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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공주의 남자>에서 궁을 나간 세령은 빙옥관에서 신면의 손에 이끌려 궁에 다시 돌아온다.


궁에 돌아온 세령은 세조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아버지의 죄업을 자식들에게까지 전달하겠는냐는 것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의경세자(숭:장)(덕종:성종의 아버지)이 피를 토하고 쓰러지자, 세조(수양대군)은 그동안 드라마에서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세조의 뒤를 이어 예종이 되는 둘째 왕자 해양대군(황)를 궁으로 불러들인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 설정으로는 정희왕후 처가에서 길러진 것으로 그리고 있다.


어쨌든 의경세자 숭(장)은  곧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의경세자는 1438년 생으로 20살이 되는 해에 죽는다. 드라마 시제는 1456는 6월 사육신의 쿠데타 실패와 의경세자(장)이 죽은 1457년 9월 2일 사이라는 것을 뜻한다.
 


수양대군은 악담을 퍼붓는 세령에게, 신면을 들어오게 하면서, 신면은 세령과 결혼할 수 없다고 말을 한다. 세령은 신면 너의 노비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시청자를 낚시하는 장면에 지나지 않지만, 신면의 노비가 된다고 해서 세령과 결혼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첩으로 삼으면 되니 말이다. 어쨌든, 그동안 신면은 수양대군에게 끊임없이 이용만 당한 것이 된 것인가? 아니면 세령공주를 노비로 부리니 좋아라 해야 하는 것인가?


<공주의 남자>에서는 1450년부터 신면은 세령을 향한 해바라기 였고, 2번의 결혼 식 실패를 맛봐야 했다. 7년 동안 세조의 노비였으니 신면의 노비가 된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어짜피 공주의 남자는 요즘으로 치면 막장 멜로 시대극이기 때문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시제는 무의미 하다. 작가의 작의적인 시간의 꼬임이 있다. 어쩌면 공주의 남자만의 시간의 왜곡현상이 있어서 블랙홀이 형성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실존인물이고 계유정란 전에 죽었던 김승유가 살아나 젊음을 유지하고 세령과 사랑놀음을 하고 있고, 공주의 남자에서 하루는 1년처럼 빠르게 진행된다. 더군다나 미래로 과거로 지멋대로 왔다리 갔다리 황당 타임머신을 타고 다닌다.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이 끝나고 김승유가 강화도에서 1박2일 입수를 하고 나오니 1년이 지나버렸다.


강화도에서 살아나 대호로 알리게 되는 온녕군을 암살하고 신죽주를 죽이려 실패하자, 세조와 한명회는 온녕군을 죽인 배후는 단종과 정종과 금성대군이 획책한 것이라며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다. 결국에는 김승유가 단종을 몰아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것이 된다.
 


하지만, 온녕군이 죽은 때는 1454년 5월 12일 이었고, 세조(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른 때는 1455년 6월 11일(윤)이였다.
 

단종 2년, 1454년 5월 12일,  온녕군(溫寧君) 이정(李裎)이 졸(卒)하였다

 

위키백과 사전에는 1453년 졸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1453년 10월 계유정란이 끝나고 김종서의 첫째아들 김승규의 아내와 손녀 아강이 강곤의 집에 노비로 팔린 것으로 그렸고, 세령과 신면이 강곤의 집에서 아강과 형수를 빼돌려 살게하다. 김승유가 돌아오자 빙옥관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그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주의 남자를 보고 김종서는 모두 절손된 것으로 알고, 김종서의 살아남은 후손들은 족보를 샀는줄 안다. 하지만, 김종서의 살아남은 손자만 해도 4명이 있었고, 자식도 3명이나 있었다. 물론, 드라마 주인공 김승유는 계유정란 전에 죽고 없었다. 공주의 남자의 이야기 구조는 납량극에서나 나올 스토리 구성이다.
 

전일에 정난(靖難)할 때 사람을 많이 죽이지 않으려고 하여 모두 너그러운 법[寬典]에 따랐는데, 근일에 대간(臺諫) 에서 와언(訛言)이 떠들썩하게 일어남으로 하여 간당(姦黨)의 근본(根本)을 모두 제거하자고 굳이 청하므로, 대신(大臣)에게 의논하였더니, 대신의 의논도 이와 같았다

..중략..

부처(付處)한 이용(李瑢)의 아들 이우직(李友直)과 황보석(皇甫錫)의 아들 황보가마(皇甫加麿)·황보경근(皇甫京斤), 김종서(金宗瑞)의 아들 김목대(金木臺), 김승규(金承珪)의 아들 김조동(金祖同)·김수동(金壽同), ..생략..을 죽여라


단종 2년 1454년 8월 15일


1453년 10월 10일 : 김승규와 김승벽의 두아들 차동과 사동이 죽음.

1453년 10월 11일 : 김종서 죽음

1453년 11월 23일 : 김승벽, 서자 김석대 죽음

1454년 8월 15일(추석) : 서자 김목대, 첫째 김승규 아들 김수동, 김조동 죽음


계유정란으로 노비가 되어 강곤에게 팔려간 며느리, 손녀 아강은 계유정란 때문에 강곤에게 노비가 된 것이 아니다. 실제는 사육신들이 수양대군(세조) 척살 쿠데타에 실패하고, 금성대군의 역모 여파로 그전에는 공노였다가 공신들의 사노비가 된 것이다.


이때 사육신들의 아내와 첩들과 딸들이 공신들의 노비가 되었다. 알고 보면 두고두고 김종서 일가와 사육신들은 악연의 연속이다. 더군다나 1457년 6월 금성대군이 순흥에서 반란를 모의한다는 말을 듣고 치계를 당하고, 금성대군을 사사시키라는 대신들의 간언이 있었으나 세조는 이를 물리친다. 1457년 9월 2일 의경세자가 죽는다. 일련의 사건이 김종서 일가에 쓰나미로 몰려온것이다. 김종서 일가는 사육신과 금성대군. 정종과도 악연의 연속인 것이다.


 

김승규(金承珪)의 아내 내은비(內隱非)·딸 내은금(內隱今)·첩의 딸 한금(閑今)은 영의정(領議政) 정인지(鄭麟趾)에게 주고,

김승규(金承珪)의 딸 숙희(叔熙)는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강곤(康袞)에게 주고

김승벽(金承壁)의 아내 효의(孝義)는 예조 참판(禮曹參判) 홍윤성(洪允成)에게 주고,

- 세조2년 1456년 9월 7일




<공주의 남자>에선 김승규의 아내와 딸 아강이 강곤의 노비가 되었지만, 실제는 영의정 정인지의 노비가 되는 것이다. 그것도 세조가 왕위에 오른 2년 후인 세조 2년, 1456년 9월 7일에 말이다.


형수와 조카를 빼돌릴 수 있는 때는 지금 드라마 시제인 1456년 9월 이후가 되어야 합리적이다. 문제는 형수와 조카와 김종서관련 여자들은 성종때 풀려나지만 말이다.  


그런데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는 김승유와 김종서가 정종과 경혜공주와 친하고, 금성대군과 친할뿐만 아니라, 사육신 이개와 스승관계에 세조를 척살할 계획을 세우고 정종과 금성대군과 함께 쿠데타를 꾀하고 있다.


물론,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한때의 적이라고 해도 공동의 적인 세조를 몰아내기 위해서 합종연횡은 당연하다. 적과의 동침처럼 극적인 설정이 없다. 단순히 처음부터 끝까지 한편이라는 것 보다는 말이다. 물론, 처음 사육신과 안평대군과 김종서.황보인은 한편이었다. 계유정란 시 사육신들이 배신을 때리고 살아남은 김종서 일파를 죽이는데 앞장섰지만 말이다.
 

이현로(李賢老)·이승윤(李承胤)·이개(李塏)·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 등이 교결(交結)하여 마음으로 굳게 맹세하고 ‘문하(門下)’라고 칭하고, 모두 도서(圖書)의 헌호(軒號를 지어서 서로 한때의 문사임을 자랑하였으나, 모두 농락(籠絡)당한 것이었다

..중략..


한때 (안평대군) 용(瑢)에게 아첨하는 자들이 용(瑢)에게 글을 보내는 데 한결같이 계서(啓書)와 같이 하여, ‘용비(龍飛)’·‘봉상(鳳翔)’·‘번린(攀鱗)’·‘부익(附翼)’·‘계운(啓運)’·‘개치(開治)’ 등과 같은 용어를 쓰고도 의혹하지 않았으며, 혹은 신이라 칭하는 자도 있었다. 정난(靖難) 한 뒤에 많이 얼굴을 바꾸고 꼬리를 흔들었으나, 세조는 모두 묻지 않았다

- 단종 1년, 1453년 5월 19일


집의(執義) 이개(李塏)가 본부(本府)의 의논을 가지고 아뢰기를,

“신 등이 지금 정부에서 아뢴 죄목(罪目)을 보니, 이용(李瑢)이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정분(鄭笨)에게 지시하여 심복을 병조(兵曹) 군기감(軍器監)에 포열(布列)하게 하였다 하였으니, 정분의 죄가 황보인·김종서에 못하지 않습니다. 허후(許詡)는 집정 대신(執政大臣)으로서 자주 용(瑢)의 집에 갔으니, 당여(黨與)인 것이 분명합니다. 조수량(趙遂良)·안완경(安完慶) 등은 용(瑢)과 더불어 비밀한 말로 약속하였고, 또 조수량은 용(瑢)의 금대(金帶)를 받았으니, 이것도 또한 용(瑢)의 당입니다. 조순생(趙順生)·이석정(李石貞)·지정(池淨) 등은 모두 무관(武官)으로서 용(瑢)의 집에 왕래하여 당원(黨援)을 하였으니, 청컨대 모두 율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그 나머지 지당(支黨) 이보인(李保仁) 등은 밤낮으로 용의 집에 모였으니 어찌 역모를 알지 못하였겠습니까? 또한 법에 의하여 논단하소서.”

- 단종 1년, 1453년 10월 28일



더군다나 이개를 비롯한 많은 사육신들이 안평대군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가 안평대군과 황보인, 김종서가 수양대군 일파에 척살되자. 배신을 때리고 김종서, 황보인, 안평대군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들을 단종을 압박해서 죽이라고 한사람들이 사육신들의 다수였고, 정난공신이 되었다.

더군다나 사육신들은 단종을 몰아내고 세조를 왕에 옹립하고 좌익공신이 된다.

한명회, 신숙주와 함께 단종폐위와 수양대군(세조) 옹립으로 좌익공신이 된 사육신 성삼문

임금이 좌익 공신(佐翼功臣)을 정하는데,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익현군(翼峴君) 이관(李璭)·한확(韓確)·윤사로(尹師路)·권남(權擥)·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를 1등으로 삼아 수충 위사 동덕 좌익 공신(輸忠衛社同德佐翼功臣)이라 이름하고, 정인지(鄭麟趾)·이사철(李思哲)·윤암(尹巖)·이계린(李季疄)·이계전(李季甸)·강맹경(姜孟卿)·윤형(尹炯)·최항(崔恒)·전균(田畇)·홍달손(洪達孫)·양정(楊汀)·권반(權攀)을 2등으로 삼아 수충 경절 좌익 공신(輸忠勁節佐翼功臣)이라 이름하고, 권공(權恭)·이징석(李澄石)·정창손(鄭昌孫)·황수신(黃守身)·박강(朴薑)·권자신(權自愼)·박원형(朴元亨)·구치관(具致寬)·윤사윤(尹士昀)·성삼문(成三問)·조석문(曹錫文)·이예장(李禮長)·원효연(元孝然)·한종손(韓終孫)·이휘(李徽)·황효원(黃孝源)·윤자운(尹子雲)·이극배(李克培)·이극감(李克堪)·권개(權愷)·최유(崔濡)·조효문(曹孝門)·한계미(韓繼美)·정수충(鄭守忠)·조득림(趙得琳)을 3등으로 삼아 추충 좌익 공신(推忠佐翼功臣)이라 이름하였다.

세조 1년 1455년 9월 5일 (음)



 



많은 사람들이 신숙주가 세종의 유명을 버리고, 조카인 단종을 폐위하는데 앞장섰다고 말하고 신숙주를 배신의 아이콘으로 쉬이 쉰다는 숙주나물을 만들어 버렸다.
신숙주는 한번의 배신을 했지만, 사육신은 3번의 배신을 하였다.

첫번째 안평대군과 김종서를 배신하고, 두번째 단종을 배신하고 세조를 옹립했으며, 세번째 세조를 배신하고 단종을 복위시켰다. 신죽주랑 비교해서 누가 더 많은 배신을 했을까? 신숙주가 하루만 지나면 쉰다는 숙주나물이라면 사육신은 3번 배신하고 돌고돌아 충신이 된건가?

가끔가다가 댓글로 충신인 사육신이 그럴리가 없다는 댓글이 달리고, 사육신의 후손인데 선조를 모욕하지 말라도 한다. 본인들이 정확히 사육신의 후손인지는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이글을 권한다.

그리고 세조가 쓴 문종, 단종, 세조실록을 어떻게 믿느냐고 합리화 시킨다.
물론, 세조의 입장을 강하게 어필할 수는 있다. 문종실록과 단종실록 편찬에 사육신도 깊이 관여를 했었다. 문제는 당대 그들 스스로 언행에 당당하였다는 것이다. 유일종교관을 가지고 있던 박팽년이 내불당 관련해서 세종을 모욕하자 문종이 박팽년을 하옥시킨다. 하지만, 박팽년을 구원한 자는 배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신숙주였다. 선왕이 욕보인다고 해도 '언로는 열어야 합니다.'라면서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사육신이 처음 단종을 배신하고 수양대군을 옹립했다고 다시 단종을 옹립하려 시도한 것은 사육신들의 편향된(?) 정치관 때문이였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미화할 필요도 별로 없었다. 더군다나 조선의 사관들은 왕이 화장실(매화틀)에 가는데 까지 붓을 들고 따라다닐 만큼 철저했다. 또한 사관이 아니며 실록을 볼수도 없었다. 문종의 경우 "사관이 너무 가까이서 왕의 말을 적는다고 밖에 나가서 기록을 하면 안되겠니"라며 푸념하는 장면까지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세종은 환관과 비밀 이야기를 하는데 사관을 내보냈다고 실록은 기록까지 한다. 자신들의 조상을 미화하기 위해서 역사까지 왜곡할 필요는 없다.
 

결의를 숭상하여 근본을 배양하면 될 것이다. 성삼문·박팽년 등의 일은 대신에게 물어야 하겠으나, 정몽주·길재 등의 일은 대신에게 묻지 않더라도 그 후손을 녹용(錄用)해야 하리라.”

하매, 이청(李淸)이 아뢰기를,

“아뢴바 절의를 배양하는 일은 지당합니다. 숭장해야 할 자는 성삼문·박팽년뿐 아니라 이개(李塏) 등도 숭장해야 합니다. 그때에는 불의(不義)인 듯하였으나, 대의(大義)가 정해진 뒤에는 사람들이 도리어 의(義)로 여기니 이제 난신(亂臣)이라는 이름을 가할 수 없습니다.”

하고, 기준(奇遵)이 아뢰기를,

성삼문·박팽년 등이 세조에게는 역적이 되고 노산에게는 충신이 되는데, 그때에는 부득이 죄를 가하였으나 이제는 무슨 혐의가 있겠습니까? 예전에 정공(丁公) 이 한 고조(漢高祖)에게로 돌아가매 한 고조가 참(斬)하였는데, 이 일이 성삼문의 일과 서로 비슷합니다. 단병(短兵) 으로 교전할 때에는 정공이 한 고조에게 덕이 되었으나 항우(項羽)에게는 실절(失節)이 되었으니, 한 고조가 개국(開國)한 뒤에는 참하여 절의를 격려한 것은 마땅합니다. 성삼문·박팽년을 이제껏 난신으로 지목하니 어찌 이처럼 답답한 일이 있겠습니까? 그 사람의 자손은 이제 없거니와, 그 외자손(外子孫)이 혹 있더라도 저애(阻礙)됨이 없지 않을 터이니 이것이 어찌 옳겠습니까! 다 허통(許通) 해야 합니다. 신이 매양 아뢰고자 하였으나 못한 것이거니와, 만약에 아뢴 대로 도타이 숭장하면 곧 국맥(國脈)을 연장하는 방도가 될 것입니다.”

하고, 민수원이 아뢰기를,

“좌우가 아뢴 대로 권장하여 사기를 격려해야 합니다.”

하고, 이청이 아뢰기를,

“세조께서 하늘에 응하고 백성을 따랐는데, 성삼문 등이 오히려 노산을 복위시키려고 꾀하였으니 세조에게는 역적이 됩니다. 그러나 이제껏 난신으로 지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 정몽주의 일은 더욱 가상하고 아름습니다.”

하고, 기준이 아뢰기를,

“위란(危亂)할 즈음에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여 이와 같은 몇몇 사람이 있는 것은 워낙 드문 일이니 추장(推奬)해야 합니다. 무왕(武王)은 지극히 거룩한데도 백이(伯夷)·숙제(叔齊)가 오히려 말을 당기면서 간(諫)한 까닭은 군신(君臣)의 분수를 어지럽혀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하고서야 나라가 쇠약해지더라도 전복하는 화(禍)가 없고, 어진 사람이 많이 나서 사직(社稷)이 힘입을 바가 있을 것입니다. 세조조에서도 어찌 성삼문 등의 절의를 몰랐겠습니까마는 문죄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감히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조정에 의논하면 될 것입니다 - 중종 12년, 1517년 8월 5일



사육신이 충신의 반열로 돌아간 때는 중종반정이 성공한 이후에 죄는 있지만, 상육신의 결의는 본받아야 된다고 하면서 시작된다. 선비의 결의는 본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건 조선의 예 뿐만 아니라 어떤 나라도 하는 짓이다.


조선의 선비에게는 ‘불사이군’뿐만 아니라 연산군에 반해서 중종반정을 하는 세력처럼 임금이 임금답지 않았을 때 임금을 없애고 새로운 군주나 역성혁명도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얼마나 조선의 왕들이 신하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겠나? 언제 자신들의 목을 쳐 없앨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불어 조선의 왕들 스스로 자신들이 잘못하거나 신하들의 눈에 벗어나면 왕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유학자였다. 단지 왕은 유학자의 대표자 정도로 생각을 했다. 더군다나 중종반정세력의 명분을 찾는데 사육신에서 찾는 것이다. 세조의 반정이나, 사육신을 죽어도 마땅한 세력으로 남기면 중종반정을 성공한 세력자체도 역모를 꾀한 세력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합리화하는데 사육신만한 세력이 없었다.

사육신이 충신이면 김종서는 역신이 된다. 더군나다 김종서를  척살한 세조는 쿠데타를 진압한 세력이 된다. 사육신과 함께 단종을 몰아낸 세조는 조선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일을 한것이다. 이런 딜레머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이해당사자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수 밖에 없는가를 보는 것이다. 역사를 단순하게 보지 않는것이다.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은 드라마를 보면서 역사인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드라마를 보고서 역사를 알았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누구누구는 어떻네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은 드라마와 역사를 혼돈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드라마는 역사를 알고 보면 재미가 있다. 글쓴이의 대부분의 글은 드라마 리뷰같지만, 실제는 드라마가 망친 역사바로 찾기 리뷰이다. 오죽하면 카테고리가 [역사이야기]이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김승유와 신면이 불쌍하다.  신면이 왜 불쌍하냐는 사림이 있다. 친구를 배신하고, 친구의 연인을 빼앗고, 단종을 배신했는데라면서 말이다. 대표적인 드라마를 역사로 아는 사람들의 전형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기회에..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개, 성삼문 등 절손된 사육신 어떻게 대를 이었을까?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2011/09/22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스승 이개 알고보면 계유정란공신, 사육신 단종폐위 좌익공신들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계백, 의자왕, 반란 실패한 사택비 죽고, 교기 왜로 쫓겨난다?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김승유 적과동침, 단종 죽인건 사육신 충신인가? 배신 아이콘인가?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광개토태왕, 계백, 사극 문헌고증 철저히 파괴해야 시청률 오른다?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계백, 의자왕, 계백 백제 패망후 왜 천황 될지도?
2011/09/06 - [역사이야기] - 계백, 동명제 초혼관 의자, 교기와 흥수는 왜 왜색풍 옷을 입었나? 사실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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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ㄹㄷhttp:// BlogIcon ㄷㅇㄷ 2011.09.23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육신이 충신이면 김종서는 왜 역신이 되는것인가요? 사육신을 충신으로 봐도 김종서도 그 나름으로 충신으로 볼수 있는거 아니에요?

    • 의문 2011.09.23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양립이 가능할 것 같은데, 무작정 양립이 안되는 것처럼
      글을 쓰시니 다소 불편함이 있긴 하네요.

      게다가 기록에 대한 신뢰가 조금 지나치기도 합니다.

      이정도의 신뢰라면,

      [세조는 엄청나게 종친들을 챙겼다. 종친을 죽이고,
      귀양보내고 그런 건 전부 다 신하들 상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거다. 진정으로 불쌍한 것은 세조다.]

      라는 결론을 내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기록도 전후사정을 보아가며 해석을 해야할 텐데...
      흠...

  2. 하하 2011.09.24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월 21,22 국내최고 라이브가수 박완규 ..... 그리고 부활 패밀리 총출동!

    그동안 방송을 통해 볼수없었던 그와 그들의 최고의 무대, 2011년 10월 "사랑" 이라는 테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최고의 무대로 부활하는 이번 콘서트에서는 박완규 외에 부활 패밀리의 총출동으로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국내 그룹 부활의 보컬 정동하 그리고 역대보컬 이성욱, 정단 위대한 탄생의 최고의 히트메이커 등이 함께
    참여해 박완규와 함께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그동안 방송이나 공연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환상적인 무대 출연진들과 함께 꾸미는 최고의 하모니!

  3. 루비 2011.09.25 0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 또 흑백논리 써놓으셨네. 대체 김승유가 실존인물이고 계유정난전에 죽었다는건 어디서 또 들으셨데?; 님보면 참..머랄까 사극에 한맺힌 사람 같아요.ㅡㅡ 자료라고 내세우는것들도 유리한 부분 추리시고 님이 말하는 진실은 야사에서 이야기들 적절히 섞어 배합. 님아 접때도 리플 한번 달았었는데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에요. 재밌게 보면 그만이지 무슨 작가가 시간을 왜곡하니같은 말을 매번 하시나요? 공남 퓨전사극이에요. 퓨전 몰라요? 퓨전? 그냥 보고나서 역사공부했다 그런말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큰 줄기만 기억하지 뭐 드라마 달달외워서 다닙니까? 언제 몇월몇일 누가 죽었는지 날짜 기억하고 다니겠습니까? 님 생각에 아닌거 같으면 뭐 어차피 님 블로그니까 아닌거 같다고 쓰는건 좋은데 왜 늘 남을 비판하고 님말만 진리라고 우기십니까? 저번엔 어떤분을 역적집안 만드시더니.. 님 진지하게 이야기 하는데요, 진짜 성격 특이하십니다. 오프라인에서도 그러시는지? 주변인들 정말 피곤할거 같아요. 무서워서 무슨 말 하겠어요? 말꼬리 잡고 늘어질텐데.. 이 드라마 온통 불만이면서 드라마 꼬박꼬박 챙겨 보시는게 더 웃김. 님 공남작가한테 원수졌어요?ㅎ

    • 1234 2011.09.29 0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퓨젼을 진짜로 착각해서 정신병자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잉여 쓰레기가 있어서 쓰시는 것 같은데

  4. 2011.12.19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Favicon of http://huntingpastore.com BlogIcon 고명진 2012.01.02 2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일을 나의 친구를 계속, 이거 정말 끝내 준다

  6. Favicon of http://greenstarenergysaver.com BlogIcon 인형 2012.01.04 0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

  7. Favicon of http://meetthetanners.com BlogIcon 아가 2012.01.04 2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박 겉 핥기

  8. Favicon of http://no-credit-check-cell-phones.com BlogIcon 박기동 2012.01.07 0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9. Favicon of http://john.is-a-liberal.com BlogIcon 애비 게일 2012.04.06 0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를 속이고 있군요.

  10. 썰영 2012.04.23 0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으로 다행입니다. 역사를 오도하고 편협화한 극이 재미와 인기에 힘입어 역사를 그르칠까 열려했는데 올바른 사고와 역사적인 사서를 인용해 정확한 연도와 날짜를 표시해 사실에 입각한 해석과 분석적인 설명 을 하시고 역사적인 환경에서 일어난 사건을 객관적 입장에서 정리한것은 매우 중요하고 대단한 일입니다.
    글 전체에서 바른 역사인식을 알게됩니다. 모르고 따르는 일반 대중의 생각을 바르게 하는 모범답안 같습니다. 작가는 인기와 흥미에 영합 할수 있지만 역사를 오도하여 선인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잘못을 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흑백 논리나 개인적인 섣부른 판단으로 왜곡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역사를 오도하고 가치관을 혼란하게 하여 후손들의 판단을 흐리게하면 역사와 민족에게 죄인이 될테니까요.
    개인의 영달을 위해 뜻을 수시로 바꾸는 사람보다 오히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힘써 일한 충신 애국자 대인을 변절자 역적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는 연속극은 창작이라도 배격해야 할것입니다.
    역사의 인물을 인용할때는 사실에 입각해 좋은 점을 나타내던지 그의 숭고한 사상과 철학을 계승해야하는것이지 편협한 생각으로 위인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버린다면 후손들의 귀감이 무엇이며 무엇을 배운답니까? 글만 쓰고 재미만 있고 인기가 높다고 바른길이 아닌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는것은 좋은작가라고 할수 없지요. 바른 판단을 하도록 도와준 윗 글에 찬사와 존경을 보냄니다.

  11. Favicon of http://ginger.gotdns.org BlogIcon 마리아 2012.05.08 2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유대인 음식만 먹습니다.

  12.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륭한 읽기 위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싶은 찾기 위해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확실히 그것의 모든 조금을 즐기는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새로운 물건을 체크 아웃하는 당신이

  13. Favicon of http://www.hometravel-luggagebag.com/ABS-luggage.html BlogIcon ABS luggage 2012.08.21 1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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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Favicon of http://www.blondinensex.ch/ BlogIcon Blondinensex Videos 2012.12.30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의 영달을 위해 뜻을 수시로 바꾸는 사람보다 오히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힘써 일한 충신 애국자 대인을 변절자 역적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는 연속극은 창작이라도 배격해야 할것입니다.

  15. Favicon of http://ford.grupocaiuas.com.br/fiesta-sedan BlogIcon fiesta sedan 2013.01.25 0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Google에서 블로그 사이트를 발견하고 조기 게시물 몇 가지를 확인하십시오. 아주 좋은 작동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합니다. 난 그냥 내 MSN 뉴스 리더에 RSS 피드를 추가. 나중에 당신에게서 더 읽어 앞으로 추구! ...

 

공주의 남자에서 성삼문, 이개, 박팽년 등 사육신이 세조(수양대군) 암살에 실패하고 잡혀서 고신을 당한다.


그리고 참형을 당할 위기에 김승유는 빙옥관의 의형.의제와 같이 한성부 옥을 파옥하고 이개 등 사육신과 친구 정종을 구원하려고 들어간다.


신면은 김승유가 세령공주와 같이 한성부에 숨어 들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김승유가 하는 일에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도와준다.


김승유가 다음 기회를 노리자며 파옥을 하려하자. 이개와 박팽년, 성삼문 등은 당연히 자신들이 죽을 줄 알았으니 개념치 말라고 하면서 후일을 김승유에 맡기고 담담히 죽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죽어서 김종서를 뵙게 되었으니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정종의 아내 경혜공주는 세조를 찾아가 “전하“라는 말을 하면서 수양대군 니가 짱먹었으니 그만 정종을 풀어달라며 ”전하 전하~“를 수천 수만 번도 할 수 있다고 말을 한다.


세조(수양대군)은 정종을 전라도 광주에 유배시키는 것으로 정종을 살려준다.


그런데 정종은 1456년 6월1일 창덕궁 현장에 없었다. 왜냐하면 정종은 1455년 6월 11일(윤) 금성대군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어서 경기도 수원으로, 8월 정종 자신의 통진 농장에 유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세조(수양대군) 암살 음모를 꾸미는 장소로 영양위 정종의 집으로 그렸지만, 실제는 주로 성삼문의 집에서 모든 모의가 있었다.


또한, 사전에 단종에게 세조(수양대군)을 척살할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을 수시로 알리고, 거사일이 1456년 6월 1일 창덕궁 연회에서 할 것이라고 말하자, 단종은 칼을 직접 내준다.


하지만, 6월 1일에는 창덕궁 실내 행사장이 넓지 않아서 별운검을 세울 수가 없었다. 신숙주는 별운검을 세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알렸고, 성삼문은 예에 따라 별운검을 세워야 한다고 했지만, 세조(수양대군)은 신숙주의 말을 듣고 별운검을 세우지 않게 하였다.


모든 드라마에서 악신의 대명사로 나오는 한명회가 별운검을 세울 수 없다며 사육신을 잡아들인다는 설정은 허구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김질은 현장에서 잡히지 않고, 6월 2일 날 김질의 장인 정찬손과 함께 세조(수양대군)을 찾아가 어제 반란 계획이 있었느나 실패했다며 알린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를 보고 있으면 사건들을 당일로 압축하려는 경향이 농후하다.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란이 끝나고 김승유가 강화도에 갔다오니 어느덧 세월은 지나 1455년 6월 11일이 되고 정종과 금성대군이 유배를 떠나는 것으로 그려지고, 몇 일 지나지 않았는데 1456년 6월 1일 사육신들의 단종복위 사건이 일어난다.

공주의 남자에서 하루는 1년과도 같다. 최소한 세월이 지났다는 장면이라고 살포시 남겨주면 좋지 않을까? 장면하나 삽입한다고 돈드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고 재미가 있지도 않다. 극을 보다가 이게 “머뮝”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간관계의 리얼리티는 고사하고 최소한 극중 개연성이나 리얼리티라도 살려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사육신은 죽고 정종은 살아남아 전라도 유배를 떠나니 앞으로 정종은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보기 힘들것 같다. 정종역을 맡은 이민우는 디스크 증상이 있어서 촬영에 임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만약, 이민우가 디스크 이상증세가 없었다면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두고두고 나왔을 것인데 안타깝다고 할 수 있다.
 

승정원(承政院)에서 전지를 받들어 광주 목사(廣州牧使)에게 치서(馳書)하기를,

“건장하고 부지런하며 조심성 있는 사람을 골라서 이유(李瑜) 의 배소(配所) 네 모퉁이를 나누어 지키게 하고, 당자와 잡인(雜人)의 출입을 엄하게 금방(禁防)하되, 힘써 안정(安靜)을 기하여 놀라지 말게 하라.”

하고, 동시에 이영(李瓔) ·이어(李) ·이전(李瑔)·정종(鄭悰) 의 정배된 여러 고을에도 같은 글을 보내어 유시하였다. 1456년 6월 3일


물론, 공주의 남자에서 유배간 정종을 사육신의 사건현장에 등장시키는 만행까지 저질렀는데 극의 재미를 위해서라면 이민우의 디스크가 나가던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다시금 불러들여 단종이 영월로 유배를 떠나는 현장에 동원한다고 말이다. 유배 떠난 정종(이민우)를 따라 경혜공주가 쉼 없이 광주로 촬영을 떠나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누가 역사적인 사건 현장에서 뜬금없이 등장하는 정종이 재미가 있다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작가의 역사 망치는 재미라면 모를까 말이다.
 


그렇다면 극에서는 모두 사육신들이 거열형을 당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는 옥에서 죽은 자와 고신을 이기지 못하고 죽은 자, 집에 있다가 자살한 유성원 등 다양한 죽음을 맞이한다.
 

 전 집현전 부수찬(集賢殿副修撰) 허조(許慥)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허조는 이개(李塏)의 매부로 역시 모반에 참여하였기 때문이었다. 6월 6일


박팽년(朴彭年)이 이미 공초(供招)에 자복하여 옥중에서 죽으니, 의금부(義禁府)에서 아뢰기를,

“박팽년·유성원(柳誠源)·허조(許慥) 등이 지난해 겨울부터 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하위지(河緯地)·성승(成勝)·유응부(兪應孚)·권자신(權自愼)과 함께 당파를 맺어 반역을 도모하였으니, 그 죄가 능지 처사(凌遲處死)에 해당합니다.

청컨대 허조·박팽년·유성원의 시체를 거열(車裂) 하고, 목을 베어 효수(梟首)하고, 시체를 팔도에 전(傳)하여 보일 것이며, 그 재산을 몰수하고, 연좌된 자들도 아울러 율문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6월 7일

세조실록 1456년


그리고 계유정난 때처럼 역모에 연루된 120여명이 죽고, 살아남은 16세 미만의 남자들과 나이에 상관없이 살아남은 여자들은 노비가 된다.
 


계유정란에서 김종서의 남자 후손들은 유모의 손에 이끌려 송시열의 선조의 도움으로 살아 남은 김종서의 첫째 아들인 김승규의 3살 먹은 셋째 말동(행남)과 16살이 되지 않아서 노비로 간 둘째아들 김승벽의 첫째 아들인 중남과 유모의 손에 살아남은 팽(삼동), 그리고 공주의 남자 주인공으로 나오는 김승유의 아들 효달 뿐이었다.

공주의 남자 주인공 김승유는 실존인물로 계유정난 이전 죽었다. 그래서 역사에서 자리를 감춘다. 더군다. 김종서를 비롯한 모든 아들들이 복권되었지만, 김승유는 이미 죽어 변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록에 남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사육신의 쿠데타 실패에서 살아남은 후손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육신으로 명명된  사람중 참화에 살아남은 후손은 박팽년 뿐이었다.

1800년 정조 때 박팽년의 후손은 절손되지 않고 살아남아서 번창하였고, 하위지는 조카 원에 후사를 당부하여 자를 들여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오신의 집안인 이보흠, 성삼문, 유승원, 이개, 유승부는 절손되었다. 추후 성삼문도 살아남은 방계로 하여금 성삼문의 양자 사손이 되어 대를 잇게 하였다.

 

저 육신의 정성을 다한 충성과 큰 절의는 실로 하등의 차이가 없는데 박팽년의 한 가닥 핏줄은 다행히 끊기지 않았고 근래에 또 번창하고 있으니, 하늘이 복을 남긴 이치를 족히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저 오신(五臣) 집안의 혈통이 끊겨 후사가 없는 것은 실로 천지간에 유감이자 백대의 가슴아픈 일입니다.


과거 숙묘(肅廟) 을유년 에 예조 판서 민진후(閔鎭厚)가 경연에서 건의하기를 ‘하위지는 체포되어 가는 날 죽은 뒤의 일을 그의 조카 원(源)에게 부탁하였으니, 을사 명신(乙巳名臣) 김저(金䃴)에 대해 양자를 들여세운 사례에 따라 원의 후손으로 하여금 그 제사를 받들게 하소서.’ 하니, 숙묘께서 하교하기를 ‘육신은 다른 사람과 다르니 어찌 끊긴 후사를 이어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뢴 대로 특별히 시행하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위지는 비로소 그의 제사를 받드는 후손이 생겼으나 성·유·이·유의 집들만은 그와 똑같이 끊긴 자손을 이어주는 은전을 입지 못했는데, 사실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조 24년, 1800년 4월 12일


경기 유생 이유제(李維濟) 등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단종조(端宗朝)의 육신(六臣)인 고(故) 충정공(忠正公) 박팽년(朴彭年)·충문공(忠文公) 성삼문(成三問)·충간공(忠簡公) 이개(李塏)·충경공(忠景公) 유성원(柳誠源)·충렬공(忠烈公) 하위지(河緯地)·충목공(忠穆公) 유응부(兪應孚)의 우뚝한 충성과 높은 절개는 국사[國乘]에 소상히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저 이개·유성원·유응부 세 사람만은 유독 뒤를 이어 제사를 주관할 사람이 없으니, 하 충렬공(河忠烈公)·성 문충공(成文忠公) 두 신하에게 입후(立後)하게 한 사례에 의거하여, 그들의 제사를 받들도록 하는 것이 적당하겠습니다.”

- 순조 11년 1811년 4월 22일



이개의 경우 1900년대 까지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한산 이씨인 이개의 방계 친족인 이용직이 고종 39년, 1902년 2월 4일, 한산이씨 종종에 알리고, 이두복의 둘째 아들 이중원으로 하여금 이개의 사손이 되어 이개의 계통을 잇게 한다.  성삼문, 유성원, 하위지,유응부 가문도 방계 친족으로 하여근 사손하도록 한다.


신은 외람되고 망령됨을 헤아리지 않고 종중(宗中)에 알린 다음 일가(一家) 사람인 이두복(李斗馥)의 둘째 아들 이중원(李重遠)을 충간공 이개의 사손으로 세우려고 합니다마는 신중한 문제이므로 신의 집안의 사사로운 일이라고 해서 제멋대로 할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특별히 윤허하여 빨리 예원(禮院)에서 품처(稟處)하게 함으로써 대를 이을 사람을 세워 제사를 받들게 하는 동시에 또 정려문을 세우도록 명함으로써 풍속과 교화를 바로 세우소서.

이 밖의 네 신하인 충문공(忠文公) 성삼문(成三問), 충경공(忠景公) 유성원(柳誠源), 충렬공(忠烈公) 하위지(河緯地), 충목공(忠穆公) 유응부(兪應孚)에 대해서도 각기 그들의 집안에서 사손을 세우게 하며 모두 정려문을 세워주는 은전을 베풀어 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나라에서 충성과 절개를 장려하는 뜻에 부합되는 것이니 장례원(掌禮院)으로 하여금 모두 상소의 내용대로 시행하도록 하겠다.” - 고종실록 1902년



지금 현재 이개의 후손을 자처하는 한산이씨는 1902년 이두복의 후손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글쓴이도 아버지의 3형제 중 제일 큰아버지가 남자 후손을 남기지 않고 돌아가셔서 막내였던 아버지가 맏아들인 글쓴이를 큰아버지의 족보에 올리려한 적이 있었다.


후사를 잇지 못할 때 많은 사람들이 양자가 되어 대를 이어가고 족보에 오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었다. 정조도 사도세자의 아들이었지만, 영조의 일찍 죽은 맏아들 효장세자에 입적이 되어 원손, 세손이 되었다가,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자신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한 적이 있다.


삼국사기에서 신라의 계보나 백제의 계보가 생몰년과 후손관계에서 이상한 면이 보이는데 양자와 사손의 개념을 도입하면 충분히 해석가능한 부분이 많다.


공주의 남자를 보고 김종서의 후손들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너 김종서의 후손이라고 하는게 공주의 남자에서 김종서의 후손은 다 절손되었다는데 족보를 산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이다. 김종서의 후손은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인가? 간신히 난을 피해 살아 남았는데 겨우 듣는 다는 말이 역사와 100% 무관한 드라마를 보고 김종서 집안은 절손되었다는데 너 조상이 족보를 샀구나 하는 시덥잖은 소리를 들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김종서 집안과 적대적이었고 배신을 때린 사육신과 엮이니 얼마나 얼척없겠나?

 

 이현로(李賢老)·이승윤(李承胤)·이개(李塏)·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 등이 교결(交結)하여 마음으로 굳게 맹세하고 ‘문하(門下)’라고 칭하고, 모두 도서(圖書)의 헌호(軒號를 지어서 서로 한때의 문사임을 자랑하였으나, 모두 농락(籠絡)당한 것이었다

..중략..


한때 (안평대군) 용(瑢)에게 아첨하는 자들이 용(瑢)에게 글을 보내는 데 한결같이 계서(啓書)와 같이 하여, ‘용비(龍飛)’·‘봉상(鳳翔)’·‘번린(攀鱗)’·‘부익(附翼)’·‘계운(啓運)’·‘개치(開治)’ 등과 같은 용어를 쓰고도 의혹하지 않았으며, 혹은 신이라 칭하는 자도 있었다. 정난(靖難) 한 뒤에 많이 얼굴을 바꾸고 꼬리를 흔들었으나, 세조는 모두 묻지 않았다

- 단종 1년, 1453년 5월 19일


집의(執義) 이개(李塏)가 본부(本府)의 의논을 가지고 아뢰기를,

“신 등이 지금 정부에서 아뢴 죄목(罪目)을 보니, 이용(李瑢)이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정분(鄭笨)에게 지시하여 심복을 병조(兵曹) 군기감(軍器監)에 포열(布列)하게 하였다 하였으니, 정분의 죄가 황보인·김종서에 못하지 않습니다. 허후(許詡)는 집정 대신(執政大臣)으로서 자주 용(瑢)의 집에 갔으니, 당여(黨與)인 것이 분명합니다. 조수량(趙遂良)·안완경(安完慶) 등은 용(瑢)과 더불어 비밀한 말로 약속하였고, 또 조수량은 용(瑢)의 금대(金帶)를 받았으니, 이것도 또한 용(瑢)의 당입니다. 조순생(趙順生)·이석정(李石貞)·지정(池淨) 등은 모두 무관(武官)으로서 용(瑢)의 집에 왕래하여 당원(黨援)을 하였으니, 청컨대 모두 율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그 나머지 지당(支黨) 이보인(李保仁) 등은 밤낮으로 용의 집에 모였으니 어찌 역모를 알지 못하였겠습니까? 또한 법에 의하여 논단하소서.”

- 단종 1년, 1453년 10월 28일


 

더군다나 이개를 비롯한 많은 사육신들이 안평대군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가 안평대군과 황보인, 김종서가 수양대군 일파에 척살되자. 배신을 때리고 김종서, 황보인, 안평대군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들을 단종을 압박해서 죽이라고 한사람들이 사육신들의 다수였고, 정난공신이 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배우지 않고, 그저 사육신은 충신인데 왜 비난하냐는 사람들이 있다. 미안하지만, 김종서, 안평대군, 황보인 등도 충신가문으로 복원된다. 충신들의 가문과 후손을 죽이라고 사주한 사육신이 되는 것이다.


사육신에게 정난공신은 빼고, 단종폐위하고 세조 옹립한 공으로 받은 좌익공신은 빼고, 단종복위에 참가했다 멸족되고 추후 복원되었으니 충신가문이라고 해주어야하는 것인가?


최소한 사육신이 왜 계유정란 후에 김종서 일파를 죽이지 못해서 안달하고, 단종을 몰아내는데 혁혁한 공로가 있어서 세조옹립한 공으로 좌익공신이 되고, 후에 세조를 몰아내고 단종 복위를 꿈꾸었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저 단편적인 면을 보고 비난하는 초딩스런 댓글은 사양한다. 정치가 왜 생물이라고 불리우는 지 생각좀 하였음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이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글을 포스팅했다.

왜 유교의 나라인 조선에서 불교를 억압하고, 유학을 숭상하였는지는 사육신, 생육신, 김종서 등을 봐도 쉽게 알수 있다. 유교는 맹자를 받아들여 왕을 없애고 새로운 왕을 세워도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조선에서 반정이 많고 이를 합리화하고 반정에 맞서 죽은자들을 숭상하기도 한다. 

사육신 들은 유교를 유일한 종교처럼 이를 교조적으로 받아들였음을 알수 있다. 여타종교인 불교에 대해서 극히 격멸하였다. 이들은 세종까지 말년에 궁궐 내불당 불사를 한것에 망년되었다고 이야기한 사람들이다. 조선 초기 임금들은 불교도 유교처럼 백성을 다스리는 기본으로 삼고자 하였지만, 유학자들중 사육신 계열은 참지를 못했다. 이에 대해서 간략하게 다룬 2011/09/21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와 사육신 가른건 편향된 종교관 때문? 참조하기 바란다.


역사는 역사,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하는 대부분이 너희 집 족보 샀지하는 얼척 없는 소리나 한다. 그리고 역사는 모르고 드라마를 보고 역사이야기를 하면서 역사는 역사, 드라마는 드라마라는 소리를 달고산다. 역사를 드라마를 보고 배웠어요라는 말처럼 어처구니 없는 말은 없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나는 역사를 몰라요라는 댓글을 달기도 한다. 더군나나 김종서가 어떻네, 세조가 어떻네 신숙주가 어떻네, 신면이 어떻네, 사육신이 어떻네 하는 사람투성이다. 키스를 책으로 배웠다는 개그가 떠올리게 된다.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세령공주 진짜 로미오 둘째 김승벽의 김석동일까? 첩 손자일까? 계유정란 김승유 3살? 대략난감,

2011/09/23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불쌍한 신면과 배신자 사육신 어떻게 충신 아이콘 되었나?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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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소쿠한 2011.09.22 1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논리는 좋네요.
    다만 어휘는 좀 신경써야할 듯.
    방개 > 방계
    종종 > 종중 .... 좋은 몸을 못따라가는 옷을 입은 듯... 아쉽네요.

  3. BlogIcon ㄷㅇㄷ 2011.09.22 17: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의 기록이 사실이 아닐수도 있잖아요...세조가 자기입장에서 기록해놓은건데 성삼문이 정말 그렇게 이리 붙었다 저리붙었다 했나요? 그럼 신죽주보다 더 나쁘네요?

  4. Favicon of http://ㄹㄷhttp:// BlogIcon ㄷㅇㄷ 2011.09.22 17: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삼문이나 사육신이 한 일들은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위해서 그런거고. 세조가 한일들은 결국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한일이고...

  5. 기백 2011.09.23 0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렸을 때는 역사를 단순히 배웠으나 나이가 드니 역사는 이해를 하는 것이 된다. 세조, 단종, 한명회, 깁종서, 사육신, 생육신 등 의미있는 사람들로 보이지만 결국 서로 싸우고 죽이는 정치 집단의 횡보였을 뿐이다.

  6. 의문 2011.09.23 0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GUES메뉴에 들어가 글을 남겼는데, "비밀댓글"만 달려 있을 뿐 님의 답은 보이지 않네요.

    일단, 사육신에 대한 님의 평가는 재미있었습니다.
    근데 제가 알기로 사육신은 단순히 "몇 번의 모의와 한 번의 시도"로 그리 된게 아니란 겁니다.

    김질만 해도 장기간 사육신들의 모의에 가담하고,
    계속된 실패에 두려움을 느껴 배신을 한 겁니다.

    즉, 1456년 6월 1일 딸랑 한번의 거사에 실패하지마자,
    곧바로 다음 날인 6월 2일에 배신때리고 밀고하는게 아니란 거죠.

    물론 김질의 입장에서는 실록에 기록된 것처럼 빡빡 우기는 최상입니다.
    마치 자신은 적극적으로 가담한 적이 없었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근데 실록의 기록은 그대로 믿을 수 없습니다.
    그 기록대로라면 성삼문은 거의 바보천치니까 말입니다.
    그런 수준의 바보천치가 역모의 모의한다? 웃기는 일입니다.

    별다른 감정교류도 없는데 김질에게 혜성이 어떠니 저떠니...
    말도 안되는 기록입니다.

    따라서 사육신들은 1455년 아직 단종이 재위하던 시절에 수양대군을
    제거하려 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이미 재위해 버린 뒤에는 역모가 되지만,
    재위하기 전에는 역모가 아니니까요.

    그리고 1456년에 김질이 배신을 때린 이유도 중국에서 세조를
    정식왕으로 인정할 것 같으니까 배신을 때렸다고 봄이 타당합니다.
    (즉 대세가 기울자 바로 변신 한거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11.09.23 09: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육신의 모의는 1455년 말부터 시작한다고 하지요..

      설마 그낭 6월 1일에 모의를 하자고 했을까요? 모든 준비를 한후 결정적인 때를 기다렸다가 명사신이 오는 창덕궁 연회와 별운검이 된때로 잡았겠지요.. 문제는 별운검을 세울수 없었고, 하늘이 자신들을 버린다고 생각을 하고 김질이 배신을 때린것이고. .별운검을 없앤 신숙주가 반란의 낌새를 챈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김질의 배신으로 이끌지 않았을까요. .

      실질적으로 사육신이 세조를 배신한 이유는 저는 궁궐의 내불당 사건으로 생각합니다.. 세종말년에 세종이 내불당을 만들자 끊임없이 세종을 압박하고 불교탄압을 하지요. 사육신을 비롯한 집현전 학사들이.. 문종 때, 단종때 까지요. 문종때 박팽년은 세종을 망령되게 비난하다 옥에 갇히는 고초도 겪고, 성균관, 사간원, 집현전으로 부터 언론을 탄압하지 말라는 상소를 접하지요..

      계유정란이 끝나는 시점에서 불당을 없애자고 집현전의 학사들은 주장한단 말이지요.. 그런데 집현전 학사출신인 수양대군도 불사를 하는데 적극적이였던 거지요. 그래서 호랑이보다는 어린 토끼가 낫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단종은 말년에 불당을 없애려는 시도에 항복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이에 대해서 다음기회에 자세히 다뤄볼까합니다.

      성삼문은 바보 맞는것 같은데요.. 낼름 옥새를 넘겨주니 말이지요.. 당시에는 도사들을 잘 믿거군요.. 도사를 빌어서 내불당을 없애려는 시도도 하니..

      사육신들의 다수는 안평대군의 편에 있었으니 계유정난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사육신은 안평대군을 앞세워 수양대군(세조)를 척살하고 권력을 잡았을지도 모르지요..

    • 의문 2011.09.23 1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즉, 세조가 이미 왕이 되었고, 세조를 왕으로 인정하는 사신이 오는 때를 [반란시기]로 잡은 게 이상하다는 겁니다.

      생각하기에 1456.6.1에는 아무런 시도도 없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차라리 단종이 재위하고 있던 시절에 수양제거를 시도했음이 맞을 거고, 그렇다면 님이 주장하는 사육신과 수양의 짝짝꿍 뒤 배신은 그리 적절한 설명은 아니지 않나 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11.09.23 1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수양이 왕이 되기 전에 수양을 없애려 했다는 증거는 없지요.. 물론, 안평대군과 짝짝궁 해서 수양을 없애려한 흔적은 있지요.. 계유정란시기 안평과 김종서를 배신하고 이들과 관련된 자들은 주살하라고 하지만 말이지요.

      단종이 양위할때 성삼문은 옥새까지 바치구요.. 이는 님이 말한 단종시기 사육신이 수양을 죽이려 하지 않았다는 절대적인 증거가 되지요. 세조를 옹립하고 단종을 복위하려는 시도를 한 증거는 세조 초창기로 돌아가서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실록에서도 1455년 6월 11일(윤) 세조옹립하고, 1455년 년말에 당을 만들어 세조에 반기를 들었다고 했으니요.. 한마디로 사육신은 배신의 역사였다가 제 결론입니다.

      안평대군 배신->정란공신-> 단종배신 -> 좌익공신->수양(세조)배신->사육신

      신숙주보다 배신을 밥먹듯이 하지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11.09.23 1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데 사육신의 배신에서 일관성이 있는 구석이 있다는 거지요.. 저는 그것을 사육신의 유교를 학문이 아닌 유일종교로 믿었고 이를 실천하다 갔다는 걸로 해석하고 싶은데.. 계유정란에서 안평대군과 김종서를 배신한 부분은 해석이 안되더군요.. 물론, 김종서와 안평대군이 유.불을 조화한 점이 있고, 수양도 유.불을 조화시킨점이 있지만.. 이부분까지 계산을 하면 결론적으로 사육신은 요즘으로 치면 개독교적 유교관을 가졌다 입니다.

    • 의문 2011.09.23 16:32  댓글주소  수정/삭제

      1455년말에 사육신들이 수양을 제거하려 햇다는 것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님의 주장대로라면,
      사육신들은 수양이 왕으로 즉위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자 말자 곧바로 배신했다는 게 되니까요.

      물론 님은 기록이 그렇다고 할 것이고,
      불교(내불당)를 이유로 대시겠지만,

      기록에는 수양과 사육신들이 내불당 때문에 마찰을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게다가 수양이 불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사육신들 다 죽이고 나서 입니다.

      따라서 유교때문에 사육신들이 배신을 밥먹듯 했다는 것보다는,

      차라리...
      계유정란에서 사육신이 공신이 된 것은 수양을 견제하려고 단종이 그리 했다고 보는 게 맞고,

      수양제거시도는 수양이 즉위하기 직전에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수양이 왕에 오르기 직전에도 사신들 왔었습니다.)

  7. 하하 2011.09.24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월 21,22 국내최고 라이브가수 박완규 ..... 그리고 부활 패밀리 총출동!

    그동안 방송을 통해 볼수없었던 그와 그들의 최고의 무대, 2011년 10월 "사랑" 이라는 테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최고의 무대로 부활하는 이번 콘서트에서는 박완규 외에 부활 패밀리의 총출동으로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국내 그룹 부활의 보컬 정동하 그리고 역대보컬 이성욱, 정단 위대한 탄생의 최고의 히트메이커 등이 함께
    참여해 박완규와 함께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그동안 방송이나 공연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환상적인 무대 출연진들과 함께 꾸미는 최고의 하모니!

  8. Favicon of http://www.autoankauf-fahrzeug.de BlogIcon klaus 2011.09.30 0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ehr schön :)

  9. Favicon of http://etboosters.com BlogIcon 2012.01.01 15: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전체에 서있다면 당신은 파고있어, 당신은 파고를 중지해야합니다

  10. Favicon of http://blackcollegewire.com BlogIcon 유병수 2012.01.04 0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도 못 한다

  11. Favicon of http://thehamletnews.com BlogIcon 박기동 2012.01.04 2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2. Favicon of http://crantfordsflowers.com BlogIcon 원숭이 2012.01.07 0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는말이 고와야 오는말이 곱다

  13. Favicon of http://elephants.dontexist.net BlogIcon Alyssa 2012.04.06 0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에 영어를 하시는 분 계십니까?

  14. Favicon of http://camdentown.from-me.org BlogIcon 애디슨 2012.05.11 0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15.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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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Favicon of http://hondacarros.grupocaiuas.com.br/civic BlogIcon civic 2013.03.21 0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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