는 말이다. 또한, 정비의 소생이냐 후비의 소생이냐의 차이에 따라 신분은 하늘과 땅이 되는 것이다. 같은 왕의 아들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한마디로 역사를 연구할때 적자, 서자, 적통를 구별할 줄 모르면 삼천포로 빠진다.  

설마 성골.진골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신라가 조선과는 다르다고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왕위를 잇는데 신라가 조선보다 오히려 더 엄격한 기준이 있었지 않겠는가? 진골도 아니고, 성골임금인데 말이다. 사실 글쓴이는 성골.진골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살피고 살펴봐도 성골은 없었다. 읽으면 읽을 수록 파고들면 파고 들수록, 왕족, 귀족의 구분만 읽었다. 

그럼 다시 신라의 선덕왕(덕만)이 왕위에 올랐을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자.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 삼국사기 신라 춘추왕 원년

이제 요즘과는 다른 적자/서자, 양반/서얼 등 왕가의 룰이나 양반가의 룰에 따라, 읽어보자.

이름은 덕만이고, 진평왕의 장녀(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이다.
김춘추의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이라고 했다.

삼국사기의 딴지맨인 일연이 삼국사기 선덕왕 즉위년 기사에 딴지를 걸지 않는 이유는 일연도 마야부인의 맏딸로 덕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딴지맨 일연이 삼국사기에 딴지를 걸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삼국유사에 진평왕의 늙으막에 얻은 승만왕후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 일연은 선덕 또한, 진평왕의 말년에  정비는 승만왕후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승만왕후에 아들이 없어 왕통을 이을수 없었기 때문에 덕만이 마야부인의 소생으로 왕통을 이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일연은 삼국사기에는 없는 덕만이 나이가 어렸을 것으로 짐작하는 기록을 남겨두고 있다. 덕만의 결혼기사이다.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여왕이 왕위에 있을때 결혼하고 있다니, 덕만이 왕위에 오를때 어렸다는 결정타가 아닌가? 물론, 남자왕처럼 비를 많이 바꾸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누구를 누구로 바꾸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봐서 첫결혼이라고 생각하는게 맞지 않을까 한다.

현존하는 <화랑세기>를 의심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누구도 하지 않은 이야기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이제 예고한 대로 선덕왕이 왕위에 올랐을때 덕만에 대한 평가를 보도록 하자.

위의 문장은 선덕(덕만)이 왕위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하자 없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이 문장은 뒤의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내용을 수식하기 위한 내용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덕만과 관련된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예사로 넘기기 어려운 기록이 있다.

성품이 너그럽고,어질다
  영묘사 화재사건을 일으킨 <지귀설화>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 

<김유신의 춘추/문희불쇼>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어찌 되었던, 현존하는 화랑세기가 진짜던 가짜던 상관없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만으로 김유신 감독, 각본, 주연, "김춘추를 내사람으로 " 드라마에서 등장한 덕만이 신라 여왕(632년~647년) 시기에 있었던 일이 아닌 진평왕의 공주시절(628년 이전)에 있었던 일임을 증명하였다. 


총명하다.
<모란꽃,모란씨서되>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민첩하다

200
631년에 진평왕 말년 <칠숙의 난>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아직도 <성조황고>를 들어서 덕만은 나이가 많았을 거야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분이나 "그건 니생각이고"라고 하는 분들은 [역사이야기] - 이요원보다 남지현 나이때 왕위에 오른 덕만 <황고>에 대해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근거를 제시했다. 귀찬으신 분을 위해서 요약하자면, <성조황고>는 성스런 조상을 둔 임금(황제)의 성숙한 여식이란 뜻이다.

너무 어릴때 628년이전 문희와 김춘추를 얶어준 사건이 628년이라면 너무 덕만이 이른시기가 아닌가? 의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덕만이 632년 왕위에 오르고, 632년 결혼하고, 연호를 바꾸는  것을 근거로 635년 18~20세 전후라면 <모란꽃>, <김유신불쇼> 사건들은 덕만으로서 너무 어릴때 사건이 아닌가 의심할 수 도 있다. 

632년 16세에 왕위를 이었다고 한다면, 627년은 11살때 일이고, 628년이면 12살때 일이다. 현재의 기준으로 좀 어려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모란꽃 사건은 늙은 왕이 아주 어린 공주에나 물어 봄직한 말이 아닌가? 그리고 당시엔 깜짝 놀랄 추리 능력을 보인 덕만을 보고, 진평과 대신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용봉의 자질이 보였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기록이  "
총명하다"는 기록으로 남았다면 어떨가? 또한, 12살이전에 있었던 김유신의 불쇼에서 살려준 문희와 그의 복중 아들 법민은 어떨까? 어리지만 너그러워움의 상징이 아닌가?  지귀심화에서 신분도 미천한 지귀를 위해서 행한 행동들은 "너그러움" 자체이다. 또한, 지귀심화로 소실된 영묘사와 잦은 화재사건으로 민심이 흉흉할때 처리하는데 부적같은 주문을 만들어 백성들을 안정화 시키는 것으로 너그러움과 총명함과 민첩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지귀는 마음에서 불이 일어  
몸을 태우고 화신이 되었네.     
푸른 바다 밖 멀리 흘러갔으니,  
보지도 말고 친하지도 말지어다.  

 志鬼心中火(지귀심중화)    
 燒身變火神(소신변화신)
 流移滄海外(유이창해외)
 不見不相親(불견불상친)


"너그럽고, 어질고, 총명하고, 민첩하다" 라는 말은 선덕왕이 왕위에 오를때, 단순한 미사어구가 아닌 , 덕만은 <성조황고>이니 정통성에 하자도 없을 뿐만 아니고 충분히 왕 노릇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PS. 사실 세종대왕의 기사는 천명과 덕만은 같은 어미의 자식이다.라고 주장하는 혹시 모를 딴지가 들어올 반박문을 위해서 남겨두었습니다만, 이제 노출합니다. 이외에도 연산군과, 광해군의 출자를 비교해 본다면, 왜 적통 적자/서자에 연연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왕실 암투의 시작과 끝은 적자들간에도 있었지만, 서자를 낳을 수 밖에 없는 정비와 후비들 사이에도 있었습니다. 후비가 정비가 되면,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소생들인 왕자나 공주들은 인생의 역전 대박 로또가 되니 말입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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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호.. 2009.07.30 2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보고갑니다. 이복형제라.....

  3. 헤윰 2009.07.30 2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해하기 쉽게 정리 하시느라 고생하셨겠어요.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4. 재밌네욤 2009.07.31 0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보았네요~~ 그런데 저도 앞에 계신 '성란'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신라시대의 골품제와 조선시대의 적장자 제도를 같은 기준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두 사회 모두 철저한 신분사회였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골품제와 적장제도를 연결시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것은 조선시대 등장한 적장자의 개념

    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저는 님께서 마지막 부분에 "설마 성골.진골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신라가 조선과는 다르다고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쓰신 부분에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역사를 전공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이렇게 단적으로 이야기를 하실 수 있을런지...

    각기 다른 시대의 신분제도를 이렇게 단편적으로 이어서 생각할 수 있는지 정말 놀랍습니다.

    물론 그 만큼 강력한 신분 사회였다는 점을 부각하고 싶으셨다는 느낌은 듭니다만...

    이러한 유교적인 관례가 뿌리 내린 것은 조선 성종 이후 경국대전 체제가 완성된 때 부터 입니다..

    단적으로 고려시대에는 왕의 후궁 중에 시집갔다 온 과부도 있었답니다..

    조선시대에 이런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겠죠..

    조선 초기의 족보에는 딸의 이름도 들어 있었답니다. 하지만 중기이후에 대전체제가 완성되면서 부터 아들

    을 중심으로 족보가 쓰여지고 있지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31 07: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적서는 비슷하고, 신라가 더 강경했지요..

      이미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것으로 충분히 증명했다고 생각하는데.. 중기 이후다라는 말씀을 하시다니..

      남.여, 적서 차별 등 중기 조선 중기이후에 심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초기 기록을 내 놓은것 아닌가요? 그것도 살펴 보시길..

      왜 하필 조선의 초기기록을 들어서 조선과 신라를 비교했겠는지요..

      이글로 답변이 충분히 되었기를..
      님들은 저의 주장을 더욱 강고하게 하는 보론 성격입니다.. 반론이 아니공..

  5. 흐음... 2009.07.31 0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클이 되겠습니다만.....그냥 왠지 썩 잘 읽혀지는 글은 아니라서....뭔가 말이 맞지 않네요. 제 이해력이 딸리는 것인지....

    "그렇다고 해서 경녕군이 세종이 어미인 원경왕후 민씨는 될 수 없다. 물론, 의붓 큰어미이기는 하다."

    ㅡㅡ> "그렇다고 해서 경녕군이 세종의 어미인 원경왕후 민씨의 아들(혹은 소생)이 될 순 없다. 물론, 그의 의붓 큰어미 이기는 하다." 라고 쓰셔야 말이 될듯 하네요.

    또 " 그러니 일연은 선덕 또한, 진평왕의 말년에 정비는 승만왕후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일연은 선덕 또한" 다음에 왜 진평왕 말년에 정비는 승만왕후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쓰신건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아요. -_-;

  6. 딩가딩가딩 2009.07.31 0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

  7. Favicon of http://otiliayoo@hanmail.net BlogIcon Blah 2009.07.31 0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 기억이지만 그전 국사선생님 중 한 분이 조선에 유교사상이 들어오기 전까진
    남존여비사상이 조선같지 않았다...고 하셨던 생각이 납니다.
    한 예로 여자가 재가를 하는 건 꿈도 못꾸는 조선시대와는 달리 그전까지만해도
    여자들의 혼인이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고 하시면서요.

    암튼 대단하십니다.
    덕분에 요즘 재밌게 보는 선덕여왕 더욱 재밌게 볼 수 있겠습니다.

  8. 가야진 2009.07.31 0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때는 사실 한 어머니, 한 아버지의 자식이라는 게 사실 의미가 불분명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혼은 허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남녀 모두가 중혼적 성격을 가진 연인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자식도 모계사회인 신라의 골품제에 따라 진골까지는 신분을 부여 받았으니까요.

    여성의 힘에 대한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요즘 천추태후 등에서도 황제가 죽은 후 연인을 두는 모습이 그려지잖아요. 그리고 현재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다수의 역사서에서도 조선의 유고 사상 또한 중기 이후 정착한 것이고 이전의 사회에서는 여권이 힘이 상당했을 것이라고 보잖아요. 물론 표면적으로는 남성사회로 이어져오긴 했지만, 전쟁이 많은 나라에서 남성의 권력이 사회의 기득이라고 보기에는 힘들다고 생각해요.(내조의 여왕처럼 전쟁에 나간 남성을 대신한 실질적 정치가 아내와 어머니등의 여성이 상당했으니까요.)

    이야기가 약간 옆길로 가긴 했지만, 저는 천명이 마야의 자식이 아니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잉첩들도 순수 혈통인 성골 출신으로만 이루어 져있기는 해도 이미 족강된 후이고, 천명이 후비의 자식이라면 정비의 자식인 덕만과 나이가 비슷한 상황에서 왕위계승자인 아들이 없다고해도 마야소생 이외의 인물이 권력을 가지기는 힘들지 않았을까요?

    신라에서 초혼은 대부분 왕을 제외하고는 여성의 골품이 더 높거나 같은 진골이라 해도 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가질 수 있는 여성이 자신보다 낮은 지위를 가진 이와 하는 것이 일반적이 잖아요.


    예전에 어디서 들은 말인지, 읽은 것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제 머리 속에는 성골에서 족강되면 진골의 가장 위 계층이 되고 최근에 족강된 사람이 더 오래전 족강된 사람보다 힘이 있다는 기억이 있거든요.
    이것이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 천명이 마야 소생이 아니라면 용수와 천명의 결혼은 불가하지 않았을까요?
    천명의 어머니가 성골이었다해도 용수보다는 더 오래전에 족강되었을테니까요.

    아, 글을 쓰다보니.... 아닐 수도 있겠네요. 천명의 어머니가 용수보다 나이가 어리다면, 저것도 가능하긴 할 것 같아요.

    휴, 요즘 선덕여왕 때문에 도서관에 선덕여왕 관련 책을 다 봐서 역사 공부는 되는데, 드라마 나이 설정이 뒤죽박죽이라 덕분에 제 머리도 뒤죽박죽이예요.

    글이 길어져버렸네요. 암튼, 저는 천명이 후비소생일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 글 덕분에 경녕군 이야기는 처음 알게 됬어요. 브라보~!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31 07: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후비이거나 마야이전 정비라고 했던것 같은뎅..
      족강은 조선이 더 심했지요.. 신라보단

      오르기도 힘들고, 내려가기는 쉽고, 하지만, 조선의 전란이후는 다르지만.. 돈을 주면 언제든지.. 파고 사는게 족이였으니요..

  9. 오타발견!! 2009.07.31 0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께서 쓰신 글인가요? 잘 봤습니다.

    코를 찔찔 흘리며 다니던 어릴 시적부터 역사에 관심이 깊었던 관계로 우연히 지나치다가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도 너무 좋아합니다.ㅎㅎ)


    여러 모로 도움이 많이 됐던 글인 것 같아 잘 보고 갑니다.

    근데, 서론에 나오는 일연의 이야기는, 삼국유사를 지은 그를 말씀하시는게 맞겠죠?


    예를 들면, 진수의 삼국지를 배송지가 주석을 달아서 했던 그런 부류와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어쨌든, "의의를 제기" 라고 쓰셨는데, 의의라는 것은 '말이나 글의 속 뜻' 을 지칭하는 단어인데,

    "이의를 제기" 라고 쓰셔야 할 듯 하네요.ㅎㅎ

    문맥상 '다른 의견이나 주장' 이 들어가야 맞을 듯한 전개네요.ㅎ

    어찌됐든 잘 보고 갑니다.^^ㅎㅎㅎ

  10. 향수 2009.07.31 06: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조목조목 잘 비교하시면서 쓰셨네요..
    그저 알려진 정도의 역사만 알뿐이었는데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되어 기쁩니다
    앞으로도 이런글 열심히 써주세요..
    부지런히 읽어드릴께요..

  11. 제가 알기로는 2009.07.31 0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명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미실과 천명 모두 오직 <화랑세기>에만 기록되어 있어 그 둘이 가상의 인물일 확률이 높다고 들었습니다.그런데 또 이런 글을 보니 흥미롭네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31 08: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천명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공히 있는뎅..

      3녀인 천화를 말씀하시는것 아니신지요?

      화랑세기에는 덕만이라고 하지 않고, 왕의 시호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선덕, 천명, 천화.. 조금 냄새가 나지요.. 선화의 다른 이름 같은 천화라..

      흥미로웠다니 감사할 따름이지요. ^__^

  12. 재주소녀 2009.07.31 0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렵지만...잼있네요~
    댓글 쓰는거 어려운거 아니네요
    ㅋ 부끄럽지만 처음 써봅니다.

  13. 캐스퍼 2009.07.31 0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어 보았습니다....
    글이 잘 정리 되신다면... 후에...
    "계급사회 변천사"를 쓰세요....
    아직까지....
    삼국시대 이전부터.. 그 이후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 강점기, 근대화 시대....
    변변한 "계급사회의 변천사"가 없었습니다...
    아주 좋은 책이 될것으로 보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31 0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무 어려운 말씀을 저는 그정도는 아닙니당.. 제 밥그릇도 있는뎅.. ㅠ.ㅠ.

      즐기는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당.. 고수는 널려 있는게 강호의 세계가 아니겠습니까?

      칭찬은 ㄳ히 받겠습니당.. 염치불구하공..

      물론 추천도 때려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댓글들을 다시는 분들이라면.. ㅋㅋ ^___^;;;

  14. -- 2009.07.31 1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은 잘 읽었습니다만...

    역시 신라의 골품제와 조선의 적서개념을 뒤섞으면 안된다는 댓글 의견에 동의합니다..

    적서개념은 부계를 따르는 것이고

    골품제는 부계와 모계에 모두 적용되는 겁니다..

    두 가지를 같은 원리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부계뿐 아니라 모계혈통도 중시되었기 대문에 지소부인이 힘을 쓸 수 있었던 것이고

    선덕,진덕여왕이 즉위할 수 있었던 것이죠.

    너무 사료를 쉽게 자의적으로 해석하셨네요...

  15. Favicon of https://azcaprice.tistory.com BlogIcon 아르제크 2009.08.30 0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 초기에 왕가의 적서 문제가 엄밀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이성계가 자신의 이모형 이원계가 '서자'라고 몰아 아버지 이자춘의 다루가치 직을 대신 취했기 때문
    (이 때문에 이원계의 자녀들은 이천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성계로부터 이반합니다)
    2. 이방원이 '서모'인(그러나 정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아들인 세자 방석을 '서자'라는 이유로 폐했기 때문
    3. 성리학의 부계일원적 구조를 이제 막 도입하는 시기였기 때문(또 태종 스스로가 성리학자이기도 했고요)

    왕가는 자신의 정통성 확립과 함께 사회변혁에 대한 솔선을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적서 구분에 목을 매단 것입니다.
    실제 여말선초 사회에서 적서의 구분은 심하지 않았고 오히려 애매모호한 측면조차 보입니다.
    그것이 조선에 들어서 세월이 흘러갈수록 점점 적자만을 인정하는 형태로 변해간 것이죠.

    예를 들어 조선 초기의 재상인 하륜은 3대째에 적손의 대가 끊기게 되었는데, 이 같은 사실을 접한 당시에 이러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하륜의 서손을 적손으로 인정해서 과거시험을 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죠. 그런데 논의 결과, 공신 집안 하나를 우대하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고 나라의 법을 확실히 하는 것은 국가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특별 대우는 해줄 수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만일 적서의 구분이 이미 당연하고 엄밀한 것이었다면 이런 논의 자체가 있을 수 없었겠지요.


    꼭 신라까지 갈 것도 없이 고려말만 보더라도, 이모형제(이원계-이성계-이화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 이부형제(이성림-염흥방)와 같은 케이스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관직에 등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조선 중기 이후의 엄밀한 적서차별과 재가녀의 자식에 대한 천대를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신라시대에 성골 진골 구분의 실체가 없었을 거라는 의견에는 저도 삼국사기 삼국유사 좀 읽은 사람으로서 동의합니다만, 갓쉰동님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서도 독자들에게 성골진골을 구분하는 신라라면 적서구분이 있었음이 당연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건 어떻게 된 영문인지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0 1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성골/진골을 믿는 사람이라면 단서가 붙은 거지요.. ^___^

      왕은 무치인데 적서의 차별이 있었겠습니까만은,, 공식적인 왕비의 후손이 왕통을 잇는것은 당연한거지요.. 1차 고려를 한다음 다음 수순으로 넘어가지 않겠습니까? 후계의 선택은 왕에 있는 것이고,,적이던 서던 말이지요.. 그러니 적서의 차별이 없었다고 할 수 없지요..

  16. 냠냠냠 2009.09.22 2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초혼이라고해서 나이가 어렸을껏이라고 생각하는건 말 그대로 '짐작'이겠지요.

  17. Favicon of http://kr.blog.yahoo.com/sppopsj BlogIcon 천산 2009.10.14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유사왕력보에 기록된 배필이 되는 飮갈문왕이 누구인지 밝힌 것입니다. 그리고 수절이라는 말을 쓰려면 남편이 죽은 후가 되는데, 갓쉰동님은 飮갈문왕이 선덕여왕 시절에 이미 사망한 사람으로 알고 계시네요! 왜 그렇습니까? 님의 주장대로라면, 서기634년에 飮갈문왕을 세웠는데, 언제 사망하였다는 것입니까?

  18. 레아 2009.10.22 1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이 젊었을때 즉위를 했다는 것에 대해선 태클을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진평왕은 10대 중반의 나이에 등극을 해서 왕위 계승기간이 자그만치 50여년이 되는데 선덕여왕이 젊은 나이에 등극을 했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선덕여왕이 젊은 나이에 등극을 했다면 그건 진평왕이 임기 말년에 마야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았다는 이야기 이며 더욱이 마야부인도 진평왕과 나이차이가 많이 났을 터이지만 역사서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22 2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덕여왕은 젊었을때 즉위한 것 같아용..
      마야부인이 천명의 어미라는 기록은 없지용.. 반면에 덕만은 마야와 진평의 딸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거든요. ㅋㅋ

  19. Favicon of http://kelvintrote.blogspot.com/2012/04/all-natural-devastation-survival-kits... BlogIcon soup can storage rack 2012.11.01 1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며 더욱이 마야부인도 진평왕과 나이차이가 많이 났을 터이지만 역사서 어디에도

  20. Favicon of http://blog.frents.com/fractional-ownership/fractional-ownership/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dogs for sale 2012.11.05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명의 동생이라고 했을까? 그건 화랑세기에 맡기도록 하자.

  21. Favicon of http://www.turks.us/article.php?story=20061205100319652 BlogIcon Housing prices 2013.05.01 1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사이트를 찾아 기쁘다. 나는 즐겼다 유용한 정보를 발견. 기사는 잘 작성하고 아이디어가 훌륭합니다.저자와 작가에 대한 좋은을 유지.

백제와 신라의 결혼동맹(?)은 4번에 걸처 있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자세한 사항은 이전에 포스팅한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에는 나오지 않는 백제와 신라 결혼, 서동과 선화공주 그리고

를 참조하길 바랍니다. 여기서는 법흥(원종)과 보과공주의 사랑인데, 보과공주는 과연 백제의 어느왕의 자식인가에 대해서 논의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니 동성왕녀은 아닐것이라는 암시를 했었습니다.

첫번째 법흥(원종과 보과공주)

첫 결혼의 첫테이프를 끊은 사람은 법흥(원종)과 동성왕녀 보과공주, 일단 보과공주라고만 하자. 
(3세) 모랑(毛郞)은 남모의 아우이다. 이에 앞서 법흥대왕이 국공(國公)으로 백제에 들어가 보과공주(宝果公主)와 더불어 사통을 하였다. 후에 보과가 도망을 하여 입궁하여 남모와 모랑을 낳았다. -화랑세기 3대 풍월주 모랑


참고 : [역사이야기] - 화랑세기엔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도 있다. 

에서 동성왕의 공주인 보과로 설정하여 포스팅을 하였다. 하지만 다시 화랑세기와 삼국사기 등을 살펴보니 동성왕이 아닐 가능성이 많았다.
법흥(원종)이 국공으로 백제에 들어간 시기는 언제일까? 아버지인 지증왕이 왕이 되기 전일것이다. 왕자 신분이였다면 왕자를 표기했을 것이나 화랑세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비처(소지왕:479~500) 시기 나 그 이전 자비왕시기 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국공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약 간 맛보기로 보여주고 추후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다. 


일단, 법흥왕이 국공이였을때를 찾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국공이라 함은 왕자시절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법흥(원종)의 아버지 지증(지대로)왕이 왕이 되기전 시기로 가야 합니다. 지증왕 이전은 자비왕와 소지(비처)왕 시기를 말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흥(원종)이 백제에 국공으로 들어간 시기는 비처왕(479~500년) 이니 아무리 늦게 잡아도 500년 이전시기가 됩니다.

500년 왕은 체격이 매우 컸고 담력이 남보다 뛰어났다. 전왕(前王)이 아들없이 죽었으므로 왕위를 이어 받았다. 당시 나이는 64세였다. -삼국사기 지증왕


문제는 500년 지증(지대로)가 왕이 되었을때 적지않은 나이인 64세에 왕위에 오릅니다. 법흥(원종)에 보과가 한눈에 반할 정도가 될려면 원종이 어린나이가 되는 것은 상식에 속할 겁니다. 또한, 보과 또한 어린나이 15세전후가 될겁니다.

지대로의 장자인 원종은 지증이 갈문왕시기이 어릴쩍인 15~20세 전후에 낳은 아들이 되야 함으로 지증(437년생)+(15~20)전후 생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흥은 442~446년생이 됩니다. 장성한 법흥(원종)이 20대의 나이일때는 461~466년 사이가 됩니다. 늦어도 470년전후 시기에 해당합니다.

470년 전후 백제의 왕은 누구일까요?

455년 개로왕(蓋鹵王)<혹은 근개루(近蓋婁)라고도 하였다.>은 이름이 경사(慶司)이고 비유왕(毗有王)의 맏아들이다. 비유왕이 재위 29년에 죽자 왕위를 이었다. - 삼국사기

백제의 왕은 475년 고구려 장수왕에 한성을 내주고 죽은 개로왕(455~475년) 시기에 해당합니다. 

475년 7월에 고구려 왕 거련(巨連)[장수왕]이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공격하였다. 백제 왕 경(慶)[개로왕]이 아들 문주(文周)를 보내 도움을 요청하였으므로 왕이 군사를 내어 구원하였으나, 구원병이 이르기도 전에 백제는 이미 함락되고 경(慶)[개로왕] 역시 살해당하였다. -삼국사기 자비왕


위의 계보도는 삼국사기를 기준으로 하고 있으나 곤지의 계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삼국유사는 개로왕의 아우로 나오며, 일본서기도 개로왕의 아우로 나온다. 또한, 무령왕의 출자에 관해서는 삼국사기는 동성왕(모대)의 2자로 나오지만, 일본서기나 삼국유사를 기준으로 한다면, 개로왕의 아들이 됨을 알 수 있다.  


백제의 보과공주는 개로왕의 왕녀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보과공주는 개로왕이 죽은 후 웅진(공주)로 천도한 문주왕과는 남매간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백제가 위기에 처했을때 문주는 신라로 파견되어 구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때 도움을 준 사람이 법흥(원종)에 시집간 보과공주일것으로 추측됩니다.

문제는 화랑세기에 의하면 보과/법흥 사이에 태어난 3세 풍월주 모랑이 548년 진흥왕 9년에 풍월주에 오르고 555년 비사벌에 여행을 하다 병을 얻어 사망했다. 모랑의 손위 누이가 되는 남모는 진흥왕 원년 540년이전 원화의 지위에 있었는데  그렇다면 법흥(원종)이 국공일때는 늦어도 500년 전후에  태어났어야 한다. 540년에 남모의 나이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 이른다. 법흥/보도 사이의 태어나 진흥왕의 어미가 되는 지소태후와는 이복자매가 됨을 알 수 있다. 지소태후가 삼산공의 딸인 준정보다 자매인 남모를 원화로 밀어 세운 이유는 피의 끌림이지 않을가 한다. 또한가지 남모(법흥/보가)가 지소(법흥/보도)태후보다는 손위 언니뻘일 가능성이 높다.


화랑이전 원화제도가 있을때에는 나이어린 소녀가 아닌 농익은 성인 여성을 원화로 세웠을 개연성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화랑세기가 박창화가 창작한 위서가 된다.

글쓴이는 백제의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때 신라가 백제를 구원한 극적인 이유를 법흥왕과 보과의 사랑에서 찾고자 했었다. 하지만, 이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보과공주가 사랑을 찾아 신라로 넘어온 시기는 500년 전후시기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번째 결혼 동성왕과 이찬 비지녀
백제 동성왕 15년(493) 봄 3월에 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니 신라 왕은 이찬(伊) 비지(比智)의 딸을 시집보냈다. - 삼국사기



법흥/보과의 사랑을 첫번째로 설정하고 2번째 동성왕/이찬비지녀로 하였지만, 동성/이찬비지녀가 첫번째가 되고 법흥/보과가 백제/신라의 2번째 결혼임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동성왕은 이찬비지의 딸을 후비로 맞기도 하지만, 자신의 딸이 법흥(원종)과 사랑의 도피를 하는 것을 지켜 봐야 했을 것이다. 

또한가지는 법흥(원종)과 입종은 지증왕(지대로)가 40대가 다되어서 얻은 아들이라고 추측된다. 그렇지 않다면, 보과는 적지 않은 나이의 법흥(원종)을 사랑한 것이다.

어찌되었던 고구려에 위기를 느낀 백제와 신라는 결혼을 매개로 신라와 동맹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동성왕과 신라 이찬비지의 딸이되고, 동성왕의 딸 보과와 법흥이며, 성왕의 딸이 진흥왕의 소비가 되며, 서동(무왕)과 진평왕의 딸에 이르게 된다.

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진흥왕(입종/지소)을 천수를 누린 노인으로 설정하였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540년 진흥왕(眞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삼맥종(彡麥宗)이다.<혹은 심맥부(深麥夫)라고도 썼다.> 그때 나이는 일곱 살이었다. 법흥왕의 동생 갈문왕(葛文王) 입종(立宗)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로 법흥왕의 딸이고, 왕비는 박씨 사도부인(思道夫人)이다. 왕이 어렸으므로 왕태후(王太后)가 섭정하였다. - 삼국사기 진흥원년


진흥왕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7세에 큰아버지 법흥왕을 대신에 왕위를 잇는다. 진흥왕의 제위기간은 540~576년이니 37년간 왕위에 있었다. 진흥왕은 534년생이고, 551년 진흥왕 12년 연호를 개국으로 바꾸고, 지소태후의 그늘에서 벗어났을 것으로 추측된다. 576년에 죽을때 나이는 43세가 된다. 한참 팔팔한 나이때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텍스트인 화랑세기에 의하면 지소태후와 태종(이사부)의 아들이며 미실의 남편인 세종은 진흥의 막내동생 뻘로 나온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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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식인가에 대해서 논의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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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법흥(원종)과 보과공주의 사랑인데, 보과공주는 과연 백제의 어느왕의 자식인가에 대해서 논의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니 동성왕녀은 아닐것이라는 암시를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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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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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랑이전 원화제도가 있을때에는 나이어린 소녀가 아닌 농익은 성인 여성을 원화로 세웠을 개연성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화랑세기가 박창화가 창작한 위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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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법흥(원종)이 백제에 국공으로 들어간 시기는 비처왕(479~500년) 이니 아무리 늦게 잡아도 500년 이전시기가 됩니다.

  20. Favicon of http://www.goodgiftsoftheearth.com/links BlogIcon storing food in mylar bags 2013.01.05 2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전글에서 다음과 같이 동성왕의 왕녀로 알려진(?)으로 기술했었습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니 동성왕녀은 아닐것이라는 암시를 했었습니다.

 

이차돈에 대한 고사는 삼국사기 신라 법흥왕14년(527년)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는 과정에서 이차돈의 순교로 인해 신라의 불법이 왕성하고 신라  왕권의 강화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차돈(염촉,염도)의 가계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삼국사기는 성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삼국유사는 <박>씨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고 그이 세계를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를 인용하고 아도비의 기록을 인용하고 있지만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이나 그 당시까지 전해진 기록을 상고했을 때 박씨라고 기록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단 삼국사기의 기록과 삼국유사의 기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삼국사기 본기 신라법흥왕 15년 기사>>

 

15년(528) 불교를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일찍이 눌지왕 때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고구려로부터 일선군(一善郡)에 왔는데, 그 고을 사람 모례(毛禮)가 자기 집 안에 굴을 파고 방을 만들어 있게 하였다. 그때 양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와 의복과 향을 보내주었다. 임금과 신하들이 그 향의 이름과 쓸 바를 몰랐으므로 사람을 보내 향을 가지고 다니며 두루 묻게 하였다. 묵호자가 이를 보고 그 이름을 대면서 말하였다. 이것을 사르면 향기가 나는데, 신성(神聖)에게 정성을 도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신성스러운 것으로는 삼보(三寶)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첫째는 불타(佛陀)요, 둘째는 달마(達摩)이고, 셋째는 승가(僧伽)입니다. 만약 이것을 사르면서 소원을 빌면 반드시 영험(靈驗)이 있을 것입니다. 그 무렵 왕의 딸이 병이 심하였으므로 왕은 묵호자로 하여금 향을 사르고 소원을 말하게 하였더니, 왕의 딸 병이 곧 나았다. 왕이 매우 기뻐하여 음식과 선물을 많이 주었다. 묵호자가 [궁궐에서] 나와 모례를 찾아보고 얻은 물건들을 그에게 주면서 “나는 지금 갈 곳이 있어 작별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하고는 잠시 후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비처왕(毗處王) 때에 이르러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시중드는 이 세 사람과 함께 모례의 집에 또 왔다. 모습이 묵호자와 비슷하였는데 몇 년을 그곳에서 살다가 병(病)도 없이 죽었다. 시중들던 세 사람은 머물러 살면서 경(經)과 율(律)을 강독하였는데 신봉자가 가끔 있었다.

 

이때 와서 왕 또한 불교를 일으키고자 하였으나 뭇 신하들이 믿지 않고 이런 저런 불평을 많이 하였으므로 왕이 난처하였다. 왕의 가까운 신하 이차돈(異次頓) <혹은 처도(處道)라고도 하였다.>이 아뢰었다. “바라건대 하찮은 신(臣)을 목 베어 뭇 사람들의 논의를 진정시키십시오.” 왕이 말하였다. “본래 도(道)를 일으키고자 함인데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자 [이차돈이] 대답하였다. “만약 도가 행해질 수 있다면 신은 비록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이에 왕이 여러 신하들을 불러 의견을 물으니 모두 말하였다. “지금 중들을 보니 깍은 머리에 이상한 옷을 입었고, 말하는 논리가 기이하고 괴상하여 일상적인 도(道)가 아닙니다. 지금 만약 이를 그대로 놓아두면 후회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신 등은 비록 무거운 벌을 받더라도 감히 명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차돈 혼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금 뭇 신하들의 말은 잘못된 것입니다. 비상(非常)한 사람이 있은 후에야 비상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듣건대 불교가 심오하다고 하니,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뭇 사람들의 말이 견고하여 이를 깨뜨릴 수가 없는데, 유독 너만 다른 말을 하니 양 쪽을 모두 따를 수는 없다.” 드디어 이차돈을 관리에게 넘겨 목을 베게 하니, 이차돈이 죽음에 임하여 말하였다. 나는 불법(佛法)을 위하여 형(刑)을 당하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만약 신령스러움이 있다면 나의 죽음에 반드시 이상한 일이 있을 것이다. 목을 베자 잘린 곳에서 피가 솟구쳤는데 그 색이 우유빛처럼 희었다. 뭇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다시는 불교를 헐뜯지 않았다.<이는 김대문(金大問)의 계림잡전(鷄林雜傳) 기록에 의거하여 쓴 것인데, 한나마(韓奈麻) 김용행(金用行)이 지은 아도화상비(我道和尙碑)의 기록과는 자못 다르다.>

 

<<삼국유사  원종,염촉(이차돈)>>

 

<신라본기(新羅本紀)>에 보면 법흥대왕(法興大王)이 즉위한 14년(527)에 신하 이차돈(異次頓)이 불법(佛法)을 위해서 자기 몸을 죽이니 곧 소량(蕭梁) 보통(普通) 8년 정미(丁未; 527)에 서천축(西天竺)의 달마대사(達磨大師)가 금릉(金陵)에 온 해다.  이 해에 낭지법사(朗智法師)도 또한 영취산(靈鷲山)에 살면서 법장(法場)을 열었으니 불교의 흥하고 쇠하는 것도 반드시 원근(遠近)에서 한 시기에 서로 감응한다는 것을 이 일로 해서 알 수가 있다 

 

원화(元和) 연간(806~820)에 남간사(南澗寺)의 중 일념(一念)이 촉향분례불결사문(髑香墳禮佛結社文)을 지었는데, 이 사실이 자세히 실려 있으니 그 대략은 이러하다.  예전에 법흥대왕이 자극전(紫極殿)에서 왕위에 올랐을 때에 동쪽 지역을 살펴보고 말했다.  “예전에 한(漢)나라 명제(明帝)가 꿈에 감응되어 불법이 동쪽으로 흘러들어왔다.  내가 왕위에 오른 뒤로 백성들을 위해 복을 닦고 죄를 없앨 곳을 마련하려 한다.”  이에 조신들(향전鄕傳에서는 공목알공工目謁恭 등이라 했다.)은 왕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오직 나라를 다스리는 대의(大義)만을 지켜 절을 세우겠다는 신령스러운 생각에 따르지 않자 대왕은 탄식했다.  “아아!  나는 덕이 없는 사람으로 왕업(王業)을 이어받아 위로는 음양(陰陽)의 조화(造化)가 모자라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즐겨하는 일이 없어서 정사를 닦는 여가에 불교에 마음을 두었으니 그 누가 나의 일을 함께 할 것인가.”  이때 소신(小臣)이 있었는데 성(姓)은 박(朴)이요, 자(子)는 염촉(猒髑; 혹은 이차異次라 하고 또는 이처伊處라고도 하니 방음方音이 다르기 때문이며, 한어漢語로 번역하여 염猒이라 한다.  촉髑·돈頓·도道·도覩·독獨 등은 모두 글쓰는 사람의 편의에 따른 것으로, 곧 조사助辭이다.  이제 위 글자는 번역하고 아래 글자는 번역하지 않았기 때문에  염촉猒髑이라 하고, 또는 염도猒覩 등으로 쓴 것이다)인데, 그의 아버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조부(祖父)는 아진(阿珍) 종(宗)으로 습보(習寶) 갈문왕(葛文王)의 아들이다(신라의 관작官爵은 도합 17등급等級인데 그 넷째를 파진손波珍飡, 또는 아진손阿珍飡이라고도 한다.  종宗은 그 이름이며, 습보習寶도 역시 이름이다.  신라 사람은 추봉追封한 왕을 모두 갈문왕葛文王이라고 했으니 그 까닭은 사신史臣도 역시 자세히 모른다고 했다.

 

김용행金用行이 지은 아도비阿道碑를 상고해 보면, 사인舍人은 그때 나이 26세였고, 아버지는 길승吉升, 조부는 공한功漢, 증조曾祖는 걸해대왕乞解大王이라 했다 그는 죽백(竹栢)과 같은 바탕에 수경(水鏡)과 같은 뜻을 품었으며, 적선(積善)한 집의 증손(曾孫)으로서 궁내(宮內)의 조아(爪牙)가 되기를 바랐고, 성조(聖朝)의 충신으로서 하청(河淸)에 등시(登侍)할 것을 기대했다. 

 

그때 나이 22세로서 사인(舍人; 신라 관작官爵에 대사大舍·소사小舍 등이 있으니 대개 하사下士의 등급이다)의 직책에 있었는데, 왕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그 심정(心情)을 눈치채고 아뢰었다.  “신이 듣자오니 옛 사람은 천한 사람에게도 계교를 물었다 하오니 신은 큰 죄를 무릅쓰고 아룁니다”하니 사인은 말 한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신하로서의 큰 절개이옵고 임금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백성의 곧은 의리입니다.  거짓으로 말씀을 전했다고 해서 신의 목을 베시면 만민이 굴복하여 감히 왕의 말씀을 어기지 못할 것입니다.”  왕이 말했다.  “살을 베어 저울로 달아서 장차 새 한 마리를 살리려했고 피를 뿌려 목숨을 끊어서 일곱 마리 짐승을 스스로 불쌍히 여겼다.  나의 뜻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인데 어찌 죄 없는 사람을 죽이겠느냐.  너는 비록 공덕을 남기려 하지만 죽음을 피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  사인이 말한다.  “일체(一切)를 버리기 어려운 것은 신명(神命)에 지나지 않으며, 소신이 저녁에 죽어서 불교가 아침에 행해진다면 불일(佛日)은 다시 성행하고 성주(聖主)께서는 길이 편안하실 것입니다.”  왕은 말한다.  “난새와 봉새의 새끼는 어려도 하늘을 뚫을 듯한 마음이 있고 홍곡(鴻鵠)의 새끼는 나면서부터 물결을 깨칠 기세를 품었다 하니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가위 대사(大士)의 행동이라 할 수 있겠다.”  이에 대왕은 일부러 위의(威儀)를 정제하고 동서쪽에는 풍도(風刀)를, 남북 쪽에는 상장(霜仗)을 벌여 놓고 여러 신하를 불러 물었다.  “경(卿)들은 내가 절을 지으려 하는데 일부러 이를 지체시키지 않았느냐.

 

”(향전鄕傳에서는 염촉猒髑이 거짓 왕명王命으로 신하들에게 절을 세우라는 뜻을 전하니 여러 신하들이 와서 간諫하자 왕王은 이것을 염촉猒髑에게 책임지워 노하고 왕명王命을 거짓 전했다 하여 형刑에 처했다고 했다) 

 

이에 여러 신하들이 벌벌 떨고 두려워하여 황망스레 맹세하고 손으로 동쪽과 서쪽을 가리키니 왕은 사인을 불러 꾸짖었다.  사인은 얼굴빛이 변하여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대왕이 크게 노하여 이를 베어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니 유사(有司)는 그를 묶어 관아(官衙)로 데리고 갔다.  사인은 맹세를 했다.  옥리(獄吏)가 그의 목을 베자, 흰 젖이 한 길이나 솟아올랐으며(향전鄕傳에는 이렇게 말했다.  사인舍人이 맹세하기를, “대성법왕大聖法王께서 불교를 일으키려 하시므로 내가 신명身命을 돌아보지 않고 세상 인연을 버리니 하늘에서는 상서를 내려 두루 백성들에게 보여 주십시오”했다.  이에 그의 머리는 날아가 금강산金剛山 마루에 떨어졌다고 한다), 하늘은 사방이 어두워 저녁의 빛을 감추고 땅이 진동하고 비가 뚝뚝 떨어졌다.  임금은 슬퍼하여 눈물이 곤룡포(袞龍袍)를 적시고 재상들은 근심하여 진땀이 선면(蟬冕)에까지 흘렀다.  감천(甘泉)이 갑자기 말라서 물고기와 자라가 다투어 뛰고 곧은 나무가 저절로 부러져서 원숭이들이 떼지어 울었다.  춘궁(春宮)에서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놀던 동무들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서로 돌아보고 월정(月庭)에서 소매를 마주하던 친구들은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이별을 애석해 하여 관(棺)을 쳐다보고 우는 소리는 마치 부모를 잃은 것과 같았다.  그들은 모두 말했다.  “개자추(介子推)가 다리의 살을 벤 일도 염촉(猒髑)의 고절(苦節)에 비할 수 없으며, 홍연(弘演)이 배를 가른 일도 어찌 그의 장열(壯烈)함에 비할 수 있으랴.  이것은 곧 대왕의 신력(信力)을 붙들어서 아도(阿道)의 본심을 성취시킨 것이니 참으로 성자(聖者)로다.”  드디어 북산(北山) 서쪽 고개(곧 금강산金剛山이다.  전傳에는, 머리가 날아가서 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그곳에 장사지냈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것을 말하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인가)에 장사지냈다.  나인(內人)들은 이를 슬퍼하여 좋은 땅을 가려서 절을 세우고 이름을 자추사(刺楸寺)라고 했다.  이로부터 집집마다 부처를 받들면 반드시 대대로 영화를 얻게 되고, 사람마다 불도(佛道)를 행하면 이내 불교의 이익을 얻게 되었다 ... 생략...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이차돈에 관한  출전을  김대문이 지은 <계림잡전>을 인용하고 있고 <아도화상비>와 다르고 계림잡전의 기록을 인용하고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출전을

 

<삼국사기>의 기록인 <계림잡전>

남간사(南澗寺)의 중 일념(一念)이 촉향분례불결사문(髑香墳禮佛結社文)

<향전>

김용행金用行이 지은 아도비阿道碑

<승전>

 

등은 인용하고 있다.

이름 이차돈, 이처, 염촉, 염도 등이고

나이는 22세와 26세의 2가지 설이 있는데 일연은 <22세>설을 따르고 있으며,

세계는 <아도비>과 일념의 <촉향분례불결사문>의 것을 모두 기록하고 있다. 

이차돈의 성이 “<박>씨이고 <염촉>이 자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기록을 추적하다 보면 전혀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다.

 

조부(祖父)는 아진(阿珍) 종(宗)으로 습보(習寶) 갈문왕(葛文王)의 아들이다(신라의 관작官爵은 도합 17등급等級인데 그 넷째를 파진손波珍飡, 또는 아진손阿珍飡이라고도 한다.  종宗은 그 이름이며, 습보習寶도 역시 이름이다.

 

김용행金用行이 지은 아도비阿道碑를 상고해 보면, 사인舍人은 그때 나이 26세였고, 아버지는 길승吉升, 조부는 공한功漢, 증조曾祖는 걸해대왕乞解大王이라 했다

 

일념 <촉향분례불결사문>

이차돈 -> ? -> 아진종 -> 습보갈문왕

 

김용행 아도비 :

 

이차돈->길승->공한->걸해대왕

 

향어를 쓴 최치원은 제왕연대력을 쓸 때 거서한, 차차웅, 이사금 등을 버리고 썼다고 김부식은 이야기하고 있고, 김대문 또한 향어를 버리고 한(漢)어 식으로 바꾼 경우가 많다.  <아도비>와 <촉향분례>을 공히 따르면 아진종=공한이고 습보가 걸해대왕 임을 알 수 있다. 아버지는 아도비의 길승일 가능성이 많다. 

걸해대왕은 삼국사기에는 어떠한 기록도 없고 갈문왕으로 추봉된 습보일 것이다.

 

습보의 가계는 지증왕의 아버지로 소지왕이 아들이 없음으로 지증왕(500~514)이 대신 왕위에 오르는데 이에 습보를 갈문왕에 봉했을 것이고, 그 이후 걸해대왕이라고 했을 것이다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이 왕위에 올랐다. 성(姓)은 김씨이고 이름은 지대로(智大路)이다. <지도로(智度路) 혹은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하였다.> 나물왕의 증손으로 습보갈문왕(習寶葛文王)의 아들이고 소지왕(炤知王)의 재종 동생이다. 어머니는 김씨 조생부인(鳥生夫人)으로 눌지왕의 딸이다. 왕비는 박씨 연제부인(延帝夫人)으로 이찬 등흔(登欣)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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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흥왕(法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원종(原宗)이다. <책부원귀(冊府元龜)에는, 성은 모(募)이고 이름은 진(秦)이라 하였다.> 지증왕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연제부인(延帝夫人)이고 왕비는 박씨 보도부인(保刀夫人)이다

지증의 가계를 보면  아버지 습보는 내물왕의 손이라 하였으니.

 


이차돈의 세계는

 

내물왕 -> 기보(?) -> 습보(걸해) ->아진종(공한) -> 길승 -> 이차돈(염촉) 의 순서가 된다.

 

법흥왕의 계보는

내물왕 -> 기보(?) -> 습보(걸해) -> 지증왕 -> 법흥왕 -> 입종갈문왕 -> 진흥왕이 된다.

 

이차돈과 법흥왕는 아주 가까운 인척관계가 된다. 법흥왕으로 보면 조카가 되고, 이차돈으로는 법흥왕이 6촌 당숙이 되는 것이다.

 

이사부(태종)의 가계는

아진종 -> 이사부(태종) 이니 이차돈과 이사부는 3촌 관계가 된다.

그러므로 이차돈은 ‘박씨‘가 될 수 없고 ’김씨‘이다. 


어떤 이는 이차돈과 이사부는 ‘이씨’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mbc 월.화 대하 사극 <선덕여왕>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미실과 세종과 하종이 등장한다. 미실은 이사부의 며느리가 되는 것이고, 세종은 그의 아들이다. 지소(법흥/보도)는 작은아버지 입종사이에 진흥을 낳고, 아버지 뻘인 이사부(태종)사이에 6대 풍월주인 세종을 낳았다. 드라마에서는 하종과 김유신이 적대적인 관계로 나오나 실제는 11대 풍월주 하종의 딸인 영모가 김유신에 시집을 가 김유신은 하종의 사위가 된다. 김유신은 세종과 미실의 손녀사위가 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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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balloonking.co.uk BlogIcon balloons 2011.12.19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 나는 당신의 포스트를 읽었다. 모두 좋은 기사 및 진짜로 그것이라고 관심을 끄는. 나의 책갈피에를 제외하고 그것을 지키십시오. 몫을 위한 좋은 포스트 그리고 감사

  2. Favicon of http://thewebcontractors.com BlogIcon 고명진 2012.01.01 1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일을 나의 친구를 계속, 이거 정말 끝내 준다

  3. Favicon of http://bellydancespringfield.com BlogIcon 고명진 2012.01.07 0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4. Favicon of http://butler.africatravelling.net BlogIcon 정부 2012.04.04 0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혼자 내버려 두십시오.

  5. Favicon of http://jayjay.is-a-bookkeeper.com BlogIcon 마야 2012.04.05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을 살 여유가 없습니다.

  6. Favicon of http://jumparound.is-a-patsfan.org BlogIcon 엘리스 2012.05.08 1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죄송합니다.

  7. Favicon of http://nickydunko.dyndns-wiki.com BlogIcon 카일리 2012.05.10 2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크 아웃하고 싶습니다.

  8.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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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4: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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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Favicon of http://dantecoverd.posterous.com/place-of-work-survival-kit-designed-for-busin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for sale 2012.11.01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1. Favicon of http://blahblahblah.beloblog.com/archives/2007/05/pass_the_pup.html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cats 2012.11.06 1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있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를 인용하고 아도비의 기록을 인용하고 있지만

  12. Favicon of http://ricasuerta.blogspot.com/2012/04/office-tactical-kits-should-unbearable... BlogIcon volcano stove costco 2012.12.10 2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도비>와 <촉향분례>을 공히 따르면 아진종=공한이고 습보가 걸해대왕 임을 알 수 있다. 아버지는 아도비의 길승일 가능성이 많다.

  13. Favicon of http://smarterpodcasts.com/gooddog/goodDogBlog/?p=39 BlogIcon wireless dog fence for small dogs 2012.12.22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이 중요한 주제에 도움이 필요 남녀를 지원하는 당신의 관대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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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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