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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공주의남자>가 결말로 치닫고 있다. 세령공주는 세조(수양대군)의 명으로 신면의 노비가 된다.


수양대군(세조)가 세령공주를 신면의 노비로 만든 이유는 김승유가 세령을 구하러 올 때 잡으려는 계략과 세령이 마음을 다잡기를 바라는 마음이였다.


김승유는 광주에 있던 정종으로부터 반란복위 계획이 있으니 김승유가 내려와서 도와주기를 바란다.


반란 계획은 서울의 총통위가 서울에서 내응을 하고, 정종이 있는 전라도 군사와 금성대군이 있는 경상도 군사가 수원에서 모이고, 김승유 자신이 강원도 영월에 있는 단종을 모시고 서울을 공략한다면 세조(수양대군)의 세력은 무너지고, 전국의 수양대군의 반대파와 유림들이 단종을 복위하는데 찬성할것이니 실패할 수 없다고 총통위 군사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이에 총통위 반란세력은 김승유가 김종서를 닮아 절묘한 계책이라며 김승유를 한층 띄워준다.


하지만, 김승유는 광주로 가는 도중에 세조와 신면이 퍼트린 세령공주가 신면의 노비가 되어 신면의 집에 잡혀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면의 집으로 빙옥관 사람들과 찾아간다.


김승유에게 필요한건 신면이 세령을 덮칠까하는 우려해서 신면의 집으로 찾아가 세령을 구하는 것이 우선일까? 아니면 정종을 찾아가 반정을 하는게 우선일까? 물론, 김승유는 신면과 세령이 결혼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세령공주를 수양대군 집 결혼식장에 침투해서 납치하는 만행도 저지른적이 있다. 신면의 집에는 수많은 군사들이  포위하고 있다. 달랑 3명으로 신면의 집에 들어가 세령을 구하는데 성공을 한다.


김승유의 수준이라면 신면의 집으로 쳐들어가는 것 보다는 궁궐을 넘어서 세조(수양대군)을 치는것이 더 빠를 것 같다. 정종과 함께 전라도, 경상도 군사를 몰아 수원에서 모여서 서울을 공략할 필요가 없을 텐데 말이다.


김승유가 세령을 구하여 한말에 두명이 말을 타고 광주로 떠난다. 작가는 주인공 말태우기에 습관화 된 것 같다. 한 마리 말을 타고 두 명이 광주까지 간다는 발상은 참으로 난감하다. 더군다나 신면보다 빨리 광주에 도착하기 까지 한다. 나르는 슈퍼보드라도 탔나? 한가한 사랑놀음 스킨쉽이 신면보다 더 빠르게 했다는 것인가?


어쨌든, 김승유가 세령을 구하고 떠나자, 신면은 빙옥관으로 가서 빙옥관 주인을 잡아들이고 빙옥관 주인은 김승유 너의 사랑만 소중하지 않고, 나의 사랑도 소중하다며 김승유가 정종이 있는 광주로 갔다고 까발린다.


결국에는 정종은 서울로 압송되어 거열형에 처해지고, 금성대군은 경상도에서 사약을 받고 죽는다. 강원도 영월에 있던 단종도 사약을 받고 죽는다.

김승유가 자신의 치기어린 사랑놀음에 민폐만 끼치지 않았다면 아버지도 죽지 않고, 정종도 죽지 않았을 것이고, 금성대군도 죽지 않고, 자신의 아버지 김종서가 단종을 지켜달라는 유명도 지킬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김승유는 하지 말라는 짓은 골라서 하는 청개구리였다. 사랑 때문에 아버지와 형을 죽였고, 결국에는 친구인 정종과 금성대군과 자신의 주군인 단종도 죽여 버렸다. 하지만, 김승유는 자신이 어떠한 잘못을 했는지 모르고 처형장에 찾아가 정종을 구하려고 하지만, 이미 정종이 죽고 난 후의 피 흔적만 바라본다.


다른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정종의 처형을 김승유만 모른다는 설정도 어설프기 그지없다. 김승유 같이 어설프고 민폐만 끼치는 인물을 세조와 대항하는 우두머리로 두고 있다면 그 조직은 해보나 마나 필패이다.  총통위 반란세력은 후사를 도모하기 위해서 이시애와 연합전선을 구축하는데 세령공주는 수양대군의 딸이기 때문에 안된다고 딴지를 건다. 주군 단종이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모자리들의 모임인 총통위와 민폐 김승유가 반란에 실패할것은 명확하다.


김승유는 이제 이시애가 있는 함경도로 떠나 반정을 도모하려고 한다. 분명히 예전부터 지금까지 한 것처럼 김승유가 이시애를 죽음으로 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좋게 이야기하면 김승유는 머피의 법칙에 빠진것이다. 그리고 신면이 세조에 버림을 받지만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려다 죽게 될 것이다.


공주의 남자의 작가는 김승유가 세조(수양대군)를 죽이고 조선의 왕이 된다는 설정을 하지 않는지 알수가 없다. 세조가 죽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세조가 왕인데 세조를 죽이면 역사와 다르기 때문인가? 최소한 큰틀에서 역사는 지켜야 하는 거라고 작가나 시청자가  생각했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그동안 공주의 남자가 지킨 역사적 팩트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역사를 망치는데 작가의 활약은 끝이 없었다.



실존인물 김승유가 계유정란이전에 죽었는데 계유정란에 나온다는 설정자체 부터가 실패한 설정이다.
 
김종서의 손자 김석동이 세령공주와 사랑을 하고 계유정란에 나온다면 그나마 역사를 망치지 않고 할수 있는 설정이였을 것이다.
 
2011/09/25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제작자 계유정란 김승유 3살? 그럼 김승유와 아들 효달이 동갑? 대략난감

경혜공주는 세종이 명하여 정종과 결혼을 한다. 그전에 세종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8째 아들 영흥대군(영응대군)을 정충경의 딸 정씨에게 장가를 보낸다. 정종은 평창군주(경혜공주)에게 장가를 가기 전에 이미 왕족의 일원이었다. 영흥대군은 어릴적 수양대군의 손에 큰다.


정종의 고모는 1407년 태종(이방원)의 둘째 효령대군에게 시집을 갔고, 정종의 누이는 세종의 영응대군에게 시집을 갔고, 정종은 문종의 큰딸 평창군주(경혜공주)에게 장가을 갔다. 공주의 남자에서처럼 아버지 정충경이 죽자 한미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3대에 걸쳐 왕가와 혼인하는 한미한 왕족을 본적이 있는가?

 

정종은 전국방방곡곡 재산이 없는 곳이 없었다. 경혜공주와 정종이 결혼한 후에는 더욱더 재산을 불려나갔다. 어린 동생 단종을 자기집에 모셔놓고, 권력형 비리 정점에 정종과 경혜공주가 있었다. 계유정란이 있던 때도 단종은 경혜공주의 집에 있었다. 반란에 연루되어 유배된 지역도 자신의 농장이 있는 통진이었을 만큼 정종은 끝없는 사랑을 받았다.


어쨌든,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의 뻘짓같은 세령 구하기로 인해서 정종과 금성대군과 단종이 죽었다.



정종이 서울로 압송된 때는 1461년 7월이었고, 3개월인 1461년 10월 20일 정종이 죽는다.  광주에 같이 있던 경혜공주는 3일후인 1461년 10월 23일에 아들 정미수와 함께 서울로 올라온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경혜공주가 정종이 압송되자 자기 마음대로 서울로 올라오는 것으로 그렸고, 이미 태어나 눈망울을 굴리고 있었을 정미수는 아직도 경혜공주의 배속에 있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사림파들이 경혜공주가 관노가 되었다는 유언비어와 정미수가 유복자였다는 설을 퍼트린다. 하지만, 알고보면 한심한 수준의 쌔빨간 거짓말이들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더욱 압권은 김승유와 정종이 전라도 군사와 금성대군이 있는 경상도 군사를 이끌고, 김승유가 영월에 있는 단종을 모시고 오겠다는 설정이다. 더군다나 세조의 맏아들 세자 숭(장)이 아픔에도 세령을 찾는다는 설정이다. 


김승유가 신면의 집에서 뻘짓을 하지 않고, 정종과 정상적인 반란을 한다면 김승유의 반정계획은 성공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을 조금 차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공주의 남자에서 수양대군(세조)는 정종을 죽이고 금성대군과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금성대군과 단종이 죽는 시점이 비슷한 건 사실이지만, 단종이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말은 세조가 죽어야 사는 사림이 퍼트린 유언비어인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1457년 6월 21일 단종의 장인 송현수는 권완과 단종복위를 꿈꾸며 반란을 획책하지만 들키고 만다. 이때 단종은 노산군으로 감봉되고 영월유배

1457년 6월 22일 단종 영월로 유배되다.


1457년 6월 27일 관노 이동이 금성대군의 모반을 아뢰다.

금성대군은 경상도에서 순흥부사(영주) 이보흠, 안순손과 반란을 획책하고 단종 복위를 꿈꾸지만 이도 들키고 만다.


1457년 9월 2일 세조의 세자 도원군 장(숭)이 죽는다.


1457년 10월 21일 결국 단종의 장인 송현수와  금성대군을 죽이라는 의정부, 사간원, 사헌부, 종친부의 압박에 세조(수양대군)은 송현수와 금성대군을 사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1457년 10월 21일 단종이 결국에 죽었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영월에서 보고가 올라왔다는 뜻은 단종이 그전에 죽었다는 뜻이다.


1457년 11월 18일 

종부시(宗簿寺)에서 아뢰기를,

“노산군(魯山君) 및 이유(李瑜) ·이영(李瓔)·이어(李)·이전(李瑔)·정종(鄭悰) 등은 그 죄가 종사(宗社)와 관계되므로 속적(屬籍)을 마땅히 끊어야 합니다. 청컨대 아울러 자손까지도 종친(宗親)에서 삭제하고 부록(附錄) 같은 데 기록하도록 하소서.”
 
1461년 7월 정종 광주에서 반란 계획이 들통남
1461년 10월 20일 정종 죽음
1461년 10월 23일 광주에 있던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와 서울로 돌아옴


<공주의 남자>에서 정종이 반란이 들킨 때는 1461년 7월이었다. 그러니 1461년 10월 정종이 죽고, 1457년 10월 금성대군이 죽고, 1457년 10월 단종이 죽을 수가 없다. 더군다나 1457년 9월 금성대군과 단종보다 먼저 죽은 도원군 장이, 정종이 죽은 이후에 세령공주를 찾을 수도 없다.

 

1467년 5월 16일 함길도 전 회령절제사 이시애가 반란을 하다. 이때 신면이 죽는다. 신면의 나이는 30살이었고, 신면에게는 두 명의 아들 5~6세의 신용관, 신용개가 있었다.

 

신면은 승지(承旨)가 된 지 5년이 되었어도 일찍이 과실이 없었으며, 임금의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 자못 자상하고 명확하였다. 죽을 때의 나이가 30이며, 아들이 둘이 있으니, 신용관(申用灌)과 신용개(申用漑)이다. - 세조 13년, 1467년 5월 22일


이때 신숙주와 한명회는 이시애의 반란에 연루되었다는 이시애의 반간계에 하옥되는 처지에 있었다가 신면이 반란을 진압하다 죽고나서 이시애에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풀려난다.


정종이 죽은 때는 1561년이고, 이시애의 난은 1567년 5월, 계유정란은 1553년이여서 세월은 화살처럼 빨리 지나간다. 어느덧 12년이 흘렀다. 하지만, 김승유의 조카 아강은 아직도 어린애에 불과하다. 충격을 먹어서 더이상 자라지 않겠다고 선언한 피터팬에 양철북의 꼬마를 생각하게 한다.

김승유와 세령은 30대 후반 노총각, 노처녀가 되었다. 신면은 아들이 둘이나 있는데 세령공주를 자신의 첩실로 들이려고 노력하고 있고, 세조는 신면에게 세령공주를 첩실로 넘기지 못해서 안달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신면은 한성부 판관으로 나온다. 1453년 계유정란 즈음에 김승유, 정종, 신면, 세령공주는 20살로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신면은 1438년생으로 15살에 불과했다. 수양대군이 신면에게 세령을 노비로 하사한 때인 1461년이면 신면은 24살이고 이미 아들 신용관을 임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공주의 남자> 결말에서 김승유가 반란에 성공해서 세조를 죽인다고 이상할 것이 없고, 오히려 공주의 남자답다고 하겠다.  세조가 죽어야 시청자들은 오르가슴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그리고 김승유가 세령과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앤딩이나 아버지가 죽은 세령이 결국에는 김승유를 떠나거나 죽거나 절로 들어가는 것으로 그린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먼저 김종서를 죽인 사람은 수양대군이니 김승유가 수양대군을 죽이고 왕이 된들 세령과 사랑은 변치 않을 것이다. 서로 비긴 것이니 말이다. 시청자들도 공주의 남자 결말에 김승유와 세령공주가 산에 들어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있기도 하다. 현재 공주의 남자 결말로는 신면도 죽고, 김승유도 죽고, 세령도 죽는 새드엔딩이 될것이 눈에 보이지만 말이다.
 


공주의 남자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가 역사인듯 말하는 사람이 늘어날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고 아직도 역사와 구분을 하지 못하고 미실이 어떻네 하는 사람들을 보면 웃지않을 수 없다.

지금도 공주의 남자를 보고 역사와 구분을 하지 않고, 신면을 비난하고, 세조를 비난하고, 사육신과 김승유가 한편이었는 줄 안다. 김승유와 정종, 그리고 사육신이 한편이라 설정은 김종서를 두번죽이는 것이다. 또한, 사육신을 두번 죽이는 것이다. 드라마가 역사가 되고 신화가 되어서 언젠가는 김승유는 사육신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을 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그와 반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은 드라마와 역사가 다르다는 점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래의 글들은 공주의 남자나 사극이 망친 역사를 바로잡는 글들 입니다. 최소한 드라마를 보더라도 역사를 알고 보면 재미가 극대화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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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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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05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크리스폴 2011.10.05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입니다..다만 아쉬운 것이 오타가 많네요..신경써주셨으면..백동수랑 광개토태왕에 대한 글도 써주셨으면..혹시 안 보시나요? ^^

  3. Favicon of http://www.starkdevelopmentinc.com/ BlogIcon General Contractors San Diego 2011.10.05 1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찬성할것이니 실패할 수 없다고 총통위 군사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이에 총통위 반란세력은 김승유가 김종서를 닮아 절묘한 계책이라며 김승유를 한층 띄워준다.


    하지만, 김승유는 광주로

  4. 2011.10.06 0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 사람들이 이걸보고 역사라고 믿는게 문제가 아니라 실제 역사자체에 관심을 안 갖는게 문제겠지요 ㅋ

  5. 공남폐인 2011.10.06 2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남 안보셧나바요 내용이 안맞네요 전혀ㅡㅡ 김승유가 사랑해서 가족이 죽다녀ㅡㅡ 일회부터 보시길...

  6. ㅓㅓ 2011.10.21 14: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를 보지 마세요.

  7. 뮤리엘 2011.10.30 0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에 관심이 많은건 잘 알겠는데요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고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입니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워낙 잘되어있어서 드라마를 보고 인터넷에서 사실여부를 찾아보는 활동도 활발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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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히 반박할려면 위처럼 일본의 수입조건과 한국의 수입조건이 다르다는 가장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하여야 한다.또한, 확율론적으로도 반론을 제기한것도 극히 위함한 발상이고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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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김승유는 광주로 가는 도중에 세조와 신면이 퍼트린 세령공주가 신면의 노비가 되어 신면의 집에 잡혀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면의 집으로 빙옥관 사람들과 찾아간다.

  19. Favicon of http://www.fremdgehen-heute.ch/ BlogIcon Heute Fremdgehen 2012.12.30 1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그와 반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 이글을 보는 사람은 드라마와 역사가 다르다는 점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래의 글들은 공주의 남자나 사극이 망친 역사를 바로잡는 글들 입니다. 최소한 드라마를 보더라도 역사를 알고 보면 재미가 극대화 됩니다.


<공주의 남자>에서 경혜공주는 문종 말년(1452년 경) 비루한 가문의 정종에게 시집을 간다.

 

<공주의 남자>에서 문종은 김종서와 밀약을 맺고 김종서의 막내 아들 김승유를 경혜공주의 부마로 세우려 했지만, 수양대군(세조)의 반대로 정종에게 시집을 가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경혜공주는 처음에 마지못해 맞이한 부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정종이 자신을 지키고 문종이 승하하고 단종이 왕위에 있었을 때에도 충실히 왕실을 위해서 노력하는 면에 점차 마음을 열고 자신의 배필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경혜공주는 문종과 현덕왕후의 소생인 경혜공주(1436년생)는 세종 말년 1450년 1월에 세자 문종의 맏딸로 평창군주 시절 15살에 영양위 정종에게 시집을 간다.


작가가 자신이 목적한 이야기로 이끌어 가려고 사실이 아님을 알고 서도 허위로 만든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설마 작가가 거짓말을 했겠어 하면서 드라마가 역사인것처럼 수양대군을 비난하고, 그에 비리 붙어있는 신숙주와 신면을 나쁜놈으로 몰아 세우고 비난을 한다. 이를 지적하면 왜 드라마와 역사를 구분하지 못하냐고 역성이다.
 


실질적으로 드라마와 역사를 구분 못하고 드라마의 설정을 역사로 알고 감정이입을 하면서 전혀 관련도 없는 자를 비난하면서 말이다. 


이와 비슷한 예가 예전이라고 없었겠는가? 정종, 경혜공주와 관련해서 이긍익이 채록한 연려실기술에는 다음과 같은 경혜공주이야기 전해진다.
 

정종(鄭悰)


본관은 해주(海州)인데, 문종의 부마(駙馬)이다. 경혜공주(敬惠公主)에게 장가들어 영양위에 봉해졌다. 시호는 헌민공(獻愍公)이다.
 

○ 공이 적소에 있다가 사사된 뒤에, 공주가 순천 관비가 되었다. 부사 여자신(呂自新)은 무인인데, 장차 공주에게 관비의 사역을 시키려 하니, 공주가 곧 대청에 들어가 교의(交椅)를 놓고 앉아서 말하기를, “나는 왕의 딸이다. 죄가 있어 귀양은 왔지마는, 수령이 어찌 감히 나에게 관비의 사역을 시킨단 말이냐.” 하므로 마침내 부리지 못하였다. 여자신은 뒤에 벼슬이 형조 판서에 이르렀는데, 여유길(呂裕吉)의 방조(旁祖)이다.

- 연려실기술(이긍익)
단종고사본말 정난에 죽은 여러신하



이긍익은 공자의 (<춘추>) 예를 따라 “술이부작”(전술하기만 하고 창작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더불어 연려실기술을 쓰는 이유는 “이는 널리 수집하여 후세에 완전한 글을 저술할 분에게 고징(考徵)의 자료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다만 듣고 본 것이 넓지 못하여 많이 빠뜨린 것이 한스러우니, 독자는 용서할지어다.


세조 2년 1456년 2월 처음 순천부사에 대한 언급을 하는데 세조가 순천부사를 추국한다. 어쩌면 관노로 떨어진 경혜공주에게 일을 시키지 못했다고 추국했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사육신 중의 한명인 유성원이 분사현집의로가 있었으니 경혜공주에게 일을 시킨 순천부사를 추국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순천부사가 추국을 당한 이유는 사람이 일을 부지런히 하지 않는다고 죽이고도 유성원이 국문하려고 하자 병을 핑계로 사직해 버렸기 때문에 추국하기를 상소한 것이다.

물론, 당연히 감히 경혜공주에 일을 시킨 여자신은 아니다. 이때 순천부사는 정유용이었다.

 

 

 


물론, 경혜공주가 관노로 강등된 때는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하고, 왕이 된 후라고 생각했다면 위의 기록은 아무쓸모도 없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한다.
 

전라도 분사헌 집의(分司憲執義) 유성원(柳誠源)이 아뢰기를


 ‘부사(府使) 정유용(鄭有容)은 박인(朴仁)이 사냥에 부지런하지 않았다 하여 죽이고, 사냥한 자에게 면포(綿布)를 징수하되 군사(軍士)는 사람마다 1필, 주리(主吏)는 사람마다 5필이었다고 하므로, 신(臣)이 국문(鞫問)하려 하니, 정유용은 질병으로 사직하였으므로 공사(供辭)에 관련된 사람을 국문하여 성안(成案)해 가지고 왔습니다.”

- 세조 2년 1456년 2월 24일



일단 세조시절 전라도 순천부사로 여자신이 있었을까?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여자신은 세조시절 등장하지 않는다. 여자신이 실록에 처음 등장할 때는 성종1년 1470년이다. 여자신의 활동무대는 성종시기라는 뜻이다. 처음부터 삐그덕 거리고 말았다. 여자신의 처음 이름은 여의보였는데 이름을 성종이 여자신으로 바꾸도록 하고 변방 도절제사가 되게 한다.


이름은 달라도 경혜공주가 관노로 떨어졌을 수도 있지 않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세조는 악당인데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경혜공주가 전라도 순천에 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관노가 된 적도 없다.


 



연려실기술의 시제는 정종이 죽은 이후, 경혜공주가 순천관노가 되고, 순천부사 여자신이 경혜공주에게 사역을 시켰는데 경혜공주가 반발했다는 것이다. 

키포인트는 정종이 죽은 이후가 된다. 정종은 1461년 7월 26일 반란에 연루되어 서울로 압송되고, 세조 7년 1461년 10월 20일에 죽는다. 세조는 광주에 남아 있는 경혜공주를 서울로 오도록 조치를 한다.


세조 7년, 1461년 7월 26일, 외인 중과 소통한 정종을 잡아들이게 하다.


세조 7년, 1461년 10월 20일,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서 상참(常參)을 받고 정사(政事)를 보았다. 좌의정 신숙주(申叔舟)·우승지(右承旨) 홍응(洪應)을 불러 정종(鄭悰) 등의 죄를 의논하여 결정하였는데, 정종과 그 일에 관여한 5인을 능지(凌遲)


세조 7년 10월 23일, 환관(宦官) 임용(林用)을 광주(光州)에 보내어 정종(鄭悰)의 아내를 데리고 오게 하였다.



정종이 죽고 3일 만에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경혜공주다. 순천으로 갈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경혜공주가  관노가 된적이 있을까?
 

1455년 11월 4일 정종은 자신을 수호하는 반인(군인) 김인을 나주와 광양으로 보내 조유례와 모의를 진행한다.는 남계상의 자복이 올라온다.


11월 9일 역모에 가담한 자들을 죽이라는 상소가 넘쳐난다.


다 죽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 애써 여러 사람의 논의에 따라서 그 더욱 중한 자를 가려서 교수형에 처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관노(官奴)로 삼아, 이로써 두 마음을 품었던 무리들을 징계하니, 지금부터 이후로는 새로운 괴이한 음모가 있는 것이 아니면, 논청하지 말도록 중외(中外)가 알도록 하라



연려실기술에 “경혜공주가 관노가 되었다“는 근거가 제시되는 것이다. 그럼 그렇지 정종과 경혜공주가 관노가 되었잖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프로파간다 이야기는 팩트와 허구를 가미해야 그렇듯하게 포장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악당 수양대군과 결합하면 파급력은 커진다.


하지만, 실제 관노가 된 이는 홍이로를 비롯한 사람들이지 수괴급에 해당하는 정종은 고신만 하도록 하고 있다.


11월 9일, 홍이로(洪利老)· 홍형로(洪亨老)· 홍원로(洪元老)· 강종산(姜從山)· 박오을미(朴吾乙未) 양자유(楊子濡)·홍승(洪昇)·홍적(洪適)은 각기 충군(充軍)한 곳에서 영구히 관노(官奴)에 정속(定屬)케 하며, 정종(鄭悰)은 고신(告身)을 거두도록 하라.


경혜공주는 관노가 된적도 없다. 정종의 유배지 광주에서 노비를 부리면서 그럭저럭 지낸다.

결론부터 말하면 경혜공주는 종친에서 삭제된다. 그래서 경혜공주를 서울로 불러들일때 경혜공주가 아닌 정종의 처(아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다.

 

1457년 10월 21일 , 이보흠, 송현수, 금성대군의 모의가 들키고, 단종의 장인인 송현수가 교형에 처해지자, 단종(노산군)이 자살했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1457년 10월 30일, 종친의 가장 큰 어른인 양녕대군 이제와 효령대군 이보가 종친들을 이끌고 들어와 금성대군과 관련된 종친들을 죽이라고 간언한다.


 

하지만 세조(수양대군)은 죽이지 않고 유배지의 보안을 철저히 하고 외부인과 접촉을 차단하는 것으로 끝낸다.


“안치(安置)한 이영(李瓔) ·이어(李) ·이전(李瑔) ·정종(鄭悰)에 대한 금방 조건(禁防條件)을 다음과 같이 하소서.

1. 난장(欄墻) 밖에 녹각성(鹿角城) 을 설치하소서.

1. 외문(外門)은 항상 자물쇠로 잠그고 조석거리는 10일에 한 차례씩 주며, 또 담안에 우물을 파서 자급(自給)하게 하고 외인(外人)으로 하여금 서로 통하지 못하게 하소서.

1. 외인이 왕래하여 교통(交通)하거나 혹 물품을 주는 자가 있으면, 불충(不忠)한 자에 견주어 논단하게 하소서.

1. 수령(守令)이 불시에 점검하고, 문을 지키는 자가 혹 비위(非違) 사실이 있으면 율문(律文)에 의하여 죄를 과단(科斷)하게 하소서.”


1457년 11월 18일

종부시(宗簿寺)에서 아뢰기를,

“노산군(魯山君) 및 이유(李瑜) ·이영(李瓔)·이어(李)·이전(李瑔)·정종(鄭悰) 등은 그 죄가 종사(宗社)와 관계되므로 속적(屬籍) 을 마땅히 끊어야 합니다. 청컨대 아울러 자손까지도 종친(宗親)에서 삭제하고 부록(附錄) 같은 데 기록하도록 하소서.”하니 이에 따랐다.



정종과 경혜공주가 종친에서  삭제된 때는 단종이 죽은 이후이다.

그리고 경혜공주는 관비가 되어 사역을 하는데 순천부사 여자신이 공주에게 사역을 시키려 했지만, “나는 왕의 딸이다“라면서 사역을 거부했다는 이야기다.

경혜공주의 기개와 배포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지만, 요즘으로 치면 죄를 짓고, 감옥이나 사역을 하는데 내가 누군 줄 알아 나는 누구의 아들이야, 딸이야 하는 철부지 같은 행동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경혜공주의 처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은 각자일 것이다. 단지, 이긍익이 채록한 연려기술위의 경혜공주이야기는 공주가 관노가 되고 겨우 부사인 사람한테 모욕을 당하다니 라는 목적만 달성하면 되는 이야기다.

문제는  <공주의 남자>를 보고 수양대군(세조)의 방해로 자신이 좋아하는 김승유와 맺어지지 못하였다고 수양대군을 비난하는 경혜공주와 닮음꼴이다. 더불어 이에 감정이입을 하고 세조와 신숙주, 한명회를 비난하는데 글을 낭비를 한다. 역사와 드라마를 혼동해서 무시하고 있다. 역사와 드라마를 혼동해도 이만큼 혼동할 수는 없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는 자료조사가 필수이다.


정종은 혜빈 양씨와 금성대군에 연루가 되어 처음 영월로 유배를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1455년 6월 11일(윤) 이날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양위를 하고 항복 선언을 한다. 


6월 18일 정종은 강원도 양근으로 유배를 명하지만, 경혜공주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자 수양대군은 정종이 서울에 있도록 조치를 한다. 하지만, 대간들이 끊임없이 정종을 유배시키라고 말하지만 세조(수양대군)은 정종은 문종의 맏딸인 경혜공주의 남편이다. 그럴 수 없다고 2달 동안 버팅긴다.


1455년 8월 13일, 경기 관찰사(京畿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정종(鄭悰)과 경혜 공주(敬惠公主) 및 데리고 간 노비(奴婢)에게 매월 양료(糧料) 를 주고, 형편에 따라 주육(酒肉)과 찬구(饌具)도 줄 것이며, 공주가 만약 서울을 왕래하고자 하거든 노비까지도 아울러 공궤(供饋)하도록 하라.”


금성대군 이유는 노비도 없고, 노비의 양료도 없는데 경혜공주와 정종만이 공적자금으로 술과 고기 등 모든 비용을 대주고 있다.


1455년 8월 15일, 유배지에 외인의 출입이 빈번하자 노비의 수효를 20인으로 줄이고 유배지 수원관할 내와 서울외 재산을 제외한 정종, 경혜공주의 재산을 몰수 한다. 하지만 실지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는다.


1456년 6월 2일 사육신의 단종복위 실패 사건이 터지고 난 이후 6월 26일 정종의 가산을 적몰하고 전국에 산재한 재산도 빼앗긴다. 공주의 남자에서 가난뱅이 정종으로 나오지만, 요즘으로 치면 전국 방방곡곡에 토지가 없는 곳이 없을 만큼 정종은 경혜공주와 결혼전부터 부동산 재벌이었다. 오히려 김종서의 집이 가난해서 계유정난이 터졌는데도 집밖에 없는 것으로 나온다.


계유정란으로 공신이 된 정종은 정란의 피화를 입은 사람들의 집과 토지(전지)를 하여받고, 노비도 하사 받는다. 사육신들도 정난공신이 되어 한 재산 불렸다.


1456년 6월 27일 사람들이 원활하게 접촉할 수 있는 경기일원에 두지 않고 멀리 유배를 보내고 사람들과 교통하기 못하도록 조치한다. 그리고 정종과 금성대군 등 반란에 가담한 종신들의 처첩을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 모여 살도록 조치를 취한다.

자신들이 필요한 곳에 모여살도록 했다고 노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금성대군 이유는 노비가 4명이고, 나머지 정종을 비롯한 이들에게는 노비가 3명이나 있었고, 모여 산 곳의 수령은 이들의 양식을 조달해야 했다. 더군다나 경혜공주는 정종이 있는 전라도 광주에 갈 때 교자를 타고 갈수 있는 특전까지 부여를 한다.


금성대군과 정종 종친들은 관할 관찰사들이 먹거리, 놀거리, 치료까지 해주어야 했다.


1458년 9월 5일 공조(工曹)에 전지(傳旨)하기를,

“이영(李瓔)3010) ·이어(李)3011) ·정종(鄭悰) 등과 그 처(妻)에게 매년 피혜(皮鞋) 2켤레씩 지급하라.”

하였다.


1458년 10월 19일, 승정원(承政院)에서 교지를 받들어 전라도 관찰사에게 치서(馳書)하기를,

“지금 정종(鄭悰)의 부처(夫妻)와 이영(李瓔) 의 부처에게 의복(衣服)과 신[鞋]을 내리니, 이를 전하여 주라.”

1459년 5월 29일, 금산(錦山)에 안치된 이영(李瓔) 과 그 아내, 광주(光州)에 안치(安置)된 정종(鄭悰)과 그 아내에게 3절기의 의복을 내려 주었다.


세조 7년 10월 20일 정종이 죽고, 경혜공주는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온다. 경혜공주는 서울로 올라온 후 궁궐을 수시로 출입한다. 그리고 세조 7년 12월 14일 중전은 왜 경혜공주를 박대하냐고 세조에게 한마디 한다.
 

세조 7년 12월 14일,

중궁이 임금에게 말하기를,

“영양위공주(寧陽尉公主)를 박대하여 버리는 것은 불가(不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바로 나의 마음이다”

하고, 곧 영의정 정창손(鄭昌孫)·좌의정 신숙주(申叔舟)·우의정 권남(權擥)을 숭문당(崇文堂)에 불러 의논하여 말하기를,

정종(鄭悰)의 처(妻)는 문종(文宗)의 적녀(嫡女)이며, 또한 죄가 없으니 내가 가사(家舍)와 전민(田民) 의 공늠(公廩)을 주고자 한다. 또 (금성대군) 이유(李瑜) 의 자녀(子女)에도 또한 마땅히 은혜가 있어야 하겠다.


세조 11년 1465년 4월 1일 “정종(鄭悰)의 자녀(子女)는 연좌(緣坐)하지 말게 하라.”


수양대군(세조)는 계유정난시 김종서와 황보인, 안평대군 등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사육신도 계유정란이 끝난후 관련자를 죽이라고 끊임없이 상소를 하였다. 사육신의 단종복위 사건에도 마찬가지다. 관련자들은 조그만 잘못이 있어도 효수가 되는 극형을 당하고, 관련 여자들은 어김없이 공노비가 되고 공신들의 노비가 된다.

하지만, 반란을 해도 살려주고, 살려주고 끝없이 살려준다. 그 안에 정종과 경혜공주가 있다. 일반인으로 계유정란 관련이나 사육신 관련자였다면 경혜공주는 죽어도 몇번은 죽었을 것이고, 관노가 되거나 공신들의 노비가 되어도 수백번은 되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왕족으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세조의 끊임없는 족친에 대한 사랑을 볼수가 있다. 아무리 악당이라도 자기 자식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다. 더불어 근친에 대한 사랑은 한이 없다. 세조도 딱 그 수준이다.

오히려 계유정란이나 사육신관련자에 비해서 차별대우를 받은 이는 경혜공주다. 세자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 문종이 왕이 되고, 자신은 공주가 되었고, 동생인 단종이 왕이 되자 수없이 재산을 불려나간다. 요즘으로 치면 권력형 비리의 정점에 정종과 경혜공주가 있었다.  

반란을 하더라도 특별히 차별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경혜공주는 한없이 불행한 삶을 살아간 것은 맞다.

연려실기술의 경혜공주 관노비 이야기가 전해지는 이유는 세조는 나쁜놈이고 이에 반하는 경혜공주는 절의가 있고 절개가 있다고 알려주기 위한 유언비어성 목적을 가지고 있는 글이다. 더불어 세조(수양대군)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질녀인 경혜공주를 관노로 만들다니 정말 인정사정없는 놈이구나라고 생각했다면 이긍익이 채록한 이야기는 프로파간다(선동)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경혜공주의 관노비설은 안정복의 순암집에도 나온다. 다만 이긍익의 연려실기술과는 다르게 순암집에는 장흥관노비가 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소릉의 어머니 최씨(崔氏)와 소릉의 아우 권자신(權自愼)이 처형되었으며, 영양위(寧陽尉) 정종(鄭悰)이 처벌당했으며, 경혜공주(敬惠公主)가 장흥(長興)의 관비(官婢)가 되었으며, 심지어는 단종(端宗)의 왕비(王妃) 송씨(宋氏)까지 관비로 되었습니다.  - 안정복 순암집


차라리 1461년 7월 정종이 반란에 연루되어 광주에서 서울로 압송되자 1461년 10월 23일까지 광주에 남아 있던 경혜공주를 전라도 광주부사가 경혜공주에게 불쾌하게 대했다고 한다면 3개월의 공백이 생겨 검증불가능한 조금더 완결성있는 사림의 프로파간다 드라마가 되지 않았을까?

제발 드라마를 보고 역사인것 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신숙주의 아내 윤씨가 사육신 편에서 자살했다는 유언비어도 돌아다니고 있다. 2011/09/26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신숙주 처 윤씨 사육신 편에서 자살했나? 사실은 방개떡 고사 이도 사실은 아니다. 배신자 신숙주를 죽이고자 하고 아내보다 못한 신숙주를 만들고 싶어하고 명분을 축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만든 허구이다.

사람이 믿는 거짓말은 작은 팩트에 커다란 거짓말이 포함되야 믿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극대화한 인물이 히틀러와 괴밸스다. 더군다나 악당의 전형인 세조나 신숙주에게는 진실도 필요가 없다. 어짜피 욕하기 위해서 만든 이야기인데 믿거나 말거나의 범주를 벗어난것이다.

단지, 욕하기 위해서 만든 허구인데 믿는 사람이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이만 바보일 뿐이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가장 좋은건 시류에 같이 뭍어가는 것이다. 진실이 아니더라도 같이 욕할땐 같이 욕하고, 같이 웃을땐 같이 웃어주는 것이다. 이에 반발하면 바보되는건 일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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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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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toyvillage.net BlogIcon 라이너스™ 2011.09.28 08: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를 위해... 역사와 허구를 섞은듯.^^;
    잘보고갑니다.

    • Favicon of http://license119.com/newki BlogIcon 자격증무료자료받기클릭 2012.05.27 1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경혜공주글 잘 보았습니다.. 아래 자격증관련 정보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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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의문 2011.09.28 2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 아~ 아~ 애달퍼라 수양대군이여~ 조카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리오~]

    라는 결론이군요.

    아무리 수양대군이라 하더라도, 종친을 함부로 못한 것은 그의 힘의 원천 또한 종친이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모순적인 힘인거죠.
    이를 감안하여 역사 기록을 살펴보신다면 조금은 다른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11.09.29 04: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은 저보고 신하와 종친이 다 죽인것이지 세조(수양대군)이 죽이지 않았다는 결론을 낼거라고 댓글 달지 않았나요?

      이제와서 수양대군이라도 종친을 무시할수 없었다고 말하면 어쩝니까? 정종과 안평대군, 금성대군, 어어, 기타 등등을 종친부에서 나서서 죽이라고 사주를 하기는 합니다. 그전에 요지부동인 수양이 마지못해 따라했다고 실록은 기록하고 있지만 말이지요.. 님의 말씀중에 다양하게 역사를 살펴보신다면 다른해석도 가능하다는 말씀은 동감합니다. 제글은 그런 글이 다수를 차지하고, 그에 맞추어 글을쓰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사육신관련해서 후세에 과도한 영웅만들기 작업엔 별로 동감이 안가더란 말씀이지요..

    • 의문 2011.09.29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 글을 잘 못 이해하셨군요.

      님의 글을 읽다보면, TEXT를 그 중에서도 조선왕조실록만을 무조건 믿는 경향이 있어서 그 기록대라면,

      [엄청나게 불쌍한 수양대군 및 친족을 무지하게 사랑하는 수양대군]

      이란 결론에 이를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명백하게 님의 글은 그 방향으로만 흐르고 있고 말입니다.

      따라서,
      [수양대군이 종친을 열라기 사랑해서] 그런 기록이 나왔다는 님의 글에 리플을 달고 있는 거죠.

      전 [수양이 종친을 열라기 사랑했다]라는 기본전제에 동의하지 못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를 교묘하게 [내 주장과 같군요]라고 하신 건 유감이군요. 오해하신 거라면 지금이라도 정정하세요.

      그럼 [수양대군이 종친을 무시하지 못했다.]라는 부분에 대한 제 뜻을 설명드리지요.

      이는 [군대]로 권력을 잡은 자가 [군대]를 못 없애는 것과 같으며,

      중이 제머리 못 깍는 것과 같으며,

      역사학자가 자기가 연구한 역사를 전면 부정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수양대군의 찬위는 [그 역시 왕가의 자손]이 아니었다면 사실상 혁명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대로 단종, 문종, 세종, 태종, 태조의 계보를 계승합니다.

      따라서 그는 종친을 부정할 수가 없으며, 사육신들과 같은 급으로 취급할 수도 없습니다. 계보를 계승하려는 욕심이 있는 한은 말입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신하들로 하여금 없애게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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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경혜공주는 문종과 현덕왕후의 소생인 경혜공주(1436년생)는 세종 말년 1450년 1월에 세자 문종의 맏딸로 평창군주 시절 15살에 영양위 정종에게 시집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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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세대 사학자들은 화랑세기를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기도 하며, 화랑세기를 위작이라고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화랑세기를 대 놓고 인용하지는 않지만 논문에 은연중에 화랑세기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광개토태왕은 고증은 필요없는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 사극에서 고증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남녀간의 사랑? 아니면 작가의 개연성없는 이야기? 아니면 역사를 망치고자 하는 심려한 배려인가?


제작자는 고구려 갑주 복식에 대해서 왜 고증을 따르지 않느냐는 말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힘들어 해서라는 말로 듣는 이에게 남감함을 주었었다.


고구려 군인들은 배우들의 잠시 촬영에도 힘든 복식을 하고 전쟁에 참가했다는 것인가?


요즘 사극에서 예사로 나오는 말들이 있다. 배우들은 말을 타고 질주를 한다. 그런데 등장하는 말들이 하나 같이 고구려에서 타던 말이 아니다. 고구려 말을 구하기 어렵다면 말을 하지 않겠다. 고구려 말은 언제든지 구할수 있다.


고구려 말은 말 등의 높이가 3척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3척마라 불리웠고, 말 등의 높이가 낮아 나무 밑도 통과할 수 있다고 해서 과하마라고 불리웠다.


이런 말을 대한민국에서 구하기 어려울까? 하지만, 현재도 너무나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말들이 고구려 말들이다. 제주도에 가면 널린게 고구려에서 타던 말들이다. 이름하여 조랑말이 고구려인들이 타던 말들과 혈통적으로 유사하다. 제주도 조랑말이 몽골말로 조상들이 타던 말들과 달랐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몽골말은 안 되고 서양식 말은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고려시대 몽골침입에서도 몽골인들은 서양말을 타고 있다는 것도 웃기고, 조선시대 청(후금)나라 침입 때 청군이 서양말을 타고 있는 것도 웃기기는 마찬가지 이다.
 

 


사실 몽골족의 출자는 고구려와 같은 <부여>다. 부여가 망하자 부여의 일족이 북서쪽으로 도망하여 실위족이 되고, 실위족의 일족이 서쪽으로 가서 몽골족이 되었다.
 

2011/08/08 - [역사이야기] - 광개토태왕, 대무신왕의 신마 거루는 어디가고 제왕지마가 한혈마?

그런데 왜 사극에는 말등이 높은 서구식말을 타고 다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사극 제작자는 조랑말이 화면발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극을 만드는 사람들 스스로 조랑말 타던 선조들의 역사를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조랑말 타는 선조를 가졌다는 것보다는 고증은 무시하지만, 말의 덩치가 크고 화면발이 좋은 늘씬한 쭉쭉빵빵 말을 타야만 하니 말이다. 그런 자들이 역사의식을 고취하고 조상들의 삶을 그리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고증을 무시하고 의복양식 고증도 무시를 한다.


지금까지 나온 사극 중에서 같은 시대 같은 나라를 사극화 하면서 같은 복식이 등장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는 제작자들이 고증은 안중에 없다는 반증이다. 단지 이전 사극과는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고증이 된 복식을 사용하면 사극을 만들 때 제작비가 절감되는 효과가 있다. 재사용된 복식으로 절감된 제작비는 사극의 내실을 보다 충실히 할 수 있는데도 자기들 멋대로 정체불명의 복식을 만들어 낸다.


매번 새롭게 만들어진 복식들은 사극 제작비 상승을 부채질 한다. 그리고 전투신을 보면 제작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수만, 수천이 부딪히는 전투신도 수십 명 많아봐야 100여명이 농성전을 하거나 전투신을 보여주고 있다. 최소한 비슷하게 재현은 못할망정 조상들이 애들 닭쌈 같은 전투를 했다면 웃어넘기기 힘들 것이다. 차라리 대사처리로 전투신을 때우는 게 나을 정도이다. 


그런데 유독 말은 공히 서구에서 들어온 말들뿐이다. 말들은 제작자의 자존심이 없어서 같은 말들을 사용하는 것인가?



사극을 보고 있노라면 시대와 상관없이 군인이나 무사나 신발은 굽이 있는 가죽신을 신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도대체 굽있는 전투화가 당시에 가능했겠는가? 더군다나 굽과 바닥에는 미끄럼방지 홈도 나 있는 첨단 제품들이다. 아마도 조상들은 첨단을 지향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배우들 편하라고 현대군인들이 사용하는 베레모나 전투복, 전투화는 등장하지 않는 것일까?  


제작자들은 자신들이 복식을 재현했다고 말을 하고도 당시 복식과 싱크로율은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고구려의 경우는 당시 복식과 가옥구조, 성채를 알 수 있는 벽화가 너무나도 많이 있다. 그런데도 고구려식 복식을 찾는게 더 힘들다.

한마디로 국적을 알수 없는 나라의 상상속 이야기 일뿐이다. 단지 이름만 고구려 담덕이고 고구려군일 뿐이다. 아마도 제작자의 상상속의 나라이거나 작가나 제작자가 원하는 나라일 뿐이다.


이런 것은 애교 수준이다. 복식이나 장신구, 주택, 성 등 시대적 고증도 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고증은 문헌고증이다.


대한민국 사극에서 가장 부족한 건 다름이 아닌 문헌고증이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노예의 삶을 살아야 하고, 여인들은 여인 무사도 등장해야 한다. 계백에서도 의자의 비가 되는 은교가 상단의 대행수로 나온다. 여인들 또한 상업에 종사를 해야만 하는 불문율까지 있다. 노예처럼 밑바닥 인생을 살지 않으면 사극의 주인공으로서는 낙제점이다.


계백에서도 계백은 신라에서 노예생활을 해야되고, 특히 김유신과 마지막 일전을 벌렸기 때문에 어릴적부터 김유신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연개소문에서도 연개소문은 김유신의 집에서 노비생활을 한다. 광개토태왕에서 담덕도 노예로 팔려가 로마시대 검투사가 되어야 한다. 역사적인 개연성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단지 작가들은 최소한 노비나 노예가 되어보지 못한 왕이나 여왕이나 장군은, 장군도 아니고 허접한 영웅일 뿐이다. 자신들이 재조명하겠다고 하는 사극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생각해도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들 사극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만 바꾸면 조선시대의 사극인지, 고려시대 사극인지 고구려, 신라, 백제를 다루는 사극인지 거기서 거기일 뿐이다. 담덕에서 담덕을 계백이나 의자로 바꾼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


어쨌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광개토태왕에서 담망이 담덕을 위해서 대신 화살받이를 하고 죽어버린다. 그리고 담덕이 태자가 된다.


당시에 담덕 위로 형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기록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작가의 상상력으로 담덕위로 형이 있을 수도 있고, 담덕이 태자가 되기 전에 죽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세종대왕처럼 형들인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왕위를 양보했을 수도 있다. 이는 작가의 상상력의 영역이다.

3년(386) 봄 정월에 왕자 담덕(談德)을 태자로 삼았다.
가을 8월에 왕은 군대를 내어 남쪽으로 백제를 정벌하였다.
- 삼국사기 고국양왕 3년


다만 담덕이 태자가 언제 되었는지는 알 수 있다. 담덕은 486년 태자가 되었다. 이는 불변의 팩트다. 한가지 오류가 있다면 삼국사기(392년)와 고대 금석문(391년)과 1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쨌든 391년 18세에 왕이된 담덕이다. 486년 담덕의 나이는 13세에 불과 했다. 이태곤이 13살 담덕을 소화하기에는 불가능하다. 그것도 무슨일만 생기만 앞뒤 분간없이 버럭되는 버럭 담덕이라면 말이다.
 

 

 

遝至十七世孫國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二九登祚號爲永樂大王恩澤洽于皇天武威振被四海掃除▨▨庶寧其業國富民殷五穀豊熟昊天不」

卅有九寔駕棄國以甲寅年九月廿九日乙酉遷就山陵於是立碑銘記勳績以示後世焉其詞曰」


18세에 왕위에 올라 칭호를 영락대왕(永樂大王)이라 하였다.

-중략-
하늘이 (이 백성을) 어여삐 여기지 아니하여 39세에 세상을 버리고 떠나시니, 갑인년(甲寅年) 9월 29일 을유(乙酉)에 산릉(山陵)으로 모시었다. 이에 비를 세워 그 공훈을 기록하여 후세에 전한다.

- 광개토태왕비


2011/08/07 - [역사이야기] - 광개토태왕, 담덕 29살에 왕위에 올랐다? 이팔청춘은 28세인가?

더군다나 12살 담덕이 485년 요동성 전쟁이나 기타 전쟁터를 누빌 어떠한 가능성도 없다. 이는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다.  불가능한 도전을 할려면 그만한 합당한 장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사극에서 장치를 만들기는 힘들다. 단지 SF물이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12살 왕자 담덕이 갑주를 입고 전쟁에서 야전생활을 했다면 당시 고구려는 볼짱다본 수십명 단위의 씨족 사회일 것이다.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김유신은 9살에 603년 고구려와 신라의 북한산성 전쟁에도 참가를 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김유신과 공주가 아막성 전투에도 참가를 한다. 물론, 남장한 공주이지만 말이다. 이는 여자인 공주가 전쟁에 참가할 장치로 남장이란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아막성 전투는 남장을 하더라도 참전이 불가능하다.


아막성 전쟁은 602년에 백제와 신라간에 벌어진 전쟁으로 김유신의 나이 8살 때였다. 하지만, 모두 성인 김유신이 참전을 한다.


아무리 어린나이부터 전장에 나가야하는 고대 사회였다고 해도 소년병을 넘어서 아동에게 전쟁에 참전을 시킬 만큼 고구려나 신라 백제가 아동 학대나 다름없는 막장의 나라들은 아니었다. 이를 두고 문헌고증을 무시한 한 사례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드라마 광개토태왕에서 처음 시작할 때 요동성으로 연나라 군대가 침입을 한다. 이때 담덕의 계략으로 요동성을 지키고 연나라로부터 전쟁 배상금까지 받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는 역사 왜곡에 지나지 않는다.

고국양왕때 요동성을 두고 전쟁은 2번있었다. 1차 전쟁은 고구려가 연의 현도와 요동성을 공격하여 빼앗고, 연이 빼앗긴 현토와 요동성을 되찾는 2차전쟁이다.

2년(385) 여름 6월에 왕은 군사 4만 명을 내어 요동을 습격하였다. 이에 앞서 연나라 왕 [모용]수(垂)가 대방왕 [모용]좌(佐)에게 명하여 용성(龍城)에 진주하게 하였다. [모용]좌는 우리 군대가 요동을 습격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사마(司馬)학경(郝景)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게 하였으나, 우리 군대가 그들을 쳐서 이기고, 마침내 요동과 현도를 함락시켜 남녀 1만 명을 사로잡아 돌아왔다.

 

겨울 11월에 연나라의 모용농(慕容農)이 군사를 거느리고 쳐들어 와서, 요동·현도 2군을 다시 차지하였다. 처음에 유주(幽州)와 기주(冀州)의 유랑민들이 많이 투항하여 왔으므로, 모용농이 범양(范陽) 사람 방연(龐淵)을 요동태수로 삼아 이들을 불러 위무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고국양왕 2년 385년



고국양왕 2년 여름 6월에 연나라의 요동과 현토 습격하여 남녀 1만명을 사로잡아 돌아왔다. 하지만 겨울 11월 연나라 모용농이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가 복속시킨 요동과 현토 두성을 회복시킨다.


384년 연을 세운 모용수는 385년 당시 60살이었다. 또한, 연의 모용수가 직접 군대를 끌고 오지 않고, 모용수의 아들 (모용보의 이복형제) 모용농이 요동과 현토 2군으로 쳐들어 왔다. 담덕이 연왕 모용수를 만날 가능성은 없다. 담덕이 후연의 궁성에 침입하지 않는 다면 말이다. 더군다나 모용수가 황제를 칭한 때는 담덕이 태자가 된 때와 같은 386년이었다.

드라마 광개토태왕은 작가의 희망 사항을 집어넣은 것이다. 당시에 요동성은 연나라가 아닌 고구려의 것이 여야 했고, 침략한 연나라가 전쟁배상금 까지 받쳐야 했다는 환상은 요즘의 일본의 독도역사 왜곡이나 중국의 동북공정만큼 무지를 넘어서 만행에 가깝다.


작가의 역사를 무시한 망상은 침략한 연나라가 전쟁배상을 해야 한다는 당위를 만들었고 이를 보고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고구려가 전쟁배상금을 연나라에 주어야 한다는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동성은 언제 고구려에 완전히 귀속되었을까? 담덕이 왕위에 오른 후 광개토태왕 때이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포스팅 할 예정이다. 
 


드라마 광개토태왕에서 385년 요동성 전쟁이 끝나고, 담덕이 노예상에 팔려가 로마 검투사가 된다. 그리고 담덕은 말갈부족장 설도안과 같이 탈출하였다. 이때 노예상에 있던 후연의 모용희와 칼춤을 추고 모용희에게 상처를 남긴다. 모용희는 모용보의 뒤를 이은 후연의 마지막 황제였다.


이때 모용희의 나이는 몇 살이었을까? 모용희는 385년생이었다. 담덕의 나이 12살에, 모용희는 갓 태어나자마자 요동성 전쟁에 참전하고, 고구려 동쪽 책성에서 칼부림을 하고 있다. 모용희의 나이는 고사하고 고구려 서방에 있던 후연의 왕자가 고구려 동쪽 책성에 함부로 움직일 만큼 고구려는 하찮은 나라가 되어 버렸다. 


광개토태왕이 작가가 보기에 허구로 만들만큼 허약한 군주는 아니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도 충분히 광개토태왕은 훌륭하게 재조명할 수가 있다. 사극이라면 최소한의 문헌고증은 기본이다.

기본에 충실하지 않는 사극은 시청자를 무시하고 우롱하는 것 밖에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광개토태왕에 대한 모독이고 스스로 역사를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보다 담덕이 부끄러워 소중한 수신료로 담덕을 펌하해 개차반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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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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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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