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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신면은 왜 세령이 납치범을 구하려 했는지 궁금하던 차에 수양대군이 신면에게 너무 자책하지 말라한다.

세령이 승유를 구한건 너무 놀라 날아온 화살에 옴살달삭 못한 것이겠지 하면서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행동을 한다.


수양도 세령이 납치범을 구하기 위해서 수 미터를 달려가 승유를 감싸 안았다는 것을 안다.

오히려 신면의 화살이 세령이 김승유를 감싼 다음에 도달했다는 것도 안다. 차라리 승유를 내쳤다면 보다 쉽게 구했을 것이다.


그런데 날고 기던 김승유는 왜 화살을 피하지 못했을까? 얼음땡에 걸린건가?


빙옥관의 기둥서방 조석주와 전노걸는 관군이 포위한 상태에서도 김승유를 구하고 유유히 사라진다. 신면의 포위가 허술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관원들과 충돌하나 없으니 말이다.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눈치챈 세령이 우사인 볼트가 100미터 출발선에서 박차고 나가듯이 사뿐이 뛰어간다.



그리고 세령은 우사인볼트 보다도 빠르게 승유에게 도착하였다. 하지만, 신면의 화살은 도착도 하지 않았다. 시속 200km이상으로 날아가는 화살보다 빠른 세령이다.

승유가 어떻게 탈출할까 궁금했는데 개연성 없는 장면에서 허탈할수 밖에 없었다.


승유는 자신을 구한 자들의 안위나 정체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관심이 있는 건 세령의 안위뿐이다.

 

 



세령의 안위가 걱정된 승유는 빙옥관에 와서도 술만 푸고 있다. 복수를 위해서 그 여인을 붙잡은 것이냐? 아니면 남의 여인이 되는 것이 싫어서 그런 것이냐고 물어본다.


지금까지 공주의 남자에서 승유가 보여준 모습은 원수가 아닌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번민과 애증과 갈증이다. 더군다나 승유가 세령이 결혼하는 장소에 까지 난입하여 세령을 납치한 이유는 신면과 결혼하는 세령 때문임은 2011/09/0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우사인 볼트 보다 빠른 세령공주 불가능에 도전하다? 이전 글에서도 지적했었다.


작가가 생각하기에도 지금까지 김승유의 모습은 아버지와 가족의 복수나 대의같은 것은 김승유에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승유의 성격을 사랑밖에 모르는 철부지로 만든 건 작가 자신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 김승유가 변한다는 암시와도 같은 장치이기는 하지만, 이미 승유에게 남은 건 찌질하고 민폐만 남기는 주인공이란 낙인뿐이다. 물론, 멜로에서는 찌질한 사랑일수록 각광을 받기는 한다. 닥치고 원수를 사랑한 남자가 여자들에 마약과 같은 대리만족을 주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런 여성들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그러니 개연성이 있던 없던 우리 박시후와 문채원을 서로 사랑하게 해주세요라는 말뿐이지 않는가? 주인공이 누가 되었던 어떤 일을 하던 관심이 없다. 드라마의 스토리라인은 보지도 않는다. 드라마 내용를 보는게 아니라 박시후와 문채원이나 이민우나 송종호 홍수현만 보인다. 글쓴이는 배우들이 누군가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이 어떤연기를 하는지도 관심이 없다. 관심분야는 작가가 스토리를 얼마나 개연성있게 만들고 리얼리티를 드라마에 녹여내는가이다. 또한, 시나리오를 제작자가 얼마나 잘 구현해 내는가이다.

사실 사랑은 이성보다는 감성이다. 그러니 감성을 자극하는 모드만큼 좋은 자극제는 없다. 더군다나 나를 위해서 화살을 대신 맞는 여인이라면 원수의 딸이라고 해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든, 수양대군은 암살의 배후로 정종과 경혜공주와 금성대군으로 몰아간다. 그리고 단종을 압박한다. 경혜공주는 정종과 금성대군을 살려달라고 수양대군의 집에 찾아가 무릎을 꿇는다. 단종은 금성대군과 영양위 정종과 경혜공주를 살리기 위해서 수양대군에게 양위하겠다고 선언을 한다.

수양대군이 냉큼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대체적으로 겁박해서 양위를 받더라도 3번은 거절하는 게 선위를 받는 자의 예라고 한다. 그래야 반발세력을 무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예에 따라 거절하는 절차를 받다가 피박을 본 자가 있다. 삼국시대 신라 진덕여왕이 죽자 알천에게 왕위를 받으라고 대신들이 머리를 조아린다. 알천은 예에 따라 거절하지만 김춘추를 따르는 자들이 그래 그럼 하기 싫다는데 관둬라면서 김춘추를 왕위에 옹립하였다. 그리고 알천은 낙동강 오리알처럼 버려지고, 알천은 진주로 낙향한다. 그래서 진주소씨의 시조가 되었다.


공주의 남자에서 계유정란도 김승유 때문에 일어났고, 김종서가 죽은 것도 김승유 때문이다. 이제 금성대군과 정종이 죽게 된 것도 김승유의 철없는 사랑놀음 때문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대의는 없다. 단지 사랑놀음 속에 역사가 있을 뿐이다. 대단한 사랑 나셨다.

 


승유는 정종을 만난후 수양대군의 수족을 제거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제일먼저 온녕군의 집에 잠입하여 온녕군의 목에 칼을 들이민다. 온녕군은 김승유의 얼굴을 보고 놀란다. 아마도 온녕군은 승유의 칼에 목이 날아갈것이다. 그런데 시제가 조금 엉뚱하기는 하다. 온녕군이 죽은 때는 1454년 5월이고, 단종이 수양에게 양위한때는 1455년 6월이다.

단종 2년 1454년 5월 12일  온녕군(溫寧君) 이정(李裎)이 졸(卒)하였다. - 단종실록


그렇다면 실제 단종이 양위하는 과정은 어떨까?


단종이 수양대군(세조)에게 양위한때는 1455년 윤 6월 11일 이였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란이 끝나고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승유가 천방지축 날뛰는 장면과 승유가 세령의 스토커처럼 뒤를 졸졸 따라다니다


김승유는 세령이 친구인 신면과 결혼하자 열받아 혼례식장에 난입하여 세령을 납치하는 것으로 1년 5개월을 보내 버렸다. 그리고 이를 기화로 수양대군이 단종을 압박해서 양위를 받아 내는 것으로 맺었다.

물론 드라마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날아다니는 화살보다 빨리 달리는 세령이 있는데 불가능은 없다.  계유정란도 금성대군과 정종이 귀향가는 것도, 단종이 세조에게 양위한것도 모든건 찌질남 김승유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치밀한 드라마를 보면 안 되겠는가?


이날 공주의 남자에서는 나오지 않는 세종대왕의 빈이였던 혜빈 양씨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귀양 보낸다. 혜빈양씨는 금성대군과 결탁해서 수양대군을 몰아내려 하였다가 귀양을 간 것이다.


그중에 금성대군은 삭녕으로 경혜공주의 부마인 영양위 정종은 영월로 귀양 간다.
 

임금이 그대로 따라서 의금부에 명하여 혜빈양씨(惠嬪楊氏)를 청풍(淸風)으로, 상궁박씨(尙宮朴氏)를 청양(靑陽)으로, 금성 대군 유를 삭녕(朔寧)으로, 한남군 이어(李)를 금산(錦山)으로, 영풍군 이전(李瑔)을 예안(禮安)으로, 정종을 영월(寧越)로 각각 귀양보내고, 조유례는 고신(告身)을 거두고 가두었다. 또 성문치(成文治)와 이예숭(李禮崇)·신맹지(申孟之)·신중지(申仲之)·신근지(申謹之)·신경지(申敬之)의 고신을 거두고는 먼 변지로 떠나 보내어 충군(充軍) 하게 하였다. - 세조 즉위년/ 단종 3년 윤 6월 11일



같은날 단종은 수양에게 양위한다는 교지를 내리고, 태평관에 와 있던 명나라 사신에 수양에게 양위한다는 사실을 알린다. 박정희의 쿠데타나 전두환의 쿠데타와 광주민주화운동과정에서 전두환의 학살을 미국이 용인하는 장면이 아닐수 없다. 역사는 돌고 도는 모양이다. 그래서 역사를 반추한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육신으로 알려진 인물들이 단종이 수양에게 양위를 할 때 어떠한 모습을 보여주었는지도 알아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이다.


사육신 중 1인인 성삼문은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양위할 때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미안하게도 성삼문은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단종의 양위에 관여하고 찬성을 한다.
 

환관(宦官) 전균(田畇)으로 하여금 한확(韓確) 등에게 전지하기를,

“내가 나이가 어리고 중외(中外)의 일을 알지 못하는 탓으로 간사한 무리들이 은밀히 발동하고 난(亂)을 도모하는 싹이 종식하지 않으니, 이제 대임(大任)을 영의정(領議政)에게 전하여 주려고 한다.”

하였다. 한확 등이 놀랍고 황공하여 아뢰기를,

“이제 영의정이 중외의 모든 일을 다 총괄하고 있는데, 다시 어떤 대임을 전한다는 것입니까?”

하여, 전균(田畇)이 이를 아뢰니, 노산군(魯山君)이 말하기를,

내가 전일부터 이미 이런 뜻이 있었거니와 이제 계책을 정하였으니 다시 고칠 수 없다. 속히 모든 일을 처판(處辦)하도록 하라.”


하였다. 한확 등 군신들이 합사(合辭) 하여 그 명을 거둘 것을 굳게 청하고 세조 또한 눈물을 흘리며 완강히 사양하였다.


전균이 다시 들어가 이러한 사실을 아뢰었다. 조금 있다가 전균이 다시 나와 전교를 선포하기를, ‘상서사(尙瑞司) 관원으로 하여금 대보(大寶)를 들여오라는 분부가 있다.’고 하니, 모든 대신들이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을 변하였다


동부승지(同副承旨) 성삼문(成三問)이 상서사(尙瑞司)로 나아가서 대보(옥쇄)를 내다가 전균으로 하여금 경회루(慶會樓) 아래로 받들고 가서 바치게 하였다. 노산군(단종)이 경회루 아래로 나와서 세조를 부르니, 세조가 달려 들어가고 승지(承旨) 성삼문와 사관(史官)이 그 뒤를 따랐다. 단종 3년 1455년 윤6월 11일



동부승지 성삼문은 옥쇄를 환관 전균으로 하여금 경회루로 가서 노산군(단종)에게 주라하였고, 단종이 경회루에서 세조를 부르자. 성삼문과 사관이 뒤를 따랐다고 전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단종복위를 꿈꾼 성삼문의 이미지에 대단한 타격이 아닐 수 없다.

단종이 수양에게 양위하는데 성삼문은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성삼문는 단종 양위에 적극적이었다. 수양대군도 눈물을 흘리는 연기(?)를 하는데 성산문은 눈치도 없이 덥석 낚시에 걸린 붕어처럼 걸려들고 만다.

성삼문이 후에 왜 단종 복위에 나섰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단종 양위시에는 수양에게 양위가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수양대군(세조)가 양위받은 12일후 1455년 6월 23일 성삼문에게 우승부지를 제수한다. 이때 간신으로 그려진 한명회는 좌승부지가 되었다. 간신 한명회나 사육신 성삼문이나 차이점이 없다 둘다 단종을 몰아내고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데 일조한 공신들이니 말이다.

사육신중 하나인 성삼문에 대해서 놀라운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육신들은 단종을 위해서 계유정란으로 죽은 황보인, 김종서, 양평대군을 따랐고, 처음부터 금성대군과 단종을 보위하고 수양대군에 반기를 들었을까? 아마도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이
에 대해서는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다음 기회로 넘기겠습니다.

2011/09/1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단종복위 위해 불구대천원수인 이개 성삼문 등 사육신과 동침한다?
2011/09/14 - [역사이야기] - 계백, 의자왕, 계백 백제 패망후 왜 건너가 천황 될지도?
2011/09/11 - [TV&ETC] - 김연아 키드 김해진 최악은 희망, 손연재 세계랭킹 언플 희망고문 가능성 높다
2011/09/10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추석 보름달은 원한에 시퍼런 날이 서있었을 것이다.
2011/09/09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스승 이개 알고보면 계유정란공신 척살1순위, 사육신 단종폐위 공신들

2011/09/09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스승 이개와 사육신 알고보면 계유정란공신 척살1순위, 신숙주, 사육신 단종폐위 공신들

2011/09/07 - [역사이야기] - 은고 사비성 태울만큼 계백 사랑했을까? 공주의 남자 비롯한 역사파괴 끝은 어디까지?
2011/09/06 - [역사이야기] - 계백, 동명제 초혼관 의자, 교기와 흥수는 왜 왜색풍 옷을 입었나?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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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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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2011.09.08 0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분석할 필욘 없다고 생각하오 어차피 허구인 것을...일일이 분석하고 꼬투리를 잡을 상대를 찾는다면 시사나 정치쪽으로 눈을 돌려보시오.

  3.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2011.09.08 0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분석할 필욘 없다고 생각하오 어차피 허구인 것을...일일이 분석하고 꼬투리를 잡을 상대를 찾는다면 시사나 정치쪽으로 눈을 돌려보시오.

  4. Favicon of https://toyvillage.net BlogIcon 라이너스™ 2011.09.08 09: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구성이 좀 많이 가미되긴했죠.^^;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5. 코스모스 2011.09.08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이네요..그래도 드라마란 것 자체가 픽션이잖아요..작가의 담고자 하는 주제에 맞게 스토리를 진행 시키는 것이니까요..그렇지 많고 논픽션을 써댄다면 그건 드라마가 아니지요..공주의 남자는 역사적인 사실배경으로한 허구의 내용입니다

  6. ㅡㅡㅡㅡㅡ 2011.09.15 0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와 관련된 부분 지적은 그렇다쳐도 픽션이니까 허용되는 부분까지 비아냥 거리는거 보면 이 드라마 싫어하나본데 왜 보시나요? 그 상황에서 주인공에게 우샤인볼트가 빙의하는건 다른 드라마에서도 다른 나라 드라마에서도 밥 먹고 똥 싸는 것 보다도 쉬운 일이예요. 정말 별에별 부분까지 따지고 드네

  7. ㅇㅋ 2011.09.15 1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굉장히 편향적이고 단편적으로 이해하는것 아닌지?
    승지 성삼문이 옥쇄를 들고 따랐다는 내용 하나만으로 성삼문이
    단종폐위에 앞장선 것이라? 한명회와 다를바 없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이 당대 1차사료이긴 하나 수양대군 일파의
    시각으로 쓰여진 사료인만큼 사료비판이 필요한데, 너무 일차원적으로
    해석하는 듯 합니다.

  8. 웃기네요 2011.09.23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로 답답하지 않을 수 없군요, 드라마와 역사를 혼동하시는 건지 눈 앞에 보이는 것에 열중하시는 걸 보면 매사 부정적인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드라마이고 허구라고 드라마 앞부분에 약 3초간 광고 나옵니다. 이 드라마는 역사를 배경으로 만든 허구의 이야기라고 말이죠, 모든 역사를 역사에 근본하여 만들면 어느 세월에 만듭니까 ?? 그럼 문종때 부터 계유정난과 단종의 승하에 이르기까지 10여년의 시간을 사실에 의거하여 10여년간 방영해야 속이 풀리실건가요 ㅋㅋ

    이런 허무맹랑한 글 그만 적으시죠, 책보고 판단하시는 의견들 실로 허무맹랑합니다.
    성삼문이 옥쇄를 넘겨줬다고 해서 수양의 보위에 찬성했다 ? ㅋㅋㅋ 실로 어이없습니다,
    성삼문과 하위지 등은 3등 공신에 추대된것조차 수치로 여겨 공신 자리를 고사했던 인물입니다.
    실록에서조차 명확하게 나온것을 어찌 이리 판단하시는지 답답하네요
    이제 글 그만 쓰시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11.09.23 11: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공신이 된건 아는군요..

      그런데 그들이 왜 공신의 직위에서 물어날려고했을까는 보지 못했구려.. 전균과 엄자치가 공신으로 군에 봉작이 되었기 때문이라오.. 전균과 엄자치는 환관이라는 건 아시겠죠..

      환관이 자신들보다 높은 공신에 있는게 배아펐던 겁니다..

      님이 알고 있는 수치는 환관보다 낮은 직급이 못마땅했다 입니다.. 공신은 아무나 주는게 아닙니다. 공신전에 노비에 재물에 수 많은 부와 명예가 따르거든요.. 족보에도 오를만큼..

      님은 드라마의 리얼리티와 역사를 혼동하는 구려.. 공주의 남자에 어디 역사의 배경을 빌려왔나요. .직접적으로 건들었지요.. 그리고 역사와 다른 허구라고 한적은 없는것 같은데요.. 3초동안 나왔다는 내용을 제대로 해석해보셈..

  9. 하하 2011.09.25 1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조의 즉위 과정에 대한 것은 이미 다른 여러 기록이나 정황증거 등으로 많은 부분 고증이 되어 있습니다.

    단지 실록 기록 단 하나만 가지고 그것도 문장에 딱 씌인 것만으로 확대해석하여 상황을 설명하는 님의 말에는 모순이 대단히 많습니다.

    숙주나물이라는 말이 생긴게 그당시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예요.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님 말대로라면 후일 사육신의 충정과 절개가 높이 평가되어 그것도 세조의 후손들에 의해 사면 복권된 것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삼문의 후예가 우리나라에 15만명 가까이 살고 있습니다.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하실수도 있는 점 엄중 경고드립니다.

  10. 히히 2011.10.21 0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이 모든 부분에 동의할 수 없네요~ 사료출처또한 세조입장에서 기록된 것만 이용하신 것도 그렇고 특히 성삼문 관련 내용은... 성삼문은 그 직위에서 일을 안 것이고, 박팽년과 후일을 도모한 내용은 네이버에 관련검색어를 쳐서 맨위에 성삼문,박팽년 관련 내용만 읽어보아도 아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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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지 실록 기록 단 하나만 가지고 그것도 문장에 딱 씌인 것만으로 확대해석하여 상황을 설명하는 님의 말에는 모순이 대단히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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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드라마 작가가 간과한 것이 있다. 태자 부여 융에 관한 것이다. 부여융은 615년에 태어나 682년 68세의 나이로 복망산에 뭍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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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옥관의 기둥서방 조석주와 전노걸는 관군이 포위한 상태에서도 김승유를 구하고 유유히 사라진다. 신면의 포위가 허술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관원들과 충돌하나 없으니 말이다.

내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 동주선생이 비형랑 설화에서 나오는 비형랑이 아닐까하는 이야기 네티즌 사이에서 오가고 있다.

선덕여왕에서도 비형량을 모티브로 만든 등장인물이 나온다. 다름이 아닌 비담을 비형랑에서 모티브로 해서 창조한 것이다.

[역사이야기] - 용춘의 아내는 왜 우물에 몸을 던졌을까?
 글에서 이야기 했듯이 용춘의 대씨녀의 예에서 보듯이 화랑세기에는 난삽한 성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 시대에도 귀감이 될만한 이야기도 곳곳에 숨어 있다. 이름하여 숨어있는 일인치 찾기라고 할 수 있다. 약간의 서비스를 하자면, 드라마상 비담과도 관련이 있고, 용수. 용춘과도 관련이 있다.

비담(김남길)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이 아들은 덕만의 최대의 지지세력이 될 수 있었다.


용수와 용춘은 덕만의 최대 지지세력이다. 용춘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형제가 있다. 드라마상 비담도 용춘의 동생이다. 그는 다름 아닌 또다른 '비'자 돌림의 비형랑이다.  


비형량은 어릴때 용수. 용춘 형제와 같이 진평왕에 의해서 궁궐에서 지내게 되고, 진평왕을 아버지로 알고 지냈다. 비담의 과 비형랑의 진실을 알고 싶다면 2009/08/04 - [역사이야기] - 카리스마 비담, 미실이 버린 아들? 사실은 을 일독하기 바란다. 요약한다면, "같은 <비>를 쓴다고 진지(금륜)형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글이다.

화랑세기의 숨은 일인치 정절의 화신 도화녀

화랑세기에 의하면 용춘이 13세 풍월주가 되는데 비형랑의 자신의 무리들을 용춘을 위해서 많은 일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비형랑은 누구의 자식일까? 일반적으로 많이 알고 있듯이 비형랑은 진지(금륜)의 아들이다. 금륜이 폐위되고 3년이 지난후 조선시대라면 열녀문이 세워졌을 '도화녀'라는 미망인과 관계를 하여 비형랑이 태어난 것이다.

화랑세기는 단순히 13세 풍월주 용춘(596~603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서제인 비형랑(鼻荊郞)과 함께 힘써 낭도를 모았다. 그러자 대중이 따랐고 3파가 모두 추대하고자 하였으므로, 서현랑이 위를 물려주었다고 한다. -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화랑세기에는 비형랑의 나이를 추측할 수 없다. 하지만, 삼국유사에는 비형랑이 언제 태어 났는지, 증거가 나온다.

이보다 먼저 사량부(沙梁部)의 어떤 민가(民家)의 여자 하나가 얼굴이 곱고 아름다워 당시 사람들은 도화랑(桃花郞)이라 불렀다.  왕이 이 소문을 듣고 궁중으로 불러들여 욕심을 채우고자 하니 여인은 말한다.  "여자가 지켜야 하는 것은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일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있는데도 남에게 시집가는 일은 비록 만승(萬乘)의 위엄을 가지고도 맘대로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왕이 말한다.  "너를 죽인다면 어찌하겠느냐."  여인이 대답한다.  "차라리 거리에서 베임을 당하더라도 딴 데로 가는 일은 원치 않습니다."  왕은 희롱으로 말했다.  "남편이 없으면 되겠느냐."  "되겠습니다."  왕은 그를 놓아 보냈다.

이 해에 왕은 폐위되고 죽었는데 그 후 2년 만에 도화랑(桃花郞)의 남편도 또한 죽었다.  10일이 지난 어느 날 밤중에 갑자기 왕은 평시(平時)와 같이 여인의 방에 들어와 말한다.  "네가 옛날에 허락한 말이 있지 않느냐.  지금은 네 남편이 없으니 되겠느냐."  여인이 쉽게 허락하지 않고 부모에게 고하니 부모는 말하기를, "임금의 말씀인데 어떻게 피할 수가 있겠느냐"하고 딸을 왕이 있는 방에 들어가게 했다.  왕은 7일 동안 머물렀는데 머무는 동안 오색(五色) 구름이 집을 덮었고 향기는 방안에 가득하였다.  7일 뒤에 왕이 갑자기 사라졌으나 여인은 이내 태기가 있었다.  달이 차서 해산하려 하는데 천지가 진동하더니 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이름을 비형(鼻荊)이라고 했다. - 삼국유사 도화녀와 비형랑


진지왕이 도화녀를 취하려 했지만, 도화녀는 "남편이 있다"는 말로써 진지왕의 성상납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임금이 하고자 하는 일에 거부를 하고 있으니, 남편에 대한 정절의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당대 신라는 남편이 있더라도 미실처럼 남자를 취하는 데에 부끄럼이 없었다. 그런데도 비형랑의 어머니는 "남편이 있는 몸이니 허락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그런데 음란하다고 알려진 금륜(진지)는 의외로 신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순순히 도화녀를 풀어준다. 왕의 권능으로 남편을 귀향을 보내거나, 죽여버리고 도화녀를 취할 수도 있었고, 도화녀 또한, 화랑세기에 의하면, 진지와 관계를 가지므로 해서 자신과 가문의 지위를 상승할 수 있는 계기를 발로 차버린 것이다.


춘향전의 원형 두가지, 도화녀와 도미 

"수청을 들겠느냐? 아닙니다. "저는 낭군이 있는 부녀자 이니 정절을 지키겠나이다.", "수청을 들지 않겠다면, 옥에 들어가 있어라"라고 하는 춘향전의 변학도와 춘향과의 대화의 원형을 보는 것 같지 않는가?

용춘(도이성)

이와 유사한 일은 삼국사기 열전에도 기록되어 있다. 다름 아닌 <도미부인>의 전설이다. 도미는 백제에서 아름답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경국지색이였다. 이때, 개로왕은 도미를 취하려고 하였지만, 도화녀처럼 남편이 있으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개로는 그렇다면 진지왕과 같이 "남편이 없으면 되겠느냐"하고 물어보지만, 진지(금륜)과는 다르게 도미의 남편의 눈을 뽑아 버리고, 추방시켜버린다. 남편이 사라진 도미에게 이제 남편이 없으니 성은을 받겠느냐? 하니 도미가 지금은 "그날이 도래 했으니 날짜가 조금 지나면 월경도 끝나게 된다. 그러니 깨끗한 몸으로 왕의 성은을 받겠다"고 위기를 모면한다. 이에 개로는 도미의 말에 속아 도미를 놓아 준다. 도미는 그길로 자식들을 이끌고 고구려로 도망 한다.


진지왕과 개로왕과는 여인을 취하는 방법에 천지차이가 있다. 진지왕은 도화녀가 남편이 없을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개로는 변학도 마냥 춘향의 주변을 가지치기를 하고, 춘향을 압박하듯이 도미를 취하려하고 있다. 이런 진지가 음탕하고, 난삽하였다면, 진지의 폐위의 명분이 다른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어찌되었던 삼국유사에 의하면 진지(금륜)이 폐위되어 죽고, 2년후 도화녀는 진지왕의 요구를 거부할 명분이였던, <남편>이 사라짐으로 해서 금륜과 관계를 하여 <비형랑>을 낳은 것이다. 화랑세기는 진지는 폐위되어 죽지 않고 유폐되었다가 2년 동안 도화녀가 홀몸이 될때까지 기다려 관계를 가지고 비형랑을 낳았다고 한다.

화랑세기에는 진지왕의 순수(?)한 사랑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의 열병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이에 관한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물론, 호흥이 없다면,글을 쓸까 말까 고민을 하겠지만 말이다.

화랑세기는 단순히 비형랑을 용춘의 서제이며, 비형랑이 용춘을 도와 풍월주에 이르게 하였다고 짧게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와 화랑세기를 따른다면, 용춘은 진지왕이 폐위되기 1년전인 578년에 태어났고, 비형량은 금륜이 579년 폐위된후, 도화녀가 미망인이 되는 2년을 기달려 관계를 하고 태어 났으니 비형랑은 581년생이 된다. 용춘이 13세 풍월주에 오른때가 596년이니 18세에 풍월주가 되고, 비형랑은 15세가 되어 용춘을 도운것이다. 비형랑은 어릴적 부터 귀신을 다룰줄 알았다. 그래서 15세에 집사가되어 진평왕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비담의 형제들

임종(강지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나오지 않는 용춘의 좌우쌍포가 한명은 대남보이고, 또다른 한명은 귀신같은 비형랑인것이다.  이제 드라마상 용춘의 형제들이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나이순으로 정리하면 용수. 용춘, 비담, 비형랑은 모두 진지(금륜)의 소생이다. 용춘의 어머니의 소생으로는 17세 풍월주인 염장(천주/지도)도 있다.

귀신도 부릴줄 알만큼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비형랑이 선덕여왕에 등장했다면, 극의 재미가 극대화 되지 않았을까? 설마 비형랑이 귀신도 부릴줄 알았겠는가?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다들 이렇게 말을 하지 않는가? "귀신같은 놈" 이라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용춘의 그림자 같은 임종이 등장한다. 그런데 삼국유사에 의하면 임종은 비형랑이 15세가 되는 596년경에 직위가 <각간>에 이르렸다. 그러니 임종은 용춘보다는 나이가 많았다고 볼수 있다. 화랑세기에도 임종은 문노가 풍월주가 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세우고, 후에, 17세 풍월주 염장의 아버지인 천주공(진흥/문화)를 풍월주로 하고, 김유신의 아버지인 서현을 부제로 하여, 화랑을 개혁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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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4 - [역사이야기] - 카리스마 비담(김남길), 미실(고현정)이 버린 아들? 사실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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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8.22 1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형랑 캐릭터가 드라마에 나왔다면 매우 매력적이었을 것 같은데요. 아마 내용이 너무 산만해질까 싶어서 빼버린 건 아닌지..뭐 그건 작가 맘이겠지만 말이죠. 그나저나 화랑들도 꽤나 복잡한 가계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당시엔 어떻게 구분이나 잘 했을런지....^^ 미생공은 자기 자식이 누군지 못 알아볼 정도라는데 말이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2 1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담이 비형랑의 역할 모델이 아닐까요? 출생만.. ㅋㅋ
      그들 나름의 찾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미생은 화랑세기에 의하면,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있으면 다 받아 드렸다고 합니다.. 관계를 하지 않더라도..

      당대 재벌 미생이니,, 마이클 잭슨이 떠오른다눈.. ㅋㅋ

  2.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22 11: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미의 전설"
    처음 듯는 이야기이군요...
    물론 비형량 이야기도....
    글쎄요,
    서두에 말씀하신것처럼
    난잡한(난삽 ㅋ) 성관계...
    저는 순결무구한 그런 관계에 혹한다는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멋진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2 12: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순결무구한 것이면 좋겠지만.. 예전에 읽었던 기억에 의존하면 서양쪽에서 아버지가 다른 형제가 약30%정도 된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것 같아요.. 어머니의 남편이 아버지 인줄 알았는데 옆집 아저씨가 아버지더랑..머 뻐꾸기가 둥지를 튼거라는 것이겠지요..

      삼국사기에 도미는 열전에 오르고, 도화녀는 열전에 오르지 않으니 일연이 도미랑 비슷한 여자가 신라에도 있었다라고 이야기를 ㅐ주는 거겟지요..

  3.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22 12: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족보는 왜 이렇게 복잡한지! 제가 좋아하는 비담이 나와서 더욱더 열심히 공부했답니다.

  4. 갓쉰동님 팬 2009.08.22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곳애서는 비형랑이 외국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귀신같은 재주는 그만큼 신라사회에서 뛰어난 인물이었다는 반증도 되구요. 선덕여왕에서 비형랑이 나왔으면 꽤 재밌지 않을까 싶네요^^ 하여튼 요즘 갓쉰동님 글 올라오길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그나저나 용춘에 대해 드라마에서는 너무 홀대하는 것 같아 아쉽네요 ㅎㅎ(내스탈~)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3 1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형에서 비가 코비를 쓰니 코가 클것이다는 것 때문이겠지요.. 처형과 연결하고 싶은 생각도 있는것같고..

      양도라는 인물도 외부에서 들어온 인물로 보는 사람이 많습니당..

      추천은 계속 하시는 거지요? ㅋㅋ

  5. 2009.08.22 15: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22 17: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담이 반란을 일으켜도 구족이 죽지 않았겠네요... 왕족이니...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추천수나 조회수가 적네요...

    제 글도 그래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3 10: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담이 반란을 일으켜서 9족이 죽었을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지요. 단 비담의 인척중 가담히지 않고,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포함되어 있다면요..

      형제가 다른 생각을 가지는 경우도 있잖아요..

      태백산맥이 그런 점을 잘 묘사한것 같아요.. 형제둘이 한쪽은 반공, 한쪽은 친공.. 생존의 법칙이지 않을까함..

  7. 효비 2009.08.23 0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미의 전설...왠지 유교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네요.^^;; 저 당시에는 아직 그런게 형성이 안됐을 텐데 말이죠. 역사를 잘 모르겠지만;;; 정말 재밌게 보고 가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3 10: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꼭 유교적인 것은 아닌뎅.. 유교는 체계화 시킨 것이겠지요..

      개로왕이전에도 유교는 이미 들어와 있었어요.. 그런니 영향을 받았을 수도..

  8. 비단길 2009.10.11 18: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저도 거칠부 연구하는 과정에서
    진지왕 폐위와 관련 정치적 모티브가 작용하고
    또 이것이 신라 상대의 역사을 흐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짐작 정도 했는데

    비형랑 출생 관련 이야기와 함께
    연도까지 잘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9. Favicon of http://thehamletnews.com BlogIcon 김성환 2012.01.01 2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은 감사의 말씀을 매우 짧은 주석입니다

  10. Favicon of http://bellydancespringfield.com BlogIcon 고명진 2012.01.07 0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11. Favicon of http://stevie-wonder.is-leet.com BlogIcon 줄리아나 2012.05.08 1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해가 안갑니다.

  12. Favicon of http://edward.is-a-hard-worker.com BlogIcon 백합 2012.05.10 2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속이고 있군요.

  13.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Pussy.Org 2012.07.21 2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순히 정부가 입국을 만류했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닐뿐만 아니라 샘물교회 교인들이 아니라도 누구나 될 수 있었던 상황입니다.

  14. Favicon of http://hubshout.com/?SESEO-Resellers-Make-Money-From-Providing-Clients-With-Vi.. BlogIcon Benedict 2012.08.04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요즘 시대에도 귀감이 될만한 이야기도 곳곳에 숨어 있다. 이름하여 숨어있는 일인치 찾기라고 할 수 있다. 약간의 서

  15. Favicon of http://www.wagsandwhiskerspetboutique.com BlogIcon invisible dog fence prices 2012.11.03 2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티즌 악플러들은 뻘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만약, 일본이 진다면 일본 악플러들의 만행이 만만치 않을것 같다. 반면에 일본이 파라과이를 이긴다면 한국내의 악플러들이 허정무 감독과 대한민국 대표팀을 공격할 것 또한 자명해 보인다.

  16. Favicon of http://marianadike.multiply.com/journal/item/3/Greatest_In_Survival_Products_A.. BlogIcon how long does dehydrated vacuum sealed food last 2012.11.07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시대에도 귀감이 될만한 이야기도 곳곳에 숨어 있다. 이름하여 숨어있는 일인치 찾기라고 할 수 있다. 약간의 서비스를 하자면, 드라마상 비담과도 관련이 있고, 용수. 용춘과도 관련이 있다.

  17. Favicon of http://maddogblog.com/2007/07/rent-mutt.html BlogIcon canine fence employees 2012.11.23 0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아레스가 퇴장을 건 승부가 없었다면 우루과이는 8강에 만족하고 짐을 싸고 집에 돌아가야만 했다.

    승부차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루과이는 이기고 들어갔고, 가나는 이미 지고 들어가는 승부였다.

  18. Favicon of http://sanbor.typepad.com/blog/2012/04/seventy-two-survival-kit-whats-on-your-.. BlogIcon best survival radio buy 2013.01.02 1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만, 경기 2주를 남겨두고 경기도 과천 빙상장에서 연습도중 다른 사람과 충돌하여 심각한 발목 인대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글에서 덕만이 왕위에 쉽게 오를 수 있는 배경으로 덕만 선대에 있었던, 지소, 금진, 사도, 미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지소는 법흥의 딸이고, 법흥의 동생인 입종에 시집을 간다. 법흥이 죽고 나자, 7살의 어린 진흥(심맥종)이 왕위에 오르지만, 실질적인 전권을 행사하고,수렴청정을 하는 지소(법흥/보도)라고 했었다.

또한, 지소에게는 입종말고도, 진흥왕비인 사도의 아버지인 영실을 두번째 남편으로 두고 있었다. 이런 기록들은 현존하고 있는 <화랑세기>의 기록들의 단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미실의 선대 여인에 대한 이야기기들이 빠져있다. 미실이 존재하게 된 이유는 지소와 옥진, 금진이 있었기 때문에 미실이 살아갈 수 있었고, 국정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법흥왕(514~540) 말년부터 진평왕(579~632) 초기 10 여년 동안은 여인들이 신라를 지배하고 있었던 듯하다. 햇수로 대략 70~80년이 된다. 그러니 신라의 발전기에 해당하는 기간인  법흥왕 후반기~ 진평왕 초기까지 모두가 여인천하 아래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009년 현재 해방 65년이 지났지만, 일제 강점기 1910~1945년 까지 36년만으로도, 일제의 잔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덕만이 왕위에 오른다는 행위는, 현재로 보아서는 삼국에는 없는 여왕이 등극하다니? 하는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는 파천황적인 상황이지만, 화랑세기로 본다면, 당시 신라사회에서는 당연시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일본서기에 의하면 이미 당시 왜에서는 여왕천하에 있었다. 신라의 이웃 국가인 왜의 첫 여왕인 추고여왕(593~628), 제명.황극(641~645, 655~661) 사례도 있으니 충분히 고려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실을 있게 한 지소는 누구이며, 지소의 남자들은 누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전글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를 송고하면서 <지소의 남자>들을 개괄적인 다이어그램으로 보여 주었다.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사람과 사람이 얽키고 설켜 있어서 이들 간에 관계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계보도 또한 복잡하고, 결혼 상대자도 수시로 바뀌어, 남자나 여자 관계가 복잡하다. 이를 추적한다는 것이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신들의 혼맥 보다도복잡하다. 그래서 이를 도표나 계보도를 만들어 놓고, 읽지 않는다면, 가계, 혼맥, 인맥, 남.여상열지사 조차 따라가다 보면 흐름을 놓치기 일 수 이다.

더 나아가 화랑세기는 화랑의 전기라고는 하지만, 수 없이 많이 등장하는 여성들로 인해서 지소전기, 금진전기, 사도전기, 미실전기 처럼 여인열전이 되버린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가계도를 정리 할 때, 남성중심의 부계 가계도, 족보을 작성한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남성중심의 가계도를 작성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여성중심의 가계도를 작성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오죽하면 화랑세기에서 조차도 <대원신통>, <진골정통> 등 여성의 신통과 인통을 중요하게 서술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진평왕과 마야의 맏딸인 <덕만>이 다른 누구보다 앞서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올랐는지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덕만이 오르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까지 도달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해서, 신라를 여인천하로 만든 시발점인 지소태후를 추적할 필요성이 있게 되었다. 
[역사이야기] - 미실이 구축하고 덕만이 완성한 여인천하 글은 맛보기 정도 였다.

이전 글에서 여성 중심으로 그림을 작성하니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막연히 지소의 남자들이 많았구나. 미실도 팜브파탈이라고 하는데, 지소는 미실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부족함이 없구나 할 것이다. 그래서 여성 중심의 가계도를 작성하는 시발점의 맛보기 였고, 첫 여성계보도의 주자로 지소를 선택하게 된것이다.

크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그림을 보면 어떤가? 지소태후의 남자들이 너무나도 많지 않은가? 일국의 왕이나 했음직한 행동이다. 

화랑세기에서 지소를 빼 놓고는 연결이 되는게 하나도 없다. 부계로 찾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인맥과 혼맥과 이유들이 지소를 통해서 개안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지소 중심인 모계도를 작성해 보니, 그전까지 단순히 덕만과 유신이 만호 할머니의 자식들이구나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덕만도, 유신도 지소의 후손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화랑세기가 복잡하면서도 재미가 솔솔하다.

실은 예전에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인물 각각의 성별, 생/몰, 부/모, 남편/부인, 관련 남.여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을 기록해 보관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다 완성하지는 못했고, 중간에 데이타가 다 지워져 버렸다. 처음 화랑세기의 인맥을 데이타베이스로 구축하고, 화랑세기를 분석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화랑세기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서 였다. 결론을 약간 흘리자면 '현존 화랑세기는 너무나 정교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정도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미싱링크를 절묘하게 믹스해 놓은 거라고 할 정도였다.

어찌되었던, 여러가지 일 때문에 자연히 관심이 화랑세기에서 멀어졌고, 드라마 선덕여왕이 하기전까지 까막게 화랑세기를 추적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드라마 선덕여왕은 나의 기억 심연속에 숨어있던 역사에 대한 열정을 끄집어 내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mbc 선덕여왕 제작팀에게 감사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다. .

이번 글도 이전의 덕만의 공주시절부터 있었던, 에피소드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중심으로 하나하나 추적하고, 덕만이 어린시절 왕에 오를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증명하는 시리즈 글이였듯이,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지소를 시작으로 옥진, 금진, 미실 등 여성중심의 계보도 시리즈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전 덕만 시리즈 글을 본사람은 느끼겠지만, 덕만을 추적할때 화랑세기를 인용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유는? 현존하는 화랑세기는 아직까지 역사적인 산물인 김대문의 기록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 것이 통설이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을 비판하거나 할때는 화랑세기와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인용해서 비판을  했었다. 이유는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원전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랑세기 원전을 들어서 소설 선덕여왕이 왜곡하고 있는 팩트를 지적했던 것이다. 만약,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원전으로 삼지 않았다면, 절대로 화랑세기를 인용하여, 드라마 선덕여왕을 비판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는 드라마 선덕여왕을 비판하는게 아니였다. 드라마의 원전인 소설 선덕여왕을 비판하는 것이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역사왜곡은 둘째치고라도 재미가 솔솔하다. 좀더 좋은 소설이나 원전을 가지고, 드라마 사극을 만들었다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글에서는 전편에 이어서 지소 중심 계보도만을 게시하는 것으로 끝을 맺을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글이 너무 늘어지게 되고, 한두시간을 읽어도 모자라는 글이 되기 때문이다. 읽는데 한두시간이면 쓰는데 몇시간이 걸리겠는가? 그러니 당연히 시리즈 글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단 지소의 남편인 입종을 기준으로 계보도를 작성한 것이다. 입종의 기준으로 하면, 지소는 입종의 많은 여인중에 한사람이 된다. 그중 입종과 지소 사이에 진흥(540~576)이 태어난 것 처럼 보인다. 중심은 입종이 되는것이다. 그런데 입종이 중심이 아니고 지소가 중심에 서 있고, 단순히 지소가 여러 남자중 작은아버지 입종을 남편으로 선택한 것 처럼 보인다.


만호(지소/이화랑)는 동륜(진흥/사도)와 결혼해서 진평왕과 그 형제들을 낳았다. 입종과 옥진 사이에 태어난 숙흘종(입종/옥진)과 관계를 맺어, 만명(숙흘종/만호)를 낳았다. 이 만명이 서현과 사랑에 빠져 만노군으로 도피행각을 벌여 유신을 낳은 것이다.
 
전편에 지소의 남자로 입종과 금진 사이에 난 숙흘종과 관계를 맺어 만호를 낳았다고 하였지만, 이는 인맥을 잘못 살핀 것이다. 화랑세기는 삐끗 잘못하면, 삼천포로 빠져 버린다. 지소가 위화랑의 아들인 이화랑(위화랑/준실)과 관계를 맺어 숙흘종을 낳은 것이다.

어찌되었던 남성 중심의 입종이 아닌 여성인 지소를 기준으로 혼맥과 가계도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지소의남편들과 후손들 이미지 크릭시 원본을 볼 수 있음


지소의 10명의 남자 중에서 입종, 이사부, 구진, 영실, 이화랑에게서 후손을 본다.

입종, 이사부 

작은 아버지 입종(지증/연제)에게서는 진흥왕이 태어 났다. 

이사부 사이에는 미실의 남편인 세종과 진흥왕의 첫번째 정비인 숙명을 낳는다. 숙명은 처음 진흥왕에 시집을 갔지만, '어머니가 같은 형제가 된다'하여 진흥왕(지소/입종)이 멀리 하고, 숙명 또한, 진흥과 같은 이유로 진흥을 좋아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하여 숙태자를 낳았다. 숙명은 어머니 지소의 정부인 이화랑과 사랑에 빠져서 도피행각을 벌리고, 원광법사와 12세 풍월주인 보리를 낳는다. 이들의 형태가 서현과 만명의 사랑의 도피를 보는것 같지 않는가? 어찌되었던 보리는 화랑세기를 지은 김대문의 할아버지이다.


영실

아버지 법흥에 의해서 강제적인 결혼을 하였다.
영실과는 송화와 황화를 낳는데, 송화는 복승과 결혼해 진평왕의 비인 마야를 낳는다. 그들의 후손으로 화랑세기는 천명,덕만, 천화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천화가 서동의 아내인 선화의 냄새가 난다.
 

결국 덕만의 계보는 지소/영실->송화/복승-->마야/진평-> 천명, 덕만, 천화이 된다.
부계로는 지소/입종->진흥/사도 ->동륜/만호->진평/마야->덕만 이 된다.
결국 덕만은 모계로 지소에 통하고, 부계로도 지소와 연결이 된다.

영실은 지소 말고도 여러 아내가 있었는데, 그 중에 옥진이 있었다, 옥진은 1세 풍월주인 위화랑(섬신/벽아)의 딸이고, 사다함의 어머니인 금진의 언니가 된다. 영실/옥진은 사도, 노리부, 흥도, 묘도를 낳는다.

사도(영실/옥진)는, 숙명(이사부/지소)이 지소의 정부인 이화랑(위화랑/준실)과 사랑에 빠져 폐위된 이후 진흥비가 되어 동륜, 금륜(진지), 아양을 낳는다. 아양은 유신의 할아버지인 무력과 결혼하여 서현을 낳는다.

영실과 옥진 사이에 난 흥도는 기오(홍기/선혜)와 결혼해서 금륜(진지)비가 되는 지도를 낳는다. 지도는 금륜사이에 용수와 용춘 형제를 낳고, 진지왕이 죽은 후 진흥/월화 사이에서 난 천주공과 결혼한 후, 16세 보종(설원랑/미실)에 이어 17세 풍월주인 염장, 천장을 낳는다.

이화랑

이화랑과 사이에는 만호를 낳는데. 만호를 자신의 손자인 금륜(진흥/사도)에 시집보낸다.
만호는 지소의 남편의 소생인 숙흘종(입종/금진)과 정을 통하고 만명을 낳는다. 만명은 유신의 아버지인 서현에게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린후 만노군에서 유신을 낳는다. 서현의 어머니인 아양은 (진흥/사도)사이에 태어났다.
그러니 사다함은 모계쪽으로 보면 유신과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위화랑/오도 - >금진/입종->숙흘종/만호(지소/이화랑) -> 만명/서현 -> 유신
부계로는 무력/아양(진흥/사도)->서현/만명[숙흘종(입종/금진)/만호(지소/이화랑)] - >유신

또한, 유신은 지소의 중첩된 직계 후손인 것이다.
지소/입종->진흥/사도->아양/무력->서현/만명[숙흘종(입종/금진)/만호(지소/이화랑)]->만명->유신
할머니 만호는 동륜과 결혼해서 진평의 형제들을 낳았다. 그러니 진평왕과 만명은 동복남매간이 된다.

구진

구진은 지소의 침소를 지키는 자였는데, 지소와 관계를 가져 보명궁주를 낳는다. 보명궁주는 별궁에 살았는데, 진평왕의 아버지인 동륜이 태자시절인 572년 미실의 꼬임에 빠져 보명궁의 담을 넘다가 개에게 물려 죽고 만다. 이때 미실은 문책을 받아 궁에서 쫓겨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용수.용춘과 미실 사이를 적대적인 관계로 설정하엿다. 진지왕 폐위시 미실(묘도/미진)과 진흥비인 사도(영실/옥진)의  용수. 용춘의 아버지가 폐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수.용춘은 그 이후에도 왕실에서 중용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춘추가 진골이기 때문에 왕위를 잇는데 힘들었다고 하지만, 용수.용춘이 중용되는 것으로 봐서 신분상에 별다른 하자가 없는 것 같다. 또한, 위에서 진지비인 지도(홍도/기오)가 진지(금륜)이 죽은 후에서 천주공에 시집을 가고, 17세 풍월주인 염장을 낳는 것으로 봤을때 신분상 제약은 없었던 것으로 비쳐진다. 

어찌 되었던 법흥왕 말년부터 덕만에 이르기까지 지소의 후손이 아니면 힘을 쓸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옥진의 후손은 진흥비 사도(옥진/영실)과 지도[흥도(옥진/영실)/기오]가 된다. 

지소의 몸에서 난 숙명(지소/이사부)를 진흥(지소/입종)과 결혼시키고, 어쩔수 없자, 자신의 남편인 영실의 자식인 사도(영실/옥진)을 진흥비에 올린다. 아마도 숙명이 도망간 것은 지소로써는 의도하지 않았던 중대 사건이 아니였을가 한다. 그래서 이에 만족하지 않고, 만호(지소/이화랑)를 자신의 손자인 동륜(진흥/사도)와 결혼을 시키고 있다. 

화랑세기가 말한다. 진골, 성골은 없다

화랑세기를 읽다보면, 영실을 남편으로 두고 있던, 지소 맥과 옥진 맥 간에 대결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화랑세기는 옥진 계열을 대원신통이라하고, 지소 계열을 진골정통이라고 하고 있다. 


(c) 영구아트

화랑세기를 엮어서 성골/진골은 모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부류 들이 있다. 또한, 대원신통은 성골이라하고, 진골정통은 진골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화랑세기를 재대로 읽는다면, 화랑세기에서 진골정통은 현재(김대문 시기)의 진골과 다르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 진골/성골를 구분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실제로 화랑세기 내에 진골은 진저리나게 많이 나오지만, 성골이라는 단 한글자도 없다. 사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읽어도 성골이란 단어는 두군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2,000년 대에 벌어지는 성골/진골 논쟁을 1,300년전 김대문이 화랑세기를 쓰면서 예측이라도 한것 같지 않는가? 


용수.용춘의 처인 천명의 모계는 마야이다. 마야(송화/복승)는 지소의 맥을 이은 송화(지소/영실)의 자식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진골정통이 되는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 진지(금륜)이 폐위되어 성골에서 진골로 족강되었다는 용수.용춘은 진골정통인 천명으로 인해서 복원되어 성골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최소한 그의 자식인 춘추라도 말이다.

진지왕의 비인 지도(옥진/영실->홍도/기오)는 옥진의 맥을 이은 대원신통이다. 그렇다면 용수.용추는 아버지 진지(금륜)의 폐위로 족강되었다는 주장은 있을 수 없게 된다. 용수.용춘은 자신의 아비가 왕이던 아니던 상관없이 폐위에 의한 족강여부에 상관없이 어머니인 지도에 의해서 처음부터 대원신통인것이다.  

또한, 진흥비 사도(옥진/영실)는 옥진의 후손이다. 그렇다면 진흥의 자식들은 이미 태어나자 마자 대원신통으로 결정된다는 이야기 이다. 결국에는 진흥왕의 아들인 동륜, 금륜이 진골이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진골보다 성스런 성골을 그렇게 함부로 내동댕이 칠 수 있는 것 인가? 그런데 아무도 동륜의 아들인 진평은 진골이라고 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이유야 있다. 진골정통인 지소의 딸인 만호(지소/이화랑)가 동륜에 시집을 감으로써 피 씻김을 했다는 것이다. 무슨 진골보다 성스럽고, 알찬성골이 자신들의 잘못된 논리에 의해서 이리 저리 이동을 하던가?

김유신을 대입하면 어찌될까? 김유신은 만명의 자식이다. 만명은 만호의 자식이다. 만호는 지소의 자식이다. 지소는 진골정통이다. 그러므로 김유신은 지소의 맥을 이은 진골정통이 된다. 그럼으로 김유신은 성골이다. 김춘추가 왕위에 오를때 성골이 없어서 진골인 김춘추가 올랐다고 하지만, 성골은 김유신도 있고, 그외 너무나도 많은 성골들이 보인다.


성골과 진골은 그냥 왕가에 편입되면 왕실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왕의 계승권은 전왕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 뿐이고, 없으면, 가까운 왕실사람부터  먼 왕실의 자손이라도 끌어와 왕위에 앉히는 것이다. 어느시대나 어느나라나 일반적인 형태에 불과하다. 신라라고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왕녀에 의해서 진골,성골이 결정된단 말인가? 그냥 진골이 성골이고, 성골이 진골인 것이다.  


어찌되었던 지소의 남편과 지소의 후손들을 지소중심의 모계 혼맥.가계도로 정리를 하였다. 위의 그림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신라 중기 법흥왕 말기과 진흥왕 초기 시기는 남자왕이 아닌 지소여왕의 시대 같아 보이지 않는가? 

지소태후 남편과 자손들 혼맥.계보 만을 올리고, 끝내려고 했는데, 여전히 글이 길어져 버렸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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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현철 2009.08.01 0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활기차고 알찬 8월 되시길...

  2. Favicon of https://jaenni0707.tistory.com BlogIcon 잰니77 2009.08.01 09: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성가계도 보다가 쥐쥐 쳤어요. 넘 어려워여 ㅠ
    저에게도 선덕여왕 정보를 몰래(?) 월욜날 선덕여왕 선수치게요 ㅋㅋ

  3. 오타지적 2009.08.01 1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문단

    수렴청청 -> 수렴청정

  4. Favicon of http://starculture.tistory.com BlogIcon 아이러니♡ 2009.08.01 11: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역사글이라 읽는 도중에 포기했어요 ㅠ.ㅠ
    역사를 이렇게 잘 아는 갓쉰동님이 부럽네요 ㅋㅋ

  5. ^^ 2009.08.01 1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 생각은 화랑세기 자체가 일제시대 때 박모씨에 의해 만들어진 판타지인만큼
    선덕여왕도 그냥 판타지라고 생각하고 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냥 판타지라고 쳐도
    그 역사적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주인장님의 열정에는 감탄할 수 밖에 없군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1 12: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박모씨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당.. 아마도 위작이라는 설이 대두되고, 위작으로 확인된다면, 지금까지 박모씨를 인용한 사람은 둘째치고, 인용하지 않았지만 영향을 받으며 논문을 쓴 사람들의 충격은 대단할 것 같습니다.

      물론, 소설가들은 박모씨 유족들간에 저작권 싸움에서 백전백패 할 것이구요..

  6.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1 1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로마시대 신들의 혼맥은 저리가라군요.
    무척 복잡합니다 ㅎㅎㅎ
    성골과 진골 구분에서 한참 봤습니다.
    제가 아는 역사와 차이가 나서 ㅎㅎㅎ
    열정에 감사드리며
    오늘도 많이 공부하고 갑니다.
    8월 한달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1 12: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신들이 하는 일은 용서가 된다는 듯이 말이지요..

      성골/진골은 너무나 고착화 되어서 깨지기 힘들겁니다.. 저하나 발버둥 친다고 해서리..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성골은 없거든요.. 김부식도 성골이 있다고 하지않았어요.. 인용만 했징..

  7. 김윤중 2009.08.01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원하게 읽고 갑니다..감사합니다

  8. 남당 2009.08.01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당 박창화가 남긴 문서는 화랑세기 외에도 수십권이 더 있죠. 그중에는 아예 시조 이래의 혈통과 계보만을 상세히 기록한 상장돈장 같은 족보문서도 있구요....대원신통의 조상인 보미궁주는 미사흔을 탈출시키고 신라로 귀화해온 야국(다파나국)의 공주였지요. 성골이란 말은 아마도 후세(고려?)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일듯...소위 태조 왕건의 조상으로 등장하는 성골장군이나 당 황제(숙종?)등의 전설과도 맥이 닿아있는 후대의 허구겠죠.

  9. Favicon of https://humorzoa.tistory.com BlogIcon 유머조아 2009.08.01 14: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흐아.. 가계도 보니 왠지 현기증이...

  10. Favicon of http://umean2me.egloos.com/ BlogIcon elly 2009.08.02 0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당 박창화의 문서 중 신라사초를 읽다보면 그 윗대에, 미실이나 선덕여왕 혹은 지소태후보다 훨씬 더 쟁쟁했던 여인들이 나옵니다. 미실이나 선덕여왕은 생각치도 못한 권력을 가진 여인들이었지요. 그 여인들의 모든 것은 유교적 관점에 입각되어 많이 삭제된것 같아요. 대원신통의 조상이 보미공주라면, 진골정통의 조상은 소문국(지금의 의성에 있었다 신라에 흡수된 국가) 묘덕왕의 딸인 운모입니다. 운모의 자식인 옥모로 시작해서 지소태후로, 마야로 그리고 선덕여왕으로 이어진거죠. ^^

    또 우리가 몰랐던게 골품을 수여받는다라는건데요. 화랑세기를 읽든 신라사초를 읽든 어느 정도 나라에 큰 업적을 세우면 골품을 수여받더라구요. 그러니 진골 성골이란 것도 맞는 표현이 아닐 수도 있고, 사회의 계급자체가 인도의 계급처럼 고착되어 상하로의 통행이 안되는게 아니라 덜 고착되어있다고도 볼 수 있더라구요.

    신라의 복잡한 가계도지만 왜 이렇게 끌리는지 모르겠어요..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2 10: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끌리는 무언가가 있는건 사실 저도 끌리고 있거든요.. 잼있고, 잼있고, 그렇더라구요.. 발상의 전환도 되고.. 파급력은 역대 최고가 아닐까 합니다.. ㅋㅋ

  11. min 2009.08.05 1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옥진이 대원신통이고 지소가 진골정통아닌가요?

  12. Favicon of https://saeyanbooks.com BlogIcon 도서출판 새얀 2009.08.06 2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정말 글 잘 일고 갑니다. 소설 읽는것 처럼 재미있었고 단백했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13.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 BlogIcon 실비단안개 2009.09.23 18: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삼 선덕여왕 재방송을 보다가 접속했습니다.
    미실의 실존에 대해 찾다보니 갓쉰동님의 블로그로 와 졌네요.

    참 복잡한 족보입니다.
    모두가 엮여져 있으니 - ;;

  14. 은 루히 2009.11.25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렇게 복잡해서야 원 -_-;;
    그냥 혈통에는 얽매이지 않는게 좋겠군요;

  15. 루미네요~ 2009.12.08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쓴분의 글을 읽고 나니 지금의 조선시대 유교사상으로 인해 여성의 지위가 낮아진것이 안타깝게 느껴지네요~~

  16. Favicon of http://www.movieleatherjacket.com/categories/Winter-Costumes/ BlogIcon winter jacket coat 2011.11.16 2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고 나니 지금의 조선시대 유교사

  17. Favicon of http://www.treysmithblog.com/about/ BlogIcon Trey 2011.11.21 1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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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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