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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최근 MBC에서 6.6일 현대카드 주최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메달리스트 아이스쇼를 선전하고 있다.

김연아를 제외한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종목 금메달 리스트들이 참여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동계 올림픽의 꽃인 여자 피겨스케이팅 금메달 리스트인 김연아는 왜 한국에서 열리는 아이스쇼에 참여를 하지 않고 캐나다 토론토로 떠났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을 것이다.


원인은 현대카드와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인 IMG와 악연이 자리잡고 있다.

피겨팬들 사이에는 IMG와 현대카드 아이스쇼는 금기의 단어이다.

김연아는 처음 매니지먼트 계약을 한 회사는 글로벌 매니지먼트 회사인 IMG였다.
하지만, 에이전트인 IMG는 김연아에 어떠한 도움도 준적이 없었다.

이름만 올린 매니지 먼트회사 였던 것이다. 오죽하면 김연아를 지원하려는 사람이 김연아에 개인측에 연락할 방법을 찾아 지원을 하였겠는가?


봉이 김선달도 IMG에 비교하면 게임이 되지 않는다. 지원이나 관리는 하지 않고 김연아로 부터 얻은 소득만을 취하는 형태를 보여주고, 떠난 김연아를 향해 20억대 소송을 하였으니 말이다.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가 올댓 스포츠(AT Sports)를 세우고 곽민정과 김해진 등 후배양성에 나선 결정적인 이유가 IMG와의 악연으로 부터 시작되었는 지도 모른다.


2007년 현대카드는 김연아를 아이스쇼에 게스트로 출연시켰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이스쇼가 있는 목동의 빙상장의 지붕에 불이 났었다. 그래서 당연히 아이스쇼는 취소되었다.


(2007년 9월) 14일 경찰 및 양천소방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50분쯤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 지붕에서 불이난 뒤 24분만에 진화됐다.

불이 난 목동 아이스링크 경기장에서는 이날 오후 7시 30분부터 김연아 선수 등이 참가하는 '현대
카드 슈퍼매치Ⅴ-07 슈퍼스타스 온 아이스' 공연이 열릴 예정이었으며 오후 1시부터는 김연아 선수 등의 리허설이 예정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2007년 9월 14일


문제는 아이스쇼가 취소하는 과정에서 두드려 졌다. 아이스쇼를 주관하는 현대카드와 세마는 자신들의 초대손님인 김연아로 하여금 언론에 노출시키고, 불이나서 아이쇼를 하지 못하게 된 데에 사과회견 하도록 강요를 하였다. 


이때, 김연아의 나이는 한국나이로 18살이였고 만으로 16세의 어린이에 불과 했었다. 자신들이 주관을 하고, 어린 초대손님에게 사과를 시키는 어처구니한 일이 발생한것이다.



2007년 4월 전 소속사인 IB 스포츠와 계약을 맺고 밀려드는 광고와 외부 일정관리 등 외부 관리를 위탁하였다.

하지만, 2007년 12월 한국 IMG는  김연아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이 주관하는 (현대카드) 아이스쇼에 출연을 하면 소송을 취하하겠다는 협박을 지속적으로 하였다. 그렇지만, IMG와의 소송은 김연아의 승리로  진행중이고, 현재 IMG는 대법원에 상고하여 최종 판정을 앞두고 있다.

김연아가 아이비(IB 스포츠)와 계약 후 현대카드와 IMG는 항후 아이스쇼에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협박까지 했다는 것은 공공연히 떠다니는 이야기다.

김연아와 소송중인 IMG는 2010년 현대카드 슈매 올림픽 메달 리스트 쇼에도 김연아를 이용해서 선전을 하였다.  김연아를 아이스쇼에 초대를 하였지만, 김연아 측에서 거부하고 응답이 없었다고 말이다.  자신들은 초대를 하였지만 참여여부는 김연아가 해야한다고 공을 넘겨 버렸다. 한마디로 책임은 김연아에 있지 자신들에 없었다는 뜻이다.

소송 중인 당사자에 소송을 취하하는 댓가로 아이스쇼에 출연을 강요하고, 소송중인 당사자에 자신들의 쇼에 초대를 했다고 언론플레이를 한다면 이를 이해하는 측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피겨팬들에게는 현대카드와 한국 IMG가 주관하는 아이스쇼는 터부이고 금기가 된것이다. 현대카드 주관 아이스쇼는 자비를 들여 가는 것은 바보취급을 받는다. 이유는 현대카드 아이스쇼는 대부분 현대카드 홍보를 위한 초대권 손님으로 구성되어 있고, 일반인에 판매되는 좌석은 극히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연아가 자국에서 벌어지는 현대카드와 IMG 주최 아이쇼에 출연하지 않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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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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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깨알같은 진실 2010.06.07 1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06년 3월에 연아선수가 주니어 월드 챔피언이 되고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그해 5월에 img와 계약을 합니다.
    그런데 이 img 의 행보가 수상해요. 선수측이 매니지먼트 계약으로 원하는 건 안정적인 훈련비 마련인데, 전혀 신경을 안쓰는 듯한.. 오죽하면 국민은행에서 연아선수 어머님께 직접 연락해서 후원계약을 맺을 정도였으니까요.(팬들 사이에서는 아사다를 키우려고 했던 img 측에서 미리 연아선수를 데리고 있으면서 '관리'하려했다는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그때 img의 변명이 "나이가 어려서 상품성이 없다"였어요. 그러나 선수측이 직접 체결한 국민은행 광고를 비롯, ib로 옮기면서 바로 광고를 찍어서 훈련비 마련에 숨통을 트이게 된 걸 그들은 뭐라 설명할지.... 쩝
    그 당시 IMG와의 계약이 정식계약이 아닌가 그래서 선수측에서 바로 해지하고 IB와 정식 계약을 했죠. 이때 IMG가 앞으로 아이스쇼등에 불이익이 있을거라고 협박한 건 실제 기사로도 났습니다. 그리고 기사와 같은 증거는 없지만 선수 어머니께는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더한 협박도 했지요. 그리고 곧바로 소송에 들어갑니다. 물론 상대는 Ib 지만 주목적은 연아선수 괴롭히기였지요.
    그러다가 07년 9월에 현대는 세마-img와 슈퍼매치를 개최하고, 연아선수의 인기를 무시할 수 없으니까 소송취하를 조건으로 쇼출연을 딜합니다. ib측도 이에 합의하고 연아선수가 쇼에 참여하게 된거죠.
    이때만해도 연아선수의 이름은 대한민국의 유일한 국제급 선수니까 홍보에 적극적으로 이용되기는 했지만, 엄연히 현대카드 슈퍼매치쇼였지요. 그런데 쇼당일 아침에 불이 나고 쇼가 취소되자 이 쇼는 바로 김연아쇼가 되어 그 어린 선수가 어른들 대신에 사과를 합니다. 현대카드란 이름은 쏙 빠지고... 그리고 연아선수가 대신에 마련할 수 밖에 없었던 롯데아이스링크 무료 공연... 이때는 또 다시 현대카드 슈퍼매치 플랭카드가 나부끼고 있더군요.. 지금 생각해도 어린 선수가 느꼈을 어른들의 야비함, 잔인함.... 씁쓸합니다.
    이렇게 쇼가 무산되고, 연아선수는 대표로 사과를 하고, 무료 공연을 하고 그렇게 마무리될 줄 알았는데, img는 약속을 저버리고 계속 소송을 합니다. 이 소송은 2009년 ib의 승소로 종결됐습니다. 거대기업의 김연아 물고늘어지기가 실패로 끝난거죠.

  3. 엠프 2010.06.07 1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극히 개인적으로 현대카드 이미지만 안좋아졌음 저에겐 그렇군요 쯧.
    img소송도 웃기는 일이구요.

  4. 깨알같은 진실 2010.06.07 14: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07-08시즌 캐나다에서의 안정적인 훈련으로 기량이 더욱 발전한 연아선수는 시즌 초반을 휩씁니다. 08년 월드대회에 가장 유력한, 그리고 독보적인 금메달감으로 떠올랐죠. 그런데 모두들 잘 아는 고관절 부상, 한달여의 치료 및 훈련 중단....................... 첫 점프를 뛰지도 못하고 넘어지고, 20 여초를 어슬렁거리기만 한 선수가 금메달 강탈... 이런 08월드 바로 직후에 현대카드는 아사다를 내세우며 철저히 연아선수를 배제하고 대한민국에서 아이스쇼를 개최합니다.
    사실, img가 앞으로 쇼에 불이익을 받을거라고 협박한 건 출연자로서의 기회를 주지않겠다는 거였는데, 연아선수는 당당히 자국에서 자신의 쇼를 개최하는 걸로 대응했습니다. 그러자 img가 주측이 되어 선수 뺴가기, 연아쇼 흠집내기 등등으로 방해를 일삼아온게 저 현대카드 슈퍼매치입니다.
    단순히 일본선수가 출연, 메인이 되어서가 문제가 아니라, (이것도 그 선수와 그 연맹이 피겨계에서 펼치는 암약때문에 간과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지난 3년간 저지른 일과 그 내막을 알기에 피겨팬들이 그 쇼를 외면하는 겁니다.
    현카측은 자신들의 아이스쇼가 한국의 피겨저변, 피겨문화의 확대를 위하는 쇼다. 피겨의 발전을 위해서는 대한민국에서 김연아 없는 쇼도 성공해야 한다고 그럴듯한 주장(제가 보기엔 얼토당토않은 궤변일 뿐이지만)을 하고,,, 이 아이스쇼를 외면하는 피겨팬들을 이성을 잃은 사람들 마냥 매도하지만...
    img의 기존쇼를 그대로 사오면서 토종쇼라고 우기는 쇼, 국내 어린 선수들 구색맞추기 식으로 참여시킬 뿐이면서 피겨발전을 위한다고 생색내는 쇼, 철저히 국내 탑선수를 배제하면서 그 선수의 이름값은 철저히 이용해먹는 쇼를 국내 피겨팬은 어떻게 봐야할까요. 연아선수의 이름을 당당히 건 김연아쇼의 티켓을 앞다투어 구매하려는 피겨팬들의 열정이 탐나면 그들이 지갑을 열게 만들면 되겠지요. 왜 우리쇼는 안봐주냐고 구걸을 할 게 아니라...
    쓰다보니 글이 영양가없이 길기만 하고 횡설수설이 되었습니다..;;;

  5. 드라몬 2010.06.07 1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겨팬이라면, 그리고 김연아 선수를 좋아한다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죠.
    정확하게 말해주셔서 정말 시원하네요.
    다른 포스팅을 보니까 몇몇 포스팅은 조금 자의적(?), 흥분하신 듯 보이지만^^;;
    정말 가슴을 뻥 뚫어놓게 만드는 포스팅이 많네요.

    ps-근데 광고가 너무 많아서 그런지 좀 느린 것 같아요 ㅠㅠ

  6. 연아화이팅 2010.06.07 1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사실이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널리 알려졌음 하네요.
    어른들이 어린 소녀한테 한짓이 아주 가관이었다는걸.

  7. 담이 2010.06.07 1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때도 이해가 안 됐더랬죠;
    아니, 김연아선수가 불 낸 것도 아닌데, 왜 사과를 하지?
    아- 집에 있는 현대카드 다 해지해 버리고 싶네요;

    일본 측에서 뭐 받았나;

  8. chwh 2010.06.07 1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장력이 너무 형편없으세요. 게다가 기본적인 표현력도 엉망이세요. 이 게시물을 읽는 도중 몇 번을 거슬러 올라갔네요. 예를 들어 "IMG와 현대카드와 악연"이란 표현은 둘이 반목한다는 얘긴데 결국 내용을 보면 김연아와 IMG&현대카드가 악연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얘기더군요. 읽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형편없는 글이라고 평가하고 싶네요. 이 글을 통해 김연아 선수를 괴롭히는 세력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는 것 하나에만 감사드립니다. 책 좀 읽으시고 문장력좀 기르세요.

  9. 시엘리 2010.08.20 1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chwh 트집 잡을께없어서 문장력어쩌고하면서 비꼬기라니.. 현대카드쪽 알바생인가바요 ㅋㅋㅋ

  10. 포도 2010.09.29 2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일이 논란이 된것은 2007년 현대카드 슈퍼매치 아이스쇼가 인부의 담배불로 인해서 화재가 나 취소가 되었던 일에, 인부는 세마스포츠에게 5억을 배상하라고 난 판결이 어제 김연아 아이스쇼 취소라는 제목과 내용들로 기사가 났기 때문이죠. 실시간 검색어에도 김연아아이스쇼 취소라고 올랐는데 최근 la아이스쇼 기획이 있는 김연아선수에게 피해를 줄수있는 대목이죠. 게다가 세마와 현대측에서는 김연아아이스쇼라고 한적이 없다라고 하는데 올해 5월 15일에 난 세마대표의 인터뷰 기사에서도 김연아아이스쇼라고 표기가 되어있다는 거죠..-> 이 기사 아래쪽에 보면 김연아 아이스쇼라고 되어 있습니다. http://news.donga.com/Sports/3/05/20100515/28361891/1?dis_box=7

  11. 포도 2010.09.29 2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의 기사들이 정상적인 보도라면 '현대카드 슈퍼매치 아이스쇼 취소 5억 배상' 이라고 기사들이 났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제의 오해를 줄수있는 기사들도 정정보도 되어야 정상인거죠.

  12. Favicon of http://blackcollegewire.com BlogIcon 천사 2012.01.02 07: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의 떡이 커 보인다

  13. Favicon of http://thefreakyfriends.com BlogIcon 윤석영 2012.01.07 0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

  14. Favicon of http://andre3000.on-the-web.tv BlogIcon 루시 2012.04.03 2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15. Favicon of http://albertsquare.is-a-geek.net BlogIcon 페이지 2012.04.05 1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채식주의자입니다.

  16. Favicon of http://zoe.forgot.her.name BlogIcon Alyssa 2012.05.09 0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아침입니다.

  17. Favicon of http://heaven.is-a-nurse.com BlogIcon Liliana 2012.05.11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습니다, 그것을 사겠습니다

  18.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niches/hairy.php BlogIcon http://www.pussy-dreams.com/niches/hairy.php 2012.07.21 2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민망할 정도로 형편없는 글이라고 평가하고 싶네요. 이 글을 통해 김연아 선

  19. Favicon of http://nextgenerationpestcontrol.com BlogIcon Next Generation Pest Control 2012.09.05 0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하면 게임이 되지 않는다. 지원이나 관리는 하지 않고 김연아로 부터 얻은 소득만을 취하는 형태를 보여주고

  20. Favicon of http://www.yarpaq.info/blog/view/24764/what-do-to-when-food-is-unusual BlogIcon ready to eat meals camping 2012.11.26 2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강력한 중범죄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만 형벌로서 하였다. 조선에서는 5개의 중형이 있는데 사형에 해당하는 대벽이 있고, 남자의 성기를 짜르는 궁형이 있고, 아킬레스건 처럼 발뒤꿈치 힘줄을 짤라 버리는 월형(비형)이 있고, 코를 베어내는 의형이 있고, 머리에 문신을 하는 자자(묵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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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만 올린 매니지 먼트회사 였던 것이다. 오죽하면 김연아를 지원하려는 사람이 김연아에 개인측에 연락할 방법을 찾아 지원을 하였겠는가?

사사로운 모든 연정을 끊는 유신

유신(엄태웅)은 덕만(이요원)에 대한 사사로운 연정을 끊고, 마지막으로 덕만에 개인적인 사감을 드러낸것을 용서하라고 하면서, 덕만과 뜨거운 이별의 포옹을 한다. 나이어린 놈이 늙은 덕만 누이를 희롱하다니.. 사실 기록을 검토하다 보면 유신(595년생)이  615년 이후 출생으로 생각되는 덕만 보다 20살은 많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의도하지 않게 가장 합리적인 모습이 유신과 덕만의 관계이다. 드라마상에는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했지만, 덕만만 천명의 출생과 같이 기존통설에 따라 580년대 초반으로 천명과 덕만이 출생한 것으로 인해서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말이다. 화랑세기는 덕만을 천명보다 한참 나이가 어린 동생으로 기술되고 있다.

어찌 되었던 드라마가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왕이기 때문에 여러신하를 낭군으로 둘 수 있었다. 이를 <삼서>제라고 한다. 드라마에서 처럼 유신이 사사로운 모든 연정을 끊을 필요성이 전혀 없었다.

화랑세기는 덕만의 남편으로 용수. 용춘을 비롯해서 을제 대등과 흠반갈문왕까지 최소 4명의 남편을 두고 있었다. 또한, 경주 김씨들이 자신들의 선조라고 주장하는 김인평과 조씨의 조상인 조계룡 또한, 덕만(선덕)여왕의 남편이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관심이 있는 분은  2009/07/22 -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미래 낭군에 죽음 당할 뻔한 덕만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선덕공주가 즉위하자 (용춘)공을 지아비로 삼았는데, 공은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물러날 것을 청하였다. 군신(群臣)들이 이에 삼서(三婿)의 제도를 의논하여, 흠반공(欽飯公)과 을제공(乙祭公)이 보좌(副)하도록 하였다. -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18대 실성왕때 사라진 비석

박혁거세의 유지가 담긴 사라진 비석에 대한이야기를 알천의 입을 통해서 드라마는 전하고 있다. 실성왕때 눌지태자가 정변을 일으켰다. 이에 실성이 비석을 가지고 토끼다 절벽아래로 떨어트리고 말았는데, 남은 구절은 "어출쌍생", "성골남진"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니 200년전에 사라진 비석이라는 설정이다.

삼국사기는 417년 18대 실성왕이 왕위에 있은지 17년 5월에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실성이 눌지를 없애려는계략을 꾸민다. 하지만 고구려군에 의해서 실성의 계략을 전해들은 눌지가 실성을 원망하여 돌아와 오히려 실성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삼국사기 딴지맨 일연은 삼국유사에 천만의 말씀, 눌지는 스스로 선것이 아니라 고구려의 지원을 받고, 고구려가 눌지를 세웠다고 기술하고 있다.

의희(義熙) 9년 계축(癸丑; 413)에 평양주(平壤州)의 대교(大橋)가 완성되었다.  왕은 전왕(前王)의 태자(太子) 눌지(訥祗)가 덕망이 있는 것을 꺼려서 이를 죽이고자 했다.  이에 고구려의 군사를 청하여 거짓 눌지에게 맞도록 했다.  그러나 고구려 사람들은 눌지에게 어진 행실이 있음을 알고는 창끝을 뒤로 돌려 실성왕(實聖王)을 죽이고 눌지를 세워 왕을 삼고 돌아갔다. - 삼국유사 18대 실성왕

월천의 지적호기심을 자극한 덕만

다시 드라마로 돌아가서 덕만은 월천에게 자신에게 정광력이 있으니 일식을 예측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월천은 "왜 그래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이는 격물(과학)을 하는 자는 정치에 이용만 당하는데, 미실과 다른 점을 덕만에 알려달라는 말이다. 월천은 562년 대가야 멸망시 자신의 조국인 대가야 사람에게 죽임을 당할 처지에 있었다, 하지만 적국인 신라의 사다함의 구원을 받은 처지이고, 사다함의 유지를 받은 미실의 보호아래 있었다. 그러니 미실을 배반(?)하면서 덕만에 귀부 할 수 있는 명분을 달라는 뜻이다.

하지만 덕만은 지적호기심이 강한 과학자 월천의 심리를 간파하고 있다.

덕만은 격물을 하시는 분은 <지적호기심>이 있으니 정광력을 보게 된다면 일식이 있는지 계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사실 과학을 하는 사람은 지적호기심이 크다.  글쓴이도 과학을 좋아라 하고, 공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지적호기심으로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상고사는 역사의 기록이 소략하여 미싱링크가 많다. 그래서, 소설가는 상상력을 발휘할 만한 여백이 그 만큼 많아지는 것이다. 또한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자료의 부족이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에 지적호기심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의 미스테리를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실증사학이다. 하지만, 현재 실증사학을 주장하는 자들은 문헌사학을 하지만, 그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이 결여되어 잘못된 통설을 남발하고 있다.

신라사의 가장 잘못된 통설은 성골과 진골, 화랑이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기존 통설을 뿌리채부터 부정하고 있다. 사실, 삼국사기를 세밀히 살핀다면, 성골/진골의 허구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동안 출고된 기사를 본 분들이라면, 글쓴이가 성골/진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추후, 성골/진골의 시발점인 삼국사기의 기록을 토대로 성골/진골은 없었다고 이야기를 할 것이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프로파간다를 프로파간다로 깨는 덕만

덕만은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으로 인해서 버려진 운명을 또다른 예언으로 운명을 헤쳐 나가려 한다. 하지만, 덕만은 어출쌍생이 나머지 비문의 뒷글 어귀에 있는 없어진 내용을 찾기 보다는 자신이 바람이 되어 내용을 조작하려는 마음을 품는다. 이런 것이 대국민 <프로파간다:선동, 선전, 언론조작 등 모든 언론 대응법을 말한다>에 해당한다.


베라의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은 진실에는 별반 관심이 없다. 그저 기자(?)들이 작문한 떡밥에 의해서 움직일 뿐이다. 그러니 덕만은 일식과 어출쌍생, 성골남진으로 미실과 대적하고 신라를 접수하려는 마각(?)을 들어낸다. 

월천은 덕만에 미실과 다른 점이 무엇이며 자신의 안위를 지켜줄 수 있는지 끊임없이 답을 요구하지만, 덕만은 아직까지 월천에 답을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단지, 일식을 계산하는 일은 덕만 자신의 일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위해서 꼭필요한 일이라고 한다. 
 
미실은 신라를 접수하기 위해서 천심과 민심을 여론조작의 과정을 밟는다. 죽은새와 궁성현판이 떨어트리고, 혁거세가 태어났다고 알려진 <나을신궁>앞의 '나정'에서 핏물이 솟구치게 하는 쑈를 펼친다. 이는 새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짐승이니 황실에 불길한 징조라고 한다. 현판이 떨어졌다는 것은 신국에 위기가 있다는 뜻이다.

진평왕시기에도 불길한 징조에 대한 기록이 있기는 하다.

587년 "여름 5월 뇌성과 벼락이 치고, 별들이 비오듯 떨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즘 같으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유성비를 보는 장관이기 때문에 카메라를 장착하고 때를 기다렸겠지만, 당시에는 하늘에 변고가 생겼다고 생각하고, 왕은 자신의 부덕함을 탓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을 것이다.

신라사를 보면 현판이 떨어지는 현상과 번개를 맞고 문이 무너지고 불타는 경우가 많다.

덕만은 미실의 '죽은 새'와 '현판 조작사건', '나정의 핏물', '비문조작'으로 대응하
려고 한다. 

죽은 새가 살아나 날아가는 현상을 보여준다면 미실의 권능은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런데 이게 어디선가 많이 봐왔던 장면 같지 않는가? 일종의 데자뷰인데, 사실은 김유신이 비담을 진압할 때 써먹던 떨어진 유성이 다시 하늘로 올랐다는 것을 차용한 듯 하고, 김유신이 당과 연합해서 백제를 칠 때, 계백의 5천 결사대에 발이 묶여, 소정방과 만나기로 약속한 기일을 맞출 수가 없었다. 

소정방은 김유신을 자신이 부릴수 있는 호기라고 생각하고 김유신을 압박하였다. 하지만, 김유신은 백제를 치기전에 당군과 대항하겠다며 17세에 단석산에서 얻은 신검을 꺼내 하늘을 찌르니 새가 떨어지고 오히려 소정방의 기세가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김유신은 소정방과 기싸움에서 승리한다. 단석산 신검에 관해 관심이 있다면 2009/08/19 - [역사이야기] - 유신, 덕만의 꼬임에 넘어가다, 그리고 선덕여왕의 비밀들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미생과 신관녀(설매)는 서로 밤하늘에 빛나는 흰새를 보고 "어떻게 했는가?"라고 반문한다. 하지만, 이는 미실에 대항하는 덕만의 계략이다. 덕만은 사막에 묻힌 사람의 뼈를 많이 봤다고 한다. 사람의 뼈에는 '인'이 있는데, '인"이 밤에 발광하는 것이다. 공동묘지의 도깨비불이 보이는 현상을 새의 날개에 칠해서 밤에도 발광하는 새로, 죽은 새가 하늘로 다시 올라갔다는 조작을 간단히 간파해 버린 것이다.


비담은 신국의 변이 있어 나정에서 신국을 위해 기도를 드린다. 그러면서 국민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돋보기로 종이를 태워버린다. 또한, 덕만은 비담과 작당하여 미실이 쓴 방법 그대로 땅속에서 불상이 튀어 나오게 하듯이 나정 앞에서 비문이 솟아오르게 한다. 내용은 200여년전에 사라진 혁거세 거서한 비문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이다"의 다음구절이 된다. 

개양귀천: 낳은 양이 하늘로 돌아면,  
일유식지: 일식이 있을 것이다.  
개양자립: 개양이 스스로 서니, 
계림천명 : 계림이 하늘의 명으로 ,
신천도래: 새로운 하늘이 도래할 것이다.


덕만은 서서히 미실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미실 당신이 대국민 조작을 한다면, 나도 충분히 미실과 같이 할 수 있다는 표현이다. 미실 또한 덕만의 조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서로 조작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순간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게된다. 덕만이 조작이면 미실 또한 조작이란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실과 덕만은 서로의 수를 계산하면서 어떻게 대국민 프로파간다를 하고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까? 고민을 하고 수 싸움을 하는 것이다.

현대에도 프로파간다는 존재한다.

최근 <미수다>에 출연중인 독일인 베라가 시애틀의 잠못드는 밤을 패러디한  <잠못드는 서울>을 독일어판으로 출판하였다. 논란의 대상은 일반적으로 베라의 말에는 관심이 없고, 단순이 언론찌라시 소설가들이 작문한 내용을 근거로 베라를 비난하기에 바쁘다,  베라의 글을 왜곡해서 번역했다는 블로거의 첫 번째 글이나, 그나마 바르게(?)하게 번역했다는 두 번째의 글을 봐도 베라를 비난할 만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찌라시 언론사에 있는 한 언론인(?)인 블로거는 베라가 당연히 할 말을 했고, 그정도는 용납되어야 하지 않는가라면서 국민들을 비판하면 안되냐? 네티즌들이 문제라는 류의 글을 올렸다. 처음에 글을 읽고, 같은 언론에 종사하는 자로서 자성의 모습이나, 같은 언론인으로서 언론인을 비판한 글인줄 알았다. 하지만, 오히려 찌라시 언론의 작문을 비판하기는 커녕 찌라시 언론에 놀아난 네티즌을 비판하고 있다.

최우선 비판의 대상은 찌라시 작가들이고, 이를 용인한 작가양성소(언론사?)이고, 이를 동료작가라는 이유만으로 용납한 찌라시연합회(기자연합회)이지, 찌라시의 낚시에 당해서 악플을 다는 국민이 될 수 없다. 네티즌이 비판받을 점은 무분별하게 찌라시를 기사로 믿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찌라시 작가의 일원이 할만은 아니다. 요즘 언론사 찌라시들은 얼굴도, 거울도 안 보는가 보다. 뻔뻔하기가 가히 당할 자들이 없다.



블러핑을 가지고 올인하는 덕만 

덕만은 비담에게 미실을 만나서 밀계를 할 것을 지시한다. 이에 비담은 덕만에게 자신의 어머니인 미실에 대해서 묻는다. "미실이라는 사람 그렇게 무서워?" 그러자 덕만은 미실은 "내속을 들여다 보는 것 같거든, 그러니 비담은 너의 속을 보이지 말라"한다. 그리고 비담의 얼굴을 분장하여 전혀 알 수 없도록 망가트리고, 가면을 씌어 적진 속에 들어 보낸다.

또한, 위기가 발생하더라고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 나오라고 한다. 덕만의 비정한 면을 보이는 듯하다. 이제 덕만은 미실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적을 치는 방법 중에 가장 좋은 방법이 적의 수단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증오하면서 닮아 가면 안된다 덕만..

진평왕 비슷한 시기에 일식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19년(572)에 사신을 북제(北齊)에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9월 초하루 경자에 일식이 있었다.  
삼국사기 본기 - 위덕왕
39년(592) 가을 7월 임신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삼국사기 본기 - 원성왕
3년(787) 봄 2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 몸소 신궁에 제사지내고 크게 사면하였다. 여름 5월에 금성[太白]이 낮에 나타났다. 가을 7월에 누리가 곡식을 해쳤다. 8월 초하루 신사에 일식이 있었다.

덕만은 미실이 월천도 빼앗기고, 상천관도 죽여 없는 상황에서 월천이 일식을 계산했을지 안했을지 불안한 점을 파고든다. 미실에게 비문의 <일유식지> 부분으로 일식이 있겠다는 것을 믿게 하고, 비담에게 일식이 적혀 있는

서찰을 이용해서 확실하게 "돌아오는 보름날 오시에 일식이 있다"는 것을 믿게 만들고, 미실이 일식이 있다는 날에 일식이 없음으로 해서 미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다.

이제 죽이려드는 미실과 속이려 드는 비담의 모자상봉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왜? 우리의 알천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띄워야할 월야의 분량이 적은거양 ㅠ.ㅠ. 미실과 비담의 관계를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2009/08/04 - [역사이야기] - 카리스마 비담, 미실이 버린 아들? 사실은 기사를 일독하기 바란다.


진평왕시기에 있었던 하늘의 뜻 (천명)

끝으로 당시에 하늘의 뜻으로 알았음직한 기록중 진평왕 시기의 기록을 살펴보는 것도 잼있지 않을까한다.

7
년(585) 봄 3월에 가물었으므로 왕이 정전(正殿)에 [거처하기를] 피하고 평상시의 반찬 가짓수를 줄였으며, 남당(南堂)에 나아가 몸소 죄수의 정상을 살폈다.


8년(586)  여름 5월에 천둥과 벼락이 치고 별이 비오듯이 떨어졌다.

11년(589) 봄 3월에 원광법사(圓光法師)가 불법(佛法)을 배우러 진나라에 들어갔다. 가을 7월에 나라 서쪽에 홍수가 나서 민가 30,360호가 떠내려가거나 물에 잠겼고 죽은 사람이 200여 명이었다. 왕이 사자(使者)를 보내 그들을 진휼하였다.

18년(596) 봄 3월에 고승 담육(曇育)이 불법을 배우러 수나라에 들어갔다.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겨울 10월에 영흥사에 불이 났는데, 불길이 번져 가옥 350채를 태웠으므로 왕이 몸소 나아가 진휼하였다.

31년(609) 봄 정월에 모지악(毛只嶽) 아래의 땅이 불에 탔다. 그 넓이가 네 보(步)이고 길이가 여덟 보였으며 깊이가 다섯 자였는데, 10월 15일에 이르러 꺼졌다.
 
35년(613) 봄에 가물었다. 여름 4월에 서리가 내렸다.

36년(614) 봄 2월에 영흥사의 흙으로 만든 불상이 저절로 무너지더니 얼마 안 있어 진흥왕비인 비구니(比丘尼)가 죽었다

37년(615) 겨울 10월에 지진이 일어났다.

49년(627) 봄 3월에 큰 바람이 불고 흙이 비처럼 5일 넘게 내렸다.  8월에 서리가 내려 곡식을 죽였다.

50년(628) 여름에 크게 가물었으므로 시장을 옮기고, 용을 그려 비내리기를 빌었다. 가을과 겨울에 백성들이 굶주려 자녀를 팔았다.

52년(630) 대궁(大宮) 뜰의 땅이 갈라졌다.

53년(631) 봄 2월에 흰 개가 궁궐 담장에 올라갔다. 5월 흰 무지개가 궁궐 우물에 들어가고 토성이 달을 범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26대 진평왕 579 - 632년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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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8.25 07: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국, 덕만도 미실이 했던 방법을 그대로 답습함으로써, 여론의 힘을 빌리려 하는 걸 보면
    덕만이나 미실이나 권력을 쥐게 되면 누가 나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 그 기준이
    참 모호해지죠. 덕만이 이 모순된 자기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지가...관전 포인트...^^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5 07: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프로파간다를 이야기했고, 마각(?)이란 표현을 쓴건뎅.. 캐치를 하셧군요..

      작가가 어떻게 풀어갈까 궁금합니당.. ㅋㅋ

  2.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朱雀 2009.08.25 08: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고 추천 누르고 갑니다.
    앞으로도 자주 자주 올려주세요. 제 하루의 낙 중에 하나입니다. ^^

  3. Favicon of http://www.ilovenews.co.kr BlogIcon 대한민국 황대장 2009.08.25 0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런 포스트를 작성하시려면 엄청난 노고가 필요할 듯...
    저야 그냥 아는대로 설래발래 쓰는 글인데도 시간이 걸리는데요.
    자료 찾고 또 풀어가시려면...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5 11: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는 직접 블로그 입력창에서 글을 쓰는데. 도대체 몇페이지 정도 될까하고,, 워드에서 봤답니다..

      그림 없이.. 딱 5페이지더군요.. 이정도 길이면 글을 읽기에 불편한 글이지요.. ㅋㅋ

      암튼 쓰는데는 별로 시간이 안걸리는뎅.. 자료를 찾는데 시간을 보내기는 합니다..

      저의 전공으로 돌아갈까 생각중.. 저의 전공은 이슈에 대한 시사성 글인뎅.. 그런글은 단10분이면 족하자 잖아요..

      암튼 오늘도 별로 호흥(추천)을 못받는 군요.. 도도한 네티즌들 때문에.. 그들은 손가락에 황금 기부스를 해서 손가락이 천금과 같이 무겁습니다.. ㅋㅋ

  4. 뚜벅이 2009.08.25 0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식은 일어난다.

    비담은 일식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미실에게 일식이 있을거라고 믿게 만들러 들어간다.
    비담의 목적은 미실에게 "일식이 일어날 것이다." 라고 속게 만드는 것.
    그러나 미실은 비담의 속내를 간파하고 "일식은 없다"라고 선언할 것이다.
    더불어 그 비석의 이야기가 허구임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석에는 일식이 있을거라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결정적인 순간에 일식이 일어나서 미실이 하늘의 뜻을 받고 있지 않음을 증명하고,
    비석의 예언 처럼 또 하나의 계명인 덕만이 나설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ㅎㅎㅎ
    믿거나 말거나... ^^

    결국 덕만은 미실을 속이기 위해 비담부터 속인 것이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가겠지만, 이것이 후일 비담이 덕만에게 등을 돌리게 되는...
    즉, 자신의 목숨이 이용당했다는 것 때문에 인간적인 신뢰를 잃게 만드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5 1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뚜벅이님 저의 생각도 비슷하긴 하지만 ㅋㅋ
      일식은 있지만 한참 비담이 죽어가는 순간..에..

      비담을 화형을 시키는 장면도 잼있어요.. 김유신의 불쇼가 을 차용한 것 같거든요.. 문희와 춘추를 엮어주는..

      시간차 공격은 조선 세종의 일식사건을 차용하는 것 같공..

      암튼 이런류는 오늘 보고 나면 쓰게 되겠지요.. ㅋㅋ

    • 뚜벅이 2009.08.25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 생각도 그 때일듯 합니다.

      1. 비담은 최선을 다해서 미실에게 일식이 일어난다고 믿게 하려 한다.
      2. 미실은 비담의 속내를 간파하고 일식이 없다고 확신한다.
      3. 미실은 공개적으로 덕만등에 과시하기 위해 비담을 묶어 놓고 비담의 말처럼 일식이 일어나면 살려주고, 일식이 일어나지 않으면 죽인다고 협박한다.
      4. 비담이... 그 상황에서 어찌 할지는 좀 미지수구 ^^
      5.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일식이 일어나고, 비담은 목숨을 구한다.

      이렇게 되지 않을까요? ^^

      디테일이야... 오늘 보면 알겠죠. 어차피 사실의 추리가 아니라 작가의 생각을 추측하는 거니까... 틀리면 생각이 다른거구요 ㅋ (책임회피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5 13: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당. 그냥 상상해보는거지요.. 소설을 일부러 읽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허접해서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지만..

      읽고 나면 스포의 유혹을 느끼거든요.. ㅋㅋ

  5. Favicon of https://zazak.tistory.com BlogIcon 朱雀 2009.08.25 11: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오늘도 메인에 뜨셨네요. 축하드립니다.
    정성과 정보가 가득 들어간 글이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시길~^^/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5 11: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가요? 요즘은 안보내주던뎅.. 왠일이래용.

      저야 ㄳ 할 따름이지만.. 제글은 메인에나 노출되야 그나마 추천이.. ㅠㅠ.. ㅋㅋ;;;


      주작님도 행복한 날 되시길..

  6. Hiro 2009.08.25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뚜벅이님같은 생각을 했었는데..^^ 보름날 오시에 일식이 일어날 것 같단 말이죠.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계속 지켜보게 되네요.
    어제 조금 아쉬웠던 거라면, 덕만이 월천을 설득하면서 자신은 미실과 어떻게 다른지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덕만 스스로도 자신이 미실과 다른점을 말하지 못한다면, 단지 공주이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화랑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아직까지는 덕만이 목적도 분명치 않고, 공주가 되어서 복수하겠다는 마음에 휩싸인 것처럼 보여 조금 불안합니다.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정말 영양가 있는 포스팅이에요.ㅎㅎ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5 1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이제 미실의 마지막 반격을 기대해 볼 차례 같습니당.. ㅋㅋ

      영양가가 너무 많음 안되는뎅.. 적당해야지용.. 과식은 금물.. ㅋㅋ

    • 이클립스 2009.08.25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식이 일어난다에 한 표 걸면...

      지금 감금상태의 월천대사가 소일거리로 일식을 계산할 것 같습니다.
      덕만에게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제 버릇 개 줍니까??
      덕만은 몰카로 그 장면을 목격하고
      비밀파일을 입수하게 되죠. 어러면 궂이 설득이 필요없을지도...

      요즘 더위먹어서.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5 13: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용.. 왜 덕만은 월천을 멋찌게 꼬시지 못했을까요?
      어린 유신도 꼬셨는뎅.. ㅋㅋ

  7.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25 12: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실과 덕만공주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군요...

    근데... 제 생각에는 덕만공주 나이가 왕이 될 때는 20대 중반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당태종이 덕만공주가 나이가 많은데... 짝이 없다고 우롱했다는 부분을 생각하면요...

    뭐... 하나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25 13: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태종이 덕만이 나이가 많아 우롱했다는 부분은 없거든요..

      태종 즉위사절단인 신라에만 주었다는 것도 억지지요.. 예전에 썼지만.. 덕만의 자격지심이지요..죽을때..

      암튼 권력을잡을때 20살 안팍이였을 것으로 추측은 됩니다.. 아무리 많이 먹어동..

  8.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25 13: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내용이야
    이미 탄탄한 블로그로 정평이 나 있으니...
    "갓쉰동"
    무척 좋은데...
    "이반의꿈"
    못지않게 좋군요.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9.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25 14: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이곳에서 먼저 공부를 하고 글을 썼어야 했어요.ㅜㅜ
    저도 덕만과 유신이 굳이 이별을 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했는데(둘이 사랑못할 이유는 또 딱히 없거든요)
    아무리 드라마라도 그런 무리수는 두고 싶지 않았나 봐요.
    덕만이나 미실이나, 예전이나 오늘이나 여론이 큰 힘인 것만은 분명하죠?

  10. Favicon of https://manzzang.tistory.com BlogIcon 도희. 2009.08.25 15: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ㅎㅎ

  11. 오타 수정요 2009.08.25 1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장을 다시 한번 손보셔야 할듯. 너무 오타가 많아서 읽기가 거북하네요. 조사나 어미를 왜 그렇게 신경않쓰셨는지 ㅡㅡ;

  12.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3. Favicon of http://nextgenerationpestcontrol.com BlogIcon Green Pest Control - Next Gen 2012.09.05 0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 조금의 지원만 있다면 어떤 종목에서던 세계최고 수준의 도달할 수 있다. 물론, 개인의 역량

선덕여왕 미실(고현정)과 덕만(이요원)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고대하고 기다리던, 모녀상봉인 마야왕후와 덕만이 만났다. 예고편에는 덕만이 공주의 신분을 알고도, <어출쌍생>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중악으로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극이 흥미진진 접입가경으로 흐르고 있다.


그동안 글쓴이는 덕만과 천명이 어미가 다른 형제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증명하였다.

그런데 덕만이 몇살때 왕위에 올랐는지는 확증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성조황고(聖祖皇姑)때문이였다. 그중에 <황고: 왕의 시어머니 뻘여자 자식이라니>

<성조황고>의 일반적인 해석은 성스런 조상을 둔 임금의 시어머니(姑)라는 뜻이 된다. 설마, 덕만이 진평의 시어머니뻘은 아니지 않는가? 아니면 진평의 나이만큼이라도 되었단 말인가?

아무리 천명과 덕만이 어머니가 다른 자매라고 주장을 하고 증명했지만, 시어머니뻘을 어떻게 해석할까의 의문이 걸릴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슬퍼하는 천명(박예진)


그래서 덕만이 현재의 30대~40미만 이라면 충분히 시어머니뻘 소리를 들을 수있겠다는 생각이였다. 또한, 당시 신라사회에 일반적으로 이뤄진 조혼의 풍습 때문이였다. 박혁거세도 13세에 왕위를 이였고, 그의 부인 알영도 혁거세와 같은 나이에 왕후가 되었다. 그러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면, 충분히 충분히 시어미(姑)를 쓰기에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문이 생기는 것은 선덕왕 즉위원년 인 632년 대신 을제의 국정관장, 634년 3년 기사를 보고, 30대초반 보다는 나이가 어리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들었다.

마야왕후(윤유선)

삼국사기에는 이해(634년) 진평왕이 584년 진평왕 6년 부터 사용한 <건복> 연호를 <인평>으로 바꾸었다.그래서 진평왕이 나이 어린 13세 전후에 왕위를 이었을 것으로 다들 추측하고 있다. 연호를 바꾸는 행위는 진흥왕

진평왕(조민기)

이 7살에 왕위에 오른 후 법흥의 딸이며, 어머니인 지소태후의 수렴청정에서 벗어난  551년 진흥왕 12년, 연호를 <개국>으로 바꾸고 있었다. 551년 이해가 삼국사기의 기록상으로 진흥(심맥종)이 18세가 되는 해이다.


그렇다면, 덕만도 즉위 3년차에 비로소 스스로 통치할 수 있는 나이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첫번째 의문이고, 결정적인 의문은 634년 이해에 <삼국유사>에 의하면 작은아버지 국반(진안)갈문왕과 결혼을 하였다는 기록이다. 

기존 통설로는 50세가 넘었을것으로 짐작하는 나이에 첫 결혼이라? 좀 의심스럽지 않는가? 덕만이 나이가 많았다면, 아무리 석녀인 덕만의 결혼한 남편도 있었을 것이고, 덕만보다는 사위왕을 선호한(?) 신라에서 남편을 냅두고, 덕만을 왕위에 오르게 했다?.  50세를 넘어서 자신보다 10살이상 많을 것으로 추측되는 작은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해서 무엇하게?


덕만에게는 즉위 3년인 634년이 그 어느때 보다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시기이다.

또다른 의문을 증폭시키는 사례는 즉위 초년에 행해진 처사 때문이다. 국정을 <대신> 을제에서 의지하고 있다. 진흥왕이 어미니인 지소태후에 의지하고, 진평왕이 모후인 만호태후에게 의지하고 있듯히 말이다.  그리고 독자적인 노선을 펼칠때 연호까지 바꾼다.

그렇다면 덕만은 634년에 몇살이 되는 것일가?

덕만(남지현), 천명(신세경)

아무리 늦춰 잡아도 20대초반 밖에 안되지 않는가? 그래도 걸리는 문제는 <황고>이다.  그래서 도대체 <姑:시어미고>를 당대에는 어떻게 사용하고, 현재 한자를 쓰는 중국에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아니면 또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어사전을 보고, 뒤통수를 크게 한방 먹은 충격을 받고 말았다. 글쓴이가 추측한 덕만은 어릴때 왕위에 올랐다는 것을 너무나도 쉽게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역시 안될땐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성현의 말씀이 또다시 뒤덜미를 잡는 순간이다.  

중국어 사전에서 姑의 활용 예
 [gū]  

시어미-고 부수: 女   총획수: 8

[번체]  부수: 女   총획수: 8

1. [명] 〔~儿〕 고모.

我的大姑到新疆支边去了。 - 우리 고모는 신장의 변경 개발을 지원하러 가셨다.
뜻풀이 검색결과 (1-5 / 총 13개)

고모(姑母)

[名] 1.  [gū mǔ]

고모부(姑母夫)

[名] 1.  [gū fù]

고식(姑息)

[名] 1.  [gū xī]

고종 사촌(姑從四寸)

[名] 1.  [gū biǎo]

내종(內從)

[名] 表兄弟姐妹  [gū biǎo xiōng dì jiě mèi]

 

我的大姑到新疆支边去了。 - 우리 고모는 신장의 변경 개발을 지원하러 가셨다.

大姑를 고모라고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해석을 할때는 큰시어니뻘 나이많은 어머니뻘 츠자 정도이다.
고종 사촌(姑從四寸) : 아버지 자매의 자식들

乡里子乡里样
촌 처녀는 촌티가 난다. 고자는 나이가 작은 여자 즉 처녀

顺得来失嫂意
올케에게 잘 보이면, 형수의 미움을 산다.
  • 관용구, 속담
    守好邻,学好邻,守着尼会参神
    좋은 이웃을 가까이하면 따라 배우고, 비구니가 옆에 있으면 참선(參禪)하는 것을 배운다.
  • 관용구, 속담
    舍不得娘,逮不住和尚
    처녀를 아까워하면 중을 잡지 못한다.

  • 니고 = 비구니, 고랑 = 처녀,고자= 처녀

    위의 사례를 볼때 姑는 그냥 성인 여자 를 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여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정을 일구고 살아갈 그정도 뜻이지 않는가?
     

    姑란 여자를 높여 부른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제 <시어미고:姑>가 가지고 있는 의문도 풀렸다.
    大姑를 고모라고 하듯이 <황고>는 진평왕의 시어미뻘이 되는게 아니라.진평왕의 시어머니뻘이라고 한다면 클날이지 않는가? 진평왕과 마야의 장녀는 진평왕의 시어미뻘이라니, 그러니 왕의 다큰 여식 또는 왕의 여식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조황고:聖祖皇姑>란 성스런 조상을 둔 황제의 딸 : 아들이 있어서 장가를 보낼 나이정도에 있는 것으로 해석해도 30세전후 라는 뜻이 되지만,진평왕의 뒤를 잇기에 핏줄에 하자가 없는 정통성 있는 진평왕의 다 큰(성숙한) 자식 정도이다.<황고>의 황과 대응하여 황제(진평)의 결혼해서 어른 노릇할 정도의 나이인 성인여식이란 뜻이다. 

    진평의 왕비와 후손들


    왜? 덕만이 왕위를 이을때 <성조황고>를 올리게 되었을까?
     

    칠숙(안길강), 소화(서영희)

    진평왕은 적통을 이을 만한 아들은 없었으나, 딸들은 넘치고 넘쳤다는 의미도 된다.또한, 진평왕 말년 631년 에 있었던 이찬 칠숙의 난으로 이를 무마시킬 무언가가 필요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관련족보들을 살펴본다면, 최소한 진평에게는 천명,?, 선화,덕만,덕만과 같이 마야왕후을 어미로 둔 동복자매 아우들 , 600년 이전 선화가 3번째 딸이라고 했으니 천명과 선화 사이에 둔 딸, 김인평을 남편으로 둔딸, 조계룡을 남편으로 둔딸 등 최소 7명이 그 흔적을 보이고 있다.

    그 많은 딸들 중에 적통을 이을 딸은 마야왕후 사이의 장녀인 정통성이 있는 덕만이라는 뜻이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여자라고 놀리지 말아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훌륭한 전왕의 딸이예요." 유행가 가사 같지 않는가? 그러니 덕만에 이찬 칠숙처럼 딴지(631년 반란)를 거는 행위는 하지 말라는 대국민 선언문이고, 덕만에 대한 국인(왕족과 귀족들)의 <충성서약문>인것이다. 
     

    알천(이승효)


    천명은 이전 왕후의 여식이나 후비의 소생이란 뜻이고, 정통성이 없다는 선언과도 같다. 이전 시리즈글 부터 읽어온 사람은 중복된 말이지만, 천명과 덕만은 같은 돌림자 자체도 없다. 또한, 진평의 딸이며, 진지왕의 아들인 용수.용춘의 남편이지만, 덕만보다 왕위계승에는 후순위가 된다. 자신의 아들인 춘추가 왕위에 오를때도 알천보다도 왕위승계서열에서 밀려 있었다.



    기존의 우리가 일반적인 상식이라고 알고 있었던 덕만과 천명
     

    덕만이 진평왕의 맞이라 했으니 천명은 덕만보다 나이가 어렸을 것이다.

    용춘(도이성)

    천명의 과 용춘(용수)의 아들인  춘추(603년)을 기준으로 덕만은 천명보다 나이가 많이 먹었을 것이다.그래서 <황고>라고 쓴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덕만이 공주시절 모란씨 서되 사건은 그냥 지어낸 이야기다,선덕여왕이 김춘추와 문희를 엮어준것도 여왕시절에 해주었다.

    50

    자연발화(shc)

    대의 늙은 왕인 덕만을 보고, 사랑에 빠질 인간은 없다. 그러니 영묘사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은 덕만과 혜공의 이적과 일체화 시키고, 지귀설화는 이전의 대지도론의 기사를 베낀것이다.분황사에서 발견된 바늘과 가위는 여자의 신물이기 때문에 넣어 놓은 것이다. 더 나아가 50세가 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634년 결혼은 작은아버지의 뒤배를 이용하기 위한 정략적으로 나이 많을 때 한것이고, 연호도 그때 바꾼것이다.출산을 염두한 행위는 결코 아니다.

    이말을 그냥 따라야 하는 것인가? 이야기들이 서로 미심쩍고, 화장실에 가서 똥을 다 눟지 못하고, 중간에 뒤처리도 못하고, 나온 찜찜함이 뭍어 있지 않는가? 

     

    딱한가지만 바꾸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문제.

    정확히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정확히 해석한다면 어머니가 다른 형제인 천명과 덕만이 있다.실제로 천명과 덕만이 같은 모후의 소생이라고 삼국유사와 삼국사기가 한줄이라도 언급한적이 없다.

    천명은 마야부인 이전의 왕후(후비) 소생이다. 그러니 천명은 덕만보다 충분히 나이가 많다. <
    성조황고>는 성스런 조상의 핏줄을 이어 받는 임금의 딸이며 여황을 말한다.

    덕만(이요원)

    성조황고는 우리시대에도 있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 국민교육헌장에 나오는 첫대목이다. 일종의 선언문이지 않는가? 우리들이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나긴했나? 그냥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과정에서 태어난거지 거창하게 역사적 사명을 띠우고 태어 났겠는가? 남.여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관계를 맺었겠는가? 하긴 요즘처럼 줄어드는 애들과 키우기 힘든 환경에서는 역사적인 사명을 감을 가지지 않으면, 애를 낳기가 힘든 시기에 도달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오죽하면 애를 낳는게 애국하는 지름길이라고 하겠는가?

    어찌되었던, <성조황고> 당시 충성서약을 뒤로 하고, 632년 원년 을제의 기사와 634년는 덕만 3년의 기사를 다시 읽어 보자.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을제(신구)

    선덕여왕 원년(632) 2월에 대신(大臣) 을제(乙祭)로 하여금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선덕여왕 원년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3년(634) 봄 정월에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바꾸었다. 분황사(芬皇寺)가 완성되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3년

    어떻게 읽히는가? 덕만이 왕위를 잇고, 직접통치를 못하고, 을제에게 의지했구나, 634년 진흥왕이나 진평왕의 사례에 비추어 덕만은 634년에 비로서 연호를 바꾸는 것으로 낭낭18세에 접어 들어구나,덕만은 634년 작은 아버지 국반과 결혼하는 것으로 보았을때 많이 잡아도 18세는 넘지 않았을 것이다. 영묘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덕만이였기에 삼국유사에 기록된 젊은 덕만과 지귀심화도 영묘탑 화재사건과 관련이 있구나. 이게 합리적인 해석이 되는 것이 아닐까?


    위의 다음 view로 송고된 시리즈 기사를 몇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덕만(남지현), 소화(서영희)

    첫째, 덕만은 진평왕과 정비 마야의 장녀다.

    둘째, 천명이 나이는 많지만, 정비인 마야의 소생은 아니다.
    셋째, 천명과 덕만은 이복자매간이다.

    넷째, 천명은 정비인 마야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에 덕만보다 왕위승계에서 후순위다.
    다섯째, 마야의 후손으로는 덕만 말고도 또다른 자매(들)이 있다.  

    여섯째, 덕만은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했다.
    일곱째, 덕만은 왕위를 오를때, 현재 80년생이며 한국나이 30살인 이요원보다도 어렸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의 아역역할을 한 남지현은 2009년 현재 15세이다.덕만은 실제로 632년에 15~18세 정도에 늦어도 20세 전후에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이제 마지막 걸림돌인 <황고>도 충분히 사례를 들어서 증명하고, 해결하였다. 덕만의 출생의 비밀과 덕만의 기록들을 시리즈로 엮은 것을 끝내려고 한다.그동안 덕만이 어린나이(당시에는 충분한 나이)에 즉위했다는 사실을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을 바탕으로 충분히 증명했다고 본다. ( 드라마 선덕여왕관련 사진의 저작권은 mbc에 있음 )

    다음편에는 선덕왕 원년에 보이는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를 해석해 볼것이다. 단순한 미사어구인가? 아닌가?하는 글이다. 시리즈 글을 읽은 분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이미 충분히 글로써 표현했기 때문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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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역사맨 2009.07.28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기존 학설보다 훨씬 설득력있네여
      공감합니다
      근데 궁금한게 있어여
      즉위때가 10대 중반에서 20대라면
      진평왕과 나이차이가 너무 많이
      나지 않나여? 게다가 김춘추보다도
      어리게 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8 14: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579년 진평왕이 왕위에 오른 때는 13세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566년 생인거지요.
        632년에 죽을 때 나이는 77세입니다.. 한갑이 다되어서 얻은 귀한 자식이 되는 겁니다..

        김유신도 61세인 회갑맞이 신부 지조(춘추/문희)을 맞이 하여 많은 자식을 낳지요.. 원술등 원짜 돌림 아들들..

        김유신에 비하면 김진평은 약과 입니다..
        김진평은 60이 한참 넘은 나이에 승만 손씨를 후비로 들이기도 합니다.. 아들보기 프로젝트 일환으로..

        결국에는 손들고 말지요. 덕만으로..

    3.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7.28 14: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요즘 마음 비우고 있는 중입니다. 그저 픽션일뿐이다 이러고 세뇌시켜가면서요...ㅎ 그러고 보니까 색다른 재미도 생기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8 14: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즐길줄 아시는 군요.. 저는 이미 포기 했어용.. 그저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재미는 있거든요.. ㅋㅋ

        원작이 부실해서 그렇징..

    4. 역사맨 2009.07.28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궁금한게 또 있습니다
      만약 즉위때가 10대중반에서 20세정도라면
      김춘추와 문희를 엮어주는 사건에서
      나이가 너무 어리게 되지 않나여?

    5. ㅎㅎㅎ 2009.07.29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윤유선 님이세요.. 마야왕후역 맡으신분 ㅎㅎ 오타 .ㅎㅎ

    6. 지옥천사 2009.07.31 0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으로, 덕만의 결혼과 관련된 것인데요,

      선덕여왕 이후의 왕이 진덕여왕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진덕여왕의 아비가 국반갈문왕으로 되어있는데,

      미리 선덕여왕이 진덕여왕을 차기 왕으로 점찍어두고 있고,

      이후 이에 대한 정당성 확보차원으로 국반갈문왕을 남편으로 둔 게 아닐까 하네요..

      물론 선덕여왕이 석녀라는 건 저도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성적 욕구(?) 해결 차원에서는

      그 당시 아주 개방적인 성문화였을 거라는 전제하에, '궁녀' 급에 해당하는 남성이 없진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위키디피아에서 선덕여왕에 대한 남편에 대한 언급으로,

      "신라의 규례에 따라 3명의 남편을 두었다."라는 말이 있는데,

      제가 고대사에 대한 끈은 짧아서 신라의 규례까지는 알지 못하고, 이것의 진위 또한 잘 알지 못하지만,

      법칙으로 인해 3명의 남편을 두어야 했다면, 어차피 후사를 두지 못했던 선덕여왕의 당시 사정 상,

      후계자를 든든히 하기 위해서 작은아버지와 결혼할 수 밖에 없었다..라는 추측도 성립하지 않을까요?

    7. 지옥천사 2009.07.31 0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딴지 좀 걸어 볼까요..

      우선, 저 중국어 사전, '신장' 어쩌고 저쩌고 나오는 걸 보아하니 최신 중국어 사전 같은데요,

      무려 1000년보다도 전에 쓰인 단어를, 것도 여러 해석이 가능한 한자어를 현대적 기준으로 보신 건 좀 오류라 봅니다.

      한국어의 '영감'도 현재의 의미로 쓰이기에는 그리 오래된 역사도 아니고,

      섬나라의 '오마에'도 원래는 귀인을 지칭한 단어였지요..

      '고'자에 시어미가 붙어있는 건, 우리나라에 들어올 당시에는 '시어미'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요?

      '지(地)'가 현재는 '땅'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당시 고어인 '땅>따' 에서 따와

      아직까지도 '따 지'라고 하는 것처럼요..

    8. 2009.08.13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3 19: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봉황은 기존의 통설을 따른거지요.. 분석없이..

        덕만이 맏이로 나온건,, 재대로 읽지 않아서 그런것 같습니다. 그것도 통설..

        덕만이 천명의 동생으로 나온것은 화랑세기를 따른 것 같습니다..

    9. 좋은 시도입니다만 2009.08.17 05: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설인지 사실인지 신뢰하기 어려운 화랑세기를 제쳐두면, 덕만은 분명히 천명의 언니입니다. 김춘추가 602년생인데 천명이 아무리 어려도 585년 정도에는 태어났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632년에 등극한 덕만의 나이는? 성조황고가 전혀 어색하지 않죠. 아울러 고대 신라어의 '고'가 무엇인지 알려면 현대 중국어에서보다는 현대 한국어에서 '고'가 어떻게 쓰이는지 보면 될 일 아닌가요?

      그럴듯한 추측들이지만 결국 사상누각이 아닌가 합니다. 아울러 삼국사기, 유사의 원본을 보시고 쓰시는지는 알 수 없으나, 왕의 자식이 여럿 있을 때에 굳이 구별이 필요하지 않은 때가 아니면 서로 동복인지 이복인지 언급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랑세기는 기존의 기록과 상충하는 부분이 많은데, 예를 들어 '성골남진'도 있습니다. 주인장께서 여러가지 흥미로운 추측을 하셨지만, 이 모든 것이 현대 중국어의 한자 뜻 = 고대 신라어의 한자 뜻, 그리고 화랑세기=진짜, 삼국유사=믿기 어려움 이라는 것을 가정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화랑세기가 아직 '불명확하다'는 점을 확실히 전제해 두고 추론하면, 위의 일곱 까지 추론 중 어느 하나 남는 것이 없군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07: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화랑세기를 인용하지 않고 진행하고 있는뎅..

        황고는 황제의딸이란 말 밖에 안되요.. 아무리 찾아봐도,..

        왜 할머니라고 하지요.. 신라사회를 알면 님처럼 말은 전혀 하지 않을텐데.. 아쉽군요..

        다른글도 보는 센스를..

    10. 좋은 시도입니다만 2009.08.17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세기 자체는 인용하고 있지 않지만, 다른 몇몇 글들을 봐도 화랑세기를 칭찬하는 등 화랑세기는 이미 사실이라는 가정을 깔고 시작하고 있지요. 삼국사기, 삼국유사만 가지고는 쉰동님과 같은 주장을 할 여지가 도저히 없습니다. 다른 글에서는 조선왕조실록과 비교하면서 말씀하셨는데, 사실 썩 좋은 비교는 아닙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나온 신라 기사들과 비교를 하셨어야 합니다. 화랑세기가 진실이라는 '가정'이 증명되기 이전에 갓쉰동님의 주장은 모두 '가정'에 불과합니다.(신라사회를 알면... 이라고 하셨지만 화랑세기에 나온 부분들이 사실이 아니고, 미실이라는 인물도 지어낸 사람이라면, 쉰동님께서 알고계신 신라사회는 모 역사소설가가 지어낸 상상력의 산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쥬신이 어쩌구 하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쥬신의 출처는 모 만화가의 책일 뿐, 어떠한 사료적인 고증도 없습니다.

      갓쉰동님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상관 없지만, 지금 여기 나온 것들이 '사실'인 것처럼 묘사하시는 것은 환단고기 신봉자들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역사에 대한 혼란을 가져오지 않을지 약간 걱정이 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1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떤이는 화랑세기를 왜 인정하지 않느냐고 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님은 왜 화랑세기를 인정하냐고 하는군요..
        저 굉장히 화랑세기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도대체 어떤의도로 썼길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그리도 절묘하게 사이를 오가는지..

        그리고 삼국사기의 기록을 검토해 본적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님은 번역본 말고 원전을 본적이라도 있나요?

        여태까지 미실을 실존인물이라고 확정해서 한마디도 한적이 없는데.. 오히려 화랑세기 너무 정교해서 의심스럽다는 말은 수없이 했습니다만,,

        삼국사기의 기록은 삼국사기와 비교해야 한다고 했는데 절대적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인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님은 글을 님이 보고 싶은 것만 필터링 해서보는 습관이 있는것 같군요..

        아참, 그리고 삼국시대는 똑같은 시대라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도 서로 다른 행태를 보여주는 것이 상례예요..님이 저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 패턴을 보이고, 서로다른 상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조선은 비교하면 안된다? 삼국시대와 비교해라? 도대체 삼국시대랑 비교를 그렇게 했는데도 왜? 조선과 비교하냐?니 대략 난감하네요..

        제가 삼국시대 자료를 가지고 기존의 설을 비판했으니 님이 삼국시대의 자료를 근거로 아님을 증명해주시는게 먼저 아닐까요? 그래야 제가 반박을 하지요?
        논쟁이나 토론은 이런 방식으로 하는 겁니다.

        님처럼 뜬구름 잡는게 아니고..

    11.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12: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고'가 현대에만 성인여인들에 쓰인 말이다 이말은 님이 증명하시면 되요.. 제가 할일이 아니고.. 뜸금없이 용례도 밝히지 않고 현대에만 성인여성에 쓰인말이고 과거에는 다르게 썼다니.. 님은 이미, '고'의 용법에 저의 주장에 동의를 하는 겁니다..

      또한, 삼국사기 어디를 살펴봐도 마야가 진평의 아내라는 기록은 있지만, 천명의 어머니라는 기록은 없어요.. 해당 기록을 가져와서 반박을 하시면 됩니다.

    12.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1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은 <성조황고>를 어떻게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님의 해석좀 알려주세요..

    13. 난독증 2009.08.17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 대체 어디에 덕만이 둘째라고 나왔다는거야 ? ㅎㅎ 없는 기록 지어내기 쩌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19: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천명이 어디에 둘째라고 나오던가요?
        덕만은 진평왕의 맏이며, 마야의 딸이라는 말은 있는데.

        이게 어찌 천명의 어미가 마야가 된다는 뜻이되지요..

        신라시대가 무슨 1부1처제 인줄 아시나? 신라왕이 1부1처를 했다는 증거좀 내 놓아 보시길 바랍니다.

    14. 난독증 2009.08.17 1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도 않은 1부1처 지어내질 않나 ㅋ 삼국사기 다른 기록 뒤져봐요 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명확하게 계보를 정리 했나 안했나

    15. 난독증 2009.08.17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handic.daum.net/dicha/view_detail.do?q=12-01-24-02

      어이없는 중국어사전보다는 한자 옥편이 훨 나을듯. 어떻게든 어거지로 붙이려고 하지 마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20: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시어머니
        ㉡고모(姑母)
        ㉢계집, 여자(女子), 부녀(婦女)의 통칭(通稱)

        계집,여자, 부녀의 통칭.. 됐습니까?

        님이 인용한 자전에도 명백히 나와 있잖아요... 안봐서 그럴까봐 그러십니까?

        증거를 제시하라니까 그러시넹.. 천명이 마야의 소생이다를..

        천명이 마야의 소생이며 덕만보다 언니라고 언급한건 현존하는 화랑세기 밖에 없어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천명의 어머니를 언급조차 않하고있다구요..

    16. 난독증 2009.08.17 2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쉰동님은 어떻게 '고'에서 '어린 여자'를 찾아내셨는지 궁금하네요. 천명이 마야의 소생이라고 안나와 있다고 하는데 천명이 덕만보다 언니라는 말 역시 없군요^^

      皇姑(황고) ①'돌아간 시어머니'의 높임말 ②아버지의 고모(姑母).

      이걸 보면 김춘추의 후손들의 고모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 것 같은데 말이죠

      일단 기존 국사학계가 선덕여왕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부터 보고 오셔야 할듯?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20: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皇姑(황고) ①'돌아간 시어머니'의 높임말 ②아버지의 고모(姑母). 곧 할아버지의 누이
        님이 제시한 겁니다. 이것도 이미 봤어요.. 님처럼 안보고 한게 안니고..

        님의 해석이면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되요..

        그래서 본문에 이야기 놓았잖습니까?

        님처럼 말하는 분이 계실까봐.. 덕만이 진평의시어미뻘이냐고..

        그냥 성숙한 여인, 성인 여인,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라고.. 황고는 그냥 여황..요말입니다. 다른 용법이 없어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20: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즉위년에 존호를 성조황고를 올리면서 춘추의 고모라고 하는 있겠습니까?

        기존 다수설을 깨자고 글을 쓰는 거지.. 기존 학설을 따를 바에는 왜글을 쓰겠습니까?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2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재의 기준으로 하면 어린여자이고, 당대의 기준으로 하면 성인여성이라고 했을텐데요.. 13세 시집가고, 유신의 처인 지조도 15~6세정도인뎅..

        여성인 경우.. 생리하면 성인식을 치르는 것은 아시지요..

        설마 현재의 기준으로 신라를 보고 있는겁니까?

    17. 나그네 2009.10.12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글입니다.
      그런데 이 글 퍼가도 되나요?

    18. 레아 2009.12.07 17: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은 공주시절에 세번이나 결혼했지만 천성적으로 자식을 낳지 못하는 몸이었죠. 게다 남지현의 시절 등극한것은 덕만이 아닌 진평왕이죠.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제위를 했으니까요.

    19. 레아 2009.12.07 17: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을제로 하여금 국사를 총괄하게 하였다는 것은 선덕여왕의 나이가 젊지않다는 것을 의미하죠. 만약에 선덕여왕이 젊은 나이였다면 그건 진평왕이 늦게 마야왕후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다는 이야기인데 사실 진평왕이 늦은 나이에 결혼한 사람은 승만왕후이죠. 그리고 선덕여왕이 재우 십년에 죽었는데 그 젊은 나이에 별다른 이유없이 죽었다는게 말도 안되고요.

    20. Favicon of https://salm.pe.kr BlogIcon koc/SALM 2010.01.13 09: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 내용이 맞다면 황고 칭호를 젊어서 받은 여자는 "선덕왕"이 유일하다는 게 됩니다.
      비슷한 시기의 측천무후가 "고" 칭호를 자신에 붙인 때가 40대 말이었죠. 자칭인데도 그랬는데, 타칭을 절은 사람에게 붙여준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21.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글쓴이는 그 동안 다음 아래와 같은 선덕여왕의 공주시절에 있었던 기록을 하나 하나 추척해 들어 갔으며,
    선덕왕의 <지기3사>중 첫번째 '사건인 모란씨 서되'는 진평왕의 노년인 627년 진평왕 49년에 있었던 일이라고, 그 동안 아무도 알지 못했던, 모란이 신라에 수입된 년도와 년을 특정하여 기사로 송고하였다.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또한, <지기삼사>에 얽킨 영묘사 옥문지사건과 영묘사의 창건과정을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에서 소상히 이야기 했으며, 영묘사가 만들어 지는 과정에 영묘사에 화재사건이 발생하여, 삼국사기가 선덕왕 3년 635년에 영묘사가 완성되었다는 기사와 <삼국유사>의 3년 635년에 영묘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이중적인 기록이 나온 배경에는 <지귀요탑>과 <혜공의 이적>과도 관련이 있다고 했다. 영묘사가 1차 완성 시기는 선덕왕 3년이며, 이즈음 일어난 화재사건을 <지귀요탑>이 원인되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에서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선덕여왕이 김춘추와 문희를 연결시켜 준것이 아니라, 덕만이 공주시절 김춘추와 문희의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하였으며, <김유신의 불쑈>을 한 시기는 김춘추/문희 사이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의 출생일을 근거로 628년 이전에 벌어진 사건임도 증명하였다.

    그럼 이들 사건들을 연표로 작성해 보자.
     
    627년 11월 모란씨가 당나라로 부터 들어왔다.
    628년 이전 김춘추와 문희를 엮어주어었다.
    628~635년 사이 지귀심화(지귀요탑)에 의해 영묘사에 화재가 발생하여 혜공이 영묘사 사찰 일부를 보호하고, 진화되었다. 


     모란씨 사건과 <지귀심화> 사건들을 살펴 보면, 나이가 어리지 않으면 도저히 일어 날 수 없는 상황이 전개 된다. 대표적으로 <지귀심화>같은 경우 젊은 남자 지귀가 일반적으로 그동안 알고 있는 선덕왕 원년 632년에 45살 이상이 된 여자를 보고, <상사병>에 걸려 마음에 불이 일어나 자연발화(SHC) 상태로 까지 발전할 수 있는가 이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더 나아가 삼국유사에 의하면 영묘사에 화재가 발생한 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는 635년 영묘사가 완성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삼국사기를 따른다면 영묘사 화재사건은 635년 이후에 발생한 사건이 된다. 이때 덕만의 나이는 635년 선덕왕 4년으로 48세를 넘어야만 한다. 이는 더더욱 지귀의 화재사건이 성립될 수 없다. 물론, 요즘처럼 나이가 많지만, 젊음을 유지하는 연예인들이 있다. 이들을 보면 팔팔한 청춘에 불을 댕길만한 미모를 지니기도 했다.

    불세출의 잉그리트 버그만이나, 엘리자베스테일러 등은 나이가 일정하게 먹고 나서도 황홀할 정도의 미모를 자랑했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경우 나이를 먹고, 젊은날의 모습을 깡그리 없애 버렸지만 말이다. 이처럼 나이를 먹고 미모를 유지한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어기는 것이다. 요즘처럼 성형기술이 뛰어나 성형을 하거나 보톡스를 맞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래도 달리는 세월을 잡을 수 없는게 자연의 섭리이다.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지껏 덕만이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고, 인정하는 이유는 다음 3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삼국사기의 선덕왕 원년 즉위할때의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다.
    둘째는 신하들이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셋째는 동생이라고 추측되는 천명이 춘추를  603년에 낳았다.

    핵심적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라는 것이다. 만약, 천명이 덕만의 동생이 아니고, 언니라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할머니(姑) 덕만이 아닌, 시어미(姑) 정도의 나이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증거를 잡는 과정이 지귀, 모란씨, 영묘사 건축중에 벌어진 화재 사건이다.

    또하나는 천명이 덕만의 언니인지 동생인지 상관없이 왕위를 잇지 못한 이유중에 천명이 진평왕의 정비인 마야부인의 소생이 아니라면 어찌될까? 

      의심스런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다름이 아니라 김춘추가 왕이 될때 그의 가계 내력을 기록한 것이다.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 삼국사기 신라 춘추왕 원년
    .
    김춘추의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이라고 했다.

     

    진평 계보도

    우리는 덕만이 진평왕과 마야부인(복승의딸) 사이에 태어났고, 장녀라는 기록을 읽었다. 춘추의 기록을 살피고 우리는 감각적으로, 또는 단순히 천명과 덕만은 형제이겠거니 한다. 그러나 같은 어머니(동복)을 두었을까? 하는 의심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진평왕은 아들이 없다. 그러니 여러 부인들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설령 아들이 있다고 해도 후비를 여럿 두는 것은 왕실의 기본 상식에 속한다. 진평 또한 손씨인 승만을 후비로 두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천명이나 덕만을 마야부인의 소생으로 알고 있을까? 더불어 삼국유사에 나온 선화공주 또한 마야의 소생으로 만들었을까? 이 함정에서 벗어난다면, 어찌 될까?


    진평은 천명의 어머니를 통해서 천명을 낳고, 마야부인을 통해서 덕만을 낳았다. 진평은 적통을 이을 후손을 보기 위해서 여러 부인들을 두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가장 일반적인 왕실의 살아가는 방법이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정식 왕후의 소생이 적통을 잇는다. 그리고 그 왕후와의 사이에 난 자식에게 대권이 넘어간다. 왕후가 아닌 후비사이에 태어난 왕자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왕후 사이에 태어난 적통왕자들이 없을 경우에 왕위계승권이 주어진다.

    그러니 천명과 덕만은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열려 있다. 오히려 이복자매간일 가능성이 더 많다. 또한, 천명이 덕만보다 손위언니에 해당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기록 어디를 봐도 천명의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단지,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 으로만 나온다. 

     
    진평왕(眞平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백정(白淨)이고 진흥왕의 태자 동륜(銅輪)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 만호부인(萬呼夫人)으로 갈문왕 입종(立宗)의 딸이다. 왕비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으로 갈문왕 복승(福勝)의 딸이다. 왕은 태어날 때부터 기이한 용모였고 신체가 장대하고 뜻이 깊고 굳세었으며, 지혜가 밝아 사리에 통달하였다.
    - 삼국사기 신라 진평왕

    만약, 마야 또한, 왕후가 아닌 여러 후비 중의 일인 부인일 경우를 설정할 수 있으나, 마야의 아버지는 복승갈문왕이라고 했다.

    <갈문왕>은 왕의 형제나, 왕후의 아버지나 미추나 지증이나 진흥이나 진평이나 춘추 같이 왕의 아들(왕자)로 태어나지 않고 왕이 되었을 때 자신의 아버지를 갈문왕으로 봉한다.

    그러니 마야는 정식왕후에 등극한 것으로 봐야 한다. 정식 왕후의 후생인 덕만은 장녀일까? 아닐까? 삼국사기나 일반적인 왕실의 왕위계승과 순위를 정할때 장녀는 공식(정식) 왕후사이에 태어난 사람을 일컸는 경우가 많다. 천명의 어미는 정식왕후 였지만 후에 일찍 죽고 복승의 딸인 마야가 정식왕후가 되었다면, 왕위 승계서열은 현재의 왕후소생이 된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진평왕에게는 정비인 마야부인과 후비인 손씨 승만부인이 있었다. 승만 손씨에는 후사가 없었다고 하니, 천명은 승만의 소생은 아닐것이고, 또 다른 후비의 소생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진평이 죽은 후에 천명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용수.용춘이 생존하고 있었다. 충분히 선대의 선례에 따라서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용수.용춘은 왕위계승권에 없었다. 그러니 천명이 정비인 마야의 후손이 아님이 증명된다.

    신라사회는 대체적으로 사위가 왕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덕만의 경우는 사위가 왕이 되지 않았다. 이는 덕만에게는 남편이 없었거나, 싱글인 상태였거나, 당시 남편이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덕만은 632년 왕위를 이은 634년에 비로서 '음갈문왕'과 결혼을 한다.

    글쓴이는 합리적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사실을 바탕으로 천명과 덕만은 배다른 이복 자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춘추의 어미 천명을 기준으로 동복 자매라는 증거가 없는한 덕만의 나이를 추론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왕실의 상식에 벗어 난다.

    이제 덕만이 진평의 뒤를 이어 왕위를 승계할때 나이는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덕만의 기록들을 지기삼사 중 첫번째인 <모란씨>와 <춘추, 문희 중매>, <지귀요탑>,<영묘사화재> 사건 등을 종합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나이 많은 여왕일 하등의 이유가 없어진다. 

    <성조황고>의 <황고>를 들어서 덕만이 나이가 많지 않았을까 한다면? 현재의 기준으로 한다면 "맞습니다"라고 해줄만 하다. 하지만, 신라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덕만은 충분히 <황고>소리를 듣고도 남을 나이에 왕위를 계승했다.

    우리는 자신보다 나이가 조금 어린 사람에게 농담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내가 만약, 첫사랑에 실패만 하지 않았어도 너만한 아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당시 신라 사회는 첫사랑에 실패할때 결혼하고,20대에는 나이에 자식을 한둘과 30대에는 손자.손녀를 두는게 상식에 속할때이니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초경이 지나면 성인이 되어 "결혼을 시켜야 겠다"하고, 불알에 털나면 "장가가도 되겠네"하는 상식을 지니고 있는 시대와 30대가 넘어도 결혼은 무슨 소리하며,  오히려 노처녀.노총각이라고 놀리면, 시대에 덜떨어진 사람 취급 받는 세대와는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우리 어머니 할머니 세대만으로도 10대후반에 결혼하고, 20대 초반.중반에 결혼하면, 만혼이며 노처녀 소리를 들었다. 우리 어머니도 26살 늙은 아버지와  20살에 결혼하셨다. 

    이번에도 글이 늘어지고 길어졌다. 이번 편으로 덕만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늙은 할매로 권력을 잡지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결정타가 한 두편이 더 남아 있다.

    다음편 예고는 삼국유사 왕력편에 기록된 덕만의 남편인 '음'갈문왕에 관한 포스팅을 할 것이다.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우리가 알고 있는 덕만의 나이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을 할 것이다.

    또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와는 다르게 미실의 충복 칠숙과 석품이 왕위계승전에 뛰어든 이유를 설명할 것이다. 사실 미실이 죽은 606년에서 미실의 추종자로 설정된 칠숙이 반란을 일으키는 631년과는 너무나 떨어져 있지 않는가? 또하나는 칠숙과 석품의 반란을 진압한 세력이 진평왕으로 나오지만 실제는 덕만이 진압의 중추였을지 모른다는 것을 이야기하려 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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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hangadak.com BlogIcon 한가닥 2009.07.25 0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상에서는 쌍둥이 자매로 나오던데 ..드라마는 약간의 비현실도 존재하니까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5 09: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비현실성..

        일부러 화랑세기는 인용하지 않았음..

        화랑세기 읽으면 읽을수록 대단한 책 같아요..ㅋㅋ

        천명이 언니다.. 나이차이는나오지 않았지만..

        박창화가 지었다면 대단한 천재같아요..

    2.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5 09: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인 관점...
      보면 볼수록 흥미진진합니다 ㅎㅎㅎ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0: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제가 봐도 흥미진진 하긴합니다..

        IT세상이 된후.. 더 쉽게 연구를할수 있어요..

        검색이 되니..

        예전에는 어떻게 연구를 했을까 생각하니..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심이 우러나와요..

        그래서 단편적인 것도 있겠고 오류가 있을 확율이 있겠지만..

    3. 2009.07.25 1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심전심이 맞을것 같음..

        그래서 베스트 선정은 전적으로 다음측에서 해야 한다고 봐요.. 열린편집자 제도 폐지하고..

        이시간에 올리면 조회수가 안나와요.. 몇번 실험을 해봤지만, 이시간에 다음 편집자가 저랑 코드가 맞지 않는 모양입니다.. ㅠ.ㅠ.

        대부분 아침에 올린글이 저녁이나 되어서 베스트 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ㅠ.ㅠ.

        벌써 3건정도..

        저녁타임에 저랑 코드가 맞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음..

        3교대라면.. 어쩌면.. 잘봐준 분이 베스트관리자 일수도..

      •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5 12: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는 말씀 같아요...
        와인이야기...
        오전 10시에서 12사이 올리면
        냉큼 베스트 오르는데,
        그 이외시간 올리면 잘 안오르다
        다음날 보면 올라가 잇더군요 ㅎㅎㅎ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5 17: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왜 다음 편집자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신세가 되었는지.. 난감..

        알아서 기어야 하낭..

        그래서 제가.. 개정된 미디어업 통과를 반대합니다..

        저 같은 경우도 밥과 연관이 없는데도 눈치를 살살보는 것 같은데..

        밥이 걸려있는 기자들은 어떻겠어요.. 현재도 충분히 많이 눈치를 보고 있는데.. 광고주를..

    4. 2009.07.25 1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Favicon of http://blog.daum.net/wlalsdl1 BlogIcon 아르테미스 2009.07.25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그냥 재밌게 보고 있어요~ㅎㅎ

      갓쉰동님~ 뵐수록 대단한데요~
      어찌 이 어려운 내용들을 ^^;;

      즐겁게 주말 보내세요~

    6. 역사맨 2009.07.28 0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너무 잘 읽었습니다.
      이복동생일 가능성도 있군여
      제가 천명공주를 백과사전에 검색했었는데
      이렇게 나오더군여
      (신라 진평왕과 마야왕후 김씨의 딸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그녀가 차녀라고 하고 《화랑세기》에는 그녀가 장녀라고 하여 어느 쪽이 맞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선덕여왕과 친자매간임은 분명하다. 그녀 역시 진평왕의 왕위를 계승할 권리가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자매인 덕만이 총명했던 탓에 왕위를 양보해야만 했다)

      그리고 또 여기에서는
      <화랑세기>의 13세(世) 용춘공 기사에서는 선덕공주(덕만공주) 위에 천명공주가 있었다고 알려주고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적자가 없는 진평왕이 처음에는 금륜왕(진지왕)의 아들인 용수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그를 천명공주와 결혼시켰지만, 나중에는 선덕공주가 왕위를 이를 만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판단되자 천명공주에게 지위를 양보하도록 권유했다고 한다.
      출처 : 오마이뉴스

      위에 두글을 봤을때 화랑세기에 천명공주와 용수에게도
      계승권이 있었다는거 아닌가여?
      그렇다면 이복자매일 가능성도 줄어들게 되고?

    7. Favicon of http://fiat.gruposinal.com.br/concessionaria-fiat BlogIcon concessionaria fiat 2012.04.26 05: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난 그냥이 게시물에 여기 당신이 가진 위대한 정보에 대한 큰 엄지손가락을 포기하고 싶습니다. 더 빨리 귀하의 블로그에 돌아올 것이다.

    8.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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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선덕여왕 덕만에 관한 기록들을 하나 접수하여 역사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상식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하나씩 추적 탐사 검증하고 새로운 주장을 하는 포스팅 했습니다.

    지금은 덕만 탐사의 종착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또는 추측하고 있었던 상식을 상식이 아님을 증명하였고, 마지막으로 덕만은 왕위를 이을때 도대체 몇살이였는가? 할머니 였다는데 정말 할머니 였을때 왕위를 이은것인가?를 찾아 갈겁니다. 이글은 그 최종 종착역의 구부능선을 타는 덕만과는 땔래야 땔 수 없는 영묘사에 관한 기록들을 검토해 볼겁니다.
      

    (c) mbc 사극 선덕여왕



    선덕왕 4년(635) 당나라가 사신을 보내 부절(符節)을 가지고 왕을 주국(柱國) 낙랑군공(樂浪郡公) 신라왕(新羅王)으로 책봉하여 아버지의 봉작(封爵)을 잇게 하였다. 영묘사(靈廟寺)가 완성되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4년

    선덕왕 5년 636년 여름 5월에 두꺼비가 궁궐 서쪽 옥문지(玉門池)에 많이 모였다. 왕이 이를 듣고 좌우에 말하였다. - 삼국사기

    여름 5월에 장군 우소(于召)에게 명령하여 갑옷 입은 군사 500명을 거느리고 가서 신라의 독산성(獨山城)을 습격하게 하였다. 우소가 옥문곡(玉門谷)에 이르러 날이 저물자 안장을 풀고 사졸들을 쉬게 하였다. 신라 장군 알천(閼川)이 군사를 거느리고 엄습해 와서 이를 쳐서 무찔렀다. 우소는 큰 돌 위에 올라가 활을 당겨 막아 싸웠으나 화살이 떨어져 사로잡혔다 - 삼국사기 백제 무왕

    문무왕 2년(662) 영묘사에 불이 났다. - 삼국사기 문무왕 2년

     
    둘째는, 영묘사(靈廟寺) 옥문지(玉門池)에 겨울인데도 개구리들이 많이 모여들어 3, 4일 동안 울어 댄 일이 있었다.  나라 사람들이 괴상히 여겨 왕에게 물었다.  그러자 왕은 급히 각간(角干) 알천(閼川)·필탄(弼呑) 등에게 명하여 정병(精兵) 2,000명을 뽑아 가지고 속히 서교(西郊)로 가서 여근곡(女根谷)이 어딘지 찾아 가면 반드시 적병(賊兵)이 있을 것이니 엄습해서 모두 죽이라고 했다.  두 각간이 명을 받고 각각 군사 1,000명을 거느리고 서교(西郊)에 가 보니 부산(富山) 아래 과연 여근곡(女根谷)이 있고 백제(百濟) 군사 500명이 와서 거기에 숨어 있었으므로 이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 삼국유사 선덕왕 지기삼사

    일연의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의 선덕왕 궁궐 서쪽 옥문지 사건을 옥문지는 영묘사에 있다하고 개구리가 출연한 때는 여름 5월이 아닌 겨울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개구리 두꺼비가 여름에 우는 거는 일상적인 일이 아닌가? 겨울에 몇일 동안 못에 나와서 우는 것이 특이하니 이 사실을 덕만(선덕왕)에게 보고했다는 것이 합리적이다.


    넷은 용궁(龍宮)의 북쪽(지금의 분황사芬皇寺다.  선덕왕善德王 갑오甲午년에 공사가 시작되었다)이요, 다섯은 사천(沙川)의 끝(지금의 영묘사靈妙寺다.  선덕왕善德王 을미년乙未年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 삼국유사 아도기리 중

    선덕왕 갑오년이면 634년이고, 을미년은 635년이다. 그런데 삼국사기는 "635년 선덕왕 4년 영묘사 공사가 끝났다."고 한다. 하지만 삼국사기를 본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무슨 소리 선덕왕 2년에 분황사 공사를 시작하고, 영묘사는 635년에 공사를 시작했다라고 삼국사기를 반박하고 있다. 삼국사기 기록대로 635년 선덕여왕 4년에 영묘사가 완성되었다면 636년 선덕왕 6년 옥문지 사건을 기술할때 궁궐 서쪽 옥문지라고 기록하지 않고, 삼국유사처럼 영묘사 옥문지라고 기술하였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일연은 중 양지가 영묘사 장육삼존상과  영묘사 현판 을 썼다고 기록하고 있다.  
    중 양지(良志)는 그 조상이나 고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고, 오직 신라 선덕왕(宣德王) 때에 자취를 나타냈을 뿐이다.
    (.. 중략.. )
    영묘사(靈廟寺) 장육삼존상(丈六三尊像)과 천왕상(天王像), 또 전탑(殿塔)의 기와와 천왕사(天王寺) 탑(塔) 밑의 팔부신장(八部神將), 법림사(法林寺)의 주불삼존(主佛三尊)과 좌우 금강신(金剛神) 등은 모두 그가 만든 것이다.  영묘사(靈廟寺)와 법림사(法林寺)의 현판을 썼고, 또 일찍이 벽돌을 새겨서 작은 탑 하나를 만들고, 아울러 삼천불(三千佛)을 만들어, 그 탑을 절 안에 모셔 두고 공경했다.  그가 영묘사(靈廟寺)의 장육상(丈六像)을 만들 때에는 입정(入定)해서 정수(正受)의 태도로 주물러서 만드니, 온 성 안의 남녀들이 다투어 진흙을 운반해 주었다.  그때 부른 풍요(風謠)는 이러하다. - 삼국유사 양지사석

    구참공(瞿참公)이 어느날 산에 놀러 갔다가 혜공이 산길에 죽어 쓰러져서, 그 시체가 부어 터지고 살이 썩어 구더기가 난 것을 보고 오랫동안 슬피 탄식하고는 말고삐를 돌려 성으로 들어오니 혜공은 술에 몹시 취해서 시장 안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있는 것을 보았다.  또 어느날은 풀로 새끼를 꼬아 가지고 영묘사(靈廟寺)에 들어가서 금당(金堂)과 좌우에 있는 경루(經樓)와 남문(南門)의 낭무(廊무)를 묶어 놓고 강사(剛司)에게 말했다.  "이 새끼를 3일 후에 풀도록 하라."  강사가 이상히 여겨 그 말에 좇으니, 과연 3일 만에 선덕왕(善德王)이 행차하여 절에 왔는데, 지귀(志鬼)의 심화(心火)가 나와서 그 탑을 불태웠지만 오직 새끼로 맨 곳만은 화재를 면할 수 있었다. - 삼국유사 이혜동진(혜숙,혜공)

    아주 잼있는 기록이 영묘사의 화재 사건들이다. 영묘사는  끊임 없이 화재사건에 연루 되어 있었다. 삼국사기 기록상 첫번째 화재 사건은 

    문무왕 2년(662) 영묘사에 불이 났다. - 삼국사기 문무왕 2년

    하지만, 삼국유사는 이동혜진(혜공)의 이적을 빌어서 지귀심화(지귀요탑)사건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덕여왕 당시에도 영묘사에 화재사건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 의해서도 635년에 영묘사를 짓기시작, 완성단계에 이른 얼마 지나지 않아 덕만이 영묘사를 찾아 갔을때 화재 사건이 발생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절충한 진평왕시기 짓기 시작한 영묘사가 지귀심화에 일정정도 불에 타서 중건(중창)에 가까이 635년에 다시 짓기 시작했을 개연성도 있다. 

    지금까지 선덕여왕 덕만의 행적중 <지기삼사>와 <지귀심화> 등 관련이 많은 영묘사에 관한 기록을 살펴 보았다.  사실 이글을 쓰는 목적은 선덕여왕 즉 덕만이 <성조황고>라는 말을 왜 들었어야 하며, 삼국사기에서 덕만은 진평왕의 <장녀>이며, 천명은 동생이라는 기록을 분석하기 위해서 이다. 천명은 김춘추를 603년에 낳았다. 그렇다면 천명은 최소한 589~590년 이전에 태어 났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덕만이 어머니가 같은 언니라면 천명과 같은 나이이거나 그 이전에 출생해야 한다. 덕만이 588년 생이라고 한다면 덕만이 왕위를 잇는 632년에는 45살이 된다. 덕만이 죽는 647년에는 60살의 천수를 다하게 되는 것이다. 


    이글에서 지귀심화(지귀요탑)은 세계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자연발화(SHC)인 미스터리 자연현상이라고 기술 했다. 그러니 <대지도론>에 나온 <술파가>가 유사하고 같은 여왕이기 때문에 <수이전>전하고 <대동운부군옥>이 채록하여 선덕여왕에 투영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역으로 선덕여왕때 혜공의 사건과 지귀심화 사건을 종합해 본다면? 


    어쩌면 영묘사 지귀심화 화재사건은 이전에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서 기록한 선덕여왕 당시 김춘추와 문희의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한것이 아니고,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것처럼, 사찰이 하루이틀에 뚝닥하고 만들어지지 않는 기간을 생각할때 여왕시기가 아닌 공주시절부터 영묘사가 한참 건설중 중요건물인 대웅전의  낙성식을 참여하다 지귀의심화를 당하고, 혜공의 법력(?)으로 살아 남은 전각의 일부를 635년 이후에 완성해 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지 않다면 젊은 지귀가 다 늙은 노파(45세이상)인 선덕여왕을 사모해서 상사병으로 자연발화를 했다는 것은 부자연스럽지 않겠는가? 또한가지, 다 늙을 때가지 덕만이 솔로 였다는 것은 당시 신라 사회로 봤을때 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이 된다. 동생인 천명도 결혼해서 603년에 김춘추라는 사내를 낳는데 말이다. 물론, 덕만도 삼국유사 왕력편의 기록에 의하면 '음갈문왕'이란 사람과 결혼을 하였다.


    글쓴이가 왜 시리즈로 덕만의 공주시절을 뒤적이고 있는지 최근 시리즈글을 읽었다면 감을 잡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전 3개의 송고된 기사를 읽어 볼것을 권한다. 어찌 되었던 다음편에서 확실하게 종지부를 찍을까 한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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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7.24 10: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편에 종지부라 ㅎㅎㅎ
      기대합니다.
      고맙습니다.
      언제나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2. 지나가다 2009.07.24 14: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이 계산이 이상한 것 같네요

      "덕만이 588년 생이라고 한다면 덕만이 왕위를 잇는 632년에는 55살이 된다. 덕만이 죽는 647년에는 70살의 천수를 다하게 되는 것이다."

    3. 계산 2009.07.24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588년생 632년 왕위계승 45세 647년 서거 60세

    4. kmk8933 2009.07.26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넘넘 훌륭합니다!!! 새로운 역사를 배운듯...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가르쳐 주세요~~
      열심히 볼께요.

    5. Favicon of http://bottleless.com/ BlogIcon bottleless dispensers 2011.12.19 1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이 여기에서 발생했습니다 큰 페이지입니다. 공유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으로 아주 인상적 페이지입니다. 굿 샷 ...

    6. Favicon of http://projectmanagementacademy.net/select-location.php BlogIcon pmp training 2011.12.19 1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은 정말 아주 좋은 기사, 내가 그것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웁니다. 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입니다

    7.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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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9.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 BlogIcon visit website 2012.07.14 1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는 삼국사기의 선덕왕 궁궐 서쪽 옥문지 사건을 옥문지는 영묘사에 있다하

    10. Favicon of http://nerrypalmer2.tumblr.com/post/21717375427/ BlogIcon food storage supplies idaho 2012.11.01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11. Favicon of http://www.nytimes.com/2008/03/30/nyregion/30dogs.html?ex=1364616000&en=8d101e.. BlogIcon invisible fence collar settings 2012.11.05 16: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었던 상식을 상식이 아님을 증명하였고, 마지막으로 덕만은 왕위를 이을때

    12. Favicon of http://edillobuse.typepad.com/blog/2012/04/best-success-kits-only-premium-qual.. BlogIcon hurricane survival kit nyc 2012.12.10 2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아무리 미국이 광우병내성을 지니고 있더라도 유전적 결함으로 자연발생적으로 발견되어야 하는 광우병소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도축되기전에 소멸되었거나 도축과정에 은폐되거나 검역과정에 통과되어 전세계 식탁에 올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13. Favicon of http://presurfer.blogspot.com/2007/11/flexible-pet-ownership.html BlogIcon great website examples 2012.12.22 1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던 상식을 상식이 아님을 증명하였고, 마지막으로 덕만은 왕위를 이을때 도대체 몇살

    14. Favicon of http://sustainableurbanite.com/search-for-emergency-food-supplies/ BlogIcon mountain house #10 cans bulk 2012.12.31 2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글은 그 최종 종착역의 구부능선을 타는 덕만과는 땔래야 땔 수 없는 영묘사에 관한 기록들을 검토해 볼겁니다.


    2008년 6월에 창경궁에서 외부인사들의 저녁만찬 파티가 있었나 보다.
    주최측은 증권선물거래소이고 참여인사는 국내.외 투자자(?)들이 였던 것 같다.
     
    문화재청이 증권선물거래소에 창경궁 사용 허가를 내준 시점이 숭례문이 화재로 전소되기 이전 참여정부 유홍준 문화재청 시절이였다고 한다. 많은 분들이 숭례문 화재로 문화재에서 화기의 사용 위험에 민감함을 알 수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문제는 <화기사용>으로 화재로 번질 수 있는 위험을 관리통제되었는가? 여부가 비판지점이 아닐까 한다.
     
    2007년 5월 17일(?) 참여정부의 문화재청장인 유홍준이 여주 영릉(효종대왕릉) 재실에서 화기를 사용한 사건이 있었다. 이때 많은 언론들과 네티즌들이 문화시설에서 화기라니 하면서 비난하였다.
     
    거슬러 올라가면 2005년 경복궁 경회루 앞에서도 만찬이 있었고, 2005년? 창경궁에서도 국제신문협회(IPC?)가 주관한 만찬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점은 정확하지 않다.
     
     
    어찌되었던 문화재 시설에서 화기 사용은 절대적인 금기일까? 하는 의문에서 일반 네티즌과 조금 다른 시각도 있음을 아래의 글로 대신하고자 한다. 1년전의 글이라 시제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시점은 2007년 5월이다.
     
    내용을 요약하면 유홍준을 비판받아야 마땅한 면도 있고 비판 지점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네티즌들의 비판내용에 대한 반론성격이다. 이지점은 유홍준을 변호하는 내용이 될듯도 싶다.
     
    최근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문화재청장 유홍준은 글이나 사진으로 보는 문화유산이 아닌 답사를 하면서 문화를 체득하는 <백문이 불여일견>을 실천하고 더 나아가 <일견>보다는 <체험>하는 문화유산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 같다. 아는것(문) 보다는 보는 것(견)이 좋고 보는 것 보다는 몸으로 체험(득)하는 것이 수백배 좋은 문화답사이기 때문이다.



    문화다양성 뿐만 아니라 과거의 흔적을 문화콘텐츠로 개발해서 살아있는 역사로 만드는 작업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볼거리 없는 빈약한 관광콘텐츠를 다양하게 개발하여 관광산업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죽은 역사문화를 현재 살아 더불어 숨을 쉬는 역사문화로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날마다 축제>라는 일본이나 중국이나 유럽의 축제(카니발)처럼 널리 알려진 축제가 별로 없다. 유교적 전통이 동양권의 어떠한 나라보다 많이 남아 있어 최근에 종묘제례를 복원하고 선농단 행사을 복원하고 축제화 시키며 체험하는 형태의 문화제로 승화시키려는 노력를 하고 있다.



    예를들어 왕실의 결혼식을 체험한다든지 왕궁 문지기 교대식을 보여준다던지 정조대왕 화성(수원)행차를 체험 시키는 것 등이 있다. 좀더 나아가 정조대왕 화성 행차 중 한강도하 장면을 매년 축제로 재연하여 물과 불꽃 축제를 겸해서 한다면 세계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는 축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재실>이란 왕릉이나 사대부 종가집의 묘를 관리하기 위한 구역이다. 대체적으로 릉(묘)의 아래에 위치하며, 릉은 왕실에서 파견한 관리(수묘인)가 지키고 있으며 재실에는 제사에 필요한 물품이나, 음식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음복을 할 수 있는 장소로 정해져 있다. 또한, 릉에 딸린 경전이 있어서 경전에 나온 소출로 물품과 관리비용을 댄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제례에 관한 기록을 검색하면 수백건의 기록이 나온다.



    제례를 주관하는 자는 제례일 몇일전에 목욕을 해야하고, 어떤 옷을 입으며, 잠자리는 언제까지 하지 말며, 흉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등 터부를 기록하고 있다. 제례가 끝나면 음복을 하는데 어떠한 잔을 쓰며, 음복 전에는 손을 어떠한 방법으로 씻어야 하는지 음복에 쓰이는 음식은 어떤것을 사용해야하는지, 마늘이나 부추나 터부시 하는 음식은 어떤것이 있는지 등을 <예기>나 <주자례>에 따라서 결정이 된다.



    <음복>이란 제례가 끝나고 찾아온 손님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고래부터 있어왔던 제례문화이고 대대로 전승되고 발전시켜야할 아름다운 문화유산이고 살아 숨쉬는 문화상품이다.



    문화재청은 세종대왕 탄신 610년 기념 <숭모제>를 하면서 조금 어설프기는 하지만 체험하는 제례를 만들고자한 흔적이 보인다

    그런데, 이를 비판하는 <기사>가 떴다. <문화재>지역에서 <화기>를 이용해서 손님을 접대하는 행위에 대한 비판내지 비난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접대하는 손님의 면면을 보면 세종대왕릉이 있는 여주 지역의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 등 유지들이다. 유지들이 <문화재>보호구역에서 <화기>를 사용해서 <먹자판>을 만들었다는 요지이다. 그런데 이는 기자의 어리석음에 기인하고 여론재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들만의 리그>라면 비판의 대상이 될수 있다. 하지만 비판 기사를 쓴<기자>들는 문화재보호지역내 화기사용에 방점을 찍었고 문화재청의 반론에 왜 화기사용에 대한 사과는 없는가라고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비판기사를 쓴 기자는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등 다수의 문화재관련 저술활동이 많았고, 이런 활동으로 문화재청장이 되었는데 <문화재보호구역>에서 <화기>를 사용하다니 하는 겉다르고 속다르다는 생각에서 기사를 송출했던것 같다. 그리고 충분한 효과를 보았다고 생각한다. 일견 기자의 지적이 타당할 것 같기도 하다.



    문화재 보호구역내에서 화기의 사용은 엄격히 규제되고 있지만, 관리 주체의 <화기>사용은 용납이 되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문화재가 많기로는 사찰들을 들 수 잇다. 그곳에는 조금만 부주의하면 타버릴 수 있는 많은 국보, 보물급에 해당하는 건물이나 탱화, 전적, 불상이 있다. 하지만 사찰을 관리하는 스님들에게 화기 사용을 금지 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개의치 않고 사찰에 가서 사찰음식을 얻어 먹고 시주를 한다. 또한, 향을 피우기도 한다. 앞으로 석탄일이 다가오면 향초와 연등을 설치할 것이다. 그러므로 관리주체의 <문화재>보호구역내 <화기>사용을 가지고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올바르다 할 수 없다. 일반인들의 통제되지 않고 관리되지 않는 무분별한 화기 사용만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실>에서의 <화기>사용에 대한 기자나 네티즌의 비판에 <문화재청>은 화기사용에 대한 변명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발 더나아가 앞으로는 <숭모제>를 정교한 시스템에 따라 축제화 시키려한다고 이야기를 햇다. 들불처럼 타는 <안티유홍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하지만 이같은 생각과 계획은 바람직 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문화재청이나 유홍준의 변명성 반론에는 문제점이 있다.



    세종대왕릉관리소가 관리하는 릉은 4개가 있다. 세종대왕 부부릉과 세종대왕릉으로 부터 700여 미터 떨어진 지역에 있는 <효종대왕>부부릉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은 이름이 한글로 똑같이 영릉이다. 세종대왕릉은 영릉(英陵)이고 효종대왕릉은 영릉(寧陵)이다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은 각각 제례를 관리하는 재실이 따로 있다. 그런데 세종대왕 숭모제를 하면서 가까이 있는 세종대왕 재실을 놔두고, 음복은 숭모제와 관련이 없는 수백미터 떨어진 효종대왕릉의 재실에서 했다는 것이다. 만약,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면, 세종대왕릉의 재실을 나두고 효종대왕의 재실을 사용한 것에 대한 비판이라면 합당할 것이다. 이는 남의 상가집에서 춤추는 것이고, 남의 기쁜 경사인 결혼식에서 곡을 하는 것과 같다. 한여름 가물은 자기논에 물을 대려다 남의 논에 물을 대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 <남의 다리 긁었다>는 말이 되겠다.



    문화재관리소와 유홍준의 입장에서 문화유산에 대한 무지한 지방유지들에게 자신만의 <체험, 제례 답사기>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재실 중 아름답기 그지 없는 효종대왕릉 재실을 이용했을 것으로 추즉이 되기는 하다. 그러한데도 숭모제와 관련이 없는 효종대왕 재실을 사용했다. 세종대왕릉를 보면 재실을 사용하지 않고도 충분히 음복할 수 있는 공간과 장소가 넘치고 있다. 문화재관리자들의 열정과 과욕이 부른것이 아닐까 선의로 추측이 된다.



    유홍준이 체계화 시키고 체험 하는 제례를 처음 시도 했다면 그 보다 좋은 것은 없다. 단지, 특정계층인 <그들만의 축제>로 끝나지 않았음 하는 바람이 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체험할 수 있는 제례문화를 이번 유홍준의 비판 기사와 무분별한 비토에 의해서 유홍준이 낙마하거나 제례문화축제가 버려지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축제화되어질 다음 숭모제 부터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체험 할 수 있었음 하는 바람이다. 일회성 <그들만의 리그>로 끝나거나 지속적인 <그들만의 리그>로 계속하는 것은 깊은 산사에서 감칠맛 나는 <젓갈>을 탱추들만 먹는 것 처럼 얄밉고, 보기싫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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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toeshoesvibram.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5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불당 사건으로 세종은 후일 “늙어서 망년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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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인 그래서 진짜로 무언가일 이 화제를 나가 나를 생각하는 결코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당신 발표 그러나 나와 쉬운 찾아내십시오. 그것은 저를 위해 너무 복잡하고 아주 넓게 보인다. 나는 당신

    3. Favicon of http://eugenehind.typepad.com/blog/2012/04/survival-kit-and-what-exactly-you-n.. BlogIcon emergency meals in a jar 2012.11.01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4. Favicon of http://chloe.20minutes-blogs.fr/les_surprises_du_quotidien/ BlogIcon petsafe invisible fence 2012.11.05 17: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다. 문제는 <화기사용>으로 화재로 번질 수 있는 위험을 관리통제되었

    5. Favicon of http://jesseapple6.tumblr.com/post/21717416808/ BlogIcon 72 hour kits utah 2012.12.10 2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톤을 먹던 수백톤을 먹던 광우병에 안걸리지 않는가 말이다. 혹시라도 모르니 M/M형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고 필히 확인하기 바란다. 1%내각에 1%수석들에 1%보좌관들이지 혹시 우리나라에서는 5%밖에 없는 특이 체질인 M/V형이거나 V/V형인지 모르지 않는가 말이다.

    6. Favicon of http://peejaysarez.multiply.com/journal/item/4/seventy_Two_Survival_Kit_-_What.. BlogIcon 5 gallon water bottle pump 2012.12.10 2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선덕여왕을 다룰려면 지금까지 한 50회를 다시해야만 정상적인 덕만이 여왕이 되는 준비기간과 여왕으로서 삼국통일의 초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야 애초 제작팀의 기획의도에 맞지 않을까 한다.

    7. Favicon of http://rogerbourland.com/2008/01/15/but-we-dont-charge-our-dogs/ BlogIcon dog website 2012.12.22 1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동국여지승람에는 천주사는 안압지 북서쪽에 있었다고 하고 있고, 기록대로 천

    8. Favicon of http://www.storiesforpeace.com/scarcity-of-emergency-food-supply/ BlogIcon water gallon calculator 2013.01.01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늘이나 부추나 터부시 하는 음식은 어떤것이 있는지 등을 <예기>나 <주자례>에 따라서 결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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