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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
계백>에서 의자왕이 은고와 계백의 사랑을 시기하고 질투해서 은고의 목씨일가를 몰살시키고 비로서 취한다.

 

은고는 의자왕이 자신을 취하려고 자신의 일족인 목씨를 죽였다고 원수를 갚으려고 계백과 힘을 합치려 하지만, 계백은 은고의 계략이 말려들지 않는다.

 

은고는 연태후를 죽이고 자신의 아들 부여 효를 태자로 세우려 하지만, 계백이 눈치를 까고 연태후 시해사건은 묻히고 만다.

 

은고는 계백이 자신의 아들 부여효를 태자로 내세우지 않았다고 의자왕과 같이 계백을 없앨 궁리를 한다.

 

<계백>에서 은고는 의자왕의 빽을 믿고 점차로 마녀로 변하고 있다.

 

드라마 <계백>이 백제의 마지막 황후 <은고>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드라마 내에서도 은고에게 왕후가 되지 않는다면 백제가 망하지 않을거라고 말을하지만, 이미 드라마도 백제가 망한 이유는 은고가 욕심을 부려 왕후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은고는 악녀가 되어야 할까?

 

은고는 실존인물로 일본서기에만 기록으로 남아 있다. 더군다나 일본서기에는 백제가 망한 이유를 의자왕에게 찾지 않고, 의자왕의 처 은고에게 원인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계백>에서 은고가 점점 변하고 백제를 멸망에 이르게한 구미호가 될 것은 자명해 보인다. 하지만, <계백>에서 은고처럼 계백의 여인이고 643년 즈음에 아들 부여효가 어린 나이일 수는 없다. 은고를 부여효의 어미로 그린이유는 삼국사기의 백제 멸망시 부여효가 태자로 의자왕과 함께 웅진성으로 피했다는 기록때문이다.

 

하지만, 삼국사기를 제외한 어떠한 사서에도 백제 마지막 황태자로 부여효로 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신당서, 삼국유사, 유인원기공비(663), 소정방대당평제비(660), 일본서기에 모두 백제의 마지막 태자를 부여융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인원 기공비


삼국사기의 사비(부여) 궁성내에 부여융과 부여문사의 대화는 후대에 잘못 전승된 기록이다. 부여 융이 아닌 의자왕의 수 많은 왕자중에 일인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부여융은 의자왕과 함께 웅진(공주)로 몽진을 떠났기 때문이다.

 

<일본서기>에 은고에 대해서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어떤 사람은 百濟가 스스로 망하였다. 임금의 大夫人이 요사스럽고 간사한 여자로, 무도하여 마음대로 국가의 권력을 빼앗고 훌륭하고 어진 신하들을 죽였기 때문에 이러한 화를 불렀다. 삼가하지 않을 있겠는가. 삼가하지 않을 있겠는가 하였다.

 

11 1일에 將軍 蘇定方 등이 사로잡은 百濟王 이하 太子 隆 등 여러 왕자 13, 大佐平 沙澤千福·國辨成 이하 37, 모두 50여 명을 朝堂에 바쳤다.

 

[百濟王 義慈, 恩古, 아들 , 신하 佐平 千福, 國辨成, 孫登 모두 50 명이 가을 7 13일에 蘇將軍에게 사로잡혀 唐에 보내졌다.


 

일본서기에만 은고가 요사스럽고 간사한 여자로 무도하여 마음대로 국가의 권력을 빼앗고 훌륭하고 어진 신하들을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을까? 삼국사기에는 어진신하를 죽인 주체로 의자왕을 지목하고 있지만, 일본서기와 비교해 보면 실질적으로 백제 말년에 왕권을 쥐고 있던 이는 의자왕이 아닌 은고임에 분명해 보인다.

 

또한, 삼국사기에도 은고를 은유해서 표현한 부분이 있다. 만약, 그 동안 알고 있던 김부식이 사대주의에 신라의 시각에서 백제를 기술했다면 은고를 비난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사실 김부식은 신라의 선덕여왕에게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고사를 들어서 비난하기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백제의 의자왕에게는 해동증자로 추앙하기까지 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멸망한 나라 말왕의 기록은 비참하지만, 의자왕을 비난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계백>에서 계백이 의자왕을 찾아가 옛날의 의자왕으로 돌아오라고 말을 하지만, 실제이를 실천한 이는 성충이다. 다시금 드라마 계백은 남의 전공을 계백이 한일로 미화시키고 있다. 사실 계백은 660년 7월 9일 딱 한부분에 등장한 인물로 전쟁에 그리 뛰어난 전공을 세운 전력도 없고, 오천이나 되는 백제의 대군을 운송부대 잡병수준에 불과한  신라군에게 대패를 한 장군이고 단지 백제 마지막을 장식하는 순간의 전쟁에 죽었기 때문에 추앙받는 것이다.

오히려 김부식을 비난하지만, 김부식의 농간에 놀아난 꼴이다. 사실 사대주의나 유교관에 입각한 역사관이 아니더라도 계백은 충신으로 추앙받아야 하지만, 그의 성과에 비해서 과도한 추앙을 받는것 또한 사실이다.
 

어쨌든 삼국사기에 은고에 대한 기록을 추측할 수가 있다.

 

16(656) 3월에 왕은 궁녀(궁인)와 더불어 주색에 빠지고 마음껏 즐기며[淫荒耽樂] 술마시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좌평 성충(成忠)<혹은 정충(淨忠)이라고도 하였다.>이 극력 간언하자 왕은 분노하여 그를 옥에 가두었다. 이로 말미암아 감히 간언하는 자가 없었다. 성충이 옥중에서 굶어 죽었는데[瘐死] 죽음에 임하여 글을 올려 말하였다.

 

17(657) 봄 정월에 왕의 서자(庶子) 41명을 좌평으로 삼고 각각에게 식읍(食邑)을 주었다.

 

19(659) 2월에 여러 마리의 여우가 궁궐 안으로 들어왔는데 흰 여우 한 마리가 상좌평(上佐平)의 책상[書案] 위에 앉았다.

여름 4월에 태자궁의 암탉이 참새와 교미했다.

 

더군다나 소정방의 대당평제비에도 은고가 백제를 치는 명분으로 삼고 있다.

하물며 밖으로 곧은 신하를 버리고 안으로 요망한 계집을 믿어 오직 충성되고 어진 사람한테만 형벌이 미치며 아첨하고 간사한 사람이 먼저 총애와 신임을 받아 표매(標梅)에 원망을 품고 저축(杼軸)에 슬픔을 머금는다.


시실 <계백>에서 은고가 목씨로 나오지만, 사택씨이거나 국씨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백제로 끌려간 대좌평에 사택천복과 국변성이 제일먼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삼국사기에서 656년 좌평 성충이 주색에 빠진 의자왕에게 간언하다가 옥에 갇히고, 옥에서 옥사를 한다. 일본서기는 이 사건 이후 더 이상 어진 신하들이 나설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삼국사기에는 여러 마리 여우가 궁궐 안에 들어왔는데 흰 여우가 상좌평의 책상 위에 앉았다. 기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태자궁 (부여 융)의 궁에 암탉이 참새와 교미하였다며 은유적으로 여인들이 백제를 좌지우지 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정림사지 소정방 대당평제비


여인들이 백제의 국정을 농단한 또 다른 증거는 657년 정월 왕의 서자 41명을 좌평으로 임명한 것으로 봐서도 쉬이 짐작이 된다. 그 동안 이 기술은 왕권강화정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꼭 왕권강화책으로 보기에는 이전 의자왕이 궁인들과 놀아나고, 암탉이 참새와 교미하고, 여러 여우들이 궁궐에 침입했다는 기사나 흰여우(白狐)가 상좌평이 해야 할 업무장소인 책상 위에 있었다는 기사를 보면 특히 흰 여우로 상징되는 늙은 은고(恩古)가 국정을 장악했다고 할 수가 있다.
 

측천무후

황극,제명 동일인물

선덕여왕


삼국사기, 일본서기, 소정방의 대당평제비 등의 사료를 검토한 결과 은고에게 백제 멸망 책임 일부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백제는 은고가 당나라는 측천무후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측천무후로 인해서 전당은 망한다. 백제가 망한 이유를 은고에서 찾는것과 별반다르지도 않다.

은고가 백제의 국정을 농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나라의 측천무후(654년~이후)를 롤모델로 했거나, 신라의 선덕여왕(632~647년), 진덕여왕(647~654년)을 롤모델로 했을 수도 있다. 더불어 백제 멸망시 왜에는 (황극642~645,제명: 655~661)이 여왕으로 있었다. 어쩌면 은고는 여왕이 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당시 동아시아(신라, 당, 왜)는 여인천하였으니 말이다.
 
<계백>에서 개연성 없는 계백, 은고, 의자왕의 삼관관계보다는 좀더 스케일 있게 은고가 백제를 집어삼키려한 이유를 주변국의 여인들에서 찾는게 더 개연성이 있지 않을까?

 


<계백>에서 은고는 첫사랑에 실패하고, 자신의 자식 부여효를 태자로 세우려하지만, 믿었던 계백이 등을 돌리고 변심을 하자, 계백과 성충과 흥수를 몰아내고 백제를 치마폭에 넣으려 한다는 사랑이 없으면 돈이고, 권력이라는 단순한 생각의 작가가 창조한 허술한 구성이지만, 개연성과 리얼리티가 없다. 만약, <계백>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처음부터 은고와 계백은 불륜관계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644년 의자왕 4년 태자가 되는 이는 부여융이고, 백제가 멸망한 660 7월에 태자도 부여융이기 때문이다. 역사란 교차검증을 해야 하는데 부여 효가 태자였다는 기록은 단지 삼국사기 한곳에만 있기 때문이다.

현재남아 있는 삼국사(삼국사기)1145(인종23) 삼국사기의 초본이 아닌 그로부터 400년이 흐른 후 1512년 정덕본이나 1537년 옥산서고본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덕본을 만들 때 삼국사의 많은 부분이 망실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한마디로 <계백>에서 은고와 계백과 의자왕의 삼각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여융은 단지 당나라에 볼모로 보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양자가 되어 버렸지만, 부여융이나 부여태, 부여효, 부여풍() 등은 은고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계백>에서 부여융을 양자로 만든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부여융은 615년에 태어나 682년에 죽었기 때문이다. <계백>에서 은고나 계백 612년에 태어난 것으로 설정을 하였는데 615년에 부여융을 낳을 수는 없으니 부여융을 없는 자식취급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최소한 시나리오를 쓸 때 좀더 신중하게 써야한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실시간 시나리오 작가를 양성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더불어 <계백>에서 부여융을 양자로 만들고, 부여태를 장자로 부여효를 차자로 만들었지만, 왕실에서 장자, 차자의 개념은 정비를 기준으로 한다는 일반론을 무시하고 있다. 백제본기에도 의자왕이 서자 41명을 좌평에 임명했다고 한 이유는 정비의 아들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서기에는 당으로 끌려간 왕자들만 해도 태자 부여융을 비롯한 13명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백제본기나 신당서에도 사비에 웅거한 부여태를 둘째 왕자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니 드라마 <계백>이 자신들의 극 전개상 맞지 않는다고 부여태를 장자로 만들고, 부여효를 차자로 만든 것은 역사를 너무나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더군다나 부여태나 부여효는 나이가 부여융과 별차이가 없다. 그런데 <계백>에서는 삼각관계 때문에 부여태나 부여효가 의자왕이 태자가 된 전후에 태어난 것으로 그리고 있다. 최소한 극중 시제인 643년 가을경이면 이들은 최소한 18세 전후가 되어야 한다.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는 곳에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은 드라마가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어쨌든, 은고는 백제가 망하는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고 당시의 백제인들은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은 증명되었다. <계백>에서는 계백과의 첫사랑이 실패해서 여인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는 것처럼,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하고, 나라가 망한다는 고전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개연성도 없고 리얼리티도 떨어진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좀더 스케일 있게 여인으로 왕을 꿈꾼 은고가 당시 여인천하였던 동아시아 질서에 편입하는 것이 아닐까? 조잔하게 개연성 없는 삼각관계가 왠말인가?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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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love111.tistory.com BlogIcon 바닐라로맨스 2011.11.02 07: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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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탈북자들을 위한 진정성은 없어 보인다(개인적 견해)- 제발 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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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에서 은고와 계백은 어릴적부터 서로 마음을 주고 사랑하는 사이다.


의자왕 또한 은고를 사랑하지만, 계백과 은고가 사랑하는 사이임을 알고 있지만, 자신의 욕망을 감춘다.


그리고 마침내 사택비를 몰아내고 태자가 되자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고 계백에게서 은고를 빼앗는다.


그렇다면 계백과 은고가 사랑하는 사이일수 있을까?


은고나 계백이나 의자왕은 실존인물이다.


의자왕은 백제의 마지막왕(?)이다. 하지만, 실제 마지막왕은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풍이다.


또한 중국 건안성에 있던 백제왕은 의자왕 아들 부여융이였다. 의자왕이 당에 항복하고 백제는 웅진도독부가 설치되었고 부여융은 웅진도독이 되어서 백제를 다스리려 하였다.


하지만 신라에 의해서 웅진도독부는 철폐되고, 당은 웅진도독부를 요동의 건안성으로 옮기고 당은 부여융에게 웅진도독 백제왕을 하사한다. 하지만, 건안성 백제는 발해에 의해서 흡수 통합된다.


부여융은 죽어서 무덤을 남기고 묘지명까지 남겼다. 부여융은 615년에 태어나 68세까지 살고 682년에 죽었다.


계백은 언제 태어났는지 알 수 없다. 단지, 660년 7월 계백은 탄현(침현)을 넘어온 신라 수송부대와 전투부대로 구성된 5만의 군대를 막기위해서 출전을 한다. 계백은 자신이 죽고, 처자식이 신라나 당나라의 노비가 될 것이라며 가족을 죽이고 출전한다. 이를 계백의 결의로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다.


660년 계백에게는 처와 자식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계백은 최소 30대는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계백과 은고는 드라마 <계백>처럼 사랑하는 사이일수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로 불가능하다. 은고는 부여융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百濟王 義慈, 그 妻 恩古(은고), 그 아들 隆(융) 등, 그 신하 佐平 千福, 國辨成, 孫登 등 모두 50여 명이 가을 7월 13일에 蘇將軍에게 사로잡혀 唐에 보내졌다. - 일본서기



드라마 <계백>에서 계백과 은고는 612년에 태어난 것으로 그리고 있다. 612년에 태어난 은고가 615년에 부여융을 낳을 수가 없다.


물론, 의자왕의 처 은고와 그 아들 융이, 의자왕의 처 은고와 의자왕의 아들 융으로 해석해서 은고가 부여융의 어머니는 아니지 않느냐고 할수도 있다.

 


하지만, 은고가 의자왕의 정비임은 쉽게 알 수가 있다. 더군다나 은고는 대부인이였고, 백제 멸망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일본서기와 대당평제비에는 기록하고 있다.

 

어떤 책에는 ‘경신년(제명천황 6년, 660) 7월에 이르러 百濟가 사자를 보내, 唐과 新羅가 힘을 합해 우리를 공격하여 이미 義慈王과 왕비, 태자를 포로로 하여 갔다고 아뢰었다.


하물며 밖으로 곧은 신하를 버리고 안으로 요망한 계집(祅婦)을 믿어 오직 충성되고 어진 사람한테만 형벌이 미치며 아첨하고 간사한 사람이 먼저 총애와 신임을 받아 표매(標梅)에 원망을 품고 저축(杼軸)에 슬픔을 머금는다......'

- 대당평백제국비명(김영심 역)


어떤 사람은 “百濟가 스스로 망하였다. 임금의 大夫人이 요사스럽고 간사한 여자로, 무도하여 마음대로 국가의 권력을 빼앗고 훌륭하고 어진 신하들을 죽였기 때문에 이러한 화를 불렀다. 삼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삼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 하였다. - 일본서기 660년



결국에는 은고가 백제 의자왕의 왕비이고 대부인으로 간사하고, 요사스럽고, 요망하다고 한것이다. 백제의 멸망의 원인은 결과적으로 의자왕에게 있겠지만, 실제는 은고가 무도하여 마음대로 국가의 권력을 빼앗고, 훌륭한 신하들을 죽였기 때문에 화를 불렀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성충도 은고에게 죽은 사람가운데 하나이다.
  

16년(656) 봄 3월에 왕은 궁녀와 더불어 주색에 빠지고 마음껏 즐기며[淫荒耽樂] 술 마시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좌평 성충(成忠)<혹은 정충(淨忠)이라고도 하였다.>이 극력 간언하자 왕은 분노하여 그를 옥에 가두었다. 이로 말미암아 감히 간언하는 자가 없었다. - 삼국사기


의자왕 19년(659) 봄 2월에 여러 마리의 여우가 궁궐 안으로 들어왔는데 흰 여우 한 마리가 상좌평(上佐平)의 책상[書案] 위에 앉았다. - 삼국사기 백제



위의 기록은 참요의 성격이 강하다. 여우란 여성을 뜻하고, 궁에 들어온 후비들일 가능성이 있다. 의자왕 17년(657년)의 서자 41명에게 좌평과 식읍까지 둔 것을 염두해 두고 국정을 농단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흰 여우 한 마리“는 여러 여우 중에 가장 늙은 여우를 뜻하고 왕비 <은고>를 뜻하는 것이다. 대 놓고 은고가 백제를 망하게 했다는 기록은 일본서기에 보인다.


은고는 의자왕의 처, (군)대부인, 왕비이다. 은고가  아닌 백제의 사비성(부여성)에서 왕을 참칭한 태자 부여태의 어머니이고, 부여융의 어머니는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태자 부여효의 아들 부여문사가 부여융에게 부여태 둘째 작은아버지가 왕을 참칭한것은 후에 후환이 두렵다고 말을 하고 사비를 버리고 당에 항복해버린다.


삼국사기, 일본서기, 대당평제비 등을 살펴보면 644년 부여융은 태자가 되었다가 어느 순간 부여효에게 태자를 빼앗기고, 백제가 망한 후에는 다시 태자가 되어 당으로 끌려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고는 부여융의 어머니는 될 수 있지만, 요녀는 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설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자세히 다뤄보고자 한다.


어쨌든, 은고는 615년에 태어난 부여융의 어머니이고, 백제의 마지막 왕비인 대부인으로 당에 끌려가고 의자왕은 661년~662년경에 죽는다.


의자왕이 무왕 33년 632년에 태자가 되었을 때 615년에 태어난 부여융은 나이가 18살이었다.

632년 18살 아들 부여융을 둔 은고에게 계백과 사랑하는 사이로 설정할 수는 없다. 드라마 <계백>처럼 은고와 계백과 의자왕이 삼각관계였다면 계백과 은고가 불륜관계일수 밖에 없다. 계백은 태자비를 사랑한 왕비의 남자인 것이다. 설마 시청자들이 유부녀이자 18살 아들이 있는 은고가 자식과 비슷한 나이의 계백을 사랑했을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선조의 비와 사랑하는 사이였고 선조가 이순신의 연인을 빼앗었다고 그렸다면 어찌되었을까? 아무리 역사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는 시청자들이 많다고 해도 드라마 한계성이라는 것이 있다.
 
차라리 은고가 아닌 창조된 인물을 다뤘다면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은고와 계백과 의자왕은 실존인물이고 은고가 부여융(615년생)의 어머니임에 분명함으로 은고와 계백의 사랑은 다뤄질수가 없다. 계백이 의자왕과 비슷한 나이로 설정하고 시대 배경이 부여융이 태어나기전인 615년 이전이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계백>은 612년에 은고와 계백이 태어났고 632년에 은고를 빼앗는 것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731부대가 독립군 부대이고, 박정희가 독립군 생활을 했다고 그리는 것만큼 웃기는 설정이다. 불가능에 도전한다면 못할것도 없지만, 그에 맞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드라마 <계백>에서는 의자왕이 태자가 된 후 계백의 연인 은고를 빼앗은 것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백제가 망한 이유를 의자왕과 백전백승의 계백이 여자 은고를 두고 싸움을 하는 반목 때문에 백제가 망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 의자왕이나 계백이나 은고는 죽어서도 눈을 감을 수 없지 않을까?
 

642년 가을 7월에 왕은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를 쳐서 미후성(獼猴城) 등 40여 성을 함락하였다.


하지만, <계백>에서는 계백이 미후성을 비롯한 성을 함락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왕이 친히 군사를 이끌었는데 계백이 39성을 함락한 후 마지막 40번째 성을 함략하기 전에 의자왕이 계백의 공을 가로채기 위해서 그랬다고 성충과 흥수의 입을 빌려서 의자왕은 나쁜놈이라고 덧씌우기 까지하고 있다.
 


아무리 드라마이지만, 지켜야할 선이 있다. 삼각관계를 그리고 싶다면 그럴듯한 설정을 해야하고 계백을 영웅으로 만들고 싶다면 합리적인 해석이 있어야한다.

하지만, <계백>에서는 계백을 영웅으로 만들고, 사랑의 피해자로 만들기 위해서 의자왕의 정비인 <은고>를 계백과 사랑하는 사이로 그리고 의자를 단순히 영웅 계백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존재로 그려가고 있다.


재미있게도 <계백>에서는 비중이 있었던 윤충이 사라졌다. <광개토태왕>에서 돌비수도 사라졌다. 의자왕이 직접군대를 이끌고 공취한 미후성을 비롯한 40개성이 계백이 한 것처럼 그렸듯이 윤충이 1만 군대를 이끌고 대야성을 점령한 것도 계백이 한일로 그릴태세이다.


<계백>에 계백은 당항성을 비롯한 한성이북을 회복하겠다고 의자왕에서 이야기한다.


군 통수권을 장악하고 있는 왕이 명령도 하지 않았는데 계백이 당항성과 한성이북을 회복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시청자에게는 카타르시스를 느낄지는 모르지만, 의자왕이 무슨 계백이 넘볼 수 있는 껌이나 앉을 수 있는 의자는 아니지 않는가? 계백이 무슨 의자왕위의 상왕이라도 되는가?


<계백>은  백제의 마지막왕 의자와 계백으로 백제의 역사를 재조명한다고 밝히고 있다. 재조명과 역사망치기는 구분해야한다.

실시간  만들어진 대본으로 만든 생방송 사극의 한계를 보는듯하다. 그렇더라도 지킬 것은 지키고 드라마를 만들자.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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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shareus.tistory.com BlogIcon 환아 2011.10.13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어보았는데, 결국은 "은고가 부여융의 어머니" 라는 글쓴분의 주장이 성립할 때만 가능한 이야기라고 봅니다. 글쓴분은 은고가 부여융의 어머니다 라고 주장하시지만, 그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으시니, 그 신빙성이 크게 떨어지네요.
    하지만 흥미로운 주제이기는 하군요.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3. Favicon of https://sephia.tistory.com BlogIcon sephia 2011.10.18 01: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여튼 제작진... 후.....

    물론 백제의 기록이 많이 없으니 그렇다지만.. 이건 뭐.. ㄱ-

  4. Favicon of http://www.tax-relief-debt.com/ BlogIcon Tax Debt 2011.10.19 0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 않고 있으시니, 그 신빙성이 크게 떨어지네요.

  5. Favicon of http://www.geilekontakte.ch/ BlogIcon Sexkontakte Schweiz 2011.11.14 08: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글쓴분은 은고가 부여융의 어머니다 라고 주장하시지만, 그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으시니, 그 신빙성이 크게 떨어지네요.

  6. Favicon of http://www.seovisiblemarketing.com BlogIcon affordable seo 2011.12.04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당나라 13만 대군과 신라의 군선 100척에 있었던 신라군을 맞이하여 백제군은 선전을 하지만 패하고 만다. 그리고 사비성(부여)을 두고 하루거리에서 두번째 전투를 벌인다.

  7.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sale 2012.06.08 1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유대인 음식만 먹

  8. Favicon of http://rocville.com/?p=News BlogIcon Hoeg 2012.06.19 2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가 의자왕의 정비임은 쉽게 알 수가 있다. 더군다나 은고는 대부인이였고

  9. Favicon of http://www.faceupgaming.com BlogIcon free online poker 2012.07.31 2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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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Favicon of http://smithandwessonprotectiveservices.com BlogIcon online poker games 2012.07.31 2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뒤에 있는 실제 역사와 비교해보니 정말 재미있네요^^

  11. Favicon of http://blog.onlinepokergamehall.com BlogIcon legally play poker online 2012.07.31 2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 있었는데..좋은 글 언제나 감사합니다..광개토태왕 리뷰도 부탁드려요..^^

  12. Favicon of http://www.perfectmotoindustry.com BlogIcon Machining Parts 2012.08.21 1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당신이 게시물을 블로그에 llkjihygjhfg

  13. Favicon of http://www.focaltablet.com/97-inch-tablet-pc_c408.html BlogIcon android tablet 9.7 inch 2012.09.02 17: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배를 떠날때 이례적으로 교자를 타는 복을 누린다. 왜 경혜공주는 특혜

  14. Favicon of http://www.jihoy.com/ BlogIcon free advertising for small businesses 2012.09.17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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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Favicon of http://www.kontaktanzeigen.or.at/ BlogIcon Kontaktanzeigen Börse 2013.01.01 1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어보았는데, 결국은 "은고가 부여융의 어머니" 라는 글쓴분의 주장이 성립할 때만 가능한 이야기라고 봅니다. 글쓴분은 은고가 부여융의 어머니다 라고 주장하시지만, 그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않

  16. Favicon of http://blog.daum.net/21010 BlogIcon 요동킴 2013.02.09 17: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아! 의자대왕의 꿈>을 노래한다



    당시71세 고령의 신라 선화공주의 아들인 대백제 의자대왕의 꿈은 삼한일통이었다

    대가야의 전면공격으로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웠던 신라는 고구려 광개토 태왕의 군사원조로 궤멸적 타격을 입은 가야를 서서히 합방한다

    신라의 야욕을 보다 못한 의자대왕은 국지전쟁을 전면전쟁을 전환시켜 신라의 대야성을 비롯한 40여개 성을 일거에 탈환하여 서라벌을 제외한 신라땅 대부분을 정벌했다.

    대백제 의자대왕이 삼한일통을 무력으로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의 숨통을 끊지 않고 놓아준 까닦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신라는 어머니인 선화공주의 고국이었다 .마치 통일 고려에게 귀순한 통일신라의 전례처럼

    대백제 의자대왕은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중국 수/당과 100년 국제전쟁을 승리로 이끈, 고구려 합중국은 우리 민족사의 영웅으로 꼽히는 연개소문 태왕이라는 대스타가 탄생하여 중화패권을 노리는 중국 한족의 마지막 숨통을 조여왔다.

    오늘날 미군과 맞먹는 군사력을 키운 중국 통일 당나라는 이를 타파하기위해 고구려 합중국에게 식량보급로 확보 실패로 패했던 과거의 전쟁을 거울삼아 요동방면으로만 공격하던 패턴을 바꾸어,서해해상을 통한 공격을 병행했다

    당은 소정방을 연합군 총사령관(大將軍蘇定方為神丘道行軍大總管)으로,신라(신라왕 김춘추金春秋 우이도행군총관嵎夷道行軍總管)를 식량파트너로 끌어들여 고구려의 파트너인 백제를 멸망시키고,이어서 고구려의 후방을 기습 공격하여 고구려를 패망의 나라로 만들어 갔다,중국 당나라는 조선총독부와 다름없는 통치 기구를 백제에 웅진 도독부 (熊津都督府),마한(馬韓)·,동명(東明),금련(金漣)·,덕안(德安)등 5도독부를 설치하고,고구려에는 안동 도호부 (安東都護府),신라에는 계림대도독부(鷄林大都督府)를 설치했다

    중국 당나라는 동북지방의 강성국인 고구려합중국과의 싸움에서 고구려합중국의 청야전술과 농성전,그리고 오늘날 공수부대와 같은 특수부대 '조의선인'에 의해 번번히 당나라 식량보급로를 궤멸당해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그러한 연이은 전쟁 실패를 육로와 해상공격을 병행하면서 신라의 식량보급로 부역으로 일거에 승리 할 수 있었다

    중국 당태종 이세민의 아들 고종 이치는 아버지의 첩(측전무후)을 왕비로 맞이하고, 3천여명의 첩을 거느리며 향락을 일삼은 패악무도한 군주였음에도 전쟁에서 승리하자 모든 것을 미화한다

    살수대첩의 영웅이었던 영류태왕 고건무(榮留太王 高建武)의 친당 정책으로 고구려 합중국의 위상을 내던지고 평화를 핑게삼아 고구려의 일급비밀이라 할 수 있는 전 영토의 지도인 <봉역도(封域圖)>를 당에 보내고 당나라에 부합하려 하자,이를 지켜보다 못한 조의선인 출신 연개소문이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아 반당정책으로 돌아서며

    중국 당나라의 둥북아 패권질서 제패의 꿈을 크게 위협한다

    중국 당태종의 5차에 걸친 고구려 합중국(동북방 만주지역의 농경/유목민족의 통일국가)과 국제전쟁을 벌였으나 ,실패로 돌아갔다.권력 다툼에서 피붙이 형제들을 도륙하고도 모자라, 아버지 당고조를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패륜아와 다름없던 당태종 이세민이 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하늘이 주는 교훈이다

    이러할진대,아버지의 애첩을 왕비(측전무후)로 맞은 당고종 이치는 고구려를 정벌하다 식량보급로 궤멸로 패해 돌아가는 길에 649년 당태종이 52세 나이로 숨을 거둘 때, ‘파요동지역(罷遼東之役), 다시는 고구려를 정벌하지 말라고 유언한 경고를 뿌리치고,마지막 승부수를 던진다,아버지로부터 전쟁실패의 원인을 꿰뚫어 대백제의 전면전 공격으로 사지에 몰린 신라를 끌어들여 전쟁의 승기를 잡는다.고대 전쟁의 승리는 '식량보급로 확보가'필수였다

    식량문제를 해결하자 수만대군이 이역만리 땅에서 싸우다 식량이 떨어져 퇴각하다 급습과 추격전을 당해낼 도리가 없었던 과거의 전쟁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동북지역의 패권국가인 고구려 합중국과 중국 당나라의 남방에 식민지를 건설해서 중국 고대국가를 괴롭혔던 대백제를 일거에 직접 침공하여 8년전쟁을 치른 끝에 멸망시키고 결국,중국 한족의 꿈을 이루었던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일기"라는 말이 있다,패자는 역사를 잃어버리는 법이다

    중국 당나라는 대백제 지역에 5도독부를 설치하면서 대백제의 유적지는 모조리 불태워 없앴다. 요즈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될만한 것은 모조리 초토화 시켰던 것이다 .

    모든 것을 잃어버렸지만 ,땅위의 남아있던 대백제의 정림사지 5층석탑과 땅속의 무령왕릉만이 불타버린 백제의 모든 것을 1500여년이 지난 오늘날 이를 되살려주고 있다



    71세의 고령인 의자대왕이었지만 해동증자로 국제사회에 알려질정도로 백성들의 신망이 두터웠던 군주였지만, 패자이기에 '3천 궁녀'와 놀아난 방탕한 군주로 중국 당나라와 신라는 그렇게 역사를 둔갑시켜 놓았다



    3천궁녀를 언급해보자

    중국 남방을 식민지로 갖고 있었으니, 3천여명의 궁녀를 거느릴 정도록 큰나라라는 뜻인 대백제가 맞을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후대가 전쟁명분을 잡기위해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하고 전쟁만을 일삼는 "방탕한 군주'라는 이미지를 패배한 군주에게 둘러씌우는 고전적인 악랄한 수법을 사용한 셈이다



    아니면, 3천궁녀는 누구일까?

    당시 궁녀의 신분은 노예들이다 전쟁에서 지면 끌려가는 노비 신분과 다름 없었다

    그들이 나라가 망했다고 낙화암에 몸을 던질까? 아닐 것이다 그들이 백제의 궁녀이든,당나라의 궁녀이든 신분은 변함없다

    중국 당나라 소정방은 백제가 망하자,독립전쟁을 벌이다 자결을 시도했던 의자대왕을 비롯하여 1만5천여명의 지배층을 잡아갔다

    71세 고령의 의자대왕은 한을 품은채 1년만에 이국땅 북망산천에 묻혔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볼때, 살아남은 지배층의 부녀자들이 황급히 몸을 피해 달아난 곳이 부소산성 뒷편 낙화암이었다

    어린 딸을 부여잡고 당나라의 약탈,방화,강간을 피해 몸을 던진곳이리라

    3천궁녀는 바로 "3천여명의 부녀자"들이었다

    전쟁에서 지면 전리품 취급 당하던 전쟁 관습상 당나라 군사에 몸을 더렵히기 싫다는 대백제 '충절의 여인'들을 '3천궁녀'로 둔갑시켜 놓은 천인공로할 짓을 저지른 일부 후세 사람들의 패악무도함을 준엄하게 꾸짖고 싶다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으리라



    부여와 한성에 남아있던 유적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살펴보시라

    방화와 약탈,강간후에 남은자들은 노비로 삼았으리라

    지어미와 딸들은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졌고, 지아비와 지아들은 침략자 중국 당나라를 상대로 처절한 독립투쟁을 벌이다

    백마강을 피로 물들였다

    그 피눈물을 안고서 살아남은 대부분의 지배층들이 식민지인 왜로 넘어가 대백제(해가 비추는 큰 나라)가 망한 10여년뒤, 670년에 일본(日本:해가 뜨는 나라)으로 새롭게 부활한다

    해를 숭상하는 민족인 부여와 가야,대백제, 그리고 왜,일본은...... 하나의 피를 받은 일란성 쌍둥이인 셈이다

    백제는 역사를 잃어버렸고,일본은 역사를 잊어버렸다,가야는 역사가 지워져 버렸다.

    고구려는 역사를 빼앗겨 버렸다

    신라는 역사를 외세에 맡겨 버렸다

  17. BlogIcon paslanmaz 2014.08.13 1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면, 3천궁녀는 누구일까?

    당시 궁녀의 신분은 노예들이다 전쟁에서 지면 끌려가는 노비 신분과 다름 없었다

    그들이 나라가 망했다고 낙화암에 몸을 던질까? 아닐 것이다 그들이 백제의 궁녀이든,당나라의 궁녀이든 신분은 변함없다

  18. BlogIcon çatı tamiri 2014.08.13 17: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면, 3천궁녀는 누구일까?

    당시 궁녀의 신분은 노예들이다 전쟁에서 지면 끌려가는 노비 신분과 다름 없었다

    그들이 나라가 망했다고 낙화암에 몸을 던질까? 아닐 것이다 그들이 백제의 궁녀이든,당나라의 궁녀이든 신분은 변함없다

  19. Favicon of http://www.toplumailmarket.com BlogIcon toplu mail 2016.01.23 0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가 의자왕의 정비임은 쉽게 알 수가 있다. 더군다나 은고는 대부인이였고

  20. 2016.01.24 02: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1. Favicon of http://www.bandirmawebtasarim.com.tr BlogIcon Web Tasarım 2016.01.28 0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시 궁녀의 신분은 노예들이다 전쟁에서 지면 끌려가는 노비 신분과 다름 없었다


공주의 남자에서 수양대군의 최측근으로 강곤이 나온다.

강곤은 김종서의 며느리와 질녀인 아강을 노비로 하사 받았다.

실제는 김종서의 큰아들 김승규의 딸 숙희만이 강곤 집 노비가 되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규는 형수와 질녀 아강을 찾아 강곤의 집에 갔다. 형수와 아강이 물에 빠져 자살했다는 말을 듣고 실신한다.


공주의 남자에서 사육신 중 한명인 이개는 정종과 김승유와 신면의 스승으로 나온다.

그리고 아버지들의 정치싸움을 너희들까지 정치싸움하지 말고 서로 우애를 버리지 말라고 한다. 또한, 승유가 수양대군 암살시도하다 틀켜서 죽음에 이를 때 정종과 경혜공주와 금성대군과 함께 적극적으로 구명하는 것으로 나온다.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옥새를 넘기며 양위를 선언하자, 신숙주에게 질타를 한다. 그리고 이개는 단종이 양위하지 말라고 대성통곡을 한다.

그런데 정말 사육신 중 한명인 이개는 수양대군이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하고 김종서와 안평대군의 편에서 단종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을까? 그렇지가 않다.

이개는 안평대군과 김종서, 황보인이 대죄를 지었고 계유정란에 관련된 안평대군 일파에 대해서 탄핵한다. 한마디로 이개는 안평대군과 김종서의 반대파 였다. 그리고 이개는 계유정란 공신이 된다. 

 성삼문(成三問)을 우사간(右司諫)으로, 이개(李塏)를 수사헌 집의(守司憲執義)로, 구치관(具致寬)을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로, 유응부(兪應孚)를 평안도 도절제사(平安道都節制使)로, 박쟁(朴崝)을 충청도 처치사(忠淸道處置使)로, 이교연(李皎然)을 밀양 부사(密陽府使)로 삼고, 난신(亂臣)을 잡아 죽인 여러 사람을 또한 공을 논하여 상직(賞職)하고, 김윤부(金允富)는 파직하였으니, 김종서(金宗瑞)에게 말을 준 때문이다 - 단종 1년 1553년 10월 15일

 


위의 기록으로 알수 있듯이 사육신인 성삼문, 이개, 유응부,박쟁 등이 나오고 있다. 이들은 계유정란이 끝나고 정란의 공신으로  상직되었다.

더군다나 이개는 정분·허후·조수량·안완경의 죄가 황보인 김종서에 못지않다고 김종서 일파에 관련된 자를 탄핵하는데 적극적이었다.

집의(執義) 이개(李塏)가 본부(本府)의 의논을 가지고 아뢰기를,
 

“신 등이 지금 정부에서 아뢴 죄목(罪目)을 보니, 안평대군 이용(李瑢)이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정분(鄭笨)에게 지시하여 심복을 병조(兵曹) 군기감(軍器監)에 포열(布列)하게 하였다 하였으니, 정분의 죄가 황보인·김종서에 못하지 않습니다. - 단종 1년 1453년 10월 28일


더군다나 이개와 같이 사육신 중의 한명인 박팽년은 수양대군의 장자방으로 나오는 신숙주와 함께 안평대군을 대법에 처하라고 말한다. 결국 계유정란으로 안평대군이 귀향가던 길에 죽게된 이유가 박팽년, 신숙주 등의 고변때문이었다.
 

최항(崔恒)·신숙주(申叔舟)·박팽년(朴彭年)·박원형(朴元亨)·권자신(權自愼)은 아뢰기를,

“지금 정부(政府)·육조(六曹)의 청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 등의 뜻에도 또한 꼭 대법(大法)에 처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단종 1년 1453년 10월 16일 안평대군에게 죄를 주라

 

우사간(右司諫) 성삼문(成三問) 등이 상소하기를,
“생각건대, 간신 이경유(李耕㽥)가 병기를 훔쳐서 에게 실어 보냈으니 이경유가 어찌 혼자 훔치고 혼자 운반하였겠습니까? 반드시 함께 꾀하고 함께 일한 자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 여기에 참여함이 있었다면 본 자·들은 자와 손 한번 놀리고 발 한번 굴린 자까지도 모두 용서하지 못하는 예가 있습니다. 하물며 음모에 참여한 자이겠습니까? 하물며 이를 맡아 지킨 자이겠습니까? 하물며 이를 실어 나른 자이겠습니까? 하물며 상사(上司)가 되어 짐짓 놓아주고 묻지 않은 자이겠습니까? 이것은 죄가 크고 악이 극하여 하루도 함께 하늘 밑에 살 수 없는 자들입니다.

- 단종실록 단종 1년 1453년 10월 17일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는 온녕군을 죽이자, 수양대군은 온녕군을 죽이려한 배후세력으로 정종과 금성대군을 지목하고 선위를 할것을 압박한다. 
 

단종 2년 1454년 5월 12일  온녕군(溫寧君) 이정(李裎)이 졸(卒)하였다. - 단종실록


하지만, 온녕군이 죽은 때는 1454년 5월12일이고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양위한때는 1456년 윤 6월 11일이다.  드라마에서는 하루가 1년이다. 하루는 1년같이 1년을 하루같이 사랑한다는 노랫말과 살아가는데 시간을 소중해야한다는 말은 있지만, 좀 심한 설정이 아닌가 한다.

김승유는 수양이 왕이 되려하자 수양의 장자방인 신숙주를 암살하려고 한다. 신숙주의 호위무사들을 죽이고 신숙주를 죽이려는 순간 신면이 나타나 신숙주 암살에 실패한다.

신면은 계유정란시에도 김종서를 죽이는데 앞장서지 않는다. 더군다나 김승유가 죽어갈때 김승유를 살리고, 김종서의 형수와 질녀 아강까지 살려주고 보살펴준다. 그런데 사랑에 넋이 나간 우리의 주인공 김승유는 친구의 아버지를 직접 죽이려든다. 신면에게는 친구의 여인을 사랑하면서도 친구에 대한 우애가 보이지만, 김승유에게는 사랑의 질투로 결혼식장에 난입해서 신부를 납치하는 무대포 밖에 없다.


어쨌든, 이개는 정종의 집에 찾아가 온녕군을 죽이고 신숙주를 죽이려한 대호라는 자의 배후가 정종니가 아니냐고 물어본다. 김승유는 정종의 집에 찾아가 신숙주를 죽이려다 실패한 사실을 말하고, 그 자리에 있었던 이개를 만난다.



이개는 김승유에게 "울지마라 승유야 울지마라 승유야"를 연발한다. "너의 밝디 밝은 모습이 없어지고 사람을 죽이려하느냐 너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기 싫구나" 너를 이리 만든것이 내탓같구나라며 더이상 위험한 일을 하지 말고 이개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한다.


만약, 드라마 상황과 실제 역사와 적절히 조합한다면 이개는 수양대군의 밀정에 해당하는 이중간첩에 지나지 않을것이다. 또한, 신숙주를 암살대상자로 선택했다면 이개 또한, 살생부에 올라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사육신들 또한 김승유의 살생부 척살대상이어야 한다.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를 지키는 경혜공주 부마 정종도 김승유의 살생부에 올라있어야 한다. 왜냐 하면 정종도 계유정란의 정란 공신이었기 때문이다. 부마 정종이 영양위가 된 이유는 정란공신이였기 때문이다. 생체실험한 일본 731부대가 독립군부대였다고 하는 것과  더불어 독립군 때려잡던 친일매국노들이 독립군이였다는 것 만큼 얼척없다.

정난한 공이 있는 이들에게 동·서반직을 차등있게 올려 제수하다

 정종(鄭悰)광덕 대부(光德大夫) 영양위(寧陽尉)로, 
..중략..
박팽년(朴彭年)을 승정원 우승지로, 박원형(朴元亨)을 승정원 좌부승지(左副承旨)로, 권자신(權自愼)을 승정원 우부승지로, 권남(權擥)을 수충 위사 협책 정난 공신 승정원 동부승지(同副承旨)로, 김자갱(金自鏗)·김혼지(金俒之)·박소(朴昭)·홍익성(洪益誠)을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로, 이흥상(李興商)을 수충 정난 공신 첨지 중추원사(輸忠靖難功臣僉知中樞院事)로, 양정(楊汀)을 수충 협책 정난 공신 지병조사(知兵曹事)로, 성삼문(成三問)을 수충 정난 공신 사간원 좌사간 대부(左司諫大夫)로, 조어(趙峿)를 사간원 우사간 대부로 삼았으며, 집의(執義) 이개는 중훈(中訓)을 더하고,

 
 단종복위 연류자

“근일에 이개(李塏)·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박중림(朴仲林)·권자신(權自愼)·김문기(金文起)·성승(成勝)·유응부(兪應孚)·박쟁(朴崝)·송석동(宋石同)·최득지(崔得池)·최치지(崔致池)·윤영손(尹令孫)·박기년(朴耆年)·박대년(朴大年) 등이 몰래 반역(反逆)을 꾀하였으나, 다행하게도 천지 신명(天地神明)과 종묘·사직의 신령(神靈)에 힘입어 흉포한 역모가 드러나서 그 죄상을 다 알았다. 그러나, 아직도 소민(小民)들이 두려워할까 염려하니, 경 등은 이 뜻을 선유(宣諭)하여 경동(驚動)하지 말게 하라.” - 세조 2년 1456년 6월 6일 단종복위 연류자


위 단종복위연류자중 계유정란 공신이 아닌자들이 없을 정도이고, 단종폐위에 앞장서지 않는자들이 없다.

드라마에서 이개는 단종이 수양에게 선위를 하기전에 "너희는 누구의 신하란 말이냐?" 신숙주에게는 " 신면을 맡길때 학식보다는 충심을 가르치랴 하지 않았느냐? 어찌하여 세종과 문종의 뜻을 어기고 어린 단종을 폐위하려는 반역을 꾀했냐"고 말하지만, 이개는 어린 단종보다는 수양대군이 왕이 되는 것에 찬동을 하였다.
 



단순히 사육신이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른 후 수양대군에 반기를 들고 단종복위를 꿈꾸다 처형되었다고  김종서와 같은 일파이고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되는 것에 반대했을 거라는 단순한 상상한 대부분의 드라마는 산으로 간다.

어찌보면 사육신은 수양대군파였고, 수양이 왕이 되는데 적극적이였다. 오히려 안평대군, 김종서, 황보인의 반대파였다.

공주의 남자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사육신의 한명인 성삼문은 단종이 수양에게 양위를 할 때 옥새를 관리하는 자였다. 옥새가 수양에게 넘어갈것을 뻔이 알고 있는 상태에서 옥새를 수양에게 넘기는 일등공신이 되었다.
 


 위에 국새를 가지고 나오는 자가 환관 전균이다. 그런데 엄자치와 전균 또한 계유정란공신이 되지만, 사육신들의 반대에 부딛힌다. 환관이 어찌하여 공이 있단말입니까? 공이 있더라도 공신이 되어서는 않됩니다 라면서 말이다.

어쨌든 환관 전균에게 국새를 넘긴 자는 사육신 중의 한사람인 성삼문이였다.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지만 말이다.

환관(宦官) 전균(田畇)으로 하여금 한확(韓確) 등에게 전지하기를,

“내가 나이가 어리고 중외(中外)의 일을 알지 못하는 탓으로 간사한 무리들이 은밀히 발동하고 난(亂)을 도모하는 싹이 종식하지 않으니, 이제 대임(大任)을 영의정(領議政)에게 전하여 주려고 한다.” 하였다.

한확 등이 놀랍고 황공하여 아뢰기를,

“이제 영의정이 중외의 모든 일을 다 총괄하고 있는데, 다시 어떤 대임을 전한다는 것입니까?”

하여, 전균(田畇)이 이를 아뢰니, 노산군(魯山君)이 말하기를,

내가 전일부터 이미 이런 뜻이 있었거니와 이제 계책을 정하였으니 다시 고칠 수 없다. 속히 모든 일을 처판(處辦)하도록 하라.”


하였다. 한확 등 군신들이 합사(合辭) 하여 그 명을 거둘 것을 굳게 청하고 세조 또한 눈물을 흘리며 완강히 사양하였다.


전균이 다시 들어가 이러한 사실을 아뢰었다. 조금 있다가 전균이 다시 나와 전교를 선포하기를, ‘상서사(尙瑞司) 관원으로 하여금 대보(大寶)를 들여오라는 분부가 있다.’고 하니, 모든 대신들이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을 변하였다


동부승지(同副承旨) 성삼문(成三問)이 상서사(尙瑞司)로 나아가서 대보(옥새)를 내다가 전균으로 하여금 경회루(慶會樓) 아래로 받들고 가서 바치게 하였다. 노산군(단종)이 경회루 아래로 나와서 세조를 부르니, 세조가 달려 들어가고 승지(承旨) 성삼문와 사관(史官)이 그 뒤를 따랐다. - 단종 3년 1455년 윤6월 11일


정치는 생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때에 따라 같은 당파가 되기도 하고 정적이 되기도 한다. 자신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 동료가 되고, 적이 된다는 뜻이다. 같은 형제, 부자, 친구간에도 정파가 나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온 집안이 항일운동에 나서지만, 한사람은 민족반역자가 되기도 하고, 아버지는 항일운동을 하지만 자식은 친일매국을 하기도 한다. 반대로 아비가 친일매국이지만 자식은 항일운동에 참가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게 있었다. 또한, 3.1운동 33인이 항일운동에 참여했다 절대다수가 민족반역자대열에 합류하기도 한다. 하물며 이익 앞에서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일관성 있게 사육신과 수양대군은 안평대군, 황보인, 김종서의 반대파였고, 수양이 단종을 폐위하는데 한편이였다.

사육신들이 세조(수양대군)에 반기를 든건 수양대군이 왕이 된 후 토사구팽이 되어서 이지 않을까, 아니면 사육신 자신들이 지향하는 정치와 세조가 지향하는 정치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반기를 들지 않았을까? 그것도 사실은 세조에 반기를 든것이 아닌 한명회가 세조의 입이 되어 국정을 농단하자 정적인 한명회를 죽이고 세조까지 죽인후 단종을 복위시키려 했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단순히 공주의 남자처럼 계유정란으로 죽은 김종서의 김승유와 단종복위 시도를 하다 실패한 사육신을 한묶음으로 하고, 금성대군과 정종이 수양대군에 반기를 들었다고 해서 김종서의 자식 김승유가 한묶음으로 묶일수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금성대군, 정종, 사육신, 수양대군의 공통적은 안평대군과 김종서와 황보인이였다. 그런데 공주의 남자에서는 사육신 이개, 정종이 김종서와 한편이 되어 수양대군과 적대적이였다는 설정은  계유정란시 세조와 김종서가 한편이였다고 하는 설정만큼 어설프다 못해 난감하기 까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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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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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zzz 2011.09.16 04: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건 좀 병맛나는 포스팅인듯...

    ㅋㅋ

  3. 이수진 2011.09.17 2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개 후손입니다 기분나쁘네요..ㅡ.ㅡ

  4. 이수진 2011.09.17 2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개 후손입니다 기분나쁘네요..ㅡ.ㅡ

  5. BlogIcon 이진원 2011.09.20 0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이개선생 자손됩니다. 선생께서 쓰신 글을 보면서 어이없다 부족해 개탄을 느낍니다. 예로부터 우리 한산이씨 집안은 충신집안입이다. 목은(이색)선조께서도 쿠데타를 통해 국가를 세운 이성계를 인정하지 않으셨고, 그런 영양하에 우리 가문은 조선왕조초기엔 정치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국왕의 심고초려 끝에 정치에 나선 분들인데 그런 경솔한 판단을 하셨겠습니까? 그것도 정난공신
    이 되고자? 정정하십시오. 만약 그런 불명예 스런 일이 있었다면 우리집안이 지금까지 '명문대가'로 남지 못했을 것 입니다. 바른 이해로 역사를 왜곡하시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한산이씨가문이 어떤 집안인지에 대해 알아보신 후에 쓰신 글을 다시 돌아보십시오

  6. 이수복 2011.09.22 0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손으로서 참.... 기분 좋지 않는 글이군요....
    역사학적으로 인정된 사육신을 무슨 근거로 이러는지....

  7. 이채령 2011.09.22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개 후손으로서 정말 기분나쁜 글...
    신숙주 후손이신가요?ㅋㅋㅋㅋ

  8. Favicon of http://wirelessfederation.com/news/mobile-operators-directory/ BlogIcon 모바일 업체 디렉토리 2011.09.22 1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바일 업체 디렉토리

  9. Favicon of http://wirelessfederation.com/news/mobile-world-congress/ BlogIcon 모바일 세계 회의 2011.09.22 18: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게시물 U 그것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10. Favicon of http://www.privilegedclub.com/category/luxury-yachts/ BlogIcon 럭셔리 요트 2011.09.22 1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게시물! 귀하의 정보를 공유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은 내게 그것에 대해 뭔가 더 말할 수 없습니다.

  11. 세조 2011.09.22 2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쳐죽일놈

  12. 수양대군 2011.09.22 2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 쳐죽일놈

  13. 333 2011.09.24 0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단 노산군 일기는 왜곡이 많습니다. 폐서인되어 유배지 영월에 도착한 단종이 도착직후 이 모든 반역의 죄는 나에게 있는데 내가 그걸(사육신건)을 저질렀는지 진심으로 후회한다라고 애길 했다 하는데 상식적으로 믿기 힘듭니다. 그리고 공신직위는 공에 따르기 보단 당시 정치적 판단으로 나뉘주기식도 많고 계유정난의 공신직위는 정종은 단종의 유일한 매형이기 때문에 수양일파가 일단 우리의 적은 김종서등이지 단종이 아니란 체면을 세울 필요로 내렸던 겁니다. 정작 정종은 금성대군과 더불어 위협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1년도 안되서 유배길로 보내버렸는데 누가 정종을 진심으로 계유정난의 공신이자 수양의 일파로 봤단 애깁니까.

    그리고 사육신등 집현전 일파들이 김종서파든 안평대군파등에 대해 불신하거나 적극적 반대세력이었던 건 사실입니다. 황보인 김종서등이 단종의 보호를 빌미로 국정을 농단하고 안평이 정치적 개인세력을 키우던 증거는 명백하고 이게 계유정난의 이유가 됬긴 하니까요. 하지만 이들이 수양에게 기대한건 단종이 성인으로 성장할때까지 왕권확립과 민생안정을 시켜줄 대리청정 역할이지 수양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되어 극단적 왕권중심을 내세우고 신권을 배척하리라고 계산을 못했죠.

    사육신을 국문한 것을 보면 왜 내가 양위받을 시 너희들은 암말로 못했냐 하니 그땐 힘이 없어 저항했다간 개죽음뿐이라 할수없이 참았다고 말하는데, 단종의 명령으로 양위받는 세조에게 옥새를 건내는 역할이 당시 승지로 야근하던 성삼문이라 성삼문이 옥새를 안고 현장서 대성통곡을 했단 기록이 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당시엔 막질 못했고 세조실록만 봐도 그냥 정상적 과정을 밟은 양 평이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래저래 집현전 일파들은 수양과는 처음엔 김종서, 안평등에 대항한 한배를 탄 이들이었지만 계유정난이후 서로가 다른 목적을 가졌음을 알게 되고 세조의 즉위당시엔 속으론 불만이어도 적극적 반대를 못하다가 나중에 들고 일어난겁니다.

    님 논리면 단종의 장인이었던 송현수는 수양대군의 젊은 시절부터 알고지낸 절친이었고 수양이 세도가 집안도 아닌 송현수의 딸을 단종비로 밀어넣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아마 이때까지 두 집안의 사이는 좋았고 서로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수양이 야심을 드러내며 왕위까지 노리게 되면서 둘은 원수가 됬고 결과는 송현수는 단종복위음로랑 연관되어 장100대에 유배지서 처형당하고 정순왕후는 폐서인되어 장업원에 유폐, 정순왕후의 친정 여동생들은 노비로 끌려가죠. 님 논리되로라면 송현수는 과거 한때 수양과 절친이자 계유정난까진 수양의 편을 들었다고 수양이 왕위를 선위받은 전후에도 수양과 같이 사위인 단종을 몰아낼려고 한 사람이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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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기사는, 정말 매우 흥미로운 것입니다


드라마 계백에서 드디어 의자왕(조재현)의 후손이 태어난다.


그런데 연씨에게서 태어나는 후손은 분명이 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아들이  부여융이 될지 부여효가 될지 부여태가 될지 궁금해진다. 사실 <계백>에서 역사를 찾는다는게 힘들기 때문에 맞추기도 힘들지 모른다.


분명히 드라마 <계백>은 김부식의 삼국사기, 일연의 삼국유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일본서기, 박창화의 화랑세기, 삼국지연의를 인용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모두 비틀어 버려서 알 수가 없다. 이를 작가는 작가의 창작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저작권을 주어야할 사람이라도 있는 듯이 약간 달리하고 있다.


계백에서 등장하는 인물 중 은고의 심복 임자는 조선상고사에서 빌려오고, 선화는 삼국유사에서, 사택적덕과 사택비는 미륵사 서탑의 사리함봉안기에서 빌려온 인물이다. 교기와 기미, 은고는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인물이다.


연문진의 딸 연씨가 낳은 아들이 누구일까 궁금하지 않는가? 시금석이 되는 인물은 백제가 패망하고 의자왕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갔다, 백제로 돌아와 웅진도독이 되었다가 요동 고구려 옛성 건안성에서 백제왕이 된 부여융이다.
 


644년 봄 정월, 왕자 융(隆)을 태자로 삼고 크게 사면하였다. - 삼국사기 백제


백제가 멸망할 시의 태자는 부여융이다. 삼국사기에도 644년 의자왕 4년 부여융을 태자로 삼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때 부여융의 묘지명에 따르면 나이는 30살이었다.
 

그 왕(王) 부여의자(扶餘義慈) 및 태자(太子) 융(隆) 이외 왕자(王子) (餘)효(孝) 13인은 대수령(大首領) 대좌평(大佐平) 사탁천복(沙吒千福), 국변성(國辯成) 이하 700여 인과 함께 이미 궁궐에 들어가 있다가 모두 사로잡히니 말가죽을 버리게 하고 우거(牛車)에 실어다가 잠시 있다가 사훈(司勳)에 올리고 이에 청묘(淸廟)에 드렸다 - 대당탕평제비 660년 8월 15일


그런데 삼국사기  660년 7월 백제 멸망당시를 되돌아 보면 부여효가 태자로 나온다.


드디어 (의자가) 태자 효(孝)와 함께 북쪽 변경(웅진성)으로 달아났다.

정방이 [사비]성을 포위하니 왕의 둘째 아들 태(泰)가 스스로 왕이 되어 무리를 거느리고 굳게 지켰다. 태자의 아들 문사(文思)가 왕자 융(隆)에게 말하였다. “왕과 태자가 [성을] 나갔는데 숙부가 멋대로 왕이 되었습니다. 만일 당나라 군사가 포위를 풀고 가면 우리들은 어찌 안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드디어 측근들을 거느리고 밧줄에 매달려 [성밖으로] 나갔다. 백성들이 모두 그들을 따라 가니 태(泰)가 말릴 수 없었다. 정방이 군사로 하여금 성첩(城堞)에 뛰어 올라가 당나라 깃발을 세우게 하였다.


태는 형세가 어렵고 급박하여 문을 열고 명령대로 따를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왕과 태자 효가 여러 성과 함께 모두 항복하였다. 정방이 왕과 태자 효(孝)·왕자 태(泰)·융(隆)·연(演) 및 대신과 장사(將士) 88명과 백성 12,807명을 당나라 서울[京師]로 보냈다. - 삼국사기 백제 660년



위의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삼국사기 644년 의자왕이 부여융을 태자로 삼았다는 말이 의심스럽게 된다. 하지만, 멸망 직후 태자는 부여융이 분명해 보인다. 일본서기에도 부여융이 태자로 기술되고 있다.
 

[百濟王 義慈, 그 妻 恩古, 그 아들 隆 등, 그 신하 佐平 千福, 國辨成, 孫登 등 모두 50여 명이 가을 7월 13일에 蘇將軍에게 사로잡혀 唐에 보내졌다. 일본서기 660년 7월 13일, 아들 융 등


11월 1일에 將軍 蘇定方 등이 사로잡은 百濟王 이하 太子 隆 등 여러 왕자 13명, 大佐平 沙澤千福·國辨成 이하 37명, 모두 50여 명을 朝堂에 바쳤다 - 일본서기 660년 11월 1일 태자 융



7월 13일자를 기준으로 해서 일본서기는 의자왕의 아들 융이라 하고 11월 1일자 기사에서는 태자 융으로 기록하고 있다.

660년 8월 15일 만든 대당평제비와 삼국사기, 일본서기의 태자 기록을 준용한다면 삼국사기 백제 멸망당시 태자는 부여융이라고 바뀌어 있다. 그렇게 된다면 태자의 아들 문사는 부여융의 아들인가? 아니면 부여 효의 아들인가가 불분명해진다. 왜냐하면 태자 부여효의 아들 문사가 왕자 융에게 의자왕과 태자 부여효가 웅진성으로 갔는데 숙부가 멋대로 왕이 되었다.라고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와 일본서기, 대당평제비 등 옛 기록을 모두 합리적인 기록이라고 한다면 처음 부여융이 644년 태자가 되었다 어느 시점에 부여융은 태자에서 쫓겨났고, 부여효가 태자가 되었다가 백제멸망과 더불어 융이 태자로 복귀 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부여효와 부여융 중에 정확히 누가 맏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단지 부여태가 둘째아들이라는 사실만 들어나고 있다.


삼국사기 644년 기록으로 미루어 부여융이 첫째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일본서기에는 왕비 은고가 국정 전반을 장악하고 국정을 농단했기 때문에 백제가 망했다 기록하고 있다. 어쩌면 부여융은 은고의 자식이 아니고 부여효는 은고의 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드라마 <계백>에서 은고를 계백의 첫 번째 부인으로 그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는 대단히 개연성있고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드라마 계백에서 첫 번째 부인으로 나오는 연씨가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의자의 첫 번째 아들이 된다. 그렇다면 연씨가 낳은 큰아들이 부여융이 된다.
 


그런데 드라마 계백에서 계백과 은고는 612년에 태어난 것으로 그리고 있고, 부여융 묘지명에 부여융은 615년에 태어났다고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계백은 신성이 있어서 신라 생구가 되어 629년 고구려 낭비성 전쟁에도 참전을 해서 신라가 대승을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리고 곧바로 김유신과 함께 628년 신라 가잠성에 침입한 백제를 도와 백제가 승리하는데 공을 세운다. 하지만, 가잠성 전투는 백제가 대패한 전쟁이었다.


이제 다시 과거로 여행을 하여 의자왕이 왕자시절 반란을 일으키다 사택비에 들켜서 처형된  연내신좌평과 자신의 부인도 참형을 당할 것을 염려하여 첫째 부인 연씨를 위해서 같이 중이 된다. 그리고 임신한 연씨는 드디어 출산을 한다.
 


자신의 복수나 영달을 꾀하는 의자가 아닌 연줄이 끊어진 부인을 위한 의자왕자를 보고 마음이 열린 계백과 성충과 흥수는 의자와 피로써 형제결의를 한다.


너무나 많이 보았던 장면이 아닌가? 삼국지연의에서 나오는 유비와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에서 한명이 추가된 4명의 형제결의다. 이들이 형제가 되었다가 결국에는 의자왕이 권력에 맛들여 성충, 계백, 흥수를 배신했다는 배신장면을 극적이게 묘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나 식상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복숭아꽃잎이 날리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이다. 삼국지연의는 현재 드라마 계백의 배경이 되는 삼국시대 630년대에는 알려지지도 않았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명나라 1522년 초판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드라마 <계백>은 630년 초반을 그리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부여융은 615년 태어났다. 부여융은 의자가 15세 전후에 낳은 첫째 아들일 것이다. 어쨌든, 615년이면 의자왕은 15살 전후이고, 계백과 은고는 3살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계백은 나이를 먹고 늙어만 간다. 늙어가지만, 늙은 티가 하나도 나지 않는다.


전화박스를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영국의 닥터는 시간여행을 다룬 SF드라마다. 그런데 사극 <계백>에서 타임머신도 타지 않고 시간을 넘나들고 역사도 바꾸고 있다.

어쩌면 <계백>에서 생구인데도 불구하고 굽있는 2000년대 첨단가죽신을 신고, 면도하는 의자,교기,계백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계백의 가죽신이 타임머신이거나 계백이 타고 있는 말이 타임머신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손오공이 수염을 뽑듯이 계백이 수염을 하나씩 뽑을 때 마다 시간여행을 하는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뒤죽박죽 사극이 아닐 수 없다. 타임머신도 없이 과거로 미래로 자유롭게 여행을 하고 있다.


드라마 계백에서 황산벌에서 살아남은 계백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고구려가 망할 때 고구려를 위해서 용병으로 참가하는 계백을 만난다고 해도 하등에 이상할 것이 없는 드라마가 <계백>이다. 어쩌면 계백이나 의자왕이 백제가 패망후 당나라로 가지않고, 왜로 건너가 천황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현재 드라마 계백에는 불가능이 없다. 충분히 드라마 계백에서는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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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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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에서 동명제를 주재하는 인물을 뽑기 위해서 의자와 교기는 가잠성 전투에 참가한다.


그리고 의자왕자는 인질(생구)가 되었지만, 생구(포로)들의 내부교란으로 가잠성을 점령한다.


당시 가잠성 점령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백제가 공격하였지만, 백제는 패퇴했었다.


어쨌든, 승전을 하였다고 돌아온 교기와 의자 중 의자가 동명제를 주재할 만큼 공을 세웠지만, 사택비와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의자대신 교기가 주관자가 되었다고 선언을 한다.


이때 흥수는 교지를 교기에게 전달하지 않고, 의자에게 전달한다. 합의된 무왕의 명을 어긴 것이다. 백제라는 나라가 허울뿐인 나라에 허울뿐인 왕뿐이다. 다시금 의자가 동명제를 주관하게 되었지만, 의자는 교기에게 양보하고 만다.


그런데 의문이 든 장면이 <계백>에 등장을 한다. 동명제를 주관하고 참석한 교기왕자와 의자왕자의 복식을 보면 어딘가 왜색의 색깔이 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흥수가 파직을 당하기 전에 자신의 직을 걷어차고 나와 연좌평의 집에 있던 복장도 마찬가지로 왜색풍이다.


당시에 백제 도성에는 백제인 뿐만 아니라 고구려인, 신라인, 왜인, 중원인들이 잡거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백제인이 왜색풍 옷을 입고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다.

 

 

문제는 백제 시조에 해당하는 동명의 제사를 지내는데 초혼관들이 시대를 넘어선 정체불명 왜색복장을 할 수 있는가 이다. 일반적으로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추석제(한가위) 차례나 제사를 지낼 때 일반복장을 하고 있더라도 한복으로 갈아입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계백에서 일반복장보다는 제례에 맞춘 복식으로 초혼관들이 바꿔입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의자왕자가 어릴적 선화왕후의 제사를 지내는 장면에서도 정체를 알수없는 왜색복식이다. 왜 초혼관과 흥수의 복장이 왜색복장이냐는 것이다.
 


특히 흥수의 복장에 옆구리에 2개의 칼을 꽂고 나막신(개다짝)만 신으면 완벽한 왜인무사가 된다. 치마를 윗옷 위로 하고 , 반팔의 겉옷을 걸쳤지만 여미지 않고 늘려트려 입고 있다.

작가나 제작자는 왜색복식이 아닌 당시 고대 백제복식이 왜에 전달된 것이지 현재 왜색처럼 보인 것은 당시의 백제복식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당시 백제는 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왜는 서명천왕은 백제천변에 백제궁을 짓고 백제탑을 만들고, 백제궁에서 기거하고, 백제궁에서 죽었다.


  (11년,639) 가을 7월 조칙을 내려 “금년에 큰 궁궐과 큰 절을 만들어라”라고 하였다. 그래서 百濟川 옆을 궁궐터로 하여 서쪽의 백성은 궁궐을 짓고 동쪽의 백성은 절을 지었다

(10월) 이달 百濟宮으로 거처를 옮겼다.


  13년(641) 겨울 10월 乙丑 초하루 丁酉 천황이 百濟宮에서 죽었다. 丙午 (百濟)宮의 북쪽에 시신을 모셨다. 이것을 百濟大殯이라 한다.

- 일본서기 서명천왕


642년, 9월 癸丑 초하루 乙卯 천황이 大臣에게 조칙을 내려 “나는 큰 절을 짓고자 한다. 마땅히 近江과 越의 丁을 징발하라”고 하였다[百濟大寺이다] - 일본서기 황극천왕



또한, 교기왕자가 왜에 쫓겨난 후 기거한 곳도 백제의 큰우물이 있는 백제대정가(百濟大井家)였다.

 

  戊寅 翹岐가 그의 처자를 데리고 百濟大井家에 옮겨갔다.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의 아들을 石川에 장사지냈다. - 일본서기 황극
 


   

 

양직공도에 나온 백제사신의 모습을 면 바지 위에 긴 윗옷을 입고 팔의 품은 넓고 길다. 허리띠는 윗옷에 동여매는 형태를 하고 있다. 

 
 

백제,고구려,신라


마찬가지로 7세기 당나라시기 왕회도에도 백제사신의 복식은 양직공도와 별차이가 없다. 계백에 나온 복식이 얼마나 고증이 안되 있는지 쉬이 알수 있다.

"북사(北史)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백제의 의복은 고구려[高麗]와 대략 같다. 조정의 배례와 제사 같은 때에는 그 관의 양곁에 날개를 붙이는데, 전쟁 때에는 붙이지 않았다. 나솔(奈率) 이상은 관에 은꽃[銀花]으로 장식하고, 장덕(將德)은 자주색띠, 시덕(施德)은 검은 띠, 고덕(固德)은 붉은 띠, 계덕(季德)은 푸른 띠, 대덕(對德)·문독(文督)은 모두 누른 띠, 무독(武督)부터 극우(剋虞)까지는 모두 흰 띠를 둘렀다.』 - 삼국사기 백제 잡지/복식


하지만, 제사와 조정의 배례를 할때는 관의 양곁에 날개를 붙이고 전쟁때는 붙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책부원귀(冊府元龜)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백제는 매년 네 철의 가운뎃 달[四仲之月]에 왕이 하늘과 오제(五帝)의 신에게 제사지냈다. 그 시조 구태(仇台)의 묘(廟)를 나라의 도성에 세우고 일년에 네 번 제사지냈다.』<해동고기(海東古記)를 살펴보니 혹은 『시조 동명(東明)』이라 하고 혹은 『시조 우태(優台)』라고 하였으며, 북사(北史) 및 수서(隋書)에서는 모두 『동명(東明)의 후손에 구태(仇台)가 있어서 대방(帶方)에 나라를 세웠다.』고 하였으니, 여기에서는 『시조 구태(仇台)』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동명이 시조임은 사적이 명백하니, 그 나머지의 것은 믿을 수 없다.
- 삼국사기 백제 잡지제사

 

계백에서 동명제로 표현된 동명묘 제사는 대부분 정월에 지냈다.한마디로 제사와 왕을 친견할 때 와 전쟁의 차이는 관의 장식에 날개를 붙이는가 붙이지 않는가 여부밖에 없었다. 특별히 별도의 복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초혼관이라고 별다르겠는가? 계백에서 교기와 의자왕자의 초혼관과 흥수의 시대를 넘나드는 정체불명의 왜색복장은 오버스럽지 않는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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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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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blogskinny.com/ BlogIcon Jamie 2012.06.25 1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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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Favicon of http://insurancedirectly.com/health-insurance-quotes/is-aarp-health-care-plans.. BlogIcon aetna vision insurance 2012.08.08 0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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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Favicon of http://www.fashion-pascher.org/15-vetements-hackett BlogIcon Polo hackett 2012.10.25 0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 유림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훈민정음)을 창제한 것 만으로도 성군이라고 말을 하고 있고, 극단적으로 조선이 생긴것은 세종대왕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말로 세종 이도를 극찬하기도 한다.

  11. Favicon of http://jlosek.blogspot.com/2007/04/visit-dog-instead-of-owning-one.html BlogIcon wireless dog fencing canada 2012.11.14 1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법은 흰색 모자입니다. 이 흰 모자를 구현함으로써 당신은 페이지 순위를 얻을 과정을 따라 이동합니다 않습니다하지만 금지되는에서 당신을 방지입니다.

  12. BlogIcon water pouches for kids 2012.11.19 1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 허울뿐인 나라에 허울뿐인 왕뿐이다. 다시금 의자가 동명제를 주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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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Favicon of http://eharper19.bol.ucla.edu/food-items-students-can-afford.html BlogIcon survival radio 2013.01.05 2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불어 정난공신이 되고자 이색의 후손들이 정치를 했냐는 거냐고 반문을 하면서 어이가 없고 개탄스럽다고 말을 한다. 도대체 정난의 주동자인 안평대군과 김종서와 황보인이 충신이라는 말인가?

  15. Favicon of http://www.gomonews.com/guest-post-the-important-advantages-of-using-vpn-servi.. BlogIcon VPN services advantages 2013.01.24 0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히려 마지막 회는 늘어진 전개로 인해서 비담과 덕만의 마지막장면에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보는 입장이니 없어진 10개의 신이 추가 되었다면, 정말 용두사미의 드라마를 보는 것이 아닐까 할만했다.

  16. Favicon of http://www.crunchbase.com/user/lhaizza BlogIcon elhaizza 2013.02.18 1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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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Favicon of http://www.realestatepr.org/williamteho/weblog/6581.html BlogIcon william 2013.04.09 0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사이트는 매우 유용하다고.저자의 생각과 아이디어가 정말 굉장합니다.

  20. Boonie 2013.10.14 1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물론, 당시 백제는 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왜는 서명천왕은 백제천변에 백제궁을 짓고 백제탑을 만들고, 백제궁에서 기거하고, 백제궁에서 죽었다.

  21. Favicon of http://www.backsizes.com/ BlogIcon shoes 2015.05.14 1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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