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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

신라 사금 발견, 신라 황금 나라? 신라 사금 발견으로 뻥 심한 고고학자와 언론인들 신라 사금 발견이 이슈화 되고 있다. 하지만, 신라 사금 발견은 이전에도 있었다. 단지 이슈화 되지 않았을 뿐이다. 신라 사금 발견이 대단한 것이기는 하지만, 신라 경주 월성이 있던 문천에서 신라 사금 발견으로 신라를 황금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더군다나 경주 월성 문천에서 발견된 사금이 구상(구슬)모양이라 구슬 장식은 그냥 썼을 거라는 자칭 전문가의 전언은 개소리다. 이는 신라 금세공을 모르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금관이나 혁대나 기타 장식품에 쓰이는 금 구슬 모양 금세공을 하는 사람이라면 소나개나 다 알고 있는 사출방식으로 가는 철사나 실처럼 만들어 일정한 크기로 자른 후 녹여 만드는 방식을 사용한다. 신라시대 장인들을 무식한 원시인으로 생각하는 전문가가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 더보기
정월대보름 찰밥 부름 언제부터? 정월대보름 쥐 까마귀 사람살린날 정월대보름 찰밥 언제부터 먹었나 쥐 까마귀 기리는 날부터 시작한 이유 정월대보름 찰밥을 먹기시작한 때는 언제부터 였을까? 정월대보름 알고 보면 죽음과 관련이 있다. 사람을 살리고 하는 순간의 선택이 대보름에 찰밥을 먹시 시작한 것이다. 삼국유사에 내제석궁과 천주사와 사금갑에 관한 재미있는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의 다음과 같다. > 488년 제21대 비처왕(毗處王; 소지왕炤智王이라고도 한다)이 즉위한 10년 무진(戊辰; 488)에 천천정(天泉亭)에 거동했다. 이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사람의 말로,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 보시오”한다(혹은 말하기를, 신덕왕神德王이 흥륜사興輪寺에 가서 행향行香하려 하는데 길에서 보니 여러 마리 쥐가 꼬리를 물고 있었다. 괴상히 여겨 돌아와 점을 쳐 보니 “.. 더보기
최수종 수술 액운 대왕의꿈 시청료 횡령 사기극 멈춰야 최수종이 대왕의 꿈 촬영도중 낙마로 수술을 하였다. 최수종은 이전에도 낙마를 하였고, 촬영 중단이 되었다가 제기되었다. 이번 최수종의 낙마로 대수술을 하였고 최수종은 더이상 대왕의 꿈에서 볼수 없지 않을까하다. 대왕의 꿈은 박주미의 교통사고로 인해서 낙마를 하고 홍은희가 선덕여왕 대타를 하였다. 사극의 경우 낙마사고로 인해서 촬영이 중단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예전 선덕여왕에서도 김남길도 낙마 사고를 당해서 잠정 촬영이 중단 되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대왕의 꿈의 경우 너무나 비일비재한 사고 인해서 액이 꼈다고 봐도 이상할 것이 없다. 어쨌든 최수종 수술이 잘되었고 회복중이라니 천행중 다행이다. 아래글은 일련의 사고와 대왕의 꿈이 왜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는지를 살펴보고 대왕의 꿈은 더이상 진행하지 .. 더보기
대왕의 꿈 무색무취, 김춘추 최수종 문제? 재미없는 스토리 때문 김춘추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 논란이 있는 인물이다. 오히려 김춘추는 좋은 이미지 보다는 나쁜 이미지로 각인이 되었다. 외세 인 당을 끌어들여 한민족 역사를 한반도 그것도 한반도의 반 토막으로 축소시켰다는 점에서 김춘추는 좋아라 하는 사람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글쓴이(갓쉰동)이야 당시 생존을 위해서 치열하게 살다간 인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KBS 방송은 200억(?)을 투입해서 김춘추를 재조명하고자 기획되었다. 김춘추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있는 목적 극이다. 김춘추 역에는 사극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최수종이 등판해서 김춘추를 구원하려고 한다. 좋게 말해서 최수종이 김춘추를 재조명하는 계기를 만들어 냈을수 있지만, 최수종은 사극에 너무나 식상하게 등장하는 .. 더보기
대왕의 꿈 김춘추 승만왕후 갈등 사실은 용춘/용수 승만왕후 갈등 대왕의 꿈 김춘추 문명왕후(문희) 보라, 김유신 천관녀 사랑보다 진부하지 않았다 대왕의 꿈에서 승만왕후는 진평왕이 쓰러지자 섭정을 한다. 김춘추는 승만왕후가 섭정으로 국정을 농단하지도 않았는데 반대를 한다. 그리고 처형장으로 끌려간다. 김유신에게 김춘추를 죽이려 하지만, 김춘추는 충신을 죽일 수 없다며 같이 죽이라고 한다.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승만왕후에 반기를 들자. 모두 진압할 것을 명령한다. 양측간에 피해가 발생하자. 아퍼서 누워있던 진평왕이 덕만공주와 함께 나타나 승만왕후를 제압한다. 그리고 승만왕후를 폐위시키려 하지만, 덕만공주가 반대하고 승만왕후가 임신을 하자 폐위를 보류시킨다. 의자왕으로 왕자인 이진우가 등장했다. 그런데 왜 백제의 왕자인 의자 신라 서라벌에 등장을 하는 것일까? 대왕의 꿈에.. 더보기
대왕의 꿈, 김춘추 얼마나 부끄러우면 아전인수 미화.왜곡할까? 대왕의 꿈은 김춘추의 일대기를 그린 사극이다. 그런데 대왕의 꿈을 보고 있노라면 김춘추에게서 보여줄게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대왕의 꿈에서 보여준 김춘추의 이야기는 대부분 다른 이의 에피소드이기 때문이다. 602년생 김춘추가 612년 가잠성 전투에 나타나기도 하고, 그 보다 어렸을 때는 애비 어미도 없는 안하무인에다가 대왕 앞이나 증조모인 진흥왕비에게도 위아래 없는 망나니로 나온다. 대왕의 꿈만을 본다면 혹시 김춘추는 어릴적 부터 미친놈?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김춘추와 김유신의 일화에서는 임신년 북한산에 올라가 진흥왕 순수비에서 삼한일통을 꿈꾸고 김유신과의 다짐을 잊지 않도록 석판에 기록으로 남긴다. 애가 못하는 게 없다. 임신서기석은 신라 화랑 중에 .. 더보기
김춘추 덕만 김유신 문희 화형쇼 넘어간 바람둥이 김춘추 - 절대 선덕여왕 될수없는 이유 김춘추 최수종은 아내인 보라궁주를 화재로 잃어 버릴 뻔 한다. 진평왕은 승만왕후에게 속아서 보량군주와 보로전군을 궁밖으로 내 쫓아 낸다. 덕만공주는 김춘추가 화랑도를 겨냥해서 감찰을 강화하자 화랑도와 김춘추의 감찰기관간에 관계를 개선시키고자 축국대회를 개최한다. 김춘추는 보희의 눈에 띄었지만, 실제 김춘추와 야합하는 이는 문희였다. 김춘추는 잠에 깨어나 문희를 보고 경악한다. 같은 시간 때 보량은 임신한 상태에서 김춘추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임신한 아이는 김춘추의 딸로 고타소임을 짐작할 수 있다. 고타소의 죽음은 대왕의 꿈에서 김춘추가 어렸을 때부터 삼한일통을 꿈꾸었다고 나오지만, 실질적으로 백제와 원수가 되는 계기가 되고, 김춘추는 이때부터 고구려, 왜, 당나라로 종횡무진 군사원조 외교전을 벌린다... 더보기
대왕의꿈 천관녀 이세영 첫사랑 김유신 실패했을까? 결혼해서 자식까지 둔다 대왕의 꿈에서 김유신과 신관을 지키는 천관녀와의 사랑이 그려지고 있다. 천관녀는 비형랑이 전쟁고아를 주어서 기른것으로 회상한다. 그리고 신분의 벽때문에 김유신을 멀리한다. 하지만, 김유신은 죽도록 천관녀를 사랑하겠노라며 천관녀를 흔들다. 그리고 천관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자신이 신관을 떠나면 술을 따르고 술을 따르는 기녀가 될 것인데 그래도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김유신의 첫사랑(?) 천관녀와의 사랑은 너무나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천관녀가 이름일까? 미안한 이야기 지만 천관녀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하늘을 보고 천문을 연구하며 왕에게 보고하는 요즘의 천문대나 기상청에서 근무하는 직무를 수행하는 관리인 천관의 딸이라는 뜻이지 천관녀가 이름이 될 수 없다. 이를 재대로 분석한 박창화는 화랑.. 더보기
대왕의 꿈, 김춘추 부 김용춘(용수) 일까? 천명공주만 안다? 대왕의 꿈이나 대부분의 사극에서 김춘추의 아버지를 김용춘이라고 하고 김용춘과 김용수를 다른 이름을 가진 동일 인물이라고 한다. 물론, 그런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릴 적 이름과 성인이 되었을 때 이름은 다른 경우가 많다. 글쓴이도 2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조카도 집에서 부르는 이름과 가족등록부에 올라있는 이름이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글쓴이(갓쉰동)이 다른 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예전에도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김용춘과 김용수는 동일인물이 절대로 될 수 없는 기록들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용수와 용춘의 기록들을 다 뽑아 보자. 그럼 확실히 이들이 동일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622년 진평 44년(622) 봄 2월에 이찬 용수(龍樹)를 내성 사신(內省私臣.. 더보기
대왕의 꿈, 나이많은 유부 김서현과 도망친 김유신 어머니 만명 - 성골,진골 죽여야 신라 보인다 대왕의 꿈에서 김춘추를 진골이라고 한다.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를 때 성골남자가 없어서 선덕이 왕위에 올랐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김춘추를 진골출신의 왕족으로 왕위에 올랐다고 하는 게 그 동안의 통설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버려야할 통설일뿐이다. 역사스페셜에서는 김춘추도 성골로 만들어 만들어 버렸고,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를 때 김춘추를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직접적인 왕권과 관계가 없고 귀족간의 암투 때문이라고 얼버무린다. 김춘추가 성골인지 진골인지는 알 필요가 없다. 김춘추는 진지왕의 아들인 김용춘의 아들이다. 사실 김춘추가 김용춘의 아들인지 김용수의 아들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김용춘과 김용수는 동일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진평왕의 딸 천명공주의 아들이다. 왕족과 왕족간의 자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