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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 꿈꾸는 삶
신라사회를 재현을 목표로 만들어진, mbc 명품 사극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천명을 당나라가 서기전, 수나라 시기인 618년 이전에 죽은 것으로 설정하였다. 그렇다면, 실제 기록에는 천명은 언제 죽었을까? 결론을 말하면 언제 죽었는지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공히 기록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들 기록들을 토대로 언제까지 살아있었는 지는 유추해 볼 수 있다.  일단, 현존 화랑세기의 기록을 토대로 천명이 언제까지 살아있었는지를 추적하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서 천명이 언제까지 생존해 있었는지를 추적해 볼 생각이다. 이전 시리즈 글을 본사람이라면 천명이 언제까지 살아 있었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화랑세기에 기록된 천명의 수명

화랑세기의 13세 풍월주 용춘 (596~603)의 기록에 의하면 용춘이 한때 덕만의 남편으로 생활했던 632년 까지도 천명은 생존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용춘이 70세로 죽었다는 647년 선덕왕 말년까지도 천명은 생존해 있었다. 그럼 이를 따라가 보자.

선덕은 이에 정사를 을제에게 맡기고 공에게 물러나 살기를 허락하였다. 공은 이에 천명공주를 처로 삼고 태종을 아들로 삼았다. - 화랑세기 용춘

선덕여왕 원년(632) 2월에 대신(大臣) 을제(乙祭)로 하여금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선덕여왕 원년

선덕이 정사를 을제에 맡기는 때는 632년 즉위 초년이다. 이때 비로서 용춘은 천명을 공식적인 처로 삼고, 30살인 춘추(603년생) 를 아들로 삼았다.

공은 만년에 거문고와 바둑을 즐겼다. 천명(天明)·호명(昊明) 양궁과 더불어 산궁(山宮)에서 술상을 차려놓고 바둑을 두고 거문고를 탔다. 태종은 효성을 극진히 하여 안락하게 모셨다. 태화(太和) 원년(647) 8월 세상을 떠나(薨)니 수가 70살이었다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용춘은 647년 8월 70살에 세상을 떠났지만, 말년인 647년 8월까지도 천명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화랑세기는 여기서 기록이 사라진다. 하지만 천명은 용춘이 70살로 죽은 이후에도 죽었다는 기록이 없다. 천명은 아마도 춘추가 즉위하던 그 순간까지도 살아 있었던 것으로 추측 된다. 그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전하는 천명의 기록을 살펴 보도록 하자.

삼국사기.삼국유사가 전하는 천명은 언제 죽었나?

그럼 천명은 정말 덕만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죽은 것일까?

삼국사기의 김춘추가 654년 3월 왕위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은 4월에 자신의 죽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명예왕과 태후직을 올린다.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의 아들 이찬 용춘(龍春)<또는 용수(龍樹)라고도 하였다.>의 아들이다.<당서(唐書)에는 진덕의 동생이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어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은 진평왕의 딸이고, 왕비 문명부인(文明夫人)은 각찬(角湌) 서현의 딸이다.
- 삼국사기  654년 신라 29대 춘추 출자설명

원년(654) 여름 4월에 왕의 죽은 아버지를 문흥대왕(文興大王)으로 추봉(追封)하고 어머니를 문정태후(文貞太后)로 삼았다.  - 삼국사기 29대 춘추 654년 여름 4월

어떤가? 603년 생인 춘추가 654년 52살에 왕위에 올랐을때, 아버지 이찬 용춘(용수)는 이미 죽어 있어서 추봉한 것이고, 어머니 천명은 아들인 춘추가 왕이 되었기 때문에 문정태후가 된것이다. 이때 천명의 나이는 대략 65~68세 정도로 추측된다.  당시의 기준으로 하면 천수를 다하여 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천명도 "추봉"이란 용수(용춘)의 기록을 근거로 죽지 않았는가? 하는 분이 계신다. 하지만 만만의 꽁떡이 되시겠다. 위의 즉위초년 기사의 원문을 살펴보면, 천명은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을 살아 생전에 보았음이 확실하다. 

일단 잡설로 김부식은 "
당서의 진덕왕의 동생이란 기사는 잘못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진덕왕의 동생이 맞다. 일단, 국반은 용춘과는 사촌간이다. 그러니 진덕과 춘추는 육촌간이 된다. 당서의 기록에는 진덕이 춘추보다 나이가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진덕은 603년 이전 생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건 논외로 치고, 다음 기회에 이와 관련된 포스팅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천명이 춘추가 왕위에 오를때 이미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따라가 보자. 일단 한자 원문을 보기로 하자.

元年 夏四月 追封王考爲文興大王 母爲文貞太后 추봉왕고위문흥대왕 모위문정태후

고(考)와 부(父), 비(妣)와 모(母)의 차이

고(考)는 죽은아버지를 말한다. 그런데 모(母)는 생존한 어머니를 뜻한다. 만약, 죽었다면 모(母)대신에 비(妣), 죽은 어머니 비(妣)를 써야 한다.

물론,  제사를 지내는 지방에 표현하는 것이니, 당시에 죽은 아버지는 (考)로 쓰고, 죽은 어머니를 모(母)로 썼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원문 해석상에 '<추봉왕고>위<문흥대왕>' 이고 ,'<모>위<문정태후>'이다. <추봉왕고>와 <모>는 서로 대응하고 <문흥대왕>와 <문정태후>은 서로 대응한다. 그러니 추봉된 죽은 아버지(용수.용춘)는 문흥대왕으로, 어머니(천명)는 문정태후로 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자세히 읽어 보면 <죽은 추봉왕>이다. 이미 한번 왕으로 추봉 되었음을 짐작해 한다. 그래서 삼국유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대왕으로 추봉되기 전에 무슨왕으로 추봉된것일까?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 삼국유사 29대 춘추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이찬 용수.용춘의 아들 이라고 했다. 그런데 삼국유사는 '용수(용춘) 각간'으로 추봉된 문흥대왕의 아들이라고 하고 있다. 물론, <용수각간으로 추봉된>으로 끊어 읽느냐 아니면 <용수(용춘)각간으로>, 추봉된 문흥대왕에 따라서 해석상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는 각간의 밑인 <이찬>이고, 삼국 유사는 <각간>으로 나온다. 그러니 <이찬>에서 <각간>으로 추봉되었다고 볼수 있다.

문제는 문흥대왕으로 추봉하기 전에 이미 한번<추봉왕><고><위><문흥대왕>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죽은아버지(고) <추봉왕>을 <문흥대왕>으로 했다.

신라는 왕의 아랫단계인 <갈문왕>이란 제도(?)를 두고 있었다. 그러니 최소한 갈문왕이나 문흥대왕이 아닌 용수대왕이나 용춘대왕이지 않았을까? 그건 이름이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 진다. 용춘이 이름이였다면 용수갈문왕이였을 것이고, 용수가 이름이였다면 용춘갈문왕이였을 것이다. 단지 용수갈문왕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건 용수.용춘이 동일인물일때의 가정이다. 동일인물이 아니라면? 다른 이름이지 않았을까? 어떤 대왕이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삼국사기에의하면 문흥대왕 이전에 이미 <추봉왕>이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죽고나서 용춘이 <갈문왕>으로 추봉되었다고 한다. 화랑세기는 용수와 용춘을 서로 다른 사람으로 기술하고 있다. 용수가 먼저 죽고, '용춘은 647년 8월 선덕(덕만)왕이 죽은 같은 달에 70살로 죽었다'고 한다.  
화랑세기에는 용춘이 629년 낭비성 전투의 공적으로 각간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각간->갈문왕->문흥대왕이 된다. 이래서 화랑세기를 함부로 위서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할수가 없다.

그런데 용수는 살아생전에 이미 이찬에 있었다. 그러니 각간->갈문왕->문흥대왕으로 추봉 되었음직하다.

이대목이 용수와 용춘이 한사람이냐? 서로 다른 사람이냐를 가르는 갈림길이다. 이에 관해서는 별도로 포스팅을 할 예정이다.
* <추봉왕>처럼 하나로 묶을것인지, <추봉>,<왕>으로 추봉과 왕을 끊어서 해석할 것인지는 논의가 더 필요하다.

결론  고비. 부모의 차이를 안다면

고(考)와 부(父), 비(妣)와 모(母)의 차이를 안다면 춘추가 왕위에 오른 654년 이전 천명이 죽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춘추가 왕이 되었을 때 아비인 용춘(용수)는 죽었고(考), 어미인 천명은 살아 있었다(母)는 사실이 중요하다.
춘추의 어머니인 천명은 춘추가 왕이 되는 영광을 살아 생전에 봤다는 데는 별다른 하자가 없다. 하지만 천명이 언제 죽었는지는 모른다.  585~588년 생으로 추측하는 천명은, 654년 67~70세 에도 생존하고 있으니 당시 신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천수를 누리고, 만수를 누렸다고 할 수 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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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선덕여왕에서 23회에서 예고한 대로 24회에서 천명(박예진)이 미생의 아들 대남보에게 죽었다. 글쓴이는 대남보와 천명에 관한 
[역사이야기] - '천명', 대남보의 독화살에 죽었다? 사실은 기시를 송고했었다. 이글에서 대남보(류상욱)는 미생의 백여명의 자식중 하나인 아들이 아니고, 용춘의 그림자 무사이며 충복이라고 했다. 또한, 대남보는 자신의 가산을 다 털어서 백여명의 무사를 고용해서 용춘도 모르게 용춘을 보호했다고 했다.

천명을 죽인 대남보는 누구? 

 
대남보는 원래 부유하였는데 그 재물을 모두 기울여 공이 사용하도록 하였으며, 결사대 백 명을 모아서 공을 호위하였으나, 공은 알지 못하였다.
공이 하루는 종자(從者)들과 더불어 미복으로 거리를 지나는데, 어린아이들이 노래(唱)하여 부르기를 처를 바쳐 부자가 되고 일곱 아들 모두 말을 탄다네 딸을 바쳐 가난해지고 세 아들 모두 베옷을 입었네 하였다. - 화랑세기 13세 풍월주 용춘 596~603년


사실 대남보는 용춘(578년생인 용춘보다도 나이가 많은 수하였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용춘의 수하는 커녕 적대적인 미실의 수하이며, 미생의 아들이며 백호의 수장(?)으로 은밀이 미실의 테러를 지원하는 역할이였다. 이제는 대단원의 종지부를 찍는 천명을 죽이는 것으로 악역을 다한것 같다. 물론, 대남보가 어찌살아날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미실은 수나라에 가있는 춘추를 신라로 불려 들이려는데 미생은 대남보를 보내서, 대남보를 보호하려 한다. 

화랑세기에는 대남보의 딸의 정절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대남보의 딸은 용춘을 위해서 정절을 지키려 했지만, 용춘이 받아 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남보의 딸은 우물에 몸을 던져 죽으려 했다.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이에 대씨녀를 첩으로 삼아 많은 자식들을 낳았다.


대남보의 딸은 (용춘)공을 위하여 스스로 정절을 지키고 유화(遊花)가 되기를 거부하였다. 공이 딱하게 여겨 여러 차례 말하였으나 안 되었다.대남보가 “한 명의 여자로 인하여 어찌 공께서 걱정을 하실 수 있습니까?” 하였다. 공이 말하기를 “내가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내가 너를 사사롭게 대한다고 할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하였다. 딸이 듣고 슬퍼하여 우물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 
(중략)..
서자는 다섯인데 용산(龍山)과 용석(龍石)은 대씨(大氏)가 낳았다. 용귀(龍貴)는 미생공의 딸 매생(梅生)이 낳았다. 용주(龍珠)와 용릉(龍凌)은 비보랑공의 딸 홍주(紅珠)가 낳았다. 서녀는 18명이었다. 용산의 누이 용태(龍泰)는 태종을 섬겨 인태(仁泰) 각간을 낳았다. 용주의 누이 용보(龍宝)는 태종을 섬겨 차득(車得)과 마득(馬得) 양공을 낳았다.

대씨녀를 통해, 용태,용산,용석이 있고, 용태는 춘추를 섬겨서 인태각간을 낳았다. 대씨는 천한(?) 사람인데, 그의 아들인 인태는 각간의 지위까지 올라갔다. 이유는? 성골.진골이 없어져서? 아니면 춘추가 왕이되어서? 각자 생각하시길 바란다.

잼있는 내용은 대씨녀가 우물에 빠졌지만, 살아 났다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 났을까? 우물이 얕아서? 대씨녀가 수영을 잘해서? 우물에 빠졌을때 살아나는 방법이 있는데 삶을 포기하고 하늘을 처다 보면 살아난다고 한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은 이유를 아실것이다.

어찌되었던 대남보의 자식들은 모두 귀하게 되었고, 용춘의 첩중에 미생의 딸도 있다. 그 딸을 통해서 '용귀'를 낳기도 한다.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전개이지 않는가?

천명은 언제 죽었나?

그럼 천명은 정말 덕만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죽은 것일까?
드라마 전개상 시대적 배경과 상황은 수나라를 언급하는 시기이니, 당나라가 세워지기 전인  618년 이전이 될것이다.

삼국사기의 김춘추가 654년 3월 왕위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은 4월에 자신의 죽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명예왕과 태후직을 올린다.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의 아들 이찬 용춘(龍春)<또는 용수(龍樹)라고도 하였다.>의 아들이다.<당서(唐書)에는 진덕의 동생이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어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은 진평왕의 딸이고, 왕비 문명부인(文明夫人)은 각찬(角湌) 서현의 딸이다.
- 삼국사기  654년 신라 29대 춘추 계보설명

원년(654) 여름 4월에 왕의 죽은 아버지를 문흥대왕(文興大王)으로 추봉(追封)하고 어머니를 문정태후(文貞太后)로 삼았다.  - 삼국사기 29대 춘추 654년 여름 4월

어떤가? 603년 생인 춘추가 654년 52살에 왕위에 올랐을때, 아버지 이찬 용춘(용수)는 이미 죽어 있어서 추봉한 것이고, 어머니 천명은 아들인 춘추가 왕이 되었기 때문에 문정태후가 된것이다. 이때 천명의 나이는 대략 65~68세 정도로 추측된다.  당시의 기준으로 하면 천수를 다하여 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천명도 이미 죽지 않았느냐고 하는 분들이 계신다. 하지만 위의 즉위초년 기사의 원문을 살펴보면, 천명은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을 살아 생전에 보았음이 확실하다. 김부식은 "
당서의 진덕왕의 동생이란 기사는 잘못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진덕왕의 동생이 맞다. 일단, 국반은 용춘과는 사촌간이다. 그러니 진덕과 춘추는 육촌동생이 된다. 이건 논외로 치고, 다음 기회에 이와 관련된 포스팅을 할 때가 있을것이다.

지금은 천명이 춘추가 왕위에 오를때 이미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따라가 보자. 일단 한자 원문을 보기로 하자.

元年 夏四月 追封王考爲文興大王 母爲文貞太后 추봉왕고위문흥대왕 모위문정태후

고(考)는 죽은아버지를 말한다. 그런데 모(母)는 생존한 어머니를 뜻한다. 만약, 죽었다면 모(母)대신에 비(妣), 죽은 어머니 비(妣)를 써야 한다. 물론,  제사를 지내는 지방에 표현하는 것이니, 당시에 죽은 아버지는 (考)로 쓰고, 죽은 어머니를 모(母)로 썼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한문 해석상에 <추봉왕고> 위 <문흥대왕> 이고 <모>위<문정태후)이다. <추봉왕고>와 <모>는 서로 대응한다. 그러니 추봉된 죽은 아버지(용수.용춘)는 문흥대왕으로, 어머니(천명)는 문정태후로 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자세히 읽어 보면 <죽은 추봉왕>이다. 이미 한번 추봉되었음을 짐작해 한다. 그래서 삼국유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 삼국유사 29대 춘추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이찬 용수.용춘의 아들 이라고 했다. 그런데 삼국유사는 '용수(용춘) 각간'으로 추봉된 문흥대왕의 아들이라고 하고 있다. 물론, <용수각간으로 추봉된>으로 끊어 읽느냐 아니면 <용수(용춘)각간으로>, 추봉된 문흥대왕에 따라서 해석상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는 각간의 밑인 <이찬>이고, 삼국 유사는 <각간>으로 나온다. 그러니 <이찬>에서 <각간>으로 추봉되었다고 보는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죽고나서 <갈문왕>으로 추봉되었다고 한다. 화랑세기는 용수와 용춘을 서로 다른 사람으로 기술하고 있다. 용수가 먼저 죽고, '용춘은 647년 8월 선덕(덕만)왕이 죽은 같은 달에 70살로 죽었다'고 한다.  만약, 현존 화랑세기가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필사한 것이라면, 이찬->각간->갈문왕->문흥대왕이 된다.

그런데 용수는 살아생전에 이미 이찬에 있었다. 그러니 각간->갈문왕->문흥대왕으로 추봉되었음직하다.

이대목이 용수와 용춘이 한사람이냐? 서로 다른 사람이냐를 가르는 갈림길이다. 이에 관해서는 별도로 포스팅을 할 예정이다.

어찌되었던, 춘추의 어머니인 천명은 춘추가 왕이 되는 영광을 살아생전에 봤다는 데는 별다른 하자가 없다. 화랑세기는 이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고, 다만,  용춘이 죽은 것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용춘이 647년 죽고 나서도 천명은 살아 있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신라를 한국 최초로 재현'했다는 명품사극 선덕여왕은 천명을 용춘이 죽기도 전에 덕만을 위해서 죽고,  용춘보다 나이가 적은 것으로도 부족해, 용춘의 아재(삼촌)같은 그림자 무사인 <대남보>를 미생의 아들로 만들고, 천명을 시해하는 국사범으로 만들어 버렸다.
 
또한, 드라마 전개상 진지(금륜)과 미실의 아들이라는 비담(579년생)과 천명.덕만(588전후)와 유신(595년생)이 서로 말을 까고 있다. 비담과 말을 까고 지낼수 있는 자는 알천밖에 없다. (소)알천을 선조라고 믿고 있는 진주소씨 사람의 족보에는 알천은 577(?)년생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에서 추후 추적보도할 예정에 있다.

식탐에서 맥가이버로 진화하는 비담

어찌 되었던, 덕만은 천명이 죽자, 천명이 남긴 유언을 지키지 않겠다고, 못지키는게 아니고 안지키겠다고, 옥빗을 계곡물에 던져 버린다. 미실과 맞서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예고편에서 진평에게 자신이 두번째 여식, 공주 덕만이라고 서찰을 보낸다. 덕만이 천명의 죽음으로 각성하고, 한때 인기를 끌었던 개그 코미디극 중 유행어 "이제 결심했어"처럼 도망과 투쟁 두가지 선택의 순간에 미실과의 투쟁으로 선회를 한다. 이제 드라마는 클라이막스로 치닫고 있는 중이다. 

천명의 죽음에도 식탐비담은 맥가이버비담으로 변해 있었다. 적을 혼란시키기위해서 연기를 피우고, 나룻배를 구하고, 대남보에게 발로 동작하는 다중미사일 화살을 발사해서 부상을 입히고, 독화살로 다친 천명을 수습하고, 나룻배를 움직이고, 의사가 되어 진단과 응급처치를 하고, 덕만과 함께 약을 구하고, 말도 훔치고, 유신과 덕만에게 먹는게 중요하다고 자신이 좋아하는 닭고기를 구해서 먹는 것도 가르친다. 그에 반해 유신이 한일은?

자신들이 죽이고 믿기지 않는다?

사극 선덕여왕은 천명이 죽은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진평을 비롯해서 마야와 용춘과, 미생과, 하종의 입을 통해서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들의 말을  녹취해보자.. 
 
알천 : 공주님이 승하하셨습니다.

설원랑 :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누가 말이냐?
을제 : 누가 죽어?

진평 : (미친듯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 무슨 말을 하느냐? 그게 말이 되느냐? 천명이.. 왜? 천명이 어찌? 뭐가 잘못된 것이다. 믿을수 없다. 말이 안되지 않느냐? 천명이 어찌.. 천명이 어찌.. 짐을 능멸하느냐..


하종 : 천명공주가 왜 죽었냐고?

미생 : 이런 일이 이런일이 

용춘 : 어찌해야 한단 말입니까? 이일을 어찌

을제 (속으로 ) 공주님 제 잘못입니다. 허나 소신 반드시 책임을 질것입니다. 용춘공! 수나라에 연통하여 춘추공을 불러야 하오..

미실 : 죽은 경위가 어찌되었던.. 책임을 피하긴 어렵게 되었어.....

하종 : 왜 갑자기 천명이.. 이해가 안되네..
미생 : (아들을 지키고자 하는 심정으로 ) 대남보를 보내겠습니다.

마야 : 다 ~ 니(진평)책임이고,  내책임이다.  블라 블라.. 

명품사극? 짝퉁사극? 막장사극? 환타지.퓨전사극?

어찌되었던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도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믿어달라도 선덕여왕에서 힘좀 쓴다는 주.조연 등장인물 모두를 등장시켜서 한마디씩 멘트를 따지 않았겠나?

이정도 되면 인기에 상관없이 막장사극이 되가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가 추구하는 명품사극은 물건너 간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나? 그런데 스스로 명품사극을 지향하고, '신라를 국내 최초로 재현'한다고 선언한 드라마 치고는 너무 막나가는 거 아니냐 말이다.

정확한 이야기 인지는 모르겠으나, 선덕여왕 작가진이 '선덕(덕만)은 공주시절 자료가 없어서 상상하기 좋았다'고 했다. 그런데 기록에는 덕만만큼 왕이 되기전 자료가 많은 사람도 없다.

결론은 선덕여왕 원작자가 이야기(구라)는 만들 재주는 있을 지 모르나 소설을 쓸 자질은 없는 것 같다. 특히 역사소설을 쓸때는 인물의 생사와 시대배경은 기초중에 기본적인 것이다. 인물의 성격부여와 사건의 인과관계는 그 다음 부차적인 것이다.

물론, 드라마에 출연해 호연을 하는 배우들과 엠비씨 드라마 제작팀이 쓰레기 원작을 재미있게 만드는 재주가 있음에 존경을 표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신라사 공부를 재대로 시키려는 고도의 전략이 아닐까? 자조적인 말이 입밖에 나올 때가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신라 중기의 시대를 공부하는데 반면교사이다. 또한, 역사소설을 쓰는 자들에게도 이보다 좋은 교재가 없을 것이다.


ps. 선덕여왕을 보면서 계속 궁금했던 게 있는데요.. 혹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온 동굴이 어디인지 아시는 분 있습니까? 너무나 좋더군요.  휴가철 피서지로 그만이 아닐까? 주상절리로 봐서는 남해쪽이나,  제주도 쪽이 아닐까? 하는데요.. 

사극 선덕여왕 역사를 왜곡(?)해서 재미가 없나면 그래도 재밌습니다..^____^;;
Posted by 갓쉰동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0063.tistory.com BlogIcon 카르페디엠^^* 2009.08.12 08: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 왜곡된 부분이 많기는 많았어요.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이라고 시청하면 괜찮겠지만...
    왜곡된 역사의 일부분을 시청자가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까 그게 걱정이네요..

  2.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12 08: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중에 다시 ㅎㅎㅎ
    추천만 ㅋ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2 08: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냅.. ^___^

    •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12 11: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제야 모두 봤습니다.
      명품드라마를 지향했는데
      막장드라마라 ㅋ
      글쎄요....
      드라마의 인기요인이 막장이
      대세인 모양입니다. ㅎㅎㅎ
      역사에 준해서 해도 저는 재미있으리라
      생각하는데 ㅎㅎㅎ
      여튼 후세의 역사학자를 위한
      갓쉰동님의 노고에 감사 드리며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궂은 날씨이지만
      마음은 밝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2 12: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인기가 곧 명품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요.. ㅋㅋ

  3. 2009.08.12 0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12 09: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여기와서 공부를 해야해요..갓쉰동님때문에 앞으로 다른 사극들은 더 사실적이 되겠지요?

  5.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12 09: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집필진이 갓쉰동님께 조언을 많이 받아야 되겠습니다.

    재미있게 잘 봤어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6. 2009.08.12 1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지나가다 2009.08.12 1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자주 좋은글 잘 보고 있습니다.

    저기 동굴은 "비둘기낭"(포천시 영북면 불무산자락에 )이라 하는데..

    한탄강댐 건설로 인해 물속에 잠긴다고 하네요..

    좋은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8. 2009.08.12 2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9. 프라미스 2009.08.14 1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에서는 용수 용춘이 다른 사람으로...용수가 용춘의 형으로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리고 이미 죽었구요.. 그리고 춘추의 아버지가 용수로 나옵니다만... 따라서 적어도 춘추 아버지가 어머니 천명보다는 먼저 죽는 것이 되는 셈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5: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왠 드라마 이야기를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용수는 최소한 603년 이후에 죽습니다. 춘추가 이때 태어나지요.. 기록에 의하면 용수는 더 오래 살지만요..

  10. 작은이 2009.08.14 14: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외국에 사는 아이들은 드라마 보면서 진짜인 줄 알고 그렇게 믿어요.

    확실히 정확한 드라마가 만들어져 외국에서 보는 교포어린친구들도 제대로 알았음해요.

    가끔 황당할 때가 많거든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4 15: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황당한 내용을 잘 알려줄 의무도 있지요.. 부모님은. ㅋㅋ

      그전에 잘 만들면 더 좋구요..

      엠비시 제작자는 작가가 아니닌깐.. 당연히 역사를 모른다고 보면 됩니다.. 원작이 재대로 만들어야지요.

      제작자는 단지, 원작에 맞추어 화면을 구성하고, 배우들의 연기만을 책임지지요.. 어쩔수 없는 것 같습니다.. 원작을 잘만드는 수밖에는..

  11. 강석우 2009.09.08 0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드라마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많이 뒤틀어 놓았죠...
    역사를 왜곡했다는 글 밑에 "그러면 드라마를 보지 마라!"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더라구요...
    그 사람들은 누군가가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에 이르는 역사(보통 일제시대라고 하죠?)를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상당히 궁금하더라구요...
    그런데...
    이 드라마를 제가 처음부터 보지 않아서일까요?
    정말 궁금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김춘추'는 분명 천명공주의 아들 맞죠? 이 드라마에서... 천명이 결혼을 했었나요? 결혼을 했다면 왜 '공주'라는 호칭으로 불렸나요? 그리고 천명이 '춘추'를 어떻게 낳았죠?
    정말 궁금하네요... 천명이 결혼을 했다면 출궁을 했을 것이고... 출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결혼을 하지 않았음이건만... 어떻게 중국게 그렇게 장성한 아들이 있는 것인지...
    이 역사가 이해가 되지 않아요...ㅠㅠ

  12. chtqnf 2009.09.27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
    하여간 생업을 뒤로 하고 열심히 드라마 보고
    열심히 님의 글, 읽고 있습니다.
    글 정말 잘 쓰시네요.***

  13. Favicon of http://www.monclermenjackets-sale.com/ BlogIcon moncler jackets sale 2011.11.09 18: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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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중국게 그렇게 장성한 아들이 있는

  15. Favicon of http://www.movieleatherjacket.com/categories/Christmas-Costumes/ BlogIcon christmas clothing 2011.11.16 17: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떻게 중국게 그렇게 장성한 아들이 있는

  16. 2011.11.17 17: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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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읽다보면 수많은 의문들이 생긴다. 그중에서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된 덕만(선덕)에 대한 의문도 수없이 많이 있다. 왜 진평왕은 덕만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을까?  덕만은 몇살때 왕위에 오른것일까? 덕만의 형제들은 누가 있을까? 덕만은 천명과 어머니가 같은 마야부인의 소생인가? 덕만은 진평의 첫번째 딸인가? 이런 의문들을 풀다 보면 정말 덕만은 남자형제들이 없었을까? 하는 의문에 이르게 된다.  


위같은 의문들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어느정도 해소를 할 수 있었다.  덕만의 기록을 추척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덕만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50대에 가까운 나이에 왕위에 절대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또한, 덕만은 천명보다 나이가 절대로 많을 수 없었다. 그러니 천명의 나이 어린 동생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천명은 덕만과 같은 마야의 소생이 아닐 가능성도 있었다. 다음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첫째, 덕만은 진평왕과 정비 마야의 장녀다.
둘째, 천명이 나이는 많지만, 정비인 마야의 소생은 아니다.

셋째, 천명과 덕만은 이복자매간이다.

넷째, 천명은 정비인 마야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에 덕만보다 왕위승계에서 후순위다.
다섯째, 마야의 후손으로는 덕만 말고도 또다른 자매(들)이 있다.  

여섯째, 덕만은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했다.
일곱째, 덕만은 왕위를 오를때, 현재 80년생이며 한국나이 30살인 이요원보다도 어렸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의 아역역할을 한 남지현은 2009년 현재 15세이다.덕만은 실제로 632년에 15~18세 정도에 늦어도 20세 전후에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진평왕에게는 정말 남자 자식들(왕자)인 성골남자들이 없었을까? 하는 의문들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물론 덕만이 언니인 천명을 물리치고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역사이야기] - 조선 세종, 신라 덕만, 천명의 기록 비교해 보니  마야의 소생인 적장녀인 덕만이 적장녀가 아닌 언니 천명을 이기고 왕위를 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화랑세기가 언급한 것처럼 천명과 덕만이 마야의 소생이고, 천명이 나이가 많은 언니인데, 천명이 진평의 의도를 알고, 효심으로 덕만에게 순순히 물려 주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남자 형제가 있었다면 어찌되었을까? 이도 덕만이 진평과 마야의 적장녀라면 일부 해결은 된다. 왕비의 소생이 아닌 후비들의 소생들이 왕위에 도전하는 행위는 반역에 해당한다.

하지만, 피터지는 왕위쟁탈전의 골육상잔이 벌어지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송고하였다.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칠숙의 반란도 적통을 이를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왕위쟁탈전의 일환이 아닐까? 

 이런 의문을 단숨에 해결해준 책이 현존하는 <화랑세기>이다. 화랑세기에는 진평왕에게는 4명의 아들들이 있었다. 그중 손씨 승만 왕후를 통해서 난 자식은 의문스런 죽음을 당하고, 승만왕후는 자신의 아들이 죽은 배후에 용수.용춘 형제가 있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용수.용춘형제는 지방을 순회하며 외유를 했어야 했다고 한다. 또다른 3명의 자식들은 덕만과 왕위 다툼에 밀려서 왕위를 이을 수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화랑세기는 또한 천명과 덕만은 마야의 소생이고, 덕만이 천명의 동생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덕만이 왕위에 오를 수 있게  된것도 천명이 아버지 진평이 덕만를 후계로 인정하자 효심이 지극한 천명이 순순히 물러 났다고 한다.

어찌되었던 그동안 상식일거라고 생각한 진평왕은 왕자가 없었다. 어쩔 수 없어서 유일한 성골 출신 여성인 '덕만이 왕위에 올랐다'가 아니고 화랑세기에 의하면 수 많은 남자 형제 3명을 물리치고 당당히 신라의 대권을 차지하여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되지 않았는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서만 보아도, 덕만이 왕위에 오르는데 수 많은 난관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진평왕 말년 631년 이찬 칠숙의 난을 물리치고, 언니라고 생각되는 천명도 물리치고, [역사이야기] - 이요원보다 남지현 나이때 왕위에 오른 덕만 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성조황고:聖祖皇姑>란 성스런 조상을 둔 황제의 딸 : 아들이 있어서 장가를 보낼 나이정도에 있는 것으로 해석해도 30세전후 라는 뜻이 되지만,진평왕의 뒤를 잇기에 핏줄에 하자가 없는 정통성 있는 진평왕의 다 큰(성숙한) 자식 정도이다.<황고>의 황과 대응하여 황제(진평)의 결혼해서 어른 노릇할 정도의 나이인 성인여식이란 뜻이다.

왕족들과 귀족집단의 항복을 받아 <성조황고>라는 충성서약문을 쓰게 만들고  왕위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덕만은 이들 말고도 자신의 남자형제를 물리치고 대권을 장악했다고 화랑세기는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김대문은 화랑세기를 쓰게된 동기와 화랑 폐쇄된 결정적인 이유를 화랑출신의 27세 풍월주 흠돌과 26세 풍월주 진공과 흥원의 반란사건을 들고 있다. 또한, 흠돌과 흥원의 반란을 물린 친 주역도 화랑의 풍월주 출신인 김대문의 아버지 28세 풍월주 오기라고 하고 있다.
 
처음 631년 칠숙이 반란을 일으킬때 이를 진압한 것도 염장을 비롯한 화랑출신들이고, 647년 비담의 반란을 제압한 것도 화랑 출신인 유신이라고 이야기한다.

681년 흠돌과 같이 반란에 주동적으로 가담한 흥원이 진평왕의 손자라고 손들고 나선 것이다. 632년 대권경쟁에서 덕만에 밀리고, 647년 승만에게 빼앗기고, 681년 절치부심 흠돌과 진공과 함께 흥원이 '정통성회복'을 기치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흥원은 진평왕/태양공주(진흥/사도) 사이에 난 홍원의 자식이다. 그러니 덕만이 왕위를 계승할때  홍원이 생존하고 있었을 것이다. 진평왕이 고모인 태양공주와 결혼을 했다는 것은 최소한 홍원이 덕만보다는 나이가 많았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진평/태양 사이에는 홍원만이 아니고 홍원의 형인 태원도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만 태원의 소생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당대의 화랑세기에서 조차도 태원의 후손에 대한 기록이 사라지는 것이다. 또한, 태원과 홍원을 비롯한 흥원까지 누구와 결혼했는지 알 수 없다.

기록이 사라질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특별한 하자가 없이 조용히 여생을 보냈거나, 아니면 역모에 역류되었을 때 이다. 태원, 홍원의 결혼상대자와 흥원의 아내에 대한 기록이 사라진 이유는 김대문 가문이나, 춘추가문이나, 김유신 가문과 연관이 없다면 모계를 기록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

태원의 기록이 사라지는 이유는 흥원이 반란을 일으키는 681년 이전 631년 이찬 칠숙의 반란사건이나, 647년 비담의 반란 사건이나, 김춘추가 654년 알천을 물리치고, 왕위를 이을 때 연관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화랑세기를 집필한 김대문은 오기/운명(선품/보룡)의 아들이고, 자의는 (선품/보룡)의 딸이다. 자의와 오기는 이종사촌겸 고종사촌간이다. 선품(구륜/보화)은 21세 풍월주이다. 보화는 진평과 미실사이에 태어났다. 어찌되었던 김대문에게 자의는 이모가 된다. 자의가 법민(문무)의 처이니 654년 춘추가 왕위에 오를때, 태원, 홍원의 처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았을 때  정상적으로 오르지 않았다고 해도 이를 바로 기록했다고 볼 수는 없다.


결론적으로 화랑세기에 의하면 덕만이 왕위에 오를때 태원,홍원(진평/태양) 형제와 보로(진평/보량:박은빈), 승만아들(진평/승만)등 남자형제들을 물리쳤다는 것이다. 덕만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처럼 성골남자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등에 떠밀리 듯 쉬이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글은 덕만이 왕이 되는 과정의 시리즈 글입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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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preciousness.tistory.com BlogIcon ♡ 아로마 ♡ 2009.08.07 06: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하~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힙합댄스 부~탁~ 해용 ^^

  2. Favicon of http://0063.tistory.com BlogIcon 카르페디엠^^* 2009.08.07 0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으로 드라마 전개가 너무 기되됩니다.^^

  3. Favicon of https://lowr.tistory.com BlogIcon 하얀 비 2009.08.07 07: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진진한데요? 사실 당사자에겐 너무나 살얼음판 걷는 듯 위태롭겠지만 말이죠.
    그나저나 전 진덕여왕도 참 의문이에요
    선덕여왕은 왜 사촌 동생인 진덕여왕에게 왕위를?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7 07: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덕만이 634년 결혼한 상대자가 작은 아버지중 한명인 국반이라고 생각합니다..
      덕만 승만.. 덕만의 양딸이 되는 거지요.. 공식적으론 덕만의 자식이 되구요.. 왕의 딸이니 어렵지 않게 올랐지 않을까요?

      이와 관련된 포스트를 참고 하시길.. 어린나이에 왜 왕이 되었는가 시리즈 이니까요.. ^__^

  4. 임현철 2009.08.07 0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부 잘하고 갑니다.

  5. Favicon of http://starculture.tistory.com BlogIcon 아이러니♡ 2009.08.07 09: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재미있게 읽고 가요!
    앞으로 이 역사대로 드라마가 전개된다면 흥미진진할 것 같네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7 15: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지 자못 궁금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글은 선덕여왕의 제작자에 드리는 글이 아닌 원작에 드리는 글이고, 원작이 부실하니 계속 이상한 설정이 나올겁니다.

      앞으로 화랑세기를 인용해서 작품을 만들 소설가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거지요..

  6. Favicon of http://after32.tistory.com BlogIcon 맥주 콜~ 2009.08.07 09: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이네요. 추천 누르고 갑니다~

  7. Favicon of http://hera282.com BlogIcon hera 2009.08.07 0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너무 잘 봤습니다. 요즘 선덕여왕에 확 꽂혀서요 ㅎㅎ

  8.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07 10: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또 새로운 사실을... 공부 너무 열심히 했더니 머리아파요. 선덕여왕, 덕만아 나 좀 살리도~ ㅎㅎ

  9.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07 10: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 제 소설을 추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갓순동님은 화랑세기를 어디서 읽으셨나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근데... 저는 화랑세기를 못 믿겠어요... ㅋㅋ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10. 87 2009.08.07 1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좋은정보 감사해요
    [ 가애스타일 ] 차비 나눠주기






    ////////


    안녕하세요 좋은정보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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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7 11: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즈음은 갓쉰동님 블로그오면..
    뿌듯 ㅎㅎㅎ
    운동하고 나중에 공부하리다 ㅎㅎㅎ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12. 진돌이네 2009.08.07 1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갓쉰동님의해박한 지식에 감탄할뿐이에요^^더불어 역사가 참 흥미로와지네요.

  13. 니에 2009.08.07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세기에 기초해서 선덕여왕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해석을 하셨군요.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1가지 지적하고 넘어갈 것은 김대문이 썼다고 전해지는 '화랑세기'에 대해서 입니다.
    화랑세기는 현재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서적입니다.
    화랑세기에 나오는 내용들을 인정할 것이냐, 그렇지 않을 것이냐 문제로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가 나오게 된 것은 첫번째로 발견된 경위입니다. 실전되었다고 전해지던 화랑세기는 1970년대쯤(정확히 언제였는지는 잊어버린^^;)개인의 저택에서 발견됩니다. 그리고 발견된 화랑세기는 진짜를 일본에서 보고 필사한 것이라는 말이 적혀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없기에 먼저 의심을 품게됩니다. 두번째로는 화랑세기에 적힌 언어문제입니다. 신라시대에 쓰여진 것이고, 그것을 그대로 필사한 것이라면 그 언어는 향찰로 표기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신라시대에 쓰이지 않았던 말이 쓰여있고 후대의 말 까지 쓰여있다는 점에서 의심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주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이 화랑세기에 나온 몇 가지 기록이 발견된 유적이나 유물과 같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전히 많은 문제를 지닌 책입니다.

    화랑세기를 너무 믿지도 그러나 믿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인 것이죠.
    새로운 역사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화랑세기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정말 그 화랑세기의 기록이 전부 사실인지는 조금 더 연구해야 알게 될 것이지만 말이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7 15: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은 드라마 선덕여왕이 화랑세기를 모본으로 삼고 있기때문에 그에 맞추어 선덕여왕을 비판하는 겁니당..

      화랑세기를 인용하지 않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만으로 덕만에 남자 형제가 있거나, 성골이라고 믿는 남자들이 넘치고 있다는것도 증명했지요..

      다른 역사이야기 카테고리 글도 읽어 보는 센스를..

      물론, 화랑세기는.. 영감을 주는 획기적인 작품입니다..

  14. 흠... 2009.08.07 1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치만 선덕이 실제 왕위에 올랐을때 나이는 적어도 50을 넘어서 물려받았다고 알고 있는데요

    필자께서는 화랑세기 라는 책과 내용을 토대로 쓰신것이니 다를수도 있겠지요

    화랑세기라...새롭네요 ^^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7 15: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읽어도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는데요.. 다른 시리즈 포스트 글도 읽어보는 센스를.. ^____^

      저는 화랑세기를 인용하지 않고 덕만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고 증명했습니다만,,

  15. 2009.08.07 14: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6. Favicon of https://labyrint.tistory.com BlogIcon labyrint 2009.08.07 17: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충고 감사드립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쓸 떼 좀 더 깔끔하게 정리했으면 좋았을텐데요... ㅋㅋ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7 17: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깔금하게 정리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김부식이..
      그런데 자료가 없었다고 하네요.

      충고는 아닌뎅.. ㅠ.ㅠ. 화랑세기는 소설소재로 무궁무진한데 제가 글재주가 없어요.. ㅠ.ㅠ. 님같은 분이 잘 쓸수 있게 터전을 만들어 드린다고 생각하면 좋을것 같아요..ㅋㅋ

  17. Favicon of https://saeyanbooks.com BlogIcon 도서출판 새얀 2009.08.07 2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글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특효약인가봅니다. 글 잘읽고 갑니다^^

  18. Favicon of http://488.nn.hn BlogIcon 건강하요 2011.03.31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희 망 /정 보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내 병은 내가 고친다

  19. Favicon of http://488.nn.hn BlogIcon 건강하요 2011.03.31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희 망 /정 보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내 병은 내가 고친다

  20.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카리스마 비담, 치킨비담이 된 이유?

이글은 [역사이야기] - 카리스마 비담, 미실이 버린 아들? 사실은 에서 다하지 못한 후편에 속한다. 끊임없이 샘솟는 샘처럼 노천 노다지광산에서 황금덩이를 줍기만 하면 된다. , 카리스마 있게 등장한 비담의 출생의 비밀과 비밀에 따른 여러 가지 이야기로 구성하였다.

비담(김남길)이 왜 닭에 대한 식탐이 강한지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닭에 어느 정도 암시가 숨어 있는 듯 하다. 닭은 계이며, 신라의 다름 이름은 계림이다. 닭(신라) 잡아 먹는 비담이라. 647년 비담이 상대등으로 반란을 하는 미래에 닭(신라)잡아 먹는 반란을 암시하니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선덕여왕 원작자 주위에 닭을 못 먹어서 죽은 귀신이 있거나, 닭고기 치킨 PPL이 아닐까? 이도 아니라면, '조류독감에 걸린 닭고기라도 삶아 먹으면 아무렇지도 않다' 공익광고의 실례를 보여주는 것일 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던 비담의 닭에 대한 식탐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신이 동네 불량배들에게 몹쓸 짓을 다 당하고, 바짓가랑이 밑을 기어가면서도, 인내하듯이 비담도 김서현의 부하들에 죽도록 맞아 가면서 참았다. 하지만, 식탐, 정확히는 닭탐비담이 자신의 닭고기가 서현의 부하들에게 망가지자 돌변하여 사람을 죽이고, 엉뚱하게도 서현 부하들에 휩싸인 덕만을 구한다. 그렇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비담이 닭에 대한 식탐이 왜 생겼는지, 충분한 설명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덕만과 비담이 나오는 시대 배경은?
 

본론으로 돌아가서 화백회의에 참여한 칠숙이 중대한 발언을 했다. 20년 전 덕만이 쌍생 중 한명이고, 진평이 소화를 통해 빼돌렸다. 

그러니 혁거세의 예언대로 성골남진이 되어 왕실을 이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일단 혁거세의 어출쌍생 성골남진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기사로 송고할 예정이다.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통설의 환상을 깨는 글이 될 것이다.

어출쌍생이 되던 성골남진이 되던 상관없이 진평왕은 덕만을 죽일 이유도 없다. 사위왕을 두거나, 왕족 중에서 왕위를 물려주면 그만 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평은 사위왕보다는 덕만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왕족인 이찬 칠숙과 그의 똘만이 석품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에 관한 글은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자세하게 나와 있다.

천명과 덕만이 태어난 때는?

어찌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돌아가자. 칠숙은 또한번 덕만이 사라진 시기에 대한 언급을 했다. 20년전 덕만이 쌍생중의 하나다. 이를 진평왕이 빼돌렸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시대적 배경은 579년 진평왕이 왕위에 오른 후 20년이 지난 600년 초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화랑들의 활약이 펼쳐지는 602년 아막성 전투가 선덕여왕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와는 다르게 아막성 전투는 화랑들에게는 성지에 가까운 곳이다.[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화랑 신화창조의 성지 아막성, 광개토태왕의 #  물론,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게 드라마는 알천(이승효)를 띄우는데 성공하였다. 

아막성 전투는 신라가 백제의 아막성을 공격하는 것이 아닌 처음부터 아막성은 신라의 성이였고, 수비군이 신라군, 공격군이 백제군 이였다. 하지만 선덕여왕에서는 공격과 방어와 성의 국적도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아막성 전투는 딱 1번 602년에 벌어진다. 이때 가장 활약한 사람은 삼국사기 열전에도 등재되어 있는 화랑 귀산과 추항이다. 귀산과 추항은 귀산의 아비가 백제의 계략에 빠졌을 때 귀산과 추항이 단기 필마로 백제군에 맞서다 장렬히 전사한다.


칠숙에 의해서 다시 한번 덕만과 천명이 580년생이란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김유신이 나오고, 덕만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다.  크면 엄마랑 아빠랑 결혼할래 하는 꼬꼬마시절이 아닌가? 595년생인 6살 김유신은 어머니뻘인 덕만과 천명으로 부터 구애를 하고, 받는 참으로 조숙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603년에 태어나야할 춘추가 아막성 전투 이전에 태어나기도 하고, 춘추의 아비인 용수가 602~3년 사이에 죽어 버리기도 한다. 사실 용수는 640년대가 까지도 팔팔하게 살아 있었다. 이처럼 드라마 내에서도 앞뒤 설정이 틀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드라마 제작자의 잘못도 크지만 드라마의 원작인 소설 <선덕여왕>이 워낙 부실하게 만들어진 때문이다.

어째든 이전 글에서 [역사이야기] - 카리스마 비담, 미실이 버린 아들? 사실은 에서 유신보다는 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을 유신의 배역을 하는 게 적절하다고 언급했다. 

사실 선덕여왕에서는 아직까진 유신이 등장하면 안 된다. 현재 600~605년 사이를 진행되는 시대배경 상황으로는 유신이 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왜 선덕여왕 원작자는 유신을 등장인물로 설정하였을까?


북두의 상징인 유신도 넣고 싶고, 화랑세기를 통털어 주인공 같은 미실을 빼면 안될 것 같으니 미실도 넣고, 덕만도 넣고 싶은 욕심이 화를 자초한 것 이다. 그러니 유신역을 맡은 엄태웅이 연기를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는데 유별나게 극에 녹아 들지 못하고, 겉도는 것이다.

 
시대적 배경은 유신의 아버지 세대와 삼촌들 세대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만명과 사랑의 도피를 한 유신의 아비 김서현이, 유신이 맡은 배역을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았을까?  
 
또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담(미실/진지)를 미실이 버린 자식으로 설정하는 것은 선덕여왕 원작 소설가의 보기드문 상상력의 결과라고 칭찬을 해주였다. 하지만 좀더 역사와 화랑세기에 신경을 썼으면, 진지(금륜)의 소생인 비형량(진지/도화)을 모티브로  미실과 진지의 비담(진지/미실)을 설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결정적으로 비형랑(鼻荊郎)은 코.종.시비(鼻)을 쓰고, 비담(毗曇)은 밝을.도울비(毗)을 쓴다. 그러니 비형랑과 비담 이들에게 같은 음만 가졌지 훈(뜻)이 전혀 다른 글자를 쓰고 있다.

그러니 이들사이에 돌림자는 없다.  원작자의 중대한 실수가 되는 것이다. 단지, 코비에는 노비.시종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니 도울비가 노비.시종을 같이 사용했다면 할만은 없다.


드라마 상 시대적 배경이 칠숙에 의해서 다시 밝혀진 600년대 초반이라면, 진지왕(금륜)이 폐위되기 직전에 미실사이에 태어난 비담(479년생)이 출연한다면, 600년 초년은 20살 안팎이 되니 시의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심청이 아버지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공양미 삼백 석에 왕서방에 팔려가듯이 덕만은 200명의 목숨 값으로 비담에 의해서 설원랑에 팔려간다.
 
비담은 왠지 모르게 덕만에 끌리지만, 200명을 살리는게 한명의 목숨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승인 문노에게 "한명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깨달음을 얻고, 99마리 양을 두고 1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 목동의 심정으로 덕만을 구하기 위해서 설원랑의 일행과 싸움을 시작한다.

99마리 양은 우리에 있으니, 당연히 잃어버린 양을 찾는 건 목동의 기본 심성이다. 비담도 이미 설원랑으로 부터 세신을 얻었으니 잃어버린 양인 덕만을 구한다고 해가 될것은 없는 것이다.


사실 선덕여왕에서 가장 잘못된 캐릭터 설정이 16세 풍월주 보종이다.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사실은 유신과 보종 너무나 친한 사이 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드라마 선덕여왕과 전혀 다른 성격의 보종(미실/설원랑)
 

보종

15세 풍월주 유신에 이어서 16세 풍월주에 오르는 이도 설원랑/미실의 아들인 보종이 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보종은 청아하고, 정이 많고,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아는 사람으로 나온다. 보종은 유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나 병이 났을 때, 치료를 해주는 유신의 주치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드라마처럼 악역전담 처리반이 아니였다.

 유신공이 병이 나자 공이 문득 몸소 치료하며 “우리 공은 국가의 보배이니 나의 의술을 숨길 수 없습니다” 하였다. 이로써 그가 편작(扁鵲)243)의 학(의학)을 갖추었음을 모두 알게 되었다. - 화랑세기 16세 보종

또 하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하종과 보종이 나오고 하종이 보종의 형으로 나오지만, 비슷한 연배로 나온다. 하지만, 실제는 하종은 563~4년생이고 보종은 580(?)년생이다. 유신은 595년생이다. 당시 기준으로 하면 하종은 유신의 할아버지뻘이고, 보종의 아버지뻘이다. 그리고 11세 풍월주 하종의 딸인 영모가 유신과 결혼을 하니 유신은 하종의 사위가 된다.

어찌되었던, 비담과 맞선 상대는 설원랑과 보종이 되니, 비담과 보종은 모르고 있지만, 이들은 어머니가 같은 형제가 된다. 이때 비담은 진지왕의 소생이고, 보종은 설원랑의 소생이다. 이들 중 보종은 미실이 진평왕과 관계를 맺으려 하지만 진평이 어려 미실과 어울릴 수 없자,  만약, 미실과 진평이 관계에 성공했다면 꼭 보종같이 남자 아이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보종이 진평의 뒤를 이어 왕이 된다는 이야기다.

설원랑과 관계를 맺어 보종을 낳았으니 보종이 비담의 동생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골육상잔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보는 관객은 안타까움에 "싸우면 안되는데"를 외칠 것이고, 나중에 비담과 보종이 형제라는 사실을 안 사람은 "권력에는 피도 눈물도 없구나" 할 것이다.

칠숙은 터미네이터, 문노는 짱가?

비담은 579년 진지왕이 폐위되기 직전에 태어났다. 하지만 미실이 비담을 버렸다.  버려진 비담을 문노가 데려다 키웠다. 사실 문노는, 아내인 윤궁에 의해서 진지왕 폐위에 관여를 하였다. 그러니 비담을 키웠을 수도 있다. 

보종이 설원랑과 미실사이에 태어난 비화를 소개 했었다. 진평왕위에 올랐지만, 어려서 미실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고,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진평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마야를 통해서 천명과 덕만을 낳는 것이다. 조금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냥 넘어 가자. 남.여 상열지사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덕만과 천명은 진평왕이 왕위에 오른 직후 태어난다. 덕만은 어출쌍생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소화와 문노와 함께 사라진다. 그러니 덕만과 천명은 580년 전후가 된다.

칠숙은 터미네이터가 되어 미래의 군주가 되는 덕만을 없애는 역할이지만, 문노는 미실의 아들인 비담을 살려 제자로 삼고, 미실로 부터 죽임을 당하려는 덕만도 살리고,  앞으로 유신과 비담이 틀어지는 원인이 되는 '비법병서'를 유신에게만 넘겨주기도 한다. 병든 마을사람을 구하는 것도 문노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신일이 생기면, 짜짜잔 하고, 나타나는 짱가"가 되어 도움을 주는 도움상조가 된다.

숙명의 라이벌 덕만, 유신, 비담

운명의 3인 비담(김남길), 덕만(이요원), 유신(엄태웅)

덕만은 진평에 의해서 버려지는 운명을 타고 났고, 비담은 어머니인 미실에 의해서 버려지는 운명을 타고난 동병상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니 이들이 운명적으로 서로 끌리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비담이 역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운명적 암시를 하고 있다. 만약, 진지왕이 폐위가 되지 않았다면, 비담은 아버지가 같은 용춘.용수와 왕위쟁탈전을 벌렸을 운명이다. 그러니, 비담은 진지왕이 왕위에 있었던, 진지왕이 폐위가 되었던 상관없이 역신의 운명을 타고 났다. .

또한, 유신은 비담의 난을 진압하는 최선봉에 선다. 그러니 작가로써는 이들이 젊었을 때 한때는 동지애가 있었던 추억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을지 모른다.  

17세 풍월주 염장 용춘의 동복아우


용춘의 형제 비담, 그리고 용춘의 배다른 동생 염장

드라마 선덕여왕 상에는 용수.용춘. 비담. 비형랑은 진지왕의 소생이라는 사실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용춘은 금륜(진지)가 폐위되는 시기에 아주 어렸다고 한다. 그래서 아비인 금륜을 기억조차 못한다. 이에 진평이 왕실에서 키웠다고 한다. 그러니 비형랑과 비슷한 처지였던 것이다. 그런데<선덕여왕>에서는 비담이 용춘의 이야기를 차용하고 있다.

어찌되었던 어머니가 다른 형제인 비담이나 용춘이니 비슷한 시기에 낳던 같은 날 낳던 상관 없다. 단지, 용춘과 비담은 형제이고, 용춘이 비담보도 1~2살 많은 형이 된다. 그런데 용춘은 늙었고, 비담은 너무나 젊다.

드라마 선덕여왕기준 용춘과 형제들

용수. 용춘에게는 아버지 진지(금륜)가 죽고난 후 어머니 지도가 천주와 관계하여 난 동복아우인 어린 동생 17세 풍월주 염장(586~648)도 있다.

염장이 하종(세종/미실)과 진흥의 막내딸인 은륜(진흥/사도)사이에 난 하희와 결혼하고, 춘장을 낳는다. 631년 염장은 칠숙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그렇다면 염장과 유신과 하종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이미 유신과 하종(세종/미실) 관계를 이야기 했으니 알아서 생각하시라..


극중 이시기 알 수 없는 풍월주는 누구일까?
 

호재로 나오는 14세 풍월주 호림이거나 13세 풍월주 용춘이다.  호림은 602년~612년까지 장기집권을 한 후 김유신에 풍월주 지위를 물려준다. 극중 전개가 시대를 초월하는 관계로 함부로 설정할 수 없지만, 칠숙의 말을 빌리자면 600년이 된다. 그런데, 드라마 상에 용춘은 내성사신이다. 춘추와 아막성 전투를 기년으로 삼으면 602~5년 정도이다. 그렇다면, 호림이 풍월주가 되는 것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용춘.용춘이 내성 사신이 된 때는 622년 진평왕 44년이다. 

그렇다면 누가 풍월주일까? 모르겠다가 정답이다. 그만큼 사극 선덕여왕의 원전인 소설 선덕여왕은 부실 투성이다. 그런 부실 덩어리이며 시제도 맞지 않은 황당한 소설을 가지고, 사극을 만들어 인기를 끌고 있는 이병훈사단(딴지걸지 말자. 피디가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고, 이병훈사단이라고 했겠나)이 대단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존경심까지 든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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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스테리아 2009.08.05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선덕여왕 보면서
    많이 다시 찾아보고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 갖고 있는 이입니다..
    어떻게 끼워맞춰봐도
    이 드라마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것쯤이야 다들 아시는 거니까요^^

    워낙 글 잘 쓰시고 정말 공부도 많이 하신 것 같아
    감탄하면서 잘 읽고 가는데요.
    저는 드라마만 정말 열심히 봤거든요 ㅋㅋ
    염장이라고 사진 올리신 배우가
    드라마 상에서는 10화랑 중 하나인 호국선도의 <임종>인데
    동일인물인가요?? 궁금합니다.

  3. 손동작 2009.08.05 2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 선덕여왕에게 앞뒤 맞는 설정을 바라는 마음은 김유신이 덕만,천명과 같은시기에 태어났다는 기본 설정을 봤을 때 부터....... 저~~~~ 멀리 버려버렸지요... 역사적 사실과 너무 동떨어지니 개인적으론 갈수록 흥미를 잃게 되더군요..;

  4. 공감 2009.08.05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을 보는 같은 시청자 이지만, 글 쓰신 분 께서는 훨씬 더 재미있게 보실 것 같습니다...

    정성껏 마음내서 쓴 글, 이모저모 정보에 감사드립니다.~~^^

  5. 팩션이야 2009.08.05 2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팩션일뿐이야.

    드라마라구.

    역사적 진실이 어딨어?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6 1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런분들 꼭 있지요.. 그래서 이짓거리 하고 있는겁니다..

      대체적으로 팩선은 픽션이야.. 역사적 진실이 어딨어? 하는 사람치고.. 역사를 재대로 공부한 사람 없다는데 100원 겁니다..

  6. 양갱 2009.08.06 05: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역사를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사극이 드라마를 너무 왜곡하는것을 시청자들이 그대로 이해할까봐 작은 걱정이드네요

    그저 재미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지식을 가지고 사극을 이해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7. 예쁜기린 2009.08.06 0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뭔가 지식인이 된 것 같은 기분??ㅎㅎ
    앞으로 사극전개를 이해하는데 조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많은 똑똑한(?)분들이
    선덕여왕을 보시면서 역사와 너무 맞지 않는다며 비판하시던데

    실제로 역사와 완전 싱크로율100퍼센트로 사극을 만든다면
    드라마는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고 유치뽕짝에 잔인한 세계로밖에 보이지 않을것입니다.
    게다가 여태까지 방영되었던 왠만한 사극들은 모두
    사실을 바탕으로 한 사실인듯 허나 사실은 아닌 -_- 허구극들이었는데
    왜 유난히 선덕여왕만을 비판하는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6 11: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건을 왜곡하면 안되구요.. 출생일, 몰일, 직책은 왜곡하면 안되용.. 사극의 기본입니당.. 사건이 발생한 원인이나 과정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사극이 해야 할 일이구요..

      유난히 비판하는이유는 유난히 인기가 있기 때문일겁니다. ㅋㅋ

  8.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8.06 11: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때마다 하나씩 아니 몇개씩 건져가서 갑니다. 신라역사 이손아귀안에 있습니다해도 될정도로요. 그런데 이 방을 나가는 순간 또 잊어버리게 되는 것은 무슨 조화랍니까? 그냥 비담에 확 꽂혀서 이번회는 역사공부한 것도 다 헛것이 되버리고 말았답니다. 그래서 다음주부터는 비담한테 애정을 조금만 주려고 생각중입니다. 생각해보니 이놈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놈 아니겠습니까?ㅎㅎ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06 11: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피도 눈물도 없다. .결과을 위해서라면..

      독특한 캐릭터 같아요.. 이놈.. 그런데 많이는 안키울 겁니당.. 키울놈들이 많거든요.. 1주에 한명씩.. ㅋㅋ

  9. Favicon of https://easygoing39.tistory.com BlogIcon 카타리나^^ 2009.08.28 14: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때문에 더 헷갈리는 관계도인거 같아요

    문노는 왜 비담을 저리 키웠는지...
    흠...피는 어쩔수 없다는걸까요? ㅎㅎㅎ

  10. ㅇㅇㅇㅇ 2009.09.28 1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기요. 드라마 시작하기전 역사에 근거해서 작가가 쓴게 아니라 상상 위주로 쓴다고 했는데 왜 불만이신지?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9.28 19: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누가 상상으로 쓴다고 하던가요? 기본적인 것은지키고 써야지요.. 소설의 기초인뎅.. SF도 선덕여왕 원작을 따라 갈수 없어요.. 주인공,,출생에는.. 그리고 이글은 극히 역사적인 기록을 기초로 작성한 겁니다.. 작가가 역사를 알고 상상력을 발휘했으면 말도 안해요..

  11. 2009.09.29 1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2. 알뤼르 2009.10.10 2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의 글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갓쉰동님과는 달리 생각하는 부분도 있지만 새로운 해석이다보니 흥미롭더군요. 역사는 원래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있기에 더 재밌는 거 아니겠어요 :-)
    그런데 포스팅들을 읽다 보니 선덕여왕 원작소설에 대한 언급이 많으셔서 한 말씀 드려요. 선덕여왕 원작소설은 소설작가가 다 완결내고 그걸 바탕으로 드라마를 만든 게 아니라 드라마작가들의 시놉시스를 소설작가가 받아서 소설화한거랍니다. 소설작가만 탓할게 아니라 드라마든 소설이든 도찐개찐인거죠 뭐.
    드라마 아이디어도 신선하고 배우들도 연기를 잘 하길래 보긴 봅니다만, 너무 황당한 설정이 많아서 가끔씩 짜증이 나네요.

    +조금 거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포스팅을 읽다가 걸리는 부분이 있어 한말씀 드립니다. 요즘 사람들이 역사에 너무 관심이 없고 고대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일천하다 보니 갓쉰동님의 새로운 해석이 정설같이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포스팅을 하실 때는 그런 부분을 잘 밝혀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갓쉰동님의 글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세상엔 비담이 진짜 미실의 아들이라고 너무나 당연하게 믿는 사람들도 많다지 않습니까 OTL.

  13.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14. Favicon of http://www.pussy-dreams.com/niches/hairy.php BlogIcon click here 2012.07.14 14: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론으로 돌아가서 화백회의에 참여한 칠숙이 중대한 발언을 했

  15. Favicon of http://rocville.com/?p=Forums BlogIcon Neeper 2012.09.29 1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을 초월한다. 한신이 동네 불량배들에게 몹쓸 짓을 다 당하고, 바짓가랑이 밑을 기어가면서도, 인내하듯이 비담도 김서현의 부하들에 죽도록 맞아 가면서 참았다. 하지만, 식탐, 정확히

  16. Favicon of http://www.paws-rescue.org BlogIcon invisible dog fence wire 2012.11.03 2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티즌 악플러들은 뻘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만약, 일본이 진다면 일본 악플러들의 만행이 만만치 않을것 같다. 반면에 일본이 파라과이를 이긴다면 한국내의 악플러들이 허정무 감독과 대한민국 대표팀을 공격할 것 또한 자명해 보인다.

  17. Favicon of http://tommyferris9.multiply.com/journal/item/3/Family_Members_Survival_Kits_-.. BlogIcon the ready store vs emergency essentials 2012.11.07 1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론으로 돌아가서 화백회의에 참여한 칠숙이 중대한 발언을 했다. 20년 전 덕만이 쌍생 중 한명이고, 진평이 소화를 통해 빼돌렸다.

  18. Favicon of http://mommypoppins.com/node/337 BlogIcon canine fence wilton 2012.11.23 0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아레스가 퇴장을 건 승부가 없었다면 우루과이는 8강에 만족하고 짐을 싸고 집에 돌아가야만 했다.

    승부차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루과이는 이기고 들어갔고, 가나는 이미 지고 들어가는 승부였다.

  19. Favicon of http://mommypoppins.com/node/337 BlogIcon canine fence wilton 2012.11.23 0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아레스가 퇴장을 건 승부가 없었다면 우루과이는 8강에 만족하고 짐을 싸고 집에 돌아가야만 했다.

    승부차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루과이는 이기고 들어갔고, 가나는 이미 지고 들어가는 승부였다.

  20. Favicon of http://monetmorin.posterous.com/72-60-minute-block-survival-kits-preparedness BlogIcon survival cooking fish 2013.01.02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만, 경기 2주를 남겨두고 경기도 과천 빙상장에서 연습도중 다른 사람과 충돌하여 심각한 발목 인대

  21. Favicon of http://social.msdn.microsoft.com/profile/modamer/ BlogIcon Giyim Markalari 2013.09.15 05: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멋진 정보를 공유 주셔서 감사합니다. 좀 더 유용한 정보와 좋은 아이디어를 다른 게시물을 확인합니다.


200

(C) mbc 사극 드라마 선덕여왕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모본으로 삼고 있는 화랑세기에는 수 많은 여인들이 나온다. 현재 고현정이 맡고 있는 미실도 화랑세기에는 중요한 여인중에 하나이다. 역사물을 다루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라면, 사랑, 야망, 권력욕, 천재성을 두루 갖춘 주인공으로 내세울수 있는 최상의 캐릭터다.

하지만 미실 전에 지소, 금진, 옥진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지소는 법흥왕의 딸로서 작은아버지 입종에 시집을 가서 진흥을 낳는다. 하지만 진흥이 왕이 되기 위해서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법흥은 진흥보다는 지소의 두번째 남편인 영실이나, 미진(법흥/벽화)를 후계로 점지 했었다. 하지만, 지소의 반대로 법흥은 진흥을 자신의 후사로 결정할 수 밖에 없었고, 영실도 법흥의 후계가 되지를 못했다. 만약, 영실이 왕이 되었다면, 김씨에서 박씨로 성씨가 교체되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이전 여왕은 있었다. 첫번째는 누구?! 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번편은 금진/옥진 자매중 사다함의 어머니로 유명한, 금진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사다함의 죽음에 관한 비화

(C) MBC 선덕여왕, 사다함(박재정)

금진은 수 없이 많은 남성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지소와 미실과는 다르게 권력욕보다는 색욕이 강한 여성이였다. 사다함의 부장이였던, 무관이 금진과 사통하는 일이 발생한다. 금진과 무관의 관계는 사다함에 들키게 되고, 무관은 월성 담장을 넘어 도망치다 성을 보호하려 만들어놓은 해자(물웅덩이)에 빠져 죽고 만다.

사다함은 무관의 죽음에 비관하여  죽고 만다. 사다함이 죽게 되는 여러 이유 중에는 미실을 사랑하였으나, 미실은 세종에게 시집을 가벼렸다. 그리고 자신의 충직한 부관인 무관이 자신의 어미와 사통하다. 죽음에 이르게 된것이다. 사다함이 어머니의 색욕에 의해서 죽게되는 운명에 처한다. 사다함의 죽음에는 결국 어머니에 의한점이 많다.


금진의 남자들


이전글에서 지소의 남성편력을 상세히 이야기 했지만, 금진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알고 미실의 팜므파탈은 지소나 금진에 비하면 하수에 가깝다.

사실 사다함은 금진의 남편편력에 대해서 증오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미를 어미라 부르지 않던 사다함에게 이사부는 신도의 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에 사다함은 깨달음을 얻어  무관이 죽을 시점에는 어머니의 남성편력에 대해서 달관의 경지에 도달할 때 였다. 무관으로서는 이전 사다함이 어머니의 편력을 미워한 사실을 알고 있던터라 사다함에 들키자 무작정 도망을 치다 죽어버린 것이다.

상상을 해보자.  달이 밝지 않은 월성에서 도망자와 추적자..사다함이 무서워 무작정 도망가는 무관과 오해를 풀어주려던 사다함과, 자신을 죽일 것 같은 사다함.  "도망가지 마라 무관~, 괜찬다 무관", 말은 도망가지 말라고 하지만, 잡히면 죽을 것 같은 무관. 561년 가야정벌에서 가야인을 안심시키고 한번의 진공(공격)으로 가야를 무너트린 사다함의 계략을 잘고 있던 무관으로써는 당연히 오해를 살만 하지 않던가? 

구리지와 결혼을 하기전에는 금진은 법흥의 후비였지만, 법흥과 사이에는 후사를 보지 못했다. 540년 법흥이 죽고 나자. 구리지와 결혼을 하여 토함과 새달 그리고 5세 풍월주 사다함을 낳는다. 

법흥의 아우이며 지소의 남편인 입종을 통해서는 숙흘종을 낳는다. 숙흘종은 만호(지소/이화랑)의 사이에서 만명을 낳고, 만명이 김서현과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후 김유신을 낳는 것이다. 진흥을 통해서는 난성공주를 낳고, 누군지를 알 수 없는 상대에게서 준영을 낳는다. 

금진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남편의 양자인 설성과 관계해서 7세 풍월주인 설원랑을 낳는다.

 입종은 법흥과 같은 해인 540년 죽었다고 화랑세기는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금진의 첫째 아들은 숙흘종이 아닌가 한다. 이들의 순서는 설원랑이 사다함(546년생)보다 3살 어리다고 기록하였으니, 숙흘종(입종), 토함(구리지), 색달(구리지), 사다함(구리지), 설원랑(설성:549년생):(그림에는 548년생으로 나왔지만 오류), 난성(진흥), 준영(?) 이며 금진의 동복 형제자매가 되고, 순서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를 닮아 끈질긴 구리지

구리지는 이름이 현재에 봐도 조금 머시기 한 이름이 아닌가? 너~ 먼가 구리지..한마디로 하면 너 똥냄새 난다는 말이다. 
사실 구리지는 그의 아비인 비량이 법흥의 비였던 벽화(섬신/벽아)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머지 벽화와 화장실에서 관계를 해서 낳은 아들이다. 그래서 이름이 '구린내'를 뜻하는 구리지가 된 것이다. 

구리지는 아버지인 비량의 피를 이어 받아 끈질김이 있었다. 처음 금진이 법흥의 비가 되었을때, 한눈에 반해 사모하는 마음이 깊었다. 그래서 구리지는 '천주사'에서 5년동안을 금진을 자신에게 달라고 빌고, 빌었다. (천주사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다)

그리고 마침 법흥과 입종이 죽자. 금진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구리지가 취한게 아니고 실은 금진이 구리지를 간택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던, 구리지는 "열번찍어 안넘어가는 여자 없다"는 고사를 만들어(?)낸 인물이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요즘도 여성에 대한 허황된 환상에 빠져 열번찍어 보는 경우도 있지만, 한결같이 5년동안 빌고비는 행위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성이지 않을까 한다. 미인을 얻는자는 그만한 대가를 치루게 되는 모양이다. 금진은 구리지에 만족하지 않고, 그후에도  수 없이 많은 남성을 자신의 남자로 만들고, 그로 인해 자식인 사다함까지 죽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으니 말이다. 

 

금진의 후손들

위의 금진의 남자들과 후손들을 보면 금진과 유신과는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금진 할미를 둔 덕만과 유신

금진/입종(법흥/연제) -> 숙흘종/만호(지소/이화랑) ->만명/서현 -> 유신 .
지소/이화랑->만호/동륜[진흥/사도(영실/옥진)] -> 진평/마야 [복승/송화(지소/영실)]-> 천명,덕만,천화

이로써 덕만과 유신은 만호를 할머니로 둔 사이가 된다.

설원랑과 미실의 손녀 사위 유신

또한, 설원랑과 유신은 금진의 자손이 된다. 또한, 설원랑이 준모(모랑/준화)를 통해서 낳은 미모가 미실/세종이 낳은 하종/미모과 결혼하여 영모를 낳는다. 영모는 유신이 풍월주에 오르는 18세가 되기 바로 전에 결혼을 한다. 

그러니 유신은  설원랑의 손녀사위가 되는 것이다. 또한 유신은 미실의 손녀사위가 되기도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처럼 미실과 설원랑은 김서현 가문과 척을 진적이 없고, 끈끈한 핏줄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과 전혀 다른 성격의 보종(미실/설원랑)

 

보종

15세 풍월주 유신에 이어서 16세 풍월주에 오르는 이도 설원랑/미실의 아들인 보종이 된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보종은 청아하고, 정이 많고,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아는 사람으로 나온다. 보종은 유신이 어려움에 처했을때나 병이 났을때, 치료를 해주는 유신의 주치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드라마처럼 약역전담 처리반이 아니였다는 것이다.

 유신공이 병이 나자 공이 문득 몸소 치료하며 “우리 공은 국가의 보배이니 나의 의술을 숨길 수 없습니다” 하였다. 이로써 그가 편작(扁鵲)243)의 학(의학)을 갖추었음을 모두 알게 되었다. - 화랑세기 16세 보종

또하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하종과 보종이 나오고 하종이 보종의 형으로 나오지만, 비슷한 연배로 나온다. 하지만, 실제는 하종은 563~4년생이고 보종은 580(?)년생이다. 유신은 595년생이다. 당시 기준으로 하면 하종은 유신의 할아버지뻘이고, 보종의 아버지 뻘이다. 그리고 11세 풍월주 하종의 딸인 영모가 유신과 결혼을 하니 유신은 하종의 사위가 되는 것이다.

남성 기능 장애자 세종 (댓글로 지적을 받아 삭제 해야 하나 남겨둡니다.)
 

세종

이전글에서 하종은 세종의 자식이 아닌, 미실과 사다함의 자식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하종의 모습이 너무나도 사다함을 닮았다고 하며, 세종은 미실과는 다르게 하종을 제외하고는 후사가 없다. 세종에게 남성기능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하종은 사다함의 자식이 될 수 밖에 없다.

( 세종과 미실사이에는 하종 이외에 옥종이 있었습니다)

금진의 아들인 설원랑 편에서도 언급을 하겠지만 설원랑 가문은 진평과 끈끈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진평의 아들들 중 한명을 생산하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전혀 언급이 되어 있지 않는 왕자들이다. 승만왕후 소생은 일찍 죽고, 나머지 진평왕의 아들인 보로전군 이야기도 나온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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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daybreak81.tistory.com BlogIcon 사자의새벽 2009.08.03 07: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정말 선덕여오앙에 대해 이렇게 심도있게 쓴글 처음입니다.
    돈이라도 드리고 싶네요 ㅋ
    갓쉰동님 좋은 한주 되세요!! 글 잘 봤습니다.

  2. Favicon of https://preciousness.tistory.com BlogIcon ♡ 아로마 ♡ 2009.08.03 09: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전문 블로거로 임명 합니다~
    ^^

  3. Favicon of http://middleagemanstory.tistory.com BlogIcon 영웅전쟁 2009.08.03 10: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역사전문 블로그로 말씀드리고 싶군요.
    한때 역사선생님이 되실려고 하셨기도 하고...
    잘 공부합니다.
    더불어 좋은글도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이번주도 행복한 한주 되시길 바랍니다.

  4. 희망 2009.08.03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춤법에좀 신경을 쓰시면서 글을 쓰면 좋겠네요.
    전문적이고 역사적인 글이 맞춤법 하나 틀리면서 얼마나 신뢰성을 잃는지 아신다면..

    띄어쓰기나 잘 쓰지 않은 표현을 틀린다면 몰라도
    세발의 피, 거늘이다 는 조금 알아두셔야 할듯 합니다.

  5. BlogIcon agkrihl 2009.08.03 1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나치게 본인의 입맛에 맞추신듯... 내용을 미묘하게 누락하셨네요...

    화랑세기 필사본에 따르면 미실은 세종공과의 사이에서 하종외에 옥종공을 낳았습니다...

    하종공에 대해서도 하종이 사다함을 닮았으나 세종의 아들이라고 못을 밖고 있으며,

    사다함이 금진의 아들이고,

    미실이 금진의 언니인 옥진의 외손녀로 외모가 옥진과 닮아있었다 하니...

    미실의 아들이 사다함을 닮았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6. 뇽자 2009.08.04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 너무 좋아 하는데...~~

    이렇게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을 줄이야 .....

    여튼 좋은 글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7.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8. Favicon of http://garnertondy.multiply.com/journal/item/2/The_5_Most_Favored_Emergency_Su.. BlogIcon pilot crackers alaska 2012.11.01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종욱이.. 왜 이리 허점 많은 설을 유포하는지 모르겠어요..님이나 이종욱처럼

  9. Favicon of http://www.e-news.name/louer-un-chien/ BlogIcon invisible fence collar 2012.11.05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문 블로거입니다. 내 피드에 가입하여 큰 게시물의 여분의 탐구에에 남아

  10. Favicon of http://poofygoo.blogspot.com/2008/07/do-you-believe-in-coincidences.html BlogIcon portable dog fencing camping 2012.12.20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 화랑세기에는 중요한 여인중에 하나이다. 역사물을 다루는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라면, 사랑, 야망,

  11. Favicon of http://bhuokit.beep.com/ BlogIcon food supplies for restaurants 2012.12.31 1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다함이 어머니의 색욕에 의해서 죽게되는 운명에 처한다. 사다함의 죽음에는 결국 어머니에 의한점이 많다.


삼국사기는 덕만을 진평왕의 장녀이며, 마야부인의 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삼국사기의 기록에 대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거나 이설이 있음을 곧잘 지적하던 일연은 진평왕의 장녀이며, 마야부인의 딸이라는데 이의제기하지 않고 있다.


화랑세기의 무서움은 기존 사서의 빈틈을 칼처럼 파고 들고 있다. 그동안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거나, 또는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한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선덕여왕이 덕만에 관한 기록에서도 화랑세기의 위력은 발휘된다.

그런데 뜸금없이 화랑세기는 무슨 소리, 덕만은 진평왕의 딸인것은 분명하고, 마야부인의 딸인것은 맞지만, 천명이 맏이고, 덕만은 천명의 동생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화랑세기도 덕만이 천명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말하지 않고 있다, 화랑세기는 무엇을 근거로 덕만이 천명의 동생이라고 했을까? 그건 화랑세기에 맡기도록 하자. 언젠가는 화랑세기를 심층 분석할 때가 올것이다.


사실 덕만의 기록을 심층분석하고 있는 이유도 현존 화랑세기의 진위논쟁에 뛰어들려는 의도도 어느정도 가지고 있다.
 
글쓴이는 그동안 덕만은 진평왕과 마야부인 사이에 태어났지만, 천명은 마야의 소생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더나아가 덕만이 기존에 알고 있던 늙었을때 왕위에 오르지 않고, 극히 젊은 나이때 즉위했다는  여러 증거를 제시하고, 이를 증명하였다.

또하나, 덕만과 천명이 다른 출자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이전글에서 흘렸다.

덕만이 가지고 있는 남성스런 이름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신라 당시에도 여성은 여성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덕만의 어미인, 마야, 진평의 어미인 만호(이것도 약간의 중성을 넘어 남성성이 보이긴한다.) 지소, 지조, 선혜왕후, 보희,문희 등 그 나름대로 여성성이 보이지만, 뜸금없이 덕만이라니, 덕만이 가지고, 있는 뜻은 결코 나쁜 뜻은 아니다. 덕을 널리 퍼트리고 길게 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전 글 [역사이야기] - 천명이 말한 덕만의 촌(?)스런 이름의 이유 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덕만의 이름이 가지는 남성성

덕만이 천명의 나이어린 이복동생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또 하나 있는데, 진평왕이 아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예전부터 아들은 없고 딸만 있는 집에서는 여자 아이의 이름에 남자의 이름을 붙혀 다음 출생자가 남자이길 소망하는 이름을 짓기고 한다. 또한, 여자이름 중에 끝순이, '말희', '끝네', '말자'라는 이름은 대부분 아이를 더 이상 낳지 말자는 뜻도 있지만, 여자 아이는 그만 낳자란 뜻을 포함하고, 삼신할미에게 다음은 아들을 점지해달라는 기원이기도 하다.

이름에서도 덕만은 위로 많은 언니들을 두었음직하지 않는가? 덕이 있으라는 뜻도 되겠지만, 태어나자 마자, 왕실에 아들들로 번창할 덕을 빌었음 직한 이름이니 말이다.

 
만약, 덕만이 천명보다 언니라면 진평왕의 첫번째 공주의 이름을 '덕만'이란 남성의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여쁜 공주의 이름에 덕만이라니, 다음에 왕자를 생산을 염원하기 위해서 '덕만'이라고 지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만만의 콩떡이 된다. 진평은 왕이다. 언제든지 왕자를 생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진평왕 초년에 덕만의 이름을 지었다면 진평왕의 머리가 좀 이상스러운 것이다.

 
덕만의 이름은 진평왕과 왕실의 절실한 적통을 이을 왕자를 바라는 이름이다. 또한, 마야도 제일 왕후는 아닌 것이다.  

덕만과 천명이 이복자매라는 또 다른 증거 (세종과 그의 형 경녕군)

또하나,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려고 한다. 우리가 너무나 잘알고 있는 조선시대 세종에 관한 기록이다. 세종을 우리는 이방원의 3번째 아들로 알고 있다. 그리고 세종이 즉위하게된 배경도 너무나 잘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에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과연 세종은 태종의 3번째 아들일까? 아니라고 한다면 총맞을 것이다. 그런데 세종은 태종(이방원)의 3번째 아들이 아니다.


일단, 세종(이도)을 태종(이방원)의 3째아들로 기록하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의 세종즉위 초년 세종이 세계를 기록한 내용을 살펴 보자.

세종 장헌 영문 예무 인성 명효 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
의 휘는 도(祹)요, 자는 원정(元正)이니, 태종 공정 대왕(太宗恭定大王)세째 아들이요, 어머니는 원경 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이다. - 조선왕조 실록 세종


이기록만 있다면, 세종은 태종의 3째 아들 같지 않는가? 그리고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라고 기록하고 있다.

녕군의 휘는 비(裶)이고 자는 정숙(正叔), 시호는 제간(齊簡)이다. 1395년(태조 4) 12월 13일 개성의 정안군(후의 태종)의 사저에서 효빈 김씨의 소생으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관후하며 효성과 우애가 깊었다. - 전주이씨 대동종보 경녕군

드라마 대왕세종을 본 사람은 이방원의 또다른 아들 경녕군이란 이름을 들어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태종의 아들이고, 후비 효빈 김씨 소생이다. 그런데 경녕군은 1397년생 세종(이도)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러니 경녕군은 세종보다 형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어머니는 효빈김씨로 세종과는 다른 후비 효빈 김씨라는 사실 뿐이다. 경녕군과 충녕군은 서로 출신성분 자체가 다르다.


그럼, 태종의 셋째아들은 누구일까? 세종일까? 아니면 경녕군일까? 경녕군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다. 답은 둘째로 알고 있는 효령대군이다. 드라마 세종대왕에서는 경녕군을 효령대군보다 아우(?)로 했었던것 같다. 기억에 의존하는 관계로 틀릴 수도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상식으로는 경녕군이였다.

사실 경녕군은 태종(이방원)의 첫째인 양녕대군(1394년) 다음 1395년에 태어났다. 그러니 1396년 태어난 효령대군 보다도 형이다. 그렇다고 해서 경녕군이 세종이 어미인 원경왕후 민씨는 될 수 없다. 물론, 의붓 큰어미이기는 하다.

그렇다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태종의 3번째 아들 세종(이도:충녕대군)은 잘못된 것일까?  답은 아니다, 세종은 태종의 3번째 아들이 맞다. 이유는 정비인 원경왕후 민씨의 3번째라는 것이고, 적통을 이을 3번째 왕자가 세종(충녕군:이도)이란 뜻이 된다. 왕의 계승서열 3순위인 3번째 왕자라는 것이다. 사사로이는 경녕군이 충녕군(세종)의 형이 되지만, 왕통서열은 존재조차 미미한 후비의 소생이 된다. 물론, 정비인 원경왕후 민씨가 후비가 되거나 폐출되어 폐서인이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왕가의 일은 적자/서자를 확실히 구분하고 있다. 양반, 서얼을 구분하고 있는 것처럼, 서얼은 처주지도 않았다. 특별히 기록하지 않는 한에는 말이다. 또한, 정비의 소생이냐 후비의 소생이냐의 차이에 따라 신분은 하늘과 땅이 되는 것이다. 같은 왕의 아들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한마디로 역사를 연구할때 적자, 서자, 적통를 구별할 줄 모르면 삼천포로 빠진다.  

설마 성골.진골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신라가 조선과는 다르다고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왕위를 잇는데 신라가 조선보다 오히려 더 엄격한 기준이 있었지 않겠는가? 진골도 아니고, 성골임금인데 말이다. 사실 글쓴이는 성골.진골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살피고 살펴봐도 성골은 없었다. 읽으면 읽을 수록 파고들면 파고 들수록, 왕족, 귀족의 구분만 읽었다. 

그럼 다시 신라의 선덕왕(덕만)이 왕위에 올랐을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자.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제29대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이름은 춘추(春秋), 성(姓)은 김씨(金氏)이다.  용수(龍樹; 혹은 용춘龍春) 각간(角干)으로 추봉(追封)된 문흥대왕(文興大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眞平大王)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며 비(妃)는 문명황후(文明皇后) 문희(文姬)이니 곧 유신공(庾信公)의 끝누이였다.  - 삼국사기 신라 춘추왕 원년

이제 요즘과는 다른 적자/서자, 양반/서얼 등 왕가의 룰이나 양반가의 룰에 따라, 읽어보자.

이름은 덕만이고, 진평왕의 장녀(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이다.
김춘추의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이라고 했다.

삼국사기의 딴지맨인 일연이 삼국사기 선덕왕 즉위년 기사에 딴지를 걸지 않는 이유는 일연도 마야부인의 맏딸로 덕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딴지맨 일연이 삼국사기에 딴지를 걸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삼국유사에 진평왕의 늙으막에 얻은 승만왕후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 일연은 선덕 또한, 진평왕의 말년에  정비는 승만왕후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승만왕후에 아들이 없어 왕통을 이을수 없었기 때문에 덕만이 마야부인의 소생으로 왕통을 이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일연은 삼국사기에는 없는 덕만이 나이가 어렸을 것으로 짐작하는 기록을 남겨두고 있다. 덕만의 결혼기사이다.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여왕이 왕위에 있을때 결혼하고 있다니, 덕만이 왕위에 오를때 어렸다는 결정타가 아닌가? 물론, 남자왕처럼 비를 많이 바꾸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누구를 누구로 바꾸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봐서 첫결혼이라고 생각하는게 맞지 않을까 한다.

현존하는 <화랑세기>를 의심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누구도 하지 않은 이야기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이제 예고한 대로 선덕왕이 왕위에 올랐을때 덕만에 대한 평가를 보도록 하자.

위의 문장은 선덕(덕만)이 왕위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하자 없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이 문장은 뒤의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내용을 수식하기 위한 내용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덕만과 관련된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예사로 넘기기 어려운 기록이 있다.

성품이 너그럽고,어질다
  영묘사 화재사건을 일으킨 <지귀설화>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지귀와 덕만 공주시절(?) 영묘사에서 만나다. 

<김유신의 춘추/문희불쇼>
 [역사이야기] - 선덕여왕, 공주시절 덕만이 엮어준 김춘추와 문희 
어찌 되었던, 현존하는 화랑세기가 진짜던 가짜던 상관없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만으로 김유신 감독, 각본, 주연, "김춘추를 내사람으로 " 드라마에서 등장한 덕만이 신라 여왕(632년~647년) 시기에 있었던 일이 아닌 진평왕의 공주시절(628년 이전)에 있었던 일임을 증명하였다. 


총명하다.
<모란꽃,모란씨서되>
 [역사이야기] - 덕만의 자격지심, 627년 11월에 들어온 모란씨 서되

민첩하다

200
631년에 진평왕 말년 <칠숙의 난>
[역사이야기] - 미실의 충복 칠숙, 사실은 왕위 계승 일순위자

아직도 <성조황고>를 들어서 덕만은 나이가 많았을 거야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분이나 "그건 니생각이고"라고 하는 분들은 [역사이야기] - 이요원보다 남지현 나이때 왕위에 오른 덕만 <황고>에 대해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근거를 제시했다. 귀찬으신 분을 위해서 요약하자면, <성조황고>는 성스런 조상을 둔 임금(황제)의 성숙한 여식이란 뜻이다.

너무 어릴때 628년이전 문희와 김춘추를 얶어준 사건이 628년이라면 너무 덕만이 이른시기가 아닌가? 의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덕만이 632년 왕위에 오르고, 632년 결혼하고, 연호를 바꾸는  것을 근거로 635년 18~20세 전후라면 <모란꽃>, <김유신불쇼> 사건들은 덕만으로서 너무 어릴때 사건이 아닌가 의심할 수 도 있다. 

632년 16세에 왕위를 이었다고 한다면, 627년은 11살때 일이고, 628년이면 12살때 일이다. 현재의 기준으로 좀 어려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모란꽃 사건은 늙은 왕이 아주 어린 공주에나 물어 봄직한 말이 아닌가? 그리고 당시엔 깜짝 놀랄 추리 능력을 보인 덕만을 보고, 진평과 대신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용봉의 자질이 보였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기록이  "
총명하다"는 기록으로 남았다면 어떨가? 또한, 12살이전에 있었던 김유신의 불쇼에서 살려준 문희와 그의 복중 아들 법민은 어떨까? 어리지만 너그러워움의 상징이 아닌가?  지귀심화에서 신분도 미천한 지귀를 위해서 행한 행동들은 "너그러움" 자체이다. 또한, 지귀심화로 소실된 영묘사와 잦은 화재사건으로 민심이 흉흉할때 처리하는데 부적같은 주문을 만들어 백성들을 안정화 시키는 것으로 너그러움과 총명함과 민첩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지귀는 마음에서 불이 일어  
몸을 태우고 화신이 되었네.     
푸른 바다 밖 멀리 흘러갔으니,  
보지도 말고 친하지도 말지어다.  

 志鬼心中火(지귀심중화)    
 燒身變火神(소신변화신)
 流移滄海外(유이창해외)
 不見不相親(불견불상친)


"너그럽고, 어질고, 총명하고, 민첩하다" 라는 말은 선덕왕이 왕위에 오를때, 단순한 미사어구가 아닌 , 덕만은 <성조황고>이니 정통성에 하자도 없을 뿐만 아니고 충분히 왕 노릇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PS. 사실 세종대왕의 기사는 천명과 덕만은 같은 어미의 자식이다.라고 주장하는 혹시 모를 딴지가 들어올 반박문을 위해서 남겨두었습니다만, 이제 노출합니다. 이외에도 연산군과, 광해군의 출자를 비교해 본다면, 왜 적통 적자/서자에 연연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왕실 암투의 시작과 끝은 적자들간에도 있었지만, 서자를 낳을 수 밖에 없는 정비와 후비들 사이에도 있었습니다. 후비가 정비가 되면,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소생들인 왕자나 공주들은 인생의 역전 대박 로또가 되니 말입니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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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호.. 2009.07.30 2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보고갑니다. 이복형제라.....

  3. 헤윰 2009.07.30 2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해하기 쉽게 정리 하시느라 고생하셨겠어요.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4. 재밌네욤 2009.07.31 0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보았네요~~ 그런데 저도 앞에 계신 '성란'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신라시대의 골품제와 조선시대의 적장자 제도를 같은 기준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두 사회 모두 철저한 신분사회였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골품제와 적장제도를 연결시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것은 조선시대 등장한 적장자의 개념

    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저는 님께서 마지막 부분에 "설마 성골.진골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신라가 조선과는 다르다고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쓰신 부분에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역사를 전공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이렇게 단적으로 이야기를 하실 수 있을런지...

    각기 다른 시대의 신분제도를 이렇게 단편적으로 이어서 생각할 수 있는지 정말 놀랍습니다.

    물론 그 만큼 강력한 신분 사회였다는 점을 부각하고 싶으셨다는 느낌은 듭니다만...

    이러한 유교적인 관례가 뿌리 내린 것은 조선 성종 이후 경국대전 체제가 완성된 때 부터 입니다..

    단적으로 고려시대에는 왕의 후궁 중에 시집갔다 온 과부도 있었답니다..

    조선시대에 이런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겠죠..

    조선 초기의 족보에는 딸의 이름도 들어 있었답니다. 하지만 중기이후에 대전체제가 완성되면서 부터 아들

    을 중심으로 족보가 쓰여지고 있지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31 07: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적서는 비슷하고, 신라가 더 강경했지요..

      이미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것으로 충분히 증명했다고 생각하는데.. 중기 이후다라는 말씀을 하시다니..

      남.여, 적서 차별 등 중기 조선 중기이후에 심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초기 기록을 내 놓은것 아닌가요? 그것도 살펴 보시길..

      왜 하필 조선의 초기기록을 들어서 조선과 신라를 비교했겠는지요..

      이글로 답변이 충분히 되었기를..
      님들은 저의 주장을 더욱 강고하게 하는 보론 성격입니다.. 반론이 아니공..

  5. 흐음... 2009.07.31 0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클이 되겠습니다만.....그냥 왠지 썩 잘 읽혀지는 글은 아니라서....뭔가 말이 맞지 않네요. 제 이해력이 딸리는 것인지....

    "그렇다고 해서 경녕군이 세종이 어미인 원경왕후 민씨는 될 수 없다. 물론, 의붓 큰어미이기는 하다."

    ㅡㅡ> "그렇다고 해서 경녕군이 세종의 어미인 원경왕후 민씨의 아들(혹은 소생)이 될 순 없다. 물론, 그의 의붓 큰어미 이기는 하다." 라고 쓰셔야 말이 될듯 하네요.

    또 " 그러니 일연은 선덕 또한, 진평왕의 말년에 정비는 승만왕후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일연은 선덕 또한" 다음에 왜 진평왕 말년에 정비는 승만왕후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쓰신건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아요. -_-;

  6. 딩가딩가딩 2009.07.31 0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

  7. Favicon of http://otiliayoo@hanmail.net BlogIcon Blah 2009.07.31 0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 기억이지만 그전 국사선생님 중 한 분이 조선에 유교사상이 들어오기 전까진
    남존여비사상이 조선같지 않았다...고 하셨던 생각이 납니다.
    한 예로 여자가 재가를 하는 건 꿈도 못꾸는 조선시대와는 달리 그전까지만해도
    여자들의 혼인이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고 하시면서요.

    암튼 대단하십니다.
    덕분에 요즘 재밌게 보는 선덕여왕 더욱 재밌게 볼 수 있겠습니다.

  8. 가야진 2009.07.31 0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때는 사실 한 어머니, 한 아버지의 자식이라는 게 사실 의미가 불분명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혼은 허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남녀 모두가 중혼적 성격을 가진 연인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자식도 모계사회인 신라의 골품제에 따라 진골까지는 신분을 부여 받았으니까요.

    여성의 힘에 대한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요즘 천추태후 등에서도 황제가 죽은 후 연인을 두는 모습이 그려지잖아요. 그리고 현재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다수의 역사서에서도 조선의 유고 사상 또한 중기 이후 정착한 것이고 이전의 사회에서는 여권이 힘이 상당했을 것이라고 보잖아요. 물론 표면적으로는 남성사회로 이어져오긴 했지만, 전쟁이 많은 나라에서 남성의 권력이 사회의 기득이라고 보기에는 힘들다고 생각해요.(내조의 여왕처럼 전쟁에 나간 남성을 대신한 실질적 정치가 아내와 어머니등의 여성이 상당했으니까요.)

    이야기가 약간 옆길로 가긴 했지만, 저는 천명이 마야의 자식이 아니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잉첩들도 순수 혈통인 성골 출신으로만 이루어 져있기는 해도 이미 족강된 후이고, 천명이 후비의 자식이라면 정비의 자식인 덕만과 나이가 비슷한 상황에서 왕위계승자인 아들이 없다고해도 마야소생 이외의 인물이 권력을 가지기는 힘들지 않았을까요?

    신라에서 초혼은 대부분 왕을 제외하고는 여성의 골품이 더 높거나 같은 진골이라 해도 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가질 수 있는 여성이 자신보다 낮은 지위를 가진 이와 하는 것이 일반적이 잖아요.


    예전에 어디서 들은 말인지, 읽은 것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제 머리 속에는 성골에서 족강되면 진골의 가장 위 계층이 되고 최근에 족강된 사람이 더 오래전 족강된 사람보다 힘이 있다는 기억이 있거든요.
    이것이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 천명이 마야 소생이 아니라면 용수와 천명의 결혼은 불가하지 않았을까요?
    천명의 어머니가 성골이었다해도 용수보다는 더 오래전에 족강되었을테니까요.

    아, 글을 쓰다보니.... 아닐 수도 있겠네요. 천명의 어머니가 용수보다 나이가 어리다면, 저것도 가능하긴 할 것 같아요.

    휴, 요즘 선덕여왕 때문에 도서관에 선덕여왕 관련 책을 다 봐서 역사 공부는 되는데, 드라마 나이 설정이 뒤죽박죽이라 덕분에 제 머리도 뒤죽박죽이예요.

    글이 길어져버렸네요. 암튼, 저는 천명이 후비소생일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 글 덕분에 경녕군 이야기는 처음 알게 됬어요. 브라보~!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31 07: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후비이거나 마야이전 정비라고 했던것 같은뎅..
      족강은 조선이 더 심했지요.. 신라보단

      오르기도 힘들고, 내려가기는 쉽고, 하지만, 조선의 전란이후는 다르지만.. 돈을 주면 언제든지.. 파고 사는게 족이였으니요..

  9. 오타발견!! 2009.07.31 0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갓쉰동님께서 쓰신 글인가요? 잘 봤습니다.

    코를 찔찔 흘리며 다니던 어릴 시적부터 역사에 관심이 깊었던 관계로 우연히 지나치다가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드라마 선덕여왕도 너무 좋아합니다.ㅎㅎ)


    여러 모로 도움이 많이 됐던 글인 것 같아 잘 보고 갑니다.

    근데, 서론에 나오는 일연의 이야기는, 삼국유사를 지은 그를 말씀하시는게 맞겠죠?


    예를 들면, 진수의 삼국지를 배송지가 주석을 달아서 했던 그런 부류와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어쨌든, "의의를 제기" 라고 쓰셨는데, 의의라는 것은 '말이나 글의 속 뜻' 을 지칭하는 단어인데,

    "이의를 제기" 라고 쓰셔야 할 듯 하네요.ㅎㅎ

    문맥상 '다른 의견이나 주장' 이 들어가야 맞을 듯한 전개네요.ㅎ

    어찌됐든 잘 보고 갑니다.^^ㅎㅎㅎ

  10. 향수 2009.07.31 06: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조목조목 잘 비교하시면서 쓰셨네요..
    그저 알려진 정도의 역사만 알뿐이었는데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되어 기쁩니다
    앞으로도 이런글 열심히 써주세요..
    부지런히 읽어드릴께요..

  11. 제가 알기로는 2009.07.31 0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명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미실과 천명 모두 오직 <화랑세기>에만 기록되어 있어 그 둘이 가상의 인물일 확률이 높다고 들었습니다.그런데 또 이런 글을 보니 흥미롭네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31 08: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천명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공히 있는뎅..

      3녀인 천화를 말씀하시는것 아니신지요?

      화랑세기에는 덕만이라고 하지 않고, 왕의 시호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선덕, 천명, 천화.. 조금 냄새가 나지요.. 선화의 다른 이름 같은 천화라..

      흥미로웠다니 감사할 따름이지요. ^__^

  12. 재주소녀 2009.07.31 0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렵지만...잼있네요~
    댓글 쓰는거 어려운거 아니네요
    ㅋ 부끄럽지만 처음 써봅니다.

  13. 캐스퍼 2009.07.31 0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어 보았습니다....
    글이 잘 정리 되신다면... 후에...
    "계급사회 변천사"를 쓰세요....
    아직까지....
    삼국시대 이전부터.. 그 이후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 강점기, 근대화 시대....
    변변한 "계급사회의 변천사"가 없었습니다...
    아주 좋은 책이 될것으로 보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31 0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무 어려운 말씀을 저는 그정도는 아닙니당.. 제 밥그릇도 있는뎅.. ㅠ.ㅠ.

      즐기는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당.. 고수는 널려 있는게 강호의 세계가 아니겠습니까?

      칭찬은 ㄳ히 받겠습니당.. 염치불구하공..

      물론 추천도 때려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댓글들을 다시는 분들이라면.. ㅋㅋ ^___^;;;

  14. -- 2009.07.31 1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은 잘 읽었습니다만...

    역시 신라의 골품제와 조선의 적서개념을 뒤섞으면 안된다는 댓글 의견에 동의합니다..

    적서개념은 부계를 따르는 것이고

    골품제는 부계와 모계에 모두 적용되는 겁니다..

    두 가지를 같은 원리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부계뿐 아니라 모계혈통도 중시되었기 대문에 지소부인이 힘을 쓸 수 있었던 것이고

    선덕,진덕여왕이 즉위할 수 있었던 것이죠.

    너무 사료를 쉽게 자의적으로 해석하셨네요...

  15. Favicon of https://azcaprice.tistory.com BlogIcon 아르제크 2009.08.30 0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 초기에 왕가의 적서 문제가 엄밀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이성계가 자신의 이모형 이원계가 '서자'라고 몰아 아버지 이자춘의 다루가치 직을 대신 취했기 때문
    (이 때문에 이원계의 자녀들은 이천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성계로부터 이반합니다)
    2. 이방원이 '서모'인(그러나 정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아들인 세자 방석을 '서자'라는 이유로 폐했기 때문
    3. 성리학의 부계일원적 구조를 이제 막 도입하는 시기였기 때문(또 태종 스스로가 성리학자이기도 했고요)

    왕가는 자신의 정통성 확립과 함께 사회변혁에 대한 솔선을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적서 구분에 목을 매단 것입니다.
    실제 여말선초 사회에서 적서의 구분은 심하지 않았고 오히려 애매모호한 측면조차 보입니다.
    그것이 조선에 들어서 세월이 흘러갈수록 점점 적자만을 인정하는 형태로 변해간 것이죠.

    예를 들어 조선 초기의 재상인 하륜은 3대째에 적손의 대가 끊기게 되었는데, 이 같은 사실을 접한 당시에 이러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하륜의 서손을 적손으로 인정해서 과거시험을 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죠. 그런데 논의 결과, 공신 집안 하나를 우대하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고 나라의 법을 확실히 하는 것은 국가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특별 대우는 해줄 수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만일 적서의 구분이 이미 당연하고 엄밀한 것이었다면 이런 논의 자체가 있을 수 없었겠지요.


    꼭 신라까지 갈 것도 없이 고려말만 보더라도, 이모형제(이원계-이성계-이화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 이부형제(이성림-염흥방)와 같은 케이스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관직에 등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조선 중기 이후의 엄밀한 적서차별과 재가녀의 자식에 대한 천대를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신라시대에 성골 진골 구분의 실체가 없었을 거라는 의견에는 저도 삼국사기 삼국유사 좀 읽은 사람으로서 동의합니다만, 갓쉰동님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서도 독자들에게 성골진골을 구분하는 신라라면 적서구분이 있었음이 당연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건 어떻게 된 영문인지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30 1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성골/진골을 믿는 사람이라면 단서가 붙은 거지요.. ^___^

      왕은 무치인데 적서의 차별이 있었겠습니까만은,, 공식적인 왕비의 후손이 왕통을 잇는것은 당연한거지요.. 1차 고려를 한다음 다음 수순으로 넘어가지 않겠습니까? 후계의 선택은 왕에 있는 것이고,,적이던 서던 말이지요.. 그러니 적서의 차별이 없었다고 할 수 없지요..

  16. 냠냠냠 2009.09.22 2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초혼이라고해서 나이가 어렸을껏이라고 생각하는건 말 그대로 '짐작'이겠지요.

  17. Favicon of http://kr.blog.yahoo.com/sppopsj BlogIcon 천산 2009.10.14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국유사왕력보에 기록된 배필이 되는 飮갈문왕이 누구인지 밝힌 것입니다. 그리고 수절이라는 말을 쓰려면 남편이 죽은 후가 되는데, 갓쉰동님은 飮갈문왕이 선덕여왕 시절에 이미 사망한 사람으로 알고 계시네요! 왜 그렇습니까? 님의 주장대로라면, 서기634년에 飮갈문왕을 세웠는데, 언제 사망하였다는 것입니까?

  18. 레아 2009.10.22 1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덕여왕이 젊었을때 즉위를 했다는 것에 대해선 태클을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진평왕은 10대 중반의 나이에 등극을 해서 왕위 계승기간이 자그만치 50여년이 되는데 선덕여왕이 젊은 나이에 등극을 했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선덕여왕이 젊은 나이에 등극을 했다면 그건 진평왕이 임기 말년에 마야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았다는 이야기 이며 더욱이 마야부인도 진평왕과 나이차이가 많이 났을 터이지만 역사서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10.22 2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덕여왕은 젊었을때 즉위한 것 같아용..
      마야부인이 천명의 어미라는 기록은 없지용.. 반면에 덕만은 마야와 진평의 딸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거든요. ㅋㅋ

  19. Favicon of http://kelvintrote.blogspot.com/2012/04/all-natural-devastation-survival-kits... BlogIcon soup can storage rack 2012.11.01 1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며 더욱이 마야부인도 진평왕과 나이차이가 많이 났을 터이지만 역사서 어디에도

  20. Favicon of http://blog.frents.com/fractional-ownership/fractional-ownership/ BlogIcon invisible fence for dogs for sale 2012.11.05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명의 동생이라고 했을까? 그건 화랑세기에 맡기도록 하자.

  21. Favicon of http://www.turks.us/article.php?story=20061205100319652 BlogIcon Housing prices 2013.05.01 1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사이트를 찾아 기쁘다. 나는 즐겼다 유용한 정보를 발견. 기사는 잘 작성하고 아이디어가 훌륭합니다.저자와 작가에 대한 좋은을 유지.

선덕여왕 미실(고현정)과 덕만(이요원)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고대하고 기다리던, 모녀상봉인 마야왕후와 덕만이 만났다. 예고편에는 덕만이 공주의 신분을 알고도, <어출쌍생>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중악으로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극이 흥미진진 접입가경으로 흐르고 있다.


그동안 글쓴이는 덕만과 천명이 어미가 다른 형제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증명하였다.

그런데 덕만이 몇살때 왕위에 올랐는지는 확증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성조황고(聖祖皇姑)때문이였다. 그중에 <황고: 왕의 시어머니 뻘여자 자식이라니>

<성조황고>의 일반적인 해석은 성스런 조상을 둔 임금의 시어머니(姑)라는 뜻이 된다. 설마, 덕만이 진평의 시어머니뻘은 아니지 않는가? 아니면 진평의 나이만큼이라도 되었단 말인가?

아무리 천명과 덕만이 어머니가 다른 자매라고 주장을 하고 증명했지만, 시어머니뻘을 어떻게 해석할까의 의문이 걸릴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슬퍼하는 천명(박예진)


그래서 덕만이 현재의 30대~40미만 이라면 충분히 시어머니뻘 소리를 들을 수있겠다는 생각이였다. 또한, 당시 신라사회에 일반적으로 이뤄진 조혼의 풍습 때문이였다. 박혁거세도 13세에 왕위를 이였고, 그의 부인 알영도 혁거세와 같은 나이에 왕후가 되었다. 그러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면, 충분히 충분히 시어미(姑)를 쓰기에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문이 생기는 것은 선덕왕 즉위원년 인 632년 대신 을제의 국정관장, 634년 3년 기사를 보고, 30대초반 보다는 나이가 어리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들었다.

마야왕후(윤유선)

삼국사기에는 이해(634년) 진평왕이 584년 진평왕 6년 부터 사용한 <건복> 연호를 <인평>으로 바꾸었다.그래서 진평왕이 나이 어린 13세 전후에 왕위를 이었을 것으로 다들 추측하고 있다. 연호를 바꾸는 행위는 진흥왕

진평왕(조민기)

이 7살에 왕위에 오른 후 법흥의 딸이며, 어머니인 지소태후의 수렴청정에서 벗어난  551년 진흥왕 12년, 연호를 <개국>으로 바꾸고 있었다. 551년 이해가 삼국사기의 기록상으로 진흥(심맥종)이 18세가 되는 해이다.


그렇다면, 덕만도 즉위 3년차에 비로소 스스로 통치할 수 있는 나이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첫번째 의문이고, 결정적인 의문은 634년 이해에 <삼국유사>에 의하면 작은아버지 국반(진안)갈문왕과 결혼을 하였다는 기록이다. 

기존 통설로는 50세가 넘었을것으로 짐작하는 나이에 첫 결혼이라? 좀 의심스럽지 않는가? 덕만이 나이가 많았다면, 아무리 석녀인 덕만의 결혼한 남편도 있었을 것이고, 덕만보다는 사위왕을 선호한(?) 신라에서 남편을 냅두고, 덕만을 왕위에 오르게 했다?.  50세를 넘어서 자신보다 10살이상 많을 것으로 추측되는 작은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해서 무엇하게?


덕만에게는 즉위 3년인 634년이 그 어느때 보다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시기이다.

또다른 의문을 증폭시키는 사례는 즉위 초년에 행해진 처사 때문이다. 국정을 <대신> 을제에서 의지하고 있다. 진흥왕이 어미니인 지소태후에 의지하고, 진평왕이 모후인 만호태후에게 의지하고 있듯히 말이다.  그리고 독자적인 노선을 펼칠때 연호까지 바꾼다.

그렇다면 덕만은 634년에 몇살이 되는 것일가?

덕만(남지현), 천명(신세경)

아무리 늦춰 잡아도 20대초반 밖에 안되지 않는가? 그래도 걸리는 문제는 <황고>이다.  그래서 도대체 <姑:시어미고>를 당대에는 어떻게 사용하고, 현재 한자를 쓰는 중국에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아니면 또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어사전을 보고, 뒤통수를 크게 한방 먹은 충격을 받고 말았다. 글쓴이가 추측한 덕만은 어릴때 왕위에 올랐다는 것을 너무나도 쉽게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역시 안될땐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성현의 말씀이 또다시 뒤덜미를 잡는 순간이다.  

중국어 사전에서 姑의 활용 예
 [gū]  

시어미-고 부수: 女   총획수: 8

[번체]  부수: 女   총획수: 8

1. [명] 〔~儿〕 고모.

我的大姑到新疆支边去了。 - 우리 고모는 신장의 변경 개발을 지원하러 가셨다.
뜻풀이 검색결과 (1-5 / 총 13개)

고모(姑母)

[名] 1.  [gū mǔ]

고모부(姑母夫)

[名] 1.  [gū fù]

고식(姑息)

[名] 1.  [gū xī]

고종 사촌(姑從四寸)

[名] 1.  [gū biǎo]

내종(內從)

[名] 表兄弟姐妹  [gū biǎo xiōng dì jiě mèi]

 

我的大姑到新疆支边去了。 - 우리 고모는 신장의 변경 개발을 지원하러 가셨다.

大姑를 고모라고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해석을 할때는 큰시어니뻘 나이많은 어머니뻘 츠자 정도이다.
고종 사촌(姑從四寸) : 아버지 자매의 자식들

乡里子乡里样
촌 처녀는 촌티가 난다. 고자는 나이가 작은 여자 즉 처녀

顺得来失嫂意
올케에게 잘 보이면, 형수의 미움을 산다.
  • 관용구, 속담
    守好邻,学好邻,守着尼会参神
    좋은 이웃을 가까이하면 따라 배우고, 비구니가 옆에 있으면 참선(參禪)하는 것을 배운다.
  • 관용구, 속담
    舍不得娘,逮不住和尚
    처녀를 아까워하면 중을 잡지 못한다.

  • 니고 = 비구니, 고랑 = 처녀,고자= 처녀

    위의 사례를 볼때 姑는 그냥 성인 여자 를 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여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정을 일구고 살아갈 그정도 뜻이지 않는가?
     

    姑란 여자를 높여 부른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제 <시어미고:姑>가 가지고 있는 의문도 풀렸다.
    大姑를 고모라고 하듯이 <황고>는 진평왕의 시어미뻘이 되는게 아니라.진평왕의 시어머니뻘이라고 한다면 클날이지 않는가? 진평왕과 마야의 장녀는 진평왕의 시어미뻘이라니, 그러니 왕의 다큰 여식 또는 왕의 여식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조황고:聖祖皇姑>란 성스런 조상을 둔 황제의 딸 : 아들이 있어서 장가를 보낼 나이정도에 있는 것으로 해석해도 30세전후 라는 뜻이 되지만,진평왕의 뒤를 잇기에 핏줄에 하자가 없는 정통성 있는 진평왕의 다 큰(성숙한) 자식 정도이다.<황고>의 황과 대응하여 황제(진평)의 결혼해서 어른 노릇할 정도의 나이인 성인여식이란 뜻이다. 

    진평의 왕비와 후손들


    왜? 덕만이 왕위를 이을때 <성조황고>를 올리게 되었을까?
     

    칠숙(안길강), 소화(서영희)

    진평왕은 적통을 이을 만한 아들은 없었으나, 딸들은 넘치고 넘쳤다는 의미도 된다.또한, 진평왕 말년 631년 에 있었던 이찬 칠숙의 난으로 이를 무마시킬 무언가가 필요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관련족보들을 살펴본다면, 최소한 진평에게는 천명,?, 선화,덕만,덕만과 같이 마야왕후을 어미로 둔 동복자매 아우들 , 600년 이전 선화가 3번째 딸이라고 했으니 천명과 선화 사이에 둔 딸, 김인평을 남편으로 둔딸, 조계룡을 남편으로 둔딸 등 최소 7명이 그 흔적을 보이고 있다.

    그 많은 딸들 중에 적통을 이을 딸은 마야왕후 사이의 장녀인 정통성이 있는 덕만이라는 뜻이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여자라고 놀리지 말아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훌륭한 전왕의 딸이예요." 유행가 가사 같지 않는가? 그러니 덕만에 이찬 칠숙처럼 딴지(631년 반란)를 거는 행위는 하지 말라는 대국민 선언문이고, 덕만에 대한 국인(왕족과 귀족들)의 <충성서약문>인것이다. 
     

    알천(이승효)


    천명은 이전 왕후의 여식이나 후비의 소생이란 뜻이고, 정통성이 없다는 선언과도 같다. 이전 시리즈글 부터 읽어온 사람은 중복된 말이지만, 천명과 덕만은 같은 돌림자 자체도 없다. 또한, 진평의 딸이며, 진지왕의 아들인 용수.용춘의 남편이지만, 덕만보다 왕위계승에는 후순위가 된다. 자신의 아들인 춘추가 왕위에 오를때도 알천보다도 왕위승계서열에서 밀려 있었다.



    기존의 우리가 일반적인 상식이라고 알고 있었던 덕만과 천명
     

    덕만이 진평왕의 맞이라 했으니 천명은 덕만보다 나이가 어렸을 것이다.

    용춘(도이성)

    천명의 과 용춘(용수)의 아들인  춘추(603년)을 기준으로 덕만은 천명보다 나이가 많이 먹었을 것이다.그래서 <황고>라고 쓴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덕만이 공주시절 모란씨 서되 사건은 그냥 지어낸 이야기다,선덕여왕이 김춘추와 문희를 엮어준것도 여왕시절에 해주었다.

    50

    자연발화(shc)

    대의 늙은 왕인 덕만을 보고, 사랑에 빠질 인간은 없다. 그러니 영묘사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은 덕만과 혜공의 이적과 일체화 시키고, 지귀설화는 이전의 대지도론의 기사를 베낀것이다.분황사에서 발견된 바늘과 가위는 여자의 신물이기 때문에 넣어 놓은 것이다. 더 나아가 50세가 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634년 결혼은 작은아버지의 뒤배를 이용하기 위한 정략적으로 나이 많을 때 한것이고, 연호도 그때 바꾼것이다.출산을 염두한 행위는 결코 아니다.

    이말을 그냥 따라야 하는 것인가? 이야기들이 서로 미심쩍고, 화장실에 가서 똥을 다 눟지 못하고, 중간에 뒤처리도 못하고, 나온 찜찜함이 뭍어 있지 않는가? 

     

    딱한가지만 바꾸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문제.

    정확히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정확히 해석한다면 어머니가 다른 형제인 천명과 덕만이 있다.실제로 천명과 덕만이 같은 모후의 소생이라고 삼국유사와 삼국사기가 한줄이라도 언급한적이 없다.

    천명은 마야부인 이전의 왕후(후비) 소생이다. 그러니 천명은 덕만보다 충분히 나이가 많다. <
    성조황고>는 성스런 조상의 핏줄을 이어 받는 임금의 딸이며 여황을 말한다.

    덕만(이요원)

    성조황고는 우리시대에도 있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 국민교육헌장에 나오는 첫대목이다. 일종의 선언문이지 않는가? 우리들이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나긴했나? 그냥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과정에서 태어난거지 거창하게 역사적 사명을 띠우고 태어 났겠는가? 남.여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관계를 맺었겠는가? 하긴 요즘처럼 줄어드는 애들과 키우기 힘든 환경에서는 역사적인 사명을 감을 가지지 않으면, 애를 낳기가 힘든 시기에 도달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오죽하면 애를 낳는게 애국하는 지름길이라고 하겠는가?

    어찌되었던, <성조황고> 당시 충성서약을 뒤로 하고, 632년 원년 을제의 기사와 634년는 덕만 3년의 기사를 다시 읽어 보자.  


    선덕왕(善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덕만(德曼)이고 진평왕의 맏딸이다.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의 칭호를 올렸다. . - 삼국사기 선덕왕 원년(632년)

    을제(신구)

    선덕여왕 원년(632) 2월에 대신(大臣) 을제(乙祭)로 하여금 나라의 정치를 총괄하게 하였다.
    - 삼국사기 선덕여왕 원년
    王之匹飮葛文王 仁平甲午立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 인평 갑오년에 세웠다. - 삼국유사 왕력편 선덕왕

    3년(634) 봄 정월에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바꾸었다. 분황사(芬皇寺)가 완성되었다.
    - 삼국사기 선덕왕 3년

    어떻게 읽히는가? 덕만이 왕위를 잇고, 직접통치를 못하고, 을제에게 의지했구나, 634년 진흥왕이나 진평왕의 사례에 비추어 덕만은 634년에 비로서 연호를 바꾸는 것으로 낭낭18세에 접어 들어구나,덕만은 634년 작은 아버지 국반과 결혼하는 것으로 보았을때 많이 잡아도 18세는 넘지 않았을 것이다. 영묘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덕만이였기에 삼국유사에 기록된 젊은 덕만과 지귀심화도 영묘탑 화재사건과 관련이 있구나. 이게 합리적인 해석이 되는 것이 아닐까?


    위의 다음 view로 송고된 시리즈 기사를 몇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덕만(남지현), 소화(서영희)

    첫째, 덕만은 진평왕과 정비 마야의 장녀다.

    둘째, 천명이 나이는 많지만, 정비인 마야의 소생은 아니다.
    셋째, 천명과 덕만은 이복자매간이다.

    넷째, 천명은 정비인 마야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에 덕만보다 왕위승계에서 후순위다.
    다섯째, 마야의 후손으로는 덕만 말고도 또다른 자매(들)이 있다.  

    여섯째, 덕만은 작은 아버지 국반갈문왕과 결혼했다.
    일곱째, 덕만은 왕위를 오를때, 현재 80년생이며 한국나이 30살인 이요원보다도 어렸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덕만의 아역역할을 한 남지현은 2009년 현재 15세이다.덕만은 실제로 632년에 15~18세 정도에 늦어도 20세 전후에 진평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이제 마지막 걸림돌인 <황고>도 충분히 사례를 들어서 증명하고, 해결하였다. 덕만의 출생의 비밀과 덕만의 기록들을 시리즈로 엮은 것을 끝내려고 한다.그동안 덕만이 어린나이(당시에는 충분한 나이)에 즉위했다는 사실을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을 바탕으로 충분히 증명했다고 본다. ( 드라마 선덕여왕관련 사진의 저작권은 mbc에 있음 )

    다음편에는 선덕왕 원년에 보이는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하였다"를 해석해 볼것이다. 단순한 미사어구인가? 아닌가?하는 글이다. 시리즈 글을 읽은 분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이미 충분히 글로써 표현했기 때문다.

    Posted by 갓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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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역사맨 2009.07.28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기존 학설보다 훨씬 설득력있네여
      공감합니다
      근데 궁금한게 있어여
      즉위때가 10대 중반에서 20대라면
      진평왕과 나이차이가 너무 많이
      나지 않나여? 게다가 김춘추보다도
      어리게 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8 14: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579년 진평왕이 왕위에 오른 때는 13세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566년 생인거지요.
        632년에 죽을 때 나이는 77세입니다.. 한갑이 다되어서 얻은 귀한 자식이 되는 겁니다..

        김유신도 61세인 회갑맞이 신부 지조(춘추/문희)을 맞이 하여 많은 자식을 낳지요.. 원술등 원짜 돌림 아들들..

        김유신에 비하면 김진평은 약과 입니다..
        김진평은 60이 한참 넘은 나이에 승만 손씨를 후비로 들이기도 합니다.. 아들보기 프로젝트 일환으로..

        결국에는 손들고 말지요. 덕만으로..

    3. Favicon of http://lovetree0602.tistory.com BlogIcon 초록누리 2009.07.28 14: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요즘 마음 비우고 있는 중입니다. 그저 픽션일뿐이다 이러고 세뇌시켜가면서요...ㅎ 그러고 보니까 색다른 재미도 생기고...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7.28 14: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즐길줄 아시는 군요.. 저는 이미 포기 했어용.. 그저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재미는 있거든요.. ㅋㅋ

        원작이 부실해서 그렇징..

    4. 역사맨 2009.07.28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궁금한게 또 있습니다
      만약 즉위때가 10대중반에서 20세정도라면
      김춘추와 문희를 엮어주는 사건에서
      나이가 너무 어리게 되지 않나여?

    5. ㅎㅎㅎ 2009.07.29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윤유선 님이세요.. 마야왕후역 맡으신분 ㅎㅎ 오타 .ㅎㅎ

    6. 지옥천사 2009.07.31 0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으로, 덕만의 결혼과 관련된 것인데요,

      선덕여왕 이후의 왕이 진덕여왕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진덕여왕의 아비가 국반갈문왕으로 되어있는데,

      미리 선덕여왕이 진덕여왕을 차기 왕으로 점찍어두고 있고,

      이후 이에 대한 정당성 확보차원으로 국반갈문왕을 남편으로 둔 게 아닐까 하네요..

      물론 선덕여왕이 석녀라는 건 저도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성적 욕구(?) 해결 차원에서는

      그 당시 아주 개방적인 성문화였을 거라는 전제하에, '궁녀' 급에 해당하는 남성이 없진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위키디피아에서 선덕여왕에 대한 남편에 대한 언급으로,

      "신라의 규례에 따라 3명의 남편을 두었다."라는 말이 있는데,

      제가 고대사에 대한 끈은 짧아서 신라의 규례까지는 알지 못하고, 이것의 진위 또한 잘 알지 못하지만,

      법칙으로 인해 3명의 남편을 두어야 했다면, 어차피 후사를 두지 못했던 선덕여왕의 당시 사정 상,

      후계자를 든든히 하기 위해서 작은아버지와 결혼할 수 밖에 없었다..라는 추측도 성립하지 않을까요?

    7. 지옥천사 2009.07.31 0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딴지 좀 걸어 볼까요..

      우선, 저 중국어 사전, '신장' 어쩌고 저쩌고 나오는 걸 보아하니 최신 중국어 사전 같은데요,

      무려 1000년보다도 전에 쓰인 단어를, 것도 여러 해석이 가능한 한자어를 현대적 기준으로 보신 건 좀 오류라 봅니다.

      한국어의 '영감'도 현재의 의미로 쓰이기에는 그리 오래된 역사도 아니고,

      섬나라의 '오마에'도 원래는 귀인을 지칭한 단어였지요..

      '고'자에 시어미가 붙어있는 건, 우리나라에 들어올 당시에는 '시어미'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요?

      '지(地)'가 현재는 '땅'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당시 고어인 '땅>따' 에서 따와

      아직까지도 '따 지'라고 하는 것처럼요..

    8. 2009.08.13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3 19: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봉황은 기존의 통설을 따른거지요.. 분석없이..

        덕만이 맏이로 나온건,, 재대로 읽지 않아서 그런것 같습니다. 그것도 통설..

        덕만이 천명의 동생으로 나온것은 화랑세기를 따른 것 같습니다..

    9. 좋은 시도입니다만 2009.08.17 05: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설인지 사실인지 신뢰하기 어려운 화랑세기를 제쳐두면, 덕만은 분명히 천명의 언니입니다. 김춘추가 602년생인데 천명이 아무리 어려도 585년 정도에는 태어났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632년에 등극한 덕만의 나이는? 성조황고가 전혀 어색하지 않죠. 아울러 고대 신라어의 '고'가 무엇인지 알려면 현대 중국어에서보다는 현대 한국어에서 '고'가 어떻게 쓰이는지 보면 될 일 아닌가요?

      그럴듯한 추측들이지만 결국 사상누각이 아닌가 합니다. 아울러 삼국사기, 유사의 원본을 보시고 쓰시는지는 알 수 없으나, 왕의 자식이 여럿 있을 때에 굳이 구별이 필요하지 않은 때가 아니면 서로 동복인지 이복인지 언급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랑세기는 기존의 기록과 상충하는 부분이 많은데, 예를 들어 '성골남진'도 있습니다. 주인장께서 여러가지 흥미로운 추측을 하셨지만, 이 모든 것이 현대 중국어의 한자 뜻 = 고대 신라어의 한자 뜻, 그리고 화랑세기=진짜, 삼국유사=믿기 어려움 이라는 것을 가정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화랑세기가 아직 '불명확하다'는 점을 확실히 전제해 두고 추론하면, 위의 일곱 까지 추론 중 어느 하나 남는 것이 없군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07: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화랑세기를 인용하지 않고 진행하고 있는뎅..

        황고는 황제의딸이란 말 밖에 안되요.. 아무리 찾아봐도,..

        왜 할머니라고 하지요.. 신라사회를 알면 님처럼 말은 전혀 하지 않을텐데.. 아쉽군요..

        다른글도 보는 센스를..

    10. 좋은 시도입니다만 2009.08.17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랑세기 자체는 인용하고 있지 않지만, 다른 몇몇 글들을 봐도 화랑세기를 칭찬하는 등 화랑세기는 이미 사실이라는 가정을 깔고 시작하고 있지요. 삼국사기, 삼국유사만 가지고는 쉰동님과 같은 주장을 할 여지가 도저히 없습니다. 다른 글에서는 조선왕조실록과 비교하면서 말씀하셨는데, 사실 썩 좋은 비교는 아닙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나온 신라 기사들과 비교를 하셨어야 합니다. 화랑세기가 진실이라는 '가정'이 증명되기 이전에 갓쉰동님의 주장은 모두 '가정'에 불과합니다.(신라사회를 알면... 이라고 하셨지만 화랑세기에 나온 부분들이 사실이 아니고, 미실이라는 인물도 지어낸 사람이라면, 쉰동님께서 알고계신 신라사회는 모 역사소설가가 지어낸 상상력의 산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쥬신이 어쩌구 하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쥬신의 출처는 모 만화가의 책일 뿐, 어떠한 사료적인 고증도 없습니다.

      갓쉰동님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상관 없지만, 지금 여기 나온 것들이 '사실'인 것처럼 묘사하시는 것은 환단고기 신봉자들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역사에 대한 혼란을 가져오지 않을지 약간 걱정이 됩니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1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떤이는 화랑세기를 왜 인정하지 않느냐고 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님은 왜 화랑세기를 인정하냐고 하는군요..
        저 굉장히 화랑세기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도대체 어떤의도로 썼길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그리도 절묘하게 사이를 오가는지..

        그리고 삼국사기의 기록을 검토해 본적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님은 번역본 말고 원전을 본적이라도 있나요?

        여태까지 미실을 실존인물이라고 확정해서 한마디도 한적이 없는데.. 오히려 화랑세기 너무 정교해서 의심스럽다는 말은 수없이 했습니다만,,

        삼국사기의 기록은 삼국사기와 비교해야 한다고 했는데 절대적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인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님은 글을 님이 보고 싶은 것만 필터링 해서보는 습관이 있는것 같군요..

        아참, 그리고 삼국시대는 똑같은 시대라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도 서로 다른 행태를 보여주는 것이 상례예요..님이 저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 패턴을 보이고, 서로다른 상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조선은 비교하면 안된다? 삼국시대와 비교해라? 도대체 삼국시대랑 비교를 그렇게 했는데도 왜? 조선과 비교하냐?니 대략 난감하네요..

        제가 삼국시대 자료를 가지고 기존의 설을 비판했으니 님이 삼국시대의 자료를 근거로 아님을 증명해주시는게 먼저 아닐까요? 그래야 제가 반박을 하지요?
        논쟁이나 토론은 이런 방식으로 하는 겁니다.

        님처럼 뜬구름 잡는게 아니고..

    11.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12: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고'가 현대에만 성인여인들에 쓰인 말이다 이말은 님이 증명하시면 되요.. 제가 할일이 아니고.. 뜸금없이 용례도 밝히지 않고 현대에만 성인여성에 쓰인말이고 과거에는 다르게 썼다니.. 님은 이미, '고'의 용법에 저의 주장에 동의를 하는 겁니다..

      또한, 삼국사기 어디를 살펴봐도 마야가 진평의 아내라는 기록은 있지만, 천명의 어머니라는 기록은 없어요.. 해당 기록을 가져와서 반박을 하시면 됩니다.

    12.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1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은 <성조황고>를 어떻게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님의 해석좀 알려주세요..

    13. 난독증 2009.08.17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 대체 어디에 덕만이 둘째라고 나왔다는거야 ? ㅎㅎ 없는 기록 지어내기 쩌네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19: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천명이 어디에 둘째라고 나오던가요?
        덕만은 진평왕의 맏이며, 마야의 딸이라는 말은 있는데.

        이게 어찌 천명의 어미가 마야가 된다는 뜻이되지요..

        신라시대가 무슨 1부1처제 인줄 아시나? 신라왕이 1부1처를 했다는 증거좀 내 놓아 보시길 바랍니다.

    14. 난독증 2009.08.17 1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도 않은 1부1처 지어내질 않나 ㅋ 삼국사기 다른 기록 뒤져봐요 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명확하게 계보를 정리 했나 안했나

    15. 난독증 2009.08.17 1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handic.daum.net/dicha/view_detail.do?q=12-01-24-02

      어이없는 중국어사전보다는 한자 옥편이 훨 나을듯. 어떻게든 어거지로 붙이려고 하지 마세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20: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시어머니
        ㉡고모(姑母)
        ㉢계집, 여자(女子), 부녀(婦女)의 통칭(通稱)

        계집,여자, 부녀의 통칭.. 됐습니까?

        님이 인용한 자전에도 명백히 나와 있잖아요... 안봐서 그럴까봐 그러십니까?

        증거를 제시하라니까 그러시넹.. 천명이 마야의 소생이다를..

        천명이 마야의 소생이며 덕만보다 언니라고 언급한건 현존하는 화랑세기 밖에 없어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천명의 어머니를 언급조차 않하고있다구요..

    16. 난독증 2009.08.17 2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쉰동님은 어떻게 '고'에서 '어린 여자'를 찾아내셨는지 궁금하네요. 천명이 마야의 소생이라고 안나와 있다고 하는데 천명이 덕만보다 언니라는 말 역시 없군요^^

      皇姑(황고) ①'돌아간 시어머니'의 높임말 ②아버지의 고모(姑母).

      이걸 보면 김춘추의 후손들의 고모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 것 같은데 말이죠

      일단 기존 국사학계가 선덕여왕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부터 보고 오셔야 할듯?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20: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皇姑(황고) ①'돌아간 시어머니'의 높임말 ②아버지의 고모(姑母). 곧 할아버지의 누이
        님이 제시한 겁니다. 이것도 이미 봤어요.. 님처럼 안보고 한게 안니고..

        님의 해석이면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되요..

        그래서 본문에 이야기 놓았잖습니까?

        님처럼 말하는 분이 계실까봐.. 덕만이 진평의시어미뻘이냐고..

        그냥 성숙한 여인, 성인 여인,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라고.. 황고는 그냥 여황..요말입니다. 다른 용법이 없어요..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20: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즉위년에 존호를 성조황고를 올리면서 춘추의 고모라고 하는 있겠습니까?

        기존 다수설을 깨자고 글을 쓰는 거지.. 기존 학설을 따를 바에는 왜글을 쓰겠습니까?

      • Favicon of https://dreamlives.tistory.com BlogIcon 갓쉰동 2009.08.17 2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재의 기준으로 하면 어린여자이고, 당대의 기준으로 하면 성인여성이라고 했을텐데요.. 13세 시집가고, 유신의 처인 지조도 15~6세정도인뎅..

        여성인 경우.. 생리하면 성인식을 치르는 것은 아시지요..

        설마 현재의 기준으로 신라를 보고 있는겁니까?

    17. 나그네 2009.10.12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글입니다.
      그런데 이 글 퍼가도 되나요?

    18. 레아 2009.12.07 17: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만은 공주시절에 세번이나 결혼했지만 천성적으로 자식을 낳지 못하는 몸이었죠. 게다 남지현의 시절 등극한것은 덕만이 아닌 진평왕이죠.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제위를 했으니까요.

    19. 레아 2009.12.07 17: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을제로 하여금 국사를 총괄하게 하였다는 것은 선덕여왕의 나이가 젊지않다는 것을 의미하죠. 만약에 선덕여왕이 젊은 나이였다면 그건 진평왕이 늦게 마야왕후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다는 이야기인데 사실 진평왕이 늦은 나이에 결혼한 사람은 승만왕후이죠. 그리고 선덕여왕이 재우 십년에 죽었는데 그 젊은 나이에 별다른 이유없이 죽었다는게 말도 안되고요.

    20. Favicon of https://salm.pe.kr BlogIcon koc/SALM 2010.01.13 09: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 내용이 맞다면 황고 칭호를 젊어서 받은 여자는 "선덕왕"이 유일하다는 게 됩니다.
      비슷한 시기의 측천무후가 "고" 칭호를 자신에 붙인 때가 40대 말이었죠. 자칭인데도 그랬는데, 타칭을 절은 사람에게 붙여준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21. Favicon of http://www.bestvibramshoes.com BlogIcon cheap vibram five fingers 2012.06.07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든님 말씀이 맞아요. 어떻게 알았냐는 거지요.. 저의 질문은.. 그래서 제가 보종은 설원랑을 닮아서 너무나 눈설미가 있는건가라고 반문을 하잖아요.. 글의 행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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