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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부제 : 광복절, 신라의 전승기념일
진평왕은 미실의 치마폭에 있었을까?

mbc 선덕여왕, 진평왕(조민기)

mbc 사극 선덕여왕에서는 진평왕(조민기)이 미실(고현정)의 치마폭에 휘둘려 나약한 군주로 나온다. 하지만 실제의 역사는 진평왕을 전쟁영웅으로 기록하고 있다. 선덕여왕의 모본으로 삼고 있는 현존하는 화랑세기에도 진평왕이 나약하다는 내용은 없다. 또한, 진평왕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의 침략을 막는 전력을 가지고 있다. <선덕여왕>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예전 sbs 사극 <연개소문>에서는 나오는 내용이다.  선덕여왕은 602년 <아막성>전투를 통해서 신라의 화랑들의 활약상을 보여주었다.
 

알천(이승효)

이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다음 기사를 참조 하시길 바란다.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화랑 신화창조의 성지 아막성, 광개토태왕의 # , 이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뜬 사람은 알천 역을 맡았던 이승효이다. 연개소문에서는 화랑들의 활약상과 더불어 김유신(엄태웅)을 당시 전쟁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물론, 연개소문에서 김유신(595년생)이 603년에 9살로 전쟁이 참여하여 화랑의 무서움을 보여주었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8살로 아막성 전투에 참여하였다. 드라마 연개소문의 기록을 1년 갱신한 신기록이 되시겠다.


용춘(도이성)

그럼, 진평왕이 화랑과 군대를 이끌고 참여한 전쟁은 언제 였을까? 602년 백제의 침입을 막은 전쟁이 아막성 전투였다면, 603년 전쟁은 고구려가 자신들의 한강유역인 구토를 회복하는 전쟁이고, 신라는 지키지 않으면, 교역로를 잃는 신라의 명운이 걸린 전쟁이였다. 삼국사기는 이 전쟁을 북한산성 전쟁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화랑세기는 <한수>전쟁으로 기록하고 있다. 


화랑세기 13세 풍월주인 용춘는 형과 같이 따르던 9세 풍월주인 비보를 따라 603년 한수 전쟁을 참여하고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이때 용춘과 전쟁에 참여하여 공을 세운이가 <선덕여왕>에서는 천명을 독화살로 죽이는 미생의 아들 대남보(류상욱)이다. 

대남보(류상욱)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역사이야기] - '천명', 대남보의 독화살에 죽었다? 사실은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시리즈 글을 보지 않는 분을 위해서 간략히 소개하자면, 대남보는 용춘의 심복이며, 그림자 무사였다.

또한, 대남보(류상욱)의 딸은 용춘(도이성)과 관계해서 3명의 자식을 낳고, 그 의 후손인 용태가  춘추와 관계하여 인태각간을 낳는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은 미실과 대척점에 있는 용춘의 충복을 미생(정웅인)의 아들로 만들어, 덕만을 죽이려 하다가 천명을 죽이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남보는 그 아들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도록 타일렀다. 세 아들은 모두 충절을 숭상하였다. 건복(建福) 20년(603) 공과 비보랑이 제(帝)를 좇아 한수(漢水)의 전쟁에 나갔다. 남보에게 공으로 대나마를 주었으나 받지 않았다. -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596~603년

 좀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위의 기사와 이 기사를  [역사이야기] - 천명 죽음, 대남보 천명 쏘고, 선덕여왕 국민 쏘다  참조하기 바란다. 


8월 15일은 광복절, 신라는 전승기념일

그럼 왜 신라는 8월 15일을 전승기념일이라고 기념하였을까? 그 해답은 해상왕 장보고와 동시대에 살고, 장보고와 연관되어 있던 일본의 엔닌이라는 승려가 기록한  <입당구법순례행기>이다.

1. 우리의 명절중 중국에서 비롯된것들이 많은데 중추절도 중국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중추절과 추석은 별도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이런 와중에 중국의 슝베이 역사학자가 <중추절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이다>라고 <중추절 한반도 기원설>을 주장하고 있으니 경청동지할 일이긴 합니다. 
  
사실 <중추절>과 <추석>과 <한가위>는 조금씩 기원의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의 추석의 기원은 중국쪽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들 간에 차이점에 대해서는 한가위를 즈음해서 포스팅 할 예정이다.

당나라 이전 시기에는 중국에서 중추절에 관한 기록이 전무하고, 당나라 중기 말기 시대의 기록인 <초학기>에도 8월 중에 있었던 <중추절>에 관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슝베이가 중추절은 "신라의 것으로 부터 이다"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9세기 중엽에 일본의 승려인 <엔닌>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라는 순례기에 의해서 입니다. <입당구법순례행기>는 9세기의 동아시아의 경제/문화/교통에 관한 중요한 사료입니다.

엔닌이 활동하는 시기는 <장보고>가 청해진에 터를 잡고 3국의 해상을 관할하고 있는 시기와 일치합니다. 엔닌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귀국할때 장보고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귀국하고 있음을 그의 순례행기에 알 수 있습니다.

이전에 드라마로 제작된 <해상왕장보고>도 이 사료를 참고했다고 합니다.

엔닌이 장보고가 산동성에 세운 <법화원>에 몇년 동안 기거를 한적이 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깁니다. <신라인은 음력 8월 15일 떡과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가무를 즐긴다. 이는 중국에 없는 풍속이다.> 신라 노인이 말하길. "수백년전에 발해와 전쟁을 하였는데 이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한가위에 관한 기록은 신라유리왕 9년(서기 32년) 5년에 7월 중순에 6부의 아녀자를 양편으로 나누어 한달동안 길삼을 하게하고 8월 15일 이를 판단하여 진편이 이긴편에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데서 이를 (가배=가위)라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안압지출토 금동 초심가위

옛날 가위를 보면 화려하기도 합니다. 일본 국보급 유물들이 있는 <정창원>에서 보관중이 신라시기 금동가위나 신라의 무덤이나 안압지에서 출토된 금동초심지가위, 백제의 무덤에서 나온 가위를 보면 요즘 보는 가위랑 다르게 자르는 곳이 반달모양(송편)입니다. 두개의 면이 하나로 합쳐지면 영락없는 완전한 둥근달 모양이 되기도 합니다.  서로 따로 만든 반달모양의 송편이 나중에 두편이 하나로 합친 모양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조직을 양편으로 나누는 것은 원화제도에도 나타납니다. 2명의 공주급 여자를 대표자로 세워 그아래 원화들과 화랑들을 지휘통제하는 역활을 합니다. 한가위의 길삼놀이는 한시적인 행사이고 원화는 상설적인 조직이니 원화들이 한가위때 길삼 놀이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원화의 기원이 이전 유리왕때의 양편으로 나뉘어 길삼놀이던 하던 조직이 상설조직화 되어 원화제도가 되었을 겁니다. 
 
삼국사기의 초기 편년이 많은 의심을 받고 있지만 이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엔닌이 있는 시기와는 800년의 차이가 나지만 이를 지속적인 행사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엔닌의 (839년)기록에 의하면 발해와의 전쟁에 이겨서 8월15일 행사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발해는 698년 에서 926년 까지의 국가이고, 대진국에서 발해라 명한 때는 713년 대조영때이니 신라 성덕왕때 입니다. 발해와 신라의 전쟁기록은 유일하게 733년 겨울 전쟁기사 입니다.

 
하지만 엔닌이 신라노인의 말을 빌어 기록한 발해와 신라의 전쟁의 승전기록에 대한 문제점은 신라 성덕왕 32년(733년) 가을 7월 발해가 등주를 치자 발해의 배후에 있던 신라에 당의 현종이 발해를 쳐줄 것을 요구하고, 그해 겨울 신라가 발해의 남쪽 경계를 침입하였으나 눈이 많이 내려 수 많은 인명피해만 입고, 철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발해와의 전쟁승전기념일은 될 수 없고 기록과 상호 모순이 되어 채택될 수 없습니다.
 
가끔 신라에 등장하는 말갈이란 표현은 대체적으로 고구려와 말갈을 혼용하여 표기되는바 발해말갈 고구려/말갈을 혼동할 개연성은 다분히 있습니다.
 
<구당서>나 <신당서>에 의하면 신라는 8월 15일이 되면 왕앞에서 활쏘기, 승마를 하고 , 술과 음식을 나눠먹는 다고 합니다. 
 

sbs 사극 연개소문

SBS 사극 <연개소문>에서도 고구려가 신라의 <북한산성>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공교롭게도 603년 음력 8월이고, 진평왕이 직접 북한산성에 진주하여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왕이 직접 전장에 나아가서 싸우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당시 수와 전쟁에서 이긴 동북아의 패자 고구려를 신라 왕이 직접 통솔하여 물리 쳤다고 하는 의미에서 신라에게는 대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극 <연개소문>에서는 김유신이 화랑들을 이끌고 고구려군을 무찌르는 장면이 나오지만 김유신은 595년생입니다. 603년 북한산성 전투때 김유신의 나이는 우리나라 나이로 9살이 되니 사실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재미를 위한 허구가 항당한 SF물이 되어 버립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시기가 공교롭게도 668년 가을이니 한가위는 이를 기념했을 수도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시기는 추수철이 지난 늦가을인 경우가 많은데 추수철이 지난 가을에 물리쳤다면 먹거리도 많은 시기이니 잔치를 벌이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요. 이전 가베(길삼)과 승전일들이 겹치는 겹경사가 이니 더욱더 풍성한 명절 한가위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공교롭게도 8월15일은 광복절이고 신라에게는 음력 8월 15일이 승전기념일이란 공통점도 있습니다. 

광복절을 맞이 하여, 신라는 8월 15일을 어떻게 기념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재미가 있고 도움이 되셨습니까? 그렇다면  이 기사도 추천합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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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blog.daum.net/timur12/ BlogIcon 베르세르게케르 2009.08.14 1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평왕이 그런 인물이었군요.

    하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봐도 용맹한 전쟁군주로 나오지, 드라마에서처럼 미실이라는 여자한테 농락당하는 나약한 사람으로는 나오지 않으니까요.

    어찌보면 진흥왕과 더불어 신라가 강대국으로 도약하는 기틀을 다진 임금인데, 드라마에서는 그런 부분이 쏙 빠져 보는 내내 매우 아쉬웠습니다.

    좋고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제 블로그에도 재미있는 글들을 많이 올리고 있으니, 심심할 때 한 번 놀러오세요~ ^ ^

  3.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14 1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포스팅 읽을 때 마다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는 기분..
    앞으로는 이반님이라고 불러야 하남요? ㅎㅎ 참 버리기 아까운 닉네임인데 말이에요.

  4. 천지개벽 2009.08.14 1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mbc제작이라 그렇지요

    이드라마의 제작목적은 신라시대가 여성스럽고 나약한 이미지로 만들려는 의도!

    통상의 사극 남자출연자들이 어떤지 보면 알긋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3: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목적성이 있어서 그런거지요..
      강력한 진평과 강력한 미실의 대결이 더 흥미로울텐데요.

      요즘 트랜드가 여성의 강조이니.. 이해할 측면도 있음..

      천추태후도 그렇구요..

  5. Favicon of http://www.taijimania.co.kr BlogIcon 아지아빠 2009.08.14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주 들어와서 매번 잼나게 읽고 가는데 이제서야 RSS 구독을 하게 되었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6.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14 1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이라고 해서 저도 50이신 줄 알았어요... ㅋㅋ

    이반은 톨스토이의 소설 바보 이반인 줄 알았는데... ㅋㅋ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다닌까요.. ㅋㅋ
      이반은 바보 이반도 있음.. 바보스러움.. 오직 한길만 가는.. 머 그런뜻이 있지요..
      러시아나 불가리아에서는 차르(황제)였더군요.. ㅋㅋ

      한국에서 이반은 여성주의,,또는 동성애를 뜻하기도 하지요..
      일반에 합류하지 않은 이류,, 이반..

  7. 2009.08.14 1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3: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산x님 출현햇당.. ㅋㅋ
      메인에 떳나요.. 갑자기 트랙픽 폭탄이 터져서 살펴 봤는데 없던데요.. ㅋㅋ

      그런데 추천 안하는 사람 무지 많아요.. 글값좀 내 달라는뎅..

      추천하면 안된다는 좌우명을 가지고 사는 분들이 이렇게 많은지 첨 알았음... ㅋㅋ

  8. 흠... 2009.08.14 1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민기 인데.....

  9. Favicon of http://zazak.tistory.com/ BlogIcon 주작 2009.08.14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 메인 문화/연예 부분에 '전쟁영웅 진평왕?'이란 문구와 함께 그림으로 크게 나오셨답니다. ^^
    축하드려요. 늘 그렇지만 당연히 추천하고 갑니다.

    그동안 트랙백을 걸고 싶어도 소스가 없어서 '아! 갓쉰동님이 싫어하시나 보네'했답니다.
    앞으로 관련글 쓰게 되면 마구마구 트랙백 걸겠습니다.
    ㅎㅎㅎ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방금 확인했습니당.. 역시 제목은 다음이 잘만듭니당. ㅋㅋ

      저도 왜 트랙백을 안해주낭. 해서 다른데 트랙백도 못걸고 있었습니당.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해서리.. ㅠ.ㅠ. ㅋㅋ;;

      이제 그동안 못한것 까지 맘껏하셈.. ㅋㅋ

  10. 작은이 2009.08.14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이렇게 배우고 가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외국에 살면서 드라마로 확인하는 역사가 이렇게 다르다는걸 또 확인하며..
    걱정이예요. 드라마 보는 것으로 역사를 기억하는 우리 꼬마들..
    드라마 만드시는 분들 외국에 사는 어린 친구들도 좀 생각해 주시면서 만들면 인기가 없어져서 안될까요?
    그래도 한국 역사 알리기 위해 만드는 거면 좀 작가님들 PD님들 공부 좀 하시고 만들어 주세요...
    아님 갓쉰동님에게 조언을 좀 얻으시든지.. ㅠ.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5: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항상 조심스럽게 쓰고 있습니다.. 제가 잘못된 이야기를 하면, 잘못알게 되닌까요.. 그래서 글쓰기 어려워 지내요.. 확인 작업을 거치게 되고,, 오타는 그냥 무시해주셈.. ㅋㅋ

  11. BlogIcon TISTORY 2009.08.14 15: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TISTORY입니다.



    티스토리 메인에서 '8.15 광복절'을 주제로 회원님의 글을 소개해드렸습니다.^^
    혹시 노출과 관련하여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tistoryblog@hanmail.net 메일을 통해 말씀해주세요!


    앞으로도 재미있고 유익한 글로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2. Favicon of http://djtlsfudnf.tistory.com BlogIcon 어신려울 2009.08.14 16: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날씨가 너무나 더워 암것도 하기 싫어지네요...
    더위식히고 올께요.ㅎㅎ

  13. Favicon of http://blog.daum.net/doong2009 BlogIcon 둥둥 2009.08.14 2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시대 책을 한두권만 읽어봐도 지금 드라마 선덕여왕과는
    완전히 다름을 알게 되더라구요 드라마다 보니 픽션이 어느정도
    가미되는거야 이해해야겠지만 이 드라마 보고자란 사람들은 나중에는
    선덕여왕과 김유신이 사랑한 사이라고 믿을것 같네요
    선덕여왕 이야기가 나와서 써본 글입니다..ㅋㅋ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5 09: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쩌면 드라마가 당시 현실이였지동..
      단, 덕만이 나이가 유신보다 어리다는 전제가 깔린다면요..

      저는 덕만이 어렸을때 왕위에 올랐다고 보는 입장이니.. 유신이 더 나이가 많았겠지요.. ㅋㅋ

      애들이 걱정이긴 해요.. 삼국지를 읽고 중국의 삼국시대가 그랬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있으니.. ㅋㅋ

  14. Favicon of http://hwa2jin.textcube.com BlogIcon 참좋은미시 2009.09.13 1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이가 주인공이라 부각을 시켜야하기 때문이겠죠.
    전 개인적으로 김유신과 사랑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15. Favicon of http://1035.tistory.com/ BlogIcon toy 2009.09.13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사와 야사, 논란까지 있는 화랑세기까지.. 폭넓은 역사적 인식이 대단하시네요..
    거의가 선덕여왕에 관련된 걸 보면 갓쉰동님도 선덕여왕 광팬이신듯..ㅎㅎ..
    월요일 저녁이 빨리 왔으면 좋겠지만 일요일이 빨리 지나가는 건 너무 싫어요~ㅎㅎ

  16.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7.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8. Favicon of http://biancalaowe.livejournal.com/821.html BlogIcon water storage containers 5 gallon 2012.11.01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9. Favicon of http://365ideasdenegocio.blogspot.com/2011/11/se-alquilan-perros.html BlogIcon petsafe invisible fence for cats 2012.11.06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대사관 공보참사관 집에서 열린 오찬에는 정부 관계자들과 인터넷 업체

  20. Favicon of http://strandkurv.blogspot.com/2008/05/lejes-hund-ah-og-i-gr-glemte-jeg-at.html BlogIcon innotek electric dog fence 2012.12.22 1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 기능을 갖춘 스크린 캡쳐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프로그램 없이도 웹페이지를 가장 빠르

  21. Favicon of http://emergencyfood.xanga.com/ BlogIcon what is a julian date on food 2013.01.02 16: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사기는 이 전쟁을 북한산성 전쟁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화랑세기는 <한수>전쟁으로 기록하고 있다.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삼고, 만들어진 소설 중에서 <선덕여왕>은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가 기록한 덕만이 맏언니, 천명이 동생과는 다르게 설정을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텍스트로 사용하고 있는 화랑세기의 천명의 동생 덕만으로 설정한듯 하지만, 화랑세기와는 다르게 천명을 같은 나이 동복의 쌍둥이로 설정하였다. 하지만 천명의 쌍둥이 동생으로 설정하는 바람에  많은 부분에서 역사와는 다른 시대 상황을 만들고, 그에 따라 등장인물과 사건들이 얼키고 설켜 버렸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덕만과 천명 그리고 통설

그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는 다르게 화랑세기에서는 덕만에 대해서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 알아 보도록 하자.

삼국사기는 덕만을 진평왕의 맏딸이고. 덕만의 어머니는 마야부인이다.

반면에, 천명은 진평왕의 딸이다. 

이 둘의 기록을 그냥 생각없이 읽는다면, 진평왕의 맏딸은 덕만이고, 천명은 진평왕의 딸이니, 천명은 진평왕과 마야부인의 딸이 된다. 그리고  덕만이 맏딸이니 천명은 당연히 첫째는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삼단논법이다. 만약, ~라면, ~다. 이런 류의 소설을 기반으로 논설을 쓰는 자칭,  국내 유수의 자신들의 할말 만 하는 신문사도 있다. 일명 라면사설 또는 라면일보라고도 불리운다. 대부분 이런 라면소설은 그럴듯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고 보면,  기본 개념이 미 장착인 경우가 많다.

더 나아가 <삼국유사>에 보이는 서동요로 너무나 유명한 <서동과 선화>에서 '선화'가 진평왕의 3번째 딸이라고 했으니, 이들의 서열을 비교하면 덕만이 맏이 되고, 천명이 둘째가 되고, 선화가 셋째가 된다. 그런데 이런 설정이 맞는 걸일까?

통설의 문제점

하지만, 글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덕만은 진평왕의 맏딸이 맞다. 문제는 마야왕후인 정비의 소생으로 맏 딸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천명은 단지 진평왕의 딸이라고 만 기록하고 있다. 몇번째 딸인지도 기록하지 않고 있다. 마야의 소생이라고 기록하지도 않았다.
 
만약, 천명이 마야의 소생이였다면, 삼국사기는 천명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했을 것이다. 하지만 삼국사기는 분명히 진평왕의 정비가 마야인것을 알면서도 천명을 마야의 소생이라고 기록하지 않았다. 현재와 같이 1부1처제가 확립된 관점이라면, 누구나 천명의 어머니도 마야라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50년전으로만 돌아가더라도 첩실이란 용어가 공공연히 사용될 정도로 첩의 자식이 있었다. 홍길동전에도 첩도 아니고, 집안 노비를 어머니로 둔 홍길동이지만, 홍판서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설움을 이야기한다. 고려시대만도 사대부 정도만 되더라도 첩은 무수히 많았다.

하물며, 왕의 아내들인 정비와 후비와 비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무수리의 몸에서 난 자식도 왕이 될수 있는게 왕이 가지는 성스러운 특수성이다. 그러니 고려시대를 살아간 김부식이나 일연으로써는 당연히 진평왕의 소생인 것은 맞지만, 천명의 모후가 누구인지 모를때는 덕만의 어머니인 마야를 천명의 어머니로 보지 않았다.
 
천명이 진평왕의 소생인것은 맞지만,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마야의 딸이라고 기록할 수 없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천명의 어머니를 삼국사기.유사에 기록하지 않은 이유는 마야의 소생이 아닐뿐더러, 손씨 승만왕후의 소생도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의 상식으로 과거를 단지, 겉보기 기록을 가지고, 덕만의 어미인 마야를 기록하지 않는 천명의 어머니로 만들고, 이를 기준으로 알 수 없는 덕만이 언제(몇살) 왕위에 올랐을까를 추적한다. 추적의 기준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닌 '천명'을 기준으로 한다. 만약 천명과 덕만이 동부이모라면 이 추척은 아무 의미가 없는데도 말이다.

통설이 가는 곳은 삼천포

가설이나 가정을 잘못세우면 결과가 전혀 다른 길로 빠져들게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통설로 알려진 가설을 따라 추적을 해볼 생각이다.

천명을 기존으로 했을때 덕만의 나이를 추적하는 방법은 없다. 단지, 천명이 낳았다는 춘추를 기준으로 할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춘추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603년에 태어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603년 8월은 신라에서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다. 603년 8월 고구려와 신라가 경기도 영역을 걸고, 고구려는 잃어버린 옛영토를 수복하기 위해서 이고, 신라는 대 중국 교역로의 교두보를 잃어 버릴수 없다는 절체절명의 신라국운을 걸고,  한수에서 일대 결전을 벌인다. 이때, 진평왕은 손수 군대를 이끌고, 침입하는 고구려 군을 북한산성(한수) 전쟁(투)에서 무찔러 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한가위와 추석과 중추절을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같은 날짜이기는 하지만, 전혀 다른 명절이다. 공교롭게 중첩되었을 뿐이다. 광복절과 한가위가 겹치는 것처럼 말이다. 광복절은 광복절이고 추석은 추석이고 한가위는 한가위 일뿐이다. 603년 8월 이때의 승전을 기념하여 중추절이 생겼다. 이에 관한 글은 별도로 포스팅 할 예정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춘추가 603년에 태어 났다면, 천명의 대략적인 나이를 추측할 수가 있다. 천명이 15세~20세에 춘추을 낳았다면, 천명은 584~589년 사이가 된다는 것이다.
천명의 언니인 덕만의 탄생 시기는 582~588년 사이가 된다. 그러니 덕만은 왕위에 오르는 632년에는 45~51세가 된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천명과 덕만이 동복이란 어떠한 기록도 없다. 그런데 잘못된 가정이 덕만을 40중~50초반에 왕에 등극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 대참사가 발생되었다. 만약, 이 사실을 죽은 선덕여왕이 알았다면, 대성통곡할 일이 아닌가?

칭찬한 답시고, 잘 알지 못하는 길가던 아가씨에게 "아줌마 너무 섹시해요"라고  말을 해도 별 "미친놈을 다 봤나"라는 듯 눈흘김을 당하거나 좋은 말 들어 보기 힘들 것이다. 물론, 아줌마에게 "아가씨 너무 섹시해요" 라고 한다면 아줌마가 별미친놈 하면서 돌아서며 내가 아직도 먹어주는구나 하고 입가에 미소를 짓겠지만 말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문제가 아닌 연구자의 문제

사실 덕만을 50대로 설정하는 순간, 덕만과 관련된 삼국.유사 모든 기록은 덕만과 관련이 없는 또는 다 늙은 노처녀의 이야기로 치부해 버릴 수는 있다. 하지만, '모란꽃'사건이나 '지귀심화', 634년 결혼과 연호 변경을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없어진다.

이 같은 사건들이 40대 넘은 노처녀나 50이 넘은 노처녀가 할 만한 일은 아니다. 또한, 등극 후 3년이 지난 635년 남편을 두었다는 기록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모란꽃은 애들에게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나 아빠랑 결혼할래 엄마랑 결혼할래를 갓 졸업한 아이에게나 했음직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관점이 아닌 당대의 관점으로 역사를 본다면

이제 아래의 글을 차분히 현재의 1부일처제 관점이 아닌 과거 수 없이 많은 여자를 거느렸을 진평왕 시대로 돌아가 읽어 보기 바란다.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선덕여왕 원년(632) 2월에 대신(大臣) 을제(乙祭)로 하여금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선덕여왕 원년
634년 3년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3년(634) 봄 정월에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바꾸었다. 분황사(芬皇寺)가 완성되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3년

가정하지 않고, 삼국.유사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고, 해석한다면, 덕만이 632년 왕위에 오른시기는 절대 20 대를 넘기지 못한다.

화랑세기가 본 덕만과 용춘

화랑세기는 기존의 통설을 통쾌하게 반박하고 있다, 그건 "니들 생각이고~" 너희들이 틀렸다라고, 만약, 현존하는 화랑세기가 김대문이 저작한 화랑세기를 필사한 필사본이라면, 그동안 역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는 한마디로 엿먹은 것이다. 그래도 화랑세기라는 필사본이 발견되었으니 쪽팔림은 있더라도 학계발전을 위해서는 만족할 만 하다.


하지만, 박창화가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모방한 가짜라면 이는 더더욱 문제가 된다. 1930년대의 종이에 필사된 화랑세기라면, 1930년대에 이미 개인 박창화는 현재 2010년 즈음의 전체 역사학계 보다도 뛰어난 역사적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역사학계는 밥숫가락 놓고, 모두 대운하 삽질공사에 일일잡부로 참여하거나  다른일을 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던, 덕만과 천명을 화랑세기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따라가 보도록 하자.

화랑세기는 좀 더 나아가 천명이 덕만보다 나이가 많았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화랑세기도 덕만의 출생일이 언제인지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화랑세기의 기록들을 토대로 덕만의 나이를 유추해 볼 수 밖에 없다. 덕만의 나이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정황증거 기록을 살펴보자.

그렇다면, 언제 이런 기록을 남기게 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용춘(龍春)은 무술(戊戌)년(578) 생이고 병진(丙辰)년(596)에 낭주(郎主)가 되었다.〉


공의 손 윗누이인 용명공주는 곧 진흥의 딸이다. 진(평)을 섬겨 총애가 있었다. 공의 처지를 열심히 도와 (풍월)주의 지위를 얻게 하였다.  화랑세기 13세 용춘

용춘은 이 기록으로 19살에 13세 풍월주에 올랐다. 용춘의 어미인 지도(기오/흥도)는 금륜(진지)뿐만 아니라, 진흥도 섬겼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도의 딸인 용명공주가 진평을 섬기고, 용춘을 뒤에서 밀어주어서 용춘이 13세 풍월주에 올랐다는 새로운 기록을 보는 것이다. 

그럼 지금 까지 알지 못했던 용수.용춘 누이에 관한 기록이다. 용수, 용명공주, 용춘이거나 용명, 용수, 용춘이 된다. 그런데 지도는 천주공과도 관계해서 17세 풍월주가 되는 염장을 낳기도 한다. 어찌 되었던 이는 다른 포스팅으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용춘의 나이를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용춘은 578년생이고, 천명은 588~590년 사이에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춘추의 아비인 용수는 용춘보다 보다도 나이가 많아야 한다. 그러니 용수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576~7년 생이 된다.

결국은 용수는 금륜이 왕위에 오르는 시점에 태어났고, 용춘은 금륜이 왕위를 내주고, 폐위되어 살아가는 동안에 아비의 얼굴을 모르고 컸다는 말이 된다. 용수는 26~28살 전후에 자신보다 최소 나이가 10살 어린신부 천명과 관계를 하여 603년 춘추를 낳은 것이다.
이말은 용수.용춘에게는 이미 본처가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호림공에게 풍월주의 지위를 물려주게 되자, 조정에 들어가 요직에 있었는데 대사 이하에 재능이 있는 낭도를 많이 등용하였다. 이로서 낭도로 등용된 자들이 또한 공을 심히 존중하여 모두 목숨을 바치기를 원하였다.

호림에 풍월주 지위를 넘겨 주는 시기는 603년이다. 그후 용춘은 조정에 들어가서 열심히 조정일을 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문노와 천명을 구하려 출동한 대남보는 여래사에서 16세 풍월주이며 미실과 설원랑의 아들인 보종을 활로 상처를 입힌다. 용춘의 충성스런 '대남보'도 이때 기용한것이 아닐까 한다. 용춘의 기록중 대남보의 기록을 보면 꼭 일본의 자객집단인 닌자들을 보는 듯 하기도 한다. 그래서 선덕여왕에서도 가면을 쓰고 음지에서 용춘을 호위하는 음병으로 나온다. 김유신이 죽을때에 유신의 집에서 나오는 한 무리들이 있엇다고 한다. 유신 평생 뒤에서 유신을 호위했지만, 유신이 죽자 울려 떠나 버렸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되겠다.

 (선덕여왕에서는 대남보가 미생의 알려지지 않은 아들중에 하나로 나왔나 봅니다.  또한, 보종(미실/설원랑)을 쏜사람은 임종으로 나왔다고 하네요.. 당연히 용춘의 그림자 무사 대남보 일줄 알았는데.. 소설 선덕여왕은 견적이 안나오는 군요.. 진심으로 견적이 안나오는 원소설을 가지고, 대단하고 재미있는 사극을 만든 mbc에 경의를 표함 ^^)  


건복(建福) 20년(603) 공과 비보랑이 제(帝)를 좇아 한수(漢水)의 전쟁에 나갔다. 남보에게 공으로 대나마를 주었으나 받지 않았다.
그 때 대왕은 적자(嫡子)가 없어 (용춘)공의 형인 용수 전군(殿君)을 사위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다. 전군이 (용춘)공에게 물었다. 공이 답하기를 “대왕의 나이가 한창 강성할 때인데 혹시 왕위를 이으면 불행할까 염려가 됩니다” 하였다. 전군은 이에 따라 사양하였으나 마야황후가 들어주지 않고, 마침내 전군을 사위로 삼았다. -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603년 진평왕은 적자가 없어서 용수를 천명의 부군으로, 즉 사위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려 했다" 여기서 주의해서 봐야 할 것은 용수를 부군으로 삼아 물려주려 했다는 대목이 아니고 적자 가 없다는 말이다. 이는 다른 말로 왕후의 소생인 왕자가 없다는 말이다. 다른 비를 통해서는 왕자가 있다는 다른 표현인것이다.

603년 시기까지 덕만은 존재가 없는 것이다. 있더라도 나이가 어려서 결혼적령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시기에 용수와 천명이 결혼해서 '춘추'를 낳은 것이다. 

삼국사기나 화랑세기에 의하면 진흥은 7살에 왕위에 올랐고, 화랑세기 12세 풍월주 보리의 기록에 의하면, 진흥의 비인 사도는 7살에 진흥에 시집을 갔다고 한다. 또한 12세 풍월주인 보리는 13살에 결혼을 하는데 7살의 어린 신부를 얻어서 업고 궁궐 출입을 하였다고 한다. 이런 사례가 있는 것으로 보았을때, 덕만이 있었다면 용수랑 엮어 주지 않았을까? 아무리 어린신부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문근영이 고딩때 결혼해서 어린신부였지만 당시는 어린신부 축에도 끼지도 못하고 10세 미만이 되야 어린 신부축에 들었다.

선덕공주(善德公主)가 점점 자라자 용봉의 자태와 태양의 위용이 왕위를  이을 만 하였다. 그 때는 마야황후가 이미 죽었(崩)고, 왕위를 이을 아들이 달리 없었다. 그러므로 대왕은 (용춘)공을 마음에 두고 (천명)공주에게 그 지위를 양보하도록 권하였다. (천명)공주는 효심으로 순종하였다. -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596년~603년

"그때는 마야황후가 이미 죽었(崩)다"

덕만이 다 자라기도 전에 마야왕후는 죽었다. 덕만의 어린시절에 모후가 없었다. 그러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이 어린 나이에 죽은 마야가 다큰 성인이 된 시점에 모녀 상봉을 하는 것은 엽기에 가깝고, 매년 여름방학 납량특선에나 나옴직한 설정이 된다. 또한, 진평은 덕만이 어린나이때 승만 손씨를 왕후로 받아 들인것이다. 물론, 승만 왕후가 후비였을때 왕자를 생산해서 왕후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예사로 넘기기 어려운 단락이 있다. "왕위를 이를 아들이 달리 없었다"는 기록이다. 이는 왕자들은 있지만, 대권(왕권)을 넘기기에는 '왕자들의 자질이 덕만에 비해 부족함이 있다'는 다른 표현이다. 또한, 그전에 천명이 왕위를 받는 수업을 받았음도 짐작할 수 있고, 진평은 전왕들의 선례에 비추어 사위를 왕으로 삼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또한가지 579년 13세에 왕위에 오른 진평(567년생)은 603년 37살이 될때까지 적자가 없었다.하고 있고, 603년이 한참 지난후 선덕이 자라면서 왕의 자질이 보였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도 마야가 죽고, 덕만이 어려서 왕의 자질을 보일때에도 왕위를 이을 아들이 달리 없었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왕의 자질을 보인 덕만에게 도전자가 생긴다. 다름 아닌 손승만후가 아들을 낳아 덕만을 밀어낼 꿈을 꾸는 것이다. 하지만 아들이 일찍 죽어 버린다. 이 시기 승만은 왕자를 생산한 비들을 음모를 꾸며서 궁밖으로 축출한다. 어찌 보면 어부지리를 덕만이 한것이고, 아니면, 어리지만 덕만의 정치술수가 뛰어났을 수도 있다.

선덕은 공이 능히 자기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여 사신(私臣)이 되기를 청하였다. 대왕이 이에 공에게 공주의 뜻을 받들도록 명하였다. 선덕은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감정이 풍부하였다. 공이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고 굳이 사양하였으나 어쩔 수 없이 받들게 되었는데 과연 자식이 없어 물러날 것을 청하였다. 대왕은 용수공에게 모시도록 명하였는데 또한 자식이 없었다.

그 때 승만황후(僧滿皇后)가 … 아들을 낳자, 선덕의 지위를 대신하고자 하였는데 그 아들이 일찍 죽었다. 승만은 (용춘)공의 형제를 미워하였다. 공은 이에 지방으로 나갔다. 고구려에 출정하여 큰 공을 세우게 되자 승진하여 각간(角干)에 봉해졌다. 용수전군이 죽기(薨) 전에 부인과 아들을 공에게 맡겼다. 

1차로 덕만이 용춘과 관계를 가지고, 천명이 궁을 벗어난 때를 알아보자. 이시기에 덕만은 용봉의 자질을 가지고 결혼을 한때이다.  

승만왕후가 아들을 낳았지만, 아들이 일찍 죽었다. 아들이 죽은 원인을 용수.용춘형제로 하고, 지방으로 축출한다. 이는 단순히 용수.용춘을 대상으로 하는게 아닌 덕만의 지지세력을 축출하는 것이다. 그런 용춘이 고구려 원정에 출정하여 큰공을 세운다. 화랑세기에는 고구려에 출정한 전쟁이 어느때인지는 언급이 없다. 하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서현, 용춘, 유신이 고구려의 낭비성을 치는데 큰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51년(629) 가을 8월에 왕이 대장군 용춘(龍春)과 서현(舒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 고구려 낭비성(娘臂城)을 침공하였다. 고구려인이 성을 나와 진을 벌려 치니 군세가 매우 성하여 우리 군사가 그것을 바라보고 두려워서 싸울 마음이 전혀 없었다. - 삼국사기 본기 진평왕 51년

위의 기록을 보면, 승만왕후의 자식이 죽은 때는 629년 8월 낭비성 전투 이전시기 임을 알 수 있다. 이때, 용춘의 나이는 50세가 된다. 603년까지 덕만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다가, 629년 8월 낭비성 전투가 일어나기 바로 전에 용봉의 자질을 보이는 덕만이 용춘과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승만 왕후의 자식이 죽자, 승만 왕후는 자식이 죽은 용춘.용수 형제 때문이라고 생각하자. 이에 지방으로 나아가고, 낭비성 전투를 계기로 서라벌로 복귀하는 것이다. 

그러니 629년 전후를 기해서 덕만의 나이는 성숙한 성인의 나이에 접어 들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여기서 성숙한 여인이란 당대 13세 전후 결혼하는 일반적인 신라 상황을 고려할때, 덕만도 13세~16세 전후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용춘,용수와 관계하고 몇년 후가 629년이 된다. 그러니 덕만이 632년 진평을 이어 왕위에 오른때는 16~20세 이전이 된다. 또한, "
선덕은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감정이 풍부하였다" 라고 한다. "총명하고, 감성이 풍부하다"는 말은 당시 기준으로도 어린사람들에게나 하는 말이지, 50살 근처에 있는 늙은 할머니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또한,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은 늙은 용춘과 용수가 젊은 여인 덕만에 할 말이지, 같이 늙은 사람을 대상으로 애를 낳기 위해서 멸사봉공할 수는 없는 말이다. 아무리 날고 기는 용수.용춘형제라도 50근처의 여인에게서 후사를 보는 것은 하늘의 도움이 아니면 생물학적으로 있을 수 없다. 많이 양보해도 629년 즈음 용춘의 나이 50일때 덕만은 20초반을 넘길 수는 없는 것이다.  이로써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의 기록을 토대로 덕만의 나이를 유추해 보았다.

현존하는 화랑세기가 진서이던 위서이던 관계없이 상당히 합리적으로 기술되었다고 보여진다. 실제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살펴봐도 덕만이 50세의 노파로는 왕위에 올랐다고 볼 근거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단지 차이점이라면 마야의 소생으로 천명을 기록한 것 같지만, 화랑세기에는 천명의 어미로 마야를 묘사한 대목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여전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는 다르게 천명의 모후가 마야라고 기술하고 있다. 다만, 천명이 덕만보다 나이가 아주 아주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또한, 마야의 여식으로 천화, 천명, 덕만이다. 천화는 용수에게 시집을 갔다. 용수가 천명과 혼인을 하자, 천화는 추후 603년 낭비성 전투에 용춘과 같이 참여했던 백룡에게 다시 시집을 간다.  그러니 삼국유사의 서동과 선화는 잘못되었다고 반박을 하는 셈이다.


덕만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심층해부 시리즈

화랑세기는 단 한줄도 인용하지 않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의 기록을 토대로 덕만이 현재의 이요원의 나이가 아닌 어린 아역을 해서 주목을 받았던, 남지현 나이때 왕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시리즈 글을 기시로 송고했었다.

위 기사들의 결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덕만은 진평왕과 정비 마야의 장녀다.
둘째, 천명이 나이는 많지만, 정비인 마야의 소생은 아니다. 또는 마야 이전 황후의 소생이다.

셋째, 천명과 덕만은 이복자매간이다.
넷째, 천명은 정비인 마야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에 덕만보다 왕위승계에서 후순위다.
다섯째, 마야의 후손으로는 덕만 말고도 또다른 자매(들)이 있다.  설령, 덕만과 천명이 같은 마야의 소생일지라도 덕만은 천명보다 나이가 한참 어렸다.

여섯째, 덕만은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했다.
일곱째, 덕만은 왕위를 오를때, 현재 80년생이며 한국나이 30살인 이요원보다도 어렸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의 아역역할을 한 남지현은 2009년 현재 15세이다. 덕만은 실제로 632년에 15~18세 정도에 늦어도 20세 전후에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다음은 신라사 연구의 전설이며 철옹성으로  통하는 <성골>, <진골>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성골, 진골의 허구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만으로 얼마나 잘못된 역사 상식속에서 살아왔는지 조목조목 파헤칠 예정이다. 물론, 단지 예정이지 꼭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기사를 송고하는 중간 중간에 간간히 언급을 할 것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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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dar 2009.08.10 1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론은 드라마는 구라라는거네요.ㅡ;;
    하긴 좀 전체적으로 이상하긴했어요
    먼가 않 맞는느낌?
    드라마는 드라마니 역사와 다르다<<라고 우리나라 pd들은 그러는데.ㅡㅡ
    그럼 이름을 왜 역사이름으로 쓰는건지???
    이름 전혀다르게해서 이건 퓨전사극이다<라고 할것이지
    우리나라는 요즘 특히 드라마에서 역사왜곡이 심하네요.
    PD들 역사 공부 점 해야겠음

  3. Favicon of http://www.news119.net BlogIcon news119 2009.08.10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노력 많이 하셨네요. 초딩때 삼국사기를 열심히 읽어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심오한 글은 첨이어요~

  4. 물음표 2009.08.10 16: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롭게 잘 읽고 갑니다.
    기쁜 날 되세요.

  5. 백마강 2009.08.10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청난 노력의 산물입니다.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재미나게 봤습니다 ^^
    역사라는게 기록이 모두 옳다고 할수 없듯이 유추한 자의 기록도 옳다고 볼순 없겠죠

  6. Favicon of http://ytrty.tistory.com BlogIcon Nehe 2009.08.10 21: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정말 유익한 글이였습니다~

  7.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11 13: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많은 걸 연구하셨네요...

    역사학 교수님도 갓쉰동님처럼 자세한 연구는 하지 못한 것 같아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8. 현아엄마 2009.08.11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았습니다. 재미있네요^_^
    그럼 여기서 드리는 질문하나!
    유신은 덕만공주보다 한참 아래연배이지요?
    지금 드라마상에서는 유신과 덕만공주가 러브라인인데, 유신이 김춘추의 셋째딸과 결혼한다고 알려져있는데.. 드라마상에서는 천명이 15~6세에 낳은설정이자나요.. 지금 유신은(엄태웅) 아무리봐도 서른전중반인데..ㅋㅋ 내생각으로는 김춘추 결혼도 멀은것 같은데.. 언제 셋째딸 기다리나.. ㅎㅎㅎㅎ 아니면 부인중 하나가 김춘추의 셋째딸인건가요.. 드라마 설정으로 유신이 더 어리다고 한번 지나가듯이 나왔기도 했는데..
    (아역에서 성인으로 넘어오면서 너무 나이를 먹었나..)ㅎㅎ 알려주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1 15: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춘추 셋째딸은 문희와의 사이에 난 지조부인인데요..
      유신과 결혼한 때는 유신이 한갑인 655년에 합니당..
      이때 지조는 꽃다운 15~6세 정도지용..

      춘추와 문희의 결혼은 626~628년 사이이구용..

      화랑세기에 의하면 춘추 24세 바로 직전에 결혼한다고 하네용.. 603년 생이니 626년이 되는군요.. 드라마상 최소 앞으로 20년후가 되겠습니당.

  9. Favicon of https://tradition.tistory.com BlogIcon 피오나신랑 2009.08.11 17: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잘보고 갑니다 ^^

  10. Favicon of http://wrgu.tistory.com BlogIcon 구여사 2009.08.28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보면서 뭉게뭉게 피어오른 의문들이 풀리는 글이었습니다. ^^

    역사드라마를 보는 매력은 이런 것인가 봅니다.ㅎㅎㅎ

  11. Favicon of http://www.jocuri-online.be BlogIcon jocuri online 2011.08.25 0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을 지키기 위해 중악으로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

  12. 2011.11.03 2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3. 2011.11.03 2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4. Favicon of http://www.olacabs.com/car-rentals/mumbai BlogIcon Mumbai Car Hire 2011.12.26 1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Really great work,I would like to join your blog anyway.24세 바로 직전에 결혼한다고 하네용.. 603년 생이

  15.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6. Favicon of http://stuff2india.in/about-us/ BlogIcon Discount offers in India 2012.11.22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라당 후보, 장상 민주당 후

  17. Favicon of http://www.facebook.com/pages/Anthony-Morrison-Author-Speaker-and-Internet-Ent.. BlogIcon internet marketing 2013.02.18 1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8. Favicon of https://www.youtube.com/user/adrianmorrisonceo BlogIcon internet marketing 2013.02.18 1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치의 가감도 없이 왜곡도 없어야 하는데 기존 통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안목도 없고, 능력도 없이 왜곡하고 있지요. 사실 왜곡이 아니라.. 수준이 낮은 거지만.. 알아야 왜곡도 하는 거지요.. 모르면 왜곡도 못해요.. 모르고 한일은 그냥 무식하다고 하는 겁니다.

  19. Favicon of https://www.facebook.com/AdrianMorrisonCEO BlogIcon internet marketing 2013.02.18 2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는 안목으로 쓰는게 아니다 이미 일어난사실을 한치의 가감도 없이 왜곡도 피하며 그 옳고 그름을 읽는 사람이 판단할것을 맡겨두고 적어가는 일종의 계산서다. 이렇듯이나 비뚤어진 사고방식으로 "모든것을 거꾸로!"를 외치고 싶다면 일본의 후쇼샤는 좋아 할것이다. 동지의식에........

  20. Favicon of https://www.youtube.com/user/DeanGraziosiInc BlogIcon real estate 2013.02.18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치의 가감도 없이 왜곡도 없어야 하는데 기존 통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안목도 없고, 능력도 없이 왜

  21. Favicon of http://www.bestmattress-reviews.org/adjustable-bed-reviews-reveal-best-brands/ BlogIcon adjustable beds review 2013.04.03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치의 가감도 없이 왜곡도 없어야 하는데 기존 통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안목도 없고, 능력도 없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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