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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설, 추석 차례상 차리는 방법 감춰진 진실찾기 설, 추석, 한가위, 중추절과 차례 상차리는 방법 감춰진 진실찾기 차례상 차리는 방법은 지방마다 시대마다 달랐다. 지금도 차례상 차리는 방법에 대해서 설왕설래한다. 그런데 차례상 차리는 방법에는 정도가 있을까? 우리민족 고유의 가장 큰 3대 명절(설,대보름,추석)인 추석을 "추석은 우리것이 아니(였)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로 부터 돌이 날라올지도 모르겠다. 차례상 차리는 방법에서 차례의 유래등 감춰진 진실을 찾아 보려 한다. 설마 추석이 우리것이 아니라니 좋은밥 먹고 헛소리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이다. 그리고 추석의 유래에 대해서 장황설을 늘여놓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나 추석의 유래를 보면 우리것이 아닌것을 설령 우리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우리의 문화에 깊숙히 스며들었으니.. 더보기
공주의 남자, 김승유 추석 보름달은 원한에 시퍼런 날이 서있었을 것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사육신의 대표로 이개를 내세워 사육신들이 김종서의 지지세력이고 단종을 보위하는 역할로 그리고 있다. 그런데 정말 사육신은 계유정란에는 관여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사육신은 계유정난때 김종서의 반대파였다. 그리고 사육신 등 다수는 계유정란 공신이 된다. 더군다나 사육신 등 다수는 단종이 폐위될때 오히려 단종폐위에 앞장서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단종 복위를 노렸다고 해서 단종폐위에도 반대했을 거란 짐작은 가능하겠지만, 알고 보면 단종폐위까지 수양대군과 사육신은 한통속이였다. 다만, 추후 지향하는 바가 달랐을 뿐이다. 그래서 후에 수양대군이 단종에게 양위를 받고 반목하여 세조와 세자 등을 암살하려고 시도하다 들켜서 처형되고 말지만 말이다. 최소한 사육신은 세조가 왕이 되기 전까지는 수양대군의.. 더보기
계백, 동명제 초혼관 의자, 교기와 흥수는 왜 왜색풍 옷을 입었나? 사실은 에서 동명제를 주재하는 인물을 뽑기 위해서 의자와 교기는 가잠성 전투에 참가한다. 그리고 의자왕자는 인질(생구)가 되었지만, 생구(포로)들의 내부교란으로 가잠성을 점령한다. 당시 가잠성 점령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백제가 공격하였지만, 백제는 패퇴했었다. 어쨌든, 승전을 하였다고 돌아온 교기와 의자 중 의자가 동명제를 주재할 만큼 공을 세웠지만, 사택비와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의자대신 교기가 주관자가 되었다고 선언을 한다. 이때 흥수는 교지를 교기에게 전달하지 않고, 의자에게 전달한다. 합의된 무왕의 명을 어긴 것이다. 백제라는 나라가 허울뿐인 나라에 허울뿐인 왕뿐이다. 다시금 의자가 동명제를 주관하게 되었지만, 의자는 교기에게 양보하고 만다. 그런데 의문이 든 장면이 에 등장을 한다. 동명제를 주관.. 더보기
사라진 개천절, 고조선 누구도 하지 않는 이야기.. 10월 3일은 하늘이 열리는 개천의 날이라고 한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날이라고 한다. 음력 10월 3일이던 날이 양력 10월 3일이 되고, 환웅이 신시를 만들었다고 알려지는 개천의 날이 단군이 나라를 세운날이라고 잘못 알려지게 된다.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탄신일이 아니듯, 크리스마스에 눈이오지 않음 안된다는 환상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유대땅에서 눈을 보기는 천지개벽을 하기만큼 힘들다라고 이야기를 해줘봐야 별무 신통이다. . 예수와 동방박사는 사라지고 그자리에 가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이 되는 일처럼 원형이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민족의 시조가 나라를 세웠다는 날이 바뀐다고 달라질것도 없다. 단군이 기원전 2333년에 개국을 하였다. 단군이 태어난때로 돌아가면 환웅이 범과 곰에게 마늘과 쑥을 주어 동굴에서.. 더보기
중추절 한가위는 수출품, 추석은 수입품 이라는데 사실일까? 우리의 명절중 중국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은데 추석이나, 중추절도 중국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중추절과 추석은 별도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이런 와중에 중국의 슝베이 역사학자가 라고 을 주장했었습니다. 사실 과 과 는 조금씩 기원의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의 추석의 기원은 중국쪽에서 찾아야 합니다. 당나라이전 시기에는 중국에서 중추절에 관한 기록이 전무하고, 당나라 중기 말기 시대의 기록인 에도 8월 중에 있었던 에 관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슝베이가 중추절은 "신라의 것으로 부터 이다"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9세기 중엽에 일본의 승려인 이 쓴 라는 순례기에 의해서 입니다. 는 9세기의 동아시아의 경제/문화/교통에 관한 중요한 사료입니다. 엔닌이 활동하는 시기는 가 청해진에.. 더보기
1박 2일 MC몽 편집, 나영석 pd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KBS2 1박2일에 출연중인 MC몽이 병역비리 논란에 휩싸였다. 이글은 MC몽 병역비리를 다루는 글이 아니다. MC몽은 논란이 확산되는 시점에 비리여부와는 상관없이 스스로 진퇴를 결정하여 같이 출연한 출연자와 제작진에 대한 배려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MC몽의 출연여부와는 상관없이 나영석 PD의 프로를 즐겨보는 입장에서 글을 쓴다. 글쓴이는 일요일이 되면 즐겨보는 프로는 해피선데이의 남자의 자격과 1박2일이다. 전체적으로 MBC 프로를 주로 시청하는 글쓴이가 KBS 예능프로를 보는 예외 중에 하나가 해피선데이다. KBS의 해피선데이가 하는 프로가 남자의 자격 같은 경우 남자들의 다양한 도전이 대리만족을 주기도 하고, 1박2일에서 전국의 알려진 곳이나 알려지지 않는 곳을 여행을 하면서 보여주는 사람 사.. 더보기
동이, 세자와 연인군 한가위 풍등놀이는 있을수 없는 폐륜 MBC 드라마 동이에서 세자와 연인군은 한가위를 맞이 하여 궁을 몰래 빠져 나와 진한 형제애를 발휘한다. 풍등놀이와 불꽃놀이를 하고 답교놀이를 하면서 세자는 연잉군과 사이좋게 지내기를 소원하고, 연잉군은 이미 형님과 잘 지내고 있는데 소원을 낭비했다고 말을 한다. 그렇다면 드라마 동이에서 처럼 세자와 연잉군이 한가위를 맞이하여 궁밖으로 나가 놀수 있었을까? 물론, 동이에서 한가위날에 궁을 빠져 나온 것은 아니다. 한가위(추석)을 맞이하여 백성들은 풍성한 가을 추수감사제를 하였을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오곡이 풍성하고, 가난한 생활에서 가장 풍족하게 햇곡식을 마음껏(?)먹을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였을 것이 자명하니 말이다. 조선시대에 왕가에서는 왕이 직접 한가위를 맞이해서 아침에는 제사를 지내고 저녁에는 .. 더보기
동이, 인현왕후 죽은 2달 동안 실제 무슨일이 있었을까? 드라마 동이에서 인현왕후가 죽고 2달이 지난 후 세자와 연잉군은 한가위를 맞이하여 궁성을 벗어나 백성들과 답교놀이에 참여를 하고, 두 형제간에 우애를 다진다. 하지만, 세자는 소매치기의 혐의로 관가에 끌려가게 되고, 동이는 세자와 연잉군이 함께 궁궐을 빠져 나갔다는 말을 전해 듣고 다시금 평상복으로 갈아 입고, 연잉군과 세자를 찾아 나선다. 못하는 것도 없고, 알고 보면 하는 것도 없는 동이는 시장통에서 우연히 연잉군이 가지고 있다 떨군 주머니를 발견한다. 우리의 동이는 눈이 너무나 밝아 600만불의 사나이 눈을 뛰어 넘는 안력을 발휘한다. 사실 동이를 동이 답지 못하게 만든 이는 동이의 작가 김이영이나 연출을 맡은 이병훈이다. 한가위처럼 더도 말고 한가위 같기만 하라는 말이 있듯이 과하면 넘치고, 넘치.. 더보기
동이, 세자와 연잉군을 불효자 만들어 얻는 이익은 무엇인가? mbc 월화드라마 사극 동이를 보고 있자면 옥의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커다란 오류가 있다. 그것도 극을 이끌어 가는 중추적인 팩트에 관한 문제이다. 만약, 동이를 보는 동안에 동이나 숙종이 아이폰을 들고 있거나, 자동차가 멀리서 보인다면 어떤 반응을 하여야 할까? 한두번이라면 애교수준으로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극중에 등장한다면 연출자가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책임을 지고 사과를 해야 할 사태가 발생했다고 말해야 한다. 이는 누구나 확인이 가능한 문제이니 쉽게 논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동이에서 등장하는 인물에 관한 문제라면 어떨까? 단순히 작가의 실수이거나 연출자가 확인을 하지 않는 불성실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동이는 이미 소설로 만들어서 책으로 출판이 된 것을 드라마로 .. 더보기
'선덕여왕' 원작자 "독도는 일본땅" 주장하나? 독도는 삼국시대 신라 장군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키므로 해서 부속도서인 독도까지 신라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울릉도 원주민의 생각과는 다르게 어찌되었던 신라의 땅이 되고, 신라가 고려에 복속이 됨으로서 울릉도와 독도 또한 고려의 영토가 되었다. 이런 전차로 조선을 이어 대한민국이 될때 까지 울릉도와 독도는 대한민국의 땅이다. 그래서 일본이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 땅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 신라장군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키지 않았다면 어찌될까? 또는 이사부가 울릉도를 복속시켰다는 기록을 없었다면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미 잘 알려진 일이고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에 반하는 이야기를 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