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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에서 대단원의 황산벌 전투가 벌어졌다.

 

그런데 계백이 화약을 묻어 두고 화살로 쏘아 터트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황당한 설정은 제발하지 말기를 바란다. 차라리 비행기 날리고 땡크를 몰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재미를 위해서 넣었다는 것을 알겠지만, 스스로 극의 개연성과 리얼리티를 해치는 것이니 말이다.


글쓴이(갓쉰동)은 예전에 백제에서 오석산을 구입했다는 죽간을 발견한 기사에 백제는 마약을 제조했다는 연합뉴스 김태식의 기사에 그럼 차라리 화약을 제조했다고 하지 그러냐는 비판적인 기사를 송고한 적이 있다.


<계백>에서도 오석산을 태우거나 병사들에게 일시적으로 힘을 쓰게 하는 물건이라고 파는 장면이 나온적이 있다. 오석산은 도교와 밀접한 물질일 뿐만 아니라 오석산 중의 웅황은 요즘으로 치면 화약의 재료이기 때문이다.

사실 오석산을 태우면 위해가스가 발생한다. 주사(붉은색)은 황화수은으로 태우고 나면 수은으로 환원이 된다.  고대에 오석산에 집착했는지 알고 싶다면 아래 글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2010/04/13 - [역사IN드라마/선덕여왕] - 백제 마약조달 문서발견? 차라리 화약제조 문서발견

단약의 제조에 쓰인 수은은 고대에는 불사의 물질로 진시황의 무덤속에 중원의 산하를 만들고 수은으로 강을 만들었다고 하며 무병장수를 상징하여 연금술의 시초가 되기도 했었다.

 

<계백>에서 계백은 아내 초영을 죽이고 전장에 나간다. 이를 두고 작가는 배수진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가 이를 배수진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좋게 말해서 계백은 싸우기 전에 이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판적인 시각이라면 계백은 싸우기도 전에 지고 들어갔다고 할 수가 있다.

 

우리 장군께서는 부인과 자식을 죽이고 나왔다고 선전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들을 이끄는 장군이 부인과 자식이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 처자식을 죽였다는 뜻은 이 전투는 해보나 마나 진다는 것을 알려주고 사기를 저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음으로 싸워 승리를 쟁취하자고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계백은 그 동안 드라마 사상 최고의 조약한 전투신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황산벌 전투만은 그 이전 사극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의 물량공세를 하였다. <계백>에서 100억이라는 돈을 어디에 사용했나 했던 초반에 황산벌 전투신을 찍는데 과도한 물량 투여로 인한 돈의 부족이 아니였을까 한다.

 

어쨌든, 계백은 황산벌 전투에서 신라 어린 화랑 관창을 수없이 살려준다. 신라군의 사기를 살려줄 필요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실제 계백은 관창과 같은 어린 아이도 전장에 나아가 죽음으로서 나서는데 신라를 이길 수 없겠다고 말을 하며 탄식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계백의 말이 채록된 이유는 황산벌에서 항복한 충상. 상영 등 계백과 같이 있었던 인물에게서 전해 들은 말이지 않을까 한다.

어쨌든, 적의 어린 화랑을 죽이는 일은 적을 이롭게 하지만, 자신의 아군에 해당하는 처.자식을 죽이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이다.

 

계백의 푸념은 백제 당시의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계백>에서 은고가 황후책봉 때문에 신라에게 정보를 팔아넘겼다고 했지만, 삼국사기를 제외한 일본서기나 소정방의 대당평제비에는 은고가 충신을 죽이고  국정을 장악했다며 더 이상 백제를 위해서 싸울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계백이 관창의 예를 들어서 신라를 이길 수 없다고 말한 차이점이다. 문제는 계백 또한 백제를 지키고자하는 의지가 없었다. 더군다나 계백과 함께 출전한 좌평 충상과 달솔 상영은 계백과 다르게 항복하고 만다.

 

계백이 아내와 자식들을 죽이고 출전한 이유가 역설적이게도 백제의 마지막을 예시한다고 할 수 있다. 지킬 것이 없는 자는 의지가 발동이 되지 않는다. 계백에게는 이기고자 하는 의지도 지키고자 하는 대상도 없다. 이겨도 찾아갈 사람이 없다는 것은 스스로 죽겠다는 것 말고는 없었다.

 

부여효와 부여문사는 부여태가 당군이 있는 상황에서 왕을 참칭하자 곧바로 당에 항복하고 만다. 웅진으로 피한 의자왕과 부여융은 웅진방령 예식(예식진)과 함께 항복하고 만다. 계백과 함께 출전한 오천의 결사대 중 다수도 항복하고 만다.

 

끝까지 백제를 지키고자 한 사람은 부여복신와 여자진이였다. 달솔 이였던 흑치상지는 백제 부흥군에 참가했다가 배신하고 부흥군을 공격하는 선봉에 선다. 의자왕은 은고와 부여융, 부여태, 부여효 등 수 많은 귀족들과 함께 항복하고 당에 끌려갔다가 백제의 마지막 태자 부여융은 백제 부흥군을 진압하는 진압군으로 돌아온다.

한마디로 백제는 위로 부터 망할만한 구조적인 결함 투성이었다. 나라가 망할 때는 외부에서 보다는 내부에서부터 조짐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물론, 백제를 배신한 이들은 당으로 신라로 들어가 잘먹고 잘 살았지만 말이다. 역사는 끊임없이 충신을 기리고 충신이 나오길 바라지만, 대다수는 배덕자들이 잘먹고 잘산다. 독립군은 3대가 망하고 민족반역자들의 후손이 잘먹고 잘사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계백의 처와 자식이 신라군에 의해서 죽었다면 백제군의 사기와 분노가 올라서 악으로 깡으로 죽기살기로 덤벼들었겠지만 백제의 장군이란 사람이 자신의 처자식을 죽이고 나왔다면 볼짱 다본 것이다.

 

그런데 <계백>에서 계백김유신에게 어린 애들 이용하는 치사한 짓은 하지 말고 재대로 한판 붙자고 한다. 자신의 처자식도 죽여 백제군의 사기를 띄우려한 계백이 할말은 아니다. 실제는 백제군의 사기를 저하시킨 계백이지만 말이다.

 

아무리 좋게 봐도 계백은 충신일수는 있지만, <계백>에서처럼 전쟁영웅은 아니고 군사 전략도 그리 뛰어난 장수는 아니였던 듯 하다.


 


황산벌 전투는 7 9일에 벌어진 전투이다. 백제는 7 9일 이전 이미 신라군이 탄현을 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백제는 별동대 오천을 충상, 계백, 상영 등에게 맡기고 탄현을 넘어오는 신라 김유신이 이끄는 오만의 식량보급부대와 황산에서 대치를 한다.

 

백제는 백강(백마강)으로 밀려드는 소정방이 이끄는 당.신라 연합군 13만과 신라군 100여척을 맞이하여 2번의 전투에서 수만 명을 잃는다. 그렇지만, 소정방은 곧바로 사비성으로 진격하지 못하고 백마강(백강)을 경계로 사비성(부여성) 30리에 진을 치고 대치한다. 그만큼 백제에게는 두 번의 싸움에서 패했지만 아직도 싸울 군대가 남아 있었고 당.신라 연합군이 함부로 진격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황산벌에 진을 친 백제군은 3군데 진을 나눠서 대치하다 4번 싸우고 4번 신라의 공격을 막아 낸다. 문제는 3 군데 진을 친 군대 중 달솔 상영과 좌평 충상이 이끄는 군대가 신라에 항복해서 중과부족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신라도 백제와 고구려에 밀려 국가 위난시기에 있었다. 계백은 처자식을 죽이고 출전하지만, 김유신은 전장에 참가하여 귀환하는 도중에 다시 출전 명령을 받고 자신의 집을 지나쳐 가지만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단지 집의 우물 맛만을 보고 집이 안정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출전한다.

 

계백김유신을 가르는 지점은 위기의 순간에 나라와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치열함이다. 김유신에겐 치열함이 있었지만, 계백에게는 치열함도 없었다. 계백이 충신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백제의 마지막 전투에서 충상이나 상영이나 부여효, 부여문사, 예식진과는 다르게 죽음으로서 백제와 같이 했기 때문이다.

 

계백과 같은 이는 어떠한 국가도 추앙하는 대상이 된다. 나라를 위해서 순사한 자를 충신으로 추앙하지 않는다면 어떤 이들이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려 하겠는가? 조선의 이방원도 정몽주를 죽였지만, 만고의 충신으로 기리는 이유와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계백을 전쟁영웅으로 만들 이유는 없다.

 

사실 <계백>에서 계백612년에 태어난 것으로 설정을 하였다. 660년 나이가 50에 가까운 나이로 그렸지만, 이서진의 모습에는 49살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실제 계백은 나이가 많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계백이 나이가 많았다면 계백의 기록이 황산벌 전투에만 등장할 이유가 없다. 수 없이 많은 전쟁을 하던 시기였고, 드라마 <계백>처럼 계백이 뛰어난 장군이였다면 백제 마지막 어전회의에 한줄의 기사라도 있어야 하지만 계백에 관한 기록은 없다.

 

계백은 황산벌로 출전하기 전에 처와 자식을 죽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계백의 나이는 30대 전후 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대부분 전장에 나갈 때 자식들도 아비를 따라 전장에 참전하는 경우가 많다.

 

한 명의 병사라도 아쉬운 판에 자식을 죽이고 출전했다는 건 그만큼 계백이 나이가 어렸고 자식들도 어렸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또한, 흑치상지의 경우는 아버지의 직위를 계승해서 달솔이였고, 대대로 집안이 달솔이었다고 한다. 한때 백제부흥군의 영웅이였던 흑지상지의 경우 66031살에 불과했다. 백제는 조상의 지위를 계승하는 구조였던 듯하다. 아버지의 직위를 따라 계백도 조상대대로 달솔의 직위를 계승했을 것이다.

<계백>에서처럼 의자왕의 공적도 계백의 것, 윤충의 공도 계백의 것으로 백승장군, 천승장군으로 전쟁영웅을 만들 개연성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계백에 대한 전쟁영웅이란 환상은 깨어져야 한다.그렇더라도 백제의 마지막 충신 성충, 흥수와 더불어 계백이 빠질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계백>에서 은고는 계백과 만난후 자살하는 것으로 은고의 최후를 그렸다. <계백>은 끝까지 역사를 무시하기로 했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은고가 실존인물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은고는 임자나 조미압(조미갑)처럼 실존 인물이다. 삼국사기에는 등장하지 않고 일본서기에만 이름이 전해지고 있지만 말이다. <계백>이 은고을 악녀로 만든 이유는 소정방과 일본서기가 은고가 백제를 망국에 이르게 했다고 기술했기 때문이다.

[百濟王 義慈, 그 妻 恩古, 그 아들 隆 등, 그 신하 佐平 千福, 國辨成, 孫登 등 모두 50여 명이 가을 7 13일에 蘇將軍에게 사로잡혀 唐에 보내졌다
-
일본서기 660


그런데 <계백>은 의자왕과 계백과 은고의 치정극이 백제를 망쳤다고 그렸을 뿐이다. 문제는 은고는 의자왕과 그의 아들 태자 부여융, 부여태, 부여 효 등 왕자들과 신하들과 함께 당으로 끌려간다. 백제 망국의 일등공신인 은고는 당으로 가서 잘먹고 잘살았다. 삼천궁녀를 은고로 대치하고 싶은 작가와 제작자의 마음은 알겠지만, 개연성도 없다.

어쨌든, 탈도많은 <계백>은 치정사극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지만, 처음 백제와 계백을 재조명하겠다는 기획의도와는 다르게 백제사를 망치는데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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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백의 푸념은 백제 당시의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계백>에서 은고가 황후책봉 때문에 신라에게 정보를 팔아넘겼다고 했지만


2010년 백제 수도인 사비(부여)에서 새로운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기사화 되었다.

그런데 발굴유물 중 목간1점에서 "오석(五石)90근"이란 글자가 보였다.

발견된 목간의 <오석>을 연합뉴스 박태식 기자는 마약조달문서라고 자극적인 기사를 송고하였다.

이를 받아쓴 많은 언론들도 검증절차없이 백제시대 마약조달이라는 자극적인 기사를 남발하여 백제시대에 마약이 성행한 것 처럼 호도되고 있다.

목간 오석의 발견은 삼국시기 백제에서 도교가 성행했다는 고고학적 확증자료로써는 가치가 있는 획기적인 유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문제는 이를 해석하는데 백제가 "마약을 즐겨 복용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는 결론에는 도달할 수 없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동방문화재연구원(원장 김성구)은 부여군이 '사비119 안전센터'를 세울 예정인 부여읍 쌍북리 173-8ㆍ172-5번지 일대 1천35㎡(약 313평)을 발굴조사한 결과 묵으로 쓴 글씨 5글자가 확인되는 백제시대 목간 1점과, 목제 신발 1쌍, 목제 칠기 등을 발굴했다고 13일 말했다.

연구원 김성구 원장은 "육안 판독과 국립부여박물관에 의뢰해 실시한 적외선 촬영 사진 등을 볼 때 묵글씨는 '五石○十斤'(○는 미판독)으로 읽을 수 있으며 그 이하 부분 목간은 떨어져 나갔다"고 말했다.

오석(五石)은 다섯 가지 광물질 약을 섞어 만든 선약(仙藥)이라 해서 오석산(五石散)이라 하며, 혹은 그것을 복용하면 열이 나 차가운 음식만 먹어야 하기 때문에 한식산(漢食散)이라고도 하는 마약 일종이며 도교에서는 약효가 가장 뛰어난 선약 중의 선약으로 쳤으며, 중국에서는 특히 위진남북조시대에 복용이 유행했다.

이번 목간이 기록한 오석산은 무게가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백제사람들 또한 동시대 중국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약을 즐겨 복용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발견으로 평가된다. - 연합뉴스

 



도교 교리를 개척한 문헌으로 꼽히는 동진시대 갈홍(葛弘)의 저서 포박자(抱朴子) 중 금단(金丹) 편에서는 구광단(九光丹)이라는 단약을 만드는 재료로 등장하는 오석(五石)에는 독성이 강한 광물질들인 단사(丹砂.황화수은), 웅황(雄黃), 백반(白礬), 증청(曾靑), 자석(磁石)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연합뉴스 백제시대 '마약' 조달 문서 발견

오석은 기사에서도 나온것처럼 단사(주사), 웅황, 백반, 증청, 자석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 광물질은 도교에서 사용되는 오방색을 띄고 있다. 오방과 이에 따른 방위색은 도교에서 자연을 이루는 기본 구성으로 알려져 있다.

좌청룡= 증청, 우백호= 백반, 남주작=단사(주사), 북현무= 자석, 중황=웅황 처럼 각방위의 고유색에 해당하는 광물질을 이용해서 선인이 되는 <선약>을 구하는 것이 도교의 단약제조비법인것이다.


이들 오석에서 나오는 색감 때문에 도교의 단약뿐만 아니고 안료, 도료로써 단청을 칠하는데 사용하거나 그림을 그릴때도 사용된다.

백제 대향로


또한, 이들을 복용한다고 해서 별다른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실질적으로 오석을 태우면 독성물질이 발생한다. 태우지 않는다면 인간에게 별다른 위해를 가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고 마약과 같은 효과를 발휘하지도 못한다.

오석을 태우면 단사(주사)에서 나오는 황화수은이 황과 수은으로 분리되고 검출되어 백색의 단약처럼 자연계에서 보기드문 살아있는 금속인 수은이 만들어 진다. 

하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오석을 태울 때 나오는 황화수은의 수은증기와 황성분은 위독성물질이 되고, 웅황과 황화수은에서 깃든 황성분으로 인해서 마약과 같은 환각증세를 보이고 과도하게 호흡기를 통과하였을 시  끝내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밀폐되지 않는 열린공간에서 오석을 태운다면 마약과 같은 영향은 없다.

단지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는 있다. 생각을 해보라, 오석을 태울때 나오는 황냄새와 연기를 또한, 오석을 태우고 난 후 물처럼 움직이는 은백색 수은을 본다면 놀라지 않을 백성들은 없을것이다. 향로에 오석을 태우는 행위는 통치수단의 일환이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석을 태우고 생성된 수은은 아말감기법으로 금도금을 할때 사용된다. 대부분의 삼국시대 불상은 아말감 기법을 이용한 금동불상이였다. 그러니 단순히 오석만을 가지고 도교와 연결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차라리 백제가 연금술사를 배출했다는 결론에는 도달할 수는 있다.

위의 기사대로라면 오석중에 포함된 웅황을 예로 들어 백제시대에 화약을 제조했다고 해도 할말은 없게 된다. 왜냐하면 웅황은 화약의 재료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또한, 연합뉴스의 기사대로 라면 신라는 마약제조 수출국이 되고 만다. 신라는 당나라에 오석의 하나인 <자석>을 대량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9년(669) 봄 정월에 신혜법사(信惠法師)를 정관대서성(政官大書省)으로 삼았다. 당나라 승려 법안(法安)이 와서 천자의 명을 전하여 자석을 구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9년

이를 두고 당나라가 백제와 신라를 친 이유는 마약을 챙취하기 위한 전쟁이거나 신라가 마약을 제조하기 때문에 당나라가 마약 제조국 백제.신라를 쳤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 비료를 만들때 필수불가결한 물질을 가지고 대량학살무기를 제조한다고 이라크를 침공한것과 별다른 차이도 없다. 

또한, 현대 대한민국에는 향정신성 의약품이 많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마약공화국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석도 백제 당대에는 치료약이나 벽사나 수은을 채취하기 위한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기사라면 수서에 기록된 백제 관련 기록중에서 백제는 도사가 없다는 기록에 반하여 백제시대에 도교가 퍼져 있었을도 있다는 결론만이 도출될뿐 마약제조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또한, 수서의 기록이 맞다면 백제는 수나라 (618년) 이후에 도교가 퍼졌다고 할 수 있다. 수서에서의 도사의 언급은 수나라 시기 도사(도교)가 발달하고 있었는데 수나라와 다르게 백제에는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목간이 발견된 장소는 백제의 최후의 수도인 사비(부여)(538~660년) 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백제 마약조달 문서 발견이란 전혀 역사에 부합하지않는 내용의 기사가 나온것이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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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oravy.tistory.com BlogIcon 하수 2010.04.13 12: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뜬구름 없는 기사네요. 잘 보고 갑니다.

  2. Favicon of https://ellif.tistory.com BlogIcon Ellif 2010.04.13 12: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는 글 잘 봤습니다.

  3. a 2010.04.13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연합뉴스 김태식이 신라,조선만 옹호하는 경향이 크지
    언론에서도 유명한 식민사관 옹호자 김태식

  4. Favicon of http://waarheid.tistory.com BlogIcon 펨께 2010.04.13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이없는 기사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ㅊㅊ

  5. Favicon of https://eejemap.tistory.com BlogIcon 잡학왕 2010.04.13 22: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이런기사 한두번인가요.....이젠 놀랍지도 않습니다....

  6. Favicon of https://kwanghan.tistory.com BlogIcon 쿠니미 2010.04.14 08: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게 그런거였군요.여기서 이런내막을 몰랐으면 믿을뻔..

  7. Favicon of https://toyvillage.net BlogIcon 라이너스™ 2010.04.14 1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휴... 좀 어이가 없네요.;;
    잘보고갑니다. 날씨가 살짝 춥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따뜻한 봄날되시길^^

  8. Favicon of http://www.smpark.kr BlogIcon 풀칠아비 2010.04.14 1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 기사가 있었는지도 몰랐지만,
    이 글 읽지 않고 기사를 접했다면, 비판적 시각을 가지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잘 배우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9. Favicon of https://rgm-79.tistory.com BlogIcon RGM-79 2010.04.14 15: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사에서 마치 현대의 마약이 상용된 것처럼 지나치게 쓴 것은 사실이지만
    (기자의 성향상)
    한식산이 마약으로 쓰인 것도 사실입니다.
    위진남북조에서 당까지 많은 이들이 한식산을 복용한 후
    왕희지네 가족들처럼 등이 썩는 증세로 고생하다 죽거나
    몇몇 군주처럼 정신착란으로 살인을 하거나
    죽립7현이 부모가 죽었을 때도 술만 마신(중금속 중독으로 인한 기갈현상) 사례들이 많습니다.

    다만 종교적으로 새로운 삶을 얻기 위해(현실도피) 먹었다는 것이 미묘하게 다르기에
    마치 현대의 마약중독과 같다고 한 것은 잘못이죠.
    맨 마지막에 수서 기록 운운하며 부정한 것은 불교전래 과정과 대조해도
    맞는 얘기가 아닙니다.
    상당히 저변화가 이루어진 이후에야 기록에 부각되어 나오는 패턴입니다.

  10. Favicon of https://iconiron.tistory.com BlogIcon 레오 ™ 2010.04.14 15: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낚시글이 진화해서 이젠 폭탄글이 된건가요 ...마약조달 문서라니 ..충격입니다

  11. 지나가는 과객 2015.04.19 2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오석산五石散이 마약으로 쓰였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2. 백제의 도교 수용은 기록 보다 훨씬 앞선 시기입니다. 백제 장수 막고해도 도덕경의 구절을 알고 있었으며, 무령왕릉 등에서 보이는 도교적 냄새가 풍기는 유물들만 봐도 이미 한성~웅진시기부터 백제에는 도교가 번청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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